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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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 여흘리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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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1:59 조회 27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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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안좌면 여흘리 당제

제명 : 당제
신격 : 당산
제당 : 마을회관(舊 당산나무)
일시 : 음력 1월 3일


개괄

여흘은 읍동으로부터 5㎞ 거리이고 총 93호(농가 97, 비농가 6)에 400명(남 192, 여 208)이 거주한다. 마을은 慶州金氏 65호가 동족 마을을 형성하고 있고, 앞에는 군자연보호림으로 지정된 팽나무 위실(우실)이 있다. 마을뒷면에 정월 초하루에 자석(식)들 좋으라고 공드리는 평(병)풍바위가 있고 그 밑에 堂이 있었다. 이곳에 마을민은 음력 정월 초삿날(초사흘) 밤 11시경에 한 해 동네에 사고나 병고 없이 잘 넘어가게 해 달라고 “동제”, “당제”를 지냈다. 그러나 堂이 박지리로 건너간 뒤 요즈음은 새마을회관이 위치한 사장에서 거행하고 있다.

제의내용

가) 제당 구성 및 신격
사장은 넓은 공터로 둘레 175㎝, 수령 100년생인 당산나무로 불리우는 구시(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현재는 당제를 사장에서 지내지 않고, 사장 옆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지낸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 지낸 것은 60여년 정도 됐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제일을 정월 초하루로 옮기 상태다. 제일을 옮기게 된 것은 초사흗날에 지내면 마을 사람들이 잘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과, 설날에 내려온 귀성객들과 같이 지내기 위함이었다.

나) 당제 준비
洞祭 거행시기가 다가오면 마을 이장은 제관인 “제주”를 물색한다. 제주는 생인(喪主)이나 잉태가 없는 깨끗하고 연운이 맞는 사람으로 두 명이 선출되는데 이들은 김치, 술, 담배를 먹거나 피우지 않고 간장ㆍ참기름에 식사하고, 대변에는 목욕 등 공을 드리고 많은 것을 게린다. 1985년 제주는 김봉선(남 51세), 김재식(남 57세)씨가 맡았다.
제주는 정월 초하루 마을의 빈방을 빌어 그 집의 그릇을 사용하여 밥해 먹고 공들인다. 또 제주거처, 사장, 구세목(마을입구), 샘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줄치고 禁土를 뿌린다. 특히 祭場이 되는 사장(당산)에는 막을 쳐서 紙錢을 놓고 마을민은 제가 끝나기 전에 사흘간 사용할 물을 미리 길어다 놓는다.
제물은 제주가 거처에서 여성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밥 몇 그릇, 술, 흰머리떡, 소머리 등을 준비한다.

다) 당제 진행
제의 순서는 진설한 뒤 술 올리고 참종이 소제(지)를 올린다. 소제는 먼저 “동네 일 없이 잘 되게 해 달라”고 공동소제를 올리고 다음으로 마을수상, 이장, 마을주민의 순서로 병고 없이 잘 넘어가게 해 주십사고 개인소지를 올린다. 제가 거행되는 시간에는 마을민은 조용히 한다.

라) 제후 행사 및 전승현황
祭 후에는 이장선출, 마을자금결산, 제결산을 위한 마을총회를 갖고 여기서 이장은 제주에게 수고비로 삯을 지급한다. 예전에는 제주에게 주는 수고비는 없었다고 하며 마을총회는 제후에 거행하던 것을 몇 년 전부터 정월 초하루에 개최하고 있다.
祭費는 상당한 예산이 드는데, 예전은 쌀 한 되를, 요즈음은 물가에 따라 돈을 걷어 왔으나 1985년은 일체 걷지 않고 마을재산(田)으로 충당하였다.
그러나 이상의 여흘 동제는 祭期間에 出産이 발생하면 어쩌는 수가 없이 제가 거행되나 만약 사망자가 있게 되면 동제장이 되는 사장이 護喪處가 될 수는 없으므로 출상은 제가 끝난 후에 치른다. 또는 옛날 한 해 촌립(전염병)이 번져 칠월 보름에 한 번 더 지낸 경우도 있었다. 요즈음은 제에 대한 젊은층과 교회의 반발이 있으나 계속 모샷(셨)다.
□ 참고문헌
<<도서문화 4집>>,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1986, 110~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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