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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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신신앙 : 천룡신 - 장독대를 관장하는 뒤꼍의 지신
    가신신앙 : 천룡신 - 장독대를 관장하는 뒤꼍의 지신장독새끼줄흰버선본 장독대의 금줄천룡신(天龍神) 집안의 뒤꼍, 뒤안을 관장하고 있는 신이다. 우리 민족은 집터를 잡고 집을 지을 때 대체로 배산임수의 지형에 남향받이로 집을 지어 집 뒤쪽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냇물이 흐르는 곳이 명당이라 여겼다. 산자락이 끝나는 기슭에 집을 지으면 집의 뒤꼍이 산의 기운과 이어지고 그래서 천룡의 형상, 즉 집으로부터 시작하는 산의 형세가 마치 꿈틀거리는 용과 같다는 풍수적 용어에서 나온 말이다.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이 천제를 대신하여 높은 산의 큰 나무로 내려 산줄기를 따라서 마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당산나무에 깃든 천신적 신격인 것처럼, 가택을 수호하는 천룡신 또한 산의 용마루로부터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가택의 제일 높은 곳인 뒤안에 깃든 당산신과 같은 천신격이다. 그래서 뒤꼍 천룡신을 ‘집안 당산’이라고도 한다. 마을 당산이 마을 집단의 공동체 신앙이라면 천룡신은 그 집 뒤꼍에만 한정되는 수호신인 것이 둘 사이의 차이이다.천룡신의 기능은 대체로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마을의 당산신처럼 집안 전체를 수호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기에 뒤꼍은 마을의 당산 지역처럼 신성하고 엄숙하며 경건한 곳으로 신성시했고, 살생은 물론이요 굴토 또는 벌목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다. 두 번째로 뒤꼍 일대에 관한 한 천룡신이 터주신의 기능까지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집의 앞부분은 터주신이 관장하지만 뒤편은 천룡신이 관장한다. 뒤꼍에서 삽질을 하고 흙일을 하거나 나무를 베는 일을 할 때에는 모두 천룡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행해야 한다. 그리고 천룡신의 마지막 역할은 장독대를 관리하는 기능이다. 그 집의 주부는 천룡신이 장독대에 깃들어서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맛을 관장하는 조미료의 신으로 믿고 받든다.천룡신을 섬기고 제사하는 사제자인 주부는 말날에 장을 담아야 맛이 좋다고 하여 정초 첫 말날에 큰 항아리에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그며 왼새끼(새끼는 대부분 오른쪽에서 꼬지만 왼쪽으로 꼰 새끼는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에 숯과 붉은 고추를 끼워 항아리에 두르며, 백지로 버선을 오려 장 항아리에 붙여 맛이 좋으라고 주술적인 행위를 한다. 전통적으로 장은 반찬의 기본이며 그 집 주부의 솜씨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주부들은 정성으로 천룡신을 섬겼다.천룡신이 담당하고 있는 곳이 뒤꼍의 장독대를 중심으로 한 그 일대라고 믿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를 모시기 위해서 가시적으로 신체를 조성하여 받들고 있다. 장독대의 뒤나 옆에 적당한 높이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천룡신이 깃들어 좌정할 수 있는 천룡 단지를 올려놓는다. 단지 안에는 벼를 2/3쯤 담아 백지로 봉하고 덮어 짚으로 잘 씌워 놓으며 단지 안의 벼는 다음 해 햇곡이 나면 갈아준다.천룡신은 가택의 총체적인 수호신으로 또 뒤꼍의 지신으로 장독대 조미료의 맛을 담당한 신으로 받들어지고 집안에서는 정성으로 섬기면서 집안의 평안을 빌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1020
  •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동제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동제       제명 : 동제신격 : 암수바위, 미륵불제당 :일시 :제당의 형태위치 :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 오른편 동백나무 그늘 아래에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잘생겼다는 암수 미륵이 있다. 미륵은 마을신 가운데 가장 으뜸인 신으로형태와 재질 : 바위의 높이는 암바위 3.9m, 수바위 5.8m 이다. 암바위는 잉태한 여인의 배부른 형상이며, 수바위는 남근을 상징하고 있어 기자암 구실을 하는 한편, 어부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특징 : 암수바위는 성기 숭배 신앙의 대상으로 속칭 미륵불이라고도 하며 미륵에 제사를 모실 때 제관은 깨끗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맡는다고 한다. 이는 미륵신앙이 성기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뜻하며, ‘아도 못 놓고 하는 사람들이 늘 아침, 저녁으로 치성을 드려 아이를 낳았다’ 고 한다. 또한 미륵(성근석)은 안전과 풍어를 담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풍어제 때 여기서 제사를 지내며 첫 번째 잡은 고기를 걸기도 한다. 그것을 동네 젊은이들이 떼어 먹을 때는 “미륵할아버지, 할머니 많이 빛을 봤으니 저희가 가서 먹을랍니다.” 라고 말하고 먹는다고 하며 가을에는 추수한 쌀을 미륵에 걸기도 한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은 수시로 돈, 촛불 등을 놓고 비는데 암수바위는 마을을 지배하는 토속신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밥구덕(밥무덤)위치 : 밥구덕은 마을 중앙과 동, 서쪽 3군데에 있으며 매년 음력으로 10월 보름날 저녁 무렵에 주민들이 모여 동제를 지낸다.형태와 재질 : 밥구덕은 돌로 된 탑 안에 밥을 묻을 수 있도록 된 것으로 고사밥을 묻는 구멍에 올려진 돌은 길이 30cm, 폭 20cm 정도이다.특징 : 밥구덕은 돌탑 위나 돌담 사이 공간에 한지로 싼 밥을 묻고 동네의 무사 평안을 비는 것이다. 이는 다른 지역의 당산나무 동제를 대신하는 의례로 밥구덕은 남해 지방 일반적 풍습이나 지금까지 제의가 행해지는 곳은 흔치 않다고 하며 이는 조상신을 따라 온 잡신들을 위로하는 제사다. 이곳에는 마을 중앙 돌탑과 근처 돌담 등 세 곳에 밥구덕이 있는데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 세 곳이어서, 세 길목에 잡신을 맞는 밥구덕이 위치해 있다고 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1016
  • 天節 8성 천절 사신별자리
    天節 8성 천절 사신별자리필수의 바로 밑에 있는 천절은 사신 별자리로 임금의 명을 외국에 전하는 사절에 해당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인 만큼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천절은 사신이 갖추어야 할 위엄과 덕을 널리 베푸는 일을 주관한다. 그래서 이 별이 변하는 모습은 사신과 신하들의 변화와 관련이 많다.문학 : 구전설화 [사신 사이의 수문답(手問答)]어떤 사람이 중국 사신에게 그 까닭을 묻자 사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내가 지리(地理)를 알고 있는가를 물으니, 그는 천문(天文)까지 안다고 대답하였다. 다음에 내가 삼강(三綱)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오륜(五倫)까지 안다고 대답하였다. 게다가 내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를 아느냐고 묻자, 그는 태호복희씨(太?伏羲氏)까지 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두려울 만큼 뛰어난 인물이다.중국사신은 동양의학의 창시자이며 농사법을 발전시킨 염제신농씨를 물어볼 때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사신은 수염 염(髥)자로 이해하고 ‘이젠 다 먹고 수염을 씻을 셈인가’로 보았다. 그리고 그 답변으로 전병을 마음껏 먹었으니 배 부르다는 의미에서 배를 내밀었다. 그런데 중국 사신은 배 복(腹)자를 팔괘·주역의 창시자인 태호복희씨의 복(伏)자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염제신농씨는 물론, 태호복희씨까지 알고 있다로 해석하여 우리나라 사신을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조선왕조실록]《 단어 검색 - 天節星[전체]...9 》명종 즉위년 .... 1 건(1545년) 명종 10년 .... 1 건(1555년)명종 12년 .... 1 건(1557년) 인조 5년 .... 1 건(1628년)인조 7년 .... 1 건(1630년) 효종 3년 .... 1 건(1652년)숙종 30년 .... 1 건(1704년) 영조 30년 .... 1 건(1754년)영조 34년 .... 1 건(1758년)…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1013
  • 단군은 수달임금, 주몽은 산달 사냥꾼
    코리안루트 1만㎞ 대장정‘獸祖’와 ‘유목’코드로 한민족 태반사 읽기… 조선·고구려는 순록유목 생태생업문화권 소산 중국 내몽골자치구 훌룬부이르시에 위치한 훌룬호. 훌룬-부이르 자매의 슬픈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필자의 이번 역사 유적 답사길은 다른 대원들과 다른 구석이 있다. 특히 바이칼 호반과 훌룬부이르 몽골 초원 유목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1990년 초반부터 이제까지 십수 년을 오간 탐사 길이어서 그렇다. 어떤 부분은 초행길 독자들과 답사 현장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느낌마저 든다. 답사 일기를 되새겨가며 나름대로 재확인해 대원들과 더불어 정리하는 일이어서다. 역사를 쓰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얽힌 절절한 추억들을 더듬어보는 계기도 되었다.어쩌다 60대 중반을 넘긴 이 나이까지 사서 이 고생을 하고 다니나 하는 서러운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길을 오가노라면 의사로, 또는 전기공학도로, 생명공학도나 철학도로 이 험한 역사 탐험길을 내닫는 엉뚱한 이들을 종종 만난다. 필자는 그래도 명색이 사학도라 그런대로 자기를 달랠 제 이야기를 나름대로 끄집어낼 수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쩌다 순록한테 홀려, 어이타 수달이나 산달이라는 별명을 가진 너구리에게 이끌려 이 험로를 내가 이렇게 오래 헤매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문제를 잡으면 집요하게 놓지 못하는 고집스러움 때문일 뿐이었던가 보다.‘너구리-맥’ ‘수달-예’라는 견해 훌룬호 남쪽 몽골공화국 접경지대에 있는 부이르호. 훌룬은 암수달, 부이르는 숫수달을 뜻한다. <김문석 기자>코리안 루트 답사길에서는 7월 21일 부이르호반에서 부이르라는 남동생과 훌룬이라는 누이에 얽힌 전설을 현지 주민에게서 취재하면서 이야기가 비롯됐다. 훌룬호와 부이르호에 관한 이야기인데, 둘이 다 수달이지만 부이르는 숫수달이고 훌룬은 암수달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방은 서울의 어린이대공원 앞 세종대 역사학과 연구실이지만, 실은 이는 28년 만의 복귀일 뿐 나는 그간 20여 년을 춘천에 귀양살이하듯 해직당해 내려가 살다가, 동국여지승람에 ‘본래 맥국’이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산달(山獺)인 맥(貊)-너구리를 비롯한 각종 짐승들이 많았던 왕년의 산짐승 천국에서 숨쉬고 살면서 산달인 맥의 나라와 그리고 이와 상대되는 동해변 강릉의 수달(水獺)인 예(濊)의 나라와 첫 인연을 맺었다.조선과 고구려는 '뿔'을 상징으로 하는 순록과 '날개-깃털'을 상징으로 하는 새의 결합형 순록유목 생태생업 문화권의 소산이다. 대흥안령 지역 선비족이 사용했던 머리 장식. <김문석 기자>전공이 몽골사인 데다가 마침 1990년대에 들어 북방 사회주의권이 개방되고 이어서 비행기가 오가고 인터넷망이 연결되면서 틈만 나면 수시로 지금까지 특히 바이칼-몽골-훌룬부이르 일대를 드나들거나 또는 한두 해 체류하며 더 머나먼 시베리아 귀양지에서 모든 잡념을 끊고 그 뿌리를 캐는 데만 전념하게 됐다. 1980년 해직교수의 색다른 기구한 인생유전이 맺어낸 결실이랄까. 나는 지금 다시 세종대 사학과에 복직해 정년 9개월을 남겨두고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시베리아-만주지대에서 고원지대를 대표하는 짐승이 산달인 너구리-‘맥’이라면 저습지대를 상징하는 짐승은 수달인 부이르-‘예’라는 것이 내몽골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아르다자브 교수의 견해다. 지금 부이르 호반에서 현지인에게 다시 확인하고 있지만 부이르는 전설상으로 숫수달의 뜻을 갖는 이름이다. 숫수달이 암수달보다 더 모피(Fur)가 좋아서 사냥감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Buir’의 ‘B’와 ‘R’자가 탈락하면서 ‘예(濊)’자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는 2003년 정월에 실제로 눈이 내리는 춘천 맥국 유허비 언저리를 현지 답사한 다음에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예’계와 ‘맥’계는 역사적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왔다며 실례를 들어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예컨대 맥계인 거란(遼)이 서니 예계인 여진(金)이 일어나 이를 멸망시키고, 이 여진을 다시 맥계인 몽골(元)이 정복해 지배하다가 결국은 예계인 만주(淸)제국에게 아주 거의 철저히 멸망당했다는 것이지요. 저습지대 종족 예족과 고원지대 종족 맥계가 치열하게 공방사를 펼쳐온 오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변 강릉의 예국 유적과 산중의 짐승왕국 춘천의 맥국 유적이 상존한다는 시각의, 집요한 천착이 이제 아주 긴박하게 요청되고 있는 셈이지요. ‘예’라는 수달(水獺)과 ‘맥’이라는 산달(山獺)이 통일되면 ‘예맥’(濊貊)=달달(獺獺: Tatar)이 된다고 보는 이도 있어요.”“단군조선의 단(檀)이 예맥국”나는 이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달달=타타르는 단단(檀檀)으로 한문으로 음사(音寫)되기도 해서 실은 단군조선의 단(檀)이 수달과 산달, 곧 예와 맥이 통합된 예맥국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문명화한 백(白)타타르가 ‘배달’로 불렸음직도 하지만, 선비족 단석괴(檀石槐)라는 칸도 있고 중국인명사전에는 단씨 성을 가진 인물이 십수 명이나 등재돼 있어요. 실은 동북아 고대사에 이름을 남긴 맥궁(貊弓)이나 단궁(檀弓)이 모두 맥족이나 단족이 만든 명궁이지, 근래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 해모수가 아들 주몽에게 ‘이는 박달나무로 만든 활인데…’ 하고 비장한 어조로 말하며 남겨주는 박달나무 활이 전혀 아니지요. 맥궁이 맥나무로 만든 활이 아니듯이 단궁 또한 결코 단나무로 만든 활이 아닙니다. 맥나무란 본래 없고 박달나무로 좋은 활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단궁이나 맥궁이 실은 모두 예맥=달달=타타르=단단족이 만들어낸 명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맥은 별명이 산달이니까요. 맥적은 물론 맥족이 만들어 먹던 적(炙)=불고기지요. 맥은 산달이라 시베리아 고원지대 타이가에서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시달리다가 자연 발화로 만들어진 산짐승의 불고기에서 비롯한 듯하고요. 저습지대 예는 불씨가 구하기 힘들고 추워서 날고기를 주로 먹다 보니 육회나 물고기 회(膾)를 후세에 전해내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맥국 유적지가 있는 춘천의 불고기가 맛이 있고 예국 유적지가 있는 강릉의 회가 별미로 손꼽힙니다. 둘을 합하면 회자(膾炙)지요. 인구(人口)에 회자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는 동북아 고대의 별미 중의 별미인 특별 요리로 유명했지요. 본래 중국에서 비롯된 라면을 일본이 위생적으로 가공해 근래에 수출했고, 여기에 한국인의 맛내기 솜씨가 가미돼 한국 라면이 되었는데, 이 한국 라면이 베이징, 울란바토르, 시베리아와 모스크바는 물론 미국 식당가까지 들어가 라면 맛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역시 전통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됐어요. 수달과 산달 사냥꾼들인 조선과 맥족 고구려가 창조해낸 맛의 천국인 셈이지요. 이런 맥락으로 미루어 저는 ‘단군(檀君)은 수달임금, 주몽(朱蒙)은 너구리 사냥꾼’이라고 강변하고 있지요!”순록치기가 기마양치기로 발전 예맥족의 예는 숫수달(아래)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소장 제공> 맥은 너구리에서 유래했다.<우르몽골훌룬부이르대학 황학문 교수 제공>실은 나는 1999년 가을부터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에 한 해 동안 상주하며 이런 사실을 현지에서 직접 조사 연구해 국내에 보고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학자가 한 명도 없었다. 맥에 관한 이런 답사 보고가 주목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2005년 3월 23일에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 흑룡강성 동물자원연구소의 박인주(朴仁珠) 조선족 교수가 “대·소흥안령에 별명이 산달(山獺)인 맥(貊)이라고 불리는 ‘너구리’-내몽골어 ‘엘벵쿠’가 지금도 적지 않이 뛰어 놀고 있다”고 관계 학회에 공식 보고를 하고 나서다. 그러나 그래도 언론은 꿈쩍도 않다가 2007년 봄에 내 책 ‘순록치기가 본 조선·고구려·몽골’에 이 내용이 등재되어 서울발 연합뉴스를 타고서야 다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지 답사길 가기보다 더 어려운 험로였다.마침 국내 유일의 수달 전문가인 한성용 교수를 소장으로 세계적인 차원의 ‘수달연구센터’가 춘천 언저리에 있는 화천에 세워졌는데, 이를 계기로 자잘한 밥그릇 겨루기식 연구를 지양하고 역사 정보가 전파를 타고 빛의 속도로 세계 각지를 오가는 IT지구 마을시대답게 과감히 시베리아-몽골에 그 문호를 열어 예맥의 맥=너구리 연구도 동물학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베리아라는 세계 최대의 숲의 바다를 태반으로 그 창세기를 써온 종족들이 짐승을 조상으로 삼는 수조(獸祖)전설을 거의 100% 공유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예(숫수달:Buir=夫餘)-맥(너구리:Elbenku)-조선(순록치기:Chaatang)-고[구]려(순록:Qori)-발해(渤海:늑대의 토템語: Booqai)-솔롱고스(黃 :누렁 족제비:Solongo의 복수형)라는 종족 또는 나라 이름이 이미 한민족 스키토·시베리안 기원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조선과 고구려-몽골 국명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순록치기가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의 기마 양치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기틀을 마련하는 것 같다.조선과 고구려는 ‘뿔’을 상징으로 하는 순록과 ‘날개-깃털’을 상징으로 하는 새의 결합형 순록유목 생태생업문화권의 소산이다. 말은 그 이후의 후래적인 요소다. 그래서 스키타이인들은 뿔이 없는 말에게까지 황금 순록의 뿔 탈을 씌우려 한 것이다. 황소(뿔)와 백조(깃털)의 결혼 이야기로 내용이 구성된 순록치기 코리족 시조 탄생 설화가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적시(摘示)하고 있다. 역사 드라마로 동북아가 온통 술렁이는 듯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그것들을 번갈아보면서 내가 아주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다.툰드라, 타이가, 스텝과 농경지대를 두루 오갈 수 있는 힘센 동물이 각력(角力)을 자랑하는 황소였을 것이다. 순록치기 붉은 악마 치우(蚩尤)는 그걸 타고 툰드라-타이가-스텝-농경지대를 누볐으리라. 대규모 양치기 수단으로 철제 재갈을 말에게 물려 말을 타기 이전까지는 순록치기가 순록유목권을 벗어나면 힘센 황소를 주로 탔음은 물론이다. 한인(漢人)들의 그것과 다른 조선-고구려의 문무관복의 장식 치장들이 이를 잘 입증한다고 달리는 차 속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씨름도 뿔힘 겨루기인 각저(角抵)요, 우두(牛頭)머리도 ‘뿔의 칸’인 각간(角干)-이벌찬(伊伐:Eber飡)이다. 뿔 달린 도깨비의 요술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많다. 솟대는 새의 깃털로 상징된다. 기마 양유목의 모태인 순록유목태반에서 조선-고구려가 이미 배태됐다는 것이다. 그 호칭 자체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상상과 추리의 나래를 펼치는 나날들을 탐사길에서 보내면서 7월 말엔 어느새 답사의 종착역, 몽골 스텝의 바람이 거센 스텝인 대흥안령 남부 홍산 문화권에 들어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주채혁 :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몽골사><후원 : 대순진리회> …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12 조회 1003
  •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천제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천제제명 : 천제신격 : 차돌이, 흰쥐제당 :일시 :풍수지리의 명인 차돌이지 역 :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줄거리 : 어느 날 차돌이가 밥을 먹을 때 허기진 흰쥐가 한 마리 밥상머리에 나타난다. 차돌이가 밥을 한 숟가락 떠주자 그 후부터 끼니때마다 나타난다. 어느 날 밤 흰쥐가 차돌이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용몰랑 용연으로 데려간다. 용연물이 끓어오르더니 백발노인이 나타나 한라산 백록담 천이백년 묵은 용이라고 한다. 천년이 지나면 등천을 하는데 이백년이 지나도 등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송광사 보조국사께 그 이유를 알아주라고 한다. 차돌이는 보조국사를 만나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보조국사는 그 용이 욕심이 많아 두 개의 여의주 때문이라고 한다. 용에게 등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해주자, 용은 차돌이에게 여의주를 주면서 그 것을 삼키고 하늘을 보면 천문이 밝을 것이고, 땅을 내려다보면 지리에 밝을 것이라고 한다. 차돌이는 용이 준 구슬을 삼키고 풍수지리의 명인이 되어 높은 벼슬까지 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차돌이가 죽자 마을신으로 모시고 천제를 지내게 되었다.등장인물 소개* 차돌이는 농사를 지으며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30대 어부이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간다. 마을사람들은 차돌이에게 법 없이도 살아갈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날 차돌이가 밥을 먹고 있는데 허기진 흰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차돌이는 허기진 흰쥐에게 밥을 한 숟가락씩 떠서 주었다. 휜쥐는 밥을 사라졌다. 그 뒤부터 흰쥐는 끼니때마다 나타났다. 흰쥐는 어느 날 밤 차돌이를 용신과 만나게 해준다. 차돌이는 용신으로부터 여의주를 받아먹게 되는데 그때부터 혜안이 밝아져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된다.* 흰쥐 주먹만 한 흰쥐이다. 차돌이가 끼니 때 밥을 먹으려고 하면 밥상머리에 나타난다.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 차돌이를 용신과 만나게 해준다.* 백발노인 한라산 백록담의 1200년 된 용으로 등천하지 못했다. 등천하지 못한 까닭은 욕심이 많아 여의주를 두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조국사 송광사 스님으로 법력이 뛰어난 인물이다.배 경(1) 시대 : 옛날(2) 공간 : 섬마을, 한라산 백록담, 송광사(3) 지역 : 전남 여천군 삼산면 서도리5 신의 성격 해안이 밝고 풍수지리의 명인으로 마을의 수호신이다.애니메이션 줄거리전남 여천군 삼산면 서도리 작은 마을에 차돌이라는 사람 살았다. 차돌이는 얼마 되지 않은 농사일을 하면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차돌이가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흰쥐 한 마리가 밥상머리에 나타났다. 흰쥐는 허기진 모습으로 차돌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돌이 눈을 말똥말똥 쳐다봤다. 차돌이는 밥을 먹으려다가 밥그릇에서 밥을 한 숟가락을 뚝 떠서 흰쥐 앞에 줬다. 흰쥐는 밥을 맛있게 먹고 사라졌다. 그 뒤부터 흰쥐는 차돌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나타났다. 어느 날 밤 흰쥐는 차돌이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차돌이는 잠을 자려다 말고 흰쥐를 따라 나섰다. 흰쥐는 차돌이를 용몰랑 용연으로 데리고 갔다. 용몰랑 용연에는 용신이 살고 있다.신화어느 날 차돌이가 뒷뜰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쥐구멍에서 흰 쥐 한마리가 나와서 허기진 모습으로 음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차돌이는 밥을 먹을 때마다 쥐구멍 앞에 밥 한 술씩 떠놓으니, 흰 쥐는 차돌이 앞에 오더니 앞발을 들고 따라오라는 몸짓을 하였다. 차돌이가 흰쥐의 뒤를 따라간 곳은 용몰랑 용연이었다.그런데 갑자기 흰쥐는 사라지고 용연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백발노인이 물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 노인이 말하기를“차돌아! 나는 한라산 백록담에 있는 천이백년 묵은 용이다. 천년이 되면 등천을 하는 법인데, 나는 천년이 지나도 등천을 허락받지 못하고 있어 원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차돌이 너에게 부탁하노니, 너는 송광사 보조국사께 그 이유를 알아주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다”라고 차돌이에게 신신당부하고는 물속으로 사라졌다.착하고 인정 많은 차돌이는 여러 날이 걸려 송광사에 도착하여 보조국사를 알현했다.“국사님, 저는 서도리에 사는 이차돌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마을 용몰랑 용연에는 천이백년이나 된 용이 있는데, 천년이 지나도 등천하지 못함을 원통하게 생각하여 제게 그 이유를 알아 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라고 자세하게 용의 부탁을 말했다.“관세음보살. 그 용은 욕심이 너무 많으니라. 여의주를 하나만 가져야 하는데 두 개를 가져서 옥황상제님의 노여움을 샀느니라”라고 일러주었다.차돌이는 용연으로 돌아와 용에게 보조국사의 말씀을 전해 주었더니, 용은 입에서 구슬 하나를 토해내어 차돌이에게 주면서“내가 너에게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구슬은 매우 진귀한 보물이다. 이 구술을 삼키고 하늘을 보면 천문에 밝을 것이고, 땅을 내려다보면 지리에 박ㄹ을 것이다”라고 말을 끝내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병력과 함께 번개가 치더니 구름이 용연을 덮어 용을 감싸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차돌이는 용으로부터 얻은 구슬을 삼키고 땅을 내려다보니 땅속이 물속을 들여다보듯 환해지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차돌이는 풍수지리의 명인으로 그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게 되어서 후에는 나랏님의 부르심까지 받아 높은 벼슬을 얻어 평생 동안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 날에도 용몰랑 용연에 천제단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명소지명유래지』, 전라남도, 1987, 154~155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1000
  •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제명 : 천제, 당제신격 : 天龍主神제당 : 화개산 정상의 천제단, 아을 뒤 당숲의 당집일시 : 음력 3월 1~3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여수 화정면 개도리 당제제명 : 천제, 당제, 헌석제내용 : 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특징 :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개도리 당제의 개별 제의들을 연관선상에서 볼 수 있도록 시간순서대로 제작하였다.개괄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의내용화산마을의 공동제의는 크게 당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천제, 당제, 헌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당과 신격 역시 3곳으로 제를 지내는 형식 또한 다 다르다.음력 3월 1일에 지내는 천제는 천제단에서 지내는데, 상당이라도 한다. 천제단은 개도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을 뒤에 있는 화개산이다. 화개산은 두 개의 높은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봉화대가 있는 봉화봉이고, 다른 하나는 천제단이 있는 천제봉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원래 높이는 봉화봉이 조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제를 지내는 봉우리가 봉화봉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돌로 단을 쌓아다는 유래가 있다. 실제 천제봉 정상은 3m 정도 돌로 쌓아져 있고 제일 윗 부분은 직경 3m 정도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제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천제단 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천제봉에서 지내는 신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주와 부당주에 의하면 개도 6개 마을과, 백두산부터 남해바다 일대까지를 편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제를 지낼 때 메를 다섯 방향에 진설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음력 3월 2일에 지내는 당제는 마을 뒤에 있는 당숲(서나무숲) 앞 당집에서 지내는데, 하당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당집은 97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이고, 철근 콘크리트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당집 입구 위쪽에 가로로 천제당(天祭堂)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당집 둘레에는 1m 20cm 정도의 높이로 담이 둘러져 있고, 당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하나 있다. 기존에 있던 당집도 기와로 된 건물이었는데, 낡아서 중축한 것이다. 당집 입구 쪽에는 당산나무 1그루와, 입석 1기가 서 있다. 당집 내부는 두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왼쪽 방에 ‘天龍主神之位’라고 쓰여져 있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당집 안에 철로 된 마상 2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天龍主神之位’라는 위패를 놓고 당제를 지낸다. 화산마을을 포함한 개도리 전체의 당집은 당숲 안에 당집이 있는데, 그 중 화산마을의 당숲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헌석제는 당집 앞에 있는 당산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서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오장치를 던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신격이 당산나무와 용왕신 둘로 나눠진다. 당산나무에 바짝 붙어서 입석이 1기 있고, 그 입석에는 오장치를 걸어둔다. 그 앞에 상석이 1m 넓이로 만들어져 있어서 음식을 진설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차려오는 개인집의 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일렬로 차려놓는다. 오장치는 주로 애기가 없는 유부남이 애기를 낳기 위해 매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방파제까지 매구를 치고 가서 바다에 던진다. 굿을 하러 온 법사의 해석에 의하면 당집은 당산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석제 때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당집과 당산나무에 대해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고, 당에서 굿을 하는 것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고, 바다에서 헌석을 하는 것은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신화유래에 대한 제보자들의 설명에서는 천제나 당제 혹은 헌식 중 어떤 것의 유래를 따로 떼서 말한 것은 없었다. 유래는 모두 말(馬)과 관계된 것이거나 옛날 당집에 모셨다는 철마상(鐵馬像)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옛날에 말을 많이 키웠는데, 말이 병이 들어 죽으면 말임자들이 육지에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구타하고 하니까 말이 안 죽게 하기 위해 산에다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정부에서 발령받아온 마관들이 말이 죽곤하여 자신들이 혼나니까 마을 사람들을 시켜 제사를 모시도록 지시한 것이다. 마관들이 왜 말을 죽게 했느냐고 마을 사람들을 책임 추궁하고 구타하니까 말들이 안 죽고 잘 자라라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당에다가 말을 동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모셨다. 중간에 어쨌는가 없어져 버렸다. … 지금 월항리 근처에 말을 키우는 성이 있었다. 성을 쌓아 놓고 말을 키우면서 말을 잘 키워주라고 제를 모신 것이다.…그래서 말놔두고 산제를 모시게 된 것이다.위의 유래담에서 보면, 당시 마을 사람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사가 강요되어 모셔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농업이거나 어업인데, 말이 잘 크고 잘 번식하게 해달라는 제사를 마을 공동으로 지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는 풍농과 풍어를 비는 보편적인 당이었는데 마관들에 의해 당제의 성격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의 유래담은 보편적인 당제가 특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철마상이 도난당한 뒤 용왕신의 위패로 대체된 것은 원래 모습으로의 복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목장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목장이 없어지고 최근 우연히 철마상이 없어지고 난 후, 원래 당신(堂神)의 하나였을 용왕신이 모셔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본 정월 보름날 당제가 삼짇날 당제와 병행했다는 제보도 화산리 당제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990
  • 단군조선 대제국의 2000년 역사가 일제 식민사학으로 송두리째 지워졌다 -- 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
    단군조선 대제국의 2000년 역사가 일제 식민사학으로 송두리째 지워졌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8-23 조회 982
  • 天阿 1성 천아 여인의길흉별자리
    天阿 1성 천아 여인의길흉별자리천아는 여인의 길흉 별자리이다. 주로 여인의 재앙과 복을 담당하는데 산림의 요사스럽고 괴이한 일을 살피는 일도 주관한다. 만약 이 천아에 오성이나 객성, 혜성이 범하면 요사스런 말(言)이 길거리에 넘쳐나게 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978
  • 경기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당제, 서해안 배연신굿
    경기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당제, 서해안 배연신굿    제명 : 연평도풍어제 또는 임장군제신격 : 임경업장군제당 : 임장군당일시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지 역 : 경기도 강화군 갑곶리 진해줄거리 : 임장군이 군사를 데리고 중국으로 가는데 찬거리가 없어 구찌나무를 바닷가에 꽂아 두라고 한다. 그 곳에 조기가 주렁주렁 걸리게 된다.등장인물 소개* 임경업장군 : 조선의 장군. 엄나무 가지로 조기를 잡음.* 대표상인 : 40대 중반. 상인복장. 눈은 찢어져 올라 가 있고, 코 밑에 양 옆으로 수염이 이방처럼 나 있음.* 상인들과 병사들배 경(1) 시대 : 조선시대(2) 공간 : 조선, 청나라, 배 안, 바다 가운데 섬, 어장터, 당집(3) 지역 : 연평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2리 하동마을분 류: 고기를 몰아주고 풍어를 가져다주는 신애니메이션 시나리오 : 청나라에서 조선의 두 왕자를 볼모로 잡아 갔습니다.“청나라 이놈들, 내가 꼭 이 원수를 갚아주겠다.”이렇게 큰소리를 친 사람은 조선의 임경업 장군이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어떻게 하면 청나라로 잡혀간 두 왕자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청나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상인으로 변장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상인들을 만나 의주로 장사를 떠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상인들은 임경업 장군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쌀과 곡물을 몽땅 배에 싣고 함께 떠나게 되었습니다. 배가 조선을 떠나 한참 가는데 상인들은 뱃머리가 의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인들은 임경업 장군이 장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 잡혀 있는 두 왕자를 구하러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인들은 며칠 동안 배를 타고 가다가 꾀를 냈습니다. 대표격 상인이 말했습니다.“자자, 우리가 청나라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떻게 알겠나.”“맞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식량이 떨어졌다고 하면 아마 조선으로 다시 돌아 갈 걸세.”“어르신 그럴 것도 같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누구보다 백성들을 사랑한다지 않습니까.”“그럼 우리가 식량을 몽땅 바다에 던져버립시다.”“그럽시다. 어서 서두릅시다. 병사들이 없는 틈을 타서 어서요.”상인들과 선원들은 식량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임경업 장군 앞으로 갔습니다.“장군님,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더 이상 항해는 무리입니다.”“그래. 선장은 섬에 배를 대시오.”임경업 장군의 말에 선장은 섬에 배를 댔습니다.“병사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섬에 내려 가시가 달린 엄나무라는 것이 있다. 엄나무 가지를 있는대로 꺾어오기 바란다.”병사들은 도대체 엄나무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서로 소곤거리며 엄나무를 찾았습니다. 벙사들은 섬에 있던 엄나무 가지를 몽땅 꺾어 왔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간조 때를 맞춰 어장터에 이 엄나무를 꽂아 놓고 오라.”선원과 상인, 병사들은 임경업 장군을 엄나무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식량이 생기나.”“그러게 말일세. 귀신이 곡할 노릇을 하라고 하는군.”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시간이 얼마나 지나 다시 간조 때가 되었습니다.“병사들은 어장터로 나가봐라.”임경업 장군의 말에 병사들은 어장터로 나갔습니다. 병사들은 엄나무 가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가시가 달린 엄나무에 조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선원들과 상인은 더 이상 식량이 없단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청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무사히 두 왕자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임경업 장군은 청나라 군사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임경업 장군을 사당을 지어 신으로 모셨습니다. 조기 잡을 철이 되면 사람들은 임경업 청나라로 갈 때 조기를 잡았던 것을 생각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용을 타고 나타나 조기 떼를 몰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2005년 8월 인천광역시 연안부두에서 만신 김금화의 주도로 배연신굿이 연행되었다. 배연신굿은 조기잡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조기잡이를 가르쳐준 임경업 장군이 주신으로 모셔지고, 조기잡이의 풍어를 알리는 배치기 소리가 연행된다.신격임경업장군 : 고기잡이를 알려준 신으로 주신이다. 굿청에 다양한 신격들이 그려져 걸여 있다. 임경업장군이 말을 타고 칼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 깃발에 그려진 장군도에는 삼국 충신 임장군이라 쓰여 있다. 임장군은 말을 타고 오른 손에 칼을 들고 화살 통을 메고 있다.신화임장군제. 현재는 연평도풍어제로 알려져 있다.임경업장군은 절대적으로 뱃굿에 군림한다. 당에서는 산신과 부군님, 또는 서낭님, 그리고 장군님을 같이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황해도에서는 주로 임경업이 장군님으로 으뜸으로 모셔진다. 그래서 당 자체를 장군당으로 부르기도 하며 제의 때에 장식하는 기도 장군기라고 부른다. 굿에서 장군기(참대에 장군 화상이 그려진 기를 매었음)를 들거나 봉죽(주민들이 각자 서리화-수팔련-함박꽃 등 각종 꽃을 가지고 와서 꽂은 꽃대)을 들고 펼치는 대규모의 제축을 펼친다. 먼저, 당산맞이에서 필히 광목에다 임경업 장군을 그린 장군기를 들고 간다. 장군기가 신을 받아야지만 본굿이 시작된다.굿하기 몇 일전부터 배의 선원들이 배에서 잠을 자며 금기를 한다. 선주가 총지휘를 하여 무당일행과 같이 배위에 마련한 굿청에 제물을 차리고 난 후 무당일행은 일단 배에서 내려오고 선원들은 먼저 자신들의 부정을 푼다. 그 후에야 무당이 오르고 신청울림으로 굿이 시작된다. 다음은 ‘당산맞이’를 하러가는데 맨 앞에 사공이 든 장군기와 봉죽 뱃기 등을 앞세우고 간다. 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장군님 앞에 차려놓고 사공과 선주가 재배한다. 그리고는 당맞이 굿에 들어가 ‘임장군님’ ‘당산신령님’ ‘부군님’ 그리고 ‘서낭님’을 청하여 굿을 하고는 당문 옆에 세워두었던 장군기를 뉘어서 당 안으로 들이밀면 주무는 기에 신이 내리도록 축원한다. 신이 내리면 사공과 선주가 기위에 길지(백지)를 묶어 당밖에 세워두고 주무가 에밀량(민요조의 뱃노래)을 하면서 북과 징을 치면서 다함께 배치기로 후렴을 받는다. 이렇게 기를 들고 배에 올라오면 그때부터 굿이 시작된다. 즉, 부정굿-정물림-당제석-산장군거리-감놀이굿-영산할아뱜-영산햘먐-쑹거주는굿-다리발 용신굿, 그리고 강변굿으로 마감한다.굿거리마다 조기잡이를 기원하는 대목이 연출된다. 소당제석거리에서 무당은 조기 제일 큰 것을 들어 물동이에 넣는다. 그러면 조기 머리의 방향을 보고 뱃사람들은 그 쪽으로 고기잡이를 나가면 장원(고기를 제일 많이 잡는 것) 하겠다고 자기네끼리 점을 친다. 영산 할아범-할맘굿에서는 그물 올리는 굿을 연출하고 끝에 가서는 그물을 펴서 바닷물에 넣었다가 고기를 퍼서 배에다 싣는 시늉을 하고 배치기를 하는 등 연극적인 굿거리로 끝난다. ‘쑹거주는 굿’에서는 뱃사람들이 긴 무명을 양쪽에서 붙잡고 떡을 담아 쑹거를 섬기면 뱃사람들이 뒷소리를 받으며 선원과 선주가 옷자락을 벌려 복떡(고기로 간주함)을 받아간다. 이와 같이 배연신굿은 철저하게 임경업장군과 조기잡이에 관련된 생산의례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해양문화』 서해해역 4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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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 당제
    충남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 당제        제명 : 당제, 산신제신격 : 산신제당 : 효자도의 당집은 원래 상당과 하당 두 곳이 있었으나 하당은 10여년 전에 마을에서 회의를 하여 하당을 없애자고 하여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일시 :충남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 당집내 색동 베지역 : 충남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제명 : 당제, 산신제라고 부르며 상당제를 지내는 당집에 기해년(己亥年)이라고 써 있으며 미루어 볼 때 1899년으로 판단되며 적어도 100년은 넘은 것으로 보인다.제당 : 효자도의 당집은 원래 상당과 하당 두 곳이 있었으나 하당은 10여년 전에 마을에서 회의를 하여 하당을 없애자고 하여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위치 : 상당은 마을 당산 정상에 있으며, 하당은 예전 중리에 있는 마을회관 옆에 있었다.형태 : 상당의 당집은 약 5평 정도의 크기이며, 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의 벽만 시멘트로 되어 있고 나머지 측면은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당집 바닥도 나무로 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ㄱ’ 자 모양의 선반이 벽 상단에 있으며 선반 위에는 나일론 줄에 빨강, 노랑, 하얀색의 천들이 걸려 있으며 선반 맨 우측에는 초가 있고 당집 앞에는 나무절구가 놓여 있으며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다.좌정된 신격 : 당집 내부에는 왼쪽에서부터 ‘장군당’, ‘각시당’, ‘본당’, ‘수부당’ 이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써놓은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당제를 지내면서 신격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특별히 신격에 관한 그림이나 신위는 모셔져 있지 않다.특징 : 효자도에서의 당의 신격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당집 내 벽면에 ‘장군당’, ‘각시당’, ‘본당’, ‘수부당’ 이라고 쓰여 있어 예전에 신을 기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조상 대대로의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1995년 마을회의를 통해 하당을 없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으나 여전히 당제를 연행되고 있으며 당산에 있는 상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현재 차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게 되어 있다. 이는 마을주민들이 상당에 제물을 올릴 때 쉽게 올라가려고 넓혔다고 한다.제당의 형태위치 : 상당은 마을 당산 정상에 있으며, 하당은 예전 중리에 있는 마을회관 옆에 있었다.형태 : 상당의 당집은 약 5평 정도의 크기이며, 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의 벽만 시멘트로 되어 있고 나머지 측면은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당집 바닥도 나무로 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ㄱ’ 자 모양의 선반이 벽 상단에 있으며 선반 위에는 나일론 줄에 빨강, 노랑, 하얀색의 천들이 걸려 있으며 선반 맨 우측에는 초가 있고 당집 앞에는 나무절구가 놓여 있으며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다.좌정된 신격 : 당집 내부에는 왼쪽에서부터 ‘장군당’, ‘각시당’, ‘본당’, ‘수부당’ 이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써놓은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당제를 지내면서 신격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특별히 신격에 관한 그림이나 신위는 모셔져 있지 않다.특징 : 효자도에서의 당의 신격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당집 내 벽면에 ‘장군당’, ‘각시당’, ‘본당’, ‘수부당’ 이라고 쓰여 있어 예전에 신을 기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조상 대대로의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1995년 마을회의를 통해 하당을 없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으나 여전히 당제를 연행되고 있으며 당산에 있는 상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현재 차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게 되어 있다. 이는 마을주민들이 상당에 제물을 올릴 때 쉽게 올라가려고 넓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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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제명 : 천제, 당제신격 : 天龍主神제당 : 화개산 정상의 천제단, 아을 뒤 당숲의 당집일시 : 음력 3월 1~3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여수 화정면 개도리 당제제명 : 천제, 당제, 헌석제내용 : 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특징 :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개도리 당제의 개별 제의들을 연관선상에서 볼 수 있도록 시간순서대로 제작하였다.개괄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의내용화산마을의 공동제의는 크게 당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천제, 당제, 헌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당과 신격 역시 3곳으로 제를 지내는 형식 또한 다 다르다.음력 3월 1일에 지내는 천제는 천제단에서 지내는데, 상당이라도 한다. 천제단은 개도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을 뒤에 있는 화개산이다. 화개산은 두 개의 높은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봉화대가 있는 봉화봉이고, 다른 하나는 천제단이 있는 천제봉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원래 높이는 봉화봉이 조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제를 지내는 봉우리가 봉화봉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돌로 단을 쌓아다는 유래가 있다. 실제 천제봉 정상은 3m 정도 돌로 쌓아져 있고 제일 윗 부분은 직경 3m 정도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제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천제단 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천제봉에서 지내는 신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주와 부당주에 의하면 개도 6개 마을과, 백두산부터 남해바다 일대까지를 편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제를 지낼 때 메를 다섯 방향에 진설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음력 3월 2일에 지내는 당제는 마을 뒤에 있는 당숲(서나무숲) 앞 당집에서 지내는데, 하당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당집은 97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이고, 철근 콘크리트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당집 입구 위쪽에 가로로 천제당(天祭堂)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당집 둘레에는 1m 20cm 정도의 높이로 담이 둘러져 있고, 당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하나 있다. 기존에 있던 당집도 기와로 된 건물이었는데, 낡아서 중축한 것이다. 당집 입구 쪽에는 당산나무 1그루와, 입석 1기가 서 있다. 당집 내부는 두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왼쪽 방에 ‘天龍主神之位’라고 쓰여져 있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당집 안에 철로 된 마상 2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天龍主神之位’라는 위패를 놓고 당제를 지낸다. 화산마을을 포함한 개도리 전체의 당집은 당숲 안에 당집이 있는데, 그 중 화산마을의 당숲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헌석제는 당집 앞에 있는 당산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서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오장치를 던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신격이 당산나무와 용왕신 둘로 나눠진다. 당산나무에 바짝 붙어서 입석이 1기 있고, 그 입석에는 오장치를 걸어둔다. 그 앞에 상석이 1m 넓이로 만들어져 있어서 음식을 진설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차려오는 개인집의 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일렬로 차려놓는다. 오장치는 주로 애기가 없는 유부남이 애기를 낳기 위해 매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방파제까지 매구를 치고 가서 바다에 던진다. 굿을 하러 온 법사의 해석에 의하면 당집은 당산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석제 때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당집과 당산나무에 대해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고, 당에서 굿을 하는 것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고, 바다에서 헌석을 하는 것은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신화유래에 대한 제보자들의 설명에서는 천제나 당제 혹은 헌식 중 어떤 것의 유래를 따로 떼서 말한 것은 없었다. 유래는 모두 말(馬)과 관계된 것이거나 옛날 당집에 모셨다는 철마상(鐵馬像)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옛날에 말을 많이 키웠는데, 말이 병이 들어 죽으면 말임자들이 육지에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구타하고 하니까 말이 안 죽게 하기 위해 산에다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정부에서 발령받아온 마관들이 말이 죽곤하여 자신들이 혼나니까 마을 사람들을 시켜 제사를 모시도록 지시한 것이다. 마관들이 왜 말을 죽게 했느냐고 마을 사람들을 책임 추궁하고 구타하니까 말들이 안 죽고 잘 자라라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당에다가 말을 동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모셨다. 중간에 어쨌는가 없어져 버렸다. … 지금 월항리 근처에 말을 키우는 성이 있었다. 성을 쌓아 놓고 말을 키우면서 말을 잘 키워주라고 제를 모신 것이다.…그래서 말놔두고 산제를 모시게 된 것이다.위의 유래담에서 보면, 당시 마을 사람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사가 강요되어 모셔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농업이거나 어업인데, 말이 잘 크고 잘 번식하게 해달라는 제사를 마을 공동으로 지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는 풍농과 풍어를 비는 보편적인 당이었는데 마관들에 의해 당제의 성격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의 유래담은 보편적인 당제가 특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철마상이 도난당한 뒤 용왕신의 위패로 대체된 것은 원래 모습으로의 복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목장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목장이 없어지고 최근 우연히 철마상이 없어지고 난 후, 원래 당신(堂神)의 하나였을 용왕신이 모셔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본 정월 보름날 당제가 삼짇날 당제와 병행했다는 제보도 화산리 당제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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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2리 권씨골맥이할배, 천장군, 해수신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2리 권씨골맥이할배, 천장군, 해수신  제명 : 서낭제(골맥이당제)신격 : 권씨골맥이할배, 천장군, 해수신제당 : 골맥이당일시 :경북 영해면 대진2리 천장군 캐릭터지역 :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2리명칭 : 권씨골맥이할배, 천장군, 해수신제명 : 서낭제(골맥이당제)신격 : 권씨골맥이할배 : 권동수는 입향조이며 주신이다. 위패에‘洞神權公之位’이라고 써 있다.천장군 : 마을에 호환이 많이 발생하여 모시게 되었다. 천장군은 옛날 천씨가 이 마을에 살 때 그 조상 중 장군벼슬을 한 사람을 모신 것이다. 천장군은 하늘 색 투구를 쓰고 노란 갑옷을 입고, 칼을 아래로 들고 있다. 해수(해불)신 : 폭풍우가 친 후 바닷가에 떠내려 온 부처님을 동신으로 모신 것이다. 海佛은 자연석에 “海佛神位”라고 써 있다.특징 : 대진리의 동제는 본당과 함께 천(千)장군과 해불신(海佛神)까지 모신다. 해불신은 먼 옛날 바다에서 부처님이 떠내려와 이것을 땅에 묻고 마을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이처럼 천장군을 케릭터화하였다.신격권씨골맥이할배 : 권동수는 입향조이다. 주신이다. 위패에 ‘洞神權公之位’이라고 써 있다.천장군 : 마을에 호환이 많이 발생하여 모시게 되었다. 천장군은 옛날 천씨가 이 마을에 살 때 그 조상 중 장군벼슬을 한 사람을 모신 것이다. 천장군은 하늘 색 투구를 쓰고 노란 갑옷을 입고, 칼을 아래로 들고 있다.해수(해불)신 : 폭풍우가 친 후 바닷가에 떠내려 온 부처님을 동신으로 모신 것이다. 海佛은 자연석에 “海佛神位”라고 써 있다.신화권씨골맥이할배 권동수는 입향조이다. 천장군은 마을에 호환이 많이 발생하여 모시게 되었다. 해수(해불)는 폭풍우가 친 후 나가보니 부처님이 바닷가에 떠 있어 그것을 다시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런데 한 20일 뒤 다시 그 부처가 파도에 밀려 똑같은 장소에 와 있어 동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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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당개마을 의관입힌 왕대
    경기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당개마을 의관입힌 왕대제명 : 성황제신격 :제당 :일시 :신화백령도에는 일찍이 가톨릭이 들어오면서 주민 총수 교인의 비율이 매우 높다. 서양종교의 이입으로 민간신앙은 매우 일직이 끊겼으며, 지금도 이야기의 일부가 전승되고 있다. 당개 성황당도 그 중의 하나이다.“어느 무더운 여름철, 당개 해변에 이상한 물체가 떠내려 왔다. 이상히 여겨 건져보니 놀라울 정도로 큰 왕대토막이었다. 이상하다싶어 왕대를 발견한 산 위에 성황당을 지어 신으로 모셨다. 그 후로는 마을이 풍요로워졌다. 이에 섬사람들은 왕대에 의관을 입혀 신위로 모시고 해마다 9월9일 제를 올리는데 왕대 신위가 현몽하여 제사 절차를 일일이 지시하고 간다. 이상한 일은 마음이 불순한 사람이 지나치려고 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아 고생을 했으며, 말을 타고 갈 때 하마(下馬)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 욕을 당하였다. 뱃사람이 고사를 안 지내면 풍랑이 일어서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해양문화』 서해해역 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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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天門 2성 천문 하늘관문별자리
    天門 2성 천문 하늘관문별자리두개의 별로 이루어진 ‘천문’은 하늘문 별자리이다. 하늘의 천신들이 인간세상을 여행하고는 하늘 세계로 다시 돌아갈 때 아마도 하늘문 별자리인 천문을 통과해서 지나갔을 것 같다. 또 지상에 있는 인간이 죽어서 하늘 세계로 들어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기도 했을 것이다.6. 天門 2성 천문 하늘관문 별자리1. 서성 53 Vir-처녀자리2. 동성 69 Vir-처녀자리 군진 별자리[조선왕조실록]인조 6년 1 건(1629년)관련이야기포목상 별자리와 문익점…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934
  • 天關 1성 천관 변방요새별
    天關 1성 천관 변방요새별변방 별자리을 뜻하는 천관은 주로 변방의 요새를 주관하고, 관문을 걸어잠그는 일을 담당하던 별이다. 변방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하늘에 있는 천신이 그 조짐을 알려주고 예견했던 별일 것이다. 또 천관의 별 위로 해와 달 및 오성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천문(天門)이라고도 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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