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창씨(昌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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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昌氏)
창씨(昌氏)는 중국(中國) 여남(汝南 : 지금의 하남성 여양도에 있는 현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서 황제(皇帝)의 아들 창혜(昌蕙)의 후예(後裔)로 남북조(南北朝) 때 자사(刺史)를 지낸 창 의(昌 義)와 양오강인(陽烏江人)으로 당(唐)나라 중종(中宗 : 제4대 왕, 재위기간 : 684 ∼709) 때 낙양령(洛陽令)을 지낸 창 의(昌儀)가 대표적인 인맥(人脈)이다.
우리나라 창씨(昌氏)의 본관(本貫)은 공주(公州)·아산(牙山)·여산(礖山)·장성(長城)·강릉(江陵) 등 5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나타나 있으나 시조(始祖)와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미상(未詳)하다.
193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창씨(昌氏)는 전북 전주(全北全州)를 비롯한 진안(鎭安)·익산(益山) 등지에 5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184가구, 7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씨(昌氏)는 중국(中國) 여남(汝南 : 지금의 하남성 여양도에 있는 현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서 황제(皇帝)의 아들 창혜(昌蕙)의 후예(後裔)로 남북조(南北朝) 때 자사(刺史)를 지낸 창 의(昌 義)와 양오강인(陽烏江人)으로 당(唐)나라 중종(中宗 : 제4대 왕, 재위기간 : 684 ∼709) 때 낙양령(洛陽令)을 지낸 창 의(昌儀)가 대표적인 인맥(人脈)이다.
우리나라 창씨(昌氏)의 본관(本貫)은 공주(公州)·아산(牙山)·여산(礖山)·장성(長城)·강릉(江陵) 등 5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나타나 있으나 시조(始祖)와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미상(未詳)하다.
193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창씨(昌氏)는 전북 전주(全北全州)를 비롯한 진안(鎭安)·익산(益山) 등지에 5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184가구, 7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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