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광령 묵씨(廣寧墨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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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령 묵씨(廣寧墨氏)
광령(廣寧)은 중국 함평로(咸平路)에 있던 옛 지명, 묵씨(墨氏)는 중국 양군(梁郡:협서성 한중도 유영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노(魯)나라 출신으로 사회겸애설(社會兼愛說)을 주장한 묵 적(墨翟)의 후예로 전한다.
광령 묵씨(廣寧墨氏)는 중국 양주(梁州) 사람인 묵 사(墨泗)가 명(明)나라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내다가 화(禍)를 입고 우리나라에 건너와 정착세거(定着世居)한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묵 사(墨泗)를 시조(始祖)로 하고 선조의 원향지(原鄕地)인 광령(廣寧)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시조 사(泗)의 아들 만근(萬根)과 손자 몽남(夢南)이 조선(朝鮮) 때 당상관(堂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몽남의 아들 은선(殷先)은 부사과를 역임하여 참판(參判)을 지낸 후손 현리(賢理)와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묵씨(墨 氏)는 1930년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강원도(江原道) 김화(金化) 지방과 서울을 비롯한 충북(忠北) 청주(淸州), 전남(全 南) 보성(寶城) 등지에 24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171가구, 56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령(廣寧)은 중국 함평로(咸平路)에 있던 옛 지명, 묵씨(墨氏)는 중국 양군(梁郡:협서성 한중도 유영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노(魯)나라 출신으로 사회겸애설(社會兼愛說)을 주장한 묵 적(墨翟)의 후예로 전한다.
광령 묵씨(廣寧墨氏)는 중국 양주(梁州) 사람인 묵 사(墨泗)가 명(明)나라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내다가 화(禍)를 입고 우리나라에 건너와 정착세거(定着世居)한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묵 사(墨泗)를 시조(始祖)로 하고 선조의 원향지(原鄕地)인 광령(廣寧)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시조 사(泗)의 아들 만근(萬根)과 손자 몽남(夢南)이 조선(朝鮮) 때 당상관(堂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몽남의 아들 은선(殷先)은 부사과를 역임하여 참판(參判)을 지낸 후손 현리(賢理)와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묵씨(墨 氏)는 1930년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강원도(江原道) 김화(金化) 지방과 서울을 비롯한 충북(忠北) 청주(淸州), 전남(全 南) 보성(寶城) 등지에 24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171가구, 56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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