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신안군 비금면 내월리 내촌마을 당제와 거릿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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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27 조회 5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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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비금면 내월리 내촌마을 당제와 거릿제

제명 : 당제, 거릿제
신격 : 선왕신(서낭신), 잡신
제당 : 선왕신 중턱의 동자상, 마을 입구 거리
일시 : 음력 1월 14일~15일


개괄

내촌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흩날 자정부터 정월 보름 새벽 2시까지 당제와 거리제를 지낸다. 당제의 제신은 마을 뒷산의 이름과 같은 선왕신(서낭신)으로, 마을의 풍농과 평안, 객지에 나간 사람의 무사고 등을 기원한다. 선왕신의 영험은 당제를 정성껏 지내면 제관의 꿈에 여신이 나타나고 잘못 지내면 엉뚱한 잡신들이 나타나 이상한 징조를 보인다는 이야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제를 지낸 후에 임자 없이 떠도는 잡신들을 달래기 위해 거리제를 지낸다.

제의내용

비금면 소재지인 덕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km쯤 되는 곳에 내촌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 외촌, 서로 산너머 서해 바다, 남쪽으로 전답지를 건너 내포와 월포, 북쪽으로 고서리 서산마을과 접해 있다. 마을 뒷쪽에 있는 선왕산(해발 255m)의 형태가 소쿠리처럼 생겼고 가장 안쪽에 마을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안동네 또는 내촌이라 부른다.
내촌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흩날 자정부터 정월 보름 새벽 2시까지 당제와 거리제를 지낸다. 당제의 제신은 마을 뒷산의 이름과 같은 선왕신(서낭신)으로, 마을의 풍농과 평안, 객지에 나간 사람의 무사고 등을 기원한다. 선왕신의 영험은 당제를 정성껏 지내면 제관의 꿈에 여신이 나타나고 잘못 지내면 엉뚱한 잡신들이 나타나 이상한 징조를 보인다는 이야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제를 지낸 후에 임자 없이 떠도는 잡신들을 달래기 위해 거리제를 지낸다.
내촌 당제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그 딸은 선왕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끝내는 죽고 말았다. 그후 딸의 원혼이 울면서 마을을 돌아다녀 주민들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선왕신으로 모시고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
당제는 선왕산 중턱에 있는 동자상 앞에서, 그리고 거리제는 마을 입구 길에서 지낸다. 원래 당제는 선왕산 중턱 두 개의 바위 틈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1947년 이 마을 유지인 유용덕씨가 이 곳 두 개의 바위 사이에 동자상을 세웠고 이 상이 당제의 신체가 되었다. 이 동자상은 높이 100㎝, 둘레 64㎝, 얼굴길이 26㎝에 머리에는 16㎝ 높이의 관을 쓰고 있다. 한편 왼손을 오른손 위로 하여 양손을 가슴 위에 얹고 있으며 미소를 머금은 넓적한 얼굴에 비취색의 구슬로 눈을 만들어 박아 놓았다. 동자상의 전면 기단부에는 이 상의 걸립연대와 「선왕산 신령지위」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제장 바로 밑에 맞배함석지붕으로 된 당집이 있다. 당집은 원래 기와지붕이었다가 낡아서 쓰러져 가던 것을 몇 년 전에 보수하면서 함석지붕을 얹었다. 당집 내부는 방 1칸, 부엌 1칸이 있고, 방에는 시렁을 두어 제의 시에 사용하는 제기들을 정돈하여 놓았다.

신화

옛날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그 딸은 선왕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끝내 죽고 말았다, 그 후 딸의 원혼이 울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니, 주민들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선왕신으로 모시고 당제를 지냈다.
* 참고문헌 :『신안군의 문화유적』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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