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성씨,가정의례

게시물 검색
전체 588건 9 페이지
  • 원평 야씨(原平夜氏)

    원평 야씨(原平夜氏)

     원평(原平)은 파주(坡州)의 옛 지명이다. 파주(坡州)는 경기도의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475년(고구려 장수왕 63)에 파주사현(坡州史縣)이라 칭하였고, 1398년(태조 7)에는 서원군(瑞原郡)과 파평현(坡平縣)을 병합하여 원평군(原平郡)이라 하였으며, 1415년(태종 15) 교하현(交河縣)을 폐지시켜 이에 병합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뒤에 교하현을 다시 복구시켰으나 도호부는 그대로 두었다.
     1461년(세조 7)에 파주 목(牧)으로 승격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본주(州)를 유행지소(遊幸之所)로 삼고 나머지 땅은 인접 고을에 소속시켰다가 1506년(중종 1) 파주목으로 복귀, 1895년 파주군(坡州郡)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교하군을 폐합하였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야씨(夜氏)는 원평(原平), 개성(開城), 석천(石淺 : 교하지방), 봉성(奉城 : 파주지방)의 4본(本)이 전한다. 원평 야씨(原平夜氏)의 시조(始祖)인 야선조(夜先祖)는 대호군(大護軍)으로 1303년(충렬왕 29) 원(元)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고, 그 뒤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냈다.
     야씨(夜氏)는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북한지역에만 42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43가구, 1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2075
  • 애씨(艾氏)
    애씨(艾氏)

     애씨(艾氏)는 중국 천수(天水 : 지금의 감숙성 위천도에 있던 한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애공(艾孔)의 후예(後裔)가 땅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
     우리나라 애씨(艾氏)의 연원(淵源)에 대해서는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상고(詳考)하지 못하며, 전해지는 본관(本貫)은 한양(漢陽), 연풍(延豊), 장연(長延 : 연풍 지방), 전주(全州), 영천(榮川 : 영주 지방), 철원(鐵原)등 6본이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경기도 시흥(京畿道始興)을 비롯한 안성(安城), 수원(水原) 등지에 4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애씨(艾氏)는 남한(南韓)에 총 6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818
  • 안安
    안安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308
  • 아씨(阿氏)
    아씨(阿氏)

      아씨(阿氏)는 동진(東晉)의 안제(安帝:제10대 왕, 재위기간:397-418) 때 사람인 아부간(阿簿干)의 후손으로 전하며, 「삼국유사(三國遺事)」등 사서(史書)에 역사적인 인물로 나온다.
     6세기 초엽 신라(新羅)에 초청되어 황룡사(皇龍寺) 9층탑을 세운 백제(百濟)의 아비지(阿非知), 근초고왕(近肖古王) 때의 학자로 일본(日本)에 한학(漢學)을 전한 아직기(阿直岐) 등인데 그들의 성씨(姓氏)가 아(阿)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를 보면, 고려(高麗) 태조(太祖) 원년(元年)에 상주(尙州)의 호족(豪族) 아자개(阿字蓋)가 고려에 내부(內附)하여 상주(尙州)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자개(字蓋)는 견훤(甄萱)의 아버지로서 본성(本姓)이 이씨(李氏)이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전남(全南)에 20가구, 경남(慶南)에 9가구 등 모두 35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70가구, 31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676
  • 심沈
    심沈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332
  • 신愼
    신愼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503
  • 신辛
    신辛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558
  • 신申
    신申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503
  • 시씨(柴氏)
    시씨(柴氏)

     시씨는 중국 평양(平陽: 절강성 구해도 임분현의 당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고대 고신씨의 후예로 전하며 고시의 후손이 이름자인 시를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씨는 고려 현종(顯宗: 제8대 임금, 재위기간: 1009 ∼ 1031) 초에 흥화진두(興化鎭頭)인 시신운(柴臣雲)이 사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물이며, 선계에 대한 소목은 고증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상고하지 못한다. 시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와『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 능향(태인지방)·태인·김화 등 3본이 있는 것으로 전하며, 1930년 국세조사 때 전북 정읍과 임실 등지에 94가구가 살고 있었고, 1975년 조사에서는 150가구가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400가구, 1,5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596
  • 시施
    시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601
  • 승昇
    승昇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624
  • 승承
    승承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480
  • 순씨(順氏)
    순씨(順氏)

     순씨(順氏)는 중국 제군(齊郡:산동성 제남부의 진나라 때 군명)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상계(上系)가 불명하나「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922(고려 태조 5) 7월 명주장군(溟州將軍) 순식(順式)이 귀순(歸順)하여 태조(太祖)로부터 왕씨의 성(姓)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보이며, 928(태조 11)에는 대광(大匡)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평남 영원군(寧遠郡)과 함북 종성군(鐘城郡)에 3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652
  • 순씨(荀氏)
    순씨(荀氏)

     순씨(荀氏)는 중국 하내(河內:하남성 필양현 신향의 한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 순후( 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순씨(荀氏)로 하였다고 한다.
     순씨의 본관은 홍산(鴻山)을 비롯하여 임천(林川)·창원(昌原)·연곡(連谷:강릉 지방) 등 4본이 있는 것으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전해지며 우리나라 동래(東來)한 연원(淵源)에 대해서는 미상(未詳)하다.
     홍산 순씨(鴻山荀氏)의 시조(始祖)는 한영(漢英)의 아들 경진(慶震)으로 벼슬은 진사(進士)를 지냈다고 하며 고려 현종 때 순 응(荀 凝)이란 사람이 임금의 이름인 순(詢)과 음이 같다고 하여 손씨(孫氏)로 사성(賜姓)을 받은 것이 일직손씨(一直孫氏)의 시초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하나 현재의 순씨와는 관계는 미상하다.
     1930년 국세조사(國勢調査) 때 충남 부여(扶餘)·서천(舒川) 등지에 40여 가구와 전북지방에 12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235가구, 99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876
  • 순씨(淳氏)
    순씨(淳氏)

     순씨(淳氏)는 1930년 국세조사(國勢調査) 때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로서 전북 익산군에 2가구가 있었고, 연원(淵源)과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고증할 자료가 없어 미상(未詳)하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41가구, 1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02-03 조회 1670

회원로그인

Copyright © 2001-2016 ITNAN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