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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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14 조회 383 댓글 0

본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당제

 

 

 

 

 

 

 

 

 

 

 

 

 

 

 

 

제명 : 헌석제(갯귀신제)
신격 :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갯귀신 또는 용왕
제당 : 상당(해변가 당집), 하당(상당 앞의 갯벌)
일시 : 음력 1월 12일

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당제와 헌석

제명 : 당제

일시 : 음력 1월 12일

내용 : 대포리의 당제는 갯귀신제라는 명칭으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 다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력 1월 12일 새벽에 제관들만 참석한 상당제를 지내고, 낮에 12당산굿을 친 다음 저녁에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제를 지낸 후 헌석을 하는데, 이때 헌석 끄렁치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징 : 본 영상은 벌교 대포리의 당제 중 12당산굿과 헌석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당집

지역 :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제명 : 헌석제(갯귀신제)

제당 : 상당, 하당

위치 : 해변가에 위치한 당집은 上堂이고, 상당 앞의 갯벌에 下堂이 위치한다.

좌정된 신격 :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갯귀신 또는 용왕

특징 : 대포리의 당제는 갯귀신제라는 명칭으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 다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력 1월 12일 새벽에 제관들만 참석한 상당제를 지내고, 낮에 12당산굿을 친 다음 저녁에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제를 지낸 후 헌석을 하는데, 이때 헌석 끄렁치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제의 소멸과 변천 : 대포리의 당제는 헌석제 또는 당제, 갯귀신제,‘제만모신다’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제일은 보통 택일해서 정하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음력 1월 12일로 고정해서 지낸다. 제관선정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당주, 헌관, 축관 등을 뽑게 되는데 이들은 반드시 생기복덕을 맞추고 또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 사람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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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대포리의 당제는 현재까지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다. 특히 마을의 재담꾼들이 많아 당제를 더욱 흥겹게 한다. 당제 기간에 마당밟이를 하는데, 중간 휴식시간에 마당에서 예전 약장사나 협률사의 흉내를 낸다. 이를 우스매소리라고 한다.

개괄

대포리의 당제는 갯귀신제라는 명칭으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 다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력 1월 12일 새벽에 제관들만 참석한 상당제를 지내고, 낮에 12당산굿을 친 다음 저녁에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제를 지낸 후 헌석을 하는데, 이때 헌석 끄렁치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제의내용

대포리의 당제는 헌석제 또는 당제, 갯귀신제,‘제만모신다’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제일은 보통 택일해서 정하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음력 1월 12일로 고정해서 지낸다. 제관선정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당주, 헌관, 축관 등을 뽑게 되는데 이들은 반드시 생기복덕을 맞추고 또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 사람으로 한다.
당제의 구체적 준비는 3일 전부터 시작된다. 당주 부부는 3일 기우(정성과 근신)에 들어가고 마을에서는 대청소를 한다. 이때 대청소를 할 뿐만 아니라 청소가 끝나는대로 당샘을 청소하고 마을 입구와 당산, 당주집 등에 금줄을 치며, 황토를 깐다.
당제는 제일 하루전 12당산굿을 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실제 12개의 당산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마을 곳곳의 당산이라고 정해진 지역에서 당산굿을 친다. 이후 저녁 무렵에 마을회관에서 굿을 치다가 11시경이 되면 각자 집으로 들어간다.
새벽 1시경이 되면 축관, 헌관이 당주집에 들러서 당주 부부와 행동을 같이 한다. 이들 4명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제상을 들고 당집을 향한다. 이때 길에서 사람이나 개를 만나면 매우 불길하며, 제관의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된다. 제상은 당집 안에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상을 차리고 울타리 밖에 두 곳이 있는데, 상에 올렸던 메와 제찬 등을 김에 나누어 싸서 그곳에 넣는다. 그리고 또 한쪽켠에 짚을 깔고 여러 가지 제수를 섞어 짚 위에 부어둔다. 이렇게 하고나면 상당의 제사는 모두 끝나며 이제 다시 상을 들고 당주집으로 돌아온다.
날이 새면 아침부터 매구꾼들이 모여서 다시 당산을 돌아다니며 당산굿을 친다. 이날 그동안 돌지 못했던 집의 마당밟이를 진행한다. 당산굿을 진행하는 중간에 상당을 한 번 들르는데, 이때 도포수와 창부들이 상당을 향해 절을 한다. 절을 하면서 “각항치배 문안이요~
”라고 외치면 뒤에있던 매구꾼들도 일제히 절을 한다. 이후 저녁이 되면 매구꾼들이 당주집으로 들어간다. 모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상쇠와 도포수, 포수만 들어간다. 당주집에서 당주, 헌관, 축관, 당주의 부인이 각기 상을 하나씩 들고 나온다. 이 상은 하당제를 지내기 위한 것으로 상당 앞의 당마당에 임시로 차려진 굿청으로 옮겨진다. 제사의 진행은 상당제와 같다.
하당에서의 제사가 끝나면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가 모여 당마당에 피워진 장작불을 돌면서 판굿을 친다. 이후 밤이 깊어지면 도포수가 헌석 끄렁치를 매고 갯벌을 향해 걸어간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길을 비추고, 창부들이 도포수의 허리띠를 잡고 따라간다. 그 뒤로는 매구꾼들이 따른다. 창부들이 도포수의 허리띠를 잡고 따르는 것은 갯귀신이 도포수를 끌고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헌석 장소에는 도포수와 창부들만 따르고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횃불을 들고 구경한다. 헌석의 대상에 대해서는 갯귀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도깨비라고 하기도 한다. 매구꾼들이 뒤에서 신명나게 굿을 치는 동안 도포수와 창부들은 헌석 끄렁치를 던지는 시늉을 계속 하다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끄렁치를 던진다. 헌석 끄렁치를 던진 후 마을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절을 하고, 이후 마을로 돌아온다. 이렇게 던진 끄렁치가 마을로 돌아오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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