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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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 방월리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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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05 조회 24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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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안좌면 방월리 당제

제명 : 당제
신격 : 상당(당할매, 당하납씨), 하당(칠성암과 당산나무)
제당 : 상당(뒷산 중턱의 자연돌담), 하당(마을 가운데 당산나무와 지석묘)
일시 : 음력 1월 15일


개괄

方月里는 322명(남 162, 여 160)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방월리는 전에 목화, 담배 농사로 소득이 높았으며 현재는 마늘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제를 지내는 장소는 두 군데인데 할매ㆍ하납씨가 거처한다고 믿는 상당과 칠성신인 지석묘(支石墓)로 이루어진 하당이 있다. 이중 상당은 동네에서 동북방향에 있는 뒷산 중텩 굴바위로 가는 당바우(높이 4.5m, 폭 15~18m) 정상에 있다.

제의내용

가) 제당 구성과 신격
方月里는 322명(남 162, 여 160)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방월리는 전에 목화, 담배 농사로 소득이 높았으며 현재는 마늘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제를 지내는 장소는 두 군데인데 할매ㆍ하납씨가 거처한다고 믿는 상당과 칠성신인 지석묘(支石墓)로 이루어진 하당이 있다. 이중 상당은 동네에서 동북방향에 있는 뒷산 중텩 굴바위로 가는 당바우(높이 4.5m, 폭 15~18m) 정상에 있다. 여기에는 자연석의 돌담이 쌓여 있었으며(돌담 직경 약 300~440㎝, 높이 55~110㎝, 담폭 40~65㎝) 돌담안 북쪽에는 토석제단(土石祭壇) (가로 170㎝, 세로 130㎝, 높이 31㎝)이 있었다(현재는 부서져 있음). 돌담 주변에는 10~30년생 소나무가 세그루 있고 돌담안은 흙다짐 흔적이 있다. 이 뒷산너머에는 폐허가 된 절터가 있고 방월리 경주정씨들의 선영이 있었다. 하당에는 칠성바우(七星岩)라 불리우는 7개의 지석묘가 있었다. 이 칠성암인 지석묘가 하당신체(下堂神體)이다. 上堂에는 堂할머니를 모시고 下堂에는 堂할아버지와 七星神인 支石墓를 모셨었다. 下堂에는 神木인 팽나무가 있으며 神木의 근처에는 4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七星岩이라 하며, 下堂祭를 지낼 때 같이 祭밥을 차려 部落의 消災新福과 子息發願을 빈다. 바로 七星岩인 지석묘가 하당신이다. 祭日은 정월 15일이다.

나) 당제 준비
방월리에서는 제를 진행하는 제관을 “제주(祭主)”라 부른다. 제주는 마음 착하고 산고(産故)나 상고(喪故)가 없는 깨끗한 사람을 이장이 선정했다. 제주로 선정된 집앞에는 황토흙을 깔고 검줄을 치고 모든 것을 조심한다.
제는 당샘과 지당 주위에 검줄을 치고 제주로 선정된 부부가 목욕재계하고 꼬사리, 도랏, 콩나물, 녹두나물, 술, 냉수, 소금(?) 메 두 그릇을 차려 놓고 지낸다. 축문은 없고 다만 당할매ㆍ하랍씨(하납씨)께 부락 사고 없고 부정(不淨), 돌진(호녁, 손님) 없이 마을 잘 보아 주시고 농사ㆍ면화 잘 되게 해 달라고 빈다.

다) 당제 진행
상당의 할매ㆍ하납씨에게 제를 지낸 후에는 마을 앞 동네 우물 바로 뒤 칠성바우에도 지(祭)를 올렸다. 여기에는 지석묘가 2기 있는데 작은 것에는 성혈(性穴;cup-mark)이 여러개 뚫려 있다. 이곳을 웃사장이라하고 지석묘를 공알바우라고도 불렀으며 만지면 사고가 난다고 했다. 웃사장에는 황토흙과 외로 꼰 새끼로 검줄을 둘러 쳐 놓았다.
방월리로 들어오는 입구, 즉 하누(閑雲)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에 예전에는 둘레가 세아름이나 되는 팽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20년 전에 고사했고 여기에는 꼰, 말꼰, 육말꼰, 윷판을 새겨 놓았던 큰바위가 있었는데 이곳을 아랫사장(?)이라 불렀다.

라) 제후 행사 및 전승현황
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제비용은 제주가 부담한다(대동회 기금으로 충당한다는 보고도 있음). 지(祭) 후에는 징, 꽹쇄, 장구, 방구(북), 소고 등으로 굿물(군물, 농악)을 쳤고 마을희의나 줄다리기는 없었다. 이러한 방월리의 당지는 1970년대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한다.

마) 영험담
支石神인 칠성암은 영험이 있어 함부로 옮길 수 없다 한다. 방월리 정욱진(67세)씨 부친 정내살씨가 고인돌 한 쪽을 떨어뜨린 후 허리를 쓰지 못하고 死亡하였으며, 길을 造成하기 위해 고인돌을 옮기었는데, 부락에 憂患이 있었고 우물물이 나오지 않아 원 位置에 옮겨 놓았다.
방월리를 마을 뒷산에서 보면 집이 모여진 모양이 말(馬)이 달리는 형상으로 말대긋박(말머리)이나 꼭지(꼬리)쪽에 집을 지으면 좋지 않고 꼭 집이 뜯기게 된다고 한다.

□ 참고문헌
<최덕원, ??다도해의 당제??, 학문사, 1983년, 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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