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맥: 숫수달·산달-Tatar는 스키타이 혁명기 주로 교차·분족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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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12-12 17:58 조회 1,6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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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타이가-툰드라라는 전형적인 시베리안 루트는 당연히 모피 생산지이자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모피무역로였다. 특히 개방공간에 순록이나 말로 이어지는 교통수단이 뒷받침되는 조건이 갖추어지는 경우에는‘시베리아의 황금(Siberian Gold)’은 교역이 개시된 상고시대 이래로 당연히 모피(毛皮:Fur)이었기 때문이다. 모피의 교역이 낙타로까지 접맥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그 분야에 문외한인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순록의 Lichen Road(이끼의 길)와 기마 양의Steppe Road를 위주로 하는 시베리안 루트(Siberian Route)는 당연이 주로 Fur road(모피의 길)로 명명함이 상식이리라 본다.특히 한 대(漢 武帝 BC 139년 장건) 이른바 Oasis Road[장안~로마]-Silk Road가 개척되기 이전까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근래 해양제국기에 들어서는 물론 Sea Road(바닷길)가 교역의 주도권을 장악케 된다.

[그림] 지도에 첨부된 북극해 쪽과 동해의 처용탈[玄武-淡水-宗山]은 양지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유목과 비유목 생태계라는 차이도 현재는 엄존하지만 역사적인 상호관계(DNA)는 매우 밀접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여 굳이 사진꾸미기를 하였다.동북아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BC 5 세기 경)의 기원지 호눈선원(呼嫩鮮原:HoNun sopka & steppe)지대의 사진은 좌상이 숫수달(濊:Buyir?), 우상이 산달(山獺=貊:Elbenkh)이며 하중이 유목의 상징 Buri( 유목의 토템어 늑대 Wolf;渤海:Boka)다.시베리아 모피의 대종은 수달(Otter)인데 수달 가운데서도 숫수달(Buyir: Male otter)이 암수달(Female otter)보다 모피가 더 좋다.이들 삼자가 Scythia 기마 양유목혁명을 기점으로 주로 교차·분기하면서 조선과 몽골이 형성돼온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고증관계는 논자의 『차탕조선』혜안 2017 관계난 참조.그림은<blog.daum.net/chuchaehyok>과 chuchaehyok.com 에 실려 있다.

모피의 길에 주로 오르내리는 모피 상품의 주종은 수달(水獺: Otter)․ 산달(山獺: Mountain racoon,너구리)․ 해달(海獺:Sea otter) ․ 한달(旱獺 또는 乾獺:Тarbagan)이어서 아무르 강 입구에 Tatar(獺獺)해협이 있기까지 하다.역사가들이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를 팍스 타타리카(Pax Tatarica)라고도 서슴지않고 명명하고 있는 것은, 유라시아북방유목몽골로이드제국의 태반이 주로 이(獺獺:Tatar)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까닭이다. 장쥐허(張久和,내몽골대 몽골사)교수는 단군(檀君)의 단(檀)마저도 단단(檀檀)-달달(獺獺)로 읽는다.단군을 무엄하게도 Tatar Khan이라 본다는 것이다.다 싱안링 중동부[화산지대]가 생가인 장교수와 2000년 봄에 북극해와 태평양의 거세찬 바람이 직충하는 거의 동북아 싱안링권의 최고봉이라 할 백두산 천지를 동행해 오르내리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어보았다.서로 이견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구촌시대-정보화시대엔 불·영학자들이 Rosetta Stone을 해독해내던,그런 진지한 역사과학적인 접근 자세로 오로지 담담하게 단군 관계 사료를 천착해볼 필요가 있을 수 있겟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무한개방·무한경쟁의 생태공간 스텝·타이가·툰드라의 순록~기마 양유목사의 시의에 따른 엄연한 주도역-특히 BC5세기 경의 호눈선원(呼嫩鮮原:HoNun sopka & steppe)에서 본격화했던‘동북아 스키타이대혁명사’를 소외시하고 단순한 추상적인 일원적인 농경사관의 관점에서 동북아시아사를 총괄해 해석해보려는 자세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무리라면,조선사든 한족사(漢族史)든 상당히 추상적인 사관(史觀)보다 구체적인 사실(史實)에 근거한 엄정한 과학적인 관계 역사복원을 면밀히 추구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주로 수렵~어로에서 방목~유목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농후한 차탕조선사의 경우엔 그 시원조선사부터 정보화·유전체학시대에 더 적합한 혁신적인 시각의 접근․도전이 시도돼야 하지 않을까? 특별히 동북아 Scythia 기마 양유목혁명기를 일대의 기축으로 삼아 솟구쳐나는 Chaatangchoson사~예맥(濊貊)-Tatar사로 시각을 과감히 재조정하면서 유목제국사(Pastoral nomadic empire) 기틀 위에 본격적으로 발전해온 예․맥의 농경조선사와 맥(貊) 주도의 유목몽골사의 교차․분기의 역사발전과정을 복원해내보려는 시도가 이에 감행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chuchaehyok.com 월요역사칼럼,<blog.daum.net/chuchaehyok> 2018. 8.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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