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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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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31 조회 509 댓글 0

본문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 당제

 

 

 

 

 

 

 

 

 

 

 

 

 

 

 

 

 

 

 

 

 

제명 : 장군제, 산신제, 밥상제
신격 : 산신, 장군, 벅수, 용왕, 당산
제당 : 장군봉 정상과 마을 입구(벅수거리) 및 당산나무 앞, 그리고 마을 앞 바닷가
일시 : 음력 12월 그믐~1/1

경남 통영 삼덕리, 남해 미조
면 사항 산신당의 산신령

명칭 : 산신령

제명 : 산신제

제당 : 장군봉 정상 최영장군사당 바로 옆에 산신당이 있다.

위치 : 삼덕리는 원항, 당포, 관유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관유마을은 산신당을 가지고 있고, 원항과 당포마을은 장군봉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특히 원항마을은 통영시의 미륵도 서쪽에 위치하며, 마을 뒤에는 주산인 장군봉이 있고 그 정상에 산신당과 장군당이 위치해 있다.

형태 : 장군당, 산신당 모두 전형적인 충효각 형식의 건물로 지금의 장군당은 1988년 재건축한 것이며 그 때 산신을 모신 당을 새로이 만들어 놓았으며 산신도는 1988년에 그린 것이다.

좌정된 신격 : 장군당에는 목마 2기와 장군의 영정이 있고 이것은 마을 쪽을 향해 있으며 산신당에는 당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산신도가 그려져 있다.

특징 : 한국의 농어촌에 폭넓게 분포되었던 동제신당의 하나로 천신제, 산신제, 용마제, 잡신제, 조상제, 벅수제, 별신제 등이 합쳐진 다신적 신앙예배처이다. 이곳에는 장군당, 장군신 산신도, 나무로 만든 목마, 천제당, 돌벅수 1쌍, 당산신목 등의 일련의 민간신앙자료들이 갖추어져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 최영장군사당

지역 :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

제명 : 최영장군 제사, 당산제, 당제라고 부른다.

제당 : 장군봉 정상에 산신당과 장군당

위치 : 삼덕리는 원항, 당포, 관유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관유마을은 산신당을 가지고 있고, 원항과 당포마을은 장군봉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특히 원항마을은 통영시의 미륵도 서쪽에 위치하며, 마을 뒤에는 주산인 장군봉이 있고 그 정상에 산신당과 장군당이 위치해 있다.

형태 : 장군당, 산신당 모두 전형적인 충효각 형식의 건물로 지금의 장군당은 1988년 재건축한 것이며 그 때 산신을 모신 당을 새로이 만들어 놓았다.

좌정된 신격 : 장군당에는 목마 2기와 장군의 영정이 있고 이것은 마을 쪽을 향해 있으며 산신당에는 당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산신도가 그려져 있다. 장군에 관해서는 문화재관리국이 1968년 발간한 《민속자료보고서》 제11호를 보면 이순신 장군 또는 고려 장군이라고 적고 있는데 현지마을에서는최영장군사당이라고 부른다. 또한 삼덕리 당포와 원항마을의 입구에는 각각 돌로 만든 벅시(장승)가 있는데 원항마을의 벅시는 마을 입구 양쪽에 각각 한 구씩 있는 반면, 삼덕마을의 벅시는 남녀 한 쌍이 바닷가 쪽을 향해 나란히 서 있다. 말과 관련하여, 전설에 따르면 장군당의 말은 황금으로 된 말이었으나 왜정 때 일본사람이 가지고 가다가 물에 빠뜨렸다는 설과 원래는 철마였는데 다른 마을에서 훔쳐 가다가 그 배가 바다에 빠졌다고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어업을 크게 하던 다나까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정교하게 만든 목마를 장군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는 고기를 잡으면 가장 좋고 큰 것을 목마에 걸었으며, 어획량도 다른 사람에 비해 많았다고 한다. 현재 제당에는 당시 다나까가 만든 목마가 안치되어 있는데, 작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 그가 가져온 것이고, 크고 투박하게 만든 것이 마을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특징 : 한국의 농어촌에 폭넓게 분포되었던 동제신당의 하나로 천신제, 산신제, 용마제, 잡신제, 조상제, 벅수제, 별신제 등이 합쳐진 다신적 신앙예배처이다. 이곳에는 장군당, 장군신 산신도, 나무로 만든 목마, 천제당, 돌벅수 1쌍, 당산신목 등의 일련의 민간신앙자료들이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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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경남 통영 삼덕리 원항마을에서 당제가 거행되었다. 원항마을의 당제는 본래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주관되었는데, 근래에 인근 사찰의 스님을 모셔서 제를 지낸다. 당제의 여러 제차 중 용왕제에서 제를 주관하는 비구니가 자신의 넋두를 하면서 축원을 한다.

개괄

원항마을의 당제는 산신제, 장군제, 용왕제, 당산나무제, 벅수제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군당, 장군신화, 대목마, 벅수 등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장군당의 장군에 대해 최영장군이나 이순신장군으로 인식하고 있어 주목된다. 제의는 현재 스님을 초청해 진행하고 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제관을 선정해 엄숙하게 지낸 곳이다.

제의내용

제사의 준비과정
ㄱ. 제사 전의 마을회의 명칭-방법-안건 : 없다.
ㄴ. 제관 선출 시기와 방법 : 옛날에는 제관을 마을회의에서 선출하였으나 요사이는 제관을 따로 선정하지 않는다. 당제를 인근 ‘미래사’에 위탁하여 모시기 때문이다. 다만 제물을 함께 운반하고 제를 모실 사람을 마을 사람 중 깨끗한 사람을 스님이 추천하여 선정한다. 또한, 마을에서는 매년 깨끗한 사람을 뽑아 황토와 장군봉에 올릴 제물을 진설하기 위해 소용되는 물과 땔감을 맡아 준비하는 사람을 선임한다. 선임자에게는 수고비로 5만원을 지급한다.
ㄷ. 제관의 수와 명칭 및 역할 : 요사이는 제관을 선정하지 않는다.
ㄹ. 제관의 금기 기간과 방법 : 옛날에는 마을회의에서 제관과 제물 운반자를 선정하였으나, 요사이는 ‘미래사’에 위탁하여 지내기 때문에 제물 운반자만 선정한다.
ㅁ. 금줄과 금토를 치는 장소와 시기 : 제를 지내기 전날 아침 마을 주민들이 협력하여 마을에서 장군봉에 이르는 길은 물론 벅수-당산나무-마을 회관 앞 등 당제를 지낼 성역 주변을 청소한 후 제당 주위와 마을 곳곳에 황토를 뿌린다.
ㅂ. 제사 비용 마련 방법 : 마을 공공기금을 제사 비용으로 쓴다.
ㅅ. 제수 구입과 그에 따른 금기 : 옛날에는 12월 25일경 제관으로 선정되면, 매일 찬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마을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제물 구입 때는 삿갓을 쓰고 통영시장에 나가 제물을 사되 값을 상인이 부르는 대로 지불하고 사왔다.
ㅇ. 제수 장만의 방법과 금기 : 제수의 장만은 일반 가정의 기제(忌祭)와 같으나, 제수를 장만할 때에는 입을 수건 같은 천으로 봉하고(요사이는 마스크를 함) 장만하며, 제수를 먹거나 맛을 일체 볼 수 없다.
ㅈ. 제의와 관련된 금기 : ㈀ 장군당이 있는 장군봉에서는 절대 침을 뱉거나 소변을 보지 못한다. ㈁ 장군당제를 지낼 때는 정숙해야하므로 마을주민들의 출입을 삼가함은 물론,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개를 창고에 가둔다. ㈂ 제를 지낼 동안에는 마을의 임산부들을 외지로 내보낸다.
ㅊ. 밥상제(당산나무제와 용왕제)와 관련된 금기 : ㈀ 타인의 생일 음식을 먹지 않는다. ㈁ 제사 모시는데 가지 않는다. ㈂ 제사 음식을 먹지 않는다. ㈃ 초상-출산과 같은 궂은 일에 가지 않는다. ㈄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제사의 진행
ㄱ. 전체 진행 순서 : 산신제-장군당제-밥상제(벅수제, 당산나무제, 용왕제)
ㄴ. 시간 : 산신제와 장군당제는 섣달 그믐 밤 자정 경으로부터 새벽 4시까지이며, 밥상제는 정월 초하룻날 새벽 6시경부터 9시경까지이다.
ㄷ. 방법 : 산신제와 장군당제는 유가식으로 행하며, 밥상제는 각 가정에서 제물을 차려와 비손 형식으로 제를 올리는데, 한 가정이 세 제사(벅수제, 당산나무제, 용왕제) 가운데 한 곳에만 가서 행한다.
ㄹ. 제사 순서 : 진설-단작 헌작-재배(재배시 무언의 기원)-철상-소지-헌식
ㅁ. 풍물 참여 여부와 참여시 역할 : 밥상제를 지냄을 알리는데, 징이 사용된다.
제의 후 행사
ㄱ. 음복 : 용왕제까지 마친 뒤 용왕제에 사용한 제물을 마을회관으로 가져와 주민들이 모여 음복한다.(산신제와 장군당제에 쓴 제물은 당 주변에 헌식으로 모두 쓴다.)
ㄴ. 마을회의 : 음복을 하면서 한 해 마을의 공동 사업에 관한 회의를 한다.
ㄷ. 놀이 : 마을 풍물패들이 당제를 지낸 당일에는 간략하게 마을회관 앞에서 지신밟기를 하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지신밟기를 청하는 가정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옛날에는 마을 의 남성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맥이 끊어진지 오래다. 근래에 행하는 매굿은 통영문화원 주최 문화강좌에서 풍물을 익힌 부녀회원(상쇠 : 김정연, 51세)을 중심으로 행해진다.

신격

산신 : 삼덕리 원항마을의 장군봉에 산신당에는 산신도가 모셔져있다. 산신은 원항, 당포, 관유 세 마을이 공동으로 모시나 제의 날짜는 다르다.
- 장군 : 문화재 관리국에서는 이순신 장군 또는 고려 최영장군으로 적고 있으나 현지 사람들은 최영장군이라고 한다. 장군도는 투구를 쓰고 장군복을 입었으며 왼손에는 망치를 들고 오른 손에는 칼을 아래로 해서 들고 있다. 원항, 당포, 관유 세 마을이 공동으로 모시나 제의 날짜는 다르다.
- 목마 : 나무로 깎아 만들어진 목마가 두 개 있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한 리는 작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대목마이다.
- 할배벅수 : 원항마을 입구에 오른 쪽에 위치해 있는데 건을 쓰고 있다.
- 할매벅수 : 원항마을 입구 왼쪽에 위치해 있다. 할매벅수 코를 달려 먹으면 아들을 낳는 다고 해 코가 거의 없다.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커를 달려 먹으면 유산이 된다고도 한다.

신화

일제 때 일본사람이 장군봉에 있던 말(철마)을 밤에 도둑질해 배에 싣고 도망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포구에 안개가 자욱히 끼어 밤새 노를 저었는데도 멀리 가지 못하고 마을 앞 포구에서 맴돌다 결국 마을사람들에게 잡혔다고 한다.
이웃 마을에 살던 어느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장군봉에 올라 장군당사 안에 있는 큰 목마에 손자를 태우고 놀리며 말하기를 “집으로 가져가서 손자 놀이감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말에 부정 타 목마를 타고 놀았던 그 손자는 그 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즉사했다고 한다.
장군당에 제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짊어지고 장군봉을 오를 때는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발이 채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약 돌부리나 나무뿌리 등에 발이 채이면 집으로 돌아와 목욕재계를 한 후 다시 산에 올라야 하는데, 옛날에 어느 제관이 제물을 지고 장군봉을 오르는데 돌뿌리에 발이 채였는데도 그대로 장군봉에 오르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 뒤로 장군당에 오르는 길에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발이 채이면 반드시 집으로 내려와 목욕재계를 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장군봉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당의 형태

벅수(벅시,장승)
위치 : 장군당 아래 관유마을에서 원항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벅시 2시가 서 있는데 벅시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도로 오른쪽에는 할배벅시가, 왼쪽에는 할매벅시가 있다.
형태와 재질 : 남녀 한 쌍의 벅시를 할배 벅시, 할매 벅시라 칭하며 할배 벅시는 전체높이 90cm, 앞면 20cm, 옆면 18cm 크기의 화강석으로 깎아 만든 할배벅시는 탕건 모양의 관을 쓴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 길이 90cm 중 50cm가 머리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가분수 형태로 전체적으로 볼 때 사각형의 각진 모습을 하고 있다. 몸통은 정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형으로 몸통 위쪽은 그 둘레가 좁은 반면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으며, 턱 밑에 직접 몸통이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마모 정도가 매우 심하나 형체를 알아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코, 약간 벌린 듯한 입, 유난히 크게 조각한 귀 등은 얼굴모습을 시원시원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할매벅시는 높이 65cm, 앞면 23cm, 옆면 14cm 크기의 화강석으로 아기자기하게 깎아 만들었는데 얼굴의 형태가 정방형(正方形)으로, 민둥머리를 하고 있다. 전체 크기에 비해 얼굴 부분이 크게 묘사되었지만 몸통 둘레를 크게 해줌으로써 할배벅시보다 비교적 안정감을 준다. 몸통은 둥근 사각기둥 형태로 아무런 문양도 새겨져 있지 않으며 전체 크기에 있어서도 할배벅시에 비해 아주 작다. 또한 그 마모 정도가 매우 심하여 이목구비가 있으나 선명치 않다. 특히 왼쪽 눈과 입이 마모가 심하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눈은 약간 튀어나온 듯 하며 코는 삼각형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귀는 길고 커서 흡사 부처님 귀와 같고, 이마는 넓어서 기형적으로 보인다.
기능 : 원항마을의 석장승은 주 신앙 대상물은 아니나 개인적으로 정성을 들이는사람이 많고 특히 아들을 낳기 위해 부녀자들이 벅수의 코를 많이 갉아 먹었다고 한다. 반대로 유산을 원하는 여자들은 벅수의 눈을 가루 내어 먹었다. 이러한 일은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에 의해서도 빈번히 일어났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할매벅시의 왼쪽 눈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어 있다. 또한 재혼을 하는 여인네는 마을을 떠날 때 신발을 벅수 앞에 놓고 가는데, 이 때 신발의 방향은 마을을 향하도록 놓는다. 이처럼 신을 놓는 이유는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죽은 신랑의 혼이 따라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처럼 ‘신 들러간다’고 하면 제가를 갔다는 의미를 지닌다.
특징 : 원항마을 벅시 역시 당포마을처럼 예전에는 돌로 된 것이나 마을 사람들에 따르며 본래는 나무였으나 사람들이 벅수의 눈을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벅시가 성할 날이 없어 약70년 전에 돌로 바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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