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광주 노씨(廣州魯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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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노씨(廣州魯氏)
광주(廣州)는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마한(馬韓)의 일부로 고조선(古朝鮮)의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으로 망명해서 한왕(韓王)이 되어 세운 회안국(淮安國)의 일부였다고 한다.
371년 백제(百濟)의 근초고왕 (近肖古王)은 남한산(南漢山: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이도(移都)하여 이 곳을 한성(漢城)이라 하였고, 553년 (백제 성왕 31, 신라 진흥왕 14)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겨 신라(新羅)의 한산주(漢山州)가 되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한주(漢州)로 고쳤고 , 940년(고려 태조 23)에 광주(廣州)가 되었다.
광주 노씨(廣州魯氏)의 시조(始祖) 노필상(魯弼商)은 누대(累代)로 광주에 토착(土着)해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조선조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광주(廣州)에 세거(世居)하며 필상(弼商)을 시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광주로 삼게 되었으며, 시조 필상의 손자 국남(國男)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돈령(敦寧:왕실의 친척)인 의관(儀官:필상의 현손, 국남의 손자)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주 노씨(廣州魯氏)는 남한에 총 2,689가구, 11,0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廣州)는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마한(馬韓)의 일부로 고조선(古朝鮮)의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으로 망명해서 한왕(韓王)이 되어 세운 회안국(淮安國)의 일부였다고 한다.
371년 백제(百濟)의 근초고왕 (近肖古王)은 남한산(南漢山: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이도(移都)하여 이 곳을 한성(漢城)이라 하였고, 553년 (백제 성왕 31, 신라 진흥왕 14)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겨 신라(新羅)의 한산주(漢山州)가 되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한주(漢州)로 고쳤고 , 940년(고려 태조 23)에 광주(廣州)가 되었다.
광주 노씨(廣州魯氏)의 시조(始祖) 노필상(魯弼商)은 누대(累代)로 광주에 토착(土着)해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조선조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광주(廣州)에 세거(世居)하며 필상(弼商)을 시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광주로 삼게 되었으며, 시조 필상의 손자 국남(國男)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돈령(敦寧:왕실의 친척)인 의관(儀官:필상의 현손, 국남의 손자)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주 노씨(廣州魯氏)는 남한에 총 2,689가구, 11,0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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