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안강,경주 노씨(安康,慶州盧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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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경주 노씨(安康,慶州盧氏)
안강(安康)은 경상북도 월성군 북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초기에 비화현(比火縣)이라 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이 안강(安康)으로 고쳐 의창군(義昌郡:홍해)에 예속시켰다가 고려 현종(顯宗) 때 경주에 속하게 하였고, 1949년 강동면(江東面) 일부를 병합하여 안강읍(安康邑)으로 승격되었다.
안강 노씨(安康盧氏)는 도시조(都始祖) 노 수(盧 穗)의 여섯째 아들 노 곤(盧 坤)이 고려조에 입사(入仕)하여 나라에 공(功)을 세우고 안강백(安康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곤(坤)을 득관조(得貫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안강(安康)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 )되고 소목을 밝힐 문헌(文獻)이 없어 안강백(安康伯) 곤(坤)의 후손으로 조선조(朝鮮朝)에서 첨정(僉正)을 역임한 종선(從善)과 목사(牧使)를 지낸 희선(禧善)을 각각 일세조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종선(從善)의 아들 소종(紹宗)과 계종(繼宗) 형제가 사직(司直)을 역임했고, 교수(敎授) 희식(希軾)의 손자 경임(景任)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내외직(內外職)을 역임한 후 예조 정랑(禮曹正郞)이 되었다.
한편 부장(部將) 희철(希轍)의 아들 보세(輔世)는 동래 부사(東來府使)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상건(尙健)은 부정(副正)을 역임하여, 현감(縣監)을 지낸 경엽(慶燁), 부사(府使) 협(協) 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강 노씨(安康盧氏)는 남한에 총 1,046가구, 4,62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강(安康)은 경상북도 월성군 북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초기에 비화현(比火縣)이라 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이 안강(安康)으로 고쳐 의창군(義昌郡:홍해)에 예속시켰다가 고려 현종(顯宗) 때 경주에 속하게 하였고, 1949년 강동면(江東面) 일부를 병합하여 안강읍(安康邑)으로 승격되었다.
안강 노씨(安康盧氏)는 도시조(都始祖) 노 수(盧 穗)의 여섯째 아들 노 곤(盧 坤)이 고려조에 입사(入仕)하여 나라에 공(功)을 세우고 안강백(安康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곤(坤)을 득관조(得貫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안강(安康)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 )되고 소목을 밝힐 문헌(文獻)이 없어 안강백(安康伯) 곤(坤)의 후손으로 조선조(朝鮮朝)에서 첨정(僉正)을 역임한 종선(從善)과 목사(牧使)를 지낸 희선(禧善)을 각각 일세조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종선(從善)의 아들 소종(紹宗)과 계종(繼宗) 형제가 사직(司直)을 역임했고, 교수(敎授) 희식(希軾)의 손자 경임(景任)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내외직(內外職)을 역임한 후 예조 정랑(禮曹正郞)이 되었다.
한편 부장(部將) 희철(希轍)의 아들 보세(輔世)는 동래 부사(東來府使)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상건(尙健)은 부정(副正)을 역임하여, 현감(縣監)을 지낸 경엽(慶燁), 부사(府使) 협(協) 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강 노씨(安康盧氏)는 남한에 총 1,046가구, 4,62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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