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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성술 용어1


    <<점성술의 시작>>
    점성술은 수천 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되었다.
    행성과 행성의 운동이 왕과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그들의 천문학적 지식을 통치자에게 자문을 주는데 이용하였다.
    바빌론 문명이 그리스에 흡수 되었을 때, 점성술은 점차 서구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고, 점차 동양 세계에 까지 퍼지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사람들은 행성이 모든 개인적인 일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발달시키면서 점성술을 일반화하였다.
    특히, 그들은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의 태양, 달, 행성의 위치가 그 사람의 성격 및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는데, 이런 학설을 사주 점성술이라고 부른다.
    사주 점성술은 주창된지 400년이 지난 후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최고 절정기에 이른다. 프톨레마이오스tetrabiblos란 4권의 책에 점성술 논문을 집대성하여 천문학에서 뿐 아니라 점성술 세계에서도 유명해졌다.
    이 책은 아직도 점성술가들에 의해 여전히 사용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보다 더 오래된 고대 경전이다.
    사주 점성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2궁도인데, 이것은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의 행성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별지도이다.
    12궁도를 그릴 때, 행성들은 황도대에 우선 그려졌던 것 같다.
    점성술을 위해서, 황도대는 12개의 궁으로 나뉘고, 각각의 궁들은 30도 씩 떨어져 있다.
    각각의 궁들은 태양과 달 및 행성이 지나갈 때 배경에 보이는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다.
    오늘날의 점성술도 거의 2000 년 전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주장되었던 기본 원칙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펌 - 점프 인투 매직
     
     
     
     

    점성학 전문 용어 열두 싸인12sign 에리즈: 양 토러스: 황소 제머나이, 제미니: 쌍둥이 캔서: 게 리오: 사자 버고: 처녀 리브라, 라이브라: 천칭 스콜피오: 전갈 새지태리어스, 새지태리: 사수 캐프리콘: 염소 어퀘어리스, 아쿠아: 물병 파이시즈, 피시즈: 물고기 일곱 플래닛7planet 새턴: 토성 주피터: 목성 마르스: 화성 선, 솔: 태양, 일 비너스: 금성 머큐리: 수성 루나, 문: 달, 월
    아우터 플래닛outer planet(토성 외부 행성)
    우라누스: 천왕성 넵튠: 해왕성 플루토: 명왕성 http://www.astrologiae.com/term.htm
     
     
    나디르Nadir: 차트의 정북쪽. IC. 이뮬 코엘리. 네이탈 차트Natal Chart, 출생차트: 네이티비티를 보라. 네이티비티Nativity: 출생 차트의 주인 혹은 탄생 차트. 네이티브Native: 차트의 주인공. 디그니티Dignity: 이센셜이든 액시덴탈이든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플래닛의 상태. 디빌리티Debility: 어떤 플래닛이 트리플리시티에 의해 상대적으로 약한 자리에 위치했을 때. 가령 수성이 사수에 있을 때. 디센던트DSC: 차트에서 정 서쪽. 타인의 집. 디트리먼트Detriment: 행성의 나쁜 위치 중 가장 좋지 않은 상태. 자신의 사인과 반대쪽 사인에 있을 때 행성이 디트리먼트했다고 한다. 레디컬Radical: 호라리에서 저지먼트judgment에 걸리지 않고 판단이 가능한 차트. 레딕스Radix: 디렉션direction과 비교해서 네이탈natal 차트. 레지오몬타누스Regiomontanus: 정통/고전 점성술에서 사용하는 하우스 시스템. 조안네스 뮬러Johannes Muller가 초기의 캄파누스Campanus 시스템을 수정하여 만든 것. 루미너리Luminary 또는 라이트Light: 솔과 루나. 리트로그래이드Retrograde: 거꾸로 가는 플래닛. 차트에서 R로 표시된다. 릴리의 격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도 같은 애스트롤로저들의 지침. '그대가 날마다 하늘과 교제하는 것처럼 그대의 마음을 신성의 이미지를 따라 형성하고 가르치라. 모든 자비로운 미덕을 배우고 충분히 그것들을 습득하라. 인정 많고 친절하고 신실함으로 모두가 접근하기 쉽게 하고 가혹한 판단의 공포로 불쌍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기지 말라.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신God께 무거운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도록 의탁하라. 겸손하고 항상 배우는 마음을 가지며 교양 있고 냉철하며 탐욕을 부리지 말라. 세상의 부를 탐냄으로 판단에 오류를 범하지 말고 이 신God의 아트Art에 대해 불명예스럽게 되지 말라.' 메리디안Meridian: 쉽게 말해 차트의 중앙에서 MC와 IC를 지나는 선. 머레픽Malefic: 새턴과 마르스. 언포춘Unfortune 또는 인포춘Infortune, 머레보렌트Malevolent 모이티Moiety: 플래닛들이 가진 오브의 절반. 선의 오브의 절반에 든 플래닛은 컴버스트한다고 한다. 뮤추얼 리셉션Mutual Reception: 두 플래닛이 서로 상대방의 사인에 위치할 때. 예를 들어 마르스가 리브라에 있고 비너스가 에리즈에 있을 때. 리시브한다고 한다. 메디움 코엘리MC: 차트에서 정 남쪽. 천직, 직업, 어머니의 하우스. 미디발 애스트롤로지Medieval! Astrology: 정통 애스트롤로지의 또 다른 명칭. 베너픽Benefic: 주피터와 비너스. 포춘, 버네보렌트Benevolent 보다, 비홀드Behold: 애스펙트를 이루었을 때, 한 플래닛이 다른 플래닛이나 포인트를 비홀드한다고 표현한다. 보이드 오브 코스Void of course: 어떤 플래닛이 자신이 현재 있는 사인을 벗어날 때까지 다른 플래닛과 메이저 애스펙트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 또는 어떤 메이저 애스펙트도 이루고 있지 않은 상태. 비시지드Besieged: 새턴과 마르스 사이에 어떤 플래닛이 자리할 때. 사인Sign: 양자리, 황소자리 등에서 '자리'를 뜻하는 말. 석시던트Succedent: 11, 5, 9, 2번째 하우스. 섞다, 믹스Mix: 두 플래닛이 어떤 애스펙트로 만났을 때 자주 '믹스한다'는 표현을 쓴다. 스위프트 인 모션Swift in motion: 플래닛이 에버리지 데일리 모션average daily motion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 보통 그 플래닛의 이점이 배가된다. 패스트Fast 슬로우 인 모션Slow in motion: 플래닛이 에버리지 데일리 모션보다 느리게 움직일 때. 플래닛의 흉한 점이 부각된다. 심리 점성학Psychic-Astrology, 사이킥 애스트롤로지: 앨런 리오에 의해, 일부 정통 애스트롤로지에서 빌린 이론을 심리학에 조합하여 탄생한 종교 철학. 아나레타Anareta: 디렉션Direction이나 네이탈 차트에서 힐렉Hyleg을 어플릭티드하는 것. 아스테로이드Asteroid: 키론, 케레스, 베스타, 주노와 같은 소행성. 애스펙트Aspect: 플래닛과 플래닛, 혹은 플래닛과 중요한 포인트의 각도. 이런 뜻에서 애스펙트는 오직 플래닛에만 속한다. 차트의 모양 혹은 차트를 보는 애스트롤로저의 관점. 아펠리온Aphelion: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플래닛의 오브의 위치. 알무텐Almuten, 알무템: 차트에서 가장 강력한 플래닛. 엘오지LOG. 엘오에프LOF. 아페타Apheta: 힐렉. 네이티비티에서 생명과 관계한다. 압시션Abscission: 어떤 플래닛의 간섭하는 애스펙트에 의해 다른 플래닛들의 접근이 방해 받는 상태. 프러스트레이션Frustration. 애스트롤로지Astrology, 점성학: 별의 논리, 혹은 천체의 언어라는 뜻으로 점성술 혹은 점성학의 참말. 애스트롤로저Astrologer: 점성가 혹은 점성술사의 참말. 앵글Angler: 1, 10, 7, 4번째 하우스. 어센던트ASC: 차트에서 정 동쪽. 자신의 템플.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 한 플래닛이 다른 플래닛에 접근할 때. 시니스터sinister 어플릭티드Afflicted: 어떤 플래닛이나 포인트가 나쁜 애스펙트를 받고 있을 때 어플릭티드한다고 한다. 언더선빔Under the sun beam: 어떤 플래닛이 솔의 17도 이내에 있을 때. 언포춘Unfortune: 정통 애스트롤로지에서 새턴과 마르스. 인포춘Infortune. 머레픽. 엔티션Antiscion, 패럴렐: 캔서와 캐프리콘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한 사인씩 옮겨 같은 위치에 놓인 두 플래닛이 있을 때. 트라인, 섹스타일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오브Orb: 모든 플래닛은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데 몸에서부터 빛의 한계까지를 오브라고 한다. 오컬트Occult: 일반적으로 모든 신비적인 지식 체계를 총괄하는 용어. 아우터 플래닛outer planets: 토성 바깥 쪽에 위치하면서 근래에 발견된 플래닛들, 즉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이그절테이션Exaltation: 룰러쉽에 의한 디그니티 다음으로 플래닛이 디그니티를 갖는 상태. 이뮴 코엘리IM: 차트에서 정 북쪽. 가정, 아버지의 집. 이페머리스Ephmeris, 이페머라이드: 호로스코프에서 플래닛들의 위치를 찾는데 이용되는 천체력. 일렉션Election: 특정 일이나 사건을 발현하기에 좋은 시간을 찾는 애스트롤로지의 분야. 조디악Zodiac: 원래 배열된 동물Animal이라는 뜻. 마자로스Mazzaroth라고도 하며 12사인으로 구성된 하늘의 집. 집, 하우스House: 열 두 영역으로 나뉜 인생 전반에 대한 분야별 구분. 템플Temple. 차트Chart, 제니쳐: 흔히 천궁도라 부르는 것의 정식 명칭. 카디널Cardinal: 에리즈, 캔서, 리브라, 캐프리콘 카지미Cazimi: 어떤 플래닛이 솔의 17분 이내에 있을 때. 카풋 드라코니스Caput Draconis: 아나비바존. 북쪽 노드. 베딕 점성술에서 라후Rahu. 커먼Common 사인: 제미니, 버고, 새지태리어스, 파이시즈 커스프Cusp, 쿠스프: 각 하우스와 사인이 시작하는 곳. 8번째 하우스의 커스프는 7번째 하우스와 8번째 하우스의 경계선이다. 커스프는 플래닛과 같은 성질을 가지며 각 템플에서 가장 강력한 지점이다. 컬미네이션Culmination: MC에 어떤 플래닛이 도착했을 때. 엘러베이션Elevation. 또는 완전한 애스펙트를 이루었을 때. 컴버스트: 어떤 플래닛이 태양의 8도 30분 이내에 있을 때. 케이던트Cadent: 3, 9, 6, 12번째 하우스. 콘-시그니피케이터Con-significator: 사인과 상관없이 각 하우스가 가지는 보편적 로드. 새턴, 주피터, 마르스, 선, 비너스, 머큐리, 루나, 새턴, 주피터, 마르스… 의 순서로 배정된다. 코흐Koch: 월터 코흐Walter Koch에 의해 나치 전때 독일에서 개발된 하우스 시스템. 초기의 알카비티우스Alcabitius 시스템과 유사하다. 다른 하우스 시스템이 극단적으로 꺾이는 특정 지역에서 사용된다. 운명보다는 자유의지적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콜렉션 오브 라이트Collection of Light: 하나의 느린 플래닛이 더 빠른 두 개의 플래닛으로부터 애스펙트를 받을 때. 쿼런트Querent: 의뢰인. 즉 질문자 혹은 문복자. 퀘시티드 : 의문사항 또는 질문 사항. 트리플리시티Triplicity: 불, 흙, 공기, 물의 네 원소. 앨러맨트Element. 트랜스래이션 오브 라이트Translation of Light: 어떤 플래닛으로부터 세퍼레이션하는 빠른 플래닛이 또 다른 플래닛에 이전 플래닛의 성질을 옮길 때. 파틸Patill: 플래닛이나 중요한 포인트가 서로 오브 없이 애스펙트를 이룰 때. 1°까지는 파틸로 친다. 펄Fall: 행성이 이그절테이션Exaltation하는 사인의 반대쪽 사인에 있을 때. 페러그라인Peregrine: 플래닛이 어떤 사인에서 이센셜 디그니티를 갖지 못한 상태. 포춘Fortune: 주피터와 비너스. 베너픽. 플래닛Planet: 행성. 떠돌이별. 태양처럼 움직이지 않는 천체는 스타Star, 토성이나 달처럼 움직이는 천체는 플래닛이라고 한다. 플래틱Platick: 플래닛이나 중요한 포인트가 오브의 모이티 내에서 애스펙트를 이룰 때. 프랙티셔너Practitioner: 실천적 측면에서 애스트롤로저를 일컫는 말. 프로그래션Progerssion: 플래닛의 진행. 디렉션Direction. 픽스드Fixed 사인: 토러스, 리오, 스콜피오, 아쿠아. 픽스트 스타Fixed Star: 북두칠성처럼 태양계 너머에 있는 별들. 강력한 효력을 지닌다. 헤이즈Hayz: 남성, 낮의 플래닛이 낮에 남성의 사인에 호라이즌 위에 있을 때. 여성의 플래닛은 그 반대가 헤이즈이다. 헬리오센트릭Heliocentric: 태양의 관점에서 본 플래닛들의 배치. 지오센트릭과 반대이다. 호라리Horary: 시간Hora이란 뜻으로 동양의 육임과 같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시적인 결론을 내리는데 사용하는 애스트롤로지의 대표적인 분야. 휴머니스틱 애스트롤로지Humanistic Astrology: 데인 러디아르에 의해 창시된 인본주의적 애스트롤로지. 예언적 기능은 없이 성격 위주로 판단하는 사이킥 애스트롤로지의 가지 중 하나. 힐렉Hyleg: 생명의 기여자, 혹은 생명유지자. 네이티비티에서 삶의 기간을 알려주는 플래닛이나 포인트. 고대와 중세, 현대의 차이가 있다. http://www.astrologiae.com/term.htm
     
     
     
     
     

    애스트롤로지(점성술) 애스트롤로지Astrology는 크게 예언 기능이 주를 이루는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Traditional/Classical Astrology와 내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현대 점성-심리학Modern Psychic Astrology, 마법주술을 행하고 부적Seal 등을 다루는 오컬트 애스트롤로지Occult Astrology로 나뉜다.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는 프톨레마이오스로부터 시작해 윌리엄 릴리 때에 절정에 이른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를 가리키며 점성-심리학은 앨런 레오 등에 의해 구체화된 인스턴트 애스트롤로지이다.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는 예언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점성-심리학은 학문적 이론에 중점을 둔다. 정통 애스트롤로지는 새턴, 주피터, 마르스, 솔(선), 비너스, 머큐리, 루나(문)를 사용하나 현대 점성-심리학은 여기에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과 아스테로이드Asteroid, 우라니안Uranian, 미드포인트Midpoint를 함께 사용한다. 당연히 둘은 완전히 다른 체계와 질서, 법칙을 갖고 있으며 해석 방식과 하우스의 규칙, 범위, 애스펙트의 종류와 뜻도 완전히 다르다.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Traditional Astrology 네이티비티(출생)Nativity호라리(단시)Horary Astrology일렉션(택일)Election Astrology - 유니버셜(일반) 일렉션Universal Election, 파티컬러(개인) 일렉션Particular Election메디칼(의학)Medical Astrology먼데인(국가)Universal/Mundane Astrology웨더(기상)Weather Astrology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는 크게 5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보나티Bonatti, 개드버리Gadbury, 알 카야트Al Khayyat, 피르미쿠스Firmicus로 대표되는 네이티비티Nativity는 한 사람의 출생일시에 의해 시나스트리(궁합)synastry를 비롯한 전체 생을 조감하고 플래닛planet들과 커스프cusp의 리볼루션revolution으로 시기를 판단한다. 윌리엄 릴리William Lilly를 비롯한 미디발Medieval! (중세)애스트롤로저들로 대표되는 호라리는 특정 사건이나 일의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시기와 장소를 따라 사건 혹은 일이 벌어지거나 쿼런트(의뢰인)가 애스트롤로저에게 문의한 시간의 천체 배치에 의해 한시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윌리엄 램지William Ramesey로 대표되는 일렉션은 동양의 택일을 말한다. 일렉션은 사건과 상황을 따라 다양한 규칙과 복합적인 판단이 결합되며 일반과 개인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일렉션의 방식은 네이티비티를 사용하지 않고 천체의 배치만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개인적 일렉션은 네이탈 차트Natal chart와 겸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호라리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차트를 판단하고 일렉션은 차트를 따라 일을 시작한다는 점이 다르다. 컬피퍼Culpeper와 선더스Saunders로 대표되는 메디칼(의료) 애스트롤로지는 별들의 배치를 통해 각 사람의 질병을 판단하는 것이다. 호라리, 일렉션과 병행되는 메디칼 애스트롤로지는 네이티브Native가 어떤 질병에 걸릴지, 어느 부위인지, 불치병인지 아닌지, 악화될지 나을지, 체질과 성질에 맞는 음식은 어떤 것인지 등을 다룬다. 램지에 의해 자세히 기술된 먼데인 애스트롤로지는 국가, 정치, 종교 등의 큰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점칠 때 사용된다. 일반 일렉션은 고대인들에 의해 주로 전쟁에서 전투를 시작하고 끝내는 시기를 결정할 때 이용되었다. 현대에는 주로 선거나 중요한 국가행사, 개인의 운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과 관련해 쓰인다. 웨더 애스트롤로지는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다. 달Luna의 변화가 밀물과 썰물에 영향을 주고 여성의 월경 주기가 이를 따른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관측함으로 날씨를 추측했고 그러한 전통은 날씨 애스트롤로지로 체계화 되었다. 현대 점성-심리학Modern Psychic Astrology 현대 애스트롤로지는 크게 영매(무당), 종교적, 심리적 성격을 가지는 점성-심리학과 잡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양이 있는 별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인스턴트 선사인 애스트롤로지로 나뉜다. 점성-심리학Psychic-Astrology인스턴트 선 사인 점성술Sun Sign Astrology 점성-심리학은 새롭고 창의적인 이론을 계속 수용하고 계승하면서 이전의 전통과는 별개의 노선을 확립하는 데에 집중한다.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가 플래닛과 하우스를 중심으로 해석한다면 현대 점성-심리학은 사인, 즉 별자리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선 사인 애스트롤로지는 잡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일 년에 한 바퀴 차트를 순환하는 태양의 주기에 의해 각 계절마다 머무는 별자리를 중심으로 운명을 점쳐보는 흥미위주의 애스트롤로지이다. 정통 고전적 점성술Traditional Astrology(트래디셔널 애스트롤로지)과 점성-심리학Psychic-Astrology(사이킬 애스트롤로지)의 차이 영국의 유명한 고전 애스트롤로저인 존 프라울리John Frawley는 그의 유명한 책 Real Astrology에서 히틀러의 차트를 예로 들어 점성-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각 사인의 특징들을 들어보이며 어떤 사인을 적용하든 모두 히틀러에게 맞는다고 하면서 점성-심리학의 엉터리 이론을 반박해놓았다.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로의 실천적 안내A Practical Guide to Traditional Astrology의 저자인 조셉 크래인Joseph Crane의 말처럼 점성-심리학은 전통적인 애스트롤로지가 아닌 전혀 새로운 이론이다. 애스트롤로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많지만 애스트롤로지가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와 ‘점성-심리학’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도 애스트롤로지가 심리와 고전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고, 알더라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아 온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웹사이트만 찾아보아도 많은 애스트롤로지 사이트들이 서브 페이지에 사이킥Psychic-, 즉 ‘심리’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점성-심리학자임을 밝히는 정직한 자세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고 고전과 구분된다는 나름의 자부심에서 그러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고전적 애스트롤로저들은 일종의 관행처럼 자신의 웹사이트나 명함에 고전적 애스트롤로저 Traditional/Classic Astrologer임을 밝힌다. 애스트롤로지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점성-심리학이 애스트롤로지의 전부인양 인식되어 있으나, 점성-심리학은 애스트롤로지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10을 기준으로 봤을 때, 대략 고전과 심리는 8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부모의 상태, 형제의 수, 배우자의 외모, 재물의 성취도, 명예의 수준, 흥망시기, 질병의 종류, 취미, 자녀의 수, 죽은 형제가 있는지, 배우자의 재물, 직업의 종류, 시험운 등을 다루는 고전은 말 그대로 운명fate을 논하는 점fortune-telling이다. 반대로 심리는 점이라기보다는 이론학문에 가깝다. 생년월일시간만 말하고 가만히 앉아서 왜 왔는지부터 맞추도록 요구하는 심술궂은 의뢰인들이 많은 역학계의 현실에서 극도로 단순한 리포트라이터(차트 해석 소프트웨어) 수준 이상의 해석이 불가능한 심리 애스트롤로지로 현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인생사를 맞출 능력이 없는 점성-심리학은, 그러나 빠르게 애스트롤로지를 습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동양역학에 비유 하자면,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는 정통 사주명리에 가깝고 점성-심리학은 당사주(옛날 시골 할아버지들이 손가락을 짚으며 말하던 인스턴트 점)에 가깝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점성-심리학에 대해 잘 알면서 쓰는 글인지 물으시는 분들이 있어 몇 마디 덧붙인다. 점성-심리학의 거장들로는 앨런 레오와 마크 존스, 데인 러디아르와 심리학자 융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의 서적들을 종합한 책들을 편역한 책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그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틴 루터나 칼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의 문헌을 번역 인용한 영서나 기타 외국어로 된 논문을 재인용하는 것보다 루터와 칼뱅이 집필한 원문들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훨씬 신빙성있고 가치있는 일임은 당연하다. 원자료를 다룬다면 그만큼 역사속의 인물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제 2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번역물의 출처가 원저자의 서적이나 원고가 아닌, 원저자의 가르침을 토대로 다른 이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진 것이라면 더더욱 원 내용은 오해 될 수 있다. 여타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심리 애스트롤로지를 공부할 때도 몇 번의 재인용 과정을 거친 서적들보다는 원류라 불리는 이들이 남긴 문헌에 의해 습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점성-심리학의 이론들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4번째 하우스가 어머니를 다스린다고 했다가, 다시 양친을 다스린다고 했다가, 다시 여자에게는 아버지이고 남자에게는 어머니라고 하거나, 토러스가 인체의 목을 다스린다고 해서 성악가나 예술가를 다스린다고 하는 등 그것이 맞든 그렇지 않든 기존의 이론은 재해석되기도 하며 사라지기도 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론이 자리잡기도 하는 식의 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루나(달)과 플루토(명왕성)가 스퀘어로 만나면 큰 고뇌를 겪게 된다는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일단의 추측에 근거해 계속 전파되다가 좀 더 사고를 논리적으로 하려는 사람에 의해 검증의 절차를 거치면 그것이 기존의 이론대로 되지 않았음이 밝혀지고 다시 새로운 해석이 가미되는 식이다. 점성-심리학은 빠르게 배우면 2개월 정도면 완전 습득이 가능하다. 거짓말같이 들리겠지만 기호와 용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짧게는 3주면 마스터가 가능하다. 고전 전통적 애스트롤로지에는 ‘제대로 배운다’, ‘그렇지 않다’는 개념이 있으나 점성-심리학에는 ‘제대로 배운다’, 혹은 ‘바르게 습득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기초 이론들을 습득한 후 경험과 생각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이론을 삽입하고 좀더 치밀한 상담 기법을 익히는 데에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새롭고 활기찬 이론 생성에서 심리 애스트롤로지는 자신들 나름의 강점을 찾기도 한다. 점성-심리학을 공부한 어떤 이들은 타인이 점성-심리학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고 자신이 배운 이론과 틀리다고 해서 잘못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점성-심리학 분야에서는 그런 논의가 불가능하다. 점성-심리학에는 어떤 이론이 옳다는 정해진 규칙Rule이 없기 때문이다. * 위 그림은 심리-점성학에서 사용하는 차트를 출력해 놓은 것이다. 무엇을 다스리는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검증되지 않은 소행성이나 가상의 포인트들을 되는 대로 갖다 붙여놓았다. 저런 것으로는 사람의 인생은 커녕, 차트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어떤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을 공부하거나 습득하기 전에, 먼저 그 분야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비판서적을 읽어야만, 후에 그 분야에 들어갔을 때 올바른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나 자신 나름의 기준 때문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미 오래 전에 점성-심리학과 관련 분야를 치밀하고 정통한 과정을 거쳐 공부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나의 글이 점성-심리학을 비판하는 쪽으로 많이 치우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나, 점성-심리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사람과 평화롭고 진실되게 사귀는 것을 나는 무엇보다 좋아하고, 진정으로 앨런 레오와 융을 큰great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점성-심리학이 학문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창의적인 마음으로 접근하기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와 반대 개념의 고전적 애스트롤로지가 기예만 중시하고 학문적 질이 심리에 비해 떨어진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고전적 애스트롤로지는 심리와의 차별을 따질 때 그 검증 가능한 현실성을 부각시키지만, 학적인 분야 역시 점성-심리학이 엄두도 내지 못할 학문적, 역사적인 엄청난 지식체계를 가지고 있다. (비록 점성-심리학자들이 이를 끌어다가 자신들의 이론적 배경을 설명할 때 이용하기는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나 윌리엄 릴리, 게드버리, 람세이, 쇠너, 알 카야트, 알 비루니, 존 디 등은 현대 점성-심리학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말도 꺼낸 적이 없다.) 그러한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대 바빌론과 프톨레마이오스, 윌리엄 릴리를 거쳐 올리비아 바클레이에 이르는 것과 같은 장구한 정통 애스트롤로지의 열매가 있는 것이다. 고전 애스트롤로지의 거성 중 한 분인 올리비아 바클레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Not many people believe we can predict, to the general public this is an amusing idea, a sort of parlor game. Indeed, many comtemporary 'astro-psychologists' in their heart do nor believe in either, because they have never learnt how to do it themselves.대충 번역하면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예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점성-심리학자들’은 예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떻게 예언을 할 수 있는지를 결코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원류 애스트롤로지인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Traditional Astrology의 많은 이론을 변질시킨 후, 베딕Vedic과 심리학의 종교적 이론들에 애스트롤로지의 용어들만 접목시켜 내놓은 점성-심리학은 사비안 심볼Sabian Symbol이라는 한 여자 영매(무당)가 자동필기술로 받아적은 노트에 근거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점성-심리학은 어떤 사람의 삶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혹은 낮은지를 맞추지 못하며, 사인 중심의 해석으로 그것을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동양의 추명학(사주명리, 기문둔갑, 자미두수, 육임 등)들이 크게 2시간으로 나누어 개인의 운을 살피는 것과 달리 4분 간격(차트에서 1도)으로 운의 차이를 잡아낸다며 애스트롤로지의 우수함을 자랑하는 일부 점성-심리학자들의 그럴듯한 우월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점성-심리학자는 없다. 심리 점성학에는 세부적인 기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는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와 현대 점성-심리학의 차이를 나열한 것이다.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지Traditional Astrology l 현대 점성-심리학Psychic-Astrology구조가 복잡하다. l 구조가 단순하다.윌리엄 릴리는 고전적 애스트롤로지의 아버지이다. l 앨런 레오와 마크 존스, 데인 러디아르, 융 등을 중요한 사람으로 본다.기본적인 천문학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다. l 기본적인 신비주의(신지학, 마법, 요가, 타로 등)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다.엘리자베스 시대와 르네상스 전후가 전성기이고 20세기를 재부흥의 전초기로 본다. l 앨런 레오, 마크 존스의 생애와 일치하는 20세기 초반부터 최근까지를 전성기로 본다.대게 몇 살까지 살 지가 나온다. l 수명 자체에 무지하다.프톨레마이오스를 중요한 주창자로 본다. l 애스트롤로지의 주창자를 프톨레마이오스로 보나 그는 점성-심리학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솔이 있는 사인(태양궁이라 불리는)은 의미가 없다. l 솔이 있는 사인이 가장 중요하다.마르스는 물의 별이다. l 마르스는 불의 별이다.아쿠아는 인간적이다. l 어퀘어리스(아쿠아)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다.캐프리콘은 야망과 관계없다. l 캐프리콘은 야망을 다스린다.새지태리는 룰rule을 중시한다. l 새지태리는 자유롭다.버고는 폭력적이다. l 버고는 깔끔하고 똑똑하다.리브라는 타인을 경멸한다. l 리브라는 균형 잡힌 사고를 중시한다.스콜피오는 성욕과 거리가 멀다. l 스콜피오는 성욕의 자리이다.10번째 하우스는 고용주를 다스린다. l 6번째 하우스는 고용주도 다스린다.10번째 하우스는 직업을 다스린다. l 10번째 하우스는 사회적 성취도를 다스린다.9번째 하우스는 꿈과 소망을 다스린다. l 11번째 하우스가 주로 꿈과 소망을 다스린다.1번째 하우스가 질병도 다스린다. l 1번째 하우스는 외모와 개성을 다스린다.에리즈는 영리하다. l 에리즈는 무모하다.토러스는 끈기로 대표되며 금전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l 토러스는 금전욕을 다스린다. 캔서는 변덕스럽다. l 캔서는 가정애가 강하다.리오는 봉사하는 사람이다. l 리오는 지배하는 사람이다.실용성을 중시한다. l 탐구적 자세를 중시한다.3번째 하우스는 종교를 다스린다. l 3번째 하우스는 교육을 다스린다.4번째 하우스는 아버지를 다스린다. l 4번째 하우스는 부모(특히 어머니)를 다스린다.5번째 하우스는 교육을 다스린다. l 5번째 하우스는 연애를 다스린다.6번째 하우스는 고용인을 다스린다. l 6번째 하우스는 직업을 다스린다.7번째 하우스는 연애와 결혼을 다스린다. l 7번째 하우스는 배우자만 다스린다.8번째 하우스는 죽음을 다스린다. l 8번째 하우스는 오컬트(신비철학)까지 다스린다.9번째 하우스는 전통적 종교를 다스린다. l 9번째 하우스는 종교를 다스린다.하우스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l 사인을 중심으로 해석한다.디그니티 테이블에 의해 플래닛의 강약을 찾는다. l 애스펙트에 의해 플래닛의 강약을 결정한다.주로 메이저 애스펙트에 비중을 맞춘다. l 마이너 애스펙트도 메이저와 비슷한 비중을 갖는다.컴퓨터에 의존하는 디렉션 계산없이 차트 만으로 운을 읽을 수 있다. l 컴퓨터가 해주는 디렉션 계산없이 운의 흐름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한 장의 차트를 놓고 100명의 사람이 모두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l 한 장의 차트를 두고 100명의 사람이 한결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객관적이다. 같은 이론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l 주관적이다. 같은 이론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독학이 불가능하다. l 스승이 필요치 않다.이러한 플래닛(행성)들의 배치가 언제 생기므로 이런 일이 생기게 된다고 말한다. l 이러한 플래닛들의 배치가 언제 생기므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고 말한다.인간의 한계로서 알 수 없는 일은 신의 영역으로 둔다. l 인간의 한계로서 알 수 없는 일은 좀더 연구해보자고 한다. 인간이 곧 신이므로.주로 하우스House 중심의 차트를 이용한다. l 주로 사인Zodiac 중심의 차트를 이용한다.차트 차트 작성, LMT계산, 하우스 커스프 계산 등의 보조적 문제보다는 차트 자체를 해석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인다. l 차트 자체의 해석보다 차트 작성이나 부가 지식(하우스 시스템의 종류, 애스트롤로지의 역사, 타로와 룬의 사용법, 상담기법 등)을 습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차트를 읽는 정해진 규칙과 기준이 뚜렷하다. l 차트를 읽는 정해진 규칙과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애스트롤로지에 대한 믿음이 아닌 검증을 요구한다. l 검증보다는 애스트롤로지에 대한 신뢰를 우선 요구한다. (비록 점성-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말은 그렇지 하지 않더라도)만들어지는 새로운 이론이 없다. l 계속해서 새로운 이론들이 추가된다.운의 흐름을 8가지 이상의 방식(쿼터, 파트, 트리플리시티, 피르다리아, 다사, 두 디렉션, 트랜짓, 프로펙션, 리볼루션, 다이어널 등)으로 본다. l 운의 흐름을 4가지 방식(두 디렉션과 트랜짓, 리볼루션)으로 본다.플래닛, 하우스, 사인의 순서로 중요하다. 각 하우스가 가진 구체적인 의미에 집중한다. ; 사인, 애스펙트, 플래닛의 순서로 중요하다. 각 하우스가 가진 구체적인 의미에는 신경쓰지 않는다.8가지 운의 흐름(디렉션)을 보는 기법으로 인생의 흐름을 철저히 해부해낸다. l 운의 흐름을 보지 못한다. 기초 수준의 프로그래션만 파고 든다.오래 되었을 때 족집게나 영험한 애스트롤로저라는 말을 듣는다. l 오래 되었을 때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애스트롤로지만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l 타로나 룬, 주역이나 수정, 마법주술과 같은 부가적인 것의 도움이 필요하다.심오하다. l 심오한 척 하지만 심오하지 않다.자신이 정통 고전적 애스트롤로저Traditional/Classical-Astrologer임을 강조한다. l 이름 뒤에 점성-심리학자psychic-astrologer라는 말을 붙인다.각 도수의 뜻을 디그리 테이블에 의해 찾는다. l 각 도수의 뜻을 영매(무당)에서 기인한 사비안 심볼에 의해 해석한다.각 하우스의 뜻이 고정되어 있다. l 각 하우스의 뜻이 유동적이고 시기와 저자마다 이야기하는 바가 다르다.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다. l 100년 남짓의 역사를 갖는다. 점성-심리학은 고전적 애스트롤로지에서 나온 가지branch가 아닌 전혀 새로운 학설이다.역사적으로 수 많은 문헌이 존재한다. l 책들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주로 상업적 목적을 위한 싸구려 인스턴트 별점으로 구성되어 있다.우리나라에서 현직 역학계에서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인정한다. l 젊은이들 특히 10대와 20대 사이에서만 유행한다. 공부 양이 많다. l 쉽게 습득된다.‘직업이 회계사나 공인중개사이다, 우울증이나 분열증이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결과가 나온다. l ‘이상을 실현하려고 왕관을 쓴 채 현실의 무대에 들어온 용사이다’라는 식으로 규정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말한다.고전적 애스트롤로지는 그 자체가 뿌리이고 가지이고 열매이다. l 점성-심리학은 베딕Vedic 애스트롤로지와 영매, 종교, 심리학의 여러 이론들이 복합적으로 조합되어 만들어졌다.새턴 외부 플래닛(행성)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l 새턴 외부 플래닛들과 소행성들에 많은 비중을 둔다.현실적인 일들(질병, 직업, 기질, 성격, 재물, 가정, 배우자, 죽음, 부동산, 유산, 명예의 고저 등)을 조망한다. l 운 좋으면 가끔 맞는다.운명fate을 말하는 점fortune-telling이다. l 마음자세를 말하는 상담counselling이다.신체나 정신의 장애를 구체적으로 잡아낸다. l 신체나 정신의 장애를 잡아낼 수 없다.픽스트 스타를 사용한다. l 픽스트 스타에 대해 전혀 모른다.술Art의 기예를 갖춘 학Study이다. l 학Study이기를 바란다.차트를 통해 정해진 운명을 판단한다.l 차트는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뿐 정해진 운명이 있어서 반드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보지 않는다.현실적인 검증을 필요로 하는 논리적 사고를 중요시한다. l 현실적 검증보다는 다양하고 새로운 창의적 이론과 종교적, 심미적 이론에 관심을 둔다.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일어날지를 분명히 예언 한다. l 예언이란 용어를 낯설어 한다. 미래는커녕 현재도 보지 못한다
     
    오른쪽은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의 차트이다.점성-심리학에서 각 사인의 키워드keyword는 다음과 같다. 양(에리즈)은 충동적, 황소(토러스)
    는 물질주의, 쌍둥이(제미니)는 지식추구, 게(캔서)는 양육, 사자(리오)는 전제적, 처녀(버고)는 결벽, 천칭(리브라)은 타협, 전갈(스콜피오)은 미스틱mystic, 사수(새지태리)는 이상향, 염소(캐프리콘)는 현실적, 물병(아쿠아)은 혁명적, 물고기(피시즈)는 몽유적이다. 빌 클린턴의 네이티비티는 1946년 8월 19일 월요일 오전8시 51분 +6:00이다. 출생지는 Hope, Arkansas이다.
     
    클린턴은 충동적인 행동으로 스캔들이 났고 대통령을 바란 것에서 이상적이고 물질주의와 현실주의적임을 보여준다. 지식과 양육이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고 전제적이고 타협적인 성향은 대통령 시절 잘 드러났다. 정치인 치고 점 한 번 안 본 사람은 없으니 그는 미스틱하다. 이렇듯 점성-심리학에서 구별해놓은 사인별 특징은 바넘효과를 노린 것에 불과하다. 조금만 냉정하게 점성-심리학 관련 서적을 뒤져보면 각 사인별로 쓰인 특징들 중 절반 이상이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애스트롤로지는 검증 가능한 실천 학문이다. 어떤 학문이 운명술이란 이름으로 알려지려면 먼저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몽환적인 영의 세계나 들먹이며 종교적 이론으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통 점성술은 현실만 따지고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원래 애스트롤로지는 신을 섬기는 성직자들(신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인간을 향한 신의 의지를 점쳤다. 그들은 전생을 보고 후생을 살피며 현생의 목적지와 영원의 방향을 별들에 의해 판단했다.어찌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고전적 애스트롤로지의 영의 세계에 대한 고차원적 지식 체계에 100년 밖에 안 된 싸구려 심리 점성학이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겠는가. 고전적 애스트롤로지가 현실에 집중하는 것은 우선 현실적 문제를 해결한 후 영의 세계에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 상식적 의도에서 그렇다. 이 기예art가 현대 심리 점성학이 급조해 만든 싸구려 영적, 정신적 기예와 비교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카르마, 번영의 법칙, 철학자의 돌, 마음의 연금술, 에소테릭 애스트롤로지 등 고대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인도와 그리스, 로마와 유럽을 거쳐 완성된 정통 애스트롤로지의 영적 진보를 위한 기예는 가히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자,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검증되지 않은 급조된 싸구려 이론으로 무장한 채 그럴듯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애스트롤로지라는 이름만 붙은 종교철학인 심리 점성학에 발을 들여 놓겠는가 ?아니면, 현실과 영성 모두를 검증된 기예art로 다루는 정통 애스트롤로지와 함께 하겠는가? 그대, 진정한 영혼의 의사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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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astrologiae.com/

     
     
     
     
     
     
    점성학 기초 15日 완성
     
     
    먼저 점성학에 관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운명이라든지 숙명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특히나 요즈음은 운명의 상대..소울 메이트라든지 등등의 개념도 유행할 정도로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방면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운명이란 고정 불변으로 정해져 있다고 보는 숙명론과.. 인간은 스스로가 미래를 만들어 간다고 보는 자유의지론과.. 큰 흐름은 정해져 있고 세부의 선택은 자유롭다는 절충론이 있겠네요..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앞서서 먼저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자아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숙명에 대한 것이 그것이랍니다.. 영혼이 고정불변한다고 보신다면 숙명론으로 사유가 발전해 갈 가능성이 높답니다..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찰라의 조건에 의한 명멸이라고 보신다면 자유의지로 생각되어 지구요.. 근본적인 영혼이 변화하여 살아간다고 보면 절충론이 되는 것이구요.. 이렇게 자신의 영혼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하시는 편이 운명에 대해 일관성있게 사유를 하실 수 있으실 것이라 여긴답니다.. 다음으로는 전에 소개해 드렸던 오컬트 게이트(신비문)[클릭]을 방문하셔서 초능력 비술중에 힘의 발원지, 염력, 황홀경을 보세요.. 이에 대한 개념을 어느정도 머릿속에 이해를 해 놓으시면 마법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시기도 좋답니다.. 대강을 영화 촬영에 비유해서 정리하면... 먼저 코잘계(인과계=카르마계)에서 기획을 합니다. 이는 영화의 종류를 정하는 것입니다.. 공포영화를 제작할 것인지 로멘스영화를 제작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인생으로는 한사람의 일생이 부富를 위주로 갈 것인지 귀貴를 위주로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지요.. 부를 위주로 간다고 돈을 많이 번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돈과 관련된 주제로써 삶의 방향이 정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는 멘탈계로 코잘계에서 결정된 방향을 고려해서 시놉시스에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부분까지 입니다. 코잘계에서 결정된 방향과 일치하는 한은 자유롭게 써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이 것은 수數로써 표현되는 법칙성이나 이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모양을 갖추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이렇게 제작된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각색과 슈팅에 들어 갑니다.. 이 역시도 시나리오에서 허용하는 한도내에서는 어느정도의 변경이 가능합니다. 또한 인생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씬은 모두 제작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순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촬영해야 하는 것은 같은때에 제작 합니다. 이 것은 상象으로써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스크라이나 타로카드로 읽을 수 있는 운명은 바로 여기에 속하는 모습들이라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에텔계에서는 편집을 합니다. 매 순간마다 가장 강력하게 충전된 아스트랄계의 상들이 에텔체의 편집을 통해 현실이 됩니다. 강하게 충전되었다는 것은 일단 현재까지의 삶과의 일관성있는 흐름이 유관합니다. 마음을 바꾸었다해서 금방 삶이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랍니다. 일단 자신의 쿤다리니를 강하게 충전해서 삶을 지배할 것을 권합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답니다.. 쿤다리니를 에너지로 보는 관점과 이를 의지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어느 관점이든 업의 초극에는 이러한 부분이 강력하게 관련됩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바른 정보가 없다면 업의 초극에 있어서 많이 고생(?)히게 됩니다.. 업의 초극이란 인과율의 변화라는 마법의 요소와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점성학의 지식이란 상당히 중요한 것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점성학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또하나의 의미를 말씀드립니다.. 옛날 얘기에 솜 만드는 집안에서 겨울에 손이 안트는 비방을 배워 구사용으로 개발해 벼슬에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래 솜만들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있답니다.. 모든 지식은 그와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 가에 따라서 얻는 바가 달라진다는 것이랍니다. 점성학은 별들의 언어랍니다.. 앞으로 제 강좌에서 배우시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시는 것이랍니다.. 이는 모든 종류의 상수학에 적용되는 것이랍니다.. 똑같은 시간 외국어를 배워도 어떤 분은 금방 유창하게 언어구사를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참으로 오랜기간 시간을 투자해야 간단한 회화가 가능하신 분이 계신답니다.. 상수학도 동일합니다.. 중요단어와 문법과 예문을 알려 드리는 것이 강좌에서 할 수 있는 전부랍니다.. 아뭏튼 이렇게 별들의 언어를 습득하시면.. 여러분은 우주를 구성하는 존재들의 대화에 참여할 자격이 생깁니다. 이세상 어디선가 나와 동일한 주제로 고민하는 어떤이가 영적인 감각으로 우주와 대화하는 장소에.. 여러분은 별들의 언어로 참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미래를 예지할때.. 미래를 스크라이 하려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절대로 시간속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고 여기고는.. 자신이 태어난 시점의 하늘의 별들의 구조를 중심으로.. 미래의 어느때인가 의미가 부여되는 별의 구조가 있는 시간을 계산하여 그 시기를 스크라이 한 것이라 합니다.. 즉..전쟁을 의미하는 화성이 자신의 출생 천궁도의 어떠한 별들과 특정한 좌상을 이루어.. 관찰자인 자신과 어떠한 의미를 구성하는 시기를 예진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자신에게 그러한 미래가 보여질 수 있는 것이구요.. 바로 그렇기에 궁합에 대한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궁합의 경우 상대방의 출생 천궁도가 자신의 출생 천궁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를 보는 것이지만.. 동일한 법칙을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적용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결정하는 우주의 구조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무튼 그외의 사항들은 진도나가면서 차차로 언급하겠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출처 : http://www.masickworld.com/
     
     
     
     
    자..오늘은 두가지만 외우도록 해요.황도 12궁의 이름과 음성궁과 양성궁의 2대극성을 외우시는 것이 오늘의 과제입니다.그리고 이를 양좌, 황소좌..이렇게 외우시지 마시구요.. 될 수 있으면 영어로 외우시는 것이 후에 원문으로 공부하실때 도움이 되실 꺼예요.. 양 - Aries - 백양궁 - 양좌 음 - Taurus - 금우궁 - 황소좌 양 - Gemini - 쌍자궁 - 쌍둥이좌 음 - Cancer - 거해궁 - 게좌 양 - Leo - 사자궁 - 사자좌 음 - Virgo - 처녀궁 - 처녀좌 양 - Libra - 천평궁 - 천칭좌 음 - Scorpio - 천갈궁 - 전갈좌 양 - Sagittarius - 인마궁 - 사수좌 음 - Capricorn - 마갈궁 - 염소좌 양 - Aquarius - 수병궁 - 물병좌 음 - Pisces - 쌍어궁 - 물고기좌 오늘은 여기까지 랍니다..^m^ 하루에 이정도 분량씩만 암기하시면 15일정도 후에는 별들의 언어를 판독하실 수 있으실 꺼예요.. 늘 행복하세요.. [마법정보] 점성학 기초 15일 완성 02일 어제 외우시라구 말씀 드린 것은 모두 암기 하셨나요..^^? 이게 밀리면 나중에 공부가 안되거든요.. 오늘은 일단 다음의 사인들을 외우시는 것을 하셔야 한답니다.. 위의 그림들을 세로로 읽으시면.. 각각 cardiral(활동궁), fixed(고정궁), mutable(변통궁)이 됩니다... 이 역시도 될 수 있으면 원문으로 외워 두세요.. 그러므로, 어제 암기하신 곳에 대입하여 보면... 양 - Aries - 백양궁 - 양좌 - cardiral - 활동 음 - Taurus - 금우궁 - 황소좌 -fixed - 고정 양 - Gemini - 쌍자궁 - 쌍둥이좌 - mutable - 변통 음 - Cancer - 거해궁 - 게좌 - cardiral - 활동 양 - Leo - 사자궁 - 사자좌 - fixed - 고정 음 - Virgo - 처녀궁 - 처녀좌 - mutable - 변통 양 - Libra - 천평궁 - 천칭좌 - cardiral - 활동 음 - Scorpio - 천갈궁 - 전갈좌 - fixed - 고정 양 - Sagittarius - 인마궁 - 사수좌 - mutable - 변통 음 - Capricorn - 마갈궁 - 염소좌 - cardiral - 활동 양 - Aquarius - 수병궁 - 물병좌 - fixed - 고정 음 - Pisces - 쌍어궁 - 물고기좌 - mutable - 변통 황도 12궁은 동양에 있어서 12지지에 해당합니다.. 동양의 상수학에서 12지지의 삼합이론은 상당히 중요하지요.. ==================== 생生-왕旺-묘墓 : 三合 ==================== 해水-묘木-미土 : 木局 인木-오火-술土 : 火局 사火-유金-축土 : 金局 신金-자水-진土 : 水局 ========================== 활동궁-고정궁-변통궁 : 四大 ========================== 백양궁-사자궁-인마궁 : Fire 거해궁-천갈궁-쌍어궁 : Water 천평궁-수병궁-쌍자궁 : Air 마갈궁-금우궁-처녀궁 : Earth 위의 두가지 도표의 공통점이 보이시죠..^^? 활동궁이란 동양상수학의 생지와 같고.. 고정궁이란 동양상수학의 왕지와 같으며.. 변통궁이란 동양상수학의 묘지 또는 고지庫支와 같습니다.. 생지란 탄생을 의미하듯이 활동궁이란 새롭게 기운이 일어나서 나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왕지란 왕성한 기운으로 성장기를 말하며.. 삼합에서는 왕지에 해당하는 오행이 국을 형성합니다.. 그렇기에 고정궁이란 구심적인 기운이며 자신의 형상을 고정시키려 하는 기운입니다.. 마지막으로 묘지는 죽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죽음에는 몇가지 단계적인 흐름이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죽음-머무름-변화됨-재생함 이중에서 죽음과 머무름(저장)에 중점을 둔것이 동양의 묘지와 고지입니다.. 변화와 재생에 중점을 둔것이 서양의 변통궁이구요.. 대강 이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고요.. 생왕묘지는 각각 충을 하는데..이는 점성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충궁을 이룹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좌상을 할때 보충하지요.. 그럼 오늘의 암기사항 잊지 말구 외워 두세요... -그럼 늘 행복하세요...- 출처 : http://www.masi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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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27 조회 1115
  • 자본론18
    공장 법의 조항을 반대하는 영국 표백업자들의 항의에서 바로 이 플라톤적 관념을 보게 된다. 그들은 사업을 노동자들의 편의에 맞출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천의 보풀태우기 .세척. 표백. 다림질. 윤내기. 염색 등 각종 작업 중 그 어느 하나도 손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일정한 순간에 중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전체 노동자에게 동일한 식사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때로는 미완성 작업으로 말미암아 귀중한 상품을 손상시킬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 플라톤주의는 다음에 어디에서 발견될 것인가!) [그의 특징적인 부르주아적 본능 때문에 이미 작업장 안의 분업에 더욱 접근하고 있는] 크세노폰(Xenophon)(주석 58: 크세노폰(Xenophon)은 페르시아왕의 식탁으로부터 음식물을 받는 것은 영광일 뿐 아니라, 그 음식은 다른 음식보다 더 맛이 있다고 말한다 " 그리고 이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도시에서는 다른 모든 기술이 특별히 발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왕의 음식도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되기 때문이다. 소도시에서는 동일한 사람이 침대. 문짝. 쟁기. 책상을 만든다. 또 그는 가끔 집도 지어서 판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고객만 있으면 만족한다. 그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많은 구매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수공업으로 충분하다. 심지어 하나의 수공업 전체도 필요 없고 어떤 사람은 남자용 구두만을 만들고 다른 사람은 여자용 구두만을 만든다. 가끔 어떤 사람은 구두를 꿰매는 일만으로 살아가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재단하는 일만으로 살아간다. 또 어떤 사람은 천을 재단하는 일만을 하고 다른 사람은 천조각을 꿰매는 일만을 한다. 가장 단순한 한 가지 일만을 하는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요리술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다"(크세노폰, ?시로페디아?, Vlll, 제2장). 크세노폰은 분업의 정도가 시장의 크기에 의존한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오로지 사용가치의 질적 향상(質的 向上)을 강조하고 있다.)도 채택하고 있다. 플라톤의 ?공화국(共和國)?이 분업을 국가의 형성원리로 간주하고 있는 한, 이집트의 신분제도의 아테네인적 이상화(理想化)에 지나지 않았다. 이집트는 플라톤과 동시대인인 다른 저술가들[예: 이소크라테스(Isocrates)(주석 59: "그"(부시리스)"는 모든 사람을 각각 특수한 신분으로 나누어....동일한 사람은 항상 동일한 직업에 종사할 것을 명령했다. 왜냐하면, 자기의 직업을 변경하는 사람은 어떤 직업에도 숙달하지 못하지만, 항상 동일한 직업에만 종사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기술과 수공업에 관해서는, 이집트 사람들은 거장(巨匠)이 서투른 사람을 능가하는 정도 이상으로 그들의 경쟁자들을 능가했으며, 또한 군주제나 기타 국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 낸 제도는 너무나 훌륭해, 이 문제를 취급한 유명한 철학자들이 이집트의 국가제도를 다른 어느 나라의 것보다 찬양했다"(이소크라테스, ?부시리스?, 제8장).])에게 산업상의 모범국으로 간주되었으며, 로마제국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도 그러했다.(주석 60: 시쿨루스(Diodorus Siculus), ?역사문고?, 제1부.)
    진정한 매뉴팩쳐시대[즉, 매뉴팩쳐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지배적인 형태인 시대]에는 매뉴팩쳐 특유의 경향들의 완전한 발전은 여러가지 장애에 부닥친다. 비록 매뉴팩쳐는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자들을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로 간단히 구분해 그들을 등급구조(等級構造)에 잡아넣지만, 숙련노동자의 압도적인 우세로 말미암아 미숙련노동자의 수는 여전히 매우 제한되어 있다. 비록 매뉴팩쳐는 여러 가지 부분작업들을 살아 있는 노동도구들{노동자들}의 성숙. 힘. 발전의 다양한 정도에 적응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부녀자와 아동에 대한 착취의 길을 개척하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은 관습과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대체로 좌절된다. 비록 수공업의 분할(分割)은 노동자의 육성비를 저하시키며 따라서 그의 가치를 저하시키지만, 비교적 어려운 부분노동은 여전히 긴 수련기간을 필요로 하며, 또 그것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그것을 열렬히 고집한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7년간의 수련기간을 규정한 도제법(徒弟法)이 매뉴팩쳐시대의 말기까지 완전한 효력을 유지했으며, 그것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대공업의 출현 이후였다. 수공업적 숙련은 여전히 매뉴팩쳐의 토대며, 매뉴팩쳐의 메커니즘 전체가 [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독립된] 그 어떤 객관적 골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불복종행위(不服從行爲:insubordination)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어(Ur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성이 가지고 있는 결함 때문에, 노동자는 숙련되면 될수록 한층 더 제멋대로 되고 다루 기 어렵게 되며, 그리고 당연히 기계적 체계의 부품으로 잘 맞지 않게 된다....그는 전체 메커니 즘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주석 61: 유어, ?공장철학“, p. 20.)

    그러므로 매뉴팩쳐시대 전체를 통해 노동자의 규율부족(規律不足)에 대한 불평이 그치지 않는다. (주석 62: 이것은 프랑스보다는 영국에, 그리고 네덜란드보다는 프랑스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비록 이 불평에 관한 당시의 저술가들의 증언이 없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간단한 두 가지 사실은 수많은 책 이상으로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한 가지 사실은, 16세기부터 대공업시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은 매뉴팩쳐 노동자들의 이용가능한 노동시간 전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매뉴팩쳐는 노동자들의 이동(移動)에 따라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그 소재지를 바꿈으로써 수명이 짧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서든 질서(秩序)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리가 자주 인용했던]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의 저자는 1770년에 호소했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뒤 유어는, '질서'는 '분업의 스콜라적 도그마'에 입각한 매뉴팩쳐에서는 결여되고 있었으나, 이제 "아크라이트(Arkwright)가 질서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매뉴팩쳐는 사회의 생산 전체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없었고 사회의 생산을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도 없었다. 매뉴팩처는 도시의 수공업과 농촌의 가내공업이라는 광범한 기반 위에 우뚝 선 인위적인 경제조직이었다. 매뉴팩처가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매뉴팩쳐 자신의 협소한
    기술적 토대는 매뉴팩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상의 여러 가지 필요{예: 대량생산}와 모순되게 되었다.
    매뉴팩쳐의 가장 완전한 성과 중의 하나는 노동도구 그 자체[특히 이미 사용하고 있던 복잡한 기계적 장치]를 생산하는 작업장이었다. 유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계공장은 수많은 단계의 분업을 보여주었다. 절단기. 착공기. 선반은 각각 숙련등급(熟練等 級)에 따라 편성된 노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

    매뉴팩쳐적 분업의 성과인 이 작업장은 이번에는 기계를 생산했다. 기계는 수공업적 노동자가 사회적 생산의 규제원리로 역할하는 것을 철폐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일정한 부분적 기능에 일생 동안 얽매어 두는 기술적 이유가 사라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의 규제원리가] 자본의 지배에 가한 장애물들도 소멸되어 버린다. {노동이 자본에 형식적으로 포섭되었던 것이 이제 실질적으로 포섭된다}.

    [역자약력]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석사
    런던대학교 경제학 석사. 박사
    한신대학교 부교수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저서]
    “마르크스. 슘페터. 케인즈?(중앙신서, 1904)
    “경제변동론? (비봉출판사, 1986)
    “정치경제학원론? (한길사, 1988)
    “자본론 연구I" (한길사, 1988)
    “정치경제학 에세이?(새날, 1991)
    “정치경제학 특강“ (새날, 1993)
    “21세기 정치경제학”(새날, 1998)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서울대출판부, 2001)

    [역서]
    “국부론? (동아출판사. 1992)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동아출판사, 1993)
    “금융자본? (새날, 1994)



    자 본 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I권 자본의 생산과정 (상)

    1989년 3월 10일 초 판 발행
    1991년 11월 5일 개역판 발행
    2001년 11월 15일 제2개역판 발행
    2003년 6월 30일 제2개역판 3쇄발행
    역 자 김수행
    발행자 박기봉
    발행처 비봉출판사 / 마포구 합정동 419-13 합정하이빌 102호
    전 화 3142-6551~5 / Fax 3142-6556
    E-mail beebooks@hitel..net / bbongbooks@hanmail..net
    등록번호 2-301 (1980. 5. 23)
    ISBN 89 - 376- 0017 - x 13320
    89 - 376 - 0015 - 3 (전5권)
    정가 20,000원…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885
  • 자본론17
    이 첫째 단계에서 각종 부분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는데, 그것은 마지막 단계[즉, 건조로에서 유리병을 끄집어내고, 그들을 품종별로 분류하고, 포장하는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두 단계의 중간에 진정한 유리병제조, 즉 유동상태의 유리액의 조작단계가 있다. 유리로(爐)의 아궁이마다 한 집단의 노동자('구멍'이라고 부른다)가 작업을 하는데, 이들은 1명의 병제조공 또는 마무리공과 1명의 취공(吹工: blower), 1명의 모음공, 1명의 쌓음공 또는 닦음공과 1명의 운반공으로 이루어진다. 이 5명의 부분노동자들은 단일노동유기체의 다섯 개의 특수한 기관이며, 이 노동유기체는 하나의 통일체(統一體)로서만, 따라서 오직 다섯 사람의 직접적 협업(協業)에 의해서만 활동할 수 있다. 이 노동유기체는 그 다섯 개의 기관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의 유리 로(爐)에는 몇 개의 아궁이(영국에서는 4개 내지 6개가 있는데, 그 각각의 아궁이마다 액체상태의 유리가 들어 있는 내화(耐火)도 가니가 묻혀 있고, 각 아궁이마다 5명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집단이 일하고 있다. 이때 각 집단의 편성은 분업(分業)에 의거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협업(單純協業)으로서 생산수단의 하나인 유리로를 공동사용에 의해 더 경제적으로 이음하고 있다. 이와같은 유리로 하나와 그에 부속되어 있는 4-6개의 노동자 집단이 하나의 유리 제조장을 구성하는데, 유리 매뉴팩쳐는 몇 개의 이러한 제조장과 준비단계 및 마지막 단계를 위한 설비와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다.
    끝으로, 매뉴팩쳐가 일부는 각종 수공업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매뉴팩쳐의 결합으로 발전해 가기도 한다. 예컨대 영국의 대규모 유리공장들은 내화도가니를 자체에서 제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도가니의 품질 여하에 파라 생산과정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매뉴팩쳐가 생산물을 생산하는 매뉴팩처와 결합되어 있다. 다른 한편, 생산물을 생산하는 매뉴팩쳐는 그 생산물 자체를 다시 원료로 쓰는 다른 매뉴팩쳐 또는 그 생산물을 자기의 생산물과 혼합시키는 다른 매뉴팩쳐와 결합할 수도 있다. 예컨대 납유리 매뉴팩쳐는 유리 가공 매뉴팩쳐 및 황동주조(黃銅鑄造) 매뉴팩쳐와 결합하는 일이 있는데, 황동은 여러 가지 유리제품의 금속장식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결합된 각종 매뉴팩처는 하나의 전체 매뉴팩쳐의 다소 분리된 부문들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은 자기 고유의 분업을 가진 독립된 생산과정이다. 매뉴팩쳐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결합은 그 자체의 토
    대 위에서는 완벽한 기술적 통일성을 달성할 수 없다. 이 통일성은 매뉴팩쳐가 기계에 의한 생산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발생한다.
    매뉴팩쳐 시대의 초기에,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원칙(주석 16: 이것은 특히 페티, 벨러즈(John Bellers), 야런튼(Andrew Yarranton), ?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의 익명의 저자, 그리고 반더린트로부터 볼 수 있다.)이 의식적으로 공식화되고 표명되었다. 그리고 기계의 사용도, 특히 거대한 힘이 요구되며 대규모로 수행해야 하는 단순한 초보과정을 위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예컨대 초기의 제지 매뉴팩쳐에서는 넝마의 분쇄(粉碎: tearing-up)가 제지용 분쇄기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야금업에서는 광석을 분쇄하는 일이 쇄광기(碎鑛機: stamping-mill]에 의해 수행되었다.(주석 17: 16세기 말 무렵에도 아직 프랑스에서는 광석을 분쇄하며 세광하는 데 절구와 체가 사용되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물레방아의 형태로 모든 기계의 초보적인 형태를 물려주었다.(주석 18: 기계발전의 전체 역사는 제분기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공장을 mill[물방앗간]이라고 부른다. 1810년대의 독일의 기술서적들을 보면 muhle(水車)라는 용어가 자연력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기계에 대해서 뿐 아니라 기계적 장치를 사용하는 모든 공장에 대해서까지 사용되고 있다.) 수공업 시대는 나침반. 화약. 인쇄술. 자동식 시계와 같은 위대한 발명을 남겼다. 그러나 대체로 기계는 분업과 대비할 때 부차적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애덤 스미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주석 19: 이 책의 제4권{잉여가치학설사}에서 자세한 내용을 보게 되겠지만,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관해 단 하나의 새로운 명제(命題)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매뉴팩쳐 시대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특징짓는 것은 그가 분업을 특히 강조한 점 때문이다. 그가 기계에 부여한 종속적 역할은 대공업의 초기에는 로더데일(Lauderdale)의 반박을, 그리고 더 나중의 시기에는 유어(Ure)의 반박을 불러일으켰다. 애덤 스미스는 또한 도구(道具)의 분화[이것에는 매뉴팩쳐의 부분노동자들 자신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를 기계(機械)의 발명과 혼동하고 있다. 기계의 발명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학자, 장인(master) 심지어는 농민들(예: Brindley)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7세기에 간헐적으로 나타난 기계의 사용이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 것은, 그것이 그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들에게 근대적 역학(力學)의 창조를 위한 실질적인 토대와 자극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매뉴팩쳐 시대 특유의 기계는 바로 수많은 부분노동자(部分勞動者)들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적 노동자(集團的 勞動者) 자신이다. {매뉴팩쳐 이전에는} 노동과정에서 한 상품의 생산자가 차례차례로 수행하는 각종 작업들은 그 생산자에게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한 작업에서는 더 많은 힘을, 다른 작업에서는 더 많은 주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러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갖추지는 못했다. {이제} 각종 작업이 분리되고 독립되고 고립된 뒤, 노동자들은 자기의 뛰어난 자질에 따라 구분되고 분류되고 편성된다. 만약 노동자들의 타고난 재능이 분업의 토대라고 한다면, 매뉴팩쳐는, 일단 도입된 뒤에는, 일면적이고 특수한 기능에만 적합한 새로운 능력(노동자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집단적 노동자는 이제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우수하게 구비하게 되며, 그리고 집단적 노동자는 자기의 모든 기관[개별 노동자나 노동자의 집단]을 오직 그 기관의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만 사용함으로써 그 자질을 가장 경제적으로 지출한다.(주석 20: "작업을 [각각 다른 정도의 숙련과 힘이 요구되는] 다수의 서로 다른 과정으로 분할함으로써, 매뉴팩쳐 경영자는 각각의 과정에 필요한 정확한 양의 힘과 숙련을 구입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작업 전체가 한 사람의 노동자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면, 노동자는 가장 섬세한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숙련과 가장 힘든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힘을 모두 가져야 할 것이다"(배비지, 앞의 책, 제19장).) 부분노동자의 일면성(一面性)과 불완전성(不完全性)조차도 그가 집단적 노동자의 한 기관일 때는 장점으로 된다.(주석 21: 예를 들면, 어떤 근육의 비정상적 발달이나 골격의 굴절 등.) 한 가지 일만을 수행하는 습관은 부분노동자를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기관으로 만들며, 그리고 전체 메커니즘과의 관련은 그로 하여금 기계의 일부와 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주석 22: "어떻게 젊은이들을 꾸준히 일하도록 할 수 있는가?"라는 한 조사위원회 위원의 질문에 대해, 유리 매뉴팩쳐의 총지배인인 마샬(W. Marshall)은 다음과 같이 매우 정확하게 답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일을 도저히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들은 일단 일을 시작하면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기계의 부분품과 똑같다"(?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1865년, p.247).)
    집단적 노동자가 수행하는 각종 기능에는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 저급(低級)의 것과 고급(高級)의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구성원인 개별노동력은 상이한 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각각 다른 가치(價値)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매뉴팩쳐는 동력의 등급제(等級制: hierarchy)를 발전시키며, 이것에 임금의 등급이 대응하게 된다. 개별 노동자는 한정된 기능에 일생동안 묶이고, 등급이 매겨진 각종 작업이 선천적. 후천적 능력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할당된다.(주석 23: 유어(Ure)는 대공업에 대한 찬양에서 매뉴팩쳐 특유의 성격을 이전의 경제학자들 [이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보다도, 또는 동시대의 학자들-예컨대 배비지[그는 수학자. 기계학자로는 유어를 능가하지만 대공업을 매뉴팩쳐의 관점에서만 고찰했다]-보다도 더 날카롭게 포 착하고 있다. 유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각의 특수작업에, 적절한 가치(價値)와 비용(費 用)의 노동자를 배치하는 것이 분업(分業)의 본질을 이룬다. " 다른 한편, 그는 이 분업을 '노 동을 상이한 개인적 능력에 적응시키는 것'이라고 묘사하며, 끝으로 전체 매뉴팩쳐 제도를 '분 업 또는 노동등급제'(勞動等級制)로, '숙련도의 차이에 따른 분업' 등으로 특징짓고 있다(유어, ?공장철학?, pp. 19-23의 여러 곳).) 그러나 어떤 생산과정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조작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러한 조작들도 이제는 [내용이 더 풍부한 활동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부터] 분리되어 특수한 개인의 배타적인 기능으로 굳어 버린다.
    이리하여 매뉴적쳐는 [그것이 장악하는 모든 업종에서]이른바 미숙련노동자(unskilled labourer)
    라는 하나의 부류[수공업은 그 성질상 이러한 부류를 엄격히 배제한다]를 만들어낸다. 매뉴팩쳐가 인간의 전반적인 노동능력의 희생 위에서 일면화된 전문성을 완벽한 경지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미숙련노동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발전(發展)의 결여(缺如)를 하나의 전문성(專門性)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등급제의 등급과 나란히 숙련공과 미숙런공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나타난다. 미숙련공의 경우 수련비(修練費)가 없어지고, 숙련공의 경우 그들의 기능이 단순하게 된 결과 수련비가 수공업노동자의 경우에 비해 줄어든다. 어느 경우에나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진다.(주석 24: "각 수공인(手工人)은....한 가지 일만을 되풀이함으로써 자기 일을 더 완벽하게 할 수 있게 되므로....더 값싼 노동자로 되었다"(유어, 같은 책, p. 19).) 물론 이 법칙의 예외는 [수공업적 경영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거나 동일한 정도로는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포괄적 기능들이 노동과정의 분할로 말미암아 생기는 경우다. [수련비의 소멸 또는 감소에 기인하는] 노동럭의 상대적(相對的)인 가치저하(價値低下)는 직접적으로 자본의 가치증식의 더 높은 정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재생산에 요구되는]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모든 것은 잉여노동의 영역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제 4 절 매뉴팩쳐 안의 분업과 사회 안의 분업



    우리는 첫째로 매뉴팩쳐의 기원을 고찰했고, 다음에는 그 단순한 요소들[즉, 부분노동자와 그의 도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전체 메커니즘을 고찰했다. 이제는 매뉴팩쳐 안의 분업과 [모든 상품생산의 토대를 형성하는] 사회 안의 분업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고찰하려 한다.
    만약 우리가 노동 그 자체만을 염두에 둔다면, 농업. 공업 등과 같은 주요부문(主要部門)들로의 생산의 분할을 일반적(general) 분업, 그리고 이들 생산부문의 종(種)이나 아종(亞種)으로의 분할을 특수한(particular) 분업, 그리고 하나의 작업장 안의 분업을 개별적(individual) 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주석 25: “분업에는 매우 다종다양한 직업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해서, 매뉴팩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하나의 생산물의 완성을 많은 노동자가 분담하는 것까지 있다"(슈토르히[Storch], ?정치경제학강의?, 파리판, 제1권, p. 173). "우리는 일정한 정도의 문명에 도달한 국민들 사이에서 세종류의 분업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 분업이라고 부르는 첫째 종류는 생산자가 농업생산자. 공업생산자. 상인으로 분할되는 것인데, 이것은 국민의 노동의 3개 주요부문에 대응한다. 특수한 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둘째 종류는 각 노동부문이 종(種:species)으로 분할되는 것이다....끝으로 제3의 분업은 작업의 분할 또는 진정한 분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개별 수공 업 또는 직업 안에서 일어나며....대다수의 매뉴팩쳐와 작업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스카 르베크[Skarbek], ?사회적 부의 이론”, pp. 84-85).)
    사회 안의 분업과 그에 대응해 개인이 특수한 직업에 속박되는 것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출발점으로부터 발전하는데, 후자의 출발점은 또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 가족(주석 26: {엥겔스: 인류의 원시상태에 관한 그 뒤의 매우 근본적인 연구에 의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즉, 본래 가족(家族)이 종족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종족(種族) 이 혈연관계에 입각한 인간집단의 본원적인 자연발생적 형태였으며, 그리하여 종족의 결속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이후에 비로소 여러 가지 가족형태가 발전했다.}) 안에서 그리고 더욱 발전해 한 종족 안에서 성과 연령의 차이로 말미암아[즉, 순전히 생리적인 토대 위에서] 자연발생적인 분업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분업은 공동체의 확대, 인구의 증가 그리고 특히 서로 다른 종족 사이의 충돌과 한 종족에 의한 다른 종족의 예속화(隸屬化)와 더불어 확대해 간다. 다른 한편으로, 앞에서{제2장 '교환과정'} 지적한 바와 같이, 생산물의 교환(交煥)은 서로 다른 가족들이나 종족들이나 공동체들이 상호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인류문명의 초기에는 독립된 단위로 상호관계를 맺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종족 등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공동체(共同體)들은 그 자연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 공동체들의 생산방식. 생활양식. 생산물(生産物)은 서로 다르다. 바로 이 자연발생적 차이 때문에 공동체가 서로 접촉할 때 생산물이 서로 교환(交換)되고, 따라서 이 생산물들이 점차 상품(商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교환이 생산영역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환은 기존의 상이한 영역들을 서로 관련맺도록 하며, 그리하여 그 상이한 영역들을 사회 전체의 총생산의 다소 상호의존적인 부문(部門)들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본래부터 상이하며 상호 독립적인] 생산영역들 사이의 교환으로부터 사회적 분업(社會的 分業: social division of labour) {사회안의 분업}이 발생한다 이와 반대로, 생리적 분업(生埋的 分業)이 출발점으로 되는 경우에는, 긴밀하게 결합된 전체의 특수한 기관들이 서로 분리되고 분할된다. 이 분해과정은 다른 공동체와의 상품교환으로부터 큰 자극을 받는다. 그 뒤 이 기관들은 상당한 정도의 독립성을 획득하게 되며, 각종 작업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유대관계는 상품으로서의 생산물의 교환이다. 한 경우에는 이전에 독립적이었던 것이 의존적으로 되며, 다른 경우에는 이전에 의존적이었던 것이 독립적으로 된다.
    [일정한 발전수준에 도달한, 그리고 상품의 교환을 통해 발생한] 모든 분업의 토대는 도시(都市)와 농촌(農村)의 분리이다.(주석 27: 제임스 스튜어트(J. Sreuart)는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보다 10년이나 먼저 출판된 그의 저작이 현재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즉 인구에 관한 맬더스의 저작의 초판은, 그 순전히 연설투의 부분을 제외한다면, 목사 월리스(Robert Wallace) 및 타운젠드(Joseph Townsend)로부터 표절했을 뿐 아니라 스튜어트로부터 표절했다는 것을 맬더스의 숭배자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경제사(經濟史) 전체는 이 대립(對立)의 운동으로 요약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일정한 수가 매뉴팩쳐 안의 분업을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크기와 밀도(密度: density)[이것은 하나의 작업장으로 노동자들이 밀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사회 안의 분업을 위한 전제조건이다.(주석 28: "사회적 교류를 위해 그리고 노동생산물을 증대시킬 힘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일정한 인구밀도가 있다"(제임스 밀[James Mill], ?정치경제학원리?, 런던, 1821년, p. 50).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의 생산력은 그 증가에다 분업의 효과가 곱해진 복비례(複比例)로 증가한다"(호지스킨, ?대중경제학?, pp. 125 -126).) 그러나 이 밀도라는 것은 다소 상대적인 것이다. 인구는 비교적 희박하나 발전한 교통수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인구는 더 많으나 교통수단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 비해 인구밀도가 더 높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컨대 미국 북부의 주들은 인도에 비해 인구밀도가 더 높다.(주석 29: 1861년 이후 면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결과 동인도의 인구가 조밀한 몇몇 지방에서는 면화 의 생산이 쌀생산의 희생 위에서 확장되었다. 때문에 국지적(局地的)인 기관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교통수단의 부족[따라서 물질적인 연결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한 지방의 쌀생산 부 족을 다른 지방으로부터의 반입(搬入)에 의해 보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에서는 방추의 제조가 17세기에 벌써 하나의 특수한 산업부문으로 되었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일반적 전제이므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 안의 분업이 이미 일정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거꾸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에 반작용해서 그것을 발전시키며 증가시킨다. 노동도구의 분화에 따라 이 도구를 생산하는 산업들도 더욱 더 분화(分化)된다.(주석 30: 그리하여 네덜란드에서는 방추의 제조가 17세기에 벌써 하나의 특수한 산업 부문으로 되었다.) 이때까지는 동일한 생산자가 본업(本業) 또는 부업(副業)이라는 형태로 함께 경영해 오던 업종들은, 매뉴팩쳐적 경영에 의해 장악되면, 즉시 분리되고 독립한다. 매뉴팩쳐적 경영이 어떤 상품의 하나의 특수한 생산단계를 장악하게 되면, 그 상품의 다른 생산단계들은 각각 독립 산업으로 전환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제품이 다수의 부품이 조립되어 만들어지는 경우에는, 부분작업 그 자체가 다시 독자적인 수공업으로 독립할 수도 있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을 더욱 완전하게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생산부문이 그 원료의 차이에 따라, 또는 동일한 원료가 취하는 형태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매뉴팩쳐[부분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매뉴팩쳐]로 분할된다. 그리하여 벌써 18세기 전반에 프랑스에서만도 100종 이상의 견직물이 생산되었고, 또 예컨대 아비뇽에서는 "모든 도제(徒弟)들은 각각 한 종류의 제조에만 전념해야 하며 여러 가지 직물의 제조방법을 동시에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으로 규정했다. 특정의 생산부문을 국내의 특정지역에 고착시키는 지역적 분업(地域的 分業)은 자연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매뉴팩쳐적 경영에 의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주석 31: "영국의 양모 매뉴팩쳐는 각각 특정 지역에 적합한 몇 개 부분 또는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지역에서는 전적으로 또는 주로 그 부분만이 제조되고 있지 않은가? 예컨대 세포(細布: fine cloth)는 서머셋셔에서, 조포(粗布: coarse cloth)는 요크셔에서, 폭에 넓은 천은 엑서터에서, 견모교직(絹毛交織:serge)는 서드베리에서, 크레이프(crape) 천은 노리지에서, 교직물(交織物)은 켄달에서, 모포는 휘트니에서 생산되는 것 등과 같다"(버클리[Berkeley], "질문자?1750년, 제520절).) [매뉴팩쳐 시대가 존재하게 되는 일반적 조건의 일부를 형성하는] 세계시장의 확대와 식민제도는 사회 안의 분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분업이 사회의 경제영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을 장악하며, 그리고 분업이 도처에서 한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단 한 가지의 능력만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점에 대해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후자의 사실은 이미 애덤 스미스의 스승인 퍼거슨으로 하여금 ”우리는 노예들로만 이루어진 국민이며, 우리 가운데 자유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다"(주석 32: 퍼거슨(A. Ferguson), “시민사회사” 에딘버러, 1767년 제4부, 제2편, p. 285.)고 외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 안의 분업과 작업장 안의 분업은, 비록 그들 사이에 수많은 유사점(類似點)과 관련이 있기는 하나, 정도에서뿐 아니라 본질(本質)에서도 서로 다르다. 유사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하나의 내적 유대에 의해 여러 가지 업종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목축업자는 날가죽을 생산하며, 피혁업자는 그것을 가죽으로 전환시키며, 제화업자는 그것을 구두로 전환시킨다. 이 경우 각자의 생산물은 완성품(完成品)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며, 이 마지막의 완성품은 부분노동들의 결합생산물(結合生産物)이다. 그외에도 목축업자. 피혁업자. 제화업자에게 생산수단을 제공하는 각종 산업부문이 있다. 여기에서, 애덤 스미스처럼,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쳐 안의 분업 사이의 차이는 오직 주관적이며 관찰자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자는 매뉴팩쳐에서는 한 장소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사회적 분업에서는 작업이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고 각 노동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그 상호관계이 애매하기 때문이다.(주석 33: 스미스의 말에 의하면, 진정한 매뉴팩쳐에서는 분업(分業)이 더욱 진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소수인의 작은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소한 제조업에서는 노동자수가 적을 수밖에 없어] 작업의 각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동일한 작업장에서 관찰자가 한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다수 국민의 대규모 수요를 충족시키는 큰 제조업에서는, 작업의 각 부문이 매우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동일한 작업장으로 모을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보다 많은 숫자를 한번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제조업에서는 사소한 제조업에서보다 사실상 작업이 훨씬 많은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분할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고 따라서 훨씬 덜 주목받는다. "(A. 스미스, ?국부론?, 한글판, 상, 13쪽). 같은 장(글)에 있는 유명한 단락(段落),즉 "번영하는 문명국의 가장 일반적인 수공업자 또는 일용노동자의 생활용품을 관찰해 보면"(같은 책, 19쪽)으로 시작해서, 한 사람의 보통노동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러 생산부문이 공헌하고 있는가를 묘사하고 있는 단락은, 거의 단어 하나하나를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이 자기의 저서 ?꿀벌들의 우화, 또는 사적 죄악과 공적 이익?에 붙인 주(註)로부 터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주가 없는 초판은 1705년에 출판되었고 주가 있는 판은 1714년에 출 판 되었다).) 그러나 목축업자와 피혁업자와 제화업자의 독립된 노동들 사이의 유대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각각의 생산물이 상품(商品)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매뉴팩쳐적 분업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분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석 34: "우리가 개인의 노동에 대한 자연적 보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벌써 아무 것도 없다. 각 노동자는 오직 전체의 부분만을 생산하며 또 그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유용성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손에 쥐고 이것은 나의 생산물이다, 이것은 내가 가지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자본의 요구에 대한 노동의 방어?, 런던, 1825년 p. 25). 이 탁월한 저서의 저자는 호지스킨이다.) 상품으로 되는 것은 모든 부분노동자들의 공동생산물(共同生産物)뿐이다.(주석 35: 이와 같은 사회 안의 분업과 매뉴팩쳐 안의 분업 사이의 차이는 양키 {미국 남북전쟁 때의 북부사람}에게 실제로 설명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워싱턴에서 새로 고안된 세금의 하나는 '모든 공업생산물'에 부과된 6%의 소비세였다. 질문: 공업생산물이란 무엇인가? 입법자의 답: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지면' 생산물이 되고, 판매될 준비가 되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많은 실례 중 하나를 들어보자.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매뉴팩쳐는 이전에는 우산을 그 모든 부속품과 함께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우산은 전혀 이질적인 부품들의 합성물이므로, 이 부품들은 점차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경영되는] 각종 업종들의 생산물로 되었다. 이제 이러한 부품 들은 독립 상품으로 우산 매뉴팩쳐에 들어오게 되었고, 우산 매뉴팩쳐는 이 상이한 부품들을 조립할 뿐이다. 양키는 이러한 종류의 제품을 '조립상품(組立商品)'이라고 불렀는데, 이 제품은 그 명칭에 어울리게 세금(稅金)도 조립했다 즉, 우산은 우선 그 부품 각각의 가격에 대한 6%의 세금을 '조립'하고, 다음에는 그 자신의 총가격에 대한 6%의 세금을 또한 '조립'한다.) 사회 안의 분업은 서로 다른 산업부문들의 생산물의 매매에 의해 매개되고 있지만, 매뉴팩쳐 안의 여러 부분노동들 사이의 관련은 여러 노동력이 동일한 자본가에게 판매되어 그에 의해 결합노동력(結合勞動力)으로 사용된다는 것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한 자본가의 수중에 생산수단이 집적(集積)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만, 사회 안의 분업은 서로 독립된 다수의 상품생산자 사이로 생산수단이 분산(分散)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매뉴팩쳐 안에서는 비례관계의 철칙이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일정한 기능들에 종속시키지만, 매뉴팩쳐 밖의 사회에서는 우연과 자의(恣意)가 작용해 사회적 노동의 각종 부문들 사이에 생산자와 그들의 생산수단이 분배되는 것은 제멋대로다. 물론 여러 가지 생산영역들이 끊임없이 균형(均衡: equilibrium)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각각의 상품생산자는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해서 일정한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며(이 욕망들의 크기는 양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이 상이한 크기의 욕망들을 하나의 자연발생적 체계에 분배하는 내적 유대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의 가치법칙(價値法則)은 사회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전체 노동시간 중 얼마만큼을 각각의 상품종류의 생산에 지출할 수 있는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생산영역들이 균형으로 향하는 이 끊임없는 경향은 이 균형의 끊임없는 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용할 뿐이다. [작업장 안의 분업이 의거하고 있는] 계획되고 규제되는 사전적 체제는 사회 안의 분업에서는 생산자들의 규제받지 않는 변덕을 통제해야 하는] 자연적인 사후적 필연성(이것은 시장가격의 변동에서 알 수 있다)으로 변한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자본가에게 속하는 전체 메커니즘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의 무조건적 권위를 내포하지만, 사회 안의 분업은 경쟁(競爭)이라는 권위 밖에는 [즉, 상품생산자들 상호간의 이익 대립이 자기들에게 가하는 강제 외에는] 다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독립적 상품생산자들을 서로 대립시킨다. 이것은 마치 동물계에서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대체로 모든 종(種)의 생존조건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작업장 안의 분업, 노동자를 평생 하나의 부분작업에 묶어두는 것,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완전한 종속 등을 노동생산성을 제고시키는 노동조직이라고 찬양하는] 바로 그 부르주아적 의식은, 생산과정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조정하려는 온갖 의식적 시도를 개별 자본가의 소유권. 자유. 자율적 '독창성' 등과 같은 신성한 것에 대한 침해라고 마찬가지로 열렬히 비난하고 있다. 공장제도의 열광적인 변호자들이 사회적 노동의 일반적 조직화를 반대하면서, 그것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공장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특징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업에서의 무정부상태(無政府狀態)와 매뉴팩쳐적 분업에서의 독재(獨裁)가 서로 다른 것의 조건으로 되고 있으나, 이와는 반대로 [직업의 분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발전해 응고되고 최후로 법률에 의해 고정된] 이전의 사회 형태에서는, 한편으로 사회의 노동이 공인(公認)된 권위적인 계획(計劃)에 따라 조직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작업장에서는 분업을 완전히 배제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작은 규모로 간헐적 우연적으로만 발전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주석 36: "일반적 원칙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있다. 즉, 권위가 사회 안의 분업을 지배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분업은 작업장 안에서 그만큼 더 발전하며, 한 개인의 권위에 그만큼 더 종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업의 관점에서 볼 때, 작업장 안의 권위와 사회 안의 권위는 서로 반비례한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pp. 130-131).)
    예컨대 [부분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인도의 매우 오래된 소공동체는 토지의 공동소유, 농업과 수공업의 직접적 결합, 그리고 고정불변의 분업에 입각하고 있는데, 이 분업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때마다 주어진 계획 및 설계도로 역할한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자급자족적(自給自足的)인 완결된 생산조직을 이루고 있는데, 그 영역은 100에이커에서 수천 에이커에 달한다. 생산물의 대부분은 공동체 자체의 직접적인 수요를 위한 것이고 상품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생산은 상품교환에 의해 매개되는 인도 사회 전체의 분업과는 무관하다. 오직 생산물의 잉여(剩餘)만이 상품(商品)으로 되며, 그리고 그 잉여의 일부는 [태고적부터 현물지대의 형태로 생산물의 일정한 양을 징수해 온] 국가의 수중에서 비로소 상품(商品)으로 된다. 공동체의 형태는 인도의
    지방에 따라 다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동체에서는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되며 생산물은 그 구성원들에게 분배된다. 동시에 방적. 직포는 각 가정의 부업(副業)으로 경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일하게 노동에 종사하는 주민들 이외에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재판관과 경찰관과 징세관을 한 몸에 겸하고 있는 '공동체의 우두머리‘, 농경에 관한 계산과 이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기장인(記帳人: book-keeper), 범죄자를 추궁하며 외부로부터 온 여행자를 보호해 그를 다른 마을로 안내하는 관리, 인접하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 공동체의 경계선을 경비하는 경계선 경비원, 농경을 위해 공동저수지로부터 물을 분배하는 저수지 감시인, 종교적 의식을 수행하는 바라문(Brahman), 모래 위에서 공동체의 아동들에게 쓰기와 읽기를 가르치는 교사, 파종이나 수확의 시기 및 기타 여러 가지 농사일에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알려주는 역술(曆術) 바라문 또는 점성가, 모든 농기구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대장장이와 목수, 촌락에서 쓰는 모든 그릇들을 제조하는 도자기공, 이발사, 의복을 세탁하는 세탁사, 은 세공인, 어떤 공동체에서는 은(鎭) 세공인을 대신하고 또 어떤 공동체에서는 교사를 대신하는 시인(詩人). 이 10여 명의 사람들은 공동체 전체의 비용으로 부양한다. 만약 인구가 증가하면 새로운 공동체가 원래의 것을 본떠 미개간지에 세워진다. 이 공동체의 전체 메커니즘은 체계적인 분업을 보여주고 있으나, 매뉴팩쳐에서와 같은 분업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장장이나 목수 등은 불변의 시장과 대면하고 있으며, 촌락의 크기에 따라 대장장이나 목수 등은 1명이 아니면 기껏해야 두세 명 있기 때문이다.(주석 37: 월크스(Mark Wilks), ?인도 남부의 역사적 개관?, 런던, 1810-17년, 제1권, pp. l18-120. 인도 공동체의 각종 형태에 대한 훌륭한 묘사는 캠벌(George Campbell)의 ?현대인도?(런던, 1852년)에서 볼 수 있다.) 공동체의 분업을 규제하는 법칙은 자연법칙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권위를 가지고 작용하지만, 대장장이나 목수 등과 같은 각 개별 수공업자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그러나 독립적으로,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작업장 안에서 자기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끊임없이 동일한 형태로 자기를 재생산하며 어쩌다가 파괴되더라도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명칭으로 재건되는] 자급자족적인 공동체의 생산유기체(生産有機體)의 단순성은(주석 38: "이러한 단순한 형태로....이 나라 주민들은 태고적부터 생활했다. 마을들의 경계선이 변동되는 일은 드물다. 비록 마을 그 자체는 때로는 전쟁. 기근. 전염병에 의해 훼손되며 심지어 황폐화되는 일까지 있었지만, 동일한 명칭. 동일한 경계선. 동일한 이해관계, 또 심지어 동일한 가족들이 오랫동안 존속했다. 나라의 멸망이나 분할에 대해 주민들은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마을이 온전하게 남아 있기만 하면, 그것이 어떤 권력의 수중에 넘어가든 어떤 군주에게 맡겨지든 그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마을의 내부 경제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전 자바의 부총독, 라플즈. [T. Stamford Raffles], ?자바사?, 런던, 1817년, 제1권, p. 285).) [아시아 국가들의 끊임없는 흥망및 왕조의 쉴 새 없는 교체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아시아 사회의 불변성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사회의 경제적 기본요소들의 구조는 [정치라는 상공에서 일어나는] 폭풍우에 의해서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길드의 규칙은 1명의 장인(匠人)이 고용할 수 있는 직인(職人: journeyman)과 도제(徒弟)의 수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장인이 자본가로 전환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저지했다. 더욱이 장인은 자기가 몸소 장인으로 있는 수공업에서만 직인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길드는 [자기들과 대면하고 있는 단 하나의 자유로운 자본형태였던] 상인자본(商人資本)의 온갖 침투를 열렬히 격퇴했다. 상인은 어떤 상품이라도 살 수 있었으나 노동을 상품으로 살수는 없었다. 상인은 수공업 생산물을 매매하는 장사꾼으로서만 용인되었을 뿐이다. 사정에 의해 분업을 더욱 세분화할 필요가 생기면, 기존의 길드가 아종(亞種)들로 분열되거나, 새로운 길드를 원래의 길드 옆에 설치했지만, 여러 가지 수공업을 하나의 동일한 작업장에 집중시키는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비록 길드조직이 수공업의 분리. 고립. 개선에 의해 매뉴팩쳐의 물질적 존재조건의 창조에 크게 공헌했지만, 길드 조직은 매뉴팩쳐의 특징인 작업장 안의 분업을 배제하고 있었다. 대체로 노동자(勞動者)와 그의 생산수단(生産手段)은 마치 달팽이와 달팽이집처럼 서로 긴밀하게 통일(統一)되어 있었고, 따라서 매뉴팩쳐의 제1토대-즉 노동자에 대해 생산수단이 자본으로 독립하는 것-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체사회 안의 분업은, 상품교환에 의해 매개되든 아니든, 매우 다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존재할 수 있지만, 매뉴팩쳐에서 수행되고 있는 바와 같은 작업장 안의 분업(分業)은 자본주의적(資本主義的) 생산양식의 전혀 독특한 창조물(創造物)이다.



    제 5 절 매뉴팩쳐의 자본주의적 성격


    동일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많은 노동자가 있다는 것은 협업(協業) 일반과 매뉴팩쳐의 자연발생적 출발점이다. 그러나 매뉴팩쳐적 분업에서는 노동자 수의 증가가 기술상 필요하다. 1명의 자본가가 고용해야 하는 최소한도의 노동자 수는 기존의 분업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더욱 진전된 분업의 이익은 오직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노동자 수의 증가는 모든 부분집단이 일정한 비율(比率)로 배가(倍加)되는 방식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의 가변적(可變的) 구성부분의 증가는 그 불변적(不變的) 구성부분의 증가도 요구한다. 즉, 건물이나 기구 등 생산조건의 규모뿐 아니라 특히 원료[이것에 대한 수요는 노동자의 수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증가한다]가 증가해야 한다. 일정한 기간중 일정한 노동량에 의해 소비되는 원료량은 분업의 결과 노동생산성이 제고되는 데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가 수중에 가지고 있어야 할 최소한도의 자본규모가 계속 증대한다는 것, 다시 말해 사회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이 계속 증대해야 한다는 것은 매뉴팩쳐의 기술적 성격으로부터 발생하는 하나의 법칙이다.(주석 39: "수공업의 세분화에 필요한 자본"(저자는 필요한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이라고 말했어야 할 것이다)"이 사회에 현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자본이 [고용주로 하여금 그의 작업을 대규모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할 만큼] 많이 고용주의 수중에 축적되는 것이 필요하다 ....분업이 진전하면 할수록, 동일한 수의 노동자를 취업시키기 위해서도 도구. 원료 등에 대한 자본지출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슈토르히, ?정치경제학강의?, 파리, 제1권, pp. 250-251). "생산수단의 집중과 분업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마치 정치의 분야에서 공권력의 집중과 사적 이익의 분열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과 같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파리, l847년, p. 134).)
    집단적 노동유기체(勞動有機體)는 단순협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매뉴팩쳐에서도 자본(資本)의 존재형태다. 다수의 개별 부분노동자로 구성되는 사회적 생산매커니즘은 자본가에게 속한다. 그러므로 각종 노동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매뉴팩쳐는 [이전에는 독립적이었던] 노동자를 자본의 지휘와 규율에 복종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 등급적 계층을 만들어 낸다. 단순협업은 개개인들의 노동방식을 대체로 변경시키지 않지만, 매뉴팩쳐는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키며 개별 노동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매뉴팩쳐는 노동자의 일체의 생산적인 능력과 소질을 억압하면서 특수한 기능만을 촉진함으로써 노동자를 기형적인 q불구자로 만든다. 이것은 마치 라플라타강의 여러 나라들{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에서 가죽 또는 지방(脂肪: fat)을 얻기 위해 동물 한 마리 전체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각의 부분노동이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분배될 뿐 아니라 재인 그 자체가 분할되어 하나의 부분노동의 자동장치로 전
    전환되며(주석 40: 듀갈드 스튜어트는 매뉴팩쳐 노동자를 '부분작업에 사용되는....살아 있는 자동장치'라고 불렀다(듀갈드 스튜어트, ?정치경제학강의?, p. 318).) 그리하여 인간을 그 자신의 신체의 일부로 묘사하는 메네니우스 아그리파(Menenius Agrippa)의 우화{귀족은 위장이고, 평민은 손발이다.}가 현실화된다.(주석 41: 산호에서는 각 개체가 사실상 전체 집단의 위(胃: stomach)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의 귀족과 같이 전체 집단으로부터 영양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전체 집단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만약 처음에는 노동자가 상품생산을 위한 물질적 수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에게 판매했다면, 이제는 그의 개별 노동력은 자본에 판매되지 않는 한 소용없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개별 노동력은 오직 다른 노동력들과의 관련 속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데, 이 관련은 [그것이 판매된 뒤]자본가의 작업장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독립적으로 어떤 물건을 만드는 것에 부적합해진 매뉴팩쳐 노동자는 자본가의 작업장의 부속물로서만 생산적 활동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주석 42: “하나의 수공업 전체에 숙달한 노동자는 어디서나 일할 수 있고 생활수단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노동자"(매뉴팩쳐 노동자)"는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 자기의 동료들과 떨어져서는 어떤 능력도 독립성도 가지지 못하고 고용주가 마음대로 강요하는 규율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슈토르히, ?정치경제학강의?, 페테르스부르크판, 1815년, 제1권. p. 240).) 여호와의 선민(選民: chosen people)은 몸에 자기가 여호와의 소유물이라는 표시 {할례(割禮)}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업은 매뉴팩쳐 노동자에게 자본의 소유물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야만인이 모든 전쟁기술을 개인의 책략으로 발휘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작은 규모에서이기는 하나 독립적인 농민 또는 수공업자도 지식과 판단력과 의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매뉴팩쳐에서는 그러한 능력은 다만 작업장 전체를 위해서만 요구될 뿐이다. 생산상의 정신적 능력이 한 방면에서는 확대되면서 다른 여러 방면에서는 완전히 소멸된다. 부분노동자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에 집적된다.(주석 43: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얻었을 것이다"(퍼거슨, ?시민사회사“, p. 281).) 부분노동자들이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을 타인의 소유물로 또 자기를 지배하는 힘으로 상대하게 계는 것은 매뉴팩쳐적 분업의 결과다. 이 분리과정{예: 지식과 노동의 분리}은, 개개의 노동자에 대해 자본가가 집단적 노동유기체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표하게 되는 단순협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분리과정은 노동자를 부분노동자로 전락시켜 불구자로 만드는 매뉴팩쳐에서 더욱 발전한다. 끝으로, 이 분리과정은 [과학을 노동과는 별개인 생산잠재력으로 만들고, 과학을 자본에 봉사하게 만드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주석 44: "지식인과 생산적 노동자는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되고, 지식은 노동자의 수중에서 그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되지 않고....거의 어디에서나 노동자에 대립하게 되었다. " "지식은, 노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노동에 대립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된다(톰슨[W. Thompson], ?부의 분배원리의 연구?, 런던, 1824년, p. 274).)
    매뉴팩쳐에서는 집단적 노동자의 [따라서 자본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력의 빈약화를 통해 풍부해진다.

    "무지(無知: ignorance)는 미신(迷信)의 어머니인 동시에 또 근면(勤勉)의 어머니이다. 숙고(熟 考)와 상상(想像)은 과오를 범하기 쉽지만, 손이나 발을 움직이는 습관은 그 어느 것과도 무관하 다. 그러므로 매뉴팩처가 가장 번영하는 곳은, 인간이 거의 정신을 쓰지 않는 곳, 그리고 작업장 이 ....[인간을 그 부품으로 하는] 기계로 간주될 수 있는 곳이다.(주석 45: 퍼거슨, ?시민사회사“, p. 280.)

    사실, 18세기 중엽 일부 매뉴팩쳐는 [단순하지만 기업비밀로 되어 있는] 일정한 작업에 반(半)백치(Semi-idiot)를 고용하기를 더 선호했다.(주석 46: 터케트긴[J. D. Tuckett], ?노동인구의 과거 및 현재 상태의 역사?, 런던. 1846년, 제1권, p. 1846년.)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해력(理解力)은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에 의해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일 생을 몇 가지 단순한 작업[그것의 결과물도 항상 같거나 거의 같다]에 소비하는 사람들은 예기 치 않은 어려움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데 그의 이해력을 발휘하거나 그의 창조력을 행사 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그러한 노력을 하는 습관을 잃게 되고, 일반적으 로 인간으로서 가장 둔해지고 무지해진다. "

    스미스는 부분노동자의 우둔성(愚鈍性)을 묘사한 뒤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그의 생활이 단조로워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용기도 잃게 되며, [불규칙적이고 불 안정하며 모험적인] 군인생활을 꺼리게 된다. 또한 육체의 활발한 활동이 불가능하며, 그때까지 그가 배워 온 직업 이외의 어떤 직업에서도 활기 있고 참을성 있게 그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의 특수한 직무상의 기교는 지적. 사회적. 군사적 덕목을 희생해서 획득되는 것 같다. 발 달한 모든 문명사회에서는 정부의 방지노력이 없는 한, 노동빈민[즉, 대다수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에 필연적으로 빠지게 된다. "(주석 47: A. 스미스,?국부른“, 제5편, 제1장, 제3절(한글판, 하, 272쪽, 273쪽). 분업의 해로운 결과를 지적한 A. 퍼거슨의 제자로서 A. 스미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분업을 공공연히 찬양하고 있는 자기 저서의 서두에서 그는 다만 지나가는 말투로 분업이 사회적 불균등(不均等)의 원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왕 또는 국가의 세입(歲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제5권{제5편}에 가서야 비로소 퍼거슨의 이론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나는 ?철학의 빈곤?에서 분업의 비판에서 퍼거슨, 스미스, 르몽티(Lemontey) , 세이(Say) 사이 의 역사적 관계를 충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매뉴팩쳐적 분업이 자본주 의적 생산방식의 하나의 특수한 형태임을 밝혔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p. 122 이하).)

    분업에 의해 국민 대중이 완전히 퇴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미스는 국가가 국민교육(國民敎育)을 [신중하게 최소한도로1 실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의 저서의 프랑스어 역자이며 주석자인 가르니에(Germain Garnier)[그는 프랑스 제1제정 하에서 아주 당연하게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는 국민교육을 철저히 반대한다. 가르니에에 의하면, 국민교육은 분업의 제1법칙을 위반하며, 국민교육이 실시되면 "우리의 사회제도 전체는 폐지될 것이다. "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모든 분업들과 마찬가지로, 손노동과 두뇌노동 사이의 분업도(주석 48: 퍼거슨은 이미 ?시민사회사?, p. 28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각하는 일 그 자체가 이 분업의 시대에는 특수한 직업으로 될 수 있다. ") 사회"(그는 이 용어를 자본, 토지재산 및 [이 둘에 속하는]국가를 가리키는 의미로 옳게 사용하고 있다)"가 부유해짐에 따라 더욱 명백해지고 결정적으로 된다. 다른 모든 분업과 마찬가지로, 이 분업도 과거의 진보의 결과이며, 또 장래의 진보의 원인이다...그런데도 정부가 이 분업을 방해하고 그 자연적인 진행을 저지해야 한단 말인가? 분할과 분리를 지향하는 이 두 종류의 노동을 혼합하고 뒤섞어 놓기 위한 시도에 정부가 국고금의 일부를 지출해야 한단 말인가?"(주석 49: 가르니에(G. Garnier), 그의 ?국부론? 프랑스어 번역, 제5권, pp. 4-5.)

    어느 정도의 정신적 .육체적 불구화는 전체사회 안의 분업의 경우에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매뉴팩쳐는 노동부문들의 이러한 사회적 분할을 훨씬 더 추진시키고, 또한 매뉴팩쳐 특유의 분업에 의해 개인을 그의 생활의 근원에서 공격하기 때문에, 산업병리학(産業病理學)(주석 50: 파두아의 임상의학 교수인 라마치니[Ramazzini)는 1713년에 자기의 저서 ?수공업자들의 질병에 대해?를 발표했다. 그것은 17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또 1841년에는?의학백과사전, 제7부, 고전저자편?에 다시 수록되었다. 대공업 시대는 물론 노동자의 직업병 종류를 크게 증가시켰다. 특히 다음의 두 책을 보라. A. L. 퐁테레(Fonteret) ?대도시 일반 및 특히 리용시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위생?, 파리, 1858년 및 R. H. 로하취(Rohatzsch) 편, ?각종 계층, 연령 및 성에 특유한 질병?, 전6권, 울름, 1860년. 1854년에는 기예협회(技藝協會: Society of Arts)가 산업병리학에 관한 조사위원회를 임명했다. 이 위원회가 수집한 자료는“트위크넘 경제박물관”(Twickenham Economic Museum)의 목록에 들어 있다. 정부의 ?공중보건에 관한 보고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또 라이히(Eduard Reich)의 ?인류의 퇴화에 관해?(에르랑겐, 1868년)도 보라.)에 재료와 자극을 제공한 첫번째 장본인은 매뉴팩쳐이다.

    “하나의 인간을 세분하는 것은, 만약 그가 죽을 죄를 지었다면 사형에 처하는 것이며, 만약 그 가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면 암살(暗殺)하는 것이다....노동의 세분화(細分化)는 국민의 암살이 다."(주석 51: 어콰트(D. Urquhart), ?상용어?, 런던, 1855년, p. 119. 헤겔은 분업에 관해 매우 이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교양있는 사람이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무 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라고 자기의 ?법철학?에서 말하고 있다.)

    분업에 입각한 협업[즉, 매뉴팩쳐]은 시초에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과 적용범위를 획득하자마자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의식적이고, 규칙적이며, 체계적인 형태로 된다. 진정한 매뉴팩쳐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그것에 특유한 분업은 최초에는 경험에 의해[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의 배후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를 획득하며, 그 다음에는 [길드적 수공업과 마찬가지로] 일단 찾아낸 그 형태를 고수하려고 애쓰게 되고, 이곳저곳에서 그것을 수세기에 걸쳐 고수하는 데 성공한다. 만약 이 형태에 어떤 변화[사소한 것은 제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노동도구(勞動道具)의 혁명 때문이다. 근대적 매뉴팩쳐(나는 여기서 기계에 입각하고 있는 대공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는, 예컨대 대도시의 의복 매뉴팩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자기의 분산된 사지(四肢) {각종의 부분노동자들}를 모으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고, 또는 (제본업(製本業)의 경우처럼) 수공업의 각종 작업들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적으로 떠맡김으로써 분업의 원리를 쉽게 적용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경우 각각의 기능에 필요한 노동자 수 사이의 비율을 결정하는 데에는 1주일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주석 52: 개별 자본가가 분업에서 발명적 천재를 선험적으로 발휘한다는 소박한 신념은 오늘날에는 오직 독일 교수들 사이에만 남아 있다. 예컨대 로셔(Roscher)는 분업이 자본가의 주피터 신과 같은 두뇌로부터 완성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본가에게 '각종의 임금'을 헌납하고 있다. 그러나 분업이 적용되는 범위의 크기는 돈주머니의 크기에 의존하는 것이지 천재의 크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수공업적 활동의 분해, 노동도구의 전문화, 부분노동자의 형성, 부분노동자들을 분류해 단일 매커니즘으로 결합시키는 것에 의해, 매뉴팩쳐적 분업은 사회적 생산과정에 질적 편성과 양적 비례성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조직을 창조하며, 동시에 노동의 새로운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사회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자본주의적 형태의 하나인 매뉴팩쳐적 분업은-주어진 조건 하에서는 그것은 자본주의적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 또는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흔히 사회적 부(富), '국민의 부(富)' 등으로 부르는] 자본의 자기증식을 증대시키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 더욱이 개별 노동자를 불구로 만듦으로써, 증대시킨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는 새로운 조건을 조성한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적으로 한편에서는 사회의 경제발전에서 하나의 진보이며 하나의 필연적인 단계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 문명화되고 세련된 착취의 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매뉴팩쳐시대에 비로소 독립된 과학으로 등장한] 정치경제학은, 사회 안의 분업을 매뉴팩쳐 안의 분업의 입장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주석 53: 스미스보다는 폐티와 ?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의 익명의 저자 등 이전의 저술가들이 매뉴팩쳐에 칙용되고 있는 분업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더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 안의 분업을 같은 양의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수단, 즉 상품가격을 싸게 하며 자본의 축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서만 고찰했다. 이와 같이 양과 교환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로지 질과 사용가치에만 관심을 가졌던] 고전적 고대의 저술가들의 태도와는 정반대다.(주석 54: 근대인들 가운데서도 베카리아(Cesare Beccaria)와 해리스(James Harris)와 같은 18세기의 몇몇 저술가들은 예외에 속하는데, 이들은 분업에 관해 거의 전적으로 고대인을 추종하고 있다. 베카리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손과 머리를 항상 동일한 종류의 작업과 동일한 생산물의 제조에 사용한다면, [각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 모두를 스스로 제조하는 경우보다] 생산물을 더 쉽게, 더 많이 그리고 더 좋게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하여 인간은 다양한 계급들과 신분들로 나뉘어져 공공의 이익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게 된다"(베카리아, ?공공경제학요론?, 쿠스토디 편, 근세편, 제11권, p. 28). 나중에 맘즈베리[Malmesbury) 백작이 된 해리스는 (그가 페데르부르크 주재 공사로 있을 시절에 쓴) ?일기?로 유명한데, 그는 자기의 저서 ?행복에 관한 대화?(런던, 1741년) (뒤에 ?세개의 논문....“ , 제3판, 런던, 1772년에 재수록 되었다)에 대한 하나의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회가 자연적이라는 것을 (직업의 분할에 의해) 증명하려는 모든 논법은....플라톤의 ?공화국?의 제2부에서 따온 것이다. ") 고전적 고대의 저술가에 의하면, 사회적 생산부문들이 분리된 결과, 상품들은 더 좋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여러 가지 성향과 재능은 자기에게 적합한 활동분야를 선택하게 되며(주석 55: 예컨대 ?오딧세이? 제14장 제220절에는 "사람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일이 다르다"라는 구절이 있고, 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가 인용한 아르키로쿠스(Archilochus)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활동분야가 어느 정도 제한되지 않고서는 어떤 부문에도 훌륭한 성과가 얻어질 수 있게 된다.(주석 56: "그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잘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 아테네인은 자기들이 상품생산자로서는 스파르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인들은 전쟁할 때 인간을 사용할 줄은 알았지만 화폐를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예컨대 투키 디데스는 페리클레스로 하여금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하는 아테네인들을 고무하는 연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화폐보다는 자기의 몸으로 싸우려고 한다"(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1부, 제141절). 그럼에도 불 구하고 아테네인들의 이상은 물질적 생산에서 분업에 대립하는 자급자족이었다. "왜냐하면 분업(分業)이 있는 곳에는 풍요가 있지만, 자급자족(自給自足)이 있는 곳에는 독립도 있기 때 문이다. " 이것과 관련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30명의 공포정치가들이 몰락하던 시기 {기 원전 404년}에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아테네인은 5,0000명에도 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분업에 의해 생산물도 생산자도 개선된다는 것이다. 고전적 고대의 저술가들이 때로 생산량의 증가에 언급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사용가치가 더욱 풍부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교환가치나 상품의 저렴화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용가치의 입장은 [분업을 사회의 신분적 구분의 토대로 간주하는] 플라톤이나(주석 57: 플라톤은 공동체 안의 분업을 개인의 욕망의 다양성과 자질의 일면성에 의해 설명한다. 그의 주된 관점은 노동자가 일에 적응해야지 일을 노동자에게 적응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노동자가 동시에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 [즉, 직업들 중의 어느 하나를 부업으로 수행하는 경우 일을 노동자에게 적응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이 노동자의 여가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노동자가 자기의 일을 부업으로서가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수행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소질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다른 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한 가지 일만을 수행한다면, 더 많은 물건이 더 좋고 더 쉽게 생산될 것이다"(?공화국?, 제1부, 제2절). 이와 비슷한 견해를 투키디데스의 앞의 저서, 제142장에서 볼 수 있다. "항해술은 하나의 기술이며 어떤 경우에도 부업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어떤 부업도 이 항해술과 함께 수행할 수는 없다. " 플라톤은, 만약 일이 노동자를 기다리게 된다면 생산상의 결정적인 순간을 때때로 놓쳐버리게 될 것이며 제품은 못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전체 동자에게 고정된 식사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공장 법의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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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6
    예컨대 수확을 할 때 2명의 마부, 2명의 짐 싣는 사람, 2명의 던지는 사람, 2명의 갈퀴질하는 사람 및 건초를 쌓거나 곡물창고에서 일하는 몇 명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농장에서 서로 다른 조로 나뉘어 일하는 같은 수의 노동자들보다 2배나 많은 일을 할 것이다"(?식량의 현재가격과 농장규모 사이의 관계의 인구?, 한 농장주?아버스노트”저, 런던, 1773년, pp. 7-8).) 이것은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정치적 동물(주석 7: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定義: definition)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한] 프랭클린의 정의가 양키 나라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정의는 고전적 고대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은 아닐지 몰라도 여하튼 사회적 동물(社會的 動物)이라는 데 기인한다.
    비록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증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하더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과정의 상이한 국면을 이룰 수 있는데, 이때 노동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빨리 통과하게 된다. 예컨대 만약 12명의 벽돌공이 벽돌을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지어 선다면, 그들 각 개인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그들 개개의 행위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의 연속된 부분들을 이룬다. 즉, 각자의 행위는 각 벽돌이 노동과정에
    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한 국면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벽돌은 전체 노동자의 24개의 손을 통과함으로써 각 개별 노동자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벽돌을 운반할 때보다 더 빨리 운반된다.(주석 8: “또한 지적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부분적 분업(分業)은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하는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건물의 높은 곳으로 벽돌을 손에서 손으로 나르는 벽돌공들은 모두가 동일한 작업을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 각자는 벽돌을 일정한 거리만 옮겨 놓지만, 전체로 보면 그들은 각자가 벽돌을 단독으로 높은 곳에 운반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것을 옮겨놓게 된다"(스카르베크[F. Skarbek],
    ?사회적 부의 이론?, 제2판, 파리, 1839넌, 제1권1 pp. 97-98).) 노동대상은 동일한 거리를 더 짧은 시간에 통과한다. 또한 예컨대 건물을 지을 때 여러 방면에서 동시에 착수하는 경우, 비록 협업자들은 이때에도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노동의 결합이 일어난다. 건물을 짓는 데 1명의 벽돌공이 12일간 [즉 144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12명의 벽돌공이 144시간의 집단적 1노동일에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 이유는 협력해 작업하는 노동자 집단은 앞과 뒤로 팔과 눈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까지는 전면성(全面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산물의 상이한 부분들이 동시적으로 완성되어 간다.
    위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공동노동(共同勞動: common labour)의 이러한 가장 단순한 형태가 협업에서 [심지어 협업의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과정이 복잡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상이한 작업을 각각의 노동자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전체 작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은 단축된다.(주석 9: "어떤 복잡한 노동을 하는 경우, 몇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이 일을 하고 저 사람은 저 일을 함으로써 한 사람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성과에 모두가 함께 기여한다. 한 사람은 노를 젓고 또 한 사람은 키를 잡고 세번째 사람은 그물을 던지거나 작살로 고기를 찌르거나 한다. 그리하여 고기잡이는 이러한 협업 없이는 불가능한 성과를 얻고 있다" (데스튜트 드 트라시, 앞의 책, p. 78).)
    많은 생산부문에는 결정적인 순간[즉, 노동과정 그 자체의 성질에 의해 규정되며 그 기간에 노동의 일정한 성과가 달성되어야 하는 시기]이 있다. 예컨대 한 떼의 양의 털을 깎는다든가 일정한 면적의 곡물을 베어 거두어들여야 할 때, 생산물의 양과 질은 이 작업이 일정한 시간에 시작되어 일정한 시간에 끝나는가 끝나지 못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경우 노동과정이 수행되어야 할 기간은 [예컨대 청어잡이의 경우와 같이] 미리 정해져 있다. 각 개인은 하루에 예컨대 12시간 이상의
    1노동일을 만들어 낼 수 없지만, 100사람의 협업은 1노동일을 1,200시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 작업에 허용되는 기간이 짧다는 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생산의 장(場)에 투입되는 노동의 커다란 규모에 의해 보상된다. 이 경우, 제때에 작업을 마무리짓는 것은 다수의 결합된 노동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에 달려 있으며, 유용한 효과의 대소는 노동자의 수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노동자의 수는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규모의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고립된 노동자의 수보다 언제나 적다. (주석 10: "그것"(농업노동)"를 결정적인 순간에 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아버스노트, 앞의 책 , p. 7. "농업에서는 시간이라는 요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없다"(리비히[Liebig], ?농 업의 이론과 실제?, 1856년, p. 23).) 이러한 종류의 협업이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서부에서는 매년 많은 곡물이, 그리고 [영국의 통치에 의해 옛날의 공동체가 파괴된] 인도의 동부 지역에서는 매년 다량의 면화가 낭비되고 있다.(주석 11: "그 다음의 불행은 [아마 중국과 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많은 노동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인도}에서 있으리라고는 거의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불행인데, 그것은 면화의 수확에 필요한 노동자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다량의 면화가 수확되지 못하고 내버려지며, 또 일부는 면화가 이미 땅에 떨어져 변색되고 또 부분적으로 썩어 버린 뒤에 땅에서 수집된다. 그리하여 바로 그 계절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배업자는 [영국에서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면화의 많은 부분을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게 된다"(?벵갈 통신, 격월해외정보요약}, 1861년 7월 22일자).)
    협업은 한편으로는 작업을 넓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어떤 노동과정에서는 노 동대상의 물리적 구조 그 자체가 벌써 협업을 요구한다. 예컨대 배수공사. 제방공사. 관개공사. 운하건설. 도로건설. 철도부설 등에서 그렇다. 다른 한편, 협업은 생산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생산의 공간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산규모의 확대와 동시에 노동의 공간적 범위의 축소는 [이것은 다액의 공비(空費) {비생산적 비용}를 절약할 수 있게 한다] 많은 노동자의 밀집과 각종 노동과정의 집합(集合)과 생산수단의 집중(集中)에서 생긴다.(주석 12: 농경의 진보에 따라 "전에는 500에이커의 조방적(粗放的) 경작에 사용되고 있던 모든 자본과 노동[아마도 그 이상]이 이제는 100에이커의 한층 더 집약적인 경작에 집중되고 있다." "사용되는 자본과 노동의 양에 비해 면적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지만, 생산의 범위는 이전에 하나의 독립적 생산자에 의해 경작될 때보다 확대되었다"(존스, ?부의 분배에 관한 연구?, 제1부, 지대에 관해, 런던, 1831년, p. 191).)
    결합된 노동일은 그것과 동일한 크기의 개별 노동일의 합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를 생산하며, 따라서 주어진 유용효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감소시킨다. 결합된 노동일이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원인이 무엇이건 [즉, 그것이 노동의 기계적 힘을 제고하거나, 노동의 공간적 작용범위를 확대하거나, 생산규모에 비해 생산의 공간적 장소를 축소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많은 노동을 가동시키거나, 개개인의 경쟁심을 자극해 활기를 띠게 하거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연속성과 다면성을 부여하거나, 서로 다른 작업들을 동시적으로 수행하거나, 공동사용에 의해 생산수단을 절약하거나, 또는 개개인의 노동에 사회적 평균노동의 성격을 부여하기 때문이거나]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어떤 경우라도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 또는 사회
    적 노동의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노동자는 그의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그의 종족(種族: species)의 능력을 발전시킨다.(주석 13: "개개인의 힘은 보잘 것 없지만, 이 보잘 것 없는 힘의 결합은 모든 부분적인 힘의 합계보다 더 큰 집단적인 힘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힘은 그것을 단순히 결합시키기만 해도 시간을 단축하고 자기의 작용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베리, ?정치경제학에 관한 고찰“, p. 196에 대한 칼리[G. R. Carli]의 주).)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함께 모이지 않고서는 협력할 수 없으며, 그들이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그들의 협업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임금노동자는 동일한 자본(資本), 동일한 자본가에 의해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경우에만, 즉 그들의 노동력이 동시적으로 구매되는 경우에만 비로소 협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동력의 총가치[즉, 노동자들에 대한 하루 또는 1주일 등의 임금총액]가 자본가의 주머니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을 개시할 수 있다. 300명의 노동자에게 단 하루분을 지불하는 데에도 소수의 노동자에게 1주일에 한 번씩 1년간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지출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협업노동자의 수(즉, 협업의 규모)는 우선 개별 자본가가 노동력의 구매에 지출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다시 말해 각 개별 자본
    가가 다수의 노동자의 생활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정도]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변자본(可變資本)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불변자본(不變資本)에 대해서도 해당된다. 예컨대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원료에 대해 지불하는 금액은 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지출하는 것의 30배가 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노동수단의 가치나 양은 노동자의 수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지만 현저하게 증가한다.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대량의 생산수단이 집적(集積)되는 것은 임금노동자들의 협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며, 협업의
    범위 또는 생산의 규모는 이러한 집적(concentration)의 정도에 의존한다. 앞의 장에서 본 바와 같이,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 그리고 그들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이 고용주 자신을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를 소경영주로부터 자본가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관계 {또는 노자관계(勞資關係)}를 형태적으로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최소한도의 자본액이 필요했다. 이제는 자본의 이 최소한도가 다수의 분산되고 상호독립적인 노동과정들을 하나의 결합된 사회적 노동과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물질적 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도 처음에는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 따라서 자본가 밑에서 노동한다는 사실의 형태적인 결과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많은 임금노동자의 협업에 따라 자본의 지휘는 노동과정 그 자체의 수행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생산의 현실적 조건으로 발전해 간다. 생산장소에서의 자본가의 지휘는 이제 전쟁터에서의 장군의 지휘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으로 된다.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 또는 공동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산유기체의 독립적인 기관(器官. organ)들의 운동과는 구별되는 생산유기체 전체의 운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바이올린 독주자는 자신이 직접 지휘자가 되지만 교향악단은 독립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지휘와 감독과 조절의 기능은 자본의 지배 하에 있는 노동이 협업적으로 되자마자 자본의 하나의 기능으로 된다. 자본의 독자적인 기능으로서, 지휘(指揮)의 기능은 자기 자신의 특수한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 그리고 그것을 규정하는 목적은 자본을 가능한 최대한도로 증식시키는 것(주석 14: "이윤은....사업의 유일한 목적이다"(반더린트, ?화폐만능론?, p. 11).) 다시 말해, 가능한 한 최대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협업하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그들의 반항도 증대하며, 또한 이 반항을 억누르기 위한 자본의 압력도 필연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에 의한 통제는 사회적 노동과정의 성질로부터 유래하는 하나의 특수기능일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이 사회적 노동과정을 착취하는 기능이며, 따라서 착취자와 그의 착취 대상{즉, 노동자} 사이의 불가피한 적대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임금노동자에 대해 타인의 소유물로 대립하는 생산수단의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그것이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초과적으로 통제할 필요도 증대한다.(주석 15: 영국의 저급신문인 “스펙테이터?(Spectator) 지는 1866년 5월 26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멘체스터 철사제조회사“에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일종의 공동출자제도(共同出資制度)가 도입된 이후 "첫번째 결과는 재료의 낭비가 갑자기 감소한 사실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다른 기업가의 재산이라면 모르지만 자기 자신의 재산을 낭비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료의 낭비는 아마 악성채무 다음가는 사업상 손실의 최대의 원천이다. " 이 신문은 로치데일 협동조합 실험의 근본적 결함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그 실험은 노동자들의 조합(組合)이 매점이나 공장이나 거의 모든 형태의 산업을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또 노동자들 자신의 상태를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용주들을 위해 빈자리를 남겨 놓지 않았다. " 얼마나 잘못한 짓인가! ) 더욱이 임금노동자들의 협업은 전적으로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에 의해 생긴다. 그들을 단일의 생산체(生産體: productive body)로 통일하고, 그들의 개별 기능들 사이에 하나의 관련을 형성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능력 밖의 일이다. 즉, 그들 자신의 행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만든 자본의 행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다양한 노동 사이의 상호관련은, 관념적으로는 자본가의 계획으로서, 그리고 실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자본가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자본가의 권위, 타인의 강력한 의지로서 그들과 대립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가의 지휘(指揮: direction)는 그 내용에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휘하는 생산과정 자체가 한편으로는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과정(勞動過程)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가치증식과정(價値增殖)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에서는 독재적이다. 협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 독재도 자기의 특유한 형태들을 전개한다. 자본가는, 자기의 자본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개시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도에 도달하자마자, 우선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가는 이제 개별 노동자들과 노동자 집단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독 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노동자들에게 넘겨준다. 군대가 장교와 하사관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본의 지휘 하에 있는 산업노동자집단도 노동과정의 진행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지휘할 장(지배인)과 하사관(십장. 감시자)을 필요로 한다. 감독(監督: supervision)이라는 업무가 그들의 전문기능으로 확정된다. 분산된 농민이나 독립적 수공업자의 생산방식을 노예제도에 의한 농장경영과 비교할 때, 경제학자들은 노예제도의 감독노동을 생산상의 공비(空費)로 계산한다.(주석 16: 케언즈(Cairnes)는 '노동에 대한 감독'을 미국 남부주의 노예제 생산의 하나의 주요 특징이라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 전체를 자신이 갖는 (북부의) 자작농은 노동에 대한 다른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감독이라는 것이 전혀 불필요하다"(케언즈, ?노예의 힘?, pp. 48-49).) 그러나 그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고찰할 때에는 이와 반대로 집단적인 노동과정의 성질로부터 발생하는 지휘 기능과,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따라서 적대적 성격에 의해 필요하게 되는 지휘기능{감독기능}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주석 17: 상이한 생산양식들 사이의 특징적인 사회적 차이점을 통찰하는 데 탁월했던 제임스 스튜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조업 대기업이 개인경영을 몰락시킬 수 있는 이유는, 대기업이 노예노동의 단순성에 더욱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정치경제원리“, 런던, 1767년, 제1권, pp. 167-168).) 산업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본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가이기 때문에 산업의 지도자로 된다. 봉건시대에는 장군. 판사의 기능이 토지소유의 속성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의 지도력은 자본의 속성으로 된다.(주석 18: 그러므로 콩트(Auguste Comte) 및 그의 학파는 자본가들의 영원한 필요성을 실증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봉건영주들의 영원한 필요성을 실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판매를 위해 자본가와 흥정을 끝낼 때까지는 자기 노동력의 소유자이며, 그는 오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 즉 자기의 개인적이고 고립된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자본가가 1명의 노동력이 아니라 100명의 노동력을 구입하며, 그리고 1명이 아니라 서로간에 아무 관련이 없는 100명의 노동자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사실에 의해 조금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는 이 100명의 노동자를 협업시키지 않고서도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가는 100명의 독립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지 100명의 결합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독립한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은 제각각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본가와 관계를 맺지만 자기들 서로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들의 협업은 노동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되는데, 그때에는 이미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과정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자본에 편입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협업자(協業者)로서, 또는 하나의 활동하는 유기체(有機體)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특수한 존재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협업에서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資本)의 생산력(生産力)이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하에 놓일 때는 언제나 무상으로 발휘되며, 그리고 노동자들을
    바로 이러한 조건 하에 놓는 것은 자본이다. 이 생산력은 자본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것이고, 또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에 속하기 전에는 노동자 자신에 의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산력은 자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생산력으로, 자본에 내재하는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단순협업의 엄청난 효과는 고대 아시아인, 이집트인, 에트루리아인 등이 세운 거대한 건물에서 볼 수 있다.

    “과거 이 아시아 국가들은 행정비와 군사비를 충당하고도 생활수단의 잉여를 가지고 있었으므 로, 그것을 호화스러운 건축물을 짓고 유용한 토목공사를 하는 데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축조하는 테 있어 그들은 거의 모든 비농업인구의 노동을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 늘날까지 그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거대한 기념물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비옥한 나일강 유역은....수많은 비농업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했고, 왕과 승려의 소유 하에 있었던 이 식 량은 국토 가득히 거대한 기념비들을 세울 수단을 제공했던 것이다....거대한 석상(石像)들과 대 량의 자재(資材)들이 운송될 때에는-그런 것들을 운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거의 전적으로 인간의 노동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던 것이다....그것을 위해서는 수많은 일꾼들과 그들의 노력의 집중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거대한 산호초가 대해(大海)의 깊은 물 속으로부터 솟아올 라 섬과 육지로 되는 것을 보지만,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침전물(沈澱物)은 보잘 것 없고 미약하고 가소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 왕국의 비농업일꾼들은 개인적인 육체 적 힘 이외에는 그러한 공사에 기여할 만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수가 그들 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큰 무리들을 지휘하는 권력이 [오늘날 남아서 우리들을 놀라게 하고 황 홀하게 만드는] 궁전과 사원과 피라미드와 거대한 석상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일꾼들을 먹여 살릴 만한 수입이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종류의 사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주석 19: 존스 ”국민경제학교과서“, pp. 77-78. 런던 및 기타 유럽의 수도들에 있는 고대 앗시리아, 이집트 등의 수집품들은 우리에게 이러한 협업적 노동과정을 보 여준다.)

    아시아와 이집트의 왕들과 에트루리아의 승려 등의 이와 같은 권력은 근대사회에서는 자본가에게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자본가가 개별 자본가로 등장하느냐 또는 주식회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집단적 자본가로 등장하느냐는 아무래도 좋다.
    [우리가 인류문명의 초기에 수렵민족들(주석 20: 랑게(Linguet)는 자기의?민법이론?에서 수렵을 협업의 최초의 형태며 또 인간사냥(전쟁)을 수렵의 최초의 형태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사이에서 발견하거나, 또는 인도공동체의 농업의 지배적 특징으로 볼 수 있는] 노동과정의 협업은, 한편으로는 생산조건(生産條件)의 공동소유(共同所有)에 입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인이 [마치 개개의 꿀벌이 벌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듯이] 씨족 또는 공동체의 탯줄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에 입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이 협업은 자본주의적 협업과 구별된다. 고대와 중세 및 근대 식민지에서 때때로 이용되는 대규모의 협업은 직접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대부분의 경우 노예제도]에 입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처음부터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에게 판매하는]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전제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소농민적 경영과 독립적 수공업[길드의 형태를 취하든 말든]에 대립해 발전한다.(주석 21: 소규모 농민적 경영과 독립적인 수공업경영은 한편으로 봉건적 생산양식의 토대를 이루며 다른 한편으로 봉건적 생산양식이 해체된 뒤에는 자본주의적 경영과 나란히 나타난다. 또한 그것들은 [토지의 원시적 동양적 공동소유제도가 벌서 해체되었으나 노예제도가 아직 본격적으로 생산을 장악하지 못했던 전성기의 고전적 고대의 공동체의 경제적 토대를 이룬다.) 소농민과 수공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협업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특유한 그리고 독특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
    협업에 의해 발휘되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나듯이, 협업 그 자체도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 또는 소경영주에 의해 수행되는 생산과정과 대립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현실의 노동과정이 자본에 종속될 때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다. 이 변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 동일한 노동과정에 많은 임금노동자를 동시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이 변화의 전제조건이며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은 자본 그 자체의 출현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노동과정을 사회적 과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과정의 이러한 사회적 형태는 자본이 노동의 생산력을 제고함으로써 노동을 더 유리하게 착취하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단순한 형태의 협업은 모든 대규모 생산의 필연적인 부수물이지만, 단순협업(單純協業)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어떤 특수한 발전단계를 특징짓는 하나의 고정적인 형태는 아니다. 단순협업이 기껏해서 대략이나마 위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매뉴팩쳐의 수공업적인 초기에서(주석 22: “같은 일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의 결합된 숙련과 근면과 경쟁심이 그 일을 진척시키는 방법이 아닌가? 그리고 영국은 과연 이 방법에 의하지 않고 양모공업을 그처럼 고도로 완성시킬 수 있었겠는가?"(버클리[Berkeley], ?질문자”, 런던, 1750년, p. 56, 제521절).) 그리고 다음과 같은 종류의 대규모 농업[즉, 매뉴팩쳐 시기에 상응하며 주로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와 집적된 생산수단의 규모에 의해 농민적 경영과 구별되는 대규모 농업]에서였다. 자본이 큰 규모로 사용되기는 하나 분업과 기계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생산부문에서는, 단순협업이 언제나 지배적인 형태였으며 여전히 그러하다. {앞으로 노동분업에 의거한 협업인 매뉴팩쳐와 기계에 의거한 협업인 대공업을 다를 것이다.}
    협업의 단순한 형태는 더욱 발전된 형태들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기본형태다.



    제 14 장
    분업과 매뉴책쳐


    제 1 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원(起源)



    분업(分業: division of labour)에 의거한 협업은 매뉴책쳐(manufacture)에서 그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하나의 특징적인 형태로 [대략 16세기 중엽에서 18세기의 마지막 1/3에 이르는] 진정한 매뉴팩쳐 시대를 통해 지배적이었다.
    매뉴팩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발생한다.
    (1) 여러 종류의 독립적 수공업(獨立的 手工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어떤 하나의 생산물이 완성되기까지는 이들의 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 동일한 자본가의 통제 하에 하나의 작업장(作業場)으로 모이는 경우. 예컨대 이전에는 한 대의 마차는 [수레바퀴 제조업, 마구 제조공, 재봉공, 자물쇠공, 가구공, 선반공, 레이스공, 유리공, 화공, 도장공, 도금공 등] 수많은 독립수공업자들의 노동의 생산물이었다. 그러나 마차 매뉴팩쳐에서는 이들 각종 수공업자들 모두가 하나의 작업
    장에 모여 거기서 미완성품을 이 사람으로부터 저 사람에게로 이전시킨다. 마차의 제작이 끝나기 전에 마차에 도금(鍍金:gild)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여러 대의 마차가 동시에 제작된다면 어떤 것이 생산과정의 앞 단계를 통과하고 있는 동안 다른 어떤 것은 도금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는 아직도 단순협업[단순협업(單純協業)에 필요한 재료들이 인간과 물건의 형태로 준비되어 있데]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재봉공, 자물쇠공, 가구공 등은 이제 마차제작을 전업(專業)으로 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기들의 종전의 수공업을 그 전체적 범위에서 수행하는 습관과 능력을 점차로 잃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전적으로 일면화( 一面化)된 활동이 이러한 협소해진 활동영역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최초에는 마차 매뉴팩쳐는 다양한 독립수공업들이 결합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마차생산은 각종 부분과정들로 세분되었고, 각각의 부분과정은 특정 노동자의 전문 기능으로 고정되었으며, 전체로서의 매뉴팩쳐는 이와 같은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직물 매뉴팩쳐나 다른 모든 매뉴팩쳐들도 한 자본가의 통제 하에 여러 종류의 수공업들을 결합시킴으로써 발생했다.(주석 1: 매뉴팩처의 이와 같은 형성방식의 더욱 근대적인 예를 보여주기 위해 다음의 글을 인용한다. 리용(Lyons)과 님(Nimes)의 견방적 공업과 견직물 공업은 "완전히 가부장제적(家父長制的) 성격을 띠고 있다. 이 공업부문은 많은 여성과 아동을 고용하고 있으나 그들을 과로키거나 타락시키는 일은 없다. 노동자들은 이전대로 드롬, 바르, 이제르, 보클류즈의 아름다운 계곡에 살면서 누에를 치고 고치에서 실을 뽑는다. 그것은 결코 진정한 공장경영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업(分業)의 원칙이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어....여기에서는 필요한 높은 수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 그곳에는 실을 감는 사람, 실을 꼬는 사람, 염색공, 풀먹이공, 또 끝으로 직물공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일한 하나의 작업장에 모여 있지도 않고, 또 동일한 한 사람의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 지도 않다. 그들은 모두가 독립적으로 일하고 있다(블랑키[J. A. Blanqui]), ?산업경제학강의?, 블레이즈[A. Blaise] 편, 파리 1838-39년, p. 79). 블랑키가 이 책을 쓴 이후 이 각종 독립노동자 들은 어느 정도 공장에 통합되었다 {엥겔스: 그런데 마르크스가 이것을 쓴 이후, 이 공장들에서 는 동력직기가 채용되어 급속하게 수직기를 몰아내고 있다. 크레펠트의 견직공업도 이와 같은 것을 체험하고 있다.}
    (2) 매뉴팩쳐는 위와는 반대의 방식으로도 발생한다. 하나의 자본가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는 [예컨대 종이. 활자. 바늘 등을 만드는] 수많은 수공업자들을 동시에 동일한 작업장에 고용한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이다. 이 수공업자들은 각각 (아마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의 도제(徒弟)와 더불어) 하나의 완전한 상품을 만들며, 따라서 그 상품의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차례차례 수행한다. 그는 여전히 자기의 종전의 수공업적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부사정 때문에, 동일한 장소에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그들의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게 된다. 예컨대 일정한 기일 안에 더 많은 양의 완성상품을 공급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고 하자. 이를 위해 작업이 분할된다. 동일한 수공업자에게 다양한 여러 가지 작업을 차례차례 시키는 대신 그 작업들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고 공간적으로 병립(竝立)시켜 각각의 작업을 서로 다른 수공업자에게 할당한다. 그리하여 전체 작업이 협업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동시에 수행된다. 이와 같은 우연적인 분할이 반복되고 그 자체의 장점을 전개하면서 점차 체계적인 분업으로 고착되다. 상품은[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하나의 독립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個人的 生産物)로부터 [각자가 언제나 단 한 가지의 부분작업만을 수행하는] 수공업자 연합체의 사회적 생산물(社會的 生産物)로 된다. 독일 길드에 속하는 제지업자의 경우에는 하나의 수공업자의 일련의 순차적 작업들이, 네덜란드의 제지 매뉴팩쳐에서는 다수의 협업노동자들이 동시에 나란히 수행하는 수많은 부분작업으로 독립되어 있다. 뉴렘베르크의 길드적 제침업(製針業: needlemaker)은 영국 제침매뉴팩쳐의 토대가 되었는데, 뉴렘베르크의 제침수공업자는 아마 20가지나 되는 일련의 작업을 하나씩 차례차례로 수행하지만, 영국의 제침매뉴팩쳐에서는 얼마 전부터 20명의 수공업자 각각이 20가지의 작업중 한 가지만을 수행하되 모두가 동시에 작업한다.이러한 작업들은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한층 더 세분되고 고립되며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되어 개별 노동자들의 전문 기능으로 되었다.
    매뉴팩쳐의 발생 방식(發生 方式), 수공업으로부터의 생성은 이와 같이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각종의 독립적 수공업의 결합(結合)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이 경우 독립적 수공업은 그들의 독립성을 상실해 [하나의 특수한 상품의 생산에서 상호보완적인 부분작업으로 전환되어 버릴 정도로] 전문화(專門化)한다. 다른 한편, 매뉴팩쳐는 같은 종류의 수공업자들의 협업(協業)으로부터 발생한다. 이 경우 매뉴팩쳐는 그 수공업을 여러 가지의 부분작업들로 분해하고 고립화시켜, 이 부분
    작업들이 각각 한 노동자의 전문 기능으로 될 정도로까지 독립화한다. 그러므로 매뉴팩쳐는 한편으로는 생산과정에 분업(分業)을 도입하거나 분업을 한층 더 발전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수공업을 결합(結合)시킨다. 그러나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든 그 최종적 형태는 항상 동일하다. 즉, 인간을 그 기관(器官: organ)으로 하는 생산 메커니즘이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생산과정을 그 특수국면으로 분할하는 것은, 수공업을 각종 부분작업으로 분할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 작업이 복잡한 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각각의 작업은 언제나 손으로 수행하고, 수공업적 성격을 보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작업은 각 노동자가 자기의 도구를 사용할 때 발휘하는 힘과 기교와 민첩성과 정확성에 의존한다. 수공업이 여전히 그 토대며, 그 기술적 토대가 협소하기 때문에 생산과정을 그 구성부분들로 과학적으로 분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생산물이 통과하는 각각의 부분과정은 손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독립된 수공업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공업자의 숙련이 여전히 생산과정의 토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각 노동자는 오로지 하나의 부분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고, 그의 노동력은 이 부분 기능의 평생의 기관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둘째, 이 분업(分業)은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협업(協業)이며, 그것의 이점 중 많은 것은 협업 일반의 성질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협업의 이 특수한 형태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제2절 부분노동자와 그의 도구



    더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우선 명백한 것은, 일생 동안 하나의 동일한 단순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자기의 신체를 그 작업을 위한 자동적이고 일면화된 도구(道具)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작업을 하는 데 있어 그는 작업 전체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수공인(手工人: artisan)보다 적은 시간을 소비한다. 매뉴팩쳐의 살아 있는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적 노동자는 순전히 이와 같이 일면적으로 전문화된 부분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립적 수공업에 비해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이 생산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성이 제고된다.(주석 2: “다양한 작업과정들이 분할되어 서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할당되면 될수록, 동일한 작업이 그만큼 더 적은 시간과 노동으로도 더 훌륭하고 빠르게 수행된다"(?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 런던, 1720년, p. 71).) 더욱이 이 부분노동이 한 사람의 전문 기능으로 확립되면 부분노동의 방법도 개선된다. 동일한 단순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그 작업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힘을 가장 적게 들여 일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세대들이 어떤 일정한 상품의 매뉴팩쳐 안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체득한 기술과 작업요령은 확립되고 축적되며 또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주석 3: "노동이 쉬워지는 것은 이어져 내려 온 기능 때문이다"(호지스킨[T. Hodgskin],?대중경제학?, 런던, 1827년, p. 48).)
    매뉴팩쳐는 [이미 사회에 존재하던] 직업의 자연발생적 분화를 작업장 안에서 재생산하고 또 그것을 체계적으로 끝까지 추천함으로서 부분노동자들의 숙련(熟練)을 생산해 낸다. 다른 한편으로매뉴팩쳐가 부분노동을 한 사람의 평생의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은[이전의 사회들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의 세습화(世襲化) 경향에 상응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직업이 카스트{인도의 세습적 신분}로 화석화되었거나, 또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이 개인에게 카스트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변화를 낳는 경우] 직업이 길드로 굳어버렸다. 카스트나 길드는 [동식물의 종(種)이나 아종(亞種)으로의 분화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자연법칙의 작용으로부터 발생하지만, 그 차이점은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카스트의 세습성(世襲性)과 길드의 배타성(排他性)은 사회의 법칙으로 확립된다는 점이다.(주석 4: "기술도 이집트에서는....상당한 정도 발달했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수공업자가 다른 시민계급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고, [법률에 의해 세습화된] 자기의 직업에만 종사해야 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산업종사자들이 주의를 너무나 많은 대상으로 분산시키는 것을 본다. 그들은 어떤 때는 경작을 하고, 어떤 때는 상업에 종사하며, 어떤 때는 동시에 두 세 가지 일에 관계하기도 한다.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그들은 흔히 대중집 회에 참석한다....이와는 반대로, 이집트에서는 수공업자가 국가의 일에 개입하거나 한꺼번에 몇 가지 일에 종사하면 엄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그들이 자기의 직업에 열중하는 것 을 방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그들은 선조로부터 수많은 직업상의 비법(秘法)들을 전승받고 있 으며 또 새로운 개선점들을 발견해 내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os Siculus], ?역사문고?, 제1부, 제74장).)

    "다카에서 생산되는 모슬린 {얇고 부드러운 모직물}은 그 섬세한 점에서, 또 코로만델에서 생 산되는 캘리코{옥양목}와 기타의 직물은 그 색채가 화려하고 오래간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최고 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본도 기계도 분업도 없이 생산되며, 또 [유럽의 제조업에 그처럼 많은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들 중 어느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생산된다. 직포공은 단독의 개인으로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조하는데, 사용하는 기계라고는 몇 개의 나뭇가지나 막대기로 엉성하게 얽은 가장 단순한 구조의 직기(織機)이다. 그 직기에는 심지어 날실을 감아두는 장치조차 없으 며, 따라서 직기는 언제나 그 전체 길이대로 늘어놓아야 하고, 생산자의 오두막 안에는 놓을 수 도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생산자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을 해야 되는데, 날씨가 변할 때 마다 일을 중단하게 된다. "(주석 5: 머리(Hugh Murray), 월슨(James Wilson) 등, “영령인도에 관한 역사적 개관”, 에딘버러, 1832년, 제2권, pp. 449-450. 인도의 직기는 직립식(直立式)이다. 즉, 날실(經絲)이 수직으로 뻗는다).

    대대로 축적되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진해지는 독특한 기능이 이 인도인들에게 [거미와도 같은] 기교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도 직포공의 작업은 대다수 매뉴팩쳐 노동자들의 작업에 비해 대단히 복잡하다.
    하나의 완성품의 생산에서 여러 가지 부분과정을 혼자 차례차례 수행하는 수공인은 때로는 장소를 이동해야 하고 때로는 도구를 바꾸어야 한다. 어떤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기는 것은 그의 노동의 흐름을 중단시키며, 그의 노동일(勞動日)에 이를테면 틈을 만들어낸다. 그가 하루 종일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계속한다면 이러한 틈은 좁아질 것이며, 또 그의 작업 전환이 감소하는 것에 비례해 그 틈은 없어진다. 이 경우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 상승은 주어진 시간 안의 노동력 지출의 증대[즉, 노동강도의 강화]에 기인하든가, 또는 노동력의 비생산적 소비의 감소에 기인한다. 즉, 정지(停止,)에서 운동(運動)으로 이행할 때마다 필요했던 힘의 추가적 지출은 I한 번 도달한 표준속도의] 작업의 계속시간이 연장되는 것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
    로,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은 노동자의 긴장감과 활기를 약화시키는데, 그것은 활동의 전환(轉換) 자체에 의해 조성되는 기분전환과 자극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자의 숙련(熟練)뿐 아니라 그의 도구(道具)의 질에도 달려 있다. 칼. 천공기. 송곳. 망치 등의 도구들이 서로 다른 노동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같은 도구들이 동일한 노동과정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노동과정의 서로 다른 작업들이 서로 분리되고 각각의 부분작업이 [부분노동자의 손에 맞는] 특색있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이전에는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되던 도구들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도구의 이와 같은 형태변화의 방향은, 종래의 도구가 노동자에게 어떤 곤란을 주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매뉴팩쳐의 특징은 노동도구의 분화(分化)와 특수화(特殊化)인데, 노동도구의 분화에 의해 도구가 특수한 용도에 맞는 형태로 고정되며, 노동도구의 특수화에 의해 각각의 특수한 도구들은 특수한 부분노동자의 손에서만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버밍엄에서만도 약 500종에 달하는 망치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그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하나의 특수한 노동과정에만 사용될 뿐 아니라 가끔 여러 가지 망치들이 하나의 동일한 노동과정에서 상이한 작업들에 사용된다. 매뉴팩쳐시대는 노동도구를 각 부분노동자들의 전문적인 특수기능에 적합하게 만듦으로써 그것을 단순화하고 개량하며 다양하게 한다.(주석 6: 다윈은 그의 획기적인 저서 ?종(種)의 기원(起源)?에서 동식물의 자연적 기관(器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일한 기관이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나의 특수한 목적에만 봉사해야 되는 경우에 비해 자연도태가 형태상의 작은 변이(變異)를 덜 세밀하게 보존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그 기관은 변하기 쉽다 예컨대 여러 가지 종류의 물건을 베는 데 쓰이는 칼은 거의 온갖 형태를 가질 수 있으나, 어떤 한 가지 용도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는 특수한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또한 이 시대는 [다수의 간단한 도구들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기계의 출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의 하나를 창조한다.
    부분노동자(部分勞動者)와 그의 도구(道具)는 매뉴팩쳐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이다. 이제 우리는 매뉴팩쳐의 전체 모습을 보도록 하자.



    제 3 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본형태
    이질적 매뉴팩쳐와 유기적 메뉴팩쳐



    매뉴팩쳐의 편제(編制)에는 두 가지 기본형태가 있는데, 이들은 때로는 서로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이며, 더욱이 매뉴팩쳐가 기계에 의한 근대적 공업으로 전환될때 전혀 상이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매뉴팩쳐의 두 형태는 생산되는 제품의 성질-즉, 그 제품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의 단순한 기계적 조립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또는 그 완성형태가 상호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조작에 의해 주어지는가-로부터 발생한다.
    예컨대 한 대의 기관차는 5,000개 이상의 독립적인 부품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것은 대공업의 생산물이므로 진정한 매뉴팩쳐의 첫번째 종류의 실례로 들 수는 없다. 그러나 시계(時計)라면 그 실례로 적합하다. 월리엄 페티도 일찍이 매뉴팩쳐적 분업을 설명하기 위해 시계를 예로 들었다. [옛날에는 뉴렘베르크의 한 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이었던1]시계는 다음과 같은 무수한 부분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물로 전환되었다. 즉, 큰 태엽 제조공, 지침반 제조공, 나선형 용수철 제조공,
    보석 박을 구멍을 뚫는 사람, 루비로 된 레버 제조공, 시계바늘 제조공. 시계케이스 제조공, 나사못 제조공, 도금공. 그리고 이들에 부속되어 있는 많은 세부구분이 있다. 예컨대 톱니바퀴 제조공(놋쇠 톱니바퀴와 강철 톱니바퀴는 각각 별도로 만들어진다), 시계핀 제조공, 시계추 제조공, 연동장치 완성공(톱니바퀴를 축에 고정시키고 자른 면을 간다), 추축제조공, 조립공(각종 톱니바퀴와 나사들을 제자리에 맞추어 놓는다), 끈, 태엽바퀴 완성공(바퀴에 톱니를 만들고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는다), 지동기(止動機: escapement) 제조공, 실린더 지동기인 경우에는 실린더 제조공, 지동륜(止動輪) 제조공, 평형륜 제조공, 완급침(시계의 진행속도를 조절하는 장치) 제조공, 지동기 설치공(진정한 지동기 제조공), 다음에는 태엽통 완성공, 강철 연마공, 톱니바퀴 연마공, 나사못 연마공, 문자 기입공, 에나멜공(구리에 에나멜칠을 한다), 용두(龍頭) 제조공(시계 케이스의 용두고리만을 만든다), 접철(接鐵) 완성공(시계 케이스의 접철에 놋쇠 축을 꼽는다), 뚜껑 스프링 장치공(뚜껑이 열리게하는 스프링을 시계 케이스에 붙인다), 조각공, 시계케이스 연마공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계 전체를 최종적으로 조립해 시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완성공(完成工). 시계의 부품 중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으며, 이 모든 분산된 부품들은 [그것들을 하나의 기계적 전체로 결합시키는] 한 사람의 손으로 집합된다. 완성된 생산물과 그 다종다양한 구성요소들 사이의 이와 같은 외적인 관계는, 시계 생산의 경우 [이와 유사한 다른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부분노동자들이 동일한 작업장 안에 함께 모이는 것을 우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세분화된 작업들은 스위스의 보(Vaud)주와 누샤텔(Neuchatel)주에서처럼 개별적인 독립적 수공업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제네바에는 대규모의 시계 매뉴팩쳐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부분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협업(協業)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도 지침반, 태엽 및 케이스는 매뉴팩처 자체에서 만들지 않는다. 시계공업의 경우 노동자들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매뉴팩쳐적 제작방식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유리하다. 왜냐하면, 자기 집에서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따라서 그들이 만드는 부품의 가격을 인하할 수 있고}, 수많은 이질적 과정으로의 작업의 분할은 노동도구의 공동이용을 허용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또 자본가는 작업을 분산시킴으로써 작업용 건물 등에 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주석 7: 1854년 제네바는 8만 개의 시계를 생산했으나, 이것은 누샤텔주의 시계생산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나의 거대한 시계 매뉴팩쳐라고 볼 수 있는 쇼-드-폰이 매년 제네바의 2배의 시계를 생산하고 있다. 1850년부터 1861년까지 제네바는 72만 개의 시계를 생산했다. “상공업 등에 관한 영국 공사관 서기관 보고서?, 제6호, 1863년 중의 '시계업에 관한 제네바로부터의 보고'를 보라. 부품들을 조립해 만들어 내는 제품의 생산이 여러 과정들로 분할되어 있으면서도 그 과정들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매뉴팩쳐를 기계제 대공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런데 시계의 경우에는 이밖에도 두개의 다른 장애가 첨가된다. 즉, 시계의 부품들이 아주 작고 섬세하다는 것, 그리고 또 시계는 사치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종류가 매우 다양해, 예컨대 런던의 최고급 시계제조소에서는 1년 내내 같은 모양의 시계가 12개도 제조되지 않는다. 기계의 사용에 성공하고 있는 바세른 앤드 콘스탄틴 시계공장은 크기와 형태에서 기껏해야 3-4종의 시계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록 자기 집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자본가(제조업자, 기업가)를 위해 노동하는 이 부분노동자들의 지위는 자기 자신의 고객을 위해 노동하는 독립수공업자의 지위와는 전혀 다르다. (주석 8: [이질적 매뉴팩쳐의 전형적인 예인] 시계제조업에서, 우리는 [수공업적 작업의 분할로부터 발생하는] 노동도구의 분화(分化)와 특수화(特殊化)를 매우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다.)
    매뉴팩처의 두번째 종류[즉, 그것의 완성형태]는 서로 연관된 전후 단계들을 통과하는 [즉, 일련의 과정들을 한 단계씩 차례차례 통과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예컨대 바늘 매뉴팩쳐에서 철사는 72명, 때로는 심지어 92명의 특수한 부분노동자의 손을 통과한다.
    이러한 매뉴팩쳐가 원래는 분산되어 있던 수공업들을 결합시키는 한, 그것은 [여러 생산단계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있던] 공간적 거리를 단축시킨다. 그와 동시에 제품이 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단축되며, 이 이동을 매개하는 노동도 절약된다.(주석 9: "사람들이 그와 같이 밀집해 일하는 곳에서는 운반은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 p. 106).) 그리하여 수공업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증대되는데, 이러한 증대는 매뉴팩쳐의 일반적인 협업적(協業的) 성격에서 생긴다. 다른 한편으로, 매뉴팩쳐의 특유한 원칙인 분업(分業)은 상이한 생산단계들의 고립화와 상호독립화를 요구한다. 고립화된 기능들 사이의 관련을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한 과정으로부터 다른 과정으로 제품이 끊임없이 운반될 필요가 있다. 대공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특징적이고 비용이 드는, 그리고 또 매뉴팩쳐의 원칙에 내재하는, 약점이다.(주석 10: "손노동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 매뉴팩쳐의 서로 다른 생산단계들의 고립화는 생산비를 매우 높이는데, 이 손실은 주로 한 과정으로부터 다른 과정으로의 운반 때문에 생긴다"(?국민의 산업?, 런던, 1855년, 제2부, p. 200).)
    어떤 일정한 양의 원료[예컨대 제지 매뉴팩쳐의 넝마나 바늘 매뉴팩쳐의 철사]에 우리의 관심을 국한시키면, 그것은 [최종적 형태로 완성될 때까지] 다양한 부분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일련의 생산단계를 차례차례로 통과한다. 이와는 반대로 작업장 전체를 보면, 원료는 생산의 모든 단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많은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되고 있는] 집단적 노동자는 어떤 한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하나의 손으로 철사를 뽑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다른 손으로 이 철사를 곧게 펴고, 또 다른 손으로 그것을 끊으며, 또 다른 손으로 그 끝을 뾰족하게 하는 등의 일을 한다. 이전에는 시간상 차례차례로 수행한 서로 다른 부분과정들이 이제는 공간상 병행해서 동시에 수행된다. 그러므로 동일한 기간에 더 많은 완성품이 생산된다.(주석 11: "그것"(분업)"은 한 가지 일을 서로 다른 부분작업으로 분할해 그 부분작업이 모두 동시적으로 수행될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한다....개인의 경우에는 하나씩 수행해야만 했을 상이한 노동과정 전체를 한꺼번에 수행함으로써, 혼자서 한다면 겨우 단 한 개의 핀을 절단하거나 그끝을 뾰족하게 만들 수 있었을 뿐인 시간에 수많은 완성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듀갈드 스튜어트[Dugald Stewart], ?정치경제학강의“, 해밀턴[W. Hamilton] 편, ?저작집?. 에딘버러, 제8권, 1855년, p. 319).) 이 동시성(同時性)이 총과정의 일반적 협업형태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뉴팩쳐는 협업의 기존의 조건들을 이용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수공업적 노동을 다시 세분화함으로써 협업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매뉴팩쳐는 각각의 노동자들을 단 한가지의 세부작업에 결박해 둠으로써만 노동과정의 사회적 조직을 이룩한다.
    각각의 부분노동자의 부분생산물은 동시에 하나의 동일한 완성품의 하나의 특정의 진행단계에 지나지 않으므로, 각각의 노동자[또는 노동자집단]는 다른 노동자[또는 노동자집단]에게 원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한 노동자의 노동의 결과는 다른 노동자의 노동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하여 한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에게 직접 일거리를 주고 있다. 각 부분과정에서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은 경험에 의해 확정되며, 그리하여 매뉴팩쳐의 메커니즘 전체는 일정한 노동시간 안에 일정한 결과가 달성될 것이라는 전제에 의거하고 있다. 오직 이 전제 하에서만 상호보완적인 각종 노동과정은 동시에 병행해 중단없이 수행될 수 있다. 개별 작업들 [그리고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직접적 상호의존성이 각각의 노동자로 하여금 자기의 작업에 필요시간만을 지출하도록 강요하며, 그 결과 [독립적 수공업에서나 단순협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동의 연속성. 일률성. 규칙성. 질서(주석 12: “매뉴팩쳐에서 일하는 수공인(手工人)들의 종류가 다양하면 할수록....각각의 작업의 질서와 규칙성은 그만큼 더 증대하며, 동일한 작업이 더 적은 시간에 수행되고 노동은 더 적게 든다"(?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 런던, 1720년, p. 68).) 그리고 특히 노동의 강도(强度)가 생긴다. 어떤 한 상품의 생산에 지출되는 노동시간은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은 상품생산 일반에서는 경쟁의 외적 강제로 나타나며, 이 법칙을 피상적으로 표현한다면, 개별 생산자는 누구든지 자기의 상품을 시장가격으로 판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뉴팩쳐에서는 일정한 노동시간에 일정한 양의 생산물을 생산한다는 것이 생산과정 그 자체의 기술적 법칙(技術的 法則)으로 된다.(주석 13: 그러나 많은 산업부문에서 매뉴팩쳐제도는, 생산과정의 일반적인 화학적. 물리적 조건들을 정확히 통제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매우 불완전하게만 달성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작업에 드는 시간은 서로 같지 않으며, 따라서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양의 부분생산물이 생산된다. 그러므로 같은 노동자가 날마다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면, 각각의 작업에는 상이한 수의 노동자가 고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어떤 활자 매뉴팩쳐에서 주자공(鑄字工: founder)에 한 사람은 한 시간에 활자(活字) 2,000개를 주조하고, 절단공(切斷工) 한 사람은 4,000개를 끊고, 연마공(硏磨工) 한 사람은 8,000개를 연마한다면, 이 매뉴팩쳐에서는 연마공 I명에 대해 주자공 4명과 절단공 2명이 고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동일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 않은 사람의 동시취업(同時就業)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원칙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이제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뉴팩쳐제도하의 분업은 사회의 집단적 노동자의 질적으로 상이한 부분들을 단순화시키고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이 부분들의 양적 규모를 규정하는 고정된 수학적 비율[즉, 각각의 전문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수 또는 노동자그룹의 상대적 크기]도 만들어 낸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사회적 노동과정의 질적 편성과 더불어 그 과정의 양적 규칙 및 비례성(比例性)까지도 발전시킨다.
    일정한 생산규모에서 각 집단간 부분노동자 수의 가장 적합한 비율이 경험적으로 일단 확정되면, 생산규모는 오직 각 개별집단 노동자수의 배수(倍數)를 고용함으로써만 확대될 수 있다.(주석 14: "(각 매뉴팩쳐 생산물의 특수한 성질에 따라) 가장 유리하게 분할할 수 있는 작업 과정의 수 와 각 작업과정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가 알려진다면, 이 숫자의 정확한 배수를 고용하지 않는 매뉴팩쳐는 제품의 생산에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될 것이다....이것은 매뉴팩쳐들이 대규모로 확 대되는 원인들 중의 하나이다"(배비지[C. Babbage], ?기계의 경제에 대해?, 런던, 1832년, 제 21장, pp. 172 -173).) 여기서 덧붙여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어떤 종류의 작업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동일한 개인에 의해 마찬가지로 잘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감독(監督)이라는 노동이나 부분생산물을 한 생산단계에서 다른 생산단계로 운반(運搬)하는 노동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능을 분리시켜 특정한 노동자에게 할당하는 것은 사용노동자의 수가 증가할 때에만 비로소 유리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증가는 각각의 노동자집단에게 비례적으로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어떤 특정한 전문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각각의 노동자집단은 동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메커니즘의 하나의 특수 기관(器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많은 매뉴팩쳐에서는 노동자집단 자체는 하나의 편성된 노동조직이고 전체 메커니즘은 이러한 기본적 생산 유기체의 중복 또는 배가(倍加)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한 예로 유리병 매뉴팩쳐를 보자. 그것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첫째는 준비단계로, 유리의 구성요소들을 준비하고, 모래와 석회 등을 혼합하고, 이 혼합물을 유동상태의 유리액으로 용해(溶解)한다.(주석 15: 영국에서는 용해로가 유리의 가공에 사용되는 유리로(glass furnace))와 상이하나, 벨기에에서는 동일한 하나의 노(爐: furnace)가 두 과정 모두에 사용되고 있다.) 이 첫째 단계에서 각종 부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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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5
    잉여가치율의 증대에 의해 보상하는 것의 절대적 한계, 또는 착취되는 노동자 수의 감소를 노동력의 착취도의 제고에 의해 보상하는 것의 절대적 한계를 이루고 있다. 이 자명한 제2법칙(第二法則)은 이후에 전개되는 자본의 경향, 즉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즉,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가변적 자본부분]를 가능한 한 축소시키려는 자본의 경향-이것은 가능한 한 많은 잉여가치량을 생산하려는 자본의 또 다른 경향과 모순된다-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중요하다. 다른 한편, 만약 고용되는 노동력의 양[즉, 가변자본의 크기]이 잉여가치율이 감소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증대하지 못한다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감소할 것이다.
    제3법칙(第三法則)은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이 잉여가치율과 투하 가변자본량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만약 잉여가율[노동력의 착취도]과 노동력의 가치(필요노동시간)가 주어져 있다면, 가변자본이 크면 클수록 생산되는 가치량과 잉여가치량도 더 커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만약 노동일의 한계가 주어져 있고 또 필요노동부분의 한계도 주어져 있다면, 개별 자본가가 생산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양은 전적으로 그가 움직이는 노동량(勞動量)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노동량은 앞의 가정 하에서는 그가 착취하는 노동력의 양 또는 노동자의 수에 의해 결정되고, 이 수는 또한 그가 투하하는 가변자본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잉여가치율이 주어져 있고 또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는 경우,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투하가변자본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자본가는 자기의 자본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한 부분을 그는 생산수단(生産手段)에 지출한다. 이것은 그의 자본의 불변부분이다. 다른 부분을 그는 살아 있는 노동력(勞動力)에 지출한다. 이 부분은 그의 가변자본을 형성한다. 동일한 생산방식(生産方式) 하에서도 생산부문(生産部門)이 다르면 불변부분과 가변부분으로
    의 자본의 분할도 달라지며, 통일한 생산부문에서도 생산과정의 기술적 토대와 사회적 결합이 달라짐에 따라 그것은 달라진다. 그러나 주어진 자본의 불변부분과 가변부분 사이의 비율이 어떻든 [즉, 1 : 2이든 1 : 10이든 1 : x이든] 바로 앞에서 정립한 법칙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의 분석에 의하면, 불변자본의 가치는 비록 생산물의 가치 속에 재현(再現)되기는 하지만 새로 생산되는 가치[즉, 새로 창조되는 가치생산물(價値生産物)] 속에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1,000멍의 방적공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물론 100명의 방적공을 고용할 때보다 더 많은 원료. 방추 등이 요구되지만, 이 추가적인 생산수단의 가치는 [등귀할 수도 하락할 수도 불변일 수도, 또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생산수단을 가동시키는 노동력에 의해 수행되는 가치증식과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서 확인된 법칙{제3법칙}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즉, 상이한 자본에 의해 창조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양은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고 노동력의 착취도가 같은 경우] 이들 자본의 가변부분의 크기[즉, 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이 법칙은 현상(現象)의 외관에 의거한 모는 경험 {평균이윤율(平均利潤率)의 형성}과는 분명히 모순된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사용되는 총자본에 대한 백분율을 고찰하면, [많은 불변자본과 적은 가변자론을 사용하는] 방적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가변자본과 적은 불변자본을 사용하는] 빵제조업자보다 더 적은 이윤[잉여가치]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외견상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매개항(媒介項)이 필요한데, 그것은 마치 0/0이 현실적인 크기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등 대수학(代數學)의 입장에서는 많은 매개항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고전파 경제학은 비록 이 법칙 {제3법칙}을 정식화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이 법칙을 고수했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가치법칙의 필연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고전파 경제학은 무리한 추상(抽象)에 의해 이 법칙을 현상의 모순으로부터 구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리카도학파가 어떻게 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가는 나중에(주석 2: 이에 대해서는 제4권 {“잉여가치학설사”제20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보게 될 것이다. '사실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속류경제학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현상을 규제하고 설명하는 법칙(法則)을 무시하고, 그와는 반대로 현상(現象)의 외관에 매달리고 있다. 스피노자와는 반대로, 속류경제학은 "무지(無知)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신(神) 이외에는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신이 그 현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스피노자는 "무지는 결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총자본이 매일 움직이는 노동은 하나의 단일노동일(單一勞動日)로 간주할 수 있다. 만약 예컨대 노동자의 수가 100만이고 한 노동자의 평균노동일이 10시간이라면, 사회적 노동일은 1,000만 시간으로 된다. 한 노동자의 평균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져 있는 경우-그 한계가 육체적 조건에 의해 설정되건 사회적 조건에 의해 설정되건-잉여가치량은 오직 노동[즉, 노동인구]의 증가에 의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이 경우 인구의 증가는 사회적 총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생산의 수학적 한계로 된다. 반대로 인구의 크기가 주어져 있는 경우, 이 한계는 노동일 연장의 가능성에 의해 규정된다.(주석 3: "사회의 노동[즉, 경제적 시간]은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인구 100만이 하루에 각각 10시간씩 노동하면 합계 1,000만 시간으로 되는 것과 같다. 자본의 증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어떤 주어진 시기에도] 사용되는 경제적 시간(時間)의 현실적 범위 안에 있다.(“국민의 정치 경제학에 관한 연구”, 런던, 1821년, pp. 47, 49).) 다음 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법칙은 오직 지금까지 고찰한 형태의 잉여가치 {절대적(絶對的) 잉여가치}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잉여가치의 생산에 관한 이때까지의 고찰로부터 명백하게 되는 것처럼, 어떤 임의의 화폐액 또는 가치액이 모두 자본으로 전환될 수는 없고, 일정한 '최소한도'의 화폐 또는 교환가치가 개별적인 화폐소유자 또는 상품소유자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 가변자본의 최소한도는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 1년 내내 고용하는 1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다. 만약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노동자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면, 그는 자기의 생활수단의 재생산에 필
    요한 노동시간(이를테면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면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필요로 하는 생산수단도 역시 8노동시간분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 노동자로 하여금 이 8시간 이외에 이를테면 4시간의 잉여노동을 하게 하는] 자본가는 추가적 생산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적 화폐액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 하에서는, 자본가가 매일 취득하는 잉여가치로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다시 말해 자기의 필수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기 위해서도, 벌써 두 사람의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 한 사람이 4시간의 잉여노동을 제공하기 문에, 노동자 두 사람은 8시간의 잉여노동을 제공하며, 따라서 8시간의 노동은 노동자의 필요노동과 동일하다.} 이 경우 그의 생산의 목적은 단순한 생활의 유지이고 부의 증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부(富)의 증가를 전제하고 있다. 그가 보통의 노동자보다 겨
    우 2배 낮게 생활하며, 또 생산된 잉여가치의 절반을 자본으로 재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그는 노동자의 수와 투하자본의 최소한도를 8배로 증가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32시간의 잉여노동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몸소 자기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직접 생산과정에 참가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는 경우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혼혈아, 즉 '소경영주(小經營主)'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자본가는 자본가로서 [즉,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시간 전체를 타인노동의 취득과 관리, 그리고 노동생산물의 판매에 바쳐야 한다.(주석 4: "차지농업가는 자기 자신의 노동에 의지할 수 없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한다면 그는 손해를 볼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이다. 그는 탈곡하는 사람을 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탈곡되지 않은 곡물 때문에 임금이 그의 손실로 될 것이다. 또 그는 풀을 베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등을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항상 자기의 농장 구내를 순회해야 하며, 태만이 생기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만약 그가 어떤 한 장소에 매달려 있으면, 태만이 생길 것이다"(?식량의 현재가격과 농장규모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 한 농장주?아버노스트“, 런던, 1773년, p. 12). 이 책은 대단히 흥미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자본가적 차지농업가' 또는 '상인적 차지농업가'의 발생사를 연구할 수 있고, [생계유지를 주로 하는] '소농장주'에 대비한 그들의 자기 찬양을 들을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육체노동의 필요성으로부터 해방된다"(리처드 존스[Richard Jonse], ?국 민경제학교과서?, 허트포드, 1852년, 제3강의, p. 39).) 중세의 길드제도는 개별 장인{마스터}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 수의 최대한도를 매우 적은 수로 제한함으로써 수공업적 장인이 자본가로 전환되는 것을 강제로 저지하려 했다. 화폐소유자 또는 상품소유자는 [생산을 위해 투하하는 최소금액이 중세의 최대한도를 훨씬 초과하게 될 때]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본가로 전환된다. 여기에서도 자연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헤겔이 자기의 ?논리학?에서 발견한 법칙, 즉 단순한 양적(量的) 차이가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질적(質的) 차이로 이행한다는 법칙의 정당성이 증명되고 있다.(주석 5: 로랑(Laurent)과 제라르(Gerhardt)에 의해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전개된 대화학의 분자설(分子 設)은 바로 이 법칙에 입각하고 있다 {엥겔스: 화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어렴풋 한 이 주(注)의 설명을 위해 다음의 것을 지적해 둔다. 마르크스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1843 년에 C. 제라르가 처음으로 명명한 탄소화합물의 '동족열(同族列)'에 관한 것인데, 각 계열은 각각 특유의 대수적(代數的) 구조식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파라핀 계열은 CnH2n+2이고, 표준 적인 알코올의 계열은 CnH2n+O이고, 표준적인 지방산의 계열은 CnH2nO2등등. 이들 예에서는 분자식에 CH2를 단순히 양적으로 추가하면 그때마다 질적으로 상이한 물체가 형성된다. 이 중 요한 사실의 확정에서(마르크스의 과대한 평가를 받은) 롤랑과 제라르의 기여에 관해서는 코프 (Kopp)의 ?화학의 발달?(윈헨, 1873년, pp. 708, 716)과 숄렘머(Schorlemmcr)의 ?유기화학의 성립과 발달?(런던, 1879년, p. 54)를 참조하라.})
    개별적인 화폐소유자 또는 상품소유자가 자본가로 전환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가치액의 최소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단계 에 따라 달라지며. 또 주어진 발전단계에서도 생산분야가 다르면 각 분야의 특수한 기술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생산분야들은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의 초기에 각 개인의 수중에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최소한도의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이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콜베르(Colbert)시대의 프랑스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독일주들처럼 국가가 개인들에게 보조금을 주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공업부문과 상업부문의 경영에 법률상의 독점권(獨占權)을 갖는 회사(주석 6: 이런 종류의 회사를 루터(Martin Luther)는 '독점회사'라고 부른다.) -근대적 주식회사의 선구자-가 설립되었다.
    우리는 생산과정의 진행 중에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상세한 내용들은 더 이상 취급하지 않겠으며, 따라서 자본 그 자체의 특성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몇 가지 요점만을 강조해 둔다.
    생산과정의 내부에서 자본은 노동[즉, 활동중에 있는 노동력 또는 노동자 그 자체]을 지휘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인격화된 자본인 자본가는 노동자가 자기의 일을 규칙적으로 또 상당한 강도를 가지고 수행하도록 감시한다.
    더 나아가, 자본은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 자신의 좁은 범위의 욕망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게끔 하는] 강제적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타인으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만들고, 잉여노동을 짜내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은 그 정력과 탐욕과 능률의 면에서 [직접적인 강제노동에 입각한] 종전의 모든 생산제도를 능가한다.
    자본은 우선 역사적으로 현존하는 기술적 조건을 그대로 이용해 노동을 자기에게 예속시킨다. 따라서 자본은 즉시로 생산방식을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때까지 고찰해 온 형태의 잉여가치의 생산[즉, 노동일의 단순한 연장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은 생산방식 그 자체의 어떤 변화와도 관계없이 나타났다. 이러한 잉여가치의 생산은 구식 빵제조업에서나 근대적 면공장에서나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생산과정을 단순한 노동과정의 입장에서 고찰한다면, 노동자는 생산수단(生産手段)을 자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합목적적인 생산활동의 단순한 수단 및 재료(材料)로 대한다. 예컨대 가죽공장에서 그는 가죽을 단순히 자기의 노동대상(勞動對象)으로 취급한다. 그가 무두질하는 것은 자본가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산과정을 가치증식과정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사정은 달라진다. 생산수단은 즉시 타인의 노동을 흡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한다. 더 이상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한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자기의 생산활동의 소재적 요소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노동자를 자기 자신의 생활과정에 필요한 효모(酵母: ferment)로 소비하는데, 자본의 생활과정은 자기증식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의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야간에 가동이 중단되어 살아 있는 노동을 조금도 흡수하지 못하는 용광로와 작업장은 자본가로 보아서는 '순전한 손실'이다. 그러므로 용광로와 작업장은 노동력의 '야간노동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화폐가 생산과정의 객체적 요소[즉, 생산수단]로 전환되자마자, 생산수단은 당연한 권리와 힘에 의해 타인의 노동과 잉여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죽은 노동과 살아 있는 노동 [즉, 가치와 가치창조력] 사이의 이와 같은 전도(inversion) 또는 왜곡(distortion)-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특유한 특징이다-이 어떻게 자본가들의 의식에 반영되고 있는가를 하나의 실례에 의해 마지막으로 보이려고 한다. 영국의 공장주들이 반란을 일으킨 1848-50년에 ‘서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가장 명성있는 회사의 하나인 칼라일 부자회사[1752년 이래 1세기 동안 존속하고 있으며, 동일한 가족에 의해 4대째 경영되고 있는 페이즐리(Paisley)의 아마 및 면화 방적공장의 사장'인 매우 유식한 신사가 1849년 4월 25일자 ?글래스고우 데일리 매일?지에 '릴레이 제도'라는 제명의 한 편지를 기고했는데(주석 7: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59.), 거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제 노동시간을 12시간에서 10시간으로 단축하는 데서 생기는 해악을 살펴보기로 히자....그 것은 공장주의 기대와 재산에 대한 가장 중대한 손상이라는 점으로 귀착된다. 만약 그가" (즉 그의 '직공들'이) "과거에는 12시간 작업했는데 앞으로는 10시간으로 제한된다면, 그의 공장에 있는 기계나 방추의 매 12개가 10개로 축소될 것이며, 또 만약 그가 자기의 공장을 판매할 생각 을 가진다 해도 그것은 10개로밖에 평가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전국의 모든 공장이 자기 가 치의 6분의 1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주석 8: 같은 보고서, p. 60. [그 자신 스코틀랜드인이고, 잉글랜드의 공장감독관들과는 달리 전적으로 자본가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공장감독관 스튜어트는 자기의 보고서에 수록한 이 편지가 "릴레이 제도를 쓴 것이고, 특히 이 제도에 대한 편견을 제거할 목적으로 쓴 매우 유용한 편지다" 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4세대의 자본가적 속성을 물려받은 이 서부 스코틀랜드인의 자본가적 두뇌에는, 방추 등의 생산수단의 가치가 생산수단이 자본으로서 가진 성질[즉, 자기 자신을 가치증식시키며 매일 타인의 무상노동의 일정량을 흡수한다는 생산수단의 자본속성]과 구별없이 서로 엉켜 있는데 이 때문에 칼라일 회사 사장은, 그가 만약 자기 공장을 판매한다면, 그는 방추의 가치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 위에 또 방추의 가치증식력에 대해서도 대가를 지불받을 것으로, 즉 방추에 들어 있는 노동[방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대해서뿐 아니라 방추의 도움을 받아 매일 페이즐리의 용감한 서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짜내는 그 잉여노동에 대해서까지도 대가를 지불받을 것으로 망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노동일을 2시간 단축하면 방적기계 12대의 판매가격이 10대의 판매가격으로 축소되어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 4 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2 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제 13 장 협업
    제 14 장 분업과 매뉴팩쳐
    제 15 장 기계와 대공업



    제 12 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노동일 중 자본이 지불한 노동력 가치(勞動力 價値)의 등가물이 생산되는 부분을 우리는 이때까지 불변(不變)의 크기로 간주했는데, 실제로도 사회의 일정한 경제적 발전단계의 주어진 생산조건 하에서는 불변의 크기이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노동자는 이러한 필요노동시간(必要勞動時間)을 넘어 2시간, 3시간, 4시간, 6시간 등을 더 일할 수 있었다. 이 연장의 크기에 따라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과 노동일(勞動日)의 길이가 결정되었다. 필요노동시간은 불변이었지만, 1노동일 전체는 가변적이었다. 이제 우리는 노동일의 길이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의 분할이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자. 예컨대 선분 AC, 즉 A-B-C가 12시간 노동일을 표시하며, AB부분은 10시간의 필요노동(必要勞動)을, BC부분은 2시간의 잉여노동(剩餘勞動)을 표시한다고 하자. AC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또는 AC의 더 이상의 연장과는 전혀 관계없이, 어떻게 잉여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잉여노동을 연장시킬 수 있는??
    노동일 AC의 한계는 주어져 있지만, BC는 그 종점 C[그것은 동시에 노동일 AC의 종점이다]를 넘어 연장되지 않더라도 그 시발점 B를 반대방향인 A쪽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연장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직선 A-B'- B-C에서 B'B는 BC의 절반[즉, 1노동시간]과 같다고 하자. 이제 만약 12시간 노동일 AC에서 점 B를 B'으로 이동시킨다면 BC는 B'C의 길이로 연장되어, 노동일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12시간이지만 잉여노동은 50%만큼 [즉,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잉여노동이 BC에서 B'C로 [즉,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연장되는 것은, 동시에 필요노동이 AB에서 AB'으로 [즉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단축되지 않고서는 분명히 불가능하다. 잉여노동의 연장에 필요노동의 단축이 대응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이때까지 사실상 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있던 노동시간의 일부가 자본가를 위해 지출되는 노동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달라지는 것은 노동일의 길이가 아니라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의 노동일(勞動日)의 분할(分割)이다.
    다른 한편, 만약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다면 분명히 잉여노동의 크기도 주어진다. 노동력의 가치[즉,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는 그 가치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규정한다. 만약 1노동시간이 0.5원의 금량으로 표현되며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5원이라면, 노동자는 자본이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한 가치를 대체하기 위해 [다시 말해, 그가 매일 필요로 하는 생활수단의 가치의 등가물을 생산하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수
    단(生活手段)의 가치가 주어지면 노동력(勞梨力)의 가치가 주어지고(주석 1: 하루의 평균임금의 가치는 노동자가 '생활하고, 노동하며, 생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월리암 폐티[William Petty], “아일랜드의 정치적 해부?, 1672년, p. 64). "노동의 가격은 항상 생활수단의 가격으로 구성된다....노동자의 임금이 [다수의 노동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가족을 노동자의 낮은 신분과 지위에 맞게 부양하는 데 충분하지 못한 경우" 그는 적합한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반더린트, ?화폐만능론?, p. 15). "자기의 팔과 근면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단순한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을 타인에게 판매할 수 있는 경우에만 무엇인가를 갖게 된다....어떤 종류의 노동에서도 노동자의 임금은 그가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에 국한된다는 사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튀르고, ?부의 형성과 분배의 고찰?, 데르 편, ?저작집?, 제1권. p. 10). ”생활필수품의 가격은 사실상 노동의 생산비다"(맬더스, ?지대의 성질과 성장 및 지대를 규제하는 원리에 관한 연구?, 런던, 1815년, p. 48. 주).)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지면 필요노동시간(必要勞動時間)의 길이가 주어진다. 그런데 잉여노동(剩餘勞動)의 크기는 노동일 전체에서 필요노동시간을 뺀 것과 같다. 12시간에서 10시간을 빼면 2시간이 남는데, 주어진 조건 하에서 이 2시간 이상으로 잉여노동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5원 대신 4.5원을, 또는 이보다도 더 적은 금액을 지불할 수도 있다. 이 4.5원의 가치를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9노동시간이면 충분할 것이고, 따라서 이제는 12시간 노동일 중 2시간 대신 3시간이 잉여노동으로 될 것이며, 잉여가치도 1원에서 1.5원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과는 오직 노동자의 임금을 그의 노력의 가치 이하로 인하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9시간에 생산하는 4.5원을 가지고는 이전보다 10분의 1만큼 적은 양의 생활수단을 얻게 되며, 이로 말미암아 그의 노동력의 재생산은 위축된 형태로 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잉여노동은 정상적 한계를 넘어섬으로써만 연장될 수 있으며, 잉여노동의 영역은 필요노동시간의 영역을 강탈함으로써만 확대될 수 있다. 잉여노동의 이와 같은 증대방법이 현실적으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는 고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상품이 자기의 완전한 가치대로 매매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제되고 있는 한, 노동력의 생산[또는 그 가치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임금(賃金)이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하락하는 것에 의해서만 감소될 수 없고, 오직 노동력의 가치 그 자체가 하락하는 것에 의해서만 감소될 수 있다. 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져 있는 경우, 잉여노동의 연장은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의 결과 생기는 것이며, 그 반대로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이 잉여노동의 연장의 결과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예에서 필요노동시간이 1/10 만큼[즉,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축소되고 따라서 잉여노동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연장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가치가 현실적으로 1/10 만큼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노동력의 가치가 10분의 1만큼 하락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10시간에 생산되던 것과 동일한 양의 생활 수단이 이제는 9시간에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 productivity)의 향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어떤 제화공이 주어진 생산수단으로 12시간 노동일에 한 켤레의 장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그가 이와 동일한 시간에 두 켤레의 장화를 만들 수 있으려면 그의 노동생산성은 2배로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노동수단
    이나 노동방법 또는 이 두 가지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노동의 생산조건[즉, 그의 생산방식], 따라서 또한 노동과정 그 자체에 혁명(革命)이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노동생산성의 상승이라는 말은 노동과정에 변화가 일어나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단축되며, 그리하여 주어진 양(量)의 노동(勞動)이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使用價値)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주석 2: "산업이 개량(改良)된다고 할 때, 그 것이 의미하는 것은 상품을 이 전보다 적은 노동자에 의해, 또는 (같은 말이지만) 이전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갈리아니, ?화페에 대해”, pp. 158, 159) "생산비의 절약은 생산에 사용되는 노동량의 절약일 수밖에 없다"(시스몽디, ?경제학연구?, 제1권 p. 22).) 지금까지 노동일의 연장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을 고찰함에 있어 우리는 생산방식이 주어져 있고 불변인 것으로 전제했다. 그러나 필요노동이 잉여노동으로 전환됨으로써 잉여가치가 생산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자본이 역사적으로 전해 온 형태의 노동과정을 그대로 계승해 그 노동과정의 계속시간을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으려면 먼저 노동과정의 기술적. 사회적 조건, 따라서 생산방식(生産方式) 그 자체가 변혁되어야 한다. 그렇게 됨으로써만 노동력의 가치는 저하할 수 있으며, 노동일 중 이 가치의 재생산에 필요한 부분도 단축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를 나는 절대적 잉여가치(絶對的 剩餘價値: absolute surplus-value)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필요노동시간의 단축과 이에 대응해 노동일의 두 부분들의 길이 변화로부터 생기는 잉여가치를 나는 상대적 잉여가치(相對的 剩餘價値: relative surplus-value)라고 부른다.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가치를 결정하는 생산물[따라서 일상적 생활수단에 속하거나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생산물]이 생산되는 산업부문들에서 노동생산성이 상승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최종형태를 주는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될 뿐 아니라 그 상품의 생산수단들에 들어 있는 노동의 양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예컨대 장화의 가치는 제화공의 노동에 의해서 뿐 아니라 가죽. 왁스. 실 등의 가치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따라서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자본의 물질적 요소들[즉, 노동수단과 노동재료]을 공급하는 산업부문들에서 노동생산성의 증가와 그에 상응한 상품가격의 저하도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그러나 필요한 생활수단을 공급하지도 않으며 그것의 생산을 위한 생산수단을 공급하지도 않는 생산부문들에서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어떤 상품이 값싸게 되는 경우, 그것은 [그 상품이 노동력의 재생산에 참여하는 비율에 따라]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예컨대 속옷은 하나의 필요한 생활수단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생활필수품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상품이 값싸게 되는 경우, 그것은 속옷에 대한 노동자의 지출을 감소시킬 뿐이다. 생활필수품의 총량은 상이한 산업부문들의 생산물인 각양각색의 상품으로 구성되며, 그러한 상품들 하나하나의 가치는 노동력의 가치의 일부를 형성한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감소함에 따라 저하하는데, 필요노동시간의 총감소량은 상술한 상이한 생산부문들 전체에서 일어난 노동시간 단축의 총계와 같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일반적 결과{노동력의 가치 저하}를 마치 각 개별 경우{자본}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직접적인 목적인 것처럼 취급한다. 그렇지만 개별 자본가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켜 예컨대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킬 때, 그는 결코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켜 그만큼 필요노동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목적을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결국 이 결과에 기여하는 한, 그는 일반적 잉여가치율의 제고에 기여하게 된다.(주석 3: "기계설비의 개량(改良)에 의해 공장주의 생산물이 2배로 증가한다면....공장주는 총생산물 중 더 적은 몫으로 노동자들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그의 이윤은 증가할 것이다. 그의 이윤은 다른 방법으로 변경될 수는 없지 않은가?“(람지[Ramsay], ?부(富)의 분배에 관한 연구?, pp. 168-169).) 자본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경향(傾向)들은 그것들의 현상형태(現象形態)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內在的 法則: immanent laws)이 개별 자본들의 외적 운동(外的 運動)에 표현되어 경쟁이 강제하는 법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를 추진시키는 동기(動機)로서 그의 의식(意識)에 도달하는 방식을 여기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이 점만은 분명하다. 즉, 경쟁의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이 파악된 뒤에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천체(天體)의 외관상의 운동은 [감각적으로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천체의 진정한 운동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이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미 얻어진 결과들만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것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1노동시간이 6원으로 표현된다면, 12시간의 1노동일에는 72원의 가치가 생산{창조}될 것이다. 현재의 지배적인 노동생산성으로 이 12노동시간에 12개의 상품이 생산된다고 가정하고, 이 상품 한 개에 소비되는 원료와 기타 생산수단의 가치가 6원라고 하자. 이와 같은 사정 하에서는 상품 1개의 가치는 12원이다. 즉, 6원은 생산수단의 가치고, 6원은 이러한 생산수단을 처리할 때 새로 첨가된{추가된} 가치다. 이제 어떤 자본가가 노동생산성을 2배로 하는 데 성공하여 그 결과 그는 12시간의 1노동일에 이 종류의 상품을 12개가 아니라 24개를 생산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만약 생산수단의 가치가 변동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1개의 상품의 가치는 이제 9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즉, 생산수단의 가치가 6원이고 노동에 의해 새로 첨가된 가치가 3원으로 될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2배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노동일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72원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다만 이 새로운 가치가 이제는 2배의 생산물(生産物)에 할당될 뿐이다. 따라서 1개의 생산물은 새로운 가치의 1/12 대신 1/24을 [즉, 5원 대신 3원을] 포함하게 된다. 또는, 결국 같은 말이지만, 생산수단이 각 생산물로 전환될 때, 이제는 상품 1개당 전과 같이 1노동시간이 아니라 1/2노동시간만이 생산수단에 첨가된다. 이 상품의 개별 가치(個別置値: individual value)는 이제 그 사회적 가치(社會的 價値: social value)보다 낮다. 즉, 이 상품에는 사회적 평균 조건 하에서 생산된 같은 종류의 대다수의 상품에 비해 적은 노동시간이 들어 있다. 1개의 상품은 평균적으로 12원이 소요되어 2시간의 사회적 노동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변경된 생산방식 하에서는 1개의 상품에는 9원만이 소요되고 1 1/2시간의 노동만이 들어 있다. 그러나 상품의 현실적 가치(現實的 價値)는 그 상품의 개별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社會約 價値)이다. 다시 말해, 상품의 현실적 가치는 각각의 개별적인 경우에 실제로 소요되는 노동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따라서 만약 새로운 방법을 채용하는 자본가가 자기의 상품을 12원이라는 사회적 가치로 판매한다면, 그는 그 상품을 개별 가치보다 3원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되며, 따라서 3원의 특별잉여가치(特別剩餘價値: extra surplus-value)를 실현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에게는 12시간 노동일이 이제는 종전의 12개가 아니라 24개의 상품으로 나타나므로, 1노동일분의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판로(販路)가 2배로, 즉 시장이 2배로 커져야 한다. 기타의 조건이 같다면, 그의 상품은 오직 가격인하(價格引下)를 통해서만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상품을 그 개별 가치보다는 비싸게, 그러나 그 사회적 가치보다는 싸게, 예컨대 1개당 10원에 판매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그는 상품 1개당 1원의 특별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이러한 잉여가치의 증대는 [그가 생산하는 상품이 노동력의 일반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생활필수품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자본가 자신이 가지게 된다. 따라서 각 개별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상품가치를 저렴하게 하려는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잉여가치의 생산증대는 필요노동시간의 단축과 그에 대응하는 잉여노동의 연장에서 발생한다.(주석 4: “어떤 사람의 이윤(利潤)은 그가 타인의 노동생산물(勞動生産物)을 지배한다는 사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노동(勞動)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만약 그가 [그의 노동자의 임금에는 변동이 없는데 자기의 제품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면, 그가 이윤을 볼 것은 분명하다...그때에는 그가 생산하는 것 중 더 적은 부분으로도 이 노동을 고용하는데 충분할 것이며, 따라서 더 많은 부분이 자기 자신을 위해 남게 된다“(캐즈노브[J. Cazenove], ?정치경제학개론?, 런던, 1832년, pp. 49, 50).) 필요노동시간이 10시간[즉,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60원]이고, 잉여노동이 2시간[따라서 매일 생산되는 잉여가치가 12원]이라고 하자. 우리의 자본가는 이제 24개의 상품을 생산해 그것을 1개당 10원에, 즉 합계 240원에 판매한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144원{6원 x 24개}이기 때문에 14 2/5개{=144원/10}의 상품은 투하된 불변자본의 가치를 대체한다.
    12시간 노동일의 노동은 나머지 9 3/5개 {24개- 14 2/5개}로 표현된다. 노동력의 가격이 60원이기
    때문에 필요노동시간은 6개의 생산물로 표현되고 잉여노동은 3 3/5개의 생산물로 표현된다.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비율은 사회적 평균조건 하에서는 5 : 1 {=10시간: 2시간}이었으나 이제는 5 : 3 {=6 : 3 3/5}으로 된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12시간 노동일의 생산물의 가치는 240원{=10원 x 24개}이다. 그 중 144원은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되는 데 지나지 않는] 생산수단의 가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96원이 남는데, 이것은 1노동일 동안 새로 창조된 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다. 이 화폐적 표현은 동일한 종류의 사회적 평균노동의 화폐적 표현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사회적 평균노동의 12시간은 다만 72원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노동은 강화된 노동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동일한 시간 안에 동일한 종류의 사회적 평균노동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본가는 노동력의 하루 가치에 대해 지금도 종전대로 60원만 지불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이제 이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종전의 10시간이 아니라 7 1/2 시간{96원 : 12시간=60원: 7.5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잉여노동은 2 1/2시간만큼 증가하며, 그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는 12원에서 36원{=96-60}으로 증가한다. 그리하여 개선된 생산방식을 채용하는 자본가는 동일한 생산부문의 다른 자본가에 비해 1노동일 중 더 큰 부분을 잉여노동으로 취득한다. 그는 총체로서의 자본이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할 때 수행하는 일을 개별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새로운 생산방식이 일반화되고 그리하여 상품의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차이가 제거되자마자, 이 특별잉여가치는 소멸된다.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결정의 법칙은 새로운 생산방법을 채용하는 자본가로 하여금 자기의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 이하로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고 또 바로 이 법칙이 경쟁(競爭)의 강제법칙(强制法則)으로 작용해 그의 경쟁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주석 5: "만약 나의 이웃사람이 적은 노동으로 많이 생산함으로써 싸게 팔 수 있다면,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싸게 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더 적은 직공의 노동으로 [따라서 더 싸게] 생산하는 온갖 기술. 방법 ? 기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와 동일한 기술. 방법. 기계를 이용하거나, 그것들과 유사한 어떤 발명을 해야 할 일종의 필요성과 경쟁심을 야기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에 처하게 되며, 누구도 자기의 이웃사람보다 더 싸게 팔 수 없게 된다"(?영국에 대한 동인도무역의 이익“, 런던, 1720년, p. 67).) 이러한 과정 전체를 거쳐 최후로 일반적 잉여가치율(一般的 剩餘價値率)이 영향을 받는 것은,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생활필수품의 생산에 기여하는] 산업부문에서 일어나서 [노동력의 가치를 구성하는] 상품들을 값싸게 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에 반비례한다. 노동력(勞動力)의 가치도 역시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가치는 상품의 가치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에 정비례한다. 그것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따라 증가하며, 그 저하에 따라 저하한다. 화폐가치가 불변이라면 12시간이라는 사회적 평균노동일은 항상 72원이라는 동일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데, 그것은 이 가치총액이 임금과 잉여가치로 분할되는 비율 여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만약 노동생산성이 증가한 결과 생활수단의 가치가 저하하고 따라서 노동력의 하루가치가 60원에서 36원으로 떨어진다면, 잉여가치는 12원에서 36원으로 증가할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이전에는 10노동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다만 6노동시간{72원 : 12시간=36: 6시간}이 필요하다. 4노동시간이 떨어져 나와(set free) 잉여노동의 영역에 편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상품을 값싸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 자체를 값싸게 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려는 것은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며 끊임 없는 경향이다.(주석 6: "노동자의 생활비가 어떤 비율로 감소되든, 만약 그와 동시에 노동에 대한 규제들이 제거된다면, 그의 임금도 동일한 비율로 저하할 것이다"(?곡물수출 장려금의 폐지에 관한 고찰?, 런던, 1753년, p. 7). "산업의 이익은 곡물과 일체의 식료품이 가능한 한 싸게 되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비싸게 하는 모든 것은 노동을 역시 비싸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노동이 규제되지 않는 모든 나라에서는 식료품가격이 노동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의 가격은 필요한 생활수단이 싸게 될 때에는 언제나 싸게 된다"(같은 책, p. 3). "임금은 생산력이 증가하는 것과 동일한 비율로 감소한다. 기계가 생활수단을 싸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또한 노동자도 싸게 한다" (?경쟁과 협동의 상대적 장점에 관한 현상논문?, 런던, 1834년, p. 27).)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는 상품의 절대적 가치(絶對的 價値) 그 자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본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상품에 들어 있는 [그리고 판매에 의해 실현되는] 잉여가치(剩餘價値)뿐이다. 잉여가치의 실현은 투하한 가치의 대체(代替: replacement)를 반드시 수반한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반비례하지만,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정비례하여 증가한다. 바꾸어 말해, 하나의 동일한 과정 {노동생산성의 발전}이 상품을 싸게 만드는 동시에 상품에 들어 있는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때문에, 교환가치(交換價値)의 생산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본가가 왜 상품의 교환가치를 끊임없이 떨어뜨리려고 노력하는가라는 수수께끼가 해명된다. 이 수수께끼를 가지고 경제학의 창시자의 한 사람인 케네(F. Quesnay)는 자기의 논적(論敵)들을 괴롭혔는데, 이에 대해 그 논적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신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공산품(工産品)의 제조에는 [생산에 해를 끼치지 않고] 노동에 대한 지출 또는 노동비용(勞動費用)을 감축하면 할수록, 그 감축은 그만큼 더 유리하다. 왜냐하 면 그것은 제품의 가격을 인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숙련공들의 노동 으로부터 생기는] 부(富)의 생산은 그들의 생산물의 교환가치(交換價値)의 증대에 있다고 믿고 있다. "(주석 7: 케네, ?상업 및 수공업자의 노동에 대한 대화?, pp. 188-189.)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의 발전에 의한 노동의 절약(주석 8: "그들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그처럼 절약하는 투기꾼들"(비도[J. N. Bidaut], ?공업과 상업에서 발생하는 독점에 대해?, 파리, 1828년, p. 13). "고용주는 시간과 노동을 절약하기 위해 항상 전력을 다할 것이다"(스튜어트[Dugald Stewart], ?경제학강의?, 해밀턴[W. Hamilton] 편. "저작집?, 제8권, 에딘버러, 1855년, p. 318). "그들"(자본가들)"의 관 심사는 그들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생산력을 가능한 한 크게 하는 것이다. 생산력의 증진에 그 들의 주의가 집중되고 있으며 거의 전적으로 집중되고 있다"(리처드 존스,?국민경제학교과 서?, 1852년, 제3강의, p. 39).)은 결코 노동일(勞動日)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이 겨냥하는 것은 오직 일정한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勞動時間)의 단축이다.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생산성을 제고시킨 결과 1시간에 가령 종전의 10배의 상품을 생산하게 되고, 그리하여 각 1개의 상품에 이전의 10분의 1의 노동시간을 지출하게 된다는 사실은, 결코 그로 하여금 종전과 같이 하루에 12시간 노동하고 또 그 12시간 동안 120개가 아니라 1,200개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노동일은 단축되기는커녕 연장되기조차 하여 14시간 동안 1,400개를 만들도록 강요되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매컬록, 유어, 시니어 등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보면, 어떤 쪽에는 생산력(生産力)의 발전에 의해 필요노동시간(必要勞動時間)이 단축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이에 대해 자본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쓰여 있고, 다음 쪽에는 노동자는 앞으로 하루에 10시간이 아니라 15시간 노동함으로써 이 감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쓰여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테두리 안에서는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노동해야 할 부분을 단축하며,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무상으로 노동할 수 있는 나머지 부분을 연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상품을 싸게 하지 않고 이러한 결과를 어느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는가는 우리가 다음에 고찰하려고 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여러 특수한 생산방식들을 검토할 때 밝혀질 것이다.



    제 13 장
    협 업



    이미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은 각 개별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따라서 노동과정이 대규모로 수행되어 대량의 생산물을 공급하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실제로 시작한다. 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또는 같은 노동의 장(場: field)에서),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같은 자본가의 지휘 밑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개념적{논리적}으로나 자본주의적 생산(資本主義的 生産)의 출발점을 이룬다. 생산방식 그 자체에 대해 말한다면, 초기의 매뉴팩쳐는 동일한 개별 자본에 의해 동시적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수가 더 많다는 것 이외에는 길드{동업조합(同業組合)}의 수공업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길드의 장인(匠人: master)의 작업장이 확대된 것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그 차이는 순전히 양적(量的)인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주어진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의 양은 개별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에다 통시적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수를 곱한 것과 같다. 노동자의 수(數)는 그 자체로서는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 또는 노동력의 착취도(搾取渡)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으며, 그리고 상품가치 일반의 생산에서도 그것은 노동과정의 어떤 질적(質的)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집단 노동은 ‘새로운’ 생산력을 창조한다.} 만약 12시간 노동일 하루가 6원으로 대상화된다면, 그러한 노동일 1,200일은 6원 x 1,200으로 대상화될 것이다. 1,200명의 노동자의 경우에는 12 x l,200 노동시간이, 개별 노동자의 경우에는 12노동시간이 생산물에 합쳐지고 만다. 가치의 생산에서는 다수의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의 단순한 합(合)으로서만 계산된다. 따라서 1,200명의 노동자가 각각 개별적으로 생산하든, 또는 그들이 동일한 자본의 지휘하에 통합되어 생산하든, 생산되는 가치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다. 가치로 대상화되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質)의 노동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평균적 노동력(平均的 勞動力)이 지출된 것이다. 그러나 평균량(平均量)은 언제나 [크기만 다를 뿐 종류가 같은] 다수의 개별량(個別量)의 평균일 뿐이다. 각 산업부문에서 개별 노동자는 평균적 노동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수학에서 '오차' {편차(偏差)}라고 부르는 이와 같은 개별적 차이는 우리가 어떤 최소한도의 노동자를 함께 고용하기만 하면 서로 상쇄되어 없어진다. 유명한 궤변가이며 아첨꾼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차지(借地)농업가로서의 자기의 실제의 경험에 의거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즉, 5명의 농업노동자로 구성되는 ‘그처럼 작은 집단’에서도 벌써 노동에서의 모든 개인적 차이는 서로 상쇄되어 소멸되며, 따라서 어떤 5명의 성인 농업노동자도 동일한 시간 안에 다른 임의의 5명의 성인 농업노동자가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주석 1: "서로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는 힘과 숙련과 성실성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떤 임의의 5명은 전체로서는, 내가 앞에서 말한 연령에 속하는 다른 어떤 5명과도 같은 양의 노동을 제공한다는 것을 나는 면밀한 관찰에 근거해 확신하는 바다. 이것은 이 5명 중 1명은 훌륭한 일꾼의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1명은 서투른 일꾼이고, 다른 3명은 전자에 가깝거나 후자에 가까운 중간 일꾼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5명밖에 안 되는 그처럼 작은 집단에서 당신들은 5명의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량(全量)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버크, ?곡물부족에 관한 의견과 상세한 논의?, 런던, l800년, pp. 15-16). 평균적 개인에 대해서는 케들레(J. Quetelet)의 의견을 참조하라.) 어쨌든,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많은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일(集團的 勞動日)을 노동자의 수로 나눈 것이 하루의 사회적 평균노동(社會的 平均勞動)인 것은 명백하다. 한 사람의 1노동일이 예컨대 12시간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12명의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일은 144시간이다. 그리고 12명 각각의 노동은 사회적 평균노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개개인이 동일한 작업을 하는 데 상이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각 개인의 노동은 144시간이라는 집단적 노동일의 1/12로서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을 가지고 있다. 1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의 입상에서 보면 노동일은 12명 전체의 노동일로서만 존재한다. 각 개별 노동자의 노동일은 [이들 12명이 서로 협력해 가면서 노동을 하건 또는 그들의 작업 사이의 관련이 단순히 동일한 자본가를 위해 일한다는 점뿐이건] 집단적 노동일의 구성부분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이 12명의 노동자들이 2명씩 나뉘어져 각각 6명의 '소경영주(小經營主)'에게 고용된다면, 이들 각 소경영주가 동일한 가치량(價値量)을 생산하는가 어떤가, 따라서 일반적 잉여가치율을 얻게 되는가 어떤가는 확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는 개별적 편차가 나타날 것이다. 가령 어떤 노동자가 어떤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현저하게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의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드는 노동시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즉, 평균적 노동시간]과 현저하게 차이가 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의 노동은 평균적 노동으로 인정될 수 없고, 그의 노동력도 평균적 노동력으로 인정될 수 없다. 그러한 노동력은 전혀 팔리지 않든가 또는 노동력의 평균가치 이하로 팔릴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능률(勞動能率)의 일정한 최저한도가 모든 노동에 대해 전제되고 있는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 최저한도의 설정방법을 제시하고 있다{예: 성과급제 임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최저한도는 평균과는 괴리(乖離)된다. 그런데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해 그 평균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6명의 소경영주 중 어떤 사람은 일반적 잉여가치율보다 더 많은 것을 뽑아내며,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적은 것을 뽑아낸다. 이 불균등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서로 상쇄되지만 개별 소경영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가치증식의 법칙은, 개별 생산자가 자본가로 생산하며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적으로 고용할 때, 즉 처음부터 사회적 평균노동을 사용할 때, 비로소 그에게 완전히 실현된다.(주석 2: 로셔(Roscher)는, 자기 부인이 이틀간 일시켰던 한 재봉사는 자기 부인이 하루 동안 동시적으로 일시켰던 두 사람의 재봉사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유치원에서 또는 주연배우인 자본가가 없는 상황에서 연구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업방식에 변동이 없는 경우라도 많은 노동자의 동시적 고용은 노동과정의 객체적 조건(客體的 條件)에 혁명을 일으킨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건물, 원료를 위한 창고, 그들이 동시에 또는 번갈아 사용하는 용기. 기구. 장치 등등, 한 마디로 말해 생산수단(生産手段)의 일부가 이제는 노동과정에서 공동으로 소비된다. 한편, 이 때문에 이러한 생산수단의 교환가치가 등귀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의 사용가치가 더 철저하게 이용된다고 해서 등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생산수단은 공동으로 사용되며 이전보다 대규모로 사용된다. 20명의 직포공이 20대의 직조기를 가지고 일하는 방은 독립적인 1명의 직포공이 2명의 도제를 데리고 일하는 방보다는 넓어야 할 것이지만, 노동자 20명을 수용하는 작업장 하나를 건축하는 데는 노동자 2명씩을 수용하는 10개의 작업장을 건축하는 데 드는 것보다 적은 노동이 든다. 따라서 대규모의 공동사용(共同使用)을 위한 거대한 생산수단의 가치는 이 생산수단의 규모와 유용한 효과에 비례해 증
    가하지는 않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산수단은 재개의 생산물에 자기 가치의 더 적은 부분을 이전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이 생산수단의 총가치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에 배분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산수단은 [개별적으로 사용되는 생산수단에 비해] 비록 절대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 작용범위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가치를 가지고 생산과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상품의 총가치에 포함되어 있는 불변자본의 일부의 가치는 저하하며, 이 저하의 크기에 비례해서 상품의 총가치(總價値)도 역시 저하한다. 그 효과는 마치 그 상품의 생산수단에 더 싸게 생산되는 것과 같다. 생산수단의 사용의 이러한 절약(節約)은 전적으로 노동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리하여 이러한 생산수단이, [고립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나 소경영주가 가지고 있는] 분산되고 상대적으로 더 비싼 생산수단과는 달리, 사회적 노동의 필요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일하지 않고 다만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일하는 경우에도 가능하다. 노동수단의 일부는, 노동과정 그 자체가 이러한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기 전에, 별써 이러한 사회적 성격을 획득한다{큰 건물 안에 많은 노동자들이 모이면 그렇게 된다}.
    생산수단의 절약(節約)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 첫째, 그것이 상품을 저렴하게 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측면이다. 둘째, 그것이 총투하자본[즉, 불변부분과 가변부분의 가치총액]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이윤율}을 변동시키는 측면이다. 두번째 측면은 이 책의 제3권 제1편에서 비로소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어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도 서술의 적절한 내적 연관을 위해 그곳으로 미룰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대상의 분할은 분석(分析)의 진행상 불가피한 것인데, 이러한 분할은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과도 합치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노동자들은 노동수단을 자기와는 독립해 존재하는 타인의 소유로 상대하며, 이리하여 노동수단의 사용상의 절약도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따라서 자기 자신의 생산성을 제고시키는 방법과도 관련이 없는] 하나의 별개의 조작(操作: operation)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동일한 생산과정에, 또는 서로 다르지만 상호관련된 생산과정에 많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협력해 일하는 노동형태를 협업(協業: cooperation)(주석 3:“힘의 결합”(데스튜트 드 트라시, ?의지 및 의지작용론?, p. 80).) 이라고 한다.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개별 군인이 제각기 전개할 수 있는 공격력이나 방어력의 합계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 노동자들의 기계적인 힘의 총계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불가분의 작업에 참가할 때 [예컨대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거나 윈치(卷楊機: winch)를 돌리거나, 장애물을 제거할 때] 발휘하는 사회적 역량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주석 4:“분할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다수 노동자들의 협력 없이는 수행할 수 없는 작업이 많이 있다. 예컨대 큰 통나무를 짐마차에 들어올리는 일....요컨대 많은 사람의 손이 하나의 불가분의 동일한 작업에서 동시에 상호협조하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온갖 일"(웨이크필드, ?식민화 방법에 관한 견해?. 런던, 1849년, p. 168).) 이 경우, 결합노동(結合努動: combined labour)의 성과는 고립된 개별 노동에 의해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거나 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거나 또는 매우 작은 규모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협업(協業)에 의해 개인의 생산력이 제고될 뿐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생산력[즉, 집단적인 힘]이 창조되는 것이다.(주석 5: "1톤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일은 한 사람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며, 열 사람이면 전력을 다해야 겨 우 가능하지만, 백 사람이면 각자가 손가락 하나만을 움직여도 할 수 있다"(존 벨러즈, ?산업 전문학교의 설립에 관한 제안“, 런던, 1696년, p. 21).)
    다수의 힘이 하나의 총력(總力)으로 융합(融合)되는 데서 생기는 새로운 역량(力量)을 무시하더라도,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벌써 각 개별 노동자들의 작업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血氣: animal spirit)라는 자극이 생긴다. 그 결과 함께 일하는 12명은 144시간이라는 집단적 1노동일에, 각각 12시간씩 제각기 일하는 12명의 고립된 노동자들보다, 또는 12일 동안 계속 일하는 1명의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해 낸다.(주석 6: "이 경우에도“ (각각 30에이커씩을 가진 10명의 차지농업가들이 고용하는 수의 노동자를 1명의 차지농업가가 300에이커의 경지에 고용하는 경우) "역시 농업노동자의 수가 많아짐으로써 생기는 이익이 있는데, 이것은 실무자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1대 4의 비율이 3대 12의 비율과 같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이 명제가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확기에나 기타 긴급한 많은 작업들에서는 많은 노동자를 결합시킨다면 일은 더 잘, 더 신속하게 수행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2654
  • 자본론14
    그 대신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던 성인 남자노동자의 야간노동을 부활시켰다. 그들은 10시간 노동법 하에서는 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주석 11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p. 133-134.)
    두번째 조치는 식사를 위한 법정휴식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공장 감독관들의 말을 들어보자.

    "노동시간이 10시간으로 제한된 때부터 공장주들은 [비록 아직까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즉, 예컨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작업하는 경우, 그 들은 아침 9시 전에 한 시간과 저녁 7시 뒤에 반 시간, 합계 1 1/2시간을 식사시간으로 제공하 기만 하면 법률의 규정을 충분히 지키는 셈이라고. 그들이 현재 점심식사에 반 시간 또는 한 시 간을 주는 경우도 있으나, 동시에 그들은 10시간 노동일의 경과 중에는 1 1/2시간의 어떤 부분 도 허용해 줄 의무는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석 114: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4월 30일?, p. 47.)

    그러므로 공장주들의 주장에 의하면, 식사시간에 관한 1844년 법률의 엄격한 규정들은 노동자들에게 공장에 출근하기 전과 공장에서 퇴근한 뒤에, 다시 말해 자택에서 식사하는 것을 허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노동자들은 아침 9시 이전에 점심식사를 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형사재판소는 규정된 식사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반드시 작업시간 중의 휴식시간에 제공되어야 하며, 또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중단없이 10시간 동안 계속 노동시키는 것은 위법이다. "(주석 115: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 일?, p. 130.)

    이처럼 유쾌한 시위운동을 한 뒤, 자본은 1844년의 법률조문에 합치되는 합법적인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진정 반란을 개시했다.
    분명히 1844년의 법률은 낮 12시 이전에 일을 한 8세 내지 13세의 아동을 오후 1시 이후에 다시 일시키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 법률은 노동시간이 낮 12시 또는 그보다 늦게 시작하는 아동들의 6 1/2시간의 노동을 전혀 규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8세의 아동들이 낮 12시에 노동을 시작한다면, 12시부터 1시까지(1시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2시간), 그리고 저녁 5시부터 8시 반까지(3 1/2시간), 합해 법정시간인 6 1/2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는 그보다도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아동의 노동을 저녁 8시 반까지 일하는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노동과 합치되도록 하기 위해 공장주들은 아동들에게 오후 2시 이전에는 일거리를 주지 않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한 다음 그들을 저녁 8시 반까지 중단없이 공장 안에 붙들어 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계설비를 하루 10시간 이상 가동시키려는 공장주들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아동들을 [미성년자들과 부녀자들이 모두 공장에서 퇴근한 뒤에] 오직 성인남자들과 함께 저녁 8시 반까 지 일을 시키는 관행이 영국에 수립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석 116: 같은 보고서, p. 142.)
    노동자들과 공장감독관들은 위생상 및 도덕상의 이유로 이에 항의했다. 그러나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 행동의 결과는 감수할 테요.
    어서 재판이나 해 주시오.
    채무증서에 쓰인 대로 벌금을 받을 거요" {샤일록의 말}

    사실상 1850년 7월 26일 하원에 제출된 통계자료에 의하면, 모든 항의에도 불구하고 1850년 7월 15일 257개 공장에서 3,742명의 아동이 '관행(慣行)'에 따르고 있었다.(주석 117:?공장감독관 보고서. 1850년 10월 31일?, PP 5-6.)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자본의 교활한 눈은, 1844년의 법률이 적어도 30분간의 휴식시간 없이는 오전의 5시간 노동은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오후노동에 대해서는 그러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자본은 8세의 어린 노동자를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쉴새없이 혹사시킬 뿐 아니라 그 동안 굶기기까지 하는 쾌락을 요구했고 또 얻게 되었다.

    "예, 가슴입니다.
    증서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주석 118: 자본의 본성은 자본이 발전하지 못한 형태에서나 발전한 형태에서나 변함이 없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노예소유자들 의 영향력에 의해 멕시코에 적용된 법전에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산 이상, 노동자는 자본가의 '화폐'라는 말이 있다. 이와 동일한 견해가 로마의 귀족들 사이에도 통용되고 있었 다. 귀족이 평민 채무자에게 대부한 화폐는 채무자의 생활수단을 통해 채무자의 피와 살로 되었을 것이므로, 이 '피와 살'은 '그들의 화폐'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샤일록과 같은 십동표( 十銅表: Ten Table)의 법률{고대 로마의 법전}이 나온 것이다. 귀족인 채권자들이 때때로 티 베르강의 건너편에서 채무자의 살코기로 향연을 베풀었다는 랑게(Linguet)의 가설(假說)은 예 수의 성찬에서 기독교도들이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다우머(Daumer)의 가설과 마찬가지로 여 전히 의심스럽지만.) {샤일록의 말}

    공장주들은 1844년의 법률이 아동노동을 규제하는 한, 그 법률의 문구에 그처럼 샤일록식으로 집착했으나, 그것이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을 규제하는 한, 그 법률 자체를 반대하는 공공연한 반란을 준비했다. 우리는 '허위에 찬 릴레이 제도'의 철폐가 이 법률의 주요 목적이며 주요 내용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공장주들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선언으로 그들의 반란을 개시했다. 즉, 1844년의 법률에는 15시간이라는 공장노동일 중에서 공장주들이 마음대로 시간을 갈라 미성년
    자와 부녀자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는데, 이것은 노동시간이 1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던 동안에는 '비교적 해롭지 않았지만', 10시간 노동법 하에서는 '매우 큰 곤란'을 준다는 것이었다.(주석 11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4월 30일?, p. 133.)

    그리하여 공장주들은 감독관들에게, 자기들은 법률조문을 무시하고 구(舊)제도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아주 냉정하게 통고했다.(주석 120: 그 중에도 박애주의자 애쉬워스(Ashworth)는 레너드 호너에게 보낸 퀘이커 교도적인 불쾌한 편지 가운데서 그렇게 말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p. 4).) 이것은 '더 높은 임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조언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10시간 노동법 하에서 영국의 공업상의 패권(覇權)을 유지하기 위한 단 하나의 가능 한 방안이다“ "릴레이 제도 하에서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것은 다소 곤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공장감독관들과 부감독관들의 수고를 약간 덜어주기 위해 이 나라의 크 나큰 공업적 이익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도 좋단 말인가?"(주석 121: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p. 138, 140.)
    이러한 모든 술책은 물론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장감독관들은 법정에 고발했다. 그러나 곧바로 내무장관 조지 그레이(G. Gray)에게는 공장주들의 탄원서가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그는 1848년 8월 5일자 공람(公覽)에서 공장감독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미성년자들에게 법에서 허용한 시간 이상으로 실제로 일을 시켰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법조문을 위반했다거나 릴레이 제도에 의해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고 해서 공장주들을 고발하지는 말 것."

    이에 따라 공장감독관 스튜어트는 15시간의 공장노동일 범위 안에서 이른바 릴레이 제도를 스코틀랜드 전체에 허가했고, 그 결과 그 곳에서는 오래지 않아 이 제도가 옛날처럼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잉글랜드의 공장감독관들은 장관에게는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킬 독재권이 없다고 선언하고 '노예제도 옹호반란'에 대한 법적 조치를 계속 행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이 경우에는 주의 치안판사들](주석 122: 이 '주 치안판사', 즉 코베트(Cobbett)가 말하는 이른바 '위대한 무급자'(無給者)는 각 주의 유지들 중에서 나오는 일종의 무급판사이다. 사실상 그들은 지배계급의 세습적인 사법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 자본가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면, 아무리 그들을 고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들 법정에서는 공장주들이 자기 자신을 재판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커쇼. 리즈회사(Kershaw, Leese & Co.)의 방적업자인 에스크리지(Eskrigge)라는 사람이 자기 공장에서 실시할 릴레이 제도의 계획표를 자기 지방의 공장감독관에게 제출했다. 그것을 거절한다는 회신을 받은 뒤 그는 처음에는 조용히 있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역시 방적업자인 로빈슨(Robins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스크리지의 충복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의 친척이었다-이 에스크리지가 고안한 것과 똑같은 릴레이 제도를 채용했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스톡포트시의 치안 판사 앞에 불려 나왔다. 4명의 판사가 참석했는데, 그 중 3명은 방적업자였고, 수석에는 바로 그 에스크리지가 앉아 있었다. 에스크리지는 로빈슨의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제 로빈슨에 대해서 정당한 것은 에스크리지에게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합법적인 판결에 근거해 즉시 이 제도를 자기 자신의 공장에도 채용했다.(주석 12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p. 21-22. 같은 종류의 실례에 대해서는 같은 보고서, pp. 4-5 참조.) 물론 법정의 구성 자체가 하나의 법률위반이었다.(주석 124: 존 홉하우스(John Hobhouse)의 공장법으로 알려져 있는 윌리엄 4세 통치 제1년과 제2년의 법률(제24장, 제10조)에 의하면, 방적공장 또는 직물공장의 소유자 또는 그러한 소유자의 부자. 형제는 공장법에 관계되는 사건에서는 치안판사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금지되고 있었다.) 감독관 하우엘(Howell)은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재판에서 이와 같은 광대극은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이러한 소송사건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이러한 판결과 합치되도록 법률을 고치든지, 아니면 결함이 더 적은 법정이 재판하도록 해 서 판결을 법률에 합치시키든지 해야 한다. 유급판사(有給判士)가 절실히 요망된다. "(주석 12 5:?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22.)

    형사재판소는 1848년의 법률에 대한 공장주들의 해석을 부당하다고 선언했으나, 사회의 구제자라는 그 재판소도 공장주들의 목적을 거부하지 않았다. 레너드 호너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나는 일곱 군데의 서로 다른 재판 관할구에서 10건을 고발하여....법률을 집행하려고 했으나
    단 한 건에 대해서만 치안판사의 지지를 받았다....나는 법률위반을 이유로 더 이상 고발해도 소 용없다고 생각했다. 1848년의 법률 중 노동시간을 획일적으로 만들기 위해 제정한 부분은....나의 지역(랭카셔)에서는 더 이상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나와 나의 보조관들은 릴레이 제도를 실시하 고 있는 공장들에서 미성년자와 부녀자를 10시간 이상 일시키지 않는다고 확증할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1849년 4월 말에는....114개의 공장이 이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그 수는 지난 얼마 동안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공장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 반 까지 131/2시간 작업하고 있으며....약간의 경우에는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15시간 작 업하고 있다. "(주석 126: 같은 보고서, p. 5.)

    이미 1848년 12월에 레너드 호너는, 이와 같은 릴레이 제도 하에서는 어떤 감독제도도 극도의 과도노동을 결코 방지할 수 없다고 한결 같이 충고하는 공장주 65명과 공장관리인 29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주석 127: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10월 31일?, p. 6.) 동일한 아동들과 미성년자들이 15시간 동안 방적실에서 직포실로,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교대되곤 했다.(주석 128: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21.) 다음과 같은 제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 제도는 교대제(交代制)라는 핑계 하에, 노동자들을 카드처럼 한없이 다양하게 뒤섞어 놓 고, 개개인들의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을 매일 변동시킴으로써, 동일한 작업반에 속하는 노동자 전 원이 결코 전과 동일한 시간에 전과 동일한 장소에서 함께 작업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석 12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95.)
    그러나 현실의 과도노동을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이 이른바 릴레이 제도는 푸리에(Fourier)의 유머가 넘치는 '단기복무' {노동자들이 노동에 싫증을 내지 않도록 다양한 노동에 짧은 시간적 근무하게 하는 것}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자본의 망상(妄想)의 산물이다. 물론 이 경우 '노동의 즐거움'이 '자본의 즐거움'으로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존경할만한 신문'이 '적당한 배려와 순서가 달성할 수 있는 것'의 모델이라고 찬양한 공장주들의 릴레이 계획을 살펴보자. 노동자 전원은 흔히 12-14개의 부류로 나누어지고, 그 구성원은 끊임없이 교체되었다. 15시간의 공장노동일 동안 자본은 노동자를 때로는 30분, 때로는 한 시간씩 이 부류로 끌어들였다가는 밀어내고, 다시 저 부류로 끌어들였다가는 또 다시 밀어냈다 하면서, 10시간 노동이 끝날 매까지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분산된 토막시간씩 노동자들을 이리저리로 몰아댔다. 무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물이 번갈아 가면서 다른 막의 다른 장면에 등장하지 않으면 만 되었다. 그리나 연극이 계속되는 동안 배우가
    무대를 떠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노동자들은 공장에 오고가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빼고도 15시간 동안 공장에서 떠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휴식시간은 억지로 쉬지 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변했으며, 그리하여 소년노동자들은 술집으로, 젊은 여공들은 창녀촌으로 가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본가가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지 않고 자기의 기계설비를 12시간 내지 15시간 가동시키기 위해 날마다 새로운 계획을 생각해 낼 때마다, 노동자는 자기의 식사를 때로는 이 자투리 시간
    에 또 때로는 저 자투리 시간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10시간 노동일 쟁취투쟁 당시 공장주들은 노동자 무리들이 10시간 노동에 대해 12시간분의 임금을 받으려고 청원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지금은 공장주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며, 노동력을 12시간 내지 15시간 동안 마음대로 사용하고 10시간분의 임금을 지불했다.(주석 130: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6과,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에 게재된 공장감독관 하우엘(Howell)과 손더즈(Saunders)의 교대제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보라. 또 l849년 봄 애쉬톤(Ahshton) 및 그 부근의 목사들이 이 제도에 반대해 여왕에게 제출한 청원서를 보라.) 이것이 문제의 요점이었고, 이것이 10시간 노동법의 공장주 판(版)이었다! 이 공장주들은 바로 인정을 쏟으면서 아양을 떨던 자유무역론자들인데, 그들은 곡물법 반대운동이 전개된 10년 동안 노동자들을 향해 곡물의 수입이 자유롭게만 된다면 영국산업의 자본력으로 자본가를 부유하게 하는 데에는 10시간의 노동으로 아주 충분하다는 것을 1파운드, 1실링, 1페니까지 계산해 가면서 증명했던 것이다.(주석 131: 예컨대 그레그(R. H. Greg), ?공장문제와 10시간 노동법안?(런던, 1837년)을 참조하라.)
    2년간에 걸친 자본의 반란은 드디어 영국의 4대 최고재판소 중의 하나인 재무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최후의 승리를 획득했는데, 이 재판소는 1850년 2월 8일에 제기된 한 소송사건에서, 공장주들은 1844년의 법률의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법률 자체가 이 법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몇 개의 어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10시간 노동법은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다. "(주석 132: 엥겔스,“「영국의 10시간 노동법” (내가 편집한 ?신 라인 신문, 정치경제평론?, 1850년 4월호, p. 13). 이 '최고'재판소는 미국 남북전쟁 때에도 해적선의 무장을 금지한 법조문의 의미를 반대로 해석하게 만드는 문구의 애매성을 발견했다.) 이때까지는 미성년자와 부녀자에 대한 릴레이 제도의 적용을 꺼리고 있던 다수의 공장주들도 이제는 그것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주석 13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0년 4월 30일?)
    그러나 자본의 이러한 외견상의 결정적 승리에 뒤이어 곧바로 반격이 가해졌다. 이때까지 노동자들이 해온 저항은 비록 완강하고 끊임없이 되풀이되기는 했으나 소극적인 것이었다. 이제야 그들은 랭카셔와 요크셔에서 위협적인 집회를 열고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즉, 10시간 노동법
    이라는 것은 단순한 사기며, 의회의 기만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공장감독관들은 계급적 적대관계가 들어보지 못한 정도의 긴장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정부에 긴급히 경고했다. 일부 공장주들까지도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치안판사들의 모순된 판결로 말미암아 매우 비정상적인 무정부 상태가 지배하게 되었다. 요 크셔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률과 랭카셔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 서로 다르며, 같은 랭카셔 안 에서도 어떤 교구의 법률은 그 인접한 교구의 법률과 다르다. 대도시의 공장주는 법망을 피할 수 있으나, 농촌지방의 공장주는 릴레이 제도에 필요한 인원, 더욱이 노동자들을 한 공장에서 다 른 공장으로 이동시키는 제도에 필요한 인원을 구할 수 있다. "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모든 자본가들이 평등해야 하는 것은 자본의 법이 규정하는 자본가들의 기본권리이다.
    이와 같은 사정 하에서 공장주와 노동자 사이에는 타협이 성립되었고, 그것은 1850년 8월 5일의 새로운 추가적 공장법으로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일은 1주일의 첫 5일은 10시간에서 10 1/2시간으로 연장되었고, 토요일에는 7 1/2시간으로 제한되었다. 작업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수행되어야 하며(주석 134: 겨울에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변경해도 된다.), 식사를 위한 1 1/2시간의 휴식이 허용되어야 하는데, 이 식사시간은 전원에게 동시에, 그리고 1844년의 규정들에 따라 주어야 했다. 이것으로 릴레이 제도는 영원히 폐지되었다.(주석 135: "현행법(1850년)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있는 사람들{미성년자 와 부녀자}에게 노동의 시작과 종료를 동일하게 한다는 이익을 얻는 대신 '10시간' 노동법의 이익을 포기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2년 4월 30일”, p. 14).) 아동노동에 대해서는 1844년의 법률이 계속 효력을 유지 했다.
    한 부류의 공장주들은 이번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의 아동에 대한 특권을 확보했다. 견직물 공장주들이 그들이었다. 1833년에 그들은 협박조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만약 온갖 연령의 아동들에게 하루 10시간씩 일을 시킬 자유가 박탈된다면, 우리들의 사업은 중단될 것이다. “(주석 136: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4년 9월 30일?, p. 13.)그들은 충분한 수의 13세 이상의 아동들을 구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바랐던 특권을 쟁취했다. 이러한 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 나중의 조사에서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 10년 동안 [의자에 앉혀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린 아동들의 피로 매일 10시간씩 명주실을 뽑아내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주석 137: 같은 보고서.) 1844년의 법률은 견직물 공장주로부터 11세 미만의 아동을 하루 6 1/2시간 이상 일시키는 '자유'를 '박탈'했지만 그 대신 그들에게 11세 내지 13세의 아동을 하루 10시간씩 일시킬 특권을 보장해 주었으며, 또 다른 모든 아동들에게 강제적으로 적용되고 있던 취학(就學)의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구실로 되었다.

    "섬세한 견직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끝이 부드러워야 하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공장에 들 어와 일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다. “(주석 138: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6년 10월 31일?, p. 20.)

    남부 러시아에서 뿔달린 가축들이 가죽과 기를 때문에 도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동들은 부드러운 손끝 때문에 도살되었다. 드디어 1850년에는 1844년에 허용된 특권이 명주실을 꼬는 부문과 명주실을 감는 부문에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를 박탈당한 자본의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11
    세 내지 13세의 아동의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10 1/2시간으로 연장되었다. 그 구실은 "견직물 공장의 노동은 다른 섬유공장의 노동보다 쉬우며 또 건강에 덜 해롭다"(주석 13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1년 10월 31일5, p. 26.)는 것이다. 그 뒤의 정부의 의학적 조사가 증명한 바에 의하면, 그와는 반대로

    "견공업 지방의 평균사망률은 매우 높고, 주민 중 여성들의 사망률은 심지어 랭카셔의 면공업 지방보다 더 높다. "
    (주석 140: 같은 보고서, p. 27. 일반적으로 공장법 때문에 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 현저하게 좋아 졌다. 의사들의 모든 증언은 이 점에서 일치하며 또 나 자신의 관찰에 의해 그것을 확신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출생 뒤 몇 년 사이의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은 무시하더라도, 그린하우 (Greenhow)의 공식보고는 공장지역의 건강상태가 '표준적인 건강상태에 있는 농업지역'보다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증거로 1861년의 그의 보고 중에서 특히 다음 표를 보라.

    ┌───────┬──────┬──────┬──────┬──────┬─────┐
    │ 성인 남자 중│남자 10만 명│ │여자 10만 명│성인여자 중 │ │
    │ │ │ │ │ │ 여자의 │
    │공장 취업자의 │ 중 폐병 │ 지방명 │ 중 폐병 │공장취업자의│ │
    │ │ │ │ │ │직업 종류 │
    │ 백분율 │사망자의 수 │ │사망자의 수 │ 백분율 │ │
    ├───────┼──────┼──────┼──────┼──────┼─────┤
    │ 14.9 │ 598 │ 위건 │ 644 │ 18.0 │ 면 │
    │ 42.6 │ 708 │ 블랙번 │ 734 │ 34.9 │ 면 │
    │ 37.3 │ 547 │ 핼리 팩스 │ 564 │ 20.4 │ 털실 │
    │ 41.9 │ 611 │ 브랫포드 │ 603 │ 30.0 │ 털실 │
    │ 31.0 │ 691 │ 매클즈필드│ 804 │ 26.0 │ 명주 │
    │ 14.9 │ 588 │ 리크 │ 705 │ 17.2 │ 명주 │
    │ 36.6 │ 721 │스토크-어폰-│ 665 │ 19.3 │ 토기 │
    │ │ │트렌트 │ │ │ │
    │ 30.4 │ 726 │울스탄톤 │ 727 │ 13.9 │ 토기 │
    │ │ 305 │8개의 건강한│ 340 │ │ │
    │ │ │농업지방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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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감독관들의 반 년마다 반복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 악(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주석 141: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국의 '자유무역주의자들'은 비단제품에 대한 보호관세를 마지못해 단념했던 것이다. 이제 프랑스로부터의 수입을 막는 보호 대신에 영국 공장아동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1850년의 법률은 다만 '미성년자와 부녀자들'을 위해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의 15시간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12시간으로 변경시킨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법률은 아동들에 대해서는 달라진 것이 없으며, 비록 아동들의 총노동시간은 6 1/2시간을 초과할 수 있었지만, 앞에서 말한 12시간이 시작되기 전 1/2시간과 끝난 뒤의 2 1/2시간에는 여전히 아동을 고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법률이 심의될 때 공장감독관들은 이와 같은 변칙적인 것의 파렴치한 남용에 관한 통계자료를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경기가 좋은 해에는 아동들을 보조로 붙여 성인노동자의 노동일을 15시간까지 연장시키려는 의도가 배후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3년간의 경험은 그와 같은 시도가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주석 142: ?총장감독관 보고서 l853년 4월 30일?, p. 30.) 그러므로 1850년의 법률은 1853년에 이르러 드디어 "아침에는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고 저녁에는 이들의 노동이 끝난 뒤에 아동을 고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보충되었다. 이때부터 1850년의 공장법은 거의 예외없이 그것이 적용되는 산업부문들에서 일체의 노동자들의 노동일을 규제하게 되었다.(주석 143: 영국 면공업의 전성기인 1859년과 1860년에 공장주들은 시간외 노동에 대해 높은 임금이라는 미끼로 성인 남자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일의 연장에 찬성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수동 뮬방적기와 자동방적기로 일하는 방적공들은 자기들의 고용주에게 건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이 시도에 종말을 짓게 했는데, 그 건의서에는 특히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생명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보다 1주에 거의 2일(20)시간이나 오래 공장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가 이 나라의 노예와 같다고 느끼게 되며, 또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에게 해독을 끼치는 제도를 우리 자신이 영구화하고 있다고 느낀다....그러므로 크리스마스휴일과 새해휴일을 마치고 또다시 일을 시작할 때 우 리는 l 1/2시간의 휴식시간을 포함해 6시부터 6시까지, 주일 60시간 이상은 노동하지 않겠다 는 것을 귀하에게 정중히 통고하는 바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4월 30일?, p. 30).) 최초의 공장법이 제정된 이래 이미 반세기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주석 144: 어떻게 이 법률의 문구가 이 법률을 위반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회 보고 ?공장규제법?(1859년 8월 6일)과 거기에 들어 있는 레너드 호너의 "감독관들이 현재 성행하고 있는 위법적 노동을 방지할 수 있도록 공장법을 개정하기 위한 제안"을 보라.)
    공장법이 1845년의 날염공장법(Printworks Act)에서 처음으로 자기본래의 적용영역을 넘어섰다. 자본이 이 새로운 ‘탈선행위'를 용인할 때의 불만은 이 법률의 한 자(字) 한 구(句)가 말하고 있다. 이 법률은 8세에서 13세까지의 아동과 부녀자의 노동일을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의 16시간으로 제한하면서, 그 사이에 식사를 위한 법정휴식시간은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그것은 13세 이상의 남성노동자를 밤낮을 통해 마음대로 노동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주석 146: "지난 반 년간 나의 관할구에서는 8세 및 그 이상의 아동들이 사실상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혹사당하고 있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l857년 10월 31일?, p. 39).) 이 법률은 의회가 낳은 기형아인 것이다.(주석 146: “날염공장법은 교육에 관한 규정으로 보나 노동보호에 관한 규정으로 보나 실패작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l일?, p. 52))
    그러나 공장법의 원칙은 [현대적 생산방식의 독특한 창조물인] 대공업부문들을 지배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1853-60년의 대공업부문들의 놀라운 발전과 공장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재건은 아무리 아둔한 사람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반 세기 동안의 내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투쟁}에 의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노동일의 법률적 제한과 규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공장주들 자신이 자기들의 공업부문과 아직도 '자유로운‘ 착취가 남아 있는 공업부문들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자랑스럽게 지적하고 있다.(주석 147: 예컨대 1863년 3월 24일자 ?더 타임즈?지에 보낸 편지에서 포터 (E. Potter)가 그러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더 타임즈?는 그에게 10시간 노동법을 반대한 공장주들의 반란을 상기시키고 있다.) '정치경제학‘의 바리새인{위선자}들은 새삼스럽게 노동일의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통찰이 그들 '과학'의 특징적인 성과라고 선언했다.(주석 148: 투크의 ?가격의 역사?의 공저자이고 편집자인 뉴마치(W. Newmarch)가 그러한 견해를 표명했다. 여론에 대해 비겁한 양보를 하는 것이 과학적 진보인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공장주들이 불가피한 대세에 체념해 순응하게 된 뒤 자본의 저항력은 점차 약화되어 갔고, 이에 반해 노동자계급의 공격력은 [공장법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회계층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동맹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강화되어 갔다. 이리하여 1860년 이래 공장법은 비교적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염색공장과 표백공장은 1860년에(주석 149: 1860년에 제정된 표백업과 염색업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노동일은 1861년 8월 1일부터 잠정적으로 12시간으로 단축되었다가 1862년 8월 1일부터 최종적으로 10시간으로, 즉 평일에는 10 1/2시간, 토요일에는 7 1/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해 1862년에는 종전과 같은 연극이 되풀이되었다. 공장주들은 의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12시간 노동을 앞으로 1년만 더 용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산업의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면화 기근) "만약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씩 노동하고 가급적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다. " 이러한 취지의 법률안이 하원에 제출되었는데, "그것이 폐기된 것은 주로 스코틀랜드의 표백공장 노동자들의 운동의 결과였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1일“, pp. 14-15).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체하다가 바로 그 노동자들로부터 이처럼 격퇴를 당하자, 자본은 법률가의 돋보기 안경의 도 움을 받아, 1860년의 법률도 ['노동보호'를 위한 모든 의회 법률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애매 한 문구로 쓰여 있어 ‘다림질공(calenderer)'과 '마무리공(finisher)'을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시 킬 수 있는 구실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나 자본에 충실하게 봉사하는 영국의 사법당 국은 민사재판소를 통해 이와 같은 궤변을 승인했다. ”노동자들은 크게 실망했다....그들은 과 도노동에 대해 불평했다. 그리고 입법의 명백한 취지가 용어의 불완전한 정의 때문에 허사가 된다는 것은 유감천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같은 보고서, p. 18).), 레이스공장과 양말공장은 1861년에 각각 1850년의 공장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제1차 보고(1863년)의 결과, 일체의 토기(도자기뿐 아니라). 성냥. 뇌관. 탄약. 카펫. 능직포의 제조공장, 그리고 '마무리 작업'이라는 이름 하에 총괄되는 수많은 과정들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들도 역시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1863년에는 '야외표백업'(주석 150: '야외표백업자들'은 부녀자는 야간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에 의해 1860년의 표백공장의 적용을 면제받고 있었다. 이 거짓말은 공장감독관들에 의해 폭로되었고, 동시에 의회도 노동자들의 진정서에 의해 야외표백은 즐거운 초원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목가적인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이 야외표백업에서는 화씨 90-100도{섭씨 32-38도}의 건조실이 사용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주로 소녀들이 일하고 있다. '냉각'이라는 말은 때때로 건조실에서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건조실에는 15명의 소녀가 있고 온도는 보통 아마포의 경우에는 80 -90도{섭씨 27-32도}이고, 고급 아마포의 경우에는 100도{섭씨 38도} 이상이다. 한가운데 밀폐식 난로를 놓은 약 10평방피트의 조그만 방에서 12명의 소녀가 다림질을 하며, 또 천을 개는 일을 한다. 소녀들은 무섭게 달아 있는 난로를 삥 둘러싸고 있으며, 난로의 열은 다림질공들을 위해 아마포를 삽시간에 말린다. 이 직공들의 작업시간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바쁠 때에는 며칠이고 계속 밤 9시 내지 12시까지 일한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31일?, p. 56). 한 의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바람을 쐬기 위한 특별한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온도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든가 여공들의 손이 땀으로 더러워질 때 몇 분간 밖에 나가는 것이 허가된다....이 여공들의 질병을 취급해 온 나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그들의 건강상태가 방적여공들의 건강상태보다 나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그런데 자본은 의회에 제출한 청원서에서 그들을 화가 루벤스 [Rubens]와 같은 수법으로 건강미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들이 가장 자주 걸리는 병 은 폐결핵. 기관지염. 자궁병. 악성 히스테리. 류마치스다. 이 병들이 발생하게 되는 직접 간 접의 원인은 공장 안의 공기가 탁하고 지나치게 덥다는 것과 그들이 겨울에 집으로 돌아갈 때 차고 습기찬 공기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만한 따뜻한 의복이 그들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같은 보고서, pp. 56, 57). 이 즐거운 '야외표백업자들'로부터 얻어낸 1863년의 법률에 관해 공장감독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법률은 외견상 제공하고 있는 보호를 노동자 에게 전혀 보장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규정의 용어가 애매모호해 아동 및 부녀자가 저녁 8 시 이후 작업하는 현장이 발각되지 않는 한 결코 보호조항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으 며, 발각된 경우에도 입증방법이 어려워 법률위반자가 처벌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같은 보 고서, pp. 52). "이 법률은 인도적인 목적이나 교육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법률로서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연령에 대한 제한이나 남녀의 구별도 없이 또 표백공장 부근에 사는 가정의 사회적 관습도 고려하지 않고, 부녀자와 아동에게 하루에 14시간[식사시간은 형
    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그보다 더 장시간 노동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허용이라기보다는 강제다) 이것을 인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공 장감독관 보고서. 1863년 4월 30일?, p. 40).)과 빵제조업이 특별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는데, 이 법에 의해 전자는 미성년자. 부녀자의 야간노동(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을 금지당했고, 후자는 저녁 9시부터 아침 5시 사이에 18세 미만의 빵제조공을 고용하는 것을 금지당했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는 농업과 광산업과 운수업을 제외한 영국의 모든 중요한 산업부문들로부터 '자유'{착취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제안들을 내놓았는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뒤에 논의하려 한다.(주석 151: 내가 이 글을 쓴 l866년 이래 또다시 반동이 시작되었다.)



    제 7 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영국의 공장업이 타국에 준 영향



    노동이 자본에 예속됨으로써 생산방식(生産方式) 그 자체가 개조된다는 점 {예: 기계제 대공업}을 무시하면, 잉여가치의 생산 또는 잉여노동의 착취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내용과 목적을 이룬다는 것을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독자는 또 우리가 지금까지 전개해 온 입장에서는 오직 독
    립적인 노동자[따라서 법률적으로 성년에 도달한 노동자]만이 상품의 판매자로 자본가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역사적 개관에서 한편으로는 근대적 산업이,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미성년인 사람의 노동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전자는 다만 노동착취의 특수한 분야로서, 후자는 다만 노동착취의 특히 주목할 만한 실례로서만 의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들의 단순한 결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 노동일을 무제한으로 또 무자비하게 연장하려는 자본의 충동은, 수력. 증기. 기계에 의해 맨처음 혁명이 일어난 산업부문들[즉, 근대적 생산방식의 최초의 창조물인 면화. 양모. 아마. 비단의 방적업과 직물업]에서 먼저 충족된다. 물질적 생산방식의 변화와 이에 상응하는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의 변화는(주석 152: “이들 계급" (자본가와 노동자) "각자의 행동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대적 입장의 결과였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113).) 처음에는 노동일의 한계를 무제한으로 확대했고, 다음에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휴식시간을 포함하는 노동일을 법률에 의해 제한하고 규제하고 균일화하는 사회적 통제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19세기 전반기에는 이러한 통제는 다만 예외적인 입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주석 153: "제한이 가해진 업종들은 증기력이나 수력에 의한 섬유제품제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감독을 받는 기업은 두 개의 조건이 필요했다. 즉, 증기력 또는 수력의 사용과, 특정한 종류의 섬유의 가공이 그것이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4년 10월 3l일?, p. 8).) 그러나 공장법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이 최초의 영역을 정복해 버리자마자, 그 사이에 다른 수많은 생산부문이 동일한 공장제도를 채택했을 뿐 아니라, 도자기공업, 유리공업 등과 같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방식을 가지고 있던 매뉴팩쳐도, 또 빵제조업과 같은 구식의 수공업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제조업등과 같은 분산적인 이른바 가내공업(家內工業)(주석 154: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최근의 보고는 이른바 가내공업의 상태에 관한 매우 값진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까지도 벌써 오래전부터 공장공업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자본주의적 착취 하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러므로 공장법은 그 예외법적 성격에서 점차 벗어나거나, 또는 [영국에서와 같이 입법이 로마 카톨릭교회의 결의법(決疑法: casuistry)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개개의 행위나 양심문제에 적용하는 법}의 방식을 따르는 곳에서는] 노동이 수행되고 있는 가옥을 모두 공장이라고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주석 155: "지난 회기(1864년)에 제정된 법률들은....그 작업방식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업종을 포괄하고 있다.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기계력의 사용은 더 이상 종전과 같이 '공장'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4년 10월 31일?, p.8).)
    둘째, 어떤 생산부문에서 일어났던 노동일 규제의 역사와, 다른 생산부문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규제를 둘러싼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단 일정한 성숙단계에 도달하면 개별 노동자[즉, 자기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로서의 노동자]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표준노동일의 제정은 장기간에 걸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內戰)의 산물인 것이다. 이 투쟁은 근대산업의 영역에서 개시되는 것이므로 우선 근대산업의 모국 영국에서 일어났다.(주석 156: 대륙적 자유주의의 낙원인 벨기에는 이 운동의 흔적도 없다. 이 나라에서는 탄광과 금속광산에서조차 모든 연령의 남녀노동자들이 시간의 장단과 시기의 여하를 가리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게' 소비되고 있다. 거기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1,000명당 733명은 성인남자, 88명은 성인 여자, 135명은 16세미만의 소년, 그리고 44명은 16세 미만의 소녀다. 용광로 등에서는 1,000명당 668명이 성인남자, 149명이 성인여자, 98명이 16세 미만의 소년, 그리고 85명이 16세 미만의 소녀다. 성숙한 그리고 미성숙한 노동력에 대한 가공할 착취에 비해 지불되는 임금은 매우 낮은데, 1일 평균 성인남자는 2실링 8펜스, 성인여자는 1실링 8펜스, 소년은 1실링 2 1/2팬스다. 그 결과 벨기에는 1850-63년에 석탄. 철 등의 수출량과 수출액을 거의 배가시켰다.) 영국의 공장노동자들은, 그들의 이론가가 자본가들의 이론에 대한 최초의 도전자였던 것과 마찬가지로(주석 157: 1810년 직후,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은 노동일 제한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주장했고, 10시간 노동일을 뉴 라나크(New Lanark]에 있는 자기 공장에 실제로 도입했다. 세상 사람들은 후자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라고 비웃었다. 그의 ‘아동의 교육과 생산적 노동의 결합', 그리고 그가 창설한 노동자의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샀다. 오늘날, 첫번째 유토피아는 공장법으로 되었고, 두번째 유토피아 {교육과 노동의 결합}는 모든 공장법에서 공식적인 관용구로 나타나 있고, 세번째 유토피아는 이미 반동적 사기를 은폐하는 가면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영국의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근대적 노동자계급 일반의 투사였다. 그러므로 공장철학자 유어는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즉, ‘노동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당당하게 싸우는 자본에 대항해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공장법이라는 노예제도'를 자기들의 기치로 삼았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고.(주석 158: 유어(Ure), ?공장철학?(불어 번역판), 파리, 1836년, 제2권, pp. 39, 40, 67, 77, 기타.)
    프랑스는 영국의 뒤를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프랑스의 12시간 노동법(주석 159: 1855년 파리 국제통계회의의 “보고”는 특히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공장과 작업장의 매일의 노동을 12시간으로 제한하는 프랑스 법률은 이 노동을 일정한 고정적인 시간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오직 아동노동에 대해서만 오전 5시와 저녁 9시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 공장주는 [이 치명적인 침묵이 그들에게 주는 권리를 이용해]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밤낮 중단 없이 일을 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하기 위해 서로 다른 2개 반의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 어느 반도 12시간 이상을 작업장에서 지내지는 않으나, 공장의 작업은 밤낮으로 계속된다. 법은 준수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측면은 어떠한가?“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이외에 ‘어두컴컴한 동일한 작업장에서 남녀가 밤에 함께 일하는데서 생겨나는 파멸적인 영향’도 역시 강조하고 있다.)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2월혁명 {1848년}이 필요했는데, 이 법률도 그것의 원형인 영국의 12시간 노동법에 비해 결함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혁명적 방법은 자기 특유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영국의 입법이 이런저런 사태의 압력에 마지못해 굴복한 결과 서로 모순되는 법조항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데 반해(주석 160: "예컨대 나의 관할구역에서는 동일한 공장건물에서 동일한 공장주가 표백업자와 염색업자로서는 표백공장법. 염색공장법의 적용을 받고, 날염업자로서는 날염공장법의 적용을 받으며, 마무리업자로서는 공장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1년 10월 31일?, p. 20에 실런 베이커(Baker)의 보고). 이 법률들의 서로 다른 규정과 그로부터 나오는 착잡한 관계를 열거한 뒤 베이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공장주들이 어떻게 해서든 법망을 피하려고 생각한다면, 이 3개의 법률의 실시를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곤란하겠는가는 이로부터도 알 수 있다. " 그러나 이것 때문에 법률가들에게는 소송사건이 보장되고 있다.) 프랑스의 혁명적 방법은 한꺼번에 전체 작업장과 공장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노동일에 대한 동일한 제한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국에서는 오직 아동과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이름으로 쟁취했을 뿐이고 또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일반적 권리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을 프랑스의 법률은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주석 161: 그리하여 공장감독관들은 드디어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말한다. "이와 같은 반대"(노동시간의 법률적 제한에 대한 자본의 반대)"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대원칙 앞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된다....자기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고용주의 권리가 정지되고, 노동자의 시간이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되는 그러한 시점이 있는 법이다. 비록 이 문제를 철저하게 규명하지 않더라도"(?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1일?, p. 54).)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공화국의 일부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던 동안에는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마비상태에 빠져 있었다. 검은 피부의 노동자에 낙인이 찍혀지고 있는 곳에서는 횐 피부의 노동자도 해방될 수 없다. 그러나 노예제도의 폐지로부터 즉시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났다. 남북전쟁의 첫번째 성과는 8시간 노동일을 위한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뉴잉글랜드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천리마의 기세로 퍼져 나갔다. 볼티모어(Baltimore)에서 열린 전국노동자 대회(1866년 8월)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 나라의 노동을 자본주의적 노예제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필요한 최대의 급선무는 아메리 카 연방의 모든 주에서 표준노동일을 8시간으로 만드는 법률의 제정이다. 우리는 이 영예로운 성과를 달성하기까지 전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주석 162: 우리들 던커크의 노동자들은 지금의 제도가 요구하는 노동시간의 길이가 너무나 길어 우리에게 휴식과 교육을 위한 시간을 남겨주지 않으며, 도리어 우리를 노예제도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예속상태로 빠뜨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8시간이 1노동일로서 충분하며, 또 그것이 충분하다고 법적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결의하며, 유력한 신문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을 호소한다....우리에게 이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개혁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적으로 간수할 것을 결의한다"(1866년, 뉴욕주, 던저크[Dunjirk] 노동자들의 결의).)

    이와 때를 같이 하여 (1866년 9월 초)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자대회(The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제 1 인터내셔널의 대회}는 런던의 총무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노동일(勞動日)의 제한은, 그것 없이는 개선(改善)과 해방(解放)을 위한 앞으로의 모든 노력이 좌절되지 않을 수 없는 예비조건이라고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8시간을 노동일의 법정한도로 안한다,” {이 결의는 마르크스 자신이 기초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서양의 양쪽에서 [생산관계 그 자체로부터 자연적으로 성장한] 노동운동은 영국의 공장감독관 손더즈(R. J. Saunders)의 다음과 같은 진술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증해 주고 있다.

    “만약 노동시간이 제한되지 않고, 또 제정된 그 한계가 엄격히 준수되지 않는다면, 사회개혁의 더 이상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주석 163:“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112.)

    우리의 노동자는 생산과정에 들어갈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생산 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에서 그는 '노동력(勞動力)'이라는 상품의 소유자로 다른 상품의 소유자{화폐를 가진 자본가}와 상대하고 있었다. 즉, 상품소유자에 대해 상품소유자로 상대했다. 그가 자본가에게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했을 때의 계약은 그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처분한다는 사실을 이를테면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증명한 것이었다. 거래가 완결된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 그가 자유롭게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그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판매해야만 하는 기간이라는 것(주석 164: "더욱이 이러한 행동"(예컨대 1848-50년의 자본의 술책)"은 그처럼 빈번하게 제기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논박의 여지없이 증명한다. 그 주장이란 노동자들은 보호가 필요없으며, 자기의 유일한 재산-손의 노동과 이마의 땀-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의 소유자로 간주될 수 있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0년 4월 30일?, p. 45). "자유로운 노동(만약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면)은 자유로운 나라에서조차도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이라는 강력한 팔뚝이 필요하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4년 10월 31일“, p. 34). ”식사시간도 없이 하루에 14시간....노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 또는 같은 말이지만 강요하는 것"(?공장감독관 보고서. 1863년 4월 30일“, p. 40).) 사실상 흡혈귀는 “착취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주석 165: 엥겔스, “영국의 10시간 노동법안” “신 라인 신문”, 1850년 4월호. p. 5.),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된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기자신이 자본과의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자족을 죽음과 노예상태로 팔아 넘기는 것을 방지해 줄 하나의 법률[즉, 아주 강력한 사회적 장벽]을 제정하도록 하나의 계급으로서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주석 166: 10시간 노동법은 그 적용을 받는 산업부문들에서 "이전의 장시간 노동자들의 조기 노쇠현상에 종지부를 찍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59년 10월 31일?, p.47). "자본"(공장에서의)"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도덕을 해치지 않고서는 제한된 시간을 넘어 기계를 가동할 수는 결코 없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같은 보고서, p. 8).) '양도할 수 없는 인권(人權)'이라는 화려한 목록(目錄) 대신 법적으로 제한된 노동일이라는 겸손한 대헌장(大憲章)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노동자가 판매하는 시간은 언제 끝나며, 자기 자신의 시간은 언제 시작되는가"(주석 167: "그보다도 더 큰 이익은 노동자 자신의 시간과 고용주의 시간이 드디어 명백하게 구별되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이제 자기가 판매하는 시간이 언제 끝나고 언제부터 자기 자신의 시간이 시작되는가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이것을 미리 정확히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시간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미리 배정할 수 없게 된다"(같은 보고서, p. 52). "그것"(공장법)"은 노동자들을 자기 자신의 시간의 주인이 되게 함으로써 [정치적 권력을 궁극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그들에게 부여했다"(같은 보고서, p. 47). 공장감독관들은 [조심스러운 종자와 매우 신중한 표현으로] 현재의 10시간 노동법이 또한 [자본의 단순한 화신인] 자본가에게 내재하는 난폭성으로부터 자본가를 어느 정도 해방시켜 그에게 약간의 '교양'을 위한 시간을 주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전에는 공장주는 돈벌이 이외의 다른 일을 위한 어떤 시간도 가져본 적이 없고, 노동자는 노동 이외의 다른 일을 위한 어떤 시간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같은 보고서, p. 48).)를 비로소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제 11 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우리는 이 장(幸)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가치[따라서 노동일 중 노동력의 재생산 또는 유지에 필요한 부분]를 주어진 불변(不變)의 크기라고 가정한다.
    이와 같이 가정하면,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은 개별 노동자가 일정 기간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가치량(剩餘價値量)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 준다. 만약 예컨대 필요노동(必要勞動)이 하루에 6시간이고 그것을 금량(金量)으로 표현한 것이 3원이라고 한다면, 3원은 1노동력의 하루 가치 또는 1노동력(勞動力)을 사는데 드는 자본의 가치이다. 더 나아가, 만약 잉여가치율이 100%라고 한다면, 이 3원의 가변자본(可變資本)은 3원의 잉여가치량을 생산할 것이다. 바꾸어 말해, 노동자는 매일 6시간의 잉여노동량(剩餘勞動量)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가변자본은 자본가가 동시적으로 고용하는 모든 노동력의 총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다. 따라서 투하한 가변자본의 가치는 1노동력의 평균가치(平均價値)에다 고용한 노동력의 수(數)를 곱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는 경우, 가변자본의 크기는 동시적으로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한다. 그리하여 만약 1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3원이라면, 매일 100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300원의 자본을, 매일 n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3n원의 자본을 투하해야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1노동력의 하루 가치인 3원의 가변자본(可變資本)이 매일 3원의 잉여가치(剩餘價値)를 생산한다면, 300원의 가변자본은 매일 300원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며, 3n원의 가변자본은 매일 3n원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따라서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개별 노동자의 1노동일이 제공하는 잉여가치에다 고용한 노동자의 수를 곱한 것과 같다. 그러나 더 나아가 재별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량은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는 경우) 잉여가치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제1법칙(第一法則)이 나온다. 즉, 생산되는 잉여가치량(剩餘價値量)은 투하한 가변자본(可變資本)의 크기에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을 곱한 것과 같다. 바꾸어 말해, 그것은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력의 수와 {l노동력의 평균가치및} 개별 노동력의 착취도(搾取度)의 곱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잉여가치량을 S로, 개별 노동자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잉여가치를 s로, 1노동력의 구매에 매일 투하하는 가면자본을 v로, 가변자본의 총액을 V로, 하나의 평균노동력의 가치를 P로, 착취도를 a'/a (잉여노동/필요노동)으로, 그리고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를 n으로 각각 표시한다면, 다음과 같은 공식을 얻는다.

    S = s/v x V
    P x a'/a x n

    하나의 평균노동력의 가치가 불변이라는 것뿐 아니라,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들이 평균적 노동자로 환원되어 있다는 것도 항상 전제하고 있다. 생산되는 잉여가치가 착취되는 노동자의 수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노동력의 가치도 또한 불변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일정한 양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때 어떤 한 요인의 감소는 다른 요인의 증대에 의해 보상할 수 있다. 가변자본은 감소하지만 그와 동시에 잉여가치율이 동일한 비율로 증가한다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여전히 불변일 것이다. 앞의 가정에서 자본가가 하루에 100명의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서는 300원을 투하해야 하고, 잉여가치율은 50%라고 한다면, 300원의 가변자본은 150원[또는 3시간x100명]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만약 잉여가치율이 2배로 되며 [즉, 노동일이 6시간에서 9시간 대신 12시간으로 연장되며], 동시에 가변자본이 절반[즉, 150원]으로 감소한다면, 이때에도 150원[또는 6시간 x 50명]의 잉여가치가 생산될 것이다. 따라서 가변자본의 감소는 그와 비례하는 노동력의 착취도의 증가에 의해 보상할 수 있으며, 또는 고용되는 노동자 수의 감소는 그와 비례하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보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자본이 착취할 수 있는 노동(勞動)의 공급은 노동자(勞動者)의 공급과는 관계가 없다.(주석 1: 이 초보적인 법칙이 속류경제학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전도(轉倒:inverted)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처럼 노동의 시장가격이 수요 .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서, 세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지시키기 위한 지렛목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반대로, 잉여가치율의 감소는, 만약 가변자본의 크기 또는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가 그에 비례해 증가한다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을 변동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수[또는 투하한 가변자본의 크기]의 감소를 잉여가치율의 증대[또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보상하는 데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限界)가 있다. 노동력의 가치가 어떻든 [즉, 노동자의 생활유지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2시간이든 10시간이든], 한 노동자가 매일 생산할 수 있는 총가치는 [24 노동시간이 대상화되는] 가치보다 항상 적을 것이다. 만약 이 대상화된 24노동시간의 화페적 표현이 12원이라고 한다면, 총가치는 항상 12원보다 적을 것이다. 노동력 자체를 재생산하
    기 위해 [또는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투하한 자본가치를 대체하기 위해] 매일 6노동시간이 필요하다는 앞의 가정에 따르면, 100%의 잉여가치율[즉, 12시간 노동일]로 5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1,500원의 가변자본은 매일 1,500원[또는 6시간 x 500명]의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그런데 매일 200%의 잉여가치율[즉, 18시간 노동일]로 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300원의 자본은 겨우 600원[또는 12시간 x 100명]의 잉여가치량을 생산할 뿐이다. 그리고 이 자본의 총가치생산물[즉, 투하한 가변자본 더하기 잉여가치]은 결코 매일 1,200원[또는 24시간 x I00명]에 달할 수 없다. 평균노동일의 절대적 한계-이것은 본래 24시간보다 항상 짧다-는 가변자본의 감소를 잉여가치율의 증대에 의해 보상하는 것…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955
  • 자본론13
    이 사 람들은 마치 흑인노예들이 미국의 면화재배자에게 판매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맨 체스터의 공장주들에게 판매되었던 것이다....1860년은 면공업이 절정에 달한 해였다.... 또 도시 노동자가 부족하게 되었다. 공장주들은 또다시 이른바 '인신 알선인‘에게로 찾아 갔다. 그리고 이 알선인들은 잉글랜드의 남부 저지(低地), 도셋셔(Dorsetshire)의 초원, 데본셔(Devonshire)의 구릉, 월트셔(Wiltshire)의 목축지를 샅샅이 뒤졌으나 과잉인구는 벌써 다 '흡수되고' 더는 없었 다. "

    “베리 가디언?(Bury Guardian)지는 영불(英佛) 통상조약의 체결 {1860년} 뒤에는 “1만명의 추가적 노동자가 랭카셔(Lancashire)에 의해 흡수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얼마 오래지 않아 3-4만 명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인신매매의 알선인들과 하청인들‘이 1860년 농업지방을 돌아 다녔으나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 뒤에,

    “공장주들의 대표는 런던까지 와서 구빈국(救貧局) 대표인 빌리어즈(Villiers)에게 구빈원으로 부터 가난한 아동들을 랭카셔의 방적공장으로 공급하는 일을 허가해 주도록 청원했다. "(주석 78: 같은 연설. 빌리어즈 자신은 공장주들에 대해 매우 큰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나, '법률상' 그 들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지방 구빈원의 친절에 의해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공장감독관 레드그레이브(A. Redgrave)의 확언에 의하면, 고아와 빈민아동을 '법률상' 도제(徒弟:apprentice)로 간주하는 이 제도는 "전과 같은 폐해를 수반하지 않았다.( 이 ‘폐해’에 대해서는 엥겔스의 저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보라). 비록 하나의 경우에 "스 코들랜드의 농업지방으로부터 랭카셔와 체셔에 데려온 소녀들과 젊은 부녀자들에 대해서는 이 제도가 남용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 '제도'에서는, 공장주는 구빈원 당국과 일정한 기간 에 걸쳐 계약을 체결한다. 공장주는 아동들에게 의식주를 보장하며 또 그들에게 소액의 수당을 지급한다. 레드그레이브의 아래와 같은 말은 이상하게 들리는데, 영국의 면공업이 번영했던 해 가운데서도 1860년은 유래가 없는 특수한 해였고, 그 해에 임금이 비상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특히 그러하다. 그 해에 임금이 높았던 것은, 노동에 대한 비상한 수요가, 아 일랜드의 인구감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농업지방으로부터 호주와 아메리카로의 유례없는 이민과 [노동자들의 생식력이 파괴된 결과, 또는 인신매매인들이 벌써 이용할 만한 과잉인구를 다 처리해 버린 결과]잉글랜드의 약간의 농업지방에서 인구의 현실적 감소와 때를 같이 해 발 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레드레이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와 같은 종류의 노동"(구빈원 아동의 노동)"은 오직 다른 어떤 노동도 발견할 수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싼 노동이기 때문이다. 13세 소년공의 보통 임금은 1주일에 약 4실링이다. 그러나 50명 내지 100명의 이와 같은 소년공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며, 의약품과 적당한 보호를 제공해 주며, 그 위에 또 그들에게 소액이나마 수당을 주기 위해서는 1주일에 1인당 4실링으로는 부족하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4월 30일?, p. 27). 그러나 레드그레이브가 언급하기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공장주도 이들 50명 내지 100명의 소년들에게 4실링으로 해줄 수 없다면, 어떻게 노동자 자신이 자기의 아이가 받아 오는 4실링 의 임금으로 이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본문으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끌어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서 또 한 가지 지적해 둘 것이 있다. 즉, 영국의 면공업은 노동시간 등을 규정한 1810년의 공장법이 적용되고부터는 영국의 모범적인 산업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면공업 노동자는 대륙에 있는 같은 운명의 노동자들에 비해 모든 점에서 낫다. "프러시아의 공장노동자는 영국에 있는 그들의 경쟁자에 비해 1주일에 적어도 10시간은 더 노 동한다. 그리고 그가 자기 집에서 자기 자신의 직조기를 가지고 일할 때에는 그의 노동은 이러 한 추가노동을 넘어선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5년 10월 31일?,p. 103). 레드그레이브는 1851년의 산업박람회 이후 대륙 특히 프랑스와 프러시아로 여행가서 그 나라들의 공장상황을 조 사한 일이 있다. 그는 프러시아의 공장노동자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익숙 해진 간단한 식사와 약간의 안락을 얻을 만한 보수를 받는다....그들은 영국 노동자에 비해 생활 은 더 나쁘고 일은 더 고되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53년 10월 31일?, p. 83).)

    경험이 자본가에게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과잉인구[일정 시점에서 자본의 가치증식에 필요한 수보다 많은 인구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과잉인구란 발육부진의, 단명한, 신속히 교체되는 인간들, 말하자면 채 익기도 전에 따먹히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주석 79: "과도노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죽는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자리는 곧 다시 메워지고 등장인물이 빈번하게 교체되더라도 무대 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다"(웨이크필드 [E. G. Wekefield), ?영국과 미국", 런던, 1833년, 제1권, p. 55).) 또한 경험은 사려깊은 관찰자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준다. 즉, [역사적으로 볼 때 바로 어제 태어났을 뿐인] 자본주의적 생산이 얼마나 급속하고 확고하게 국민의 생명력의 근원을 장악했는가를, 그리고 공업인구의 퇴화(退化)가 농촌으로부터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생명요소들의 끊임있는 흡수에 의해 얼마나 저지되고 있는가를, 그리고 심지어 농촌노동자들까지도 [그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또 그들 사이에는 가장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연도태(自然淘汰: natural selection)의 원칙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얼마나 많이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주석 80: “공중위생(公衆衛生: public health). 추밀원의무관 제6차 보고서. 1863년?을 보라. 이것은 1864년에 런던에서 발간되었다. 이 보고서는 특히 농업노동자를 취급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서덜랜드(Sutherland) 주를....매우 좋은 주라고 일러왔다....그러나....최근의 조사는 일찍이 아름다운 남자와 씩씩한 병사로 명성이 높았던 이 지역에서도 주민은 여위고 왜소한 인종으로 퇴 화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다를 면한 언덕배기의 건강에 가장 좋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굶주린 아이들의 얼굴색은 런던 뒷골목의 더러운 분위기 속에서 볼 수 있는 창백한 얼굴색이다"(손턴[W. T. Thornton], ?과잉인구와 그 해결책?, pp. 74-75). 실 제로 그들은 글래스고우의 좁은 뒷골목에서 매춘부나 도둑들과 한데 뒤섞여 살아가고 있는 30,000병의 '용감한 스코틀랜드 고지인(高地人)'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자기 주위에 있는 노동자 세대의 고난을 부인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자본은, 인류는 장차 퇴화할 것이라든가 인류는 결국 사멸해버릴 것이라는 예상에 의해서는 그 실천적 활동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데, 그것은 마치 지구가 태양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의해서는 자본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주식투기의 경우에도, 언젠가 한 번은 벼락이 떨어지리라는 것{가격이 폭락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은 황금의 비를 모아 안전한 장소에 옮겨놓은 뒤에 그 벼락이 이웃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을 바라고 있다.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것이 모든 자본가와 모든 자본주의국의 표어(標語)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사회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주석 81: “주민의 건강은 국민적 자본의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자계급은 이 보물을 보존하고 존중하려는 의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유감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공장주들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고려하는 것은 타의에 의해 강제되기 때문이다"(?더 타임즈?지, 1861년 11월 5일). "웨스트 라이딩(West Riding)의 주민들은 인류 전체의 직물제조자로 되었다....노동자들의 건강은 희생되었다. 그리고 몇 세대 만에 종족은 퇴화해 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반작용이 일어났다. 샤프츠베리(Shaftesbuy)의 법안이 아동의 노동시간을 제한했다" (?호적청장(戶籍廳長: Registrar General)의 제22차 연차보고서?, 런던, 1861년).) 육체적. 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통 등에 관한 블평에 대해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켜 주는데 어째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라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개별 자본가의 선의(善意)나 악의(惡意) 때문은 아니다. 자유경쟁(自由競爭) 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이 개별 자본가에 대해 외부적인 강제법칙(强制法則)으로 작용한다.(주석 82: 그러므로 우리는 예컨대 스태퍼드셔에 대규모 도자기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26개 회사[그 중에는 웨지우드 회사도 있다]가 1863년 초에 '어떤 입법조치'를 청원하고 있는 것을 본다.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 때문에 그들은 아동의 노동시간 및 기타에 대해 어떤 자발적인 제한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술한 폐해를 아무리 유감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장주들 상호간의 어떤 협정(協定)에 의해 방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이 모든 점을 고려해 우리는 어떤 입법조치(立法措置)가 필요하다는 확신에 도달했다"(?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 1차 보고서?1863년, p. 322). 최근의 사건{1873년}은 한층 더 주목할 만한 실례를 제공했다. 열병적 호황의 시기에 면화가격의 등귀는 블랙번(Blackburn)의 면직물공장 소유자들로 하여금 그들 상호간의 협정에 의해 자기 공장의 노동시간을 일정한 기간 단축하게 했다. 이 기간은 1871년 11월 말 경에 이르러 끝이 났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방적(紡績: spinning)과 직조(織造: weaving)를 겸하고 있는 더 부유한 공장주들은 이 협정에 의한 생산의 감소를 이용해 자기들의 사업을 확장하고 소공장주들의 희생 위에 더 많은 이윤을 올리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소공장주들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공장노동자들에게 9시간 노동을 위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도록 호소하고, 이 목적을 위해 기부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표준노동일의 제정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수세기에 걸친 투쟁의 결과다. 그러나 이 투쟁의 역사는 상반되는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예컨대 현재의 영국의 공장법과 14세기에서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의 영국의 노동법규들(주석 83: 이러한 노동법규(프랑스, 네덜란드 등에도 그 당시 존재하고 있었다)는 영국에서는 생산관계의 발전에 의해 효력을 잃어버린 지 훨씬 뒤인 1813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을 비교해 보라. 현대의 공장법은 노동일을 강제적으로 단축시키고 있으나 이전의 노동법규들은 노동일을 강제적으로 연장시키려 한다. 그러나 자본이 생성되고 있던 맹아상태[즉, 아직은 경제관계의 힘만에 의해서는 충분한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할 수 없어 국가권력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상태]에서의 자본의 요구는, 자본이 그 성년기에 내심으로는 불만이 있으면서도 마지못해하는 양보와 비교해 본다면, 매우 겸손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의 결과 '자유로운' 노동자가 사회적 조건에 강제되어 자발적으로 그의 일상적 생활수단의 가격을 받고 자기의 활동적인 생활시간 전체를 [또는 자기의 노동능력 자체를] 팔아 넘기게 되기까지에는, 즉 한 접시의 팥죽에 자기의 장자(長子)의 권리를 팔아넘기게 되기까지에는{구약성서, 창세기, 제25장 29절 이하} 수세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 자본이 국가권력에 의해 성인노동자들에게 강요하려고 했던 노동일의 길이는, 19세기 후반에 아동들의 피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설정한 노동일의 길이와 대체로 일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최근까지 미국의 가장 자유스러운 주인 매사츄세츠 주에서 12세미만의 아동노동의 법적 한도가 지금 선포되었는데, 그것은 영국에서는 17세기 중엽 원기왕성한 수공업노동자들이나 건장한 머슴들이나 장사와 같은 대장장이들에게 적용되었던 표준노동일이었다.(주석 84: “12세 미만의 아동을 어떤 공업시설에서도 1일 10시간 이상 고용해서는 안 된다”(?매사츄세츠 주 일반법?, 제63호, 제12장. 이 법령들은 1836-58년에 반포된 것이다). “모든 면공장 . 양모공장. 견직물공장. 제지공장 . 유리공장. 아마포공장. 제철소. 놋쇠제조소에서 1일 10시간 동안 수행되는 노동이 법적인 하루 노동으로 간주된다. 또 앞으로는 어떤 공장에서도 미성년자에게 하루에 10시간 이상 또는 1주일에 60시간 이상 일을 시켜서는 안 되며, 또 이 주 안의 어떤 공장에서도 10세 미만의 아동을 노동자로 채용해서는 안 되다”(?뉴저지 주 노동시간제 한법“, 제1조 및 제2조, 1851년 3월 18일의 법률) ”어떤 공업시설에서도 12-15세의 미성년자에 게 하루 11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과, 오전 5시 이전과 오후 7시 반 이후에 일을 시키는 것 은 금지한다"(?로드 아일랜드주 개정법령?, 제139장, 제23조, 1857년 7월 1일).)
    최초의 ‘노동법규’(에드워드[Edward] 3세 제 23년, 1349년)는 그 직접적인 구실(구실이지, 원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종류의 입법은 그 구실이 없어진 뒤에도 수세기에 걸쳐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을 당시 창궐한 흑사병에서 찾았는데, 이 병으로 말미암아 인구가 얼마나 격감했던지 토리당의 한 저술가는 "노동자들을 적당한 가격으로“(즉, 그 고용주에게 상당한 양의 잉여노동을 남겨줄 만한 가격으로) ”고용할 수 없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주석 85: 바일즈 (J. B. Byles),?자유무역의 궤변?, 제7판, 런던, 1850년, p. 205. 더욱이 바로 이 토리당원은 다음과 같은 사실도 인정하고 있다 "노동자에게는 불리하고 고용주에게는 유리하게 임금을 규제하는 의회법령들은 464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존속했다. 그 동안 인구는 증가했다. 이 제 이 법령들은 불필요하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되었다"(같은 책, p. 206).)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노동일의 한계와 적절한 노동임금이 법률에 의해 제정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노동일의 한계에 관한 조항뿐인데, 이것은 1496년(헨리[Henry] 7세 치하)의 법률에서도 반복되었다. 이 법률에 의하면, 모든 수공업노동자와 농업노동자의 노동일은 3월부터 9월까지는 아침 5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되어 있었으나 엄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식사시간은 아침식사에 1시간, 점심에 l 1/2시간, 또 오후 4시의 간식에 1/2시간으로, 현행의 공장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의 꼭 2배였다.(주석 86: 이 법규에 관해 웨이드(J. Wade)는 정당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496년의 법령을 보면, "음식물에 대한 지출은 1496년 수공업노동자 소득의 1/3, 농업노동자 소득의 1/2에 해당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 노동자들의 독립성의 정도가 현재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현재는 농업 .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식비가 그들의 임금의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웨이드, “중간계급 및 노동계급의 역사”, pp. 24-25, 577). 이 차이가 현재와 그 당시의 식료품. 의류의 가격 차이 때문이라는 견해는 플리트우드(Fleetwood) 주교의 “물가연표”(제1판, 런던, 1707년, 제2판, 런던, 1745년)를 얼핏 보기만 해도 반박할 수 있다.) 겨울에는 식사시간은 마찬가지지만 노동은 아침 5시부터 어두울 때까지였다. 1562년의 엘리자베스(Elizabeth)의 법령은 ‘ 일당(日當)이나 주당(週當)임금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노동일의 길이는 그대로 둔 채 중간의 휴식시간을 여름에는 2시간 반, 겨울에는 2시간으로 제한하려 했다. 이 법령은 점심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고, ’1/2시간의 낮잠'을 5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만 허가했다. 결근 또는 지각은 1시간마다 1페니씩 임금에서 공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령에 규정된 것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더 유리했다. [경제학(經濟學)의 시조(始祖)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통계학(統計學)의 창시자이기도 한] 월리엄 페티는 17세기의 최후의 1/3에 출간한 한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동자"(그 당시는 농업노동자를 의미한다)"는 하루에 10시간씩 노동하고, 1주일에 20회의 식 사[즉, 평일에는 하루에 3회, 일요일에는 2회의 식사]를 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금요일 저녁에는
    단식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현재 그들이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의 2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1시간
    반으로 줄인다면, 즉 만약 그들이 1/20 더 일하고 1/20 덜 소비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앞에서 말 한 세금은 징수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87: 페티(W. Petty), ?아일랜드의 정치적 해부?, 1672년, 1691년판, {부록} p. 10.)

    앤드류 유어가 1833년 12시간 노동법안을 가리켜 암흑시대로의 후퇴라고 규탄한 것은 정당하지 않은가?{노동시간을 과거보다 연장시키지 않고 과거와 동일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온 불평이다. }위의 법령들 속에 포함되어 있었고 또 페티가 언급한 규정들이 도제(徒弟)에게도 적용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17세기 말엽까지도 아동노동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의 불평으로부터도 알 수 있다.

    "우리 영국 소년들은 도제가 되기까지는 전혀 아무 일도 배우지 않는다. 따라서 완전한 수공 업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긴 세월(7년)이 걸린다. "

    반면에 독일은 찬양되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아동들이 요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기 때문이다.(주석 88: ?기계공업 장려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 런던, 1690년, p. 13. 영국의 역사를 휘그(Whig)당과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합치되도록 위조한 매콜리(Macaulay)는 다음과 같이 공언하고 있다. "아이들을 너무 어려서부터 일시키는 관습이....17세기에 매우 성행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의 공업발달 수준에 비추어 보면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양모공업의 주요 중심지인 노리지(Norwich)에서는 6세의 어린이가 노동에 적합하다고 간주되었다. 그 당시의 몇몇 저술가들-그 들 중에는 마음이 매우 자애롭다고 존경받는 사람도 몇 있었다-은 이 도시에서만도 어린 소년 소녀들이 1년 동안에 자기 자신의 생활비보다 l2,000파운드나 많은 부(富)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더 세밀하게 연구하면 할수록, 우 리의 시대가 새로운 사회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찬동할 수 없는 이 유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오히려 새로운 것은 이러한 사회악을 치료하는 지성과 인간애이 다"(?영국사?, 제1권, p. 417.) 매콜리는 더 나아가, 17세기에 상인의 '아첨꾼들'이 네덜란드의 어떤 구빈원에서 4살된 어린아이에게 일을 시킨다는 사실을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이야기했 다는 사실, 그리고 또 '실천에 옮겨진 선행‘의 이와 같은 실례는 A. 스미스(Smith)의 시대에 이 르기까지 매콜리류의 인도주의자들에 의해 비판받아 왔다는 사실을 보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 다. 수공업 대신 매뉴팩쳐가 등장함으로써 아동들에 대한 착취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 이다. 이러한 착취는 어느 정도까지 농민들 사이에 항상 있었으며, 또 농민들에 대한 가렴주구 (苛斂誅求)가 심하면 심할수록 아동들에 대한 착취도 한층 더 발전해 왔다. 자본의 경향은 아동노동을 착취할 것이 명백하지만, 이러한 사실들 자체는 그 당시에는 쌍두아(雙頭兒)의 출현과 같이 아직은 예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견지명이 있는 '상인의 아침꾼'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특히 주목할 만하고 경탄할 만한 것으로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기록했으며,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과 후세의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모방하도록 권고했던 것이다. 이 스코틀랜드 태생의 아첨꾼이며 말재주꾼인 매콜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것은 퇴보(退步)뿐이고 보는 것은 진보(進步)뿐이다. " 얼마나 훌륭한 눈과, 특히 얼마나 훌륭한 귀를 가지고 있는가!)
    대공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8세기의 대부분에 걸쳐, 영국의 자본은 노동력의 1주일 가치를 지불함으로써 노동자들의 1주일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다만 농업노동자는 예외였다). 노동자가 4일분의 임금으로 1주일 내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자본가를 위해 나머지 이틀도 일해야 한다는 충분한 이유라고는 노동자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의 경제학자들 중의 일파는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노동자들의 그와 같은 고집을 통렬하게 비난했으며, 다른 일파는 노동자들을 옹호했다. 예컨대 포슬스웨이트(Postlethwayt)-그의 ?상업사전? {1751년}은 매컬록 및 맥그레거의 비슷한 저서가 오늘날 얻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호평을 그 당시 얻고 있었다-와 앞에서 인용한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 {1770년}의 저자 사이의 논쟁을 들어보기로 하자.(주석 89: 노동자를 비난한 사람들 중 가장 격렬한 사람은 본문에서 말한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 조세의 고찰을 포함해서?(런던, 1770년)의 익명의 저자이다. 벌써 그 이전에도 그의 저서 ?조세에 관한 고찰?(런던, 1765년)에서 동일한 견해를 발표한 일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다변가인 통계학자 아더 영(Arthur Young)도 이 부류에 속한다. 노동자의 옹호자 중에서 탁월한 사람들은 ?화폐만능론?(런던, 1734년)의 저자 반더린트(Jacob Vanderlint), ?현재 식료품의 가격이 높은 원인에 관한 연구?(런던, 1767년)의 저자 포스터(Nathaniel Foster), 그리고 프라이스(Price), 그리고 특히 ?상업사전?의 부록 및 ?영국의 상업적 이익의 해명과 개선?(제2판, 런던, 1759년)에서의 포슬스웨이트(Postlethwayt))이다. 언급되고 있는 사실들 자체는 같은 시대 의 수많은 다른 저술가들, 특히 터커(Josiah Tucker)에 의해 확인된 바이다.)
    포슬스웨이트는 특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노동자가 5일간에 1주일의 생활에 충분한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6일 전체 를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친부한 말인데, 나는 이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간략한 서술을 끝마칠 수 없다. 그들은 수공업. 매뉴팩 쳐 노동자들로 하여금 1주일에 6일 동안 쉬지 않고 노동하도록 하기 위해 [세금 또는 다른 어 떤 수단으로] 생활필수품의 가격까지도 비싸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미안 하지만 나는 이 나라 노동자들의 영원한 노예상태를 목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위대한 정치가들과 는 의견을 달리한다. 그들은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격언을 망각하고 있다. 이때 까지 영국상품 일반에 신용과 명성을 보장해 준 영국 수공업. 매뉴팩쳐 노동자들의 재능과 기교 는 영국사람들이 자랑하는 바가 아닌가? 이것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노동자들이 자기들 특유의 방식으로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1 주일에 6일 전체를 동일한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1년 내내 계속 일만 하도록 강요당한다 면, 이것은 그들의 창의성을 무디게 하며 민첩하고 재주있는 그들을 우둔한 바보로 만들지 않겠 는가? 그리고 우리의 노동자들은 그와 같은 영원한 노예상태의 결과 자기의 명성을 유지하지 못 하고 잃어버리지 않겠는가?....우리는 그처럼 혹사당하고 있는 동물들로부터 그 무슨 솜씨를 기대 할 수 있겠는가?....그들 중 많은 사람은 프랑스 사람이 5-6일 걸릴 일을 4일 동안에 해치운다. 그러나 만약 영국 사람들이 영원한 고역노동자(苦役勞動者: drudge)로 되어야 한다면, 그들은 프 랑스 사람들보다 퇴화(退化)할 우려가 있다. 우리 국민이 전쟁에서 용맹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데, 우리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그들이 먹는 훌륭한 쇠고기와 푸딩(pudding)의 덕택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그보다 못지 않게 우리 헌법상의 자유정신의 덕택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
    째서 우리의 수공업. 매뉴팩쳐 노동자들의 우수한 재능과 기교가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즐기는 자유(自由)의 덕택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인가? 나는 그들로부터 이 특권을 빼앗지 말 것과, 또 그들의 용기와 창의성(創意性)의 원천인 그들의 좋은 생활을 결코 빼앗지 말 것을 바라는 바이 다. "(주석 90: 포슬스웨이트, ?상업사전“, "제1서론", p. 14.)

    이에 대해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만약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신(神)의 제도라면, 이것은 나머지 6일이 노동(勞動)"(자 본(資本)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아래에서 곧 알게 된다)"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 와 같은 신의 명령을 강행하는 것을 잔인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 터 안일과 나태에 빠지기 쉬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불행하게도 매뉴팩쳐 노동자 들의 행동으로부터 경험하는 바이며, 그들은 생활수단의 가격이 등귀하지 않는다면 1주일에 평 균 4일 이상을 일하지 않는다....이제 1부셀의 밀이 노동자의{l주일} 생활수단 전체를 대표하며, 그 가격이 5실링이고, 노동자는 하루의 노동에 의해 1실링을 번다고 하자. 그 경우 그는 1주일에 5일만 일하면 된다. 그리고 만약 1부셀의 밀이 4실링이라면 4일만 일하면 된다. 그런데 이 나라 에서는 임금이 생활수단의 가격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4일 동안 노동하는 매뉴팩쳐 노동자 는 그의 나머지 날을 놀고 지낼 수 있는 여분의 돈을 가진다....1주 6일간의 적당한 노동은 결코 노예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농업노동자들은 1주 6일간 노동하고 있으며, 또 그들은 어느 모로 보든 노동자들 중에서 가장 행복하다.(주석 91: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의 저자 자신이 그 책의 96페이지에서 1770년에 영국 농업노동자들의 '행복'이 무엇 이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노동력은 항상 극도의 긴장상태에 있다. 그들은 현재 생활 하는 것보다 더 나쁘게 생활할 수도 없으며 더욱 심하게 일할 수도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매 뉴팩쳐에서도 6일간 노동하고 있으며, 매우 행복한 국민인 듯이 보인다. 프랑스 사람들도 공휴일 이 중간에 끼어 있지 않은 한 그렇게 하고 있다.(주석 92: "신교(新敎: protestantism)는 거의 모 든 전통적인 휴일을 일하는 날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자본의 발생사(發生史)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국민들은 영국인으로서의 타고난 권리에 의해,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 다도 더 많은 자유와 독립을 향유할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념 은 우리 나라 병사들의 용감성에 영향을 미치는 한, 어느 정도 유익할 것이지만, 매뉴팩쳐 노동 자들은 이러한 관념을 적게 가질수록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 더 좋을 것이다. 노동 자는 결코 자기의 윗사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총인구의 7/8이 재산을 거의 소유하지 못했거나 전혀 소유하지 않고 있는 우리 나라와 같은 상업국(商業國)에서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은 대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 나라의 노동자들이 현재 4일간 에 받고 있는 그 금액으로 기꺼이 6일간을 일하게 될 때까지는 해결책이 완전하지 못할 것이다. "(주석 93: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 런던, 1770년, pp. 15, 41, 96, 97, 55, 57, 69. 반더린트 는 벌써 1734년에, 노동자들이 나태하고 자본가들이 불평하고 있으나 그 속내용은 노동자들이 동일한 임금으로 4노동일 대신 6노동일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고 '나태와 방탕과 자유를 근절하고‘ 근면의 정신을 기르기 위해, 그리고 '구빈세(救貧稅)의 경감과 매뉴팩쳐에서의 노동가격의 인하를 위해', 자본의 충실한 대변자는 공적 부조(公的 扶助: public support)에 의지하고 있는 노동자들(한마디로 말해 극빈자들)을 '이상적인 노동수용소(ideal workhouse)'에 가두어 두자는 확실한 대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와 같은 노동수용소는 '잘 먹이고 잘 입히면서 노동을 시키지 않는' 빈민보호원(貧民保護院)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공포(恐怖)의 집'이 되어야 한다.(주석 94: 같은 책, pp. 242-243.) 이 ’공포의 집‘, 이 ’이상적인 노동수용소‘에서는 하루에 14시간, 그러나 여기에는 적당한 식사시간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온전한 12시간이 노동시간으로 되게 해야 한다‘(주석 95: 같은 책, p. 260.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프랑스인은 우리의 열광적인 자유의 사상을 비웃고 있다“(같은 책, p. 78.)
    1770년의 '이상적 노동수용소', 즉 '공포의 집‘에서 1노동일은 12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3년 후인 1833년 영국의회가 4개의 공업부문에서 13세부터 18세까지의 아동의 노동일을 온전한 12시간으로 단축시켰을 때, 영국공업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닥쳐온 것같이 생각했던 것이다! 1852년에 루이 보나파르트(Louis Bonaparte)가 부르주아지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법정노동일을 연장하려 했을 매, 프랑스의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동일을 12시간으로 단축시킨 법률, 이것만이 공
    화국의 입법 중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하게 좋은 것이다. "(주석 96: "그들이 하루에 12시간 이상 노동하는 것을 특히 반대한 이유는, 노동일을 12시간으로 제한한 법률이 공화국의 입법들 중에서 그들에게 남은 유일하게 좋은 것이라는 데 있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55년 10월 31일?, p. 80). 1850년 9월 5일의 프랑스 12시간 노동법은 1848년 3월 2일의 임시정부포고의 부르주아적 수정판으로 모든 작업장에 차별 없이 적용된다. 이 법이 공포되기 전에는 프랑스의 노동법은 제한이 없었다. 공장들에서 노동일은 14, 15시간 또는 그 이상 계속되고 있었다. 블랑키(J. A. Blanqui)의 저작 ?1848년의 프랑스의 노동자계급에 대해?를 보라. 경제학자였지 혁명가가 아니었던 블랑키는 노동자의 실태조사를 정부로부터 위임받았던 것이다. {혁명가는 L. A. Blanqui다.}) 고 외쳤던 것이다. 쥬리히에서는 10세 이상의 아동의 노동이 12시간으로 제한되었으며, 아르가우{스위스의 한 주}에서는 1862년에 13세부터 16세까지의 아동의 노동시간은 12시간 반에서 12시간으로 단축되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1860년에 14세부터 I6세까지의 아동의 노동시간이 역시 12시간으로 단축되었다.(주석 97: 벨기에는 노동일의 규제에서 부르주아 국가의 표본으로 되어 있다. 브뤼셀 주재 영국 전권공사 하워드(Howard de Walden)는 1862년 5월 12일 영국 외무성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로지어(Rogier) 장관이 나에게 말하기를, 아동노동은 현재 일반법에 의해서나 지방법령에 의해서나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최극 3년간 의회가 열릴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려고 생각했으나 그때마다 [노동의 완전한 자유의 원칙과 모순되는 입법은 어느 것이나 부닥쳤던] 이기적인 반대를 극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1770년 이래의 진보가 얼마나 훌륭한가"라고 매콜리는 '기쁨에 넘쳐' 소리칠지도 모른다.
    1770년에는 자본가들이 아직 꿈에서만 갈망하고 있던 극빈자들을 위한 '공포의 집'은 그 뒤 몇 해를 지나서는 공장노동자 자신들을 위한 거대한 '노동수용소'로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공장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실이 자본가들의 이상(理想)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제 6 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
    법률에 의한 노동시긴의 강제적 제한
    (1833-64년의 영국의 공장법)



    자본이 노동일을 그 정상적인 최대한도로까지 연장하고, 그 다음에는 그 한계를 넘어 12시간이라는 자연의 낮시간의 한계에까지 연장하는 데에는(주석 98: "어떤 계급의 사람들이 하루에 12시간씩 고역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히 통탄할 일이다. 만약 이 12시간에 식사시간과 작업장까지의 왕복시간을 더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하루 24시간 가운데 14시간에 달한다....건강은 그만두고라도 노동자계급의 시간을 13세라는 어린 때부터, 그리고 규제받지 않는 산업부문에서는 심지어 그보다도 훨씬 더 어린 때부터, 끊임없이 그처럼 완전히 흡수해 버리는 것은, '도덕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유해하고 비참한 해악(害惡)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공중도덕을 위해, 건전한 주민을 길러내기 위해, 또 국민의 대다수에게 생활의 적당한 기쁨을 보장하기 위해, 전체 산업부문에서 각 노동일의 일부를 휴식과 여가를 위해 유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1년 12월 31일?에 있는 레너드 호너의 말).) 수세기가 걸렀지만, 그 뒤 18세기의 마지막 기에 대공업의 탄생과 더불어 노동일은 눈사태와 같이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연장되기 시작했다. 도덕과 자연, 연령과 성별, 낮과 밤에 의해 설정되는 모든 한계는 분쇄되었다. 종래의 법률들에서는 너무나도 단순했던 낮과 밤의 개념까지도 매우 애매모호해져 영국의 한 재판관은 1860년에 낮이란 무엇이며 밤이란 무엇인가를 '판결상' 해명하기 위해 유대율법의 해설자와 같은 통찰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주석 99: “1860년 안트림주 벨파스트 고등법원 재판정의 오트웨이(J. H. Otway)의 판결?을 보라.) 자본은 성대한 향연을 벌이면서 자기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다.
    새로운 생산체계의 소음에 귀머거리가 되었던 노동자계급이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리게 되자 곧 그들의 반항이 우선 대공업의 발생지인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30년 동안 노동자계급이
    쟁취한 양보란 순전히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의회는 1802년부터 1833년까지 5개의 노동관계법들을 통과시켰지만, 교활하게도 이 법률들의 강제적 실시와 그에 필요한 직원 등에 대한 경비의 지출은 한 푼도 의결하지 않았다.(주석 100: 부르주아 왕인 루이 필립의 통치에서 매우 특징적인 것은, 그의 치하에서 제정된 유일한 공장법인 1841년 3월 22일의 공장법이 끝내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법률은 아동노동만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8세 내지 12세의 아동노동을 8시간으로, 12세 내지 16세의 아동노동을 12시간 등으로 제한했지만, 8세의 아동에게도 야간노동을 허용하는 수많은 예외 규정이 설정되어 있다. 이 법률의 적용에 대한 감시와 그 집행에 대한 강제는 [쥐 한 마리까지도 경찰의 단속 하에 있는 이 나라에서는] '장사꾼의 친구‘들의 선의에 맡겨져 있었다. 겨우 1853년부터 단 하나의 지역, 즉 노르(Nord)에만 1명의 유급 정부감독관이 임명되었다. 프랑스 사회의 발전에서 이에 못지 않게 특징적인 것은, 일체를 법망(法網)으로 얽어매는 그 많은 법률들 가운데서 오직 이 루이 필립의 법률만이 1848넌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유일한 공장 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법률들은 죽은 지나지 않았다.

    “1833년의 법률 이전에는 아동과 미성년자들은 온밤, 온낮 또는 온낮 온밤 시키는 대로 노동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석 101: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4월 30일?, p. 50.)

    근대적 산업의 표준노동일은 면. 모. 아마. 비단공장을 포괄하는 1833년의 공장법에서부터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 1833년부터 1864년까지의 영국 공장법의 역사 이상으로 자본의 정신을 더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없다.
    1833년의 법률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공장의 보통 노동일은 아침 5시 반에 시작해 저녁 8시 반에 끝나야 하며, 이 한도 안에서, 즉 15시간의 범위 안에서는 미성년자(13세부터 18세까지의 사람)를 1일 중 어떤 시간에 고용하건 합법적이다.
    1833년의 법률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공장의 보통 노동일은 아침 5시 반에 시작해 저녁 8시 반에 끝나야 하며, 이 한도 안에서는 미성년자(13세부터 18세까지의 사람)를 1일중 어떤 시간에 고용하건 합법적이다. 다만 이때 특별히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미성년자를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 이 법률 제6조에는 "이와 같이 그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있는 각 개인에게는 하루 중 적어도 1시간 반의 식사시간을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세 미만의 아동을 고용하는 것은 뒤에서 말하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금지되었고, 9세 내지 13세의 아동의 노동은 하루에 8시간으로 제한되었다. 야간노동(이 법률에 의하면 저녁 8시 반부터 아침 5시 반까지의 노동)은 9세부터 18세까지의 모든 사람에게 금지되었다.
    입법자들은 성인노동력을 착취할 자본의 자유(그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유')를 침해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공장법이 자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특이한 제도까지 고안했다. 1833년 6월 28일 조사위원회 중앙위의 제1차 보고서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공장제도의 큰 병폐는 그것이 아동노동을 필연적으로 성인노동일의 최대 한도까지 연장시키게 된다는 점이라고 보여진다. 성인노동을 제한하지 많고-성인노동을 제한하 면 지금 제거하려고 생각하는 병폐 이상으로 더 큰 폐해가 발생할 것이다-이 병폐를 제거하는 유일한 수단은 생각컨대 아동들의 2교대제(交代制)를 채용하는 계획이다. "

    그리하여 이 '계획'은 '릴레이 제도'('릴레이'(relay)는 프랑스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어에서도 각 역에서 역마(役馬)를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란 이름 아래 실시되었는데, 예컨대 아침 5시 반부터 오후 1시반까지는 9세부터 13세까지의 아동들로 된 한 교대반이 일하고, 오후 1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는 다른 교대반이 일했다.
    그 이전 22년 동안 제정된 아동노동에 관한 모든 법률들을 공장주들이 뻔뻔스럽게 무시해 버린 것에 대한 보상으로, 이번에는 쓴 알약에 설탕을 발라 그들에게 준 것이다. 의회는, 1834년 3월 1일 이후에는 11세 미만의 아동이, 그리고 1835년 3월 1일 이후에는 12세 미만의 아동이, 또 그리고 1836년 3월 1일 이후에는 13세 미만의 아동이 한 공장에서 8시간 이상 노동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자본(資本)'에 대해 매우 관대한 이 '자유주의(自由主義)'는, 파(J. R. Farre), 칼라일(A. Carlisle), 브로디(B. Brodie), 벨(C. Bell), 거스리(C. J, Guthrie) 등, 요컨대 런던의 가장 탁월한 내과의사와 외과의사들이 하원의 증언에서 "지체하면 위험하다"고 천명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파는 이 문제에 관해 더욱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젊어서 일찍 죽는 것(요절)이 어떤 형태로 발생하든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입법이 필요 한데, 이 방식"(공장의 작업방식)"은 확실히 요절(夭絶)을 야기하는 가장 잔인한 방식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 "

    '개혁된' 의회 {1832년의 선거법 개정 뒤의 의회}는 공장주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에서 13세 미만의 아동들을 그 뒤 수 년 동안 1주 72시간의 공장노동이라는 지옥 속에 쳐박아 두면서도, 다른 한편 (자유를 한 방울 한 방울씩 베풀어 준) 노예해방령(奴隸解放令)에서는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흑인노예들에게 1주 45시간 이상 노동시키는 것을 처음부터 금지했다.
    그러나 자본은 결코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해 동안 요란스러운 선동을 개시했다. 선동의 주된 목표는 ['아동'이기 때문에 그 노동이 8시간으로 제한되었고 또 일정한 의무교육을 받기로 된] 인간의 연령(年齡)에 관한 것이었다. 자본가의 인류학에 의하면, 아동기(兒童期)는 10세 또는 11세에 끝난다는 것이었다. 공장법을 완전히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 결정적인 해인 1836년이 다가오면 올수록 공장주들의 분노는 더욱 맹렬해졌다. 사실 이들이 정부를 얼마나 협박했던지 1835년 정부는 아동의 연령을 13세에서 12세로 낮출 것을 제의하는 때까지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공장주 이외로부터의 압력도 더욱 위협적으로 되었다. 하원은 용기를 잃었다. 하원은 13세의 아동들을 하루 8시간 이상 자본(資本)이라는 쟈거노트{Juggernaut: 인도 신화에 나오는 크리슈나 신상(神像)으로, 이것을 실은 수레에 치여 죽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음. 잔인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레의 바퀴 밑에 던지는 것을 거부했으며, 그리하여 1833년의 법률은 완전한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1844년 6월까지 변경되지 않았다.
    이 법률이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다음에는 전체적으로] 공장노동을 통제하고 있던 10년 동안, 공장감독관들의 공식보고서들은 이 법률을 집행할 수 없다는 고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즉, 1833년의 법률에 의하면,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의 15시간 안에서는 각 ‘미성년자'와 각 '아동'의 12시간 노동 또는 8시간 노동을 시작시키고, 중단시키고, 다시 시작시키고 끝내도록 하는 것에 관한 시간결정은 자본가들에게 일임되었으며, 또한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식사시간을 지정하는 것도 역시 그들의 재량에 일임되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그 뒤 곧 새로운 '릴레이 제도'를 발명했는데 이에 의하면, 노동자라는 말(馬)은 고정된 역(驛)에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역에서 끓임없이 새로 교체되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 다시 이 제도의 교묘함을 살펴보게 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그것을 더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공장법 전체를 그 정신에서뿐 아니라 규정에서까지 무효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언뜻 보아도 명백하다. 각 아동들과 각 미성년자들에 관한 그와 같은 복잡한 장부를 가지고 공장감독관들이 어떻게 공장주들로 하여금 법정 노동시간과 법정식사시간을 준수하도록 강요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공장들에서 곧 또다시 종전의 잔인한 만행이 성행했으나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내무장관과의 회견(1844년)에서 공장감독관들은 새로 고안된 릴레이 제도 하에서는 어떤 통제도 블가능하다는 것을 증언했다.(주석 102: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10월 31일?, p. 6.) 그러나 그 동안 사태는 매우 달라졌다. 공장노동자들은, 특히 1838년 이래, 인민헌장(People's Charter){보통선거권과 각종의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한 성명서}을 자기들의 정치적 선거구호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10시간 노동법안을 자기들의 경제적 구호로 삼았던 것이다. 1833년의 법률을 준수한 일부 공장주들까지도 [매우 철면피한 탓으로 또는 비교적 유리한 지방사정 탓으로 법률을 위반한] '불성실한 동료들'의 비도덕적인 '경쟁'에 관해 의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더욱이 개별공장주들이 아무리 첫날부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공장주계급의 대변자들과 정치적 지도자들은 공장주들에게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와 말씨를 고쳐야 된다고 명령했다. 왜냐하면, 공장주들은 이미 곡물법(穀物法: Corn Laws)의 폐지를 위한 투쟁을 개시했고, 거기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장주들은 자유무역이라는 천년왕국에서는 임금이 2배로 될 뿐 아니라 10시간 노동법안도 채용될 것임을 약속했던 것이다.(주석 10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98.) 따라서 그들은 1833년의 법률을 실현하는 데 지나지 않는 조치들을 감히 반대하고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기들의 신성불가침의 이익인]지대(地代: rent of land)가 위협을 당하자 토리당은 자기들 적{공장주}의 '흉악한 술책'(주석 104: 레너드 호너는 자기의 공식적인 보고서에서 '흉악한 술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59년 10월 31일, p 7).)에 대해 의분에 넘쳐 통렬히 비난했다. {곡물법이 폐지되어 곡물수입이 자유롭게 되면 곡물값이 내리고 지주가 받는 지대도 감소할 것이다}.
    1844년 6월 7일의 추가적 공장법은 이렇게 해서 성립되었고 1844년 9월 10일부터 실시되었다. 그것은 18세 이상의 부녀자라는 새로운 범주의 노동자를 법률의 보호 아래 두었다. 부녀자들의 노동시간은 12시간으로 제한되었고 그들의 야간노동은 금지되는 등 부녀자들은 모든 점에서 미성년자들과 등등하게 취급되었다. 이 입법에 의해 처음으로 성인노동까지도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통제 하에 두게 된 것이다. 1844-1845년의 공장보고서는 풍자적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인 부녀자가 이 법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불평해 온 경우를 우리는 한 건도 알지 못한다. "(주석 105: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4년 9월 30일?, p. 15.)

    13세 미만의 아동의 노동은 1일 6 1/2시간으로, 그리고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7시간으로 단축되었다.(주석 106: 이 법률은 아동들이 매일 노동하지 않고 격일제로 노동하는 경우에만 그들을 하루 10시간 고용하는 것을 허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조항(條項)은 실시되지 않았다.) 허위에 찬 릴레이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률은 특히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세칙(細則)을 제정했다.

    "아동 및 미성년자의 노동일은 아동 또는 미성년자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침에 공장에서 노동하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계산되어야 한다. "

    그리하여 만약 예컨대 A는 아침 8시에, 그리고 B는 10시에 노동을 시작하는 경우에도 B의 노동일은 A의 노동일과 동일한 시각에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은 공설(公設)의 시계'[예컨대 근처의 철도 시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하며, 공장의 시계는 이것에 맞추어야 한다. 공장주는 작업의
    개시와 종료, 그리고 식사시간을 알리는 '커다랗게' 인쇄된 공고(公告)를 공장 안에 게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전의 작업을 12시 전에 시작한 아동들에게 오후 1시 이후에 다시 일을 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오후의 교대반은 오전의 교대반과는 다른 아동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점심시간으로 배정되는 l 1/2시간은 "적어도 한 시간은 오후 3시 전에 주어야 하며.... 하루 중 같은 시간에 주어야 한다. 아동 또는 미성년자에게 식사를 위해 적어도 반시간의 휴식을 주지 않은 채 오후 1시 전에 5시간 이상의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 아동 또는 미성년자(또는 부녀자)는 식사시간에 노동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공장작업실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의 시간. 한계. 중단을 그와 같이 군대식으로 일률적으로 시계의 종소리에 맞추어 규제하는 이 세밀한 규정들은 결코 의회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었다. 세밀한 규정들은 근대적 생산양식의 자연법칙으로 당시의 상황에서 점차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국가에 의한 그것들의 제정. 공식적 인정. 선포는 장기간의 계급투쟁의 결과였다 이러한 규정들로부터 당장 나타나게 된 결과들 중의 하나는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노동일도 동일한 제한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생산과정에서는 아동. 미성년자. 부녀자의 협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체로 보아 1844-47년 동안 12시간 노동일은 중장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산업부문에서 전반적으로 한결같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이와 같은 '진보‘를 그것을 보상할 '퇴보’ 없이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동에 따라 하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법률에 의해 자본에 바쳐야 할] '공장아동의 추가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착취되는] 아동의 최저연령을 9세에서 8세로 인하했다.(주석 107: "그들의 노동시간의 단축은 고용되는 아동의 수를 증가시킬 것이므로, 5세부터 9세까지의 아동의 추가공급은 이러한 증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4년 9월 30일“, p. 13).)
    1846-47년은 영국경제사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시대를 이룬다. 곡물법(穀物法)이 폐지되었고, 면화와 기타 원료에 대한 관세(關稅)가 폐지되었으며, 자유무역(自由貿易)이 입법의 지침으로 선포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천년왕국(千年王國)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한편, 이 동일한 해에 챠티스트운동(Chartist movement)과 10시간 노동일을 위한 운동이 그 절정에 달했다. 이 운동들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던 토리당{지주계급의 당}을 그 동맹자로 삼게 되었다. 브라이트와 콥덴을 선두로 하는 배신적(背信的) 자유무역주의의 발광적인 반항애도 불구하고, 그처럼 오랫동안 투쟁해 온 10시간 노동법안이 드디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1847년 6월 8일의 신공장법은 1847년 7월 1일부터 ‘소년’(13세부터 18세까지)과 여성노동자 전체의 노동일을 우선 11시간으로 단축할 것과, 1848년 5월 1일부터는 그것을 최종적으로 10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규정했다. 그 밖의 점들에서는 이 법률은 1833년 및 1844년의 법률에 대한 수정. 증보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은 이 법률이 1848년 5월 1일부터 완전히 시행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예비전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 자신이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 자기들 자신의 업적{공장법}을 파괴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시기는 교묘하게 선택되었다.

    "(1846-47년의 혹심한 공황의 결과) 많은 공장들은 조업을 단축했고 그 밖의 공장들은 완전히 문을 닫았기 때문에, 공장노동자들은 2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 요가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수의 노동자가 매우 궁핍한 상태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빚을 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과거의 손실을 보충하고 어쩌면 빚도 갚고, 또는 전당잡혔던 가구들을
    다시 찾아오고, 또는 팔아치웠던 가구들을 새 것으로 바꾸며, 또는 자신과 가족들의 새옷을 장만 하기 위해, 차라리 더 긴 노동시간을 택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주석 108:?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16.)

    공장주들은 10%의 일반적 임금인하(賃金引下)에 의해 이러한 사태의 자연적인 영향을 강화하려고 했다. 임금인하는 말하자면 새로운 자유무역시대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행해진 것이었다. 다음으로 노동일이 11시간으로 단축되자마자 임금은 또다시 8 1/3% 인하되었으며, 그 뒤 노동일이 최종적으로 10시간으로 단축되자마자 그것의 두 배나 인하되었다. 그러므로 사정이 허락한 모든 곳에서 임금은 적어도 25% 인하되었다.(주석 109: "한 주일에 10실링을 받고 있던 사람들은 10%의 임금인하로 말미암아 1실링을 깎이고, 다음으로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1실링 6펜스를 깎여, 합계 2실링 6펜스를 깎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대다수는 10시간 노동법안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같은 보고서).) 이처럼 유리하게 조성된 기회를 이용해 1847년의 법률을 폐지하기 위한 공장노동자들에 대한 선동이 개시되었다. 사기. 유혹. 협박 등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노동자들이 '이 법률이 그들에게 가한 고난'에 대해 불평하도록 강요당해 제출한 6통의 청원서에 관해 말한다면, 그 청원자들 자신이 구두신문을 당했을 때 자백한 바와 같이, 그들의 서명은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공장법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주석 110: “‘나는 청원서에 서명하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나쁜 일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당신은 왜 서명했는가?'. '거절할 경우 공장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칭원 자는 사실 '억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것은 결코 공장법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같은 보고서, p. 102).) 공장주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신문과 의회에서 노동자의 이름으로 더 한층 소리 높여 떠들어댔다. 그들은 공장감독관을 [세상을 개선한다는 망상 때문에 불행한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프랑스의 국민의회와 같은 혁명위원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술책도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공장감독관 레너드 호너는 자기 스스로 그리고 자기의 부하인 부감독관들을 통해 랭카셔의 공장들에서 많은 증인을 신문했다. 신문을 받은 노동자 중 약 70%가 10시간 노동일을, 그보다 훨씬 적은 비율이 11시간 노동일을, 그리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소수가 종전의 12시간 노동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주석 111: 같은 보고서, p. 17. 호너의 관할지역에서는 l8l개의 공장에서 10,270명의 성인 남자노동자가 신문을 받았다. 그들의 증인은 1848년 10월에 끝나는 반년 간의 공장감독관의 보고서의 부록에 실려 있다. 이 증인신문은 다른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또 하나의 '온건한' 술책은 성인 남자노동자들을 12-15시간 일을 시킨 다음, 이 사실이 프롤레타리아의 내심으로부터의 바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공장감독관 레너드 호너가 또다시 현장에 나타났다. '시간외 근무자들'의 대다수가 언명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차라리 더 적은 임금을 받고 10시간 일하는 쪽을 훨씬 더 좋아하지만, 그들에게는 선 택의 권리가 없다. 그들 중에는 많은 사람이 실업상태에 있기 때문에(방적공들 가운데는 어쩔 수 없이 실이나 잇는 공원이 되어 아주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만약 그들이 노 동시간의 연장을 거부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즉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의 선택은 더 장시간 노동하느냐 아니면 해고되느냐다."(주석 112: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의 부록에 있는 호너 자신이 수집한 증언, 제 69, 70, 71, 72, 92, 93호 및 부감독관 A가 수집한 증언, 제 51, 52, 58, 59, 62, 70호를 보라. 공장주중에도 솔직하게 진술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같은 부록 제14호 및 제265호를 보라.)
    이와 같이 자본의 예비전은 실패로 끝나고 10시간 노동법은 1848년 5월 1일에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챠티스트운동은 그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그 조직은 해체되는 대실패를 겪게 되었는데, 이것은 영국 노동자계급의 자신감을 뒤흔들어 버렸다. 그 뒤 얼마되지 않아 파리의 6월 폭동과 그 피비린내 나는 진압은 유럽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지배계급의 모든 분파들[즉, 지주와 자본가, 주식투기업자와 소매상인, 보호무역주의자와 자유무역주의자, 정부와 야당, 목
    사와 무신론자, 젊은 창녀와 늙은 수녀]을 재산. 종교. 가족. 사회의 구원(救援: salvation)이라는 공동의 구호아래 통합시켰던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모든 곳에서 법의 보호를 박탈당했으며,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으며, 각종 탄압법의 단속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장주들은 더 이상 조금도 자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10시간 노동법에 대해서뿐 아니라, 1833년 이래 노동력의 '자유로운' 착취를 제한하려고 시도했던 모든 입법에 대해서도 공공연한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노예제도 옹호반란{미국의 남북전쟁}의 축소판으로 2년 이상에 걸쳐 냉소적인 무자비함과 테러리스트적 정력으로 감행되었는데, 반란자인 자본가가 도박에 건 것이라고는 자기 노동자들의 가죽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성공하기도 그만큼 쉬웠다.
    아래에서 말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1833년. 1844년. 1847년의 공장법들은 그 하나가 다른 것에 수정을 가하지 않는 한 그 세 개가 모두 법률상 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 어느 것도 18세 이상 남자노동자의 노동일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1833년 이래 여전히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의 15시간이 법정 '일(日)'이며 그 한도안에
    서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12시간 노동[뒤에는 10시간 노동]이 법에 규정된 조건들 하에서 수행되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 등이다.
    공장주들은 이곳저곳에서 자기들이 고용하고 있던 미성년자와 여성노동자의 일부를, 많은 경우 그 절반까지 해고하기 시작했으며, 그 대신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던 성인 남자노동자의 야간노동을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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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3
    그의 보고(주석 45:?빵제조공의 불평에 관한 보고서?, 런던, l862년 및 ?제2차 보고서? 런던, 1863년) 는 증인의 증언과 더불어 대중을-그들의 심장이 아니라 위장을-놀라게 했다. 성서에 정통하고 있는 영국사람은, 신의 은총으로 선택된 자본가나 지주나 한직(閑職)에 있는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나 이마에 땀을 흘려 자기의 빵을 구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명반과 모래와 기타 그리 나쁘지 않은 광물성 혼합물은 별도로 치더라도, 종기의 고름이나 거미줄이나 바퀴벌레의 시체나 씩은 독일제 효소 등과 혼합되어 있는 일정한 양의 인간의 땀을 매일 빵으로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자유로웠던' 빵
    제조업은 그 신성한 '자유상업'에 대한 고려도 없이 국가 감독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고(1863년의 의회회기 끝에), 그리고 의회의 법령에 의해 18세 미만의 빵제조공에게는 오후 9시에서 오전 5시 사이의 노동은 금지되었다. 이 조항은 이 오래된 친숙한 사업부문의 과도노동에 대해 여러 권의 책보다 더 웅변적으로 발해 주고 있다.

    “런던의 빵제조공의 노동은 보통 밤 11시에 시작된다. 이 시간에 그는 '반죽'을 하는데, 이 일
    은 가마솥의 빵의 분량과 품질에 따라 1/2시간 내지 3/4시간 계속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 것이 끝난 다음 그는 반죽판-이것은 동시에 밀가루통의 뚜껑으로도 쓰인다-위에 누워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머리 밑에 베고 또 다른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몸에 덮고 두 시간쯤 잠을 잔 다. 그 뒤 5시간에 걸친 신속하고 쉴새없는 노동, 즉 반죽을 던지고, 그 중량을 달고, 그 형태 를 만들고, 그것을 가마에 올리고, 가마에서 끄집어내는 등등의 노동이 시작된다. 빵제조실의 온 도는 화씨 75도 내지 90도{섭씨 24도 내지 32도}에 달하며, 규모가 작은 빵제조실의 온도는 그 보다 낮지 않고 도리어 높다. 식빵이나 원통형 빵 등을 만드는 일이 끝나면 빵배달이 시작된다. 그리고 빵제조공의 대부분은 앞에서 말한 어려운 야간노동이 끝난 뒤 낮에는 빵을 광주리에 담 든지 손수레에 싣고 몇시간 동안 날라다 주며, 또 이따금 빵제조실에서 작업도 한다. 이 노동은 계절과 영업의 규모 여하에 따라 오후 1시에서 6시 사이에 끝나지만, 직공들의 다른 일부는 밤 늦도록 빵제조실에서 작업을 한다. "(주석 46: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별책부록 pp. 6-7 "이른바 '런던 시즌' {런던의 사교시즌으로 초여름 무렵}에는 빵을 '정가'로 판매하는 웨스트 엔드(West End)의 빵집에서 일하는 직공들은 으례히 밤 11시에 작업을 시작해 1회나 2 회의 대체로 매우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방을 굽게 된다. 다음에 그들은 오후 4시, 5시, 6시까지 또 경우에 따라서는 7시까지도 계속 빵을 배달하며 또는 이따금 방 제조실에서 비스켓도 굽는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그들은 5-6시간, 종종 4-5시간 수면을 취한다. 금요일에는 노동은 언제나 더 일찍 저녁 10시에 시작해서 토요 일 저녁 8시까지 계속되고, 일반적으로는 일요일 아침 4-5시까지 계속된다. 일요일에도 다 음 날을 위한 준비 때문에 두세 번 공장에 나와 1시간 내지 2시간 일해야 한다....싸구려 빵집(빵 을 정가 이하로 파는 빵집으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런던의 전체 빵집의 3/4에 달한다)에 서 일하는 직공들의 노동시간은 이보다 더 길 뿐 아니라 그들의 노동은 거의 전적으로 빵제조실 내부에 국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빵집 주인은 일반적으로....자기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하기 때문 이다. 조그마한 소매점에 공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을 시켜 배달하며 직접 이집저집 배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주말이 가까워 오면....목요일 밤 10시부터 노동이 시작되어 사소한 중단이 있을 뿐 토요일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주석 47: 같은 책, 별책부록 p. 71.)

    ‘싸구려 빵집’의 처지를 부르주아적 지식인조차도 "직공들의 불불노동(不拂勞動: unpaid labour)이 그들의 경쟁의 원천이다"(주석 48: 리드(George Read), ?빵제조업의 역사? 런던, 1848년, p. 16.)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정가판매 빵제조업자'는 자기의 경쟁자인 '싸구려 빵집’을 타인노동의 도둑이며 불순품 제조자라고 조사위원회에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첫째 대중을 기만하는 것에 의해, 그리고 둘째 그들의 직공들에게 12시간분의 임금을 지불하고 18시간의 노동을 시키는 것에 의해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석 49: ?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1차 보고서5“, ‘정가판매 빵제조업자' 치즈먼의 증언, p. 108.)

    빵의 불순제조와 [빵을 정가 이하로 판매하는] 빵제조업자의 형성은 영국에서는 18세기 초 이래 [즉, 이 업종의 길드적 성격이 해체되고 명목상의 빵제조업자 배후에 자본가가 제분업자 또는 밀가루 전대상인(前貸商人)으로 나타난 이후부터] 발생한 것이다.(주석 50: 리드, 앞의 책. 각종 영업분야에 몰려들어와 있던 전대상인(前貸商人)들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도 '사회질서파괴자'로 비난받고 있었다. 예컨대 서머셋주에서 치안판사법정의 분기 재판기간에 대배심원은 하나의 '고발장'을 하원에 제출했는데, 그 가운데는 특히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다. "블랙웰홀(Blackwell Hall)의 이 전대상인들은 직물업에 해를 끼치는 사회질서파괴자이므로 마땅히 하나의 불법행위자로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우리 영국 양모업의 사례“, 런던, 1685년, pp. 6-7).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 야간노동의 토대가 이 분야에서 이루어졌는데, 야간노동은 런던에서조차도 1824년 이후 비로소 본격적으로 그 기반을 확립했다.(주석 51: ?제1차 보고서?, 별책부록 p. 8.)
    앞에서 말한 바에 의해, 우리는 위원회의 보고서가 빵제조공을 단명한 노동자의 부류에 소속시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아동들에게 일반적인] 유아사망(幼兒死亡)을 다행히 면했지만 42세까지 연명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제조업에는 언제나 지원노동자가 넘치고 있다. 런던에 이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천지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서부농업지대 및 독일이다.
    1858-60년에 아일랜드의 빵제조공들은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대집회를 자기들의 비용으로 조직했다. 대중들은, 예컨대 1860년 5월의 더블린 집회에서 본 바와 같이, 아일랜드인의 특유한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편에 가담했다. 이 운동의 결과 웩스포드, 킬켄니, 클론멜, 워터포드 등에서는 야간노동 없는 주간노동만이 실제로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다.

    "직공들의 고통이 너무 지나친 것으로 알려진 리머리크(Limerick)에서는, 이 운동은 빵제조업 자들, 특히 빵제조업과 제분업을 겸하는 사람들의 반항에 부닥쳐 실패로 돌아갔다. 리머리크의 실패는 엔니스 및 티페러리에서도 패배를 가져왔다. 대중들의 분노가 가장 격심하게 표현된 코 크에서는 고용주들이 직공들을 해고함으로써 이 운동을 좌절시켰다. 더블린에서는 고용주들이 가장 단호하게 저항했고 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직공들을 박해함으로써 기타 직공들로 하여금 양보해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주석 52: “1861년의 아일랜드의 빵제조업에 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

    [아일랜드에서는 빈틈없이 무장하고 있는] 영국 정부의 위원회도 더블린, 리머리크, 코크 등의 무자비한 빵제조업자들에게는 애원하는 어조로 다음과 같이 충고할 뿐이었다.

    “본 위원회는, 노동시간은 자연법(自然法)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며, 이 자연법의 위반에 대해 서는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고용주들은 해고의 위협으로 자기의 노동자들에게 종교적 신념의 위배와 국법에 대한 불복종과 여론의 무시"(이 모든 것은 일요일노동과 관련된 것이다)" 를 강요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불화를 야기하며....종교. 도덕. 사 회질서에 대해 위험한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본 위원회는,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 의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을 침해하며, 그리하여 노동자의 가정을 파괴하고 자식. 형제. 남편. 아버 지로서의 가족적 의무의 수행을 방해함으로써 해로운 도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12시 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고, 일찍 늙고 일찍 죽게 하며, 노동자의 가족은 가장(家長)의 보호와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를 빼앗기게 되어 크게 불행해 진다. "(주석 53: 같은 보고서.)
    우리는 이상에서 아일랜드에 관한 사정을 알아보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쟁기질하는 농업노동자들은 사나운 기후에서 하루 13-14시간의 노동을 그리고 또 일요일에도 4시간의 추가노동까지 해야 한다(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고 항의하고 있으며,(주석 54: 1866년 1월 5일 에딘버러 부근의 래스웨이드(Lasswade)에서 개최된 농업노동자들의 군중집회(1866년 1월 13일자 ?노동자의 옹호자?를 보라). 1865년 말 농업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우선 스코틀랜드에서 결성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억압받고 있는 농업 지대의 하나인 버킹엄셔의 노동자들이 1867년 3월에 주급을 9-10실링에서 12실링으로 인상시키기 위해 일대 파업을 단행했다. (위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영국의 농업노동자의 운동은, 1830년 이후의 그 격렬한 시위운동들이 진압당한 이래, 그리고 또 특히 새로운 구빈법(救貧法)이 실시된 이래, 완전히 분쇄되었으나, 6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고 1872년에는 드디어 획기적인 것으로 되었다. 나는 제2권에서 다시 이 문제를 취급하려고 하며 또한 1867년 이래 발간된 영국농업노동자의 상태에 관한 청서에 대해서도 언급하려 한다).) 같은 시기에 런던에서는 검시배심원(檢屍賠審員) 앞에 3명의 철도 노동자-여객 승무원, 기관사, 신호수-가 출두하고 있다. 끔찍한 철도사고가 수백 명의 승객을 저 세상으로 수송했던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철도노동자들의 부주의(不注意)이다. 그들이 배심원 앞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0-12년 전에는 그들의 노동은 하루에 8시간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5-6년 동안 노동시간이 14시간, 18시간, 20시간으로까지 늘어났다. 또 행락철과 같이 특히 여행객이 몰릴 때에는 노동이 가끔 중단없이 40-50시간 계속된다. 그들 철도노동자들은 보통의 인간이지 신화에나 나오는 장사들이 아니다. 어떤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들의 노동력은 고갈된다. 그들은 무감각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두뇌는 사고(思考)를 중지하며, 그들의 눈은 보기를 중지한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영국의 배심원들'은 그들에 대해 살인(殺人)이라는 죄명으로 순회재판에 회부한다고 판결하고, 다음과 같은 경건한 희망을 부드러운 어조로 첨부하고 있다. 즉, 철도관계의 대자본가들은 앞으로 필요한 수의 ‘노동력'을 구입하는 데 좀더 돈을 아끼지 말고, 구입한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좀더 '절도있게' '욕심적게' '검소하게' 하기를 바란다고.(주석 55: ?레이놀즈 신문?, 1866년 1월 21일자. 이 신문은 매주 '처참한 숙명적인 사고, '참혹한 비극'등등의 충격적인 제목 아래 수많은 새로운 철도사고들을 보고하고 있다. 북부 스태퍼드셔 철도의 어느 노동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열차의 기관사와 화부(火夫)가 계속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매우 사나운 날씨에 휴식도 없이 29-80시간씩 노동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러한 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음과 같은 예는 매우 자주 일어난다. 월요일에 화부는 아침 일찍부터 그날의 일을 시작했다. 그는 14시간 50분 뒤에 그 일을 끝마쳤다. 그는 차 한 잔 마실 들도 없이 또다시 작업에 불려나왔다....다시 14시간 25분을 근무했다. 이와 같이 그는 29시간 15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의 1주일 작업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이 짜여져 있다. 수요일 15시간, 목요일 15시간 35분, 금요일 14시간 반, 토요일 14시간 10분, 즉 1주일 동안의 총계는 88시간 30분이다. 그런데 그가 모두 합해 겨우 6 1/4노동일분의 임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사람은 계산착오라고 생각하고 작업시간 담당자에게...1일분의 일이란 대체 얼마만큼인가를 물었다. 대답은 하루에 13시간, 다시 말해 1주일에 78시간이라는 것이었다....그러자 그는 1주일에 78시간 이상 일한 분에 대해 지불해 주도록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그에게 10펜스의 수당을 주겠다고 말했다"(같은 신문, 1866년 2월 4일자).)
    직업. 연령 .성별이 각양각색인 노동자들[그들은 학살당한 영혼들이 유리시즈의 주위로 모여드는 것보다도 더욱 집요하게 우리 주위로 몰려오고 있으며, 그들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청서(靑書: Blue Book)를 보지 않더라도 첫눈에 우리는 그들의 과도노동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에서 우리는 부인복 제조공과 대장장이라는 2명의 인물을 골라내자. 이 두 인물 사이의 현격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1863년 6월의 마지막 주에 런던의 모든 일간신문은 '순전히 과도 노동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을 붙인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은 명성이 자자한 어느 부인복 재봉소에서 일하고있던
    20세의 워클리(Mary Anne Wllkley)라는 여공의 사망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여공은 엘리스(Elise)라는 얌전한 이름을 가진 귀부인에게 착취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번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던 오래된 이야기가 이제 새로 폭로된 것이다.(주석 56: 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p. 253, 254 참조.) 여기서 일하는 소녀들은 하루 평균 16시간 반을, 그리고 사교계절에는 가끔 30시간을 중간에 쉬는 일도 없이 계속 노동하며, 그녀들의 '노동력'이 지칠대로 지쳐 제대로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게 되면 때때로 세리(sherry)주, 포도주 또는 커피를 공급함으로써 기운을 차리게 했다. 때마침 사교계절이 한창일 때였다. 새로 온 웨일즈 공주를 축하하는 무도회에 초청된 귀부인들이 입을 화려한 옷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워클리는 60명의 다른 소녀들과 함께, 30명씩 배치된 그리고 그 인원에게 필요한 공기량의 1/3도 들어 있지 않은 한 방에서, 중단없이 26시간 반 동안 일했다. 그리고 밤에는 한 개의 침실을 널판지로 칸을 나누어 숨이 막힐 듯이 만들어진 여러 개의 구멍들 중의 한 구멍에서 두 명씩 잠을 잤다.(주석 57: 보건국에 근무하는 의사 레서비(Letheby)는 그 당시 다음과 같이 언명했다. "성인 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기의 최소한도는 침실에서는 300입방피트이고, 거실에서는 500입방피트여야 한다. " 런던의 어느 병원의 선임의사 리처드슨(Richard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인복 재봉공, 의복 재봉사, 일반 재봉사 등 각종 재봉여공들은 과도노동과 공기부족과 영양부족 또는 소화불량이라는 삼중(三重)의 재난을 겪고 있다.... 대체로 보아 재봉일은....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더 적합하다. 그러나 이 직업의 폐단은 그것 이, 특히 수도에서, 약 26명의 자본가들에게 독점되어 있고, 이 자본가들은 자본으로부터 생기는 권력수단을 이용해 노동력을 남용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권력은 이 여공계급 전체가 느끼고 있는 바다. 만약 석면 여자 재봉사가 소수의 고객이라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경쟁은 그녀로 하여금 이 손님들을 확보하기 위해 집에서 죽도록 일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며, 또 그 여자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조수여공들을 혹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여자의 사업이 잘 되지 않든가 또는 그 여자가 독립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일은 더 고되더라도 그 대신 지불이 확실한 다른 가게에 고용살이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그 여자는 다시 노예로 전락해 사회의 변화의 물결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어떤 때에는 자기집 조그마한 방구석에서 기아상태, 또는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기도 하며, 또 어떤 때에는 질식할 지경의 공기 속에서, 그리고 신선한 공기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가령 좋은 음식물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처지에서 24시간 중 15시간, 16시간 때로는 18시간씩 일하기도 한다. 공기가 나쁜 데서 오는 병인 폐결핵은 이러한 희생자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다"(리처드슨, 「노동과 과도노동」, ?사회과학평론? 1863년 7월 18일).) 그런데 이것은 런던의 부인복 재봉소 중에서도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클리는 금요일에 병이 나서 일요일에 죽었다. 엘리스 부인이 놀란 것은 이 소녀가 손에 잡고 있던 일을 완성도 하지 못한 채로 죽은 것이었다. 뒤늦게 이 소녀가 죽어 있는 침대에 불려 온 의사 키즈(Keys)는 검시배심윈 앞에서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증언했다.

    "메어리 안 워클리는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에서 장시간 노동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환기가 잘 안 되는 너무나 좁은 침실에서 잤기 때문에 죽었다. "

    이 의사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검시배심원은 그의 증언에 대답해 다음과 같이 판정했다.

    "사망자는 졸도로 죽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사망이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의 과도노동 등에 의해 촉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한 이유도 있기는 하다. "

    자유무역주의자 콥덴(Cobden)과 브라이트(Bright)의 기관지인 ?모닝스타?는 이 사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의 백인노예는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혹사당하다가 지쳐 쓰러져 소리도 없이 죽어 간다"고.(주석 58: 1863년 6월 23일자 ?모닝 스타?. ?더 타임즈?지는 브라이트 등의 반대로부터 아메리카 노예소유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했다. 1863년 7월2일자 사설에서 이 신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젊은 여성들을 채찍 소리 대신 기아의 고통으로 위협하면서 죽도록 일을 시키고 있으므로, 우리는 [노예소유자로 태어나 적어도 노예를 잘 먹이며 적당히 일을 시키고 있는] 가족들에게 포화와 총검으로 위협할 권리는 없다. " 동일한 방식으로, 토리(Tory)당의 기관지인 ?스탠다드?(1863년 8월 15일)는 뉴먼 홀(Newman Hall) 목사를 다음과 같이 매도하고 있다. "그는 노예소유자들을 파문시키면서도 [런던의 역마차의 마부나 차장 등을 형편없는 임금으로 하루에 시간씩 일을 시키는 점잖은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 끝으로 내가 이미 1850년에 "천재는 사라져 버리고 천재에 대한 숭배만이 남아 있다"고 쓴 바 있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어느 짤막한 우화에서, 현대사의 대사건인 미국의 남북 전쟁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시키고 있다. 즉, 북부의 베드로는 전력을 다해 남부의 바울의 머리를 깨뜨리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북부의 베드로는 자기 노동자를 '일당'(日當)으로 고용하지만, 남부의 바울은 '평생 동안' 고용하기 때문이다(?맥밀란 잡지?, “아메리카의 소(小)일리아드”, 1863년 8월). 그리하여 토리당이 도시의 임금노동자에 대해-농촌의 임금노동자에 대해서는 결코 아니다!-동정을 가지고 있다는 대중의 환상은 드디어 깨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들은 노예제도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죽도록 노동하는 것은 부인복 재봉소에서뿐 아니라 몇 천 개의 장소에서, 더 정확히 말해 ' 사업이 잘 되는' 모든 곳에서 일상적이다....이제 우리는 대장장이(blacksmith)를 실례로 들어 보 자. 만약 우리가 시인의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대장장이 이상으로 더 원기가 왕성하고 더 쾌 활한 인간은 없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태양보다도 먼저 불꽃을 튀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도 잘 먹고 잘 마시며 잘 잔다. 육체적으로 고찰할 때, 노동을 과도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대장장 이는 실로 인간의 가장 좋은 상태 중의 하나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도시에 가 서 그의 강력한 두 어깨에 부과되는 노동의 무게와, 우리나라의 사망률표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
    치를 보기로 하자. 메릴본(Marylebone) {런던의 가장 큰 구역 중의 하나}에서는 대장장이의 사망률이 대년 1,000명당 31명인데, 이것은 영국 성인남자의 평균사망률보다 11명이나 많다. 이 직업은 거의 본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의 한 기능(技能: art)으로서, 그 자체로서는 싫어할 만한 아무 것도 없지만, 단순히 과중한 노동으로 말미암아 그를 파괴하게 된다. 그는 하루에 쇠망치를 몇 번 내리칠 수 있고, 몇 번의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며, 몇 번의 호흡을 할 수 있고, 얼마만큼 생산할 수 있으며, 그리고 평균적으로 예컨대 50년은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매일 그보다 더 많이 망치질하며 더 많은 걸음을 걸으며 더 자주 호흡하도록 강요당하며, 그리하여 그의 생명력의 지출을 매일 1/4만큼 증가시킨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는 어떤 한정된 시간에 실제로 1/4만큼 더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대신 50세가 아니라 37세에 죽게 된다.(주석 59: 리처드슨, 앞의 책, p. 476 이하.)



    제 4 절 주간노동과 야간노동. 교대제



    불변자본인 생산수단은 가치증식과정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직 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그리고 노동의 한 방울 한 방울과 함께 그것에 비례하는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생산수단이 이렇게 하지 않는 한, 그것의 존재는 자본가에게는 일종의 소극적인 손실(損失)이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동안은 쓸모없이 투하된 자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손실은, 중단되었던 생산을 재개하려면 추가적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극적인 손실로 된다. 노동일을 자연일의 한계를 넘어 야간에까지 연장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노
    동자의 살아있는 피에 대한 흡혈귀적 갈증을 약간 풀어주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루 24시간 전체에 걸쳐 착취하려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충동이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력을 낮과 밤 계속 착취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과 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을 교대(交代)할 월요가 생긴다. 이 교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예컨대 노동인원의 일부가 어떤 주에는 주간노동만 하고 다른 주에는 야간노동만 하는 방법도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교대제 또는 윤번제(輪番制)는 영국 면공업의 매우 왕성한 성장기에 성행했으며, 현재에도 특히 모스크바의 면방적 공장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24시간제 생산과정은 영국에서는 아직까지 '자유로운' {공장법이 적용되지 않는} 공업분야의 다수, 즉 잉글랜드나 웨일즈나 스코틀랜드의 용광로. 단철공장(鍛鐵工場: forge). 압연공장. 기타 금속가공공장에서 현재도 하나의 제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는 노동과정은 6일간의 노동일 동안에는 매일 24시간 계속될 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거의 24시간 계속 되고 있다. 노동자는 남녀의 성인과 아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동과 소년들의 연령은 8세부터(약간의 경우에는 6세부터) 18세까지의 모든 연령층에 걸쳐 있다.(주석 60: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3차 보고서?, 런던, 1864년, 별책부록 pp. 5-6.) 약간의 부문들에서는 소녀와 부인도 남자 종업원과 함께 야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주석 61:"스태퍼드셔와 남부 웨일즈에서는 소녀들과 부인들이 주간뿐 아니라 야간에도 탄광이나 코크스 적치장(積置場)에서 일하고 있다.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이와 같은 관행이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고 자주 지적되었다. 이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이 일하며, 거의 남성과 구별되지 않는 의복을 입고 있으며 먼지와 검댕을 뒤집어쓰고 있다. 비(非)여성적인 직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따라서 그들의 품성이 타락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앞의 보고서. p. 194. 별책부록 p. 26. ?제4차 보고서?(1865년) 제61호 별책부록p. 13 참조). 유리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간노동의 일반적인 나쁜 영향들을 당분간 무시하면(주석 62: 아동에게 야간노동을 시키는 어느 강철업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밤에 일하는 소년들이 낮에는 잘 수도 없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도 없어 다음날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아동노동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제63호, 별책부록 p. 13). 한 의사는 신체의 유지와 발달에 태양광선이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광선은 또한 신체의 조직에 직접 작용해 이 조직을 견고하게 하고 탄력있게 한다. 정상적인 양의 광선이 공급되지 않으면 동물의 근육은 연약하게 되어 탄력이 없어지며, 신경은 자극의 결핍으로 그 긴장력을 상실하며, 성장과정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발육이 왜곡된다....아동의 경우 풍부한 햇빛에 끊임없이 접촉하고 하루 중 일정한 시간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는 것이 건강에 절대로 필요하다. 광선은 음식물이 혈액으로 되는 것을 촉진하며, 새로 형성된 섬유조직을 강인하게 한다. 광선은 또한 시각기관에 대한 자극물이 됨으로써 각종 뇌 기능을 더 강력하게 활동시킨다. " 우리는 이상의 구절을 우스터 종합병원의 선임의사인 스트레인지(W. Strange)의 저서, ?건강“(1864년)에서 인용했는데, 그는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인 화이트(White)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이전에 랭카셔에서 아동들에게 미치는 야간노동의 영향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몇몇 고용주들의 상투적인 주장과는 반대로 아동의 건강은 야간노동에 의해 곧 나빠진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제284호, p. 55). 도대체 이런 문제가 진지한 논의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이 자본가와 그 앞잡이의 뇌 기능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24시간 중단없이 계속되는 생산과정은, 예컨대 앞에서 말한 매우 긴장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산업부문들[각 노동자의 공인된 노동일은 대체로 주야를 불문하고 12시간으로 되어 있다]에서는 표준 노동일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넘는 과도노동은 다수의 경우 영국 공식보고서의 말을 빌린다면, '참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주석 63: 같은 보고서, 제57호, 별책부록 p. 12. 이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하고 있다.)

    "이하에서 묘사되고 있는 노동량이 9-12세의 소년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다....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나 고용주의 이와 같은 권력남용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주석 64: 같은 보고서, 제58호, 별책부록 p. 12)

    “소년들을 주야(晝夜) 교대로 일시키는 방법은 사업이 활기를 띠는 때나 보통으로 진행되는 때를 막론하고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이 노동시간은 많은 경우 소년들 에게 잔혹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이다. 많은 소년들 중 한 명 이상이 이런저 런 이유로 결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때에는 출근하여 자기의 노동일을 끝마친 소년 중 1명 내지 몇 명이 그 결근자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미 아무런 비밀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압연공장 지배인은, 결근 소년의 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 것은 아마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을 텐데요‘라고 대답하고, 위의 사실을 시인했 다....(주석 65: 같은 보고서.)

    "정상적인 노동일이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 반까지 계속되는 어느 압연공장에서 일하는 한 소 년은 일주일에 나흘 밤은 적어도 저녁 8시 반까지 일했다....그리고 이것이 6개월간 계속되었다. 다른 한 소년은 9세 때에는 가끔 1교대 12시간노동을 3회 연속했고, 10세 때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계속 일했다:? “10세의 또 한 소년은.... 1주일에 사흘 밤은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 하고 나머지 밤은 저녁 9시까지 일했다. " "13세의 또 한 소년은....1주일 내내 오후 6시부터 다 음날 낮 12시까지 일했고, 또 때로는 3교대분, 예컨대 월요일 아침부터 화요일 밤까지의 분을 계 속 일한 적도 있었다.” “12세의 또 한 소년은 스테이블리(Staveley)에 있는 어느 주물공장에서 계속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 아홉 살 먹은 조지 올린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여기에 왔다. 다음날 새벽 3 시에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밤새도록 여기에 있었다. 나는 여기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산다. 나는 가죽 앞치마를 밑에 깔고 조그만 쟈켓을 덮고 마루 위에서 잤다. 그 후 이틀은 아침 6시에 왔다. 정말 여기는 더운 곳이다! 여기 오기 전에도 나는 거의 1년간 농촌에 있는 용광로 에서 일했다. 거기서도 토요일에는 새벽 3시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적 어도 집에 돌아가서 잘 수는 있었다. 다른 날에는 나는 아침 6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6시 또는 7시에 끝마치곤 했다. " 등등.(주석 66: 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13. 이들 '노동력'의 교육정도는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과의 다음과 같은 문답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헤인즈(J. Haynes), 12세: "4의 4배는 8이지요. 그러나 넷이 네 개면 16입니다. 왕이라는 것은 모든 돈과 금을 가진 사람이지요. 우리 나라에도 왕이 있는데 그 왕은 여왕이고, 이름은 알렉산드라 공주라고 합니다. 그 여자는 여왕의 아들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그 여왕의 아들은 알렉산드라 공주입니다. 공주는 남자입니다. " 터너(W. Turner), 12세: "내가 사는 나라는 영국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리스(J. Morriis), 14세: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과, 한 사람만 남고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조그마한 새였다고 하더군요" 스미스(W. Smith), 15세: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었고, 남자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 테일러 (E. Taylor), 15세: "나는 런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 매튜만(H. Matthewman), 17세: "교회에 간 일이 있습니다만 최근 많이 빠졌습니다. 설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밖에 다른 이름들은 모르겠습니다. 또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어딘가 종교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15). "악마 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쁜 놈이었습니다." "이 소녀[10세]는 God(하나님)를 Dog(개)라고 썼으며 여왕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5차 보고서?, 1866년, p. 55, 제278호). 위에서 말한 금속공장의 제도는 유리공장과 제지공장에도 시행되고 있다. 기계로 종이를 만드는 제지공장(製紙工場)에서는 넝마를 선별하는 과정을 제외하고는 전체과정에서 야간노동이 예사로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교대제를 실시 함으로써 야간노동이 중단없이 1주일 전체, 즉 일요일 밤부터 다음 토요일 밤 12시까지 그냥 계속 된다. 주간교대반의 노동자들은 매주 5일은 12시간씩, 하루는 18시간 노동하며, 야간교대 반의 노동자들은 매주 닷새 밤은 12시간씩, 하루 밤은 6시간 노동한다. 다른 경우에는 각 교대 반은 하루씩 교대로 24시간 일한다. 그 중의 한 교대반은 월요일에 6시간, 토요일에 18시간 일 을 하여 24시간을 채운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중간의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제지기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1주일간 매일 15-16시간씩 일한다. 조사위원회 위원인 로드(Lord)는 이 렇게 말한다 "이 제도는 12시간 교대제와 24시간 교대제의 각종 폐해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13세 미만의 아동들과 18세 미만의 소년들과 부인들이 이 야간노동제도 하에서 일하고 있다. 12시간 제도하에서도 그들은 가끔 교대자의 결근을 메우기 위해 2교대, 즉 24시간을 일해 야 한다. 증인들의 진술은 소년소녀들이 흔히 시간외 노동을 하여서 24시간 심지어 36시간까 지 연속노동하는 일이 아주 빈번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리에 광택을 내는 '연속적이고 단조로운' 과정에서 12세의 소녀들이 "식사 때문에 반시간씩 두 차례, 기껏해야 세 차례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규칙적인 휴식 또는 작업중단 없이" 하루에 14시간씩을 꼬박 한 달 동안 일한 경우도 있다. 정규적인 야간노동이 완전히 폐지된 약간의 공장들에서는 시간외 노동이 놀 랄 만한 정도에 이르고 있으며, 또 "그것은 가끔 가장 불결하고 가장 덥고 가장 단조로운 과정 에서 수행되고 있다"(?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별책부록 pp. 38-39).)
    이제 우리는 자본 그 자체가 이 24시간 노동제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들어 보자. 자본은 물론 이 제도의 극단적인 형태, 즉 노동일의 '잔인하고 믿을 수 없는' 연장을 위한 이 제도의 남용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한다. 자본은 오직 이 제도의 '정상적'인 형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제강공장인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Naylor & Vickers)는 600명 내지 7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겨우 10%만이 18세 미만이고 또 그 중에서도 겨우 20명만이 야간교대반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공장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조금도 더위를 타지 않는다. 온도는 아마 화씨 86-90도는 될 것이.... 단철공장이나 압연공장에서는 직공들은 주야 교대로 일하고 있으나, 기타의 모든 작업장에서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에 이르는 주간작업만이 실시되고 있다. 단철공장에서는 12시부터 12시까지 일한다. 약 간의 직공들은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을 교대하지 않고 항상 야간노동만 한다....규칙적으로 주간노 동만 하는 직공과 야간노동만 하는 직공 사이에 건강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아마 사람들은 밤 과 낮이 바뀌는 것보다 그렇지 않을 때에 수면을 더 잘 취할 수 있는 것 같다....약 20명의 18세 미만 소년들이 야간교대반에 속해 일하고 있다....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 없이는 우리 일은 잘 될 수가 없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생산비의 증가다....숙련공과 각 부서의 책임자들을 구하 는 일은 쉽지 않으나 소년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야간노동하는 소년들의 비율이 작기 때 문에 야간노동의 제한은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이해관계도 없다. "(주석 67:?제4차 보고서?, 1865년, 제79호, 별책부록 p. 16.)

    제강제철공장인 존 브라운사(John Brown & Co.)는 3,000명의 성인 남자와 소년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일부 제강제철작업의 중노동(重勞動)에서는 주야 교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회사의 엘리스(J, Ellis)는 “힘든 제강작업에서는 성인 2명에 소년 1명 내지 2명의 비율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18세 미만의 소년을 500명 고용하고 있고, 그중 약 1/3인 170명은 13세 미만이다. 법률개정안에 관해 엘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종업원에게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이상 노동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크게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야간노동을 면제받을 수 있는 선을 12세 이
    상의 어떤 나이로 규정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고용하고 있는 소년공들의 야간 노동을 금지하기보다는 차라리 13세 미만 또는 심지어 14세 미만 소년의 고용을 금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주간교대반에서 일하는 소년들은 순번을 바꿔 야간교대반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인 남자들이 쉬지 않고 밤일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건강이 파괴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1주일마다 교대하는 야간노동은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한 다. "(이와는 반대로 네일러 앤드 빅커즈사는 연속적인 야간노동보다 주기적으로 교대하는 야간 노동이 아마 더 유해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자기의 사업상 이익을 고려한 발언이다. ) " 우리는 주야교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낮일만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다는 것올 알고 있 다....우리가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비용의 증가 때문인 데, 이 점이 유일한 이유다"(얼마나 노골적이고 소박한 말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비용증가는 회사가 그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초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얼마나 매끄러운 표현인가!). "그렇지 않아도 구하기 힘든 노동은, 그와 같은 법률규정이 나온다면 더 부족하게 될 것이다"(즉, 이 회사는 노동력의 완전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치명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주석 68: 같은 보고서?, 제80호, 별책부록 p. 16.)

    캄멜사(Cammel &, Co.)의 '거인제강제철공장'도 앞에서 말한 존 브라운사와 마찬가지로 대규모로 경영되는 공장이다. 그 회사의 전무는 정부위원회 위원인 화이트(White)에게 자기의 증언을 문
    서로 제출한 일이 있었다. 그 뒤 그는 교열(校閱)하라고 그에게 되돌아온 초고를 숨겨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이트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가 아주 정확하게 기억해 낸 바에 따르면, 아동과 미성년자의 야간 노동금지는 이 거인공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이 공장을
    폐쇄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과, 그러나 이 회사에서 18세 미만의 소년은 6%를 조금 초과할 뿐이고, 13세 미만의 소년은 1% 이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주석 69: 같은 보고서, 제82호, 별책부록 p. 17.)
    애터클리프(Attercliffe)에 있는 압연단철공장인 샌더슨사(Sanderson Bros. & Co.)의 샌더슨은 동일한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세 미만 소년들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면 막대한 곤란이 발생할 것이다. 최대의 곤란은 소년 대신 성인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 증가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될는지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아마 공장주가 강철가격을 인상해야 할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손실은 공장주의 부담으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들은" (이들은 얼마나 완고한 사람들인가!) "당연히 그 손실을 부담하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

    샌더슨은 자신이 아동들에게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그들은 매주 4 내지 5실링을 받을 것이다....소년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그 런 것이지 '특수하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 "소년의 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종류이고, 따라 서 그러한 일에 성인의 더 큰 힘을 사용하면 비용을 보상할 만한 이익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금속을 처리해야 하는 몇 가지 경우에만 이익이 날 것이다. 성인노동자들도 또한 소년공 을 자기 부하로 쓰지 못하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인공은 소년공보다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년공들은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한 다. 소년들을 주간노동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이러한 목적에 합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런가? 어째서 소년들은 자기들의 일을 낮에는 배울 수 없다는 말인가? 당신의 이유는?

    "매주 교대로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성인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하는 동안은 소년들과 분리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인노동자 들이 소년들에게 베푸는 지도는 소년들의 임금의 일부로 계산되며, 이에 따라 성인노동자들은 소년들의 노동을 비교적 싸게 얻을 수 있다. 각 성인노동자는 자기의 이득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해, 샌더슨사는 성인노동자들의 임금의 일부를 소년들의 야간노동에 의해 지불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샌더슨사의 이율은 약간 감소할 것인데, 바로 이 사실이 샌더슨사로 보아서는 소년들이 자기들의 일을 낮에는 배울 수 있다는 훌륭한 이유인 것이다.(주석 70: "오늘날처럼 반성도 많고 이유도 많은 시대에는 모든 일에 대해-심지어 가장 나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까지-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줄 모르는 사람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잘못된 것은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 잘못된 것이다"(헤겔, ?철학세계?, 제1부, ?논리학?, 베를린, 1840년, p. 249).) 그뿐 아니라 야간노동은 이제 성인들에게 전적으로 전가될 것이고 성인들은 이것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곤란한 점이 너무 많아 야간노동이 아마도 완전히 폐지될지도 모른다. 샌더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강철생산 그 자체에 관해 말한다면, 그렇게 된다고 해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샌더슨사는 강철생산 이외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다시 말해, 강철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이윤획득이 문제다. 용광로. 압연공장. 건물. 기계설비 철. 석탄 등은 자신을 단순히 강철로 전환시키는 일 이상의 어떤 일을 해내야만 한다. 그것들은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리고 당연히 12시간보다는 24시간에 더욱 많은 잉여노동을 흡수할 수 있다. 사실상 그것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일정한 수의 직공들을 일시켜야 한다고 신(神)과 법률의 이름으로 샌더슨사에 요구한다. 노동을 흡수하는 그들의 기능이 중단되자마자 그것들은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며, 따라서 샌더슨사로서는 순수한 손실로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경우 매우 비싼 기계들을 하루의 절반 동안 놀려두기 때문에 손실이 생 길 것이다. 또 우리는 현재의 제도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을 완수하기 위해 건물규모와 기 계설비를 2배로 늘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것은 지출을 2배로 증가시킬 것이다. "

    다른 자본가들은 주간작업만을 하고 그리하여 그들의 건물. 기계. 설비. 원료가 야간에는 '놀고' 있는데, 어째서 이 샌더슨 회사만이 특권을 요구하고 있는가? 샌더슨은 샌더슨사의 이름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기계설비가 놀고 있는 탓으로 생기는 손실은 주간작업만 하는 공장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나 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용광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용광로의 불을 끄지 않으면 연료가 낭비될 것이고“ (현재 낭비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은 어찌하고) ”또 만약 용광로의 불을 끈다면 다시 불을 붙여 필요한 온도를 얻기까지 시간적 손실이 발생한다"(한편 심지어 8세밖에 안 되는 아동들의 수면시간의 손실은 샌더슨 형제에게는 노동시간의 이득으로 되고 있다). "그리고 용광로 그 자체도 온도의 변화로 말미암아 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용광로인 노동자들은 주간노동과 야간노동의 교대 에 의해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주석 71: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제85호. 별책부록 p. 17 아동들을 위한 '규칙적인 식사시간'은, 용광로에서 방사되는 일 정한 열량의 '순수한 손실' 또는 '낭비'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유리 제 조업자들의 주장에 대해 조사위원회 위원인 화이트(White)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는데, 그 의 대답은 [자본가들의 화폐지출의 '절제', '자제', '절약'과, 인간생명의 엄청난 '낭비'에 감격을 금치 못하는] 유어(Ure), 시니어(Senior)등과 독일에 있는 들의 변변치 못한 아류인 로셔 (Roscher)와 같은 사람들의 대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규칙적인 식사시간이 보장되는 결과 약간 의 양의 열(熱)이 현재의 정도 이상으로 낭비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낭비는 화폐가치로 따지더라도,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성장기에 있는 아동들이 마음놓고 식사하며 먹은 것을 소화하 기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결 과 현재 우리나라의 유리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 명력(生命力)의 낭비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 45). 그런데 이것은 '진보(進步: progress)의 해'인 1865년의 일이다! 물건을 들어올리며 운반할 때의 힘의 지출은 무시하더라도, 병과 납유리를 제조하는 유리공장에서 아동들은 쉬지 않고 작업하면서 6시간 동 안에 15-20마일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은 가끔 14-15시간 계속된다! 많은 유리공장들에서 는 모스크바의 방적공장들에서와 같이 6시간교대제가 지배적으로 되어 있다. "1주일의 노동기 간중 계속해서 휴식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6시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공장에 왕복하는 시 간과 세수하고 옷을 입으며 식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시간이 공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매우 짧은 휴식시간이 남을 뿐이다. 그처럼 더운 공기 속에서 그처럼 힘든 일을 하는 아동들에 게 수면은 절대로 필요한 것인데, 아동들은 이 수면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뛰어 놀거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시간을 조금도 얻지 못한다....이 짧은 수면까지도 밤에는 아이들 자신이 지각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중단되며, 낮에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잠이 깨기 때문에 중단된다. " 화이트가 들고 있는 실례에 의하면, 어떤 소년은 36시간 동안 계속 일한 경 우도 있고, 12세 소년들이 새벽 2시까지 일한 뒤 아침 5시까지 공장에서 자고(세 시간 동안!) 또 낮일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 보고서의 초안 작성자인 트리맨히어(Tremenheere)와 터프넬 (Tufnell)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년. 소녀. 부녀자들이 주간 또는 야간의 근무시간 중에 수행하는 노동량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같은 보고서, 별책부록 pp. 43-44). 한편 금욕적인 유리 공업 자본가는 아마 밤늦게 포도주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영국 사람이 노예로 되는 일은 결코,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얼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면서 클럽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것이 다.)



    제 5 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의
    노동일의 연장을 위한 강제법



    "노동일(勞動日)이란 무엇인가? 자본은 하루분의 가치(價値)를 주고 구매한 노동력을 얼마 동안 소비할 권리가 있는가? 노동일은 노동력 그 자체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넘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노동일은 하루 24시간 전체를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 노동력이 다시 봉사하기 위해 절대로 필요한 약간의 휴식시간은 뺀다고. 우선 자명한 것은 노동자는 자기의 전 생애에 걸쳐 노동력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은 자연적으로나 법률상으로나 자본의 가치증식(價値增殖)을 위해 바쳐질 노동시간(勞動時間)이라는 것이다. 교육. 정신적 발달. 사회적 기능의 수행. 사교 . 육체적 정신적 생명력의 자유로운 활동 등등을 위한 시간, 그리고 심지어 일요일의 안식시간까지도(안식일을 엄수하는 이 나라에서)(주석 72: 영국의 농촌 지방에서는 아직까지도 노동자가 안식일에 자기 집 앞의 정원에서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해서 금고(禁錮: imprisonment)의 처벌을 받는 일이 있다. 바로 그 노동자가 일요일에 금속공장, 제지공장 또는 유리공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그것이 비록 종교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계약위반이라는 이유로 처벌받는다. 정교도(正敎徒)들이 지배하는 의회도 안식일의 모독이 자본의 '가치증식과정'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에는 모른 척 할 것이다. 생선가게와 닭가게에서 일하는 런던의 일용노동자들 이 일요일 노동의 폐지를 요구한 진정서(1633년 8월)를 보면, 그들의 노동은 평일의 6일간은 매일 평균 15시간씩이고 일요일에는 8-10시간이라고 쓰여있다. 또한 우리가 이 진정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엑스터 홀)Exeter Hall){런던의 건물로 주로 교회선교회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改宗)시킨다고 하면서 노예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다}에 모여드는 위선적 귀족들의 까다로운 식도락(食道樂)이 '일요일 노동'을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적 쾌락의 탐구에' 그처럼 여념이 없는 이 ‘성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과도노동과 궁핍과 굶주림에서는 인내의 정신을 가지고 참음으로써 자기들이 기독교도임을 실증하고 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은 그대들(노동자들)의 위장에는 더욱 해롭다.“) 모두 자본가의 것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자본은 잉여노동(剩餘勞動)에 대한 무제한적인 맹목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즉 잉여노동에 대한 충족될 수 없는 탐욕으로 말미암아, 노동일의 도덕적인 한계뿐 아니라 순전히 육체적인 한계까지도 넘어버린다. 자본은 신체의 성장. 발육. 건전한 유지에 필요한 시간을 빼앗는다. 자본은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도둑질한다. 자본은 식사시간을 깎아내고, 가능하다면 그 식사시간까지도 생산과정에 편입시켜 [마치 보일러에 석탄을 공급하고 기계에 윤활유나 석유를 공급하듯이] 식사를 노동자에게 제공한다. 자본은 [생명력을 회복하고, 수습하고, 활력을 부여하는 데 필요한] 건전한 수면을, 기진맥진한 유기체가 소생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과 몇 시간의 무감각 상태로 감축시켜 버린다.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가 노동일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력의 가능한 최대한도의 일상적 지출[그 지출이 아무리 병적이고 강제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이 노동자의 휴식 시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삼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안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이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것은 마치 탐욕스러운 농업경영자가 토지의 비옥도를 약탈함으로써 수확량을 늘리려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고 잉여노동의 흡수인] 자본주의적 생산(資本主義的 生産)은,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노동력으로부터 그 정상적인 도덕적. 육체적 발전조건과 활동조건을 탈취함으로써, 인간노동력의 위축을 가져올 뿐 아니라 노동력 그 자체의 조기 소모와 사망을 가져온다.(주석 73: "우리는 이전의 보고서들에서 과도노동이....확실히 인간노동력을 너무 일찍 탈진(脫 盡:exhaust))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여러 공장주들의 진술을 제공했다"(?아동노동 조사 위원회, 제4차 보고서? 1865년, 제64호, 별책부록 p. 13).) 그것은 노동자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써 주어진 기간 안에서 노동자가 생산에 전념하는 시간을 연장한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의 재생산[즉, 노동자계급의 계속적인 존재]에 필요한 상품의 가치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만약 [자본이 자기증식에 대한 무제한의 충동에서 필연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노동일의 반(反)자연적 연장이 개개의 노동자의 수명을, 그리하여 그들의 노동력의 생존기간을 단축시킨다면, 소모된 노동력의 더 신속한 보충이 필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기계의 소모가 빠르면 빠를수록 기계의 가치 중 매일 재생산되어야 할 부분이 더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표준노동일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
    노예소유자가 노예를 사는 것은 그가 말(馬)을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가 노예를 잃어버린다면 자본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그는 다시 노예시장에서 새로운 지출에 의해 이 자본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을 주목하라.

    “조지아주의 논이나 미시시피주의 늪지는 인간의 육체에 매우 치명적인 나쁜 영향을 준다. 그 러나 (이 지역의 경작이 요구하는) 인간생명의 낭비는 버지니아주와 켄터키주의 풍부한 흑인보
    관창고로부터 보충받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다. 노예를 보호하는 것이 노예소유자의 이익과 합치되는 한, 노예를 인간적으로 취급하지만, 노예무역이 실시됨에 따라 경제적 타산은 노예를 가 장 무자비하게 혹사시키는 원인으로 된다. 왜냐하면, 노예를 외국의 흑인사육장으로부터 값싸게 보충할 수 있게 되자, 노예의 수명(壽命)은 그의 생존시의 생산성(生産性)보다 덜 중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 수입국의 노예 관리(管理: managemet)의 원칙은, 노예로부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노동을 짜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적 타산이라는 것이다. 1년간 의 이윤이 농장에 투하된 총자본과 같아지는 일이 드물지 않은 열대지방의 경작에서는, 흑인의 생명은 매우 무자비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수 백년 동안 거대한 부를 낳은 서인도의 농업은 수백 만의 아프리카 인종을 삼켜버렸다. 오늘날 쿠바에서는 그 소득이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하며 그 농장주는 왕자와 다름없이 살고 있지만, 노예들은 형편없는 음식물과 극도의 쉴새없는 혹사로 해마다 상당한 수가 죽어가고 있다. "(주석 74: 케언즈(J. E. Cairnes), ?노예의 힘", pp. 110-111.)

    이름은 다르지만 이것은 너{임금노동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예무역을 노동시장으로 바꾸어 읽고, 켄터키와 버지니아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농업지방과 아일랜드로, 또 아프리카를 독일로 바꾸어 읽어보라. 우리는 이미 과도노동이 어떻게 런던의 방제조공들의 수를 감소시켰는가를 보았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노동시장 은 방제조업에서 죽기를 각오한 독일인들과 기타 지원자들로 언제나 넘치고 있다. 도자기 제조업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노동자들의 수명이 가장 짧은 산업부문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자기공들이 부족한가? [현대적 도자기생산의 발명
    자이고 그 자신이 보통의 노동자 출신인] 조사이아 웨지우(Josiah Wedgwood)는 1785년 하원에서 말하기를, 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체 노동자는 15,000명 내지 20,000명이라고 했다.(주석 75: 존 워드(John Ward), ?스토크-온-트렌트시?, 런던, l843년, p. 42.) 그런데 1861년에는 영국에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도시 중심지에서만도 101,302명이었다.

    “면공업은 이미 90년간 존재했다....영국인의 3세대에 해당하는 이 기간에 면공업은 노동자들의 9세대를 삼켜버렸다고 장담할 수 있다. "(주석 76: 1863년 4월 27일 하원에서 한 페란드 (Ferrand)의 연설.)

    물론 몇 번의 열병적 호황기에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인력의 공급이 대단히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1834년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때 공장주들은 농업지방의 '과잉인구'를 북부로 보낼 것을 구빈법위원회(救貧法委員會: The Poor Law Commissioner)에 제의했고, 그리하면 “공장주들은 그들을 흡수하고 소비해 버릴 것이다"라고 설명했던 것이다.(주석 77: “이 말은 면공장주들이 사용한 말 그대로다"(같은 연설).)

    “구빈법위원회의 동의 하에 알선인(agent)들이 임명되었다....맨체스터에는 사무소가 개설되었 으며, 취업하기를 원하는 농촌인구들의 명부를 작성해 사무소로 보냈다. 공장주들은 사무소로 가 서 자기들이 구하는 사람을 선택해 들을 맨체스터로 보내도록 지시한다. 그러면 이들 인간화물 은 짐작처럼 꼬리표가 붙어 운하로 또 짐마차로 송달되었다. 중에는 걸어서 온 사람도 약간 있 었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길을 잘못 들어 반쯤 굶어 죽어가고 있는 빈사상태에서 공장지대를 헤 매었다. 이러한 제도가 하나의 정규적인 상업부문으로 발전했다. 하원은 이것을 거의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이와 같은 인신매매(人身賣買)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이 사 람들은 마치 흑인노예들이 미국의 면화재배자에게 판매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맨 체…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986
  • 자본론12
    1836년에 시니어가 발견한 '최후의 한 시간'이라는 구호를 1848년 4월 15일의 런던 ?이코노미스트?에서 고급경제관료의 한 사람인 제임스 월슨[1843년 이 잡지를 창간했다]이 '10시간 노동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또 한 번 외쳤다.



    제 4 절 잉여생산물



    생산물 중 잉여가치를 대표하는 부분(앞의 예에서는 20파운드의 면사의 1/10, 즉 2파운드의 면사)을 우리는 잉여생산물(剩餘生産物)이라고 한다. 잉여가치율이 자본총액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가변적 부분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에 의해 규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잉여생산물의 상대적 크기도 총생산물 중 잉여생산물을 뺀 나머지 부분{즉,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잉여생산물의 비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총생산물 중 필요노동을 표시하는 부분에 대한 잉여생산물의 비율에 의해 규정된다. 잉여가치의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주된 목적이므로, 주어진 부의 크기는 생산물의 절대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잉여생산물의 상대적 크기에 의해 측정되어야만 한다.(주석 13: "20,000파운드의 자본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이윤이 연간 2,000파운드인 개인에게는, 그의 자본이 1백 명를 고용하건 1천 명을 고용하건, 또는 생산된 상품이 10,000파운드로 팔리건 20,000파운드로 팔리건, 모든 경우에 그의 이윤이 2,000파운드 이하로 감소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국가의 실질적 이익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 순실질소득(純實質所得), 즉 그 지대와 이윤이 동일하다면, 그 국민이 1천만 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든 1천 2백만 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리카도, ?원리“, 한글판, 429쪽). 리카도보다 훨씬 이전에 [잉여생산물에 대한 광신자이고 잡담식의 무비판적 저술가이며, 의 명성이 공적에 반비례하고 있던] 아더 영(Arther You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주 전체가 고대 로마식으로 독립적 소농민들에 의해 분할되어 있다면, 아무리 잘 경작되더라 도, 단순히 인간을 번식시키는 목적[이 목적은 자체로서는 전혀 쓸모없다] 이외에는 근대적 왕국에 무슨 소용이 없겠는가?"(영, ?정치산술?,런던, 1774년, p. 47) 기묘하게도 "순부(純富: net wealth)는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하다고 설명하려는....강력한 경향이 있다....그러나 분명히 것은 순부 때문은 아니다"(홉킨즈(Thomas Hopkins), ?지대(地代)....에 대해?, 런던, 1828년, p. 126).)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합계[즉,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의 가치를 대체하는 시간과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시간의 합계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의 절대적인 크기, 즉 노동일(勞動日)을 이루고 있다.



    제 10 장
    노동일


    제 1 절 노동일의 한계


    우리는 노동력이 그 가치대로 매매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했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만약 노동자가 매일 평균적으로 소비하는 생활수단의 생산에 6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가 자신의 노동력을 매일 생산하기 위해서는, 또는 그것을 판매해서 받은 가{임금}를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6시간씩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그의 노동일의 필요{노동}부분은 6시간으로 될 것이고, 따라서 기타 조건이 동일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주어진 양(量)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노동일(勞動日) 그 자체의 길이는 아직 결정되지 않는다.
    이제 선분(線分) A-B는 이를테면 ?시간에 해당하는 필요노동시간(必要勞動時間)의 길이를 표시한다고 가정하자. 노동이 AB를 넘어 1시간, 3시간, 또는 6시간 등으로 연장됨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개의 서로 다른 선분을 얻게 된다.

    노동일 I . A-----B--C
    노동일 II . A-----B----C
    노동일 III. A-----B------C

    이 세 개의 선분은 각각 7시간, 9시간, 12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세개의 서로 다른 노동일을 표시하고 있다. 연장선 BC는 잉여노동(剩餘勞動)의 길이를 표시한다. 1노등일=AB+BC, 즉 AC이므로 1노동일은 가변량 BC와 함께 변화한다. AB는 주어져 있기 때문에 AB에 대한 BC의 비율은 항상 측정할 수 있다. BC는 노동일 I 에서는 AB의 16이고, 노동일 II에서는 3/6이고, 노동일 III에서는 6/6이다. 또 더 나아가 필요노동시간에 대한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은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을 규정하는 것이므로, 잉여가치율은 AB 대한 BC의 비율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 그것은 위의 세 개의 서로 다른 노동일에서 각각 16 2/3%, 50%, 100%다. 다른 한편, 잉여가치율만으로는 노동일의 길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가령 그것이 100라고 하더라도 노동일은 8시간, 10시간, 12시간 등등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100%의 잉여가치율은 노동일의 두 개의 구성부분[즉,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부분들 각각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처럼 노동일은 불변량이 아니라 가변량(可變量)이다. 노동일의 두 부분 중 하나가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일의 전체 길이는 잉여노동의 길이[또는 계속시간]에 따라 변동한다. 그러므로 노동일은 결정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불확정적(不確定的)이다.(주석 1: "하루의 노동이라는 말은 애매해서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조세에 관한 고찰을 포함해“, 런던, 1770년, p. 73).)
    이와 같이 노동일은 고정적이 아니고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오직 일정한 한도 안에서만 변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최소한도는 규정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연장선 BC 즉 잉여노동을 0이라고
    가정한다면, 하나의 최소한도[즉, 하루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필요노동은 항상 노동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노동일은 결코 이와 같은 최소한도까지 단축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노동일에는 최대한도가 있다. 노동일은 일정한 한계 이상으로 연장될 수 없다. 이 최대한도는 두 가지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첫째, 노동력의 육체적 한계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은 24시간이라는 1자연일(自然日) 동안에는 일정한 양의 생명력밖에는 지출할 수 없다. 말도 날마다 일하는 경우 하루 8시간밖에 일할 수 없다. 인간은 하루 중 일정한 시간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일정한 시간 그 밖의 육체적 욕망(식사를 하거나 세수와 목욕을 하거나 의복을 입는 등)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일의 연장은 이와 같은 순전히 육체적(肉體的)인 한계 이외에 또한 정신적(精神的) 한계에 부딪힌다. 노동자는 지적.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들 욕망의 크기나 종류는 일반적인 문화수준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노동일의 길이는 육체적 및 사회적 한계 안에서 변동한다. 그러나 이 두 한계는 모두 매우 탄력적이어서 그 변동의 폭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우리는 8시간, 10시간, 12시간, 14시간, 16시간, 18시간 등 그 길이가 매우 다양한 노동일을 볼 수 있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그 하루의 가치로 구매했다. 1노동일 동안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자본가에게 속한다. 즉, 자본가는 하루 동안 자기를 위해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런데 1노동일이란 무엇인가?(주석 2: 이 질문은 로버트 필(Robert Peel)이 버밍엄 상업회의소에 제출한 유명한 질문 즉 "1 파운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필은 버밍엄의 “소실링론자”(little shilling men){정부의 채무를 금화의 금 함유량을 적게 해 청산하자고 주장한 사람}와 마찬가지로 화폐의 성질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쨌든 자연의 하루보다는 짧다. 얼마나 짧은가? 자본가는 이 극한[즉, 노동일의 필연적인 한계]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본가는 오직 인격화된 자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혼은 자본의 혼이다. 그런데 자본에게는 단 하나의 충동이 있을 따름이다. 즉, 자신을 가치증식시키며, 잉여가치를 창조하며, 자기의 불변부분인 생산수단으로 하여금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게 하려는 충동이 그것이다.(주석 3: "자본가의 목적은 자본을 지출하여 될 수 있는 한 많은 양의 노동을 손에 넣는 것이다"(쿠르셀-스니유[J. G. Courcelle-Seneuil], ?산업기업의 이론과 실제?, 제2판, 파리, 1857년, p. 63).) 자본은 죽은 노동{주어진 일정한 가치}인데, 이 죽은 노동은 흡혈귀(vampire)처럼 오직 살아 있는 노동을 흡수함으로써만 활기를 띠며, 그리고 그것을 많이 흡수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활기를 떤다. 노동자가 노동하는 시간은 자본가가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시간이다.(주석 4: "하루에 1시간의 노동을 잃어버리는 것은 상업국으로서는 막대한 손실이다....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너무 많은 사치품을 소비한다. 특히 공업노동자들이 그러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시간까지도 소비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소비다"(?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 런던, 1770년, pp. 47, 153).) 만약 노동자가 자본가의 처분에 맡긴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는 자본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된다.(주석 5: "만약 자유로운 노동자가 일순간이라도 휴식을 취하면, 초조한 눈으로 그를 감시하고 있는 야비한 경영자는 그가 자기의 것을 훔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랑게[N. Linguet], ?민법이론?, 런던, 1767년, 제2권, p. 466).)
    자본가는 상품교환의 법칙을 들고 나온다. 그는 다른 모든 구매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상품의 사용가치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이익을 짜내려고 한다. 그러나 [이때까지 생산과정의 질풍노도와 같은 소리에 눌려 들리지 않던] 노동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온다.

    "내가 당신에게 판매한 상품은 [그것을 사용하면 가치가, 그것도 그 자체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가
    창조된다는 점에서] 다른 잡다한 상품들과는 다르다. 당신이 그것을 구매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당신에게는 자본의 가치증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나에게는 노동력의 초과지출로 된다. 당신과 나는 시장에서 단 하나의 법칙, 즉 상품교환(商品交換)의 법칙밖에 모른다. 그리고 상품의 소비는 상품을 양도하는 판매자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들이는 구매자에게 속한다. 그러므로 나의 노동력의 하루의 사용은 당신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일 그것을 팔아 얻은 돈으로 매일 그것을 재생산하고, 따라서 반복해서 그것을 팔 수 있어야 한다. 연령 등에 기인하는 자연적 건강약화는 별도로 치고, 나는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상태의 힘과 건강과 원기를 가지고 노동할 수 있어야만 한다.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절약’과 '절제'의 복음을 설교하고 있다. 매우 좋은 이야기다! 나는 분별있고 근검절약하는 세대주처럼 나의 유일한 재산인 노동력을 아껴 쓰고, 그것을 어리석게 낭비하는 일은 일체 삼가려고 한다. 나는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와 건전한 발달에 적합한 정도로만 매일 그것을 지출하고 운동시키고 노동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당신은 노동일을 무제한 연장함으로써 내가 사흘 걸려 회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노동력을 하루동안 써버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당신이 노동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것만큼 나는 노동실체를 잃어버린다. 나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과 그것을 강탈하는 것은 전혀 상이하다. 만약 평균적인 노동자가 합리적인 양의 노동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평균기간이 30년이라면, 당신이 매일 나에게 지불해야 하는 나의 노동력의 가치는 총가치의 1/(365 x 30), 즉 1/10,950 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의 노동력 전체를 10년 동안에 소비해 버리려고 하면서도 매일 나에게 그 총가치의 1/3,650 이 아니라 1/10,950을 지불한다면, 당신은 오직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의 1/3 만을 지불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당신은 매일 나로부터 나의 상품의 가치의 2/3을 훔치는 것이다. 당신은 3일분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도 나에게는 1일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계약에도 위반되며 또 상품교환의 법칙에도 위반된다. 그러므로 나는 정상적인 길이의 노동일을 요구한다. 더욱이 나는 당신의 동정에 호소함이 없이 그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상거래에서는 인정(人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모범적인 시민일지도 모르며, 동물학대 방지협회의 회원일지도 모르며, 거기다가 성인(聖人)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의 관계에서 대표하고 있는 그것{자본}은 가슴속에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서 고동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 자신의 심장의 고동일 뿐이다. 나는 표준노동일(標準勞動日)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상품의 가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석 6: 노동일을 9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요구한 1859-60년의 런던의 건축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시에, 그 파업위원회는 하나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것은 본문에서 말한 우리 노동자의 항변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성명서는, 건축업자들 중에서도 가장 탐욕적인 피토(M. Peto)라는 사람이 ‘성인(聖人)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바로 이 피토도 1807년 이후에 슈트라우스버크[Strousberg]와 더불어 몰락해 버렸다).)

    요컨대, 약간의 매우 탄력적인 제한을 가하는 것을 별도로 친다면, 상품교환 그 자체의 성질은 노동일 그리고 잉여노동에 어떤 한계도 부과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노동일을 될수록 연장해 가능하다면 1노동일을 2노동일로 만들려고 할 때, 그는 구매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판매된 이 상품의 특수한 성질은 구매자에 의한 이 상품의 소비(消費)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노동자가 노동일을 일정한 표준적인 길이로 제한하려고 할 때 그는 판매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권리 대 권리라는 하나의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y)이 일어나고 있다. 즉,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상품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되고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서로 맞섰을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해 총자본[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제 2 절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 공장주와 보야르



    자본이 잉여노동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일부의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노동자는 [그가 자유로운 노동자이건 자유롭지 못한 노동자이건]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다 여분의 노동시간을 첨가해 생산수단의 소유자를 위한 생활수단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주석 7: "노동하는 사람들은....사실상 자기 자신을 부양하는 동시에 부자인 연금생활자를 또한 부양하고 있다"(에드먼트 버크[Edmund Burke], ?곡물부족에 관한 의견과 상세한 논의?, 런던, 1800년, pp. 2-3).) 그것은 이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아테네의 귀족, 에트루리아의 신정관(神政官), 로마의 시민, 노르망디의 영주, 미국의 노예소유자, 왈라키아의 보야르{Boyar: 러시아및 발칸의 봉건적 대지주}, 현대의 지주(地主) 또는 자본가이건 다 마찬가지다.(주석 8: 니부르(Niebuhr)는 자기의 ?로마사?에서 매우 소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에트루리 아의 건축물은 그 폐허만으로도 우리를 경탄케 한다. 이러한 건축물이 소국(!)에 있다는 것은 명백히 영주와 농노의 존재를 전제한다. " 시스몽디(Sismondi)는 이보다 훨씬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브뤼셀의 레이스(lace)'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존재를 전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산물의 교환가치(交換價値)가 아니라 그 사용가치(使用價値)가 지배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에서는 잉여노동은 다소 한정된 욕망의 범위에 의해 제한되며, 잉여노동에 대한 무제한의 욕망이 생산 그 자체의 성격으로부터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고대에는 교환가치를 그 독립적인 화폐형태로 획득하려고 하는 곳, 즉 금이나 은의 생산지에서만 과도노동(過度勞動: over-work)이 무서울 정도로 나타났다. 거기에서는 죽도록 일을 시키는 강제노동이 과도노동의 공인된 형태였다. 이에 관해서는 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의 글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주석 9: “자기의 몸을 깨끗이 할 수도, 벌거벗은 몸을 가릴 수도 없는 이 불행한 사람들(이집트, 이디오피아 및 아라비아의 접경지역에 있는 금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의 비참한 운명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는 병자, 불구자, 노인, 연약한 여자이건 추호의 사정도 용서도 없다. 모든 사람은 채찍의 강제 아래, 죽음이 그들의 고통과 궁핍을 끝나게 할 때까지, 계속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시쿨루스, ?역사문고?, 제3부, 제13장).) 그러나 이것은 고대에서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노예노동. 부역노동 등의 비교적 낮은 형태에 의거해 생산을 영위하는 민족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세계시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 그들 생산물의 해외판매를 주요한 관심사로 삼게 되면, 노예제나 농노제 등의 야만적인 잔학성 위에 과도노동이라는 문명화된 잔학성이 접목된다. 그러므로 미국의 남부 주들의 흑인 노동도 생산의 목적이 주로 직접적인 국내 수요의 충족이었던 때에는 온건한 가부장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면화의 수출(輸出)이 남부주들의 사활문제로 됨에 따라 흑인에게 과도노동을 시키는 것, 때로는 흑인의 생명을 7년간의 노동으로 소모해버리는 것이 계획적인 수익증대수단으로 되었던 것이다. 이제 문제로 된 것은, 흑인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유용(有用)한 생산물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잉여가치(剩餘價値) 그 자체의 생산이었다. 다뉴브 제후국{지금은 루마니아}의 부역노동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다뉴브 제후국에서 보는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을 영국의 공장에서의 그것과 비교해 보는 것은 특히 흥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잉여노동은 부역노동에서는 하나의 독립적이고 곧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1노동일이 6시간의 필요노동과 6시간의 잉여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한 사람의 자유로운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매주 6 x 6, 즉 36시간의 잉여노동을 제공한다. 이것은 그가 1주 중 3일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3일간은 자본가를 위해 무상으로 노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직접 눈으로 알아차릴 수 없다. 잉여노동과 필요노동이 서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예컨대 노동자가 매 1분에 30초는 자기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30초는 자본가를 위해 노동한다는 등의 형태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부역노동에서는 그렇지 않다. 왈라키아의 농민이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수행하는 필요노동은 보야르를 위해 수행하는 그의 잉여노동과 명백히 분리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필요노동을 자기 자신의 경작지에서 수행하고, 잉여노동을 영주의 농장에서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시간의 두 부분은 독립적으로 나란히 존재한다. 부역노동에서는 잉여노동은 필요노동과 명확히 분리되어있다. 이와 같은 현상형태의 차이가 잉여노동과 필요노동 사이의 양적 비율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1주일 중 3일간의 잉여노동은, 그것이 부역노동이든 임금노동이든, 여전히 노동자 자신에게는 아무런 등가물도 주지 않는 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은 자본가의 경우에는 노동일을 무제한으로 연장하려는 충동으로 나타나며, 보야르의 경우에는 훨씬 단순하게 부역일수에 대한 직접적인 추구로 나타난다.(주석 11: 다음에 말하는 것은 [크리미아 전쟁 뒤 일어난] 변혁 이전의 루마니아 지방의 상황에 관한 것이다.)
    다뉴브 제후국에서는 부역노동이 현물지대(現物地代) 및 농노제도의 기타 부속물과 결합되어 있었지만, 지배계급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공납(貢納: tribute)은 역시 부역노동이었다 그곳에서는 부역노동이 농노제(農奴制: serfdom)로부터 발생하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농노제가 부역노동으로
    부터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주석 11: {엥겔스: 이것은 독일 특히 엘베(the Elbe))강 동쪽의 프로이센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15세기 독일의 농민들은 거의 어디에서나 생산물과 노동으로 일정한 공납을 바칠 의무를 지고 있었지만, 기타의 관계에서는 적어도 사실상으로는 자유로운 인간들이었다 게다가 브란덴부르크, 폼메라니아, 실레지아, 동부 프로이센의 정착자들은 법률상으로도 자유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농민전쟁에서 귀족의 승리는 이러한 사태에 종말을 가져왔다. 남부 독일의 정복된 농민이 다시 농노로 되었을 뿐 아니라, 16세기 중엽부터는 동부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 폼메라니아, 실레지아의 자유로운 농민들까지도, 또 그 뒤 얼마 안 되어 쉴레스비히-홀슈타인의 자유로운 농민들까지도 농노로 전락해버렸다(마우러[Maurer], ?부역농민의 역사?, 제4권; 마이첸 [Meitzen], ?프로이센국의 토지와 농업사정": 한센(Hanssen), ?쉴레스비히-홀슈타인의 농노 제“).}) 루마니아의 지방에서도 그랬다. 이곳의 원래의 생산양식은 공동체적 소유에 의거하고 있었으나, 그 공동체적 소유는 슬라브적 또는 인도적 형태와는 달랐다. 토지의 일부는 자유로운 사적 소유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경작되었고, 다른 일부[공유지(公有地)]는 그들에 의해 공동으로 경작되었다. 이 공동노동의 생산물은 그 일부는 흉작 및 기타의 재해에 대한 예비재원으로 사용되었고, 또 일부는 전비(戰費)나 종교비 및 기타 공동체지출에 충당하기 위한 국고로 역할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군사상, 종교상 높은 지위를 차지한사람들이 공유지와 함께 [그 공유지와 결부된] 노동까지 횡령했다. 자유로운 농민들의 공유지에서의
    노동이 공유지의 횡령자들에 대한 부역노동으로 바뀌었다. 이 부역노동은 곧 농노적 관계로 발전했지만, {이 지역을 점령한} 세계의 해방자인 러시아가 농노제를 폐지한다는 구실 하에 부역노동을 법제화해 버렸다. 러시아의 장군 키셀료프(Kiselev)가 1831년에 공포한 부역노동법 전은 말할 것도 없이 보야르 자신의 구술(口述)에 의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러시아는 다뉴브 제후국의 귀족들과 유럽 전체의 자유주의적 백치들의 박수갈채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부역노동법전은 “구성법”(構成法: Reglement organique)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에 의하면 왈라키아의 각 농민은 이른바 지주에게 일정한 분량의 상세히 열거된 현물공납 외에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담해야 했다. ① 12일의 일반노동, ② 1일의 경작노동, ③ 1일의 목재운반 노동. 이상을 합계하면 1년에 14일이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노동일은 보통의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 아니라 1일분의 평균생산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일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런데 그 1일분의 평균생산물이란 것이 교활하게도 어떤 힘센 장사라도 24시간 안에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그러한 양이었다. 그리하여 “구성법” 그 자체도 정말 러시아식의 풍자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즉, 12일의 일반노동이란 36일의 육체노동으로, 1일의 경작노동이란 3일의 경작노동으로, 그리고 1일의 목재운반노동도 역시 그 3배로 이해해야 한다고. 결국 합계 42부역일이 된다. 그러나 그 위에 또 이른바 '요바기'(Jobbagio)가 더해진다. 그것은 특별
    한 필요에 따라 영주에게 바치는 노동봉사다. 각 마을은 매년 '요바기'를 위해 그 인구수에 비례해 일정한 수의 인원을 차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추가적인 부역노동은 왈라키아의 각 농민 1인당 14일로 되어있다. 그리하여 매년 의무적인 부역노동은 56일에 달한다. 그런데 왈라키아에서는 기후가 불순하기 때문에 1년의 농경일수는 210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일요일과 명절이 40일, 나쁜 날씨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날이 평균 30일, 합계 70일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 남는 것은 140일
    이다. 필요노동에 대한 부역노동의 비율인 56/84, 즉 66 2/3%는 영국의 농업노동자나 공장노동자의 노동을 규제하는 잉여가치율에 비해 훨씬 작은 잉여가치율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법률상 제정된 부역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영국의 공장법보다 그 정설에서 더 '자유주의적'인 “구성법”은 그 자체의 규정을 쉽게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 법은 14일을 56일로 만든 다음, 그 56부역일 각각의 명목상의 하루분 작업량은 그 일부를 다음 날로 넘기지 않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하루 동안에 제초(除草)하도록 되어 있는 토지가 실제로는 그 2배의 시간이 들 정도의 방대한 면적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옥수수밭의 제초가 그러하다. 몇 가지의 농업노동의 경우에는,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1일분 노동은 그 1일이 5월에 시작해 10월에 끝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몰다우(Moldavia) 지방에 대해서는 규정이 한층 더 가혹하다. 승리에 도취한 보야르는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외쳤다. ""구성법"에 규정된 14부역일은 1년 365일이
    다"라고.(주석 12: 더 상세한 것은 르뇨(E. Regnault), ?다뉴브 제후국의 정치. 사회사?(파리, 1855년, p. 304 이하)에서 볼 수 있다.)
    만약 다뉴브 제후국의 "구성법"이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을 긍정하고, 그 각 조항은 이 갈망을 합법화시켜 주는 것이라면, 영국의 공장법은 이 동일한 갈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장법은 국가가 [그것도 자본가와 지주가 지매하는 국가가] 노동일을 강제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노동력을 무제한 착취하려는 자본의 충동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그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노동운동을 별도로 치면, 공장노동일의 제한은 영국의 경작지에 구와노 비료{남미 바다새의 똥}를 뿌리게 했던 것과 동일한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즉, 이윤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이 한 경우에는 토지를 메마르게 했고 다른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력을 뿌리채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주기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한 것은, 독일과 프랑스 병사들의 표준키가 작아진 것과 더불어, 이 사실을 똑똑히 말해 준다. (주석 13: "일반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어떤 유기체가 자기 종류의 평균 크기를 넘는 것은 그 유기체가 번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인간에 대해 말하면, 자연적 사정에 의해서건 사회적 사정에 의해서건 그 성장이 방해받고 있을 때 키가 작아진다. 징병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모든 유럽 나라들에서는, 이 제도가 채용된 이래, 성인남자의 평균 키와 그들의 일반적인 병역 적합성이 감퇴했다. 혁명(1789년) 이전에는, 프랑스 보병후보자의 최저 키는 165센티미터였는데, 1818년(3월 10일의 법률)에는 157센터미터였고, 1832년 3월 21일의 법률에서는 156센터미터였다. 프랑스에서는 평균 1/2 이상이 징병검사에서 키 미달이나 신체적 결함으로 불합격판정을 받았다. 작센 지방에서는 징병검사에 합격할 수 있는 최저 키가 1780년에는 178센티미터였으나 지금은 155센터미터로 되어 있다. 현재 프러시아에서는 157센터미터다. 1862년 5월 9일자 ?바이에른 신문?에 게재된 마이어(Meyer)의 보고에 의하면, 9년간의 평균으로 볼 때 프러시아에서 징집자 1,000명당 716명의 병역 불합격자가 나왔는데, 중 317명은 키 미달 때문이고 399명은 신체적 결함 때문이었다....베를린에서는 1858년에 보충병의 할당인원을 다 채울 수 없어 156명의 결원이 생겼다"(리비히[J. von Liebig], ?화학과 그것의 농업 및 생리학에의 응용“, 제7판, 1862년, 제1권, pp. l17-118).)
    현재(1867년)까지 실시되고 있는 1850년의 공장법은 하루 평균 10시간의 노동을 규정하고 있다. 즉, 주초의 5일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12시간인데, 그 중에는 아침식사에 반 시간, 점심식사에 한시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노동시간은 10시간 반이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8시간인데, 그 중에는 아침식사를 위한 반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1주에 60노동시간인데, 주초의 5일간은 10시간 반씩이고, 토요일은 7시간 반이다.(주석 14: 1850년 공장법의 역사는 이 장의 뒷부분에서 서술된다.) 이 법률의 특별 파수꾼으로 내무장관 직속의 공장감독관이 임명되어 있으며, 그들의 보고서는 반년마다 의회가 공표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잉여노동에 대한 자본가들의 갈망에 관한 규칙적인 공식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잠시동안 공장감독관들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자.(주석 15: 영국 근대공업의 초창기로부터 184.j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에 관해서는 나 자신은 몇몇 군데에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이 기간에 관해서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저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라이프치히, 1845년)를 참고하기 바란다. 엥겔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었는가는 1845년 이후에 발간된 공장보고서나 광산보고서 등이 보여주고 있는 바다. 또 그가 노동자계급의 실정을 얼마나 놀랄 만큼 상세하게 묘사했는가는 그의 저서를 그보다 18-20년 뒤에 발간된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공식보고서(1863-67년)와 얼핏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주로[1862년까지 공장법이 아직 실시되지 않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아직 실시되고 있지 않은] 산업부문들을 취급하고 있는데, 이 부문들에서는 엥겔스가 묘사한 상태에 대해 당국이 아무런 변경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1848년 이후의 자유무역시대[즉, 자유무역의 행상인들이 학문적으로는 보잘것 없으면서도 큰소리치면서 독일 사람들에게 꿈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 그 낙원시대]의 예를 인용했다. 아무튼 영국이 여기서 전면(前面)에 등장하는 까닭은 이 나라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형적 대표자며, 또 이 나라만이 지금 취급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 연속적인 공식통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사기꾼같은 공장주는 아침 6시보다 15분 전에-그보다 더 빠를 때도 있고 그보다 늦을 때도 있다-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6시보다 15분 늦게-그보다 더 빠를 때도 있고 그보다 늦을 때도 있다-
    끝마친다. 또 그는 명목상 아침식사를 위해 할당된 반 시간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5분씩을 떼어내며, 점심시간에 할당된 한 시간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10분씩을 떼어낸다. 토요일에는 오후 2시보다 15분 늦게-그보다 더 빠를 때도 있고 그보다 늦을 때도 있다-작업이 끝난다. 이로부터 그가 얻는 이득은 다음과 같다.

    평일에는
    오전 6시 이전........15분
    오후 6시 이후........15분
    아침식사때 .........10분 5일간 합계 300분
    점심식사때 .........20분
    ---------------------
    합계 ..........60분 1주간 총계 340분
    토요일에는
    오전 6시 이전......15분
    아침식사 때 ........10분
    오후 2시 이후..... 15분
    ----------------------
    합계 .........40분
    이것은 1주일에 5시간 40분이나 되는데, 이것을 (공휴일이나 임시휴업의 2주간을 공제한) 50노동주간으로 곱하면 27노동일{(340분 x 5O주) ÷ (10.5시간 x 60분)}로 된다. "(주석 16: 하원의 명(命)에 따라 1859년 8월 9일 인쇄된 ?공장규제법? 중에 있는 "공장감독관 호너. (L. Horner)의 공장법개정제안", pp. 4-5.)

    "만약 노동일이 매일 5분씩 연장된다면 이것은 1년에 2 1/2노동일로 될 것이다."(주석 17: ?공장감독관 보고서. l856년 10월 31일? p .35.) "아침 6시 이전, 오후 6시 이후, 그리고 식사시간 전후에서 조금씩 떼어내어 하루에 1시간씩 추가한다면,, 1년에 13개월 노동하는 것과 같다. "(주석 18: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8친 4월 30일? p. 9.)

    공황(恐慌: crisis) 때에는 생산이 중단되어 오직 '단축된 시간', 즉 1주일에 며칠밖에는 작업을 하지 않지만, 이 공황도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충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업의 규모가 축소되면 될수록 그 축소된 사업에서 나오는 이윤은 더 커야 하며, 따라서 작업시간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만큼 그 중의 잉여노동시간은 더 길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857-58년의 공황기에 관해 공장감독관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기가 나쁠 때 과도노동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모순인 듯이 보이지만, 이 불경 기는 파렴치한 사람들로 하여금 위법행위를 하도록 충동하며, 그리하여 그들은 초과이윤을 얻는 다....나의 관할지역에서 지난 반 년 동안 122개의 공장은 완전히 폐업했고 143개의 공장은 휴업 하고 있지만, 법정시간 이상의 과도노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주석 19: 같은 보고서, p. 10.) 고 호너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우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기간의 대부분을 통해 불경기 때문에 많은 공장이 완전히 폐업했고, 그보다 더 많은 공장은 조업을 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노동자들이[법률에 의해 그들에게 보장된] 식사 시간과 휴식시간을 침해당함으로써 매일 1/2시간 내지 3/4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하소연을 마찬가지로 많이 듣고 있다. "(주석 20: 같은 보고서, p. 25.)

    이와 동일한 현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의 격심한 면화공황기에도 약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반복되었다.(주석 21: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1년 4월 3()일?, 부록 제2호를 보라.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1일?, pp. 7, 52, 53. 법률위반은 1863년 후반부터 다시 많아진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3년 10월 31일?, p. 7 참조.)

    "만약 우리가 식사시간 또는 기타의 불법적인 시간에 작업하고 있는 현장을 적발하면 우리는 그때마다 다음과 같은 변명을 듣게 된다. 즉, 노동자들이 아무리 해도 정해진 시간에 공장을 떠 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노동(기계의 청소 등등)을 중지하도록 하기 위 해서는, 특히 토요일 오후에는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직공들이 기계가 멈춘 뒤 에도 공장에 머물러 있다면....그 이유는 오직 평일에는 오후 6시 이전에, 그리고 토요일에는 오 후 2시 이전에 청소 등등을 하기 위한 틈을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석 22:?공 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10월 31일?, p. 23 공장주들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그들의 공장 직공들이 열광적으로 공장노동의 온갖 중단에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들의 기만성은 다음과 같 은 기묘한 사건에서 갈 나타나고 있다. 즉, 1836년 6월 초에 듀즈버리(요크셔)의 치안관사(治 安判事: magistrate))에게 제출된 고발장에 의하면, 베틀리 부근의 8개 대공장의 소유자들이 공장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공장주들 중 일부는 12세 내지 15세의 소년 5명을 금요일 오 전 6시부터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식사시간과 한밤중의 한시간의 수면시간 이외에는 조금도 휴식을 주지 않고 혹사시켰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그런데 이 아동들은 '넝마 구덩이' 속에서 30시간을 쉴새없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곳은 모직 누더기를 찢는 곳으로, 그 안의 공기는 성인노동자라도 계속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 폐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티끌과 털부스러기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고인들은 선서를 하는 대신-왜냐하면 그들은 퀘이커 교도들로서 선서를 하기에는 너무나 신중한 종교인들이었기 때문에-다음과 같이 증언 했다 즉, 그들은 크나큰 자비심을 베풀어 이 불쌍한 아동들에게 4시간의 수면을 허용하려 했 으나, 이 완고한 아이들은 아무리 해도 침대에 누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퀘이커 교
    도들은 20파운드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드라이던(Dryden)은 일찍이 이러한 퀘이커 교도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신앙심 깊은 체하는 여우,
    선서는 두려워하나 악마같이 거짓말하네.
    참회자마냥 온화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펴 행동하기도 하지만,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죄를 짓는다네!")

    "그것"(범정시간을 넘는 과도노동)"에서 얻는 초과이윤은 많은 공장주들에게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너무나 큰 유혹인 것같이 보인다. 그들은 적발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또 적발되는 경 우라도 벌금액과 재판비용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차액은 역시 그들의 이익으로 될 것이 라고 계산하고 있다. "(주석 2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6년 10월 31일? p. 34.) "하루 중 조 금씩 훔친 것들의 누적에 의해 추가시간이 얻어지는 경우, 감독관들이 그 위법 행위를 입증하기 가 매우 어렵다. "(주석 24: 같은 보고서, p. 35.)

    자본이 노동자의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에서 훔쳐내는 이 '좀도둑질'을 공장감독관들은 "분(分)도둑"(주석 25: 같은 보고서, p. 48.), "분 뜯어내기"(주석 26: 같은 보고서, p. 48.)라고 부르며, 노동자들의 전문용어로는 ‘식사시간 야금야금 깎아먹기'라고도 한다.(주석 27: 같은 보고서, p. 48.)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잉여노동에 의한 잉여가치의 형성은 전혀 비밀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만약 나에게 매일 10분씩만 시간외 노동(over-time)을 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당신은 나의 주머니 속에 매년 1,000파운드를 집어넣어 주는 셈이라고 아주 존경받는 공장주가 나에게 말했다. "(주석 28: 같은 보고서, p. 48.)
    "순간순간이 이윤의 요소다. "(주석 2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4월 30일“ p. 56)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온종일 노동하는 노동자를 '전일공(全日工: fu11-timer)'이라 부르고, 하루에 6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13세 미만의 아동을 ‘반일공(半日工: half-timer)'이라 부르는 것 이상으로 특징적인 것은 없다.(주석 30: 이 표현은 공장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장보고서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자는 여기에서는 노동시간의 인격화에 불과하다. 모든 개인적 차이는 '전일공'과 '반일공' 사이의 차이로 해소되어 버린다.



    제 3 절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



    이때까지 우리가 노동일의 연장에 대한 충동, 잉여노동에 대한 늑대와 같은 갈망을 고찰해 온 분야는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잔학성에 못지 않은] 자본의 극도의 무법성(주석 31: “공장주들의 탐욕, 이윤추구에서 그들의 잔학성은 스페인 사람들이 황금을 추구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 보인 잔학성에 결코 못하지 않다"(존 웨이드[John Wade], ?중간계급 및 노동계급 의 역사?제3판, 런던, 1835년, p. 114). 일종의 경제학개론서인 이 책의 이론적 부분에는, 그 당시로 보아서는 약간의 독창적인 것, 예컨대 상업공황에 관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역사적 부분은 이든(F. M. Eden)의 ?빈민의 상태?(런던, 1796년)의 파렴치한 표절이 다.) (영국 부르주아 경제학자의 말) 때문에 자본을 드디어 법적 규제의 사슬에 얽매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러한 분야였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노동력의 착취가 지금도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고 있거나 아주 최근까지도 구속을 받지 않았던 약간의 생산부문으로 돌려보자.

    "주의 치안판사 찰턴(Broughton Charlton)은 1860년 1월 14일 노팅엄시 회의실에서 열린 집 회의 의장으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즉, 이 도시의 주민들 중 레이스(lace) 제조에 종사하는 사 람들 사이에는 영국의 다른 곳 또는 문명세계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할 정도의 궁핍과 고통이 지 배하고 있다....9세부터 10세까지의 아이들이 새벽 2, 3, 4시에 그들의 불결한 잠자리에서 끌려나 와 겨우 입에 풀칠만이라도 하기 위해 밤 10, 11, 12시까지 노동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데, 그 들의 팔다리는 말라 비틀어지고 신체는 패소해지며 얼굴은 창백해지고, 그들의 인간성은 완전 히 목석처럼 무감각상태로 굳어져버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우리는 말레트 (Mallett)와 기타 공장주들이 등단해 이러한 토론에 항의를 제기한 것에 놀라지 않는다....이러한 제도는 몬터규 밸피(Montagu Valpy) 목사가 발한 바와 같이 사회적, 육체적, 도덕적, 정신적으 로 [변함없는] 노예제도의 하나다....성인남자의 노동시간을 1일 18시간으로 제한해 달라고 청원
    할 목적으로 공청회를 열고 있는 이러한 도시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우리는 버지니아나 캐롤라이나의 면화재배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흑인시장과 채찍과 인 간매매가 [자본가의 돈벌이를 위한 면사포와 칼라를 제조하기 위해] 날마다 수행되고 있는 이 완만한 인간희생보다 더 흉악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주석 32: ?데일리 텔레그라프?지, 1860년 1월 17일자.)

    스태퍼드셔(Staffordshire)의 도자기 제조업은 지난 22년간 세 차례에 걸쳐 의회의 조사대상으로 되었다. 조사 결과는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에 제출된 스크리븐(Scriven)의 1841년 보고와, 추밀원 의무관의 지시에 의해 공표된 그린하우(Greenhow)의 1860년 보고(?공중위생. 제3차 보고서?, 제1권, pp. 102-l13)와, 끝으로 1863년 6월 13일자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중의 론지(Longe)의 1862년 보고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목적을 위해서는 착취당한 아동들 자신의 약
    간의 증언을 1860년 및 1863년의 보고로부터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이 아동들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성인들 특히 부녀자들의 상태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데, 그들이 종사하는 도자기 제조업에 비해 면방적업은 훨씬 쾌적하고 건전한 직업으로 나타난다.(주석 33: 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라이프치히, 1845년, pp. 249-251 참조.)
    아홉 살 되는 월리엄 우드(William Wood)가 "노동하기 시작한 것은 만 7살 10개월 되던 때였다. " 그는 "처음부터 그릇 만드는 틀을 날랐다"(즉, 그릇 만드는 틀에 올려진 완성된 제품을 건조실로 운반하고, 빈 틀을 가지고 되돌아오는 일을 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와서 저녁 9시쯤에 일을 끝마치곤 했다. "저는 1주에 6일 동안 매일 저녁 9시까지 일합니다. 나는 최근 7, 8주일 동안 그렇게 해왔습니다" 일곱 살난 아이가 15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12살 난 소년 머리(J. Murra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그를 만드는 틀을 운반하며 녹로(jigger)를 돌립니다. 내가 일하러 오는 것은 아침 6시 인데, 4시에 올 때도 있습니다. 나는 어젯밤 밤을 새워 오늘 아침 6시까지 일했습니다. 그저께 밤부터 자지못했습니다. 어젯밤은 나와 함께 8, 9명의 다른 소년들도 밤을 새워 일했습니다. 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오늘 아침에도 모두 왔습니다. 나는 1주일에 3실링 6펜스를 받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일해도 그 이 상은 받지 못합니다. 지난 주일에 나는 이틀 밤을 새워 일했습니다"

    10세의 소년 퍼니하우(Fernyhough)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녁식사를 위해 온전한 1시간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는 반 시간뿐 일 때가 자주 있습니다. "(주석 34: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1863년, 부록 pp. 16, 18, 19.)

    그린하우는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나 월스탠턴(Wolstanton)의 도자기 제조지역의 평균수명이 특히 짧다고 밝히고 있다. 스토크 지방에서는 20세 이상의 성인남자 인구의 36.6%, 월스탠턴에서는 그 30.4%가 도자기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 연령에 속하는 성인남자중 폐병으로 인한 사망자 총수의 반 수 이상[스토크 지방에서]과 약 2/5(월스탠턴 지방에서)가 도자기공이다. 헨리(Henry)의 의사인 부스로이드(Boothroyd)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자기공들은 세대가 지남에 따라 점차로 체격이 작아지고 허약해지고 있다. "

    다른 의사 맥빈(McBean)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25년 전에 도공(陶工)들을 상대로 개업한 이래, 그들은 현저하게 퇴화하고 있는데 특히 키와 몸무게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상의 증언들은 그린하우의 1860년 보고서로부터 인용한 것들이다.(주석 35: ?공중위생, 제3차 보고서?, pp. 102, 104, 105.)

    1863년 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있다. 북부 스태퍼드셔 병원의 선임의사인 알레지(J. T. Arledg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도자기공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육체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퇴화된 주 민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발육부진 때문에 체격이 좋지 않고, 가끔 가슴이 기형인 경우도 많다. 그들은 빨리 늙고 수명이 짧다. 또 그들은 무기력하며, 핏기가 없으며, 그들의 체질 이 허약하다는 것은 그들이 위장병이나 간장병, 류마티스와 같은 고질병에 잘 걸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걸리는 병은 폐렴. 폐결핵. 기관지염. 천식과 같은 폐에 관한 질 병들이다. 천식의 한 종류로 그들에게만 특유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도자기공의 천식 또는 도자 기공의 폐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선(腺)과 뼈 또는 신체의 기타 부분을 침범하는 선병 (腺病: scrofula)은 도자기공의 2/3 이상이 걸리는 병이다....이 지방 주민의 신체가 지금보다 더 심한 정도로 퇴화하지 않은 것은 주위의 농촌지방으로부터의 인원보충과 더 건강한 계층들과의 결혼 덕택이라고 할 것이다. "(주석 36: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1963년, p. 24)

    얼마 전까지 이 병원의 외과의사였던 찰스 파슨스(Charles Parsons)는 위원회 위원인 론지에게 준 한 통의 편지에서 특히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통계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의 개인적인 관찰에 근거 를 둔 것이지만, 나는 이 불쌍한 아이들의 건강이 그들의 부모나 고용주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희생된 것을 보고 분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

    그는 도자기공의 병의 원인들을 열거하면서, '장시간노동'이라는 말로 집약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요망사항을 지적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제조공업이, 그 위대한 성공에는 [자신의 노동과 기능에 의해 그러한 성공을 가져오게 한] 노동인구의 육체적 퇴화와 각종 신체적 고통 과 조기사망(早期死亡)이 수반되고 있다는 오명(汚名)을 더 이상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석 37: 같은 책, p. 22)

    잉글랜드의 도자기업에 관해 말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그것에도 그대로 해당된다.(주석 38: 같은 책, 부록 p. 47.)
    성냥(match)제조업은 1833년에 인(燐: phosphorus)을 나무개비에 붙이는 방법이 발명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공업은 1845년 이래 잉글랜드에서 급속히 발전했고, 런던의 인구가 조밀한 지역으로부터 시작해서 맨체스터, 버밍엄, 리버풀, 브리스톨, 노리지(Norwich), 뉴캐슬, 글래스고우로 확대되어 갔다. 그와 더불어 파상풍(破傷風: tetanus)이 만연했는데, 이 병은 이미 1845년 비엔나의 한 의사가 성냥제조공들에게 고유한 병인 것을 발견한 바 있다. 이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반수는 13세 미만의 아동과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이다. 이 제조업은 비위생적이고 작업조건이 나쁜 것으로 평판이 나 있었으므로, 노동자 계급 중 가장 비참한 부분인 굶주려 죽게 된 과부 등등이 그들의 아동들[즉 '누더기를 걸치고 굶어 죽어가는, 교육도 받지 못한 아동들'](주석 39: 같은 책, 부록 p. 54.)을 이 제조업에 보내고 있다. 위원회의 위원인 화이트(1863년)가 심문한 증인들 중 270명은 18세 미만, 50명은 10세 미만이었고, 10명은 겨우 8세, 5명은 겨우 6세였다. 노동일의 길이는 12시간으로부터 14, 15시간 사이였고, 야간노동이 진행되며, 식사는 그 시간이 불규칙할 뿐 아니라 대다수의 경우 인독(燐毒)이 가득 찬 작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단테(Dante)가 이 제조업의 광경을 보았더라면 그가 상상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지옥의 광경도 여기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벽지(wallpaper)공장에서는 조잡한 종류의 벽지는 기계로 인쇄하고 정밀한 것은 손으로 인쇄한다. 이 공장에서 가장 바쁜 달은 10월 초부터 4월 말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 중 작업은 때때로 거의 중단없이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또는 더 늦게까지 계속된다.
    리치(J. Leach)의 증언: "지난 겨울{1862년} 19명의 소녀 중 6명이 과로로 병이 나서 출근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졸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향해 고함을 쳐야만 했다. "
    더피(W. Duffy): "아이들은 가끔 피로 때문에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사실은 우리들도 그렇게 될 때가 있다."
    라이트본(J. Lightbourne): "나는 열 세 살이다....지난 겨울 우리들은 저녁 9시까지 일했고 재작년 겨울에는 10시까지 일했다. 지난 겨울에는 발의 상처가 쑤시고 아파 거의 매일 저녁 울고 지냈다. "
    아프스덴(G. Apsden): "나는 내 아이가 7세 되던 때 매일 그 아이를 등에 업고 눈길을 왕복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보통 하루 16시간씩 일했다....그 아이가 기계 곁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무릎을 끓고 그에게 음식을 먹여준 적이 가끔 있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기계에서 떠나도 안 되고 기계를 멈추어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의 어느 공장의 공통경영자인 스미스(Smith): "우리('우리'를 위해 일해 주고 있는 '직공들'을 가리키는 말이다)"는 식사를 위해 중단하지 않고 계속 노동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10시간 반이라는 하루 노동은 오후 4시 반에 끝나고 그 뒤의 시간은 모두 시간외 노동으로 된다"(주석 40: 시간외 노동을 잉여노동과 같은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들은 10시간 반 노동을 표준노동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표준노동일에도 표준적인 잉여노동량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 표준노동일이 끝난 뒤에 '시간외 노동'이 시작되며, 이에 대해서는 약간 더 많은 보수를 지불한다. 다음 기회 {제6편 임금}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른바 표준노동일 동안 수행된 노동도 그 가치 이하로 지불되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외 노동이라는 것은 더 많은 잉여 노동을 짜내기 위한 자본가의 책략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 이 사실은 비록 표준노동일 동안 사 용되는 노동력이 현실적으로 그 가치대로 지불되는 경우일지라도 다를 것이 없다.)(이 스미스 자신은 10시간 반 동안 전혀 식사를 하지 않는가?). "우리(스미스 그 자신을 의미한다)는 오후 6시 이전에 일을 끝마치는 경우가 드물다"(끝마친다는 것은 노동력이라는 ‘우리'의 살아 있는 노동력의 소비를 끝마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우리(이번에도 동일한 인물인 스미스)는 실제로 1년 내내 시간외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아동도 성인도(아동들과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을 합해 152명과 성인 140명) 똑같이 최근 18개월 동안 평균해서 아무리 적어도 1주일에 7일 5시간을, 즉 1주일에 78시간 반씩을 일했다. 금년(1862년) 5월 2일까지 6주간에는 일이 더 많아 1주일에 8일, 즉 84시간 일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처럼 좋아하는 이 스미스는 미소를 띠고 다음과 같이 첨부한다.
    "기계노동은 좋지 않다"라고. 마찬가지로 목판인쇄를 채용하고 있는 공장주들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손노동은 기계노동보다 건강에 더 좋다"라고. 일반적으로 공장주들은 ”적어도 식사시간 중에는 기계를 정지시켜야 한다.“ 라는 제안에 격분하면서 반대한다.
    런던의 어떤 벽지공장 지배인 오틀리(Otle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의 노동시간을 허가하는 법률은 우리(!)에게 매우 적합하지만, 아 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로 정한 공장법의 노동시간은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점심 식사시간에 기계를 정지시킨다”(얼마나 관대한 일인가!). “이 기계의 정지는 종이와 물감에는 이렇다 할 만한 손실을 주지 않는다”[그는 부언한다]. “그러나 나는 시간의 손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다른 사람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소박하게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밟히고 있다. 즉, 약간의 ‘유력한 회사’들은 시간[즉, 타인의 노동을 취득할 시간]을 버리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이윤을 버린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13세 미만의 아동과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로 하여금 하루 12-16시간 동안 일하면서 점심식사를 잃어버리게" 해도 좋다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하고, 또한 마치 증기기관에 석탄과 물을, 양모에 비누를,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이[생산과정 그 자체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수단에 보조재료를 주듯이] 그들에게 점심식사를 주어도 좋다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라고. (주석 41:?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1863년, 부록 pp. 123-125, 140 및 별책부록 p. 64)
    영국의 어떤 산업부문도 빵제조업(우리는 최근에 비로소 도입되기 시작한 기계에 의한 빵제조는 제외한다)처럼 오래된 예수 이전의 생산방식(로마제국의 시인의 작품에서나 볼 수 있다)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은 처음에는 그것이 지배하는 노동과정의 기술적 성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자본은 처음에는 노동과정을 있는 그대로 접수한다.
    빵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불순제조(특히 런던)는 '식료품의 불순제조에 관한 하원위원회(1855-1856년)와 하설(Hassall)의 ?적발된 불순품?에 의해 처음으로 폭로되었다.(주석 42: 분말로 되었거나 소금을 섞은 명반(alum)이 '빵재료‘라는 이름을 가진 정상적인 상품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폭로의 결과 1860년 8월 6일의 '불순음식료품 제조의 방지를 위한‘ 법률이 나왔는데, 이것은 불순품의 매매에 의해 '정직한 돈벌이를 하려는’ 자유상업주의자들에 대해 최대한의 너그러운 배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효과가 없는 법률이었다.(주석 43: 검댕은 매우 강력한 에너지를 함유한 탄소의 형태인데, 자본주의적 굴뚝청소업자가 영국의 농민에게 판매하는 비료이다. 그런데 1862년 어떤 소송사건에서 영국의 '배심원'은 90%의 먼지와 모래를 섞은 검댕이 '상업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검댕인가, 그렇지 않으면 '법률적'인 의미에서 '불순한' 검댕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사꾼의 친구들' {배심원}은 이것이 '진정한' 상업상의 검댕이라고 판결했다. 그리하여 원고인 농민은 패소했을 뿐 아니라 소송 비용까지도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원회 자신도 자유상업이란 본질적으로 불순품[또는 영국인들의 재치있는 표현에 의하면, '세련된' 상품]의 거래를 의미한다는 자신의 확신을 대체로 소박하게 표명했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위조(僞造)'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이상으로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만들 줄 알며, 또 엘레아 학파 이상으로 일체의 실재적인 것을 가상(假像)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목전에서 실증해 보일 줄 알고 있다. (주석 44: 프랑스의 화학자 슈바리에(Chevallier)는 상품의 '위조'를 취급한 논문에서 그가 검사한 600여종의 제품 중 대다수에 대해 10, 20, 30종의 서로 다른 위조방법을 열거하고 있다. 그는 부언하기를, 자기는 모든 방법을 다 남김없이 알지도 못하며 또 자기가 알고 있는 방법을 모조리 열거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탕에는 6종의 위조방법이, 올리브유에는 9종, 버터에는 10종, 소금에는 12종, 우유에는 19종, 빵에는 20종, 브랜디에는 23종, 곡물가루에는 24종, 초콜 릿에는 28종, 포도주에는 30종, 커피에는 32종 등등의 위조방법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 지전능한 하나님조차도 위조될 형편이다. 루아르 드 카르(Rouard de Card), ?성체(聖體)의 위 조에 대해?, 파리, 1856년을 보라.)
    어쨌든 위원회는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에, 따라서 빵제조업에 주의하도록 했다. 그와 동시에, 런던의 빵제조공들은 공공집회와 의회에 보내는 탄원서에서 과도노동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이 불평불만은 상당히 절박한 것이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1863년의 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던 트리멘히어(H. S. Tremenheere))가 칙명(勅命)조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보고(주석 45:?빵제조공의 불평에 관한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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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1
    “인간의 생존과 안락에 필요한 각종 식료품. 의복. 주택 등도 역시 변한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소비되며, 그리고 그것들의 가치는 [그것들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부여하는] 새로운 힘에 재현되어, 생산활동에 다시 사용되는 새로운 자본을 형성한다"(웨일랜드[F. Wayland], ?정치경제학개요?, pp. 31-32). 기타의 모든 기묘한 점들은 문제로 삼지 않더라도, 새로운 힘 속에 재현되는 것은 예컨대 빵의 가격이 아니라 [신체를 형성하는] 빵의 실체이다. 다른 한편으로, 힘의 가치로 재현되는 것은 생활수단이 아니라 생활수단의 가치이다. 동일한 생활수단은 비록 그 값이 반밖에 되지 않더라도 똑같은 양의 근육. 골격. 힘을 생산하지만, 이전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 힘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가치'와 '힘'을 혼동하는 것, 그리고 그의 위선적인 모호함은, 이전에 존재하는 가치의 단순한 재현(再現)으로부터 무리하게 잉여가치(剩餘價値)를 끌어내려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시도를 은폐하고 있다.)
    노동과정의 주체적 요소[즉, 스스로 활동하는 노동]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노동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행해짐으로써 생산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해 보존하는 동안, 노동의 각 순간마다 추가적 가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등가물을 생산했을 때, 예컨대 그가 6시간의 노동에 의해 3원의 가치를 첨가했을 때, 생산과정이 중단된다고 가정하자. 이 3원이라는 가치는 생산물의 가치 중 생산수단의 가치로부터 이전된 부분을 넘는 초과분이다. 이 가치는 이 생산과정 내부에서 발생한 유일한 본원적 가치(本源的 價値)이며, 생산물의 가치 중 이 과정 자체에 의해 생산된 유일한 부분이다. 물론 이 새로운 가치는, 노동력을 구입할 때 자본가가 지출한 화폐, 그리고 노동자가 생활수단의 구매를 위해 지출한 화폐를 대체(代替: replace)할 뿐이다. 이 지출된 화폐 3원에 관해서 보면, 3원이라는 새로운 가치는 재생산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재생산된 것이고, 생산수단의 가치처럼 외관상으로만 재생산된 것[가치가 이전된 것]은 아니다. 한 가치의 다른 가치에 의한 대체는 이 경우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노동과정은 노동력 가치의 단순한 등가물이 재생산되어 노동대상에 첨가되는 점을 넘어 계속된다. 노동력 가치의 등가물을 재생산하는 데는 6시간만으로 충분하지만, 노동과정은 이 6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12시간 계속된다. 따라서 노동력의 활동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재생산(再生産)할뿐 아니라 일정한 초과가치(超過價値)를 생산한다. 이 잉여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와 그 생산물의 형성에 소비된 요소들[즉, 생산수단과 노동
    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差異)이다.
    우리는 생산물의 가치형성에서 노동과정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연출하는 상이한 역할들을 설명함으로써, 사실상 자본의 가치증식과정(價値增殖過程: valorization process)에서 상이한 자본요소들이 담당하는 기능(機能)들을 특징지었다. 생산물의 총가치 중 이 생산물을 형성하는 요소들의 가치총액을 넘는 초과분은, 증식된 자본 중 최초에 투하된 자본가치를 넘는 초과분이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은, 최초의 자본 가치가 [자기의 화폐형태를 벗어버리고 노동과정의 요소들로 전환할 때] 취하는 상이한 존재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본 중 생산수단(즉 원료. 보조재료. 노동수단)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량이 변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자본의 불변부분 또는 간단하게 불변자본(不變資本:constant capital)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 중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동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또 그 이상의 초과분,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데, 이 잉여가치는 역시 변동하며 상황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될 수 있다. 자본의 이 부분은 불변의 크기로부터 끊임없이 가변(可變)의 크기로 전환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자본의 가변부분 또는 간단하게 가변자본(可變資本: variable capital)이라고 부를 것이다. 노동과정의 입장에서는 객체적(客體的) 및 주체적(主體的) 요소[즉, 생산수단과 노동력]로 구별되는 바로 그 자본 요소들이 가치증식과정의 입장에서는 불변자본(不變資本)과 가변자본(可變資本)으로 구별된다.
    위에서 말한 불변자본의 규정은 결코 그 구성부분의 가치변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가령 1파운드의 면화가 어느 날에는 0.5원이지만 그 다음날에는 면화의 흉작 때문에 1원으로 상승한다고 하자. 계속 가공되고 있는 종전의 면화는 0.5원이라는 가치로 구매된 것이지만, 이제 그것은 생산물에 1원이라는 가치를 이전시킨다. 그리고, 이미 방적된 그리고 벌써 면사의 형태로 시장에서 유통하고 있을 수도 있는 면화도 역시 그 원래의 가치의 2배를 생산물에 이전시킨다. {면화가격
    의 상승 이전에 방적된 면사의 가치도 상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변동이 방적과정 그 자체의 면화의 가치증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만약 종전의 면화가 아직 방적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제 0.5원이 아니라 1원에 다시 판매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만약 면화가 이미 노동과정에 들어갔다면, 그것이 통과한 노동과정의 단계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면화의 가치가 1원이라는 것은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급격한 가치변동이 일어날 때 가장 적게 가공된 형태에 있는 원료[다시 말해, 직물보다는 면사, 또 면사보다는 면화 그 자체에 투기(投機)하는 것이 투기의 원칙이다. 이 경우 가치의 변동은 면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유래하는 것이고, 면화가 생산수단으로, 따라서 불변자본으로 기능하는 과정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한 상품의 가치는 물론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에 의해 규정되지만, 이 양 자체는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만약 그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변화한다면-그리하여 동일한 양의 면화가 풍
    작일 때에 비해 흉작일 때 더 많은 노동량을 대표한다면-이것은 이전부터 있던 상품들에 반작용한다. 왜냐하면, 이 상품들은 오직 동일한 종류의 상품의 개별적인 견본(見本)일 따름이며(주석 8: "동일한 종류의 생산물 전체는 엄밀히 말해 한 개의 총체를 이루고, 이 총체의 가격은 부분의 특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결정된다"(르 트로느[Le Trosne]), ?사회적 이익에 대 해", p. 893).), 특정 시점의 그것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즉, 그 당시의 현존하는 사회적 조건하에서 필요한 노동]에 의해 측정되기 때문이다.
    원료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미 생산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노동수단[즉, 기계 등]의 가치도, 또 따라서 그것들이 생산물에 넘겨주는 가치부분도 변동하는 수가 있다. 만약 새로운 발명에 의해 동일한 종류의 기계설비가 더 적은 노동지출로 생산된다면, 종전의 기계설비는 다소간 감가(減價: depreciate)될 것이며, 따라서 이에 비례하여 더 적은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가치의 변동은 그 기계가 생산수단으로 기능하는 생산과정의 외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생산과정에서는 그 기계는 [이 과정과는 관계없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이전할 수는 결코 없다,
    생산수단의 가치변동은 [생산수단이 벌써 생산과정에 들어간 뒤에도 반작용하지만] 불변자본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성격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사이의 비율 변동도 이 두 종류의 자본의 기능상의 차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10명의 노동자가 [적은 가치밖에 없는] 10개의 도구를 가지고 비교적 소량의 원료를 가공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노동과정의 기술적 조건들이 개선되어 단 1명의 노동자가 한 개의 비싼 기계로 100배의 원료를 가공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불변자본[즉, 사용되는 생산수단의 총가치]은 크게 증가하지만, 노동력에 투하되는 가변자본부분은 크게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변동은 오직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사이의 양적 관계[다시 말해, 총자본이 불변적 구성부분과 가변적 구성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비율(比率)]를 변경시킬 뿐이고,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사이의 본질상의 차이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제 9 장
    잉여가치율



    제 1 절 노동력의 착취도



    투하된 자본 C가 생산과정에서 생산한 잉여가치[즉, 자본가치 C의 증식분]는 우선 생산물의 가치가 그 생산요소들의 가치총액을 넘는 초과분(超過分)으로 나타난다.
    자본 C는 두 부분, 즉 생산수단(生産手段)에 지출되는 화폐액 c와 노동력(勞動力)에 지출되는 화폐액 v펄 구성되어 있다. c는 불변자본(不變資本)으로 전환된 가치부분을 표시하며, v는 가변자본(可變資本)으로 전환된 가치부분을 표시한다. 따라서 최초에는 C=C+v이다. 예컨대 투하자본 500원=410원[c]+90원[v]이다. 생산과정의 끝에 가서 상품(商品)이 나오는데, 그 가치는 c+v+s이며, 여기서 s는 잉여가치(剩餘價値)이다. 예컨대 410원[c]+90원[v]+90원[s]이다. 최초의 자본 C는 C'으
    로, 500원에서 590원으로 되었다. 이 양자 사이의 차액은 s, 즉 90원의 잉여가치이다. 생산요소들의 가치는 투하자본(投下資本)의 가치와 같기 때문에, 생산물가치가 그 생산요소들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超過分)은 투하자본가치의 증식분(增殖分)과 같다든가, 또는 생산된 잉여가치와 같다고 하는 말은 동어반복(同語反復)이다.
    그러나 이 동어반복은 좀더 상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생산물의 가치와 비교되는 것은 그것의 생산에 소비된 생산요소(生産要素)들의 가치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수란{예: 기계}을 구성하는 불변자본(不變資本)은 그 가치의 일부만을 생산물로 이전할 뿐이고, 그 가치의 나머지 부분은 원래의 노동수단의 형태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이 후자의 부분은 가치형성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무시할 것이다. 그것을 계산에 넣더라도 달라
    지는 것은 전혀 없다. 가령 c=410원은 312원의 원료가치와 44원의 보조재료가치와 과정 중에 마멸된 54윈의 기계가치로 구성되어 있으나, 실제로 사용되는 기계설비의 총가치는 1,054원이라고 하자. 이 1,054원 중 우리는 기계설비가 기능하는 동안 마멸로 잃어버리는 [따라서 생산물로 넘겨주 는]54원의 가치만을 이 생산물의 생산에 투하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기계의 형태 속에 계속 남아 있는 1,000원을 생산물에 이전되는 것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양쪽에 [즉, 투하된 가치의 쪽과 생산물 가치의 쪽에] 동시에 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주석 1: “만약 사용되는 고정자본의 가치를 투하자본의 일부로 우리가 계산하는 경우에는, 연도 말에 가서 이 자본의 잔존가치를 연간수입의 일부로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맬더스, ?정 치경제학원리?, 제2판, 런던, 1836년, p. 269).) 그렇게 하면 그것들은 각각 1,500원{l,054원의 기계가치+312원의 원료가치+44원의 보조재료가치+90원의 가변자본}과 1,590원으로 될 것이다. 그 차액, 즉 잉여가치는 여전히 90원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치의 생산에 투하된 불변자론이라고 말할 경우, 그것은 언제나 [문맥상의 전후관계에서 그 반대로 해석되지 않는 한] 생산 중에 실제로 소비(消費)된 생산수단(生産手段)의 가치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C=c+v라는 공식으로 되돌아가면, 이 공식은C':(c+v)+s로 전환되며, C는 C'으로 된다. 불변자본의 가치는 생산물에 이전되어 재현될 뿐이다. 그러므로 생산과정 속에서 실제로 창조된 새로운 가치[가치생산물(價値生産物: value-prooduct)]는 생산물(生産物)의 가치(value of the product)와는 다르며, 따라서 전자는 얼핏 보아서는 (c+v)+s 또는 410원[c]+90원[v1+90원[s]인
    듯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v+s, 즉 90원[v]+90원[s]이다. 다시 말해, 가치생산물(價値生産物)은 590원이 아니라 180원이다. 만약 불변자본 c=0이라면, 바꾸어 말해 만약 자본가가 이전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원료든 보조재료든 노동도구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소재와 노동력만을 사용하는 산업부문이 존재한다면, 이 경우에는 생산물로 이전되는 불변자본은 없을 것이다. 생산물가치의 이 요소[우리의 예에서는 410원]는 없어지게 될 것이지만, 90원의 잉여가치를 포함한 180원의 가치생산물[창조된 새로운 가치액]은 c가 거대한 가치액일때와 똑같은 크기일 것이다. C=(0+v)=v로 될 것이며, 가치증식한 자본 C'=v+s로 될 것이며, C'-C는 여전히 s와 같을 것이다. 반대로 만약 s=0 이라면, 바꾸어 말해, 만약 [그 가치가 가변자본의 형태로 투하된] 노동력이 오직 등가물만을 생산한다면, C=c+v이고, C'(생산물 가치)=(c+v)+0으로 되고, 따라서 C=C'으로 될 것이다. 이 경우 투하된 자본은 가치를 증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잉여가치(剩餘價値)는 단순히 v[즉, 노동력으로 전환된 자본부분]의 가치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결과일 뿐이며, 따라서 v+s=v+Av[v+v의 증가분]이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v만이라는 사실과, 그 변화의 조건들은 자본의 가변부분이 커짐에 따라 총투하자본도 또한 커진다는 사정에 의해 불분명하게 된다. 총투하자본은 이전에는 500원이었지만 이제는 590원으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과정을 순수한 형태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생산물의 가치 중 불변자본 가치(不變資本 價値)의 재현(再現)에 지나지 않는 부분을 완전히 제외시킬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불변자본 c=0이라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불변량(不變量)과 가변량(可變量)을 더하기(+)나 빼기(-)에 의해 결합시키는 경우, 그 결과의 변동은 불변량을 제외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수학의 한 법칙을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곤란은 가변자본의 원래의 형태로부터 발생한다. 앞의 예에서는 C'=410원의 불변자본+90원의 가변자본+90원의 잉여가치이다. 그러나 90원은 하나의 주어진 양[즉, 불변량이므로] 그것을 가변량으로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90원의 가변자본은 여기에서는 실제로는 이 가치가 겪게 되는 과정의 상징일 따름이다. 노동력의 구매에 투하된 자본부분은 일정한 양의 대상화된 노동이고, 따라서 그것은 구매한 노동력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불변의 가치량(價値量)이다. 그러나 생산과정 자체에서는 투하된 90원 대신 활동하는 노동력(勞動力)이 등장한다. 즉, 죽은 노동 대신 살아있는 노동이, 정지된 양(量) 대신 유동하는 양(量)이, 불변량 대신 가변량이 등장한다. 그 결과는 v의 재생산+v의 증가분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전체과정은 노동력으로 전환된 [본래는 불변적인] 가치의 자기운동(自己運動)이라는 외관을 띤다. 과정도 결과도 모두 이 가치의 자기운동 덕분이다. '90원의 가변자본' 또는 '일정한 양의 자기증식하는 가치'라는 표현이 모순(矛盾)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는 이 표현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불변자본을 0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얼핏보면 기이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 면공업의 이윤을 계산하는 경우 우리는 우선 미국. 인도. 이집트 등에 지불한 면화 가격을 공제한다. 즉, 우리는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되기만 하는 자본가치를 0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자본 중 잉여가치의 직접적 원천인 부분[이 자본부분의 증가분이 잉여가치이다]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뿐 아니라, 총투하자본(總投下資本)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이윤율(利潤率)}도 커다란 경제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의 제3권에서 이 비율을 상세하게 고찰할 것이다. 자본의 일부를 노동력(勞動力)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의 다른 한 부분은 반드시 생산수단(生産手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가변자본(可變資本)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변자본(不變資本)이 노동과정의 일정한 기술적 성격에 따라 적당한 비율로 투하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화학적 과정에 증류기나 기타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분석할 때에는 그 기구들을 무시할 수 있다. 가치창조와 가치변화를 그 자체로서 [즉, 순수하게] 고찰하는 한, 불변자본의 물질형태인 생산수단은 가치를 창조하는 유동적인 노동력이 합쳐지는 소재를 제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소재의 성질이나 가치는 상관이 없다. 이 소재는 오직 생산과정 중에 지출되는 노동량을 흡수하는 데 충분한 양만큼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만큼의 양이 주어져 있기만 하면, 그 가치가 올라가든 떨어지든, 또는 그것이 토지나 바다와 같이 가치가 없는 것이든, 가치창조와 가치변화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주석 2: 루크레티우스(Lucretius)가 말한 바와 같이, "무(無)로부터는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가치의 창조'라는 것은 노동력의 노동으로의 전환이다. 동력 그 자체는 무엇보다도 인간유기체로 전환된 자연소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불변자본 부분을 0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투하되는 자본은 c+v에서 v로, 또 생산물가치(c+v)+s는 가치생산물(v+s)로 축소된다. 만약 가치생산물=180원이 주어져 있고, 생산과정에서 지출된 전체 노동이 그것으로 표시된다면, 그것으로부터 가변자본=90원을 공제하면 잉여가치=90원이 남게 된다. 이 90원=s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절대량(絶對量)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의 상대량[즉, 가변자본이 가치증식된 비율]은 분명히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즉 s/v에 의해 표현된다. 이 비율은 앞의 예에서는 90/90=100%이다. 가변자본의 이와 같은 가치증식의 비율 또는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를 나는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 the rate of surplus-value)이라고 부른다.(주석 3: 영국인은 이 비율을 표현하기 위해 '이윤율' '이자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잉여가치의 법칙을 알면 이윤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제3권에서 알게 될 것이다. 그 순서가 반대로 되는 경우에는 이것도 저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자는 노동과정의 일부 기간에서는 오직 자기 노동력의 가치[즉, 자기에게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를 생산할 뿐이다. 그의 노동은 사회적 분업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생활수단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수한 상품[예컨대 면사]의 형태로 자기의 생활수단의 가치와] 동등한 가치 또는 [그가 생활수단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의 노동일 중 그가 이러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소비하는 부분은, 그의 하루의 평균적 생활수단의 가치 여하에 따라, 또는 같은 말이지만, 이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여하에 따라 증감한다. 만약 노동자의 하루 생활수단의 가치가 평균해서 6시간의 대상화된 노동을 나타낸다면, 노동자는 이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하루에 평균 6시간씩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령 그가 자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독립적으로 노동한다고 하더라도, 기타 조건이 불변이라면, 그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하
    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유지[또는 계속적인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을 얻기 위해 여전히 하루 평균 그만큼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1노동일(勞動日) 중 그가 노동력의 가치(예컨대 3원)를 생산하는 부분에서는, 그는 자본가가 이미 그에게 투하{지불한}(주석 4: {엥겔스: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advance를 선대(先貸)라는 의미보다는 지불(支拂) 또는 투하(投 下)라는 보통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자는 노동한 뒤에 임 금을 받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선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본가에 게 '선대'한다.}) 노동력 가치의 등가물(等價物)을 생산할 뿐이며, 새로 창조된 가치는 투하된 가변자본의 가치를 대체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3원의 새로운 가치의 생산은 단순한 재생산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1노동일 중 이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부분을 필요노동시간(必要勞動時間)이라고 부르며, 이 시간 중에 수행하는 노동을 필요노동(必要勞動: necessary labour)이라고 부른다.(주석 5: 이 책에서는 이때까지 ‘필요노동시간'이라는 용어를 어떤 상품(商品)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해 왔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용어를 노동력(勞動力)이라는 특수한 의미로도 사용할 것이다. 동일한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어떤 과학에서도 이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예컨대 고등수학과 초등수학을 비교해 보라.) 이 노동이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와는 무관하며, 이 노동이 자본과 자본가적 세계에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계속적인 생존이 자본의 세계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노동과정의 제2의 기간[즉, 노동자가 필요노동의 한계를 넘어 노동하는 시간]은 노동자가 노동력을 지출해 노동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는다. 그는 잉여가치를 창조하는데, 이 잉여가치는 자본가에게는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커다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노동일의 이 부분을 나는 잉여노동시간(剩餘勞動時間)이라고 부르며, 이 시간 중에 수행하는 노동을 잉여노동(剩餘勞動: surplus labour)이라고 부른다. 가치 일반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노동시간의 응고(凝固)로, 대상화된 노동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잉여노동시간의 응고로, 대상화된 잉여노동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경제적 사회구성체들 사이의 차이는, 예컨대 노예노동에 근거한 사회와 임금노동에 근거한 사회 사이의 차이는 이 잉여노동이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로부터 착취(搾取)되는 그 형태에 있다.(주석 6: 참으로 고트세트(Gottsched)다운 독창력 {모방에서의 독창력 }을 가지고 W. 로셔가 발견한 것은, 잉여가치는 잉여생산물의 형성, 그리고 그것에 따르는 자본의 축적(蓄積)은, 오늘날에는 자본가의 '절약(節約)'의 덕택이며, 때문에 자본가는 '이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가장 낮은 문명단계에서는 강자가 약자에게 절약을 강요한다"는 것이다(“국민경제학원리?, p. 78). 절약을 강요하다니 무엇을 절약한단 말인가? 노동의 절약인가,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잉여생산물의 절약인가? 현존하는 잉여가치의 취득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하는 자본가들의 어 정도 그럴듯해 보이는 변명에 근거해서 로셔와 그의 일파들이 잉여가치의 원천을 설명하는 이 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짜 무식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집권세력을 불쾌하게 할 결과를 도출 할지도 모르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과학적 분석에 대한 변호론적 공포심 때문이다.
    한편으로 가변자본의 가치는 그것으로 구매한 노동력의 가치와 같고 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일의 필요노동시간 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잉여가치는 노동일의 잉여노동시간 부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은 필요노동에 대한 잉여노동의 비율과 같다. 바꾸어 말해, 잉여가치율(剩餘價値律) s/v=잉여노동/필요노동 이다. 이 두 비율은 동일한 관계를 상이한 형태로, 즉 전자에서는 대상화된 노동의 형태로, 후자에서는 살아있는 [유동적인] 노동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搾取度: degree of exploitation) 또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다.(주석 7: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은 노동력의 착취도(搾取度)의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나 결코 착취의 절대량(絶對量)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만약 필요노동이 5시간이고 잉여노동이 5시간이라면, 착취도=100%다. 이 경우의 착취량은 5시간이다. 다른 한편, 만약 필요노동이 6시간이고 잉여노동이 6시간이라면, 100%라는 착취도는 여전히 불변이나 착취량은 20% 증가해서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된다.)
    우리의 가정에 의하면, 생산물(生産物)의 가치는 410원[c]+90원[v]+90원[s]이었고 투하자본(投下資本)은 500원이었다. 잉여가치는 90원이고 투하자본은 500원이므로 보통의 계산방식에서는 잉여가치율[이것은 일반적으로 이윤율(利潤準)과 혼동되고 있기 때문이다]은 18%로 계산되는데, 이것은 캐리(Carey)나 다른 조화론자들을 감동시킬 만큼 낮은 비율이다. 그러나 사실 잉여가치율은 S/C 또는 S/(C+V) 아니라 S/V이며, 따라서 90/500 이 아니라 90/90=100% 인데, 이것은 외견상의 착취도의 5배 이상이나 더 크다. 이 경우 우리가 비록 노동일의 절대적 길이나, 노동과정이 계속되는 기간(일, 주 등)이나, 또 90원의 가변자본이 동시에 일을 시키는 노동자의 수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잉여가치율 S/V는 그것의 동일한 표현인 잉여노동/필요노동 에 의해 노동일의 두 가지 부분 사이의 비율을 정확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100%이다. 즉, 노동자는 1노동일의 반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나머지 반은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잉여가치율의 계산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먼저 생산물의 총가치 중에서 그것에 재현될 뿐인 불변자본 가치를 0으로 본다. 나머지 가치액이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새로 창조된 유일한 가치이다. 만약 잉여가치량이 주어져 있다면, 이 새로 창조된 가치에서 잉여가치량을 빼면 가변자본을 찾을 수 있다. 만약 가변자본이 주어져 있고 찾아내려는 것이 잉여가치라면 그 반대로 하면 된다. 만약 잉여가치와 가변자본이 모두 주어져 있다면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율을 S/V를 계산해 내는 마지막 작업만 하면 된다.
    그 방법은 이와 같이 간단하지만, 몇 개의 실례를 들어 이 방법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원리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000개의 뮬 방추를 가지고 미국면화로부터 32번수의 면사를 뽑는데, 매주 한 방추당 1파운드의 면사를 생산하고 있는 방적공장을 예로 들어 보자. 낙면의 발생률은 6%다. 그리하여 매주 10,600파운드의 면화가 가공되어 10,000파운드의 면사와 600파운드의 낙면이 나온다. 1871년 4월에는 이 면화의 가격이 1파운드당 7.75펜스였다. 따라서 10,600파운드는 약 342 파운드{1971년의 통화명칭 변경 이전에는 1파운드=20실링=240펜스였다}이다. 이 10,000개의 방추는 [준비공정의 설비와 증기기관을 포함해] 방추 1개당 1파운드, 따라서 10,000파운드이다. 방추의 1년간 마멸은 10%=1,000파운드, 1주 동안에는 20파운드이다. 공장건물의 임차료는 1년간 300파운드, 매주 6파운드이다. 석탄소비량(1시간 1마력에 4파운드, 100마력으로 매주 60시간씩, 건물의 난방용도 포함되어 있음)은 매주 11톤, 톤당 8실링 6펜스이므로 매주 약 4.5파운드가 된다. 가스는 매주 1파운드가 들고, 기름은 매주 4.5파운드가 든다. 따라서 보조재료의 합계는 매주 10파운드다. 그리하여 주간 생산물의 불변가치 부분은 378파운드{342+20+6+4.5+1+4.5}이다. 임금은 매주 52파운드이다. 면사의 가격은 1파운드당 12.25펜스이므로 10,000파운드에 510파운드이고, 따라서 잉여가치는 510-430=80파운드이다. 378파운드의 불변가치부분은 가치의 창조에는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0으로 본다. 따라서 매주의 가치생산물로 132파운드가 남는데, 132=52[V]+80[S]이다. 따라서 잉여가치율은 80/52 = 153 11/13 %로 된다. 10시간의 평균노동일 중 필요노동은 3 31/33시간, 잉여노동은 6 2/33 시간이다.(주석 8: 초판에서 인용한 1860년의 한 방적공장의 예에는 사실상의 오류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본문에 인용한 완전히 정확한 자료는 맨체스터의 한 공장주가 나에게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전에는 엔진의 마력이 실린더의 직경에 의해 계산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지시기(指示器: indicator)가 표시하는 실제의 마력에 의해 계산되고 있다.)
    또 하나의 예: 제이콥은 1815년에 밀가격은 1쿼터당 8실링이고, 1에어커당 평균수확은 22부셀이라는 가정 하에 다음과 같은 계산을 했는데, 이것은 여러 항목을 미리 조정한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나 우리의 목적에는 충분하다.

    1에이커당 생산물의 가치

    종자(밀) 1파운드 9실링 10 . 1조, 지방세, 국세 1파운드 1실링
    비료 2파운드 10실링 지대 1파운드 8실링
    임금 3파운드 10실링 차지농업가의 이윤과 이자 1파운드 2실링
    ------------------------ ---------------------------------
    계 7파운드 9실링 계 3파운드 11실링
    여기서 생산물의 가격은 그 가치와 같고 잉여가치는 이윤. 이자. 10 . 1조 등등의 각종 항목으로 분할된다고 가정한다. 이 항목들은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좋다. 그것들을 합하면 3파운드 11실링이라는 하나의 잉여가치가 나온다. 종자와 비료대금인 3파운드 19실링은 불변자본 부분이며, 우리가 이것을 0으로 본다면, 3파운드 10실링이라는 투하된 가변자본이 남고, 그 대신 새로 생산된 가치는 3파운드 10실링+3파운드 11실링이다. 따라서 S/V = 3파운드 11실링/ 3파운드 10실링으로 되는데, 그것은 100%이상이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일의 절반 이상을 잉여가치의 생산에 충당하고 있는데, 이 잉여가치는 각종 구실 밑에 여러 사람들 사이에 분배되고 있다. (주석 9: 여기에 인용된 계산은 예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우리는 가격=가치라고 전제하고 있다. 제3권[제9장]에 가서 우리는 이러한 전제는 평균가격에 대해서까지도 그렇게 간단하게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2절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물의 비례배분적
    부분들로 표시



    이제 우리는 자본가가 어떻게 화폐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그 예로 되돌아자. 그의 방적공의 필요노동은 6시간이고 잉여노동도 6시간, 따라서 노동력의 착취도는 100%였다.
    12시간 노동일의 생산물은 30원의 가치를 가지는 20파운드의 면사이다. 이 면사가치의 적어도 8/10(24원)은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20파운드의 면화가 20원, 소모된 방추가 4원)가 재현되었을 뿐인 것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즉, 불변자본(不變資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2/10는 방적과정 중에 창조된 6원의 새로운 가치인데, 그 중 절반은 노동력의 하루 가치, 즉 가변자본을 대체하며, 또 절반은 3원의 잉여가치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20파운드의 면사의 총가치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면사의 가치 30원=24원[c1+3원[v1+3원(s)
    (역자 주:다음과 같은 대응관계를 고려하면 이하의 논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면사의 가치 30원=면화 20원 + 방추 4원 + 노동력의 가치 3원 + 잉여가치 8원
    면사20파운드 =13 1/3파운드+2 2/3파운드 + 2파운드 + 2파운드
    총노동 60시간 = 40시간 + 8시간 + 6시간 + 6시간
    노동일 12시간 = 8시간 + 1시간36분+ 1시간12분 + 1시간12분)
    이 총가치는 20파운드의 면사라는 총생산물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치요소들도 생산물의 비례배분적 부분(比例配分的 部分)들로 표시할 수 있다.
    만약 30원이라는 면사의 가치가 20파운드의 면사 속에 있다면, 이 가치의 8/10[즉, 불변부분인 24원]은 생산물의 8/10[다시 말해 16파운드의 면사]속에 있을 것이다. 그 중 13 1/3파운드의 면사는 원료[방적된 면화]의 가치 20원을 나타내며, 2 2/3파운드의 면사는 소비된 보조재료와 노동수단(방추) 등의 가치 4원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13 1/3파운드의 면사는, 20파운드의 면사라는 총생산물을 만드는 데 소비된 면화[즉,총생산물의 원료]를 나타낼 뿐, 그 이상의 아무 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13 1/3파운드의 면사에는 131/3원의 가치를 가지는 13 1/3파운드의 면화밖에 들어 있지 않으나, 그것의 가치[20원]에는 6 2/3원이 첨가되어 있으며, 이 금액은 나머지 6 2/3파운드의 면사를 만드는 데 소비된 면화의 가치와 같다. 이것은 마치 나머지 6 2/3파운드의 면사에는 면화가 조금도 들어 있지 않고 총생산물에 사용된 면화는 전부 13 1/3파운드의 면사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다른 한편, 13 1/3파운드의 면사에는 소비된 보조재료 . 노동수단의 가치나 방적과정에서 창조된 새로운 가치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변자본의 나머지 부분‘[=4원]이 들어 있는 다른 2 2/3파운드의 면사는 20파운드의 면사라는 총생산물에 소비된 보조재료와 노동수단의 가치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산물의 8/10[즉, 16파운드의 면사]은 사용가치로서의 현물형태에서는 [생산물의 다른 부분들과 꼭 마찬가지로] 방적노동의 생산물이지만,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거기에는 방적노동[즉, 방적과정 자체에서 수행된 노동]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면화가 아무런 도움없이 면사로 전환된 것처럼 보이며, 마치 면사라는 그 형태는 오직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만약 자본가가 그것을 24원에 팔고 그 24원을 가지고 다시 그의 생산수단을 산다
    면, 이 16파운드의 면사는 면화나 방추, 석탄 등이 가장(假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생산물의 나머지 2/10[즉, 4파운드의 면사는 이제는 12시간의 방적과정에서 창조된 6원이라는 새로운 가치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거기에 들어 있는 소비된 원료와 노동수단의 가치는 벌씩 거기에서 뽑혀 나와 첫 16파운드의 면사에 합쳐져 버렸다. 20파운드의 면사에 체현된 방적노동(勞動)은 생산물의 2/10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방적공이 4파운드의 면사를 공중에서 뽑아내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인간노동의 협력없이 천연적으로
    존재하여 생산물에는 아무런 가치도 첨가하지 않는] 그러한 면화와 방추로 방적공이 면사를 만들어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매일의 방적과정에서 새로 창조된 가치 전체는 4파운드의 면사로 되어 존재하지만, 이 중에서 절반은 소비된 노동력의 가치의 등가[즉, 3원이라는 가변자본]를 대표하고 나머지 절반은 3원이라는 잉여가치를 대표한다.
    방적공의 12노동시간은 6원으로 대상화되기 때문에, 30원이라는 면사의 가치에는 60노동시간이 대상화되어 있다. 이것은 20파운드의 면사로 체현되어 존재하는데, 이 20파운드의 면사 중 8/10 ,즉 16파운드는 [방적과정이 개시되기 이전] 생산수단에 지출된 48노동시간의 물질화(物質化)이고, 2/10, 즉 4파운드는 바로 방적과정에서 지출된 12노동시간의 물질화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면사의 가치는 면사의 생산 중에 창조한 새로운 가치에 [그것의 생산수단 속에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가치를 더한 것과 같다 이제 우리는 생산물의 가치 속의 기능상 또는 개념상 서로 다른 성분들을 생산물 그 자체의 비례배분적 부분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이 생산물(生産物)-생산과정의 결과-은 생산수단에 이미 들어 있는 노동[불변자본(不變資本)]을 대표하는 부분과, 생산과정에서 첨가된 필요노동[가변자본(可變資本)]을 대표하는 부분과, 끝으로 생산과정에서 첨가된 잉여노동[잉여가치(剩餘價値)]을 대표하는 부분으로 분할된다. 이러한 분할은, 나중에 그것을 복잡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적용시킬 때에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간단하면서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총생산물을 12시간 노동일의 완성된 결과로 고찰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총생산물을 그 생산단계(生産段階)를 통해서도 고찰할 수가 있다. 만약 상이한 생산단계에서 생산되는 몇 개의 부분적 생산물들을 총생산물의 기능상 구별되는 부분들로 나타낸다면, 이 방식으로도 이전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방적공은 12시간에 20파운드의 면사를, 즉 1시간에는 1 2/3파운드의 면사를 생산한다. 따라서 8시간에는 13 1/3파운드의 면사[즉, 1노동일에 방적되는 면화(棉花)의 총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생산물(部分生産物)]를 생산한다. 그 다음 1시간 36분의 노동의 부분생산물은 2 2/3파운드의 면사가 되는데 그것은 12노동시간에 소비되는 노동수단(勞動手段)의 가치를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방적공은
    그 다음의 1시간 12분에는 2파운드의 면사=3원을 생산하는데, 이것은 그가 새로운 가치 전체와 동등한 생산물 가치(生産物 價値)이다. 끝으로 그는 최후의 1시간 12분에 또다시 2파운드의 면사를 생산하는데, 그 가치는 그의 반일분의 잉여노동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剩餘價値)와 동등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계산방식은 영국의 공장주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예컨데 그는 1노등일의 첫 8시간[또는 2/3 노동일]에는 다만 자기의 면화의 가치를 회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을 회수하고, 등등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옳은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앞의 방식을 [완성된 생산물의 상이한 부분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공간으로부터 [그 생산물 부분들이 순차적으로 생산되는] 시간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매우 조잡한 사고 방식을 야기랄 수도 있다. 특히 실무적으로 가치증식(價値增殖) 과정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이론적으로는 그것을 곡해(曲解)하는 편이 도리어 이익이 되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방적은 자기 노동일의 첫 8 시간으로는 면화의 가치를, 그 다음의 1시간 36분으로는 소비된 노동수단의 가치를, 또 그 다음 1시간 12분으로는 임금의 가치를 생산 또는 대체하며, 그리고 오직 저 유명한 ‘최후의 1시간’{1시간 12분}만을 공장주를 위한 잉여가치의 생산에 바친다고. 그리하여 이 방적공에게는 이중(二重)의 기적을 행할 의무가 부과된다. 즉, 면화나 방추나 증기기관이나 석탄이나 기름 등을 사용해 실을 뽑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그것들을 생산해야하며, 그리고 일정한 강도의 1노동일을 동일한 강도의 5노동일{60 노동 시간}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에서는 원료와 노동수단의 생산에는 네 개의 12시간 노동일이 필요하며, 그것들을 면사로 만드는 데는 또 하나의 12시간 노동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없는 욕심이 이와 같은 기적을 쉽사리 믿도록 한다는 것, 또 이 기적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는 어용학자(御用學者)들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음의 한 실례가 잘 말해 주고 있다.



    제 3 절 시니어의 ‘최후의 한 시간’(last hour)



    1836년의 어느 날 아침 경제학적 식견과 명문(名文)으로 소문난, 이를테면 영국 경제학자 중의 클라우렌{Clauren: 문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작가} 이라고 할 수 있는 나소 시니어(Nassau W. Senior)는 옥스퍼드에서 맨체스터로 불려갔다. 그는 옥스퍼드에서는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맨체스터에서는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공장주들은 그 당시 공포된 공장법{1883년}에 대항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요구를 들고 나온 ‘10시간 노동 운동’에 대항할 투사(鬪士)로 그를 선발할 것이었다. 공장주들은 자기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실무적인 통찰력으로 이 유식한 교수가 “아직도 상당히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맨체스터로 불러낸 것이다. 이 교수는 그가 맨체스터에서 공장주들로부터 받은 교훈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서 다음과 같은 소책자를 내놓았다: “공장법이 면공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편지”(런던, 1837년). 이 책자에는 특히 다음과 같은 교훈적인 구절이 있다.

    “현행법 하에서는 18세 미만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어떤 공장도 매일 11 1/2 시간 이상을 [즉, 첫 5일간은 12 시간, 토요일에는 9시간 이상을] 작업할 수 없다. 다음의 분석(!)은 이러한 공 장에서는 순이익 (純利益)전체가 최후의 한 시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공 장주가 100,000원을 투자하되 80,000원은 공장건물과 기계에, 20,000원은 원료와 노동임금에 투자 한다고 하자. 자본의 회전을 연 1회, 총이윤을 15%{감가상각 5% +순이윤 10%}라고 가정하면, 이 공장의 1년 간의 매상액은 115,000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1노동일에 들어 있는 23개의 30분 노동의 하나하나는 이 115,000원의 5/115[즉, 1/23]를 생산한다. 115,000원의 총액을 구성하는 이 23/23 중 20/23[115,0000 중의 100,000원에 해당하는 것]은 단순히 자본을 보존하는 데 지나지 않 고 1/23[즉, 115,000원 중의 5,000원]은 공장과 기계설비의 마멸을 보상한다. 나머지 2/23[즉, 매 일의 마지막 두 개의 30분]가 10% 의 순이윤{10,000원}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만약 가격이 변 동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 이 공장이 약 2,600원의 유동자본의 추가에 의해 11 1/2시간 대신 13 시간을 작업할 수 있게 된다면, 순이윤은 2배 이상으로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만약 노동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만큼 단축된다면 순이윤은 없어질 것이며, 또 만약 1 1/2시간만큼 단축된 총이윤 까지도 없어질 것이다. "(주석 10: 시니어(N. W. Senior_, 앞의 책, pp. 12-13.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은 괴상한 주장들[예컨대 공장주들이 기계설비 등의 마멸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금액, 즉 자본의 한 부분을 대체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이윤[총이윤이든 순이윤이든]에 가산하는 듯이 주장하는 것은 문제로 삼지 않는다. 우리는 또 숫자가 정확한 것인가 거짓인가도 문제로 삼지 않는다. 그것이 이른바 '분석' 이상의 가치를 안 가진다는 것은 호너(Leonard Horner)가 ?시니어에게 보내는 편지?(런던, 1837년)에서 증명한 바다. 호너는 18333년 공장조사위원회 위원의 한사람이었고, 1859년까지는 공장감독관[실제로는 공장검열관]이었으며, 영국 노동자계급을 위해 불멸의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자치의 전 생애를 통해 격분한 공장주들을 상대로 투쟁했을 뿐 아니라 [공장'직공'들의 노동시간 수보다 공장주들에 대한 하원의 찬성표 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 내각을 상대 로 투쟁했다. 시니어의 서술은 그 내용상의 오류는 그만두더라도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본래 말하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공장주는 노동자를 매일 11 1/2시간, 즉 2/23시 간 일을 시킨다. 1년간의 노동은 이 시간수에 1년간의 노동일의 수를 곱한 것으로 구성된다. 이 러한 가정 밑에서는 23/2노동시간은 1년간에 115,000원의 생산물을 생산하며, l/2노동시간은 1/23 x 115,000원을 생산한다. 20/2노동시간은 20/23 x 115,000원=100,000원을 생산하며, 그것은 오직 투하된 자본을 대체할 뿐이다. 남은 것은 3/2동시간인데, 이것은 3/23 x l15,000원=15,000 원, 즉 총이윤을 생산한다. 이 3/2노동시간 중 1/2노동시간은 1/23 x 115,000원=5,000원을 생산 하는데, 그것은 공장과 기계설비의 마멸만을 대체한다. 마지막 두 개의 30분노동, 즉 최후의 1
    노동시간은 2/23 x l15,000원=10,000원, 즉 순이윤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시니어는 생 산물의 최후의 2/23를 노동일 전체의 부분들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것은 오류인 것 같다. 시니 어는 생산물의 총가치를 노동일 전체의 부분들로 전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것을 '분석(分析)'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가 노동자들은 1일 중의 대부분을 건물. 기계. 면화. 석탄 등의 가치의 생산[재생산 또는 대체]에 낭비한다는 공장주들의 한탄을 그대로 믿었다면 아예 분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답변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여러분! 만약 당신들이 11 1/2시간이 아니라 10시간 공장을 가동시킨다면, 다른 사정에 변화가 없는 한, 면화나 기계설비 등의 매일의 소비는 그에 비례해 감소할 것이며, 당신들은 잃
    는 것만큼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당신들의 노동자들은 투하된 자본가치를 재생산 또는 대체하는 데 1 1/2시간만큼 적게 낭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다른 한편, 만약 시니어가 공장주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전문가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노동일의 길이와 순이윤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공장주들에게 기계설비. 공장건물. 원료. 노동을 뒤섞지 말고, 한 쪽에는 공장건물. 기계설비. 원료 등에 투하된 불변자본을 놓고, 다른 쪽에는 임금에 투하된 자본을 놓아달라고 요청했어야 할 것이다. 그때 만약 공장주들의 계산에 의해 노동자는 2개의 30분 노동에서 임금을 재생산 또는 대체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분석을 계속했어야 할 것이다.
    "당신들의 진술에 의하면, 노동자는 마지막에서 둘째번 1시간에 자기의 임금을 생산하고 최 후의 1시간에 당신들의 잉여가치, 즉 순이윤을 생산한다. 그는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크기의 가 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마지막에서 둘째번 1시간의 생산물은 최후의 1시간의 생산물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노동자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오직 그가 노동을 수행하는 동안이고, 또 그의 노동량은 그의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당신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 노동시간은 하루에 11 1/2시간으로 되어 있다. 이 11 1/2시간의 일부를 그는 자기의 임금을 생산 또는 대체하는데 사용하며, 나머지 부분을 당신들의 순이윤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다 그는 이것 이외에는 아무 것 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의 임금과 그에 의해 제공되는 잉여가치는 같은 크기의 가치이므로, 그는 분명히 자기의 임금을 5 3/4시간에 생산하며, 당신들의 순이윤을 나머지 5 3/4시간에 생산한다. 그리고 2시간에 생산된 면사의 가치는 그의 임금과 당신들의 순 이윤을 합한 가치량과 같기 때문에, 이 면사의 가치는 11 1/2노동시간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 5 3/4시간은 마지막에서 둘째번 1시간의 생산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다른 5 3/4시간은 최후의 1 시간의 생산물의 가치를 나타낸다. 우리는 이제 아주 까다로운 점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주의해 야 한다. 마지막에서 둘째번 1노동시간도 최초의 1노동시간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1노동시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방적공은 어떻게 5 3/4노동시간을 대표하는 면사의 가치 를 1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가? 그는 결코 그와 같은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 그가 1노동시간 에 생산하는 사용가치는 일정한 양의 면사다. 이 면사의 가치는 5 3/4노동시간으로 측정된다 그 중 4 3/4노동시간은 매시간 소비되는 생산수단(즉 면화나 기계설비 등)에 [방적공의 협력없이]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이고, 나머지 1시간은 방적공 자신에 의해 첨가된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임금은 5 3/4시간에 생산되며, 그리고 1노동시간에 생산된 면사도 또한 마찬가지로 5 3/4 노동시 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5 3/4방적노동시간 중에 그에 의해 생산된 새로운 가치가 1방적노 동시간의 생산물의 가치와 동일하다는 것은 결코 마술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 들이 방적공은 면화나 기계설비 등의 가치를 재생산 또는 대체하는 일에 그의 노동일의 단 한 순간이라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노동이 면화와 방추로 면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즉 그가 방적을 하기 때문에, 면화와 방 추의 가치는 스스로 면사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노동의 질(質)에 기인하는 것이지 그 양(量)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1시간에 면사로 이전시키는 면화의 가치는 1/2시간에 이전 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은 오직 그가 1/2시간보다는 1시간에 더 많은 면 화를 방적한다는 데 기인할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이제 다음과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마지막 둘째번 1시간에 자기 임금의 가치를 생산하고 최후의 1시간에 순이윤 을 생산한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그가 2시간[이 2시간의 선후관계는 어떻든]에 생산i한 면사에는 11 1/2노동시간[즉, 그의 노동일 전체와 똑같은 시간]이 체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그가 전반의 5 3/4시간에는 자기의 임금을 생산하고 후반의 5 3/4시간에는 당신들의 순 이윤을 생산한다는 나의 주장은, 당신들이 전반의 5 3/4시간에 대해서는 값을 지불하나 후반의 5 3/4시간에 대해서는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내가 여기서 노동력(勞動 力)에 대한 지불이라고 라고 말하지 않고 노동(勞動)에 대한 지불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직 당 신들의 통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제 만약 당신들이 값을 지불하는 노동시간과 값을 지불 하지 않는 노동시간을 비교한다면, 당신들은 그것이 1/2일 : I/2일, 즉 100%라는 것을 발견할 것 이다. 이것은 물론 나쁘지 않은 퍼센트다. 또 만약 당신들이 당신들의 '일꾼'들을 11 1/2시간이 아니라 13시간 일하도록 강요해 [아마도 당신들은 그렇게 하기가 십상이지만] 이 추가적인 1 1/2시간을 순전한 잉여노동에 합친다면, 잉여노동은 5 3/4시간에서 7 1/4시간으로 증가할 것이 며, 이에 따라 잉여가치율은 100%에서 126 2/23%로 증가하리라는 것도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 다. 그러나 만약 당신들이 1 1/2시간의 추가에 의해 잉여가치율이 100%에서 200%로 또 심지어 200% 이상으로 증가하리라고, 즉 그것이 '2배 이상으로 되리라'고 기대한다면, 당신들은 너무나 지나친 낙관론자들이다. 다른 한편, 만약 당신들이 노동일을 11 1/2시간에서 10 1/2시간으로 단 축하면 당신들의 순이윤이 모두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당신들은 너무나 소심한 비 관론자들이다[인간의 마음은 이상하다. 특히 돈지갑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 지만]. 결코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잉여노동은 5 3/4시간에서 4 3/4시간으로 감소될 것이지만, 그것은 아직도 82 14/23%나 되는 상당히 높은 잉여가치율이다. 그러나 저 숙명적인 '최후의 한 시간'이라는 것은-당신들은 이에 대해 천년왕국설의 신자들이 세계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한 것보다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웃기는 이야기'다. ' 최후의 한 시간'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당신들의 '순이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 당신들이 혹사시키고 있는 소년소녀들의 '순결한 마음'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주석 11: 시니어가 공장 주들의 순이윤과 영국 면공업의 존립과 영국의 세계시장 지배가 '최후의 한 시간'의 노동에 달 려 있다는 것을 논증했다면, 유어는 다음과 같은 것을 논증했다 즉, 만약 공장 아동들과 18세 미 만의 미성년자들을 12시간 동안 공장 구내의 따뜻하고 매우 도덕적인 분위기 속에 가두어 두지 않고 그들을 '한 시간' 더 빨리 냉혹하고 타락한 외부세계로 몰아낸다면, 나태와 퇴폐에 의해 그 들의 영혼의 구제가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1848년 이후 공장감독관들은 '최후의', '치명 적인 한 시간'에 대해 계속 공장주들을 야유했다. 그 하나의 예로, 하우엘(Howell)은 1855년 5월 21일자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다음과 같은 기발한 계산"(그는 시니어를 인 용하고 있다)"이 정당하다면, 영국의 모든 면공장은 1850년 이래 손실을 보면서 조업한 것으로 된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55년 4월 30일?, pp. 19-20). 1848년에 10시간 노동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을 때, 도셋주와 서머셋주의 접경지에 산재한 농촌의 아마방적공장주들은 [노동시간 제한 의 혜택을 입게 된] 약간의 노동자들에게 그것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한 일이 있 는데, 이 청원서에는 다음과 갈이 쓰여 있다. "자식들의 부모인 우리들 청원자는, 한가한 시간을 한 시간 더 추가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식들을 타락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런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나태는 모든 퇴폐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 이에 관해 1848년 10월 31일자 공장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덕망있고 인자한 어버이의] 어린 자녀들이 노동하고 있는 아마방적공장 내부의 공기는 원료에서 나오는 무수한 먼지와 섬유가루로 가득 차서 방적실 안에 10분만 있어도 아주 불쾌할 지경이다. 실제로 거기에 는 아마의 먼지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람의 눈. 귀. 입. 코로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 분은 심한 고통 없이는 그곳에 있을 수 없다. 노동 그 자체로 말하면 엄격한 감시하에, 또한 무 서울 정도로 빨리 돌아가는 기계 때문에, 끊임없이 숙련을 적용해 노동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시 간을 제외하고는 10시간을 온통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러한 작업에 얽매여 있는 자신의 아이들 에 대해 '나태'라는 말을 쓰도록 부모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좀 잔인한 듯하다. 이 아이들은 그 부근 농촌의 일꾼들보다 더 장시간 노동한다. '나태, 퇴폐' 운운하는 잔인한 이야기는 전혀 근거 없는 거짓말이며, 가장 파렴치한 위선이라고 낙인찍어야 할 것이다....약 12년 전에 공장주의 '순 이윤' 전체는 '최후의 한 시간'의 노동에서 나오며, 따라서 노동일을 한 시간 단축하는 것은 순 이윤을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높은 권위자의 지지 하에 공공연하게 또 아주 진지하게 선포 한 확신에 대해 사회의 일부 사람들은 분개했다. 이제 이 사람들은, '최후의 한 시간'의 효력에 관한 그 최초의 발견이 그 뒤 훨씬 확대되어 이윤뿐 아니라 도덕까지도 포함하게 되고, 만약 아 동노동의 길이가 10시간으로 단축된다면 최후의 치명적인 한 시간에 달려있는 공장주의 순이윤 뿐 아니라 아동들의 도덕까지도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듣게 될 때, 아마도 자신의 눈 들을 믿지 않을 것이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101). 동일한 공장보고서 는 또한 이 공장주들의 도덕이나 덕성의 견본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들이 소수의 전혀 의지할 곳 없는 노동자를 시켜 그와 같은 종류의 청원서에 서명하게 하고, 그 뒤 그것을 공업부문 전 체, 주 전체의 청원서라고 하면서 의회에 제출하기 위해 그들이 이용한 간계. 술책. 유혹. 협약 위조 등의 견본을 보여주고 있다. 시니어 자신(그는 나중에 자기의 명예를 위해 정력적으로 공장법을 옹호했다)도 그의 반대자들도 모두 그 '최초의 발견'의 궤변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른바 경제'학'의 오늘날의 수준을 특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의 경험 을 통해 그것이 궤변임을 알게 되었지만, '왜, 무엇 때문에' 궤변인가는 그들에게는 여전히 수 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언젠가 정말로 여러분들의 '최후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올 때 는 이 옥스퍼드 교수를 회상하십시오. 그러면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석 12: 그러나 이 교수는 자기의 맨체스터 여행에서 다소의 소득을 얻었다. ?공장법이 면공 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편지?에서 그는 순이익 전체, 즉 '이윤'과 '이자' 그리고 심지어 '그 이상의 무엇'까지도 모두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지불되지 않은 그 한 시간에 의존한다고 말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1년 전 그가 옥스퍼드 대학생들과 교양있는 속물들을 위해 서술한 ? 정치경제학개론?에서 그는 가치가 노동에 의해 규정된다는 리카도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이윤 은 자본가의 노동에서, 이자는 자본가의 금욕 즉 '절제'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 다. 이 속임수 자체는 낡은 것이지만 '절제'라는 말은 새로운 것이었다. 로셔가 그것을 독일어 로 'Enthaltung'이라고 번역한 것은 옳다. 그러나 라틴어에 그만큼 정통하지 못한 그의 동료들 은 그것을 'Entsagung'이라고 승려냄새가 나는 말로 번역했다.)......
    1836년에 시니어가 발견한 '최후의 한 시…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737
  • 자본론10
    [면화로부터 실을 뽑을 때 마멸되거나 소모되지 않을 수 없는] 방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도 마찬가지다.(주석 12: "상품{생산}에 직접 사용된 노동뿐만 아니라, 그러한 노동을 지원하는 기구, 도구, 건물에 투여된 노동도 또한 상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리카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한글판, 85쪽).
    그리하여 면사의 가치, 즉 면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데 있어, [면화 그 자체와 소모되는 방추를 생산하는, 그리고 그 다음으로 면화와 방추로 면사를 생산하는] 여러 가지 특수한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서로 분리되어 있는] 노동과정들은 동일한 하나의 노동과정의 순차적인 각각의 단계로 간주할 수 있다. 면사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은 모두 과거의 노동이다. 그리고 면사를 형성하는 요소들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이 마지막 과정인 방적에 지출된 노동보다 더욱 과거의 것이라는 사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한 채의 집을 짓는 데 일정한 양의 노동[예컨대 30노동일]이 필요하다면, 제30일째의 노동일이 최초의 노동일보다 29일 늦게 생산에 들어갔다고 해서 이 집에 투하된 노동시간의 총계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재료와 노동수단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은 마치 방적 과정의 어느 초기 단계에서 [즉, 방적의 형태로 최후에 첨가된 노동 이전에] 지출한 노동인 것처럼 간주할 수 있다.
    요컨대, 12원이라는 가격으로 표현되는 면화와 방추라는 생산수단의 가치는 면사의 가치, 즉 생산물의 가치의 구성부분으로 된다.
    그러나 두 가지 조건만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면화도 방추도 사용가치의 생산에 실제로 이바지해야만 한다. 우리의 경우 그것들이 면사로 되어야만 한다. 가로서는 어떤 사용가치가 그것의 담지자가되건 상관없지만, 가치의 담지자는 사용가치를 가져야만 한다. 둘째, 지출된 노동시간은 주어진 사회적 생산조건 하에서 필요한 노동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만약 1파운드의 면사를 뽑아내는 데 1파운드의 면화만이 필요하다면, 1파운드의 면사를 생산하는 데는 1파운드의 면화만이 소비되어야 한다. 방추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본가가 망령이 들어 철로 만든 방추 대신 금으로 만든 방추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면사의 가치에는 여전히 철제방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만이 계산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산수단(生産手段), 즉 면화와 방추가 면사의 가치의 얼마만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알았다. 그것은 바로 12원[즉, 2노동일의 체현물]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방적공의 노동(勞動)이 면화에 첨가하는 가치부분이다.
    우리는 이 노동을 이번에는 노동과정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 노동과정의 경우에는 면화를 면사로 전환시킨다는 합목적적 활동으로서만 노동을 고찰했다. 따라서 기타 사정이 동일하다면, 노동이 그 목적에 잘 맞으면 맞을수록 면사는 그만큼 더 나은 것이 생산될 것이다. 또한 방적공의 노동은 다른 종류의 생산적 노동과는 독특한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는 주관적으로는 방적이라는 특수한 목적(目的)에서,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특수한 작업방식(作業方式), 생산수단의 특수한 성질, 그리고 생산물의 특수한 사용가치(使用價値)에서 나타난다. 면화와 방추는 방적에는 필요하지만 대포 생산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와는 반대로, 방적공의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는 한, 다시 말해 가치의 원천인 한, 그것은 대포의 포신(砲身)을 깎는 노동자의 노동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있는 예를 가지고 말하면) 면사의 생산수단에 실현되어 있는 면화 재배자와 방추제조자의 노동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오직 이 동일성(同一性) 때문에 면화재배 . 방추제조 . 방적이 면사의 가치라는 하나의 총가치(總價値)의 단순히 양적으로만 구별되는 부분들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이미 노동의 질 . 성질 . 내용이 아니고 오직 노동의 양(量)뿐이다. 이 양이 계산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방적노동이 단순한 노동이며, 사회적 평균노동이라고 가정하자. 이것과는 반대되는 가정을 하더라도 사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뒤에 가서 알게 될 것이다.
    노동과정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은 끊임없이 운동(運動)의 형태로부터 정지된 존재(存存)의 형태로, 즉 노동자의 작업의 형태로부터 생산물의 형태로 전환한다. 한 시간 뒤에는 방적이라는 운동은 면사의 일정한 양으로 실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일정량의 노동[즉, 한 시간의 노동]이 면화에 첨가되었다. 우리는 방금 방적노동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노동[방적공의 생명력의 지출]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방적노동이 노동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노동력(勞動力)의 지출(支出)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방적이라는 특수한 노동(勞動)이기 때문은 아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면화를 면사로 전환시키는 작업에서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이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즉, 사회의 평균적인] 생산조건 하에서 1노동시간에 a파운드의 면화가 b파운드의 면사로 바뀐f다면, 12a파운드의 면화가 12b파운드의 면사로 바뀌지 않는 한, 하루의 노동은 12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노동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원료 생산물도 단순한 노동과정의 입장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원료는 오직 일정한 양의 노동을 흡수(吸收)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사실상 이 흡수에 의해 원료는 면사로 전환되는데, 왜냐하면 노동력이 방적이라는 형태로 지출되어 원료에 첨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산물인 면사는 이제 면화가 흡수한 노동의 계량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1시간에 1 과2/3 파운드의 면화가 1과 2/3파운드의 면사로 바뀐다면, 10파운드의 면사는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한 것을 가리킨다. 이제 일정한[경험적으로 확정된]양의 생산물은 오직 일정한 양의 노동[일정한 양의 응고된 노동시간]을 대표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 일정한 시간[또는 날]의 사회적 노동의 물적 형태일 따름이다.
    그 노동이 다름 아닌 방적노동이고, 그 노동의 재료가 면화이고, 그 노동의 생산물이 면사라는 사실은, 노동대상 그 자체가 이미 생산물[따라서 원료]이라는 사실과 꼭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가령 노동자가 방적공장이 아니라 탄광에서 일한다면 노동대상인 석탄은 천연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층에서 채굴해 낸 석탄의 일정량은 일정한 양의 흡수한 노동을 표시할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노동력의 판매를 고찰할 때,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는 3원이고, 이 3원에는 6노동시간이 대상화되어 있으며, 이 노동량은 노동자의 매일 평균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제 만약 우리의 방적공이 1노동시간에 1과2/3파운드의 면화를 1과2/3파운드의 면사(주석 13: 이곳의 숫자는 모두 임의로 가정한 것이다.)로 전환시킨다고 가정하면, 6시간에는 10파운드의 면화를 10파운드의 면사로 전환시킬 것이다. 즉, 방적과정에서 면화는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6노동시간은 3원의 금량으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이 면화에는 방적노동 그 자체에 의해 3원의 가치가 첨가된다.
    이제 생산물인 10파운드의 면사의 총가치를 검토해 보자. 10파운드의 면사에는 2와1/2노동일이 대상화되어 있다. 이 중 2일분의 노동은 소비된 면화량과 방추량에 포함되어 있었고, 1/2일분의 노동은 방적과정 중에 흡수되었다. 2와1/2노동일은 15원의 가치의 금량(金量)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 10파운드의 면사의 가격은 15원이고 1파운드의 면사의 가격은 1.5원이다.
    우리의 자본가는 깜짝 놀란다. 생산물의 가치가 투하된 자본의 가치와 똑같다. 투하된 가치는 증식(增殖)되지 않았고, 잉여가치(剩餘價値)를 생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화폐는 자본(資本)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10파운드의 면사의 가격은 15원인데, 상품시장에서 15원이 이 생산물의 형성요소들
    [또는 같은 말이지만 노동과정의 요소들]에 지출되었던 것이다. 즉, 10원은 면화에, 2원은 방추에, 그리고 3원은 노동력에 지출되었던 것이다. 면사의 가치가 이들 각각보다 크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면사의 가치는 이전에 면화와 방추와 노동력 사이에 분산되어 있던 가치의 합계(合計)에 불과하며, 이와 같이 기존의 가치를 단순히 합계하는 것으로부터는 결코 잉여가치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주석 14: 이것은 [비농업노동은 모두 비생산적이라는] 중농주의의 기초로 되고 있는 근본명제인데, 전문적인 경제학자들도 이 명제를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딴 하나의 물건에 몇 개의 다른 물건의 가치를 가산(加算)한다"(예컨대 아마에 직포공의 생활비를 가산한다)"고 하는 방식, 즉 이를테면 각종 가치를 단 하나의 가치에 층층이 쌓아 올려 가는 방식은 그 하나의 가치를 그만큼 증대시킨다.....‘가산한다'는 용어는 제조품의 가격이 형성되는 방식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가격은 소비된 몇 개의 가치의 총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산은 증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메르시 드 라 리비에르[Mercier de la Riviere], ?정치사회의 자연적 및 본질적 질서?, p. 599).) 이제는 이 모든 가치들이 하나의 물건에 집중되어 있지만, 15원이라는 화폐액도 세 가지의 상품구매로 분열되기 전에는 역시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결과는 그 자체로서는 기이한 것이 아니다. 1파운드의 면사의 가치는 1.5원이므로 10파운드의 면사를 사자면 우리의 자본가는 상품 시장에서 15원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자본가가 자기 집을 이미 지어져 있는 채로 시장에서 사든 또는 자신을 위해 그것을 새로 짓게 하든, 어느 경우에도 집의 취득에 투하된 화폐액은 증식되지 않을 것이다.
    속류경제학(俗流經濟學: vulgar economics)에 정통하고 있는 자본가는 아마 말할 것이다. "나는 나의 화폐를 더 많은 화폐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투하했던 것이다"라고. 지옥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 선량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듯이, 그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돈벌이를 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주석 15: 예컨대 1844-1847년에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자본의 일부를 생산적인 사업에서 때내어 철도주식에 투기했다가 다 잃어버렸다. 또 미국의 남북전쟁 시대에는 그들은 공장을 폐쇄하고 공장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리퍼플의 면화거래소에서 투기를 했다.) 그는 위협적으로 말한다. 두 번 다시는 이와 같이 속지 않겠다고. 앞으로는 자신이 직접 상품을 제조하지 않고 시장에서 기성품을 사겠다고. 그러나 만약 그의 동료 자본가들이
    모두 그렇게 한다면 그는 어느 시장에서 상품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화폐를 먹을 수는 없다. 그는 호소한다. "나의 절제(節制:abstinence)를 고려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15원을 아무렇게나 써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생산적으로 소비해 그것으로 면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옳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대가로 이제는 나쁜 양심 대신 좋은 면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폐퇴장자가 한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에게 결코 좋은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금욕(禁欲)이 초래하는 나쁜 영향을 화폐퇴장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바이다. 더구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는 황제도 그 권력을 상실하는 법이다. 그의 금욕의 장점이 무엇이든, 생산과정에서 나온 생산물의 가치는 이 과정에 투입된 상품가치의 총액과 같을 뿐이기 때문에, 그의 금욕을 특별히 보상해 줄 만한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덕행(德行: virtue)의 보수는 덕행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자본가는 더욱 집요하게 주장한다. "면사는 나에게는 쓸모가 없다. 나는 그것을 판매하기 위해 생산했던 것이다"라고.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팔면 될 것이다. 또는 더욱 간단하게,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만을 생산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자본가의 가족의사 매컬록(MacCulloch)이 과잉생산(過剩生産: over-production)이라는 유행병에 대한 특효약으로 그에게 써주었던 처방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아직도 완강하게 주장한다. "과연 노동자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자기의 손발만으로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가? 내가 노동자에게 재료를 대주었기 때문에 노동자는 그것을 가지고 그것에다가 자기의 노동을 대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또한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빈털털이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생산수단, 나의 면화와 나의 방추로 사회를 위해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봉사를 하지 않았던가. 또한 내가 노동자들에게 생활수단까지도 공급해 주면서 봉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나는 이 모든 봉사에 대해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그러나 노동자도 또한 그를 위해 면화와 방추를 면사로 전환시킴으로써 답례를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봉사(奉仕)가아니다.(주석 16: "자랑하고 치장하고 꾸며도 좋다....그러나 준 것보다도 많이 또는 더 좋은 것을 취하는 사람은 고리대업자(高利貸業者)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이웃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서, 강도나 절도와 마찬가지다. 이웃사람에 대한 봉사와 선행이 모두 봉사와 선행은 아니다. 왜냐하면, 간통하는 남녀도 서로에게는 커다란 봉사와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마부도 강도가 길가에서 약탈하고 라와 국민들을 습격하는 것을 방조함으로써 강도에게 크게 봉사한다. 교황예찬가들도 모든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이거나 불태워 죽이거나 학살하거나 옥 사하게 하지 않고 그래도 몇 사람은 살려주고 추방하거나 소유물만 빼앗음으로써 우리에게 크 게 봉사하고 있다. 악마까지도 자기에게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큰 봉사를 한다...요컨대 이 세상에는 커다란, 훌륭한, 일상적인 봉사와 선행으로 가득 차 있다"(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목사 여러분께, 고리대에 반대해 설교할 것?, 비텐베르크, 1540년).) 봉사(service)라는 것은 상품에 의한 봉사건 노동에 의한 봉사건 어떤 사용가치의 유용한 효과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주석 17: 나는 이 점에 대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 37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봉사'라는 범주가 세이(J.b. Say)나 바스티아(F. Bastiat)와 같은 종류의 경제학자들에게 어떤 '봉사'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환가치(交換價値)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3원의 가치(價値)를 지불했다. 노동자는 그에게 면화에 첨가된 3원의 가치로 정확한 등가(等價)를, 즉 가치에 대해 가치를 반환했다. 지금까지 그처럼 자본을 가지고 뽐내던 우리의 친구는 이제 갑자기 [그가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처럼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말한다. "나 자신도 노동하지 않았는가? 방적공을 감시하는 노동을, 총감독이라는 노동을 하지 않았는가? 나의 이러한 노동도 역시 가치를 형성하지 않는가?"라고. 그가 고용하고 있는 감독과 관리인은 어이없다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자본가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본래의 표정을 되살린다. 그가 지금까지 장황하게 말한 것은 모두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었다. 그 자신도 그런 말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따위 핑계와 속임수는 고용된 경제학 교수들에게 맡겨두고 있다. 그 자신은 실무적인 사람이므로 사업 이외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반드시 깊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업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잘 알고 있다.
    좀더 상세하게 이 문제를 고찰해 보자.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는 3원이었는데, 그 이유는 노동력 그 자체에는 1/2노동일이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의 생산을 위해 매일 요구되는 생활수단은 1/2노동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력에 포함되고 있는] 과거의 노동과 [노동력이 제공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노동(living labour)은, 다시 말해 노동력의 매일의 유지비와 노동력의 매일의 지출은 그 크기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양이다. 전자는 노동력의 교환가치(交煥價値)를 규정하며, 후자는 노동력의 사용가치(使用價値)를 형성한다.
    노동자의 생명을 24시간 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1/2노동일이 필요하다는 사정은 결코 노동자가 하루종일 노동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는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할 때 이미 가치의 이와 같은 차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면사 또는 장화를 제조한다는 노동력의 유용한 성질은 자본가에게는 하나의 불가결한 조건일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가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유용한 형태로 지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상품의 독특한 사용가치[즉, 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였다. 이것이야말로 자본가가 노동력으로부터 기대하는 독특한 봉사며, 그는 노동자와의 거래에서 상품교환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사실상 노동력의 판매자는 [다른 모든 상품의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실현(實現)하면서 그 사용가치를 양도(讓渡)한다. 그는 사용가치를 내어주지 않고서는 교환가치를 받을 수 없다. 노동력의 사용가치[즉, 노동 그 자체]는, 판매된 기름의 사용가치가 기름장수에게 속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판매자에게 속하지 않는다. 화폐소유자는 이미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를 지불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하루의 사용[즉, 하루의 노동]은 그에게 속한다. 노동력은 하루종일 활동하고 노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을 하루동안 유지하는 데는 1/2노동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정, 따라서 노동력의 하루의 사용에 의해 창조되는 가치가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의 2배가 된다는 사정은, 구매자에게는 물론 특별한 행운이기는 하지만, 결코 판매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본가는 이 사정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쾌활하게 웃은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작업장에서 6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의 노동에 필요한 생산수단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10파운드의 면화가 6노동시간을 흡수해 10파운드의 면사로 전환된다면, 20파운드의 면화는 12노동시간을 흡수해 20파운드의 면사로 전환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연장된 노동과정의 생산물을 고찰해 보자. 이 20파운드의 면사에는 이제 5노동일이 대상화되어 있다. 즉, 4노동일은 소비
    된 면화량과 방추량에 대상화되어 있었던 것이고, 1노동일은 방적과정 중에 면화에 의해 흡수된 것이다. 그런데 5노동일의 화폐적 표현은 30원이다. 따라서 이것은 20파운드 면사의 가격이며, 1파운드 면사의 가치는 전과 같이 1.5원이다. 그러나 방적과정에 투입된 상품들의 가치총액은 27원이고, 면사의 가치는 30원이다. 생산물의 가치는 그 생산에 투하된 가치보다 1/9만큼 증가했다. 그리하여 27원은 30원으로 되었으며 3원의 잉여가치(剩餘價値)를 낳았다. 요술은 드디어 성공했다.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된 것이다.
    문제의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으며 상품교환의 법은 조금도 침해되지 않았다. 등가물이 등가물과 교환되었다. 자본가는 구매자로서 어느 상품(면화 . 방추 . 노동력)에 대해서도 그 가치대로 지불했다. 그 다음 그는 다른 모든 상품의 구매자가 하는 일을 했다. 즉, 그는 그 상품들의 사용가치를 소비했다. 노동력의 소비과정은 동시에 상품의 생산과정이기도 한데, 30원의 가치가 있는 20파운드의 면사라는 생산물을 생산했다. 여기에서 자본가는 시장으로 되돌아가는데, 전에는 상품을 구매했지만 이번에는 상품을 판매한다. 그는 면사를 1파운드당 1.5원에, 즉 그 가치대로 판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에 유통에 던져 넣었던 것보다 3원이나 더 많이 유통으로부터 끌어낸다. 그의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이 전체 과정은 유통영역의 내부에서도 수행되고 또한 그 외부에서도 수행된다. 그것은 유통을 매개로 수행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품시장에서 노동력의 구매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통영역의 외부에서 수행된다고 달하는 이유는, 유통은 [생산분야에서만 이루어지는] 가치증식 과정을 준비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선의 세계에서는 만사가 최선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화폐를 [새로운 생산물을 형성하는 요소 또는 노동과정의 요소로 역할하는] 상품들로 전환시킴으로써, 그리고 죽은 물체에 살아 있는 노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가치[즉, 이미 대상화된 죽은 형태의 과거 노동]를 자본[즉, 자기 자신의 증식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가치, '가슴속에 사랑의 정열로 꽉 차서' 일하기 시작하는 활기 띤 괴물]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제 가치창조과정(역자 주: 가치형성과정은 생산수단의 가치가 생산물의 가치로 '이전'되는 과정과 노동력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과 가치증식과정을 비교해 보면, 가치증식과정은 일정한 점 이상으로 연장된 가치창조과정(價値創造過程)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판명된다. 만약 그 과정이 자본에 의해 지불된 노동력의 가치가 새로운 등가물에 의해 보상되는 점까지밖에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가치창조과정에 불과할 것이고, 만약 그 과정이 이 점을 넘어 계속된다면 가치증식과정으로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가치형성과정을 노동과정과 비교해 보면, 노동과정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유용노동(有用勞動)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생산의 운동은 질적으로-생산물의 종류, 그리고 생산과정의 목적과 내용에 따라-고찰된다. 가치형성과정에서는 이 동일한 노동과정이 오직 양적 측면에서 고찰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의 작업시간, 즉 노동력이 유용하게 지출되는 계속시간(繼續時間)뿐이다. 여기에서는 노동과정에 들어가는 상품들은 더 이상[노동력이 일정한 목적에 따라 가공하는]물적 요소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직 대상화된 노동의 일정량으로 간주될 뿐이다. 생산수단에 들어 있는 것이거나 노동력에 의해 첨가되는 것이거나를 막론하고, 노동은 오직 계속시간에 의해 계산될 뿐이다. 그것은 몇 시간 또는 며칠 등으로 계산된다.
    사용가치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인 한에서만 계산에 들어간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노동력은 반드시 정상적인 조건하에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방적업에서 자동 뮬(mule)이라는 방적기계가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생산수단으로 되어 있다면, 노동자로 하여금 물레를 잡고 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정상적인 품질의 면화 대신 자꾸만 끊어지는 부스러기 솜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1파운드의 면사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더 들어가는 초과시간(超過時間)은 가치 또는 화폐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의 대상적 요소들이 정상적인 것인가 아닌가는 노동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본가에게 달려 있다. 또 하나의 조건은, 노동력 자체가 평균적인 능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력은 [그것이 사용되는 부문을 지배하는] 평균수준의 기능과 숙련과 민첩성을 보유하지 않
    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의 자본가는 노동시장에서 이와 같은 정상적인 질의 노동력을 구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노동력은 평균수준의 긴장도와 강도로 지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잠시라도 노동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감시한다. 그는 노동력을 일정한 기간 구매했으므로, 자기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그는 도둑맞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끝으로-그리고 이 점에 대해 자본가는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형법(刑法)을 가지고 있다-원료와 노동수단의 낭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낭비는 대상화된 노동의 쓸모없는 지출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것은 생산물에 들어가지 않으며, 생산물의 가치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주석 18: 이것은 노예제에 의거한 생산을 더욱 비싸게 하는 이유의 하나이다. 노예제도하에서 노동자는 [고대인의 적절한 표현에 의하면] 말하는 도구이며, 반(半)정도 말하는 도구인 동물 및 말을 못하는 도구인 죽은 노동도구들과 구별된다. 그러나 노예 자신은 동물과 노동도구를 사용할 때 자기가 그것들의 동류(同類)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것을 그것들이 느끼도록 만든다. 그는 동물을 학대하며 또 열정을 가지고 노동도구를 못쓰게 만듦으로써 자기가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생산양식에서는 가장 조잡하고 가장 육중한 노동도구[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무디기 때문에 못쓰게 만들기도 어려운 노동도구]만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원칙으로 되고 있다. 남북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멕시코만(灣)에 인접한 노예주에서는 [고랑을 만들 수는 없고 멧돼지나 두더지 모양으로 땅을 파헤치는] 고대 중국식의 쟁기만이 발견되고 있다(케언즈[J, E. Cairnes], ?노예력?, 런던, 1862년, p.46 이하 참조). 옴스테드 (Olmsted)는 자기의 저서 ?연안 노예주?(pp.46-47)에서 특히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본 도구들은, 말하자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기가 임금을 지불하 는 노동자를 이처럼 괴롭히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의 것들이다. 그 도구들은 엄청나게 무겁고 무딘 것이므로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도구에 비하면 적어도 10%이상 일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도 확신하게 되었지만, 노예들이 도구를 주의하지 않고 거칠게 취급하는 조건하에서는 더 가볍고 정교한 도구를 노예들에게 제공하더라도 이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노동자들에게 늘 주고 있는[또 그것을 줌으로써 우리가 이득을 보는] 그러한 도구는 버지니아주의 옥수수밭에서는 [그 토지가 우리나라 밭에 비해 그 흙이 더 부드럽고 돌도 적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하루도 견뎌 내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째서 농장에서는 말 대신 일반적으로 노새가 사용되고 있는가 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 첫째의 그리고 분명히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말은 노예들의 취급에 견디지 못해 금방 절름발이가 되던가 병신이 되는데 노새는 매질에도 견뎌 내고 가끔 한두 끼 굶겨도 그 때문에 치명적인 해는 입지 않으며, 또 비록 돌보는 것을 좀 소홀히 하거나 좀 지나치게 부리더라도 감기가 들거나 병이 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방의 창문가에 서 있으면 가축을 학대하는 모습을 거의 언제나 보게 되는데, 북부지방의 농장주라면 어느 누구라도 당장 이러한 마부를 해고시켜 버렸을 것이다. ")
    상품의 분석을 통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는데, 이제 이 차이가 생산과정의 두 측면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란 면에서 보면, 생산과정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통일이란 면에서 보면, 생산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며 상품생산의 자본주의적 형태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자본가가 취득하는 노동이 사회적 평균 수준의 단순한 노동인가 아니면 더 복잡한 노동인가는 가치증식과정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 평균노동보다 고도의, 복잡한 노동은 [단순한 미숙련 노동력보다 많은 양성비가 소요되며 그것의 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드는] 노동력의 지출이다. 이러한 노동력은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고급 노동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동일한 시간 안에 상대적으로 더 큰 가치로 대상화된다. 그러나 방적노동과 보석세공노동 사이의 숙련 차이가 어떻든, [보석세공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보상할 뿐인] 노동부분은 그가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추가적 노동부분과 질적으로는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다. 방적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석세공에서도, 잉여가치는 오직 노동의 양적 초과(量的 超過)에 의해서만, 하나의 동일한 노동과정(한 경우에는 면사를 만들고 다른 경우에는 보석을 만든다)의 시간적 연장(時間的 延長)에 의해서만 생긴다. (주석 19: 고급 노동과 단순한 노동, '숙련노동'과 '미숙련노동'의 구분은 부분적으로는 단순한 환상에 근거한 것이거나, 적어도 [이미 오래 전부터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다만 전통적인 관습 가운데만 존속할 뿐인] 구분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노동자계급 중 어떤 계층의 절망적인 상태[즉, 이 계층은 빠른 계층과 달리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제대로 받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우연적인 사정들이 대단히 큰 역할을 함으로써 두 형태의 노동이 그 지위를 뒤바꾸는 경우까지 생긴다. 예를 들면, 노동자계급의 체력이 약해져 상대적으로 기진맥진한 곳[자본주의적 생산이 발달한 모든 나라에서 그러하다]에서는, 근육의 힘이 더 요구되는 낮은 형태의 노동이 그보다 훨씬 더 정밀한 노동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높은 형태의 노동으로 간주되며, 더 정밀한 노동은 단순노동의 등급으로 떨어지게 된다. 예컨데 영국에서는 벽돌공의 노동이 비단직공의 노동보다 훨씬 더 높은 등급이다. 다른 한편, 면 빌로도 전모공(剪毛工:fustian-cutter)의 노동은 [비록 고도의 육체적 긴장을 요하고 매우 비위생적임에도 불구하고] 단순노동으로 취급된다. 더욱이 이른바 '숙련노동'이 일국의 노동 가운데서 양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랑(S. Laing)의 계산에 의하면, 잉글랜
    드(및 웨일즈)에서 1,100만 명의 사람들이 단순노동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저서가 발간된 당 시의 총인구 1,800만 중에서 100만의 상류계급과 150만의 극빈자. 부랑자 . 범죄자 . 매춘부. 그 리고 465만의 중간계급을 빼면, 위에 말한 1,100만이 남는다. 그러나 그는 중간계급에 소(小)금 리생활자 . 관리 .작가 . 예술가 . 학교 교사 등을 포함시키고 있으며, 그 숫자를 증대시키기 위해 '공장노동자' 중 고액임금 취득자도 이 465만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리하여 벽돌공까지도 중간계급의 '고급노동자'로 되어 있다(랑[S. Laing], ?국민적 빈곤?, 1844년, pp. 49-52).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보통의 노동 이외에는 제공할 것이 없는 큰 계급이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 다"(J. 밀, “식민지” 의 항목,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부록?, 1831년).)
    다른 한편, 어떤 가치형성과정에서도 고급 노동이 항상 사회적 평균노동으로 환원되는 것, 예컨데 하루의 고급 노동이 X일의 사회적 평균노동으로 환원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주석 20: "가치의 척도인 노동에 대해 말하는 경우,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특수한 종류의 노동을 의미한 다....그 노동에 대한 다른 종류의 노동의 비율은 쉽게 확정할 수 있다"(캐즈노브[J. Cazenove)] ?정치경제학개론?, 런던, 1832년, pp. 22 - 23).) 따라서 우리는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는 단순한 사회적 평균노동을 수행한다는 가정에 의해 불필요한 조작을 생략하고 분석(分析)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제 8 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노동과정의 여러 가지 요소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생산물의 가치형성에 참가한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구체적 내용과 목적과 기술적 성격 여하를 막론하고 노동대상에 일정한 양의 노동을 지출함으로써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첨가한다. 다른 한편,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는 보존되어 생산물 가치의 구성부분으로 다시 나타난다. 예컨대 면화와 방추의 가치는 면사의 가치에 재현된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물에 이전됨으로써 보존된다. 이러한 이전은 생산수단이 생산물로 전환되는 동안, 즉 노동과정 중에 일어난다. 그것은 노동에 의해 매개된다. 그러면 어
    떻게?
    노동자는 동일한 시간에 이중으로 노동하는 것은 아니다. 즉, 한편으로 면화에 새로운 가치를 첨가하기 위해 노동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또는 같은 말이지만, 자기가 가공하는 면화의 가치나 자기의 노동수단인 방추의 가치를 생산물인 면사로 이전시키기 위해] 노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새로운 가치를 첨가하는 바로 그 행위에 의해 종전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가치를 노동대상에 첨가하는 것과 종전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은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시간에 동시적으로 수행한} 전혀 다른 두 개의 결과이므로, 이와 같은 결과의 이중성(二重性)은 분명히 그의 노동의 이중성에 의해 설명될 수밖에 없다. 즉, 그의 노동은 한 쪽의 속성을 통해 가치를 창조(創造)하고, 다른 쪽의 속성을 통해 가치를 보존(保存) 또는 이전(移轉)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각 노동자는 새로운 노동시간[따라서 새로운 가치]을 첨가하는가? 그는 언제나 자기의 독특한 방식으로 생산적 노동을 함으로써 그렇게 할 따름이다. 방적공은 오직 실을 뽑음으로써만, 직포공은 오직 천을 짬으로써만, 대장장이는 쇠를 단련함으로써만 그렇게 한다. 비록 이러한 작업이 노동 일반[그리하여 새로운 가치]을 첨가한다고 하더라도, 합목적적인 노동[예컨대 방적 . 방직 . 단야(鍛冶)]에 의해서만 생산수단(면화와 방추, 면사와 직기, 쇠와 모루)은 생산물[새로운 사용가치]의 형성요소로 된다. 생산수단의 사용가치의 원래의 형태는 소멸되지만, 그것은 오직 새로운 사용가치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 위해 소멸될 뿐이다.(주석 1: “노동은 그것에 의해 소멸된 창조물 대신 새로운 창조물을 준다.” (“국민의 경제학에 관한 논문?, 런던, 1821년, p. 13).) 그런데 가치형성과정을 고찰할 때 본 바와 같이, 어떤 사용가치가 새로운 사용가치의 생산을 위해 합목적적으로 소비되는 한, 그 소비된 사용가치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시간은 새로운 사용가치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일부로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소비된 생산수단으로부터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되는 노동시간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즉, 그것을 생산물의 가치성분으로 생산물로 이전하는]은 노동자가 노동일반(勞動一般)을 첨가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첨가되는 노동의 특수한 유용성(有用性), 그것의 특수한 생산적 형태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합목적적 생산활동(방적 . 방직 . 단야)으로서의 노동은 그 손이 한 번 닿기만 함으로써 생산수단을 죽음으로부터 소생시키고, 그것에 활기를 불어넣어 노동과정의 요소들로 전환시키며, 그것들과 결합해서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가 수행하는 특수한 생산적 노동이 방적이 아니라면 그는 면화를 면사로 전환시키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면화나 방추의 가치를 면사로 이전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자가 직업을 바꾸어 목공이 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루의 노동을 통해 그의 재료에 가치를 첨가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자기의 노동에 의해 가치를 첨가하는 것은, 그의 노동이 방적노동이나 목공노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일반,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이기 때문이며, 또 그가 일정한 가치량을 첨가하는 것은 그의 노동이 어떤 특수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일정한 시간 계속되기 때문이다. 즉, 방적공의 노동은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라는 그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성질에
    의해 면화나 방추의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첨가하며, 방적노동이라는 그 구체적이고 유용한 성질에 의해 생산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하며 그 가치를 생산물 속에 보존한다. 이로부터 동일한 시간 안에 노동의 이중의 결과가 생긴다.
    노동의 단순한 앙적(量的) 첨가에 의해 새로운 가치가 첨가되며, 첨가되는 노동의 질(質)에 의해 생산수단의 원래의 가치가 생산물에 보존된다. 노동의 이중성(二重性)으로부터 생기는 이러한 이중의 효과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명백히 나타난다.
    어떤 발명에 의해 방적공이 이전에는 36시간 걸려 방적하던 면화량을 이제는 6시간에 방적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의 노동은 합목적적인 유용한 생산활동으로서는 그 힘이 6배로 증가되었다. 6노동시간의 생산물은 이전의 6배[즉, 6파운드가 아니라 36파운드]로 되었다. 그러나 36파운드의 면화는 이전에 6파운드의 면화가 흡수하던 것과 같은 노동량을 흡수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1파운드의 면화에는 이전의 방법에 비해 다만 1/6의 새로운 노동이, 따라서 이전에 첨가되던 가치의 1/6만이 첨가된다. 다른 한편, 이제 생산물인 36파운드의 면사에는 이전에 비해 6배의 면화가치가 들어 있다. 6시간의 방적에서 이전의 6배의 원료가치가 보존되어 생산물로 이전된다. 물론 이때 각 1파운드의 원료에는 이전의 1/6의 새로운 가치가 첨가되지만. 이것은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과정에서 노동이 가치를 보존한다는 속성과 가치를 창조한다는 속성이 얼마나 본질적으로 다른가를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양의 면화를 면사로 방적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수록 면화에 첨가되는 새로운 가치는 그만큼 더 크고, 동일한 노동시간에 방적되는 면화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생산물로 이전되어 보존되는 가치는 그만큼 더 크다.
    반대로 방적노동의 생산성(生産性)이 변하지 않고, 따라서 방적공이 1파운드의 면화를 면사로 전환시키는 데 여전히 동일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면화 그 자체의 교환가치는 변해
    1파운드의 면화가격이 6배로 올랐거나 1/6로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그 어느 경우에도 방적공은 여전히 동일한 양(量)의 면화에 동일한 노동량(勞動量), 즉 동일한 가치(價値)를 첨가할 것이며, 또 어느 경우에나 그는 동일한 시간에 여전히 동일한 양의 면사를 생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면화로부터 면사라는 생산물로 이전하는 가치는 종전에 비해 한 경우에는 6배로 되며 다른 경우에는 1/6로 된다. 노동수단의 유용성이 노동과정에서 변하지 않은 채, 노동수단의 가치가 증감하는 경우에도, 위와 동일한 결과가 생긴다.
    만약 방적과정의 기술적 조건들이 변하지 않고, 또 그 생산수단의 가치에도 아무런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방적공은 여전히 동일한 노동시간에 동일한 양의 원료와 [이것들의 가치는 불변]를 소비할 것이다. 그가 생산물 가운데 보존하는 가치는 그가 첨가하는 새로운 가치에 정비례한다. 2주 동안에는 그는 1주 동안에 비해 2배의 노동[즉, 2배의 가치]을 첨가하며, 또 그와 동시에 2배의 가치를 갖는 2배의 원료를 소비하고, 2배의 가치를 갖는 2배의 기계를 소모하며, 그리하여 그는 2주의 생산물에 [1주의 생산물에 보존하는] 가치의 2배를 보존한다. 주어진 불변의 생산조건 하에서는 노동과가 더 많은 가치를 첨가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가치를 이전시켜 보존한다. 그러나 그가 더 많은 가치를 보존하는 것은 그가 새로운 가치를 첨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새로운 가치의 첨가가 [그 자신의 노동과는 독립적인] 불변의 생산조건(生産條件) 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 의미에서는, 노동자는 언제나 새로운 가치의 첨가량에 비례해 종전의 가치를 보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면화가 1원에서 2원으로 오르든 또는 0.5원으로 떨어지든 노동자가 1시간의 생산물 가운데 보존하는 면화가치는 언제나 그가 2시간의 생산물 가운데 보존하는 가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만약 노동자 자신의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이 향상되던가 저하한다면, 그는 한 시간에 이전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은 면화를 방적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1노동시간의 생산물 가운데 보존하는 면화의 가치는 이전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2노동시간에는 1노동시간에 비해 2배의 가치를 보존할 것이다.
    가치는 [보조화폐에서 볼 수 있는 가치의 순전히 상징적인 표현을 도외시한다면] 사용가치로서의 물건 속에만 존재한다. (인간 자신도 노동력의 인격화(人格化)로서만 고찰한다면 하나의 자연물[비록 살아있고 의식있는 물건이지만]이고, 노동 그 자체는 노동력의 육체적 발현이다.) 그러므로 어떤 물건이 그 사용가치를 잃어버리면 그것의 가치도 또한 잃어버린다. 그러나 생산수단은 그 사용가치를 상실함과 동시에 그 가치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은 노동과정에서
    그 사용가치의 본래의 형태를 상실하고 생산물에서 새로운 사용가치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가치에 대해서는 [자기가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사용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떤 사용가치 속에 존재하는가는 [상품의 변태에서 본 바와 같이] 아무래도 좋다. 이로부터 명백해지듯이, 노동과정에서 생산수단의 가치가 생산물로 옮겨가는 것은 생산수단이 자기의 독자적인 사용가치(使用價値)와 함께 자기의 교환가치(交換價値)까지도 상실하는 한에서다. 생산수단은 생산수단으
    로서 잃어버리는 가치만을 생산물로 넘겨준다. 그러나 노동과정의 여러 물질적 요소들은 이 점에서 동일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보일러를 가열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석탄은 바퀴의 축에 바르는 기름 등과 마찬가지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 염료나 기타 보조재료들도 사라져 버리기는 하지만 생산물의 속성으로 다시 나타난다. 원료는 생산물의 실체를 형성하지만 그 형태는 변한다. 따라서 원료와 보조재료는 사용가치로서 노동과정에 들어갈 당시의 독자적인 모습을 잃어버린다. 진정한 노동수단은 이와는 다르다. 도구 . 기계 . 공장건물 . 용기 등이 노동과정에서 유용한 것은 그것들이 자기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해 매일 똑같은 형태로 다시 노동과정에 들어갈 수 있을 동안 만이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동안 [즉, 노동과정에 있을 동안] 생산물에 대해 자기의 독자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뒤에도 역시 그 모습을 유지한다. 기계나 도구나 작업용 건물 등의 잔해는 [그것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생산물과는 별개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제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노동수단이 [작업장에 들어간 날부터 폐물창고로 추방되는 날까지] 생산에 이바지한 기간 전체를 고찰한다면, 이
    기간 중 그 사용가치는 완전히 소비되었고 따라서 그 교환가치는 완전히 생산물로 이전된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어떤 방적기계가 10년이 되어 그 수명이 다했다면 그 기계의 총가치는 10년간의 노동과정에서 10년간의 생산물로 넘어간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노동수단의 생존기간은 몇 회 반복되는 노동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노동수단도 인간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겪는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 24시간씩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 물론 사람을 쳐다보아 그가 얼마나 더 오래 살 것인가를 정
    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러한 곤란도 생명보험회사가 평균의 이론에 의거해 인간의 수명에 관한 아주 확실하고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노동수단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류의 기계가 평균적으로 얼마 동안 존속할 수 있는가는 경험상 알려져 있다. 노동과정에서 기계의 사용가치가 겨우 6일 동안만 유지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기계는 평균해서 1노동일마다 그 사용가치의 1/6씩을 잃어가며, 따라서 그날그날의 생산물에 그 가치의 1/6을 넘겨주게 된다. 모든 노동수단의 마멸, 사용가치의 매일매일의 상실과 이에 따른 생산물로의 매일매일의 가치이전(價値移轉)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된다.
    이로부터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생산수단은 노동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사용가치의 소멸로 말미암아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물에 넘겨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생산수단이 잃어버릴 아무런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다시 말해 생산수단 그 자체가 인간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라면, 그것은 생산물에 아무런 가치도 넘겨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용가치(使用價値)의 형성에는 이바지하지만 교환가치(交煥價値)의 형성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협력 없이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생산수단, 즉 토지. 바람. 물. 광석형태의 금속. 원시림의 나무 등은 모두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여기에서 우리 앞에는 또 하나의 흥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어떤 기계의 가치가 1,000원이고, 그 기계는 1,000일 뒤에 마멸된다 고 가정하자. 이 경우 기계의 가치는 매일 1/1,000씩 생산물로 넘어간다. 그와 동시에 비록 기계의 활동력이 점차 감퇴하기는 하지만 그 기계 전체가 노동과정에서 기능하고 있다. 이로부터 노동과정의 하나의 요소인 어떤 생산수단은 노동과정에는 전체적으로 참가하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부분적으로만 참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 사이의 차이가 여기에서는 객체적 생산요소들에 반영되고 있다. 즉, 동일한 생산과정에서 동일한 생산수단이 노동과정의 요소로서는 전체(全體)로 계산되지만 가치형성의 요소로서는 오직 일부분(-部分)씩만 계산된다.(주석 2: 여기서는 기계. 건물 등과 같은 노동수단의 수리(修理: repair)는 문제로 삼지 않는다. 수리 중의 기계는 노동수단이 아니라 노동재료다. 즉, 그것을 써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노동이 첨가되어 그 사용가치가 회복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와 같은 수리노동은 그 노동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본문에서 문제로 삼는 것은, 어떤 의사도 치료할 수 없는, 점차로 사망에 이르는 마멸이며, "그때그때의 수리로는 회복할 수 없는 종류의 마멸이며, 칼을 예로 든다면, 칼 수리공이 새로 날을 세울 가치가 없다고 말할 정도의 상태에 이르는 그러한 종류의 마멸"이다. 본문에서 본 바와 같이, 기계는 모든 노동과정에는 전체적으로 참가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가치형성과정에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참가한다. 우리는 다음의 문장에 나타난 개념의 혼동을 잘 알 수 있다. "리카도씨는 양말제조기를 제작할 때 첨가된 기계제작공의 노동의 일부가 예컨대 한 켤레의 양말의 가치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한 켤레의 양말을 생산한 총노동에는....기계제작공의 노동의 일부가 아니고 그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 대의 기계는 틀림없이 여러 켤레의 양말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그 양말들 중 어 한 켤레도 기계 전체의 참가없이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의 용어논쟁에 관한 고찰, 특히 가치 및 수요공급에 관해?, 런던, 1821년, p. 54). 유별나게 자부심이 강하고 아는 체하는 이 저자가 자기의 혼동과 문제제기로부터 면책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은, 리카도나 그 전후의 어떤 경제학자도 노동의 두 측면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더욱이 가치형성에서 이 두 측면이 하는 역할를 분석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 문이다.)
    다른 한편, 어떤 생산수단은 노동과정에는 부분적으로 들어가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전체적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가령 면화에서 실을 뽑을 때, 115파운드의 면화에서 매일 15파운드의 낙면(落綿:waste)이 생기며, 이 낙면은 면사로 되지 못하고 오직 솜부스러기로 된다고 가정하자. 만약 이 15파운드의 낙면발생이 방적의 평균적 조건하에서는 정상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라면, 이 15파운드의 면화의 가치도 면사의 실체로 되는 100파운드의 면화의 가치와 꼭 마찬가지로 면사의 가치에 들어간다. 100파운드의 면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15파운드의 면화의 사용가치가 솜부스러기로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면화의 낭비는 면사생산의 하나의 필요조건으로 된다. 바
    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의 가치를 면사로 이전시킨다. 이것은 노동과정의 모든 폐기물(廢棄物)에도 해당한다. 적어도 이 폐기물이 다시 새로운 생산수단으로, 따라서 새로운 독립적인 사용가치로 되지 않는 한. 폐기물의 사용은 맨체스터의 대규모 기계제작 공장에서 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큰 기계에 의해 대패밥 모양으로 깎여진 쇠부스러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고, 저녁때가 되면 그것이 큰 차에 실려 공장에서 제철소로 운반되어 그 다음날 다시 대량의 철로 되어 제철소에서 공장으로 돌아온다.
    생산수단은, 노동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그 원래의 사용가치의 형태 속에 있는 가치를 상실할 때에만, 새로운 생산물로 가치를 이전한다. 생산수단이 노동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가치상실의 최대한도는 분명히 그것이 노동과정에 들어갈 당시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가치량[다시 말해, 그것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그러므로 생산수단은 노동과정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물에 첨가할 수는 결코 없다. 어떤 노동재료. 기계. 생산수단이 아무리 유용하다 하더라도 만약 그 가치가 3,000원[이를테면 500노동일]이라면, 그것은 생산물의 가치에 결코 3,000원 이상을 첨가할 수 없다. 그것의 가치는 [그것이 생산수단으로 들어가는] 노동과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산물로 나온 {이전의} 노동과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노동과정에서는 그것은 오직 사용가치로서, 즉 유용한 속성을 가진 물건으로 역할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것이 이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생산물에 아무런 가치도 넘겨주지 못할 것이다.(주석 3: 이로부터 세이(J. B. Say)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는 잉여가치(이자 . 이윤 . 지대)를 생산수단(토지 . 도구 . 원료)이 노동과정에서 그 사용가치를 통해 수행하는 '생산적 서비스'로부터 도출하려고 한다. 기묘한 변호론적 착상이 날 때마다 발표하는 로셔(William Roscher)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J. B. 세이가 ?정치경제학개론? 제1권 제4장에서, 일체의 비용을 공제한 뒤 정유공장이 생산한 가치는 어쨌든 새로운 가치이고, 정유공장 그 자체를 만들기 위해 수행된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정당하다"(?국민경제학원리?, 제3판, 1858년, p. 82, 주). 매우 정당하다! 정유공장이 생산한 '기름'은 정유공장의 건설에 지출된 노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로셔는 석유가 '천연적으로[비록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긴 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기름'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 '가치'를 '기름'과 같은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석유가 상대적으로 '적은 양으로' '천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자연)은 교환가치를 거의 만들어 내지 않는다"(같은 책, p.79). 로셔가 자연과 교환가치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마치 어리석은 처녀가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는 "아주 조그마한 아이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이 '학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리카도학파는 자본까지도 '축적된 노동'이라고 해서 노동이라는 개념속에 포괄시킨다. 이것은 졸렬하다. 왜냐하면 사실 자본의 소유자는 분명히 그것의 단순한 생산및 보존 이상의 것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자신의 향락을 절제했으며, 그리하여 그는 그 대신 예컨대 이자(利子)를 요구하는 것이다"(같은 책 p. 82). 단순한 '요구'를 '가치'의 원천으로 전환시키는 경제학의 이 '해부생리학적 방법'이야말로 얼마나 '기묘'한가!)
    생산적 노동이 생산수단을 새로운 생산물의 형성요소(形成要素)로 전환시킴으로써 생산수단의 가치는 일종의 윤회(輪廻: metempsychosis)를 겪는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소모된 육체로부터 새로 만들어진 육체로 옮겨간다. 그러나 그 이전은 이를테면 현실적 노동의 배후에서 일어난다. 노동자는 원래의 가치를 보존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노동을 첨가할 수 없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첨가하는 노동은 반드시 특정의 유용한 형태이어야 하며, 생산물들을 새로운
    생산물의 생산수단으로 사용해 그들의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하지 않고서는 유용한 노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를 첨가하면서 가치를 보존한다는 것은 활동중의 노동력[살아 있는 노동]의 자연적 속성이다. 이 자연적 속성은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으나 자본가에게는 현존하는 자본가치의 보존이라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주석 4: "농업의 모든 도구들 중에서 인간의 노동이야말로....농업자가 자기의 자본을 회수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의지하는 것이다. 다른 두 가지 물건-현재 보유하고 있는 역축과....짐수레. 쟁기. 삽 등-은 일정한 양의 인간노동과 결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곡물부족에 관한 의견과 상세한 논의, 1795년 11월 W. 피트에게 제출한 것? , 런던, 1800년. p. 10).) 경기가 좋은 동안에는 자본가는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노동의 이 무상(無償)의 선물을 보지 못하지만, 노동과정의 잠재적인 중단, 즉 공황(恐慌)은 자본가로 하여금 이것을 절실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주석 5: 1862년 11월 26일자 ?더 타임즈?지에는 어떤 공장주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는 자기의 방적공장에 8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매주 평균 150고리짝의 동인도(東印度) 면화나 약 130고리짝의 아메리카 면화를 소비하는 공장주였는데, 그는 자기의 공장이 조업중단으로 입게 되는 간접비용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그는 그 비용을 연간 6,000파운드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생산적 비용 중에는 예컨대 지대. 세금. 지방세. 보험료 그리고 1년 계약으로 고용한 관리인. 경리. 기사 등의 급료 등과 같은, 우리와는 관계없는 수많은 항목들이 들어 있다. 다음으로 때때로 공장을 따뜻하게 하거나 증기기관을 운전하는 데 필요한 석탄이나, 그밖에도 임시노동으로써 기계설비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을 150파운드로 계산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기계설비의 손상이라고 하면서 1,200파운드를 계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후와 자연적인 부식(腐蝕: decay)은 증기기관이 운전을 정지했다고 해서 그 작용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1.200파운드라는 금액은 기계 설비가 벌써 대단히 마멸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처럼 낮게 평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생산수단에서 실제로 소모되는 것은 그 사용가치(使用價値)이고, 이 사용가치의 소비에 의해 노동은 생산물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실상 생산수단의 가치(價値)는 소비되지 않는다.(주석 6: "생산적 소비라는 것은 상품의 소비가 생산과정의 일부로 되는 경우다....이러한 경우 가치의 소비(消費)는 없다"(뉴먼[S. P. Newman], ?정치경제학개요", p. 296).) 따라서 그것이 재생산된 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 가치는 보존된다. 그 가치가 보존되는 것은 노동과정에서 가치 그 자체에 어떤 조작이 가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가치가 원래 그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사용가치가 사라지기[비록 다른 사용가치 속으로이긴 하지만]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再現)되기는 하나, 엄밀히 말해 재생산(再生産)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되는 것은 [원래의 교환가치가 그 속에 재현되는] 새로운 사용가치(使用價値)이다.(주석 7: 아마 20판은 거듭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북아메리카의 어떤 개설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어떤 형태로 자본이 재현(再現)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자기의 가치를 생산물에 재현시키는 모든 가능한 생산요소를 장황하게 열거한 다음,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생존과 안락에 필요한 각종 식료품. 의복. 주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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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
    도서명 : 자본론(상)
    저자명 : 칼 마르크스
    옮긴이 : 김수행
    펴낸이 : 박기봉
    출판사 : 비봉출판사
    출판년도 : 1989년 3월 10일
    봉사자 : 김선형



    1818. 5. 5. 독일의 트리어(Trier) 출생
    1841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점“
    1844 “정치경제학과 철학의 초고”
    1845 “독일 이데올로기”(에겔스와 공저)
    1846-47 “철학의 빈곤”
    1847 “임금노동과 자본”
    1847-48 “공산당선언”(엥겔스와 공저)
    1850 “프랑스의 계급투쟁. 1848-1850”
    1857-58 “정치경제학비판요강”
    1859 “정치경제학비판을 위하여”
    1861-63 “잉여가치학설사”
    1865 “임금, 가격 및 이윤”
    1867 “자본론” 제1권
    1871 “파리콤뮨”
    1871 “프랑스의 내전”
    1875 “고타강령 비판”
    1883. 3. 14. 영국 런던에서 사망.
    1885 “자본론” 제2권
    1894 “자본론” 제3권



    약력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석사
    런던대학교 경제학 석사. 박사
    한신대학교 부교수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저서 “마르크스. 슘페터. 케인즈”(중앙신서, 1984)
    “경제변동론”(비봉출판사, 1986)
    “정치경제학원론”(한길사, 1988)
    “자본론 연구”(한길사, 1988)
    “정치경제학 에세이”(새날, 1991)Q
    “정치경제학 특강”(새날, 1993)
    “21세기 정치경제학”(새날, 1998)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서울대출판부, 2001)
    역서 “국부론”(동아출판사, 1992)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동아출판사, 1993)
    “금융자본”(새날, 1994)







    이번의 개역(改譯)은 책에 있는 한자를 제거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점점 더 독자들이 한자를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비봉출판사의 박기봉 사장은, 우리말은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추상적 개념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자본론” 과 같은 경우에는 한자를 모르면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에서 한자를 제거하는 것에 계속 반대해 왔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이 읽을 수 없다고 불평하는 이 마당에 한자를 고수하는 것은 “자본론” 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리하여 하나의 타협으로 한자를 괄호안에 넣기로 했는데, 어떤 단어는 한자보다는 영어가 더 나을 것 같아 영어도 가끔 넣었다.
    물론 한자를 제거하려면 문장 전체를 우리발로 다시 쓸 필요도 있었다. 또한 번역의 정확성을 점검하기 위해 한글판을 영어판과 다시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번역을 완전히 다시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책의 내용이 더욱 분명하게 되었고, 문장이 더욱 알기 쉽고 읽기 쉽게 되었다.
    또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는 이미 한글판이 나왔으므로, ?자본론?에 인용되고 있는 두 책에 한글판을 사용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사용한 한글판은 김수행 역 ?국부론?(상)(하)(동아출판사, 1992년)과 정윤형 역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비봉출판사, 1991년)이다. 나의 조교인 서울대 대학원의 정혁 군과 오종석 군이 한글판의 쪽수를 찾아내는 작업을 맡아 주었다.
    이전에는 제3권 끝에 색인을 모두 모아 두었는데, 이제는 제1권을 하나의 독립된 책으로 간주해 색인을 하권 끝에 붙였다. 독자들이 관심있는 용어나 단어를 찾아볼 때 언제나 색인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제2차 개역판이 지금과 같은 대혼란기에 나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자본가들을 살리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실직과 임금삭감과 고용불안과 노동3권의 상실과 기아를 경험하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은 자기의 세금이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깨진 독에 물 붙기 식으로 낭비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현실이 자본주의의 비합리성, 잔인성 , 폭력성을 그대로 폭로하기 때문에, ?자본론?을 읽으면 금방 "이 이야기가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
    혁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답의 하나가 분명히 ?자본론?에 숨어 있다. 쉽게 말해, 모든 주민이 부(富)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한다면, ?자본론?은 그런 사회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블황과 공황을 겪으면서 모든 사람들은 '주류경제학'이 엉터리라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된다", "임금을 깎으면 경제가 회복된다", "해고를 자유롭게 하면 경제가 산다", "기업은 가정이고 사용자와 노동자는 한 가족이다", "개인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으로 된다" 등등.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론?을 읽으면 전혀 다른 경제관을 가질 뿐 아니라 참신한 진보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본론?을 번역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불만인 것은, 마르크스는 천지를 진동시킬 이론을 발견하는 데 일생을 보냈는데, 나는 왜 마르크스의 책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데 일생을 보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최근 ?알기쉬운 정치경제학?(서울대 출판부, 2001)을 출판해 현실의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를 분석하는 전반적인 틀을 제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다음 책은 “자본론 해설?과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6년 뒤 정년퇴임하지만, 그 동안이라도 계속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엥겔스가 본문이나 주에 첨가한 부분은 {엥겔스:}로 표시했고, ( )는 원문에 있는 그대로며, 원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 ]로 문장을 잘랐다. 역주는 { } 속에 넣었고, 역주가 긴 경우에는 *로 표시해 그 쪽의 밑에 추가했다.

    2001년 6월 20일
    경제연구소 소장실에서
    김 수 행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죽은 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원고를 편집해 출판했지만, 제1권은 마르크스가 직접 제2판까지 출판한 책이다. 따라서 제1권에는 마르크스의 학문과 인격이 더욱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제1권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계급 관계인 자본과 노동 사이의 적대관계를 직접적으로 해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지위와 상태, 그리고 그들의 투쟁 대상과 투쟁 목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제1권에 전념하게 된다.
    나는 제1권(상)(하)를 1989년 3월 번역출판한 이래 그 번역을 좀더 알기쉽게 표현할 수 없을까 하고 고심해 왔다. 특히 그 초판은 내가 누구에게 읽혀 상의할 겨를도 없이 출판되었으므로 용어와 체제에서 제2권과 제3권의 그것과 조금 상이했다. 그리하여 제3권(상)의 번역출판(1990년 2월) 이후 상대적으로 쉬운 제1권(하)를 개역하기 시작해 1990년 6월에 출판했다. 그리고 제3권(하)의 번역출판(1990년 11월)을 끝마친 이후 제1권(상)의 개역에 착수한 것이다.
    제1권(상)의 번역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은 제1편의 상품과 화폐, 특히 가치분석에는 매우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될수록 풀어 번역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다행히 초판의 경우와는 달리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정치경제학 전공자들이 나의 원고를 자세히 읽어 주었으므로 문체가 더욱 현대적인 우리 글로 되었다.
    이 개역판이 초판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자를 크게 줄였다.
    둘째, 문장은 소설을 읽듯 진행되도록 알기 쉽게 했다.
    셋째, 애매모호한 점은 역자주를 넣으면서 분명하게 했다. 다시 말해, 나의 지식을 동원해 마르 크스의 문장을 나의 식으로 이해했다.
    넷째, 역주는 { } 속에 넣어 작은 글자로 표시하고 역주가 긴 경우에는 *로 표시해 그 쪽 밑에 추가해 두었다.
    이제 ?자본론? 세 권 전체의 번역은 용어와 체제에서 일관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동안 ?자본론?을 구독해 준 독자 여러분, 여러 가지의 개선책을 제시해 준 여러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나의 조교 신현호 군과 신기선 군, 그리고 비봉출판사 편집부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한다.

    1991년 10월 5일
    서울대학교 교수아파트에서
    김 수 행







    1. 번역에는 다음의 책들을 이용했다.
    Penguin Books limited(Ben Fowkes역), Capital, I (1976), ll (1978),
    111(1981).
    Progress Publisher(Moscow)[이것은 뒤에 Lawrence & Wishart(London)에 의해 복사 출판되었다], Capital, I (1954: 1970), II(1956 : 1972), III(1959 :1972).
    대월서점, ?자본론?, 1982.
    조선로동당 출판사, ?맑스 엥겔스 전집?, 제23권(1965), 제24권(1980), 제25권(1984).
    2. ?자본론?의 이론적 토대는 주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현실적 예증은 주로 영국사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영역판이 번역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며, 번역자 자신이 영국에서 10년 이상 살면서 연구했다는 사실도 번역에 큰 도움을 주었다. 따라서 이 번역서의 편 ? 장 ? 절의 구성은 엥겔스가 감수한 영어판에 따랐다. 일본의 대월서점판과 북한판은 내용의 이해와 문장의 구성 및 단어의 선택에서 나의 노력을 크게 경감시켜 주었다. "후발자의 모든 이익"을 누렸음에 거듭 감사를 표시한다.
    3. 이 책을 번역해야지 하면서도 선뜻 착수하지 못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악법 「국가보안법」 때문이었다. 번역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던 중 1988년 9월 「이론과 실천사」의 대표가 ?자본론?의 일부를 번역해 출간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는데, 이것이 또한 나의 작업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1987년 6월의 시민항쟁 이후 학문과 사상의 공간이 점차로 넓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경향의 연장선 위에 이 번역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모든 민주영령과 민주투사 및 양심세력에게 감사를 드린다.
    4. 나는 이 책이 불후의 명작이므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에 모든 정력을 쏟았다. 문장을 알기 쉽게 짧게 쓸 것이며, 관계대명사에 의한 수식구가 문장 전체의 의미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할 것이며, 마르크스의 그 박식(성경 ? 문학 ? 과학 ? 역사 등)에 뒤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역주를 달아야 할 것이데, 마르크스가 잘못 사용한 용어는 앞뒤가 맞게 고쳐야 할 것 등등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쏟았음을 밝혀둔다.
    5. 이 번역에 미쳐 세 아들의 고뇌에 동참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며, 또한 가장을 대신해 성공적으로 가사를 꾸려온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6. 비봉출판사의 박기봉 사장은 역자가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작업의 진행을 독려해 주었고, 거의 매일 역자의 집을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집념이 번역기간을 단축시킨 큰 계기가 되었음을 자인하면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편집부의 모든 분들이 이 일에 정성을 다해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김현미 양의 노고에 더욱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7. 엥겔스가 본문이나 주에 첨가한 부분은 (엥겔스: )로 표시했고, ( )는 원문에 있는 그대로며, 원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 ]로 문장을 잘랐는데 이 때에는 [ ]속의 활자는 본문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역주는 { }속에 넣어 아주 작은 글자로 표시했는데, 역주가 긴 경우에는 *로 해 그 쪽의 밑에 추가해 두었다. 그리고 영국의 화폐단위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으로 고쳤다.
    8. 인명색인과 문헌색인은 각권의 마지막에 붙였으며, 사항색인은 모두를 제3권 말에 붙여 두었다.

    1989년 2월 송파동에서
    김 수 행




    제 I 권 자본의 생산과정 (상)

    목차
    제2차 개역에 부쳐
    제1차 개역에 부쳐
    번역자의 말
    목차
    제1판 서 문
    제2판 후 기
    프랑스어판 서문
    프랑스어판 후기
    제3판 서 문
    영어판 서 문
    제4판 서 문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 품
    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제2절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A.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1. 가치표현의 두 극: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2. 상대적 가치형태
    (a)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b) 상대의 가치형태의 양적 규정성
    3. 등가형태
    4. 단순한 가치형태의 총체
    B.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1.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
    2. 특수한 등가형태
    3.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의 결함

    C. 일반적 가치형태
    1. 가치형태의 변화된 성격
    2.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과 등가형태의 발전 사이의 관계
    3. 일반적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이행
    D. 화폐형태
    제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제2장 교환과정
    제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제1절 가치의 척도
    제2절 유통수단
    (a) 상품의 변태
    (b) 화폐의 유통
    (c) 주화. 가치의 상징
    제3절 화 폐
    (a) 퇴장화폐
    (b) 지불수단
    (c) 세계화폐



    제2편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

    제4장 자본의 일반공식
    제5장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
    제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제1절 노동과정 (또는 사용가치의 생산)
    제2절 가치증식과정
    제8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제9장 잉여가치율
    제1절 노동력의 착취도
    제2절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물의 비례배분적
    부분들로 표시
    제3절 시니어의 '최후의 한 시간'
    제4절 잉여생산물
    제10장 노동일
    제1절 노동일의 한계
    제2절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 공장주와 보야르
    제3절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
    제4절 주간노동과 야간노동. 교대제
    제5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의 노동일의 연장을 위한 강제법
    제6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법률에 의한 노동시간의
    강제적 제한(1833~64년의 영국의 공장법)
    제7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영국의 공장법이
    타국에 준 영향

    제11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2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제13장 협 업
    제14장 분업과 매뉴팩쳐
    제1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원
    제2절 부분노동자와 그의 도구
    제3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본형태: 이질적 매뉴팩쳐와
    유기적 매뉴팩쳐
    제4절 매뉴팩쳐 안의 분업과 사회안의 분업
    제5절 매뉴팩쳐의 자본주의적 성격

    - 이상 제 1 권 (상)-



    제 I 권 자본의 생산과정 (하)

    목차

    제15장 기계와 대공업
    제1절 기계의 발달
    제2절 기계가치가 생산물로 이전
    제3절 기계제 생산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직접적 영향
    제4절 공장
    제5절 노동자와 기계 사이의 투쟁
    제6절 기계에 의해 축출되는 노동자들에 관한 보상이론
    제7절 기계제 생산의 발전에 따른 노동자의 축출과 흡수.
    면공업의 공황
    제8절 대공업이 매뉴팩쳐 .수공업 . 가내공업에 미친
    혁명적 영향
    제9절 공장법의 보건. 교육 조항. 공장법의 일반적 적용
    (영국의 경우)
    제10절 대공업과 농업


    제5편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6장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
    제17장 노동력의 가격 및 잉여가치의 양적 변동
    제1절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강도는 불변인데 노동생산성이
    가변인 경우
    제2절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생산성은 불변인데 노동강도가
    가변인 경우
    제3절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는 불변인데, 노동일의 길이가
    가변인 경우
    제4절 노동의 지속시간, 생산성 및 강도가 동시에 변동하는
    경우
    제18장 잉여가치율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공식


    제6편 임 금

    제19장 노동력의 가치(또는 가격) 가 임금으로 전환
    제20장 시간급제 임금
    제21장 성과급제 임금
    제22장 임금의 국민적 차이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3장 단순재생산
    제24장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환
    제1절 확대된 규모의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이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으로 전환
    제2절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에 관한 경제학상의 잘못된 이해
    제3절 잉여가치가 자본과 소득으로 분할. 절제설
    제4절 잉여가치가 자본과 소득으로 분할되는 비율과는
    관계없이 축적의 규모를 결정하는 사정들. 즉, 노동력의
    착취도, 노동생산성, 사용하는 자본과 소비되는
    자본 사이의 차액의 증대, 투하자본의 크기
    제5절 이른바 노동기금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제1절 자본의 구성이 불변이면, 축적에 따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제2절 축적과 그에 수반하는 집적의 진행과정에서
    가변자본부분의 상대적 감소가 발생한다
    제3절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의 누진적 생산
    제4절 상대적 과잉인구의 상이한 존재형태.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제5절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의 예증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

    제26장 시초축적의 비밀
    제27장 농촌주민으로부터 토지수탈
    제28장 15세기 말 이후 피수탈자에 대한 피의 입법. 임금인하를
    위한 법령들
    제29장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발생
    제30장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영향. 산업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의 조성
    제31장 산업자본가의 발생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제33장 근대적 식민이론

    [인명해설1
    [문학 . 성서 . 신화의 등장인물 해설1
    [참고문헌]
    [색 인]

    -이상 제 I권 (하)-







    제ll권 자본의 유통과정
    목차
    서문

    제 1편 자본의 변태들과 그들의 순환

    제1장 화폐자본의 순환
    제2장 생산자본의 순환
    제3장 상품자본의 순환
    제4장 순환의 세 가지 형태
    제5장 유통시간
    제6장 유통비용


    제2편 자본의 회전

    제7장 회전시간과 회전수
    제8장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제9장 투하자본의 총회전. 회전의 순환
    제10장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에 관한 학설.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
    제11장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에 관한 학설. 리카도
    제12장 노동시간
    제13장 생산시간
    제14장 유통시간
    제15장 회전시간이 투하자본의 크기에 미치는 영향
    제16장 가변자본의 회전
    제17장 잉여가치의 유통


    제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제18장 서 론
    제19장 연구대상에 관한 이전의 서술
    제20장 단순재생산
    제21장 축적과 확대재생산

    [인명해설]
    [참고문헌]
    [색 인]



    제III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상)

    목차

    제 1편 잉여가치가 이윤으로 전환하고
    잉여가치율이 이윤율로 전환

    제1장 비용가격과 이윤
    제2장 이윤율
    제3장 이윤율과 잉여가치율 사이의 관계
    제4장 회전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
    제5장 불변자본의 사용상의 절약
    제6장 가격변동의 영향
    제7장 보충설명


    제2편 이윤이 평균이윤으로 전환

    제8장 상이한 생산부문들에서 상이한 자본구성과 이로부터 나오는
    이윤율의 차이
    제9장 일반적 이윤율(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상품가치가
    생산가격으로 전형
    제10장 경쟁에 의한 일반적 이윤율의 균등화. 시장가격과 시장가치.
    초과이윤
    제11장 임금의 일반적 변동이 생산가격에 미치는 영향
    제12장 보충설명


    제3편 이윤율의 저하경향의 법칙

    제13장 법칙 그 자체
    제14장 상쇄요인들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제4편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이 상품거래자본과
    화폐거래자본(즉 상인자본)으로 전환

    제16장 상품거래자본
    제17장 상업 이윤
    제18장 상인자본의 회전. 가격
    제19장 화폐거래자본
    제20장 상인자본의 역사적 고찰



    제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

    제21장 이자낳는 자본
    제22장 이윤의 분할. 이자율 '자연' 이자율
    제23장 이자와 기업가소득
    제24장 자본관계의 피상적 형태인 이자낳는 자본
    제25장 신용과 의제자본
    제26장 화폐자본의 축적. 이자율에 미치는 그것의 영향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제28장 유통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의 견해


    -이상 제III권(상)-



    제III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하)

    목차

    제29장 은행자본의 구성
    제30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I
    제31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II
    제32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III (결론)
    제33장 신용제도의 유통수단
    제34장 통화주의와 영국의 1844년 은행법
    제35장 귀금속과 환율
    제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제6편 초과이윤이 지대로 전환

    제37장 서론
    제38장 차액지대 일반
    제39장 차액지대의 제1형태(차액지대 I )
    제40장 차액지대의 제2형태(차액지대 II)
    제41장 차액지대II: 제1의 경우-생산가격이 불변인 경우
    제42장 차액지대II: 제2의 경우-생산가격이 하락하는 경유
    제43장 차액지대II: 제3의 경우-생산가격이 상승하는 경유. 결론
    제44장 최열등경작지에서도 생기는 차액지대
    제45장 절대지대
    제46장 건축지지대 . 광산지대. 토지가격
    제47장 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


    제 7편 수입과 그 원천

    제48장 삼위일체의 공식
    제49장 생산과정의 분석
    제50장 경쟁이 야기하는 환상
    제51장 분배관계와 생산관계
    제52장 계 급


    엥겔스의 “자본론? 제III권에 대한 보충설명

    I. 가치법칙과 이윤율
    II. 증권거래소

    [인명해설]
    [문학. 성서. 신화의 등장인물 해설]
    [참고문헌]
    [색 인]

    이상 제III권 (하)





    자 본 론

    -정치 경제학 비판-

    제 I 권 자본의 생산과정 (상)



    제 1판 서 문



    내가 이제 제1권을 세상에 내놓는 이 책은 1859년에 발간된 나의 책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영역판은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다. 그 책과 이 책 사이에 이처럼 긴 간격이 생긴 것은 몇 해 동안의 질
    병으로 나의 작업이 거듭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온 위 책의 내용은 이 책 제1장[제2판 이후부터 제1-3장]에 요약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서술의 전후 연결과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서술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전의 책에서는 지적하는 데 그친 많은 점들을 이 책에서는 더 상세하게 전개했고, 또 반대로 거기에서는 상세하게 설명된 점들이 여기에서는 다만 간단하게 지적되어 있다. 가치와 화폐의 학설사에 관한 절들이 여기에서는 완전히 삭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읽은 독자는 이 책 제1장의 주들에서 이 학설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 나는 가치의 실체와 가치량의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했다.1) 화폐형태로 완성되는 가치형태는 매우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그럼

    1) 나의 쉬운 설명이 더욱 필요하게 된 것은, 슬체-딜리치(Schulze-Delitzsch)를 반박한 라살(Ferdinand Lasslle)의 저작 중 그가 이 제목에 관한 나의 연구의 '정신적 진수'를 제공한다고 언명하고 있는 절에서조차 중대한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라살은 자기의 경제학 저작의 모든 일반적인 이론적 명제들[예컨데 자본의 역사적 성격, 생산관계와 생산방식 사이의 관련 등등에 관한 명제들]과 용어에 이르기까지 나의 저작에서 거의 문자 그대로[출처도 밝히지 않고] 차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물론 선전을 고려한 데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이 명제들에 관한 그의 자세한 서술과 실제의 적용에 대해 나는 물론 언급하지 않겠다.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화폐형태를 해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한 반면에,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했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이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 형태의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작은 것이다.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물론 무엇이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며 따라서 또 독자적으로 사색하려는 독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리학자는 자연과정이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며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에서 그것을 관찰하든가, 또는 가능하다면 그 과정이 순수하게 진행될 수 있는 조건 밑에서 실험을 한다.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이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예증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독일의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 . 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위선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코 그렇게는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의 발전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들 자체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에 있다. 공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덜 발달한 나라에게 후자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곳[예컨대 진정한 공장]에서는, 공장법이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태는 영국보다 훨씬 더 나쁘다. 기타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서유럽 대륙의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있다. 현대의 고난과 아울러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고난[이것은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방식이 진부한 사회적 . 정치적 관계들과 함께 존속하기 때문에 발생한다]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죽은 것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죽은 것이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독일과 서유럽 대륙의 기타 나라들의 사회통계는 영국의 통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그렇지만 그 통계는 메두사(Medusa)의 대가리가 보일 만큼은 면사포를 걷어 올려주고 있다. 만약 우리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경제상태에 관한 정기조사위원회를 임명한다면, 만약 이 위원회가 영국에서처럼 진실을 규명할 그러한 전권을 가진다면, 그리고 만약 이 목적을 위해 [영국의 공장감독관, 공중위생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영국의 의사, 그리고 여성 . 아동의 착취, 주택 . 영양 등등의 상태를 조사하는 영국의 위원회 위원들과 같은] 전문지식이 있고 편견이 없고 공정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에 깜짝 놀랄 것이다. 페르세우스(Perseus)는 괴물을 추격하기 위해 도깨비감투를 써야 했지만, 우리는 괴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
    도깨비감투를 눈과 귀밑까지 깊이 눌러쓰고 있다.
    우리의 상태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미국 독립전쟁 [1775~1783년]이 18세기에 유럽의 중산계급에게 경종을 울린 것과 마찬가지론 19세기에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이 유럽의 노동자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다. 영국에서는 변혁과정이 이미 뚜렷이 보인다.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응당 대륙으로 옮아올 것이다. 대륙에서 변혁과정은 노동자계급 자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더 가혹한 형태를 취하든가 더 인도적인 형태를 취할 것이다. 더 고상한 동기가 있든 없든, 현재의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법률에 의해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영국 공장법의 역사 . 내용 . 결과에 매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발전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사실 현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적이다-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러한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
    있을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하겠다.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미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人格化: Personification),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擔持者: Trager, bearer)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경제학 분야의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부닥칠 수 있는 그러한 적들과 부닥치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즉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복수의 여신-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저지하는 투쟁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예컨대 영국의 국교는 그의 신앙조항 39개 중 38개를 침해하는 것은 용서할지언정 그의 수입의 1/39을 침해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무신론(無神論) 그 자체는 기존의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에 비하면 사소한 죄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 한 예로 최근 몇 주일 사이에 발표된 청서(靑書), ?공업문제와 노동조합에 관한 제국 재외 사절의 보고?를 지적하고 싶다. 영국왕의 재외 사절들은 이 보고에서 독일과 프랑스, 요컨대 유럽 대륙의 되든 문명국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현존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분명해지고 있으며 또 불가피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대서양 저쪽에서 미국 부통령 웨이드(Wade)는 공개집회에서, 노예제도의 폐지 다음으로 현재의 자본관계와 토지소유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문제로 되고 있다고 언명했다. 시대의 대세가 이러하므로, 이 대세는 진홍색 망토[왕권]로도 흑색 법의[종교]로도 감추지 못한다. 이것은 물론 내일이라도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사회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기체(有機體)라는 예감이 지배계급 안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제2부)과 자본의 총과정의 각종 형태들(제3부)을 취급하게 될 것이며, 마지막 제3권(제4부)은 경제학설사를 취급하게 될 것이다.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고, 제2권(자본의 유통과정)과 제3권(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 엥겔스에 의해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1867년 7월 25일
    런던
    칼 마르크스



    제2판 후 기



    나는 우선 제1판의 독자들에게 제2판에 가한 변경에 대해 말해야겠다. 언뜻 보아도 분명한 바와 같이, 책의 구성이 한층 더 알기 쉽게 되어 있다. 추가한 주는 모두 제2판의 주라고 명시했다. 본문 자체에 관해 말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제1장 제1절에서는 교환가치가 표현되는 등식의 분석을 통해 가치를 이끌어내는 것이 과학적으로 한층 더 엄밀하게 진행되었으며, 또 제1판에서는 간단히 언급한 데 지나지 않았던 가치의 실체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량의 결정 사이의 관련이 특히 강조되었다. 제1장 제3절(가치형태)은 완전히 개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제1판에서는 서술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중적 서술은 나의 벗인 하노버의 쿠겔만(L. Kugelmann)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1867년 봄 내가 그를 방문했을 때 함부르크로부터 초교지가 도착했는데, 그때 그는 대다수의 독자를 위해 가치형태의 보충적인, 한층 더 강의식의 해설이 필요하다고 나를 설득했던 것이다. 제1장의 마지막 절 "상품의 물신적..."은 대부분 개정했다. 제3장 제1절(가치척도)은 면밀하게 수정했다. 그 이유는, 제1판에서 이 절은 산만하게 서술되었고 독자들에게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베를린, 1859년)에 있는 설명을 참조하라고 했던 까닭이다. 제7장 특히 제2절?가치증식과정“은 많이 개작했다.
    때로는 단순히 문체를 고친 곳도 군데군데 있는데, 이러한 수정을 일일이 다 지적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이러한 수정은 책 전체에 걸쳐 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파리에서 발간되고 있는 프랑스어판을 교열하면서, 독일어 원본의 어떤 곳은 근본적으로 개작해야 하며 또 어떤 곳은 문장을 고치거나 우연적인 착오를 면밀히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할 시간이 나에게는 없었다. 왜냐하면, 책이 다 팔려 1872년 1월에는 재판의 인쇄를 시작해야 한다는 소식을 (내가 다른 긴급한 일을 하고 있었던) 1871년 가을에야 들었기 때문이다.
    ?자본론?이 독일 노동자계급의 광범한 층에서 이처럼 빨리 평가받게 된 것은 나의 노력에 대한 최대의 보상이다. [경제문제에서는 부르주아적 입장을 대변하는] 비엔나의 공장주 마이어(Sigmund Mayer)는 보불전쟁(普佛戰爭) 때 발간한 소책자에서, 독일인의 세습재산이라고 인정되어 온 이론적 사색의 탁월한 재능은 독일의 이른바 식자층에서는 완전히 소멸했으나 그 대신 독일의 노동자계급 속에서 부활되고 있다고 아주 옳게 말한 바 있다.
    독일에서 경제학이 오늘날까지 외국의 학문으로 되어 있다. 구스타프 폰 귈리히(Gustav von Gulich)는 자기의 저서 ?상공업과 농업의 역사적 서술? [전 5권, 예나, 1830~45], 특히 1830년에 발간된 이 책의 첫 두 권에서, 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따라서 또 현대적 부르주아 사회의 형성]을 저해한 역사적 사정을 이미 대부분 해명했다. 즉, 경제학이 육성될 수 있는 토양이 없었던 것이다. 경제학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기성품의 형태로 수입될 수밖에 없었고 독일의 교수들은 항상 학생이었다. 외국 현실의 이론적 표현을 그들은 자기 주위의 소부르주아적 세계의 정신으로 해석해 (즉, 곡해해) 하나의 교리집으로 만들어버렀다. 그들은 학문적 무능에 대한 인식[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인식]과 사실상 서투른 분야를 정복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은폐하려고 애쓴 나머지, 문헌사적 박식으로 풍을 떨거나 이른바 관방학(cameralism)에서 빌어온 전혀 관계없는 자료들을 혼합하는 것을 일삼아 왔다. 희망에 넘치는 독일 관리후보자들은 이러한 잡다한 지식의 시련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1848년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은 독일에서 급속히 발전했고 현재는 벌써 투기와 협잡이 성행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아직도 독일의 경제학 교수들에게 미소를 짓지 않고 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하나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오직 고립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영국을 예로 들어 보자. 고전파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의 것이다. 고전파 경제학의 최후의 위대한 대표자 리카도(D. Ricardo)는 사실상 의식적으로 계급적 이익의 대립[즉, 임금과 이윤, 그리고 이윤과 지대 사이의 대립]을 자기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는 소박하게도 이 대립을 자연에 의해 강요된 사회법칙으로 보았다. 그러나 리카도의 공헌을 마지막으로 부르주아 경제학은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쳤다. 리카도가 살아 있을 때에 벌써 그에 대립해 시스몽디(Sismondi)라는 인물을 통해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나타났다.1)
    다음 시기인 1820~30년에 영국에서는 경제학 분야에서 활기찬 학문적 활동이 눈에 띈다. 이 시기는 리카도 이론이 속류화하고 보급된 시기인 동시에 그의 이론이 종래의 학파와 투쟁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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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책,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베를린, 1859년), p. 39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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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였다. 볼만한 편싸움이 벌어졌다. 이 시기의 논쟁 내용은 유럽 대륙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논쟁은 대부분 잡지 . 임시간행물 . 소책자 등에서 분산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공평무사한 성격은-비록 리카도의 이론이 그때 벌써 예외적으로는 부르주아 경제체제를 공격하는 무기로 이용되었지[예 :리카도파 사회주의]-그 당시의 사정에 의해 설명된다. 한편으로 대공업 자체는 겨우 유년기를 벗어난 데 불과했는데, 이것은 1825년의 공황에 의해 비로소 대공업이 주기적 순환이라는 자기의 근대적 생애를 개시하게 된다는 사실만 보아도 명백하다. 다른 한편,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왜냐하면, 정치분야에서는 신성동맹의 주위에 뭉친 정부들과 봉건영주들을 한편으로 하고 부르주아지가 지도하는 국민대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 사이의 알력 때문이었고, 경제분야에서는 산업자본과 귀족적 토지소유 사이의 반목 때문이었다. 이 후자의 반목은 프랑스에서는 분할지소유와 대토지소유 사이의 이해대립의 배후에 숨어 있었으나, 영국에서는 곡물법의 실시이래 공개적으로 폭발했다. 이 시대의 영국의 경제학 문헌들은 케네(F Quesnay)의 사망뒤 프랑스에 있었던 경제학적 질풍노도의 시기를 상기시키지만, 그것은 오직 초겨울의 따뜻한 날씨가 봄을 상기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이다. 다시 말해, 1830년에는 최종적인 결정적 위기가 닥쳐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쟁취했다. 이 순간부터 계급투쟁은 실천과 이론 모두에서 더욱더 공개적이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와 더불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조종을 울렸다. 그 뒤부터는 벌써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많은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볼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가 문제로 되었다. 객관적인 학자들 대신 고용된 앞잡이들이 나타났으며, 진정한 과학적 연구 대신 비양심적인 사악한 변호론이 나타났다. 그러나 공장주 콥덴 (Cobden)과 브라이트(J. Bright)를 선두로 한 곡물법 반대동맹이 세상에 내놓은 건방진 글들도 지주 귀족을 반대해 논쟁을 걸었다는 점에서, 비록 과학적인 흥미는 아닐지라도 일정한 역사적인 흥미는 준다. 그러나 그 뒤 로버트 필(Robert
    Peel)의 자유무역법은 이 최후의 자극조차 속류경제학으로부터 빼앗아 버렸다.
    1848년의 대륙혁명은 영국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아직도 약간의 과학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단순한 궤변가 . 아첨꾼으로 되는 데 만족하지 않던] 사람들은 자본의 경제학을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프롤레타리아의 요구와 조화시키려고 했다. 이로부터 존 스튜어트 밀(Jhon Stuart Mill)을 대표자로 하는 천박한 절충주의가 나왔다. 이것은 러시아의 위대한 학자이며 평론가인 체르니세브스키 (H. Chernyshevsky)가 그의 저서 ?밀(Mil)의 정치경제학개론? [186l년]에서 훌륭하게 해명한 바와 같이, '부르주아' 경제학의 파산선고였다.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그것의 적대적 성격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역사적인 소란스러운 투쟁을 통해 나타난 뒤에야 겨우 성숙했다. 더욱이 독일 프롤레타리아는 독일 부르주아지보다 훨씬 더 이론적으로 명확한 계급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이 드디어 가능할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은 다시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 하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대변자들은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총명한 실무가들은 [변호론적 속류경제학의 가장 천박한, 따라서 가장 성공적인 대표자] 바스티아(Bastiat)의 깃발 아래 뭉쳤고, 교수인 체하며 자기들의 학문적 위신을 자랑하는 인간들은 [타협불가능한 것을 타협시키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뒤를 따랐다. 독일사람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몰락기에도 그 고전적인 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국학자의 단순한 학생 . 맹종자 . 모방자. 외국회사 제품의 소행상인이었다.
    독일사회의 역사적 발전의 이와 같은 특수성 때문에 '부르주아' 경제학의 독창적인 발전은 전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비판까지 불가능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비판이 하나의 계급을 대변하고 있는 한,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타도와 모든 계급의 최종적 철폐를 자기의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 부르주아지의 대변자들은 학자든 아니든 [나의 이전 저작에 대해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것처럼] ?자본론?을 우선 묵살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이 더 이상 시대의 정세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그들은 나의 책을 비판한다는 구실 밑에 '부르주아적 의
    식을 진정시키기 위한 처방들을 써냈다.2)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신문에서 유력한 반대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예컨대 ?인민국가?지의 요제프 디츠겐(Joseph Dietzgen)의 논문들을 보라], 지금까지 이들에게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론?의 훌륭한 러시아어 번역[번역자는 로파틴(Lopatin)과 다니엘슨(Danielson)]이 1872년 봄에 상트 폐테부르그에서 나왔다. 3,000부가 발간되었으나 현제 거의 다 팔렀다. 이미 1871년에 키예프대학 경제학 교수 지베르(H. Sieber) 는 자기의 저서 “ 리카도의 가치이론과 자본이론”

    2) 독일 속류경제학의 서투른 수다장이들은 나의 책의 문체를 비난한다. ?자본론?의 문체상 결함은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러나 이 신사들과 그들의 독자층의 편의와 기쁨을 위해 나는 여기에 영국인의 의견과 러시아인의 의견을 하나씩 인용하려 한다. 매우 적대적인 ?세터데이 리뷰?는 제1판에 대한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술방식은 가장 무미건조한 경제문제에까지도 독특한 매력을 주고 있다. " ?싼크트 페데르부르그스케 베드모스치?는 1872년 4월 20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없다. "그의 서술은 매우 전문적인 약간의 부분을 제외하면 쉽고 명료하며, 그리고 그 대상이 과학적으로 복잡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생동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보통의 사람을 골치 아프게 하는 모호한 말로 책을 쓰는....독일의 대다수 학자들을 전혀 닮지 않고 있다. "

    에서 나의 가치 . 화폐 . 자본에 관한 이론이 그 기본적인 점에서 스미스와 리카도 학설의 필연적인 발전임을 증명했다. 그의 가치있는 책을 읽고 서유럽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순수이론적인 입장을 철저하게 관철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론?에 적용된 방법이 거의 이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상호모순되는 해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예컨대 파리의 ?실증주의 철학평론?은 한편으로는 내가 경제학을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무엇인지 추측해 보라!-내가 '주어진 사실의 비판적 분석'에 국한하고 미래의 음식점을 위한 요리법(콩트류의 ?)을 서술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형이상학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지베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론 그 자체에 관한 한, 마르크스의 방법은 영국학파 전체가 사용하는 연역적 방법인데, 이 방법의 결점과 장점은 가장 우수한 이론경제학자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

    블로크(M. Block)는 논문 「독일의 사회주의 이른가」[?경제학자 잡지?, 1872년 7월 및 8월호]에서 나의 방법이 분석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 저작으로 가장 탁월한 분석적 재능이 있는 사상가의 하나로 되었다. "

    독일 평론가들은 물론 나의 '헤겔식 궤변'에 대해 욕하고 있다. 상트 페테부르그의 ?유럽 통신?은 ?자본론?의 방법만을 취급한 논문(1872년 5월호. pp. 427~436)에서 나의 조사방법은 엄격히 실재론적(realistic)이지만 서술방법은 불행하게도 독일 변증법적(dialectic)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논평자[카우프만(I. I. Kaufman)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서술의 외부형식에 의해 판단한다면 마르크스는 최대의 관념론자, 그것도 이 말의 독일적 의미[즉, 나쁜 의미]에서 관념론 철학자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경제(학)적 비판에서는 그의 모든 선행자들보다 훨씬 더 실재론자다....그를 관념론자라고 말할 수는 도저히 없다. "

    이 논평자 자신의 비판으로부터 약간 발췌하는 것이 그에 대한 나의 가장 훌륭한 회답이 될 것이다. 또한 이 발췌는 러시아어 원문을 입수할 수 없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를 일으킬 것이다.
    나의 방법의 유물론적 바탕이 설명되어 있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베를린, 1859년) 서문 4-7쪽으로부터 인용한 다음, 논평자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조사하고 있는 현상들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일정한 형태가 주어진 역사적 시기와 상호관련을 가지는 경우] 그 현상들을 지배하는 법칙만이 아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변화의 법칙, 현상들의 발전의 법칙, 즉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이행의 법칙, 상호관계의 한 질서로부터 다른 질서로의 이행의 법칙이다. 그는 일단 이 법칙을 발견하자 [이 법칙이 사회생활에서 실현하는] 결과들을 상세하게 조사힌타....따라서 마르크스는 오직 다음 하나에 전념한다. 즉, 정밀한 과학적 조사에 의해 사회관계의 일정한 계기적 질서의 필연성을 증명하며, [그의 출발점과 거점으로 되는] 사실들을 될수록 완전무결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질서의 필연성과 (현재의 질서가 반드시 이행하게 되는) 다른 질서의 필연성을 동시에 증명하면 충분하다. 사람들이 이 필연성을 믿든 안믿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전혀 상관이 없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운동을 법칙-인간의 의지 . 의식 . 의도와는 독립해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의지. 의식 . 의도를 결정하는 그러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이라고 본다....만약 의식적 요소가 문명사에서 이러한 종속적인 역할을 한다면,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비판적 조사가 의식의 어떤 형태나 어떤 결과를 자기의 토대로 삼을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시 말해, 조사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고 오직 외부현상이다. 이와 같은 조사는 한 사실을 관념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실과 비교하고 대조하게 될 것이다. 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사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탐구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발전의 상이한 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이한 발전단계를 표현하는 일련의 순서 . 순차성 . 관련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경제생활의 일반법칙은 현재에 적용되든 과거에 적용되든 동일하다고 말할 것이다. 바로 이것을 마르크스는 부인한다. 그에 의하면, 그와 같은 추상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반대로 각각의 역사적 시기는 자기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경제생활이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과해 일정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행하자마자, 경제생활은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경제생활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의 역사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종래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법칙을 물리학. 화학의 법칙과 동일시함으로써 경제 법칙의 성질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현상을 더 깊이 분석하면, 사회적 유기체들도 식물 .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의 동일한 현상이라도 이 유기체들의 상이한 총체적 구조, 그것들의 개개의 기관 organ)의 다양성, (기관이 기능하는) 조건들의 차이 등등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마르크스는 예컨대 인구법칙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반대로 각각의 발전단계는 자기 자신의 인구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생산력의 발전 수준의 차이에 따라 사회적 관계들과 그것들을 규제하는 법칙들도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연구하고 해명하려는 마르크스는 경제생활의 정확한 연구가 반드시 가져야 할 목표를 엄밀히 과학적으로 정식화하고 있을 따름이다....이와 같은 연구의 과학적 가치는 일정한 사회유기체의 발생 . 생존 . 발전 . 사별과 더 높은 다른 사회유기체에 의한 교체를 규제하는 특수법칙들을 해명하는 데 있다. 또 이러한 가치를 마르크스의 책은 실제로 가지고 있다. "

    이 논평자는 나 자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 나 자신에 의한 이 방법의 적용을 아주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변증법적 방법'이 아닌가?
    물론 발표[서술]방법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탐구]방법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소재(素材: material)를 파악하고, 소재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들의 내적 관련을 구명해야 한다. 이 조사가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서술]할 수 있다. 조사가 잘 되어 소재의 일생이 관념에 반영된다면, 우리가 마치 선험적인 논리구성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그 근본에서 헤겔의 그것과 다를 뿐 아니라 정반대다. 헤겔에게는 [그가 이념(Idea)이라는 명칭하에 자립적인 주체로까지 전환시키고 있는] 사고과정( process of thinking)이 현실세계의 창조자고, 현실세계는 이념의 외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두뇌에 반영되어 사고의 형태로 변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약 30년 전에 [헤겔 변증법이 아직 유행하고 있던 시기에] 헤겔 변증법의 신비로운 측면을 비판했다. 그러나 내가 ?자본론? 제1권을 저술하고 있던 때에는, 독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활개치는 볼평많고 거만하고 또 형편없는 아류들이 헤겔을 [일찍이 레싱(Lessing) 시대에 용감한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스피노자(Spinoza)를 대하듯이] '죽은 개'로 취급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는 군데군데 헤겔의 특유한 표현방식을 흉내내기까지 했다. 변증법이 헤겔의 수중에서 신비화되기는 했지만,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으로 또 알아볼 수 있게 서술한 최초의 사람은 헤겔이다.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 신비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
    변증법은 그 신비로운 형태로 독일에서 유행했다. 왜냐하면, 변증법이 현존하는 것을 찬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별)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 . 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 . 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의 운동이 모순들로 꽉 차 있다는 사실은 산업활동의 주기적 순환[이것의 봉우리가 일반적 공황(general crisis)이다]을 통해 실무적인 부르주아지에게 매우 분명히 알려져 있다. 이 일반적 공황은 비록 아직은 그 초기단계에 있지만 또다시 박두하고 있으며, 또 그것은 그 영향권의 전면성(universality)과 그 작용의 강도에 의해 새로운 신성 프러시아-독일제국의 졸부들의 머리 속까지 변증법을 새겨넣을 것이다.
    1873년 1월 24일
    런던
    칼 마르크스




    프랑스어판 서문


    모리스 라 샤트르(Maurice La Chatre) 귀하

    ?자본론? 번역판을 시리즈로 발간하려는 당신의 제안에 나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와 같은 형태로 출판되면 이 책은 노동자계급에게 한층 더 접근하기 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이것은 당신 제안의 좋은 측면입니다. 나 그 반대측면도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분석방법은 지금까지 경제문제에 적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첫 몇 장은 읽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따라서 염려되는 것은 [항상 결론을 얻으려고 성급히 서두르며 일반적인 원리가 자기들이 직접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를 알려고 갈망하는] 프랑스 독자들이 당장에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 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불리한 점입니다만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진리를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에게 미리 경고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귀하, 충심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686
  • 61. 풍택중부(風澤中孚)
    『 성실한 믿음 』
     
     ○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역은 인류학
     ○     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학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이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사람이 자신의 마음만 갖고서는  그 마음먹은대로
     ●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어떻게 만물에게 전
     ○     달 되어서 어떻게 만물을 따르게 하는가하는 이것
     ○     이 곧 과제입니다. 바로 이것을 알면 우주의 찬란
            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비우고 이 괘가 말하고 있는 가르침을 깊이 명심
            해서 들어야만 합니다. 가운데 두 개만이 음효이
            며 나머지는 양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풍택중부(風澤中孚)
     
        중부(中孚)란 마음안에 성실함이 충만함을 뜻하며 孚
        라는 글자는 爪(손톱)과 子(자식)의 글자의 합성어로
        어미 새가 날개 밑에  알을 품고 부화하는 것을 나타
        낸다. 어미새의 사랑이 알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듯 성
        의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괘의 형상은
        위에는 바람이 사방에 불어닥쳐 아래 있는 연못을 움
        직이니 물결이 치는 모습이다. 즉, 윗사람의 성의 있
        는 마음이 아랫 사람을 감동시켜 즐겁게 따르도록 하
        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성의를 갖고 나아가면
        위난을 극복하고 뜻을 성취할 수 있다.  또한 상하의
        괘가 입을 맞대고 있는 형상이므로  진실하게 결합된
        두 사람을 상징하는 괘이다. 중부(中孚)는 유효(3,4
        효)가 괘의 중심에 있어 허심(虛心)을 나타내고 강효
        (2,5효)가 중위(中位)를 얻어 성의(誠意)가 충실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성의로서 국가를 태평하게 이끈다
        면 백성은 즐겁게(兌) 따른다(巽). 무지한 돌고래일
        지언정 따르게 된다. 길하다. 근본이 성실하다면 설
        사 큰 강을 건너는 위험을 범하여도 만사가 순조로운
        것이다. 괘상은 가운데가 그늘지고 비었으니 나무를
        파서 구멍을 뚫는 형상이다. 크게 보면 火의 離괘를
        나타내기도 한다. 무슨 일에나 성의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의지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중부(中孚)는 성실한 믿음을 통해서 충만함을 얻는 길괘(吉卦)
    입니다. 모든 성장하는 것들은 이미 그 마음이 성장되어져 있어
    야 합니다. 만약에 위로 나아감이 무서우면 더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두려우하면 더 이상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착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키
    지 못한다면 큰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마치 어미닭과 같이 사랑
    을 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바람이 위에서 불어야지 밑에
    있는 물결이 움직이듯이 위에 있는 마음이 밑에까지 크게 작용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작은 물건을 꾸밀때도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날 것입니다. 해야되겠다는 마음이 짜증보
    다 크면 짜증 나는 가운데서도 일을 계속해서 진행해 나가지만
    마음이 짜증보다 작다면 일의 중간에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하기 싫은것이 생길 때 바로 그럴 때 정성을 쏟아
    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늘로 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
    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은 작습니다. 그러나 나를 고집
    하지 않고 내 마음을 쓰면 그것은 곧 하늘의 마음이 됩니다. 바
    로 그 때 자신이 정성을 들여 신경을 쓴 대상은 자기 앞으로 끌
    려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치 않으면 결코 하늘은 도와주지 않
    을 것입니다. 정성을 쏟으면 세상은 즐겁게 따르게 되는 것입니
    다. 커다란 사랑이 아랫사람을 감동 시켜서 따르게 만드는 것입
    니다. 자기 보다 작은 것들이 말을 듣지 않을때일수록 그것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겨하여
    따르니 하늘을 감화 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음덕은 돼지와 물고기
    에까지도 감화를 미치는 것입니다.
     
      중부의 괘상은 빈배를 형상합니다. 빈 배는 나를 고집하지 않
    고 성리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순하게
    흘러 가는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 중에 하나는 선입견을 갖지 않
    고 만물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 성의만 차 있고 만물
    을 바라보는 눈이 사랑으로 차 있으면 또한 그것이 한결같이 변함
    이 없으면 크게 발전하고 번영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는 법입니다. 피한다는 것은 그
    마음이 좁기 때문입니다. 피하는 자는 하늘이 돕지 않는 것입니
    다. 내가 하늘로 가고자 하면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고
    자 하는 자리 또한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늘을 느낄 수 없
    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로써만 살지 말고 하늘로써 살아야만
    합니다. 나의 인생이 아니라 하늘과 함게한 인생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랬을 때 크게 발전하고 번영하게 되는 하늘로부터
    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상. 연못(兌) 위에 바람이 불어서 물결을 움직인다.
        이것이 중부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통해 따듯
        한 정을 가지고 재판을 판결하고 사형수를 감형시킨다.
     
      성리와 사랑을 가지고 잘잘못을 재판하고 사형수까지도 감형을
    한다. 즉 죄지은 사람까지도 감화 시켜서 그 사람을 바꾼다는 것
    이니 결국 죄수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양효. 현상(現狀)에 만족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길하다. 지나친 야심을 품으면 안식을 얻지 못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안정되게 하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길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마음을 품으면 불안하게 될 것입니
    다. 즉,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처해져 있는 환경을 끌어
    올리는 것이 바로 성공인 것입니다. 자동차가 달릴때는 달리는
    차 안에서는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합니다. 빨리 가고자 한다면 차
    를 빨리 가도록 해야지 사람이 앞으로 튀쳐 나가면 안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야심은 안식을 얻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바로 양성 에네르기가 현상을 떠나서 움직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학(鶴)이 산 그늘에서 울고 그 새끼가
        이 소리에 대답하여 응답한다. 마음으로 동지를 구하고
        서 로 부르며 산다. 나에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동지와
        함께 술을 마신다. 진심으로 뜻이 맞으니 즐겁다.
     
      자기 사랑을 진심으로 베풀때 그 때 비로소 응답이 온다는 것입
    니다. 좋은 것은 니것 내것을 따지지 않고 공평히 나누었을때  진
    심이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가 있으니 충심을 얻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음효. 적을 만난다. 어떤자는 진격하고 어떤
        자는 도망친다. 우는자가 있고 노래하는 자가 있으니
        대열은 지리멸렬하고 계통이 깨어진다. 지휘자가 지휘
        를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효는 음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장을 하려고 합니다.
    재벌의 한 사람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회사에 오래되고
    고참이더라도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사장을 시켜선 안된다고 하
    였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커지면 잘 돌아가면 자연히 커다
    란 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는 커지지 않고 마음만 사장이 되
    려고 하면 결국 회사는 망하는 것입니다. 매사가 되어지지 않습
    니다. 작다고 생각하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싫은 것이라 하더
    라도 그 모든 것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때 진정한 높은 지위를 스
    스로 얻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과도 없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음효. 달은 만월에 가깝다. 지금이야말로 한
        패들과의 관계를 끊고 위에 5양에 봉사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탈은 없을 것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시기하는 자들에게 조차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
    다. 바로 그렇게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들과 평행
    선상의 친분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서로의 뜻이 맞는다고해서 동
    급에서 어울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평행선상에 서게 되면 꼭 남자는 여자에게
    종속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위아래서 당기고는 있지만 그 차원이
    같아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차원이 같은 곳에서는 분리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헤어지게 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
    서 그 눈높이가 5양의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높은쪽
    을 택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양효. 성실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나아가면
        탈은 없다. 허물이 있을리가 없다. (中正)
     
      소리가 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소리가 아니듯이 사람은 눈높
    이를 키워야 합니다. 그것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이 나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만족에서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늙어서도
    젊게 살려면 어느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양효. 학이 하늘로 오르려 한다. 분수에 넘치
        는 일을 해보지만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설사 정도(正
        道)를 지키더라도 흉하리라.
     
      실력에 맞지도 않는데 오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리에
    올랐을 때는 반드시 제대로 되었는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사람
    들을 이끌어 갈때는 반드시 제대로 따라오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
    니다. 항상 어느 부분에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야 하며
    좋지 않은 부분은 메꾸고 먼저 좋은 일로 만든 연후에 굳건하게 움
    직여야 함을 이 중부괘를 보고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414
  • 51. 진위뢰(震爲雷)
    『 두려운 마음 』
     
     ●     외면하지 말라, 돌아서지 말라, 바로 힘들고  외면해
     ●     야 할 그때가 각질을 뚫고 에너지가 나아가야할  때
     ○     다. 가라. 지옥으로 가라. 드디어 지옥안에서 그대는
            천당을 발견할 것이다.  애초부터 천당을  찾아가면
     ●     지옥이 끝까지 따라오리니, 안심입명(安心立命)은 편
     ●     안한 마음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다. 불편한
     ○     마음을 통해 생명의 자리가 바로서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편안하면 본 뜻을 잃는다. 불편한 마음으로써
            현실을 지키는 울타리를 삼아라.
           
     
                          진위뢰(震爲雷)
     
        [진(震)] 괘는 발전을 의미하는 괘다. 우뢰가 진동하
        니 놀라며 두려워하지만 우뢰가 그치니  웃으며 이야
        기한다. 근신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있으니 복을
        이룬다. 무서운 우뢰소리 백리를 뒤흔드니 모든 사람
        들이 겁내고 두려워한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
        로 제사를 거행하여 조금도 예절에 실수하는 일이 없
        다. 이런 인물이면 나아가 제왕의  지위에 올라 상제
        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거의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을 당하는
    큰 문제로부터 사사로운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어려움이 발생
    하여 그로 인해서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
    수록 우리는 약해져서는 안되며, 그것이 한편 생각하면 우리를 강
    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하늘의 배려라고  여겨야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을 물러섬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합니다.
      씨앗도 껍데기를 까면 그 안에 있는 것은 상당히 야들야들합니
    다. 그러나 어느 씨앗도 껍데기는  단단합니다. 달걀도 안의 노른
    자와 흰자는 약하지만 껍질은 단단한 편입니다. 씨앗이 제일 먼저
    뚫고 나오는 것은 자기  각질입니다. 그리고 각질은 앞으로  흙을
    뚫고 나가는 일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씨앗이 각질안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 씨앗이  싹이 나고 나무로  변한다고 하는
    비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주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비젼을 일으킬 수  있는 동기와 계기를 마련
    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뢰(雷)" 괘는 뇌성을 나타내는 괘가 두  개 겹쳐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항상 뇌성이 치고 있습니다. 우리들 눈 앞에  나타나는 사
    사로운 어려운 일들이 모두 다 뇌성입니다. 뇌성과 뇌성이 겹치고
    겹치면 번개가 됩니다. 그런데 번개에 맞을 확률은  100만분의 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뇌성이 치더라도 번개 맞을 일은  거의 없다
    는 것이 또 뇌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개친다고 겁이나서
    못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마치 밥풀귀신에게  홀린 사
    람과 똑같습니다.
      어느 야간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여고생입니
    다. 하루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오는 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나올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느라 잘 몰랐는데,  교문을 나
    서자마자 혹시 누가 있지 않나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까 어디 저
    쪽에서 누군가가 허연 옷을 입고선 따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
    니다. 그 여학생은 겁이 나서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또 도망가
    면 달려들 것같아서 참고 참으며 버스타는데까지  갔습니다. 그런
    데 이상하게도 버스안에서도 그 사람이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 골목있는데까지 왔는데  힐끗보니 아
    직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아직까지  나를
    덮치지 않는걸 보면 이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 같았습니다. 그래서
    골목길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서 드디어 집앞에서 초인
    종을 누르고 빨리 문열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머니가 나오면서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엄마 학교에서부터 누가 날 따라오는데  아
    마 귀신인가봐." 엄마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얘야 너 눈에 붙은
    밥풀이나 떼어라." 하고 밥풀을  떼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옆을 보
    니까 허연게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현실이라는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그러한 밥풀귀
    신같은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밥풀을 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벼락에 맞을 확률이 100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마음을 편안하게 놓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뇌성이 부딪
    칩니다. 우리는 항상 긴장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야 합니다. 여기서 '두려운'이라는 것은  겁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대비하며 '잘되야 될텐데' 하는 조바심 내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조바심 내는 마음을  갖고 뇌성을 쳐다보고  지나갔을 때
    뇌성은 별 것 아닌 소리로 사그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싹이 나올 때 그런  걱정, 그런 위험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결코 흙을 뚫고 나올 수 없습니
    다. '도(道)'는 항상 마음조이면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는 해탈했
    다고 술먹고 퍼져서 자동차고 뭐고 다  나오라 그래 하면서 찻길
    아무데서나 픽픽 쓰러지는게 초연한 것이 아닙니다. '초연'한 것은
    항상 조심하고 항상 가슴 조이면서 문제가  생길 때는 문제를 직
    시하고 그 가운데서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문제들
    이 번개가 땅속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뢰(雷)'괘는 주역 64괘 가운데서 크게 발전한다는 괘중의 하나
    입니다. 상하괘가 똑같이 생겼으며, 음효가  두 개 양효가 하나로
    서 남성입니다. 왜 음에너지가 두 개고 양에너지가 하나인데 양성
    이 되는가? 양에너지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안에서 당기는
    힘이 더 강해야 합니다. 그 힘이 약하면 양성이  안나가는 법입니
    다. 그래서 우리가 웃을 때는 안에서 당기는 힘이 약해집니다. 그
    것을 우리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프다고 그럽니다. 웃으면 당기는
    힘이 점점 약해져서 나가긴 나가야 되겠는데 당길 힘이 없다보니
    까 배아픈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양성 에너지가 우선 작용하
    기 위해서는 그 안에 음성에너지가 곱으로 있어야 됩니다.  이 뢰
    (雷)괘가 바로 안에 당기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양성에너지가  더
    이상 못참겠다 하고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또  여성도 마
    친가지로 여성에너지가 우선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강하게 내보
    낼려고 하는 양성에너지가 두 배로 있어야 합니다.
      "우뢰가 진동하니 놀라며 두려워하지만 우뢰가  그치니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그 문제가 두고  두
    고 평생을 묶어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뢰는 사라지는  법입니
    다. 그래서 두려움이 있는 곳, 그곳으로 가야합니다. 편안한 것을
    찾아가려는 것은 각질안의 행복입니다. 각질속 행복은  우리가 바
    라는 진정으로 풍요로운 평안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끝내가서
    는 그 각질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각질을 깨고  나와야 됩니다. 외면하는  자존심. 이것은
    자존심이 아닙니다. 비겁한 자존심입니다.  피하되 스스로 외면하
    지 않는다. 즉 "우뢰가 진동하니 놀라며 두려워하지만  우뢰가 그
    치니 웃으며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항상 거울삼아서 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
    니다. 옆집에 도둑이 들어왔는데 우리집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괸심도 갖지 않는 사람은 필경 나중에 도둑을 맞을  것입니다. 그
    렇다고 매일밤 도둑 공포증에 걸려서 사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할
    위인입니다.
     
      이 세상은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일
    들이 지금 앉아 있는 우리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같지만, 그
    러나 이 세상은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별의 별 것을 다 일
    으켜 결국은 우리와 상관이 있게 됩니다. 그 일으킴 속에서 "나의
    뜻을 어떻게 관철시켜 나갈 것인가?"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남의 일을 거울삼아서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러
    나 남의 일이 가슴에 와닿지를 않고, "저것은 내 일이  아니니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이겨나갈 수 없는 사람이며, 하물며 자기 일
    도 아닌데 남의 일에 자기가 공포에 질려 겁을 먹고 엄두를 못내
    는 사람은 물론 뜻을 펼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그  두 사람은 결
    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근신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있으니 복이 이른다." 즉 두려워하
    는 마음으로 가슴 조이면서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편안하게 살려
    고 하는 사람은 돼지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매사 두려워하는 마음
    으로 '안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행동하니 복이 있다
    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일면 두려워 하는 그 마음안에 머
    무르고 불편함이 일면 그 불편한 마음 안에 머물라는 말입니다.
      "무서운 우뢰소리 백리를 뒤흔드니 모든 사람들이 겁내고 두려
    워한다." 이럴 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한 태도로 제사를 거행하
    여", 즉 하고자 하는 일에 정성을 쏟아서 "조금도 예절에  실수하
    는 일이 없다." 실수는  각질안에서 행복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제왕의 지위에 올라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항상 조바심 내는
    마음으로 천둥 번개가 치는 곳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대상. 우뢰가 거듭 겹쳐서 오는 것이 진(震)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근신하고 두려워하며 더
        욱 주의를 살펴 수양한다.
     
      외면하지 말라, 돌아서지 말라, 바로  힘들고 외면해야 할 그때
    가 각질을 뚫고 에너지가 나아가야할 때다. 가라.  지옥으로 가라.
    드디어 지옥안에서 그대는 천당을 발견할 것이다.  애초부터 천당
    을 찾아가면 지옥이 끝까지 따라오리니.
     
        첫 번째 양효. 우뢰소리 들려오니 겁내고 두려워하지
        만 우뢰가 그친 뒤에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근신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복이 오게 된다. 근신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난국에 대처하면 뒤에는  웃고 즐겨할
        수 있게 나라의 질서가 회복될 것이다.
     
      "우뢰소리 들려오니 겁내고 두려워하지만 우뢰가  그친 뒤에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우뢰소리 들려오니 겁내고 두려워하지만  조
    바심내고 주의력을 잔뜩 집중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 뒤에는
    우뢰가 그쳐지는 것이며, 우뢰가 그친 뒤에는  웃으며 이야기합니
    다. 중요한 것은 조바심 내고 더욱 주의력을 살펴서  하기 때문에
    복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발전은 외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먼저 각질을 깨
    는 것으로부터 발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음효. 음전(陰電)과  양전(陽電)이 합쳐 맹렬
        한 우뢰가 운다. 벼락이 떨어질 염려가 있다.  침착하
        게 판단하여 재물을 버리고 언덕에 올라가 피하라. 7
        일이 지나면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침착하게 판단하여 재물을 버리고 언덕에 올라가 피하라." 벼
    락이 떨어질 위험이 있을 때는 자기가 가진것에 메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길을 찾아야 됩니다. 흘러가는 에너지는 길을  찾지만, 자
    기로부터 흐르지 않는 에너지는 그럴 때 자기를 웅크리게 됩니다.
    그리고 염라대왕 앞에 가서 벼락 탓을 합니다. 그러면 염라대왕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그 벼락 내가 준 것이다.  그대는 나에게 불
    만있는가?" 그때는 물론 자기 것을 놓고, 거기서  길을 찾아야 됩
    니다. 자기 것에 매여져 있으면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집착하
    지 말라. 일주일쯤 지나면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을
    쥐기 위해서 지금 잠시 잡은 것을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로
    두 개를 쥐는 법입니다.
     
        세 번째 음효. 천둥은 멀리가고 다시는 재앙이 없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여서도 침착하게 그 상항을 대처해
        나가며 매듭을 짓는다면 또 다시 위급한 사항은 오지
        않는 것이다.
     
      나하고는 상관없었던 일이 느닷없이 나에게 닥쳤을 때, 그 때는
    얼른 대피할 수 있어야지 한가지만 생각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게
    되면 두 번째에 걸립니다. 그래서 음과 양이 합쳐서  맹렬한 우뢰
    가 칠 때는 얼른 자기가 지금 현재 쥐고 있는 것을 놓고 다른 곳
    으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첫째, 자기 자신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매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면서도 항상 외부와의 벌
    어지는 일들을 리드미컬하게 조화시켜 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해 나
    가면 위험은 멀리가고 다시는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네 번째 양효. 우뢰가 쳐서 드디어 땅속에 들어 갔다고 해서
        내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우뢰가 한 번 치고 나면 끝났지만  조그맣게 작은 소리가 다시
    한 번 칩니다. 즉  메아리가 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소멸한다
    했을 때 한꺼번에 싹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그와같은 형태로 파
    장이 차츰 차츰 약하게 나가게 됩니다. 처음에 쳤던  것이 없어졌
    다고 해서 형체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뒤에 여
    파의 에너지가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기
    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시간 동안 뜸을 들여야 할 밥
    을 한 40분쯤 되어서 물기가 다 빠졌다고 솥뚜껑을 열고 밥을 한
    번 푼다음 다시 그것을 뜸들이려고 하면  제맛이 나지 않는 법입
    니다. 그 여파기간을 잘 측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공부할 때
    도 마찬가지로 어젯밤에 달달 외웠다고 해서 그 다음날 다 생각나
    는게 아닙니다. 사람은 잃어버린다는 여파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
    다. 그래서 공부는 꾸준히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 되었다고 해서 마음을 놔버리면 다시 한  번 꼭 그와 엇비슷
    한 것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양에너지가 한 번 더 있
    다는 것은 우뢰가 한 번 더 쳐서 이것이 에코를 일으킨다는 뜻입
    니다. 우뢰가 멎었다 해서 결과가  대번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그때에 조심해야 됩니다.
     
        다섯 번째 음효. 우뢰가 일어나니 전진함은 위험하다.
        그러나 달아나서는 안된다. 냉정히  판단하고 제사를
        계속 지내라.
     
      네 번째에서 다시 일어나는 우뢰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뢰
    가 일어나니 전진함은 위험하다." 이때 또 겁내서는 안됩니다. 잘
    살펴서 할 일이 있음을 보고 신중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
    야 합니다. 그 일은 이제 나의 마음에 있는 것이므로 실수하지 않
    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다된 밥에 재뿌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우뢰소리에 당황하여  겁에 질린 눈
        을 두리번거린다. 마음에 신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없는 태도로 전진하면 흉할 뿐이다. 우뢰는 자기
        집에 떨어진 것이  아니고, 이웃집에 떨어진  것이다.
        이웃의 일을 보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
        을 가지면 비록 흉하기는 하나 허물은 없을 것이다.
     
      "이웃의 일을 보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면
    비록 흉하기는 하나 허물은 없을 것이다." 남한테 일어났을 때 내
    일처럼 받아들여서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 내가 싫다고 무조건 되돌아 서는게  아니고, '내
    가 이렇게 싫을 때도 어떻게 싫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볼 수 있
    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보는 사람. 이러한 힘을 우리는 20대부
    터 길러야지 30세쯤되면 저절로 굴러가게 됩니다. 즉 내가 생각해
    내지 않아도 아이디어가 저절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우뢰가 아무리 일어난다 하다라도  스스로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나는 가고 싶지 않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치
    고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성공이란 심정에서 벗어난 삶입니다.
      우리는 맥아더 장군의  유명한 기도문 "나에게  편안과 행운이
    찾아오게 마옵시고, 나에게 시련과  불운이 왔을 때 그것을  나의
    뜻으로 내가 원하는 행운으로 바꿀 수  있게끔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던 맥아더 장군의 신념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진(震)]괘는 양이 맨 밑에 서로 몰려있고, 음과  양이 서로 몰
    려 있어 모두가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발하기 때문에  서로
    쾅하고 부딪쳐서 번쩍하고 번개가 날 수도 있고 반발하는 힘에 의
    해서 에코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사 무슨 일을 할 때 거
    기에는 반드시 반발하는 힘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공기도 만질려
    고 하면 아무 것도 없지만 이걸  밀어내면 공기가 나를 밀어냅니
    다. 물을 손가락으로 찌르면 물이 별게 아닌 것같지만  그렇지 않
    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지만 서로 반발하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스스로 잘
    살펴서 넘어가는 지혜를 터득하면 크게  발전한다는 것을 진위뢰
    (震爲雷)는 우리한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147
  • 41. 산택손(山澤損)
    『 손해보고 얻다 』
     
     ○     [손]은 손해를 감수하는  괘입니다. 손해를 본다고
     ●     해서 무작정 손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     많은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인간이 먼 곳의 이익을
     ●     보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에만 사로잡히는 경우는 욕
     ○     심이 앞서서 잠재의식이 발동하기 전에 먼저 의식적
     ○     으로 뭔가 이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근거
            리이기 때문에 멀리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산택손(山澤損)
     
        [손] 이란 아래 것을 덜어서 위를  늘인다는 것이다.
        즉 아래에서 위에 봉사한다는 뜻이다. 성의를 다하고
        도리를 행하면 대길하리라.허물이 없다. 성의만 있으
        면 두 개의 대나무 그릇에 곡식을 담은  간소한 재물
        만으로도 신에게 제사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대나무 그릇을 제물로 제사지내는 일도 그럴만
        한 때가 있는 것이다. 덜고 보태고, 차고 기우는 천
        지 자연의 이치는 때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은 잘했것 못했건 간에 자연의 이
    치와 법도에 맞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입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처지만을 고집하게  되면 결과가 좋아지
    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상대방이 잘못했지만, 내가 잘
    했다라는 감정만을 앞세워서 급한 나머지  주먹으로 상대편을 치
    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법은 이상하게도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맞은 정도에 따라 때린 사람을  체포하게 됨으로써 몹시 억
    울하다는 느낌을 그 사람에게 안겨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억울한 일들은 내마음  때문에 벌어진 실수에
    서 기인한 것들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는데
    모든 실수는 대개 의식과 잠재의식이  불일치하는 데에서 벌어집
    니다. 라디오가 고장났을때 그것을 고치려는 의식만  앞서서 무작
    정 뜯으면 나중에 어떻게 조립할 지를  몰라서 결국 버리지 않으
    면 안되게 됩니다. 잠재의식이 라디오를 꼭  고쳐야겠다고 생각하
    면 당장은 들을 수  없지만 전파사에 맡겨서 고쳐온다든가,  뜯을
    때 그 순서를 가지런히 놓아 나중에  조립할 때 혼돈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손] 이란 아래 것을 덜어서 위를 늘인다는 것이다. 즉 아래에
    서 위에 봉사한다는 뜻이다."  [손]은 손해를 감수하는 괘입니다.
    손해를 본다고 해서 무작정 손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많은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인간이 먼데의 이익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에
    만 사로잡히는 경우는 욕심이 앞서서  잠재의식이 발동하기 전에
    먼저 의식적으로 뭔가 이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근거리
    이기 때문에 멀리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진흙탕이 있는 물을 뛰어서  건너려고 하면 옷을 버립니다.  눈
    쌓인데를 막 뛰어가면 발목을 삡니다. 그런데서는 오히려 힘을 빼
    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이까짓 눈"하
    면서 박차고 나갈려고 하면 눈이 발목을 부러뜨리고 맙니다. 사람
    이 성숙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이득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 스스로 버릴줄 안다는 뜻입니다. 결과를 좋게 이
    끌기 위해서는 화가 난다고 주먹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잠깐 시
    간을 갖고 다시 웃으면서 상대편을 설득하여 서로 웃으면서 결과
    가 나타나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잠재의식을 움직여서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여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먼데  이익을 보고
    지금 당장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먼 곳
    을 아는 사람은 가까운 곳부터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
    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가까운 곳을 살핀다."라는 것은 매사에 성의가  있다는 뜻입니
    다. "성의만 있다면 두  개의 대나무 그릇에 곡식을  담는 간소한
    재물만으로도 신에게 제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대나
    무 그릇을 제물로 제사지내는  일도 그럴만한 때가 있는  것이다.
    덜고 보태고, 차고 기우는 천지 자연의 이치는  때에 따라 행해지
    는 것이다." 즉, 성의를 갖고 움직인다면 조그만 일을 하더라도 신
    이 감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의를 베푸는  것도 유효적
    절하게 시기를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뭔가 효도를 하기  위해서 효도관광을 보내
    드리는 일이 많은데, 그것도 어머니의 건강상태와 당시 상황을 잘
    고려해서 해야 합니다. 어머니 건강은 별로 좋지 않고  기력도 쇠
    한데 석굴암, 설악산 등 힘든 관광코스로 효도관광을 보내면 어머
    니는 돌아와서 병이 나게 됩니다. 또 효도관광하는 날  기상이 나
    빠져서 날씨도 너무 추운데  강이나 바닷가에 관광을  하면 몸에
    해롭습니다. 그때는 비록 손해가 있더라도 관광을  취소해야 합니
    다. 그런데 지불한 비용을 생각하고, 또 지금 보지 못하면 다음에
    언제 또 보겠는가 하는  마음이 앞서서 무리하게  성의를 베풀면
    오히려 화가 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성의는 항상 시기적절하게 사
    리를 참작하여 지나침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대상. 산밑에 물이 있는 것이 손괘의 괘상이다. 군자
        는 이 괘상을 보고 성냄, 화냄을 경계하고 욕심을 억
        제하여 이상에의 대성을 지향한다.
     
      "산밑에 물이 있는 것이 손괘의 괘상이다." 산  아래 물이 있으
    면 흙이 붕괴되어 내려가는데, 여기서는 물이 아래로 내려가 빠져
    버리면 산이 드러나서 돋보이게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물
    이 스스로를 낮추면 산이 돋보인다."라는 뜻입니다. 또 이괘는 음
    효와 양효가 모두 대응관계를 이루어 화합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
    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성냄, 화냄을 경계하고  욕심을 억제하
    여 이상에의 대성을 지향한다." 욕심은 근거리이기 때문에 멀리가
    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높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낮은 욕심
    을 억제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만이 이성을 통해서 이상의 대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양효.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빨리 달려가 봉
        사하라. 그리하면 웃사람과 뜻이 하나가 되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나를 희생하여 남에게 봉사하는 일
        도 사리를 참작하여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빨리 달려가 봉사하라." 자신의 일을 그
    만두고 빨리 달려가 봉사하라는 것은 자기의 입장보다 자연의 입
    장에서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질적으
    로 드러나는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 인내하라는 말입니다. "저 사
    람과 나와의 관계를 위하여 화가 나는  나를 자제하고 봉사하라."
    입니다. "그리하면 위사람과 뜻이 하나가 되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면 웃사람과 뜻이 합하게  되어 허물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웃사람은 자기 바깥의  모든 대상을 포함하여  그 대상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양효. 중용의 도를 지켜 변함이 없으면 만사
        순조로우리라. 함부로 앞으로 내달리면 흉하리라. 자
        신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손실을 가져오지 않고 남에
        게 보탬을 주는 것이 되리라.
     
      "중용의 도를 지켜 변함이 없으면 만사  순조로우리라." 가운데
    효가 다섯번째 음효와 정응관계를 이루어  중용을 지키고 있습니
    다. 그런데 마음이 확 변해서 "해보니까 잘되더라."하여  자만심을
    가지면 안됩니다. "함부로 앞으로 내달리면 흉하리라." 한 번 잘된
    다고 자만심이 생겨서 함부로  나아가면 흉하게 됩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손실을  가져오지 않고 남에게  보탬을 주는
    것이 되리라." 즉, 무리하게 남을 도우려 하지 않는 것이 결국 도
    와주는 결과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피곤하면 피곤한  것을 쉬도
    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어머니를 효도관광 보내 드릴 때, 어머
    니가 피곤하시면 여행비는 이미 지불하였더라도 효도관광을 취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돈 생각해서 무리하게 여행을 강행하면 어머
    니는 병이 나서 드러눕게 됩니다.
     
        세 번째 음효. 세 사람과 동행하면 그중 의심이 생겨
        한 사람을 잃게 된다.  혼자서 가면 벗을 얻어  서로
        협력할 수 있으리라.
     
      "세 사람과 동행하면 그중 의심이  생겨 한 사람을 잃게 된다.
    혼자서 가면 벗을 얻어 서로 협력할 수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
    이 끝내 따라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 혼자라도 가겠다.'는 생각
    으로 매사를 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될  동안을 기다려서
    같이 가려고 하면 그중에  한 두명은 잃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때'를 아는 사람은 진짜  꼭 행하는 사
    람입니다. 사회생활을 하건  가정생활을 하건 일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의  일이건 내 일이건 자기 일같이 성실하게
    합니다. 고로 그 사람에게는 나중에 커다란 복이 오게 됩니다. 진
    짜 중요한 핵심을 아는 사람은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직접하는 사
    람입니다. 이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순조로운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알고, 중요한 것이 내 몸처럼 느껴지면  생각과 결
    과를 논하기 전에 몸이 먼저 실행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런 사람
    은 이미 만물과 하나로 연결되어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연결되어
    진 부분을 통해서 만물이 그 사람을  보좌해주고 복을 주게 됩니
    다. 자신만을 위하다 보면 만물로부터 들어오는 그러한 복의 운이
    막혀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자칫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가까운데 이
    익을 본다고 하는 것이 엄청난 손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자각해
    야 겠습니다.
     
        네번째 음효.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
        의 결점을 고쳐라.  옳은 일은 빨리할수록  기쁨이고
        허물이 없으리라.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의 결점을  고쳐라." 자
    기 자신이 잠재의식적으로 성리에 가깝게  가고자하는 사람이 아
    니면 자신의 결점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자꾸 발견
    하다 보면 최상의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만족은 누
    구나 다 똑같습니다. 물론 각자  마음의 정도는 다르지만, 만족해
    하는 마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
    람은 감정대로 움직일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득 이전에 자기 만
    족을 내세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면, 먼저 되지  않는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을 앉은채로 발견해 낼려고 하면 절대로 발
    견되지 않습니다. 나는 날이 밝은 후 해도 될 것을  꼭 밤에 하다
    가 끝내가서는 결정적으로  망가뜨려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억울한 것만큼 억울한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게 내 마음때문에 벌어진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앞이 조금 고생되더라도 뒤가  명료해지도록 하는 쪽으
    로 행동하였습니다. 나는 무언가 뜯을 때보면 순서대로 놓습니다.
    뜯다보면 어떤 때는 이게 먼저인지, 저게 먼저인지  모를 때가 있
    습니다. 이미 시작할 때 벌어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내 결점을 스
    스로 줄여갈려고 노력한데서 이러한 행동이 생긴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의 결점을 고치기 위해 "오늘은 반성해야지." "결점
    을 고쳐야지." 하고 그렇게 마음의 굳은 결의를 갖는 것도 좋습니
    다. 그러나 결의보다는 눈을 맑게  뜨고, 어떠한 시련이 닥친다해
    도 가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면 당신은  곧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
    로 자시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그대는 비로서 기쁨이라는 것을 맛볼 것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누군가 그를 도와  유익하게 하리라.
        어떤 영험한 거북점도 이 길조를 틀리다고는 못할 것
        이다. 하늘이 보우하시니 크게 길하다.
       
      "누군가 그를 도와 유익하게 하리라." 병을 고치듯이 자기 자신
    을 발견해 내면서 일을 행하면 만물이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이때
    부터 협력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지혜가 트이게 되는  것입니
    다.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뭐가 없어서 못한다."라고  하고, 할
    줄 아는 사람은 "뭐가 없으면  이것을 대신쓴다." 라든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용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사용한다" 하게 됩니다. 이
    차이는 아주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것이 곧 지혜의 있고  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보우하시니 크게 길하다." 이 정도 되면  만물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결국 만물이  모두 이 사람을  돕는 것이며, 하늘이
    보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자
    신을 낮추는 공부를 하여 손해를 통해 곧  뒤에 큰 이익으로 돌아
    온다는 법칙을 알아야겠습니다.
     
        여섯번째 양효입니다. 크게 뜻을 얻으니 희생없이 공
        헌할 수 있다. 바른 도리를 지키면 길하리라.  제 집
        일은 돌보지 않고 나라일에만 충성을  바치는 신하를
        얻으니 만사 순조로우리라.
     
      "크게 뜻을 얻으니 희생없이 공헌할 수 있다." 이미 자기 결점
    을 계속 고쳐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큰 희생없이도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길은 명료합니다. 문제는 그 명료를  인간이 받아들이느냐, 못 받
    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생활인으로서의 생각과 인간으로서의  생
    각은 다릅니다. 즉 사람이 머리가 똑똑해서 쓰는 지혜와 생활인으
    로서의 지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선진국 정부가 다
    른 점은, 선진국은 생활인으로서의 지혜를 짜내고 있으며, 우리는
    머리로서 지혜를 짜낸다는 것입니다. 사춘기때는  생활인으로서의
    지혜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감성의  지배를
    우선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성의 지혜로 살기에 앞서서 성리(性理)의 지혜로 살아
    야 합니다. 성리의 자세로서 몰입을 해야지만 비로서 우리는 인생
    을 건질 수가 있습니다. 또 인생의 진정한 낙과 보람을 찾을 수 있
    습니다. 우리는 성리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의식만 가고자 하면 잠재의식은 점점 무뎌집니다. 그렇게 되면 손
    해를 보면서 큰 이익을 얻는 산택손의 가르침을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낮춘 연못이 산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을 나타나게 하는 비결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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