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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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층의 당쟁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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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1:45 조회 4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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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층의 당쟁의 성격

권력층의 투쟁이 의견을 달리하는 파당 사이에 있는 건설적인 논쟁이 아니고 권력의 투쟁을 위하여 생사를 걸어서 이에 패배한 세력은 반역으로 몰리고 심지어는 김종직의 경우에서와 같이 죽은 사람의 관을 열고 시체의 목을 매는 것과 같은 잔악하고 처절한 투쟁이었다.
조정(朝廷)에 일하거나 아니면 야인 이던 몇 명의 유신들 사이에 어떤 당면문제를 놓고 갈리는 의견의 대립이 아니었다. 성리학(性理學)이란 사상을 배경으로 중앙(中央)과 지방에 짚은 뿌리를 내린 조직적인 사림 세력간의 암투였다. 그리고 이런 암투는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그 투쟁에 패배하면 참변을 당하는 무서운 것이 특징이다. 이런 일들이 50여년 사이에 연산군 4년부터 명종 즉위년까지 4번이나 벌어진다.
이런 투쟁들 사이에서 서민들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만 하다.



을사사화 이후에는 서생들까지도 정치에 대한 심한 불신을 느끼고 산림에 숨어서 학문과 교육에 힘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학(儒學)도 학문과 정치를 불가분의 관계로 보던 종래의 입장을 떠나 철학적인 사색과 이론을 주안(主眼)으로 삼게 되었다.
※ 본문 : 한중수 ( 토정비결 전문가 )
※ 참조 : 토정비결이란 무엇인가. 김중순 ( 서울디지털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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