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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화와 당쟁의 사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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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1:44 조회 4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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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와 당쟁의 사회상

토정 선생이 태어나기 전 무오사화(戊午士禍)나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있었다.

조선사를 볼 때 조선왕조는 태조(太祖)의 건국이래 한 백여 년간 성종(成宗) 때까지는 지배체제가 확립되어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이 됐지만 그 후에는 사화와 당쟁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 10대 연산군 때부터는 붕당(朋黨)의 정치적 알력을 대옥(大獄)이 일어나 다수의 사류(士類)가 일시에 희생이 되는 이른바 사화가 연달아 일어났고 토정이 사망할 때쯤 선조(宣祖) 때부터는 붕당의 대립이 장기화하여 당쟁을 거의 제도화 시켰다.

사화의 연산군 때의 무모사화부터 시작이 되긴 하지만 실질적인 표면화는 세조 때부터 시작한 조야(朝野)의 문인 학자들로 구성한 4대 파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4대 파벌

가. 훈구파(勳舊派)로서 여러 유신이 중심이 되어 세조를 옹호했던 귀족, 관료, 학자들의 파벌

나. 절의파(節義派)로서 세조의 패륜한 행위에 반대하여 절의(節義)를 품고 방랑과 허무의 일생을 마친 생육신

다. 영남학파(嶺南學派)로서 영남일대에서 문장과 경술(經術)로서 잘 알려진 야인(野人)귀족으로 뭉쳤으며 소위 사림(士林)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고 자부하는 파

라. 청담파(淸談派)로서 절의파와 같은 야인이지만 세상권세와 명리(名利)를 더럽다 하여 청담과 풍류로서 일생을 보내는 파
※ 본문 : 한중수 ( 토정비결 전문가 )
※ 참조 : 토정비결이란 무엇인가. 김중순 ( 서울디지털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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