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택산함(澤山咸)
『 사랑과 정성 』
● 아무리 쉬운 일일 지라도 급하다고 바늘 구멍에 실
○ 을 꿰지않고 허리에 매어서는 쓸 수 없습니다. 일을
○ 할 때는 바늘 구멍에 실 넣듯이 그렇게 정성스레 해
야 합니다. 바늘 구멍에 실을 넣을 때는 호흡이 거
○ 의 멋다시피하고, 마음같아서는 그냥 바늘로 실을
● 확 쑤셔버리고 싶지만 호흡을 들이켜서 자기 자신을
● 자제하면서 살며시 넣습니다. 항상 진전은 그와 같
이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일단 꿰면 그 결과는 엄
청나게 크게 됩니다. 꿴 자와 꿰지 못한 자. 이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택산함(澤山咸)
[함]은 감(感)과 같다. 즉 느낀다는 뜻이다. 유(柔)
를 의미하는 음괘가 위에 있고 강(强)을 의미하는 양
괘가 아래에 있다. 음양의 두 기(氣)가 서로 감응하
여 친애하고 협력한다. 남자는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
하고 여자는 즐겁게 받아들인다. 남자는 여자의 인격
을 존중하여 스스로 저자세를 가진다. 한결같이하여
변함이 없으면 행복하리라. 결혼에 길하다. 천지는
감응하여 만물을 생성하고, 성인은 인심을 감화시켜
천하가 평화롭게 된다. 감응의 이치를 살펴서 알면
천지 만물의 마음을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괘는 남자가 여자를 느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건
남자들이 절대적으로 봐둬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 괘는 여자 다스
리는 법을 말한 괘이기 때문입니다. 택(澤)이라고 하는 것은 연못
을 뜻합니다. 산은 산(山)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괘는 산위에 연
못이 있는 형상, 백두산 위에는 천지가 있고, 한라산 위에는 백록
담이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모습입니다. 즉 높이 우뚝 솟은 산이지
만 오히려 안으로 들어가서 물이 담겨져 있습니다. 결국 남자가
여자를 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형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괘를 알아야만 남자는 여자를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이것을 모르면 절대로 여자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 괘는 양성에너지가 음성에너지를 감동시켜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을 뜻하는 괘입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매사 모든 일에 결실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조화가 필요하다라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가 뜻했던 목적, 사업이
됐든지 무슨일이 됐든지간에 이와 같은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
면 그 결실은 맺혀지지 않는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괘이
기도 합니다.
"[함]은 감(感)과 같다. 즉 느낀다는 뜻이다."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느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의 마음의 핵심에 도달하
려면 그 여인을 느껴가면서 천천히 접근해야 합니다. 흔히 영화에
서처럼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 아니면 난 죽는다." 하고 여자를
확 낙궈채고 껴안으면 "이 박력! 너무 멋있어." 하고 좋아할 여자
는 사실 영화에서나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
려 "별 미친놈 다보겠네." 하고 도망가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여
인을 사로잡으려면 마치 아이스크림을 핥아서 서서히 녹이듯이
그런 피나는 인내력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감응하여 서서히 여인
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
을 때 비로서 남자는 여인을 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유(柔)을 의미하는 음괘가 위에 있고 강(强)을 의미하는 양괘
가 아래에 있다. 음양의 두 기(氣)가 서로 감응하여 친애하고 협
력한다." 상괘는 양효(陽爻)가 두 개에다 음효(陰爻)가 하나로
여성입니다. 하괘는 음효(陰爻)가 두 개에다 양효(陽爻)가 하나
로 남성입니다. 여자가 위에 있고 남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
고 상괘와 하괘의 모든 효가 서로 음양으로 맞물려서 좋은 대응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태(兌)괘는 소녀를 뜻하고 간(艮)괘는 소남
을 뜻하니 젊은 남여의 순진한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하고 여자는 즐겁게 받아들인다.
남자는 여자의 인격을 존중하여 스스로 저자세를 가진다." 여자는
항상 저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항상 확인하려
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럴려면 남자는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해야 합니다. 중요
한 것은 남자가 시작했으면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 일이 그 사
람을 받아들입니다. 조금 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취미가
안맞아 못한다."고 하면 돌아올 여인의 사랑이 돌아오지 못합니
다.
일본의 유명한 경영자 마쓰시다도 누군가가 "실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성공이 시작되는 그 고난을
넘기지 못하고 거기서 그만둔 사람이 다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마쓰시다에게 누군가 성공의 삼대 요소
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마쓰시다는 첫째 사람, 둘째 경영, 셋째
육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감은 바로 이 [택산
함]의 느껴서 아는 것입니다. 즉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정확한
수치와 판단이 내려지는 감입니다. 육감은 오감 다음의 여섯 번째
감각이 아니고 오감을 통틀어서 하나로 느껴지는 감각입니다. 바
로 이런 감각이 작동을하여 정성을 기울여야지만이 비로서 여자
로부터 감응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인격을 존중
하고 저자세를 통해서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하여야만 여자가 받
아들일 수 있는 감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쓰는 단어중에 '노력'과 '정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기 때
문에 착각과 실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보통 '정
성을 들인다.' '노력한다.'고 할때 그 행위를 좌우하는 주체를 마음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 그 자체, 보통 '심정(心情)'이
라고 표현되는 마음의 상태는 분명히 보이지만, 마음이 움직여서
우리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기능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지 못합니
다. 그래서 우리는 정성을 기울였지만 성과가 나타나지 아니하며,
노력을 기울였지만 노력에 대한 대가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
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우리 마음의 기능은 두가지가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보통 마음과 생각이라고 알고
있는 자기의 현재의식과, 또 하나는 자기가 스스로를 느낄 수 없
는 무의식의 세계, 두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수없이 많이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고, 자
기 마음에 사로잡혀서 움직이는 그 심정은 원래 마음이라고 하는
전체 덩어리의 불과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느낄 수 없는 무의식이 오히려 우리를 80% 이상 재배하
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몸안에는 피가 돌고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따위의 경련도 일어나고 있
습니다. 남자는 수염이 조금씩 자라고, 본인 스스로가 느낄 수 없
는 가운데 손톱도 지금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모든
일을 의식은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의식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숨이 가쁘면 심장이 빨리 뛰고, 편안한 상태에 있으면
심장은 천천히 뜁니다. 그와같은 일을 조절하는 것, 그것도 역시
무의식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했을 때 큰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의식
보다 우리 마음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무의식이 동원되어야 합니
다. 만일 어떤 사람이 노력을 했는데 되어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
는 죽어라 하는 노력이 의식으로만 했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으로
'내가 그 동안에 공부를 너무 안했군. 하루에 두시간만 자고 공부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자면, 일어나 보면 여덟시간을 자곤 합
니다. 계획은 두시간을 잡았지만 그것이 무의식에 전달이 안된 것
입니다. 무의식이 다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의식이 정신을
차려서 정말 두시간밖에 잠을 안자고 공부를 했다면, 그 다음날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강의 시간에 선생님 강의가 들리지 않습
니다. 공부를 하려해도 집중이 되질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성
과가 나타날 리 만무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무의식을 움직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하
면 우리가 무의식을 통해서 집중할 수 있는가?" 그것이 인생에
비젼을 일으킬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해되어진 대로, 자기 심정대로, 자기 심정이 원하는 욕심대로 하
려고 하기 때문에 무의식이 갈팡질팡으로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집중되어져 있는 정성이 발휘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무의식이 '기필코 이 쇠를 잘라야 하겠다.'
한다면 그 사람의 의식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필코 잘라
냅니다. 그러나 "꼭 잘라야 한다." 하고 의식이 앞서서 이걸 자르
겠다고 이빨로 깨물어 봐야 이빨이 부러집니다. 그러면 "안되는
거로군." 하고 못하게 됩니다.
의식은 계속해서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은 의식을
계속해서 그곳에 몰두하게끔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의식으로 사는
사람은 희노애락이 잡다하게 많이 나타나지만 무의식으로 사는
사람은 희노애락에 스스로가 자기 꼬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무의식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점
을 스스로 철저히 관조해야만 합니다.
무의식이 진정으로 나아가면 아무리 바보건, 병신이건, 그 사람
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유능한 무사는 오른팔을 잘라도 왼팔로
다시 당대 제일의 검객이 됩니다. 다시 왼팔을 또 잘라도 입으로
칼을 물고 당대 제일의 고수가 됩니다. 물론 무의식은 오랫동안
계속해서 집중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의 의식을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무의식은 영리해서 압니다. 호흡이 가쁘면 저절
로 심장을 빨리 뛰게하고, 느긋하면 거기에 맞게 적당히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시간만 자고 공부해야지.' 하고 의식이
마음을 먹더라도 '지금은 자야한다. 자는 것이 너에게는 일하는
것이다.' 하고 일러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시간만 자고 공부해야지.' 하고 자다가 2층 침대
에서 떨어졌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무의식이 살려준 것
입니다. 무의식이 하려고 하는데 의식이 실수를 해서 떨어지더라
도 무의식은 우리 몸에 스폰지 같은 완충지대를 만들어 다치지
않게 합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한 노벨도 폭발로 집이 날라가
고 동생이 죽었어도 자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무의식이 자기 스스
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 성과가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기필코 무
의식이 움직여야만 합니다. 무의식이 움직이지 않으면 성과는 나
오지 않습니다. 자기 의식으로 판단할 때 성과가 나타날 때가 됐
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정한 무의식, 즉 정성이 들
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노력은 단 일
퍼센트의 정성도 들인게 아닙니다. 단지 누워서 공상하는 것과 똑
같은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택산함] 이 괘는 바로 무의식을 움직
여서 성공을 이루는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상. 산 위에 못이 있다. 이것이 [함]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마음을 비게하여[空]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받아들인다.
"마음을 비게하여[空] 사람들이 마음을 받아들인다." 진공상태
가 되면 주변의 것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옵니다. 마음을 비게
한다는 것은 한 번에 확 시작하려는 자기 자신을 저자세로 하고
온 몸에 정성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감응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감응을 일으켜도 그것이 복(福)으로 되돌아오
는 데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인내가 어느 정도인 지를
각 효마다 하나하나 설명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음효. 엄지 발가락에 감응한다. 남의 마음에
감응하기를 바라지만 그에게 느끼는 정도는 미미하여
마음이 딴 곳에 있다.
"엄지 발가락에 감응한다." 결심과 결심끝에 기껏 행하면 그것
이 여자한테 미칠때는 겨우 엄지 발가락 정도에 감응할 뿐이다.
"남의 마음에 감응하기를 바라지만 그에게 느끼는 정도는 미미하
여 마음이 딴곳에 있다." 상대방이 나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
미하게 감응하였기 때문에 더 좋은 것에 눈길이 가는 것이지, 발
밑에 겨우 감응 일으키는 정도에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 속안에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고 하여 시작했
더라도 그것이 겨우 감응을 일으키는 것은 이 정도 밖에는 안됩
니다. '이 일을 계속해서 성공해야지.' 하면서 며칠 밤을 새우면서
노심초사해서 그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시작해보았자 그것이 미
치는 영향은 겨우 발가락에 전달될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시작은 거기서부터 가는 겁니다. 잘 안된다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또 방법을 달리해서 하지 말고, 하려는 마음만 꾸준히
가지고 있으면 여러 가지 물건들이 방법으로 동원됩니다. 그 다음
에는 육감이 작용을 해서 그 중에 가장 적절하고 근사한 것을 발
견해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좋은 방법
을 가지고 있더라도 되어질 리 만무합니다.
두번째 음효. 종아리에 감응한다. 아직 그의 마음에
별다른 감응을 얻지 못하여 흉하다. 그러나 초조하게
서두르지 말고 자연스러운 진전에 순응하면 길하리라.
"그러나 초조하게 서두르지 말고 자연스러운 진전에 순응하면
길하리라." 그렇게 피땀흘려 노력했건만 아직까지 그 사람의 마음
에 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급히 서둘면 꼭 자기한
테 손해가 나게 됩니다. 무슨 화가 나는 일이 있다고 옆에 있는
돌뿌리를 걷어 차봐야 자기 발만 다칩니다. "초조하지 말아라."
"완성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계속해서 꾸준하라." "완성된
기쁨을 맛보려고 하지 마라." "완성될 때는 이미 기쁨이 사라지고
난 뒤다." 지금까지 무수히 강조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를 만나면 확 끌어 안아 줘야지.' 이런 기분일때 이상하게
꼭 그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기분이 다 사라져야 그녀가 옵
니다. 인내를 통해 그 기분을 잘 넘겨야만 됩니다. 만물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흔하게 널려 있는게 돈이지만 돈은 지금 우리를
약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조하게 급히 서두르지 말고 사실적
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진전에 순응하면서 마음을 거기에 모
으면 돈은 딸려오게 됩니다.
"초조하게 급히 서두르지 말고 시세의 자연스러운 진전에 순응
하면서" 이것이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아무리 쉬운 일일 지라도
급하다고 바늘 구멍에 실을 꿰지않고 허리에 매어서는 쓸 수 없
습니다. 일을 할 때는 바늘 구멍에 실 넣듯이 그렇게 정성스레 해
야 합니다. 바늘 구멍에 실을 넣을 때는 호흡이 거의 멎다시피하
고, 마음같아서는 그냥 바늘로 실을 확 쑤셔버리고 싶지만 호흡을
들이켜서 자기 자신을 자제하면서 살며시 넣습니다. 항상 진전은
그와 같이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일단 꿰면 그 결과는 엄청나게
크게 됩니다. 꿴 자와 꿰지 못한 자. 이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
다. 우리는 그때 그 순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때 그
순간을 놓치면 그 뒤에 오는 여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됩니다.
세번째 양효. 허벅다리에 감응한다. 감응이 상당한
심도에 이르렀으나 아직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마음
에 안주할만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다. 자신의 애정
을 굳게 가진채 그이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갈 일이
다. 함부로 맹진하면 비난을 받아 이럴 수도 저럴 수
도 없는 궁지에 빠지리라.
"허벅다리에 감응한다. 감응이 상당한 심도에 이르렀으나 아직
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마음에 안주할만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
였다." 이럴 때 조심해야 됩니다. 바늘에 실을 꿰었다고 옷을 다
꿰맨 것처럼 신나했다가는 바늘에 손을 찔릴 염려가 있습니다.
자신이 베푼 정성에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베풀 수 있는 정성과
애정을 굳게 가진 채 상대방을 보면서, 느껴 가면서 상대방의 마
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기의 방법을 동원해야 됩니다.
"함부로 맹진하면 비난을 받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궁지
에 빠지리라." 여기서 맹진을 하면 안됩니다. 이때 한 번 더 숨을
죽여서 상대편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이때부터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마음
을 사로잡는 것이 사실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인생의 묘미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는 이런데 있습니다.
묘미를 모르는 자는 즐거움이 있을 때 즐거움만 있지만, 묘미를
아는 자는 즐거움이 있을 때도 뒷 걱정이 오히려 생기는 사람입
니다. 즐거움 때문에 뒤에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걱정
하는 사람입니다.
서부 활극 영화나 갱 영화를 보면 죽을 역할은 뻔히 나와 있습
니다. 싸워서 이겼다고 신나하는 사람은 5분후 필름을 보면 반드
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부주인공은 꼭 죽게 되어 있습니다.
또 주인공은 잘 죽지 않습니다. 총알이 막 날라와서 옆에 부주인
공이 맞았을 때 주인공이 총을 버리고 부주인공을 끌어 안고 있
으면, 부주인공의 유언을 다 들어주고 부주인공이 죽을 때까지 지
켜봐 주어도 주인공은 죽지 않습니다. 바로 그 장면이 끝나면 그
때 다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합니다. 영화가 그렇듯이 현실도 그
렇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물이라는 총알도 그렇게 오게 되어 있
습니다.
네 번째 양효.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
마음을 유지한 채로 변함이 없으면 후회하는 일은 없
어지고 길하리라. 아직은 충분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 정성된 마음으로 부지런히 추종하여 왕래하면
마침내 벗은 내 뜻에 쫓으리라.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 마음을 유지한 채로 변
함이 없으면 후회하는 일은 없어지고 길하리라." 내가 무엇을 얻
으려고 하면 내 속안에 들어 있는 무의식에 정성을 다해야만 합
니다. 왜냐면 나한테 줄려는 것이 정성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입
니다. '이것이 맛이 있을까? 저것이 맛이 있을까?' 이렇게 느끼는
판단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쌀도 오래 씹으면 달고 맛있습니다.
그냥 꿀꺽 삼키면 맛이 뭔지 모르지만 아무리 맛없는 것도 계속
해서 씹고 음미하면 그안에서 이상 야릇한 맛이 나타나게 됩니다.
진짜 식도락가는, 그리고 진정한 요리사는 많이 씹고 음미해서 그
안에서 답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간에 계속 그 일을
하다보면 그안에서 이제 그 자신이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
을 우리는 능란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면 과연 나에게 이득이 있을까?" "내 인
생에 보탬이 되는 일이 있을까?" 벌써 이러는 인간은 아무데가도
보탬이 되어지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무슨 일이 되었든 그 일에
자기 진실을 보이고 정성을 들이면 그안에서 그 사람한테 인생의
풍요로운 맛이 주어지게 됩니다. 유능한 문학가는 오히려 구질구
질한 데를 찾아다니면서 그 맛을 느낍니다.
"아직은 충분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 정성된 마음으로
부지런히 추종하여 왕래하면 마침내 벗은 내 뜻에 쫓으리라." 나
에게 이득이 있을까, 없을까 하는 알량한 이해 속셈을 갖지 말고
깊이 있게 일편단심, 자신의 무의식을 쏟게 되면 그 정성이 님의
마음에 해로움을 줄리는 없습니다. 그리하면 님은 진심을 그사람
에게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무의식을 통하여 만물을 움직일 수
있는 힘입니다.
"왜 나는 노력하는데 움직여지지 않나요?" 의식만이 했기 때문
입니다. 무의식이 꼭 할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고민을 통해서 하는 것, 이것은 겨우 인간의 생각이
라고 하는 유능한 능력 가운데 불과 20% 안팍에 불과할 뿐입니
다. "저에게 너무나 심각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하고 나에게 물
으면 나는 "그래 그럴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는 것이
다. 깊이 푹 잠을 자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는데 잠이 옵니
까?" "내말을 믿고 자라. 왜냐하면 그렇게 쉬면 네 무의식이 문제
를 올바르게 정리해 놓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괴로운 심정안에 빠
져서 히스테리, 후회, 답답증에 술이나 먹고 만취되어 쓰러져 자
면 무의식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양효. 등살에 감촉을 느낀다. 이제는 왕자
의 지위에 있는 몸, 널리 천하에 인민을 고루 사랑해
야 한다. 어느 한 곳에 애정을 집중하는 일에는 마음
이 없다. 후회함이 없다.
일이라는 것이 열심히 하느라고 너무 집중하다 보면 앞이 안보
일 수 있습니다. 땅을 산 이쪽에서 반대편까지 파나가는데 파는데
만 정신을 팔다보면 어디쯤 와있는지를 모릅니다. 안에 들어가 있
는데 알턱이 없습니다. 이제 다왔는가 싶으면 겨우 삼분의 일 왔
습니다. 이것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다 판 뒤의 만족을
상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뚫고 나온 뒤의 만족감이 마음에 있을
때는 아직 반 이전입니다. 무의식이 안 움직인 것입니다. 꿈이라
는 것은 의식의 작용입니다. 무의식이 움직여지기 전까지는 두려
움이 있습니다. 의식이 걱정하면 두려움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무의식이 네 번째 단계까지 상대방에게 정성으로 가고, 그 사람
의 등살에 미치게 되면 이제 의식을 통해서 모두에게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성공시킨 것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꼭 필요해서 발명을 해 놓으면 그 발명
은 여러 사람한테 갈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들을 위해서 베풀어
야 합니다. 그것을 '덕(德)'이라고 합니다.
"등살에 감촉을 느낀다." 지금까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제 무의식을 통해 상대방한테 전달되는 과정이 바로 여기입니
다. 그러나 한평생을 죽어라 노력해서 드디어 성공을 했지만 바로
그 다음날 사망한다면 그가 노력한 유작은 남겼을지 몰라도 아무
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공자는 "50에 도를 얻으면 후회가 없
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50에 도를 얻으면 좀 곤란하다고 이
야기합니다. 30정도면 얻어야지 50에 얻어가지고 언제 써먹겠는
가? 늦어도 40안에는 얻어야만 그것을 이 세상을 향해 쓸 수 있습
니다. "널리 천하에 인민을 고루 사랑해야 한다." 내가 꽃을 죽이
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으면 이제 다른 꽃도 키워서
모두를 활짝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
다. "나는 드디어 도를 얻었다. 고로 나는 간다." 해서는 안되고 그
것을 다른 사람한테 베풀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벌써 이쯤되면
향기가 되어서 뿜어져 나갑니다. 그것은 커다란 복으로 돌아올 것
입니다. "후회함이 없다."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베푸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그
덕을 전파하여 다른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올 것이며, 이를 통해
나의 명예는 온 누리에 퍼져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엄청
난 지복(Ananda)을 얻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뺨과 혀를 감응한다. 뺨에 감응하는
것은 형식적이요, 혀로 감응함은 말로 지껄일 뿐 성
의가 없다. 이미 정열은 식고 형식이 남아있을 뿐이
다. 흉하다.
"뺨에 감응하는 것은 형식적이요, 혀로 감응함은 말로 지껄일
뿐 성의가 없다." 의사가 맨처음에는 환자를 하나씩 고치는 것이
재미있어 환자를 친절히 돌봐주었으나 돈 좀 벌어서 병원하나 크
게 내고 폼만 잡기 시작하면 그 의사한테서는 더이상 명의술이
발견될 수 없습니다. 악사가 악기만 보면 손에 경련이 일어나면
그 사람은 악기를 손에서 놓아야 합니다. 아내의 얼굴만 보면 인
생이 허무해지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끝난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
을 차릴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이미 정열은 식고 형식이 남아있을 뿐이다. 흉하다." 진짜 진
실은 권태기를 넘기고 나서입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실은 스
스로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움직이는 사람은 권태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역은 역순하기 때문에 밑에 있는 괘가 위에 올라가고
위에 있는 괘가 밑으로 내려가면 맨 위는 양효로 막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권태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역의
각 단계를 통해 비젼을 일으킨 사람에게나 해당되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주역이 경고하는 '흉하다.'가 그 사람을 휩싸고
돌게 될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권태기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피곤한 몸이 있
을지언정 권태기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인생 산다는 것에 두려
움이 있을 때는 아직까지 성장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
다. 무조건 앞이 다 희망으로 보일 때도 아직까지 그 사람은 안주
할 곳이 없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안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서 진정한 감각기능, 즉 눈, 코, 입, 귀, 피부 등 오감과, 오감
전체가 하나가 되서 느끼는 육감이 작동하게 됩니다. 육감이 작동
해서 느낌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써서 움직이는 사람은 권태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뿐입니다. 바로
거기에 바로 행복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잘 살건 못 살건, 높은 지위
에 있건 낮은 지위에 있건, 외양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는 전혀
판단하지 말고 가장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
죽을 곳이 있이 사는 사람이다." 나는 성리(性理)를 위해서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누가 나를 보고 어떤 비난을 하더라
도 내가 웃으면서 활짝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이유는 내가
죽을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리를 위해서 이렇게 앉아 있는 이
입장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총을 쏜다면 당연히 맞으면서 죽을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야! 총알 아껴라. 나 하나 죽이는데 무슨 총까
지 쏘냐." 이러면서 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성리와 함께 있기 때
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성리를 위해
서 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능히 의식은 도망갈 수도 있었는
데, 미리 자기가 잡혀 죽는다는 것을 알고까지 있었는데도 예수가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 무의식이 죽을 곳을 갖고 있는 행복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덤덤히 독배를 받아 마실 수
있었던 것, 그것 또한 죽음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려고 하지 말고, 이 세상에 자기의 목숨을 묻어놓고
살면 그 사람은 아주 평화로와 집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8. 15 기념식에서 문세광이 쏜 총알이 자기
앞을 가르고 영부인을 맞혔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할 말을
다 마치고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무의식이 당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무의식은 그 직위로 인해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
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부를 할 때, 공부가 나의
죽을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공부가 되었던지 간에 틀림
없이 성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죽을 목숨을 대학 입학고시에다 놓
고 시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입학고시에 합격을 합니다. 죽음을
각오하는 무의식이 없이 그저 잘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
무 성과가 없습니다.
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