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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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랑성(三郞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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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0 10:27 조회 5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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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삼랑성(三郞城) 


강화도 마니산에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각 왕조마다 천제를 지내왔다. 마리산 참성단은 올림픽, 월드컵뿐 아니라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 성지가 되고 있다. 일찍이 광개토열제도 말타고 순행하여 마리산에 이르러 참성단에 올라 친히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강화도에는 마리산 참성단과 더불어  '삼랑성(三郞城)'이 있다. 강화 삼랑성(江華 三郞城)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에 위치하고 있는 성으로 종족산성이라고 했다가 2011년  '강화 삼랑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삼랑성 안내문에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고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환단고기에 의하면 운사 배달신이 명을 받아 쌓은 것이다. 


 "재위 51년 무오(단기51,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 (단군세기)


 "지금 강화도 혈구에 삼랑성三郞城이 있는데, 성城은 삼랑三郞이 머물면서 호위하는 곳이요, 낭郞은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삼랑성은 말그대로 삼랑三郞이 머물면서 호위하는 곳이다. 그럼 삼랑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삼랑三郞은 삼시랑(三侍郞), 배달의 신하


護守三神하야 以理人命者를 爲三侍郞이니 本三神侍從之郞이오 三郞은 本倍達臣이니 亦世襲三神護守之官也니라. 高麗八觀雜記에 亦曰「三郞(삼랑)은 倍達臣也(배달신야)라」 하니 主稼種財利者는 爲業이오 主敎化威福者는 爲郞이오 主聚衆願功者는 爲伯이니 卽古發神道也라 皆能降靈豫言하야 多神理屢中也라  (『태백일사』 「신시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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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侍從하는 벼슬이다. 삼랑三郞은 본래 배달倍達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국의 신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곡식 종자를 심어 가꾸고 재물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업業이라 하고,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주는 일을 맡은 자를 낭郞이라 하고, 백성을 모아 삼신께 공덕을 기원하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백伯이라 하니, 곧 옛날의 광명[發] 신도神道이다. 모두 영靈을 받아 예언을 하였는데 신이한 이치가 자주 적중하였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삼랑'은 '삼시랑(三侍郞)'의 준말이며, 삼시랑은 삼성밀기의 '삼신시종지랑(三神侍從之郞)'에서 나온 말이다. 삼신을 시종하는 벼슬이다. 


삼랑들은 삼랑성에 기거하면서 단군이 마리산 참성단에 천제를 지낼 때 필요한 제물이나 의식 절차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삼랑三郞이란 직책명이며 임금의 자문 역할을 하는 벼슬이지 ‘단군의 아들 셋’이란 뜻이 아니다.


사무라이는 삼랑에서 유래


 ‘사무라이’가 사실 한국어 ‘싸울아비’에서 유래했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럴싸해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싸울아비가 발음상으로도 사무라이로 바뀌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싸울아비는 서울 배화여고 등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라디오 드라마 극본도 썼던 김영곤 작가(1926~1988)가 1960년대 만들어낸 표현이다. (2017-11-19 동아일보 참고) 


사무라이는 삼랑에서 유래되었다. 삼랑은 '삼' + '랑'이다. '삼'은 일본말로는 '사무'라고 하고 '랑'은 '라이'로 발음한다.  삼(三)→사무, 랑(郞)→라이. 


쉬운 예로 일본에서는 '맥도날드'를 '마그도나르도'라고 발음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실제로 일본 맥도날드 TV 광고에서도 "마그도나르도"라 발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실생활에서는 줄여서 도쿄에서는 "마크"라고 부르고, 오카사에서는 "마크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삼랑'이 오랜 옛날 일본열도로 넘어가서 '사무라이'가 된다. 그러면서 '삼랑'이라는 이름은 '사무라이'로 남았으나 삼랑이 원래 맡았던 역할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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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이름에 태랑太郞, 차랑次郞, 삼랑三郞 등, 랑郞자가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삼랑이 넘어간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삼랑은  '삼시랑(三侍郞)'에서 왔다고 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그럼 삼시랑의 중간글자 모실시(侍)자는 어디로 간것일까? 이는 일본에 가면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모실시(侍) 한자 하나만 그려놓고서 '사무라이'라고 읽는다.  사무라이의 훈독인 '侍'는 '三侍郞'에서 나온 말이다. 큰 이미지 보기


한자를 읽는 방법에는 두 가지, 음독과 훈독이란게 있다 즉 하나의 한자에는 두 가지 이상의 읽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훈독 (訓読み) : - 한자의 의미를 따서 和語(일본어)의 발음으로 읽는 것으로 이것 만으로 의미를 알 수 있다 


모실시(侍)가 그려진 사무라이 문화 상품도 일본에선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사무라이가 삼(시侍)랑에서 왔다는 것의 명백한 증거가 된다.  이는 환단고기가 진서이며 사료가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중 하나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부경대 편 참고) 



侍(SAMURAI) 티셔츠 이미지:筆文字・和文字 출처 : https://goods.skiyaki.tokyo/designs/9176

삼랑에서 화랑으로


환국 말기에 태동한 제세핵랑과 배달 시대의 삼랑은 그 후 고조선의 국자랑國子郞→ 북부여의 천왕랑天王郞 →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 →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선랑仙郞, 국선國仙) 등으로 계승되었다. 




이들은 모두 평상시에는 삼신상제님의 진리를 공부하며 완전한 인격체의 길을 추구하고, 학문과 무예를 동시에 연마하며 심신을 수련하였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구국의 선봉에서 목숨을 바쳐 국난을 물리쳤다. 결론적으로 낭가는 신교의 구도자이며 또한 역사 개척의 선봉장으로서 한 시대의 구국청년단이었다.


대혼돈의 시대, 초불확실성의 시대인, 지금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여 올바른 역사관,신관을 가진  21세기의 화랑, 삼랑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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