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북 부안군 위도 벌금 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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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38 조회 439 댓글 0

본문

전북 부안군 위도 벌금 당제

 

 

 

 

 

 

 

 

 

 

제명 : 산제, 원당제, 도청굿, 용왕굿
신격 : 용왕, 칠성, 산신, 오방신장, 대신할머니, 장군
제당 : 산제(산제터), 원당제(마을 뒤 야산 정상의 당집)
일시 : 음력 1월 2~3일


개괄

벌금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 제사를 모시는데, 여러 군데에서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지낸다. 초이튿날 저녁에는 산지터에서 ‘산지’[산제]를 모시며, 초3일 오전에는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모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을로 내려와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회관 앞 마당에서 도청굿이라고 하는 무당을 했다. 저녁 무렵에는 선창에서 용왕제를 모시고 띠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

제의내용

벌금은 위도 면소지인 진리에서 동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조선조 말엽 창녕조씨와 평산신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며 지금은 73세대 2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지대가 낮아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어 예부터 소금을 생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며, 여기서 유래하여 소금벌, 벌금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벌금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 제사를 모시는데, 여러 군데에서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지낸다. 초이튿날 저녁에는 산지터에서 ‘산지’[산제]를 모시며, 초3일 오전에는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모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을로 내려와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회관 앞 마당에서 도청굿이라고 하는 무당을 했다. 저녁 무렵에는 선창에서 용왕제를 모시고 띠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
여러 제의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원당제라고 할 수 있는데, 원당제가 모셔지는 당집은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후박나무 숲 속에 있다. 당집 주위에는 돌담이 있고 당집 앞과 옆으로는 50여 평 이상의 마당이 있다. 당집은 한 칸짜리 기와지붕이다. 당집 안의 상량문 昭和 十六年 辛巳 九월 二十九日入住 同日申時上樑 子坐午向 日日降福 / 年年登豊, 靈神所顯 / 萬民咸寧, 福錄日來 / 邪矢時却, 應天上之三光 / 備人間之上福
을 확인한 결과 1941년(소화 16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자좌오향(子坐午向) 이후의 문구는 당제를 통해 축원하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인데 두 줄 씩 적혀 있다. 또한 당집 안에는 정면 벽과 양 측면에 당신도가 6점 걸려 있다.

신화

벌금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 제사를 모시는데, 초이튿날 저녁에는 산지터에서 ‘산지’[산제]를 모시며, 초3일 오전에는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모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을로 내려와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회관 앞마당에서 도청굿했는데 무당이 했다. 저녁 무렵에는 선창에서 용왕제를 모시고 띠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여러 제의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원당제라고 할 수 있는데, 원당제가 모셔지는 당집은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후박나무 숲 속에 있다. 당집 주위에는 돌담이 있고 당집 앞과 옆으로는 50여 평 이상의 마당이 있다. 당집은 한 칸짜리 기와지붕이다. 당집 안의 상량문 昭和 十六年 辛巳 九월 二十九日入住 同日申時上樑 子坐午向 日日降福 / 年年登豊, 靈神所顯 / 萬民咸寧, 福錄日來 / 邪矢時却, 應天上之三光 / 備人間之上福
을 확인한 결과 1941년(소화 16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자좌오향(子坐午向) 이후의 문구는 당제를 통해 축원하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인데 두 줄 씩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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