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13
페이지 정보
본문
그의 보고(주석 45:?빵제조공의 불평에 관한 보고서?, 런던, l862년 및 ?제2차 보고서? 런던, 1863년) 는 증인의 증언과 더불어 대중을-그들의 심장이 아니라 위장을-놀라게 했다. 성서에 정통하고 있는 영국사람은, 신의 은총으로 선택된 자본가나 지주나 한직(閑職)에 있는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나 이마에 땀을 흘려 자기의 빵을 구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명반과 모래와 기타 그리 나쁘지 않은 광물성 혼합물은 별도로 치더라도, 종기의 고름이나 거미줄이나 바퀴벌레의 시체나 씩은 독일제 효소 등과 혼합되어 있는 일정한 양의 인간의 땀을 매일 빵으로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자유로웠던' 빵
제조업은 그 신성한 '자유상업'에 대한 고려도 없이 국가 감독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고(1863년의 의회회기 끝에), 그리고 의회의 법령에 의해 18세 미만의 빵제조공에게는 오후 9시에서 오전 5시 사이의 노동은 금지되었다. 이 조항은 이 오래된 친숙한 사업부문의 과도노동에 대해 여러 권의 책보다 더 웅변적으로 발해 주고 있다.
“런던의 빵제조공의 노동은 보통 밤 11시에 시작된다. 이 시간에 그는 '반죽'을 하는데, 이 일
은 가마솥의 빵의 분량과 품질에 따라 1/2시간 내지 3/4시간 계속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 것이 끝난 다음 그는 반죽판-이것은 동시에 밀가루통의 뚜껑으로도 쓰인다-위에 누워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머리 밑에 베고 또 다른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몸에 덮고 두 시간쯤 잠을 잔 다. 그 뒤 5시간에 걸친 신속하고 쉴새없는 노동, 즉 반죽을 던지고, 그 중량을 달고, 그 형태 를 만들고, 그것을 가마에 올리고, 가마에서 끄집어내는 등등의 노동이 시작된다. 빵제조실의 온 도는 화씨 75도 내지 90도{섭씨 24도 내지 32도}에 달하며, 규모가 작은 빵제조실의 온도는 그 보다 낮지 않고 도리어 높다. 식빵이나 원통형 빵 등을 만드는 일이 끝나면 빵배달이 시작된다. 그리고 빵제조공의 대부분은 앞에서 말한 어려운 야간노동이 끝난 뒤 낮에는 빵을 광주리에 담 든지 손수레에 싣고 몇시간 동안 날라다 주며, 또 이따금 빵제조실에서 작업도 한다. 이 노동은 계절과 영업의 규모 여하에 따라 오후 1시에서 6시 사이에 끝나지만, 직공들의 다른 일부는 밤 늦도록 빵제조실에서 작업을 한다. "(주석 46: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별책부록 pp. 6-7 "이른바 '런던 시즌' {런던의 사교시즌으로 초여름 무렵}에는 빵을 '정가'로 판매하는 웨스트 엔드(West End)의 빵집에서 일하는 직공들은 으례히 밤 11시에 작업을 시작해 1회나 2 회의 대체로 매우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방을 굽게 된다. 다음에 그들은 오후 4시, 5시, 6시까지 또 경우에 따라서는 7시까지도 계속 빵을 배달하며 또는 이따금 방 제조실에서 비스켓도 굽는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그들은 5-6시간, 종종 4-5시간 수면을 취한다. 금요일에는 노동은 언제나 더 일찍 저녁 10시에 시작해서 토요 일 저녁 8시까지 계속되고, 일반적으로는 일요일 아침 4-5시까지 계속된다. 일요일에도 다 음 날을 위한 준비 때문에 두세 번 공장에 나와 1시간 내지 2시간 일해야 한다....싸구려 빵집(빵 을 정가 이하로 파는 빵집으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런던의 전체 빵집의 3/4에 달한다)에 서 일하는 직공들의 노동시간은 이보다 더 길 뿐 아니라 그들의 노동은 거의 전적으로 빵제조실 내부에 국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빵집 주인은 일반적으로....자기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하기 때문 이다. 조그마한 소매점에 공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을 시켜 배달하며 직접 이집저집 배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주말이 가까워 오면....목요일 밤 10시부터 노동이 시작되어 사소한 중단이 있을 뿐 토요일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주석 47: 같은 책, 별책부록 p. 71.)
‘싸구려 빵집’의 처지를 부르주아적 지식인조차도 "직공들의 불불노동(不拂勞動: unpaid labour)이 그들의 경쟁의 원천이다"(주석 48: 리드(George Read), ?빵제조업의 역사? 런던, 1848년, p. 16.)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정가판매 빵제조업자'는 자기의 경쟁자인 '싸구려 빵집’을 타인노동의 도둑이며 불순품 제조자라고 조사위원회에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첫째 대중을 기만하는 것에 의해, 그리고 둘째 그들의 직공들에게 12시간분의 임금을 지불하고 18시간의 노동을 시키는 것에 의해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석 49: ?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1차 보고서5“, ‘정가판매 빵제조업자' 치즈먼의 증언, p. 108.)
빵의 불순제조와 [빵을 정가 이하로 판매하는] 빵제조업자의 형성은 영국에서는 18세기 초 이래 [즉, 이 업종의 길드적 성격이 해체되고 명목상의 빵제조업자 배후에 자본가가 제분업자 또는 밀가루 전대상인(前貸商人)으로 나타난 이후부터] 발생한 것이다.(주석 50: 리드, 앞의 책. 각종 영업분야에 몰려들어와 있던 전대상인(前貸商人)들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도 '사회질서파괴자'로 비난받고 있었다. 예컨대 서머셋주에서 치안판사법정의 분기 재판기간에 대배심원은 하나의 '고발장'을 하원에 제출했는데, 그 가운데는 특히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다. "블랙웰홀(Blackwell Hall)의 이 전대상인들은 직물업에 해를 끼치는 사회질서파괴자이므로 마땅히 하나의 불법행위자로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우리 영국 양모업의 사례“, 런던, 1685년, pp. 6-7).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 야간노동의 토대가 이 분야에서 이루어졌는데, 야간노동은 런던에서조차도 1824년 이후 비로소 본격적으로 그 기반을 확립했다.(주석 51: ?제1차 보고서?, 별책부록 p. 8.)
앞에서 말한 바에 의해, 우리는 위원회의 보고서가 빵제조공을 단명한 노동자의 부류에 소속시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아동들에게 일반적인] 유아사망(幼兒死亡)을 다행히 면했지만 42세까지 연명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제조업에는 언제나 지원노동자가 넘치고 있다. 런던에 이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천지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서부농업지대 및 독일이다.
1858-60년에 아일랜드의 빵제조공들은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대집회를 자기들의 비용으로 조직했다. 대중들은, 예컨대 1860년 5월의 더블린 집회에서 본 바와 같이, 아일랜드인의 특유한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편에 가담했다. 이 운동의 결과 웩스포드, 킬켄니, 클론멜, 워터포드 등에서는 야간노동 없는 주간노동만이 실제로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다.
"직공들의 고통이 너무 지나친 것으로 알려진 리머리크(Limerick)에서는, 이 운동은 빵제조업 자들, 특히 빵제조업과 제분업을 겸하는 사람들의 반항에 부닥쳐 실패로 돌아갔다. 리머리크의 실패는 엔니스 및 티페러리에서도 패배를 가져왔다. 대중들의 분노가 가장 격심하게 표현된 코 크에서는 고용주들이 직공들을 해고함으로써 이 운동을 좌절시켰다. 더블린에서는 고용주들이 가장 단호하게 저항했고 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직공들을 박해함으로써 기타 직공들로 하여금 양보해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주석 52: “1861년의 아일랜드의 빵제조업에 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
[아일랜드에서는 빈틈없이 무장하고 있는] 영국 정부의 위원회도 더블린, 리머리크, 코크 등의 무자비한 빵제조업자들에게는 애원하는 어조로 다음과 같이 충고할 뿐이었다.
“본 위원회는, 노동시간은 자연법(自然法)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며, 이 자연법의 위반에 대해 서는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고용주들은 해고의 위협으로 자기의 노동자들에게 종교적 신념의 위배와 국법에 대한 불복종과 여론의 무시"(이 모든 것은 일요일노동과 관련된 것이다)" 를 강요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불화를 야기하며....종교. 도덕. 사 회질서에 대해 위험한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본 위원회는,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 의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을 침해하며, 그리하여 노동자의 가정을 파괴하고 자식. 형제. 남편. 아버 지로서의 가족적 의무의 수행을 방해함으로써 해로운 도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12시 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고, 일찍 늙고 일찍 죽게 하며, 노동자의 가족은 가장(家長)의 보호와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를 빼앗기게 되어 크게 불행해 진다. "(주석 53: 같은 보고서.)
우리는 이상에서 아일랜드에 관한 사정을 알아보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쟁기질하는 농업노동자들은 사나운 기후에서 하루 13-14시간의 노동을 그리고 또 일요일에도 4시간의 추가노동까지 해야 한다(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고 항의하고 있으며,(주석 54: 1866년 1월 5일 에딘버러 부근의 래스웨이드(Lasswade)에서 개최된 농업노동자들의 군중집회(1866년 1월 13일자 ?노동자의 옹호자?를 보라). 1865년 말 농업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우선 스코틀랜드에서 결성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억압받고 있는 농업 지대의 하나인 버킹엄셔의 노동자들이 1867년 3월에 주급을 9-10실링에서 12실링으로 인상시키기 위해 일대 파업을 단행했다. (위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영국의 농업노동자의 운동은, 1830년 이후의 그 격렬한 시위운동들이 진압당한 이래, 그리고 또 특히 새로운 구빈법(救貧法)이 실시된 이래, 완전히 분쇄되었으나, 6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고 1872년에는 드디어 획기적인 것으로 되었다. 나는 제2권에서 다시 이 문제를 취급하려고 하며 또한 1867년 이래 발간된 영국농업노동자의 상태에 관한 청서에 대해서도 언급하려 한다).) 같은 시기에 런던에서는 검시배심원(檢屍賠審員) 앞에 3명의 철도 노동자-여객 승무원, 기관사, 신호수-가 출두하고 있다. 끔찍한 철도사고가 수백 명의 승객을 저 세상으로 수송했던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철도노동자들의 부주의(不注意)이다. 그들이 배심원 앞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0-12년 전에는 그들의 노동은 하루에 8시간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5-6년 동안 노동시간이 14시간, 18시간, 20시간으로까지 늘어났다. 또 행락철과 같이 특히 여행객이 몰릴 때에는 노동이 가끔 중단없이 40-50시간 계속된다. 그들 철도노동자들은 보통의 인간이지 신화에나 나오는 장사들이 아니다. 어떤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들의 노동력은 고갈된다. 그들은 무감각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두뇌는 사고(思考)를 중지하며, 그들의 눈은 보기를 중지한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영국의 배심원들'은 그들에 대해 살인(殺人)이라는 죄명으로 순회재판에 회부한다고 판결하고, 다음과 같은 경건한 희망을 부드러운 어조로 첨부하고 있다. 즉, 철도관계의 대자본가들은 앞으로 필요한 수의 ‘노동력'을 구입하는 데 좀더 돈을 아끼지 말고, 구입한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좀더 '절도있게' '욕심적게' '검소하게' 하기를 바란다고.(주석 55: ?레이놀즈 신문?, 1866년 1월 21일자. 이 신문은 매주 '처참한 숙명적인 사고, '참혹한 비극'등등의 충격적인 제목 아래 수많은 새로운 철도사고들을 보고하고 있다. 북부 스태퍼드셔 철도의 어느 노동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열차의 기관사와 화부(火夫)가 계속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매우 사나운 날씨에 휴식도 없이 29-80시간씩 노동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러한 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음과 같은 예는 매우 자주 일어난다. 월요일에 화부는 아침 일찍부터 그날의 일을 시작했다. 그는 14시간 50분 뒤에 그 일을 끝마쳤다. 그는 차 한 잔 마실 들도 없이 또다시 작업에 불려나왔다....다시 14시간 25분을 근무했다. 이와 같이 그는 29시간 15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의 1주일 작업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이 짜여져 있다. 수요일 15시간, 목요일 15시간 35분, 금요일 14시간 반, 토요일 14시간 10분, 즉 1주일 동안의 총계는 88시간 30분이다. 그런데 그가 모두 합해 겨우 6 1/4노동일분의 임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사람은 계산착오라고 생각하고 작업시간 담당자에게...1일분의 일이란 대체 얼마만큼인가를 물었다. 대답은 하루에 13시간, 다시 말해 1주일에 78시간이라는 것이었다....그러자 그는 1주일에 78시간 이상 일한 분에 대해 지불해 주도록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그에게 10펜스의 수당을 주겠다고 말했다"(같은 신문, 1866년 2월 4일자).)
직업. 연령 .성별이 각양각색인 노동자들[그들은 학살당한 영혼들이 유리시즈의 주위로 모여드는 것보다도 더욱 집요하게 우리 주위로 몰려오고 있으며, 그들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청서(靑書: Blue Book)를 보지 않더라도 첫눈에 우리는 그들의 과도노동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에서 우리는 부인복 제조공과 대장장이라는 2명의 인물을 골라내자. 이 두 인물 사이의 현격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1863년 6월의 마지막 주에 런던의 모든 일간신문은 '순전히 과도 노동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을 붙인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은 명성이 자자한 어느 부인복 재봉소에서 일하고있던
20세의 워클리(Mary Anne Wllkley)라는 여공의 사망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여공은 엘리스(Elise)라는 얌전한 이름을 가진 귀부인에게 착취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번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던 오래된 이야기가 이제 새로 폭로된 것이다.(주석 56: 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p. 253, 254 참조.) 여기서 일하는 소녀들은 하루 평균 16시간 반을, 그리고 사교계절에는 가끔 30시간을 중간에 쉬는 일도 없이 계속 노동하며, 그녀들의 '노동력'이 지칠대로 지쳐 제대로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게 되면 때때로 세리(sherry)주, 포도주 또는 커피를 공급함으로써 기운을 차리게 했다. 때마침 사교계절이 한창일 때였다. 새로 온 웨일즈 공주를 축하하는 무도회에 초청된 귀부인들이 입을 화려한 옷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워클리는 60명의 다른 소녀들과 함께, 30명씩 배치된 그리고 그 인원에게 필요한 공기량의 1/3도 들어 있지 않은 한 방에서, 중단없이 26시간 반 동안 일했다. 그리고 밤에는 한 개의 침실을 널판지로 칸을 나누어 숨이 막힐 듯이 만들어진 여러 개의 구멍들 중의 한 구멍에서 두 명씩 잠을 잤다.(주석 57: 보건국에 근무하는 의사 레서비(Letheby)는 그 당시 다음과 같이 언명했다. "성인 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기의 최소한도는 침실에서는 300입방피트이고, 거실에서는 500입방피트여야 한다. " 런던의 어느 병원의 선임의사 리처드슨(Richard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인복 재봉공, 의복 재봉사, 일반 재봉사 등 각종 재봉여공들은 과도노동과 공기부족과 영양부족 또는 소화불량이라는 삼중(三重)의 재난을 겪고 있다.... 대체로 보아 재봉일은....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더 적합하다. 그러나 이 직업의 폐단은 그것 이, 특히 수도에서, 약 26명의 자본가들에게 독점되어 있고, 이 자본가들은 자본으로부터 생기는 권력수단을 이용해 노동력을 남용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권력은 이 여공계급 전체가 느끼고 있는 바다. 만약 석면 여자 재봉사가 소수의 고객이라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경쟁은 그녀로 하여금 이 손님들을 확보하기 위해 집에서 죽도록 일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며, 또 그 여자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조수여공들을 혹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여자의 사업이 잘 되지 않든가 또는 그 여자가 독립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일은 더 고되더라도 그 대신 지불이 확실한 다른 가게에 고용살이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그 여자는 다시 노예로 전락해 사회의 변화의 물결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어떤 때에는 자기집 조그마한 방구석에서 기아상태, 또는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기도 하며, 또 어떤 때에는 질식할 지경의 공기 속에서, 그리고 신선한 공기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가령 좋은 음식물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처지에서 24시간 중 15시간, 16시간 때로는 18시간씩 일하기도 한다. 공기가 나쁜 데서 오는 병인 폐결핵은 이러한 희생자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다"(리처드슨, 「노동과 과도노동」, ?사회과학평론? 1863년 7월 18일).) 그런데 이것은 런던의 부인복 재봉소 중에서도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클리는 금요일에 병이 나서 일요일에 죽었다. 엘리스 부인이 놀란 것은 이 소녀가 손에 잡고 있던 일을 완성도 하지 못한 채로 죽은 것이었다. 뒤늦게 이 소녀가 죽어 있는 침대에 불려 온 의사 키즈(Keys)는 검시배심윈 앞에서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증언했다.
"메어리 안 워클리는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에서 장시간 노동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환기가 잘 안 되는 너무나 좁은 침실에서 잤기 때문에 죽었다. "
이 의사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검시배심원은 그의 증언에 대답해 다음과 같이 판정했다.
"사망자는 졸도로 죽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사망이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의 과도노동 등에 의해 촉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한 이유도 있기는 하다. "
자유무역주의자 콥덴(Cobden)과 브라이트(Bright)의 기관지인 ?모닝스타?는 이 사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의 백인노예는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혹사당하다가 지쳐 쓰러져 소리도 없이 죽어 간다"고.(주석 58: 1863년 6월 23일자 ?모닝 스타?. ?더 타임즈?지는 브라이트 등의 반대로부터 아메리카 노예소유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했다. 1863년 7월2일자 사설에서 이 신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젊은 여성들을 채찍 소리 대신 기아의 고통으로 위협하면서 죽도록 일을 시키고 있으므로, 우리는 [노예소유자로 태어나 적어도 노예를 잘 먹이며 적당히 일을 시키고 있는] 가족들에게 포화와 총검으로 위협할 권리는 없다. " 동일한 방식으로, 토리(Tory)당의 기관지인 ?스탠다드?(1863년 8월 15일)는 뉴먼 홀(Newman Hall) 목사를 다음과 같이 매도하고 있다. "그는 노예소유자들을 파문시키면서도 [런던의 역마차의 마부나 차장 등을 형편없는 임금으로 하루에 시간씩 일을 시키는 점잖은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 끝으로 내가 이미 1850년에 "천재는 사라져 버리고 천재에 대한 숭배만이 남아 있다"고 쓴 바 있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어느 짤막한 우화에서, 현대사의 대사건인 미국의 남북 전쟁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시키고 있다. 즉, 북부의 베드로는 전력을 다해 남부의 바울의 머리를 깨뜨리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북부의 베드로는 자기 노동자를 '일당'(日當)으로 고용하지만, 남부의 바울은 '평생 동안' 고용하기 때문이다(?맥밀란 잡지?, “아메리카의 소(小)일리아드”, 1863년 8월). 그리하여 토리당이 도시의 임금노동자에 대해-농촌의 임금노동자에 대해서는 결코 아니다!-동정을 가지고 있다는 대중의 환상은 드디어 깨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들은 노예제도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죽도록 노동하는 것은 부인복 재봉소에서뿐 아니라 몇 천 개의 장소에서, 더 정확히 말해 ' 사업이 잘 되는' 모든 곳에서 일상적이다....이제 우리는 대장장이(blacksmith)를 실례로 들어 보 자. 만약 우리가 시인의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대장장이 이상으로 더 원기가 왕성하고 더 쾌 활한 인간은 없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태양보다도 먼저 불꽃을 튀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도 잘 먹고 잘 마시며 잘 잔다. 육체적으로 고찰할 때, 노동을 과도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대장장 이는 실로 인간의 가장 좋은 상태 중의 하나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도시에 가 서 그의 강력한 두 어깨에 부과되는 노동의 무게와, 우리나라의 사망률표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
치를 보기로 하자. 메릴본(Marylebone) {런던의 가장 큰 구역 중의 하나}에서는 대장장이의 사망률이 대년 1,000명당 31명인데, 이것은 영국 성인남자의 평균사망률보다 11명이나 많다. 이 직업은 거의 본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의 한 기능(技能: art)으로서, 그 자체로서는 싫어할 만한 아무 것도 없지만, 단순히 과중한 노동으로 말미암아 그를 파괴하게 된다. 그는 하루에 쇠망치를 몇 번 내리칠 수 있고, 몇 번의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며, 몇 번의 호흡을 할 수 있고, 얼마만큼 생산할 수 있으며, 그리고 평균적으로 예컨대 50년은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매일 그보다 더 많이 망치질하며 더 많은 걸음을 걸으며 더 자주 호흡하도록 강요당하며, 그리하여 그의 생명력의 지출을 매일 1/4만큼 증가시킨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는 어떤 한정된 시간에 실제로 1/4만큼 더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대신 50세가 아니라 37세에 죽게 된다.(주석 59: 리처드슨, 앞의 책, p. 476 이하.)
제 4 절 주간노동과 야간노동. 교대제
불변자본인 생산수단은 가치증식과정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직 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그리고 노동의 한 방울 한 방울과 함께 그것에 비례하는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생산수단이 이렇게 하지 않는 한, 그것의 존재는 자본가에게는 일종의 소극적인 손실(損失)이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동안은 쓸모없이 투하된 자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손실은, 중단되었던 생산을 재개하려면 추가적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극적인 손실로 된다. 노동일을 자연일의 한계를 넘어 야간에까지 연장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노
동자의 살아있는 피에 대한 흡혈귀적 갈증을 약간 풀어주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루 24시간 전체에 걸쳐 착취하려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충동이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력을 낮과 밤 계속 착취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과 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을 교대(交代)할 월요가 생긴다. 이 교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예컨대 노동인원의 일부가 어떤 주에는 주간노동만 하고 다른 주에는 야간노동만 하는 방법도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교대제 또는 윤번제(輪番制)는 영국 면공업의 매우 왕성한 성장기에 성행했으며, 현재에도 특히 모스크바의 면방적 공장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24시간제 생산과정은 영국에서는 아직까지 '자유로운' {공장법이 적용되지 않는} 공업분야의 다수, 즉 잉글랜드나 웨일즈나 스코틀랜드의 용광로. 단철공장(鍛鐵工場: forge). 압연공장. 기타 금속가공공장에서 현재도 하나의 제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는 노동과정은 6일간의 노동일 동안에는 매일 24시간 계속될 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거의 24시간 계속 되고 있다. 노동자는 남녀의 성인과 아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동과 소년들의 연령은 8세부터(약간의 경우에는 6세부터) 18세까지의 모든 연령층에 걸쳐 있다.(주석 60: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3차 보고서?, 런던, 1864년, 별책부록 pp. 5-6.) 약간의 부문들에서는 소녀와 부인도 남자 종업원과 함께 야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주석 61:"스태퍼드셔와 남부 웨일즈에서는 소녀들과 부인들이 주간뿐 아니라 야간에도 탄광이나 코크스 적치장(積置場)에서 일하고 있다.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이와 같은 관행이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고 자주 지적되었다. 이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이 일하며, 거의 남성과 구별되지 않는 의복을 입고 있으며 먼지와 검댕을 뒤집어쓰고 있다. 비(非)여성적인 직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따라서 그들의 품성이 타락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앞의 보고서. p. 194. 별책부록 p. 26. ?제4차 보고서?(1865년) 제61호 별책부록p. 13 참조). 유리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간노동의 일반적인 나쁜 영향들을 당분간 무시하면(주석 62: 아동에게 야간노동을 시키는 어느 강철업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밤에 일하는 소년들이 낮에는 잘 수도 없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도 없어 다음날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아동노동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제63호, 별책부록 p. 13). 한 의사는 신체의 유지와 발달에 태양광선이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광선은 또한 신체의 조직에 직접 작용해 이 조직을 견고하게 하고 탄력있게 한다. 정상적인 양의 광선이 공급되지 않으면 동물의 근육은 연약하게 되어 탄력이 없어지며, 신경은 자극의 결핍으로 그 긴장력을 상실하며, 성장과정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발육이 왜곡된다....아동의 경우 풍부한 햇빛에 끊임없이 접촉하고 하루 중 일정한 시간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는 것이 건강에 절대로 필요하다. 광선은 음식물이 혈액으로 되는 것을 촉진하며, 새로 형성된 섬유조직을 강인하게 한다. 광선은 또한 시각기관에 대한 자극물이 됨으로써 각종 뇌 기능을 더 강력하게 활동시킨다. " 우리는 이상의 구절을 우스터 종합병원의 선임의사인 스트레인지(W. Strange)의 저서, ?건강“(1864년)에서 인용했는데, 그는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인 화이트(White)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이전에 랭카셔에서 아동들에게 미치는 야간노동의 영향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몇몇 고용주들의 상투적인 주장과는 반대로 아동의 건강은 야간노동에 의해 곧 나빠진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제284호, p. 55). 도대체 이런 문제가 진지한 논의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이 자본가와 그 앞잡이의 뇌 기능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24시간 중단없이 계속되는 생산과정은, 예컨대 앞에서 말한 매우 긴장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산업부문들[각 노동자의 공인된 노동일은 대체로 주야를 불문하고 12시간으로 되어 있다]에서는 표준 노동일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넘는 과도노동은 다수의 경우 영국 공식보고서의 말을 빌린다면, '참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주석 63: 같은 보고서, 제57호, 별책부록 p. 12. 이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하고 있다.)
"이하에서 묘사되고 있는 노동량이 9-12세의 소년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다....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나 고용주의 이와 같은 권력남용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주석 64: 같은 보고서, 제58호, 별책부록 p. 12)
“소년들을 주야(晝夜) 교대로 일시키는 방법은 사업이 활기를 띠는 때나 보통으로 진행되는 때를 막론하고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이 노동시간은 많은 경우 소년들 에게 잔혹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이다. 많은 소년들 중 한 명 이상이 이런저 런 이유로 결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때에는 출근하여 자기의 노동일을 끝마친 소년 중 1명 내지 몇 명이 그 결근자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미 아무런 비밀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압연공장 지배인은, 결근 소년의 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 것은 아마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을 텐데요‘라고 대답하고, 위의 사실을 시인했 다....(주석 65: 같은 보고서.)
"정상적인 노동일이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 반까지 계속되는 어느 압연공장에서 일하는 한 소 년은 일주일에 나흘 밤은 적어도 저녁 8시 반까지 일했다....그리고 이것이 6개월간 계속되었다. 다른 한 소년은 9세 때에는 가끔 1교대 12시간노동을 3회 연속했고, 10세 때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계속 일했다:? “10세의 또 한 소년은.... 1주일에 사흘 밤은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 하고 나머지 밤은 저녁 9시까지 일했다. " "13세의 또 한 소년은....1주일 내내 오후 6시부터 다 음날 낮 12시까지 일했고, 또 때로는 3교대분, 예컨대 월요일 아침부터 화요일 밤까지의 분을 계 속 일한 적도 있었다.” “12세의 또 한 소년은 스테이블리(Staveley)에 있는 어느 주물공장에서 계속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 아홉 살 먹은 조지 올린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여기에 왔다. 다음날 새벽 3 시에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밤새도록 여기에 있었다. 나는 여기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산다. 나는 가죽 앞치마를 밑에 깔고 조그만 쟈켓을 덮고 마루 위에서 잤다. 그 후 이틀은 아침 6시에 왔다. 정말 여기는 더운 곳이다! 여기 오기 전에도 나는 거의 1년간 농촌에 있는 용광로 에서 일했다. 거기서도 토요일에는 새벽 3시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적 어도 집에 돌아가서 잘 수는 있었다. 다른 날에는 나는 아침 6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6시 또는 7시에 끝마치곤 했다. " 등등.(주석 66: 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13. 이들 '노동력'의 교육정도는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과의 다음과 같은 문답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헤인즈(J. Haynes), 12세: "4의 4배는 8이지요. 그러나 넷이 네 개면 16입니다. 왕이라는 것은 모든 돈과 금을 가진 사람이지요. 우리 나라에도 왕이 있는데 그 왕은 여왕이고, 이름은 알렉산드라 공주라고 합니다. 그 여자는 여왕의 아들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그 여왕의 아들은 알렉산드라 공주입니다. 공주는 남자입니다. " 터너(W. Turner), 12세: "내가 사는 나라는 영국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리스(J. Morriis), 14세: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과, 한 사람만 남고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조그마한 새였다고 하더군요" 스미스(W. Smith), 15세: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었고, 남자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 테일러 (E. Taylor), 15세: "나는 런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 매튜만(H. Matthewman), 17세: "교회에 간 일이 있습니다만 최근 많이 빠졌습니다. 설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밖에 다른 이름들은 모르겠습니다. 또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어딘가 종교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15). "악마 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쁜 놈이었습니다." "이 소녀[10세]는 God(하나님)를 Dog(개)라고 썼으며 여왕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5차 보고서?, 1866년, p. 55, 제278호). 위에서 말한 금속공장의 제도는 유리공장과 제지공장에도 시행되고 있다. 기계로 종이를 만드는 제지공장(製紙工場)에서는 넝마를 선별하는 과정을 제외하고는 전체과정에서 야간노동이 예사로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교대제를 실시 함으로써 야간노동이 중단없이 1주일 전체, 즉 일요일 밤부터 다음 토요일 밤 12시까지 그냥 계속 된다. 주간교대반의 노동자들은 매주 5일은 12시간씩, 하루는 18시간 노동하며, 야간교대 반의 노동자들은 매주 닷새 밤은 12시간씩, 하루 밤은 6시간 노동한다. 다른 경우에는 각 교대 반은 하루씩 교대로 24시간 일한다. 그 중의 한 교대반은 월요일에 6시간, 토요일에 18시간 일 을 하여 24시간을 채운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중간의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제지기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1주일간 매일 15-16시간씩 일한다. 조사위원회 위원인 로드(Lord)는 이 렇게 말한다 "이 제도는 12시간 교대제와 24시간 교대제의 각종 폐해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13세 미만의 아동들과 18세 미만의 소년들과 부인들이 이 야간노동제도 하에서 일하고 있다. 12시간 제도하에서도 그들은 가끔 교대자의 결근을 메우기 위해 2교대, 즉 24시간을 일해 야 한다. 증인들의 진술은 소년소녀들이 흔히 시간외 노동을 하여서 24시간 심지어 36시간까 지 연속노동하는 일이 아주 빈번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리에 광택을 내는 '연속적이고 단조로운' 과정에서 12세의 소녀들이 "식사 때문에 반시간씩 두 차례, 기껏해야 세 차례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규칙적인 휴식 또는 작업중단 없이" 하루에 14시간씩을 꼬박 한 달 동안 일한 경우도 있다. 정규적인 야간노동이 완전히 폐지된 약간의 공장들에서는 시간외 노동이 놀 랄 만한 정도에 이르고 있으며, 또 "그것은 가끔 가장 불결하고 가장 덥고 가장 단조로운 과정 에서 수행되고 있다"(?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별책부록 pp. 38-39).)
이제 우리는 자본 그 자체가 이 24시간 노동제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들어 보자. 자본은 물론 이 제도의 극단적인 형태, 즉 노동일의 '잔인하고 믿을 수 없는' 연장을 위한 이 제도의 남용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한다. 자본은 오직 이 제도의 '정상적'인 형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제강공장인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Naylor & Vickers)는 600명 내지 7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겨우 10%만이 18세 미만이고 또 그 중에서도 겨우 20명만이 야간교대반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공장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조금도 더위를 타지 않는다. 온도는 아마 화씨 86-90도는 될 것이.... 단철공장이나 압연공장에서는 직공들은 주야 교대로 일하고 있으나, 기타의 모든 작업장에서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에 이르는 주간작업만이 실시되고 있다. 단철공장에서는 12시부터 12시까지 일한다. 약 간의 직공들은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을 교대하지 않고 항상 야간노동만 한다....규칙적으로 주간노 동만 하는 직공과 야간노동만 하는 직공 사이에 건강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아마 사람들은 밤 과 낮이 바뀌는 것보다 그렇지 않을 때에 수면을 더 잘 취할 수 있는 것 같다....약 20명의 18세 미만 소년들이 야간교대반에 속해 일하고 있다....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 없이는 우리 일은 잘 될 수가 없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생산비의 증가다....숙련공과 각 부서의 책임자들을 구하 는 일은 쉽지 않으나 소년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야간노동하는 소년들의 비율이 작기 때 문에 야간노동의 제한은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이해관계도 없다. "(주석 67:?제4차 보고서?, 1865년, 제79호, 별책부록 p. 16.)
제강제철공장인 존 브라운사(John Brown & Co.)는 3,000명의 성인 남자와 소년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일부 제강제철작업의 중노동(重勞動)에서는 주야 교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회사의 엘리스(J, Ellis)는 “힘든 제강작업에서는 성인 2명에 소년 1명 내지 2명의 비율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18세 미만의 소년을 500명 고용하고 있고, 그중 약 1/3인 170명은 13세 미만이다. 법률개정안에 관해 엘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종업원에게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이상 노동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크게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야간노동을 면제받을 수 있는 선을 12세 이
상의 어떤 나이로 규정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고용하고 있는 소년공들의 야간 노동을 금지하기보다는 차라리 13세 미만 또는 심지어 14세 미만 소년의 고용을 금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주간교대반에서 일하는 소년들은 순번을 바꿔 야간교대반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인 남자들이 쉬지 않고 밤일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건강이 파괴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1주일마다 교대하는 야간노동은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한 다. "(이와는 반대로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는 연속적인 야간노동보다 주기적으로 교대하는 야간 노동이 아마 더 유해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자기의 사업상 이익을 고려한 발언이다. ) " 우리는 주야교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낮일만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다는 것올 알고 있 다....우리가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비용의 증가 때문인 데, 이 점이 유일한 이유다"(얼마나 노골적이고 소박한 말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비용증가는 회사가 그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초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얼마나 매끄러운 표현인가!). "그렇지 않아도 구하기 힘든 노동은, 그와 같은 법률규정이 나온다면 더 부족하게 될 것이다"(즉, 이 회사는 노동력의 완전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치명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주석 68: 같은 보고서?, 제80호, 별책부록 p. 16.)
캄멜사(Cammel &, Co.)의 '거인제강제철공장'도 앞에서 말한 존 브라운사와 마찬가지로 대규모로 경영되는 공장이다. 그 회사의 전무는 정부위원회 위원인 화이트(White)에게 자기의 증언을 문
서로 제출한 일이 있었다. 그 뒤 그는 교열(校閱)하라고 그에게 되돌아온 초고를 숨겨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이트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가 아주 정확하게 기억해 낸 바에 따르면, 아동과 미성년자의 야간 노동금지는 이 거인공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이 공장을
폐쇄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과, 그러나 이 회사에서 18세 미만의 소년은 6%를 조금 초과할 뿐이고, 13세 미만의 소년은 1% 이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주석 69: 같은 보고서, 제82호, 별책부록 p. 17.)
애터클리프(Attercliffe)에 있는 압연단철공장인 샌더슨사(Sanderson Bros. & Co.)의 샌더슨은 동일한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면 막대한 곤란이 발생할 것이다. 최대의 곤란은 소년 대신 성인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 증가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될는지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아마 공장주가 강철가격을 인상해야 할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손실은 공장주의 부담으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들은" (이들은 얼마나 완고한 사람들인가!) "당연히 그 손실을 부담하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
샌더슨은 자신이 아동들에게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그들은 매주 4 내지 5실링을 받을 것이다....소년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그 런 것이지 '특수하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 "소년의 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종류이고, 따라 서 그러한 일에 성인의 더 큰 힘을 사용하면 비용을 보상할 만한 이익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금속을 처리해야 하는 몇 가지 경우에만 이익이 날 것이다. 성인노동자들도 또한 소년공 을 자기 부하로 쓰지 못하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공은 소년공보다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년공들은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한 다. 소년들을 주간노동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이러한 목적에 합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런가? 어째서 소년들은 자기들의 일을 낮에는 배울 수 없다는 말인가? 당신의 이유는?
"매주 교대로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성인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하는 동안은 소년들과 분리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인노동자 들이 소년들에게 베푸는 지도는 소년들의 임금의 일부로 계산되며, 이에 따라 성인노동자들은 소년들의 노동을 비교적 싸게 얻을 수 있다. 각 성인노동자는 자기의 이득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해, 샌더슨사는 성인노동자들의 임금의 일부를 소년들의 야간노동에 의해 지불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샌더슨사의 이율은 약간 감소할 것인데, 바로 이 사실이 샌더슨사로 보아서는 소년들이 자기들의 일을 낮에는 배울 수 있다는 훌륭한 이유인 것이다.(주석 70: "오늘날처럼 반성도 많고 이유도 많은 시대에는 모든 일에 대해-심지어 가장 나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까지-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줄 모르는 사람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잘못된 것은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 잘못된 것이다"(헤겔, ?철학세계?, 제1부, ?논리학?, 베를린, 1840년, p. 249).) 그뿐 아니라 야간노동은 이제 성인들에게 전적으로 전가될 것이고 성인들은 이것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곤란한 점이 너무 많아 야간노동이 아마도 완전히 폐지될지도 모른다. 샌더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강철생산 그 자체에 관해 말한다면, 그렇게 된다고 해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샌더슨사는 강철생산 이외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다시 말해, 강철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이윤획득이 문제다. 용광로. 압연공장. 건물. 기계설비 철. 석탄 등은 자신을 단순히 강철로 전환시키는 일 이상의 어떤 일을 해내야만 한다. 그것들은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리고 당연히 12시간보다는 24시간에 더욱 많은 잉여노동을 흡수할 수 있다. 사실상 그것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일정한 수의 직공들을 일시켜야 한다고 신(神)과 법률의 이름으로 샌더슨사에 요구한다. 노동을 흡수하는 그들의 기능이 중단되자마자 그것들은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며, 따라서 샌더슨사로서는 순수한 손실로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경우 매우 비싼 기계들을 하루의 절반 동안 놀려두기 때문에 손실이 생 길 것이다. 또 우리는 현재의 제도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을 완수하기 위해 건물규모와 기 계설비를 2배로 늘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것은 지출을 2배로 증가시킬 것이다. "
다른 자본가들은 주간작업만을 하고 그리하여 그들의 건물. 기계. 설비. 원료가 야간에는 '놀고' 있는데, 어째서 이 샌더슨 회사만이 특권을 요구하고 있는가? 샌더슨은 샌더슨사의 이름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기계설비가 놀고 있는 탓으로 생기는 손실은 주간작업만 하는 공장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나 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용광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용광로의 불을 끄지 않으면 연료가 낭비될 것이고“ (현재 낭비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은 어찌하고) ”또 만약 용광로의 불을 끈다면 다시 불을 붙여 필요한 온도를 얻기까지 시간적 손실이 발생한다"(한편 심지어 8세밖에 안 되는 아동들의 수면시간의 손실은 샌더슨 형제에게는 노동시간의 이득으로 되고 있다). "그리고 용광로 그 자체도 온도의 변화로 말미암아 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용광로인 노동자들은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의 교대 에 의해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주석 71: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제85호. 별책부록 p. 17 아동들을 위한 '규칙적인 식사시간'은, 용광로에서 방사되는 일 정한 열량의 '순수한 손실' 또는 '낭비'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유리 제 조업자들의 주장에 대해 조사위원회 위원인 화이트(White)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는데, 그 의 대답은 [자본가들의 화폐지출의 '절제', '자제', '절약'과, 인간생명의 엄청난 '낭비'에 감격을 금치 못하는] 유어(Ure), 시니어(Senior)등과 독일에 있는 들의 변변치 못한 아류인 로셔 (Roscher)와 같은 사람들의 대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규칙적인 식사시간이 보장되는 결과 약간 의 양의 열(熱)이 현재의 정도 이상으로 낭비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낭비는 화폐가치로 따지더라도,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성장기에 있는 아동들이 마음놓고 식사하며 먹은 것을 소화하 기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결 과 현재 우리나라의 유리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 명력(生命力)의 낭비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45). 그런데 이것은 '진보(進步: progress)의 해'인 1865년의 일이다! 물건을 들어올리며 운반할 때의 힘의 지출은 무시하더라도, 병과 납유리를 제조하는 유리공장에서 아동들은 쉬지 않고 작업하면서 6시간 동 안에 15-20마일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은 가끔 14-15시간 계속된다! 많은 유리공장들에서 는 모스크바의 방적공장들에서와 같이 6시간교대제가 지배적으로 되어 있다. "1주일의 노동기 간중 계속해서 휴식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6시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공장에 왕복하는 시 간과 세수하고 옷을 입으며 식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시간이 공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매우 짧은 휴식시간이 남을 뿐이다. 그처럼 더운 공기 속에서 그처럼 힘든 일을 하는 아동들에 게 수면은 절대로 필요한 것인데, 아동들은 이 수면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뛰어 놀거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시간을 조금도 얻지 못한다....이 짧은 수면까지도 밤에는 아이들 자신이 지각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중단되며, 낮에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잠이 깨기 때문에 중단된다. " 화이트가 들고 있는 실례에 의하면, 어떤 소년은 36시간 동안 계속 일한 경 우도 있고, 12세 소년들이 새벽 2시까지 일한 뒤 아침 5시까지 공장에서 자고(세 시간 동안!) 또 낮일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 보고서의 초안 작성자인 트리맨히어(Tremenheere)와 터프넬 (Tufnell)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년. 소녀. 부녀자들이 주간 또는 야간의 근무시간 중에 수행하는 노동량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p. 43-44). 한편 금욕적인 유리 공업 자본가는 아마 밤늦게 포도주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영국 사람이 노예로 되는 일은 결코,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얼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면서 클럽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것이 다.)
제 5 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의
노동일의 연장을 위한 강제법
"노동일(勞動日)이란 무엇인가? 자본은 하루분의 가치(價値)를 주고 구매한 노동력을 얼마 동안 소비할 권리가 있는가? 노동일은 노동력 그 자체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넘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노동일은 하루 24시간 전체를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 노동력이 다시 봉사하기 위해 절대로 필요한 약간의 휴식시간은 뺀다고. 우선 자명한 것은 노동자는 자기의 전 생애에 걸쳐 노동력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은 자연적으로나 법률상으로나 자본의 가치증식(價値增殖)을 위해 바쳐질 노동시간(勞動時間)이라는 것이다. 교육. 정신적 발달. 사회적 기능의 수행. 사교 . 육체적 정신적 생명력의 자유로운 활동 등등을 위한 시간, 그리고 심지어 일요일의 안식시간까지도(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주석 72: 영국의 농촌 지방에서는 아직까지도 노동자가 안식일에 자기 집 앞의 정원에서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해서 금고(禁錮: imprisonment)의 처벌을 받는 일이 있다. 바로 그 노동자가 일요일에 금속공장, 제지공장 또는 유리공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그것이 비록 종교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계약위반이라는 이유로 처벌받는다. 정교도(正敎徒)들이 지배하는 의회도 안식일의 모독이 자본의 '가치증식과정'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에는 모른 척 할 것이다. 생선가게와 닭가게에서 일하는 런던의 일용노동자들 이 일요일 노동의 폐지를 요구한 진정서(1633년 8월)를 보면, 그들의 노동은 평일의 6일간은 매일 평균 15시간씩이고 일요일에는 8-10시간이라고 쓰여있다. 또한 우리가 이 진정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엑스터 홀)Exeter Hall){런던의 건물로 주로 교회선교회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改宗)시킨다고 하면서 노예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다}에 모여드는 위선적 귀족들의 까다로운 식도락(食道樂)이 '일요일 노동'을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적 쾌락의 탐구에' 그처럼 여념이 없는 이 ‘성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과도노동과 궁핍과 굶주림에서는 인내의 정신을 가지고 참음으로써 자기들이 기독교도임을 실증하고 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은 그대들(노동자들)의 위장에는 더욱 해롭다.“) 모두 자본가의 것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자본은 잉여노동(剩餘勞動)에 대한 무제한적인 맹목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즉 잉여노동에 대한 충족될 수 없는 탐욕으로 말미암아, 노동일의 도덕적인 한계뿐 아니라 순전히 육체적인 한계까지도 넘어버린다. 자본은 신체의 성장. 발육. 건전한 유지에 필요한 시간을 빼앗는다. 자본은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도둑질한다. 자본은 식사시간을 깎아내고, 가능하다면 그 식사시간까지도 생산과정에 편입시켜 [마치 보일러에 석탄을 공급하고 기계에 윤활유나 석유를 공급하듯이] 식사를 노동자에게 제공한다. 자본은 [생명력을 회복하고, 수습하고, 활력을 부여하는 데 필요한] 건전한 수면을, 기진맥진한 유기체가 소생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과 몇 시간의 무감각 상태로 감축시켜 버린다.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가 노동일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력의 가능한 최대한도의 일상적 지출[그 지출이 아무리 병적이고 강제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이 노동자의 휴식 시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삼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안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이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것은 마치 탐욕스러운 농업경영자가 토지의 비옥도를 약탈함으로써 수확량을 늘리려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고 잉여노동의 흡수인] 자본주의적 생산(資本主義的 生産)은,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노동력으로부터 그 정상적인 도덕적. 육체적 발전조건과 활동조건을 탈취함으로써, 인간노동력의 위축을 가져올 뿐 아니라 노동력 그 자체의 조기 소모와 사망을 가져온다.(주석 73: "우리는 이전의 보고서들에서 과도노동이....확실히 인간노동력을 너무 일찍 탈진(脫 盡:exhaust))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여러 공장주들의 진술을 제공했다"(?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제64호, 별책부록 p. 13).) 그것은 노동자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주어진 기간 안에서 노동자가 생산에 전념하는 시간을 연장한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의 재생산[즉, 노동자계급의 계속적인 존재]에 필요한 상품의 가치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만약 [자본이 자기증식에 대한 무제한의 충동에서 필연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노동일의 반(反)자연적 연장이 개개의 노동자의 수명을, 그리하여 그들의 노동력의 생존기간을 단축시킨다면, 소모된 노동력의 더 신속한 보충이 필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기계의 소모가 빠르면 빠를수록 기계의 가치 중 매일 재생산되어야 할 부분이 더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표준노동일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
노예소유자가 노예를 사는 것은 그가 말(馬)을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가 노예를 잃어버린다면 자본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그는 다시 노예시장에서 새로운 지출에 의해 이 자본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을 주목하라.
“조지아주의 논이나 미시시피주의 늪지는 인간의 육체에 매우 치명적인 나쁜 영향을 준다. 그 러나 (이 지역의 경작이 요구하는) 인간생명의 낭비는 버지니아주와 켄터키주의 풍부한 흑인보
관창고로부터 보충받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다. 노예를 보호하는 것이 노예소유자의 이익과 합치되는 한, 노예를 인간적으로 취급하지만, 노예무역이 실시됨에 따라 경제적 타산은 노예를 가 장 무자비하게 혹사시키는 원인으로 된다. 왜냐하면, 노예를 외국의 흑인사육장으로부터 값싸게 보충할 수 있게 되자, 노예의 수명(壽命)은 그의 생존시의 생산성(生産性)보다 덜 중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 수입국의 노예 관리(管理: managemet)의 원칙은, 노예로부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노동을 짜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적 타산이라는 것이다. 1년간 의 이윤이 농장에 투하된 총자본과 같아지는 일이 드물지 않은 열대지방의 경작에서는, 흑인의 생명은 매우 무자비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수 백년 동안 거대한 부를 낳은 서인도의 농업은 수백 만의 아프리카 인종을 삼켜버렸다. 오늘날 쿠바에서는 그 소득이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하며 그 농장주는 왕자와 다름없이 살고 있지만, 노예들은 형편없는 음식물과 극도의 쉴새없는 혹사로 해마다 상당한 수가 죽어가고 있다. "(주석 74: 케언즈(J. E. Cairnes), ?노예의 힘", pp. 110-111.)
이름은 다르지만 이것은 너{임금노동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예무역을 노동시장으로 바꾸어 읽고, 켄터키와 버지니아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농업지방과 아일랜드로, 또 아프리카를 독일로 바꾸어 읽어보라. 우리는 이미 과도노동이 어떻게 런던의 방제조공들의 수를 감소시켰는가를 보았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노동시장 은 방제조업에서 죽기를 각오한 독일인들과 기타 지원자들로 언제나 넘치고 있다. 도자기 제조업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노동자들의 수명이 가장 짧은 산업부문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자기공들이 부족한가? [현대적 도자기생산의 발명
자이고 그 자신이 보통의 노동자 출신인] 조사이아 웨지우(Josiah Wedgwood)는 1785년 하원에서 말하기를, 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체 노동자는 15,000명 내지 20,000명이라고 했다.(주석 75: 존 워드(John Ward), ?스토크-온-트렌트시?, 런던, l843년, p. 42.) 그런데 1861년에는 영국에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도시 중심지에서만도 101,302명이었다.
“면공업은 이미 90년간 존재했다....영국인의 3세대에 해당하는 이 기간에 면공업은 노동자들의 9세대를 삼켜버렸다고 장담할 수 있다. "(주석 76: 1863년 4월 27일 하원에서 한 페란드 (Ferrand)의 연설.)
물론 몇 번의 열병적 호황기에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인력의 공급이 대단히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1834년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때 공장주들은 농업지방의 '과잉인구'를 북부로 보낼 것을 구빈법위원회(救貧法委員會: The Poor Law Commissioner)에 제의했고, 그리하면 “공장주들은 그들을 흡수하고 소비해 버릴 것이다"라고 설명했던 것이다.(주석 77: “이 말은 면공장주들이 사용한 말 그대로다"(같은 연설).)
“구빈법위원회의 동의 하에 알선인(agent)들이 임명되었다....맨체스터에는 사무소가 개설되었 으며, 취업하기를 원하는 농촌인구들의 명부를 작성해 사무소로 보냈다. 공장주들은 사무소로 가 서 자기들이 구하는 사람을 선택해 들을 맨체스터로 보내도록 지시한다. 그러면 이들 인간화물 은 짐작처럼 꼬리표가 붙어 운하로 또 짐마차로 송달되었다. 중에는 걸어서 온 사람도 약간 있 었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길을 잘못 들어 반쯤 굶어 죽어가고 있는 빈사상태에서 공장지대를 헤 매었다. 이러한 제도가 하나의 정규적인 상업부문으로 발전했다. 하원은 이것을 거의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이와 같은 인신매매(人身賣買)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이 사 람들은 마치 흑인노예들이 미국의 면화재배자에게 판매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맨 체
제조업은 그 신성한 '자유상업'에 대한 고려도 없이 국가 감독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고(1863년의 의회회기 끝에), 그리고 의회의 법령에 의해 18세 미만의 빵제조공에게는 오후 9시에서 오전 5시 사이의 노동은 금지되었다. 이 조항은 이 오래된 친숙한 사업부문의 과도노동에 대해 여러 권의 책보다 더 웅변적으로 발해 주고 있다.
“런던의 빵제조공의 노동은 보통 밤 11시에 시작된다. 이 시간에 그는 '반죽'을 하는데, 이 일
은 가마솥의 빵의 분량과 품질에 따라 1/2시간 내지 3/4시간 계속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 것이 끝난 다음 그는 반죽판-이것은 동시에 밀가루통의 뚜껑으로도 쓰인다-위에 누워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머리 밑에 베고 또 다른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몸에 덮고 두 시간쯤 잠을 잔 다. 그 뒤 5시간에 걸친 신속하고 쉴새없는 노동, 즉 반죽을 던지고, 그 중량을 달고, 그 형태 를 만들고, 그것을 가마에 올리고, 가마에서 끄집어내는 등등의 노동이 시작된다. 빵제조실의 온 도는 화씨 75도 내지 90도{섭씨 24도 내지 32도}에 달하며, 규모가 작은 빵제조실의 온도는 그 보다 낮지 않고 도리어 높다. 식빵이나 원통형 빵 등을 만드는 일이 끝나면 빵배달이 시작된다. 그리고 빵제조공의 대부분은 앞에서 말한 어려운 야간노동이 끝난 뒤 낮에는 빵을 광주리에 담 든지 손수레에 싣고 몇시간 동안 날라다 주며, 또 이따금 빵제조실에서 작업도 한다. 이 노동은 계절과 영업의 규모 여하에 따라 오후 1시에서 6시 사이에 끝나지만, 직공들의 다른 일부는 밤 늦도록 빵제조실에서 작업을 한다. "(주석 46: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별책부록 pp. 6-7 "이른바 '런던 시즌' {런던의 사교시즌으로 초여름 무렵}에는 빵을 '정가'로 판매하는 웨스트 엔드(West End)의 빵집에서 일하는 직공들은 으례히 밤 11시에 작업을 시작해 1회나 2 회의 대체로 매우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방을 굽게 된다. 다음에 그들은 오후 4시, 5시, 6시까지 또 경우에 따라서는 7시까지도 계속 빵을 배달하며 또는 이따금 방 제조실에서 비스켓도 굽는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그들은 5-6시간, 종종 4-5시간 수면을 취한다. 금요일에는 노동은 언제나 더 일찍 저녁 10시에 시작해서 토요 일 저녁 8시까지 계속되고, 일반적으로는 일요일 아침 4-5시까지 계속된다. 일요일에도 다 음 날을 위한 준비 때문에 두세 번 공장에 나와 1시간 내지 2시간 일해야 한다....싸구려 빵집(빵 을 정가 이하로 파는 빵집으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런던의 전체 빵집의 3/4에 달한다)에 서 일하는 직공들의 노동시간은 이보다 더 길 뿐 아니라 그들의 노동은 거의 전적으로 빵제조실 내부에 국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빵집 주인은 일반적으로....자기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하기 때문 이다. 조그마한 소매점에 공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을 시켜 배달하며 직접 이집저집 배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주말이 가까워 오면....목요일 밤 10시부터 노동이 시작되어 사소한 중단이 있을 뿐 토요일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주석 47: 같은 책, 별책부록 p. 71.)
‘싸구려 빵집’의 처지를 부르주아적 지식인조차도 "직공들의 불불노동(不拂勞動: unpaid labour)이 그들의 경쟁의 원천이다"(주석 48: 리드(George Read), ?빵제조업의 역사? 런던, 1848년, p. 16.)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정가판매 빵제조업자'는 자기의 경쟁자인 '싸구려 빵집’을 타인노동의 도둑이며 불순품 제조자라고 조사위원회에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첫째 대중을 기만하는 것에 의해, 그리고 둘째 그들의 직공들에게 12시간분의 임금을 지불하고 18시간의 노동을 시키는 것에 의해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석 49: ?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1차 보고서5“, ‘정가판매 빵제조업자' 치즈먼의 증언, p. 108.)
빵의 불순제조와 [빵을 정가 이하로 판매하는] 빵제조업자의 형성은 영국에서는 18세기 초 이래 [즉, 이 업종의 길드적 성격이 해체되고 명목상의 빵제조업자 배후에 자본가가 제분업자 또는 밀가루 전대상인(前貸商人)으로 나타난 이후부터] 발생한 것이다.(주석 50: 리드, 앞의 책. 각종 영업분야에 몰려들어와 있던 전대상인(前貸商人)들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도 '사회질서파괴자'로 비난받고 있었다. 예컨대 서머셋주에서 치안판사법정의 분기 재판기간에 대배심원은 하나의 '고발장'을 하원에 제출했는데, 그 가운데는 특히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다. "블랙웰홀(Blackwell Hall)의 이 전대상인들은 직물업에 해를 끼치는 사회질서파괴자이므로 마땅히 하나의 불법행위자로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우리 영국 양모업의 사례“, 런던, 1685년, pp. 6-7).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 야간노동의 토대가 이 분야에서 이루어졌는데, 야간노동은 런던에서조차도 1824년 이후 비로소 본격적으로 그 기반을 확립했다.(주석 51: ?제1차 보고서?, 별책부록 p. 8.)
앞에서 말한 바에 의해, 우리는 위원회의 보고서가 빵제조공을 단명한 노동자의 부류에 소속시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아동들에게 일반적인] 유아사망(幼兒死亡)을 다행히 면했지만 42세까지 연명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제조업에는 언제나 지원노동자가 넘치고 있다. 런던에 이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천지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서부농업지대 및 독일이다.
1858-60년에 아일랜드의 빵제조공들은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대집회를 자기들의 비용으로 조직했다. 대중들은, 예컨대 1860년 5월의 더블린 집회에서 본 바와 같이, 아일랜드인의 특유한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편에 가담했다. 이 운동의 결과 웩스포드, 킬켄니, 클론멜, 워터포드 등에서는 야간노동 없는 주간노동만이 실제로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다.
"직공들의 고통이 너무 지나친 것으로 알려진 리머리크(Limerick)에서는, 이 운동은 빵제조업 자들, 특히 빵제조업과 제분업을 겸하는 사람들의 반항에 부닥쳐 실패로 돌아갔다. 리머리크의 실패는 엔니스 및 티페러리에서도 패배를 가져왔다. 대중들의 분노가 가장 격심하게 표현된 코 크에서는 고용주들이 직공들을 해고함으로써 이 운동을 좌절시켰다. 더블린에서는 고용주들이 가장 단호하게 저항했고 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직공들을 박해함으로써 기타 직공들로 하여금 양보해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주석 52: “1861년의 아일랜드의 빵제조업에 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
[아일랜드에서는 빈틈없이 무장하고 있는] 영국 정부의 위원회도 더블린, 리머리크, 코크 등의 무자비한 빵제조업자들에게는 애원하는 어조로 다음과 같이 충고할 뿐이었다.
“본 위원회는, 노동시간은 자연법(自然法)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며, 이 자연법의 위반에 대해 서는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고용주들은 해고의 위협으로 자기의 노동자들에게 종교적 신념의 위배와 국법에 대한 불복종과 여론의 무시"(이 모든 것은 일요일노동과 관련된 것이다)" 를 강요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불화를 야기하며....종교. 도덕. 사 회질서에 대해 위험한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본 위원회는,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 의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을 침해하며, 그리하여 노동자의 가정을 파괴하고 자식. 형제. 남편. 아버 지로서의 가족적 의무의 수행을 방해함으로써 해로운 도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12시 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고, 일찍 늙고 일찍 죽게 하며, 노동자의 가족은 가장(家長)의 보호와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를 빼앗기게 되어 크게 불행해 진다. "(주석 53: 같은 보고서.)
우리는 이상에서 아일랜드에 관한 사정을 알아보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쟁기질하는 농업노동자들은 사나운 기후에서 하루 13-14시간의 노동을 그리고 또 일요일에도 4시간의 추가노동까지 해야 한다(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고 항의하고 있으며,(주석 54: 1866년 1월 5일 에딘버러 부근의 래스웨이드(Lasswade)에서 개최된 농업노동자들의 군중집회(1866년 1월 13일자 ?노동자의 옹호자?를 보라). 1865년 말 농업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우선 스코틀랜드에서 결성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억압받고 있는 농업 지대의 하나인 버킹엄셔의 노동자들이 1867년 3월에 주급을 9-10실링에서 12실링으로 인상시키기 위해 일대 파업을 단행했다. (위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영국의 농업노동자의 운동은, 1830년 이후의 그 격렬한 시위운동들이 진압당한 이래, 그리고 또 특히 새로운 구빈법(救貧法)이 실시된 이래, 완전히 분쇄되었으나, 6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고 1872년에는 드디어 획기적인 것으로 되었다. 나는 제2권에서 다시 이 문제를 취급하려고 하며 또한 1867년 이래 발간된 영국농업노동자의 상태에 관한 청서에 대해서도 언급하려 한다).) 같은 시기에 런던에서는 검시배심원(檢屍賠審員) 앞에 3명의 철도 노동자-여객 승무원, 기관사, 신호수-가 출두하고 있다. 끔찍한 철도사고가 수백 명의 승객을 저 세상으로 수송했던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철도노동자들의 부주의(不注意)이다. 그들이 배심원 앞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0-12년 전에는 그들의 노동은 하루에 8시간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5-6년 동안 노동시간이 14시간, 18시간, 20시간으로까지 늘어났다. 또 행락철과 같이 특히 여행객이 몰릴 때에는 노동이 가끔 중단없이 40-50시간 계속된다. 그들 철도노동자들은 보통의 인간이지 신화에나 나오는 장사들이 아니다. 어떤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들의 노동력은 고갈된다. 그들은 무감각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두뇌는 사고(思考)를 중지하며, 그들의 눈은 보기를 중지한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영국의 배심원들'은 그들에 대해 살인(殺人)이라는 죄명으로 순회재판에 회부한다고 판결하고, 다음과 같은 경건한 희망을 부드러운 어조로 첨부하고 있다. 즉, 철도관계의 대자본가들은 앞으로 필요한 수의 ‘노동력'을 구입하는 데 좀더 돈을 아끼지 말고, 구입한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좀더 '절도있게' '욕심적게' '검소하게' 하기를 바란다고.(주석 55: ?레이놀즈 신문?, 1866년 1월 21일자. 이 신문은 매주 '처참한 숙명적인 사고, '참혹한 비극'등등의 충격적인 제목 아래 수많은 새로운 철도사고들을 보고하고 있다. 북부 스태퍼드셔 철도의 어느 노동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열차의 기관사와 화부(火夫)가 계속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매우 사나운 날씨에 휴식도 없이 29-80시간씩 노동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러한 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음과 같은 예는 매우 자주 일어난다. 월요일에 화부는 아침 일찍부터 그날의 일을 시작했다. 그는 14시간 50분 뒤에 그 일을 끝마쳤다. 그는 차 한 잔 마실 들도 없이 또다시 작업에 불려나왔다....다시 14시간 25분을 근무했다. 이와 같이 그는 29시간 15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의 1주일 작업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이 짜여져 있다. 수요일 15시간, 목요일 15시간 35분, 금요일 14시간 반, 토요일 14시간 10분, 즉 1주일 동안의 총계는 88시간 30분이다. 그런데 그가 모두 합해 겨우 6 1/4노동일분의 임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사람은 계산착오라고 생각하고 작업시간 담당자에게...1일분의 일이란 대체 얼마만큼인가를 물었다. 대답은 하루에 13시간, 다시 말해 1주일에 78시간이라는 것이었다....그러자 그는 1주일에 78시간 이상 일한 분에 대해 지불해 주도록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그에게 10펜스의 수당을 주겠다고 말했다"(같은 신문, 1866년 2월 4일자).)
직업. 연령 .성별이 각양각색인 노동자들[그들은 학살당한 영혼들이 유리시즈의 주위로 모여드는 것보다도 더욱 집요하게 우리 주위로 몰려오고 있으며, 그들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청서(靑書: Blue Book)를 보지 않더라도 첫눈에 우리는 그들의 과도노동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에서 우리는 부인복 제조공과 대장장이라는 2명의 인물을 골라내자. 이 두 인물 사이의 현격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1863년 6월의 마지막 주에 런던의 모든 일간신문은 '순전히 과도 노동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을 붙인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은 명성이 자자한 어느 부인복 재봉소에서 일하고있던
20세의 워클리(Mary Anne Wllkley)라는 여공의 사망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여공은 엘리스(Elise)라는 얌전한 이름을 가진 귀부인에게 착취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번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던 오래된 이야기가 이제 새로 폭로된 것이다.(주석 56: 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p. 253, 254 참조.) 여기서 일하는 소녀들은 하루 평균 16시간 반을, 그리고 사교계절에는 가끔 30시간을 중간에 쉬는 일도 없이 계속 노동하며, 그녀들의 '노동력'이 지칠대로 지쳐 제대로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게 되면 때때로 세리(sherry)주, 포도주 또는 커피를 공급함으로써 기운을 차리게 했다. 때마침 사교계절이 한창일 때였다. 새로 온 웨일즈 공주를 축하하는 무도회에 초청된 귀부인들이 입을 화려한 옷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워클리는 60명의 다른 소녀들과 함께, 30명씩 배치된 그리고 그 인원에게 필요한 공기량의 1/3도 들어 있지 않은 한 방에서, 중단없이 26시간 반 동안 일했다. 그리고 밤에는 한 개의 침실을 널판지로 칸을 나누어 숨이 막힐 듯이 만들어진 여러 개의 구멍들 중의 한 구멍에서 두 명씩 잠을 잤다.(주석 57: 보건국에 근무하는 의사 레서비(Letheby)는 그 당시 다음과 같이 언명했다. "성인 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기의 최소한도는 침실에서는 300입방피트이고, 거실에서는 500입방피트여야 한다. " 런던의 어느 병원의 선임의사 리처드슨(Richard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인복 재봉공, 의복 재봉사, 일반 재봉사 등 각종 재봉여공들은 과도노동과 공기부족과 영양부족 또는 소화불량이라는 삼중(三重)의 재난을 겪고 있다.... 대체로 보아 재봉일은....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더 적합하다. 그러나 이 직업의 폐단은 그것 이, 특히 수도에서, 약 26명의 자본가들에게 독점되어 있고, 이 자본가들은 자본으로부터 생기는 권력수단을 이용해 노동력을 남용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권력은 이 여공계급 전체가 느끼고 있는 바다. 만약 석면 여자 재봉사가 소수의 고객이라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경쟁은 그녀로 하여금 이 손님들을 확보하기 위해 집에서 죽도록 일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며, 또 그 여자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조수여공들을 혹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여자의 사업이 잘 되지 않든가 또는 그 여자가 독립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일은 더 고되더라도 그 대신 지불이 확실한 다른 가게에 고용살이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그 여자는 다시 노예로 전락해 사회의 변화의 물결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어떤 때에는 자기집 조그마한 방구석에서 기아상태, 또는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기도 하며, 또 어떤 때에는 질식할 지경의 공기 속에서, 그리고 신선한 공기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가령 좋은 음식물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처지에서 24시간 중 15시간, 16시간 때로는 18시간씩 일하기도 한다. 공기가 나쁜 데서 오는 병인 폐결핵은 이러한 희생자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다"(리처드슨, 「노동과 과도노동」, ?사회과학평론? 1863년 7월 18일).) 그런데 이것은 런던의 부인복 재봉소 중에서도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클리는 금요일에 병이 나서 일요일에 죽었다. 엘리스 부인이 놀란 것은 이 소녀가 손에 잡고 있던 일을 완성도 하지 못한 채로 죽은 것이었다. 뒤늦게 이 소녀가 죽어 있는 침대에 불려 온 의사 키즈(Keys)는 검시배심윈 앞에서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증언했다.
"메어리 안 워클리는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에서 장시간 노동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환기가 잘 안 되는 너무나 좁은 침실에서 잤기 때문에 죽었다. "
이 의사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검시배심원은 그의 증언에 대답해 다음과 같이 판정했다.
"사망자는 졸도로 죽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사망이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의 과도노동 등에 의해 촉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한 이유도 있기는 하다. "
자유무역주의자 콥덴(Cobden)과 브라이트(Bright)의 기관지인 ?모닝스타?는 이 사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의 백인노예는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혹사당하다가 지쳐 쓰러져 소리도 없이 죽어 간다"고.(주석 58: 1863년 6월 23일자 ?모닝 스타?. ?더 타임즈?지는 브라이트 등의 반대로부터 아메리카 노예소유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했다. 1863년 7월2일자 사설에서 이 신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젊은 여성들을 채찍 소리 대신 기아의 고통으로 위협하면서 죽도록 일을 시키고 있으므로, 우리는 [노예소유자로 태어나 적어도 노예를 잘 먹이며 적당히 일을 시키고 있는] 가족들에게 포화와 총검으로 위협할 권리는 없다. " 동일한 방식으로, 토리(Tory)당의 기관지인 ?스탠다드?(1863년 8월 15일)는 뉴먼 홀(Newman Hall) 목사를 다음과 같이 매도하고 있다. "그는 노예소유자들을 파문시키면서도 [런던의 역마차의 마부나 차장 등을 형편없는 임금으로 하루에 시간씩 일을 시키는 점잖은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 끝으로 내가 이미 1850년에 "천재는 사라져 버리고 천재에 대한 숭배만이 남아 있다"고 쓴 바 있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어느 짤막한 우화에서, 현대사의 대사건인 미국의 남북 전쟁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시키고 있다. 즉, 북부의 베드로는 전력을 다해 남부의 바울의 머리를 깨뜨리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북부의 베드로는 자기 노동자를 '일당'(日當)으로 고용하지만, 남부의 바울은 '평생 동안' 고용하기 때문이다(?맥밀란 잡지?, “아메리카의 소(小)일리아드”, 1863년 8월). 그리하여 토리당이 도시의 임금노동자에 대해-농촌의 임금노동자에 대해서는 결코 아니다!-동정을 가지고 있다는 대중의 환상은 드디어 깨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들은 노예제도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죽도록 노동하는 것은 부인복 재봉소에서뿐 아니라 몇 천 개의 장소에서, 더 정확히 말해 ' 사업이 잘 되는' 모든 곳에서 일상적이다....이제 우리는 대장장이(blacksmith)를 실례로 들어 보 자. 만약 우리가 시인의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대장장이 이상으로 더 원기가 왕성하고 더 쾌 활한 인간은 없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태양보다도 먼저 불꽃을 튀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도 잘 먹고 잘 마시며 잘 잔다. 육체적으로 고찰할 때, 노동을 과도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대장장 이는 실로 인간의 가장 좋은 상태 중의 하나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도시에 가 서 그의 강력한 두 어깨에 부과되는 노동의 무게와, 우리나라의 사망률표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
치를 보기로 하자. 메릴본(Marylebone) {런던의 가장 큰 구역 중의 하나}에서는 대장장이의 사망률이 대년 1,000명당 31명인데, 이것은 영국 성인남자의 평균사망률보다 11명이나 많다. 이 직업은 거의 본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의 한 기능(技能: art)으로서, 그 자체로서는 싫어할 만한 아무 것도 없지만, 단순히 과중한 노동으로 말미암아 그를 파괴하게 된다. 그는 하루에 쇠망치를 몇 번 내리칠 수 있고, 몇 번의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며, 몇 번의 호흡을 할 수 있고, 얼마만큼 생산할 수 있으며, 그리고 평균적으로 예컨대 50년은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매일 그보다 더 많이 망치질하며 더 많은 걸음을 걸으며 더 자주 호흡하도록 강요당하며, 그리하여 그의 생명력의 지출을 매일 1/4만큼 증가시킨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는 어떤 한정된 시간에 실제로 1/4만큼 더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대신 50세가 아니라 37세에 죽게 된다.(주석 59: 리처드슨, 앞의 책, p. 476 이하.)
제 4 절 주간노동과 야간노동. 교대제
불변자본인 생산수단은 가치증식과정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직 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그리고 노동의 한 방울 한 방울과 함께 그것에 비례하는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생산수단이 이렇게 하지 않는 한, 그것의 존재는 자본가에게는 일종의 소극적인 손실(損失)이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동안은 쓸모없이 투하된 자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손실은, 중단되었던 생산을 재개하려면 추가적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극적인 손실로 된다. 노동일을 자연일의 한계를 넘어 야간에까지 연장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노
동자의 살아있는 피에 대한 흡혈귀적 갈증을 약간 풀어주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루 24시간 전체에 걸쳐 착취하려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충동이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력을 낮과 밤 계속 착취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과 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을 교대(交代)할 월요가 생긴다. 이 교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예컨대 노동인원의 일부가 어떤 주에는 주간노동만 하고 다른 주에는 야간노동만 하는 방법도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교대제 또는 윤번제(輪番制)는 영국 면공업의 매우 왕성한 성장기에 성행했으며, 현재에도 특히 모스크바의 면방적 공장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24시간제 생산과정은 영국에서는 아직까지 '자유로운' {공장법이 적용되지 않는} 공업분야의 다수, 즉 잉글랜드나 웨일즈나 스코틀랜드의 용광로. 단철공장(鍛鐵工場: forge). 압연공장. 기타 금속가공공장에서 현재도 하나의 제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는 노동과정은 6일간의 노동일 동안에는 매일 24시간 계속될 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거의 24시간 계속 되고 있다. 노동자는 남녀의 성인과 아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동과 소년들의 연령은 8세부터(약간의 경우에는 6세부터) 18세까지의 모든 연령층에 걸쳐 있다.(주석 60: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3차 보고서?, 런던, 1864년, 별책부록 pp. 5-6.) 약간의 부문들에서는 소녀와 부인도 남자 종업원과 함께 야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주석 61:"스태퍼드셔와 남부 웨일즈에서는 소녀들과 부인들이 주간뿐 아니라 야간에도 탄광이나 코크스 적치장(積置場)에서 일하고 있다.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이와 같은 관행이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고 자주 지적되었다. 이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이 일하며, 거의 남성과 구별되지 않는 의복을 입고 있으며 먼지와 검댕을 뒤집어쓰고 있다. 비(非)여성적인 직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따라서 그들의 품성이 타락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앞의 보고서. p. 194. 별책부록 p. 26. ?제4차 보고서?(1865년) 제61호 별책부록p. 13 참조). 유리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간노동의 일반적인 나쁜 영향들을 당분간 무시하면(주석 62: 아동에게 야간노동을 시키는 어느 강철업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밤에 일하는 소년들이 낮에는 잘 수도 없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도 없어 다음날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아동노동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제63호, 별책부록 p. 13). 한 의사는 신체의 유지와 발달에 태양광선이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광선은 또한 신체의 조직에 직접 작용해 이 조직을 견고하게 하고 탄력있게 한다. 정상적인 양의 광선이 공급되지 않으면 동물의 근육은 연약하게 되어 탄력이 없어지며, 신경은 자극의 결핍으로 그 긴장력을 상실하며, 성장과정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발육이 왜곡된다....아동의 경우 풍부한 햇빛에 끊임없이 접촉하고 하루 중 일정한 시간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는 것이 건강에 절대로 필요하다. 광선은 음식물이 혈액으로 되는 것을 촉진하며, 새로 형성된 섬유조직을 강인하게 한다. 광선은 또한 시각기관에 대한 자극물이 됨으로써 각종 뇌 기능을 더 강력하게 활동시킨다. " 우리는 이상의 구절을 우스터 종합병원의 선임의사인 스트레인지(W. Strange)의 저서, ?건강“(1864년)에서 인용했는데, 그는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인 화이트(White)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이전에 랭카셔에서 아동들에게 미치는 야간노동의 영향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몇몇 고용주들의 상투적인 주장과는 반대로 아동의 건강은 야간노동에 의해 곧 나빠진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제284호, p. 55). 도대체 이런 문제가 진지한 논의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이 자본가와 그 앞잡이의 뇌 기능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24시간 중단없이 계속되는 생산과정은, 예컨대 앞에서 말한 매우 긴장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산업부문들[각 노동자의 공인된 노동일은 대체로 주야를 불문하고 12시간으로 되어 있다]에서는 표준 노동일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넘는 과도노동은 다수의 경우 영국 공식보고서의 말을 빌린다면, '참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주석 63: 같은 보고서, 제57호, 별책부록 p. 12. 이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하고 있다.)
"이하에서 묘사되고 있는 노동량이 9-12세의 소년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다....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나 고용주의 이와 같은 권력남용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주석 64: 같은 보고서, 제58호, 별책부록 p. 12)
“소년들을 주야(晝夜) 교대로 일시키는 방법은 사업이 활기를 띠는 때나 보통으로 진행되는 때를 막론하고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이 노동시간은 많은 경우 소년들 에게 잔혹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이다. 많은 소년들 중 한 명 이상이 이런저 런 이유로 결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때에는 출근하여 자기의 노동일을 끝마친 소년 중 1명 내지 몇 명이 그 결근자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미 아무런 비밀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압연공장 지배인은, 결근 소년의 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 것은 아마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을 텐데요‘라고 대답하고, 위의 사실을 시인했 다....(주석 65: 같은 보고서.)
"정상적인 노동일이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 반까지 계속되는 어느 압연공장에서 일하는 한 소 년은 일주일에 나흘 밤은 적어도 저녁 8시 반까지 일했다....그리고 이것이 6개월간 계속되었다. 다른 한 소년은 9세 때에는 가끔 1교대 12시간노동을 3회 연속했고, 10세 때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계속 일했다:? “10세의 또 한 소년은.... 1주일에 사흘 밤은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 하고 나머지 밤은 저녁 9시까지 일했다. " "13세의 또 한 소년은....1주일 내내 오후 6시부터 다 음날 낮 12시까지 일했고, 또 때로는 3교대분, 예컨대 월요일 아침부터 화요일 밤까지의 분을 계 속 일한 적도 있었다.” “12세의 또 한 소년은 스테이블리(Staveley)에 있는 어느 주물공장에서 계속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 아홉 살 먹은 조지 올린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여기에 왔다. 다음날 새벽 3 시에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밤새도록 여기에 있었다. 나는 여기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산다. 나는 가죽 앞치마를 밑에 깔고 조그만 쟈켓을 덮고 마루 위에서 잤다. 그 후 이틀은 아침 6시에 왔다. 정말 여기는 더운 곳이다! 여기 오기 전에도 나는 거의 1년간 농촌에 있는 용광로 에서 일했다. 거기서도 토요일에는 새벽 3시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적 어도 집에 돌아가서 잘 수는 있었다. 다른 날에는 나는 아침 6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6시 또는 7시에 끝마치곤 했다. " 등등.(주석 66: 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13. 이들 '노동력'의 교육정도는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과의 다음과 같은 문답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헤인즈(J. Haynes), 12세: "4의 4배는 8이지요. 그러나 넷이 네 개면 16입니다. 왕이라는 것은 모든 돈과 금을 가진 사람이지요. 우리 나라에도 왕이 있는데 그 왕은 여왕이고, 이름은 알렉산드라 공주라고 합니다. 그 여자는 여왕의 아들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그 여왕의 아들은 알렉산드라 공주입니다. 공주는 남자입니다. " 터너(W. Turner), 12세: "내가 사는 나라는 영국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리스(J. Morriis), 14세: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과, 한 사람만 남고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조그마한 새였다고 하더군요" 스미스(W. Smith), 15세: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었고, 남자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 테일러 (E. Taylor), 15세: "나는 런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 매튜만(H. Matthewman), 17세: "교회에 간 일이 있습니다만 최근 많이 빠졌습니다. 설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밖에 다른 이름들은 모르겠습니다. 또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어딘가 종교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15). "악마 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쁜 놈이었습니다." "이 소녀[10세]는 God(하나님)를 Dog(개)라고 썼으며 여왕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5차 보고서?, 1866년, p. 55, 제278호). 위에서 말한 금속공장의 제도는 유리공장과 제지공장에도 시행되고 있다. 기계로 종이를 만드는 제지공장(製紙工場)에서는 넝마를 선별하는 과정을 제외하고는 전체과정에서 야간노동이 예사로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교대제를 실시 함으로써 야간노동이 중단없이 1주일 전체, 즉 일요일 밤부터 다음 토요일 밤 12시까지 그냥 계속 된다. 주간교대반의 노동자들은 매주 5일은 12시간씩, 하루는 18시간 노동하며, 야간교대 반의 노동자들은 매주 닷새 밤은 12시간씩, 하루 밤은 6시간 노동한다. 다른 경우에는 각 교대 반은 하루씩 교대로 24시간 일한다. 그 중의 한 교대반은 월요일에 6시간, 토요일에 18시간 일 을 하여 24시간을 채운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중간의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제지기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1주일간 매일 15-16시간씩 일한다. 조사위원회 위원인 로드(Lord)는 이 렇게 말한다 "이 제도는 12시간 교대제와 24시간 교대제의 각종 폐해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13세 미만의 아동들과 18세 미만의 소년들과 부인들이 이 야간노동제도 하에서 일하고 있다. 12시간 제도하에서도 그들은 가끔 교대자의 결근을 메우기 위해 2교대, 즉 24시간을 일해 야 한다. 증인들의 진술은 소년소녀들이 흔히 시간외 노동을 하여서 24시간 심지어 36시간까 지 연속노동하는 일이 아주 빈번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리에 광택을 내는 '연속적이고 단조로운' 과정에서 12세의 소녀들이 "식사 때문에 반시간씩 두 차례, 기껏해야 세 차례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규칙적인 휴식 또는 작업중단 없이" 하루에 14시간씩을 꼬박 한 달 동안 일한 경우도 있다. 정규적인 야간노동이 완전히 폐지된 약간의 공장들에서는 시간외 노동이 놀 랄 만한 정도에 이르고 있으며, 또 "그것은 가끔 가장 불결하고 가장 덥고 가장 단조로운 과정 에서 수행되고 있다"(?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별책부록 pp. 38-39).)
이제 우리는 자본 그 자체가 이 24시간 노동제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들어 보자. 자본은 물론 이 제도의 극단적인 형태, 즉 노동일의 '잔인하고 믿을 수 없는' 연장을 위한 이 제도의 남용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한다. 자본은 오직 이 제도의 '정상적'인 형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제강공장인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Naylor & Vickers)는 600명 내지 7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겨우 10%만이 18세 미만이고 또 그 중에서도 겨우 20명만이 야간교대반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공장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조금도 더위를 타지 않는다. 온도는 아마 화씨 86-90도는 될 것이.... 단철공장이나 압연공장에서는 직공들은 주야 교대로 일하고 있으나, 기타의 모든 작업장에서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에 이르는 주간작업만이 실시되고 있다. 단철공장에서는 12시부터 12시까지 일한다. 약 간의 직공들은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을 교대하지 않고 항상 야간노동만 한다....규칙적으로 주간노 동만 하는 직공과 야간노동만 하는 직공 사이에 건강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아마 사람들은 밤 과 낮이 바뀌는 것보다 그렇지 않을 때에 수면을 더 잘 취할 수 있는 것 같다....약 20명의 18세 미만 소년들이 야간교대반에 속해 일하고 있다....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 없이는 우리 일은 잘 될 수가 없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생산비의 증가다....숙련공과 각 부서의 책임자들을 구하 는 일은 쉽지 않으나 소년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야간노동하는 소년들의 비율이 작기 때 문에 야간노동의 제한은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이해관계도 없다. "(주석 67:?제4차 보고서?, 1865년, 제79호, 별책부록 p. 16.)
제강제철공장인 존 브라운사(John Brown & Co.)는 3,000명의 성인 남자와 소년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일부 제강제철작업의 중노동(重勞動)에서는 주야 교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회사의 엘리스(J, Ellis)는 “힘든 제강작업에서는 성인 2명에 소년 1명 내지 2명의 비율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18세 미만의 소년을 500명 고용하고 있고, 그중 약 1/3인 170명은 13세 미만이다. 법률개정안에 관해 엘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종업원에게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이상 노동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크게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야간노동을 면제받을 수 있는 선을 12세 이
상의 어떤 나이로 규정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고용하고 있는 소년공들의 야간 노동을 금지하기보다는 차라리 13세 미만 또는 심지어 14세 미만 소년의 고용을 금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주간교대반에서 일하는 소년들은 순번을 바꿔 야간교대반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인 남자들이 쉬지 않고 밤일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건강이 파괴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1주일마다 교대하는 야간노동은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한 다. "(이와는 반대로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는 연속적인 야간노동보다 주기적으로 교대하는 야간 노동이 아마 더 유해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자기의 사업상 이익을 고려한 발언이다. ) " 우리는 주야교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낮일만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다는 것올 알고 있 다....우리가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비용의 증가 때문인 데, 이 점이 유일한 이유다"(얼마나 노골적이고 소박한 말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비용증가는 회사가 그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초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얼마나 매끄러운 표현인가!). "그렇지 않아도 구하기 힘든 노동은, 그와 같은 법률규정이 나온다면 더 부족하게 될 것이다"(즉, 이 회사는 노동력의 완전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치명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주석 68: 같은 보고서?, 제80호, 별책부록 p. 16.)
캄멜사(Cammel &, Co.)의 '거인제강제철공장'도 앞에서 말한 존 브라운사와 마찬가지로 대규모로 경영되는 공장이다. 그 회사의 전무는 정부위원회 위원인 화이트(White)에게 자기의 증언을 문
서로 제출한 일이 있었다. 그 뒤 그는 교열(校閱)하라고 그에게 되돌아온 초고를 숨겨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이트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가 아주 정확하게 기억해 낸 바에 따르면, 아동과 미성년자의 야간 노동금지는 이 거인공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이 공장을
폐쇄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과, 그러나 이 회사에서 18세 미만의 소년은 6%를 조금 초과할 뿐이고, 13세 미만의 소년은 1% 이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주석 69: 같은 보고서, 제82호, 별책부록 p. 17.)
애터클리프(Attercliffe)에 있는 압연단철공장인 샌더슨사(Sanderson Bros. & Co.)의 샌더슨은 동일한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면 막대한 곤란이 발생할 것이다. 최대의 곤란은 소년 대신 성인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 증가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될는지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아마 공장주가 강철가격을 인상해야 할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손실은 공장주의 부담으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들은" (이들은 얼마나 완고한 사람들인가!) "당연히 그 손실을 부담하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
샌더슨은 자신이 아동들에게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그들은 매주 4 내지 5실링을 받을 것이다....소년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그 런 것이지 '특수하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 "소년의 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종류이고, 따라 서 그러한 일에 성인의 더 큰 힘을 사용하면 비용을 보상할 만한 이익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금속을 처리해야 하는 몇 가지 경우에만 이익이 날 것이다. 성인노동자들도 또한 소년공 을 자기 부하로 쓰지 못하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공은 소년공보다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년공들은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한 다. 소년들을 주간노동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이러한 목적에 합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런가? 어째서 소년들은 자기들의 일을 낮에는 배울 수 없다는 말인가? 당신의 이유는?
"매주 교대로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성인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하는 동안은 소년들과 분리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인노동자 들이 소년들에게 베푸는 지도는 소년들의 임금의 일부로 계산되며, 이에 따라 성인노동자들은 소년들의 노동을 비교적 싸게 얻을 수 있다. 각 성인노동자는 자기의 이득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해, 샌더슨사는 성인노동자들의 임금의 일부를 소년들의 야간노동에 의해 지불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샌더슨사의 이율은 약간 감소할 것인데, 바로 이 사실이 샌더슨사로 보아서는 소년들이 자기들의 일을 낮에는 배울 수 있다는 훌륭한 이유인 것이다.(주석 70: "오늘날처럼 반성도 많고 이유도 많은 시대에는 모든 일에 대해-심지어 가장 나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까지-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줄 모르는 사람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잘못된 것은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 잘못된 것이다"(헤겔, ?철학세계?, 제1부, ?논리학?, 베를린, 1840년, p. 249).) 그뿐 아니라 야간노동은 이제 성인들에게 전적으로 전가될 것이고 성인들은 이것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곤란한 점이 너무 많아 야간노동이 아마도 완전히 폐지될지도 모른다. 샌더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강철생산 그 자체에 관해 말한다면, 그렇게 된다고 해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샌더슨사는 강철생산 이외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다시 말해, 강철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이윤획득이 문제다. 용광로. 압연공장. 건물. 기계설비 철. 석탄 등은 자신을 단순히 강철로 전환시키는 일 이상의 어떤 일을 해내야만 한다. 그것들은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리고 당연히 12시간보다는 24시간에 더욱 많은 잉여노동을 흡수할 수 있다. 사실상 그것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일정한 수의 직공들을 일시켜야 한다고 신(神)과 법률의 이름으로 샌더슨사에 요구한다. 노동을 흡수하는 그들의 기능이 중단되자마자 그것들은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며, 따라서 샌더슨사로서는 순수한 손실로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경우 매우 비싼 기계들을 하루의 절반 동안 놀려두기 때문에 손실이 생 길 것이다. 또 우리는 현재의 제도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을 완수하기 위해 건물규모와 기 계설비를 2배로 늘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것은 지출을 2배로 증가시킬 것이다. "
다른 자본가들은 주간작업만을 하고 그리하여 그들의 건물. 기계. 설비. 원료가 야간에는 '놀고' 있는데, 어째서 이 샌더슨 회사만이 특권을 요구하고 있는가? 샌더슨은 샌더슨사의 이름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기계설비가 놀고 있는 탓으로 생기는 손실은 주간작업만 하는 공장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나 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용광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용광로의 불을 끄지 않으면 연료가 낭비될 것이고“ (현재 낭비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은 어찌하고) ”또 만약 용광로의 불을 끈다면 다시 불을 붙여 필요한 온도를 얻기까지 시간적 손실이 발생한다"(한편 심지어 8세밖에 안 되는 아동들의 수면시간의 손실은 샌더슨 형제에게는 노동시간의 이득으로 되고 있다). "그리고 용광로 그 자체도 온도의 변화로 말미암아 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용광로인 노동자들은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의 교대 에 의해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주석 71: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제85호. 별책부록 p. 17 아동들을 위한 '규칙적인 식사시간'은, 용광로에서 방사되는 일 정한 열량의 '순수한 손실' 또는 '낭비'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유리 제 조업자들의 주장에 대해 조사위원회 위원인 화이트(White)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는데, 그 의 대답은 [자본가들의 화폐지출의 '절제', '자제', '절약'과, 인간생명의 엄청난 '낭비'에 감격을 금치 못하는] 유어(Ure), 시니어(Senior)등과 독일에 있는 들의 변변치 못한 아류인 로셔 (Roscher)와 같은 사람들의 대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규칙적인 식사시간이 보장되는 결과 약간 의 양의 열(熱)이 현재의 정도 이상으로 낭비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낭비는 화폐가치로 따지더라도,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성장기에 있는 아동들이 마음놓고 식사하며 먹은 것을 소화하 기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결 과 현재 우리나라의 유리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 명력(生命力)의 낭비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45). 그런데 이것은 '진보(進步: progress)의 해'인 1865년의 일이다! 물건을 들어올리며 운반할 때의 힘의 지출은 무시하더라도, 병과 납유리를 제조하는 유리공장에서 아동들은 쉬지 않고 작업하면서 6시간 동 안에 15-20마일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은 가끔 14-15시간 계속된다! 많은 유리공장들에서 는 모스크바의 방적공장들에서와 같이 6시간교대제가 지배적으로 되어 있다. "1주일의 노동기 간중 계속해서 휴식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6시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공장에 왕복하는 시 간과 세수하고 옷을 입으며 식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시간이 공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매우 짧은 휴식시간이 남을 뿐이다. 그처럼 더운 공기 속에서 그처럼 힘든 일을 하는 아동들에 게 수면은 절대로 필요한 것인데, 아동들은 이 수면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뛰어 놀거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시간을 조금도 얻지 못한다....이 짧은 수면까지도 밤에는 아이들 자신이 지각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중단되며, 낮에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잠이 깨기 때문에 중단된다. " 화이트가 들고 있는 실례에 의하면, 어떤 소년은 36시간 동안 계속 일한 경 우도 있고, 12세 소년들이 새벽 2시까지 일한 뒤 아침 5시까지 공장에서 자고(세 시간 동안!) 또 낮일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 보고서의 초안 작성자인 트리맨히어(Tremenheere)와 터프넬 (Tufnell)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년. 소녀. 부녀자들이 주간 또는 야간의 근무시간 중에 수행하는 노동량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p. 43-44). 한편 금욕적인 유리 공업 자본가는 아마 밤늦게 포도주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영국 사람이 노예로 되는 일은 결코,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얼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면서 클럽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것이 다.)
제 5 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의
노동일의 연장을 위한 강제법
"노동일(勞動日)이란 무엇인가? 자본은 하루분의 가치(價値)를 주고 구매한 노동력을 얼마 동안 소비할 권리가 있는가? 노동일은 노동력 그 자체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넘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노동일은 하루 24시간 전체를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 노동력이 다시 봉사하기 위해 절대로 필요한 약간의 휴식시간은 뺀다고. 우선 자명한 것은 노동자는 자기의 전 생애에 걸쳐 노동력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은 자연적으로나 법률상으로나 자본의 가치증식(價値增殖)을 위해 바쳐질 노동시간(勞動時間)이라는 것이다. 교육. 정신적 발달. 사회적 기능의 수행. 사교 . 육체적 정신적 생명력의 자유로운 활동 등등을 위한 시간, 그리고 심지어 일요일의 안식시간까지도(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주석 72: 영국의 농촌 지방에서는 아직까지도 노동자가 안식일에 자기 집 앞의 정원에서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해서 금고(禁錮: imprisonment)의 처벌을 받는 일이 있다. 바로 그 노동자가 일요일에 금속공장, 제지공장 또는 유리공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그것이 비록 종교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계약위반이라는 이유로 처벌받는다. 정교도(正敎徒)들이 지배하는 의회도 안식일의 모독이 자본의 '가치증식과정'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에는 모른 척 할 것이다. 생선가게와 닭가게에서 일하는 런던의 일용노동자들 이 일요일 노동의 폐지를 요구한 진정서(1633년 8월)를 보면, 그들의 노동은 평일의 6일간은 매일 평균 15시간씩이고 일요일에는 8-10시간이라고 쓰여있다. 또한 우리가 이 진정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엑스터 홀)Exeter Hall){런던의 건물로 주로 교회선교회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改宗)시킨다고 하면서 노예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다}에 모여드는 위선적 귀족들의 까다로운 식도락(食道樂)이 '일요일 노동'을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적 쾌락의 탐구에' 그처럼 여념이 없는 이 ‘성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과도노동과 궁핍과 굶주림에서는 인내의 정신을 가지고 참음으로써 자기들이 기독교도임을 실증하고 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은 그대들(노동자들)의 위장에는 더욱 해롭다.“) 모두 자본가의 것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자본은 잉여노동(剩餘勞動)에 대한 무제한적인 맹목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즉 잉여노동에 대한 충족될 수 없는 탐욕으로 말미암아, 노동일의 도덕적인 한계뿐 아니라 순전히 육체적인 한계까지도 넘어버린다. 자본은 신체의 성장. 발육. 건전한 유지에 필요한 시간을 빼앗는다. 자본은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도둑질한다. 자본은 식사시간을 깎아내고, 가능하다면 그 식사시간까지도 생산과정에 편입시켜 [마치 보일러에 석탄을 공급하고 기계에 윤활유나 석유를 공급하듯이] 식사를 노동자에게 제공한다. 자본은 [생명력을 회복하고, 수습하고, 활력을 부여하는 데 필요한] 건전한 수면을, 기진맥진한 유기체가 소생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과 몇 시간의 무감각 상태로 감축시켜 버린다.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가 노동일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력의 가능한 최대한도의 일상적 지출[그 지출이 아무리 병적이고 강제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이 노동자의 휴식 시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삼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안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이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것은 마치 탐욕스러운 농업경영자가 토지의 비옥도를 약탈함으로써 수확량을 늘리려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고 잉여노동의 흡수인] 자본주의적 생산(資本主義的 生産)은,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노동력으로부터 그 정상적인 도덕적. 육체적 발전조건과 활동조건을 탈취함으로써, 인간노동력의 위축을 가져올 뿐 아니라 노동력 그 자체의 조기 소모와 사망을 가져온다.(주석 73: "우리는 이전의 보고서들에서 과도노동이....확실히 인간노동력을 너무 일찍 탈진(脫 盡:exhaust))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여러 공장주들의 진술을 제공했다"(?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제64호, 별책부록 p. 13).) 그것은 노동자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주어진 기간 안에서 노동자가 생산에 전념하는 시간을 연장한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의 재생산[즉, 노동자계급의 계속적인 존재]에 필요한 상품의 가치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만약 [자본이 자기증식에 대한 무제한의 충동에서 필연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노동일의 반(反)자연적 연장이 개개의 노동자의 수명을, 그리하여 그들의 노동력의 생존기간을 단축시킨다면, 소모된 노동력의 더 신속한 보충이 필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기계의 소모가 빠르면 빠를수록 기계의 가치 중 매일 재생산되어야 할 부분이 더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표준노동일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
노예소유자가 노예를 사는 것은 그가 말(馬)을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가 노예를 잃어버린다면 자본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그는 다시 노예시장에서 새로운 지출에 의해 이 자본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을 주목하라.
“조지아주의 논이나 미시시피주의 늪지는 인간의 육체에 매우 치명적인 나쁜 영향을 준다. 그 러나 (이 지역의 경작이 요구하는) 인간생명의 낭비는 버지니아주와 켄터키주의 풍부한 흑인보
관창고로부터 보충받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다. 노예를 보호하는 것이 노예소유자의 이익과 합치되는 한, 노예를 인간적으로 취급하지만, 노예무역이 실시됨에 따라 경제적 타산은 노예를 가 장 무자비하게 혹사시키는 원인으로 된다. 왜냐하면, 노예를 외국의 흑인사육장으로부터 값싸게 보충할 수 있게 되자, 노예의 수명(壽命)은 그의 생존시의 생산성(生産性)보다 덜 중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 수입국의 노예 관리(管理: managemet)의 원칙은, 노예로부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노동을 짜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적 타산이라는 것이다. 1년간 의 이윤이 농장에 투하된 총자본과 같아지는 일이 드물지 않은 열대지방의 경작에서는, 흑인의 생명은 매우 무자비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수 백년 동안 거대한 부를 낳은 서인도의 농업은 수백 만의 아프리카 인종을 삼켜버렸다. 오늘날 쿠바에서는 그 소득이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하며 그 농장주는 왕자와 다름없이 살고 있지만, 노예들은 형편없는 음식물과 극도의 쉴새없는 혹사로 해마다 상당한 수가 죽어가고 있다. "(주석 74: 케언즈(J. E. Cairnes), ?노예의 힘", pp. 110-111.)
이름은 다르지만 이것은 너{임금노동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예무역을 노동시장으로 바꾸어 읽고, 켄터키와 버지니아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농업지방과 아일랜드로, 또 아프리카를 독일로 바꾸어 읽어보라. 우리는 이미 과도노동이 어떻게 런던의 방제조공들의 수를 감소시켰는가를 보았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노동시장 은 방제조업에서 죽기를 각오한 독일인들과 기타 지원자들로 언제나 넘치고 있다. 도자기 제조업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노동자들의 수명이 가장 짧은 산업부문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자기공들이 부족한가? [현대적 도자기생산의 발명
자이고 그 자신이 보통의 노동자 출신인] 조사이아 웨지우(Josiah Wedgwood)는 1785년 하원에서 말하기를, 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체 노동자는 15,000명 내지 20,000명이라고 했다.(주석 75: 존 워드(John Ward), ?스토크-온-트렌트시?, 런던, l843년, p. 42.) 그런데 1861년에는 영국에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도시 중심지에서만도 101,302명이었다.
“면공업은 이미 90년간 존재했다....영국인의 3세대에 해당하는 이 기간에 면공업은 노동자들의 9세대를 삼켜버렸다고 장담할 수 있다. "(주석 76: 1863년 4월 27일 하원에서 한 페란드 (Ferrand)의 연설.)
물론 몇 번의 열병적 호황기에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인력의 공급이 대단히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1834년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때 공장주들은 농업지방의 '과잉인구'를 북부로 보낼 것을 구빈법위원회(救貧法委員會: The Poor Law Commissioner)에 제의했고, 그리하면 “공장주들은 그들을 흡수하고 소비해 버릴 것이다"라고 설명했던 것이다.(주석 77: “이 말은 면공장주들이 사용한 말 그대로다"(같은 연설).)
“구빈법위원회의 동의 하에 알선인(agent)들이 임명되었다....맨체스터에는 사무소가 개설되었 으며, 취업하기를 원하는 농촌인구들의 명부를 작성해 사무소로 보냈다. 공장주들은 사무소로 가 서 자기들이 구하는 사람을 선택해 들을 맨체스터로 보내도록 지시한다. 그러면 이들 인간화물 은 짐작처럼 꼬리표가 붙어 운하로 또 짐마차로 송달되었다. 중에는 걸어서 온 사람도 약간 있 었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길을 잘못 들어 반쯤 굶어 죽어가고 있는 빈사상태에서 공장지대를 헤 매었다. 이러한 제도가 하나의 정규적인 상업부문으로 발전했다. 하원은 이것을 거의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이와 같은 인신매매(人身賣買)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이 사 람들은 마치 흑인노예들이 미국의 면화재배자에게 판매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맨 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