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대흥 필씨(大興弼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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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 필씨(大興弼氏)
대흥(大興)은 층청남도 예산군에 속한 지명(地名)으로 원래는 백제(百濟)시대의 임존성(任 城)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 때 임성군(任城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초에 대흥으로 개칭한 것을 조선 태종 때 군(郡)이 되었다가 1934년 대흥면(大興面)으로서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대흥 필씨(大興弼氏)의 시조는 무과에 급제한 필몽량(弼夢良)이며 전해지는 관향(貫鄕)은 대흥(大興)과 전주(全州) 2본(本)이 전한다.
대흥 필씨(大興弼氏)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몽량의 후손 두만(斗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부사(府事)의 증손(曾孫) 성뢰(聖 )는 1798년(정조 22)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다.
한편 성뢰(聖 )는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에도 올라 있는데, 대대로 함흥(咸興)에 살았다고 적혀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흥 필씨(大興弼氏)는 남한(南韓)에 총 45가구, 29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흥(大興)은 층청남도 예산군에 속한 지명(地名)으로 원래는 백제(百濟)시대의 임존성(任 城)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 때 임성군(任城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초에 대흥으로 개칭한 것을 조선 태종 때 군(郡)이 되었다가 1934년 대흥면(大興面)으로서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대흥 필씨(大興弼氏)의 시조는 무과에 급제한 필몽량(弼夢良)이며 전해지는 관향(貫鄕)은 대흥(大興)과 전주(全州) 2본(本)이 전한다.
대흥 필씨(大興弼氏)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몽량의 후손 두만(斗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부사(府事)의 증손(曾孫) 성뢰(聖 )는 1798년(정조 22)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다.
한편 성뢰(聖 )는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에도 올라 있는데, 대대로 함흥(咸興)에 살았다고 적혀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흥 필씨(大興弼氏)는 남한(南韓)에 총 45가구, 29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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