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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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04 조회 330 댓글 0

본문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당제

 

 

 

 

 

 

 

 

 

 

 

 

 

 

 

 

 

제명 : 당제
신격 : 장보고대사(송징장군), 정연장군, 혜일대사
제당 : 장좌리에는 두 개의 당이 있는데 하나는 장도의 당집이며, 다른 한 곳의 당은 귀목나무가 서 있는 사장거리이다.
일시 : 음력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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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당제

제명 : 당제

내용 : 장좌리의 당제는 풍물굿과 제사가 결합된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의례적 특징을 보인다.

제작의도 : 본 영상은 <풍물굿 +유교식제사>의 특징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

전남 완도 장좌리 송징장군

지역 : 전남 완도 장좌리

명칭 : 송징장군

특징 : 아직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새벽 6시 정도에 장도에서 당제를 지내며 지금은 당제 중심의 축제로 발전하여 좋은 문화상품의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고려의 장보고 장군 및 삼별초 항쟁 때 완도에 머물면서 항쟁운동을 벌이며 지방민을 보살폈던 송징(宋徵) 장군 등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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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당집

지역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제명 : 당제

제당 : 장좌리에는 두 개의 당이 있는데 하나는 장도의 당집이며, 다른 한 곳의 당은 귀목나무가 서 있는 사장거리이다.

위치 : 장도는 해발 33m, 넓이 29,991평의 조그만 섬으로 당집은 마을 앞 2-300m 거리에 위치하며 섬의 정상에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속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마을 안 射場의 귀목나무거리로 堂樹로 불리운다.

형태 : 장도의 당집은 동향으로 앉아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다. 본래는 초가였으나 기와로 지붕을 바꾸고 크게 수리를 했다. 상량문이 皇紀 2600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는 일제시대인 1940년에 새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칸 맞배기와집이며 바닥은 대청형이다. 다른 하나는 마을 안 사장의 귀목나무거리.

좌정된 신격 : 판자로 짠 상이 세 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주신인 宋徵將軍, 우측은 鄭年將軍, 좌측은 혜일대사를 모시는 제상이다. 역사적인 인물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당집은 오히려 성격상 儒式의 祠宇와 같다. 다른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은 1982년부터 이곳에 새로 張保皐를 추가하여 모시고 있는 것이다. 당시 남도문화제에 이곳 堂祭가 출연하면서 이곳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로 그를 추배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후 계속해서 張保皐까지 4위의 당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특징 : 전남의 당제는 역사적 인물 보다는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 모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나 장좌리의 당제는 특정의 역사적 인물을 당신으로 모신다는 데 특색이 있다. 宋徵將軍을 主神으로 하고, 鄭年과 慧日大師를 副神으로 하여 모시는데, 소위 祠堂格인 당집에서 매년 정월 보름에 合祭形式으로 제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문제는 부신인 鄭年과 慧日大師는 분명히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찾아지는 것에 반해서, 오히려 주신인 宋徵將軍의 경우는 역사 속에 감추어져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여간 어렵다는 것이다. 장좌리 당제에서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제당의 二重構造라 할 것이다. 宋徵을 비롯한 인물신을 모시는 당집이 하나의 제당이라면, 마을에 있는 堂樹들이 다른 하나의 신체로서 모셔지고 있어 제당의 편성이 복합적이다. 또 제를 모실 때 행하는 농악은 1차굿부터 12차굿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옛날의 군대의 진법 형식을 띠고 있어 軍鼓樂이라고도 불리운다.

제의 소멸과 변천 : 아직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새벽 6시 정도에 장도에서 당제를 지내며 지금은 당제 중심의 축제로 발전하여 좋은 문화상품의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고려의 장보고 장군 및 삼별초 항쟁 때 완도에 머물면서 항쟁운동을 벌이며 지방민을 보살폈던 송징(宋徵) 장군 등을 추모하고 있다.

제작의도 : 단칸 맞배기와집이며 바닥은 대청형이다. 그 속에는 판자로 짠 상이 세 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주신인 宋徵將軍, 우측은 鄭年將軍, 좌측은 혜일대사를 모시는 제상이다.
위치도 그렇고 건물의 이미지가 독립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그러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기둥을 받치고 있는 돌 이외에는 거의 곡선을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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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리의 당제는 주신인 송징장군이 청해진 대사 장보고와 같은 인물로 추정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본 음성자료는 당제를 마치고 소지를 올리면서 장군님께 소원을 비는 소리이다.

개괄

장좌리는 매해 음력 1월 15일 새벽 장보고 대사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당제의 주신이 장보고인 것으로 인해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당제는 마을 앞에 있는 장도 정상에 있는 당집에서 지내는데, 건너갈 때는 물이 빠져 걸어서 올라가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밀물이 들어 배를 타고 건너온다. 장좌리의 당제와 당굿은 1995년 전남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의내용

장좌리의 당제 준비는 정월 초사흗날부터 시작된다. 정월 초사흗날 마을 대동공회(大同公會)를 열어 제관과 제비, 당굿 칠 사람들을 선정한다. 이 회의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책임자들이 참여하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시행한다.
당주는 집사와 달리 매해 새로 선정한다. 이는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기 때문이다. 당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친가는 물론 처가까지도 부정과 유고가 없어야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애가 있어도 안 된다. 또한 부인이 생리를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주로 나이가 연만한 집의 부부를 선정한다.
당굿 칠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규제가 덜한 편이나 초상이나 출산 등의 유고가 있는 사람은 제외한다. 집안의 큰 유고가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 참가할 수 있는데, 스스로 유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굿을 칠 때 당집의 금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제비는 당공(堂貢)이라고 하며, 그 해 당제에 필요한 경비를 산출하여 호구전으로 걷는다.
제일 새벽이 되면 당제를 지낼 사람들과 당굿을 칠 군중들은 갯벌위를 걸어서 장도로 이동한다. 당제는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을 맞추어 제례가 시작된다. 당집이 동편을 향하고 있어서 멀리서 해가 뜨는 광경이 보였다. 당주와 집사, 이장이 당에 들어가 제례를 시작한다.
제차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가제(家祭)의 순서에 준해서 지낸다. 전체적인 제차를 보면, ‘設床 - 焚香 - 降神盃 - 讀祝 - 初獻 - 亞獻 - 終獻 - 燒紙 - 飮福 - 獻食 - 撤床’의 순이다.
진설을 할 때까지 밖에서 쉬고 있던 군중들이 제를 시작할려면서부터 당집 앞마당에 도열하여 상쇠의 지시에 따라 당산굿을 치기 시작한다. 독축과 소지를 할 때만 굿을 잠시 그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제관들이 당신(堂神) 에게 절을 올릴 때는 굿을 치면서 서서 함께 目禮로 절을 올린다.
음복이 끝난 후 철상을 하면서 각 상에서 음식을 조금씩 떼어 축문에 싸서 당집 옆 나무 그루터기 위에 놓았다. 여기서 헌식을 하고 절을 하는 사람은 군중의 대포수다. 헌식이 끝나면 당집 앞마당에 식판을 줄줄이 늘어놓고 거기에 갖가지 음식을 차례로 담는다. 장보고장군 부하인 군사들에게 거리밥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제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밀물이 들어 마을과 장도가 바다로 가로막힌다. 따라서 마을로 돌아올 때는 배를 타고 건너온다. 배를 타고 건너오면서 뱃굿을 친다. 마을로 돌아와서는 샘굿과 사장굿(당산굿), 마당밟이 등을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파장굿을 치면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 짓는다.

제당의 형태

위치 : 장도는 해발 33m, 넓이 29,991평의 조그만 섬으로 당집은 마을 앞 2-300m 거리에 위치하며 섬의 정상에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속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마을 안 射場의 귀목나무거리로 堂樹로 불리운다.
형태 : 장도의 당집은 동향으로 앉아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다. 본래는 초가였으나 기와로 지붕을 바꾸고 크게 수리를 했다. 상량문이 皇紀 2600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는 일제시대인 1940년에 새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칸 맞배기와집이며 바닥은 대청형이다.
다른 하나는 마을 안 사장의 귀목나무거리.
좌정된 신격 : 판자로 짠 상이 세 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주신인 宋徵將軍, 우측은 鄭年將軍, 좌측은 혜일대사를 모시는 제상이다. 역사적인 인물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당집은 오히려 성격상 儒式의 祠宇와 같다. 다른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은 1982년부터 이곳에 새로 張保皐를 추가하여 모시고 있는 것이다. 당시 남도문화제에 이곳 堂祭가 출연하면서 이곳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로 그를 추배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후 계속해서 張保皐까지 4위의 당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특징 : 전남의 당제는 역사적 인물 보다는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 모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나 장좌리의 당제는 특정의 역사적 인물을 당신으로 모신다는 데 특색이 있다. 宋徵將軍을 主神으로 하고, 鄭年과 慧日大師를 副神으로 하여 모시는데, 소위 祠堂格인 당집에서 매년 정월 보름에 合祭形式으로 제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문제는 부신인 鄭年과 慧日大師는 분명히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찾아지는 것에 반해서, 오히려 주신인 宋徵將軍의 경우는 역사 속에 감추어져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여간 어렵다는 것이다. 장좌리 당제에서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제당의 二重構造라 할 것이다. 宋徵을 비롯한 인물신을 모시는 당집이 하나의 제당이라면, 마을에 있는 堂樹들이 다른 하나의 신체로서 모셔지고 있어 제당의 편성이 복합적이다. 또 제를 모실 때 행하는 농악은 1차굿부터 12차굿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옛날의 군대의 진법 형식을 띠고 있어 軍鼓樂이라고도 불리운다.
제의 소멸과 변천 : 아직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새벽 6시 정도에 장도에서 당제를 지내며 지금은 당제 중심의 축제로 발전하여 좋은 문화상품의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고려의 장보고 장군 및 삼별초 항쟁 때 완도에 머물면서 항쟁운동을 벌이며 지방민을 보살폈던 송징(宋徵) 장군 등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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