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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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墳墓 4성 분묘 장의사별자리
    墳墓 4성 분묘 장의사별자리분묘는 장의사 별자리로 죽거나 장례 지내는 일을 주관한다. 분묘는 네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2. 墳墓 4성 분묘 장의사 별자리1. 서북성 π Aqr-물병2. 중성 ζ Aqr-물병3. 서남성 γ Aqr-물병4. 동남성 η Aqr-물병[조선왕조실록]《 단어 검색 - 墳墓星[전체]...8 》명종 10년 1 건(1555년)명종 17년 1 건(1562년)명종 21년 1 건(1566년)인조 3년 1 건(1626년)인조 6년 1 건(1629년)인조 19년 1 건(1642년)숙종 30년 1 건(1704년)숙종 31년 1 건(1705년)관련이야기북두칠성의 한 별, 베리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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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外屛 7성 외병 뒷간가리개별자리
    外屛 7성 외병 뒷간가리개별자리외병은 측간 별자리인 천혼을 가리는 병풍이니, 바로 측간 가리개 별자리이다. 하늘나라 천신들도 부끄러움을 탈 줄 아는가 보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보는 것만으로 안심이 안 되는지 가리개까지 둘렀다.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진 외병은 생긴 모양도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측간 별자리를 충분히 가리고도 남는다. 주로 더러운 오물을 막거나 감추는 일을 주관했다.7. 外屛 7성 외병 뒷간가리개 별자리1. 서제1성 δ Psc-물고기2. 서제2성 ε Psc-물고기3. 서제3성 ζ Psc-물고기4. 중성 μ Psc-물고기5. 동제3성 ν Psc-물고기6. 동제2성 ξ Psc-물고기7. 동제1성 α Psc-물고기[조선왕조실록]《 단어 검색 - 外屛星[전체]...20 》성종 02년 .... 6 건(1471년)성종 03년 .... 2 건(1472년)중종 29년 .... 1 건(1535년)중종 30년 .... 1 건(1536년)명종 09년 .... 1 건(1554년)명종 10년 .... 1 건(1555년)명종 11년 .... 1 건(1556년)명종 14년 .... 1 건(1559년)명종 15년 .... 2 건(1560년)인조 03년 .... 1 건(1626년)인조 18년 .... 1 건(1641년)숙종 27년 .... 1 건(1701년)영조 13년 .... 1 건(17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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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신앙 : 인간중심성 - 삶의 세속적 욕구를 보여주는 판타지
    민속신앙 : 인간중심성 - 삶의 세속적 욕구를 보여주는 판타지입춘대길 여러 장승민속 신앙의 제의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신을 달래고 위로하여 화를 피하고 복을 바라는 인간중심적인 목적에서는 공통적이다. 계급 사회의 제도적 차별로 인해 늘 상대적으로 빈곤하면서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하층민들은 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이 큰 문제였다.따라서 그들이 신에게 가정의 행복을 빌고 생업의 번창을 소망했던 욕망들은 인간의 내면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종교의 실존적 요구만큼 절실하고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의 점지를 위해 삼신할매를 섬기는 신앙,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언가를 예측하고자 하는 점복 신앙, 자연과 조상의 혜택을 누리고자 했던 풍수 신앙, 풍어를 바라거나 재앙을 피하고자 하는 도깨비 신앙 등을 살펴보면 신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보다는 인간 삶의 세속적인 욕구들이 민간 신앙을 유지하고 계승해온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특히 한국의 도깨비 신앙은 반신반인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욕망하고 소망하는 판타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분히 인간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도깨비는 잡귀인 동시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천연덕스럽게 욕망을 표현하는 짐승의 성정도 가지고 있다. 부와 재물과 행운을 얻고 싶어 하는 서민들의 일상적 욕망이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해내는 잡귀로서 도깨비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지켜야 할 많은 규범들과 책임들이 삶을 짓누를 때, 한국인들은 도깨비를 통해 일상과 사회적 금기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일탈을 꿈꿔왔다. 한국인들이 도깨비에 ‘김씨’라는 성을 붙여주면서까지 우리 생활을 맴돌게 했던 이유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때로는 심술을 부리다가 때로는 신명나서 이웃을 도와주는 도깨비의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그는 인간과 같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끼는 존재이며, 인간의 흉내를 내며 인간을 놀리기도 한다. 화가 나면 무엇이든 집어던지거나 고함을 지르고 여자 꾀임에 빠졌다가 배신당하는 멍청한 존재이기도 하다. 게다가 도깨비는 변신의 천재다. 형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사발 깨지는 소리나 기와장 깨지는 소리, 그릇을 씻는 소리 등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소리로 스스로를 드러낸다.음주가무를 즐기고 내기를 좋아하며 인간을 괴롭히는 심술쟁이이기도 한 도깨비이지만, 그러한 특성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도깨비의 모습일 뿐, 인간을 해치고 악행을 저지르는 위협적인 존재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한민족은 도깨비를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믿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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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무안군 해제면 덕산리 내분마을 당산제
    전남 무안군 해제면 덕산리 내분마을 당산제                   제명 : 당산제신격 : 당산할머니제당 : 마을 뒤 당산나무일시 : 음력 1월 15일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내분마을의 당산제는 줄다리기 후 진행된다. 마을 가운데로 나 있는 도로에서 줄다리기를 한 후 그 줄을 들고 당산으로 이동한다. 들고 온 줄을 당산에 감고 제사를 지낸다. 본 음성자료는 내분마을 당산제의 축문고축소리이다.개괄내분마을의 당산제는 줄다리기와 함께 진행된다.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샘거리의 우물에서 샘거리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한다. 줄은 외줄로 만들고, 다 만들어진 줄을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 줄다리기를 마친 후 줄을 들고 마을 뒤 언덕에 있는 당산나무로 가서 줄을 감는다. 줄을 감고 나서 당산할머니의 신체인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낸다.제의내용1) 제당의 구성과 신격내분마을의 동제는 당산제로 불린다. 당산제로 통합되어 있으나 실제는 당산제와 샘거리제로 분리되어 있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에서 샘거리제를 지낸다. 당산나무는 마을 서쪽의 덕림마을과 경계지점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가 서있는 곳은 마을 뒤편에 속하고 마을 주거공간에 비해 높은 위치이다. 덕림마을과는 비교적 좁은 콘크리트 길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간에 당산나무가 서 있다. 당산나무의 신격은 당산할머니이다.2) 제의 준비당산제는 매해 정월 15일 아침에 지낸다. 당산제일이 가까워지면 마을 사람들 중 깨끗한 사람을 뽑아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당산제를 지낼 사람과 샘거리제를 지낼 사람을 별도로 선정한다. 당산제를 지낼 사람 3명과 샘거리제를 지낼 사람 3명을 선정한다. 예전에 잠시 당산제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후로는 마을회관에서도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제사를 지낼 사람 3명을 별도로 선정하기도 한다. 2006년 당산제에서는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아 제관을 별도로 선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제장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는데, 지금은 별도로 금줄을 치지 않는다.제관이 선정되면 각 초헌관에 해당하는 사람은 제물을 준비한다. 제수의 구입은 주로 무안읍이나 해제면에서 사온다.3) 제의 진행정월 15일 아침이 되면 마을 가운데 있는 샘거리에서 제사를 지낸다. 여기서 지내는 제사를 샘거리제라고 한다. 샘거리라는 명칭은 마을 가운데 유일한 공동우물이 있기 때문에 지어진 명칭이다. 공동우물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초헌관 - 아헌관 - 종헌관 순서로 재배를 하면서 제를 지낸다. 이후 줄다리기 할 줄을 만든다. 줄을 만들 짚은 본래 가가호호에서 몇 뭇씩 걷는데, 요즘은 축산업을 하는 집에서 가져온다. 줄을 가져오면 3가닥씩 9가닥으로 외줄을 만든다. 줄이 다 만들어지면 여자편과 남자편으로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줄다리기를 마친 후 줄을 들고 당산으로 이동한다. 이동 순서는 매구꾼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어깨에 줄을 매고 따른다. 당산에 도착해서 바로 줄을 감는다. 당산에 줄을 감는 것을 당산할머니 옷입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줄을 감는 방향은 반시계방향이다.당산나무에 줄을 감은 후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의 제물은 가정의 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돼지머리와 시루떡을 꼭 준비해야 한다. 제의 절차는 분향 - 강신배 - 초헌 - 아헌 - 종헌 - 고축 - 소지의 순이다. 제사를 모두 마치면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제당의 형태위치 : 마을 뒤편에 위치한다.재질과 형태 : 당산나무는 마을 서쪽의 덕림마을과 경계지점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가 서있는 곳은 마을 뒤편에 속하고 마을 주거공간에 비해 높은 위치이다.특징 : 내분마을의 동제는 당산제로 불린다. 당산제로 통합되어 있으나 실제는 당산제와 샘거리제로 분리되어 있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에서 샘거리제를 지낸다. 당산나무는 마을 서쪽의 덕림마을과 경계지점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가 서있는 곳은 마을 뒤편에 속하고 마을 주거공간에 비해 높은 위치이다. 덕림마을과는 비교적 좁은 콘크리트 길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간에 당산나무가 서 있다. 당산나무의 신격은 당산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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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방적제
    남방적제▒ 남방적제 : 증장천(增長天)비루다카라는 인도어는 ‘자꾸 늘어난다’ ‘자꾸 확대된다’ 는 뜻을 가진 말이므로 增長天이라고 한역된다. 증장천은 굼반다와 프레타라는 귀신을 데리고 수미산 남쪽 중턱에 자리한 유리(瑠璃) 라는 곳에 머물며 불법을 지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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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헌신
    문헌신▩ 인간세계 창조 및 고대국가 신화와 관련된 신들의 계통도이 계보도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정통 역사서에 나오는 신화적 존재들 뿐만 아니라 재야사학자들이 신봉하는 다양한 문헌들을 참고하여 천제와 마고를 정점으로 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와 연결되는 신화적 존재들을 하나의 계보로 재구성한 것이다.▩ 참고문헌김준기, 『신모신화연구』, 경희대 박사학위논문, 1995.위앤커(저), 전인초․김선자(역), 『중국신화전설』1, 민음사, 1999.박제상 원저, 윤치원 편저, 『부도지』, 대원출판, 2002.전인초, 정재서, 김선자, 이인택, 『중국신화의 이해』, 아카넷, 2002.한상수, 『한국인의 신화』, 문음사, 1980.임승국 번역 및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대야발, 『단기고사』, 출판사 불명, 1949.임재해,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천재교육, 1995황원갑,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 책이 있는 마을, 2002김정배, 『한국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 고려대학교출판부, 1987유엠 부찐, 『고조선』, 국사편찬위원회, 1986윤이흠 외, 『단군』,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이기백, 한국고대사론』, 탐구당, 1975이지린, 『고조선연구』, 학우서방, 1963이형구, 『단군과 고조선』, 살림터, 1999김기홍, 『천녀의 왕국 신라』(창작과 비평사, 2000)윤철중, 『한국의 시조신화』(보고사, 1996)『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삼국사기』『삼국유사』『동명왕편』『제왕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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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신신앙 : 집지킴이신 - 따로 또 같이 한 가정을 보살피다
    가신신앙 : 집지킴이신 - 따로 또 같이 한 가정을 보살피다전통주거지 한옥내부민속 신앙의 범주에 드는 가신 신앙은 교조도 없고 교리도 희박한 자연 종교로서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동안 서민들의 삶 속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택신(家宅神) 또는 가신(家神)이란 집안의 여러 장소를 각자 맡아 그곳을 수호하고 있는 모든 신을 말하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행운을 준다고 믿어지고 있다.이들 지킴이 신들은 그 집 식구들만의 가정에 깃들어 있는 신으로 신력 또한 그 가족에게만 한정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웃집의 가택신을 정성껏 받든다고 해서 복을 받을 일이 없고 반대로 옆집의 가택신에게 불경스럽게 대했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즉 자신의 집과 가정만을 지켜주는 제한적인 특성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지킴이신을 신성시하는 신앙행위는 더욱 각별하고 정성스러울 수밖에 없다.가신들은 집의 내외부에 존재하면서 자신만의 특정한 영역을 점유하면서 인간사에 관계한다. 가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들보에는 성주신이 존재하며, 큰방에는 삼신과 조상신,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다. 집의 바깥쪽을 살펴보면 마당에는 터주신이, 우물에는 용왕신이, 광에는 업신이, 뒷간에는 측간신이 존재한다.그밖에 장독대신, 외양간신 등이 각기 자기 자리를 잡고 있어 그 구역을 담당한다. 이들 지킴이 신들은 집안의 요처에서 각기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그 가정의 길흉화복과 수명장수를 돕는 기능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돕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지도 않고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지 않는 독자적이고 고립적인 특성을 보인다. 성주신이 가택을 총괄하는 큰 신으로 가부장적인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신들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이렇듯 집지킴이 신들은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독자적인 신력을 발휘하면서 신령스러운 구실을 하지만, 항상 인간들의 근처를 맴돌면서 인간들의 제사를 받아먹으며 관계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명모를 풍기기도 한다. 가신들을 위해 치르는 제일은 주로 명절날의 아침과 매월 초사흗날일이다. 지방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설과 정월 대보름, 추석명절과 동짓날 등 사람들은 제상위에 따로 가신들을 위한 음식을 차려 놓고 집안의 안녕과 식구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참고자료김형주,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민속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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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司危 2성 사위 교화별자리
    司危 2성 사위 교화별자리사위는 하늘나라의 신하로 나라의 안위를 주관하는 교화 별자리이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기도 하며, 아랫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천계의 관리인이다. 두 개의 별로 이루어진 사위는 허수의 위에 위치한다.4. 司危 2성 사위 교화 별자리 β Equ-조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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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수(胃宿)의 개요
    위수(胃宿)의 개요천고마비의 계절이자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에 뜨는 별이 바로 위수다. 사신 가운데 서방 백호의 몸통에 해당하는 별인 위수. 28수 중의 제 17수에 해당한다. 서양의 황도 12궁에서는 황소자리에 속한다.동양에서 황소는 바로 벼농사와 관련이 많은 동물이다. 풍요의 계절에 황소는 가을걷이한 볏짚단을 가득 싣고 밤하늘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밥통 위(胃)자 위수(胃宿)는 하늘주방 별자리이다. 오곡을 수확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그리고 가을걷이로 거두어들인 곡식은 바로 위수곳간 별자리인 천균에 저장해 둔다. 수확한 기장 역시 기장창고 별자리인 천름에다 저장을 한다. 하지만 가을철이라고 재해로부터 안심할 수가 없다. 마지막 수확을 시샘하는 홍수가 일어나니 그 홍수를 주관하는 별이 바로 적수요, 홍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역할의 별자리가 바로 천선이다. 이래저래 위수는 곡식이나 음식과 관련이 많은 별 같다.또 위수에는 시체별자리 적시도 있다. 시체가 생기면 바로 묘지기 별자리인 대릉이 이를 거두고 무덤에 안치하는 일을 담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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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危 3성 위 하늘창고 별자리
    危 3성 위 하늘창고 별자리위수(危宿)는 하늘시장에 지은 집으로 물건들을 잘 보관하는 하늘창고 별자리이다. 위수는 물건의 보관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게 있으니, 허수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게 되어 곡을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또한 무덤과 관련된 일을 주관하며, 묘당이나 사당을 담당하는 관리가 되기도 한다.서양 : 페가수스 자리, 물병 자리세 개의 별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위수는 페가수스와 물병자리에 걸쳐져 있다. 페가수스 자리와 물병 자리는 모두 가을철 밤하늘의 별자리이다. 특히 페가수스 자리는 천마의 몸통이 사각형을 이루고 있어 가을밤 하늘의 대사각형이라고도 한다.※ 참고 ● 물병자리1. 危 3성 위 하늘창고 별자리1. 거남성 α Aqr-물병2. 중성 θ Peg-페가수스3. 북성 ε Peg-페가수스[조선왕조실록]《 단어 검색 - 危星[전체]...90 》세종 12년 1 건(1430년) 세종 13년 1 건(1431년)성종 21년 5 건(1490년) 성종 25년 1 건(1494년)연산 9년 1 건(1503년) 중종 23년 1 건(1529년)중종 25년 1 건(1531년) 중종 28년 1 건(1534년)중종 30년 3 건(1536년) 명종 3년 2 건(1548년)명종 6년 1 건(1551년) 명종 9년 3 건(1554년)명종 10년 1 건(1555년) 명종 11년 5 건(1556년)명종 14년 1 건(1559년) 명종 15년 1 건(1560년)명종 17년 1 건(1562년) 명종 18년 2 건(1563년)명종 20년 2 건(1565년) 명종 21년 1 건(1566년)선조 26년 1 건(1593년) 선조 29년 1 건(1596년)선조 33년 1 건(1600년) 선조 39년 1 건(1606년)인조 4년 1 건(1627년) 인조 6년 1 건(1629년)인조 7년 1 건(1630년) 인조 13년 1 건(1636년)인조 14년 1 건(1637년) 인조 15년 1 건(1638년)인조 16년 1 건(1639년) 인조 17년 1 건(1640년)인조 18년 1 건(1641년) 인조 19년 1 건(1642년)인조 22년 2 건(1645년) 인조 24년 1 건(1647년)숙종 2년 2 건(1676년) 숙종 6년 3 건(1680년)숙종 8년 1 건(1682년) 숙종 10년 3 건(1684년)숙종 12년 3 건(1686년) 숙종 13년 2 건(1687년)숙종 22년 1 건(1696년) 숙종 26년 1 건(1700년)숙종 29년 1 건(1703년) 숙종 32년 1 건(1706년)숙종 33년 1 건(1707년) 숙종 34년 1 건(1708년)숙종 36년 1 건(1710년) 숙종 39년 2 건(1713년)숙종 44년 1 건(1718년) 영조 5년 1 건(1729년)영조 7년 1 건(1731년) 영조 9년 1 건(1733년)영조 12년 1 건(1736년) 영조 13년 1 건(1737년)영조 15년 1 건(1739년) 영조 17년 1 건(1741년)영조 22년 1 건(1746년) 영조 35년 1 건(1759년)영조 36년 1 건(1760년) 영조 40년 1 건(1764년)영조 45년 1 건(1769년) 영조 49년 1 건(1773년)정조 9년 1 건(17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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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고
    마고마고1.1. 민간전승 속의 마고할미1.1.1 신모적(神母的) 창조주로서의 마고할미보통 마고(마귀)할미 전승은 해남, 옹진, 강화 등 주로 해안 도서지방에서 현재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지역전설로서 거인신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전승으로는 제주도의 선망대(설문대) 할망이나 안가닥 할미 전승이 있으며, 내용이나 성격상 다를 바가 전혀 없으므로 보통 여성거인전승(女性巨人傳承)으로 통칭한다. 이러한 거인전승은 단순한 지역전설로서 별다른 서사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고할미의 키나 덩치가 커서 제일 깊은 바다가 무릎이나 속곳에 닿았고, 흙을 모아 산과 섬 등을 만들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대표적으로 강화도의 전승과 제주도의 전승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마귀할멈이 온 바다를 다 돌아다녀도 발등에 찰 물도 안 되었는데, 외포리 정포에 다다르니 정강이까지 쑥 들어가므로 ‘아이쿠 여기가 정통이구만’ 하였다. 그래서 거기가 정포가 되었다고 한다.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끝은 바닷물에 잠기어 물장구를 쳤다. 그리고 빨래를 할 때만 하여도 한쪽 발은 한라산, 또 한 쪽은 관탈섬을 디디었다. 그리고 서귀포 법환리의 앞바다에 있는 섶섬에는 커다란 구멍이 두 개가 뚫려 있는데, 이것은 이 할머니가 누울 때에 잘못 발을 뻗쳐 생긴 것이라 한다.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베고 누워 한 다리는 서해에, 또 한 다리는 동해에 두고 손으로 땅을 훑어 산을 만들었다고 해요. 마고할미의 오줌은 강이 되고, 둑을 쌓기 위해 돌을 나르다 치마폭을 뚫고 떨어진 돌들은 여기 저기 작은 섬들이 되었다고 한다.한편, 위와 같이 세속화된 양상 뒤에는 창조주로서의 자격이 부여된 거인신화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특히 제주도 설문대 할망 전승에 그러한 모습이 잘 보이고 있는데, 보통 거인신화는 세계 도처에 광범위한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의 반고(盤古)신화 역시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반고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천지가 분리되기 이전 우주의 모습은 다만 어둑한 한 덩어리의 혼돈으로 마치 큰 달걀과 같은 것이었다. 인류의 시조 반고가 바로 이 큰 달걀 속에서 잉태되었다. 그는 큰 달걀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곤하게 잠자며 1만 8천 년을 지냈다. 어느 날 그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보이는 것은 흐릿한 어둠뿐이었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던 것이다.그는 그 상황에 대하여 몹시 고민하다가 화가 나서 어디서인지 큰 도끼를 하나 가지고 와서 눈앞의 어두운 혼돈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들리는 것은 다만 산이 무너지는 듯한 와르르 소리뿐, 큰 달걀은 드디어 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가볍고 맑은 기운은 점점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뒤섞여 있어 갈라지지 않았던 하늘과 땅은 반고의 도끼질 한 번 때문에 이렇게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이 갈라진 후, 반고는 그 하늘과 땅이 다시 붙을까봐 걱정이 되어 머리로는 하늘을 받치고, 다리로는 땅을 누르고 그 중간에 서서는 하늘과 땅의 변화에 따라 자신도 변화해 갔다. 하늘이 매일 한 길씩 높아지고 땅은 매일 한 길씩 낮아지니, 반고의 키도 역시 매일 한 길씩 자라났다. 이렇게 1만 8천 년이 지나니 하늘은 높아지고 땅은 낮아졌으며 반고의 키도 크게 자랐다. 그리하여 반고의 키는 9만 길이나 되었다. 이 거대한 거인이 마치 큰 기둥과 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버티고 서 있어서 하늘과 땅이 다시는 어두운 혼돈으로 합쳐지지 못하게 하였다.그가 고독하게 그곳에 서서 하늘을 떠받치는 힘든 기둥 노릇을 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이제 하늘과 땅의 구조가 견고해져 다시는 하늘과 땅이 합쳐 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을 때, 반고는 휴식이 필요해졌고 마침내는 인류와 마찬가지로 쓰러져 죽어갔다.그가 죽어갈 때, 그의 몸에는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숨길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로 변했으며,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쪽 눈은 달로 변했다. 손과 발, 그리고 몸은 오방의 빼어난 산이 되었고, 피는 강물이 되었으며 핏줄은 길이 되었다. 살은 밭이 되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별로, 피부와 털은 화초와 나무로 변하였고, 이, 뼈, 골수 등은 반짝이는 금속과 단단한 돌, 둥근 진주와 아름다운 옥돌로 변했다. 쓸모없는 몸의 땀조차도 이슬과 빗물이 되었다.반고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거인신화는 대개가 천지창조와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거인전승이 대부분 남성 신격임에 비하여 한국의 경우는 마고할미 전승과 같이 여성신격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마고전승과 같은 여성 거인신화는 해안지방에서 주로 전승되는 것이므로 애초 수신(水神)으로서의 신격을 지난다고 보여지는데, 이는 삼국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유화(柳花), 알영(閼英) 등이 모두 수신의 자격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고대의 神母와 연관지을 수 있다. 특히 물은 대지를 낳는 양수(養水)로서의 원초적 카오스의 상태를 상징하므로 반고신화의 계란과 같은 혼돈상황과 대칭을 이루는 상징의미를 지니며, 신모 또한 대지의 어머니로서 생산력의 상징이므로 여성 수신을 통해 천지가 발생한다는 신화적 발상 또한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발상은 중국의 경우 고대의 성모녀(聖神女)로서 만물을 만들어낸 여와(女媧)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자전(字典)에서 ‘여와는 옛날의 신성한 여인으로서 만물을 창조하고 길러낸 사람’이라고 적고 있으며, 중국의 신화에서도 여와의 인류창조와 하늘 메우기에 대한 신화가 전하고 있다.천지가 개벽한 이래, 대지에는 산과 냇물이 있게 되고 초목이 우거졌으며 새와 짐승들, 벌래와 물고기들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인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세상은 여전히 황량하고 적막하였다. 이 위를 거닐던 여와는 마음속으로 너무 고독하여 천지간에 무언가를 더 만들어 넣어야 생기가 돌 것 같다고 느꼈다. 생각 끝에 여와는 몸을 굽혀 땅에서 황토를 파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과 섞어 둥글게 빚어 인형과 같은 작은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을 땅에 내려놓자 희한하게도 곧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인간’이었다. 인간의 체구는 비록 작았으나 여와가 직접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여와를 닮았다. 여와는 자신의 이 아름다운 창조품에 매우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섞어 황토를 반죽하여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쁨과 놀라움을 느낀 여와는 이제 더 이상 쓸쓸하고 고독하지 않았다.여와는 인간들을 대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지는 너무 넓었다. 오랫동안 작업을 했지만, 그녀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일을 해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여와는 줄 하나를 구해다가 진흙탕 속에 넣고는 누런 진흙물을 적셔서 땅을 향해 한바탕 휘둘렀다. 그러자 진흙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떨어진 방울들이 모두 인간으로 변했다. 이 방법은 매우 간단했으므로, 얼마 되지 않아 대지는 인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여와는 어떻게 하면 인류를 계속 생존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였다. 인류는 죽어야만 하게 되어 있는데, 한 무리가 죽고 나면 새로 또 한 무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여와는 남자와 여자를 짝 지워서 스스로가 그들의 자손을 만들어내고 키우는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여와는 혼인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한국의 마고할미 유형의 전승 역시 이 여와신화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원시 모계사회에서 유래된 신모에 의한 천지창조담의 단편적 잔재형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마고할미의 신체 크기는 그녀의 신령스러움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는 할멈은 석탈해가 든 궤짝을 바다에서 끌어다가 육지로 옮겼는데, 그 궤짝은 길이 20척에 너비 13척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으므로, 아진의선 역시 거인의 여신적 존재였다. 따라서 마고할미와 같은 해안지방에 전승되던 여성거인 민담은 그 유래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신모계(神母系) 전승임에 분명하다. 한편 『후한서(後漢書)』에는 또한 남자가 살지 않는 여인국이 예맥의 동쪽 바다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에서도 바다와 여신의 신화적 연결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한국 고유의 전승임을 보여주고 있다.1.1.2 마고할미 전승의 지역적 성격마고할미 전승은 주로 제주나 강화, 해남 등 서해안과 남해안에 폭넓게 분포하지만, 지리산이나 동해안 삼척 근방에도 적지 않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리산 전승에서 마고할미는 천왕봉의 성모천왕이라는 인물이며 거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에 반해, 인근지역인 남해안과 부속도서에는 거녀인 마고를 인격화하여 수많은 지명 및 자연물의 형성과 연관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늑도의 돌다리, 종이섬의 종이다리, 비진도의 줄여와 폐왕성, 비진도의 마귀할멈바우와 같이 남해안 전역에 걸쳐 섬과 바위 등이 마고의 조화로 전승되고 있다. 여기서 마고는 역시 괴력의 소유자로 등장하고 있어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과 강화도의 마귀할미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 도서지역에서는 이러한 마고를 보통 당산신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살안당, 대방동당, 늑도당, 녹소당, 어온리당으로서 보통 마고의 한을 위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마고는 주민들을 위하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돌다리나 산성을 쌓다가 굶어죽거나 지쳐서 죽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전승 한 가지이다.옛날에 과부할멈이 있었는데, 힘이 장사였다. 바다 구경 차 늑도에 왔다가 이 섬이 살기 좋다고 해서 살다가 주민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해서 육지와 이어지는 돌다리를 놓아 달라 했더니, 이 할멈이 좋다 하고 지리산 산신령에게 아무리 써도 해지지 않는 질긴 가죽치마를 하나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산신령은 늑도로부터 돌아올 것을 명령하며 가죽치마를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할멈은 산신령의 명을 거역하고 치마에다 지리산의 돌을 날라 돌다리를 놓다가 그만 지쳐서 죽었다. 지금도 놓다 만 돌다리고 북쪽 바닷가에 있고 큰 바위를 ‘과부할멈서답돌’이라고 한다.위 이야기에서 마고가 산신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을 도왔다는 점에서 그 신격화가 당산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마고가 홀어머니 과부할멈이라는 사실이다. 즉 바닷가에 홀로 사는 과부할미의 恨과 이에 대한 연민이 마고와 연계되었던 것이다.다시 지리산의 마고전승을 살펴보면, 지리산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여신(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선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데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한편 동해안인 강원도 삼척․동해 지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마고할미 전승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마고할미가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격으로서 일정한 제향을 받으면서 신앙되고 있었던 토착신격으로 간주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1.2. 재야사학계의 마고에 대한 견해현재 일부 재야사학계에서는 지역전승에서 언급되는 마고를 실질적인 동이족과 한민족의 조상이자 최초의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비록 그 주장의 신빙성은 없으나, 그 내용을 통해 마고에 대한 상상력의 폭은 충분히 넓힐 수 있다.1.2.1. 천문학적 관점에서 본 마고의 개국연대재야사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천문학적 관점에서는 우주의 역사를 2000년 단위로 끊어서 2000년마다 한 시대로 보고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 사자궁시대, 거해궁시대, 음양궁시대, 금우궁시대, 백양궁 시대, 쌍어궁시대, 보병궁시대, 마갈궁시대, 인마궁시대, 천갈궁시대, 천창궁시대, 쌍어궁시대로 구분하는 12궁시대이다. 12궁시대는 12간지에서 나온 것으로, 사자궁시대는 자(子, 쥐)에, 거해궁시대는 해(亥, 돼지)에, 음양궁시대는 술(戌, 개)에, 금우궁시대는 유(酉, 닭)에, 백양궁시대는 신(申, 원숭이)에, 쌍어궁시대는 미(未, 양)에, 보명궁시대는 오(午, 말)에, 마갈궁시대는 사(巳해, 뱀)에, 인마궁시대는 진(辰,용)에, 천갈궁시대는 묘(卯, 토끼)에, 천창궁시대는 인(寅, 호랑이)에, 쌍어궁시대는 축(丑, 소)에 해당한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이라 한다.이 시대는 사자궁시대에 해당하며 12간지는 자(子)에 해당한다고 한다. 12간지의 자는 시작을 의미하며, 1년으로 치자면 동지에 해당한다. 동지는 겨울의 긴 밤을 끝내고 시작의 눈을 뜨는 때로서 역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 이고선이 쓴 심당전서(心堂全書) 단서대강(檀書大綱)의 삼황개국기(三皇開國紀)에는 환인 천제가 나라(桓國)를 세운 날을 360 갑자(甲子, 桓紀 9199년) 상달(上月) 3일이라고 하였다. 환웅 천왕이 나라(神市. 배달나라)를 세운 날도 4321년 갑자(神市紀 5898년) 상달 3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조선의 전신인 단국(檀國, 청구)을 자오지 환웅(치우천왕)이 세운 날도 신시개천 1261년 갑자 상달 3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왕검이 장가든 나라인 웅심국은 환인 천제의 대를 이어오는 나라로서 단군왕검의 처(하백녀)의 조부 천일태제(天一泰帝)의 나라였다고 한다. 천일태제는 한국개천 5941년, 신시개천 1621년, 단국개천 361년 되는 해를 갑자개천원년(甲子開天元年) 상달 3일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나라로 하였다고 한다.재야사학계에서는 환국, 신시, 단국, 배달나라 모두가 왕조를 세운 시대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상달 3일을 나라를 세우는 날로 잡았다는 것은 상달이 언제인가를 볼 줄 아는 천문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각 나라가 나라를 세운 당시에는 자월(子月, 11월)을 세수(歲首, 첫 달)로 삼고, 동지 날을 원일(元日, 첫 날)로 잡았으며, 동짓달을 시작한 달로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11월 상달(지금은 10월을 상달로 한다)을 여러 나라를 거쳐 오면서 수천 년 동안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마고의 개천년대와 개천일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14000~12500년 전 사이에 지구가 기상이변과 화산폭발로 인류가 전멸했으며, 이 때 살아남은 사람으로는 대서양 쪽에서는 멜기세덱과 태평양 쪽의 마고를 설정하고 있다.멜기세덱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와 있고, 마고는 『부도지(符都誌)』와 중국의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인류역사의 시작을 12간지의 자(子)로 본다면, 이때에 해당하는 12궁 시대는 사자궁 시대이다. 사자궁 시대는 약 12000년 전으로, 멜기세덱과 마고시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의 시발을 사자궁 시대에서 시작하면, 9199년 전에 환국을 세운 환인천제의 시대는 거해궁 시대에 해당하고, 5898년 전에 신시를 세운 환웅천왕의 시대는 금우궁 시대에 해당하며, 4333년 전에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시대는 백양궁 시대에 해당한다. 현재는 쌍어궁 시대를 지나서 이제 막 보병궁 시대로 들어섰으므로. 현재에서 과거로 12궁 시대를 역추적하면 마고시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마고의 개천연대는 12000년~12500년 전 인 BC10000년~BC10500년 상달 3일로 잡아야 한다고 한다.1.2.2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명 '마고지나(麻姑之那)'재야사학자들은 동이(東夷)는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며, '마고'가 신시를 세우고 그의 후손인 '황궁'과 '유인'과 '환인'과 '환웅'의 대를 이어 '황제'가 역사에 나오기 이전까지 중원 땅을 다스린 인종은 동이 이외에는 없었으며, 그들의 문명이 동이문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태초에 동북아시아에는 동이족만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천문을 시작하였고, 하늘에 제사 지내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시장을 열어 한 곳에 모이니 이를 신시(神市)라고 하였다 하였으며, '동이문명'의 탄생을 역경(易經)에서는 지화명이(地火明夷)에서 인용하였다. 그리고 그 뜻을 “땅위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 동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역경에서 동이의 '지화(地火)'가 사국(四國)을 밝힌다고 보고 지화, 즉 땅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 바로 문명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최초로 한 사람들이 동이라 하였다. 재야사학자들은 마고가 신시국을 세울 때, 후손을 하나로 결속시킨 사상이 바로 해혹복본(解惑復本)이었다고 한다. 해혹복본의 뜻은 “의혹을 풀고 원래대로 돌아가라"는 주의주장이다.한편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4국'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와 이들 세 나라에 기초를 두면서도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도 아닌 제3의 나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 '제4국'이 출현하지 않은 이상, 지금도 이 괘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보고 앞으로 생겨날 제3의 나라는 3국이 연합하여 만들게 될 미래형의 국가로 해석하였다.그들은 앞으로 <새로운 신시>를 탄생하게 할 뿌리가 될 시원문명(始原文明), 즉 새로운 시대를 밝힐 '지화'를 동이문명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 동이문명을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고 왜곡했다고 한다. 즉 황하문명이 한민족의 조상이 인류 최초로 탄생시킨 동이문명임을 모르고 한족문명(漢族文明)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그러한 오해가 생긴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 첫째는 한민족이 황하유역을 포기하고 한반도로 철수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민족이동으로 보고 있으며, 그 원인은 한민족의 조상이 중국민족과 겨루어 오면서 사실상 진시황 초기에 조선이 멸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에서 찾고 있다. 한편 두번째 이유는 동이가 마고지나(麻姑之那), 환국(桓國), 신시(神市), 조선(朝鮮)으로 국명이 바뀌면서 최초의 이름인 '마고지나'를 보전(保傳)해 오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마고지나'의 문명은 우리 최고의 조상인 '마고'에 의하여 시작되며,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이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때가 최초로 세운 신시국가시대였다고 한다. 신시국가는 오늘날의 국가체제와 다른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며, 그것을 초국가체제라 한다면 오가(五加)체제에서 마고시대의 초국가체제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고선이 쓴 ‘조선기’는 BC 2333년에 단군왕검이 그의 장인인 '지일태제(地一泰帝)로부터 '배달나라'를 인수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BC2311년에 ‘배달나라'가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가 불어나서 오가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재야사학자들은 마고지나가 우주의 원리라고 주장되는 삼태극 원리 위에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 삼태극의 원리는 음양조화의 원리이며, 이 원리를 원시신앙으로 발전시킨 존재가 바로 마고였다는 것이다. 삼신신앙의 기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이후 '조선'이 멸망하고 나서, '부여'가 건국되고, 이어서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이들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선포한 '고려'가 건국되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면서 여러 나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하였지만, 단 하나 사라지지 않은 것은 ‘마고지나'라는 나라 이름이었다고 한다. '마고지나(麻古之那)'란 '마고의 나라'라는 뜻이며, 그 증거가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있다고 한다. 더욱이 그들은 고려 때에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는 국명과 백성이 부르는 국명이 따로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고려는 외교문서에 나오는 국명이고, 백성이 부르는 진짜 이름은 마고지나(麻古之那)였다는 것이다.고려사 세가 충혜왕조에 ‘마고지나'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제28대 임금인 충혜왕은 조선의 연산군에 버금갈 만큼 타락한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충혜왕 역시 친원파들의 모략에 의하여 원나라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원나라로 압송되었다. 이후 왕은 원 황제에 의해 귀양을 명령받고 먼길을 떠나다가 중간에 독살당했다고 한다. 이 소문이 고려에 퍼져 백성들 사이에는 아야요(阿也謠)라는 노래가 유행하였다.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阿也 '麻古之那' 從今去何時來아아 '마고의 나라' 이제 떠나가면 언제 돌아오려나"재야사학자들은 여기서 마고지나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즉 당시 사람들은 고려가 국가로서 존립의 기반이 되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상실한 채 원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고려가 당나라에게 멸망한 고구려에서 나온 명칭이므로 고려가 언젠가는 당나라에게 멸망한 고구려의 전철을 밟게될 것을 두려워하였다고 본다. 따라서 고려의 백성들은 고려라는 명칭보다 마고지나라는 칭호를 선호하였으며, 마고지나는 마고가 인류 최초로 세운 신시나라였으므로 진시황 8년 조선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백성들은 역사적인 유물이 된 '마고지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고지나'는 언젠가 회복해야 할 고려 사람들의 근원상징(根源象徵)이며, 땅에서 우주의 중심과 일치하는 곳에 우리의 조상 마고 할머니가 세운 최초의 나라, 지금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나라였으며, 영토에 대하여 개념정립이 전혀 되지 않았던 나라,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모이는 사람들의 나라, 초국가적인 나라였다는 것이다.1.2.3 제주도에 대한 기록에서 확인되는 ‘마고지나’의 의미제주도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에서 갈라져 나간 섬이므로 옛 이름이 영주(瀛洲)라 한다.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영주산이 삼신산의 하나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000~12000년 전 사이 동이의 조상인 마고가 그의 후손과 함께 삼신산에 세운 신시(神市)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롯된다고 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옛 이름이 영주인 것은 마고지나의 사람들이 이 고장에 건너와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주’는 마고가 다스리던 '마고지나'의 삼신산(三神山)인 '영주', '방장', '봉래'의 세 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에서 기원한 명칭이라고 한다. 제주신화에 따르면 삼신이 이 고장의 시조인 고씨 양씨 부씨에게 시집을 옴으로써 비로소 영주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신화에 나오는 삼신은 태초의 삼신인 마고, 궁희, 소희 세 분의 후손이라고 한다.한반도 곳곳의 신화, 설화나 무가, 지명에 마고삼신이 남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 흔적은 다른 고장에선 대부분 깊이 파고 들어가야 찾아 낼 수 있으나, 제주에 남아 있는 것은 다른 고장에 남아 있는 것과 달리 기록과 구전으로 나타난 것들로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이라 쉽게 찾아진다고 한다. 먼저 역사기록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15세기에 간행된 고려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탐라현(耽羅縣)은 제주도 남쪽에 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났다.(지금 진산鎭山:한라산 기슭에 구멍이 있어, 모흥혈毛興穴이 라 하니, 이것이 그 땅이다) 맏이를 양을나(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고을나(高乙那)라 하고, 셋째를 부을나(夫乙那)라 했다.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 를 먹으며 살았다.하루는 자주빛 진흙으로 봉인한 목함(木函)이 동해빈(東海濱)에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석함(石函)이 있고, 붉은 띠를 두르고 자주 빛 옷을 입은 사자가 따 라와 있었다. 돌함을 여니 쪽빛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 사자이다.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해(西海) 중악(中嶽)에 신자(神子) 세 사람이 계셔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다고 하시며 신에게 명하여 세 따님을 모시도록 하므로 왔으니, 마땅히 배필 을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이 나이 차례에 따라 장가를 들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가 사시복지 (射矢卜地)하니, 양을나가 거쳐하는 곳을 제1도(第一都)라 하고, 고을나가 거쳐하는 곳을 제2도(第二都)라 했으며, 부을나가 거쳐하는 곳을 제3도(第三都)라 했다.이와 유사한 기록으로 세종 32년(1450년)에 간행한 영주지(瀛洲誌)에 실린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있다. 실린 내용은 고려사 지리지에 실린 것과 거의 같으나 다른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만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① '탐라'를 '영주'라고 하였다.② 세 처녀와 사자가 온 나라 '일본국'을 '동해벽랑국(東海碧浪國)'이라고 하였다.재야사학자들은 이 부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우선 국호에 관해서는 ‘탐라'는 북극성인 탐랑성에서 온 것이고, 영주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에서 온 것이므로 ’탐라'는 인류가 아직 대규모로 출현하지 않고 소수의 인종만 살았던 선천시대(先天時代, 지구의 회전축이 천추성을 향하기 시작한 천추성시대)부터 지명으로 쓰였다고 본다. 그리고 ‘영주'는 동이(東夷)의 시조인 '마고'가 삼신산 (三神山)에 신시(神市)를 열게 됨으로써 갖게 되는 이름이므로, 후천시대(後天時代)부터 쓰였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탐라'와 '영주'는 선천개천이냐, 후천개천이냐 하는 시대적 차이를 보이는 이름이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그리고 그들은 “『고기(古記)』에 이르기를"이라고 한 대목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기'는 옛 사서(史書)의 이름이므로 '고기'의 기록을 옮겨서 고려사를 편찬할 때, 당시 기록자들의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 곡필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려사 충혜왕조의 ‘마고지나(麻古之那)', 즉 ‘마고의 옛 나라’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고기'에 ’지나(之那)'가 '을나(乙那)'로 곡필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那)는 나라를 의미하므로, 고씨, 양씨, 부씨가 탐라(영주)의 시조인 만큼 이들의 나라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면, 마땅히 을나(乙那)를 지나(之那)로 고쳐서, 그 뜻을 '나라' 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고을나'는 ‘고지나', 즉 고의 나라가 되고, ‘양을나'는 ‘양지나'가 되고, ‘부을나'는 ‘부지나'가 된다.다음으로 재야사학자들은 세 신인과 세 처녀의 의미에 대해서 주목하였다. 이들과 관련된 3이라는 숫자는 이들이 '마고삼신(麻姑三神)'의 자식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즉 세 신인은 모흥혈(毛興穴)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모(毛)는 "털이 흰 소의 쇠꼬리"로 보아 무당이 쇠꼬리 춤을 출 때 들고 추는 쇠꼬리와 동일시하였으며, 혈(穴)은 쇠꼬리를 꽂는 구멍이라 간주하고, 흥(興)은 모를 구멍에 꽂아 일으켜 세웠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모흥혈은 춘분 맞이굿을 할 때 모를 꽂아 세우는 구멍이므로, 고, 양, 부 세 사람이 모를 꽂아 놓고 쇠꼬리 춤을 춘 곳이 모흥혈이 된다고 한다. 세 처녀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를 찾아 온 '마고삼신'의 후예임을 상징하며, 세 처녀가 가지고 온 것에는 종자 이외에 마고의 신표인 '천부삼인'과 '해혹복본'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록 그러한 기록은 문헌에는 보이지 않으나, 제주도 무가사설에는 드러난다고 하였다. 이 지역의 한 무가사설을 보면, “할로(한라, 漢拏) 영주(瀛洲) 삼신산(三神山) 상상고고리(上峰) …" 라는 대목이 있어 무가에서 한라산을 영주 삼신산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의 영등제는 2월 바람으로 오는 마고삼신을 맞이하는 굿으로, 영등제에 오는 마고삼신은 어디에서나 두 딸을 데리고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이 삼신이기 때문에 마고와 궁희와 소희가 함께 온다는 것이다.재야사학자들은 또한 마고가 삼신을 '할로 영주 삼신산'에 보낸 이유는 삼신신앙의 전파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부도지(符都誌)는 마고가 생존했던 시대에 지구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소위 “지구가 뒤집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현상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마고는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파견한 존재가 바로 삼신이라는 것이다. 마고는 선교사로 떠나는 삼신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보냈다고 하는데, 그 하나는 북두칠성과 해와 달을 신체로 모신 '천부삼인(天符三印)'이고, 다른 하나는 삼신시대의 삼신신앙의 교리인 '해혹복본(解惑復本)'이라고 한다. 이 천부삼인天符三印과 해혹복본解惑復本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원형의 교리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삼신들은 각지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해혹복본을 교리로 하는 삼신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동이는 마고가 가르친 '해혹복본'의 보호막 안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1.2.4 마고삼신의 상징물과 흔적들재야사학자들은 신시(神市)를 세워 동이의 최고 조상이 된 마고가 후손 중에서 여자 셋을 한 조로 묶어 사방으로 시집보냈다고 한다. 세 여자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여자를 마고라고 하고, 두 여자는 각각 궁희외 소희라고 하였으며, 이들은 삼신의 상징이고 삼신의 형상이었다고 한다. 시집을 갈 마고삼신은 방장(方丈)에서 삼신제(三神祭)를 지냈다고 하며, 그들이 시집가는 곳에 가지고 가는 것은 오곡의 종자와 삼신의 신표인 천부삼인이라고 한다.한편 그들이 건너간 땅을 영주(瀛洲)라고 불렀다 한다. 제주도의 토착어 중에 ‘바리’라는 말이 있는데, ‘바리’는 ‘발’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자로 ‘發’이라고 쓰며, 발은 곧 ‘神’을 신고 걸어다니는 발이므로, 즉 하느님을 싣고 다니는 발족(發足)이라는 말을 뜻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저술인 관자(管子)에서도 發은 동이라고 하였다.따라서 재야사학자들은 ‘바리’라는 말은 우리 민족이 동이임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단언한다. 상고시대에 발이 큰 사람을 대인(大人)이라고 하였으며, 대인은 주역에 보면, 하늘에서는 달을 뜻한다 하니, 달은 거녀(巨女)와 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자와 땅은 지모신(地母神)이 되므로, 영주에서 지모신은 곧 마고삼신인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과정을 신화화(神話化)하여 기록한 것이 제주도의 창세역사라는 것이다. 마고삼신을 받아들인 영주에서는 마고의 후손인 삼신을 보내주신 진짜 마고를 기억하기 위하여 추모제를 지내니, 이 제사가 바로 성주(星主)제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재야사학자들은 성주제사를 동이의 조상인 마고에게 드리는 제사로 보고 그 유습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전해 온다고 본다.한편 성주는 하늘에서는 직녀성이라고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직녀성은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 이전에는 지구 중력의 회전축을 관장하던 북극성의 지위에 있었던 별로 판단하고 마고시대, 즉 쌍녀궁(雙女宮)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직녀성이 북극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는 것이다.쌍녀(雙女)라는 문자를 분석해 보면, 쌍(雙)자는 새 ‘추’자가 겹쳐 있고, 밑에는 또 ‘우’자가 있다. 재야사학자들은 이는 새가 두 마리가 있는데, 여기에 또 한 마리가 더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따라서 새 세 마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새 세 마리를 마을 입구에 세운 솟대가 존재하며, 솟대에 앉은 새 세 마리는 '두 마리 새'에게 '한 마리 새'가 합류한 모양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문자로는 쌍여(雙女)를 의미하고, 이들은 영등바람을 타고 날아온 마고삼신을 상징하는 오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야사학자들은 쌍여궁시대를 바람을 타고 몰려오는 오리의 시대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솟대에 앉은 새들이 모두 오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리는 바로 삼신을 상징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마고삼신이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다는 의미와 연관시켰던 것이다.마고의 상징을 오리로 썼던 또 다른 이유는 오리를 의미하는 한자 鴨에서도 해답이 있다고 한다. 압(鴨)자를 분리하면 甲과 鳥로 나뉜다. 갑조(甲鳥)는 말 그대로 '세상에 처음 나온 새'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세상에 새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오리가 제일 먼저 나온 새'라는 의미로 파악하여, 인류의 조상이 되는 마고와 상통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마고가 '시집가는 마고삼신'을 수행하는 사자에게 오리를 들려 보내면, 오리가 마고의 징표임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솟대에 앉힌 세 마리의 오리는 그 마을 사람들이 마고삼신이 시집가서 낳은 마고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한편 굿을 할 때 쓰는 신장대는 방장에 세운 솟대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굿상에 올리는 시루에 신대를 꽂는 것은 방장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시루는 신시를 의미한다 하므로 시루는 나라를 상징하며, 나라에서 제사지내는 산을 시루산(烝山, 증산은 임금님 산이라는 뜻이다)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택굿에서 무당이 신대를 꽂은 시루를 들고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옛날에 상고시대에 임금이 제관이 되어 굿을 할 때 행했던 의식이 그대로 굿에 남아서 전해 오는 것이라 한다.안택이라는 말이 지금은 한 집안의 평안함을 비는 굿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상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단군왕검이 마고 할머니에게서 전수한 삼신신앙과 환웅 할아버지에 게서 전수한 태백진교를 발전시켜 덕교(德敎, 덕사상)를 만들어 선포하시고 나라의 사대문 안에서 안택을 빌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론 안택(安宅)이란 나라의 서울을 정하기 위하여 방위를 잡는 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북두칠성이 떠오르는 동북간방(東北艮方)을 대단히 중요시하였으며, 동북간방에 잡은 터를 서사태방위(西四宅方位)라고 한다. 동북간방에 터를 잡고 4대문을 내는 데, 이때 올린 굿이 안택굿이라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성주거리에 나오는 성조는 당시에 처음 집을 짓고 궁궐을 지은 성조 할아버지로 본다. 또한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무당내력이라는 책에 보면, 성주거리는 반드시 단군왕검을 먼저 청배하여 굿을 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단군왕검 때 서울 백산 아래에서 처음 안택한 감격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환웅 할아버지는 신시를 세우고 태백진교(太白眞敎, 참사상) 선포하면서 두 가지 신시나라의 국정지표를 내세웠으니, 정치는 화백(和白)으로 하고, 자연재해에 대한 책임은 책화(責禍)로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재야사학자들은 국민에게 꿈을 주고 결속시켜 줄 매개로서 민족과 나라는 그들 나름대로 '구원의 여인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유한 단 한 분의 여신을 받들어 모시려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조선시대까지 민간신앙으로서 삼신할머니인 마고를 받들어 모셔왔던 것에서 착안하여 마고의 존재를 복원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현재 마고할미는 미신 정도로 취급되지만, 중국에서의 금모낭낭(金母娘娘)이나 서왕모(西王母), 일본에서의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같은 상급의 여신으로 모실 것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삼국관계에서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마고 복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마고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재야사학자들은 마고가 후손에게 신표인 삼신을 새긴 '천부삼인'을 전수하고, 모든 종교의 원전이 될 수 있는 '해혹복본(解惑復本)'을 가르쳤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천부삼인은 인류가 천문을 시작했다는 징표이며, 특히 천문이 동이에 의하여 인류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또한 그들은 천문에서 우주의 원리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원리는 '천부경(天符經)'에서 제시하는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원리'라고 본다. 일석삼극의 원리는 환웅천왕에 의하여 세상을 이끌어 가는 '참사상'인 '태백진교(太白眞敎)'를 출현하게 하였고, 단군왕검 시대에 가서 덕교로 발전하였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마고의 존재를 우리의 문화사와 종교사에서 자리 매김하고자 한다.또한 재야사학자들은 신시에 대해서도 각 종족의 대표가 삼신산 아래에 와서 함께 모여 하늘에 제를 지내고 시장을 열어 문물을 교환하는 곳이라 정의하고, 신시는 의회와 시장의 기능만을 갖추었으며, 각 종족은 독자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할 때만 신시를 열어 의사를 결정하고 시장을 여는 초국가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각 종족의 대표가 참석하는 회의를 화백이라고 하였고, 또한 문물을 배에 싣고 와서, 해변에 당(幢, 깃발)을 꽂아 놓고 서로 필요한 것을 찾아서 교환하는 것을 시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참고문헌 및 도판▒ 참고 문헌김준기, 『신모신화연구』, 경희대 박사학위논문, 1995.위앤커(저), 전인초․김선자(역), 『중국신화전설』1, 민음사, 1999.박제상 원저, 윤치원 편저, 『부도지』, 대원출판, 2002.전인초, 정재서, 김선자, 이인택, 『중국신화의 이해』, 아카넷, 2002.한상수, 『한국인의 신화』, 문음사, 1980.김영일, 「남해안 당신설화의 비극적 특성에 관한 연구」『가라문화』11, 동아문화연구소, 1994.강진옥, 「마고할미 설화에 나타난 여성신 관념」『한국민속학』25, 민속학회, 1993.▒ 참고 도판김홍도, <群仙圖8첩병풍>, 호암미술관 소장.신윤복, <麻姑>, 국립중앙박물관.미상, <海上群仙圖8첩병풍>,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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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치우
    백제치우 3D백제치우1. 개요백제치우는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백제(白帝)로 이해할 수 있으며 서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ꡕ는 한국 상고의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한 역사책으로 계연수가 편집하였으며 1911년 출간되었다.『한단고기』에 나타난 우주관에서는 삼신(三神)을 천일(天一), 지일(地一),이라 하고 태일(太一)이라고 부른다. 이 중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며 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한다. 또 삼신 밑의 오제(五帝)는 흑제(黑帝), 적제(赤帝), 청제(靑帝), 백제(白帝), 황제(黃帝)를 말한다. 오제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와 관련이 있다.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고 기르는 것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고 한다. 또 오령(五靈)은 태수(太水), 태화(太火), 태목(太木), 태금(太金), 태토(太土)라 한다. 태수는 크고 윤택하게 하며, 태화는 녹이고 익히며, 태목은 지어 이루고, 태금은 재량하여 자르며, 태토는 씨 뿌림을 주관한다고 한다.삼신은 오제를 감독하고 명령하여 각각 넓히고 나타내게 하고, 오령으로 하여금 기르고 이루게 한다.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달이 뜨면 밤이라 하며, 별의 움직임을 측량하여 춥고 더운 것과 연대를 기록케 한다고 한다.이 외에도 『한단고기』에는 다섯 가지 방위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언급이 있다. 즉 용왕현구(龍王玄龜)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朱鵲赤熛)는 목숨을 주관하여, 청룡령산(靑龍靈山)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 신(白虎兵神)은 형벌을 주관하여, 황웅여신(黃熊女神)은 병을 주관한다고 언급한다. 이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또한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쥬신제국 즉 고조선의 벼슬 중에 오제(五帝)가 있는데 황제(黃帝-大加:中央)를 수석장관으로 하고 현제(玄帝/黑帝-加:北部), 적제(赤帝-狗加:南部), 청제(靑帝-馬加:東部), 백제(白帝-牛加:西部)가 그것이라고 한다. 삼칸(三汗) 아래 전국을 5부로 나누고 각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조직이다. 이들 5부의 대가들은 청(靑), 적(赤), 백(白), 현(玄)의 순서로 매 3년마다 그 임지를 바꾸어 맡는데, 매 12년이 되면 제위에서 은퇴하는 매우 선진적인 공화제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주장에 의하면 『한단고기』에서 치우천황이 헌원에게 수석장관에 해당하는 황제(黃帝)의 벼슬을 내려준 것은 배달국의 수석 제후국으로 대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2. 서방을 관장하는 신들중국과 한국의 신화와 전설에는 방위에 관련된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백제치우도 그 중 한 가지이기에 서방을 관장하는 다른 신들을 살펴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2. 1 중국신화의 소호금천중국신화에서는 반고에 이어 가장 오래된 신화적 세계에 출현하는 세 제왕을 삼황(三皇)이라 부르는데, 누구를 삼황으로 하느냐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일설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치는데 이는 물론 천지인 간의 성립을 의인적(擬人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합리적 신화다. 그 밖에 복희, 여와, 신농을 삼황으로 하는가 하면, 또 그 중 여와를 축융(祝融) 또는 수인(燧人)으로 대치하는 설도 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복희, 신농, 황제를 여기에 해당시킨다.삼황(三皇)에 이어서 천하를 다스리게 된 것은 소호, 전욱, 제곡, 요제, 순제의 오제(五帝)이다. 오제 중 소호는 황제의 아들, 전욱은 황제의 증손, 제곡은 소호의 아들, 요제는 제곡의 아들, 순제는 전욱의 6세손이라고 하니까 오제는 아마도 황제 일가(黃帝 一家)로 보인다. 또 그들이 오제로서 표창(表彰)되는 것은 그들 모두 하나같이 고조(高祖)인 황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덕이 높은 제왕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오제 중 소호는 서방상제이다. 소호는 금신(金神) 욕수의 보좌를 받는다. 그는 전욱의 숙부로 그의 어머니 황아(皇娥)는 천상의 선녀로 하늘에서 옷감 짜는 일을 했다. 궁상(窮桑)이라는 나무에서 놀다가 백제(白帝)의 아들과 사귀어 소호, 즉 궁상씨를 낳았다고 한다. 소호는 자란 뒤 동쪽 바다 밖에 소호지국을 세웠는데, 그 나라의 신하와 각료들은 각양각색의 새였다고 한다. 그는 어린 조카 전욱을 위해 琴과 瑟을 만들어 주었다.소호(少昊)에 관한 이야기는 『십팔사략』에도 등장한다. 『십팔사략』은 중국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나라 초에 걸쳐 활약했던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이다. 이 책은 사실의 취사선택이 부정확하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고, 사료적 가치가 없는 통속본이지만, 중국왕조의 흥망을 알 수 있고, 많은 인물의 약전(略傳), 고사(故事), 금언(金言) 등이 포함되어 있다.이에 의하면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는 황제의 아들로 청양(靑陽)이라고도 한다. 그가 선죽 봉조(鳳鳥)가 이르매 새로써 관(官)에 기(紀)하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영조(靈鳥)인 봉조의 출현은 원래 치세의 상징이며 “새로써 관에 기하다” 는 것은 그 봉조의 출현에 의미를 두어 제관의 관명을 붙였다는 뜻이겠으나 딴 고전을 참작하여 신화적으로 해석한 의견이 있는데 이는 앞서 얘기한 설과 유사하다.즉, 먼저 봉조란 세상에도 희귀한 영조이며, 좀처럼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영조가 하필이면 소호의 시대에 출현했다는 데에서 그가 다름 아닌 조족(鳥族)의 신이었기 때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새로써 관에 기하다”라는 것은 실은 “새로써 벼슬에 붙었다”, 즉 그가 세운 왕국이 조족이 지배한 나라였다고도 생각하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그러므로 그는 먼저 봉조로 하여금 수상에 임명하고 문상(文相)에는 온순한 비둘기, 방위상에는 용맹한 매, 건설상에는 조직적이고 깔끔한 뻐꾸기, 법상에는 준엄한 독수리 등을 적재적소에 임용해 천하를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다.2. 2 부도지의 백소백소는 신라시대 인물인 박제상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나 위서(僞書)임에 확실한 『부도지(符都誌)』에 보이는 존재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백소는 흑소와 함께 소희에게서 단성생식을 통해 나온 존재이며, 메소포타미아 북부 일대의 민족들과 유럽민족의 조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백소에 대한 이야기는 황궁, 청궁 등과 함께 나오며, 그 내용을 『부도지』로부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이윽고 後天의 시대가 열렸다. 마고가 실달대성을 옮기어 天水의 지역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물기운 위를 뒤덮고, 그 결과 실달대성은 평평하게 열리어 물 가운데에서 땅을 여니, 땅과 바다가 나란히 뻗고 산과 강이 널리 뻗어 나갔다. 이에 물의 세계가 변화하여 땅이 이루어져 서로 겹치고 이동하여 돌기 시작하므로, 드디어 시간의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氣와 火가 서로 섞여서 빛이 밤낮과 사계절을 나누고 초목과 금수를 길러내니 온 땅에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이에 네 천인은 만물의 本音을 나누어서 다스리니 土를 맡은 자를 黃이라 하고 水를 맡은 자를 靑이라 하여 각기 궁(穹)을 지어서(황궁과 청궁) 그 직분을 지키고, 氣를 맡은 자를 白이라 하고 火를 맡은 자를 黑이라 하여 각기 소(巢)를 지어서 그 직분을 지키니,(백소와 흑소) 궁과 소를 각기 그 성씨로 삼았다. 이후로 氣와 火가 같이 밀어서 하늘에는 차갑고 어두운 기운이 없어지고 水와 土가 감응하여 땅에는 더러운 분비물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부도지』 3장)이 때에 본음(本音)을 다스리는 자가 비록 여덟이었지만, 만물이 순식간에 생겼다가 없어지곤 하니 조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고가 마침내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옆구리를 열어서 생산하게 하므로 네 천인이 서로 네 천녀와 맺어서 각각 3남 3녀를 낳으니, 이가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류의 시조이다. 그 남녀가 서로 맺어서 몇 대를 지나는 사이에 족속이 각각 3천 명으로 불어났다. (『부도지』 4장)백소씨족의 지소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의 샘에 젖을 마시러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적으므로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마시지 못하기를 다섯 차례나 하였다. 돌아와서 배고픔에 어지러워 쓰러졌다. 귓속에서 미혹하는 소리가 울려서 넝쿨진 포도의 맛을 보게 되었다. 그 맛이 좋았으므로 드디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먹게 되었다. (『부도지』 5장)이에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모두 치아가 생기고 그 침이 뱀의 독과 같이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악해져서 하늘의 성품을 잃게 되었다. (『부도지』 6장)이에 사람들이 원망하고 나무라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어져서 그 무리들을 이끌고 성을 멀리 나가 숨어버렸다. (『부도지』 7장)이후에 성을 나간 사람들 중 잘못을 후회한 자들이 다시 젖의 샘에서 젖을 먹고자 하여 샘을 파헤치니,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유출되어 샘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즉시 굳어버려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실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이 극도에 달했다.이에 황궁씨가 대표자로서 몸을 스스로 묶고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스스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청정함이 깨어지고 우리의 보금자리가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천인들이 나누어 살기로 의견을 모으고 황궁씨가 천부(天符)를 나누어 신표로 삼고 칡을 캐서 식량으로 삼을 것을 가르친 후에 사방으로 나누어 살 것을 명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나누어 살기로 결정하고 청궁씨는 그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문으로 나가 운해주(雲海州)로 가고, 백소씨도 무리를 이끌고 서쪽의 문으로 나가 월식주(月息州)로 가고, 흑소씨는 남쪽의 문으로 나가 성생주(星生州)로 가며, 황궁씨도 북쪽의 문으로 나가 천산주(天山州)로 떠났다. 그 중 천산주는 매우 춥고 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자진해서 어려움을 취하여 고통을 이겨내고자 함이었다. (『부도지』 8장)분거한 여러 족속이 각 지역에 도달한 지 어느덧 천 년이 되었다. 예전에 성을 먼저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 각지에 잡거하면서 그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다. 그래서 근본을 거의 망각하고 성격이 몹시 흉악하게 변하여 분거한 족속들이 새로 오는 것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적해서 그들을 해쳤다. 결국 여러 족속이 정착해서 안주하니 바다와 산으로 막혀서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 (『부도지』 9장)황궁씨가 천산주에 도달하여 미혹을 해소하며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고 뭇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수양할 것에 힘쓰게 하였다. 그리고 큰 아들 유인(有人)씨에게 명하여 인간세상의 일을 밝히도록 하고 둘째와 셋째로 하여금 각 지역을 순방하게 하였다. 마침내 황궁씨가 천산으로 들어가 돌로 변하고, 이에 유인씨가 계승하였다. (『부도지』 10장)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도지』와 같은 재야사학계에서 신봉되는 몇몇 위서류(僞書類)들은 황궁과 청궁이 궁희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백소는 흑소와 함께 소희의 단성생식을 통해 태어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부도지에서 백소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황궁, 청궁, 백소, 흑소 사이의 관계 역시 부도지와 같은 위서류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비록 학계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정확한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고래로 전해져 내려온 민간전승에서 나타나는 창세신화류와 같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독특한 하나의 견해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에 아래의 내용은 부도지의 내용에 기반하여 황궁, 청궁, 백소, 흑소 등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부도지에 따르면, 궁희와 소희에게서 나온 네 천인은 만물의 근본을 나누어서 다스리니, 궁희에게서 나온 두 천인 가운데 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라 하고(황궁)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라 하였으며,(청궁) 소희에게서 나온 두 천인 가운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라 하고,(백소) 화(火)를 맡은 자를 흑(黑)이라 하여(흑소) 각기 그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마고의 출현 이래로 그 이후 사건의 전개는 모두 태극사상이 그 핵심을 이룬다고 하여. 우선 마고가 있었으며, 태극이 음양을 생성하듯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음양이 태극과 분리되어서 존재할 수 없듯이 마고와 궁희, 소희도 항상 함께 존재하였다고 한다.백소씨족의 일원인 지소가 포도열매를 먹게된 이후, 현재의 인류보다 한 차원 높이 존재하던 신적 존재였던 인류의 선조는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피조물과 같이 되었으며, 지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및 약탈경제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몸도 그렇게 변하여 음식을 먹지 않고는 단 몇 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마고대성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소는 파미르의 북쪽, 즉 시베리아 지방으로 갔으며, 바이킹이나 슬라브 족과 같은 북방 백인 족속의 선조가 되었다. 한편 황궁씨는 그 족속을 이끌고 가서 정착한 곳이 천산지역이었다. 그리고 중국 본토의 황하유역과 양자강 일대에는 청궁씨가 이주하였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 지역에는 백소씨족이 정착하였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문명도 역시 백소씨에 의해 주도되었다. 파미르의 남쪽 인도 북부의 인더스 평원지대에는 흑소씨족이 정착하였으며, 그들은 인더스 문명을 건설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남쪽과 이집트에 건설된 문명 역시 흑소씨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따라서 흑소씨족의 후예는 아시아 남부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백소씨족의 후예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충돌하기도 하였다.결국, 『부도지』에서는 황궁, 청궁, 백소, 흑소의 존재를 현존인류의 인종적 구분과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구분의 기초 위에 인류 최초의 문명발상이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백소는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 정착한 백인계통의 직계조상으로 설명하고 있다.2.3 불교의 광목천왕불교의 세계관에서 호법신인 사천왕 중에서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 중턱의 백은타에 살고 있다. 흔히 잡어(雜魚), 비호보(非好報), 악안(惡眼)이라고도 하는데, 그의 몸은 백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웅변을 통하여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다른 천왕들과는 별도로 입을 벌린 형상을 취하고 있다. 또 눈을 부릅뜸으로서 나쁜 것을 몰아낸다 하여 악안 또는 광목이라 하였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에 도심(道心)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 형상은 붉은 갑옷에 왼손으로는 보탑(寶塔)을 받들고 있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삼지창을 들고 있다. 이 보탑 속에는 진귀한 보물이 많이 간직되어 있다 하며, 그것을 중생에게 나누어 주어 복덕을 얻게 한다. 지물로 용을 들기도 하는데 용은 하늘에서 구름, 비, 천둥 등을 부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국사 광목천왕 역시 권속인 용을 표현하여 한 손에는 용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여의주를 잡은 형태이다.광목천왕 휘하의 권속으로는 용신(龍神)과 식혈육귀(食血肉鬼)로 일컫는 '비사사(毘舍도)'가 있다.<참고문헌 및 도판▒ 참고 문헌강우방,「四天王寺址出土彩釉四天王浮彫像의 復原的考察」,『美術資料』25, 1979.김은수 번역 및 주해, 『부도지』, 한문화, 2002.문명대,「新羅四天王像의 硏究」,『佛敎美術』 5, 1980.노명신,「朝鮮後期 四天王像에 대한 考察」,『美術史學硏究』 202, 1994.______,「朝鮮後期 四天王圖의 考察」,『講座美術史』 7, 1995.임승국 번역 및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 참고 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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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신장
    백마신장백마신장1. 백마신장 개요신장이란 신들의 군인들을 말한다. 요사한 귀신이나 악귀들을 물리쳐주며 각신들에게 예속되어 그 신들을 보호한다. 그 중 백마신장은 옥황상제님을 호위하는 근위대 신장이다. 또 백마를 타고 다니면서 인간을 보호해주는 신장이기도 하다. 또 백마를 타고 오는 신이 아니라 백마에 실어온 경전을 옹호하는 신장이 백마신장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냥 백마신장이라고도 하고 소거백마신장이라고도 한다.2. 무속2.1. 무속의 정의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종교현상이다. 국내 어느 지역에서나 행하여지는 무속의 기본제의로는 성주굿, 삼신굿, 지신굿, 조왕굿 등 민가의 가신에게 기원하는 제의와, 서낭굿, 당산굿 등 마을의 수호신에게 기원하는 제의가 있다. 특히, 굿의 제의순서는 민가의 가신으로부터 마을의 수호신을 거쳐 우주의 천신으로 이어지며, 일반 민간신앙을 집약, 체계화시키면서 무속의 굿은 진행된다. 따라서 무속은 민간층의 종교의식이 집약된 것으로 한민족의 정신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생활을 통하여 생리화한 산 종교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민족의 기층적 종교현상인 무속을 한국의 종교사적 입장에서 보면,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한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조직적 형태의 종교현상은 무속이라고 하는 귀결점에 이른다.2.2. 무속의 신앙형태2.2.1. 제신(祭神)과 제의장소무속제의에서는 가신(家神), 동신(洞神), 외계신(外界神)의 3부신이 기본적 제신이 되며, 제의의 규모가 커지는 큰 굿일수록 외계신이 다양하게 동원된다. 가신과 동신은 기본적 제신으로 별 변동이 없으나, 규모가 큰 굿일 경우 외계신과 함께 동신이 더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무속에서는 민간인들의 생활현장인 가정과 마을 밖을 ‘외계’라고 보는데, 이와 같은 외계에 존재하는 신을 외계신이라 불렀다.각 지역 무속에서 제를 받는 3부의 가신, 동신, 외계신 중 공통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신들이 있는데, 가신으로는 조왕신, 삼신, 지신, 성주신, 조상신, 대감신, 업신, 정신(井神), 우마신(牛馬神), 문신(門神) 등이 있고, 동신으로는 산신, 서낭신, 부군신, 당신(堂神) 등이 있으며, 외계신으로는 천신, 천왕신, 칠성신, 시준신, 제석신, 용신, 용왕신, 장군신, 군웅신(軍雄神), 신장신(神將神), 손님신, 창부신(倡夫神), 잡귀(雜鬼) 등이 있다. 제의장소는 가제와 동제가 각각 다르다.가제는 중부지역의 경우 대청에다 제의장소를 정하는 것이 통례이나 대청이 없는 집은 안방을 제의장소로 사용한다. 호남, 영남, 제주도 등지에서는 집안 뜰(안마당)에 차일(遮日)을 치고 그 밑에다 굿상을 차리고 제의를 하는 것이 통례이다. 중부지역 도시의 경우 제의장소가 마땅하지 않으면 굿당을 찾아가 제를 올리거나 무당의 집 신단(神壇)에서 제를 하는 예도 있다.마을 공동제의인 당굿의 경우는 동신을 모신 당 앞에 제의장소를 정하고 제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다. 동제를 올리는 당은 신수(神樹)만 있거나 신수 밑에 석단(石壇)이 있거나 신수와 당집이 있는 세 가지 형태가 통례이다. 이 밖에 암석이나 산정이 제의장소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당집 형태의 경우 그 사우(祠宇) 안의 제단에서 제의를 올리고, 사우가 없이 신수나 암석만 있는 경우 그 앞에다 제장을 꾸미고 제의를 한다.2.2.2. 무속의 우주관무속에서 보는 우주는 천상, 지상, 지하로 삼분된다. 이들 3계의 우주층에는 각각 해와 달과 별이 있으며, 천상이나 지하에도 지상과 똑같은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천상에는 천신을 비롯한 일신, 월신, 성신과 그 시종들이 살면서 우주의 삼라만상을 지배하며, 지상에는 인간과 새, 짐승, 그리고 산신을 비롯한 일반 자연신이 살고, 지하에는 인간의 사령(死靈)과 그 사령을 지배하는 명부신들이 산다고 믿는다. 천상계는 인간이 늘 동경하는 낙원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의 걱정이 없고 병과 죽음이 없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채 늘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선계(仙界)로 믿고 있다. 지하계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인데, 생전의 선악과 공과(功過)에 따라 지옥과 낙원으로 구분된다. 지옥은 지하에 있는 암흑계로서 춥고 배가 고프며 형벌이 영원히 계속되는 형장이다. 낙원은 살기 좋은 영생의 세계인데, 낙원이 우주 3계 중의 어느 곳이라고 확실하게 지적되지 않은 채 그저 극락이나 저승으로 생각한다. 지옥은 지하계의 형장으로 그 공간위치가 확실하나 저승은 막연하게 지상에서 수평으로 가는 먼 곳이면서 이승과 저승의 구분이 ‘모랭이(모퉁이)를 돌아간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천상계는 지상의 수직상에 있는 세계로 그 공간위치가 확실하면서 천상계는 지상에서 수직으로 왕래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2.2.3. 무속의 신관무속의 신관은 다신적 자연신관(自然神觀)이며, 신의 실재를 믿어 신이 만물 존재 운행의 전능자라 믿는다. 무속에서 신앙하는 신은 자연신계통과 인신(人神)계통인데 전국적으로 조사, 집계된 무신은 273종이다. 이를 계통적으로 분류하면 자연신계통의 무신은 천신계통, 일신계통, 월신계통, 성신계통, 지신계통, 산신계통, 노신(路神)계통, 수신계통, 용신계통, 화신(火神)계통, 풍신(風神)계통, 수신(樹神)계통, 석신(石神)계통, 사귀(邪鬼)계통, 명부신(冥府神)계통, 역신(疫神)계통, 동물신계통, 농신(農神)계통, 산신(産神)계통 등이며, 인신계통의 무신으로는 왕신(王神)계통, 왕녀(王女)계통, 왕비계통, 장군신계통, 장군부인계통, 대감신계통, 도교신계통, 일반일신(一般一神)계통 등이 있다. 이들 신은 주로 지신계통, 산신계통, 수신계통, 장군신계통 순으로 많다. 무속의 신관형태를 보면 무신은 대체로 인격적으로 현현되지만 자연신의 경우 간혹 자연 그대로의 정령(精靈)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들 무신에게 분담된 직능에 있어서는 무한한 능력자로 나타난다. 그러나 무신은 인간에게 어떠한 이성적인 계시를 통하여 그 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무서운 고통을 주는 벌로써 신의 의사를 전달시키기 때문에, 비록 인간을 수호해 주는 선신(善神)일지라도 늘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때의 공포는 신성(神聖)의 극치이기도 하다.무신과 인간의 관계를 보면, 무속에서는 인간의 생사, 흥망, 화복, 질병 등의 운명 일체가 신의 의사에 달려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무신 상호간의 관계를 보면, 최고신으로 천신이 있고, 그 밑에 상층신으로 일월성신, 제석신, 칠성신 등이 있으며, 중층신으로 지상의 산신, 용신, 지신, 하층신으로 걸립신, 하졸(下卒)․잡귀들이 있다. 이와 같이, 무신의 서열은 최고신, 상층신, 중층신, 하층신의 네 계층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들 무신에게는 각기 인간을 위한 분담된 직무가 있는데, 무신들이 서로 합심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신들의 알력 여파로 인해 화를 입게 된다고 믿는다.3. 신장과 검무신장3. 불교의 신장3.1. 신장의 개념불교에는 부처, 보살 이외에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을 비롯하여 사천왕, 8부중 등 수많은 호법신(護法神)들이 있어,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여러 성중과 함께 불법을 찬양하며 불법의 외호(外護)를 맹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들을 일컬어 신중(神衆)이라고 한다. 특히 무장형의 여러 존상(尊像)을 '외호신중'(外護神衆)또는 '신장'이라고 부른다. 신장이란 수많은 호법선신(護法善神) 가운데 무력으로 적을 항복시키며, 불법(佛法)을 옹호하고 불경(佛經)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는 사람들을 외호하는 신들을 말한다. 신장들은 부처나 보살들보다 한 단계 낮은 지위에 있는 신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이 불법을 수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 안에서 이들에 대한 신앙이 널리 퍼졌으며, 더불어 활발한 조상(造像)활동이 이루어져 왔다.3.1.1. 우리나라 신장신앙삼국시대의 신라에서는 진평왕(579 ~632년)때 제석천을 호국, 호법의 선신으로 신앙하여 제석궁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종류의 신장에 대한 신앙과 조상(造像 )활동이 활발했고 본격화 된 것은 문무왕(661~681)때 사천왕사가 건립된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제에서는 무왕(600~641)때 제석사룰 건립했다는 기록, 의자왕 21년(660) 풍우로 천왕사(天王寺)와 도양사(道讓寺)의 탑이 진동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 제석, 사천왕 등 신장에 대한 신앙이 백제에서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고구려에도 신장신앙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현재 기록으로는 확인할 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통일신라시대에는 감은사 사리기(682)의 사천왕상, 8부 중상을 비롯하여 석탑과 부도 등에 인왕, 사천왕, 8부중, 12지 등이 부조된 예가 많이 남아 있으며, 석굴암 내부에 여러 신 장상들이 조각되어 있다.고려시대에 불교가 국가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신앙으로 수용됨에 따라, 법회와 도량 등이 크게 유행하였고 사찰안에도 많은 신장 탱화와 상이 모셔져 예배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신장상의 예는 그리 많지 않다.조선시대에 신장은 단지 가람수호 또는 호법이라고 하는 신장본래의 기능에 의한 신앙의 대상으로서만 믿어졌다. 그래서 천왕문이나 명부전 등에 인왕상, 사천왕상 등의 탱화가 많이 조성되었다. 즉, 조선후기에는 신장이 갖고 있던 외호적 기능이 불전 안의 불보살 수호라고 하는 내호적 신앙으로 탈바꿈하면서 신중탱화가 크게 유행하였던 것이다.결국 신장신앙은 시대적인 성격에 따라 호국호법(護國護法)이라는 외호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때로는 개인의 신앙을 위한 기능을 하면서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3.2. 신장상의 종류3.2.1. 제석천(帝釋天, Indra)제석천은 도리천의 주인으로서 수미산 꼭대기의 선견성 (善見城)에 살며 범천과 함께 불법 수호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도리천중과 사천왕을 권속으로 삼고 있다.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될 때는 금강저를 들거나 합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반 신장들과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조성되어 예배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범천이나 다른 신장들과 함께 표현되곤 한다.3.2.2. 범천(梵天, Brahman)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천부(天賦)가운데 주요존으로서 불법 수호의 역할을 맡고 있다. 불상 가운데 가장 빨리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보통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낼 때는 정병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제석천과 함께 쌍으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아 구별하기 힘든데 정병을 들고 있는 것이 범천이다.3.2.3. 인왕(仁王, Vajradhara)인왕은 절에 들어가는 문이나 전각(殿閣)의 입구 좌우에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상을 일컫는 말이다. ‘금강저를 손에 든 자’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무장하고 손에 금강저를 든 상을 가리키지만 한편으로는 나체상으로 바위 위에 서서 맨 주먹으로 무엇인가를 내리 치려는 분노의 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3.2.4. 사천왕(四天王)인도신화 시대부터 있었던 호법신으로 고대 인도의 바르후트 탑에 증장천이 묘사된 것으로 보아 서기전 2세기경부터 불교에 유입된 듯 하다. 간다라 미술에서는 석가 성도의 장면에 마왕의 군대가 방해하여 전투를 할 때 지국, 증장, 광목, 다문 등 사천왕이 활약하는 불전도가 전해지고 있다.3.2.5. 팔부중(八部衆)불법을 수호하는 8종의 신으로서 천(天), 용(龍), 야차(夜叉), 아수라(阿修羅), 간달바(乾達婆), 긴나라(緊那羅), 가루라(迦樓羅), 마후라가(摩候羅伽) 등을 말하며, 10대 제자와 함께 부처의 설법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3.2.6. 12신장(十二神將)12야차대장(十二夜叉大將), 12신 왕(十二神王) 등으로도 불리며, 약사불(藥師佛)의 12대원(十二大願)에 의하여 그를 수호하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신장이다.3. 무속에서 신장의 개념무속에서의 신장의 개념은 불교에서의 신장 개념과 약간 다르다. 물론 무속에서 섬기는 신장들 중 상당수는 불교에서 연원한 것도 있지만 특히 조선 후기에 많이 형성된 무속의 신장상은 그 개념과 성격이 불교의 신장 개념, 성격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무속에서 신장은 신을 호위하며 신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신의 장수들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크게 유행하여 무속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친 위서(僞書) 도교경전인 『옥추경(玉樞經)』에는 교주(敎主), 천사(天師), 천군(天君), 원군(元君), 조사(祖師), 진군(眞君), 진인(眞人), 진선(眞仙), 원군(元君), 원수(元帥), 부수(副帥) 등 48신장이 언급되어 있다. 그 외 신장을 소개하고 있는 다른 「신장편(神將篇)」에는 하늘에는 구천신장(九天神將), 지상에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지키는 오방신장(五方神將), 일년을 지키는 간지신장(干支神將), 바다를 지키는 사해신장 (四海神將), 다섯 산을 지키는 오악신장(五岳神將) 등 하늘과 땅, 지하에 수많은 신장을 열거하고 있다. 이처럼 무속에서 신장은 실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의 기능은 잡귀나 악령을 쫓는 기능으로 집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참고문헌 및 도판▒ 참고 문헌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연세대학교출판부, 1975)조흥윤, 『한국의 巫』(정음사, 1983)최길성, 『한국무속지』 1․2 (아세아문화사, 1992)赤松智城/秋葉 隆 공저, 심우성 옮김, 『조선무속의 연구』上, 下(동문선, 1991)赤松智城/秋葉 隆 공저, 심우성 옮김, 『조선무속의 연구』上, 下(동문선, 1991)김태곤, 『한국의 무속』(대원사, 1991)윤열수, 『한국의 무신도』(이가책, 1994)『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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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료
    황제료▒ 황제료황제(黃帝)는 오제(五帝) 가운데 하나로서 방위상으로 중앙에 위치하며 조화(造化)를 주관한다.오제는 흑제(黑帝)․적제(赤帝)․청제(靑帝)․백제(白帝)․황제(黃帝)를 말하니,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아 기름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 … 중략 … 삼신은 곧 오제를 감독하고 명령하사 각각 넓히고 나타내게 하고 ­임승국 (번역․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 148면위의 기사를 통해 황제를 비롯한 오제는 모두 삼신(三神)의 감독 아래서 소임을 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제(五帝)’의 주(注)에 말한다. 오방(五方)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帝)라 하고 땅에서는 대장군(大將軍)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임승국 (번역․주해), ꡔ한단고기ꡕ, 정신세계사, 1986, 154면­오제라 함은 오방에 각기 사명이 있으며 하늘에서는 제(帝)라 하고 땅에서는 대장군(大將軍)이라 하여 다소 구별된다. 지상에서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는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에서 이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따라서 오제는 주로 천상에서 오방을 관장하는 소임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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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신
    불교신▩ 오방대제 신들의 계통도오방대제의 개념은 전래의 중국신화에 불교적, 도교적 요소들이 습합되고, 또 시대적 변천을 겪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에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 계보도는 황제를 정점으로 한 오방대제의 개념에 제석신과 범왕의 주관 하에 있는 사천왕을 대입시켜 불교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그리고 하위의 신들에도 오방대제의 취지를 살려 12지신을 각 방위에 따라 편성하여 재구성하였다.▩ 참고문헌강우방,「四天王寺址出土彩釉四天王浮彫像의 復原的考察」,『美術資料』25, 1979.문명대,「新羅四天王像의 硏究」,『佛敎美術』 5, 1980.안휘준, 『한국 회화사 연구』(시공사, 2001)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사계절, 2000)『특별기획전 고구려』(특별기획전 고구려 추진위원회편, 2003)『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이기선, 『지옥도』, 대원사, 1992.김영주,『조선시대불화연구』, 지식산업사, 1986.김정희,『신장상』, 대원사, 1989.방창환 『 조흥윤,『제석님과 제석굿』, 문덕사, 1997.홍윤식 외 8인,『불교민속학의 세계』, 집문당,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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