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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 진리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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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27 조회 459 댓글 0

본문

전남 신안군 흑산도 진리 당제

제명 : 당제, 용왕제, 갯제
신격 : 상당(소저아기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상), 당할머니), 용신당(용왕)
제당 : 상당, 용신당
일시 : 음력 1월 1~3일




당각시와 총각화장의 사랑이야기

줄거리 : 처녀가 해초를 뜯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러 죽게 된다. 처녀가 죽었던 자리에서 배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고기도 잡히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당집을 짓고 제를 지내주게 된다.
섬 마을에 옹기배가 들어오는데 그 배에 잘 생긴 총각화장이 따라 온다. 총각화장은 풀피리를 잘 분다. 풀피리 소리는 태풍과 파도를 잠재우는 힘이 있다.
당각시는 총각화장의 풀피리에 반해 옹기배가 떠날 때 총각화장을 가지 못하게 한다. 총각화장은 섬에 남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날마다 당집 낭떠러지 소나무에 앉아 풀피리만 불다가 바다에 떨어지게 된다.
총각화장이 사라지고 난 후 고기도 잡히지 않고 배사고도 잦아 사람들은 당각시당 옆에 총각화장의 당을 지어 준다. 사람들은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심하게 칠 때 총각화장의 피리소리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 때마다 바다가 잠잠해지게 된다.

내용 : 당각시와 화장총각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이다.

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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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당

지역 : 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

제명 : 당제

제당 : 진리당(상당)과 용신당이 있으며, 진리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 높았으며, 당은 흑산의 본당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위치 : 진리 당산의 산정에 북방향을 향하여 당이 이루어져 있다.

형태 : 100평 가량 되는 당성 내에 진리당은 두 겹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안쪽 돌담은 신을 모신 당집과 제기와 취사도구들을 넣어 놓은 문간방들을 잇고 있다. 현 당집은 상당 기둥에 쓰여 있는 건조 연월일을 보아 1938년 7월 1일에 지어진 것이다. 그 전의 집을 헐고 지금의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

좌정된 신격 : 얼마 전까지는 ‘소저아가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상)’의 종이 위패가 있었고, ‘상궁부인’과 ‘제석님’의 중간에는 위패는 없으나 ‘당할머니’가 좌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 위패의 중간에 ‘신베[당베]’가 걸려 있었고, 이 당의 또 다른 신체인 성주단지 및 쌀 뒤주, 들돌 등이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 화재 이후 이러한 유물들은 자취가 없어지고 다만 한지로 만든 ‘당베’만 걸려 있다. 상당의 오른쪽 돌담 밖에는 바다의 신인 용왕이 좌정한 용신당이 있으며, 당집 앞으로는 돌담 밖에 넓은 마당이 있고, 당집을 등지고 서서 마당 우측에 총각화상이 떨어져 죽었다는 노송과 그의 무덤이 있다.

특징 : 진리당신화와 관련하여 당산할아버지 · 할머니신앙이 약화되면서 진리당의 당각시가 당할머니의 대체신격으로 등장하며 총각은 당할아버지의 대체신격으로 섬겨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는 곧 부부신의 성립을 보여 준다. 이것은 남녀신의 결합에 의한 풍요 희구 원리를 잘 드러내는 것이며 진리의 당제와 당신화에서 나타나는 남녀 결합양상은 육지부의 ‘용신 + 당할머니’ 또는 ‘당할아버지 + 당할머니’의 결합양상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또한 용신의 우위성과 항존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풍농기원에서 풍어기원으로’라는 당제문화의 변이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제의 소멸과 변천 : 지금은 당제가 연행되고 있지 않으나 당 마당에서는 4월 초파일 경로잔치를 비롯한 각종 마을잔치와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제작의도 : 진리당과 용신당은 대체로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진리당은 규모가 큰 편이라서 입구에서 당신을 모시는 곳까지의 거리감을 나타내고자 했고 용신당은 자연스러운 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개괄

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으며, 이 외에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 본래 진리의 당제는 제의 기간이나 절차로 보아 상당히 성대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어 있다. 특히 제의 기간이 음력 정초부터 3일간이었던 것, 제관들이 들돌을 들어 보아 가벼우면 신들이 제물을 잘 흠양했다고 여겼던 의례, 그리고 갯제에서 무당을 불러 용왕굿을 성대하게 진행했던 내용 등은 현재의 당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제의내용

① 제당 구성 및 신격
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으며, 이 외에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
② 당제 준비
당제를 지내기 2일 전에 마을 이장이 예리에 가서 쌀과 소지 종이 등의 물품을 구입해 온다. 제물 구입 경비는 마을공동기금에서 충당된다. 신격들이 육류와 어류의 냄새를 싫어하므로 준비되는 제물은 메와 술, 과일, 식물성 음식물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 선정된 3명의 제관(1명은 제를 주관하고 2명은 보좌한다.)들이 몇 벌의 깨끗한 옷가지와 그 동안 먹을 식량, 제수용 물품 등을 챙겨서 당으로 간다. 우선 상당의 당집과 용신당, 당샘을 청소하고 문간방의 한쪽방에 보관해 놓은 시루, 절구, 그 밖의 제기들을 씻은 후, 제장 주위에 황토를 뿌리고 왼새끼로 꼰 금줄을 친다.
진설할 제물의 준비를 위해 제관들은 쌀에서 겨, 반점이 있는 쌀알들을 하나하나 골라 낸다. 메를 정히 지으려는 의도이며, 제를 지낼 때까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 돌갓, 더덕, 고사리를 솥에 넣고 간을 맞추어 익힌다. 이 나물류는 반드시 주민들로부터 희사받는데, 이는 진리의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마을의 산에서 손수 채취한 것을 제물로 써야 정성이 담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③ 당제 진행
준비를 마친 제관들은 제물을 진설하고 자시(子時) 무렵 재배, 헌작, 구축, 소지 등의 절차에 맞춰 상당제를 거행한다. 구축의 내용은 당제의 일반적인 기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을의 안녕, 무병, 탈없는 농사와 어업, 객지에 나간 이들의 안녕 등이다. 소지는 제관, 마을 전체, 각 가정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된다.
상당제를 마친 제관들은 용신당(龍神堂)으로 가서 용신에게 제를 지낸다. 용신에게 드리는 제물은 창호지에 진설되며, 제를 마친 후 제물들을 바로 아래에 있는 바다에 헌식하면서 뱃길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한다. 과거 큰 배들이 많았을 때에는 평상시에도 오랫동안 먼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들어와 개안에 배를 대고서 절을 하고 구축을 하는 등의 간단한 의례적 행위를 했다고 한다.

신격

총각화장 (용왕신) : 구체적인 명칭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옹구배를 타고 온 총각화장이라고 한다. 소실된 위패에서 도령이란 명칭으로 되어 있었다. 총각화장은 용신당에 좌정되어 있다.
당각시 : 상당의 주신이며 소저아기씨라고도 부른다. 당집에는 한지로 만든 ‘방베’가 걸려 있다.

신화

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이 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으며, 이 외에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
상당의 형성과 관련해서는 ‘당각시 설화’와 ‘총각화상 설화’ 두 편이 전한다. 이들 설화들은 당각시와 총각화상이 어떻게 해서 당신(堂神)으로 좌정하게 되었는가를 전하고 있다. 그 설화의 줄거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당각시이야기>
처녀, 총각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이 고기 잡으러 갔다가 죽었다. 각시가 목을 매어 죽었다. 주민들이 각시가 죽은 자리에 당을 지어 원혼을 모셨다. 그리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총각화상이야기>
진리에 총각화상이 옹기를 파는 배를 타고 왔다. 총각이 피리를 불면 바다가 잠잠하고 고기가 많이 잡혔다. 옹기 장수 일행이 출발하려고 하자 당각시가 풍랑을 일으켜 못 떠나도록 방해를 했다. 당각시를 달래기 위해 총각을 섬에 떼어놓고 옹기배가 출항했다. 총각화상이 혼자 남아 피리를 불다가 죽었다. 주민들이 총각을 당각시 옆에 모시고, 용신으로 믿고 기원한다.

이러한 설화가 얽힌 상당은 두 겹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안쪽 돌담은, 신을 모신 당집과 제기와 취사도구들을 넣어 놓은 문간방들을 잇고 있다. 현 당집은 상당 기둥에 쓰여 있는 건조 연월일로 보아 1938년 7월 1일에 지어진 것이다. 그 전의 집을 헐고 지금의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소저아기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상)’의 종이 위패가 있었고, ‘상궁부인’과 ‘제석님’의 중간에는 위패는 없으나 ‘당할머니’가 좌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위패의 중간에 ‘신베[당베]’가 걸려 있었고, 이 당의 또 다른 신체인 성주단지 및 쌀뒤주, 들돌 등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 화재 이후 이러한 유물들은 자취가 없어지고 다만 한지로 만든 ‘당베’만 걸려 있다.
* 참고문헌 : 『한국의 해양문화』 서남해역 440~4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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