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계,의흥 예씨(缶溪,義興芮氏)
부계,의흥 예씨(缶溪,義興芮氏)
의흥(義興)은 경상북도(慶尙北道) 군위군(軍威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의흥군(義興郡)을 고려(高麗) 현종(顯宗) 때 안동부(安東府)에 속하게 하였고, 공양왕(恭讓王) 때 감무(監務)를 두고 부계현을 예속하였으며, 후에 의성(義城)에 속하였다가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현(顯)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에 군위군(軍威郡)에 속한 의흥면(義興面)이 되었다. 예씨(芮氏)는 중국(中國)에서 왔다고 하나 정확한 문헌(文獻)이 없어 선계(先系)를 알 수 없다.
의흥 예씨(義興芮氏)의 시조(始祖) 예락전(芮樂全)은 문장(文章)과 덕망이 뛰어난 석학(碩學)으로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부계(缶溪 : 의흥의 옛지명)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의흥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문헌의 의하면 예씨(芮氏)의 본관(本貫)은 의흥(義興) 외에도 수원(水原), 남양(南洋), 청풍(淸風)등 18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세거지(世居地)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의흥(義興) 단본으로 전한다.
조선(朝鮮) 초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승석(承錫)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락전(樂全)의 8세손으로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며,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아들 충년(忠年)은 1475년(성종 6)에 문과(文科)에 올라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거쳐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 외에도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역임한 인상(仁祥)과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지낸 몽진(夢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흥래(興來) 등이 유명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계·의흥 예시(缶溪·義興芮氏)는 남한(南韓)에 총 2,424가구, 9,46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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