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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신앙 : 조상신 - 조상과 자손이라는 혈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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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1:38 조회 19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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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신앙 : 조상신 - 조상과 자손이라는 혈맥 관계

 

 

 

부모나 조부모 등 피를 이어준 조상들의 혼령도 가택신의 하나로 받들어 왔다. 조상신은 다른 가택신에 비해 집안 사람들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데, 조상과 자손이라는 혈맥 관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보호적 영력이 강할 것으로 보고 신봉하게 되었다.

조상신에 대한 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추적할 수는 없지만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사람들은 조상의 영혼은 육체가 사멸하여도 남아 있으며, 후손의 탄생은 영혼의 이입이라고 믿음으로써 조상 숭배가 성립되었다.

한편 공동체에서 가족의 주체성이 확립됨에 따라서 일가를 창시한 선조를 특별히 숭배하는 선조령(혹은 선조신)이 탄생했다. 이런 식으로 동족끼리 모여 동족단이 결성됨에 따라서 시족신이 만들어지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민족이나 국가의 시조신이 형성되었다. 단군 왕검을 시조로 모시는 신앙도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조상 숭배의 연장선상에 있다.

흔히 주변의 무엇인가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고 “신주 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을 한다. 이 ‘신주 단지’가 바로 조상신의 신체다. 이외에도 조상 단지, 제석 오가리, 또는 앞에서 언급한 신주 단지라 불리는 단지 안에 조상의 이름을 써 넣고 그 안에 쌀을 넣어 백지로 봉하여 성주머리의 구석이나 대청에 안치하여 조상신의 신체로 받아들였다.

조상 단지의 쌀은 햇곡식이 나올 때마다 갈아주는데 묵은 쌀은 반드시 그 집 가족들만 먹음으로써 혈연을 보호하는 성격이 강조된다. 조상 단지를 조상 할매라 부르기도 하는데, 조상을 가부장 남성으로 받아들이는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모습이다. 아마도 곡식의 생산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다산의 여성성을 부여한 것 같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민간 신앙은 약화되어갔고 조상신을 섬기는 제의의 형식 또한 전래의 민간 신앙 형태에서 기제사, 사당제, 묘제 등 유교적인 형태로 바뀌어갔다. 유교적 조상 숭배가 제례의 중심이 되면서 조상신은 가택신의 범주에서 점차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무속적인 조상 단지는 유교적인 지방, 신주로 바뀌게 된다. 이런 변화는 조상신에 대한 신앙행위의 주체이자 사제자였던 여자와 주부가 남자인 장자와 종손으로 옮겨갔으며, 조상신이 거주한다고 믿어졌던 공간 또한 성주 머리나 대청의 한 구석이 아니라 사당, 묘소 등으로 바뀌어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상신은 유교의 교리 안에서 공식화되었고 한 가정을 수호하고 안녕을 관장하는 가신에서 점차 분리되어 갔던 것이다.

유교에서는 4대까지의 조상 혼령들을 사당에 모시고 그 이상의 조상들은 신주를 묻어 매조하고 묘제로 제사 지내는 것이 원칙이다. 사당을 갖추지 못하고 사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큰 방의 윗목 즉 성주신이 쓰고 있는 곳에 조상신을 같이 모셨다. 조상신에게 제사 지낼 때 그 제상 옆에는 성주신을 위한 제상이 늘 덤으로 차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성주신이 좌정하고 있는 처소를 조상신이 빌려 쓴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조상신은 가신처럼 집안의 어느 곳을 담당하는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신격으로 상승되었으며 단순한 길흉화복의 기능에서 벗어나 혈맥 중심의 종족보존 전승의 기능이 더해진 신으로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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