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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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우음도 당제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우음도 당제        제명 : 당제신격 :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용왕님, 김부대왕님,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 홍씨부인, 마부제당 : 본당, 각시당, 군웅당일시 : 음력 2월 중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2리우음도 당집 내 마부지역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2리 우음도제명 : 우음도에서는 제의를 지내는 것을 ‘당굿한다’ 또는 ‘도당할아버지 모신다’라고 한다.제당 : 우음도의 제당은 크게 본당, 군웅당, 각시당(나락부리당 ․ 왜갈당)으로 나누어 지는데 이 중에서 현재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본당이다.위치1) 본당 - 마을 뒤편 섬 정상의 숲 속에 위치하며 이 곳 사람들은 소당이라 부른다.2) 군웅당 - 선착장 왼쪽의 갯가에 바위가 쌓여진 곳이 군웅당의 터이다.3) 각시당 - 고정2리에서 우음도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10시 방향 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름 100m 내외의 작고 큰 흰색바위가 널려진 형태로 밀물 때에는 보이지 않으며 썰물 때만 갯벌 한복판 바닷가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낸다.형태1) 본당 - 와가로 크기는 약 3평정도 된다. 길이는 가로 4.5m, 세로 2m로 시멘트벽 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독채이다. 당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문으로 당집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측에 있으며, 우측으로는 창문이 있다.2) 군웅당 -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데 선착장 왼쪽의 갯가에 당목이 서 있고 바 위가 쌓여진 곳이 군웅당의 터이다.3) 각시당 - 지름 100m 내외의 작고 큰 흰색바위가 널려 있는 형태.좌정된 신격 : 할아버지 1명과 부인 2명, 마부 2명, 시녀 1명 등 6명의 탱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용왕님, 김부대왕님,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 홍씨부인, 마부’라고 쓰여진 팻말이 걸려 있으며, 탱화는 도당할아버지(임장군), 도당할머니,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의 탱화는 걸려 있으며 나머지는 팻말만 있다.특징 : 우음도의 당은 분화의 양상을 뚜렷히 보이고 있는데 경기도 안산시 성곡리의 안산당(안씨부인 ․ 홍씨부인을 모시는 당)이 형님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우음도의 대안이 안산이고 생활권도 연결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섬의 당 자체도 어머니 ․ 딸 ․ 사위 등으로 분화가 이루어져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현재 ‘생명 희망 당제’라는 이름으로 ‘우음도 생태문화학교’ 주최로 전승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간의 화합 속에서 옛날의 공동체적인 마을의 분위기를 다시 회복하고자 장승을 세우고 솟대를 세워 전승하고 있다. 이는 기존 당제의 역할이 마을의 환경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전승체계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개괄우음도에서 제의를 지내는 것을 ‘당굿한다’라고 하거나 ‘도당할아버지 모신다’라고 한다. 제의는 음력 2월초에 모두 모여 당주를 뽑아 비용과 제의 지낼 준비를 한다. 당주는 제의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예전에는 제비 마련하는 것을 출금이라고 하였는데 당주가 제물음식을 마을주민들에게 각각 준비하라고 하여 제의를 지냈으나 지금은 ‘우음도 생계대책위원회’에서 주관하여 준비한다. 제의를 지내는 날은 3년에 한번 만신들이 날을 받아서 지낸다. 원래는 음력 2월 안으로 지내야 하며, 2004년에는 양력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지냈다.제의내용우음도의 제당은 크게 본당, 각시당, 군웅당으로 나누어 진다. 이중에서 현재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본당이다. 본당은 마을 당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크기는 약 3평정도 된다. 길이는 가로 4.5m, 세로 2m로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독채 이다. 당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문으로 당집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측에 있으며, 우측으로는 창문이 있다. 당집 주위에는 군부대가 있었던 막사가 있으며 지금은 그곳에서 흑염소를 기르고 있다.본당에는 원래 할아버지 1명과 부인 2명 부인은 홍씨부인이 첫째 부인이고 안씨부인이 둘째부인이다., 마부 2명, 시녀 1명 등 6명의 탱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용왕님, 김부대왕님,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 홍씨부인, 마부’라고 쓰여진 팻말이 걸려 있으며, 탱화는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의 탱화는 걸려 있으며 나머지는 팻말만 있다.각시당은 우음도 사람들이 나락부리당, 왜갈당이라고 부르는데 송산면 고정2리에서 우음도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10시 방향 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도상에 명시되지 않은 지름 100m 내외의 작고 큰 흰색바위가 널려진 형태로 간조에는 갯벌 속에 드러나며 만조에는 대부분 지상부가 바닷물에 잠기던 바위이다.군웅당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데 위치는 마을 뒤쪽 해안에 배가 들어오는 선착장에 보면 당목이 서있으며 그 옆이 군웅당의 터이다.신격임장군 : 갈색 말을 쥐고 있는 벙거지를 쓴 장군이다. 화살통을 매고 있다. 임장군은 도당할아버지라고도 부르며 주신이다.안씨부인 : 분홍저고리에 족두리 쓰고 원삼에 초록치마를 입은 여자이다. 소당할머니라고도 부른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김부대왕님 : 벙거지를 쓰고 말의 고삐를 잡고 짚신을 신었다. 소당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말구중 : 패랭이만 쓰고 있는 마부시종이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용신 : 긴 천에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대신할머니 : 왼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꽃 한 송이가 담겨있다.신화우음도 당제에는 각시당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금술이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면 아내는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각시당)으로 마중을 가가곤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은 이웃의 배를 얻어 타고 마을로 돌아간 것을 모르고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늦도록 기다리던 아내는 그만 밀려드는 바닷물에 갇혀 죽고 말았다. 이후 주변 사람들은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여 이 섬을 각시당이라 불렀으며, 매년 정월과 바다 일을 시작하는 철이 오면 각시의 원혼을 달래며 어획의 풍요와 뱃일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각시당을 찾아 모시게 되었다.제당의 형태장승현재 ‘생명 희망 당제’라는 이름으로 ‘우음도 생태문화학교’ 주최로 전승되고 있다. 장승은 ‘생명 희망 당제’라는 이름으로 우음도 마을입구에 ‘시화호생명대장군’ 과 ‘우음도희망여장군’ 이 서 있다. 이를 통해 주민간의 화합 속에서 옛날의 공동체적인 마을의 분위기를 다시 회복하고자 장승, 솟대를 세워 전승하고 있다. 이는 기존 당제의 역할이 마을의 환경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전승체계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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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동제와 배신굿
    경남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동제와 배신굿제명 : 당산제(굿을 하지 않을 경우), 일신(1년주기), 배신굿(3년주기)신격 : 당산(산신), 용왕, 골맥이제당 : 마을 앞 솟대, 마을 입구 벅수, 마을 뒤 당산, 마을 바닷가, 우물일시 : 당산제(음력 섣달 그믐), 일신(음력 1월 1~3일 사이), 배신굿(음력 1월 1~3일 사이)개괄굿은 매년 하는 경우 ‘일신’이라 부르고, 3년마다 하는 굿을 ‘배신굿’이라 한다. 무당은 육지나 거제도에서 많이 오는데, 보통 여자 무당 3명에, 악기를 다루는 남자 5명 정도가 온다. 무당이 동제를 주관하지만 마을에서는 ‘정신 드리는 사람’이라고 하여 제관을 선정한다. 그에게는 그 해동안 바다의 한 자리를 주는데 이것을 ‘바탕을 준다’고 한다. 보통 제관은 많은 제약이 따르고, 정성을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제관이 죽는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에 상당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도장포의 동제인 경우에는 무당이 주관하는 경우가 있고, 마을 자체에서 제관을 뽑아 지내는 경우도 있다. 무당들이 주관하는 경우에는 많은 경비가 들기 때문에, 소수의 무당만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제의내용무녀가 굿을 하는 해는 ‘굿장모’의 생년월일시를 넣어 생기복덕을 따져서 날을 받는다. ‘굿장모’란 무당이 거처하는 집주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출산이 없고, 초상이 없는 집을 선택한다. ‘굿장모’는 무당의 편의를 봐주는 일을 맡으며, 무녀상에는 대구장자젓-계란찜(수란)-김-자반고기 등 값비싼 음식들이 올라올 정도로 잘 대접해준다. 굿에 쓰일 음식은 굿장모가 장만하는데, 보통 머리에 명주수건을 쓰고, 창호지로 입을 막는다.동제는 초하루와 초사흘 사이에 한다. 굿이 없는 해는 그믐날 저녁에 제관이 제사를 지낸다. 제사지내기 하루 전날에는 당산을 청소하는데, 이때에는 창호지로 입을 봉하고 들어간다. 지금은 창호지 대신 마스크로 대신한다. 당산에 올라가 청소하는 사람들도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이 한다. “덕은 몰라도 한은 눈앞에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청소도 잘 못하면 해를 당하기에 조심해서 행한다.청소가 끝나면 왼새끼를 꼬아 당나무와 큰새미(우물)에 금줄을 친다. 또한 배선대인 오리(솟대)를 세우고 벅수(장승)를 새롭게 만든다. 함목의 벅수와 도장포 내의 벅수는 매년 소나무를 깎아 만들고, 금줄과 황토를 뿌린다. 근래에는 오리(솟대)가 상태가 좋으면 그냥 놔두고 상하면 새로이 한다. 오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오리에 제사를 지낼 때는 기둥에는 솥을 단다.굿은 들맞이굿-> 당산(산신제)-> 용왕제(해금강)-> 골맥이 순으로 한다. 굿의 기간은 자금인 ‘상돈’이 많이 들어오면 이틀, 적으면 하루에 끝낸다. 굿은 바닷가 오리 (솟대)를 세운 곳에서 지낸다. 모든 동제터에는 말뚝에 왼새끼를 거는데, 그 줄을 ‘건구지’라고 부른다.섣달 그믐날 마을 입구인 함목의 벅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들맞이굿’을 시작하고 정월초하루 새벽에는 ‘제만’을 모신다고 ‘굿장모’가 산에 올라가 산제를 지낸다. 산제는 사람들 모르게 제관부부만 간다. 제만(산신제)이 끝나면, 무당은 깨끗한 집을 찾아다니며 용왕굿을 해주고, 우물가에서는 골맥이굿을 행한다.제물에는 ‘치’자 달린 고기는 사용하지 않으며, 뱀의 모습과 같다고 숭어도 올리지 않는다. 또한 비늘이 작은 노래미 같은 고기는 사용하지 않고 돔-조기-민어처럼 비늘이 큰 것을 사용한다. 한편, 대구-명태(건어)-우럭(자반)은 비늘이 없어도 사용한다. 그리고 첫 대구를 잡으면 국을 끓여 성주상에 올리는데, 이것을 ‘첫 대구패미’라고 한다. 또한 돔과 대구처럼 비싼 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을 ‘도죽걸이’라고 한다. 통영시 산양읍에서는 ‘도죽’이란 고기의 비늘을 안 치고 지느러미, 아가미는 그대로 둔 채 내장만 제거하여 그대로 찐 것을 가리키며, 보통 ‘도죽’으로 돔을 사용한다.근래의 동제는 굿은 없지만 무당들이 와서 대신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무당의 일을 보조해주는 제관을 선정하는데, 보통 이장이 담당하며 그를 ‘굿장모’라고 부른다. 제관 집에는 작대기를 걸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사흘동안은 소금만 가지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공동묘지로 가는 쪽의 능골에서 목욕재계를 한다. 예전에는 당산에 남자만 올라갔으나 근래에는 제관 내외가 함께 음식을 가지고 올라간다. 제사는 음력 섣달 그믐에서 정월 초사흘 사이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죽은 처녀를 신체로 삼아 풍어제를 올리기도 한다. 바닷가 지역에는 죽은 처녀를 신체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죽은 처녀를 묻어준 후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되어 여신으로 삼는 것이다. 도장포에도 ‘처녀를 모신 집’이라고 하여 나무집을 지어 그 안에 옷-빗-거울 등 젊은 처녀와 관련되는 물건들을 보관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숭어들이를 하여 처음 잡은 고기를 처녀를 모신 나무에 걸어 두어 감사와 풍어를 기원하기도 한다. 정기적인 제사는 도장포어촌계에서 주관을 하며 무당을 불러서 지낸다. 어부들 꿈에 처녀가 나타나거나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여기고 별도의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신화매년 하는 굿은 ‘일신’, 3년마다 하는 굿은 ‘배신굿’이라 한다. 죽은 ‘처녀를 모신 집’이라 하여 나무집을 지어 그 안에 옷, 빗, 거울 등 젊은 처녀와 관련되는 물건들을 보관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숭어들이를 하여 처음 잡은 고기를 처녀를 모신 나무에 걸어 두고 감사와 풍어를 기원하기도 한다.제당의 형태솟대명칭 : 이 지역에서는 솟대를 ‘배선대’, ‘짐대’, ‘오리’라고 부른다.위치 : 도장포 마을 바닷가 쪽에 위치한다.재질과 형태 : 도장포 마을 솟대 역시 소나무를 깍아 만들었으며 솟대에 올려진 새의 형태 는 오리의 모습을 띠고 있다.기능 : 예로부터 새는 천신의 사자로서 신성시 되었으며,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 나무가 작용하였다. 이처럼 솟대는 매개체인 우주나무와 하늘새가 결합한 형태로 구성되며 솟대의 새 모양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데 정교하게 만들기보다는 간단히 양식화하여 만드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도장포 마을의 경우에는 솟대의 새로 대표격인 ‘오리’가 세워져 있는데 ‘오리’는 하늘, 땅, 물 안, 물 밖 등 모든 영역을 넘다들 수 있는 솟대 신앙의 상징물로 자리하고 있으며 물새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하여 풍요로움과 풍농을 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관련의례 : 도장포 마을의 동제 시기 때에 당산 청소가 끝나면 왼새끼를 꼬아 당나무와 큰샘에 금줄을 치며 또한 배선대인 오리(솟대)를 세우고 벅수(장승)을 새롭게 만든다. 근래에는 오리(솟대)가 상태가 좋으면 그냥 놔두고, 상하게 되면 새로이 한다. 또한 오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솟대에 제사를 지낼 때는 기둥는 솥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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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남해군 이동면 화계리 배선대
    경남 남해군 이동면 화계리 배선대제명 : 배선대(당산제(舊), 솟대제, 용왕제,)신격 : 당산(舊), 솟대, 배선장군(용왕)제당 : 마을 앞과 바닷가일시 : 음력 1월 15일개괄화계리의 ‘배선대’놀이는 남해문화원과 마을 주민들이 복원하여 1997년 10월 24일 제 29회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진행과장은 모두 4과장으로 솟대세우기-풍어제-배선제-대동놀이로 진행된다. 과거 배선대 놀이는 대보름날 지내는 풍어제로서, 마을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문서를 보관하는 문서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무당이 별신굿을 행하기도 하였다.제의내용동제는 어촌계가 주체가 되어, 양력 1월 15일 즈음에 마을의 제관을 뽑고 음력 정월 보름 아침 10시에 제사를 지낸다. 제물은 예전에는 각자 상을 내어서 지냈으나, 지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개인상을 따로 차려준다. 모든 경비를 합치면 25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제사는 솟대에서 지내고, 해변가에서 용왕제를 지내고 배를 타고 어장을 한바퀴 돈다. 그런 다음 메구를 치면서 마을을 한바퀴 돈다. 과거에는 당산제에서부터 제사를 지내고 솟대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당산제는 지내지는 않는다. 과거 솟대가 없어진 후 돌에 ‘배선대’라는 글귀를 넣어 옛날 솟대가 있는 자리에 세워 제사를 지내다가, 현재에는 참솔로 솟대를 만들어 다시 세웠다.화계리의 ‘배선대’놀이는 남해문화원과 마을 주민들이 복원하여 1997년 10월 24일 제 29회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진행과장은 모두 4과장으로 솟대세우기-풍어제-배선제-대동놀이로 진행된다. 과거 배선대 놀이는 대보름날 지내는 풍어제로서, 마을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문서를 보관하는 문서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무당이 별신굿을 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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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일산진마을 성황제와 별신굿
    경북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일산진마을 성황제와 별신굿       제명 : 성황제와 별신굿신격 :제당 :일시 : 매해 음력1월 15일, 10월 1일, 3년 1회 별신굿개괄동제는 준비과정, 제의과정에 있어 여느 동제와 크게 다른 점이 없으며, 정월과 10월에 지내는 동제도 동일하게 지내고 있었다. 동제를 지내기 며칠 전에 제관을 정하고 금기를 행하며 동제를 지낸 뒤에는 주민들이 모여 음복을 하면서 마을의 제반사항을 의논하고 집단적인 놀이를 행하고 있었다. 특히 정월의 동제는 대보름 밤에 일산진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 열리는 ‘달집태우기’로 이어져 마을 주민들은 물론 일산동과 동구지역 일대 주민의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10월의 동제는 격년으로 별신굿을 겸하고 있어 마을의 커다란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제의내용일산진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과 음력 10월 초하루에동제를 지내고 있다. 이처럼 일산진마을에서 1년에 두 차례 동제를 지내는 유래에 대한 주민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17세기 중엽 조선 현종 때의 장적에 울산도호부의 동면에 곶포(串浦)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100여년 후인 영조 때의 호적대장에는 곶포가 사라진 것을 통해 현재 일산진마을 북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던 고늘마을과 관련된 듯하다. 조선 현종 때의 장적에 의하면 일산진에는 47호 그리고 고늘마을에는 56호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고늘마을과 관련한 한가지 전설이 주민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옛날 큰 태풍으로 고늘마을이 많은 피해를 입게되면서 고늘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일산진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늘마을 한 남성의 작은 부인이 큰 부인의 시샘을 피하여 이주하지 않고 홀로 고늘마을에 남아 여생을 마치게 되었고 이후부터 고늘할매를 모시는 동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현재 고늘할매를 모시는 제사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결국 두 마을이 하나로 합치면서 2개의 동제를 지내게 된 듯하다는 주민들의 제보가 설득력을 가진다.어촌계장과 제관이 주관하는 동제는 준비과정, 제의과정에 있어 여느 동제와 크게 다른 점이 없으며, 정월과 10월에 지내는 동제도 동일하게 지내고 있었다. 동제를 지내기 며칠 전에 제관을 정하고 금기를 행하며 동제를 지낸 뒤에는 주민들이 모여 음복을 하면서 마을의 제반사항을 의논하고 집단적인 놀이를 행하고 있었다. 특히 정월의 동제는 대보름 밤에 일산진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 열리는 ‘달집태우기’로 이어져 마을 주민들은 물론 일산동과 동구지역 일대 주민의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10월의 동제는 격년으로 별신굿을 겸하고 있어 마을의 커다란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동제마다 소요되는 경비는 약 40만원 정도인데 주로 어촌계에서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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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포항시 청하면 이가리 당고사
    경북 포항시 청하면 이가리 당고사        제명 : 당고사, 풍어제신격 : 삼령신제당 : 당집, 임시제청일시 : 음력 1월 15일, 9월 9~10일개괄이가리의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지낸다. “당고사”라 불리우는 동제는 예전에는 각 집에서 무당을 모셔다 지내던 것이 마을 단위로 환원한 것으로, 전적으로 어촌계에서 주관한다. 제관들은 당에서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안녕과 발전, 각 가구의 무병, 무사를 비는데, 제를 올린 후에는 제관들이 제물을 종이에 싸서 바닷가에 나가 던진다. 이것을 “용왕 먹인다”고 한다. 음력 9월 9일 새벽부터 9월 10일 아침까지 매년 풍어제를 지낸다. 이가리의 풍어제는 “뱃손” 또는 “배손”이라 하는데 별신굿이라는 뜻이다. 모시는 신은 “삼령신”으로 남신이며, 이 굿을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은 아니다. 주로 영덕에 거주하는 무당 송동숙씨일행을 청하거나부산 동래에 사는 무당 김석출씨 일행을 데려다가 굿을 한다. 정신을 잘 안들이면 인명사고가 나기 때문에 무당의 선정에 크게 신경을 쓴다.제의내용풍어제의 굿은 무당이 하지만 제의 진행은 음력 정월 초순 대동회에서 미리 선정한 4명의 제관이 담당한다. 이때 선정된 제관들은 일단 택일이 되면 그 이후 육류를 먹지 못하고 그해 섣달 그믐날까지 문상을 가지 못한다. 이것은 동제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이 역시 주관은 어촌계에서 담당하여 모든 진행과 경비부담을 책임진다.동제나 풍어제와 같이 마을을 단위로 하는 신앙행사를 어촌계에서 담당함으로써 어촌에서 어촌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풍어제를 지냈는데에도 외지에서 마을 사람이 배 사고로 죽으면 개인적으로 굿을 해준다. 1979년 10월 당시에는 머구리 한 사람이 사고가 나서 죽었는데, 이때 5, 60만원의 비용을 들여 굿을 해주었다고 한다. 조사지역주민들의 굿에 대한 강한 신앙은 “6.25동란 때 굿을 못해서 이곳만 폭격을 당해 희생자가 많았다”라는 말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이렇게 동제나 풍어제는 마을의 공동제사로 각기 목적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마을 전체 주민을 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것에 소요되는 비용을 어촌계에서 부담하는 것은 어촌계의 성격이 단순히 계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전 동민적인 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어떤 의미에서 어촌의 마을 단위의 협동체계가 이분화되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동장과 어촌계장이 주관하는 이 공동제사에의 제물 마련에는 여자들의 참여가 금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어촌의 신앙형태에는 개별 집안의 가신신앙과 마을단위의 동제나 풍어제 등으로 대분되어 남녀간의 안팎 구조가 명확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어촌주민들은 수산물의 공동채취, 분배와 마을 공동의 동제나 풍어제를 통해 그들이 하나임을 지각하면서 사회적 통합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제사를 마친 후 모두가 모여 제물을 나누어 음복함으로써 그들은 서로를 확인하고 새로운 협동을 창조해 내는지도 모르겠다. 어촌주민들이 처한 자연환경은 구성원들간의 결속을 더욱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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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제명 : 천제, 당제신격 : 天龍主神제당 : 화개산 정상의 천제단, 아을 뒤 당숲의 당집일시 : 음력 3월 1~3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여수 화정면 개도리 당제제명 : 천제, 당제, 헌석제내용 : 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특징 :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개도리 당제의 개별 제의들을 연관선상에서 볼 수 있도록 시간순서대로 제작하였다.개괄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의내용화산마을의 공동제의는 크게 당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천제, 당제, 헌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당과 신격 역시 3곳으로 제를 지내는 형식 또한 다 다르다.음력 3월 1일에 지내는 천제는 천제단에서 지내는데, 상당이라도 한다. 천제단은 개도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을 뒤에 있는 화개산이다. 화개산은 두 개의 높은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봉화대가 있는 봉화봉이고, 다른 하나는 천제단이 있는 천제봉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원래 높이는 봉화봉이 조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제를 지내는 봉우리가 봉화봉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돌로 단을 쌓아다는 유래가 있다. 실제 천제봉 정상은 3m 정도 돌로 쌓아져 있고 제일 윗 부분은 직경 3m 정도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제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천제단 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천제봉에서 지내는 신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주와 부당주에 의하면 개도 6개 마을과, 백두산부터 남해바다 일대까지를 편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제를 지낼 때 메를 다섯 방향에 진설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음력 3월 2일에 지내는 당제는 마을 뒤에 있는 당숲(서나무숲) 앞 당집에서 지내는데, 하당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당집은 97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이고, 철근 콘크리트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당집 입구 위쪽에 가로로 천제당(天祭堂)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당집 둘레에는 1m 20cm 정도의 높이로 담이 둘러져 있고, 당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하나 있다. 기존에 있던 당집도 기와로 된 건물이었는데, 낡아서 중축한 것이다. 당집 입구 쪽에는 당산나무 1그루와, 입석 1기가 서 있다. 당집 내부는 두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왼쪽 방에 ‘天龍主神之位’라고 쓰여져 있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당집 안에 철로 된 마상 2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天龍主神之位’라는 위패를 놓고 당제를 지낸다. 화산마을을 포함한 개도리 전체의 당집은 당숲 안에 당집이 있는데, 그 중 화산마을의 당숲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헌석제는 당집 앞에 있는 당산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서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오장치를 던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신격이 당산나무와 용왕신 둘로 나눠진다. 당산나무에 바짝 붙어서 입석이 1기 있고, 그 입석에는 오장치를 걸어둔다. 그 앞에 상석이 1m 넓이로 만들어져 있어서 음식을 진설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차려오는 개인집의 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일렬로 차려놓는다. 오장치는 주로 애기가 없는 유부남이 애기를 낳기 위해 매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방파제까지 매구를 치고 가서 바다에 던진다. 굿을 하러 온 법사의 해석에 의하면 당집은 당산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석제 때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당집과 당산나무에 대해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고, 당에서 굿을 하는 것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고, 바다에서 헌석을 하는 것은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신화유래에 대한 제보자들의 설명에서는 천제나 당제 혹은 헌식 중 어떤 것의 유래를 따로 떼서 말한 것은 없었다. 유래는 모두 말(馬)과 관계된 것이거나 옛날 당집에 모셨다는 철마상(鐵馬像)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옛날에 말을 많이 키웠는데, 말이 병이 들어 죽으면 말임자들이 육지에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구타하고 하니까 말이 안 죽게 하기 위해 산에다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정부에서 발령받아온 마관들이 말이 죽곤하여 자신들이 혼나니까 마을 사람들을 시켜 제사를 모시도록 지시한 것이다. 마관들이 왜 말을 죽게 했느냐고 마을 사람들을 책임 추궁하고 구타하니까 말들이 안 죽고 잘 자라라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당에다가 말을 동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모셨다. 중간에 어쨌는가 없어져 버렸다. … 지금 월항리 근처에 말을 키우는 성이 있었다. 성을 쌓아 놓고 말을 키우면서 말을 잘 키워주라고 제를 모신 것이다.…그래서 말놔두고 산제를 모시게 된 것이다.위의 유래담에서 보면, 당시 마을 사람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사가 강요되어 모셔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농업이거나 어업인데, 말이 잘 크고 잘 번식하게 해달라는 제사를 마을 공동으로 지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는 풍농과 풍어를 비는 보편적인 당이었는데 마관들에 의해 당제의 성격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의 유래담은 보편적인 당제가 특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철마상이 도난당한 뒤 용왕신의 위패로 대체된 것은 원래 모습으로의 복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목장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목장이 없어지고 최근 우연히 철마상이 없어지고 난 후, 원래 당신(堂神)의 하나였을 용왕신이 모셔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본 정월 보름날 당제가 삼짇날 당제와 병행했다는 제보도 화산리 당제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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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오룡당 당제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오룡당 당제제명 : 당제신격 : 오룡묘(오궁유왕, 명두 아가씨, 최씨 부인, 수문장, 성주) 임씨할머니당(산신님, 칠성님, 임씨할머니) 산신제 제터(산신)제당 : 오룡당(오룡묘, 임씨할머니당, 산신제 제터 - 마을 망주봉에 있음)일시 : 동짓달과 섣달, 정월달 중에 택일개괄오룡당(五龍堂)는 선유도 3구 망주봉(望主峯) 사이에 있는 당집이다. 지금은 쇠락한 건물이지만 한때는 매년 지내는 당산제, 그리고 3년마다 별신제가 펼쳐진 제의와 축제의 제장(祭場)이었다.제의내용오룡당(五龍堂)는 선유도 3구 망주봉(望主峯) 사이에 있는 당집이다. 지금은 쇠락한 건물이지만 한때는 매년 지내는 당산제, 그리고 3년마다 별신제가 펼쳐진 제의와 축제의 제장(祭場)이었다. 오룡당 제장은 3군데에 있다. 이중 오룡묘는 매 앞에 있는 제당이다. 정면 550㎝, 측면 306㎝의 규모로써 기와 지붕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본래 당집 내부에는 오궁유왕, 명두 아가씨, 최씨 부인, 수문장, 성주 등 5매의 화상(?像)이 걸려 있었다고 하나 도난당한 지 오래다.(일설에는 사해용왕, 성주대감, 망주대감, 팔부장신, 최씨부인, 손님네 등 여섯 신위를 모셨다고도 한다).오룡묘 바로 뒤편에는 이보다 약간 높게 지은 또 다른 한 채의 제당이 있는데, 이곳이 소위 임씨 할머니당이다. 이 당집의 규모는 정면 225㎝, 측면 228㎝의 기와 지붕이다. 당집 내부에는 제기 일부가 보관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산신님, 칠성님, 임씨할머니 등 세 분의 신을 모신 화상이 있었으나 오룡묘와 마찬가지로 도난 당한 지 오래이다. 임씨 할머니는 처녀신이기 때문에 배를 부리는 선주들은 꿈에 임씨 할머니 선몽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신으로 받든다고 한다. 이 밖에 임씨 할머니당 뒤편에는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제당이 하나 더 있는데 이곳을 ‘지터’라고 한다. 이 지터는 산신제를 모시는 곳이면서, 제사 지낸 음식을 묻는 헌식터이기도 하다.한편 오룡묘 밑에는 한때 초집(초가집)이 있었다. 이곳에는 선유도 별신제의 사제자(司祭者)이며 유일한 당골무당인 ‘당오매’가 살면서 오룡묘를 모시고 관리하여 왔다. 선유도 당오매는 가업을 통해서 대물린 무당, 이른바 세습무로서 이곳뿐만 아니라 주변 섬 주민들이 요청하는 무업을 전담하여 왔다. 선유도 오룡묘의 당산제는 일정하게 정해진 날짜가 없다. 다만 동짓달이나 섣달, 또는 정월달 중에서 좋은 날을 받아서 지냈을 뿐이다. 제일은 택일을 해서 좋은 날을 해마다 받는다. 택일은 주로 당오매의 몫이다. 그달에 초상이 났다거나, 출산이 예정되어 있으면 다음달로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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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제주시 건립동 칠머릿제
    제주 제주시 건립동 칠머릿제                         제명 : 영등환영제, 영등송별제신격 : 도원수감찰지방관, 용왕해신부인제당 :일시 :신격용왕해신부인 : 용왕국의 용왕부인으로 만민해녀와 상선, 중선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장수 장명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는 신이다.도원수감찰지방관 : 하늘이 아버지이고 땅이 어머니로 천하의 명장이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남북적을 평정하였는데 천자님이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으나 사양하고 용왕부인을 배필로 맞았다.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천리를 보는 신이 되어 칠머리에서 좌정하여 생산을 관장하고 장적과 호적을 주관한 신이다.신화칠미릿당에 좌정된 신은 도원수감찰지방관 용왕해신부인이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강남천자국 가달국에서 솟아났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요ㅡ 장성하니 천하 맹장이 되었다.때마침 남북적이 강성하여 국가가 어지러우니, 도원수감찰지방관이 천자님에게 들어가서 남북적을 평정하겠다고 했다. 천자님은 크게 기뻐하여 무쇠투구 · 갑옷 · 언월도 · 비수검 · 나무할 · 보래활을 내주니, 기치창검이 일월을 희롱하여 백만대병을 거느려 남북적을 쳐 넘겼다. 천자님이 또한 대희하여 크게 칭찬하시고,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고 했다.도원수감찰지방관은 모든 것을 사양하고 그 길로 백만대병을 거느려 용왕국에 가 용왕부인을 배필로 맞았다. 용왕부인을 거느리고 제주도로 돌아와 한라산 백록담으로 가서 진을 치고 혈을 보았다. 혈이 떨어진 곳을 찾아 내려오는데, 먼저 황세왓에 내려와 진을 치고 보니 사기왓에 혈이 떨어졌으므로, 사기왓에 내려와서 진을 치고 보니 혈은 칠머리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산지 칠머리로 내려와, 건립동 백성의 나는 날 생산을 차지하고, 죽는 날 물고를 차지하며 장적 · 호적을 차지했다. 앉아서 처니를 보고 서서 천리를 보는 신이 된 것이다.한편 용해해신부인은 만민해녀와 상선 · 중선을 차지해서, 장수 장명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는 신이 되었다.제일은 해해마다 2월 초하루 영등환영제, 2월 열나흘 영등송별제이다.* 참고문헌 :『제주도신화』220~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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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제주시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신과세제
    제주 제주시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신과세제                     제명 : 신과세제신격 : 소로소천국, 백주또제당 : 본향당일시 : 음력 1월 13일개괄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도 무속 당본풀이로 보면, 당신들의 원조(元祖)가 되신 남신 '소로소천국'과 여신 '백주또'가 좌정하고 있는 곳이다. 한라산에서 솟아난 토착신 소로소천국은 수렵·목축신이며, 서울 남산 송악산에서 태어나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제주도에 입도한 외래신 금백주는 산육·농경의 신이다. 이 두 신이 결혼하여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고, 자손들이 가지가지 송이송이 뻗어 제주 전 지역 368 마을의 당신이 되어 좌정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송당리는 '당신앙의 뿌리'가 되는 성소이며, 신앙의 메카인 셈이다제의내용송당리의 본향당은 현재 바로 밑에 있는바, 이 당에 모셔신 당신은 여신(女神)으로서 강남천자국에서 왔다는 벡주또마누라다. 이 본향당에서 해마다치러지는 정기적 제의는 네 가지다.·음력 정월 13일 ∼신과세제(新過歲祭?)·음력 2월 13일 ∼ 영등굿·음력 7월 13일 ∼ 마풀림·음력 10월 13일 ∼ 신만곡대제(新萬穀大祭?)신과세제 당굿 등에서 염송되는 본풀이를 보건대, 송당 본향당신의 자손들이 제주도내 각처로 흩어져서 좌정하고 곳곳의 당신이 되었음이 밝혀진다. 곧 송당의 본향당신은 제주도 여러 마을의 당신들의 원조(元祖)라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 뜻에서 그 본풀이의 줄거리를 살펴볼 필요를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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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내도리 안섬풍어제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내도리 안섬풍어제                   제명 : 풍어제신격 : 마을주민들은 당신이 뱀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당에는 각각 각시, 용왕, 임경업장군이 모셔져 있음.제당 : 당집 안에는 소당, 본당, 차당이 있음.일시 : 음력 1월 1 ~ 1월 첫번째 진일(辰日)개괄안섬의 당제는 최근에 ‘풍어제’라는 명칭으로 불러지지만, 원래는 당맞는다. 서낭님을 모신다 등으로 불렀다. 마을주민들은 당신이 뱀이라고 생각하여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당제지내는 것을 진대할아버지 모신다고 한다. 무당굿과 함께 진행된다.제의내용섣달 그믐날이 되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당제회의를 하는데 이 날에는 당주를 정하고 추렴을 언제 할 것인지, 얼마씩 할 것인지 정하며 제의 날짜도 알려준다. 제의 날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부터 첫째 진일(辰日)을 잡는데 병진일(兵陣日)은 뺀다고 한다. 당주를 정할 때는 마을에서 가장 부정이 없는 집을 정해서 하는데 주로 여자가 없는 집이나 월경이 끝난 여자만 있는 집에서 한다. 이 날 정해진 당주는 돼지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며 당제를 지낼 때까지 부정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날에는 제물을 준비하거나 굿을 진행하는 주감과 잡일을 하는 화장을 함께 뽑는데 화장은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 하거나 장가가서 아이를 낳지 않은 새신랑이 한다. 총각이 화장을 하면 장가를 갈 수 있고 새신랑이 화장을 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라고 한다.추렴은 당추렴이라고도 하며 당제에 필요한 돈이나 쌀을 마을 사람들에게 걷는 것을 말한다. 추렴은 화장이 담당하며 배의 크기에 따라서 내는 정도라 달라진다. 월경을 하는 여성이 있는 집에서는 부정하다고 하여 생리가 끝 난 다음에 따로 낸다. 특별히 풍장을 치거나 하면서 돈을 걷는 것은 아니고 화장이 집집마다 들어가서 걷는다. 이렇게 걷는 돈은 선주들 같은 경우에 5000원 정도씩을 더 내며 이는 뱃고사 상을 차려주는 값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걷는 돈은 소지종이 값이라고 한다.섣달 그믐이 되면 당주댁에 인줄(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50년 정도 전에는 우물에도 금줄을 쳤었으나 현재는 우물에는 금줄을 치지 않는다. 이렇게 금줄을 치고 난 후부터는 아무도 당주 댁에 출입을 하지 못하며 정월 초하루에도 당주 댁에는 세배를 드리러 가지 못한다. 이때 당주와 주감이 누룩과 엿기름을 이용하여 제주를 만드는데 조라술이나 당술, 단술이라고 하기도 한다. 제의 날이 되면 위에 있는 맑은 술을 떠서 잔을 올리고 밑에 가라앉은 탁한 술을 걸러서 뱃고사에 올린다.제물은 당할매라고 해서 당주의 부인이 만드는데 그 준비는 화장과 주감이 한다. 제상을 차리는 것은 주감이 하는데 제물로는 소머리 3개, 백무리 떡시루, 북어, 대추, 밤, 곶감, 무나물, 두부부침, 탕, 밥, 쌀 등이 올라간다. 북어는 북쪽을 의미하기도 하고 차가운 음식이고 비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북두칠성을 의미해서 수명장수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에 제상에는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그러나 각시당은 본당이나 차당과는 달리 고기가 올라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소머리는 올리지 않는다. 그 외에 첫 출항해서 제일 처음 잡은 것과 잡은 것 중 가장 큰 것 이렇게 두 마리는 당집에 걸어두는데 이 것을 당주가 가져다가 소금에 절여서 말려두었다가 다음 해 당제 때 올린다.밥과 탕을 올릴 때는 각 당 마다 2그릇씩 올리며 이는 한 당마다 부부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밥은 당집에 가지고 올라갈 때 꼭 떡시루에 담아가지고 간다.제의진행은 본제, 장승제, 용왕제, 지신밟기의 순이다. 당산에서의 제의진행은 제물진설, 당주의 헌주배례, 선주의 배례, 무당의 대동축원, 무당의 굿치성(부정굿, 본당굿, 대동굿, 어망굿, 오방굿), 무당의 공수와 깃손받기, 선주의 배고사 순으로 이루어진다.당제를 지낼 때 하던 굿은 원래 안섬마을에서 굿을 해주던 방씨네 일가가 도맡아서 해왔다. 하지만 방씨네 일가가 다 죽게 되면서 10여년 전 부터 다른 무당으로 계속 바뀌다가 현재는 당진군 송악면 합덕리에 사는 무녀 이춘화씨가 해오고 있다. 이춘화씨는 당제 날이 잡혀서 이 마을에 들어 갈 때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예전에 한번 모르고 돼지고기를 먹고 굿하러 갔다가 장구재비는 똥통에 빠지고 자신은 평지에서 넘어져 크게 다친 뒤로는 절대로 조심한다고 하며 이 곳의 신이 보통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신격용신 : 용신은 본당에 모셔진 신이다. 뱀신이라고 생각하여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을 수호해 주는 신이다.각시신 : 소당에 모셔져 있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장군신 : 임경업장군이라고도 하나 신격은 조선시대 이후에 모셔졌다고 한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신화어느 노부부가 이 마을에 와서 처음 살게 되었다. 너무 외롭고 적적하게 나날을 살아가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다. 그때 고 신령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너희가 당을 짓고 잘 위해 주면 마을이 형성되고 하는 일이 잘 될 것이다.”라고 말하여 그 때부터 당을 짓고 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당집 안에는 3개의 당이 있다. 왼쪽부터 소당, 본당, 차당이라고 불려진다. 소당에는 각시당을 모시고 본당에는 용신, 그리고 차당에는 장군신을 모시는데 임경업 장군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임경업 장군이라는 신격은 조선시대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위패는 없고 소당 위에만 당감이 걸려 있다. 이러한 당감은 홍감, 청감, 한지, 미역인데 이것은 당제를 지낼 때 마다 매년 새 것으로 갈아주며 헌 것은 태운다. 소당 위에는 등잔이 있는데 이 등잔은 제사가 끝난 첫째 날에 밤새 켜 둔다. 소당에서 모시는 신이 가장 높은 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제를 지낼 때 소당을 먼저 올리며 소당에서 모시는 신은 배에서 모시는 배서낭신과 일치한다.제의 명칭은 최근에 ‘풍어제’라는 명칭으로 불러지지만, 원래는 당맞는다. 서낭님을 모신다 등으로 불렀다. 마을주민들은 당신이 뱀이라고 생각하여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당제지내는 것을 진대할아버지 모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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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영신제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영신제                   제명 : 산신제(중단), 영신제신격 : 임경업장군 부부, 지신, 용왕제당 : 마을 입구 야산 위의 당집(영신당)일시 : 음력 1월 3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충남 서산 부석면 창리 영신제제명 : 영신제내용 : 창리 마을은 건너편에 안면도를 끼고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어촌 마을이다. 마을 가구수는 60여호 정도 되고, 대부분 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창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30분 내에 인근 황도와 안면도, 착월도 등지에 닿을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조기잡이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임경업장군을 당신으로 모시고 있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특징 : 각 어선의 뱃기를 올려 신내림을 받고, 다시 배에 다는 의식은 서해안의 대표적 풍어제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매우 의미깊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충남지역 당제의 대표적 의례형태인 뱃기오르기와 배치기, 굿놀이 등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창리의 영신제는 임경업 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어서 오랬동안 주목받아 왔다. 임경업장군은 조기의 신으로 서해안 일대에서 모셔지고 있다. 영신제의 시작을 알리는 뱃기올리기는 선주들이 뱃기를 들고 당으로 올라가는 행사이다. 이때 조기잡이의 풍어를 기원하는 배치기소리를 한다.개괄창리 마을은 건너편에 안면도를 끼고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어촌 마을이다. 마을 가구수는 60여호 정도 되고, 대부분 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창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30분 내에 인근 황도와 안면도, 착월도 등지에 닿을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조기잡이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임경업장군을 당신으로 모시고 있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각 어선의 뱃기를 올려 신내림을 받고, 다시 배에 다는 의식은 서해안의 대표적 풍어제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매우 의미깊다.제의내용20여년 전까지 음력 1월 2일에 산신제를 지내고, 1월 3일에 영신제를 지냈다. 산신제를 지내는 제장은 마을의 서북쪽 약 1km 지점에 위치한 당산 정상에 특별한 형태없이 철마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여년 전에 현대건설에서 공사를 하면서 당 자체를 폐하게 되었다. 철마상 또한 실종되었다.영신당은 마을 동북쪽 해변 언덕 위에 당집이 있다. 당집은 두칸 기와집으로 되어 있는데 측면에 바로 담이 붙어있고, 별도의 당 입구가 만들어져 있다. 당 내부 정면에 임경업장군 부부신위가 모셔져 있고, 좌측 정면에 ‘지진당’이 있다. 우측 정면에는 좌우로 수대와 수당이 있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남편)에서는 정면에 임경업장군 부부신위가 있고, 좌측 정면 좌우로 ‘슈대’와 ‘지토당’이 있고, 우측 정면 좌우로는 ‘손님신위’와 ‘슈배당’이 배치되어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지진당’을 지신당이라고 하고, ‘수당’을 용왕당이라고 생각한다.제관은 음력 12월 20일 대동계에서 선정한다. 제관을 당주라고 한다. 예전에는 산신당 제주 3명과 영신당 제주 1명을 선정했는데, 지금은 2명을 선정한다. 주로 당주 부부 2명을 선정한다. 당주로 선정된 사람에게 부정이 발생하게되면 나머지 한 사람이 당주를 맡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된다.제물은 떡과 과일, 술, 마른생선, 소고기 등을 준비하는데, 이 중에서 소고기는 빠져서는 안 된다. 예전에는 소 1마리를 잡아 올렸는데, 지금은 고기만 놓고있다.제의 진행은 1월 3일 뱃기오르기를 시작으로 모든 일정이 진행된다. 순서대로 정리하면 ‘뱃기오르기 - 거리제(부정풀이) - 집안굿 - 제례 - 산신제 - 장군굿 - 대감굿 - 각시굿 - 도당대감굿 - 오방굿 - 소지올리기’의 순이다. 거리제까지는 당에 오르는 과정이고, 그 이후는 당 안에서 진행하는 거리이다. 굿은 마을에서 20여년째 거주하고 있는 무당에 의해서 진행된다. 굿을 하는 중간중간 마을 주민들의 배치기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배치기 소리는 조기잡이를 나가서 만선으로 돌아올 때 붕기를 배에 꽂고 부르는 소리이다. 따라서 당에 오를 때나 당 안에서 끊임없이 배치기소리를 하는 것은 풍어에 대한 의례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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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당제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당제   제명 : 선창제, 당제, 거리제신격 : 서낭님 내외, 서낭님 아들제당 : 당집은 동백정(冬栢亭) 앞 30m 떨어진 곳에 화력발전소를 바라보며 위치함일시 : 음력 섣달 그믐, 1월 3일, 1월 8~9일개괄마량리에서는 음력 섣달 선창제를 시작으로, 초사흗날 당제(부정풀이, 평탕제), 당굿, 대내림, 용왕제, 샘제를 모시고, 초여드렛날이나 아흐렛날 중 좋은 날로 가려서 거리제(장승 위하기)를 지낸다. 거리제를 제외하고 여섯 종류의 제의를 총칭하여 ‘당제’ 혹은 ‘윗당제’라고 부른다.제의내용마량리에서는 음력 섣달 선창제를 시작으로, 초사흗날 당제(부정풀이, 평탕제), 당굿, 대내림, 용왕제, 샘제를 모시고, 초여드렛날이나 아흐렛날 중 좋은 날로 가려서 거리제(장승 위하기)를 지낸다. 거리제를 제외하고 여섯 종류의 제의를 총칭하여 ‘당제’ 혹은 ‘윗당제’라고 부른다.당집은 동백정(冬栢亭) 앞 30m 떨어진 곳에 화력발전소를 바라보며 위치해 있다. 본래 당집은 단칸 기와집이었다. 그러다가 1981년에 한국전력공사 서천발전소에서 두 칸 짜리 집으로 개축하였으며, 현재의 제당은 2001년도에 군의 자금지원을 받아 새로 건립한 것이다.당집에는 서낭님 내외분과 서낭님 아들내외, 스님이 모셔져있다. 본래 서낭님 내외분과 스님이 모셔져 있었지만, 1960년대에 아들내외가 합사되었다. 이밖에 당집 안에는 이 마을에 거주하던 만신이 모시던 금동불상 한 기가 있고, 서낭님을 모시는 마부가 부조된 판목이 있다.당제를 한달 앞두고 화주와 화장을 각기 한 명씩 선정하는데, 화주는 제사를 총괄하는 사람이며, 화장은 제물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화주와 화장으로 선출되면 부정이 없도록 매사에 조심하며, 제사 당일에는 미리 당집에 올라 근신한다. 화주와 화장 이외에 당굿을 치르기 위해서는 무당을 초빙한다.제비는 제일 20일 이전에 마을 주민들이 일정액을 추렴하여 마련한다. 그러나 만약 제비가 부족하다면 ‘매굿’을 친다. 즉 풍장패가 각 가정을 돌며 지신을 밟아주고 비용을 얻는 것이다. 제비가 마련되면 서천장에 나가 제물과 서낭님?스님께 입혀드릴 옷을 구입한다.섣달 그믐날 저녁이 되면 화주와 화장이 주관이 되어 선창제(船艙祭)를 지낸다. 물이 가장 많이 나간 시간을 택하여 지낸다. 선창제는 화주가 주관하며 갯벌 한 가운데에 상 세 개를 놓고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로는 가운데 상에만 항정군웅(돼지목살)을 놓고, 삼색실과?흰무리?마른명태?무나믈 등은 세 곳에 똑같이 놓는다. 제물이 마련되면 화주는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그리고 소지를 올린 후, 제물을 바가지에 담아 바다에 넣는다.초하룻날 각 가정에서 차례를 모신 후 점심 즈음에 화주와 화장이 제물을 지고 당기(당대)를 앞세우고 당집으로 향한다. 근래에는 번거롭다하여 제사 당일인 초사흗날 당에 오른다. 당집에 도착하면 당기를 당집 앞에 세워 놓는다. 이어 당집을 청소하고 물을 길어온다. 이날부터 당주와 화장은 아침저녁으로 서낭님께 청수를 갈아 올린다. 물이 마련되면 편탕(생떡꾹)을 빚고, 제주를 봉안하는 등 제물을 마련한다.새벽 3시경(현재는 오전 9시)이면 당제의 첫 제차인 편탕제를 지낸다. 당집 안의 신령들에게 먼저 편탕을 올리고, 나머지 제물도 올린다. 그런 후 화주와 화장이 들어가서 스님-서낭님 내외-서낭님 아들내외의 순으로 술을 한 잔씩 올리고 절을 한다. 마부에게도 술을 한잔 붓는다.편탕제가 끝날 즈음에 선주들은 배기를 앞세우고 산에 오른다. 배기가 오르면 화주가 길지 한 장씩을 선주에게 건낸다. 그러면 선주는 당 옆의 길지에 동백나무와 소나무를 조금씩 꺾어서 매단다.편탕제를 마치면 단골이 당집으로 들어와 당굿을 진행한다. 과거에는 인근의 단골을 불러 굿을 했지만, 근래에는 법사를 불러 굿을 주재하도록 한다. 굿은 열 석을 하며, 그 사이사이에 화주와 선주 등의 소지를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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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 붕기 풍어제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 붕기 풍어제          제명 : 붕기풍어제신격 : 뱀서낭, 임경업장군(현재)제당 : 당집은 주산인 상봉과 하봉 사이에 위치일시 : 음력 1월 2~3일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붕기 당집 내 성주지역 :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제명 : 붕기풍어제. 원래 황도의 당제는 도당굿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풍어제’란 명칭을 달게 되었다.제당 : 총 3칸 건물의 당집위치 : 섬의 북쪽에 당산이 있는데, 큰 상봉과 작은 상봉의 두 봉우리가 만나는 편편한 지점에 당집이 위치한다.형태 : 개보수하기 이전에는 붉은 기와에 시멘트벽으로 만든 당이었으나 지금은 총 3칸의 시멘트건물이다. 주위에는 홰나무가 군을 이루고 있으며, 당집 앞에는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것은 1991년 태안군수가 세운 ‘붕기풍어제의 유래’라고 쓰여 있다.좌정된 신격 : 당 내부에는 탱화가 그려져 있는데 원래의 탱화는 일제시대에 사라지고 현재는 임경업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 그려진 탱화의 이전 것은 가로와 세로 각각 50cm정도의 크기에 그려진 것으로 하얀옷을 입은 성황님 혼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현재 3채의 당집 중에 맨 왼쪽에는 열두당과 화상 5점이 선반 위에 걸려 있는데 왼쪽 벽에는 용왕각시당(龍王閣氏堂)이 있고 전면에는 왼쪽부터 성조천신(成造天神), 군왕(軍王)님, 삼불제석(三佛帝釋)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동서남북이십사방잡귀축출장군(東西南北二十四方雜鬼逐出將軍)이 걸려 있다. 가운데 당집은 산신도가 그려져 있으며 맨 오른쪽에 있는 집은 고기보관 및 제물을 준비하는 육간이 있으며 당 마당에는 굴뚝과 화덕이 위치해있다.특징 : 원래 모시는 신은 진대(뱀신)였으나 17세기 말엽에 임경업 장군이 어로신으로 등장하면서부터 황도 당집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차츰 어업의 다양화와 점진적인 원양어업의 진출 등으로 보다 더 신의 가호를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에 모든 신을 모시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군왕을 중심으로 장군, 성주, 사해 용왕, 오방 장군으로 봉안해 왔는데 어로신으로는 역시 임경업 장군이 주신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돼지를 뱀과 상극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인지 이 마을 사람들은 금기로 돼지를 먹거나 기르지 않는다고 하며 이를 잘 지키고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현재 마을에서는 성주 이하 다섯 장군을 포함한 열두당을 모시고 있는데 제를 지낼 때는 ‘접당’으로 스물넉당을 모신다. 예전에는 원당에 주신인 진대(뱀신)을 모셨다고 하며, 주민의 대다수도 진대(巳)를 주신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마을신에 대한 구체적인 신격의 직능 구분 없이 ‘서낭님’으로 부른다.개괄제의의 유래로는 아주 오랜 옛날 짙은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밤에 출어를 한 황도리 어선들이 항로를 잃고 표류할 때 지금의 당산(제당이 있는 곳)에서 밝은 불빛이 귀로(歸路)를 밝혀 모두 무사히 귀항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자신들을 보살펴준 신성한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제의내용제의유래제의의 유래로는 아주 오랜 옛날 짙은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밤에 출어를 한 황도리 어선들이 항로를 잃고 표류할 때 지금의 당산(제당이 있는 곳)에서 밝은 불빛이 귀로(歸路)를 밝혀 모두 무사히 귀항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자신들을 보살펴준 신성한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제당황도의 당집은 주산인 상봉과 하봉 사이에 위치해있다. 총 3칸의 건물로 당집이 구성되어 있으며, 4년전에 개축을 하였으며, 개보수하기 이전에는 붉은 기와에 시멘트벽으로 만든 당이었다.당집 주위에는 홰나무가 군(群)을 이루어 있으며, 당집 앞에는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것은 1991년 태안군수가 세운 비로 ‘붕기풍어제의 유래’라고 쓰여있다.당 내부에는 탱화가 그려져 있는데 원래의 탱화는 일제시대에 불살라 버려서 사라지고 현재는 임경업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것은 황도에 무당이 들어오면서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제보자에 따르면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을 지켜주는 무당이 있었는데 이 무당은 안면읍에 사는 무당으로 제의를 주관해주었다. 또한 1983년 김금화 무당이 들어오면서 황해도굿으로 변하였고, 본인의 신들을 모시고 와서 황도에서 지냈다고 한다. 지금 그려진 탱화의 이전 것은 가로와 세로 각각 50cm정도의 크기에 그려진 것으로 하얀옷을 잎은 성황님 혼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현재 3채의 당집중에 맨 왼쪽에는 열두당과 화상 5점이 선반위에 있으며, 가운데 당집은 산신도가 그려져있다. 맨 오른쪽에 있는 집은 고기보관 및 제물을 준비하는 육간이 있으며 당 마당에는 굴뚝과 화덕이 위치해있다.이 세 건물에는 제를 지내면서 둘러 놓은 금줄이 남아있는데 이는 신성시 하는 지역의 표시로 다음제의를 지낼 때 까지 그대로 놓아둔다.신격진대 : 원당의 주신으로 진대는 뱀서낭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마을 사람들은 진대와 상극인 돼지를 사육하지 않다. 돼지고기를 먹고는 배도 타지 않는다. 풍어를 관장 한다. 형태는 없다.성주 : 파란 색 도포를 입었으며 칼집에 담아진 칼을 들고 있다. 구체적인 기능은 알 수 없고 산신당에 모셔져 있다.군왕 : 한 사람은 칼을 높이 쳐들고 있고 한 사람은 허리에 찬 칼을 잡고 있다. 구체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산신당에 모셔져 있다.삼불제석님 : 세 사람이 똑 같은 옷을 입고 있으며 가운데 사람은 고깔을 쓰지 않았다. 산신당에 모셔져 있으며 구체적인 기능은 알 수 없다.신화제의의 유래로는 아주 오랜 옛날 짙은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밤에 출어를 한 황도리 어선들이 항로를 잃고 표류할 때 지금의 당산(제당이 있는 곳)에서 밝은 불빛이 귀로(歸路)를 밝혀 모두 무사히 귀항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자신들을 보살펴준 신성한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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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당제
    충남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당제   제명 : 당제신격 : 당각시,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 지신제당 : 자연제당(소나무 두 그루 아래 석축)일시 : 음력 1월 15일개괄수룡동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고 있다. 본래 항구마을의 전통을 유지하던 이곳은 홍성 서부와 보령 천북을 연결하는 방조제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포구로써의 역할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수룡동 사람들은 마을의 전통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룡동 당제는 6?25전쟁시 황해도로부터 들어온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겪는다. 즉 충청도식 당제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당제의 규모나 웅장함, 그리고 배치기 노래의 리듬 등 황해도 지역의 문화현상들이 첨가된 것이다.제의내용당제는 마을 뒷편의 당산에서 지낸다. 당집은 자연제당으로, 소나무 두 그루 아래에 석축을 쌓아 평평하게 만들어 놓았다. 당신(堂神)은 당각시?당할아버지?당할머니?산신?지신으로 오당(五堂)을 모시는데, 주신은 서해의 용왕신인 당각시이다.당제를 앞두고 당주를 선출한다. 본래 깨끗한 사람 중에서 생기복덕을 보아 당주를 선출하였으나, 근래에는 이장이 당주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당주 이외에 당제의 축원을 해줄 경쟁이(經巫)도 함께 부른다. 당주가 선출되면 마을의 이곳저곳을 깨끗이 청소한다. 당주집 대문에는 금줄을 꼬아 달고, 황토를 피워 놓는다. 우물도 깨끗이 품어서 뚜껑을 덮어놓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정월 초닷새 경에 걸립을 하여 제비를 마련하는데, 이를 ‘당추렴’이라고 한다. 각 가정에서는 일정량을 납부하며, 선주(船主)들은 배의 규모에 따라 성의껏 내 놓는다. 제비가 마련되면 제물을 장만하기 위해 광천장으로 나간다. 장은 당주가 정갈한 사람을 정하여 나가도록 하는데, 수고비는 이틀 일당으로 따져서 준다. 구입해 온 제물은 당주집에서 장만한다. 제물은 소머리?백설기?팥시루?삼색실과?포?술 등이며, 다섯 당의 몫을 각각 따로 마련한다.제일 전날이 되면 당제에 앞서 ‘물 달아오기’를 행한다. 수룡동은 물이 부족한 지역으로, 부근에서 가장 높은 천마산 줄기의 산에서 솟는 샘물을 병에 담아서 병 입구를 솔잎으로 막아 거꾸로 들고 마을로 돌아온다. 이는 솔잎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천마산의 풍부한 수량을 마을로 옮긴다는 믿음으로 행한 것이다.열 사흗날 아침 선주들은 소유한 배의 수만큼 안마당이나 대문에 뱃기를 세워 놓는다. 밤이 되면 이 뱃기를 가져다가 당주집 마당(요즘은 마을회관)에 세워 놓는다. 이윽고 보름날 아침 무당이 간단히 비손을 하여 당제의 시작을 알리고, 마을사람들은 풍장을 울리며 당에 오른다. 당에 오를 때에는 횃대를 든 당주-풍물패-무당-제물을 든 사람-뱃기를 든 선주의 순으로 행렬을 지어 오른다.당에 도착하면 먼저 무당이 부정풀이를 한다. 부정풀이가 끝나면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본제를 지낸다. 본제는 무당이 독경을 하는 가운데 선주들이 들어와 절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당은 경 서너 석(席)을 읽고 나서 당산소지-대동소지-당주소지-선주 소지를 올린다. 이어 선주들이 차례로 복(福)돈을 놓고 절을 하면 소지를 올려주고, 제주(祭酒)?백설기?고기?길지 등을 나누어준다. 선주들은 이 제물을 길지에 싸서 당산에서 기를 내릴 때 뱃기 끝에 매단다. 이렇게 본제가 끝나면 선주들은 매달아 자신의 기를 가지고 당산 바로 아래의 선착장 앞에 다시 세워 놓는다.당제가 끝나면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는 경쟁이와 당주 내외 등 약 여섯명 가량이 참여한다. 당산에서 바라볼 때 오른편의 바닷가에서 행하는데, 제물은 백설기?명태포?술?과일?메?탕?김 등으로 간단하며, 술은 세 잔을 따라 놓는다. 무당이 바다를 향해 징을 울리며 경문을 외는 동안 당주가 절을 올린다. 무당의 축원이 끝나면 메?떡?탕 등을 한데 섞어서 김이나 길지에 싸서 주먹밥처럼 동그랗게 만든다. 그리고 과일 등과 함께 이것을 바다에 던진다. 용왕제가 끝이 나면 무당과 당주 일행은 선착장으로 와서 뱃기에 축원을 해 준다. 선주들이 쌀이 담긴 함지박에 뱃기를 꽂으면, 무당이 축원을 해준다. 무당의 축원이 끝나면 선주들과 그 부인들은 뱃기와 제물을 가지고 각자 자신의 배로 가서 뱃고사를 지낸다.뱃고사의 제물은 집집마다 대동소이하지만, 대개 시루?과일?조기?고기 등을 마련한다. 제물은 배 중앙(함판)에 차리며, 고사를 지낸 다음에는 기관실 등에 제물을 떼어놓는다. 그리고 술?떡 등의 제물을 바다에 흩뿌리며 해를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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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비금면 내월리 내촌마을 당제와 거릿제
    전남 신안군 비금면 내월리 내촌마을 당제와 거릿제제명 : 당제, 거릿제신격 : 선왕신(서낭신), 잡신제당 : 선왕신 중턱의 동자상, 마을 입구 거리일시 : 음력 1월 14일~15일개괄내촌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흩날 자정부터 정월 보름 새벽 2시까지 당제와 거리제를 지낸다. 당제의 제신은 마을 뒷산의 이름과 같은 선왕신(서낭신)으로, 마을의 풍농과 평안, 객지에 나간 사람의 무사고 등을 기원한다. 선왕신의 영험은 당제를 정성껏 지내면 제관의 꿈에 여신이 나타나고 잘못 지내면 엉뚱한 잡신들이 나타나 이상한 징조를 보인다는 이야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제를 지낸 후에 임자 없이 떠도는 잡신들을 달래기 위해 거리제를 지낸다.제의내용비금면 소재지인 덕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km쯤 되는 곳에 내촌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 외촌, 서로 산너머 서해 바다, 남쪽으로 전답지를 건너 내포와 월포, 북쪽으로 고서리 서산마을과 접해 있다. 마을 뒷쪽에 있는 선왕산(해발 255m)의 형태가 소쿠리처럼 생겼고 가장 안쪽에 마을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안동네 또는 내촌이라 부른다.내촌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흩날 자정부터 정월 보름 새벽 2시까지 당제와 거리제를 지낸다. 당제의 제신은 마을 뒷산의 이름과 같은 선왕신(서낭신)으로, 마을의 풍농과 평안, 객지에 나간 사람의 무사고 등을 기원한다. 선왕신의 영험은 당제를 정성껏 지내면 제관의 꿈에 여신이 나타나고 잘못 지내면 엉뚱한 잡신들이 나타나 이상한 징조를 보인다는 이야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제를 지낸 후에 임자 없이 떠도는 잡신들을 달래기 위해 거리제를 지낸다.내촌 당제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그 딸은 선왕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끝내는 죽고 말았다. 그후 딸의 원혼이 울면서 마을을 돌아다녀 주민들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선왕신으로 모시고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당제는 선왕산 중턱에 있는 동자상 앞에서, 그리고 거리제는 마을 입구 길에서 지낸다. 원래 당제는 선왕산 중턱 두 개의 바위 틈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1947년 이 마을 유지인 유용덕씨가 이 곳 두 개의 바위 사이에 동자상을 세웠고 이 상이 당제의 신체가 되었다. 이 동자상은 높이 100㎝, 둘레 64㎝, 얼굴길이 26㎝에 머리에는 16㎝ 높이의 관을 쓰고 있다. 한편 왼손을 오른손 위로 하여 양손을 가슴 위에 얹고 있으며 미소를 머금은 넓적한 얼굴에 비취색의 구슬로 눈을 만들어 박아 놓았다. 동자상의 전면 기단부에는 이 상의 걸립연대와 「선왕산 신령지위」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제장 바로 밑에 맞배함석지붕으로 된 당집이 있다. 당집은 원래 기와지붕이었다가 낡아서 쓰러져 가던 것을 몇 년 전에 보수하면서 함석지붕을 얹었다. 당집 내부는 방 1칸, 부엌 1칸이 있고, 방에는 시렁을 두어 제의 시에 사용하는 제기들을 정돈하여 놓았다.신화옛날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그 딸은 선왕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끝내 죽고 말았다, 그 후 딸의 원혼이 울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니, 주민들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선왕신으로 모시고 당제를 지냈다.* 참고문헌 :『신안군의 문화유적』 221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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