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시물 검색
전체 529건 7 페이지
  • 제주 표선면 표선리 당캐마을 세명주할망
    제주 표선면 표선리 당캐마을 세명주할망제명 : 해신제신격 : 세명주할망제당 :일시 :제주도 설문대할망지역 : 제주시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 당캐마을명칭 : 설문대할망제명 : 해신제신격 : 거녀신인 설문대할망과 유사하다. 멀리 보이는 선박도 불러들여 파선 시키는 풍신으로 해상의 안전을 관장하고 수호하는 생업수호신인 해신이다.관련설화 : 아득한 옛날 『설문대 할망』이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거대했던지 한라산을 베게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한다.이 할머니는 빨래를 하려면 관탈섬에 놓아 발로 밟고, 손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문질러 빨았다 한다.또 다른 전설에는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디고, 또 한쪽은 서귀포시 앞바다의 지귀서멩 디디고서 소섬(牛道)를 빨래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 한다. 성산일출봉에는 높이 솟은 기암이 있는데, 이 바위는 설문대 할망이 길쌈을 할때 접시불을 켰던 등잔이라 하여 지금도 등경돌이라 부르고 있다. 이 바위는 높이 솟은 바위 위에 다시 큰 바위를 얹어 놓은 듯한 기암인데 할머니가 등잔이 얕으므로 바위 하나를 더 올려 놓은 것이라 한다.설문대 할망의 거대한 모습을 설명하는 설화는 이밖에도 많다.신격세명주할망 : 거녀신인 설문대할망과 유사하다. 멀리 보이는 선박도 불러들여 파선 시키는 풍신으로 해상의 안전을 관장하고 수호하는 생업수호신인 해신이다.신화표선면 표선리당캐(당포) ‘한모살’에 있는 <세명주할망당>은 일만 잠수 일만 어부를 차지한 해신당이다. 특히 이 당의 본풀이를 보면, 한라산의 거녀신 ‘설문대할망’ 신화와 유사하다. 다만 여신의 이름 ‘설문대’가 ‘세명주’로 바뀐 것 이외에는 신화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여무 홍두방 할머니에 의하면, 이 여신은 멀리 수평선에 보이는 선박도 불러들여 파선을 시키는 풍신이라 한다. 당에는 매달 초하루 보름에 다니며, 선박 출어할 때나 물질 나갈 때, 이곳에 와 해상의 안전을 기원한다. 따라서 당캐 <세명주할망>은 한라산에서 솟아난 산신이 해변 마을에 좌정하여 풍신으로서 해상의 안전을 관장 수호하는 생업수호신이 된 해신이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37
  •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내도리 안섬풍어제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내도리 안섬풍어제             제명 : 풍어제신격 : 마을주민들은 당신이 뱀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당에는 각각 각시, 용왕, 임경업장군이 모셔져 있음.제당 : 당집 안에는 소당, 본당, 차당이 있음.일시 : 음력 1월 1 ~ 1월 첫번째 진일(辰日)개괄안섬의 당제는 최근에 ‘풍어제’라는 명칭으로 불러지지만, 원래는 당맞는다. 서낭님을 모신다 등으로 불렀다. 마을주민들은 당신이 뱀이라고 생각하여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당제지내는 것을 진대할아버지 모신다고 한다. 무당굿과 함께 진행된다.제의내용섣달 그믐날이 되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당제회의를 하는데 이 날에는 당주를 정하고 추렴을 언제 할 것인지, 얼마씩 할 것인지 정하며 제의 날짜도 알려준다. 제의 날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부터 첫째 진일(辰日)을 잡는데 병진일(兵陣日)은 뺀다고 한다. 당주를 정할 때는 마을에서 가장 부정이 없는 집을 정해서 하는데 주로 여자가 없는 집이나 월경이 끝난 여자만 있는 집에서 한다. 이 날 정해진 당주는 돼지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며 당제를 지낼 때까지 부정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날에는 제물을 준비하거나 굿을 진행하는 주감과 잡일을 하는 화장을 함께 뽑는데 화장은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 하거나 장가가서 아이를 낳지 않은 새신랑이 한다. 총각이 화장을 하면 장가를 갈 수 있고 새신랑이 화장을 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라고 한다.추렴은 당추렴이라고도 하며 당제에 필요한 돈이나 쌀을 마을 사람들에게 걷는 것을 말한다. 추렴은 화장이 담당하며 배의 크기에 따라서 내는 정도라 달라진다. 월경을 하는 여성이 있는 집에서는 부정하다고 하여 생리가 끝 난 다음에 따로 낸다. 특별히 풍장을 치거나 하면서 돈을 걷는 것은 아니고 화장이 집집마다 들어가서 걷는다. 이렇게 걷는 돈은 선주들 같은 경우에 5000원 정도씩을 더 내며 이는 뱃고사 상을 차려주는 값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걷는 돈은 소지종이 값이라고 한다.섣달 그믐이 되면 당주댁에 인줄(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50년 정도 전에는 우물에도 금줄을 쳤었으나 현재는 우물에는 금줄을 치지 않는다. 이렇게 금줄을 치고 난 후부터는 아무도 당주 댁에 출입을 하지 못하며 정월 초하루에도 당주 댁에는 세배를 드리러 가지 못한다. 이때 당주와 주감이 누룩과 엿기름을 이용하여 제주를 만드는데 조라술이나 당술, 단술이라고 하기도 한다. 제의 날이 되면 위에 있는 맑은 술을 떠서 잔을 올리고 밑에 가라앉은 탁한 술을 걸러서 뱃고사에 올린다.제물은 당할매라고 해서 당주의 부인이 만드는데 그 준비는 화장과 주감이 한다. 제상을 차리는 것은 주감이 하는데 제물로는 소머리 3개, 백무리 떡시루, 북어, 대추, 밤, 곶감, 무나물, 두부부침, 탕, 밥, 쌀 등이 올라간다. 북어는 북쪽을 의미하기도 하고 차가운 음식이고 비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북두칠성을 의미해서 수명장수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에 제상에는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그러나 각시당은 본당이나 차당과는 달리 고기가 올라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소머리는 올리지 않는다. 그 외에 첫 출항해서 제일 처음 잡은 것과 잡은 것 중 가장 큰 것 이렇게 두 마리는 당집에 걸어두는데 이 것을 당주가 가져다가 소금에 절여서 말려두었다가 다음 해 당제 때 올린다.밥과 탕을 올릴 때는 각 당 마다 2그릇씩 올리며 이는 한 당마다 부부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밥은 당집에 가지고 올라갈 때 꼭 떡시루에 담아가지고 간다.제의진행은 본제, 장승제, 용왕제, 지신밟기의 순이다. 당산에서의 제의진행은 제물진설, 당주의 헌주배례, 선주의 배례, 무당의 대동축원, 무당의 굿치성(부정굿, 본당굿, 대동굿, 어망굿, 오방굿), 무당의 공수와 깃손받기, 선주의 배고사 순으로 이루어진다.당제를 지낼 때 하던 굿은 원래 안섬마을에서 굿을 해주던 방씨네 일가가 도맡아서 해왔다. 하지만 방씨네 일가가 다 죽게 되면서 10여년 전 부터 다른 무당으로 계속 바뀌다가 현재는 당진군 송악면 합덕리에 사는 무녀 이춘화씨가 해오고 있다. 이춘화씨는 당제 날이 잡혀서 이 마을에 들어 갈 때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예전에 한번 모르고 돼지고기를 먹고 굿하러 갔다가 장구재비는 똥통에 빠지고 자신은 평지에서 넘어져 크게 다친 뒤로는 절대로 조심한다고 하며 이 곳의 신이 보통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신격용신 : 용신은 본당에 모셔진 신이다. 뱀신이라고 생각하여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을 수호해 주는 신이다.각시신 : 소당에 모셔져 있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장군신 : 임경업장군이라고도 하나 신격은 조선시대 이후에 모셔졌다고 한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신화어느 노부부가 이 마을에 와서 처음 살게 되었다. 너무 외롭고 적적하게 나날을 살아가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다. 그때 고 신령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너희가 당을 짓고 잘 위해 주면 마을이 형성되고 하는 일이 잘 될 것이다.”라고 말하여 그 때부터 당을 짓고 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당집 안에는 3개의 당이 있다. 왼쪽부터 소당, 본당, 차당이라고 불려진다. 소당에는 각시당을 모시고 본당에는 용신, 그리고 차당에는 장군신을 모시는데 임경업 장군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임경업 장군이라는 신격은 조선시대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위패는 없고 소당 위에만 당감이 걸려 있다. 이러한 당감은 홍감, 청감, 한지, 미역인데 이것은 당제를 지낼 때 마다 매년 새 것으로 갈아주며 헌 것은 태운다. 소당 위에는 등잔이 있는데 이 등잔은 제사가 끝난 첫째 날에 밤새 켜 둔다. 소당에서 모시는 신이 가장 높은 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제를 지낼 때 소당을 먼저 올리며 소당에서 모시는 신은 배에서 모시는 배서낭신과 일치한다.제의 명칭은 최근에 ‘풍어제’라는 명칭으로 불러지지만, 원래는 당맞는다. 서낭님을 모신다 등으로 불렀다. 마을주민들은 당신이 뱀이라고 생각하여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당제지내는 것을 진대할아버지 모신다고 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20
  • 당제 참여자 - 풍물굿 연행자
    풍물굿 연행자전남 고흥 백일도 당제에서 제를 진행하고 있는 대포수전남 보성 벌교읍 대포리 헌석제에서 갯귀신에게 헌석할 끄렁치를 매고 있는 대포수전남 완도 고금면 상정리 당제에서 제를 주관하고 있는 대포수와 풍물굿 치배전남 완도 생일면 서성리 당제에서 12당산굿을 연행중인 도포수와 창부전남 완도 장좌리 당제에서 뱃굿을 치고 있는 상쇠전남 완도 장좌리 당제에서 제를 마치고 마을로 이동 중인 매구꾼과 대포수제주 북제주군 추자면 대서리 거리제에서 고기부르기를 하고 있는 대포수충남 서산 창리 영신제의 뱃기오르기 과정에서 배치기노래를 부르며 이동중인 마을 사람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37
  • 당제 참여자 - 유교식 연행자
    유교식 연행자강릉 주문진 성황제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어촌계장강원 삼척시 원덕읍 신남리 해신당 성황제에서 어촌계원들 위해 소지하는 제관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포마을 용왕제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제관전남 고흥 남양면 월정리 선정마을 별신제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제관전남 무안 청계면 태봉리 도제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제관전남 무안 현경면 월두마을 당산제를 주관하고 있는 마을이장전남 완도 약산면 당목 당제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제관전남 완도 장좌리 당제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제관…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05
  • 당제 참여자 - 불교식 연행자
    불교식 연행자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포마을 벅수제를 주관하고 있는 인근 사찰의 스님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의 용왕제를 주관하고 있는 인근 사찰 스님(비구)…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22
  • 당제 참여자 - 무속 연행자
    무속 연행자강릉 주문진 성황제와 풍어제에서 굿을 연행하는 무녀강릉 주문진 성황제와 풍어제에서 여장을 하고 거리굿을 하는 남자무당경기 강화도 곶창굿에서 굿을 연행하고 있는 무녀경주 감포 풍어제에서 별신굿을 연행하는 무녀경주 감포 풍어제에서 봉사 흉내를 내는 남자무당동해안 별신굿에서 무녀와 함께 굿을 연행하는 악사서해안 배연신굿을 연행하고 있는 무녀서해안 배연신굿을 주관하고 있는 무녀전남 여수 개도 화산마을의 당제를 주관하는 무녀전남 완도 약산 당목마을 당제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마을 무녀전북 위도 원당굿을 주관하고 있는 무녀제주 와흘 신과세제에서 굿을 연행하고있는 무당충남 창리 영신제를 주관하고 있는 마을 무녀…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385
  • 경남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 당산제
    경남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 당산제제명 : 당산제신격 : 당산제당 : 당산나무, 밥무덤일시 : 음력 1월 15일개괄당산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당산나무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제관집과 밥무덤에 황토를 뿌리며, 밥무덤에는 왼새끼줄을 둘러친다. 그리고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근신에 들어간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남변과 북변은 각각 나누어져 ‘고’를 메고 북변은 윗당산으로 가고, 남변은 아랫동산으로 가는데 가면서 편장이 앞소리를 하면 군원은 “어허술베야”라는 뒷소리를 2회 반복한다.제의내용선구 줄끗기는 경남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아랫마을을 남변이라 하고 윗마을을 북변이라 하여 서로 편을 갈라 줄끗기를 하는 세시풍속으로서 이 지방의 유일한 민속놀이다. 이 놀이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는 근거 자료가 없어 그 역사를 알 수 없으나 정월 대보름날이면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남변과 북변으로 나누어져 남변은 아래 할매당산에서, 북변은 위 할배당산에서 한 해동안 풍농과 풍어?해난사고의 방지?마을의 번영을 위하여 당산제를 각각 지내고, 줄끗기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민속적 색채를 띤 행사 말살정책을 맞아 선구 줄끗기놀이도 완전히 없어졌다가 해방 후, 본 마을에 거주하고 있던 김찬중에 의해 1988년에 재현하게 되었다.선구 줄끗기에 필요한 재료는 짚이다. 이 짚은 마을 모든 집에서 갹출하였고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짚을 거두었다. 만약 불응하는 집이 있으면 밤에 짚가래에 가서 훔쳐오기도 할 정도로 한 집도 빠짐없이 참여하는 마을 공동 행사이다. 짚이 모이게 되면 남변은 바닷가에서, 북변은 윗 당산에서 각각 새끼를 꼬고 이것을 다시 꼬아 큰 ‘고’를 만들었다. 이 ‘고’의 크기는 직경이 약 1m이며, 원줄의 길이가 2m 정도 계속되다가 조금 가늘게 40m의 4가닥 줄이 만들어진다. 특히 ‘고’를 만드는 동안에는 여자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고 그 줄을 지키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였는데, 상대편을 이기기 위하여 몰래 칼로 줄을 자르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줄을 임신부가 넘으면 출산시 엄지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새끼줄처럼 비틀어진다는 속신이 있고, 또 그러한 사실을 실제로 보았다는 노인들의 이야기도 전한다.이 줄끗기의 구성을 보면, 마을 회의에서 제관으로 초헌, 아헌, 종헌과 집사, 축관을 선정하고 편장은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깨끗한 총각이나 마을의 장정을 선정한다. 구성인원은 편장 1인을 기준하여 북변(윗마을) 주민과 인근마을인 사촌(구명 : 모래처)?임포(구명 : 깨골)?운암(구명 : 우남동)이 한편이 되고, 남변(아랫마을)은 향촌(구명 : 버든)?가천(구명 : 가내)마을이 합세하게 되는데 그 수는 한편이 약 500여명 이상이 된다. 이 놀이의 진행순서는 당산제-어불림-필승고축-고싸움-줄끗기로 되어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32
  • 전남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화방마을 당산제
    전남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화방마을 당산제          제명 : 당산제신격 : 당산, 입석(선돌, 비석거리)제당 : 입석과 당산나무일시 : 음력 1월 15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강진 군동면 화방마을 당산제제명 : 당산제내용 : 화방마을에서 지내는 보름민속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당산제이고, 그 다음이 선독이다. 실제 상을 차리고 축을 읽는곳은 선돌이지만 당산제가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특징 : 매구를 치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당산제를 지내는데, 어디 행사에 출전을 하게되면 출전 전날에 당산제를 지내고 나간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선돌이라고 하는 입석에 줄을 감고 당산제를 지내는 것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화방마을의 당산제는 줄다리기와 함께 거행된다. 최근에는 줄다리기 전승이 약화되어 선돌에 줄만 감고 있다. 본 음성자료는 선돌에 줄을 감고나서 축문을 읽는 소리이다.개괄화방마을에서 지내는 보름민속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당산제이고, 그 다음이 선독이다. 실제 상을 차리고 축을 읽는곳은 선돌이지만 당산제가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매구를 치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당산제를 지내는데, 어디 행사에 출전을 하게되면 출전 전날에 당산제를 지내고 나간다.제의내용화방마을에서는 매해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는데 다른 마을과 달리 수월하게 지낸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금줄도 치지 않고, 제관의 금기도 덜하다고 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 금줄을 치거나 특별히 금기를 지키는 것은 없다. 당산은 웃사장과 아랫사장이 있는데, 특별한 신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당산이라고 한다. 제관은 마을의 제일 어른이 맡는데, 마을의 제일 어른인 동장이 한다. 또 축관은 마을에서 학식이 있는 사람이 한다. 당산제에 드는 경비는 동제(마을기금)로 하고, 제물장만은 마을이장이나 농악계 유사가 주로 한다. 당산제에서의 상차림은 특별히 정해진 것이나 가리는 것이 있지 않고, 제물 준비하는 사람이 성의껏 준비해서 마련한다. 상차림은 돼지머리, 삼색과실(배, 사과, 곶감, 대추), 돼기고기 등을 놓는다. 그러나 촛불이나 채소나 탕같은 것은 놓지 않는다.현재 아랫사장에는 어린 은행나무 몇그루가 있는데 이것은 그 전에 있던 나무가 오래되어 죽었버려서 그 자리에 새 나무를 심은 것이다. 선돌은 마을 입구에 있는데 둘 중 큰 것이 선돌할아버지고, 작은 것이 선돌할머니다. 지금은 그곳이 마을입구가 아니지만 예전에는 선돌있는곳이 마을입구였다. 또 예전에 어른들이 선돌을 없애버리려 하기도 했으나 설쇠 윤재점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는 등 마을내에서 반대를 해서 지금까지도 선돌에 옷을 입혀드리고 있다. 2004년 당산제에서는 사장에서의 당산제를 하지 않고 바로 선돌에 옷을 입히고 제사를 드렸다.제당의 형태입석위치 : 마을입구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양편으로 각각 입석 1기씩이 있다.재질과 형태 : 두 기 모두 재질은 화강암이며 오른쪽에 위치한 입석은 높이 137cm, 폭 110cm, 두께 24cm, 둘레 280cm이며 왼쪽에 위치한 입석은 높이 120cm, 폭 90cm, 두께 23cm, 둘레 225cm이다.기능 : 석주형으로 생긴 이 입석들에는 당산제 이후 입석에 옷을 입히나, 특별한 의례적 행위가 결부 되어 있지는 않고, 다만 잡귀와 잡신을 막아내는 기능을 한다고 믿어지고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26
  • 전남 무안군 해제면 덕산리 내분마을 당산제
    전남 무안군 해제면 덕산리 내분마을 당산제                   제명 : 당산제신격 : 당산할머니제당 : 마을 뒤 당산나무일시 : 음력 1월 15일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내분마을의 당산제는 줄다리기 후 진행된다. 마을 가운데로 나 있는 도로에서 줄다리기를 한 후 그 줄을 들고 당산으로 이동한다. 들고 온 줄을 당산에 감고 제사를 지낸다. 본 음성자료는 내분마을 당산제의 축문고축소리이다.개괄내분마을의 당산제는 줄다리기와 함께 진행된다.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샘거리의 우물에서 샘거리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한다. 줄은 외줄로 만들고, 다 만들어진 줄을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 줄다리기를 마친 후 줄을 들고 마을 뒤 언덕에 있는 당산나무로 가서 줄을 감는다. 줄을 감고 나서 당산할머니의 신체인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낸다.제의내용1) 제당의 구성과 신격내분마을의 동제는 당산제로 불린다. 당산제로 통합되어 있으나 실제는 당산제와 샘거리제로 분리되어 있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에서 샘거리제를 지낸다. 당산나무는 마을 서쪽의 덕림마을과 경계지점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가 서있는 곳은 마을 뒤편에 속하고 마을 주거공간에 비해 높은 위치이다. 덕림마을과는 비교적 좁은 콘크리트 길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간에 당산나무가 서 있다. 당산나무의 신격은 당산할머니이다.2) 제의 준비당산제는 매해 정월 15일 아침에 지낸다. 당산제일이 가까워지면 마을 사람들 중 깨끗한 사람을 뽑아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당산제를 지낼 사람과 샘거리제를 지낼 사람을 별도로 선정한다. 당산제를 지낼 사람 3명과 샘거리제를 지낼 사람 3명을 선정한다. 예전에 잠시 당산제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후로는 마을회관에서도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제사를 지낼 사람 3명을 별도로 선정하기도 한다. 2006년 당산제에서는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아 제관을 별도로 선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제장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는데, 지금은 별도로 금줄을 치지 않는다.제관이 선정되면 각 초헌관에 해당하는 사람은 제물을 준비한다. 제수의 구입은 주로 무안읍이나 해제면에서 사온다.3) 제의 진행정월 15일 아침이 되면 마을 가운데 있는 샘거리에서 제사를 지낸다. 여기서 지내는 제사를 샘거리제라고 한다. 샘거리라는 명칭은 마을 가운데 유일한 공동우물이 있기 때문에 지어진 명칭이다. 공동우물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초헌관 - 아헌관 - 종헌관 순서로 재배를 하면서 제를 지낸다. 이후 줄다리기 할 줄을 만든다. 줄을 만들 짚은 본래 가가호호에서 몇 뭇씩 걷는데, 요즘은 축산업을 하는 집에서 가져온다. 줄을 가져오면 3가닥씩 9가닥으로 외줄을 만든다. 줄이 다 만들어지면 여자편과 남자편으로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줄다리기를 마친 후 줄을 들고 당산으로 이동한다. 이동 순서는 매구꾼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어깨에 줄을 매고 따른다. 당산에 도착해서 바로 줄을 감는다. 당산에 줄을 감는 것을 당산할머니 옷입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줄을 감는 방향은 반시계방향이다.당산나무에 줄을 감은 후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의 제물은 가정의 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돼지머리와 시루떡을 꼭 준비해야 한다. 제의 절차는 분향 - 강신배 - 초헌 - 아헌 - 종헌 - 고축 - 소지의 순이다. 제사를 모두 마치면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제당의 형태위치 : 마을 뒤편에 위치한다.재질과 형태 : 당산나무는 마을 서쪽의 덕림마을과 경계지점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가 서있는 곳은 마을 뒤편에 속하고 마을 주거공간에 비해 높은 위치이다.특징 : 내분마을의 동제는 당산제로 불린다. 당산제로 통합되어 있으나 실제는 당산제와 샘거리제로 분리되어 있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에서 샘거리제를 지낸다. 당산나무는 마을 서쪽의 덕림마을과 경계지점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가 서있는 곳은 마을 뒤편에 속하고 마을 주거공간에 비해 높은 위치이다. 덕림마을과는 비교적 좁은 콘크리트 길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간에 당산나무가 서 있다. 당산나무의 신격은 당산할머니이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354
  •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월두마을 당산제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월두마을 당산제              제명 : 당산제신격 :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제당 : 당산나무(쥐엄나무, 소나무)일시 : 음력 2월 1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무안군 현경면월두리 당산제와 줄감기제명 : 당산제일시 : 음력 2월 1일 오후 2시경에 지낸다.위치 : 당산할머니인 쥐엄나무는 마을 입구쪽에 위치하고, 당산할아버지인 소나무는 마을 뒤쪽 바닷가쪽에 위치한다.내용 :현재 당산제는 당산할머니에만 지내고 있다. 본 영상은 월두마을의 줄감기와 당산제에 주목한 것이다. 호남 서부지역 당제에서 줄다리기는 가장 일반적인 의례적 놀이이다.특징 :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에게 풍작과 풍어, 질병방지, 마을 무사안일을 기원한다.제작의도 : 현재 월두리의 경우 줄다리기를 생략하고 줄감기만을 진행하고 있지만, 줄감기 또한 중요한 의례적 행위의 하나로서 주목할만 하다.개괄월두는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에게 풍작과 풍어, 질병방지, 마을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음력 2월 1일 오후 2시경에 지낸다. 당산할머니인 쥐엄나무는 마을 입구쪽에 위치하고, 당산할아버지인 소나무는 마을 뒤쪽 바닷가쪽에 위치한다. 현재 당산제는 당산할머니에만 지내고 있다.제의내용당산제의 진행은 제관의 선출에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제 전 동네사람들이 모여 깨끗한 사람을 선출했으나 요즘은 마을 이장이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제물은 독지가나 아들 얻기를 바라는 집에서 새벽에 샘물을 길러 준비한다. 제물 내용은 밥, 시루, 술, 돼지머리, 어물, 생선, 나물, 과실 등이다.제를 지내기 전에 당산에 감을 줄을 만든다. 예전에는 줄다리기도 했으나 요새는 줄다리기는 하지 않고, 그냥 줄만 만들어 당산에 감는다. 줄을 걸궁을 치면서 가가호호 방문하여 걷은 짚으로 드린다. 줄이 만들어지면 큰마을과 작은마을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거나 남녀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를 억세게 했을 때는 줄이 세 번 떨어질 때까지 줄을 당겼다고 한다.줄다리기를 한 후 할머니당산에 줄을 감고 제를 지낸다. 제는 할머니당산에서 제관과 마을 주민 남녀노소가 참서하여 지낸다. 제의는 진설, 헌작, 재배, 퇴주, 음복의 순으로 진행된다. 요즘은 줄을 감고 제를 지내는데, 예전에는 줄을 감기 전에 제를 지내고, 제를 지낸 후에 줄을 감았다고 한다.당산제를 마친 후에는 마을 공동샘으로 이동해 샘굿을 치고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먹는다. 이 마을은 약간 간소화된 당산제를 매년 지내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경우 타협한다. 제에 대한 마을민의 의식은 당산할머니에게 1~2년 제를 지내지 않았다가 피해를 본 적이 있었으며 당이 지키고 있어 마을이 무사하다고 느끼고 있다.제당의 형태위치 : 할아버지당산나무는 마을 입구에, 할머니당산나무는 마을 뒤편에 위치한다. 두 당산의 거리는 2m 정도이다.재질과 형태 : 할아버지 당산은 고사되어 가고 있는 쥐엄나무이고 할머니당산(큰당산)은 높이 1.4m, 둘레 360cm로 수령이 400년 된 소나무 보호수이다.기능 :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에게 농사 · 어업풍년 · 질병방지, 마을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기능을 한다.특징 : 이 마을은 간소화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경우는 마을회의를 통해 타협한다. 祭에 대한 마을민의 의식은 당산할아버지에게 1~2 년 제를 지내지 않았다가 피해를 본 적이 있었으며 당이 지키고 있어 마을이 무사하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17
  • 전남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평금마을 당산제
    전남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평금마을 당산제                      제명 : 당산제신격 : 열두 당산제당 : 입석과 당산나무일시 : 음력 1월 15일(1992년 중단)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영광군 평금마을당산제와 줄다리기제명 : 당산제내용 : 평금마을은 1992년까지 매우 엄숙한 마을 행사로 당산제를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에 사람이 없어 1992년부터는 당산제를 폐지했다고 한다. 현재는 당산제를 진행하지 않고 있으나 2005년 11월 1일 영광농악보존회와 연계해 재현한 바 있다.특징 : 당산은 12당산을 모시고 있고, 그 신체는 당산나무와 입석이다. 당산제를 지냈을 때는 줄다리기도 억세게 했고, 농악도 유명했다고 한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2005년 재현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평금마을의 당산제는 12당산 곳곳에서 지낸다. 그러나 현재는 당산제가 중단된 상태이고, 본 음성자료는 <영광 마을굿 축제>의 일환으로 재현된 자료이다.개괄평금마을은 1992년까지 매우 엄숙한 마을 행사로 당산제를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에 사람이 없어 1992년부터는 당산제를 폐지했다고 한다. 현재는 당산제를 진행하지 않고 있으나 2005년 11월 1일 영광농악보존회와 연계해 재현한 바 있다. 당산은 12당산을 모시고 있고, 그 신체는 당산나무와 입석이다. 당산제를 지냈을 때는 줄다리기도 억세게 했고, 농악도 유명했다고 한다.제의내용마을의 네 곳에 입석이 있다. 그리고 마을 뒤쪽 논 가운데 당산나무(당산할아버지)가 있고 마을 중앙에 당산나무(당산할머니)가 있다. 본디의 당산제는 12당산을 돌아다니면서 곳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 줄다리기 할 줄을 만들었다. 줄을 만들 짚은 집집마다 몇 뭇씩 걷어서 내고, 마을 청년들이 모여 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줄을 바닥에 놓고 매구꾼들이 줄굿을 친 다음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오방돌기를 했다. 오방돌기를 마친 후 줄다리기를 하고, 할머니당산에 줄을 감았다.2005년 11월 1일 재현된 당산제에서는 문굿, 당산제, 당산굿, 탈춤시연, 줄굿, 오방돌기, 줄다리기, 줄감기, 샘굿의 순으로 진행됐다.신화조선조 중엽에 이감관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재산이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 그는 자식이 없으므로 외로운 생활을 지냈으나 마음시가 착하고 도량이 넓어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처지였다.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보면 자시 일처럼 돌보아 주었고, 흉년이 들면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루는 마을 사람을 모아 놓고 “우리가 이렇게 모여 사는 것도 서로의 인연이 맺어진 것이니,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을이 잘 살고 서로 화합하여 우리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재단을 만들어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태평선대를 기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니 생각해보니 그럴싸한 일이라 생각되어 “좋은대로 하십시다” 하고 호응하였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제단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하고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이감관은 “우리 마을을 수호하는 신의 재단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 자식은 없으나 이 마을을 위해서 평소 생각한 바 있습니다. 우리 마을이 평지에 있고 들이 좋으니 후손들이 오래오래 평안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거북이형의 제단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나에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해 보니 이 감관이 본래 남다른 데가 잇고 솔선해서 만든다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감관은 이내 고산 아래에서 자라모양의 바위를 옮겨 제단을 만들고 매년 3월 그믐에 마을 공동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로부터 수년이 지나 마을은 재앙이 없어지고 차츰 부자 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서로 돕고 협조하는 기풍이 일어나 인심 좋은 마을로 변하였다. 어느덧 이감관은 늙어 자시에 들게 되었는데, 하루는 마을사람들을 불러놓고 유언하기를 “내 나이 늘고 자식이 없어 나의 재산을 전할 곳이 없으니, 모든 재산을 평금마을의 재산으로 하여 주시오”하고 운명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하여 장례를 마을 공동으로 후히 치르고 의논한 끝에 제사는 마을제인 3월 말일로 정하고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주기로 하였다. 지금도 평금마을에는 매년 3월 말일에 동제와 같이 이감관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영광의 노래와 글모음』 전설 편, 영광향토사연구회, 1986, 65~266쪽.제당의 형태입석(당산독)위치 : 마을의 4곳에 입석이 각각 한 基씩 위치하고 있다.재질과 형태 : 마을 입구 길 옆에 있는 입석은 높이가 340cm, 폭 50cm, 두께 28cm, 둘레 170cm의 四角石柱로 보기 드문 대형의 입석이다. 돌은 화강암인데 자연석 그대로가 아니라 손질을 하여 사각석주로 만든 형태이다. 이 입석이 있는 곳을 마을에서는 “장타리”라고 부르고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 장이 섰기 때문에 그런 지명을 얻은 것이라 한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마을 뒤편 논두렁에 있는 입석은 주변에 돌을 쌓아 석대를 하였다. 높이는 197cm, 폭 48cm, 두께 40cm, 둘레 150cm의 사각석주형이다. 이 입석 역시 손질을 하여 만든 흔적이 보이며 마을에서는 당산이라고 부른다.기능 : 입석을 이 마을에서는 대개 “당산독”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두가 堂山神으로 모셔졌기 때문이다. 마을의 4곳에 세워져 四方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며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농을 기원한다.특징 : 1992년부터는 마을에서 의견을 모아 당산제를 폐지했으나, 그 전까지만해도 영광군의 대표적인 당산제의 하나로 꼽혔고, 농악 역시 이름이 있었다. 이 마을은 본디 열두당산이 있어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당산제를 모셔 왔고, 그 중의 4곳이 바로 이들 입석이 있는 곳이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385
  • 전남 고흥군 남양면 월정리 선정마을 별신제
    전남 고흥군 남양면 월정리 선정마을 별신제                     제명 : 별신제 외에 당산제,신격 :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마을공로자제당 : 마을 바닷가 제단일시 : 음력 1월 15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고흥군 남양면선정마을 별신제제명 : 별신제, 당산제, '제만 모신다'위치 : 마을 바닷가 제단내용 : 제당은 별신제를 지내는 원당산과 12당산으로 구성된다. 원당산은 마을 앞 바닷가를 둘러싸고 있는 석재(방풍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仙亭別神祭壇’상석이다. 원당산 외에 열두당산이 있다. 현재는 열두당산이 모두 남아있지 않고 아홉 군데에만 남아있다.기능 : 열두당산굿이 별신제와 더불어 제의식을 진행하는 일환이 되어 있고, 대상에 따라 연행의 층위가 달라진다.특징 : 열두당산에 대한 구체적 신격은 없으나 당산할아버지의 자손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을을 동심원으로 해서 곳곳에 당산이 있고, 구체적인 신체가 있는 곳도 있으며 신체가 없는 곳도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첫 번째 당산에서는 들당산굿을 치고, 마지막 아홉 번째 당산에서는 날당산굿을 치는 것이다. 또한 들당산굿과 날당산굿을 포함한 4군데 당산에는 나머지 5군데의 당산굿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의 당산굿을 연행한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풍물굿과 함께 연행되는 풍물형 당제의 특징과 재액을 바다에 띄워보내는 특징을 주목하여 제작하였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선정마을의 별신제는 매해 음력 정월 14일에 거행된다. 별신제 기간에 12당산을 돌면서 당산굿을 치고, 마지막에 별신제단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본 음성자료는 별신제를 마치고 소지를 올리면서 하는 마을 사람들의 소원비는 소리이다개괄선정마을 별신제는 별신제 외에 당산제, ‘제만 모신다’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제당은 별신제를 지내는 원당산과 12당산으로 구성된다. 원당산은 마을 앞 바닷가를 둘러싸고 있는 석재(방풍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仙亭別神祭壇’ 상석이다. 원당산 외에 열두당산이 있다. 현재는 열두당산이 모두 남아있지 않고, 아홉 군데에만 남아있다. 열두당산에 대한 구체적 신격은 없으나 당산할아버지의 자손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을을 동심원으로 해서 곳곳에 당산이 있고, 구체적인 신체가 있는 곳도 있으며 신체가 없는 곳도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첫 번째 당산에서는 들당산굿을 치고, 마지막 아홉 번째 당산에서는 날당산굿을 치는 것이다. 또한 들당산굿과 날당산굿을 포함한 4군데 당산에는 나머지 5군데의 당산굿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의 당산굿을 연행한다.제의내용별신제의 준비는 정월 12일 마을회의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을회의에서는 제관과 집사, 제비, 매구 칠 사람 등을 선정한다. 제관은 삼헌관과 집사로 구성된다. 삼헌관은 당주와 축관, 헌관으로 구성되고, 집사는 학문과 예법에 밝은 두 사람으로 구성된다. 삼헌관은 해마다 새로 선정하기 때문에 생기복덕을 가려서 뽑고, 집사는 제의 절차를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고정적으로 선출된다.제관 중에서 특히 삼헌관은 생기복덕에 맞아야 하고, 가정에 상이나 출산이 없어야하기 때문에 선출하는 과정이 까다롭다. 또 마을에 젊은 사람이 많지 않고, 귀찮아서 잘 안하려고 하기 때문에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제관으로 선출된 후에는 의무적으로 제를 진행해야 한다.제관이 선출되면 이장과 제관은 제장을 청소하고 마을 곳곳에 금줄을 치고, 엄토(황토)를 놓는다. 금줄은 마을 입구와 삼헌관의 집, 원당산과 윗당산 등에 설치하고, 엄토는 금줄을 친 곳과 12당산에 떠 놓는다. 이렇게 금줄과 엄토를 놓고 나서 삼헌관은 3일동안 몸가짐을 조심하고 정성을 들인다. 정성을 들이는 것은 ‘기우’라고 한다. 기우를 들이는 동안 삼헌관은 부인과의 잠자리를 피하기 위해 각방을 쓰고, 매일 목욕을 한다. 예전에는 기우를 들이는 동안 삼헌관이 함께 모여서 생활을 하고, 마을 뒷산에 있는 당샘에서 매일 아침 목욕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각자의 집에서 기우를 하고, 목욕도 집에서 하고 있다. 소변을 볼 경우 머리를 감고 손을 씻고, 또 대변을 볼 경우 속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한다. 이 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은 금줄이 쳐진 제장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부정한 사람은 제관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제비는 마을자금으로 충당한다. 예전에는 제답이 있어서 그 소출로 제비를 마련했으나 지금은 마을자금과 마당밟이의 소득으로 충당한다. 마을자금으로는 이동조합을 결성해 마련된 자금과 마을 공동양식장의 수익금을 제비로 사용한다. 마당밟이로 인한 수익을 제비로 사용하게 된 것은 2년 전부터이다. 이전에는 별신제를 지내도 젊은 층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2년 전 청년회에서 마을 단합을 위해 매구를 연습하고 별신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마당밟이 수익이 늘어나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마당밟이가 활성화되면서 그 수익금을 제비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제물은 이장이 보통 1~2일 전에 인근 동강면 5일장이나 벌교읍 장에서 장만해 온다. 두 곳 중 어떤 곳에서 사와도 무방하지만, 벌교읍의 장이 더 크고 매일 서기 때문에 주로 벌교읍에서 사온다. 올 해는 14일 아침에 벌교읍에 가서 사왔다. 제물을 구입할 때는 흥정을 하지 않고 값을 지불한다. 제물은 제상에 올라가는 소고기와 숭어, 나물 등을 사온다. 예전에는 소머리를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소머리를 샀으나 지금은 소고기 한 근으로 대체했다. 물고기로는 참숭어를 올리는데, 여의치 않을 경우 양태나 민어를 올린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제물로 쓰지 않는다.제물의 장만은 지금까지 당주집에서 해왔다. 그러나 올 해는 당주집의 소가 새끼를 낳아서 음식장만 장소를 마을회관으로 옮겼다. 제물을 만드는 사람도 지금까지는 당주 부인이 일임했으나, 2004년부터는 마을 부녀회에서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올 해는 마을회관 한 쪽 구석에 금줄을 쳐놓고, 마을 부녀회원들이 음식을 장만했다.당제의 금기기간인 12일부터 15일까지 마을사람들도 여러 가지 금기를 지켜야 한다. 특히 애기를 낳아서는 안 된다. 만약 산달이 겹칠 경우 산모가 타 마을로 이동해서 애를 낳아야 한다. 샘을 상수도로 바꾸기 전에는 신성기간동안 마을 사람들이 당샘의 물을 써서는 안 된다.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금기로는 부정한 사람의 경우 제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제물을 별신제단으로 옮기기 전에 집안 보름차례를 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다. 또한 외부사람이나 부정한 사람이 제관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자도 삼헌관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11
  •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당제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당제                제명 : 헌석제(갯귀신제)신격 :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갯귀신 또는 용왕제당 : 상당(해변가 당집), 하당(상당 앞의 갯벌)일시 : 음력 1월 12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보성군 벌교읍 당제와 헌석제명 : 당제일시 : 음력 1월 12일내용 : 대포리의 당제는 갯귀신제라는 명칭으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 다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력 1월 12일 새벽에 제관들만 참석한 상당제를 지내고, 낮에 12당산굿을 친 다음 저녁에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제를 지낸 후 헌석을 하는데, 이때 헌석 끄렁치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특징 : 본 영상은 벌교 대포리의 당제 중 12당산굿과 헌석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당집지역 : 전남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제명 : 헌석제(갯귀신제)제당 : 상당, 하당위치 : 해변가에 위치한 당집은 上堂이고, 상당 앞의 갯벌에 下堂이 위치한다.좌정된 신격 :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갯귀신 또는 용왕특징 : 대포리의 당제는 갯귀신제라는 명칭으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 다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력 1월 12일 새벽에 제관들만 참석한 상당제를 지내고, 낮에 12당산굿을 친 다음 저녁에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제를 지낸 후 헌석을 하는데, 이때 헌석 끄렁치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제의 소멸과 변천 : 대포리의 당제는 헌석제 또는 당제, 갯귀신제,‘제만모신다’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제일은 보통 택일해서 정하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음력 1월 12일로 고정해서 지낸다. 제관선정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당주, 헌관, 축관 등을 뽑게 되는데 이들은 반드시 생기복덕을 맞추고 또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 사람으로 한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벌교 대포리의 당제는 현재까지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다. 특히 마을의 재담꾼들이 많아 당제를 더욱 흥겹게 한다. 당제 기간에 마당밟이를 하는데, 중간 휴식시간에 마당에서 예전 약장사나 협률사의 흉내를 낸다. 이를 우스매소리라고 한다.개괄대포리의 당제는 갯귀신제라는 명칭으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 다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력 1월 12일 새벽에 제관들만 참석한 상당제를 지내고, 낮에 12당산굿을 친 다음 저녁에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제를 지낸 후 헌석을 하는데, 이때 헌석 끄렁치를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제의내용대포리의 당제는 헌석제 또는 당제, 갯귀신제,‘제만모신다’등의 명칭으로 불린다.제일은 보통 택일해서 정하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음력 1월 12일로 고정해서 지낸다. 제관선정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당주, 헌관, 축관 등을 뽑게 되는데 이들은 반드시 생기복덕을 맞추고 또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 사람으로 한다.당제의 구체적 준비는 3일 전부터 시작된다. 당주 부부는 3일 기우(정성과 근신)에 들어가고 마을에서는 대청소를 한다. 이때 대청소를 할 뿐만 아니라 청소가 끝나는대로 당샘을 청소하고 마을 입구와 당산, 당주집 등에 금줄을 치며, 황토를 깐다.당제는 제일 하루전 12당산굿을 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실제 12개의 당산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마을 곳곳의 당산이라고 정해진 지역에서 당산굿을 친다. 이후 저녁 무렵에 마을회관에서 굿을 치다가 11시경이 되면 각자 집으로 들어간다.새벽 1시경이 되면 축관, 헌관이 당주집에 들러서 당주 부부와 행동을 같이 한다. 이들 4명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제상을 들고 당집을 향한다. 이때 길에서 사람이나 개를 만나면 매우 불길하며, 제관의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된다. 제상은 당집 안에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상을 차리고 울타리 밖에 두 곳이 있는데, 상에 올렸던 메와 제찬 등을 김에 나누어 싸서 그곳에 넣는다. 그리고 또 한쪽켠에 짚을 깔고 여러 가지 제수를 섞어 짚 위에 부어둔다. 이렇게 하고나면 상당의 제사는 모두 끝나며 이제 다시 상을 들고 당주집으로 돌아온다.날이 새면 아침부터 매구꾼들이 모여서 다시 당산을 돌아다니며 당산굿을 친다. 이날 그동안 돌지 못했던 집의 마당밟이를 진행한다. 당산굿을 진행하는 중간에 상당을 한 번 들르는데, 이때 도포수와 창부들이 상당을 향해 절을 한다. 절을 하면서 “각항치배 문안이요~”라고 외치면 뒤에있던 매구꾼들도 일제히 절을 한다. 이후 저녁이 되면 매구꾼들이 당주집으로 들어간다. 모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상쇠와 도포수, 포수만 들어간다. 당주집에서 당주, 헌관, 축관, 당주의 부인이 각기 상을 하나씩 들고 나온다. 이 상은 하당제를 지내기 위한 것으로 상당 앞의 당마당에 임시로 차려진 굿청으로 옮겨진다. 제사의 진행은 상당제와 같다.하당에서의 제사가 끝나면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가 모여 당마당에 피워진 장작불을 돌면서 판굿을 친다. 이후 밤이 깊어지면 도포수가 헌석 끄렁치를 매고 갯벌을 향해 걸어간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길을 비추고, 창부들이 도포수의 허리띠를 잡고 따라간다. 그 뒤로는 매구꾼들이 따른다. 창부들이 도포수의 허리띠를 잡고 따르는 것은 갯귀신이 도포수를 끌고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헌석 장소에는 도포수와 창부들만 따르고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횃불을 들고 구경한다. 헌석의 대상에 대해서는 갯귀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도깨비라고 하기도 한다. 매구꾼들이 뒤에서 신명나게 굿을 치는 동안 도포수와 창부들은 헌석 끄렁치를 던지는 시늉을 계속 하다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끄렁치를 던진다. 헌석 끄렁치를 던진 후 마을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절을 하고, 이후 마을로 돌아온다. 이렇게 던진 끄렁치가 마을로 돌아오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24
  •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당제와 죽마제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당제와 죽마제 제명 : 당제, 죽마제신격 : 상당(당할머니,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 馬神, 天神, 地神), 하당(장승)제당 : 상당(舊 기와집 형태의 당집이 있었음), 하당(장승)일시 : 음력 1월 15일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장승고란리 장승은 건립동기와 장승을 세우게 된 유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최덕원 교수는 “堂神이 영검이 많아 이 기를 죽이기 위해서”, “부녀자들이 이바지를 가지고 오면서 堂神에게 바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집에 오자마자 큰 병이 들었으며, 堂을 향해 소변만 보아도 性器가 부어 고생을 하므로 장승을 세워 화를 면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고란리 장승의 관련 의례로 마을 공동 제사인 당제가 있다. 현재는 당제가 단절되었지만 과거에는 상당제와 하당제로 나뉘어 성대하게 지내던 제사였다. 하당제의 신체가 석장승으로 제의 후에 일종의 굿놀이인 죽마제를 지냈는데, 이 제의는 도초면 일대에 널리 알려져 인근 주민들이 구경하러 올 정도였던 것으로 전한다개괄고란리 상당에는 당할머니와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과 馬神을 모시며 그 위에 天神 地神을 모셨다. 옛날에는 초상화를 그려 신위를 모셨다. 또한 당굿놀이의 마신인 죽마와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다.제의내용고란리는 148가구에 77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인 수항리에서 5km거리에 있는 부락이다. 50년 전에는 邑洞으로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어 도초도의 행정중심지였다. 옛날에 마을에 난초가 많이 있어 고란리라 이름 지었다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 전에 지나가는 道僧이 촌전에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부락이 번성하리라 하여 신당을 세웠다고 한다.20년 전까지만 해도 당집이 있었고 神位와 堂神의 초상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당 마당과 당 나무가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개천을 건너 다리목에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고 100m촌전에 1,600여평의 당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에 300여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다. 이 당목의 높이는 25m, 둘레 3m로 노송촌과 더불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0년 전만 하여도 고란리의 당굿놀이는 도초도의 祝祭로 24개 리는 물론 인근 섬에서도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고란리 상당에는 당할머니와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과 馬神을 모시며 그 위에 天神 地神을 모셨다. 옛날에는 초상화를 그려 신위를 모셨다. 또한 당굿놀이의 마신인 죽마와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다.馬神은 대나무로 말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꼬리 부분에 붙이고 그 위에 깔아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만들고 꼬리도 대잎으로 만들어 붙인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다 매어 둔다.상당의 당신은 영검이 많아 이 氣를 죽이기 위해서 1938년에 돌장승을 만들어 당을 마주 보게 세웠다고 한다. 장승의 높이는 3m, 가슴둘레 1.9m, 귀의 길이 36cm, 입 23cm나 되는 대형 하당신인 당할아버지이다. 부녀자들이 이바지를 가지고 오면서 당신에게 바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집에 오자마자 큰 병이 들었으며, 당을 향해 소피만 보아도 性器가 부어 고생을 하므로 장승을 세워 화를 면하게 하였다. 하당신은 안좌면 자라도에서 모셔왔다 한다.신격마신 : 대나무로 말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꼬리 부분에 붙이고 그 위에 깔아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만들고 꼬리도 대잎으로 만들어 붙인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다 매어 둔다.마을의 재액을 막아주고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다.신화죽마제에서는 마장수와 제주가 연극을 하듯이 대화를 나눈 뒤 마장수가 죽마를 타고 달리면 농악대가 그 뒤를 따르고 동네 사람들은 양쪽으로 늘어서서 죽마의 머리와 주둥이를 힘차게 때린다. 죽마의 주둥이가 확 터지면 그 해 농사가 잘된다고 생각한다.제당의 형태위치 : 고란리는 면소재지인 수항리에서 5Km 거리에 있는 부락으로 50년 전에는 읍동으로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어 도초도의 행정중심지였다. 마을에서 개천을 건너 다리목에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고 100m 촌전에 1600여평의 당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에 300여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다.재질과 형태 : 300여년이 넘은 팽나무는 높이는 25m, 둘레 3m로 노송촌과 더불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기능 : 고란리 당제와 죽마제는 지역 공동체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축제의 공간이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고란리의 당굿놀이는 도초도의 祝祭로 24개 里는 물론 인근 섬에서도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었다.특징 : 고란리 당제의 특징은 죽마놀이에 있다. 이는 연극적 성격이 강한 굿놀이다. 상당에서 모셨던 馬神의 신체인 죽마는 대나무로 말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꼬리 부분에 붙이고 그 위에 깔아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만들고 꼬리 대잎으로 만들어 붙인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다 매어 둔다. 죽마제의 진행은 馬將帥, 마부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제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주민들은 죽마를 매질하고 쫓는 역할을 한다.제의 소멸과 변천 : 현재 당제와 죽마제는 해방 후 중단된 상태이고, 당나무와 장승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372
  •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진리 당제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진리 당제  제명 : 당제와 용왕제신격 : 상당(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쥐당(쥐신), 하당(용왕)제당 : 상당(마을 뒤 언덕에 기와집 형태의 당집), 쥐당(상당 옆 나무), 하당(바닷가)일시 : 음력 1월 2~3일개괄우이도의 진리 당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3일까지 정성을 들여 지낸다.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 음력 섣달 그믐에 상등이 있는 당등으로 올라가서 3일간 정성을 들여 제를 지내고 정월 초삼일에 내려와서 용왕제를 지낸다. 정월 2일에 상당과 쥐당에서 제를 지내고 3일에 내려와 바닷가 모래사장 장굴이라는 곳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다.제의내용1896년 지도군 흑산면에 편입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진리, 성촌. 비두, 저두, 소우이도를 합하여 무안군 흑산면에 편입되었다. 1962년 11월 21일 법령 제 117호에 의하여 무안군 도초면에 편입되었다.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의 분군으로 신안군 도초면에 편입되었다. 1608년 경주 김씨 김옥승이 최초로 이주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형이 소(牛) 귀 모양이라 하여 소구섬, 소구 또는 우개도라 부르다가 이후 한자어로 표기시 우이도라 개칭하였다. 우이도의 진리는 흑산도 진리의 명칭을 따서 붙여진 지명이다.우이도의 진리 당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3일까지 정성을 들여 지낸다.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 음력 섣달 그믐에 상등이 있는 당등으로 올라가서 3일간 정성을 들여 제를 지내고 정월 초삼일에 내려와서 용왕제를 지낸다. 정월 2일에 상당과 쥐당에서 제를 지내고 3일에 내려와 바닷가 모래사장 장굴이라는 곳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다.진리의 제당은 3곳이 있는데 마을 위쪽에 있는 당등에 상당과 하당 두 채의 당집이 있다. 쥐를 없애달라는 제사를 지내는 쥐당은 큰 고목나무 뒤에 있는 절벽바위 밑에 있고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당굿을 차려서 용왕제를 지내는데 이 곳을 ‘하당’이라고 부르고 장굴이라고도 부른다. 당등에 있는 하당은 제관이 머무는 곳이고, 바닷가에 있는 하당은 용왕제를 지내는 임시제단이다.당등의 상당과 하당은 각각 기와지붕으로 된 한 칸짜리 집이다. 상당에서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를 함께 모시고 제를 지내며 하당에서는 당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음식을 장만한다. 당제를 지내는 시기가 추운 한겨울이기 때문에 당등에 있는 하당에서 3일 동안 지내기가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당주와 차주가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불을 피우게 되는데, 한 60년 전에 부주의로 당에 불이 붙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하당에 온돌을 놓게 되었다. 당제를 지내면서 따뜻한 방에서 편히 잠을 자야지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낼 수 있지 추우면 정성이 들어가겠느냐는 중론이 모아졌기 때문이다.당등에 있는 상당에서는 산신령 내외 두 분을 모시는데 전에는 상당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림이 모셔져 있었다. 두 그림은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할아버지는 관모를 쓰고 있는 그림이었다. 상당에는 또 두 분을 위한 옷도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괴짝에 넣어서 상당 안에 보관하는데 당제를 지낼 때는 옷을 꺼내서 걸어두었다. 모두 흰색 한복이었는데 할아버지 옷은 두루마기가 포함된 한복이었고 할머니 옷은 치마, 저고리였다. 속옷까지 갖춰진 옷이었다.당등에는 쥐당도 있다. 들에 쥐가 많아 극성을 부렸는데 쥐를 잘 기르면 오히려 쥐가 없어진다는 믿음에서 당을 마련하여 정성을 다해서 ‘쥐를 없애달라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쥐당제는 고목나무 밑에 있는 큰 바위 아래를 평평하게 정리하고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낸다.신격당산할아버지 : 산신령이 내외로 예전에 화상에는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할아버지 모습으로 관모를 쓰고 있다. 괴짝 안에 흰색 두루마기가 포함된 한복이 신체로 있다.당산할머니 : 산신령 내외분 중 할머니로 보통 사람의 어굴을 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화상이다. 괴짝 안에 흰색 한복이 치마, 저고리 속옷까지 있는 한복이 신체라고 할 수 있다.쥐신 : 구체적인 형상은 알 수 없고 들에 하도 쥐가 많아 모시게된 신이다.용왕 : 구체적인 형상은 알 수 없다.신화상당에서는 산신령 내외 두 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당등에는 쥐당이 있는데 들에 쥐가 많아 극성을 부려 쥐를 잘 기르면 오히려 쥐가 없어진다는 믿음에서 당을 마련하여 정성을 다해서 ‘쥐를 없애달라는 제사’를 지냈다.끝드레에는 ‘애끼래네’라고 불리는 굴이 있고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는 한 여인이 아이를 업고 젓갈이 든 동이를 머리에 이고 바위를 바쁘게 건너고 있는데 멀리서 배가 오고 있어 서둘러 건너던 그녀는 그만 바다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흐린 날에는 ‘애기 받아라 둥둥 젖동을 받아라 둥둥’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제당의 형태위치 : 진리의 제당은 3곳이 있는데 마을 위쪽에 있는 당등에 상당과 하당 두 채의 당집이 있다. 쥐를 없애달라는 제사를 지내는 쥐당은 큰 고목나무 뒤에 있는 절벽바위 밑에 있고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당굿을 차려서 용왕제를 지내는데 이 곳을 ‘하당’이라고 부르고 장굴이라고도 부른다. 당등에 있는 하당은 제관이 머무는 곳이고, 바닷가에 있는 하당은 용왕제를 지내는 임시제단이다.형태 : 당등의 상당과 하당은 각각 기와지붕으로 된 한 칸짜리 집이다. 상당에서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를 함께 모시고 제를 지내며 하당에서는 당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음식을 장만한다. 당등에는 쥐당도 있다. 들에 쥐가 많아 극성을 부렸는데 쥐를 잘 기르면 오히려 쥐가 없어진다는 믿음에서 당을 마련하여 정성을 다해서 ‘쥐를 없애달라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쥐당제는 고목나무 밑에 있는 큰 바위 아래를 평평하게 정리하고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낸다.좌정된 신격 : 당등에 있는 상당에서는 산신령 내외 두 분을 모시는데 전에는 상당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림이 모셔져 있었다. 두 그림은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할아버지는 관모를 쓰고 있는 그림이었다. 상당에는 또 두 분을 위한 옷도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괴짝에 넣어서 상당 안에 보관하는데 당제를 지낼 때는 옷을 꺼내서 걸어두었다. 모두 흰색 한복이었는데 할아버지 옷은 두루마기가 포함된 한복이었고 할머니 옷은 치마, 저고리였다. 속옷까지 갖춰진 옷이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24

회원로그인

Copyright © 2001-2016 ITNAN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