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절강 편씨(浙江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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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 편씨(浙江片氏)
절강(浙江)은 중국(中國) 동남부(東南部) 동해(東海) 연안에 위치하여 양자강(楊子江) 하류의 남부를 점하고 있으며 전당강(錢塘江)에 의하여 동서(東西)로 나누어져 항주(杭州)를 성도(省都)로 하고 있다. 편씨(片氏)는 중국(中國) 당(唐)나라 종실(宗室)의 후손으로 본래 남송(南宋)때 현유(賢儒)인 이 동(李 )의 8대손 이 지(李 址)가 명조(明祖)때 한림원 태학사(翰林院太學士)로서 일편단심(一片丹心) 충간(忠諫)의 공으로 편씨(片氏)를 사성(賜姓)받았다. 우리나라 편씨(片氏)의 연원(淵源)은 편 지(片 址)의 현손(玄孫)인 편갈송(片碣頌)이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 이여송(李如松)휘하의 군무총병 유격장(軍務總兵 遊擊將)으로 들어와 평양(平壤)에서 전공(戰功)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선조(先祖)로부터 노고를 치하하는 친서를 받았으며, 당시 본국의 어지러운 소식을 듣고 환국을 단념한 뒤 경주 금오산(慶州金鰲山)에 은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본국의 아들, 풍세(豊世), 풍원(豊源), 산보(山甫) 3형제가 금오산으로 와서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갈송(碣頌)의 상(喪)을 당하자 삼년간 시묘(侍墓)한 후 경주를 떠나 풍세(豊世)와 풍원(豊源)은 나주(羅州)에, 산보(山甫)는 만경(萬頃)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편갈송(片碣頌)을 시조(始祖)로 하고 선향(先鄕)인 절강(浙江)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편씨의 가계(家系)는 나주(羅州)에 뿌리를 내린 풍세(豊世)가 슬하에 아들 성대(成大)와 문수(文秀)를 두었으며, 풍원(豊源)은 응복(應福), 한정(漢鼎), 영표(永標) 3형제를, 만경(萬頃)에 정착한 산보(山甫)는 외아들 순당( 堂)을 두어 이들의 자손대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역사상 뛰어난 인물로는 고종(高宗)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전주 중군(全州中軍)을 지낸 기진(沂珍)과 정평부사(定平府使) 좌언(佐彦)이 있으며 독립운동가로 명성을 날린 강렬(康烈), 덕렬(德烈)이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절강편씨(浙江片氏)는 남한에 총 2,607가구,
10,90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강(浙江)은 중국(中國) 동남부(東南部) 동해(東海) 연안에 위치하여 양자강(楊子江) 하류의 남부를 점하고 있으며 전당강(錢塘江)에 의하여 동서(東西)로 나누어져 항주(杭州)를 성도(省都)로 하고 있다. 편씨(片氏)는 중국(中國) 당(唐)나라 종실(宗室)의 후손으로 본래 남송(南宋)때 현유(賢儒)인 이 동(李 )의 8대손 이 지(李 址)가 명조(明祖)때 한림원 태학사(翰林院太學士)로서 일편단심(一片丹心) 충간(忠諫)의 공으로 편씨(片氏)를 사성(賜姓)받았다. 우리나라 편씨(片氏)의 연원(淵源)은 편 지(片 址)의 현손(玄孫)인 편갈송(片碣頌)이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 이여송(李如松)휘하의 군무총병 유격장(軍務總兵 遊擊將)으로 들어와 평양(平壤)에서 전공(戰功)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선조(先祖)로부터 노고를 치하하는 친서를 받았으며, 당시 본국의 어지러운 소식을 듣고 환국을 단념한 뒤 경주 금오산(慶州金鰲山)에 은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본국의 아들, 풍세(豊世), 풍원(豊源), 산보(山甫) 3형제가 금오산으로 와서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갈송(碣頌)의 상(喪)을 당하자 삼년간 시묘(侍墓)한 후 경주를 떠나 풍세(豊世)와 풍원(豊源)은 나주(羅州)에, 산보(山甫)는 만경(萬頃)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편갈송(片碣頌)을 시조(始祖)로 하고 선향(先鄕)인 절강(浙江)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편씨의 가계(家系)는 나주(羅州)에 뿌리를 내린 풍세(豊世)가 슬하에 아들 성대(成大)와 문수(文秀)를 두었으며, 풍원(豊源)은 응복(應福), 한정(漢鼎), 영표(永標) 3형제를, 만경(萬頃)에 정착한 산보(山甫)는 외아들 순당( 堂)을 두어 이들의 자손대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역사상 뛰어난 인물로는 고종(高宗)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전주 중군(全州中軍)을 지낸 기진(沂珍)과 정평부사(定平府使) 좌언(佐彦)이 있으며 독립운동가로 명성을 날린 강렬(康烈), 덕렬(德烈)이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절강편씨(浙江片氏)는 남한에 총 2,607가구,
10,90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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