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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문, 지방 쓰는 법

    지방 쓰는 법

    지방 쓸 때 알아 두어야 할 점




          묘제, 위령제, 추도식과 한식절사에는 지방을 쓰지 않으나 기제와 설, 추석에 지       내는 차례에는 지방이 있어야 한다. 지방은 종이로 만든 신주를 말한다.


    신위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되 사진이 없으면 지방으로 대신합니다.
    기제사에서 지방을 붙이고 축문을 읽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방의 규격은 가로 6 cm, 세로 22 cm의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씁니다. 상단 모서리를 조금씩 잘라 버립니다. 아래 예제 중 왼쪽은 할아버지 한 위, 오른쪽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양위의 지방입니다.




     



    지방을 쓰기 전에 몸을 청결하게 하여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춥니다.
    남자 고인의 경우, 벼슬이 있으면 學生(학생)대신에 벼슬의 관직(예를 들면 崇祿大夫등)을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을 씁니다.
    여자의 지방 孺人 다음에는 본관성씨를 씁니다.
    考(고)는 사후의 父(부;아버지)를 뜻하며 비는 사후의 母(모;어머니)를 뜻합니다.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더라도 남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지방을 붙일 때 앞에서 보아 왼쪽이 높은 자리, 오른쪽이 낮은 자리입니다.
    한 할아버지에 두 할머니의 제사일 경우 가장 왼쪽이 할아버지, 중간이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입니다.


     

    여러 경우의 지방 쓰기 사례

    초록색부분은 알맞게 수정하여 쓰도록 합니다. 지방은 백지에 붓으로 정성스레 써야 합니다.



     

    축문 쓰는 법

      축문은 신명 앞에 고하는 글이며 그 내용은 제위 분께 간소하나마 제수를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을 담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에는 한문의 뜻을 풀이하여 알기 쉽게 한글로 쓰기도 합니다.축문의 규격은 가로 24cm, 세로 36cm 의 깨끗한 백지에 씁니다.벼슬이 있을 때의 호칭은 지방을 쓸 때와 같습니다. 學生 대신에 관직명으로, 그 부인은 孺人(유인) 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등을 씁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에는 축문을 낭독하지 않습니다.


    한문 축문의 예(양친별세 부친제사)
    (초록색 부분은 고쳐 쓰도록 합니다)




    축문 쓸 때 알아두어야 할 점

     維(유); 이어서 내려오다. 
     歲次(세차); 해의 차례. 
     干支(간지); 간지는 천간지지 육십갑자의 그 해의 태세를 쓴 것이며 그 예로 금년이 丁丑 (정축)년이면 丁丑 (정축)이라고 씁니다. 
     某月(모월); 제사 날을 따라 쓰며 제사달이 정월이면 正月 8월이면 八月(팔월)이라 씁니다. 
     干支朔(간지삭); 제사달의 초하루라는 뜻으로 제사달 초하루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초하루 일진이 丁亥 (정해)이면 丁亥朔 (정해삭)이라 씁니다. 
     某日(모일); 제사 날을 쓴것이며 제사날이 15일이면 그대로 十五日(십오일)로 씁니다. 
     干支(간지); 그 제사날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15일이 제사날이고 15일의 일진이 甲子(갑자)이면 甲子(갑자)라고 씁니다. 
     敢昭告于(감소고우); 삼가 밝게 고한다는 뜻으로 妻喪 (처상)에는 敢(감)자를 버리고 昭告于(소고우)만 쓰며 아우 이하는 다만 告于(고우)만 씁니다. 
     예제 축문은 양친이 별세한 경우 부친 제사의 축문이며 모친제사의 경우에는 청색 글의 顯考 (현고)를 顯비 (현비,비:죽은 어미비字)로 고쳐 씁니다. 
     부모 중 한쪽이 살아 계신 때에는 顯考學生府君 (현고학생부군) 혹은 顯비孺人ooo氏 (현비유인ooo씨)중 한쪽을 쓰지 않습니다. 
     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 (현고)를 顯祖考 (현조고), 顯비 (현비)를 顯祖비 (현조비)로 고쳐씁니다. 
     증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 (현고)를 顯曾祖考 (현증조고), 顯비 (현비)를 顯曾祖비 (현증조비)로 고쳐 씁니다. 
     고조부모 제사의 경우 顯考 (현고)를 顯高祖考 (현고조고), 顯비 (현비)를 顯高祖비 (현고조비)로 고쳐 씁니다. 
     孝子이름은 겸양의 표현으로 조금 작게 씁니다. 
     

     [代別 기제 축문 쓰는 법 보기]

     






    한글 축문의 예 (양친별세 부친제사)
    (초록색 부분은 고쳐 쓰도록 합니다)




    모년 모월 모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고하나이다.
    아버님 어머님, 
    해가 바뀌어서 아버님의 돌아가신 날이 다시 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과 하늘같이 
    크고 넓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전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326
  • 기제사 지내기




    제사 지내는 전통예절이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제사를 등한히 하고 조상에 대한 자손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결과로 생각된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고 돌보아 주신 선조에 대해 정성을 다하는 예(禮)로서 제사는 자손의 당연한 도리라 하겠다.





     

     






    기제사 상 차리기

     


     

    다음은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하는 기제사상 차리는 법입니다.




    1. 과일을 놓는 줄 (그림의 1번 줄);
     조율이시라하여 좌측부터 대추, 밤, 배(사과), 감(곶감)의 순서로 차리며(조율시이의 순서로 하기도 한다), 그 이외의 과일들은 정해진 순서가 따로 없으나 나무 과일, 넝쿨과일 순으로 차린다. 과일 줄의 끝에는 과자(유과)류를 놓는다.

    2. 반찬을 놓는 줄(그림의 2번 줄);
     좌포우혜라하여 좌측 끝에는 포(북어, 대구, 오징어포)를 쓰며 생채 다음 우측 끝에는 혜(식혜)를 쓰기도 한다. 그 중간에 나물반찬은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순으로 올리고, 고사리, 도라지나물등을 쓰기도 하며 청장(간장) 침채(동치미,겨울철)는 그 다음에 올린다.

    3. 탕을 놓는 줄(그림의 3번 줄);
     대개는 3탕으로 육탕(肉湯 ;육류 탕), 소탕(素湯 ;두부,채소류 탕), 어탕(魚湯 ;어류 탕)의 순으로 올리며, 5탕으로 할 때는 봉탕(닭,오리탕), 잡탕등을 더 올린다. 최근 들어서는 가정의례준칙등의 영향으로 한가지 탕으로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4. 적과 전을 놓는 줄(그림의 4번 줄);
     대개는 3적으로 육적(肉炙 ;고기류 적), 어적(魚炙 ;생선류 적), 소적(素炙 ;두부,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린다.

     * 적(炙) : 생선이나 고기,채소 따위를  대 꼬챙이에  꿰어서 양념하여 굽거나 번철에 지진 음식 
     * 전(煎) : 재료를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를  뭍힌 다음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진 음식(부침개)

    5. 반,잔,갱을 놓는 줄(그림의 5번 줄);
     앞에서 보아 메(밥)는 좌측에 갱(국)은 우측에 차린다. 시접(수저와 대접)은 단위제(한분을 모신)의 경우에 메의 왼쪽에 올리며, 양위합제(두분을 모신)의 경우에는 중간 부분에 올린다.

    6. 향로 향합등;
     향상은 제사상 앞에 두고 축문, 향로, 향합을 올려 놓으며 향로 뒤쪽에 모사 그릇을 놓는다, 퇴주 그릇과 제주(술) 등은 제사상 오른쪽에 별도의 상에 놓는다.

    7. 제삿상 진설의 한문어구 
      [棗栗梨枾:조율이시] 좌측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올린다.  조율                       시이의 순서로 진설하기도 한다. 
      [紅東白西:홍동백서]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으로 놓는다. 
      [生東熟西:생동숙서] 김치는 동쪽에, 나물은 서쪽에 놓는다.
      [左脯右醯:좌포우혜] 포는 좌측에, 식혜,젓갈류는 오른쪽에 놓는다.  
      [魚東肉西:어동육서] 생선은 동쪽(앞에서 보아 우측)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頭東尾西:두동미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乾左濕右:건좌습우] 마른 것은 왼쪽에, 젖은 것은 오른쪽에 놓는다.
      [接東盞西:접동잔서]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는다.
      [右飯左羹:우반좌갱] 메(제삿밥)는 오른쪽에, 갱(국)은 외쪽에 놓는다.
      [男左女右:남좌여우] 제상의 왼쪽은 남자(考位), 오른쪽은 여자(비위)

     제사음식 조리할 때 주의할 점 
     -조리하기 전 몸 가짐을 단정히 하여 정갈하게 조리를 합니다. 
     -제사에 쓰지 않는 음식; 복숭아, 꽁치, 삼치, 칼치, 고추, 마늘 등은 제사음식에 사용하지 않으며 식혜, 탕, 면 등은 건더기 만 사용합니다. 
      




     


     

    기제사 지내는 순서

     


     

    진설(進設)
       북쪽(방위상 북쪽을 뜻하나 제사를 모시는 장소의 형편상 북쪽을 택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므로 신위를 모시는 방향을 북쪽이라 한다.즉,지방을 모신 방향을 북쪽이라 함)에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 교의(神主나 혼백상자등을 모시는 의자)를 모신 다음(일반 가정 제사에서는 교의를 두지 않고 병풍에 지방을 모시던지 제사상머리에 사진을 모심) 제상에 식어도 괜찮은 음식부터 제물을 차린다.  제수는 간소하게 하되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의 표현인 만큼 일상 반상음식에 몇 가지를 더 장만함이 좋고, 고인이 생시에 좋아하던 음식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진설이 다 되면 고인의 사진을 교의나 제사상에 모시고 혹은 미리 써둔  지방(지방,축문 쓰는 법 참조)을  병풍 앞면에 붙인다. 이는 상차림을 한 후 어른을 모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제주가 제사상을 바라보아 앞쪽이 北, 오른쪽을 東, 왼쪽을 西라 한다. 진설의 순서는 맨 앞줄에 과일, 둘째 줄에 포와 나물, 세째 줄에 탕(湯), 넷째 줄에 적(炙)과 전(煎), 다섯째 줄에 메(쌀밥)와 갱(제사 지낼 때 메 옆에 놓는 국. 무와 다시마 따위를 넣고 끓임)을 차례대로 놓는다.

    분향강신(焚香降神)
      제주는 꿇어 앉아 향을 살라 향로에 꽂고 재배한다. 왼쪽집사가 제주에게 강신잔을 주면 오른쪽 집사가 술을 반잔 정도 따른다. 제주는 모사그릇에 세 번에 나누어 모두 따른다(모사그릇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술잔을 향로 위에 세번 돌린 다음 퇴주그릇에 따른다). 왼쪽집사가 강신잔을 받아 오른쪽 집사에게 건네주어 제자리에 놓게 한다. 제주는 재배한다.

    참신(參神)
      제주이하 참석자 모두 재배한다. 요즘은 여자도 재배를 하나 원래는 4배였다.

    초헌(初獻)
     좌집사가 잔을 제주에게 건네주면 제주는 우집사가 딸아 주는 술잔을 좌집사로 하여금 제상에 올리게 한다.

    독축(讀祝)
      제주 이하 모든 사람이 꿇어앉고 참사자중에 한 사람이 축을 읽는 것이다. 예전엔 축문 읽기가 끝나면 곡(哭)을 했으나 지금은 생략하는 가정이 많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제주는 두번 절을 한다.

    아헌(亞獻)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주부(主婦)가 올리는 것이 예이지만 주부가 올리기 어려울 때는 제주의 근친자나 장손이 올린다. 아헌을 한 사람이 재배를 올린다.

    종헌(終獻)
      3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아헌자 다음 가는 근친자가 올리며 집안에 따라서는 이때 적을 올리기도 한다. 아헌을 한 사람이 재배를 올린다.

    개반(開飯)
      집사(또는 주부)가 메와 탕 그릇의 뚜껑을 열고 저를 올린다. 순서는 좌측부터 조부 조모 순이다.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제례는 부모와 조부모등 2대 봉사만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삽시(揷匙)
     주부나 집사가 시접(수저를 놓아 두는 빈 대접)에 담겨있는 숟가락을 메그릇에 꽂고 젓가락은 시접 위에 가지런히 걸쳐 놓는다. 젓가락의 손잡이는 서쪽(왼쪽)을 보게 놓는다. 흔히 젓가락을 세번 굴리고 여기저기 제물 위에 올려 놓기도 하지만 시접 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는 재배한다.

    첨작(添酌)
      첨작이라 함은 제주가 무릎 꿇고 다른 잔 혹은 그릇에 술을 따루어, 종헌자가 다 채우지 않은 술잔에 좌우 집사를 통하여 술잔을 채우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합문(合門)
      참사자 일동이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부복(엎드린)한다. 대청일 경우 뜰 아래로 내려선다. 모든 참석자는 조상이 진지를 드는 동안(9수저 드시는 시간) 조용히 엎드려 생전의 조상을 생각한다.

    개문(開門)
      제주가 앞서서 기침을 한 다음 조용히 문을 열고 일동과 함께 들어간다.

    헌다(獻茶)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리고 메(밥)를 조금씩 3번 떠서 말아놓고 정저(잠시 묵념)한다. 메에 꽂았던 숫가락은 반드시 손잡이가 집사의 좌측으로 가도록 하여 숭늉그릇에 담그어둔다.

    철시복반(撤匙復盤)
      메 그릇의 뚜껑을 덮고 숭늉그릇에 있는 수저를 거두어 세 번 굴러 시접에 담는다.

    사신(辭神)
      참사자 일동이 재배를 올리고 신주를 모신 기제사일 경우에는 사당으로 옮겨 모시고, 지방과 축문을 향로 위에서 사른다.

    철상(撤床)
      모든 제사 음식을 물리는 것을 말하며, 제상의 위쪽에서 부터 다른 상으로 공손히 옮겨 물린다.

    음복(飮福)
      옷을 입은 그대로 조상이 드시고 남은 제물을 참사자 모두가 나누어 먹고, 이웃에도 나누어 먹는 것으로 기제사 절차는 모두 끝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151
  • 설,추석 차례지내기
     우리 한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날과 추석날에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       며 차례를 올리고, 모든 가족이 한데 모여 화목을 다지는 날입니다. 
     

     

     설날과 추석날 아침에 지내는 차례는 가문마다 집집마다 예절이조금       씩 다릅니다. 여기 소개하는 차례상 차리기등 제례는 우리나라 향교       에서 권장하는 가장 표준에 가까운 전통적인 제례를 소개하니, 이대       로 따른다기 보다는 가풍의 예절을 지켜 지내되 잘못된것이 있으면       참조하기 바랍니다. 
     

     

     차례장소는 대청마루나 거실이 적당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차례를       사당에서 지냈으나 요즘 사당을 모신 집이 거의 없어 무의미 해졌습       니다. 복장은 한복차림이 좋으며 특히 설 차례는 색동저고리등 화려       한옷차림도 무관하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낼 때는 두루       마기를 입는 것이 예의입니다. 
     

     

     차례의 특징은 기제사와 달리 축문이 없으며, 술은 한번만 올리는       단잔으로 하며 술대신 차를 올려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밥)대       신설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올립니다. 제물은 가정형편에 맞       게준비하고 정성을 담아 장만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옛 어른들께       서 말씀하시기를 흉년이라고 거르지 말고 풍년이라고 지나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차례상 차리기

     


     

    다음은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하는 차례상 차리는 법입니다.




    1. 과일을 놓는 줄 (그림의 1번 줄)
     조율이시라하여 좌측부터 대추, 밤, 배(사과), 감(곶감)의 순서로 차리며 그 이외의 과일들은 정해진 순서가 따로 없으나 나무 과일, 넝쿨과일 순으로 차린다. 과일 줄의 끝에는 과자(유과)류를 놓는다.

    2. 반찬을 놓는 줄(그림의 2번 줄)
     좌포우혜라하여 좌측 끝에는 포(북어, 대구, 오징어포)를 쓰며 우측 끝에는 수정과를 쓴다. 그 중간에 나물반찬은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순으로 올리고, 고사리, 도라지나물등을 쓰기도 하며 청장(간장) 침채(동치미, 설명절)는 그 다음에 올린다.

    3. 탕을 놓는 줄(그림의 3번 줄)
     대개는 3탕으로 육탕(肉湯 ;육류 탕), 소탕(素湯 ;두부,채소류 탕), 어탕(魚湯 ;어류 탕)의 순으로 올리며, 5탕으로 할 때는 봉탕(닭,오리탕), 잡탕등을 더 올린다. 최근 들어서는 가정의례준칙등의 영향으로 한가지 탕으로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4. 적과 전을 놓는 줄(그림의 4번 줄);
     대개는 3적으로 육적(肉炙 ;고기류 적), 어적(魚炙 ;생선류 적), 소적(素炙 ;두부,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린다.

     * 적(炙) : 생선이나 고기,채소 따위를  대 꼬챙이에  꿰어서 양념하여  굽거나 번철에 지진 음식 
     * 전(煎) : 재료를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를  뭍힌 다음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진 음식(부침개)

    5. 술잔과 떡국(설), 송편(추석)을 놓는 줄(그림의 5번 줄);
     앞에서 보아 떡국(송편)은 우측에 술잔은 좌측에 차린다. 그림은 양위를 모시는 모습. 시접(수저를 놓는 빈 대접)은 단위제(한분을 모신)의 경우에 앞에서 보아 왼쪽에 올리며, 양위합제(두분을 모신)의 경우에는 중간 부분에 올린다.

    6. 향로 향합등
     향상은 제사상 앞에 두고 축문, 향로, 향합을 올려 놓으며 향로 뒤쪽에 모사 그릇을 놓는다, 퇴주 그릇과 제주(술) 등은 제사상 오른쪽에 별도의 상에 놓는다.

    7. 차례상 진설의 한문어구
      [棗栗梨枾:조율이시] 좌측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올린다.                      조율시이의 순서로 진설하기도 한다. 
      [紅東白西:홍동백서]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으로 놓는다. 
      [生東熟西:생동숙서] 김치는 동쪽에, 나물은 서쪽에 놓는다.
      [左脯右醯:좌포우혜] 포는 좌측에, 식혜,젓갈류는 오른쪽에 놓는다.  
      [魚東肉西:어동육서] 생선은 동쪽(앞에서 보아 우측)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頭東尾西:두동미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乾左濕右:건좌습우] 마른 것은 왼쪽에, 젖은 것은 오른쪽에 놓는다.
      [接東盞西:접동잔서]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는다.
      [右飯左羹:우반좌갱] 메(제삿밥)는 오른쪽에, 갱(국)은 외쪽에 놓는다.
      [男左女右:남좌여우] 제상의 왼쪽은 남자(考位), 오른쪽은 여자(비위)

    차례음식 조리할 때;



    조리하기 전 몸 가짐을 단정히 하여 정갈하게 조리를 합니다.
    차례에 쓰지 않는 음식; 복숭아, 꽁치, 삼치, 칼치, 고추, 마늘 등
    식혜, 탕, 면 등은 건더기 만 사용합니다.
    설 차례는 메 대신 떡국을, 추석차례는 메 대신 송편을 올립니다.









     


     

    차례 지내는 순서

     


     

    진설(進設)
      북쪽(방위상 북쪽을 뜻하나 제사를 모시는 장소의 형편상 북쪽을 택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므로 신위를 모시는 방향을 북쪽이라 한다.즉,지방을 모신 방향을 북쪽이라 함)에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 교의(神主나 혼백상자등을 모시는 의자)를 모신 다음(일반 가정 제사에서는 교의를 두지 않고 병풍에 지방을 모시던지 제사상머리에 사진을 모심) 제상에 식어도 괜찮은 음식부터 제물을 차린다.  제수는 간소하게 하되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의 표현인 만큼 일상 반상음식에 몇 가지를 더 장만함이 좋고, 고인이 생시에 좋아하던 음식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진설이 다 되면 고인의 사진을 교의나 제사상에 모시고 혹은 미리 써둔  지방(지방,축문 쓰는 법 참조)을  병풍 앞면에 붙인다. 이는 상차림을 한 후 어른을 모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제주가 제사상을 바라보아 앞쪽이 北, 오른쪽을 東, 왼쪽을 西라 한다. 진설의 순서는 맨 앞줄에 과일, 둘째 줄에 포와 나물, 세째 줄에 탕(湯), 넷째 줄에 적(炙)과 전(煎), 다섯째 줄에 메(쌀밥)와 갱(제사 지낼 때 메 옆에 놓는 국. 무와 다시마 따위를 넣고 끓임)을 차례대로 놓는다.

    분향강신(焚香降神)
      제주는 꿇어 앉아 향을 살라 향로에 꽂고 재배한다. 왼쪽집사가 제주에게 강신잔을 주면 오른쪽 집사가 술을 따른다. 제주는 모사 그릇에 세번에 나누어 모두 따른다. 왼쪽집사가 강신잔을 받아 오른쪽 집사에게 건네주어 제자리에 놓게 한다. 제주는 재배한다.

    참신(參神)
      제주와 참석자 모두 재배한다. 요즘은 여자도 재배를 하나 원래는 4배였다.

    진찬(進饌)
      주부가 설 차례에는 떡국을, 추석 차례에는 송편(혹은 메(밥))을 제상에 올린다.

    헌다(獻茶)
      왼쪽 집사로부터 잔을, 오른쪽 집사로 부터 술(또는 茶)을 받아, 먼 조상 남자조상 순으로 올린다. 기제사와 달리 한번만 올린다.

    개반(開飯)
      주부나 집사가 떡국그릇의 뚜껑을 열고 적을 올린다. 순서는 좌측부터 조부 조모순이다.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제례는 부모와 조부모등 2대 봉사만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삽시(揷匙)
      주부나 집사가 시접(수저를 놓는 빈 대접)에 담겨있는 숟가락을 떡국에 꽂고 젓가락은 시접 위에 가지런히 걸쳐 놓는다. 젓가락의 손잡이는 서쪽(왼쪽)을 보게 놓는다. 흔히 젓가락을 세번 굴리고 여기저기 제물 위에 올려 놓기도 하지만 시접 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는 재배한다.  
      모든 참석자는 조상이 진지를 드는 동안(수분동안) 조용히 서서 생전의 조상을 생각한다.

    철시복반(撤匙復盤)
      떡국 그릇의 뚜껑을 덮고 수저를 거두어 세 번 굴러 시접에 놓는다.

    사신(辭神)
      참사자 일동이 재배를 올리고 지방을 향로 위에서 사른다.

    철상(撤床)
      모든 제사 음식을 물리는 것을 말하며, 제상의 위쪽에서 부터 다른 상으로 공손히 옮겨 물린다.

    음복(飮福)
      제물을 제상에서 거두고 옷을 입은 그대로 조상이 드시고 남은 제물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차례는 끝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24
  • 제사(祭祀)


     가. 제례(祭澧)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데 대한 여러가지 예(禮)를 일컫는 말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조상없는 자손은 있을 수 없다.  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가르쳐 주신 선조에 대하여 인륜(人倫)의 도의(道義)로 정성껏 제사를 모시는 것은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 아무리 바쁜 생활에 쫓기는 현대인이지만 一年에 한번 돌아오는 조상의 기일(忌日)만이라도 보은감사(報恩感謝)의 마음을 가지고 예를 지킴이 옳다고 본다.

      우리의 제례범절(祭禮凡節)이 그렇게 난해(難解)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은 그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제례를 등한히하고 조상에 대한 자손의 도리를 저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제사를 모실 때는 많은 음식과 제수를 차려 놓아야 만 되는 것으로 착각들을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사고(思考)로 모든 기제사 봉행은 본인의 형편에 따라 정갈하게 진설(제수를 상차림에 맞춰 차리는 것)하고 정성껏 지내면 된다.

      기제(忌祭: 忌日에 지내는 祭祀)의  봉사(奉祀)대상은  제주(祭主)로부터  五대조 까지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풍속이었으나  옛날  권문명가(權門名家)들은 八대조 봉사(奉祀)까지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정의례준칙(一八조)에 의하면  제주로부터 二대조 까지만 기제를 지낼 수 있다.  제사를 드리는 시간은 돌아가신 前날  자정이 지난 새벽 一시경 조용한 때에 엄숙히 드리는 것이 좋다.

      제사는 보통  제주(祭主)의 가정에서 드리며,  대청이나 방 한 곳에 제상을 차린다. 그러나  특별한 지위나  사회적인  기제(忌祭)일 경우에는 다른 장소를 마련하여 행사(行祀)한다.

      제주(祭主)는  고인의 장자(長子)나 또는 장손(長孫)이 되며,  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는 차자(次子) 또는 차손(次孫)이 제사를 주관한다.

      상처(喪妻)를 한 경우에는  남편이나 그의 자손이 하고,  자손이 없이 상부(喪夫)한 경우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 참사자(慘祀者)는 고인의 직계 자손으로 하되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도 참석할 수 있다. 부득이  참사할 수 없는 자손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47
  • 성씨(姓氏)의 의의

      성씨란 혈통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부호로서 혈연 중심으로 모여 살았던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발전하여 복잡하게 되어 감에 따라 서로 간의 가통을 호칭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했다 할 수 있다. 혈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우리민족은 어느 누구나 부계를 중심으로 한 각자의 성씨를 갖고 있으며, 각 성씨 별로 씨족의 역사를 갖고 서로 융화하며 협동, 발전하여 왔다. 즉 성명(姓名)에 대해 알아 보면 성(姓)과 본관(本貫)은 가문을 , 명(名)은 가문과 대수(代數)를 나타내는 항렬(行列)과 개인을 구분하는 자(字)로 구성되어 있어 개인 구분은 물론 가문의 세대까지 나타나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독특한 체계를 갖고 변천하여 왔다. 특히, 조상숭배사상과 애족사상이 강한 우리들은 성씨를 통해 선조들의 유현한 여운을 느끼고, 면면히 내려오는 가통의 맥락을 더듬으며 조상의 얼과 체취를 느끼는 동시에 가문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씨의 성장과정은 문명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역할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899
  • 우리나라 성씨의 역사


     우리 나라 성(姓)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유입한 뒤인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며,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산, 강 등을 성으로 삼았다. 
     -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강(姜)씨라고, 
     -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희(姬)씨로, 
     - 순(舜)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었으므로 성을 요(姚)씨로 한 것은 이것을 실증한다.

      <삼국시대>

     고구려 - 우리 나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건국 시조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기 때문에 고(高)씨라고 하였으며, 주몽은 충신인들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를 사성(賜姓)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중국 한서에 나타나있는 인명의 기록을 보면, 주몽은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나, 장수왕때에 장수왕 이름을 고연(高璉)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고구려 왕실의 성을 고(高)씨로 기록 하였으며, 장수왕 이 사신으로 보낸 고익, 마루, 손참구, 동마 등의 이름에도 모두 성을 사용하였다.

     백제 - 우리 나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시조 온조(溫祚)가 부여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라고 하였으나 중국의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는 왕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기록 되어 있으며, 진서, 송서 등의 기록에는 근초고왕(13대) 부터 위덕왕(27대)까지는 여(餘)씨로 표시하다가 무왕(29대)부터 부여(扶餘)씨로 기록하였다.

     신라 - 박(朴), 석(昔), 김(金) 삼성(蔘姓)의 전설이 전해 오며, 유리왕 9년(32)에 육부( 六部)의 촌장에게 각각 이(李), 정(鄭), 손(孫), 최(崔) , 배(裵), 설(薛)씨의 성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북제서"에는 진흥왕(540~576)을 금진흥(金眞興)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김(金)씨라는 성을 사용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삼국은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 성을 쓴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 7세기 이전 건립된 신라 진흥왕의  네곳의 순수비,  
     - 신라 진지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술오작비, 
     - 신라 진평왕시대에 건립된 경주 남산의 신성비 등의

     비문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볼때 인명에 성을 사용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소속부명(촌명)과 이름만 쓴 것을 보면 우리 선조는 성보다 본(촌명)을 먼저 썼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예를 들어 추정해보면, 고구려는 장수왕시대(413~490)부터, 백제는 근초고왕시대(346~375)부터, 신라는 진흥왕시대(540~576)부터 성을 쓴 것으로 기록에서 추정한다.

      삼국 시대의 성은 
       고구려 : 고(高), 을(乙), 예(芮), 송(松), 목(穆), 간, 주(舟), 마(馬), 손(孫), 동(董), 채, 연(淵), 명림               (明臨), 을지(乙支)
       백 제 : 여, 사, 연, 협, 해, 진, 국, 목, 국 등의 팔족과 왕, 장, 사마, 수미, 고이, 치 
       신 라 : 박, 석, 김 3성과 이, 최, 정, 손, 배, 설의 육부의 6성과 장, 비 등이 있고, 왕실의 성인 고(高),               여(餘),김(金)을 쓴 사람이 가장 많았다.

     삼국사기에도 성을 쓴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이 더 많았고, 주로 중국에 왕래한 사신들과 유학자와 장보고와 같이 무역을 한 사람들이 성을 사용하였으며, 일반민중은 신라 말기까지 성을 쓰지 않았다.

      <고려시대>

     고려의 태조 왕건이 개국 공신들과 지방 토호세력들을 통합 관장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현 개편작업과 함께 성을 하사하면서 우리나라 성씨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와 같이 고려 초기부터 귀족 관료들은 거의 성을 쓰게 되었으나, 고려 문종9년(1055)에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급제할 수 없다는 법령(法令)을 내린 것을 보면  이때까지도 성을 쓰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법령으로 우리나라의 성이 보편화되어 일반민중이 성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문종 이후의 사람을 시조로 하는 성씨가 많아졌다.

      <조선시대, 현대>

     조선초기 성은 양민에게 까지도 보편화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 등은 조선 후기까지도 성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어느 누구라도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성을 취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기회로 성이 없던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동(洞)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성씨의 종류가 더욱 늘어났다. 따라서 1930년 국세조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가 많아졌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855
  • 성씨(姓氏)의 성장 과정

      성씨의 수와 종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역사의 흥망성쇠를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의 수를 살펴 보면 세종실록지리지에는 256성이, 1486년(성종)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277성, 영조(21대)에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陶谷叢說)"에는 298성, 1908년(고종)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496성(숫자가 많은 것은 고문헌에 있는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으로 되어 있으나 1930년 국세조사에서는 250성, 1960년 국세조사에는 258성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인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74개의 성씨로 보고 되었다.
      이와같이 시대별 또는 자료별로 차이가 큰 것은 대개 실제조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옛 문헌에 산재해 있는 것을 조사한 것이기 때문이며, 가구주와 호적별의 조사 차이로 나타났다. 1975년도 인구조사에 의한 성씨분포도를 살펴보면, 김씨가 전체인구의 21.9%, 이 씨가 14.9%, 박씨가 8.5%, 최씨가 4.8%로 4대성이 총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순위 20위안에 드는 성이 80%를 차지하고 35여개 성이 90%, 90여개 성이 전체의 99%를 차지하여,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는 274개 성중에 90여 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180여개 성은 총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데 심지어는 1가구뿐인 성씨도 있다.
      제식민 통치하에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의 일환으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라며 1939년에 시행한 창씨개명은 1945년 해방과 1946년 10월 23 일 미군정이 공포한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에 따라 이름을 다시 찾을 때 까지  우리나라 성씨 역사의 가장 큰수난기였다. 이후에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의 귀화 등으로 새로운 성씨와 본관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703
  • 외국의 성씨 제도


       외국에서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미국,영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브라질 등도 원칙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법률로 정해진 것이 아니며 여자는 결혼전의 성을 그대로 가질 수도 있고 남편의 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통례이나, 법률로는 부부가 서로 의논하여 어느 한쪽의 성을 사용하거나 각자의 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부부는 각자의 성명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아내는 자기의 성 위에 남편의 성을 합하여 사용하는 복성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한 여자의 성은 두 글자 성씨가 된다.

       또한 지구상에는 성이 없는 국가도 많다. 동남아시아의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이 한 예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데 다만 개인적으로 필요하거나 취미로 이름 위에 이것 저것 덧붙여 사용한다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이름 위에 '우'나 '몽'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 '우 와 '몽'이 우리나라의 김씨나 이씨 만큼 많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우'자는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붙이는 경칭이며 '몽'자는 미혼의 젊은 이에게 붙이는 것으로 영어의 미스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성씨는 매우 복잡하고 그 숫자로도 13만 2천여 성씨로 세계에서 제일 많은 민족 중의 하나다. 일본의 성씨는 두 글자 성씨가 제일 많고 한 글자나 세 글자 성씨도 많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00
  • 족보(族譜)의 의의와 유래





    가. 족보(族譜)의 의의

      족보(族譜)(보첩(譜牒)이라고도 함)는 한 종족 혈통의 가계보(家系譜)로서 부계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도표식으로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나타낸 책으로 동일 혈족의 원류를 밝혀 조상을 숭배하고 혈족의 단결을 도모하며 후손으로 하여금 화목의 미풍을 이루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성족 파벌과 문중 가승을 분명히 하며 항렬 존비와 관련 적서등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족보는 역사와 관련을 맺어 역사 속에 명맥을 한 가문에 받아들여 혈족을 미화하고 있으나 허위나 날조를 금하고 있으니 이는 후손에게 공정한 정도를 교훈시키려는 의도라 할 것이요. 상대에서 기록해 놓은 내용을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지 않고는 추록해서는 안되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 또한 한 가문의 역사가 어떤 특정 개인의 의사에 의한 임의 날조됨을 금하려는 것이요. 그대로의 역사성을 유지 존속시키려는데 있는 것이다.
     









     나. 보첩(譜牒)의 유래

      보첩은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제왕연표(帝王年表:왕실의 계통)를 기술한 것이었으며, 조상의 관력과 혼인관계등으로 우족과 관족을 구별하려는 데서 시작되어 발전하여 내려오다가 개인적으로 보첩을 갖게 된 것은 한(漢)나라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설치하여 응시생의 내력과 그 선대(先代)의 업적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가 된다. 송대에 와서 한 혈족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게 되었고 전 가족을 수록하게 되는 발전을 보게 되었다. 특히 북송(北宋)의 대문장가인 3소-소 순, 소 식, 소 철 - 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편찬의 표본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의종(毅宗)때 김관의(金寬毅)가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그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대부의 집에서는 가승(家乘)이 전해 내려왔는데, 체계적으로 족보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 7년(成宗 7 : 1476)에 발간된 안동 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이고, 지금과 같이 혈족(血族)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明宗)때 편찬된 문화 유씨보(文化柳氏譜)로 알려져 있으며 그 후 각 권문 세가에서 서둘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여 많은 족보가 이를 전후하여 약 100년사이에 이루어져 지금까지 전해온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177
  • 족보(보첩)의 현황

    가. 우리나라의 족보 현황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가장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따라서 우리의 족보를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실정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열람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세대가 자라나면서 한문으로 된 족보가 읽혀지기 어렵게 되자, 각 가문에서는 족보의 한글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며, 아울러 간지를 서기로 환산하거나 사진의 컬러화와 체제의 단순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여러 뜻있는 학자들이 학회를 결성하여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한글세대에 맞는 현대 감각으로 족보를 개편하여 모든 이들이 실용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나. 외국의 족보현황

      족보는 한국이나 동양의 일부국가에만 있는 것으로 아는 이가 많은데, 사실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족보제도가 있다. 많은 나라들에 족보학회가 있으며, 족보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도서관이 있는 나라도 있다. 미국의 족보전문 도서관에는 마이크로 필름화가 되어 있으며 족보학회가 창립된지도 80년이 넘어 많은 학자들이 국제 회의를 통하여 족보에 대한 여러가지 세미나를 하고 있다. 특히 하버드 대학에서는 한국의 족보제도를 연구하기 위하여 한국의 족보들을 모두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여 보관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의 각 대학에서는 계보의 작성법을 각 학과에 편성해놓고 교과로 배우고 있으며 연구발표회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일본의 도쿄(동경)대학과 교토(경도)대학, 중국의 남경 도서관과 중국과학원, 북경도서관, 프랑스의 극동학원, 베트남의 국립도서관등에 동양의 족보가 보존되어 있다. 명칭에 있어서 중국에서는 종보(宗譜)라 하며, 상류 계층에만 족보가 보급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가보(家譜)라고 하며 각 가문마다 문장이 대대로 전해져서 특별한 예식이나 명절에는 예복,모자 등에 착용한다. 서구에서는 "Family Tree"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족보가 없는 민족 가운데는 잃어버린 조상을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럽의 민족주의 국가에서는 지난날의 잡혼에 의한 질의 저하를 막기 위해 혈통을 존중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 있어서 족보는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117
  • 보첩(譜牒)의 종류

     가.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始祖) 밑의 중시조(中始祖)마다 각각 다른 본관을 가지고 있는 씨족간에 종합 편찬된 족      보이다.  즉 본관은 각기 다르되, 시조가 같은 여러 종족이 함께 통합해서 만든 보책(譜冊)이다.

      나. 족보(族譜) 
        관향(貫鄕)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보첩으로,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가계      (家系)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보책(譜冊)이다.

      다. 세보(世譜)와  세지(世誌) 
        한 종파(宗派)이상의 동보(同譜)·합보(合譜)로 편찬되었거나, 어느 한 파속(派屬) 만이 수록되었을      경우이며,  이를  세지(世誌)라고도 한다.

      라. 파보(派譜)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한 파속(派屬)만의 명·휘자(名·諱字 : 이름자)와 사적(事蹟)을 수록한 보     책(譜冊)이다.

      마. 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편찬하되,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尊屬 :자기의 윗 대)과, 비속(卑      屬 :자기의 아랫 대)에 이르기까지 이름 자와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으로 보첩 편찬의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바.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내는 도표(圖表)로서, 한 씨족      전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이 수록된 것이다.

      사. 가보(家譜)와  가첩(家牒) 
        편찬된 형태나 내용의 표현이 아니라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보첩을 말한다.

      아.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集成)한 책으      로 족보의 사전(辭典)구실을 하는 것이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181
  • 보첩의 제반 용어 해설

    가.  시조, 비조, 중시조 
      시조란 제일 처음의 선조로서 제일 첫번째 조상이며 비조란 시조 이전의 선계 조상 중 가장 높은 사람   을 일컫는다. 중시조란 시조 이하의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조상을, 모든 종중의 공론에 따라 정   하여 추존한 사람이다.

      나.  선계와  세계
      선계란 시조 이전 또는 중시조 이전의 조상을 일컫는 말이며, 세계란 대대로 이어가 는 계통의 체계를   말한다.

      다.  세(世)와  대(代)
      시조를 1세로 하여 아래로 내려갈 경우에는 세라 하고, 자신을 빼고 아버지를 1대로 하여 올라가며 계   산하는 것을 대라 한다. 또한 자기의 조상을 몇대조 할아버지라고 하고, 자신은 시조 또는 어느 조상으   로부터 몇세손 이라고 한다.

      라.  이름자
      요즘은 이름을 하나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여러 가지로 불렀는데,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을 아명, 우리   가 익히 아는 자는 20세가 되면 요즘의 성년식과 같이 관례를 행하는데 여기에는 식을 주례하는 주례   자가 있어 예식을 거행함과 함께 지어준 것이다. 또한 가문의 항렬자에 따라 족보에 오르는 항명과 특   별히 따로 부르는 별호가 있다. 우리는 보통 윗 어른의 이름자를 말할 때 결례를 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살아 계신 분에 대하여는 함자라 하고,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는 휘자라 한다.

      마.  항렬과  항렬자
      항렬이란 같은 혈족사이에 세계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한 문중 율법이며, 항렬자란 이름자 중에 한   글자를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혈족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돌림자라고도 한다. 선조들은   자손들의 항렬자와 배합법까지를 미리 정해 놓아 후손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관례로 만들어 놓았다. 

      바.  후사와  양자
      후사란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계대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만약 계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경우에는 "   무후",  양자로  출계하였을 경우에는 "출후",  서얼로서 입적 되었을 경우에는 "승적", 그리고 후사가   확실치 않아 확인할 수 없을 때에는 "후부전" 이라 칭한다.  

      사.  묘소
      묘소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자만을 기록하고 좌향과 석물 등이 있을 경우에   는 이를 표시하며, 합장의 여부등도 기록한다. 좌향은 대개 ( )좌로 표시하는데 자좌라 하면 자는 정북   을 나타내며 북을 등졌다는 뜻으로 정남을 가리키 는 것이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90
  • 시호록(諡號錄), 시법(諡法)이란?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중에서 정二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시호(諡號)를 주었는데,  뒤에는 범위가 확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절신(節臣) 등은 정二품이 못되어도 시호(諡號)를 주었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 이의 행장(行狀)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禮曹)에 제출하면  예조(禮曹)에서 이를 심의한 뒤  봉상사(奉常寺)를 거쳐 홍무관(弘文館)에 보내어 시호(諡號)를 정하게 된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법으로는 『주공시법(周公諡法)』이니 『춘추시법(春秋諡法)』이니 하여 中國古代 이래의 시법(諡法)이 많이 적용되었던 듯하다. 

    [시호(諡號)에 사용된 글자는] 

      문(文)·충(忠)·정(貞)·공(恭)·양(襄)·정(靖)·효(孝)·장(莊)·안(安)·
      경(景)·익(翼)·무(武)·경(敬)  등, 120 자인데,  

     한자 한자마다 정의(定義)가 있어서 생전의 행적(行蹟)에 알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두자(字)로 만들고 시호(諡號)아래 『공(公)』자를 붙이어 부른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194
  • 유적의 명칭(名稱)

     [전(殿)]
      궁궐,향교,절 등과 같이 여러 채의 건물이 있을 때,그 중에서 가장 큰 집을 일컫는 말이다.
      
      예) 대성전(大成殿), 대웅전(大雄殿)

     [묘(廟)]
      세상에 공적을 남기고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예) 종묘(宗廟), 문묘(文廟)

     [사우(祠宇)]
      학문과 덕행(德行)이나 무공(武功)을 세운 인물의 위업(偉業)과 그 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   로 신주(神主)를 모신다.
      옛날에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3년상을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5대손에 이르러서 매주(埋主)하고 산   소에서 시제(時祭)를 지냈다.

     [부조묘(不조廟)·불천위(不遷位)]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명예로운 조상으로서 그 위패(位牌)를 옮기지 아니하고 대대로 모시는 건물이다.   교묘(郊廟) 또는 조묘(조廟)라고도 한다.

     [별묘(別廟)]
      묘와는 달리 특별하게 따로 지은 사당(祠堂)을 말한다.

     [영당(影堂)]
      조상의 영정(影幀: 肖像)을 모시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당(堂)]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특별히 지은 집 또는 공청(公廳)을 뜻한다.
      
      예) 명륜당(明倫堂)

     [원(院)]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건물과 정원을 뜻한다.

     [정사(精舍)]
      학문을 쌓고 수양하거나 또는 풍월(風月)을 즐기기 위하여 세운 집을 말한다.

     [정문(旌門)·정려(旌閭)]
      효행(孝行), 충절(忠節), 정절(貞節)이 뛰어난 사람의 그 뜻을 높이고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기 위하여   국가 또는 사회에서 표창하는 문(門)이다.

     [유허비(遺墟碑)]
      선조(先祖)들이 살았던 곳 또는 그 위엄을 기리던 곳에 자손이나 친지들이 그 터를 보존하기 위하여 세   우는 비(碑)이다.

     [신도비(神道碑)]
      나라에 크게 공헌하며 거룩하게 산 사람의 일생 동안의 업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해 세우   는 비(碑)이다.

     [재실(齋室)]
      조상의 제사를 경건하게 받들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단정히하고 제수를 장만하기 위하여 특별히 지어   놓은 집.

     [단(壇)]
      묘소를 실전(失傳)하였거나 아예 묘소가 없는 사람의 체백(體魄)을 모신 것처럼 묘소나 비를 세워놓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헌(軒)]
      마루 또는 공청(公廳)을 말 한다.
      
      예) 오죽헌(烏竹軒)

     [루(樓)와 각(閣)]
      높다랗게 지은 건물이다.
      
      예) 광한루, 촉석루

     [대(臺)]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관망이 좋은 곳에 세워진 건물 또는 축대이다.   
      
      예) 해운대, 경포대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62
  • 가족(家族)과 가정(家庭)예절


      가. 가정예절의 의미
       가정은 祖上으로부터 나에게로 이어졌고 나로부터 子孫에게로 물려지는 영원한 것이다.
       가정은 나라와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사람들의 대인관계를 이루는 사회    생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예절에는 기본 예절과 개인 예절등 여러 관점들이 있으나, 예절의 모체는 역시 가정 예절인 것이다.  

      나. 가족의 범위
       가정예절은 가족간의 예절이기 때문에 먼저 가족의 범위를 알아야 할 것이다.
       가족(家族)은 법률적으로 한 호적에 실려있는 구성원이며 같은 혈족이며 한 핏줄인 모든 친척을 의미    하기도 한다.

        (1) 호적법상의 가족
       현행 호적법상으로 볼 때 가족은 큰아들인 아버지와 어머니,자기와 그리고 혼인하지 않은 아버지의 동     생과 누이, 그리고 자기의 형제자매이다.

        (2) 근친·당내간·유복지친
       우리가 흔히 근친이라 말하는 집안은 고조할아버지 이하의 조상을 직계 할아버지로 하는 8촌이내의 모    든 사람이다.
       이 근친을 한 집에서 산다는 의미로 당내간(堂內間) 이라고 하고, 죽으면 상복을 입는 친척이라는 뜻으    로 유복지친(有服之親)이라고도 한다.

        (3) 핏줄·혈족(血族)·동성동본일가
       남자조상이 같은 집안을 핏줄 또는 혈족이라 하고,흔히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일가(一家) 라고도 한     다.

        (4) 살붙이·척족(戚族)
       척족이란 성(姓)이 다른 친족을 말한다.

          (가) 외척(外戚) 
           직계 여자조상(할머니,어머니)의 친정가족으로 외가(外家)의 친족(親族)이다.

           (나) 내척(內戚) 
           직계 존속남자의 자매(고모,대고모)나 자기의 자매(누이) 또는 딸이나 손녀가 시집 가서 그 배우자         와 낳은 자손을 말한다. 넓게 말할 때는 혈족인 여자가 시집 가서 그 배우자와 낳은 자손을 말한다. 

           (다) 인척(姻戚) 
          혼인으로 인해서 집안·친족(親族)이 된 사람이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아내의 친정가족, 여자에게 있        어서는 남편의 직계가 아닌 친족을 말한다.

     다. 촌수(寸數)와  친척관계
       친척간에 멀고 가까운 친소(親疏)를 말하려면 촌수(寸數)로 말한다. 
       그리고 상대와 자기와의 관계를 말할 때는 친척관계로 말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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