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징의마을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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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03 조회 333 댓글 0

본문

전남 해남군 황산면 징의마을 산신제

 

 

 

 

 

 

 

 

 

 

 

 

제명 : 산신제(거리제), 용왕제
신격 : 산신제(산신), 용왕제(용왕)
제당 : 마을 입구, 마을 바닷가
일시 : 음력 1월 14~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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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황산면 한자리 징의마을
산신제

제명 : 거리제

일시 :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위치 : 특별한 제당이 없고 마을 산을 향해 제를 지낸다.

내용 : 마을의 안녕을 위하고 家庭의 所望之事를 위한 거릿제를 모셔오고 있다. 특별한 제당이나 신격이 없어 거릿제라고도 하고, 마을 산을 향해서 제를 지내기 때문에 산신제라고도 한다.

특징 :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바닷가에서 용왕제도 지내고 있다. 특별한 제당이나 신격이 없어 거릿제라고도 하고, 마을 산을 향해서 제를 지내기 때문에 산신제라고도 한다. 마을에서 喪故가 있을 때는 마을을 위한 祭祀인지라 새로운 날을 택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祭日이 가까워질 무렵에 짐승을 사냥하는 行爲까지도 금지시킨다.

제작의도 : 본 영상은 풍물굿과 함께 진행되는 서남해 어촌의 의례적 특징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


개괄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마을의 안녕을 위하고 家庭의 所望之事를 위한 거릿제를 모셔오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바닷가에서 용왕제도 지내고 있다. 특별한 제당이나 신격이 없어 거릿제라고도 하고, 마을 산을 향해서 제를 지내기 때문에 산신제라고도 한다. 마을에서 喪故가 있을 때는 마을을 위한 祭祀인지라 새로운 날을 택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祭日이 가까워질 무렵에 짐승을 사냥하는 行爲까지도 금지시킨다.

제의내용

거릿제를 주관하게 될 祭官은 祭日로부터 7일 전에 2人(큰제관, 작은제관)을 선출하게 된다. 이들 祭官들은 엄격하게 禁忌하는 것은 없으나 대소변시에는 반드시 목욕정성을 드려야 한다.
祭官宅(큰제관)은 여타 다른 宅과 구별하기 위해서 旗(빨강, 파랑, 노란색의 천)를 세워 두어 깨끗지 못한 者들의 出入을 경계한다.
실제로 祭祀(거릿제)가 시작되는 것은 자정부터인데 한두시간 전부터 동네 어른 4~5人이 큰제관댁으로 모여 祭官의 安否를 묻고 잠시 후 자정부터 지내게 될 祭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제관은 매우 착잡한 표정이었으며 問安次 들린 洞民들과는 비교적 대화를 꺼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밤 11시경에 祭官(큰제관)과 洞民들은 장구, 북, 꽹과리를 치며 작은제관대으로 가 역시 궁고를 치면서 작은제관을 위문하였다.
제관댁에서의 농악이 모두 끝난 후 마을 里長과 큰제관은 이미 준비된 令旗 (가로 90cm×세로 50cm의 청색천에 적색띠를 한 旗를 4m의 竹竿에 달고 상부에는 함석의 枝槍을 부착한 旗)를 마을회관 좌우에 세웠는데 이때가 바로 자정이 되기 바로 전이었다. 令旗를 세워두는 것은 제사가 시작됨을 알릴 뿐만 아니라 祭場의 雜鬼 접근을 막는 의미도 있다한다. 그래서인지 令旗가 넘어지는 것은 마을에 좋지 못한 것으로 여겨 매우 견고하게 세워둔다. 한편 令旗뿐만 아니라 마을入口에는 ×字형으로 통나무를 세워 外部人의 出入을 삼가시킨다.
모든 제사준비가 끝나면 자정부터 큰제관과 작은제관은 床을 차려 令旗를 세워둔 마을회관 앞 祭場에서 제를 모시게 된다. 이때 마을의 여러 다른 宅에서도 床을 차려 祭場에 진설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가정을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조금이라도 깨끗지 못하다고 생각될때는 상차림을 하지 않는다.
제사는 큰제관과 작은제관에 의해서 실시되지만 진설되는 음식은 다양하며 또한 매년 진설되는 床의 數도 다르다. 이 마을 鄭福在(35)氏에 의하면 많을 때는 15~20床, 적을 때는 10床 내외라고 한다. 마을을 위한 제사라고 하지만 작게는 자신만을 위한 생각이 앞서기에 남보다 먼저 祭場에 상을 내놓는 것을 매우 흐뭇해하며 조금이라도 남보다 늦을 경우는 무척 서운해 한다. 이렇게 다투어 陳床되는 가운데 제사는 자정부터 이루어진다.
祭儀는 엄격한 가운데 진행되며 두 분의 제관 외에는 일체 접근을 금한다. 그러기에 직접참여관찰을 하려했던 조사자도 祭儀과정만은 볼 수 없었다. 제의순서는 비교적 간단하여 제관댁의 진설음식을 중앙에, 일반 가정의 상차림은 좌우에 陳床된다. 큰제관에 의해 ?爵이 되고 祝文이 讀祝된다.
그리고는 燒紙를 올리는데 맨처음 洞中소지, 洞長님소지, 中?靑年?小兒소지, 제관소지 順이다. 소지가 끝나면 자부어 올리고 제관의 拜로서 제사는 모두 끝이 난다.
제사를 마친 제관은 진설했던 음식을 그대로 놔두고 歸家한다. 이는 다음날 아침부터 있게 될 ?食祭를 위해서이다. 2004년에 각 가정에서 내놓은 床은 6床이었다.
지난밤 제관에 의해 마을의 거릿제는 끝이 나고 마을민들은 제관댁에 모여 ?食祭를 위해 복장을 통일하여 갈아입고 궁고를 치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고깔을 썼으며 몸에는 3색(빨강, 파랑, 노랑)띠를 둘렀다. 놀이를 하는 人員은 20여人으로 창부2人, 깽쇠2人, 징2人, 북2人, 장고2人, 나머지는 소고를 들었다. 궁고의 선두에 서게 될 창부는 허름한 검정옷에 자루를 등에 졌으며 궁고를 리더하는 설쇠(꽹쇠)는 상모를 쓰고 꽹과리를 쳤다. 상모를 착용한 자는 설쇠외에도 북과 장고를 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헌식제를 위한 준비가 완료되자 제관을 상징하는 旗를 앞세우고 제장으로 향하는데 골목길을 지날때도 계속하여 궁고를 친다. 궁고는 때와 장소에 따라 박자가 변화되는데 거리에서 行하는 굿을 질(길)굿이라 한다.
오전 10시 궁고를 치는 마을민 20여人은 지난밤에 거릿제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헌식하게 된다. 처음에 1열 횡대로 늘어선 20여人의 궁고 놀이패들은 2拜를 올린 후 곧바로 헌식을 하였다. 헌식도 거릿제를 지냈던 제관(큰제관)과 창부2人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볏짚을 깔고 陳床했던 음식을 짚위에 부어 놓으며 음식 가운데에서도 과일이나 마른음식, 돼지고기는 창부가 지고 다니는 자루에 담았다.
祭場에서의 헌식제를 마친 궁고 놀이패들은 마을 앞 속칭 짓산(젯산)에 올라가 한바탕 뛰어논 후 용왕님에게 두 번 절을 하고 下山하여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샘굿을 치며 호별방문을 하여 마당밟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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