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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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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13 조회 720 댓글 0

본문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제명 : 천제, 당제
신격 : 天龍主神
제당 : 화개산 정상의 천제단, 아을 뒤 당숲의 당집
일시 : 음력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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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 화정면 개도리 당제

제명 : 천제, 당제, 헌석제

내용 : 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

특징 :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제작의도 : 본 영상은 개도리 당제의 개별 제의들을 연관선상에서 볼 수 있도록 시간순서대로 제작하였다.


개괄

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제의내용

화산마을의 공동제의는 크게 당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천제, 당제, 헌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당과 신격 역시 3곳으로 제를 지내는 형식 또한 다 다르다.
음력 3월 1일에 지내는 천제는 천제단에서 지내는데, 상당이라도 한다. 천제단은 개도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을 뒤에 있는 화개산이다. 화개산은 두 개의 높은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봉화대가 있는 봉화봉이고, 다른 하나는 천제단이 있는 천제봉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원래 높이는 봉화봉이 조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제를 지내는 봉우리가 봉화봉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돌로 단을 쌓아다는 유래가 있다. 실제 천제봉 정상은 3m 정도 돌로 쌓아져 있고 제일 윗 부분은 직경 3m 정도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제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천제단 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천제봉에서 지내는 신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주와 부당주에 의하면 개도 6개 마을과, 백두산부터 남해바다 일대까지를 편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제를 지낼 때 메를 다섯 방향에 진설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음력 3월 2일에 지내는 당제는 마을 뒤에 있는 당숲(서나무숲) 앞 당집에서 지내는데, 하당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당집은 97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이고, 철근 콘크리트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당집 입구 위쪽에 가로로 천제당(天祭堂)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당집 둘레에는 1m 20cm 정도의 높이로 담이 둘러져 있고, 당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하나 있다. 기존에 있던 당집도 기와로 된 건물이었는데, 낡아서 중축한 것이다. 당집 입구 쪽에는 당산나무 1그루와, 입석 1기가 서 있다. 당집 내부는 두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왼쪽 방에 ‘天龍主神之位’라고 쓰여져 있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당집 안에 철로 된 마상 2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天龍主神之位’라는 위패를 놓고 당제를 지낸다. 화산마을을 포함한 개도리 전체의 당집은 당숲 안에 당집이 있는데, 그 중 화산마을의 당숲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
헌석제는 당집 앞에 있는 당산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서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오장치를 던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신격이 당산나무와 용왕신 둘로 나눠진다. 당산나무에 바짝 붙어서 입석이 1기 있고, 그 입석에는 오장치를 걸어둔다. 그 앞에 상석이 1m 넓이로 만들어져 있어서 음식을 진설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차려오는 개인집의 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일렬로 차려놓는다. 오장치는 주로 애기가 없는 유부남이 애기를 낳기 위해 매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방파제까지 매구를 치고 가서 바다에 던진다. 굿을 하러 온 법사의 해석에 의하면 당집은 당산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석제 때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당집과 당산나무에 대해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고, 당에서 굿을 하는 것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고, 바다에서 헌석을 하는 것은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화

유래에 대한 제보자들의 설명에서는 천제나 당제 혹은 헌식 중 어떤 것의 유래를 따로 떼서 말한 것은 없었다. 유래는 모두 말(馬)과 관계된 것이거나 옛날 당집에 모셨다는 철마상(鐵馬像)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옛날에 말을 많이 키웠는데, 말이 병이 들어 죽으면 말임자들이 육지에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구타하고 하니까 말이 안 죽게 하기 위해 산에다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정부에서 발령받아온 마관들이 말이 죽곤하여 자신들이 혼나니까 마을 사람들을 시켜 제사를 모시도록 지시한 것이다. 마관들이 왜 말을 죽게 했느냐고 마을 사람들을 책임 추궁하고 구타하니까 말들이 안 죽고 잘 자라라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
당에다가 말을 동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모셨다. 중간에 어쨌는가 없어져 버렸다. … 지금 월항리 근처에 말을 키우는 성이 있었다. 성을 쌓아 놓고 말을 키우면서 말을 잘 키워주라고 제를 모신 것이다.…그래서 말놔두고 산제를 모시게 된 것이다.
위의 유래담에서 보면, 당시 마을 사람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사가 강요되어 모셔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농업이거나 어업인데, 말이 잘 크고 잘 번식하게 해달라는 제사를 마을 공동으로 지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는 풍농과 풍어를 비는 보편적인 당이었는데 마관들에 의해 당제의 성격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의 유래담은 보편적인 당제가 특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철마상이 도난당한 뒤 용왕신의 위패로 대체된 것은 원래 모습으로의 복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목장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목장이 없어지고 최근 우연히 철마상이 없어지고 난 후, 원래 당신(堂神)의 하나였을 용왕신이 모셔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본 정월 보름날 당제가 삼짇날 당제와 병행했다는 제보도 화산리 당제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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