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석굿에서 팽개중의 농간으로 칠성님을 덮어 쓰는 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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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8-25 12:12 조회 1,0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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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평


우리 굿의 특징은 1인 전속으로 주무가 굿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장구재비가 주무를 도와서 조무역할을 한다.

주무와 조무가 주고받는 무가사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무와 조주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굿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첫째, 굿을 이해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려면, 굿에 나오는 무가사설에 나오는 많은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고 하겠다.

굿을 접하는 사람들이 굿에 쓰이는 용어의 의미를 알고 나면, 굿을 이해하는 데에 훨씬 수월해 질 것이다. 

 

둘째, 굿에는 종류가 많으므로 국민교육용으로 대표성이 있는 텍스트를 하나 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굿 중에서 대표성있는 굿을 하나 들라면 황해도굿의 철무리굿을 들고 싶다.

이 굿 하나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 굿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지리라고 본다.

이 굿에는 마고에서부터 시작하여 단군왕검에 이르는 1만년역사에서 생산된 종교적 산물이 그대로 망라되어

있다. 우리는 굿을 멀리한 탓에 지금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셋째, 외국의 인류학자들은 멀지 않은 장래에 멸망하게 될 것으로 예언되어지고 있는 기독교의 대체종교를

찾기 위하여 샤머니즘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의 굿이 절대로 샤머니즘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인류가 생산해 낸 종교들 가운데에 최고(最古, 最高)의 종교임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철무리굿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분석하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넷째, 우리 무당과 무속종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굿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류를 시정하지

않으면, 굿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 굿에서 무엇을 알지 못하고, 무엇을

오해하고,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최고의 영능력을 타고난 무당들이, 오류에 기초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결과는 본인을 불행

으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본인의 활동에 의지하고 있는 모든 신명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이번에 인용하는 본문은 무당과 장구재비가 주고받으며 구연하는 무가사설의 주인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냥 듣기만 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무당과 장고재비가 장면전환을 해가며 전환된 장면 속에서 다른 주인공이 되어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만치,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무당은 제석굿에서 종교의 근원을 밝혀주는 <천수타령>과 <천수 뿌리기>를 끝내고, 다음 단계인 <복주기와

명주기>로 넘어간다.

복을 주고 명을 주는 주체는 칠성님이다.

그러나 제석이 팽개중에게 엎여 들어와 칠성님을 제치고 주인행세를 하려 든다.

 

 

이 대목이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무당 : 검으나 따에 희나백성은 잠들여 놓고, 약수弱水 삼천리를 잠깐 건너가서, 삼신산 불로초, 만수산

가양초(취)를 구해다가, 이 댁 가중에 복이 적고 명이 짧다니,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겠구나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위에 무당이 하는 말은 칠성님이 무당을 통하여 하는 말이다.

칠성님이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칠성님만이 그의 백성을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고, 또한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이 오랜 세월을 칠성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므나 따’는 칠성을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단군왕검의 땅이고,

‘희나백성’은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조선백성이다.

약수를 건너가야 곤륜산이 있기 때문에 칠성님이 이 강은 건넌다는 것이다.

칠성님이 이 강을 건너는 이유는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을 살려 명을 주고 복을 주기 위해서이다.

 

약수弱水는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강인데, 물의 힘이 너무나 약한 강이라, 새털조차 갈라않지 않는다고 한다.

(산해경) 이 강이 장성長城 수 천리 밖에 있다.(산해경)

이 강은 인간으로서는 갈 수 없는 강을 의미한다. 하나님만이 가실 수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본문에 삼신산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곤륜산과 삼신산을 혼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신산과 곤륜산은 서로 위치가 다르다. 필자는 삼신산은 발해만에 있고, 곤륜산은 타클라칸사막과 천산산맥

을 넘어가야 있는 산이기 때문에, 같은 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산에는 북두칠성이 떠서 조응하는 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북두칠성이 관장하는 산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조상은 이들 두 산을 성산으로 여기며 중요시해왔다.

여기에서 불로초가 난다고 했으니, 칠성님을 믿는 사람들의 성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만수산萬壽山은 개성에 있는 송악산이다.

이곳에서 나는 가양취(마타리)는 9속 350여 종이나 있는 흔한 풀인데, 약재로 쓴다.

 

불로초는 구하기 힘든 약초이고, 가양취는 구하기 쉬운 약초이다.

불로초와 가양취를 섞어 줌으로써 구하기 힘든 명과 복을 구하기 쉬운 명과 복으로 바꾸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제석공미로 바친 떡을 굿상에서 갱정과 제금에 담아 든다 -

상교대야~ 상교대야~

장고 : 네. 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제석공미는 칠성님에게 바치는 공양미이다. 그러므로 칠성님공양미로 바꾸어 불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칠성님공양미로 바친 떡을 거두어 논아주기 위하여 갱정과 제금에 담는다.

굿에서는 떡이 불로초와 가양취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당은 상교대야~상교대야~하고 팽개중을 부른다. 무당이 칠성님을 대리하여 팽개중을 부르는 것이다.

상교象敎가 불교를 의미하므로, 대隊를 붙여, 상교대象敎隊라고 하면 중의 무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장고재비가 팽개중이 되어 ‘네. 네.’하고 대답한다.

 

무당 : 삼신산 불로초를 구해 왔으니, 어디로 가서 누구를 찾아 주어야 하느냐?

장고 : 제석님(실은 제석님이 아니라 칠성님이다. 팽게중이 칠성님을 제석님으로 바꿔치기 하기 위하여

수작을 부리고 있다)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시오.

무당 : 예끼 이놈. 어른은 길러보고 아이는 섬겨 보았느냐?(칠성님이 팽개중의 얕은 술수를 알아차리고 책망

한다) 칠성님보고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라니.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무당과 장고재비의 대화가 묘하게 돌아간다.

이때의 무당은 칠성님의 역할을 하고, 장고재비는 팽개중의 역할을 한다.

칠성님이 불로초를 구해 와서, 팽개중에게 "이것을 누구네 집에 전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팽개중은 자기에게 묻는 분이 칠성님임을 무시하고 제석님이라고 한다.

“제석님,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시오.”라고 하며 퉁명을 떠는 것이다.

칠성님은 자신이 칠성님임을 상기시키며 책망한다. “예끼 이놈, 어른은 길러보고 아이는 섬겨보았느냐?

칠성님보고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라니. 어른은 길러 보고, 아이는 섬겨 보았느냐?”라는 말에서, 어른이 칠성님

이고, 아이가 제석임을 알 수 있다. 이점을 분명히 해 두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팽개중이 무교에게 무슨 악행을 저질렀는가 하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장고 : 그러면 삼신산에 약을 사려, 삼신산에 명과 복을 사려, 불사약을 사려, 불사약을 사려  하며 외쳐 보슈. 

무당 : (만복떡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사려, 사려, 이 중하고 끼어서 불사약을 사려. 아무리 다녀 봐도

사자는 사람 없네.

장고 : 여보시오. 칠성님. 중 소리는 쑥 빼고 불사약만 사라고 해야지. 중하고 사라고 하면 불신천왕佛神天王이

따라 들까봐 무서워 대답을 안해요.

무당 : 옳지. 그렇겠구만. 그럼 이 중은 쑥 빼고 명과 복을 사시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이 무가사설은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게 된다.

칠성님은 자기를 몰아내고 제석님을 칠성님의 자리에 앉히려고 술수를 부리는 팽개중을 불로초, 가양취와 함께

팔아버리려고 한다.

불로초와 가양취와 중을 함께 대려서 약으로 마셔버리라는 뜻인가?

칠성님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희귀한 약재를 사는 사람이 없다. 굿을 해 달라고 청한 이 댁 가중조차도 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무 쓸모없는 중을 불로초와 함께 사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불신대왕이 중을 따라 들어올까 보아 겁이 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민중들로부터 배척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고재비는 중을 빼고 “삼신산에서 캐 온 약 불로초사려! 삼신산에서 받아 온 명과 복 사려! 불사약을 사려!”

하라고 정정해 준다. 칠성님은 장고재비가 시키는 대로 한다.

 

-이 때 여주네는 새 바가지에 쌀을 담아 치마폭을 들고 나오며 대답한다-

여주네 : 네. 네.

무당 : 옳지.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 88쪽)

 

 

칠성님이 중을 빼고, 사라고 외치자, 여주네가 나서서, "사겠다"고 대답한다.

무당이 "옳지" 하고 대답한다. 산다는 말은 물건을 산다는 말이지만, 또 사람이 산다는 말도 되는 묘한

뉴앙스를 가지고 있다. 거래라는 말과 삶이라는 말이 함께 있다.

 

-여주네가 12폭 치마를 쭉 벌리고 나오면, 만신은 “주인마님, 소승 무안 드리오” 하면서 여주네를 어루

만지며, 치마폭에 복떡을 쏟아준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여주네는 12폭 치마를 쭉 벌리면서 칠성님이 파신다는 것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무당은 돌연히 팽개승으로 변하여 “주인마님, 소승 문안드리오”하고 뚱딴지를 부린다.

제석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칠성님을 덮어쓰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여주네를 어루만지며, 치마폭에 복떡을 쏟아준다.

세상에 이처럼 화가 나는 황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칠성님이 제석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전통신앙인 칠성신앙이 외래종교인 불교에게 눈뜨고 당하게 되는 일을 제석굿에서는 무당과 장고재비가 구연

하는 무가사설에서 역할을 바꾸어가며 보여주고 있다.

 

장고 : 여보시오. 스님인가, 중상(장승을 비꼬아 하는 말)인가, 또 검특한 마음을 먹고, 주인마님 손목을 왜

만지며 흑숙학숙(흑죽학죽-어물어물) 합니까?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이 광경을 목도한 장고재비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스님인가 중상인가 하고 비꼰다. 왜 또 흑심을 품고, 주인마님의 손을 어물어물 주무르느냐고 따진다.

이때의 주인마님은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을 대표한다.

장고재비가 하는 말은 "왜 조선백성을 농락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우리 굿의 명맥을 이어 온 사람들이 장구재비였다고 볼 수 있다.

 

무당 : 자라보고 놀란 놈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생각이 달라, 주인마님 손목을 어루만지는 게 아니고,

이 정성을 드리고, 아들을 낳으면, 평양감사를 낳고, 딸을 낳으면 의주부인을 낳을 제, 마나님의 마음씨가

어질어서 물을 아껴 쓰니, 용왕님이 돌보겠고, 나무를 아껴 때니, 산신님이 굽어보고, 이웃을 사촌처럼 사랑

하니 자손이 복이 되고, 부모공경을 잘 하니 자손만대 부귀공명하리라. (하면서 떡을 치마폭에 쏟아주며)

이 복을 받아 백모래 속에다가 묻어 두었다가 3년 후에 움이 돋고 싹이 나면 다시 오리라.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무당은 또 다시 팽개중으로 돌아가 능청을 떨며 사기 치는 무가사설을 늘어놓는다.

팽개중으로선 가당치 않은 무가사설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 정성을 드리고 나면, 삼신·용왕·산신이 도우실 것이요, 자손이 복이 되고, 자손만대 부귀공명을 누리

겠다고 한다.

그러나 팽개중의 협잡으로 그런 결과가 올지는 미지수이다.

"이 복을 받아, 백모래 속에다가 묻어 두었다가, 3년 후에 움이 돋고 싹이 나면 다시 온다"고 하였으니,

사기의 실상이 들어난 셈이라, 팽개중이 끼어든 굿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굿이라고 하겠다.

 

(나무아미타불)

명이 가요 복이 가요 삼신산 불로초가 가요 칠성님께(서) 가지(고 계신) 명복이 갑니다.

오시는 길에 명이 가요, 가시는 길에 복이 가요. 이 복을 받으시면, 마음먹었던 일은 소원 이루리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그러나 칠성님이 돕는다면 팽개중의 사기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명이 가고, 복이 가고, 삼신산의 불로초가 가고, 칠성님께서 가지고 계신 명과 복이 가고,

복을 받으면, 마음먹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무당은 친척들과 구경꾼들에게 제금에 받쳐 든 복떡을 고루 주며 축원을 한다. 이때 떡을 받은 이들은 제금

위에 돈을 놓는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무당은 무가사설을 구연하면서, 구경꾼들에게 복덕을 나누어 준다.

본문에는 불교가 너무 많이 침식되어 있어서 침식당한 부분을 드러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참고: 노중평저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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