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전주박씨(全州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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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는 전라북도(全羅北道) 중앙(中央)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대(古代)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城)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리우다가 555년(신라 진흥왕 16)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그후 경덕왕(景德王: 제 35대 왕, 재위기간: 742 ∼ 765) 이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견훤(甄萱)이 후백제(後百濟)를 세워 40여년 간 이곳을 도읍으로 하였으나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때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하다가 공민왕(恭愍王)이 완산부(完山府)로 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태조(太祖)가 선조(先祖)의 고향(故鄕)이라 하여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개칭하였다가 1403년(태종 3) 다시 전주부(全州府)가 되었으며, 여러 변천을 거쳐 1949년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전주시(全州市)로 개편되었다. 전주 박씨(全州朴氏)의 시조(始祖) 언화(彦華)는 신라(新羅)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여섯째 아들로 완산대군(完山大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전주(全州)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의 아들 웅(雄)이 고려창업(高麗創業)에 공(功)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증손 보진(輔辰)은 정승(政丞)으로 추성협모공신(推誠協謀功臣)에 올라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고, 시령(是齡: 보진의 손자)의 아들 혁(奕)은 평장사(平章事)와 집현전 대제학(集賢殿 大提學)을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한편 평장사 혁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철견(鐵堅)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둘째 천견(天堅)은 우승지(右承旨)를 역임하여 시중(侍中)에 오른 셋째 지견(地堅)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좌랑(佐郞) 천익(薦益)의 아들 실(實)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직제학(直提學)과 의정부사(議政府事)를 거쳐 공신(功臣)에 올랐고, 학문(學問)에 뛰어나고 성품이 청렴강직하여 세인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 사인(思仁)은 전법판서(典法判書)와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한 후 공신(功臣)으로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되었다. 그외 조선조(朝鮮朝)에서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지양(志讓: 시중 유의 아들)과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한 지온(志溫) 형제가 유명했으며, 진사(進士) 종수(從壽)의 맏아들 진(晋)은 군수(郡守)를 역임하여 목사(牧使) 문찬(文燦: 군수 진의 증손), 군수(郡守) 문증(文增) 등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주박씨(全州朴氏)는 남한(南韓)에 총 598가구, 3,08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태조(太祖)가 선조(先祖)의 고향(故鄕)이라 하여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개칭하였다가 1403년(태종 3) 다시 전주부(全州府)가 되었으며, 여러 변천을 거쳐 1949년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전주시(全州市)로 개편되었다. 전주 박씨(全州朴氏)의 시조(始祖) 언화(彦華)는 신라(新羅)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여섯째 아들로 완산대군(完山大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전주(全州)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의 아들 웅(雄)이 고려창업(高麗創業)에 공(功)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증손 보진(輔辰)은 정승(政丞)으로 추성협모공신(推誠協謀功臣)에 올라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고, 시령(是齡: 보진의 손자)의 아들 혁(奕)은 평장사(平章事)와 집현전 대제학(集賢殿 大提學)을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한편 평장사 혁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철견(鐵堅)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둘째 천견(天堅)은 우승지(右承旨)를 역임하여 시중(侍中)에 오른 셋째 지견(地堅)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좌랑(佐郞) 천익(薦益)의 아들 실(實)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직제학(直提學)과 의정부사(議政府事)를 거쳐 공신(功臣)에 올랐고, 학문(學問)에 뛰어나고 성품이 청렴강직하여 세인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 사인(思仁)은 전법판서(典法判書)와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한 후 공신(功臣)으로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되었다. 그외 조선조(朝鮮朝)에서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지양(志讓: 시중 유의 아들)과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한 지온(志溫) 형제가 유명했으며, 진사(進士) 종수(從壽)의 맏아들 진(晋)은 군수(郡守)를 역임하여 목사(牧使) 문찬(文燦: 군수 진의 증손), 군수(郡守) 문증(文增) 등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주박씨(全州朴氏)는 남한(南韓)에 총 598가구, 3,08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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