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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4
    그 대신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던 성인 남자노동자의 야간노동을 부활시켰다. 그들은 10시간 노동법 하에서는 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주석 11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p. 133-134.)
    두번째 조치는 식사를 위한 법정휴식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공장 감독관들의 말을 들어보자.

    "노동시간이 10시간으로 제한된 때부터 공장주들은 [비록 아직까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즉, 예컨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작업하는 경우, 그 들은 아침 9시 전에 한 시간과 저녁 7시 뒤에 반 시간, 합계 1 1/2시간을 식사시간으로 제공하 기만 하면 법률의 규정을 충분히 지키는 셈이라고. 그들이 현재 점심식사에 반 시간 또는 한 시 간을 주는 경우도 있으나, 동시에 그들은 10시간 노동일의 경과 중에는 1 1/2시간의 어떤 부분 도 허용해 줄 의무는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석 114: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4월 30일?, p. 47.)

    그러므로 공장주들의 주장에 의하면, 식사시간에 관한 1844년 법률의 엄격한 규정들은 노동자들에게 공장에 출근하기 전과 공장에서 퇴근한 뒤에, 다시 말해 자택에서 식사하는 것을 허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노동자들은 아침 9시 이전에 점심식사를 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형사재판소는 규정된 식사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반드시 작업시간 중의 휴식시간에 제공되어야 하며, 또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중단없이 10시간 동안 계속 노동시키는 것은 위법이다. "(주석 115: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 일?, p. 130.)

    이처럼 유쾌한 시위운동을 한 뒤, 자본은 1844년의 법률조문에 합치되는 합법적인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진정 반란을 개시했다.
    분명히 1844년의 법률은 낮 12시 이전에 일을 한 8세 내지 13세의 아동을 오후 1시 이후에 다시 일시키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 법률은 노동시간이 낮 12시 또는 그보다 늦게 시작하는 아동들의 6 1/2시간의 노동을 전혀 규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8세의 아동들이 낮 12시에 노동을 시작한다면, 12시부터 1시까지(1시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2시간), 그리고 저녁 5시부터 8시 반까지(3 1/2시간), 합해 법정시간인 6 1/2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는 그보다도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아동의 노동을 저녁 8시 반까지 일하는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노동과 합치되도록 하기 위해 공장주들은 아동들에게 오후 2시 이전에는 일거리를 주지 않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한 다음 그들을 저녁 8시 반까지 중단없이 공장 안에 붙들어 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계설비를 하루 10시간 이상 가동시키려는 공장주들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아동들을 [미성년자들과 부녀자들이 모두 공장에서 퇴근한 뒤에] 오직 성인남자들과 함께 저녁 8시 반까 지 일을 시키는 관행이 영국에 수립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석 116: 같은 보고서, p. 142.)
    노동자들과 공장감독관들은 위생상 및 도덕상의 이유로 이에 항의했다. 그러나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 행동의 결과는 감수할 테요.
    어서 재판이나 해 주시오.
    채무증서에 쓰인 대로 벌금을 받을 거요" {샤일록의 말}

    사실상 1850년 7월 26일 하원에 제출된 통계자료에 의하면, 모든 항의에도 불구하고 1850년 7월 15일 257개 공장에서 3,742명의 아동이 '관행(慣行)'에 따르고 있었다.(주석 117:?공장감독관 보고서. 1850년 10월 31일?, PP 5-6.)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자본의 교활한 눈은, 1844년의 법률이 적어도 30분간의 휴식시간 없이는 오전의 5시간 노동은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오후노동에 대해서는 그러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자본은 8세의 어린 노동자를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쉴새없이 혹사시킬 뿐 아니라 그 동안 굶기기까지 하는 쾌락을 요구했고 또 얻게 되었다.

    "예, 가슴입니다.
    증서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주석 118: 자본의 본성은 자본이 발전하지 못한 형태에서나 발전한 형태에서나 변함이 없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노예소유자들 의 영향력에 의해 멕시코에 적용된 법전에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산 이상, 노동자는 자본가의 '화폐'라는 말이 있다. 이와 동일한 견해가 로마의 귀족들 사이에도 통용되고 있었 다. 귀족이 평민 채무자에게 대부한 화폐는 채무자의 생활수단을 통해 채무자의 피와 살로 되었을 것이므로, 이 '피와 살'은 '그들의 화폐'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샤일록과 같은 십동표( 十銅表: Ten Table)의 법률{고대 로마의 법전}이 나온 것이다. 귀족인 채권자들이 때때로 티 베르강의 건너편에서 채무자의 살코기로 향연을 베풀었다는 랑게(Linguet)의 가설(假說)은 예 수의 성찬에서 기독교도들이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다우머(Daumer)의 가설과 마찬가지로 여 전히 의심스럽지만.) {샤일록의 말}

    공장주들은 1844년의 법률이 아동노동을 규제하는 한, 그 법률의 문구에 그처럼 샤일록식으로 집착했으나, 그것이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을 규제하는 한, 그 법률 자체를 반대하는 공공연한 반란을 준비했다. 우리는 '허위에 찬 릴레이 제도'의 철폐가 이 법률의 주요 목적이며 주요 내용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공장주들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선언으로 그들의 반란을 개시했다. 즉, 1844년의 법률에는 15시간이라는 공장노동일 중에서 공장주들이 마음대로 시간을 갈라 미성년
    자와 부녀자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는데, 이것은 노동시간이 1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던 동안에는 '비교적 해롭지 않았지만', 10시간 노동법 하에서는 '매우 큰 곤란'을 준다는 것이었다.(주석 11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4월 30일?, p. 133.)

    그리하여 공장주들은 감독관들에게, 자기들은 법률조문을 무시하고 구(舊)제도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아주 냉정하게 통고했다.(주석 120: 그 중에도 박애주의자 애쉬워스(Ashworth)는 레너드 호너에게 보낸 퀘이커 교도적인 불쾌한 편지 가운데서 그렇게 말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p. 4).) 이것은 '더 높은 임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조언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10시간 노동법 하에서 영국의 공업상의 패권(覇權)을 유지하기 위한 단 하나의 가능 한 방안이다“ "릴레이 제도 하에서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것은 다소 곤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공장감독관들과 부감독관들의 수고를 약간 덜어주기 위해 이 나라의 크 나큰 공업적 이익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도 좋단 말인가?"(주석 121: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p. 138, 140.)
    이러한 모든 술책은 물론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장감독관들은 법정에 고발했다. 그러나 곧바로 내무장관 조지 그레이(G. Gray)에게는 공장주들의 탄원서가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그는 1848년 8월 5일자 공람(公覽)에서 공장감독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미성년자들에게 법에서 허용한 시간 이상으로 실제로 일을 시켰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법조문을 위반했다거나 릴레이 제도에 의해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고 해서 공장주들을 고발하지는 말 것."

    이에 따라 공장감독관 스튜어트는 15시간의 공장노동일 범위 안에서 이른바 릴레이 제도를 스코틀랜드 전체에 허가했고, 그 결과 그 곳에서는 오래지 않아 이 제도가 옛날처럼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잉글랜드의 공장감독관들은 장관에게는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킬 독재권이 없다고 선언하고 '노예제도 옹호반란'에 대한 법적 조치를 계속 행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이 경우에는 주의 치안판사들](주석 122: 이 '주 치안판사', 즉 코베트(Cobbett)가 말하는 이른바 '위대한 무급자'(無給者)는 각 주의 유지들 중에서 나오는 일종의 무급판사이다. 사실상 그들은 지배계급의 세습적인 사법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 자본가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면, 아무리 그들을 고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들 법정에서는 공장주들이 자기 자신을 재판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커쇼. 리즈회사(Kershaw, Leese & Co.)의 방적업자인 에스크리지(Eskrigge)라는 사람이 자기 공장에서 실시할 릴레이 제도의 계획표를 자기 지방의 공장감독관에게 제출했다. 그것을 거절한다는 회신을 받은 뒤 그는 처음에는 조용히 있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역시 방적업자인 로빈슨(Robins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스크리지의 충복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의 친척이었다-이 에스크리지가 고안한 것과 똑같은 릴레이 제도를 채용했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스톡포트시의 치안 판사 앞에 불려 나왔다. 4명의 판사가 참석했는데, 그 중 3명은 방적업자였고, 수석에는 바로 그 에스크리지가 앉아 있었다. 에스크리지는 로빈슨의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제 로빈슨에 대해서 정당한 것은 에스크리지에게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합법적인 판결에 근거해 즉시 이 제도를 자기 자신의 공장에도 채용했다.(주석 12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p. 21-22. 같은 종류의 실례에 대해서는 같은 보고서, pp. 4-5 참조.) 물론 법정의 구성 자체가 하나의 법률위반이었다.(주석 124: 존 홉하우스(John Hobhouse)의 공장법으로 알려져 있는 윌리엄 4세 통치 제1년과 제2년의 법률(제24장, 제10조)에 의하면, 방적공장 또는 직물공장의 소유자 또는 그러한 소유자의 부자. 형제는 공장법에 관계되는 사건에서는 치안판사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금지되고 있었다.) 감독관 하우엘(Howell)은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재판에서 이와 같은 광대극은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이러한 소송사건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이러한 판결과 합치되도록 법률을 고치든지, 아니면 결함이 더 적은 법정이 재판하도록 해 서 판결을 법률에 합치시키든지 해야 한다. 유급판사(有給判士)가 절실히 요망된다. "(주석 12 5:?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22.)

    형사재판소는 1848년의 법률에 대한 공장주들의 해석을 부당하다고 선언했으나, 사회의 구제자라는 그 재판소도 공장주들의 목적을 거부하지 않았다. 레너드 호너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나는 일곱 군데의 서로 다른 재판 관할구에서 10건을 고발하여....법률을 집행하려고 했으나
    단 한 건에 대해서만 치안판사의 지지를 받았다....나는 법률위반을 이유로 더 이상 고발해도 소 용없다고 생각했다. 1848년의 법률 중 노동시간을 획일적으로 만들기 위해 제정한 부분은....나의 지역(랭카셔)에서는 더 이상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나와 나의 보조관들은 릴레이 제도를 실시하 고 있는 공장들에서 미성년자와 부녀자를 10시간 이상 일시키지 않는다고 확증할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1849년 4월 말에는....114개의 공장이 이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그 수는 지난 얼마 동안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공장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 반 까지 131/2시간 작업하고 있으며....약간의 경우에는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15시간 작 업하고 있다. "(주석 126: 같은 보고서, p. 5.)

    이미 1848년 12월에 레너드 호너는, 이와 같은 릴레이 제도 하에서는 어떤 감독제도도 극도의 과도노동을 결코 방지할 수 없다고 한결 같이 충고하는 공장주 65명과 공장관리인 29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주석 127: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10월 31일?, p. 6.) 동일한 아동들과 미성년자들이 15시간 동안 방적실에서 직포실로,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교대되곤 했다.(주석 128: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21.) 다음과 같은 제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 제도는 교대제(交代制)라는 핑계 하에, 노동자들을 카드처럼 한없이 다양하게 뒤섞어 놓 고, 개개인들의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을 매일 변동시킴으로써, 동일한 작업반에 속하는 노동자 전 원이 결코 전과 동일한 시간에 전과 동일한 장소에서 함께 작업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석 12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95.)
    그러나 현실의 과도노동을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이 이른바 릴레이 제도는 푸리에(Fourier)의 유머가 넘치는 '단기복무' {노동자들이 노동에 싫증을 내지 않도록 다양한 노동에 짧은 시간적 근무하게 하는 것}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자본의 망상(妄想)의 산물이다. 물론 이 경우 '노동의 즐거움'이 '자본의 즐거움'으로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존경할만한 신문'이 '적당한 배려와 순서가 달성할 수 있는 것'의 모델이라고 찬양한 공장주들의 릴레이 계획을 살펴보자. 노동자 전원은 흔히 12-14개의 부류로 나누어지고, 그 구성원은 끊임없이 교체되었다. 15시간의 공장노동일 동안 자본은 노동자를 때로는 30분, 때로는 한 시간씩 이 부류로 끌어들였다가는 밀어내고, 다시 저 부류로 끌어들였다가는 또 다시 밀어냈다 하면서, 10시간 노동이 끝날 매까지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분산된 토막시간씩 노동자들을 이리저리로 몰아댔다. 무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물이 번갈아 가면서 다른 막의 다른 장면에 등장하지 않으면 만 되었다. 그리나 연극이 계속되는 동안 배우가
    무대를 떠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노동자들은 공장에 오고가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빼고도 15시간 동안 공장에서 떠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휴식시간은 억지로 쉬지 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변했으며, 그리하여 소년노동자들은 술집으로, 젊은 여공들은 창녀촌으로 가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본가가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지 않고 자기의 기계설비를 12시간 내지 15시간 가동시키기 위해 날마다 새로운 계획을 생각해 낼 때마다, 노동자는 자기의 식사를 때로는 이 자투리 시간
    에 또 때로는 저 자투리 시간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10시간 노동일 쟁취투쟁 당시 공장주들은 노동자 무리들이 10시간 노동에 대해 12시간분의 임금을 받으려고 청원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지금은 공장주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며, 노동력을 12시간 내지 15시간 동안 마음대로 사용하고 10시간분의 임금을 지불했다.(주석 130: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9년 4월 30일?, p. 6과,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에 게재된 공장감독관 하우엘(Howell)과 손더즈(Saunders)의 교대제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보라. 또 l849년 봄 애쉬톤(Ahshton) 및 그 부근의 목사들이 이 제도에 반대해 여왕에게 제출한 청원서를 보라.) 이것이 문제의 요점이었고, 이것이 10시간 노동법의 공장주 판(版)이었다! 이 공장주들은 바로 인정을 쏟으면서 아양을 떨던 자유무역론자들인데, 그들은 곡물법 반대운동이 전개된 10년 동안 노동자들을 향해 곡물의 수입이 자유롭게만 된다면 영국산업의 자본력으로 자본가를 부유하게 하는 데에는 10시간의 노동으로 아주 충분하다는 것을 1파운드, 1실링, 1페니까지 계산해 가면서 증명했던 것이다.(주석 131: 예컨대 그레그(R. H. Greg), ?공장문제와 10시간 노동법안?(런던, 1837년)을 참조하라.)
    2년간에 걸친 자본의 반란은 드디어 영국의 4대 최고재판소 중의 하나인 재무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최후의 승리를 획득했는데, 이 재판소는 1850년 2월 8일에 제기된 한 소송사건에서, 공장주들은 1844년의 법률의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법률 자체가 이 법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몇 개의 어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10시간 노동법은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다. "(주석 132: 엥겔스,“「영국의 10시간 노동법” (내가 편집한 ?신 라인 신문, 정치경제평론?, 1850년 4월호, p. 13). 이 '최고'재판소는 미국 남북전쟁 때에도 해적선의 무장을 금지한 법조문의 의미를 반대로 해석하게 만드는 문구의 애매성을 발견했다.) 이때까지는 미성년자와 부녀자에 대한 릴레이 제도의 적용을 꺼리고 있던 다수의 공장주들도 이제는 그것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주석 133: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0년 4월 30일?)
    그러나 자본의 이러한 외견상의 결정적 승리에 뒤이어 곧바로 반격이 가해졌다. 이때까지 노동자들이 해온 저항은 비록 완강하고 끊임없이 되풀이되기는 했으나 소극적인 것이었다. 이제야 그들은 랭카셔와 요크셔에서 위협적인 집회를 열고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즉, 10시간 노동법
    이라는 것은 단순한 사기며, 의회의 기만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공장감독관들은 계급적 적대관계가 들어보지 못한 정도의 긴장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정부에 긴급히 경고했다. 일부 공장주들까지도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치안판사들의 모순된 판결로 말미암아 매우 비정상적인 무정부 상태가 지배하게 되었다. 요 크셔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률과 랭카셔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 서로 다르며, 같은 랭카셔 안 에서도 어떤 교구의 법률은 그 인접한 교구의 법률과 다르다. 대도시의 공장주는 법망을 피할 수 있으나, 농촌지방의 공장주는 릴레이 제도에 필요한 인원, 더욱이 노동자들을 한 공장에서 다 른 공장으로 이동시키는 제도에 필요한 인원을 구할 수 있다. "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모든 자본가들이 평등해야 하는 것은 자본의 법이 규정하는 자본가들의 기본권리이다.
    이와 같은 사정 하에서 공장주와 노동자 사이에는 타협이 성립되었고, 그것은 1850년 8월 5일의 새로운 추가적 공장법으로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일은 1주일의 첫 5일은 10시간에서 10 1/2시간으로 연장되었고, 토요일에는 7 1/2시간으로 제한되었다. 작업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수행되어야 하며(주석 134: 겨울에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변경해도 된다.), 식사를 위한 1 1/2시간의 휴식이 허용되어야 하는데, 이 식사시간은 전원에게 동시에, 그리고 1844년의 규정들에 따라 주어야 했다. 이것으로 릴레이 제도는 영원히 폐지되었다.(주석 135: "현행법(1850년)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있는 사람들{미성년자 와 부녀자}에게 노동의 시작과 종료를 동일하게 한다는 이익을 얻는 대신 '10시간' 노동법의 이익을 포기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2년 4월 30일”, p. 14).) 아동노동에 대해서는 1844년의 법률이 계속 효력을 유지 했다.
    한 부류의 공장주들은 이번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의 아동에 대한 특권을 확보했다. 견직물 공장주들이 그들이었다. 1833년에 그들은 협박조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만약 온갖 연령의 아동들에게 하루 10시간씩 일을 시킬 자유가 박탈된다면, 우리들의 사업은 중단될 것이다. “(주석 136: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4년 9월 30일?, p. 13.)그들은 충분한 수의 13세 이상의 아동들을 구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바랐던 특권을 쟁취했다. 이러한 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 나중의 조사에서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 10년 동안 [의자에 앉혀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린 아동들의 피로 매일 10시간씩 명주실을 뽑아내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주석 137: 같은 보고서.) 1844년의 법률은 견직물 공장주로부터 11세 미만의 아동을 하루 6 1/2시간 이상 일시키는 '자유'를 '박탈'했지만 그 대신 그들에게 11세 내지 13세의 아동을 하루 10시간씩 일시킬 특권을 보장해 주었으며, 또 다른 모든 아동들에게 강제적으로 적용되고 있던 취학(就學)의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구실로 되었다.

    "섬세한 견직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끝이 부드러워야 하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공장에 들 어와 일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다. “(주석 138: ?공장감독관 보고서. 1846년 10월 31일?, p. 20.)

    남부 러시아에서 뿔달린 가축들이 가죽과 기를 때문에 도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동들은 부드러운 손끝 때문에 도살되었다. 드디어 1850년에는 1844년에 허용된 특권이 명주실을 꼬는 부문과 명주실을 감는 부문에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를 박탈당한 자본의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11
    세 내지 13세의 아동의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10 1/2시간으로 연장되었다. 그 구실은 "견직물 공장의 노동은 다른 섬유공장의 노동보다 쉬우며 또 건강에 덜 해롭다"(주석 139: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1년 10월 31일5, p. 26.)는 것이다. 그 뒤의 정부의 의학적 조사가 증명한 바에 의하면, 그와는 반대로

    "견공업 지방의 평균사망률은 매우 높고, 주민 중 여성들의 사망률은 심지어 랭카셔의 면공업 지방보다 더 높다. "
    (주석 140: 같은 보고서, p. 27. 일반적으로 공장법 때문에 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 현저하게 좋아 졌다. 의사들의 모든 증언은 이 점에서 일치하며 또 나 자신의 관찰에 의해 그것을 확신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출생 뒤 몇 년 사이의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은 무시하더라도, 그린하우 (Greenhow)의 공식보고는 공장지역의 건강상태가 '표준적인 건강상태에 있는 농업지역'보다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증거로 1861년의 그의 보고 중에서 특히 다음 표를 보라.

    ┌───────┬──────┬──────┬──────┬──────┬─────┐
    │ 성인 남자 중│남자 10만 명│ │여자 10만 명│성인여자 중 │ │
    │ │ │ │ │ │ 여자의 │
    │공장 취업자의 │ 중 폐병 │ 지방명 │ 중 폐병 │공장취업자의│ │
    │ │ │ │ │ │직업 종류 │
    │ 백분율 │사망자의 수 │ │사망자의 수 │ 백분율 │ │
    ├───────┼──────┼──────┼──────┼──────┼─────┤
    │ 14.9 │ 598 │ 위건 │ 644 │ 18.0 │ 면 │
    │ 42.6 │ 708 │ 블랙번 │ 734 │ 34.9 │ 면 │
    │ 37.3 │ 547 │ 핼리 팩스 │ 564 │ 20.4 │ 털실 │
    │ 41.9 │ 611 │ 브랫포드 │ 603 │ 30.0 │ 털실 │
    │ 31.0 │ 691 │ 매클즈필드│ 804 │ 26.0 │ 명주 │
    │ 14.9 │ 588 │ 리크 │ 705 │ 17.2 │ 명주 │
    │ 36.6 │ 721 │스토크-어폰-│ 665 │ 19.3 │ 토기 │
    │ │ │트렌트 │ │ │ │
    │ 30.4 │ 726 │울스탄톤 │ 727 │ 13.9 │ 토기 │
    │ │ 305 │8개의 건강한│ 340 │ │ │
    │ │ │농업지방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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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감독관들의 반 년마다 반복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 악(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주석 141: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국의 '자유무역주의자들'은 비단제품에 대한 보호관세를 마지못해 단념했던 것이다. 이제 프랑스로부터의 수입을 막는 보호 대신에 영국 공장아동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1850년의 법률은 다만 '미성년자와 부녀자들'을 위해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의 15시간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12시간으로 변경시킨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법률은 아동들에 대해서는 달라진 것이 없으며, 비록 아동들의 총노동시간은 6 1/2시간을 초과할 수 있었지만, 앞에서 말한 12시간이 시작되기 전 1/2시간과 끝난 뒤의 2 1/2시간에는 여전히 아동을 고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법률이 심의될 때 공장감독관들은 이와 같은 변칙적인 것의 파렴치한 남용에 관한 통계자료를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경기가 좋은 해에는 아동들을 보조로 붙여 성인노동자의 노동일을 15시간까지 연장시키려는 의도가 배후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3년간의 경험은 그와 같은 시도가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주석 142: ?총장감독관 보고서 l853년 4월 30일?, p. 30.) 그러므로 1850년의 법률은 1853년에 이르러 드디어 "아침에는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노동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고 저녁에는 이들의 노동이 끝난 뒤에 아동을 고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보충되었다. 이때부터 1850년의 공장법은 거의 예외없이 그것이 적용되는 산업부문들에서 일체의 노동자들의 노동일을 규제하게 되었다.(주석 143: 영국 면공업의 전성기인 1859년과 1860년에 공장주들은 시간외 노동에 대해 높은 임금이라는 미끼로 성인 남자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일의 연장에 찬성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수동 뮬방적기와 자동방적기로 일하는 방적공들은 자기들의 고용주에게 건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이 시도에 종말을 짓게 했는데, 그 건의서에는 특히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생명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보다 1주에 거의 2일(20)시간이나 오래 공장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가 이 나라의 노예와 같다고 느끼게 되며, 또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에게 해독을 끼치는 제도를 우리 자신이 영구화하고 있다고 느낀다....그러므로 크리스마스휴일과 새해휴일을 마치고 또다시 일을 시작할 때 우 리는 l 1/2시간의 휴식시간을 포함해 6시부터 6시까지, 주일 60시간 이상은 노동하지 않겠다 는 것을 귀하에게 정중히 통고하는 바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4월 30일?, p. 30).) 최초의 공장법이 제정된 이래 이미 반세기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주석 144: 어떻게 이 법률의 문구가 이 법률을 위반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회 보고 ?공장규제법?(1859년 8월 6일)과 거기에 들어 있는 레너드 호너의 "감독관들이 현재 성행하고 있는 위법적 노동을 방지할 수 있도록 공장법을 개정하기 위한 제안"을 보라.)
    공장법이 1845년의 날염공장법(Printworks Act)에서 처음으로 자기본래의 적용영역을 넘어섰다. 자본이 이 새로운 ‘탈선행위'를 용인할 때의 불만은 이 법률의 한 자(字) 한 구(句)가 말하고 있다. 이 법률은 8세에서 13세까지의 아동과 부녀자의 노동일을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의 16시간으로 제한하면서, 그 사이에 식사를 위한 법정휴식시간은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그것은 13세 이상의 남성노동자를 밤낮을 통해 마음대로 노동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주석 146: "지난 반 년간 나의 관할구에서는 8세 및 그 이상의 아동들이 사실상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혹사당하고 있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l857년 10월 31일?, p. 39).) 이 법률은 의회가 낳은 기형아인 것이다.(주석 146: “날염공장법은 교육에 관한 규정으로 보나 노동보호에 관한 규정으로 보나 실패작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l일?, p. 52))
    그러나 공장법의 원칙은 [현대적 생산방식의 독특한 창조물인] 대공업부문들을 지배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1853-60년의 대공업부문들의 놀라운 발전과 공장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재건은 아무리 아둔한 사람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반 세기 동안의 내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투쟁}에 의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노동일의 법률적 제한과 규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공장주들 자신이 자기들의 공업부문과 아직도 '자유로운‘ 착취가 남아 있는 공업부문들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자랑스럽게 지적하고 있다.(주석 147: 예컨대 1863년 3월 24일자 ?더 타임즈?지에 보낸 편지에서 포터 (E. Potter)가 그러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더 타임즈?는 그에게 10시간 노동법을 반대한 공장주들의 반란을 상기시키고 있다.) '정치경제학‘의 바리새인{위선자}들은 새삼스럽게 노동일의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통찰이 그들 '과학'의 특징적인 성과라고 선언했다.(주석 148: 투크의 ?가격의 역사?의 공저자이고 편집자인 뉴마치(W. Newmarch)가 그러한 견해를 표명했다. 여론에 대해 비겁한 양보를 하는 것이 과학적 진보인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공장주들이 불가피한 대세에 체념해 순응하게 된 뒤 자본의 저항력은 점차 약화되어 갔고, 이에 반해 노동자계급의 공격력은 [공장법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회계층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동맹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강화되어 갔다. 이리하여 1860년 이래 공장법은 비교적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염색공장과 표백공장은 1860년에(주석 149: 1860년에 제정된 표백업과 염색업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노동일은 1861년 8월 1일부터 잠정적으로 12시간으로 단축되었다가 1862년 8월 1일부터 최종적으로 10시간으로, 즉 평일에는 10 1/2시간, 토요일에는 7 1/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해 1862년에는 종전과 같은 연극이 되풀이되었다. 공장주들은 의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12시간 노동을 앞으로 1년만 더 용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산업의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면화 기근) "만약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씩 노동하고 가급적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다. " 이러한 취지의 법률안이 하원에 제출되었는데, "그것이 폐기된 것은 주로 스코틀랜드의 표백공장 노동자들의 운동의 결과였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1일“, pp. 14-15).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체하다가 바로 그 노동자들로부터 이처럼 격퇴를 당하자, 자본은 법률가의 돋보기 안경의 도 움을 받아, 1860년의 법률도 ['노동보호'를 위한 모든 의회 법률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애매 한 문구로 쓰여 있어 ‘다림질공(calenderer)'과 '마무리공(finisher)'을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시 킬 수 있는 구실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나 자본에 충실하게 봉사하는 영국의 사법당 국은 민사재판소를 통해 이와 같은 궤변을 승인했다. ”노동자들은 크게 실망했다....그들은 과 도노동에 대해 불평했다. 그리고 입법의 명백한 취지가 용어의 불완전한 정의 때문에 허사가 된다는 것은 유감천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같은 보고서, p. 18).), 레이스공장과 양말공장은 1861년에 각각 1850년의 공장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제1차 보고(1863년)의 결과, 일체의 토기(도자기뿐 아니라). 성냥. 뇌관. 탄약. 카펫. 능직포의 제조공장, 그리고 '마무리 작업'이라는 이름 하에 총괄되는 수많은 과정들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들도 역시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1863년에는 '야외표백업'(주석 150: '야외표백업자들'은 부녀자는 야간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에 의해 1860년의 표백공장의 적용을 면제받고 있었다. 이 거짓말은 공장감독관들에 의해 폭로되었고, 동시에 의회도 노동자들의 진정서에 의해 야외표백은 즐거운 초원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목가적인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이 야외표백업에서는 화씨 90-100도{섭씨 32-38도}의 건조실이 사용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주로 소녀들이 일하고 있다. '냉각'이라는 말은 때때로 건조실에서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건조실에는 15명의 소녀가 있고 온도는 보통 아마포의 경우에는 80 -90도{섭씨 27-32도}이고, 고급 아마포의 경우에는 100도{섭씨 38도} 이상이다. 한가운데 밀폐식 난로를 놓은 약 10평방피트의 조그만 방에서 12명의 소녀가 다림질을 하며, 또 천을 개는 일을 한다. 소녀들은 무섭게 달아 있는 난로를 삥 둘러싸고 있으며, 난로의 열은 다림질공들을 위해 아마포를 삽시간에 말린다. 이 직공들의 작업시간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바쁠 때에는 며칠이고 계속 밤 9시 내지 12시까지 일한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31일?, p. 56). 한 의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바람을 쐬기 위한 특별한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온도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든가 여공들의 손이 땀으로 더러워질 때 몇 분간 밖에 나가는 것이 허가된다....이 여공들의 질병을 취급해 온 나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그들의 건강상태가 방적여공들의 건강상태보다 나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그런데 자본은 의회에 제출한 청원서에서 그들을 화가 루벤스 [Rubens]와 같은 수법으로 건강미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들이 가장 자주 걸리는 병 은 폐결핵. 기관지염. 자궁병. 악성 히스테리. 류마치스다. 이 병들이 발생하게 되는 직접 간 접의 원인은 공장 안의 공기가 탁하고 지나치게 덥다는 것과 그들이 겨울에 집으로 돌아갈 때 차고 습기찬 공기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만한 따뜻한 의복이 그들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같은 보고서, pp. 56, 57). 이 즐거운 '야외표백업자들'로부터 얻어낸 1863년의 법률에 관해 공장감독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법률은 외견상 제공하고 있는 보호를 노동자 에게 전혀 보장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규정의 용어가 애매모호해 아동 및 부녀자가 저녁 8 시 이후 작업하는 현장이 발각되지 않는 한 결코 보호조항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으 며, 발각된 경우에도 입증방법이 어려워 법률위반자가 처벌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같은 보 고서, pp. 52). "이 법률은 인도적인 목적이나 교육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법률로서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연령에 대한 제한이나 남녀의 구별도 없이 또 표백공장 부근에 사는 가정의 사회적 관습도 고려하지 않고, 부녀자와 아동에게 하루에 14시간[식사시간은 형
    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그보다 더 장시간 노동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허용이라기보다는 강제다) 이것을 인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공 장감독관 보고서. 1863년 4월 30일?, p. 40).)과 빵제조업이 특별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는데, 이 법에 의해 전자는 미성년자. 부녀자의 야간노동(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을 금지당했고, 후자는 저녁 9시부터 아침 5시 사이에 18세 미만의 빵제조공을 고용하는 것을 금지당했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는 농업과 광산업과 운수업을 제외한 영국의 모든 중요한 산업부문들로부터 '자유'{착취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제안들을 내놓았는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뒤에 논의하려 한다.(주석 151: 내가 이 글을 쓴 l866년 이래 또다시 반동이 시작되었다.)



    제 7 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영국의 공장업이 타국에 준 영향



    노동이 자본에 예속됨으로써 생산방식(生産方式) 그 자체가 개조된다는 점 {예: 기계제 대공업}을 무시하면, 잉여가치의 생산 또는 잉여노동의 착취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내용과 목적을 이룬다는 것을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독자는 또 우리가 지금까지 전개해 온 입장에서는 오직 독
    립적인 노동자[따라서 법률적으로 성년에 도달한 노동자]만이 상품의 판매자로 자본가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역사적 개관에서 한편으로는 근대적 산업이,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미성년인 사람의 노동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전자는 다만 노동착취의 특수한 분야로서, 후자는 다만 노동착취의 특히 주목할 만한 실례로서만 의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들의 단순한 결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 노동일을 무제한으로 또 무자비하게 연장하려는 자본의 충동은, 수력. 증기. 기계에 의해 맨처음 혁명이 일어난 산업부문들[즉, 근대적 생산방식의 최초의 창조물인 면화. 양모. 아마. 비단의 방적업과 직물업]에서 먼저 충족된다. 물질적 생산방식의 변화와 이에 상응하는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의 변화는(주석 152: “이들 계급" (자본가와 노동자) "각자의 행동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대적 입장의 결과였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113).) 처음에는 노동일의 한계를 무제한으로 확대했고, 다음에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휴식시간을 포함하는 노동일을 법률에 의해 제한하고 규제하고 균일화하는 사회적 통제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19세기 전반기에는 이러한 통제는 다만 예외적인 입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주석 153: "제한이 가해진 업종들은 증기력이나 수력에 의한 섬유제품제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감독을 받는 기업은 두 개의 조건이 필요했다. 즉, 증기력 또는 수력의 사용과, 특정한 종류의 섬유의 가공이 그것이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4년 10월 3l일?, p. 8).) 그러나 공장법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이 최초의 영역을 정복해 버리자마자, 그 사이에 다른 수많은 생산부문이 동일한 공장제도를 채택했을 뿐 아니라, 도자기공업, 유리공업 등과 같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방식을 가지고 있던 매뉴팩쳐도, 또 빵제조업과 같은 구식의 수공업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제조업등과 같은 분산적인 이른바 가내공업(家內工業)(주석 154: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최근의 보고는 이른바 가내공업의 상태에 관한 매우 값진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까지도 벌써 오래전부터 공장공업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자본주의적 착취 하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러므로 공장법은 그 예외법적 성격에서 점차 벗어나거나, 또는 [영국에서와 같이 입법이 로마 카톨릭교회의 결의법(決疑法: casuistry)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개개의 행위나 양심문제에 적용하는 법}의 방식을 따르는 곳에서는] 노동이 수행되고 있는 가옥을 모두 공장이라고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주석 155: "지난 회기(1864년)에 제정된 법률들은....그 작업방식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업종을 포괄하고 있다.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기계력의 사용은 더 이상 종전과 같이 '공장'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4년 10월 31일?, p.8).)
    둘째, 어떤 생산부문에서 일어났던 노동일 규제의 역사와, 다른 생산부문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규제를 둘러싼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단 일정한 성숙단계에 도달하면 개별 노동자[즉, 자기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로서의 노동자]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표준노동일의 제정은 장기간에 걸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內戰)의 산물인 것이다. 이 투쟁은 근대산업의 영역에서 개시되는 것이므로 우선 근대산업의 모국 영국에서 일어났다.(주석 156: 대륙적 자유주의의 낙원인 벨기에는 이 운동의 흔적도 없다. 이 나라에서는 탄광과 금속광산에서조차 모든 연령의 남녀노동자들이 시간의 장단과 시기의 여하를 가리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게' 소비되고 있다. 거기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1,000명당 733명은 성인남자, 88명은 성인 여자, 135명은 16세미만의 소년, 그리고 44명은 16세 미만의 소녀다. 용광로 등에서는 1,000명당 668명이 성인남자, 149명이 성인여자, 98명이 16세 미만의 소년, 그리고 85명이 16세 미만의 소녀다. 성숙한 그리고 미성숙한 노동력에 대한 가공할 착취에 비해 지불되는 임금은 매우 낮은데, 1일 평균 성인남자는 2실링 8펜스, 성인여자는 1실링 8펜스, 소년은 1실링 2 1/2팬스다. 그 결과 벨기에는 1850-63년에 석탄. 철 등의 수출량과 수출액을 거의 배가시켰다.) 영국의 공장노동자들은, 그들의 이론가가 자본가들의 이론에 대한 최초의 도전자였던 것과 마찬가지로(주석 157: 1810년 직후,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은 노동일 제한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주장했고, 10시간 노동일을 뉴 라나크(New Lanark]에 있는 자기 공장에 실제로 도입했다. 세상 사람들은 후자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라고 비웃었다. 그의 ‘아동의 교육과 생산적 노동의 결합', 그리고 그가 창설한 노동자의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샀다. 오늘날, 첫번째 유토피아는 공장법으로 되었고, 두번째 유토피아 {교육과 노동의 결합}는 모든 공장법에서 공식적인 관용구로 나타나 있고, 세번째 유토피아는 이미 반동적 사기를 은폐하는 가면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영국의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근대적 노동자계급 일반의 투사였다. 그러므로 공장철학자 유어는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즉, ‘노동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당당하게 싸우는 자본에 대항해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공장법이라는 노예제도'를 자기들의 기치로 삼았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고.(주석 158: 유어(Ure), ?공장철학?(불어 번역판), 파리, 1836년, 제2권, pp. 39, 40, 67, 77, 기타.)
    프랑스는 영국의 뒤를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프랑스의 12시간 노동법(주석 159: 1855년 파리 국제통계회의의 “보고”는 특히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공장과 작업장의 매일의 노동을 12시간으로 제한하는 프랑스 법률은 이 노동을 일정한 고정적인 시간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오직 아동노동에 대해서만 오전 5시와 저녁 9시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 공장주는 [이 치명적인 침묵이 그들에게 주는 권리를 이용해]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밤낮 중단 없이 일을 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하기 위해 서로 다른 2개 반의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 어느 반도 12시간 이상을 작업장에서 지내지는 않으나, 공장의 작업은 밤낮으로 계속된다. 법은 준수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측면은 어떠한가?“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이외에 ‘어두컴컴한 동일한 작업장에서 남녀가 밤에 함께 일하는데서 생겨나는 파멸적인 영향’도 역시 강조하고 있다.)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2월혁명 {1848년}이 필요했는데, 이 법률도 그것의 원형인 영국의 12시간 노동법에 비해 결함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혁명적 방법은 자기 특유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영국의 입법이 이런저런 사태의 압력에 마지못해 굴복한 결과 서로 모순되는 법조항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데 반해(주석 160: "예컨대 나의 관할구역에서는 동일한 공장건물에서 동일한 공장주가 표백업자와 염색업자로서는 표백공장법. 염색공장법의 적용을 받고, 날염업자로서는 날염공장법의 적용을 받으며, 마무리업자로서는 공장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61년 10월 31일?, p. 20에 실런 베이커(Baker)의 보고). 이 법률들의 서로 다른 규정과 그로부터 나오는 착잡한 관계를 열거한 뒤 베이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공장주들이 어떻게 해서든 법망을 피하려고 생각한다면, 이 3개의 법률의 실시를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곤란하겠는가는 이로부터도 알 수 있다. " 그러나 이것 때문에 법률가들에게는 소송사건이 보장되고 있다.) 프랑스의 혁명적 방법은 한꺼번에 전체 작업장과 공장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노동일에 대한 동일한 제한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국에서는 오직 아동과 미성년자와 부녀자의 이름으로 쟁취했을 뿐이고 또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일반적 권리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을 프랑스의 법률은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주석 161: 그리하여 공장감독관들은 드디어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말한다. "이와 같은 반대"(노동시간의 법률적 제한에 대한 자본의 반대)"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대원칙 앞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된다....자기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고용주의 권리가 정지되고, 노동자의 시간이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되는 그러한 시점이 있는 법이다. 비록 이 문제를 철저하게 규명하지 않더라도"(?공장감독관 보고서. 1862년 10월 31일?, p. 54).)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공화국의 일부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던 동안에는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마비상태에 빠져 있었다. 검은 피부의 노동자에 낙인이 찍혀지고 있는 곳에서는 횐 피부의 노동자도 해방될 수 없다. 그러나 노예제도의 폐지로부터 즉시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났다. 남북전쟁의 첫번째 성과는 8시간 노동일을 위한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뉴잉글랜드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천리마의 기세로 퍼져 나갔다. 볼티모어(Baltimore)에서 열린 전국노동자 대회(1866년 8월)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 나라의 노동을 자본주의적 노예제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필요한 최대의 급선무는 아메리 카 연방의 모든 주에서 표준노동일을 8시간으로 만드는 법률의 제정이다. 우리는 이 영예로운 성과를 달성하기까지 전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주석 162: 우리들 던커크의 노동자들은 지금의 제도가 요구하는 노동시간의 길이가 너무나 길어 우리에게 휴식과 교육을 위한 시간을 남겨주지 않으며, 도리어 우리를 노예제도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예속상태로 빠뜨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8시간이 1노동일로서 충분하며, 또 그것이 충분하다고 법적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결의하며, 유력한 신문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을 호소한다....우리에게 이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개혁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적으로 간수할 것을 결의한다"(1866년, 뉴욕주, 던저크[Dunjirk] 노동자들의 결의).)

    이와 때를 같이 하여 (1866년 9월 초)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자대회(The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제 1 인터내셔널의 대회}는 런던의 총무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노동일(勞動日)의 제한은, 그것 없이는 개선(改善)과 해방(解放)을 위한 앞으로의 모든 노력이 좌절되지 않을 수 없는 예비조건이라고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8시간을 노동일의 법정한도로 안한다,” {이 결의는 마르크스 자신이 기초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서양의 양쪽에서 [생산관계 그 자체로부터 자연적으로 성장한] 노동운동은 영국의 공장감독관 손더즈(R. J. Saunders)의 다음과 같은 진술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증해 주고 있다.

    “만약 노동시간이 제한되지 않고, 또 제정된 그 한계가 엄격히 준수되지 않는다면, 사회개혁의 더 이상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주석 163:“공장감독관 보고서. 1848년 10월 31일”, p. 112.)

    우리의 노동자는 생산과정에 들어갈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생산 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에서 그는 '노동력(勞動力)'이라는 상품의 소유자로 다른 상품의 소유자{화폐를 가진 자본가}와 상대하고 있었다. 즉, 상품소유자에 대해 상품소유자로 상대했다. 그가 자본가에게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했을 때의 계약은 그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처분한다는 사실을 이를테면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증명한 것이었다. 거래가 완결된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 그가 자유롭게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그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판매해야만 하는 기간이라는 것(주석 164: "더욱이 이러한 행동"(예컨대 1848-50년의 자본의 술책)"은 그처럼 빈번하게 제기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논박의 여지없이 증명한다. 그 주장이란 노동자들은 보호가 필요없으며, 자기의 유일한 재산-손의 노동과 이마의 땀-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의 소유자로 간주될 수 있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50년 4월 30일?, p. 45). "자유로운 노동(만약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면)은 자유로운 나라에서조차도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이라는 강력한 팔뚝이 필요하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4년 10월 31일“, p. 34). ”식사시간도 없이 하루에 14시간....노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 또는 같은 말이지만 강요하는 것"(?공장감독관 보고서. 1863년 4월 30일“, p. 40).) 사실상 흡혈귀는 “착취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주석 165: 엥겔스, “영국의 10시간 노동법안” “신 라인 신문”, 1850년 4월호. p. 5.),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된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기자신이 자본과의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자족을 죽음과 노예상태로 팔아 넘기는 것을 방지해 줄 하나의 법률[즉, 아주 강력한 사회적 장벽]을 제정하도록 하나의 계급으로서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주석 166: 10시간 노동법은 그 적용을 받는 산업부문들에서 "이전의 장시간 노동자들의 조기 노쇠현상에 종지부를 찍었다"(?공장감독관 보고서. 1859년 10월 31일?, p.47). "자본"(공장에서의)"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도덕을 해치지 않고서는 제한된 시간을 넘어 기계를 가동할 수는 결코 없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같은 보고서, p. 8).) '양도할 수 없는 인권(人權)'이라는 화려한 목록(目錄) 대신 법적으로 제한된 노동일이라는 겸손한 대헌장(大憲章)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노동자가 판매하는 시간은 언제 끝나며, 자기 자신의 시간은 언제 시작되는가"(주석 167: "그보다도 더 큰 이익은 노동자 자신의 시간과 고용주의 시간이 드디어 명백하게 구별되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이제 자기가 판매하는 시간이 언제 끝나고 언제부터 자기 자신의 시간이 시작되는가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이것을 미리 정확히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시간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미리 배정할 수 없게 된다"(같은 보고서, p. 52). "그것"(공장법)"은 노동자들을 자기 자신의 시간의 주인이 되게 함으로써 [정치적 권력을 궁극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그들에게 부여했다"(같은 보고서, p. 47). 공장감독관들은 [조심스러운 종자와 매우 신중한 표현으로] 현재의 10시간 노동법이 또한 [자본의 단순한 화신인] 자본가에게 내재하는 난폭성으로부터 자본가를 어느 정도 해방시켜 그에게 약간의 '교양'을 위한 시간을 주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전에는 공장주는 돈벌이 이외의 다른 일을 위한 어떤 시간도 가져본 적이 없고, 노동자는 노동 이외의 다른 일을 위한 어떤 시간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같은 보고서, p. 48).)를 비로소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제 11 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우리는 이 장(幸)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가치[따라서 노동일 중 노동력의 재생산 또는 유지에 필요한 부분]를 주어진 불변(不變)의 크기라고 가정한다.
    이와 같이 가정하면,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은 개별 노동자가 일정 기간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가치량(剩餘價値量)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 준다. 만약 예컨대 필요노동(必要勞動)이 하루에 6시간이고 그것을 금량(金量)으로 표현한 것이 3원이라고 한다면, 3원은 1노동력의 하루 가치 또는 1노동력(勞動力)을 사는데 드는 자본의 가치이다. 더 나아가, 만약 잉여가치율이 100%라고 한다면, 이 3원의 가변자본(可變資本)은 3원의 잉여가치량을 생산할 것이다. 바꾸어 말해, 노동자는 매일 6시간의 잉여노동량(剩餘勞動量)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가변자본은 자본가가 동시적으로 고용하는 모든 노동력의 총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다. 따라서 투하한 가변자본의 가치는 1노동력의 평균가치(平均價値)에다 고용한 노동력의 수(數)를 곱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는 경우, 가변자본의 크기는 동시적으로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한다. 그리하여 만약 1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3원이라면, 매일 100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300원의 자본을, 매일 n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3n원의 자본을 투하해야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1노동력의 하루 가치인 3원의 가변자본(可變資本)이 매일 3원의 잉여가치(剩餘價値)를 생산한다면, 300원의 가변자본은 매일 300원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며, 3n원의 가변자본은 매일 3n원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따라서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개별 노동자의 1노동일이 제공하는 잉여가치에다 고용한 노동자의 수를 곱한 것과 같다. 그러나 더 나아가 재별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량은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는 경우) 잉여가치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제1법칙(第一法則)이 나온다. 즉, 생산되는 잉여가치량(剩餘價値量)은 투하한 가변자본(可變資本)의 크기에 잉여가치율(剩餘價値率)을 곱한 것과 같다. 바꾸어 말해, 그것은 동일한 자본가에게 동시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력의 수와 {l노동력의 평균가치및} 개별 노동력의 착취도(搾取度)의 곱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잉여가치량을 S로, 개별 노동자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잉여가치를 s로, 1노동력의 구매에 매일 투하하는 가면자본을 v로, 가변자본의 총액을 V로, 하나의 평균노동력의 가치를 P로, 착취도를 a'/a (잉여노동/필요노동)으로, 그리고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를 n으로 각각 표시한다면, 다음과 같은 공식을 얻는다.

    S = s/v x V
    P x a'/a x n

    하나의 평균노동력의 가치가 불변이라는 것뿐 아니라,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들이 평균적 노동자로 환원되어 있다는 것도 항상 전제하고 있다. 생산되는 잉여가치가 착취되는 노동자의 수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노동력의 가치도 또한 불변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일정한 양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때 어떤 한 요인의 감소는 다른 요인의 증대에 의해 보상할 수 있다. 가변자본은 감소하지만 그와 동시에 잉여가치율이 동일한 비율로 증가한다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여전히 불변일 것이다. 앞의 가정에서 자본가가 하루에 100명의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서는 300원을 투하해야 하고, 잉여가치율은 50%라고 한다면, 300원의 가변자본은 150원[또는 3시간x100명]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만약 잉여가치율이 2배로 되며 [즉, 노동일이 6시간에서 9시간 대신 12시간으로 연장되며], 동시에 가변자본이 절반[즉, 150원]으로 감소한다면, 이때에도 150원[또는 6시간 x 50명]의 잉여가치가 생산될 것이다. 따라서 가변자본의 감소는 그와 비례하는 노동력의 착취도의 증가에 의해 보상할 수 있으며, 또는 고용되는 노동자 수의 감소는 그와 비례하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보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자본이 착취할 수 있는 노동(勞動)의 공급은 노동자(勞動者)의 공급과는 관계가 없다.(주석 1: 이 초보적인 법칙이 속류경제학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전도(轉倒:inverted)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처럼 노동의 시장가격이 수요 .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서, 세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지시키기 위한 지렛목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반대로, 잉여가치율의 감소는, 만약 가변자본의 크기 또는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가 그에 비례해 증가한다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을 변동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수[또는 투하한 가변자본의 크기]의 감소를 잉여가치율의 증대[또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보상하는 데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限界)가 있다. 노동력의 가치가 어떻든 [즉, 노동자의 생활유지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2시간이든 10시간이든], 한 노동자가 매일 생산할 수 있는 총가치는 [24 노동시간이 대상화되는] 가치보다 항상 적을 것이다. 만약 이 대상화된 24노동시간의 화페적 표현이 12원이라고 한다면, 총가치는 항상 12원보다 적을 것이다. 노동력 자체를 재생산하
    기 위해 [또는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투하한 자본가치를 대체하기 위해] 매일 6노동시간이 필요하다는 앞의 가정에 따르면, 100%의 잉여가치율[즉, 12시간 노동일]로 5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1,500원의 가변자본은 매일 1,500원[또는 6시간 x 500명]의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그런데 매일 200%의 잉여가치율[즉, 18시간 노동일]로 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300원의 자본은 겨우 600원[또는 12시간 x 100명]의 잉여가치량을 생산할 뿐이다. 그리고 이 자본의 총가치생산물[즉, 투하한 가변자본 더하기 잉여가치]은 결코 매일 1,200원[또는 24시간 x I00명]에 달할 수 없다. 평균노동일의 절대적 한계-이것은 본래 24시간보다 항상 짧다-는 가변자본의 감소를 잉여가치율의 증대에 의해 보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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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4
    즉 아마포로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또는=10그램의 차, 또는 =기타 등등이라는 시리즈를 거꾸로 하면, 다시 말해 이 시리즈에 이미 암시되어 있는 역의 관계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나온다.

    C. 일반적 가치형태

    1개의 저고리
    10그램 차
    40그램의 커피 = 20미터의 아마포
    1쿼터의 밀
    2온스의 금
    1/2톤의 철
    X량의 상품 A
    기타 등등의 상품


    1. 가치형태의 변화된 성격


    여러 가지 상품들은 자기의 가치를 이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1) 단순하게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 한 개의 상품으로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2) 통일적으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동일한 상품으로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상품들의 가치형태는 단순하고, 공통적이며, 따라서 일반적이다.
    제1형태와 제2형태는 한 상품의 가치를 자기 자신의 사용가치[또는 상품체]와는 다른 어떤 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다.
    제1형태는 1개의 저고리=20미터의 아마포, 10그램의 차=1/2톤의 철 등과 같은 가치등식을 제공했다. 저고리의 가치는 아마포와 동등하고 차의 가치는 쇠와 동등하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저고리와 차의 이러한 가치표현들은 [아마포와 쇠가 서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이다. 이 형태가 실제로 나타나는 것은 [노동생산물이 우연적인 때때로의 교환행위에 의해 상품으로 전환되는] 교환의 초기 단계에서 뿐이다.
    제2형태는 제1형태보다 더 완전하게 한 상품의 가치를 자기 자신의 사용가치와 구별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저고리의 가치는 아마포 . 쇠 . 차, 요컨대 저고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물건과 동등한 것으로 되어 저고리의 현물형태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여기서는 모든 상품들의 공통된 가치표현은 직접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왜냐하면, 각 상품의 가치표현에서 다른 모든 상품들이 등가(물)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개된 가치형태는 어떤 특수한 노동생산물[예컨대 가축]이 예외적으로가 아니라 관습적으로 각종 상품들과 교환되는 그때에 비로소 실제로 나타난다.
    새로 얻어진 형태[제3형태]는 상품세계의 가치들을 그 세계에서 선발된 한 개의 상품종류[예컨대 아마포]로 표현하며, 그리하여 모든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과 아마포와의 동등성(同等性)을 통해 표현된다. 이제는 어떤 상품의 가치도 아마포와 등등한 것으로서, 자기 자신의 사용가치와 구별될 뿐 아니라 일체의 사용가치로부터 구별되며, 또 바로 그렇게 됨으로써 모든 상품의 가치는 공통적으로 아마포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이 형태에 의해 비로소 상품들은 실제로 가치로 서로 관련맺거나 상호간에 교환가치로 나타나게 된다.
    이전의 두 형태는 각 상품의 가치를 단 하나의 다른 종류의 상품으로 표현하거나, 그 상품과는 다른 일련의 많은 상품으로 표현한다. 어느 경우에나 개별상품이 하나의 가치형태를 얻게 되는 것은 말하자면 개별상품의 개인적인 일이고, 개별상품은 다른 상품들의 협력 없이 이 일을 달성한다. 다시 말해, 다른 상품들은 그 상품에 대해 등가(물)이라는 수동적 역할을 할 따름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반적 가치형태는 오로지 상품세계 전체의 공동사업으로 생길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일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상품이 자기들의 가치를 동일한 등가(물)로 표현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상품종류도 반드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상품들의 객관적 실재는 순전히 이 물건들의 '사회적 존재'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이 객관적 실재는 상품들의 전면적인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형태는 반드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모든 상품들이 아마포와 동등하게 되는 이 형태에서는, 모든 상품들은 이제 질적으로 동등한 것[즉, 가치 일반]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가치량으로 나타난다. 모든 상품들의 가치량이 동일한 재료인 아마포로 표현되기 때문에 서로 비교된다. 예컨대, 10그램의 차= 20미터의 아마포이고, 40그램의 커피=20미터의 아마포라면, 10그램의 차=40그램의 커피가 된다. 바꾸어 말해, 1그램의 커피에는 가치의 실체인 노동이 1그램의 차에 들어 있는 것의 1/4만 들어 있다.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상품세계로부터 제외된 등가(물) 상품인 아마포에 일반적 등가(물)(universal equivalent)의 성격을 부여한다. 아마포의 현물형태는 모든 상품들의 가치가 공통적으로 취하는 형태며, 따라서 다른 모든 상품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 아마포의 현물형태는 온갖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화신(visible incarnation), 즉 온갖 인간 노동의 사회적 번데기 상태로 간주된다. 직포[아마포를 생산하는 사적 노동]는 이리하여 일반적인 사회적 형태[즉,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과 동등하다는 형태]를 획득한다. 일반적인 가치형태를 구성하는 무수한 등식은 아마포에 실현되어 있는 노동을 다른 상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노동과 차례 차례로 등치시키며, 그리하여 직포를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일반적 현상형태로 만든다. 이처럼 상품가치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은, 현실적 노동의 모든 구체적 형태와 유용한 속성이 사상(捨象)된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소극적으로 표현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현실적 노동을 인간노동 일반[인간노동력의 지출]이라는 공통된
    성질로 환원시킨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모든 노동생산물을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단순한 응고물로 표현하는 일반적 가치형태는, 그 자체의 구조에 의해 일반적 가치형태가 상품세계의 사회적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상품세계 안에서는 노동의 일반적 인간적 성격이 노동의 독자적인 사회적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


    2.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과 등가형태의 발전 사이의 관계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 정도와 등가형태(等價形態)의 발전 정도는 서로 대응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등가형태의 발전은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의 표현이며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상품의 단순한 또는 개별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다른 한 상품으로 하여금 '개별적인‘ 등가(물)로 되게 한다. 상대적 가치의 전개된 형태[즉, 한 상품의 가치를 다른 모든 상품들로 표현하는 것]는 다른 모든 상품들에게 상이한 종류의 '특수한 ’등가(물)이라는 형태를 부여한다. 끝으로, 특수한 한 가지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기타의 모든 상품들이 그 상품을 자기들의 통일적인 보편적 가치표현의 재료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형태 그 자체가 발전함에 따라 가치형태의 두 극 [즉,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사이의 대립도 또한 발전한다.
    이미 제1형태-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도 이 대립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고정(fix)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등식을 좌로부터 우로 읽는가 또는 그 반대인가에 따라 아마포와 저고리라는 두 개의 상품극(商品極) 각각은 어떤 때는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고 어떤 때는 등가형태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극의 대립성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아직 곤란하다.
    제2형태에서는 한 번에 단 한 가지 상품만이 자기의 상대적 가치를 완전히 전재할 수 있을 따름이다. 바꾸어 말해, 다른 모든 상품이 그 한 가지 상품에 대해 등가(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에만, 그 한가지 상품은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를 가지게 된다. 이미 여기에서는 가치등식-예컨대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또는 =10그램의 차, 또는 =1쿼터의 밀 등등-의 양변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만약 바꾸어 놓는다면, 이 등식의 전체 성격이 변경되어 전개된 가치형태가 일반적 가치형태로 전환된다.
    끝으로, 마지막 형태[제3형태]가 상품세계에 일반적 사회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를 주는데, 그것은 상품세계에 속하는 모든 상품[단 하나의 상품을 제외하고]이 등가형태로부터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때에만 그렇다. 따라서 아마포라는 하나의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과의 직접적 교환가능성의 형태[즉,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다른 모든 상품들이 이러한 형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때에만 그렇다.(주석 26: 일반적 . 직접적 교환가능성의 형태가 [마치 자석의 양극이 음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직접적 교환가능성의 형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하나의 대립적인 형태라는 사실은 결코 자명하지 않다. 이 때문에 모든 상품이 동시적으로 직접적 교환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이 생겼는데, 이것은 가톨릭 신자 모두가 교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품생산을 인간의 자유와 개인의 독립의 최고봉으로 보는 소시민에게는 상품들이 직접적으로 교환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들(이것들은 상품생산에 내재하고 있다) [반대편에서 보면 화폐가 지닌 특권]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다. 이 속물적 유토피아는 프루동(Proudon)의 사회주의에서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철학의 빈곤? 제1장} 결코 독창적인 것도 아니고 프루동보다 훨씬 이전에 그레이(J. Gray), 브레이(J. F. Bray) 등등에 의해 더 잘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식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과학'(科學)이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어떤 학파도 프루동학파처럼 '과학'이라는 말을 남용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사상(思想)이 없는 곳에는 사상을 대신해 말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는 상품은, 통일적인 따라서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로부터 제외되어 있다. 만약 아마포[또는 일반적 등가(물)로 역할하는 어떤 한 상품]가 동시에 상대적 가치형태에도 참가한다면, 그 상품은 자기 자신의 등가(물)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20미터의 아마포=20미터의 아마포로 되며, 이것은 가치도 가치량도 표현하지 않는 하나의 동어반복(同語反復)이다. 일반적 등가(물)의 상대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히려 제3형태를
    거꾸로 놓아야 한다. 일반적 등가(물)은 기타의 상품들과 공통된 상대적 가치형태를 가지지 않으며, 그것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체의 무한한 시리즈로 상대적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되면 전재된 상대적 가치형태[즉, 제2형태]가 등가(물) 상품의 독자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로 나타난다.



    3. 일반적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이행


    일반적 등가형태는 가치 일반의 한 가지 형태다. 따라서 어떤 상품도 일반적 등가형태를 취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어떤 한 상품이 (제3형태에서) 일반적 등가형태로 되는 것은, 그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에 의해 그들의 등가(물)로 선출되어 배제되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될 때에 한해서다. 이러한 배제가 최종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상품종류에 한정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상품세계의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객관적인 고정성과 일반적인 사회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자기의 현물형태가 사회적인 등가형태로 간주되는] 특수한 상품 종류는 이제 화폐상품(貨幣商品)으로 된다. 다시 말해, 화폐로 기능한다. 상품세계 안에서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 상품의 독특한 사회적 기능으로 되며, 그 상품이 그 역할을 사회적으로 독점하게 된다. 제2형태에서 아마포의 특수한 등가(물)로 기능하고 있던 상품들 중에서, 그리고 제3형태에서 자기들의 상대적 가치를 공통적으로 아마포로 표현하고 있던 상품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상품이 이 특권적 지위를 역사적으로 획득했다. 그것은 금(을)이다. 제3의 형태에서 아마포의 자리에 금을 놓으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된다.

    D. 화폐형태

    20미터의 아마포
    1개의 저고리
    10그램의 차
    40그램의 커피 = 2온스의 금
    1쿼터 의 밀
    1/2톤 철
    X량의 상품 A

    제1형태에서 제2형태로, 또 제2형태에서 제3형태로 이행하면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에 반해, 제4형태는 아마포 대신 이제 금이 일반적 등가형태를 취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제3형태와 다른 것이 전혀 없다. 제4형태에서는 금이 [아마포가 제3형태에서 한 역할과 똑같은 역할, 즉]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수행한다. 진보한 것은, 직접적인 일반적 교환가능성의 형태[즉, 일반적 등가형태]가 이제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최종적으로 상품 금이라는 특수한 현물형태와 일체화되었다는
    점뿐이다.
    금이 다른 여러 상품에 대해 화폐로 상대하는 것은, 금이 그들에 대해 이미 이전부터 상품으로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금도 개별적인 교환에서는 개별적 등가(물)로서, 그리고 전개된 교환에서는 다른 여러 가지 등가(물) 상품과 나란히 특수한 등가(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금은 어떤 때는 좁은 범위에서, 어떤 때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이 상품세계의 가치표현에서 일반적 등가(물)의 지위를 독점하자마자 화폐상품으로 된 것이다. 그리고 금이 화폐상품으로 되었을 때 비로소 제4형태는 제3형태와 구별되었다. 바꾸어 말해, 일반적 가치형태는 화폐형태(貨幣形態)로 전환되었다.
    한 상품[예컨대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를 화폐상품으로 기능하는 상품[예컨대 금]에 의해 표현하는 단순한 형태는 가격형태(價格形態: price form)이다. 그러므로 아마포의 '가격형태'는 다음과 같다.

    20미터의 아마포 = 2온스의 금

    또는 만약 금 2온스 주화의 명칭이 2원이라면,

    20미터의 아마포 = 2원

    화폐형태를 개념화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일반적 등가형태(一般的 等價形態), 따라서 일반적 가치형태[즉, 제3형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제3형태는 거꾸로 하면 제2형태[전개된 가치형태]로 환원되고, 이 제2형태의 구성요소는 제1형태[즉,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또는 X량의 상품 A=Y량의 상품 B]다. 그러므로 단순한 상품형태[또는 단순한 '가치'형태]는 화폐형태의 맹아인 것이다.



    제 4 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상품은 첫눈에는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품을 분석하면, 그것이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차 있는 기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상품이 사용가치(使用價値)인 한, 그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든, 인간노동의 생산물로 비로소 이러한 속성들을 획득한다는 관점에서 보든, 상품에는 조금도 신비한 요소가 없다. 인간이 자기의 활동에 의해 자연소재의 형태를 인간에게 유용하게 변경시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예를 들면, 목재로 책상을 만들면 목재의 형태는 변경된다. 그러나 책상은 여전히 목재이고 보통의 감각적인 물건이다. 그러나 책상이 상품으로 나타나자마자 초감각적인 물건으로 되어버린다. 책상은 자기의 발
    로 마루 위에 설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상품에 대해 거꾸로 서기도 하며, [책상이 저절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이한 망상(妄想)을 자기의 나무 두뇌로부터 빚어낸다. (주석 27: 세계 전체가 완전히 정지상태에 있는 것같이 보였던 바로 때 {1848년 혁명의 패배 직후의 반동기} 다른 것들을 고무하기 위해 중국{태평천국의 난}과 책상{독일상류계급의 신비주의}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상기한다.)
    그러므로 상품의 신비한 성격은 상품의 사용가치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또 가치를 규정하는 요소들의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여러 가지 유용노동 또는 생산활동이 아무리 다종다양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언제나 인간유기체의 기능이고, 각각의 기능은 [그 성격과 형태가 어떻든] 본질적으로 인간의 뇌 . 신경 . 근육 . 감각기관의 지출이라는 것은 생리학상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가치의 양적 규정의 토대[즉, 위의 지출의 계속시간 또는 노동량]에 관해 말한다면, 노동량(勞動量)은 노동의 질과는 명백하게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태에서도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사람의 관심사[비록 발전단계가 빠름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주석 28: 고대의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토지 면적은 하루의 노동을 기준으로 측량되었다. 이로부터 에이커는 Tagwerk(또는 Tagwanne) {하루의 일}(jurnale, terrajurnalis 또는 diornalis), Mannwerk {남자 한 사람의 일}, Mannskraft{남자 1인의 힘}, Mannsmaad {남자 1인의 풀베기}, Mannshauet{남자 1인의 수확}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게오르그 루드비히 폰 마우러(Georg Ludwig von Maurer),?마르크. 농지.? 촌락 도시제도 및 공권력의 역사에 대한 서설?, 뮌헨 1854년, p. 129 이하를 보라.) 끝으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서로를 위해 노동하게 되면, 그들의 노동도 또한 사회적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자마자 발생하는 노동생산물의 수수께끼와 같은 성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히 이 형태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종 인간노동이 동등하다는 것은 노동생산물이 가치로서 동등한 객관성을 가진다는 구체적 형태를 취하며, 인간노동력의 지출을 그 계속시간에 의해 측정하는 것은 노동생산물의 가치량(價値量)이라는 형태를 취하며, 끝으로, 생산자들 사이의 관계[그 속에서 그들의 노동의 사회적 성적이 증명된다]는 노동생산물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물건들의 사회적인 자연적 속성]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치환(置換: substitution)에 의해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되며, 감각적임과 동시에 초감각적 [즉, 사회적] 물건으로 된다. 이것은 마치 물건이 시신경에 주는 인상은 시신경 자체의 주관적 흥분으로서가 아니라 눈밖에 존재하는 물건의 객관적 형태로 파악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시각의 경우에는 광선이 현실적으로 한 개의 물건[외부의 대상]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물건[눈]으로 던져진다. 이것은 물리적인 물건들 사이의 하나의 물리적 관계다. 이에 반해,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와 가치관계[이 속에서 상품형태가 나타난다]는 상품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그로부터 발생하는 물적 관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인간의 눈에는 물건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인간들 사이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몽롱한 종교세계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는 인간 두뇌의 산물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해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세계에서는 인간 손의 산물들이 그와 같이 등장한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hism)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
    상품세계의 이와 같은 물신숭배는, 앞의 분석이 보여준 바와 같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 특유의 사회적 성격으로부터 발생된다.
    유용한 물건이 상품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사적 개인의 노동생산물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적 개인들의 노동총계가 사회의 총노동을 형성한다. 생산자들은 자기들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적 노동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도 오직 이 교환 안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바꾸어 말해, 교환행위가 노동생산물들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들과, [노동생산물을 매개로] 생산자들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들을 통해서만 비로소 사적 개인의 노동은 사회의 총노동의 한 요소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개인들이 자기들의 작업에서 맺는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눈에 보이는 바와 같이1]물건을 통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로 그리고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
    노동생산물은 교환에 의해 비로소 [유용한 물건이라는 감각적으로 다양한 물체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사회적으로 등등한 객관적 실재, 즉 가치(價値)를 획득한다. 노동생산물이 유용(有用)한 물건과 가치(價値)를 가진 물건으로 분할되는 것은, 교환이 이미 충분히 보급되어 유용한 물건이 교환을 위해 생산되며 따라서 물건의 가치로서의 성격이 이미 생산 중에 고려되는 때에만 실제로 나타난다. 이 순간부터 개별 생산자의 사적 노동은 이중의 사회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한편으로, 사
    적 노동은 일정한 유용노동으로서 일정한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켜야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총노동의 한 요소로서,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분업의 한 분야로서, 자신의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 다른 한편, 사적 노동이 개별 생산자 자신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각각의 특수한 유용한 사적 노동들이 서로 교환될 수 있으며 서로 동등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다. 서로 상이한 각종 노동의 완전한 동등화(同等化)는, 우리가 그들의 현실적 차이들을 사상(拾象)함으로써만, 즉 모든 노동을 인간노동력의 지출[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공통적인 성격으로 환원(還元)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적 생산자들의 두뇌에는 그들의 사적 노동의 이러한 이중적인 사회적 성격은 실제의 거래[생산물의 교환]에서 나타나는 형태로만 반영된다. 그리하여 사적 노동의 사회적인 유용성은 노동생산물이 타인에게 유용해야 한다는 형태로 반영되며, 각종 노동의 동등성이라는 사회적 성격은 물질적으로 상이한 노동생산물들이 모두 하나의 공통된 성질[즉, 가치]을 가지고 있
    다는 형태로 반영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들의 노동생산물이 단순히 동질의 인간노동의 물적 외피(外皮)이기 때문에 서로 가치로서 관계를 맺는다고 보지 않고. 그 반대로 생각한다. 즉, 사람들은 그들의 상이한 생산물을 교환에서 서로 가치로 등치(等値)함으로써 그들의 상이한 노동을 인간노동으로서 동등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주석 29: 그러므로 갈리아니가 "가치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물적 외피에 숨어 있는 관계라고 첨가했어야 했다(갈리아니[Galiani], ?화폐에 대해?, 쿠스토디 편, ?이탈리아 경제학고전집?, 근세편, 제3권, 밀라노, 1803년, p. 221).) 가치는 자기의 이마에 가치라고 써붙이고 있지는 않다. 가치는 오히려 각각의 노동생산물을 하나의 사회적 상형문자(象形文字)로 전환시킨다. 뒤에 인간은 이 상형문자의 의미를 해독하여 그들 자신의 사회적 산[가치]의 비밀을 해명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유용한 물건이 가치라는 성격을 가지는 것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노동생산물은, 그것이 가치인 한, 그 생산에 지출된 인간노동의 물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후일의 과학적 발견은, 인류의 발전사에 획기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물 자체의 객관적인 성격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환상을 결코 없애 버리지는 못한다. 이 특수한 생산형태[상품생산]에서만 타당한 것[즉, 서로 독립된 사적 노동들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은 사적 노동들이 인간노동으로서 동등하다는 데 있으며, 그 사회적 성격이 노동생산물에서 가치라는 존재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상품생산의 관계에 파묻힌 사람들은 [위의 과학적 발견 이전에나 이후에나 마찬가지로] 절대적 타당성-마치 과학에 의해 공기의 구성요소들이 발견된 뒤에도 공기 그 자체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의 절대적 타당성-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생산자들이 교환할 때 실제로 우선 관심을 갖는 것은 자기의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타인의 생산물을 얼마만큼 얻을 수 있는가, 즉 어떤 비율로 생산물들이 교환되는가이다. 이 비율이 어느 정도의 관습적인 고정성을 얻게 되면, 그 비율은 노동생산물의 본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1돈의 쇠와 2온스의 금이 가치가 같다는 것은, 1그램의 금과 1그램의 쇠가 [물리적 . 화학적 속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사실과 같은 것처럼 생각한다. 노동생산물의 가치로서의 성격은 노동생산물이 가치량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이 가치량은 교환자들의 의지 . 예견 행위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이다. 사회 안에서 교환자들 자신의 운동은 그들에게는 물건들의 운동이라는 형태를 취하는데, 그들은 이 운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운동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서로 독립적으로 수행되면서도 사회적 분업의 자연발생적인 일환으로 전면적으로 상호의존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사적 노동이 사회가 요구하는 양적 비율로 끊임없이 조정된다는 과학적 인식이 경험 자체로부터 생기기 위해서는, 상품생산이 완전히 발전해야 한다. 위와 같은 조정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생산물 사이의 우연적인 . 끊임없이 변동하는 교환관계 중에서, 생산물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마치 우리의 머리 위로 집이 무너져 내릴 때의 중력의 법칙과 같이] 규제적인 법칙으로서 자기 자신을 관철시키기 때문이다.(주석 30: "주기적인 공황을 통해서만 자기를 관철시킬 수 있는 법칙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당사자들의 의식과 무관한 자연법칙에 지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국민경제학비판개요?, 아놀드 루게[Arnold Ruge]와 칼 마르크스가 핀집한 ?독불연보?, 파리, 1844년에 있음).) 그러므로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량(價値틀)의 결정은 상품의 상대적 가치의 현상적인 운동의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의 비밀이다. 이 비밀의 발견은, 노동생산물의 가치의 크기가 순전히 우연적으로 결정되는 듯한 외관(外觀)을 제거하기는 하나, 결코 가치의 크기가 결정되는 물적 형태를 철폐하지는 못한다.
    인간생활의 여러 형태들에 관한 고찰, 따라서 이 형태들의 과학적 분석은 그것들의 현실의 역사적 발전과는 반대의 길을 밟는다. 왜냐하면, 그 분석은 사후적으로, 따라서 발전과정의 기성(旣成)의 결과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노동생산물에 상품이라는 도장을 찍는 [따라서 상품유통의 전제조건으로 되고 있는] 형태들은, 사람들이 그 형태들의 역사적 성격이 아니라[그들에게는 그것들이 불변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내용과 의미를 해명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사회생활의 자연적 형태라는 견고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리하여 상품가격의 분석이 가치량의 결정이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모든 상품들이 공통적으로 화폐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상품은 가치라는 성격을 확정시킨 것이다. 그러나 바로 상품세계의 이 완성형태-화폐형태-가 사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 따라서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물건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냄으로써 은폐하고 있다. 만약 내가 저고리나 장화는 [아마포가 추상적 인간노동의 일반적 화신이기 때문에] 아마포와 관계를 맺는다고 말하면, 이 표현은 황당무계하게 들린다. 저고리와 장화의 생산자들이 자기 상품들을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아마포[또는 마찬가지지만 금이나 은]와 관계를 맺게 한다면, 사회의 총노동과 그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관계는 그 생산자들에게는 전혀 황당무계한 개념일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들은 바로 부르주아 경제학의 범주들을 형성한다. 이러한 범주들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일정한 사회적 생산양식[상품생산]의 생산관계에서는 사회적으로 타당하며 따라서 객관적인 사고형태(思考形態)다. 그러므로 상품의 모든 신비[즉, 상품생산의 토대 위에서 노동생산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상과 황당무계]는 우리가 다른 생산형태로 이행하자마자 곧 소멸한다.
    경제학자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좋아하므로(주석 31: 리카도조차도 자기의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리카도는 원시적 어부와 원시적 사냥꾼을 상품소유자로 만들고, 물고기와 짐승을 그들의 교환가치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시간에 비례해 교환시킨다. 이때 그는 원시적 어부와 원시적 사냥꾼이 1817년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통용되고 있던 금리계산표에 의거해 자기들의 노동도구의 가치를 계산한다는 시대착오에 빠지고 있다. ‘오웬(Owen)의 평행사변형' {노동자촌}이 부르주아 사회형태 이외에 그가 알고 있던 유일한 사회형태인 듯하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베를린, 1859년, pp. 38-39)), 우선 로빈슨 크루소의 섬생활을 보기로 하자. 로빈슨 크루소는 본성이 검소하지만 각종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며 따라서 도구를 만들고 가구를 제작하고 염소를 길들이고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 등 각종 유용노동(有用勞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나 그와 유사한 것은 여기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로빈슨 크루소는 자기의 온갖 활동을 즐기고 위안거리로 삼기 때문이다. 그의 생산적 기능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한 여러 기능들이 동일한 자신의 여러 가지 활동형태, 따라서 인간노동의 여러 가지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절실한 필요 때문에 자기의 시간을 정확하게 여러 가지 기능들 사이에 배분한다. 어떤 기능이 그의 총활동에서 더 큰 시간을 차지하는가는, 목적하는 유용효과를 얻는 데 부닥치는 곤란이 큰가 작은가에 달려 있다. 그는 경험으로 이것을 안다. 난파선에서 시계 . 장부 . 잉크 . 펜을 구해낸 우리의 로빈슨 크루소는 훌륭한 영국사람답게 즉시 자기 자신의 일들을 장부에 적기 시작한다. 그의 장부에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유용한 물건들이나, 그것들의 생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작업이
    나, 끝으로 이들 생산물의 일정량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걸리는 노동시간 등의 명세가 포함되어 있다. 로빈슨 크루소와 [그 자신의 손으로 만든 부(富)를 구성하는] 물건들 사이의 모든 관계는 너무나 간단명료하여 누구라도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들은 벌써 가치를 규정하는 본질적인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밝은 섬으로부터 음침한 유럽의 중세(中世)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는 여기에서 독립적인 사람 대신 모두가 의존적이라는 것-농노와 영주, 가신과 제후, 속인과 성직자-을 발견한다. 여기에서는 인격적 예속이 물질적 생산의 사회적 관계와 이에 의거하고 있는 생활의 여러 부문들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바로 인격적 예속관계가 주어진 사회적 토대를 이루기 때문에, 노동과 노동생산물은 그것들의 진정한 모습과는 다른 환상적인 모습을 취할 필요가 없다. 노동과 생산물은 사회의 거래에서 부역(賦役)과 공납(貢納)의 모습을 취한다. [상품생산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와 같은 노동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여기에서는 노동의 특수하고 자연적인 형태가 노동의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인 것이다. 부역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의해 측정되지만, 어떤 농노도 자기의 영주를 위해 지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의 일정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교회에 바쳐야 하는 10 . 1조는 자기가 성직자로부터
    받는 축복에 비하면 훨씬 더 분명하다. 중세 사람들의 상호관계에서 각자가 하는 상이한 역할을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 개인들이 노동의 수행에서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는 어떤 경우에도 그들 자신의 인격적 관계로 나타나며, 물건들[노동생산물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위장되지는 않는다.
    공동노동[직접적으로 결합된 노동]의 예를 찾아보기 위해 [모든 문화민족의 역사의 초기에 나타
    나는] 그러한 노동의 자연발생적 형태로까지 소급해 갈 필요는 없다.(주석 32: "자연발생적인 공동체 소유는 명백히 슬라브적 형태이며, 심지어는 전적으로 러시아적 형태라고까지 하는 가소로운 편견이 최근에 널리 퍼지고 있다. 사실 이것은 로마인 . 게르만인 . 켈트인들에게도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원시적 형태이며, 이 형태의 수많은 표본들은 [흔적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볼 수 있다. 아시아적, 특히 인도적 공동체소유 형태에 대한 더 상세한 연구는, 자연발생적 원시적 공동체소유의 여러 가지 형태로부터 어떻게 그 붕괴의 여러 가지 형태가 발생했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로마적. 게르만적 사적 소유의 여러 가지 원형은 인도적 공동체소유의 여러 가지 형태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다"(같은 책, p 10) ) 가까운 예로 자신의 필요를 위해 곡물. 가축 .실 . 아마포. 의복 등을 생산하는 농민가족의 가부장적 생산이 있다. 이러한 물건들은 그들 가족노동[집단노동]의 여러 가지 생산물이지만, 상품으로 서로 상대하지는 않는다. 이 생산물들을 생산하는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들(즉, 농경 .목축. 방적 . 직포 . 재봉 등)은 있는 모습 그대로 사회적 기능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상품생산에 의거한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자연발생적인 분업체계를 가지는] 가족의 기능들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의 성별 . 연령별 차이 그리고 계절의 교체와 더불어 변동하는 노동의 자연적 조건이 가족들 사이의 노동배분이나 가족 구성원 각자의 노동시간을 규제한다. 이 경우 각 개인의 노동력은 처음부터 가족의 전체 노동력의 일정한 부분으로 작용할 따름이므로, 개별 노동력의 지출을 그 계속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처음부터 노동 자체의 사회적 특징의 하나로 나타난다.
    끝으로, 기분전환을 위해, 공동소유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또 각종의 개인적 노동력을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Association of free men)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기에서는 로빈슨 크루소적 노동의 모든 특징들이 재현再現)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든 생산물은 그의 개인적 생산물이었고,
    따라서 직접 그 자신을 위한 유용한 물건이었다. 자유인들의 연합체의 총생산물은 사회적 생산물이다. 이 생산물의 일부는 새로운 생산수단으로 역할하여 사회에 남는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연합체 구성원에 의해 생활수단으로 소비되며, 따라서 그들 사이에 분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분배방식은 사회적 생산조직 자체의 성격에 따라, 또 생산자들의 역사적 발전수준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다만 상품생산과 대비하기 위해 각 생산자들에게 돌아가는 생활수단의 분배 몫은 각자의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노동시간은 이중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의 사회적 계획적 매분은 연합체의 다양한 욕망과 각종 노동기능 사이의 적절한 비율을 설정하고 유지한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시간은 각 개인이 공동노동에 참가한 정도를 재는 척도로 기능하며, 따라서 총생산물 중 개인적으로 소비되는 부분에 대한 그의 분배 몫의 척도가 된다. 개별생산자들이 노동이나 노동생산물과 관련해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는 생산이나 분배에서 투명하고 단순하다.
    상품생산자 사회의 일반적인 사회적 생산관계는, 생산자들이 자기들의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따라서 가치로 취급한다는 점, 그리고 이물적 형태에서 자기들의 개별적 사적 노동을 동질적인 인간노동으로 서로 관련지운다는 점에 있다. 이와 같은 상품생산자 사회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종교는 추상적 인간에게 예배드리는 기독교, 특히 그것의 부르주아적 발전형태인 프로테스탄트교나 이신론(理神論) 등의 기독교이다. 고대 아시아적, 고전고대적 생산양식에서는 생산물의 상품으로의
    전환, 따라서 인간의 상품생산자로서의 존재는 하나의 종속적인 역할[물론 공동체가 붕괴단계에
    들어감에 따라 그 중요성이 증대하긴 했지만]을 했다. 진정한 상업민족은, 에피쿠로스의 신들[상이한 세계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며 인간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처럼, 또는 폴란드 사회의 틈새에 끼여 사는 유태인들처럼, 오직 고대세계의 틈새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대의 사회적 생산유기체는 부르주아적 생산유기체보다 훨씬 더 간단명료했다. 그러나 그 생산유기체는 [다른 사람들과의 자연적인 종족관계의 탯줄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미성숙에 입각한 것이거나, 직접적인 지배와 종속의 관계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 생산유기체의 상황은 노동생산력의 낮은 발전단계, 그리고 그에 대응해 물질적 생활의 생산과정 안에서의 제한된 인간관계, 따라서 또 인간과 자연 사이의 제한된 관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한성이 고대의 자연숭배나 민중신앙에 반영되고 있다 현실세계의 종교적 반영은,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일상생활의 현실적 관계가 투명하고 이해할 수있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비로소 소멸될 수 있다. 사회적 생활과정(즉, 물질적 생산과정)이 자유롭게 연합한 인간들에 의한 생산으로 되고 그들의 의식적 계획적 통제 밑에 놓여지게 될 떼, 비로소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진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는 물질적 토대 또는 일련의 물질적 생존조건을 가져야 하는데, 이 조건 자체도 또한 하나의 길고 고통에 찬 역사적 발전의 자연발생적 산물이다.
    경제학은 가치와 가치량을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분석했고,(주석 33: 리카도의 가치량 분석의 불충분한 점-그래도 그것은 최량의 분석이다-은 이 책의 제3권 및 제4권?잉여가치학설사“에서 보게 될 것이다. 가치 일반에 관해 말한다면, 고전파경제학은 생산물의 가치(價値)로 나타나는 노동과 생산물의 사용가치(使用價値)로 나타나는 노동을 어디에서도 뚜렷하게 의식적으로 구별하지 못했다. 고전파경제학이 실제로 이러한 구별을 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노동을 질적 측면에서, 또 어떤 때는 양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종 노동을 단순히 양적으로 구별한다는 것은 그것들의 질적 동일성 또는 동등성을, 따라서 각종 노동의 추상적 인간노동으로의 환원을 전제한다는 것을 고진파경제학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예컨대 리카도는 데스튜트 드 트라시(Destutt de Tracv)의 다음과 같은 말에 찬의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의 육체적 및 정신적 능력만이 우리의 본원적 부(富)라는 것은 확실하므로, 그러한 능력의 사용, 즉 어떤 종류의 노동은 우리의 유일한 본원적 재보(財寶)이며, 또 우리가 부(富)라고 부르는 모든 물건들, 즉 가장 순수하게 기호에 맞는 것들뿐만 아니라 가장 필요한 것들이 창조되는 것은 언제나 이 능력의 사용 때문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또한 그 모든 물건들은 그것들을 창조한 노동을 대표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그리고 만약 그것들이 하나의 가치를 갖는다면, 또는 심지어 두 가지 별개의 가치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물건들은 그 가치들을 그것들이 발생한 노동의 가치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 뿐이라는 것도 확실하다"(리카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비봉출판사, 365쪽). 우리는 다만 리카도가 데스튜트의 말에 그 자신의 한층 더 깊은 해석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만을 지적해 둔다. 사실, 데스튜트는 한편으로 부를 형성하는 모든 물건들은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을 대표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그 물건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노동의 가치로부터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선 한 상품(이 경우에는 노동)의 가치를 가정하고, 다음에는 또 그것으로 다른 상품의 가치를 규정하려고 하는 속류경제학의 흔한 오류?순환논법?에 빠지고 있다. 그런데 리카도는 데스튜트의 이 말을, 사용가치나 교환가치 모두에 노동(노동의 가치가 아니고)이 표현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리카도 자신도 이처럼 두 개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노동의 이중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치와 부, 그것들의 상이한 특성“이라는 장[제20장] 전체에 걸쳐 세이(J.B. Say)와 같은 사람들의 시시한 주장을 꼼꼼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가치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점에서는 데스투트가 자기의 견해와 일치하지만, 다른 한편, 가치의 개념에 관해서는 데스튜트가 세이의 견해와 일치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있다.) 이러한 형태들 속에 숨어 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그러나 경제학은 어째서 이 내용이 그러한 형식을 취하는가, 즉 어째서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며, 그리고 어째서 노동시간에 의한 노동의 측량(測量)이 노동생산물의 가치량(價値量)으로 표현되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주석 34: 고전파경제학의 근본적인 결함의 하나는 상품[특히 상품가치]의 분석으로부터 [가치를 교환가치로 되게 하는] 가치형태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스미스와 리카도와 같은 고전파경제학의 가장 훌륭한 대표자들조차도 가치형태를 전혀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또는 상품 자체의 성질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고전파경제학이 가치량의 분석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좀더 깊은 곳에 있다. 노동생산물의 가치형태는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의 가장 추상적인,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고, 바로 이 형태에 의해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은 사회적 생산의 특수한 한 종류가 되며 역사적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만약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사회적 생산의 영원한 자연적 형태라고 잘못 본다면, 필연적으로 가치형태, 따라서 상품형태, 그리고 그것이 더욱 발전한 화폐형태나 자본형태 등의 특수성까지도 간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시간이 가치량의 척도라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는 경제학자들도 화페[즉, 일반적 등가(물)의 완성된 형태]에 관해서는 매우 괴상하고 모순된 관념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보통의 화폐 정의가 통용되지 않는 은행업의 고찰에서 특히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하여 고전파경제학에 반대해 중상주의가 부활했는데(가닐 등), 이들은 가치에서 오직 사회적 형태만을, 또는 오히려 사회적 형태의 실체없는 외관만을 보고 있다. 여기서 확실하게 말해 둘 것은, 내가 말하는 고전파경제학은 W. 페티 이래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의 내적 관련을 연구한 모든 경제학을 속류경제학(俗流經濟學: vulgar economics)에 대비시켜 지칭한다는 것이다. 속류경제학은 오적 외관상의 관련 속에서만 헤매면서 가장 조잡한 현상을 부르주아지의 자가수요에 맞도록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해 이미 훨씬 전에 과학적 경제학에 의해 제공된 자료들을 되풀이해 음미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속류경제학은 부르주아적 생산 당사자들이 자기들 자신의 세계[그들에게는 가장 좋은 세계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친부하고 독선적인 관념을 현학적으로 체계화하며 또 이 관념을 영원한 진리라고 선포하는 일만을 하고 있다.) [생산과정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생산과정을 지배하지 않는 사회구성[체]에 속하고 있다는 도장이 분명히 적혀있는] 그러한 형태들도 경제학자의 부르주아적 의식에서는 생산적 노동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명한 자연적 필연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경제학이 부르주아 이전의 사회적 생산유기체의 형태들을 취급하는 태도는 대체로 교부(敎父)들이 기독교 이전의 종교를 취급하는 태도와 흡사하다.(주석 35: "경제학자들은 하나의 기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오직 두 가지 종류의 제도[인위적인 제도와 자연적인 제도]가 있을 뿐이다. 봉건제도는 인위적인 제도이고, 부르주아제도는 자연적인 제도이다. 이 점에서 그들은 [두 가지 증류의 종교를 설정하고 있는] 신학자들과 비슷하다. 자기 자신의 종교 이외의 종교는 모두 인간이 발명해낸 것이고, 자기 자신의 종교는 신의 계시인 것이다....그리하여 이때까지는 역사라는 것이 존재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에 대한 대답“. 1847년, p. 113). 고대 희랍인과 로마인은 오직 약탈에 의해서만 생활했다고 생각하는 바스티아(Bastiat)는 우습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만약 사람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약탈에 의해 살아간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약탈할 수 있는 무엇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해, 약탈의 대상이 끊임 없이 재생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희랍인과 로마인도 역시 그들 세계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는 하나의 생산과정, 즉 하나의 경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부르주아경제가 현대세계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는 바스티아는 노예노동에 입각한 생산양식은 약탈 체제에 입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그는 위험한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이 된다. 이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까지도 노예노동의 평가를 잘못했었는데 하물며 바스티아와 같은 보잘것없는 경제학자가 어떻게 임금노동의 평가를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나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년)가 나왔을 때 미국의 어떤 독일어 신문이 나에게 제기한 반대를 간단히 반박하려 한다. 그 신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견해[즉, 일정한 생산방식과 그에 대응하는 생산관계, 간단히 말해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실질적 토대로 해 그 위에 하나의 법률적 .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한 그 실질적 토대에 조응하는 일정한 형태의 사회적 의식이 생긴다“고 하는 것과, "물질적 생활의 생산방식은 사회적 . 정치적 . 정신적 생활의 일반적 과정을 제약한다"고 하는 것]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현대세계에 대해서는 분명히 정당하지만, 카톨릭교가 지배하고 있던 중세나, 정치가 지배하고 있던 아테네와 로마에 대해서는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선 첫째로 놀라운 것은, 중세와 고대세계에 관한 위와 같은 진부한 문구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중세도 카톨릭에 의해서는 생활할 수 없었고, 고대세계도 정치에 의해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 세계가 자기의 생활을 영위한 방식 그것이 왜 한 경우에는 정치가, 다른 경우에는 카톨릭교가 지배적인 역할을 했는가를 설명해 준다. 그뿐 아니라, 예컨대 토지소유의 역사가 로마공화국의 이면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로마공화국의 역사에 그다지 정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또한 [편력기사 (knight errantry) 가 사회의 어떤 경제형태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한 대가는 이미 오래 전에 동키호테가 지불했던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상품세계에서 나타나는 물신성[또는 노동의 사회적 성격의 객관적 현상형태]
    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혼란에 빠지고 있는가는, 특히 교환가치의 형성에서 자연의 역할에 관한 지리하고 무의미한 논쟁에서 잘 나타난다. 교환가치는 어떤 물건에 투하된 노동을 표현하는 일정한 사회적 방식이므로 [예컨대 환율 등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소재를 포함할 수가 없다.
    상품형태[화폐형태나 자본형태와 구별되고 있다]는 부르주아적 생산의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미발달한 형태이므로, 그것은 [비록 오늘날과 같이 지배적 . 특징적인 방식으로는 아니지만] 비교적 일찍부터 출현했으며, 그 때문에 그 물신적 성격은 비교적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구체적인{발달한} 형태에서는 이 단순성이라는 외관까지도 소멸한다. 중금주의(重金主義)의 환상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금주의자들은 금과 은이 하나의 사회적 생산관계로서의 화폐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금과 은이라는 자연물이 독특한 사회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의 경제학은 거만한 태도로 중금주의를 비웃고 있지만, 그것의 물신숭배성은 그것이 자본을 취급하자마자 아주 뚜렷해지는 것은 아닌가? {제3권 제24장을 참조하라.}지대(地代)는 토지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사회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중농주의자들의 환상이 소멸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 아닌가? {제3권 제38장을 참조하라.}
    그러나 너무 앞질러 나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기에서는 상품형태 자체에 관한 또 하나의 예를 드는 데 그치려 한다. 만약 상품이 말을 할 줄 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의 사용가치(使用價置)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모르지만, 사용가치는 물건인 우리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인 우리에게 속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價値)이다, 우리 자신이 상품으로 교환되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교환가치(交換價値)로서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라고. 그러면 이제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상품의 심정을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가치(교환가치)는 물건의 속성이고, 부(富: 사용가치)는 인간의 속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치는 필연적으로 교환을 포함하고 있지만 부는 그렇지 않다.“(주석 36: ?경제학의 약간의 용어논쟁에 관한 고찰, 특히 가치와 수요공급에 관해?, 런던, 1821년, p. 16.) "부(사용가치)는 인간의 속성이고 가치는 상품의 속성이다. 인간이나 사회는 부유하고. 진주나 금강석은 가치 있는 물건이다....진주나 금강석은 진주나 금강석만큼 가치를 가진다. "(주석 37: 베일리, ?가치의 성질, 척도 및 원인에 관한 비판적 논문?, p. 165)

    진주나 금강석 속에서 교환가치를 발견한 화학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이 화학적 실체를 발견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예리한 통찰력을 자부하고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물건의 사용가치는 물건의 물질적 속성과는 관계없이 존재하지만, 물건의 가치는 물건으로서의 그것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이와 같은 견해[엉터리 견해]를 확증해 주는 것은, 물건의 사용가치는 교환 없이 [즉, 물건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실현되지만, 물건의 가치는 오직 교환에서만 [즉, 하나의 사회적 과정에서만] 실현된다고 하는 기묘한 사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라도 저 선량한 독베리(Dogberry)가 경비원 시콜에게 가르쳐 준 충고[전혀 말이 되지 않는 충고]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역자 주: 세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 제3막, 제3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운명의 덕택이지만, 읽고 쓰는 것은 자연히 알게 된다"라고.(주석 38: 앞의 ?고찰?의 저자나 베일리는, 리카도가 교환가치를 상대적인 것으로부터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고 그를 비난한다. 사실은 이것과 반대다. 리카도는 [예컨대 금강석이나 진주와 같은] 물건들이 교환가치로서 가지고 있는 외관상의 상대성을 이 외관의 배후에 숨어 있는 그것들의 진정한 관계[즉, 인간노동의 단순한 표현으로서의 그것들의 상대성]로 환원시켰던 것이다. 만약 리카도의 후계자들이 베일리에 대해 조잡하고 적절하지 못한 답변을 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리카도 자신에게서 가치와 가치형태[또는 교환가치] 사이의 내적 관련에 관한 아무런 해명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제 2 장
    교환과정



    상품은 스스로 시장에 갈 수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교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품의 보호자 즉 상품소유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상품은 물건이므로 인간에게 저항하지 못한다. 만약 상품이 순종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 그것을 점유할 수 있다.(주석 1: 경건했던 것으로 평판이 난 12세기에도 상품들 중에는 매우 미묘한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그 당시 프랑스의 한 시인은 랑디시장에서 볼 수 있는 상품들 중에 천 . 구두 . 가죽 . 농기구 . 모피 등과 아울러 ‘몸을 파는 여자’까지 들고 있다.) 이 물건들이 상품으로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품의 보호자들은 이 물건들에 자신들의 의지를 담고 있는 인물로 서로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한 상품의 소유자는 다른 상품의 소유자의 동의하에서만, 따라서 각자는 쌍방이 동의하는 하나의 의지행위(意志行爲)를 매개로 해서만, 자기 자신의 상품을 양도하고 타인의 상품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사적 소유자로 인정해야 한다. 계약(契約)의 형식을 취하는 이 법적 관계는 [합법적으로 발달한 것이든 아니든] 경제적 관계를 반영하는 두 의지 사이의 관계다. 이 법적 관계[또는 의지 관계]의 내용은 경제적 관계 그 자체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주석 2: 프루동(Proudhon)은 처음에 정의 . 영원한 정의라는 자기의 이상을 상품생산에 대응하는 법적 관계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품생산이 정의와 마찬가치로 영원한 형태라는 것을 증명하여 모든 선량한 소시민[소규모 상품생산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인다. 그 다음에 그는 거꾸로 현실의 상품생산이나 그에 대응하는 현실의 법을 이 이상(理想: ideal)에 따라 개조하려고 한다. 분자(分子)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진정한 법칙들을 연구하고 이에 의거해 일정한 과제를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 대신 '자연상태'나 '친화성'이라는 '영원한 이념'에 의거해 이러한 상호작용을 개조하려는 화학자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고리대(高利貸)는 '영원한 정의', '영원한 공정성', '영원한 상호부조' 및 기타의 '영원한 진리'와 모순된다고 말할 때, 우리가 '고리대'에 대해 아는 것은, 교부들이 고리대가 '영원한 은총', '영원한 신앙‘, '신의 영원한 의지'와 모순된다고 말했을 때 교부들이 고리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보다 과연 더 많은가?)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만 상품의 대표자, 따라서 소유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일반적으로 경제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경제적 관계들의 인격화(人格化 personification)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은 이 경제적 관계들의 담지자(擔持者)로 서로 상대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상품소유자와 상품 사이의 주된 차이는, 상품은 다른 모든 상품체를 오직 자기 자신의 가치의 현상형태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태어날 때부터 평등주의자며 냉소주의자인 상품은, 빠른 어떤 상품과도, 비록 그것이 마리토르네스(Maritornes)보다 더 추한 외모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정신뿐 아니라 몸까지도 교환할 용의를 항상 가지고 있다. 상품은 다른 상품체의 구체적 속성을 파악할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상품소유자가 자기 자신의 다섯 개 이상의 감각으로 보충해 준다. 그의 상품은 자기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 상품을 시장에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상품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용가치(使用價値)를 가지고 있다. 상품소유자에게는 상품은 교환가치(交換價値)의 담지자[따라서 교환수단]라는 점에서만 직접적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주석 3: "왜냐하면 모든 물건에는 두 개의 용도가 없기 때문이다....그 하나의 용도는 그 물건에 고유한 것이고, 다른 용도는 고유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구두에는, 한편으로 구두로서 신는다는 용도가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환될 수 있다는 용도가 있다. 두 가지 모두 구두의 사용방식이다. 왜냐하면, 구두를 자기가 필요로 하는 화폐 또는 식료품과 교환하는 사람까지도 구두를 구두로서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두 고유의 사용방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두는 교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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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화수미제(火水未濟)
    『 미완성 』
     
     ○    완성된 일은 조금씩 기울어 집니다. 달이 차면 기울듯
     ●    이 완성된 일은 반드시 어그러지게 됩니다. 이렇게 주
     ○    역은 미완성을 통해 다시금 완성을 도모하게 됩니다.
           비존재의 세계를 통해 존재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입니
     ○    다. 무슨 일이든 완성된 상태에서는 만족을 해서는 안
     ●    됩니다. 만족하는 순간 다시금 어그러지게 될 것입니다.
     ○    이것은 바로 우주가 생존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에 처해 있을 때는 뭔가 새로운 일을 추구하고 이
           루려고 하지만 완성된 자리에서는 그 자리를 고수하려
           고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을 고집하는 사람은
           그 만족하는 자리가 어그러질때 함께 망하게 됩니다.
     
                         화수미제(火水未濟)
     
         조화는 또 다른 부조화를 불러 일으킵니다. 때문에 주역
         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부조화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이 64번째의 괘는 63번째 괘의 아래와 위의 괘상
         이 뒤 바뀌어 졌습니다. 각각의 음과 양이 거꾸러 자리를
         잡고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1,4의 효와 2,5의 효와 3,
         6의 효는 서로 대응하여 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 합이 같아 서로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
         합은 되어 있으나 뭔가 하나씩 균형이 어긋나 있습니다.
         주역은 이렇게 좋은것과 안 좋은것 상호의 관계를 보여주
         고 있습니다. 육효의 효가 음양의 조화는 이루었으나 그
         있어야 할 음양의 자리가 뒤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괘
         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는 있지만 그 자리가 뒤바뀐 상태
         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위에서 밑으로 내
         려가는 현상이 아니고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현상입니다. 
     
         未濟:亨,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
         彖曰:未濟,亨;柔得中也  小狐汔濟,未出中也  濡其
                 尾,無攸利;不續終也 雖不當位,剛柔應也
         象曰:火在水上,未濟;君子以愼辨物居方
        대상. 불이 물위에 있어서 장소를 얻지 못한다. 이것
        이 미제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신중하게
        사물을 구별하고 적소에 두는 것을 주의한다.
     
     먹을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그 먹을 것을 채우기 위해 허리 띠를 조여
    메게 됩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할 때는 그 사람의 마음도 나태해져
    서 더 이상 먹을 것을 창고에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주역은 우리에게 만족의 어그러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의 만족을 품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로
    인해 허물을 안게 될 것입니다. 만약 만족을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다면 상대방은 증오를 불러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만족
    이 채워졌을 때 상대방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상대방을 떠
    나 보내지 않으려면 만족하는 마음을 비워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가득 찰 수 있는 이유는 우주가 텅 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은 마지막으로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괘는 마치 단
    추가 하나 어긋나 있는 것과 같이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옷이 몸에
    붙어 있듯이 잘 못 채워진 단추는 처음부터 하나식 다시 풀어서 채워야
    하는 것처럼 성급하게 옷을 맞추기 위해서 잡아 당기면 옷이 찢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화수미제는 바로 이렇게 성급함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63괘(수화기제)가 처음은 길하고 마지막은 흩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이 마지막 괘는 그 혼란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완성을 향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밑의 물은 곤란을 뜻하며 위의 불은 광명을 뜻합니
    다. 또한 무한한 광영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유하고 겸손한 군주가 왕위
    에 있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망한 것을 유하고 겸손한 태도
    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강경한 마
    음으로 어려움을 받아 들이지 않을 때는 결국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실패를 통해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
    고 머리를 쓰면 다시금 성공을 바라볼 수 있지만 고난과 어려움을 받아
    들이지 않고 강경한 자세로 굽힘이 없으면 인생 자체가 망하게 되는 것
    입니다.
     
     [화수미제]괘는 바로 난처함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 난처함을 받아
    들여 세상이 여러분에게 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코 만족함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이 결국 인생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제(未濟)괘는 그 자리의 위치가 어긋나 있지
    만 상호 대응하는 효의 강약이 서로 합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치협력하면
    어려운 목표도 달성할 수 있는 가망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은 받아
    들이되 경계하고 고난은 받아들이고 겸손해 할 줄 알아야 화를 면할 수
    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한다면 저절로 일치협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初六:濡其尾,吝
       象曰:濡其尾,亦不知極也
        첫 번째 음효. 작은 여우(小狐)가 강을 다 건너고 나서 강
        물에 꼬리를 적신다. 이로움이 없도다.
     
     작은 여우가 강을 다 건너고 나서 강물에 꼬리를 적신다고 했습니다.
    여우가 꼬리를 적신다는 말은 결국 실패를 함을 의미합니다. 강을 다
    건너고 나서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금 물에 빠진다는 것이 물에 적신
    꼬리의 뜻입니다. 작은 여우가 내를 건널 때에 처음에는 자신있는듯이
    보여도 나중에는 능력부족으로 결국 꼬리를 적시는 격으로 미제는 아
    직 다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대체로 좋은 위치에 있지 못하
    고 시기적으로 뜻대로 되지않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매한
    전망이나 역량부족으로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중간에서 좌절하게 됩니
    다. 현재는 이런 상태이지만 희망은 있으므로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
    라 앞날은 차츰 밝아질 것입니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신중하게 사
    물을 분별하게 하여 각각이 알맞는 자리에 있게 합니다. 고난이 닥쳤
    을 때는 먼저 그 고난을 세세하게 관찰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
    할 일만 했다고 해서 고난이 물러 가는것이 아닙니다. 차량의 문을 잠
    글 때도 무선스위치만 작동하고 잠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
    다 반드시 도어를 당겨 보고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 1효에는 음에네르
    기가 있습니다. 상대의 4효는 양에네르기입니다. 즉,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九二:曳其輪,貞吉
      象曰:九二貞吉,中以行正也
        두 번째 양효. 앞으로 나아가는 차 바퀴를 잡아 당기며
        전진하지 하지 아니한다. 나아갈 수 없음을 알고 마차를
        멈춘다. 이러한 견실한 태도를 유지하여 간다면 길하리라.
     
     나아가는 것의 이유는 나아가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는
    만큼 들어올 수 있는 결실이 있어야만 합니다. 가는것은 바로 목적지에 도
    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적지 없이 마구 가는 것은 바퀴가 없는 차를 운행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달려도 결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나갈 수 없을 때는 더욱 더 치밀해 져야 합니다.
     
      六三:未濟,征凶,利涉大川
      象曰:未濟征凶,位不當也
        세 번째 음효.  아직은 뜻을 이룰 수 없는 때 맹진하면
        흉하다.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서 큰 강을 건넌다면 그때
        는 위험도 무릎 쓰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본성의 겸
        허한 태도로 내일을 대비하면 장차 큰 강을 건너도 어려
        움이 없다.
     
     나아갈 바를 살피지 않고 내가 해야지하는 마음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은
    작심삼일이 되고 맙니다. 현실적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나아가려고만 하는
    심정으로 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흉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역은 맹진하면
    흉하다고 했습니다. 혼란 속에 위험과 곤란을 무릅쓰고 광명을 구하는 것
    이 이 괘인 것입니다. 그래서 좌절도 있고 고통도 따릅니다. 해야 할 일
    이 계속 닥치지만 그것을 단숨에 처리하려 들지 말고 끈질기고 차근차근
    하게 대처해 나가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야 어려운 난관도 뚫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九四:貞吉,悔亡,震用伐鬼方,三年有賞于大國
      象曰:貞吉悔亡,志行也
        네 번째 양효. 지조(志操)를 관철하면 길하다. 후회는 없
        어진다. 위무도 당당하게 북방의 야만족을 토벌한다.  삼
        년 후에는 상을 받아 대국의 제후로 봉함을 받게 될 것이
        다.
     
      사업이란 것도 법칙에 맞게끔 건실하게 운영해 나아가면 길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이 된다고 이제 서서히 위로 걸어 갈 수 있을 때에 이르러서는
    평지를 걸어갈 때의 위세로 간다면 그 실력은 약한 것입니다. 아직은 단숨
    에 올라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지만 무리하게 올라가려고 해서도 안되겠지
    만 그러나 자신의 겸손한 본성을 살려서 겸허한 태도로 조금은 위를 대비하
    면서 나아간다면 아무리 가파른 미끄럼틀과 같은 위험하고 벅차 일일지라도
    순조롭게 올라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에 이르러 적응력
    이 붙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른 미끄럼틀을 꺼꾸로 올라갈때는 잠시의 방
    심도 있어서도 안됩니다.  한결같이 바른 도리로 변함이 없으면 그 뜻을 실
    현할 수 있게 되어 길한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분발하여 북방의 왜적을 징벌하라. 분발하여 마지막 정상을 차지하라.
    3년이면 승리를 거두워 영광을 누릴 것이다. 23번만 들이키면 정상에 올라
    가 3번만 자제하면 정상에 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바른 도리를
    지키니 길하다. 올라왔을 때는 항상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六五:貞吉,無悔,君子之光,有孚,吉
      象曰:君子之光,其暉吉也
        다섯 번째 음효. 지조(志操)를 관철하면 길하니 후회는
        없다.  군자의 덕은 빛나고 그 성의는 만백성의 신뢰를
        받고 길하리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부자가 강한것 같지만 가난한 사
    람이 강할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진자와 싸울 때는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즉 가난한 사람은 잃을 것이 없지만 부자는 있는것을 지키기가 힘
    든 법입니다. 만약 부자가 되었더라면 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
    은 항상 가난한 시절의 기억을 잊어 버려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부자가 망하
    는 순간은 바로 가난한 시절을 잊어 버렸을 때입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효는
    한결같은 바른도리 즉 올라왔음에는 다시 떨어질 수 있음을 알라는 것이며 그
    것을 가슴 깊숙이 지킬 수 있는 위치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중심된 것
    을 지키면 길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걱정은 없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로 가난한 자의 참된 마음입니다.  이렇게 처음 마음이 변함이
    없을 때 그 성의가 만민의 믿음을 얻어 길하다 한 것입니다.
     
      上九:有孚于飮酒,無咎,濡其首,有孚失是
      象曰:飮酒濡首,亦不知節也
        여섯 번째 양효. 성의를 다해 술잔을 들고 모든 사람과
        함께 큰 소원이 성취되기를 축복한다면 탈이 없으리라.
        다만 마음이 느슨해져서 환락에 빠져서는 안된다. 성의
        가 있어도 정도(正道)를 잃는다.
     
      즐겁다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수도 있지만 술을 마시는 중
    에도 지금까지 이 위치에 올라 왔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허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술에 머리를 적시는 꼴이 된
    다면 아무리 노력했다는 마음의 성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렵게 올라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올라 갈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
    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자신을 저버릴 만큼 술에 취한다면 마치 에레베이
    트의 끈이 끊어져 미끄름틀 타듯이 공중에서 떨어져 즉사할 것입니다.  아
    무리 성의가 있어서 마시기 시작한 술일지라도 절제를 잃는 일은 삼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설령 우주의 법칙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간다 할지라도 안
    정을 잃지 않고, 이 자연이 온전하듯이 온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세상
    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만물은 항상 움직이고 있습니다. 머물고 싶다고
    해서 멈출 수도 없습니다. 지금 만족하다고 해서 만족에 빠질 수가 없습니
    다. 항상 절제를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흐름조차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
    야 합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치 못하더라도 최소한도 보고 들을 수는 있어
    야 합니다.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고집한다면 항상 법칙에 밀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면 온전함은 얻지 못하고 항
    상 노력해야만 되는 고달픈 인생이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막혀 있는 벽 너머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
    서 자신의 주장과 생각의 틀을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합니
    다. 그러했을때 우주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력이 만물의 법칙과 만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즉, 우주
    의 법칙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다, 볼 수 있다, 가려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한다면 듣는다,
    들을 수 있다, 가려져 있는 것도 들을 수 있다. 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봐야지 하고 맘 먹었을 때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본다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볼 수 있다를 모르면 상황에 깨어 있지를 못합니
    다. 또한 주의력이 있는 사람은 벽으로 가려져 있는 곳에 있다할지라도 그
    주변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법은 안테나를 항상
    뽑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불시의 상황하에서도 당황하는 법이 없습
    니다. 이미 그렇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있어서 불안이 있다거나 단조로운 생활에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본
    인의 안목이 위 세 가지 중에  첫번째 경우에 해당할 경우 더 심하게 됩니
    다. 안목을 기르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자꾸 정당화 시킨다면 우주의 법
    칙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안목을 길게 내어써서 도리어 우주의 법칙
    이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화수미제(火水
    未濟)괘는 주역(周易)의 마지막 괘상입니다. 이 64괘 모두는 바로 살아 있
    는 생생한 우주의 동작인 것입니다. 살아 숨쉬는 우주의 법칙인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을 통해서 삶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도 매 순간의 상황에 대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주역을 통해 매 순간의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작용을 만들어 놓은 이 광대한 우주는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
    입니다.  "나로부터 나에게로 가는 나에 의한 나의 힘이여!"
     
     주역강의 終..
     
     2006. 1. 26. (木) 유성이 스승님의 강의록을 정리해서 올림..
     
     ※안내※
     본 강의는 소공자선생님께서
     1988년 7월 2일(토)부터 1992년 4월 25일(토)까지의 4년여간의
     강의한 내용을 제자 유성이 정리하여 올린 글입니다.
     그동안 주역 강의를 경청한 인연있는 님들께 행운이 있기를
     기원 드립니다(__)…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50
  • 54. 뇌택귀매(雷澤歸妹)
    『 첩으로 시집가다 』
     
     ●     비즈니스가 되었건, 공부가  되었건 결실이  있어야
     ●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드웨어를 이루어내지 못하
     ○     면 아무런 맛이 없습니다. 또  하드웨어를 잉태시키
            지 못한 노력은 아니함만 못합니다.  하드웨어가 없
     ●     는 소프트웨어는 있으나  마나한 것입니다.  태풍도
     ○     번개도 소프트웨어를 망가뜨릴 수는 없지만  하드웨
     ○     어가 없는 소프트웨어는 태풍이 불기전에 이미 망가
            진 제품입니다.
     
                        뇌택귀매(雷澤歸妹)
     
        [귀매(歸妹)]의 괘는  여자가 시집을  가는데 중요한
        괘다. 시집가는 길에  여자가 주도하여  나서는 것은
        흉하다. 만에 한가지 좋은 일은 없다. 여자가 시집가
        는 것은 천지간의 큰 법칙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사
        귀지 아니하면 만물이 생겨나지 못함이다. 여자가 시
        집가는 것은 인간의 시종일관한 도리다. 그러나 여자
        가 먼저 즐겨함으로써 남자를 움직여  시집가는 것은
        여자의 지위로서 부당하다. 그러니 흉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중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해낼 수 있는  능력 예를 들면 아이디어,
    방정식과 같은 것들이고, 하드웨어는 그것들이 실질적으로 해내어
    나타나 있는 결실, 기계 따위 등등입니다. 즉, 하드웨어가 우리의
    몸이라면 소프트웨어는 생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벼락이 치고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부는 등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나서 폭탄이 터
    지는 등의 재해들은 하드웨어를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설사
    깨어진 집이라도 다시 건설할 수 있습니다. 즉 천재지변도 하드웨
    어는 파괴시킬 수는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파괴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훨씬 중요하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는데 결실이 생기지 않는다." 즉 자본을 들여
    서 사업을 벌렸는데 자본만 탕진하고 결과가 없다면 어디에 잘못
    이 있는 것일까? 소프트웨어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
    리는 먼저 소프트웨어가 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되
    어져 있지 않은 하드웨어는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는 있는데  하드웨어가 없다면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결실이 없는 소프트웨어는 아
    무 소용이 없습니다.  흔히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따라잡은 나라들입니다.  소프트
    웨어가 하드웨어를 따라가면 하드웨어 자체는 따라 잡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창조력은 발휘할 수 없습니다.
      2차 대전때 일본은  자신들도 어지간히 비행기도  만들어 내고
    또 가미가제 정신도 있으니까 이 정도면 미국과 전쟁을 한 번 벌
    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일어나고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인들은 정신통일, 사무라이
    정신 등등으로 총으로 안되면 몸으로라도  해낸다라는 정신은 가
    지고 있는데 미국인들은 유도탄이라는 것을  가지고 보이지도 않
    는데도 정확하게 자신들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또  일본은 폭탄
    을 많이 만들어서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적을 때려부수려고 했
    는데 미국인들은 원폭이라는 아주 작은  규모로 어마어마한 위력
    을 발휘하는 폭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
    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본인은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저런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는 소프트웨어적인 공
    부를 엄청나게 해야한다.' 일본은  엄청나게 공부하였으며 오늘날
    드디어 선진국가가 되었습니다. 선진국 상품들을 모방하더라도 소
    프트웨어를 통해서 얼른 자기 것으로 변신시켜 남들이 만들어 놓
    은 하드웨어를 능가하는  하드웨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즉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따라 잡는 입장에 섰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 아직  선진국가에 들어가지 못한
    나라. 대표적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같은 나라들은 선진국에서
    만들어 낸 것을 보고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엉성하다가 점점 비슷하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산품은
    아직도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뭔가 마무리가 덜된 것같은 느낌
    을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선진국 물건을 보고 어떻게  하면
    그와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낼 것인가 생각했지, 그  이상의 물건
    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부족하였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먼저 발전한 후 곧  하드웨어가 이를 받쳐주어야
    합니다. 인간 개개인도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따라  잡지 않으
    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나
    그 아이디어가 결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소프트웨어가 되어져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소용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비즈니스가 되었건, 공부가 되었건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의 인생이 하드웨어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맛이 없습니다.
    또 하드웨어를 잉태시키지 못한 노력은 아니함만  못합니다. 하드
    웨어가 없는 소프트웨어는 있으나 마나한 것입니다.  태풍도 번개
    도 소프트웨어를 망가뜨릴 수는 없지만  하드웨어가 없는 소프트
    웨어는 태풍이 불기전에 이미 망가진 제품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이 말은 자기가 아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하드웨어를 해보았더니 하드웨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
    아서 거기에서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소
    프트웨어조차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그저  하드웨어를 만들면서
    그냥 실패해서 쪼개져 나가는 것, 그것은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도 없을 뿐더러 그런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귀매(歸妹)] 괘는 상괘가 음(陰)이 둘, 양(陽)이 하나로 남성
    을 나타내는데, 양효는 첫 효에 있어 장남, 즉 나이 많은 남자를
    뜻하는 괘입니다. 하괘는 음(陰)이 하나, 양(陽)이 둘로 여성을
    나타내며 특히 세 번째 효에 음(陰)이 있어 젊은 여자를 뜻합니다.
    주역은 밑에서 위로 읽기 때문에 결국 귀매(歸妹)는 젊은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를 유혹한다 해서 이것은 첩이 된다는 뜻입니다.
      위의 괘는 남자를 뜻하면서 뇌성을 나타냅니다. 아래 괘는 여성
    을 뜻하면서 연못을 뜻합니다. 연못위에 뇌성이 치면 수면이 출렁
    거립니다. 그러면 태풍 불 때처럼  풍파가 많게 됩니다. 음성기운
    은 밑에 숨겨져 있어야 하는데 귀매  괘는 첫째, 둘째 효가 양효,
    다섯째, 여섯째 효가 음효로 이루어져 있어 음성 에너지가 위에서
    양성기운을 누르고 있는 형상으로 양성기운이  작용을 못하게 되
    어 자체내에서 풍파만 일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자에게 쥐어 사는 남자들  치고 제대로 되는  남자가 사실은
    없습니다. 그나마 여자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은  더 엉망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남자답게 활동하여 여자를  여자답게 추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추스리지 못하고 무조건 전진만 해서는 되지 않는
    다는 교훈을 귀매는 주고 있습니다.
     
      뇌(雷) 괘는 뇌성이므로 움직임입니다. 하괘는 연못이면서 감각
    적으로 기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에서  남자가 움직이고
    여자는 기뻐한다라는 뜻에서 이는 정신적인  사랑이 없이 육체적
    인 관계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안이 충실하지 않은 사랑입니
    다. 그래서 노력은 하는데 안에  알맹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소프
    트웨어가 안되어 있는 사람이 하는 노력이 이와같은 것이라는 이
    야기입니다.
      "여자가 먼저 즐겨함으로써 남자를 움직여 시집가는 것이 귀매
    의 상징이다. 여자의 지위로서 부당하다. 흉하다." 양성기운에 의
    해 이 우주는 아름다운  창조를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성에너지를 음성에너지가  짓눌러 버리면  세상은 파괴되어
    버립니다.
      남자는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는 여자의 말을 한 번쯤 경청해야
    됩니다. 왜냐면 남자는 나갈려고 하는데 여자는 먼저 당길려고 하
    는 것을 우선 생각하니까 남자가 여자의  말을 한 번쯤 경청하면
    좀 더 신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우선하고 남
    자가 거기에 매여 살면 아름다운 창조는 벌어질 수  없습니다. 여
    자가 주도하는 집안은 크게 잘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움직
    이는 것은 깊이가 없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여자는  자기
    속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 흉하다라
    고 주역은 말하고 있습니다.
     
        대상(大象). 연못 위에 우뢰가 진동하고 수면위에  파
        문이 일어나는 것이  귀매(歸妹)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일시적인 현상에  사로잡히는 폐해를
        깨닫고 영속되는 길에 마음을 둔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일시적인 현상에  사로잡히는 폐해를
    깨닫고 영속되는 길에 마음을 둔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깊이
    장래를 전망하면서 폐해를 깨달아 안다는 뜻입니다. 여자는 먼 미
    래를 생각하지 않는게  원칙입니다. 여자는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멀리 있는 사람보다는 가까운데 있는 사람의  영향을 잘 받게 되
    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치를 따지게 되면 여자는  경우에
    맞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남자가 혀를 내
    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이치에 맞지 않는 울타리에 가두어 놓으
    면 남자가 크게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심지가 굳은
    남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이와같은 처지에  있어서 그런
    가벼운데 일어나는 파문을 쫓지  아니하고 심도 있는  깊은 것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즉 "내가 이 일을 가벼운 마음에 너무 즐겨
    서 하고자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깊이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양효. 소실로 시집간다. 허나 절름발이도 걸
        을 수 있는 것. 비록  남의 소실이긴 하지만 정처(正
        妻)와 서로 힘을 모아 성의껏  남편을 섬겨나가면 길
        하리라.
     
      "소실로 시집간다." 첫 번째는 양성에너지이기 때문에 뭔가 해
    야 됩니다. 그래서 소실이라는 명목으로 시집을 보냅니다. 그런데
    소실이라는 명목으로 시집을 보내는 것도 안되는 것은 아니며, 결
    국은 상식을 쫓는 일입니다.  아주 꼭 맞는  바른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은 바른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어중간한 것도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첩으로 시집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뜻
    입니다.
      "비록 남의 소실이긴 하지만 본부인과 서로  힘을 모아 성의껏
    남편을 섬겨 나가면 길하리라." 이 말은 만약 내가 직장을 들어갔
    는데 나에게 딱 맞는 직장이 아니다 하더라도  "못해 먹겠다." 하
    면서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말고, 협력을 다해서 자기  나름대로
    깊이 있게, 진실하게 성의껏 생활하면 길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꼭  맞는 직장을 못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파문이 일 듯이 깊이를 갖지 않고  가볍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들어오고  나서 보니 내가 원했던게  아닙니
    다. 그런 경우에는 비록 절름발이와 같은 신세라 하더라도 성의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하고 나가버리는  사람은 자기의 심도
    있는 세계, 인생의 어떤 깊이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
    사 소실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잘못했다고 탓하거나, 그만 두는 것
    보다는 거기서 성심껏 생활하다 보면 언젠가  길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도가 날 회사에서 나의 노력에  의해서 그 부도를 막아
    낼 수 있다면, 나는 그 회사에게 희생당한 것이 아니고 나중에 내
    개인 사업을 할 때 부도당해질 수 있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좋은 곳을 찾아가지 말
    고, 나쁘고 불리한 곳에서 그곳을 좋은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
    력, 그것이 갖추어지는게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애꾸눈도 볼 수 있는 법. 남의 소실로
        서 한 사람의 본 몫은 못할 망정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함없이 숨은 노력을 계속하여 감이 좋다.
     
      양성에너지이므로 자꾸 무얼 바라지 말고, 바르게 되어질 수 있
    도록 성의를 다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노력입니다. "애꾸눈도 거
    리 측정은 못하지만 보이기는 하는 법," 설사 거리 측정이 안된다
    하더라도 꾸준히 열심히 보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절름발이도 늦기는 하지만 걸을 수 있듯이, 애꾸눈도 정확히
    보지는 못하더라도 볼 수는 있듯이," 일단 어설프게 나마 해야할
    시기가 오면 그렇게라도 시작은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작하
    였으면 "남의 소실로서 한 사람의 본 몫은 못할 망정 한결같은 마
    음으로 변함없이 숨은 노력을 계속하여 감이 좋다." 나의 부실 때
    문에 한사람의 몫을 못할  망정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함이 없이
    숨은 노력을 계속하여 감이 좋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안된다고 짜증을 내지  말고, 처음부터 다 되어질  수
    없는 법, 안되는 것만큼 더 노력을 해야 됩니다. 첩으로 시집가서
    혼자 독차지하려면 집안이 풍지박살이 나고  쫓겨나게 되니까 못
    마땅 하더라도 "본부인과 잘 뜻을 합해서 해나가면 길하리라." 즉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저 사람하고는 마음이 안맞아서 못하겠다
    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할 일을
    위해서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더 정성껏 하면 결국은 좋
    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쪽 눈이 없다  하더라도
    볼 수는 있는 법. 잘  안보인다고 투정하지 말고 보이는 것을  갖
    고, 즉 그 정도 실력만 갖고라도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음효. 여자가 첩으로  남편의 애정을 얻으려
        하나 무리다.  몸을 삼가 부처(副妻)가 되는 것이 분
        수에 맞는 줄 알아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독점하려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정처
    (正妻)하고 부처(副妻)하고 한 집에 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
    니다. 여자는 자기 중심적이므로 남자가 이쪽도  신경쓰고 저쪽도
    신경쓰고 있는 것을 알면 배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애정을 독차지 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피우면 안된다고 세 번째에
    서 말하고 있습니다.
      "몸을 삼가 부처가 되는  것이 분수에 맞는  줄 알아야 한다."
    여자가 정조를 가지면 음성에너지의 덕이 나가게  됩니다. 여자의
    심정으로 봤을 때는 독차지 하는 마음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중
    요한 것같지만 지금까지 성실하게 왔는데  채워지지 않는다고 튕
    겨져 나가면 그나마 성실한 것이 아무런  효력을 발생할 수 없게
    됩니다. 절름발이라 하더라도, 또 애꾸눈이라  하더라도 못마땅한
    처지에 부합해서 그 곳을 위해서 힘을 쓰면 성공할 수 있는 위대
    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청년이 마쓰시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가
    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쓰시다가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하기 직전에 그만
    두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튕겨져 나가야 한다." 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을 쏟
    으면 답을 자연이 가르쳐 주게 됩니다. 우주가 자기  하는대로 잘
    안된다 해서 망치로 내려치면 그 순간  우주는 그 깨어지는 파편
    들을 그 사람에게 돌려줍니다. 그래서 "비록 절름발이라 하더라도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성실껏 행하다가 부아가 날 때도 있겠지
    만, 그 때 튕겨나가지 말고 마음을 바르게 해야된다. 그래야만 심
    도 있는 깊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하괘 택(澤)괘가 주는 교
    훈이었습니다.
     
        네 번째 양효. 혼기가 늦어진다. 그러나 시기가 늦어
        지는 것은 좋은 인연이 있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보면, 원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안에서 무수히 많
    은 소프트웨어의 작용을 해가지고 소프트웨어가 이제 이길 수 있
    다는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실행으로 옮겨야지  성공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도 그
    거 해야지.' 하면 될 턱이 없는 것입니다. 즉 안에  내실이 분명히
    갖추어진 다음에 행실로 옮기라는 얘기입니다.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좋은 인연이 있기를  기다리기 때문이
    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던간에  꼭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됩니
    다.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무대에 서는 가수들을 평범한
    사람이 보면 그저 멋있는 것같아서 나도 그렇게 되어야겠다고 생
    각할 지 모르지만, 훌륭한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노래를 만 번 이
    상 부르며 피나는 연습을 해야됩니다. 만 번을 불렀을때 비로소
    그 사람이 감정으로 인해서  삐그덕거리는 것이 없어집니다. 제작
    자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한 후 '난 이렇
    게 했는데 왜 안되나?' 할 때, 그 때가 바로 시작할 때입니다. 지
    금까지는 자기 기분으로 한 것이고, 이제부터 진짜 일을 느끼면서
    할 때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은나라의 천자인  제을이 그 누이를
        시집보낼 때 그 의상이 따라가는 시종의 것보다도 오
        히려 검소하였다. 귀한  것은 마음속에  있고 의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달은 보름에 가까울 때가  좋다.
        길하리라.
     
      쉽게 예를 들면, '내가 요걸  사면 신나겠지. 막 자랑할텐데 .'
    하는 그런 기분을 가졌을 때 일은 되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운전
    면허증을 딸 때도 '따자마자 차를 멋있게 몰고 다녀야지.' 하는 기
    분이 들 때 운전면허증을 따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그런 때는 면
    허증이 따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몇 번 떨어져서 그런  기분이
    다 지칠 때 그때가서 겨우 면허증이 따집니다.  그래서 "은나라의
    천자인 제을이 그 누이를 시집보낼 때  그 의상이 따라가는 시종
    의 것보다도 오히려 검소하였다." 자신의 사치스런 감정이 다  없
    어질 때, 제왕의 누이라는  높은 신분이지마는 그런 사치성이  다
    없어질 때, 그때 제왕이라는 뜻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사치가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안에 실수가 내포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치스러운 마음이 다 사라질
    때 객관적으로 현실이 보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의상을 치워버린
    다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음효. 조상의 제사에  아내가 받들고 있는
        광주리는 아무 것도 담지 않은  빈 광주리요, 남편의
        희생으로 받치는 양은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썩은
        양이었다. 이러고서야 가정이 순조로울 수 없다.
     
      결과가 생긴 다음에는 그것을 펼쳐내야만 됩니다. 소프트웨어가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하드웨어가 뒤따라야 합니다. 다 이루어졌다
    고 해서 자기 혼자만 독차지 하고 그것을 베풀줄 모르면 아무 소
    용이 없습니다. '나는 했는데 '라는  자기 만족에 빠져서 그것을
    펼쳐내지 못한다면, 씨를 뿌려 놓고 나중에 거둬들이는 노력은 하
    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조상의 제사에 아내가 받들고 있는 광주리는  아무 것도 담지
    않은 빈 광주리요, 남편의 희생으로 받치는 양은 찔러도  피가 나
    지 않는 썩은 양이었다."  하드웨어가 뒤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리
    소프트웨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빈광주리에 불과하
    고, 양은 양이로되 피가  나지 않는 썩은  양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소프트웨어가 확고부동해야 하며,  그 소프
    트웨어는 반드시 하드웨어를 통해서 결실을  만들어 내야만 하겠
    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6149
  • 49. 택화혁(澤火革)
    『 혁명(革命) 』
     
     ●     혁명을 하려고 하면 마음의 중심이 분명하게 있어야
     ○     합니다. 그리고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은 두가지, 세
     ○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
            마음의 중심이 못잡혀 있는 사람은 이쪽 일하면  저
     ○     쪽 일 걱정하고, 저쪽  일하면 이쪽 일 걱정합니다.
     ●     집에 가면 회사 걱정하고, 회사 가면  집안 일 걱정
     ○     하는 사람. 이것은 두가지 일을 다 못한다는 뜻입니
            다.
     
                          택화혁(澤火革)
     
        [혁(革)]의 괘는 충분히 시기가  무르익은 다음에 행
        하여야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
        고 있다. 물[澤]과  불[火]이 서로 싸우고  두 여자가
        동거해서 서로 승갱이 하는 모순을 밝은 덕[離]에 의
        해서 즐거움[悅]으로 바꾼다면 혁신적인 사업은 크게
        뻗어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정도(正道)를  관철할
        수가 있다. 혁신이 필연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면 후회
        를 남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천기(天氣)가  변하
        고 새로워져서 사계절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탕왕(湯
        王), 무왕(武王)의 혁명도  이 하늘의  이치에 따르고
        백성의 마음에 응했던 것이다. 혁(革)은 그 시기를 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혁(革)]괘는 위의 괘가 양효가 둘, 음효가 하나로서 여자를 나
    타내면서 음효가 맨위에 위치하여 막내딸을 의미합니다.  아래 괘
    도 여자를 나타내면서 음효가 가운데  위치하여 둘째를 의미합니
    다. 이것은 여자와 여자가 서로 자기 것을 고집하고 자기중심적으
    로 행동하면 서로 밀어내게 되어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합니
    다. 또 상괘가 물을 뜻하고  하괘가 불을 뜻하여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다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물[澤]과 불[火]이 서로 싸우고 두  여자가 동거해서 서로 승
    갱이 하는 모순을 밝은 덕[離]에 의해서 즐거움[悅]으로 바꾼다면
    혁신적인 사업은 크게  뻗어서 발전할  것이다." 그런데 이  [택(
    澤)]은 즐거움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택(澤)은  물을 거두어 모으
    는 것이므로 서로 모이기 위해서는 즐거워야만 되지, 서로 으르렁
    거려서는 모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火)는  불을 뜻하는 동시
    에 [밝음]을 나타냅니다. 또 주역은 순서가 밑에서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불이 물을 잘 끓이면 불도 물도  아닌 제 삼의 것으로 변
    화시킬 수 있습니다. 즉  밝음을 통해서 모순을 해결하면  새로운
    질서에 의한 즐거움이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곧 개혁입
    니다. 만약 불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에 있으면 혁(革)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혁(革)이라는 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변
    하는 것을 뜻하는데 물이 밑에서 위로  불을 꺼버리면 완전히 소
    멸되어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상괘는 兌(태상절)괘로 연못이며 기쁨을 나타냅니다. 신체는 입
    에 속하고 소녀인데 하괘는 離(리허중)괘로 불이며 밝음을 나타냅
    니다. 신체로는 눈에 속하고 중녀인데, 그래서 택화혁괘는 위에는
    소녀가 있고 아래로는 중녀이므로 위 아래의 서열이 바뀌어 있습
    니다. 그래서 혁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괘의 형상을 잘 보면 두
    번째 효가 음으로서 자기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다섯 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어 무엇인가 확고부동한 자신을 분명하게 세
    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키면서 움직
    이다 보면 다른 더 큰 세상의 것을 움켜쥘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변화는 기운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우리 사람이 기운을 가장 적당히 맞추면 큰 무리가 없고 성
    공을 하지만 기운에 앞서서 머리가  하다보면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잘 살펴서 걸어가면 큰 무
    리가 없이 걸어갈 수가 있는데 오고 가는 차를 살피지 않고 그저
    급하다고 막 뛰면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
    서 현실 생각을 갖고 현실의 흐름을 100%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사
    람이 되지 않으면 혁신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즉 현실의 움직이는
    기운을 보고 변화를 주려고 하는 때를 적시에 맞추지 않으면 안된
    다는 것입니다.
     
      적시 때를 맞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
    은 마음의 중심이 분명하게 잡혀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
    를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공부 때문
    에 시간이 없어서 이것을 못한다 하는  사람은 벌써 중심이 확고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옛날 아브라함 링컨도 일하면서 야간에 공부했습니다. 야간  공
    부했다고 해서 잠을 안자고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낮에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밤에는 집중적으로 공부한
    후 잠도 여섯시간 이상 잤습니다. 그 정도 자지 않으면 낮에 일도
    제대로 못하여 결국 두가지를 동시에 잘 할 수 없습니다.
      혁명을 하려고 하면 마음의 중심이 분명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
    리고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은 두가지, 세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 마음의 중심이 못잡혀 있는 사람은 이
    쪽 일하면 저쪽 일  걱정하고, 저쪽 일하면  이쪽 일 걱정합니다.
    집에 가면 회사 걱정하고, 회사 가면  집안 일 걱정하는 사람. 이
    것은 두가지 일을 다 못한다는 뜻입니다.
     
      불[火]은 중심이 안에 있고  양성에너지가 바깥에서 훨훨 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핵심적인 에너지가 바깥으로 품어나올
    수 있습니다. 촛불이 타는 것. 이것이 중심이 잡혀져 있어야만 가
    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기 같다 놓으면 이 곳을 불지르고,
    저기 갔다 놓으면 저 곳을 불로 태웁니다. 시간이  없어서 불지르
    지 못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못한다." 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므로 아직 안의 불을 내어 쓸 수 없는 사람
    입니다. 우리는 불을 내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세상은 마음  먹은 데로 되지 않는
    다.'고 하는데, 왜 마음 먹은 데로 되지 않는가 하면  제멋대로 했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실적인 눈으로 현실을 보고 자신의 먹은
    마음을 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제멋대로 하니 마음  먹은 데
    로 될 턱이 없는 것입니다. 갑자기 수영을 하고 싶다고 날씨가 영
    하 10도, 영하 20도 되는데 강물에 뛰어들면 몸이 꽁꽁 얼어 죽을
    것입니다. 또 몸이 얼었다고 해서 몸을 녹이겠다고 펄펄  끓는 물
    에 뛰어들어 가면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입니다. 마음  먹은 데로
    될 턱이 없습니다.
     
      이 혁(革)괘는 마음 먹은 데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 먹은 데로 세상이  되어 지는 것. 그것이 진
    정한 혁명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은가?' 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이것을 마음안에서 결정짓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확하게 오차없이 핀트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핀트를 맞추려면 나 자신이 내
    면에 분명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
    내가 무얼하면 좋을까?' 하고 갈등하는 사람에겐 해당  사항이 없
    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까지 그럭저럭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분명히 무엇이 하고 싶다.'라는 것이 확고한 사람만이 그렇
    게  현실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대상. 물과 불이 싸운다.  이것이 혁(革)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개혁의 시작을 맞아  먼저 역
        서(曆書)를 펼쳐 때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위에는 물이고 아래는 불입니다. 위에 있는 물로 아래서 올라오
    는 불길을 잡는 형상입니다.  이것이 혁(革)의 괘상입니다.  군자
    는 이 괘상을 보고 개혁의 시작을 맞아 먼저 역서(曆書)를 살피고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밥이 뜸을 들이기 전에는 솥두껑
    을 열어 젖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시기가 분명한 때를 아는 것,
    그것을 바로 혁명이라 하였습니다.
     
        첫 번째 양효. 굳게 지킨 것을 소가죽 묶어놓은 것처
        럼 하여라. 절대로 경솔하게 행동하여서는 안된다.
     
      "굳게 지킨 것을 소가죽 묶어놓은  것처럼 하여라." 분명히 나
    는 확고부동하게 이것을 하여야겠다고 하면  그 마음을 소가죽으
    로 묶어 놓은 것처럼  단단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굳은 양효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을 분
    명히 가진 다음에는 여건이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서 그
    시기가 왔을 때 혁명을 단행해야 합니다. 그전에 경솔하게 나아가
    서는 안됩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현실이 바라고 있는가를 먼
    저 냉철히 생각해 보고 칼자루를 쥐었을 때까지는 칼을 뽑아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음효. 여건이 이미 충분히 성숙했을 때 혁명
        을 단행하라.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국민들이 즐거워
        할 것이다.
     
      "여건이 이미 충분히  성숙했을 때 혁명을  단행하라." 병원에
    가면 여러 가지 검사를 많이 합니다. 왜 검사를  많이 하는가? 병
    이 생겼는가 안생겼는가? 생겼다면 아직 진행과정인가 만기가 된
    것인가? 등등을 알아내어 분명히 어떤 병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정
    확히 그 병명을 파악하여 과연 지금 수술해야할지, 말지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여건이 충분히 성숙됐는가 안됐는
    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어져 있지 않으면 일
    단 참아야 합니다.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대부분 인간의 마음은
    급하게 움직이거나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우선 이렇게 혹은 저렇
    게 하려고 합니다. 그 순간에 다시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예감
    으로 일단 행동을 했는데 뭔가 찜찜하다는 것이 있으면 그건 대부
    분 틀리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내가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좋아
    할 것이다.' 하는 예감이 들때는 아직 때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예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결행할 때를 직감으로
    알기 위해서는 안에 분명한 자기가 있어야 합니다. 때를 알 수 있
    는 실적이 생겨야지만 그런대로  혁명을 정확히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볼 때도 '꼭 나는 맞춰야 한다.' 하는 것을 강하게 갖고 있
    으면 예감이 맞게 만들어 줍니다. 마쓰시다도 경영의 3대 원칙 가
    운데 세 번째가 바로  육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육감은 꼭  그렇게
    해야 되겠다 라는 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비례해서 정확하게 맞추
    어줍니다. 육감이 스스로 정확한 것을 요구해서 "바로 이때다." 하
    는 확신이 설 때, 그 때는 결행을 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시작해야
    합니다. 약간 위험이 따를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시작하면 허물
    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양효. 함부로 나아가면 흉하다. 바른 일이건
        만 위험하다. 개혁해야 한다는 세론이 무르익었을 때
        일을 단행하라. 개혁하라는 세론이  무르익어지면 다
        시 달리 할 길이 없지 않은가?
     
      "함부로 나아가면 흉하다." 이미 일을  벌려 놓았으니 조심 조
    심 어떤 것이 되돌아 올 것인가 그 그림자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개혁해야 한다는 세론이 무르익었을 때 일을 단행하라." 결행을
    하되, 외부와 섞이는 중간 과정을 깊이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
    다. "첫 숟가락에 배 부르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뜸이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에서 음성에너지로 외부의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
    는데, 그 다음부터는 조심하면서 계속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
    래서 주역이 개혁을 지지하는 분위기로 점점 전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주역은 밑에서 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결과적
    으로 두 괘가 뒤바뀌는 현상이 벌어져서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네 번째 양효. 후회할 것이 없다. 인민이 신뢰하고 있
        다. 신념을 가지고 혁명을 단행하라. 길하다.
     
      이제까지는 내면적으로 뜸을  들이면서 외부하고  섞이는 것이
    었는데 이제부터는 외부를 완전히 바꾸는  변혁을 일으키는 것입
    니다. "신념을 가지고 혁명을 단행하라.  길하다." 그렇게 단행해
    도 다섯 번째 양효가 중정(中正)의 위치에  있고 또 음양이 조화
    를 이루어 결국 주변이 나를 도와주기 때문에 길하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  대인(大人)이 호변(虎變)한다.  점칠
        것도 없이 국민의 신임을 받아 나라의 모든  일은 범
        의 가죽처럼 아름답게 풍채가 난다.
     
      "대인(大人)이 호변(虎變)한다." 호랑이는 가을이 되면 털갈이
    를 합니다. 짐승들은 털갈이를 한 다음에는 아름답고,  멋있고, 기
    상이 있으면서 굉장히 깨끗해 보이게 됩니다. 이 처럼  세상이 개
    혁을 따라주게 되면 그 사람은  영웅처럼 보인다라는 이야기입니
    다. 그 사람의 모든 개혁된 뜻은 이제 아름답게  광채가 난다라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지도자가 표범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으로 변한다. 모든 국민들은 지향하는 마음을 바
        꿔 군주에게 순응하여  온다. 그러나  지나친 개혁은
        도리어 흉하다. 바르고 훌륭한 것은 종래의 것이라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길하다.
     
      "그러나 지나친 개혁은 도리어 흉하다. 바르고 훌륭한 것은 종
    래의 것이라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길하다."  솔직
    히 말해서 아주 깨끗한 세상이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배꼽에
    때가 낀 것이 보기 싫다고 다 제거해 내면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
    분에 면역성이 약화되어 질병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이렇듯 아무
    리 몸을 단정히 하고 깨끗이 씻는다 하더라도 우리 몸안에는 구질
    구질한 더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더럽다고  모두 없애버리
    면, 우리 몸이 깨끗하게 남을 것같지만 곧 시들시들해져서 죽게될
    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선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진정한 도(道)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고 어
    느 학승이 물으니까, 선사는 빗자루를 주면서 마당을 깨끗이 쓸라
    고 하였습니다. 이 학승은 마당의 낙옆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
    끗이 쓸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사가 나오더니 나뭇잎을 몇 개 마당
    에 뿌리면서 "그래도 나뭇잎 몇몇은  떨어져 있어야 가을 정취가
    나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바꾼다고 해서 전에 남아있던  잔당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이면 원성을 사는 법입니다. 이미 개혁을 해서  내가 뜻한
    세상이 되면 전에 남아 있었던 것들도  기운을 쓰지 못할 정도면
    내버려 두고 가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그런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개혁이 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한다
    고 해서 사람이 너무 깨끗해지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병이 됩
    니다.
      이 세상을 뭔가 나의 뜻하는 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세상은 뜻
    대로 되지 않는다." 하고 말하지 말고 분명히 해야할 뜻을 가지고
    세상을 받아들여 살펴서 이쯤이면 된다 했을  때 시작을 해야 합
    니다. 시작을 한때는 자신만을 주장하지 말고 외부를 받아들여 수
    용하면서 쌓아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느정도 뜸
    이 들었다 싶으면 이제는 쌀도 물도 아닌 밥이 되어 있을 것입니
    다. 중요한 것은 처음의 초보 상태가 힘든 것이지 중간 이상 올라
    가면 "주역은 역순(逆順)한다."는  원리에 의해 상황은  발전되게
    되어 있습니다. 즉 하괘만 불이 위로 올라오면 세상이  불처럼 활
    활 타듯 뜻이 펼쳐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
    는 사람들은 기초가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무엇을 하거나 뭐든지
    자기 중심적으로 나에게 좋을까? 이거해볼까? 저거해 볼까? 하는
    식으로 분명한 뜻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47
  • 48. 수풍정(水風井)
    『 생명의 샘 』
     
     ●     이 세상에서 제일 터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
     ○     다. 사랑은 최소한도 맨 처음에는 이성을 갖고 사랑
     ●     을 시작합니다. 이성을 통해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사랑을 자기한테 묶어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편
     ○     이 나한테 묶이느냐 하면 안묶입니다.  처음에 남녀
     ○     가 사랑할 때는 너무나 달콤하고  즐겁습니다. 그리
     ●     고 서로는 서로에게 매우 잘해줍니다.  그러다가 차
            츰 차츰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묶어둘  수 없는 것을,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자꾸 묶어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
            다 보면 서로는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에게 누구를 묶어 두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바
            로 스스로한테 묶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사랑을 원한다면 상대편을 묶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수풍정(水風井)
     
        정(井)은 우물을 뜻한다. 한 고을의 수도는 옮길 수
        있으나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 땅속에 줄기차게 샘솟
        는 근원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있어서 줄지도  않고 넘치
        지도 않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우물을 쓸 수 있다. 우물이  사람을 길러주면 제한이
        없다. 그러나 우물의 물은 저절로  사람의 입에 들어
        오는 것은 아니다. 물 속에 두레박을 넣어서 물을 떠
        올리는 것이 우물이다.
     
      오만년전에 우리 사람들 세계에는 [법]이라는  것이 사실 없었
    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법이 점점  발달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야만 국가로 가면 갈수록 법은 별로 없습니다. 이 세상
    에 존재하는 국가중 야만 국가도 아니면서  법도 없이 가장 유토
    피아적인 나라가 있다면 바로 티베트입니다. 티벳에는  법이 여섯
    개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법 덕 일체라고 해서 덕이 곧  법이 되
    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라고 하는 나라는 왜  법이
    점점 발달되어 가지 않으면 안되는가?  특히 미국같은 나라는 연
    방법, 지방자치법 등 하여 우리나라보다 법이 더 세밀하고, 더 많
    고, 더 까다롭고, 더 심합니다. 그 이유는 각자가 자기 주장이 강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권을 존중해  주는 대신 사회질서를
    어기며 법을 위반할 때는 인권보다 법의  집행을 더 강하게 하게
    됩니다. 즉 개인적인 인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법도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그것은 법은 거의 개인
    사정에 관계치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법은 사실 점점 약해져야만 좋은 나라입니다. 티베트는 법이  6
    개밖에 없으면서 감옥도 없습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금속
    은 은입니다. 금은  일반인들이 사용을 못합니다.  금은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쓰기 때문에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승려는 집을 수
    있지만 일반인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값어치를 따지기
    이전에 그것은 만져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
    이 가장 비쌉니다.
      티베트에서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면
    은으로 팔찌를 만들어서 채워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팔찌를 차고
    다니면 모두가 범법자로 알기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
    니다.
      법은 약해져야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수양을  한다고
    하면 자꾸 법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인내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가슴에다 법을 만들어서 그걸 지키는 사람이 있습
    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그 사람에게서는  덕이 흘러나오지
    를 않습니다.
      [수풍정] 괘는 우물을  뜻합니다. 상괘는 물을  뜻하는 괘이고,
    하괘는 바람을 뜻하는 괘이면서 동시에 나무를  뜻하는 괘입니다.
    그러면 [수목정]이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안하고 [수풍정]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가만히 있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즉 움직인다라는 것을  강하게 표시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명칭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밑에 나무가 들어
    있는 것이 [정(井)]괘의 상인데, 여기서  나무는 두레박을 뜻합니
    다.
     
      이 세상에서 제일 터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최
    소한도 맨 처음에는 이성을 갖고 사랑을 시작합니다. 이성을 통해
    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사랑을 자기한테 묶어두려고 합니다. 그런
    데 상대편이 나한테 묶이느냐 하면 안묶입니다. 처음에 남녀가 사
    랑할 때는 너무나 달콤하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매우 잘해줍니다. 그러다가 차츰 차츰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묶어둘 수 없는 것을,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자꾸 묶어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는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에게 누구를 묶어 두려
    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스스로한테 묶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
    정으로 사랑을 원한다면 상대편을 묶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묶어둬 버리면 곪아서 썩어버립니다.  썩
    은 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퍼내어 써야  됩니다. 퍼내서
    쓰게 되면 상황이 나를 묶어 놓는 것이 아니고, 현재 묶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나로 인하여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그점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수풍정]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
    리가 받은 교육은 스스로를 묶어 두느냐 못 묶어두느냐의 연습을
    주로 해왔습니다. 스스로를 풀어놓는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물은 퍼내어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물은 마르지 않
    습니다. "정(井)은 우물을 뜻한다. 한 나라의  수도는 옮길 수 있
    으나,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 우리 내부에 있는 '생명의 샘'은 옮
    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마르지도 않습니다.
      "땅속에 줄기차게 샘솟는 근원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주와 직접 연결되어져 있는 곳이며, 또  신과 직접
    연결되어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흡한  인간들이 스스
    로 자기 자신의 우물에 돌을 던지고, 자꾸 흙을 부어서 메꾸어 버
    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메꾸어진 인간들과 같이 있으면 아주 피곤
    해지게 됩니다. 그 인간들은 회의를 하면 꼭 싸웁니다.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와서 다른 문으로 나갑니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있어서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인간이 보통 뭔가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갑자
    기 일을 할 때 우물은 넘칩니다. 보통 맨처음에 마음먹고 할 때는
    한 며칠동안 넘치도록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삼일이 지나가 버리면
    도 팍 줄어버립니다. 때문에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
    도록 해야 됩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나가 자유롭게 우물을 쓸 수 있다."
    즉 누구에게나 골고루 다 혜택을 베풀 수 있으며, 모든 것에게 미
    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취미가 아닌 것은 못한다고 합
    니다. 또 자기가 아는 것이 아닌  것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
    람은 스스로 우물을 막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취미는 있
    습니다. 그러나 취미가 같지 않더라도, 구질구질한 일일지라도 생
    명력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물이 사람을 길러주면 제한이 없다." 우물이 사람을 길러주
    면 제한이 없지만 사람이 우물을 자꾸 제한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우물의 물은 저절로 사람의 입에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물의
    물을 퍼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두레박입니다. 그 두레박은 바로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을 자기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마
    음에 드는 것은 선택하고, 들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일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우물을 뚜껑으로 막고 있는 것이며, 결국  맑은 물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금방 떠서 마실 수 있건만 어떤 사람은 두
    레박질을 하지 않거나 두레박을 뒤집어 놓습니다.
      우물이 자기 자신한테 고정되어 있으면 [정(井)]괘는 아주 흉한
    괘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한테 고정되어져 있는 사람은 세
    상이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서울은 옛날의
    서울이 아닙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못 느끼는 인간이  바로
    꽉 막힌 인간입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엄청나게  빨리 돌
    아가고 있다는 것을 못느낍니다. 스스로 정지되어져  있는 사람은
    정지된 것밖에는 못봅니다.
      "믈속에 넣어서 물을 떠올리는 것이 우물이다." 그러기 위해서
    는 먼저 물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물위에다
    가 자꾸 무언가 법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나  자신의 만든 법,
    사실 그 법이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구속시키고 있습니다.
     
        대상. 나무위에 물이 있는 것이 [수풍정]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국민을 위로하고 권장하고 도
        와준다.]
     
      이것은 군자가 아닌 사람은 하지 못합니다. 군자가 아닌 사람을
    가르치면 우물을 막는 것을 도와주게 됩니다.  누군가 내게 "선생
    님 저는 도둑질 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라. 단지 도둑을 당하는 사
    람한테 피해가 되어서는 안되며, 모두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안되
    며, 너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상관없다." 또 누군가 내게 "저는 누
    군가를 죽이고 싶습니다." 하고 물으면, "첫째,  감옥에 가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하라. 둘째, 그가 죽어서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라.
    셋째, 그렇게 하여 네가 기쁘다면 나 역시 너와같이 기뻐하리라."
    하고 나는 대답할 것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두레
    박이 퍼진다면 나는 조건을 달아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전
    부다 하도록 해줄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우물이 흙탕물로  더러워지면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 버려진 옛 우물에는 새도 안 오는 법.
        사람도 인격이 비열해지면 세상 사람에게  버림을 받
        는다.
     
      첫 번째는 음효로서 자기 마음 먹은데로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샘을 내어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욕심  때문에 나오는
    에너지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악인보다 더 나쁜
    것은 옳다고 고집하는 자입니다. 그런 인간들은  우물을 흙탕물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그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또
    그자들은 "나는 옳으니까 이것은 못한다."하고  전부 다 떠나갑니
    다. 그런 사람한테는 새도 오지 않고 세상이 버리게 됩니다. 맑은
    물은 빛이 통과하지만 흐린 물에는 빛이 투과하지 못합니다. 그러
    나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흐
    린물에서 고기가 노니는 것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인격이 비열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 여기
    서 인격은 윤리, 도덕적 인격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주역에서 말
    하는 군자는 그러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인격은 흙탕물에 들어간 인격에 불과합니다. 나의  생각을 고집해
    서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인격은 자기 사상, 자기 옳음에 스스로 사로  잡히지 않는
    인격입니다.
     
        두 번째 양효. 아까운 우물물이 개울물처럼 흘러가서
        겨우 어린 붕어를  길러주고 있다.  두레박이 깨어져
        물이 새니 사람이 마실 수 없다. 훌륭한 인재도 등용
        하여 주는 이가 없으면 이와같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에너지를 내어  쓰려고 노력을  하면
    "아까운 우물물이 개울처럼 흘러가서 겨우  어린 붕어 새끼를 길
    러주고 있는" 그 정도는 나온다는 뜻입니다. 군대라는  곳이 마지
    못해 하는 곳입니다. 군대가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
    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대는 전부 다 요령이라고 합니다. 그
    러나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전부 다 군대가 합니다. 과거 깊은 산
    중의 꼬불꼬불한 도로들, 거의 다  군대가 닦은 것입니다. 그것도
    불도저와 포크래인이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삽들고 닦은 것입니
    다. 우리의 생명의 샘은 쓰기만  하면 에너지가 나옵니다. 에너지
    를 내어쓰는데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생명에너지를 내어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두레박이 깨어져 우
    물물을 퍼올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못하겠다고  자기 고집만
    하는 사람은 무조건 훌륭한 인재가 아닙니다.
     
        세 번째 양효. 우물을 깨끗이 쳐내어 맑은 물이 고였
        건만 먹지 못하니 내 마음이 슬프다. 이 우물을 퍼올
        려라. 왕이 현명하여  인재를 등용한다면  함께 복을
        받을 것이다.
     
      먼저 나 자신의 우물을 깨끗이 치우려면 지금까지 기존에 생각
    했던 나에 의한 나의 생각,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믿고 있는 것으
    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그래서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내어 쓸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우물물을 퍼올려라." 즉 못한다
    고 하지 말라. 내가 판단해서 좋다고  가고, 싫다고 가지 않는 짓
    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왕이 현명하여 인재를  등용한다면 함께 복을  받을 것이다."
    훌륭한 사람은 인재를 등용하여  같이 훌륭한 일을 하게  됩니다.
    훌륭한 일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두루 펴서 그
    것이 온 천지에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온 천지에 복을 줄 수
    있도록 덕을 베푸는 것, 그것이 바로 [수풍정]입니다.
      [정(井)] 괘는 위로 올라갈수록 "좋다"라는 쪽으로 나가고 있습
    니다. 많은 주역의 괘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좋지 않다"라는 요소
    가 많아지며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괘는  샘이 흘
    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올라가면 갈수록  좋아져서 나중에는 엄
    청나게 좋아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입니
    다. 수양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바로  흙탕물을 벗겨내
    는 일입니다. 그리고 벗겨냈으면 꾸준히 밀고 나가야 됩니다.
     
        네 번째 음효. 우물의  안 벽을 벽돌로  쌓아 깨끗이
        수리한다. 탈은 없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중 '자로'가 물었습니다. "현자가 거지와 같은 소인
    배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당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우주를
    논할 만큼 현명한 석학들이었는데  생활은 겨우 세끼  굶는 것을
    면할 정도로 거지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로가  물은 것입니다.
    공자는 "현자나 소인배나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소인배는 배가 고프면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지만, 현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우주 밑에 거지나 성자나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같은 것입니다. 우주는 수없이 많은 삼라만상을 펼치고 있으
    나 그 모든 만물은 평등합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중심, 즉 핵이 있기 때문이며, 그 핵은 우주의 핵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핵을 우리는 영혼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현자와  소인
    배가 다른 점은 현자는 아무리 마음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영혼을
    어지럽히거나 팔아서 자신의 영혼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배가 고
    프다고 해서 영혼마저 배고픔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인
    배는 핵을 소중히 여기고 핵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도적질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물의 안 벽을 벽돌로 쌓아  깨끗이 수리한다." 이는 핵심을
    분명히 한다는 뜻입니다. 핵심이 뚜렷해야 정신과  마음이 올바로
    쓰여져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핵이 진실로  강하게 원
    하면 마음을 통해 결심을 하게 되고  정신을 통해서 많은 아이디
    어를 만들어 내게 되며, 그 에너지가 밖으로 번져  나가면 드디어
    만물이 핵이 원하는 데로 들어오게 됩니다. 발명가들이 발명을 할
    때는 느닷없이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연구실에서 발명된  것은 거
    의 없습니다. 노벨이 고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실험에 실패하여 공장이 파괴되고 자기 동생이 죽고, 자신도 다쳤
    습니다. 그러나 노벨의 핵은 슬픔에 젖지 않고 좌절하지 않았습니
    다. 드디어 정신과 마음이 다 지치고 몸마저 지쳐  쓰러졌다가 갑
    자기 눈을 떴을 때  액체 다이너마이트가 뚝뚝  떨어지면서 땅에
    흡수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고체 다이너마이트가 발명 되었습니
    다.
      핵을 위해 진정으로 정신과 마음이  쓰여지는 것은 "중앙을 위
    해서 마음을 쓴다."고 하여  충심(忠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핵
    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조금 손해 본다 싶으면
    어떻게 할 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충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
    런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끌어 당기는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런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양효. 우물이  맑으니 한 샘물을  먹을 수
        있다. 속에서 솟고 있는 원천이 좋기 때문입니다.
     
      "속에서 솟고 있는 원천이 좋기  때문입니다." 더렵혀 지지 않
    고 분명한 영혼을 통하여 샘솟는 원천에서 살아야 합니다. 일본이
    오늘날 저렇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2차대전때 항복을 할
    망정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무라이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
    니다. 과거 한국에서 전쟁이 날 것같으니까  미국으로 도망하였던
    사람들. 이제 한국이 잘살게 되니까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렇
    게 원천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면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 음효. 우물에 물을 긷고 뚜껑을 잠그지 말
        라. 우물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
     
      "우물에 물을 긷고 뚜껑을 잠그지  말라." 뚜껑을 잠그면 안에
    있는 물은 더 이상 옳은 물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내가 옳은 것"은 곧 잘못입니다. 눈은 항상  바깥으로 나가 있어
    야 하고, 바깥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나 뚜껑은 단단히 만들
    어 놔야 됩니다. 뚜껑을 닫지는 말아야 되지만 그래도  우물의 벽
    은 단단히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을 것
    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353
  • 47. 택수곤(澤水困)
    『 곤란을 맞다 』
     
     ●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
     ○     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
     ●     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수곤(澤水困)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
        게는 발전의 길이 있다. 강효가 유효에 가리워  있다.
        험난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
        도 형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
        다. 변함이 없이  한결같이 바르게 있으라.  가슴속에
        굳은 신념이 있는  큰 인물에게는  반드시 길하리라.
        무엇을 말하여도 남에게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 많으
        면 궁지에 빠지리라.
     
      공자의 제자 자로가 물었습니다. "군자도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
    야 합니까? 그럼 군자와 거지가 무엇이 다릅니까?" 공자가 대답하
    였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거렁뱅이와 소인배들은 궁하
    면 문란해지고, 도적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는 따위의 비행을 저
    지르지만, 군자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이게 군자와 거렁
    뱅이가 다른 점이다." 자로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공자
    가 말했듯이, 겉의 모든 유혹이나 어려움 따위에 잃어버리지 않을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군자의 길입니다. 사
    람이 무언가 자기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해서 뜻을
    저버리게 된다면, 그 뜻은 진정한 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유혹에
    도 변하지 않을 명료한 뜻, 그리고 그것을 지닌 명료한 영혼을 같
    고 있어야만 '비행'과 '문란'이라고 하는 세계의 경계선을  분명하
    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주는 명료합니다. 이 우주는 부서지기도 하고 깨져 나가기
    도 합니다. 그것은 명료한  우주가 명료한 조화를 꾸미기  위해서
    무언가 균형에 맞지 않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한 집의
    가족은 모두가 편안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다시 말해서 도둑이
    든다면, 그 도둑도 우리와 같이 하나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눈에 거슬리는 경계를 만들어 냅니다. 무언가 눈
    에 보이지 않게 부조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때문에 그  가족들은
    그러한 부조화를 느끼는 순간 도둑을  잡든지 아니면 내쫓으려고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군자는 어떤 유혹을 받더라도 자기 자신을 지킬지언정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얻지 못하면, 이
    자연이 우리의 부조화된 마음을 파괴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먼저  회사가 원하는 직원이 되야지,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직장을 나가게 되면, 언젠가 직장은 당신을 쫓아
    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한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조화
    가 되어져 있는 세계에 불균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
    의 길이 있다." [곤(困)]은 "곤란하다."라는 뜻입니다. 한자의 "곤
    (困)" 자는 나무가 상자안에 갇혀있는 모양입니다. 즉 "나무가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다." "사방을 완전히 틀어막아 놓았다." "장애
    에 갖혀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괘를 가만히 살펴보면, 양표가 모두 음효에게 갇혀있습니다. 
    음성에너지는 무조건 자기 쪽안으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
    기 때문에, 그것이 앞, 뒤, 가운데에서 작용을  하면 양성에너지가
    펼져 나가려 하자 마자 즉시 그 힘이 음성에너지에 빨려들어가서
    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곤은 위의 괘가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
    고 아래 괘가 물을 뜻하는 수(水)로서 "연못 밑에 물이 있음"을 나
    타냅니다. 물이 연못 밑에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연못에는 물
    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못 바닥이 웅덩이가 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밑에 있는 물은 조금만 솟구쳐  올라오면 연못을 다시 만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水) 괘는 험난을 뜻하는 괘입니다. 또
    택은 기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곤란이라고 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라는 것을 이 곤(困)은  효
    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괘는 군자 이상이  되어야지만 곤란
    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괘
    는 이것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의 길이 있
    다." "험난 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도 형
    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다." 음효에  둘러싸
    여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변함이 없고 의지가 분명하면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 수 있듯이  도리어 '곤(困)'이 크게
    길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이
    걸 어떻게 헤쳐나아갈까?" 하고 묻는 사람은 벌써 마음 안에 밀치
    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
    는 반드시 방법이 있으며,  나는 힘 안들이고 가볍게  헤쳐나가는
    길잡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사람은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행복인줄  아는 사람
    은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곧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지옥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택수곤]을 통해서,
    허물안에서 영양분을 빨어먹고 사느니보다는 허물을 벗어나서 만
    물에 두루 날아다니며 그 만물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대상. 연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목숨을 걸고 초지(初志)를 관
        철한다.
     
      목숨을 걸고 초지를 관철한다고 해서  오기를 부리면서 살피지
    않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양효가 결국
    음효의 울타리를 뚫고 나간다는 뜻인데, 음효는  원래 "여자가 한
    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찬서리가 내린다."고 양효를 자기에게 묶어
    두려 합니다. 그러나 음효가 양효를 잡아 먹어서 양효가 고갈되어
    져 버리면 음효 자신도 존재 자체가 스스로 부서져  버립니다. 때
    문에 여자들은 찬서리를 내 품을 정도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
    야 됩니다. 기분 나쁘다고 반찬에다 양념을 덜 넣어서  남편을 골
    탕먹이는 여자, 그런 여자의 남편은 맛있는 것 먹으러 갈 때는 틀
    림없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
        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혼미한채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만물
    은 항상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비록  난처한 지
    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 역경을 지나갈 수 있는 힘
    과 묘안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난 몰
    라." 하고 눈을 감아 버리면 나무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것
    처럼 거북하고 괴로우며,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앉은 것처
    럼 삼년동안 이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양효. 일상 식생활에서도 곤란할 정도.  그러
        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
        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나라의 큰 제
        사일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으리라. 그러나 스스로 구
        하고 나서면 흉하리라.
     
      "그러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두 번째와 다섯 번째가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
    면 붉은 인끈을 찬, 즉 중국에서는 붉은 색깔이 높은 사람을 나타
    내므로, 높은 계급의  사신이 맞이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자의 사신은 다섯 번째 효를 말합니다. 그래서 큰  제사일에 참
    여하는 기쁨이 있는데, 좋은  일이 왔다고 벼슬을 스스로  구하고
    나서면 곧 낭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뜻이 깊으면 깊을수록 가벼운 기쁨에 만족하지 않는  법입니다.
    워낙 깊은 물은 함부로  촐랑거리지 않으며, 원래 안이  단단하게
    들어있는 깡통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되었다고 생각
    되는 순간, 이 잘 된 것이 다시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항
    상 해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림자를 항상 살펴라."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음효.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
        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까지 도망쳐 버린다. 흉하다.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두 번째에서 힘든 것 가운데  마음의
    뜻을 펼쳐서 난관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뚫고  나온 힘으
    로 함부로 나아가다가는 다시  고난을 당합니다.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빠져나갈 길이 없을 까 살펴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길이 좀 뚫렸다고 "하하하" 웃으며 달리다가는 순간 다시 가시덤
    불같은 장애가 앞에 온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을 다시  슬기롭게
    넘어가야 나무가 막혀있는 땅을  뚫고 나온 것처럼  비로서 잎과
    꽃,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넓고 광대한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영혼이 싱싱하다면 그대는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랄 것
    입니다. 그러나 굴복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의 발전은
    그저 거기서 맴돌다 갈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일상  생활에 밥먹
    기조차 곤란한 정도로  어찌해야할지 혼미한채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안에 진정으로 이루어내고  말겠다
    하는 신념이 분명하게 있으면 쓰러지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행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
    다. 이 실마리가 풀릴 때 실마리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얼어 있는 땅을 파헤치라고  삽을 주면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몇 번 땅을 치다가 "땅이 너무 얼었습니다. 파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하는 사람은 이미 신조가  날라가 버린 사람입니
    다. 또 어떤 사람은 잘 안파진다고 무리하게 삽질을  하다가 삽자
    루를 부러뜨립니다. 자기 힘을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아가다 돌부
    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드는 것처럼 그
    나마 한 자루 남았던 삽마저 깨뜨려  버리면 뜻을 실현하기가 더
    욱 난감해 집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빠져나와서 "자기  집에 들어
    가니 아내는 도망가고 없다." 즉,  삽자루를 부러뜨리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고통이 나를 감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삽자루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심스럽게 파야
    합니다.
     
        네 번째 양효. 나를 맞으러 오는 자가 있건만, 그  금
        색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있다.
     
      "나를 맞이하러 오는 자 있건만 그 금색 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디어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삽을 아끼면서 계속해서
    땅을 파려고 하면 이제 나를 맞으로  오는 금색 찬란한 웅덩이가
    있건만,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실패하는
    사람과 성공하는 삶의 가장 분명한 경계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
    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사를  보면 금광을 캐러 다니던 수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단 한 번도 노다지를 못캐고 결국 남의 광산에
    서 종으로 일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결코 재수가 없어서 그
    런 것이 아니고, 이제 노다지가 나오기 3피드 전에 그만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진짜 금광을 캤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남
    이 파다가 만 데를  계속해서 파보니까 노다지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광은 더디고 더디게 오는 법입니다. 봄이면 피는 수많은 꽃들
     . 가을이면 열리는 수많은 열매들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는 시 구절이 있듯이 영광은 가능한한 완
    전하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더디게 더디게 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  제품을 보고 엇비슷하게 만들
    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제품보다 뒤지는 이유는
    얼른 비슷하게 만들어 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더디고 더디면서
    괴로움을 인내하는 과정을 밟지 않아서 어딘가 엉성해 진 것입니
    다.
      네 번째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므로 난경입니다. 그러나 대응
    하고 있는 첫째 효가 음효이므로 음양이  맞아서 결국 좋게 된다
    는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
    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조를 가
    지고 있다면 아픔과 실패는  곧 성공의 어머니라고  마침내 좋은
    성과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신조가 없
    다면 실패는 곧 우리 인생 자체의 소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힘들
    고 힘들지만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나타나서 도와주게 됩
    니다. 이것을 신의 가호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이니 박해가 겹
        쳐온다. 아직 뜻을 펴지 못하니  군왕의 붉은 인끈이
        괴롭구나. 마음을 바르게 가지니 천천히 즐거움이 있
        다. 조상과 신에게 감사히 제사를 올린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 들어가며 꽃을 피웠더니 아주 갖은 모
    멸을 다 당하게 됩니다. 벌들이 날라와서 꿀을 훔쳐가더니 그래도
    얼굴을 감싸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마음놓고 있다 보니 나비
    란 놈이 날개로 토닥거려 주는 듯 하다가 뭘 하나 훔쳐가지고 갑
    니다. 또 인간들이 와서 이쁘다 하고 꽃을 꺾어갑니다. 그러나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일지언정 스스로 자멸하지 않고 꿋꿋이 있다 보
    면 드디어 천지 창조주의 홍복으로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그동안
    이 결실을 위해 마음을 바르고 곧게 가져 왔습니다.  드디어 복을
    받으며 조상과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을 죽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이  다섯 번째 효의 단계에 이
    르면 그게 바로 살아가는 낙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인생 60이 짧다는 것은 살아오는 동안에 고난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직장
    에서 쫓겨나서 3개월만 집에서 빈둥 빈둥 놀면 가슴이 터질 것같
    고, 뼈가 오무라드는 것같아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따
    라서 아무 걱정없이 60년을 산다는 것은  결국 미칠 것같은 따분
    함과 무료함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난의  삶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면 그대는 지금까지 그대에게 주어졌던 모든 어려
    움은 곧 복이었다는 것을 알고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
    니다. 복중에 가장 큰 복은 바로 이것을 느끼는 복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칡덩굴에 걸려  흔들리고 불안하여
        고민한다. 무리하게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면 후회하게
        되는 난경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여
        나가면 길하리라.
     
      여섯 번째도 음효고 대응관계인 세 번째도 음효입니다.  비로서
    하나 완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존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
    다. 이것이 마지막 하나의 고비입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수준정
    도까지 오면 이미 그것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진 상태입
    니다. 국화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기존의 꽃의 세계에는 그 국화꽃
    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치려고 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가 막히게 훌륭한 제품을 하나  만들어 냈
    다고 해서 이제 나는 완성했다 하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나의 제
    품과 비슷한 유사품이 다시  곧 나와서 나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합니다. 이때 무리하게 유사품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굳굳하게 나
    를 지켜 나간다면 길하리라 하고 여섯 번째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
    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세계는 바로 우리의 세계이며, 내가 곧 주인임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23
  • 46. 지풍승(地風升)
    『 인생의 대운(大運) 』
     
     ●     운을 탈 수 있는 조건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세가지
     ●     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운을 탔어도 크게 남는 것이
     ●     없습니다. 그 세가지는 첫째 때를 얻는 것. 둘째 실
            력을 갖추는 것, 셋째 후원자가 있는 것입니다. [승
     ○     (升)]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때를  얻어야만 합니
     ○     다. 옛날에 강태공이 앉아서 빈 낚시를 드리우고 있
     ●     었던 것은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는 사람은 때가 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
            력이 있어야지 그 때에 거두어 들일 수가 있는 것입
            니다. 다음은 후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
            니다. 후원자가 없으면 크게 거두어 들일 수는 없습
            니다. 이 세가지가 갖추어져야지 비로소  운은 크게
            상승합니다.
     
                           지풍승(地風升)
     
        [승(升)]괘는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가 [지풍승]이다. 겸양
        과 유순한 태도로 순리에 따르고 있다. 마음속에는 굳
        은 신념이 있어 웃 사람의 마음에 바르게 호응한다. 그
        러므로 크게 발전하는 것이다.  더불어 후원자를 만날
        것이다. 무슨 근심이 있단 말인가? 앞길에 경사가 있을
        것이다.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왜 주역을 꼭 64괘로 했는가?
    더 자세하게 세분화해서 64×64(4096)괘로 하든가, 아니면 방대한
    우주의 움직임으로 볼 때 사실 수십만개의 괘로 나누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64괘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의 괘는 음(●)과 양
    (○)의 한 효가 아니고 이것이 세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맨 위는
    하늘, 즉 알 수 없는 법칙을 뜻하고 맨 아래는 땅, 즉 법칙이 이루
    어지는 현실을 뜻하며, 중앙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라 하여 사
    람을 집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한 괘를 '천지인(天地人)'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을 중시하다 보니까 주역도 우리 인간
    의 수명하고 엇비슷하게끔 맞추어 놓았습니다. 64괘라는 것이 인간
    수명의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10년 정
    도밖에 살지 못한다면 주역의 괘는 10개에다 맞추어 놓았을 것입니
    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 평생에 세 번 정도의 운(運)이 온다고 합
    니다. 사주상으로는 30년 주기로 바뀌는 대운이라고도 볼 수 있습
    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일까 하고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지풍승]괘는 두번째 운(運)에 해당하는 괘입니다. 첫번째
    운(運)은 [화지진(火地晋)]괘였습니다. [진(晋)]괘는 열심히 하려
    고 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를 만나서 나아간다라는 뜻이
    었습니다.  세 번째 운은 53번째인 [풍산점(風山漸)]입니다. [풍산
    점]은 착실한 성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대운(大運)은 바
    로 [지풍승]괘입니다. 인간의 나이로 얘기하자면 삼십대에 들어오
    는 운(運)은 초운(初運)이고, 40대에 들어오는 운(運)이 바로 [승
    (升)]운(運)입니다. 그 다음에 50대에 들어오는 운(運)이 있습니다.
     
      [화지진(火地晋)]이나 [풍산점(風山漸)]은 순서에 따라서 하나
    하나 점철해서 밟아간다는 뜻인데, [승(升)]은 갖출 것을 다 갖춘
    상태에서 위로 상승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매우 좋은 괘입니
    다. [진(晋)]이나 [점(漸)]은 순서에 따라 서서히 나아가기 때문
    에 무리하게 법칙을 넘어서서 나아간다든가, 감정으로 나아간다든
    가 하면 망한다는 뜻이기도 하였습니다. [진(晋)]은 실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력없는 사람이 이 운을 타게 되면 그냥
    죽지 않고 병 걸리지 않은 채로 무사히 넘어갔다 정도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운은 그렇게 날려버립니다.
    그러나 초운은 죽지않고 병걸리지 않고 넘어갔다라는 정도만 되어
    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앞으로 [승(升)]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초운이  너무 좋으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인간적으로 수양이 되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자만에 빠져 나중
    에 [승(升)]운을 탈 때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운을 탈
    수 있는 조건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세가지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운을 탔어도 크게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 세가지는 첫째 때를 얻
    는 것. 둘째 실력을  갖추는 것, 셋째 후원자가 있는 것입니다.
    [승(升)]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때를 얻어야만 합니다. 옛날에
    강태공이 앉아서 빈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은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는 사람은 때가  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력이 있어야지 그 때에 거두어  들일 수가 있는 것입
    니다. 다음은 후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후원자가
    없으면 크게 거두어 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 세가지가 갖추어져야
    지 비로소 운은 크게 상승합니다.
     
      지난번 걸프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은  유가(油價) 상승에 대
    비하여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캠패인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습
    니다. 그리고 차량 10부제 운행을 강조하여 국무총리가 자신의 차
    량이 10부제에 해당되는 날 걸어서 출근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
    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어느 한 일본의 기자에에게 "요즘 일본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우리 일본에는 물질적인  파동은 전
    혀 없습니다. 다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걸프지역에 파병을 할 것인
    가 말 것인가 하는 점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고  그 사람이 대
    답하였습니다. 이라크의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미
    국이 아무리 큰 나라라 하더라도 당장 전쟁을 치루고 있는 나라이
    므로 미국의 원유값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왜 우리는 에
    너지 파동에 전국이 들먹이는데 일본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일본보다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
    국의 국무총리가 걸어서 출근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며, 우리
    가 실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로 보아 일본
    은 운을 맞이하면 크게 발전하나 우리는 큰 무리없이 그냥 지나갔
    다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때를 얻고 실력도 중요하지만 후원자를 얻는 것도 필요
    합니다. 70년대 중반쯤 쌍용그룹에서 시멘트를 십만 톤 생산해서
    중동지역에 수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국내 소비 및 해외 수
    출 물량은 만 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쌍용회사 사장은 시멘트롤
    10만톤 찍어내기 위한 자금을 빌리려고 한국은행을 찾아 갔습니다.
    한국은행에서는 지금까지의 통계로 보아 만 톤씩 소모해도 시멘트
    가 남아도는데 십만 톤을 생산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안된다고 하였
    습니다. 쌍용은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멘트
    를 십만 톤 찍어낼 실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축해 둔
    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후원자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국은행을 일곱 번 찾아갔습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사업가의 눈과
    금융업자의 눈은 다르다. 사업은 계산이나 수치로 하는게 아니니까
    쌍용에게는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눈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돈을 대주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쌍용의 예상이 적중을 해서 시멘
    트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팔려 드디어 쌍용이 튼튼하게 섰습니다.
     
      운을 타기 위해 '때, 실력, 후원자' 이 세가지는  필수적인 요소
    이지만 이것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먼저 마음
    을 맑게 가지는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매사의 모든 일은  천지 신
    명이 도와야 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쌀이 밥으로  변하는
    시기가 있어서 막 뜸이 들려고 하는데 다 됐겠지 하고 뚜껑을 열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립니다. 즉 천기누설은 해롭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맑지 않으면 항상 그런 사고가 벌어집니다. 마음이 맑지
    않으면 상승세를 탈 때 허허허 웃다가 옷가지가 나뭇가지에 걸리
    는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때를 얻어
    도 후에 후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마음이 맑아야지 후원자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후원자가 있기 위해서는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바로 연민심입니다.
     
      [승(升)]은 실력이 있으면 있는 만큼 커다란 비젼을 일으켜 줍
    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으면 그  비젼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쌍용
    이 십만 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백만 톤을 벌어들일 수 있
    었던 것이지, 실력이 겨우 몇 십포 밖에 못만들어 낸다고 하면 벌
    어봐야 수 백포 정도 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벌어들인 것도
    아닙니다.
     
      "[승(升)]괘는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가 [지풍승]이다." [승(升)]괘는 위 괘가
    음효 세개로 이루어져 땅을 뜻하고,  아래는 바람을 뜻합니다. 그
    래서 위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양성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운도 사실은 자신이 당겨 오는 것입니다. "뭐가 어떠하여 못했다."
    "그래서 안됐다." 등 흔히 핑계만  대는 사람들, 이것이 실력없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며 그 사람에게 운이 올 수가 없습니다.
      또 하괘는 바람이면서 나무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승]은
    땅속에서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라는 뜻입니다. 땅속에서 나무가
    자라려면 햇빛, 물 등 영양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후원자
    입니다. 그 다음은 싹이 분명해야 합니다. 싹은 실력입니다. 그래
    서 "부드러운 새싹이 때에 맞춰 성장하는 상태"가 곧 [지풍승]이
    라고 했습니다. 또 더불어서 후원자를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상. 땅속에서 나무가 나는 것이 [승(升)]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스스로 덕을  길러 작은 것을 쌓
        아서 점차로 거대한 경지에 이른다.
     
      "스스로 덕을 길러 작은 것을 쌓아서 점차로 거대한 경지에 이
    른다." 실력은 작은 것을 쌓고 또 쌓아서 점차로 큰 데로 가는 것
    입니다. 우리나라에 석유가 나오지 않으므로 작은 국제 정세의 파
    동에도 국가 경제가 흔들린다면  사전에 석유가 안  나오는 만큼
    더 쌓아 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유전이 내일  당장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서 필요한 만큼 저장하는 것, 그래서  어떤 상황
    이 닥치더라도 끄떡 없는 자태가 되면  비로서 실력이 생긴 것입
    니다. 항상 최악의 경우가 지금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실력을 쌓
    아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자기 뜻에 마땅하게 오른다. 위와 뜻이
        맞으니 서로 길하리라.
     
      동물들은 주의(-ism)가 없습니다. 그리고 허무하다든가 불만스럽
    다든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자꾸 들
    볶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부터가 볶는 것입
    니다. 하느님은 너그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들볶는 자들
    은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가라고 그냥 내버려 둡니다.  우리는 이
    제 하느님의 비정함, 또 온정이 어떤 것인지를 이 괘를 통해 분명
    히 납득을 해야 합니다.
      "자기 뜻에 마땅하게 오른다." [승(升)]괘는 승승장구한다는 괘
    인데, 맨처음에 음효가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굳은 의지입니
    다. 첫째는 이것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핑계가 많은 사람은 안에
    이것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안으로 "굳은 의지",
    "음성에너지" 혹은 뭘 하겠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어야 하는
    데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뭘 하겠다고 하고 마음 먹을
    때는 이미 음성  기운이 아닙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습니다.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양성에너지입니다.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
    니다.
      '한다' 라는 것은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먹는게 아니고
    품는 것입니다. 마음은 잘 먹으나 진정으로 품는 사람은  참 드뭅
    니다. 무언가 품었다는 것은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야
    되는 것이며, 목숨이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정성된 마음으로  기뻐함이 있으니 신
        과 조상의 영령에게 간소하게 나마 제사를 올리는 것
        이 좋다.
     
      성의만 있으면 간단한 마음만으로도 축복이 된다는 이야기입니
    다. 첫 번째 확고한  뜻을 갖춘다음에는 그것을  위해 힘쓰는 것,
    즉 양성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양성에너지가 있으면  아무리 어
    렵고 추운 환경이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정성된  마음으로 기
    뻐함이 있으니 신과 조상의 영령에게 간소하게 나마 제사를 올리
    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양성에너지가 무작정 많이 나간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 [승(升)]괘처럼 두 개 정도만 나아가야 합니다.
    두 개 정도 나가고 나머지는 다시 끌어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비약적 발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가서 생기는게 없는 일들을 많
    이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기는 것과 생기지  않는 것
    은 '아'하고 시작하느냐, '어'하고 끝내느냐에 따라서 판가름 나는
    법입니다. 인생을 스스로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생이란
    삶과 죽음 두 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양효. 무인의 경지를  가듯 아무런 방해없이
        소신껏 자라 오른다.
     
      우리는 항상 실력을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쌓고 또 쌓아  바람
    정도에 날아가지 말아야 됩니다. 항상 최악의 바람이 분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만  비로서 인생에 세 번  오는
    절호의 챤스로 엄청나게 큰 비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무인의 경지를 가듯  아무런 방해없이 소신껏  자라 오른다."
    하늘은 항상 우리를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늘은  나를 망
    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늘을 위하기 때문에 그
    때 망가져버리면 안됩니다. 태양과 비는 새싹을 돋아나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싹은 태양에 말라죽고, 어떤 싹은 비에
    썩어 죽습니다. 그렇다고 비를 탓하고 태양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보통 인간은 비를 탓하고 태양을 탓할  수 있으나, 진정한 현자라
    면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네 번째 음효. 문왕은 공손한 태도로 은왕을 섬기면서
        제후의 예로서 기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토
    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상관 오다 노부나가가 추운 겨울날 기
    생집에서 술 먹다가 나오면 발이 시려울까봐 자신은 찬 데 있으면
    서도 자기 상관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간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라는 자기를 내세
    우지 않고 그 자존심이 자기가 원하는 세계와 하나가 되도록 그 밑
    에 가서 철두철미하게 일했던 사람입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처
    음에 직업은 마부였습니다.  그런데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이
    받은 적은 월급으로 말을 위해서 당근을 사 먹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월급 몇  푼에 머물렀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
    높은 세계, 큰 세계를 가슴에  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 마
    음안으로 전 일본이 딸려 들어온 것입니다.
     
      "문왕은 공손한 태도로 은왕을 섬기면서 제후의 예로서 기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네 번째 음효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말
    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왕은 중국의 역대  왕들중 덕이 높은 몇몇  대왕들중
    한 사람입니다. 문왕은 황제의 실력이 있었으나  황제를 내세우지
    않고 제후의 예를 지켜,  마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  장군의
    신발을 품듯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문왕은 중국의
    민심을 모두 자신에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음효. 무리한 비약은 삼가하고 어디까지나
        견실하게 순리를 따라가면 길하리라. 크게 뜻을 성취
        한다.
     
      주역은 다섯 번째 자리를  으뜸가는 자리로 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왔을 때는 무리하게 나아가지 말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쌀이 뜸이 들동안 유유히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뜸이  다
    든후에 밥을 꺼내야 맛이 있는 법입니다. 낚시를 많이  드리운 사
    람은 날씨가 흐리거나 햇볕이 내리 쬐거나,  어둑어둑하고 밀물이
    드는 것 등을 보면 고기가 잘 물리는지 안 물리는지 그 때와 장소
    를 압니다.
     
      크게 비약하는 것은 세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때를 얻
    는 것. 둘째 실력을 양성하는  것. 셋째 후원자를 얻는  것입니다.
    때를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실력이 양성되어
    져 있어야만 때가 보입니다. 또 실력이 갖추어지고 그것이 남에게
    보이면 후원자는 자연히 생깁니다. 사실 이 세 개는 표면상 세 개
    일 뿐이지 무언가 하나가  있음으로써 세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때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때를 얻기 위해서는  순리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리한 비약을 삼가한다."는 것은  양성에너지가 쓸데없이 설
    치는 것을  삼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성에너지는  어디까지나
    70-80%의 음성에너지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성에
    너지를 70-80% 무리하게  쓰고, 생기는 것은  20-30%밖에 없으면
    이것은 적자입니다.
     
        여섯번째 음효. 나아가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멈출줄
        을 모른다. 몸을 망치기 쉽다. 항상 머무를 곳을 찾아
        서 나아감이 좋다.
     
      "나아가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멈출줄을 모른다. 몸을 망치기 쉽
    다." 흙에서 곧 나온 샘물은 누구나 마음놓고 먹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샘물이 흘러서 개천으로 나온다면 먹기가  곤란합니다. 더
    이상 귀한 물이 아닙니다.  무조건 발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샘의  고귀함을 잃
    지 않고 나아가느냐 입니다. 알렉산더는 위대하지만 서른 두 살에
    죽었습니다. 징기스칸도 세상을 다 정복하였으나 한  번도 통치해
    보지 못한채 죽었습니다. 반 고호는 귀를 잘라 버리면서까지 열심
    히 그림을 그렸으나 빵 몇 조각에 그 그림을  팔았습니다. 오늘날
    그 그림은 값을 매기지도  못할 만큼 고가에 경매되고  있습니다.
    베토벤도 남의 집 다락방에서 추어서 벌벌 떨며 지냈습니다.
     
      주역은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물을 가졌으면  그만큼
    충분히 누리라는 것을 주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누릴  수 있어
    야 합니다. 누릴 수 없는 노력은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머무를 곳을 찾아서 나아감이 좋다." 나아가되 머무르면
    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덮어놓고 열심히만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낚시꾼은 기다릴  줄 압니다. 괜히 잡지도
    못하면서 촐랑거리기만 하면 그런 노력은 자기 몸을 망치는 노력
    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이 되어져 있느냐 아니냐  하는 점
    입니다. 이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스스로를
    이겼을 때 우리는 이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승(升)]은 바로 여
    기에서 생기는 법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385
  • 45. 택지췌(澤地萃)
    『 인재를 모으다 』
     
     ●     불교적으로 말하면 나 자신이  해탈을 하여 붓다가
     ○     되는 것보다는 이 세상이 나로 인하여 극락이  되는
     ○     것이 더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슬픈 일은
            내가 붓다가 되지 못하면 극락이 나에게는 극락으로
     ●     느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내가 붓다가
     ●     되는 것과, 세상이 극락이 되는 두가지를 동시에 이
     ●     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만 비로서 온전해 집니다. 그
            러기 위한 첫 번째의 길은 내가 붓다가 되려는 마음
            을 버리고, 붓다의 길을 열심히 가는 희생자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원하고 있지
            만 큰 행운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행복한 사
            람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택지췌(澤地萃)
     
        [췌(萃)]는 모인다는 뜻이다.  아래는 유순하고 위는
        즐거워한다. 강건한 군주와 유순한 신하가 고르고 바
        른 도리를 지켜 서로 호응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므
        로 천하의 어진 인사가 여기에  모인다. 이러한 상태
        가 길이 계속하여 변함이 없으면 나라는 크게 발전하
        리라. 왕이 종묘를 세우고 정성스럽게 조상의 신령에
        게 기원의 제사를 올린다. 그와같이  바른 도를 지키
        면 훌륭한 인재를 얻기에 좋다. 또 상하 협력이 이루
        어져 만사가 순조롭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매사에
        용감하게 전진하면 점점 더 발전하리니, 크게 성과를
        거두리라. 이것이 천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일 수 있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면 천지만물의 마음
        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기뻐도 기뻐하지 말고 슬퍼도 슬픔에 빠지지 말라." 내가 이러
    한 말을 하는 이유는 진정으로 슬픔이 다가왔을 때 그 슬픔을 이
    겨나갈 수 있고, 기쁨이 왔을 때 그 기쁨으로 하여금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췌] 괘는  행운이 찾아들었을
    때 그 행운을 누리기 위한 괘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한 말의 뜻을
    얻지 못하면 이 괘가 주는 행운이  찾아왔어도 오히려 그 행운으
    로 하여금 더 큰 불행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택지췌]의 상괘는 연못이고,  하괘는 땅입니다.  "땅위에 물이
    고여 있는 형상"이 [택지췌]입니다. 이 말은 웅덩이에  물이 점점
    모여든다는 뜻입니다. 의도적으로 노력을 해서 좋은  것이 모여드
    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과였는지는 모르지만 행운이 모여드는 것
    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괘를  틀림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좋은 형상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없으면 이 괘의 행운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아주 반가운 사람을 길에서 만났을 때, 너무  반가
    와서 서로 끌어 안기 위해 뛰어갈 때  너무 좋아서 길을 살필 수
    있는 정신을 망각해 버리면 달려가는 도중에  차에 치여 죽을 수
    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기쁜 마음을 잠시 멈추고 길을 살
    필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기
    뻐서 달려들다가 죽었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
    까? 기쁜 일이 왔어도 누릴 수 있는 내가 죽어 없어진다면 그 무
    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좋고 기쁜  일에 자기 마음을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행운을 스스로  누릴 수 있게하기 위
    함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같은 행운을 어떻
    게 하면 오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나 자신이 해탈을 하여 붓다가 되는 것보다
    는 이 세상이 나로 인하여 극락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슬픈 일은 내가 붓다가  되지 못하면 극락이 나에게
    는 극락으로 느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내가  붓다가
    되는 것과, 세상이 극락이 되는 두가지를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
    도록 해야만 비로서 온전해 집니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의 길은
    내가 붓다가 되려는 마음을 버리고, 붓다의 길을 열심히  가는 희
    생자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원하고 있지만
    큰 행운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하
    기 때문입니다.
     
     [췌(萃)]괘는 땅위에 연못이 있는 형상입니다. 땅위에 물이 있다
    고 해서 결코 그 물이 모두 땅에 스며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 괘
    는 '인위적'이라기 보다는  '자연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괘입니
    다. 땅위에 있는 연못의  물은 땅으로 스며들어가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런데 물이 땅으로 스며드는 것은 결코 인위적으로는 되어지
    지 않습니다. 물이 강한 압력으로 밀면 땅을 다치게 합니다. 물이
    땅에 스며들기를 거부해 버리면 증발을 해서 사라지게 됩니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물이 땅에 스며드는 기간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 스스로 똑똑한 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 스며
    들려고 하기 때문에 땅을 못쓰게 만들든지, 스스로 땅으로부터 이
    탈되는 일을 벌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괘의 요지는  천연적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 곳이 무엇이든지 그리고 그 곳과 함께 그 속
    에서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며들어야만  됩니다. 빗물은
    우리가 직접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서 그 뒤에 나온 샘물은 매우 맑고 영양가 있는 생명수가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 취직을 하더라도 비로소 그 곳에 스며들어 있어야
    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스며들기 전에
    그만두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직장을  찾아다닌다 하더라도 생명
    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그와같은 사람은 많은  경험을
    했어도 관광에 불과한 것이지 전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파워는 스며들어야만 갖게 됩니다. 스며들지 않는 것은 가
    치가 없는 파워에 불과합니다.
     
      사람마다 개개인의 재능과 기술과 직업과  취미가 서로 다르지
    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취미, 재능과 작업 등이 진정한 빛
    을 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며들어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따
    라서 스며들어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취미가 다
    르고 재능이 다르더라도 성공시킬 수 있지마는 자기 취미만 채우
    고 자기 재능만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성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난 너무 개인적인 마음으로만 행하지 않았
    는지를 깊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스며드는 것을
    얻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나는 20대까지는 반드시 그 것을 얻는
    데 주력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성공하고 싶겠지만,
    20대는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스며들 수 있는  것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스며들어서
    나온 샘물을 통해 바깥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20대에 성공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성공을 유지하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는  밑바닥에서 헤메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왜냐하면 인생 20대때  성공은 스며들어
    서 나온 진정한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 "나는 얻겠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는 안됩니다. "무엇이 되어지게끔 하겠다!", "무엇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 "나는 바깥의 세계를 망
    가뜨리지 않으면서 하겠다!" 라는 세가지를 명심하고 행하였을 때
    비로소 이 괘가 말하는 "대길(大吉)하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얻겠다." "내가 되겠다."라는 마음은 음효가 아니고  양효
    이기 때문에 하괘의 지(地)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 라는 것이 음효입니다. 그때 비로
    서 우리는 스며들어 가는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정신없이 어
    떤 일을 할 때, 힘든지도 모르고 그 일에 몰입하는 것을 경험합니
    다. 그 때가 바로  그 일에 스며들어가는  때입니다. 그리하여 그
    일과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일이 나를 통하여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강건한 군주와 유순한 신하가 고르고 바른 도리를 지켜  서로
    호응하고 있는 상태다." 다섯 번째 양(陽)의 자리에 양효(陽爻)가
    있고, 두 번째 음(陰)의 자리에 음효(陰爻)가 있으므로 강건한 군
    주와 유순한 신하가 고르고 바른 도리를  지켜 서로 호응하고 있
    다고 했습니다.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므로  "중정(中
    正)"이라고 말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천하의 어진  인사가 여
    기에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군주와 유순한 신
    하가 올바르게 있기 때문에 착하고 좋은  것, 또 모든 어진 사람,
    현명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변함이
    없으면 행복은 크게 발전하게 되는 법입니다.
     
      "왕이 종묘를 세우고 정성스럽게 조상의 신령에게 기원의 제사
    를 올린다." 이 말은 자기가 위와같은 행운을 만났다고  해서 "내
    가 잘났다." 하는 자만심을 갖지 말고 두루 만물에게 감사하는 말
    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업을 할 때는  이루어지게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富)를  원한다면 부(富)를 취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부(富)가 모여 들어오게끔 해야 합니다. 부(富)가 들
    어 올 수 있게끔 하려면 자신이 먼저 최선의 노력으로 심혈이 기
    울여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큰 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을 감사의 제물로 바치는  겸손과 아
    량이 계속 그 메카니즘을 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잘되는 것이다."라는 마음을 없애고,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다가 일하기 전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미세한 바람에 땀을 씻으
    면서 시원함을 느낄 때, 바람이 고맙다는 것을 느끼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갖는 사람은 매사에 무슨 일을 할 때 "용감하게 전진하면
    점점 더 크게 발전하리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일 수 있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면 천지 만물의 마음의 움
    직임을 알 수 있다." 즉 행복이  오는 길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
    다.
     
        대상. 땅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췌(萃)]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보존하
        기 위하여 무기를 정비하고 불의의 사변을 경계한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보존하기 위하
    여 무기를 정비하고 불의의 사변을 경계한다." 현명한 사람은  행
    복을 버리고 성리를 택합니다. 행복하는 순간에 마음이 빠지게 되
    면 행복보다 더 큰 불행이 벌어지게 됩니다. 번영을  길이 보존하
    기 위해서는 불의의 사변을 경계하여 조치할  수 있는 안목이 필
    요합니다. 좋은 일이 많이 벌어지면,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
    면 그로 인해서 뜻밖의 변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좋은 일이 생길
    때 그 좋은 일 속안에서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계태세
    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첫 번째 음효. 동지를 모을려고  하는 성의는 있으나
        결과를 맺지는 못한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
        이다.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가는 모이고  하여
        뜻이 혼란하기만 하다. 그러나 성의를 가지고 나아간
        다면 허물은 없으리라.  서로 미소를  나누는 정도의
        모여질 수 있는 작은 길은 열리게 된다.
     
      "동지를 모을려고 하는 성의는  있으나 결과를 맺지는 못한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음효이기 때문에
    좋은 일을 모으려고 하는 성의는 좋으나 아직 초기이므로 사람들
    이 한꺼번에 모여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같은 상태에서
    "동지여! 내게로 모이라." "행운이여! 나에게로  오라."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면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아직 익숙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마치 첫
    숟갈에 배가 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의를 가지고
    나아간다면  허물은 없으리라. 서로 미소를 나누는 정도의 모여질
    수 있는 작은 길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진지하게 성의를 다하면
    사람들이 한 번에 모여지지는 않을 지라도 서로 미소를 나누는 정
    도의 모여짐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두 번째 음효. 마음속에 굳은  신념을 갖고 변함없이
        성의를 다하면 동지를 자기 곁으로 끌어 모을  수 없
        다. 길하리라. 성의가 있으니 제사올리기에 좋다.
     
      "안된다." 하고 돌아서지 말고 마음속에 굳은 신념을 갖고 변함
    없이 계속하면 행운을 자기 곁으로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성의
    가 있으니 제사 올리기에 좋다." 즉  "나는 꼭 해야된다."라기 보
    다는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마
    치 산 밑에서 산을 보고 올라갈 때에는 산이 높지 않은 것 같지만
    이제 정상이 바로 눈 앞에 보이고 마음은 이미 정상에 올라가 있
    는데 몸이 못 미치고 있을 때, 이 때가 제일  답답한 것이며 실수
    도 많이 벌이집니다. 그  때 무리하게 한꺼번에 올라가려고  하면
    도리어 사고가 납니다. 이 때 몸이 올라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
    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신의  가호를 받아 만사가  순조롭다 하고
    말하고 있는 효가 두 번째 입니다.
     
        세 번째 음효. 동지를  모으려 하나 되는 일이  없다.
        슬픈 노릇이다. 그러나  노력을 계속해  나가면 벗을
        얻게 되어 허물은 없을 것이다.  약간 난경에 빠지리
        라.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모두가 동지는 아닙니
    다. 맨 처음에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눈을 뭉칠  때는 단단하게
    뭉쳐지는 부분은 얼마없고 나머지는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진정
    한 동지라고 하는 것은 딴딴하게 뭉쳐진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효에서 딴딴하게 뭉쳐진 부분이  조금 생겼지만 역시 많
    은 부분이 떨어져 나간 점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허물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딴딴하게  뭉쳐진 이
    부분을 계속 굴리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것이 달라붙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이 딴딴한 부분은 자기한테 필요한 것은 붙이고, 붙
    여질 수 없는 부분은  쫓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조그만  눈덩이를
    자꾸 굴렸을 때, 떨어져 나갈 것은 떨어져 나가면서  눈덩이는 계
    속 커집니다. 떨어져 나가는 것이 있고 굳어지는 것은  점점 굳어
    져 가는 상태를 "약간 난경에 빠지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성공은 신의 가호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나사못
    하나 박는 것도 아무리 자로 재어서 딱 맞는  것을 구할 지라도
    만들다 보면 안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과 하나가 된
    사람은 미리 준비한 재료외에  다른 것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때에도 어떤 대용품을 즉시 구하여 일이  척척 맞아 들어가게 합
    니다. 이것이 바로 신의 가호입니다. 첫  번째는 "성의는 갖고 있
    으나 결과를 맺지 못한다."고 하여 아직 스며드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신의 가호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속
    에 굳은 신념이 있어서 동지를 자기 곁으로 끌어 모을 수  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뭘 하나 하는데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물건
    도 주변에서 금방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길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료는 다 모였는데 일을 하다 보면  쉽게 완성
    품에 도달하기는 또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동지를 모으려
    고 하나 되는 일은 없다. 슬픈  노릇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러나 노력을 계속해 나가면 허물은 없을 것이다." 장애가  나타나
    면 또 다른 방법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스며들어 있는 사람은 스며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른 방법을 얻
    게 되지만, 스며들어 가지 않는 사람은 "안된다." "나는 못한다."
    라고 하며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진정으로  그만두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완수를 하고 난 뒤에 그만두어야  합니다. 만
    약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못마땅하다면  그 못마땅한 것을 토
    대로 해서 그 위에 못마땅한 것이 없어지도록 한 다음, 이제는 여
    기가 좋아서 더 이상 떠나고 싶지않다 했을 때, 더  큰 뜻을 품고
    떠나야 합니다. 때문에 이 세상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죽어
    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이 곧 파라다이스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인
    간은 비로서 죽을 권리가 있게 됩니다.
     
        네 번째 양효. 자신의 능력에  비하여 월등한 지위에
        있으나 처신을 삼가면 크게 길하리라. 허물이 없다.
     
      네 번째는 음의 자리에 양효가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러나 지금까지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면서  모든 심혈을 기울
    여서 한다를 통과해 왔기 때문에 비록  맞지 않는 위치라고는 하
    나 높은 자리에 앉아서 크게 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운전할 때는 앞만 보고 두  손으로 핸들을 꽉잡고 그냥
    곧장 가기만 했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운전하는 일에 완전히 스며
    들어 운전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숙달되면, 한 손으로 운전하
    면서 한 손으로 노래를 틀고 담배도  피우며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운전이  재미있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행복입니다.
      네 번째는 자신의 능력은 어느 한계가 있으나, 노력하고 희생하
    여 스며들게 되면 능력  이상의 파워를 자연으로부터  얻어서 그
    이상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난다고  법규를
    무시하고, 주위를 살피지 않고  마구 달리면 아무리 신의  능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때문에 다섯  번째
    효는 이것을 경계하여 바른 도리를 꾸준히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
    다.
     
        다섯 번째 양효. 군주의 지위로  사람을 모으고 있으
        나 그 뜻이 만민을  심복시킬 만큼 위대하기  때문은
        아니다. 큰 허물은 없으나 결코  성의로써 모인 것은
        아니다. 바른 길을 지켜야 후회가 없다.
     
      "군주의 지위로 사람을 모으고 있으나 그  뜻이 만민을 심복시
    킬 만큼 위대하기 때문은 아니다." 군주의 힘이 결코 모든 안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의도적으로 하는  노력은 완전
    한 스며듬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더 좋은 것을 찾아서 떠날 수도
    있습니다. 연못에 뭉쳐진 물이 모두 다 스며들어가는 것은 아닙니
    다. 차안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며,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며, 옆
    의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으나 무턱대고 달려서는 안됩니다. 항상
    위험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즉시 위험을 막을 수
    있게끔 대처할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모두가  모였다고 무턱대
    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후회를  해소하리라고 다
    섯 번째 효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최고의 영화의 지위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자신의 무능과  고립상태를 탄식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반성을 하고 있으니 허물은 없으리라.
     
      진정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비록 잘못
    되어 실패를 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다시 마음을 자제하고 차분하
    게 다시 시작합니다. 여섯  번째는 이와같은 과정을 거친  사람은
    "어려운 난관에 다시 부닥쳤을 때 자신을 자제하면서 결국 그 일
    을 다시 해낸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허물이 없다고 했
    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마음이
    차게 되면 마음에서 만족하게 되고, 그 다음번 일이  힘들 경우에
    는 포기를 하게 됩니다. 비록 스며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얻었
    다 하더라도 또 다른 일을 할 때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
    다. 거기에는 다른 실패가 또 따르고 있습니다. 그 실패는 스며들
    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미 이와같은 상태를 거쳐온 사람은  그 과
    정을 잘 넘기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
    면 그 사람은 이미 "대길하다."가 보장되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서두르지 마라. 그렇다고 늦장을  부려서는 더 더욱  안된다."
    "물러서지 말라. 그렇다고 깨버리지도  말라." "이루어라. 그렇다
    고 너무 기뻐하지 말라." 이것이 [췌(萃)] 괘을 얻기 위해 가야할
    진리인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478
  • 44. 천풍구(天風姤)
    『 뜻밖의 시련 』
     
     ○     달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인간적 사
     ○     고의 차원에서 보면 달걀의 노른자, 흰자, 껍질의 세
     ○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노른자일  것
            입니다. 그러나 신적(神的) 차원에서 볼 때는 셋 중
     ○     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라는  것은 없습니다. 신
     ○     이 달걀을 만들 때는 셋이 같이 있어야만 모든 기능
     ●     이 다 작동하도록 만들었으며, 어느  하나라도 없으
            면 나머지도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천풍구(天風姤)
     
        다섯 개의 강(强)을 만나는 형상이다. 많은 남자들 사
        이에 한 여자가 있어서 남자들을 조롱하고 있는 상태
        를 상징한다. 여자가  지나치게 거세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 오래도록 더불어 가정을 함께
        하지 못하리라.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만나야 천
        지 만물이 제각기 그 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훌륭한
        친구는 적합하고 정당한 지위를 만나야  천하의 조화
        가 크게 시행되는 것이다. 만나는  때의 의의는 진실
        로 크다.
     
      달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인간적 사고의 차원에
    서 보면 달걀의 노른자, 흰자, 껍질의 세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노른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적(神的)  차원에서 볼
    때는 셋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라는 것은 없습니다.  신이
    달걀을 만들 때는 셋이 같이 있어야만  모든 기능이 다 작동하도
    록 만들었으며,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나머지도 있으나 마나한 존
    재가 되어 버립니다.
      자동차를 놓고 볼 때  사람들은 엔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밧데리 하나만 없어도 자동차는  움직이지 못합
    니다. 이렇게 볼 때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사실 없
    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자꾸만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고 중요한 것을 볼려고 하는데서 큰 실수를 저지
    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필요성을 따져서 자기한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곤 합니다. 달걀 가운데에서는 노른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들이 "나는 ㅇㅇ이 필요하다." 할 때 그 필요하다라는
    것은 노른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른자만을 챙기려
    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껍데기나 흰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
    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놓으면 노른자
    는 곧 곪아 버립니다.
     
      신이 흰자나 달걀 껍데기를 만들어 준 이유는 노른자를 보호하
    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른자가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존재하는 흰자와 껍질의 소중함을 동시에 인식해야 할 것
    입니다.
      여인이 임신을 하면 배가 불러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커서
    배가 부른게 아니라 양수라고 하는 물이 차서 부른  것입니다. 어
    린아이는 물속에 있습니다. 그 물은 어린아이가  헤엄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거리는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달걀 껍질이나 양수 모두 보호함으로써 그 안에서
    생명이 자라게끔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을 벽으로 막아 놓으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햇볕이 차단되어 시원하게 됩니다. 벽과 우리 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것, 사실 이것을 신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아
    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잘하려고 열심히 하더라도 모두 다 하늘에
    부는 빈 바람에 불과합니다.
     
     천풍구괘 전의 괘가 택천쾌였습니다. 택천쾌는 맨위가 음효이고
    나머지는 다 양효였습니다. 위에 응어리져 있는 음효 하나, 즉 소
    인배를 내쫓음으로써 평화가 온다는 괘였습니다. '구(姤)'는 여자
    를 뜻하는 여(女)자와 임금을 뜻하는 후(后)자로 되어 있습니다.
    즉, 임금이 여자 즉, 왕비를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날구
    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과 평화와 안정이 왔을 때는 어디엔가
    모르게 또 그  안정을 깨어버리는 힘이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이
    천풍구입니다. 그 좋지 않은 것을 만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평화에는 반드시 뜻하지 않은 불행의 만남이 온다, 그러므로 조
    심해야 한다는 것이 [천풍구]의 가르침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구
    (姤)괘는 굉장히 나쁜 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 나쁜 괘
    라는 것은 없습니다. 나쁜 것 다음에는 좋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총을 잘 쏘고 칼을 잘 휘둘러도 방심을 하면 다른 칼에 찔
    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방심하지 말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구
    (姤)괘입니다.
     
      [구(姤)]괘는 맨 밑이 음효이고 나머지가 다 양효입니다. 즉 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상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자가 다섯 남자
    를 휘두를 수 있을 만큼 방탕하다는 의미도 되며 또한 그만큼  강
    하여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앙심이면 나쁜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것이 훌륭한 일이고 좋은 뜻을 품고 있으면
    결과도 상당히  좋을 수 있다는 점을 [천풍구]는 동시에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괘를  유심히 살피면 우연히 나타나는 좋지
    않은 것을 막을 수 있는 비밀이 바로 [천풍구]괘에 들어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가 지나치게 거세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지  말라." 여
    자가 여러 남자를 상대하다 보면 여자  근본의 영혼이 날라가 버
    리게 됩니다. 한 남자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다음 남자를 찾
    아가면 사랑을 얻겠지." "또 다른 남자를 찾아가면 사랑을 얻겠지
     ." 하다보면 안에 있는 자기 사랑이 다 날라가 버립니다. 한 여
    섯 번째쯤 가면 사랑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서 "사랑이 무엇일까?"
    하는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달걀의 노른자가 곪듯이 영혼이
    곪아버립니다.
     
      자기 하나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만 치우쳐 있는 사람은 무언
    가 일을 하다보면 나중에 가서 자기 중심이 없어져  버립니다. 중
    심이 없어져 버리면 하기가  싫어집니다. 못해먹겠다고 그럽니다.
    보통 가장 중요한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보호
    하고 키워나가는 바운더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
    언가 자꾸 중요한 것을 찾다보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린다는 괘가 바로 [천풍구]입니다.
     
      보통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은  다섯가지의 단계를 거칩
    니다. 맨 처음에는 수즙음과 미소로써 호의를 삽니다. 그럴 때 여
    자는 이뻐보입니다. 두 번째는 정다운 말과 슬픈 사연으로 호소합
    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어깨를 감싸주고 마음이  동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 번째, 여자는 넌즈시  부탁을 합니다. 하다못해 무엇을
    사달라고 하든지, 어디에 데려가 달라고  하든지, 뭔가 하나 당연
    히 들어줄 수 있는 것을 꼭 부탁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부탁을 들
    어줄 것을 당연히 기대합니다. 남자가  부탁을 들어주면 네 번째,
    여자는 명령합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제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 되어 버립니다. 다섯  번째, 남자를 혹사시키기 시
    작합니다. 신경을 곤두 세우며 자신의 범위에서  벗어났는가 감시
    하면서 벗어났다 싶으면 바가지를 긁습니다. 그러나  명령하는 단
    계까지는 좋은데 혹사시키는 단계가  되면 그 다음번에  큰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여자는 남자가 된 것이며 여성에너지를 잃어버립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만나야  천지만물이 제각기 그 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훌륭한  군주가 적합하고 적당한 지위를  얻어야
    천하의 조화가 크게 시행된다." 천지 만물의 조화는 음양이  골고
    루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너무 조여도 안되고 또  너무 풀어져도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너무 조여놓으면  반발을 하게 됩니다. 용
    수철을 꽉 조여 놓으면 튕겨져 갈려고 합니다. 그리고 튕겨나가면
    있는 그 자리가 부서져 버립니다. [천풍구]는 지금 마치  눌린 용
    수철처럼 부조화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조심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전체를 위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하는 것
    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상. 하늘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구(姤)의 괘상이다.
        제왕은 이 괘상을 보고  널리 알리나 법령을  내려서
        천하의 인민을 깨우쳐 이른다.
     
      제왕은 세상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고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
    니다. 노른자만 좋아해서는 제왕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세상을 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마음을 통해서 또 현실적
    으로 실행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항상  뜻밖의 재난
    을 면할 수 없고, 이것에 철저하면 그 재난을 이겨  나갈 수 있습
    니다. 구(姤)라고 하는 것은 만난다는 뜻인데,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우연히 만난다는  뜻입니다. 즉 생각지도 못한  것이
    왔다, 마치 하늘에 아무 것도 없는데 바람이 불 듯이 그렇게 우연
    히 온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평화스러운데에 뜻하지  않은 재난
    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괘를 잘 알아야  된다고 주역
    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연히 오는 것을 없게끔  만들면
    "그것이 완전한 평화다."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는 결코 우연찮게 오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부분
    을 미리 갖추어 놓지 않으면 '우연히'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
    로 유비무환을 분명히 하면 뜻밖의 재난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또 유비무환이란 것을 분명히 알려면 이 [괘]를  얻어야 합니
    다.
     
        첫 번째 음효. 쇠기둥에 꼭 매어두라. 그래야 [유(柔)
        의 도(道)는 제재(制裁)되는  것이다. 제한된 부덕(婦
        德)을 지켜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경솔하게 내달
        으면 흉한 것을 보리라. 여위고 지친 양(羊)의 걸음걸
        이는 진정 비틀거려 보기 흉한 것이다.
     
      음(陰)의 도(道)는 제재를 가해야만 비로서 안에 뭉쳐있는 에너
    지가 풀려나오는 법입니다.  여자는 제한된 부덕(婦德)을  지켜야
    됩니다. 여자가 시댁이 아니꼽다고  덜커덕 튀어나간다거나, 남편
    이 변변치 못하다고 다른 서방을 얻으면 길하지 못하고 흉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한된, 매어져 있는 한 군데 머물러 있는 여자
    의 덕을 지켜야만 길하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경솔하게 내달으면"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다니면 그
    런 사람은 덕이 없고 베푸는 것이 없기  때문에 "여위고 지친 양
    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처럼 흉한  꼴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신이  요구하는 것은 껍데기,  흰자, 노른자가
    같이 있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관계입니다.  하나의 달걀
    이 다시 닭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전체를 위하여" 라는 정
    신이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래 있어도 썩지  않고 다시
    품어주면 병아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  나를 위
    해서 하지 말고, 전체를 위해서 해야지만 그것이 결국 그 속에 들
    어 있는 내가 위해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를 위해
    서 하다보면 지친 양의 걸음걸이처럼 초라해질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꾸러미 속에 물고기가 있다. 그것이 안
        에 있는 자체로는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꾸러미의
        고기를 손님 앞에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집안에
        서 처리해야 된다.
     
      "꾸러미 속에 물고기가 있다." 즉  달걀 껍데기 안에 노른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자체로서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꾸
    러미안의 물고기를 덮어놓고 덜커덕 내놓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값이 나가는 것일수록 밑에 있는 포장도 값나가는 것에
    놓아야지만 그 값어치를 느끼게 하는 법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뒤져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 가전제품은 전기코드 줄이 안으로 말려 있어서 밖으로 노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밖으로 전기줄이 나와 있으면 미관도 안좋고
    여기저기 늘어져 불편하므로  이것을 말끔히 처리해낸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을 때 일본은  그 다음번 까지도 포
    함하여 제품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일본 제품은  어디에라도 놓을
    수 있게 작은 구멍에 들어가면 작은 구멍에 맞게, 큰 구멍에 들어
    가면 큰 구멍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국산은 딱 맞는 구멍에다 맞
    추지 못하면 덜렁덜렁거려서 그냥 얹어 놓지 않으면 어디에 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에 놓으려면 따로  또 만들어서 써야 됩니다.
    그래서 비용이 더 듭니다.
      "꾸러미의 고기를 손님앞에 내놓을 수 없다." 꾸러미에서 고기
    를 내놓으려면 먼저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다.'만 가지고 덮
    어놓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달걀을 품으면 병아리가 된다는 것만
    알고 "여기다 품으나 저기다 품으나 마찬가지지." 하고 덜커덕 올
    려놓아 봤자 닭이 되지 않습니다. 닭을 위할줄 아는  마음이 있어
    야 하며, 어딘가 포인트를 찾아야 합니다. 그 포인트를 못 찾으면
    되지 않습니다. 말이라는 것도 포인트를  찾고 해야 합니다. 저쪽
    의 의중이 무엇인가?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언어도 사용하고
    몸짓도 사용해서 뜻한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얼마만큼 노력하냐 하는 것이 바로 이  포인트를 얼만큼 잘 맞추
    느냐에 있는 겁니다.
      "집안에서 처리해야 된다." 만약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
    은 떠벌리지 말고 집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꾸러미 속에  있는
    것은 본론부터 덜커덕 내놓지 말 것이며, 또 잘못된 본론은 그 바
    구니안에서 해결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양효. 엉덩이에 살이 패이고 헤어져 걸음걸이
        가 비틀거린다. 빨리 걸을 수가 없다.  위태로움을 스
        스로 깨닫고 반성하여 조심하면 큰  허물은 없으리라.
     
      전체를 위하지 않고 하겠다는 것만 갖고 나아가면 엉덩이에 살
    이 패이고 헤어져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게 됩니다.  음성에너지는
    양성에너지를 끌어 당겨야 되는데, 음성에너지가 반발로 튀어나가
    면 이와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마구 덮어놓고 가면 3일후 지쳐서  엉덩이에 살이 패이고 헤어져
    서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며 빨리 걸을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위태로움을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여 조심하면 큰 허물은 없으
    리라." 이것을 잊어버리면 항상 [구(姤)]의 괘처럼 불행의 기운이
    찾아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훌륭한 직장, 좋은 차, 돈
    을 잘 버는 것은 좋은데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숙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면 부인이 병든다거나, 누가  차에 치어
    다치든가, 어머니가 덜커덕 넘어져 반신불수가 되든가 하는  구질
    구질한 일이 따르게 됩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도 좋지만 뒤가
    깨끗해야 합니다. 첫째는 안녕, 두 번째는 구(姤)가 오지 말아야
    됩니다. 안전운전하라는 것이 다 구(姤)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운전 잘한다고 잘난척하다가 접촉사고라도 내면 경찰서에 가야지,
    공장에 정비들어 가야지, 얼마나 구질구질한 일이 많습니까? 구질
    구질한 일을 막으면서 사는게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는 다된 것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항상  위험을 느끼고 반성하
    며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가장 큰 행복은 반성과 조심스러운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네 번째 양효. 고기꾸러미 속에 고기가 없다.  위정자
        의 마음이 백성과 멀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협력
        하는 자가 없다.
     
      음에너지를 쓰지 않고 음에너지에서 튕겨나오는 에너지를 쓰게
    되면 나중에 여자는 여자의 맛이 나질 않습니다.  "고기꾸러미 속
    에 고기가 없다." 꾸러미속에 고기가 없다는 것은 그  시작하려는
    마음,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베푼 상냥한 말투와 미소가  없어져
    버리면 노골적으로 자기만이  남습니다. 그렇게 속셈이  드러나는
    것에는 아무도 오지를 않게 됩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나가게 되면
    한참가고 나서 내가 지금 왜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잊어먹게 됩니
    다. "고기 꾸러미속에 고기가 없다."  "양에너지만 쓰다보면 안에
    서 무엇을 위해서라고 움켜 쥐려고 하던 음에너지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서라고 하는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면 협력자
    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흉한 일이 벌어집니다. 흉한 일
    은 안에 당기려고 하는 음에너지를 잃고 나아가면 벌어지는 겁니
    다. 그러면 협력자가 없어지게 됩니다.
     
        다섯 번째 양효. 버들로 참외를 싼다. 미덕을  속으로
        가진채 자랑하지 않는다. 군주가 정도에 맞는 정치를
        하니 하늘로부터 도움이 온다. 뜻이  항상 천명을 저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뜻이 항상 천명을 저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
    한 이야기입니다. 뜻이 천명을 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
    간의 교만으로 넘어가 버리면 안됩니다. 고압선으로  올라간 여자
    는 여자가 아닙니다. 그런 여자를 보고 매력을 느끼는  남자는 아
    무도 없습니다. 그  여자앞에는 모두가 적입니다.  그 자신부터가
    적입니다. 여자가 항상 상냥함을 잃지 않으면 그  여자는 항상 복
    을 받습니다. 여자는 항상 버들로 참외를  감싸야 합니다. 그렇게
    만 되면 그 앞에서 남자는 허물어 집니다. 여자가 항상 넌즈시 부
    탁한다는 단계 이하로만 있게 되면 남자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완전히 남자를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 더 이상 불행이 들어올 수 없
    는 것, [구(姤)]를 막는 방법은 "넌즈시 부탁한다."  상태까지 음
    에너지를 쥐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양효. 그 뿔에 충돌한다. 최고의 지위에 있
        으면서 유화(宥和)와 포용의 덕이  없으니 더 발전할
        여지가 없다. 천하의 비난을 받아  난처한 지경에 빠
        지리라.
     
      "그 뿔에 충돌한다." 양에너지와 양에너지가 두 개 겹쳐버리기
    때문에 뿔이 충돌한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
    서 유화(宥和)와 포용의  덕이 없으니 더  발전할 여지가 없다."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 유화와 포용의 덕이 있어야 하는데, 교만과
    고집으로 밀고 나가니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다운 말과 슬픈 사연으로 호소하고,  넌즈시 부탁한다까지
    에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라고 하는  것이 다
    됐다고 덜커덕 나가버리면 처음의 음에너지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어 끌어 당길 수 있는 힘을  상실해버려서 서로 충돌하게 됩니
    다. 그 다음에는 같이 부서져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얻었던
    모든 안녕과 평화는 사라져 버립니다. 내가  기분나쁘다고 충돌해
    서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먼저 나부터 관리를 잘해
    야 합니다.
     
     우리는 이 점을 충분히 알아서 매사에 불행의 만남 즉, [구(姤)]
    가 접근하지 못하는 단계를 항상 유지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자신
    있다고 선뜻 그 상태를 져버리지 말 것이며, 또 마음으로 불안을
    가질  필요도 없으며, 항상 이와같은 상태에서 무언가 새롭게 해
    낼 수 있도록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구(姤)]는 반드시 다가오
    는 것이지만 [구(姤)]를 예방하고 있으면 나에게는 오지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의 눈
    에는 다른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점을
    깊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6863
  • 43. 택천쾌(澤天夬)
    『 악을 척결하다 』
     
     ●     새차를 뽑으면 처음에는 무척 공을 들입니다. 새로
     ○     운 물건에 대한 기쁨 보다도 그것을 더욱 이쁘게 단
     ○     장해 나가는데 더 기쁨을 느낍니다. 나는 음악을 좋
            아합니다. 차 안에 오디오를 설치하기 위해서 낮에
     ○     작업을 시작해서 낮에 끝내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
     ○     니다. 그러나 끝내는 후레쉬를 켜놓고 추위에 이가
     ○     맞부딪치면서 밤에 끝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업
            을 마치고 오디오 스위치를 켜자 그 한밤중에 현란
            한 전자빛이 반짝거리면서 울려 나오는 오디오 음을
            들을 때의 즐거움. 그 한 순간을 얻기 위해서 하루
            종일 추위에 벌벌 떨면서 좁은 트렁크 안에 들어가
            서 고생을 참고 견디며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 조
            그마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도 이마만큼의 인고(忍
            苦)가 따르는 법인데 하물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
            는 경우이겠습니까?
     
                         택천쾌(澤天夬)
     
        [쾌(夬)]는 척결한다, 절단한다라는 뜻이다.  다섯 개
        의 강효가 하나의 유효를 제거하려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정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악의 발호를 배제하려
        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다. 악의  발호를 제거하는
        데는 많은 곤란이 있을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중
        심이 되어 굳은 결의를  가지고 점차로 전  국민에게
        퍼져나가야 한다. 함부로 무력행사를 해서는  안된다.
        모처럼 뜻하는 개혁이 급격한 행동 때문에 길이 막힐
        까 두렵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결
        과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강이  성장하면 유는 자
        연히 소멸되듯이, 정의에 공감하는 국민의 세력이 커
        지면 악의 발호는 반드시 종식을 고하고 말 것이다.
     
      누가 내게 물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해 질  수 있습니
    까?" "사람의 성격이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물
    론 "바뀔 수 없습니다."입니다. 왜냐하면  '바뀐다'라고 하는 것은
    평면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에서 조명해 보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공기가 맑고 신선하여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침 이슬을 맞으러 새벽 4시  혹은 5시
    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볼 때 "부지런한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저녁 9시 정도면 잠
    을 잡니다. 어떤 사람은 밤 2시, 3시에  잠을 자고 아침 9시나 10
    시경에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
    은 자신들이 한참 활동할 때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고 무척 게으
    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저녁 9시에 자니까 남도 그 시
    간에 자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은 아침 공기나 아침 이슬이 싫습
    니다. 자신의 몸이 아침 이슬을 맞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
    다. 그리고 굳이 자신의  습관을 바꾸어서 새벽에 일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성격이든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구태여 애를 써
    서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부지런해지기 위
    새서 아침 이슬을 맞겠다고  일어나는 것은 되지를 않습니다.  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해서 그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입니다.
      우리의 성격은 안바뀝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격이  바뀌는게
    아니고, 성격이 나를 묶어두고 있는 것,  그것을 뚫고 나올 수 있
    느냐 없느냐 입니다. 발전이라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
    침 일찍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은 밤에 일하면 됩니다. 밤에 일하는
    직업을 선택하면 됩니다. 물론 현재 습관을 바꾸는 것이  큰 의미
    는 있습니다. 그 의미는 바꿔진 습관이 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
    다는 차원보다는, 현재 상태를 극복하고 이겨냄으로써  자기 자신
    을 콘트롤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데에 더 큰 비중이 있
    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힘써 노력해야하는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
    다. 싸움은 자신과 해야 합니다. 성격을 바꿀려고 하지 말고 자신
    과의 싸움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성격이 바뀌는 것이 아니
    라 자기 성격에 자신이 구속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에 꾸준히 행하는 끈기가 없었습니다. 책을  보더라도
    2시간 이상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집안에 수리할
    일들이 있으면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밤을 세워서 작업합니다.  아
    무리 강풍이 몰아치고 추워도 그날로 끝을 냅니다. 옛날의 성격으
    로 보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내가 성격이 바
    뀌어서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성격을 넘어서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장애에서 벗어나는 일은 부단한 자기 싸움이 있어
    야 합니다. 이 싸움이  있어야 창조가 비로소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을 통해야만 스스로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일은
    다 쉬운 것같지만 여간해서  쉬운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새롭게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미 자리잡혀 있는 세계를 밀어내고
    나의 위치를 세워야 하는데, 그 구축된 힘을 무찌른다는 것이 겉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괘는 그와 비슷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괘를  잘보
    면 전부 양의 힘으로  이루어진 가운데 맨 위에  음의 효 하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음 에너지가 양 에너지 모두를 거느리고 있지
    만 양에너지가 지금 음에너지를 무찔러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뭔가 새롭게 개혁하려는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려는 세
    계를 척결하려고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음(陰)은 남한테 베풀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뜻에서 여기서는 악이라고 표현
    하여 괘를 "정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악의 발호를 배제하려는 상태"
    로서 상징하였습니다.
     
      "[쾌(夬)]는 척결한다, 절단한다라는 뜻이다. 다섯 개의 강효가
    하나의 유효를 제거하려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정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악의 발호를 배제하려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다." [쾌]는
    개혁을 "결행한다." "결단한다."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에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성급하게 덥썩 덤비는 것을 말하는 것
    은 아닙니다. 그것은 과감히  결행하는 것을 잘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저지르는 크나 큰 시행착오일뿐입니다. 물론 결행은 신속하
    면서도 한 번에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려면 반드시 조
    금씩 점진적으로 해야됩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굳은 결의를  가지고 점차로 전
    국민에게 퍼져나가야 한다. 함부로 무력행사를 해서는 안된다. 모
    처럼 뜻하는 개혁이 급격한 행동 때문에  길이 막힐까 두렵기 때
    문이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결과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
    다. 강이 성장하면 유는 자연히 소멸되듯이,  정의에 공감하는 국
    민의 세력이 커지면 악의 발호는 반드시  종식을 고하고 말 것이
    다.", "쾌"를 이루려면 다음 이 세가지를 갖추어야 됩니다.
     첫째, 점진적으로 차근차근 할 것. 함부로 무력행사를 하면서 급
    격한 행동을 하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법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조
    금씩 숟갈로 벽을 긁으면 결국 벽이 허물어집니다.  그런데 한 번
    에 허물려고 숟가락으로 벽을 확 치면 수저가 부러집니다.
     
     점진적으로 행한다고 해서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라는 것은 아닙
    니다. 마음은 조급해야  합니다. 이 말은 성급하라는 이야기가 아
    니라, 성공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정성으로 하
    라는 얘기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깊이 해야하다는 뜻입니다. 최소한 이러한 태도로 시작을 해야만
    비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둘째, 동화되는 과정을 인내할 것. 자신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든
    지간에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되어지는데 까지는
    한참 동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이질감이 없어지고 자신이 친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
    즉 동화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동화되는 과
    정중에 자신의 애초 목표가  희미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실패의 원인은 다 여기에 있습니다. 동화되어  뜸들이는 기간까지
    를 꾸준히 못끌고 나가서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
    는 것입니다.
     
      셋째, 외부세계와 핀트를 맞출 것.  뭔가를 하려고 하면 외부로
    부터 반대와 비난을 받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난
    을 초래할 지도 모릅니다. 뭔가 에너지가 강하게 움직이면 반드시
    저항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자기 멋대로  한다고 자기
    만 고집하면 결국 외부에 의해 좌절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여론
    을 움직이면서 외부와 조화를 이루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야 일
    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쾌(夬)]라는 것은 신속하고 경쾌하게 단칼에 잘라내는 것인데,
    그럴려면 이 세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쾌는 실패없는 성공을 기약
    하는 괘입니다. 만약 실패하였다면 아직 동화되기  전에 끝마무리
    를 너무 일찍 해버렸다던가, 꾸준히는 할려고 하는데 외부와 핀트
    를 맞추지 못했다던가, 또 중간에 포기했다던가 하였을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쾌(夬)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상. 연못이 하늘에 올라간 것이 쾌(夬)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은택을 베풀어 아래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의 덕을 닦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한다.
     
      "연못이 하늘에 올라간 것이 쾌(夬)의 괘상이다." 연못이 하늘
    위에 있다는 것은 어딘가 막힌 부분만 뚫리면 비가 흠뻑 내려 대
    지를 적셔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길은 막혀
    있는 것을 제거하는 길입니다. 즉 가장 빠른 길은 하고자 하는 일
    을 선뜻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이 되어지지 못하게 하는  나의
    장애를 먼저 제거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나를  A라는 성격에서 B
    라는 성격으로 바꿀려고 하지 말고, 내 성격이 나에게  장애를 주
    고 있는 것을 극복해 버리면 결국 나는 A,  B, C 모든 성격의 장
    점을 다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성격이 바뀌는
    것입니다. 한 성격을 다른 성격으로 치환하지 말고, 그 성격 위의
    세계로 올라서는 것, 이것이 쾌(夬)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유념해
    야할 사항입니다.
     
        첫 번째 양효. 발을 앞으로  용감하게 내닫기는 하지
        만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 나아가도 승산은  없다.
        허물이 있으리라.
     
      "발을 앞으로 용감하게 내닫기는 하지만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
    다." 양성 에너지는 걸핏하면 실수를  저지릅니다. 뛰어나가자 하
    고 뛰어나가는 기백은 양성에너지가 좋으나, 나가다 보면 어딜 가
    는지 모르고 당황하게 되는 것이 또한 양성에너지 입니다.
      나가기 전에 먼저 조금씩  시작해야 됩니다. 속히 해야될  일일
    수록 아주 세심하게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이미 확립되어진 기존 세력과 부딛치지 않으면서 그 세계
    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있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지 내가 또 하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면 결코 되어지지 않습
    니다. 이 세상에 뭔가 새로운 개혁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토대로 해서 그 위에 이루어내야지, 세상 모든 것을 다
    치워버리고 그곳에 새로운 것을 세우려 하면 안되는 법입니다.
     
        두 번째 양효. 나라를 근심하여 여론에 호소한다.  어
        두운 밤에 무력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있으리라. 그러
        나 스스로 정의의 길을 가고 있으니 마침내는 승리하
        리라. 걱정할 일은 없다.
     
      "나라를 근심하여 여론에 호소한다."  여론에 호소한다는 것은
    그냥 자기 혼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것을 자기 것으로
    해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아직 내가 한다는 것이 서툴기 때문에
    나를 너무 표시나게 하면 불의의 공격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항상 뭔가 새로운 힘을  가하면 반대 힘이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고려해서 안보이게 조금씩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 완전 무결하게 그 위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성 에너지는 서툴기 때문에 표를 내게 되며, 결국 그 표
    에 주위가 쏠려서 남의  습격을 받게 되므로  조심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세 번째 양효. 개혁의 왕성한  의욕이 노골적으로 얼
        굴에 드러난다. 의욕이 지나치면 위험을 초래할 우려
        도 있는 것이니 흉하다. 그러나 군자가 한 번 나라를
        위하여 악의 척결을 결의하였으니 혼자서  길을 가다
        가 옷을 흠뻑 적시는 것과 같은 곤란을  만나 성내는
        일이 있을 지라도 정의를 위한 일이니 마침내 허물은
        없으리라.
     
      "개혁의 왕성한 의욕이  노골적으로 얼굴에  드러난다. 의욕이
    지나치면 위험을 초래할 우려도 있는 것이니 흉하다." 양  에너지
    가 세 개 있으므로 결국 나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서 주위의 비
    난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위험할 수 있고, 두 번
    째는 자신이 번민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데, 세  번째는 자기가
    지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욕도 점진적인 것입니다.
      "혼자서 길을 가다가 옷을 흠뻑 적시는 것과 같은 곤란을 만나
    성내는 일이 있을 지라도 정의를 위한  일이니 마침내 허물은 없
    으리라." 설사 위험이 온다 하더라도 그것에 너무 연연해 해서 중
    도에 뜻을 꺾어버리면 정의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와같은 것들
    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니, 감수하면서 나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렇
    게 꾸준히 나아가면 언젠가 하늘 위의 연못이 땅을 적실 날이 오
    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밑에 있으면 땅을 적실 수 없습니다. 먼저 하늘로  올라가
    야 합니다. 즉 자기를 넘어서야  됩니다. 우리가 이루고 못이루고
    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에 달렸습니다. 얼마나 자기 성질
    을 찾아내느냐, 진짜 이루려고 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면
    자신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내입니다. 그러나
    잘되기 위해서 자기가 자기를 뚫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라
    는 장애가 잘되기 위해서 나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장애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허물을 벗어나가는 것, 그것이 가장 빨
    리 결행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겠습니다.
     
        네 번째 양효. 엉덩이에 살이 패이고 떨어져 나가 걸
        음걸이가 꾸물거린다. 제  실력에 맞지  않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를 돕는 동지도 없다. 힘에 겨운 일을
        수행하려 하니 마음만 급박할 뿐 일의 진행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양을 몰고  가듯 천천히 나아가면
        실패는 없으리라.
     
      등산을 하면 사람들은 맨처음에는 마음이 느긋하게 올라갑니다.
    그렇게 올라가다가 이제 정상이 막 보인다  하면 더 급하게 올라
    가려고 그럽니다. 즉 "금방 마무리를 지어버려야 되겠다." "완성을
    빨리 봐야되겠다." 합니다. 이때 조심해야 됩니다. 또 나혼자 한다
    고 해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에 머리가 기발하게
    좋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 사람 가지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
      "힘에 겨운 일을 수행하려 하니 마음만 급박할 뿐 일의 진행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네  번째는 대중을 이끌어 가지 않고
    나 혼자 하려고 하니 마음만 급할 뿐 일의 진행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때는 미리 사전에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됩니다. 계획은 곧 승산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역으로 해서 이
    것을 이루려 할 때 필요한 제반  조치들이 무엇인가를 역으로 과
    정을 밟아가면서 하나 하나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도 실수는
    꼭 벌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두 번의 실수는 바로 이것을 말하
    는 겁니다. 계란 10개를 가지고 닭을 열마리 만들고, 열마리 닭이
    계란을 낳아서 100개의 달걀이 되고 . 이런 계산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 그늘진 땅에  자라난 자리공풀의 제
        거를 결행한다. 중용의 길을 지키면서 스스로 존대하
        는 마음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그늘진 땅에 자라난 자리공풀의  제거를 결행한다." 자리공풀
    이란 산의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풀입니다. 지금까지 뜸들
    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급하게 마음을 먹지 말
    고 마지막 숨을 정지하면서 마지막 정성을  쏟았을 때 비로서 일
    은 이루어집니다. 이제는 너무  겁내지 말고 가차없이 내려칠  수
    있는 용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리공풀의 제거를  결행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잘난척하고 마지막  순간을 확인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중용의
    길을 지키면서 스스로 존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스스로 존
    대하는 마음이 되려면 냉철해야 합니다. 냉철하다는  것은 마음이
    주관적에서 객관적으로 된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은 자세가 갖추어
    진 다음에 비로서 결단을 내리면 이제 그 일은 완성된 거나 다름
    이 없습니다.
     
        여섯 번째 음효. 아무리 외쳐봐야 호응하는 자  없다.
        흉하리라. 백성의 호응을 받지 못한 독재자는 마침내
        오래가지 못하리라.
     
      다섯 번째까지의 과정에 의해서 여섯  번째는 밀려나는 것입니
    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동안까지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하
    는 어려움이 따른 다음에 비로서 "결행"이라고 하는 과정이 벌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에  괴로움이 있더라
    도 스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새차를 뽑으면 처음에는 무척 공을 들입니다. 새로운 물건에 대
    한 기쁨 보다도 그것을 더욱 이쁘게 단장해 나가는데 더 기쁨을
    느낍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차 안에 오디오를 설치하기
    위해서 낮에 작업을 시작해서 낮에 끝내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
    니다. 그러나 끝내는 후레쉬를 켜놓고 추위에 이가 맞부딪치면서
    밤에 끝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오디오 스위치를
    켜자 그 한밤중에 현란한 전자빛이 반짝거리면서 울려 나오는 오
    디오 음을 들을 때의 즐거움. 그 한 순간을 얻기 위해서 하루종일
    추위에 벌벌 떨면서 좁은 트렁크 안에 들어가서 고생을 참고 견디
    며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 조그마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도 이
    마만큼의 인고(忍苦)가 따르는 법인데 하물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경우이겠습니까? 이 인고(忍苦)를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者). 그 자는 결행할 수 있는 위력을 갖지만, 그것이 없이 스
    스로 먼저 지쳐버리는 자, 그  자에게는 돌아오는 즐거움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714
  • 42. 풍뢰익(風雷益)
    『 아래로 베풀라 』
     
     ○     의도가 있으면 구체적인 실천의 계획은 단순해야 합
     ○     니다. 복잡하다고 해서 결코 좋은  계획이라는 법은
     ●     없습니다. 43등 하는 학생이 다음번 시험에서 10 등
            을 하려면 머리로 생각할 때는 최소한 33명을  제끼
     ●     고 올라가야 합니다. 33명을 하나 하나 제끼려고 계
     ●     획을 세우면 복잡해서 세워지지도 않을뿐더러 또 그
     ○     계획대로 실행되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내가 공부를
            한 다음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만 분명해지게 하면
            최소한 10 안에는 들게 됩니다. 따라서 등수에 구애
            받음이 없이 공부한 다음 모르는 것을 찾아내겠다라
            고 의지를 가지고 공부하면 10 등안에 저절로  들게
            될 것입니다.
     
                          풍뢰익(風雷益)
     
        [익(益)]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을 상
        징한다. 군주 자신한테는 박하게 하고 아래로 민생을
        후하게 하니, 국민이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진다. 은덕
        이 태양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니 군주의 도가 크
        게 빛난다. 적극적으로 전진함이 좋다. 항진은 순조롭
        다. 앞길에 경사가 있으리라. 항로가 열렸으니 위험하
        고 벅찬 대양을 건너도 안전하리라.  이 괘는 우뢰와
        같은 활동력이 움직이면 바람처럼 이에  호응하여 날
        로 전진하여 끝이 없다. 하늘은  에너지를 아래로 보
        내고 땅은 이것을 받아  만물을 낳으니 그  이익되게
        하는 것은 비할데 없다. 무릇 천지 자연의 이익의 법
        칙도 때와 호응하여 이와같이 운행된다.
     
      [산택손]을 얻고난 다음에 오는 상태가 [풍뢰익]입니다. [손]괘
    는 상괘가 음이 두 개, 하괘가 양이 두 개로  흡수하는 힘이 위의
    괘가 강하므로 밑에 것이 위의 것을 도와주는 형상이었습니다. 그
    러나 [익]괘는 아래가 더 흡수하는 힘이  강하여 반대로 위의 것
    이 밑에 것을 도와준다는 괘입니다.
      밑의 괘는 뇌성을 뜻하고  위의 괘는 바람을 뜻하는  괘입니다.
    뇌성이 치면 바람은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비바람이 내리
    치는 것, 즉 비가  오면 바람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안으로 의도를 가지고 밖으로 머리를 써야만 결과가 의도
    된 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흔히 실패하는 사람은 안에  뚜렷한 의
    도가 없이 그냥 막연하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실패
    다음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실패하면 거기서 그만 둡
    니다. 그러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머리를 사용하는 것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등 이
    랫다 저랫다 할 수 있으나, 내심에 품은 강한 의지는 절대로 흔들
    리지 않고 평온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 머리만으로는 절대 오래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 괘는 한결같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을 말하고 있습니다.
     
      "군주 자신에게는 박하게  하고 아래로 민생을  후하게 한다."
    옛날 알렉산더는 모든 전리품을 다 부하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전쟁을 하면 말단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입
    니다. 대장은 싸움의 영광을  누릴 수 있으나 부하에게는  그러한
    명예나 영광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것, 그것은 대장이 그들에게 후한 덕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는 모든 전리품을 말단 부하에게까
    지도 다 나누어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알렉산더의  군대는 모두
    하나의 기치아래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과적
    으로 또 대장에게 이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은덕이 태양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니 그  뒤에 도가 크게
    빛난다. 적극적으로 전진함이 좋다. 항진은 순조롭다. 앞길에 경사
    가 있으리라. 항로가 열렸으니 위험하고 벅찬 대양을 건너도 안전
    하리라." 아래에 베풀어 주는 사람은 모두에게 능력이 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돋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전진하여도
    앞길에 경사가 있게 됩니다.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더라
    도 모두가 합심하고 따르니 안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뢰와 같은 활동력이 움직이면 바람처럼 이에 호응하여 날로
    전진하여 끝이 없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은 벌써 [익]을  터득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뢰는 멈출줄을 모르고  나아갈려는 성질
    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도 파워가 강해지려면 우뢰와 같이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 강한 힘은 안으로부터 확고한 의지가
    전제되어야만 나오는 것입니다. 겉으로 머리 쓰는 것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으며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의도가 있으면 구체적인 실천의 계획은 단순해야 합니다.  복잡
    하다고 해서 결코 좋은 계획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43등  하는 학
    생이 다음번 시험에서 10 등을 하려면  머리로 생각할 때는 최소
    한 33명을 제끼고 올라가야  합니다. 33명을 하나 하나  제끼려고
    계획을 세우면 복잡해서 세워지지도 않을뿐더러  또 그 계획대로
    실행되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내가 공부를 한 다음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만 분명해지게 하면 최소한 10 등안에 들게 됩니다. 따라
    서 등수에 구애받음이 없이 공부한 다음 모르는 것을 찾아내겠다
    라고 의지를 가지고 공부하면 10 등안에 저절로 들게 됩니다.
     
        대상. 바람과 우뢰, 이것이 [익]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선을 보면 바로 자신에게  옮기고 허
        물이 있으면 곧 고친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선을 보면 바로 자신에게 옮기고 허물
    이 있으면 곧 고친다." 바른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짜  자신
    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게 됩니다. 필요한 것은 보는 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곧 고칠 수
    있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되지를 않습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옷을 고를 때 '저 옷이 멋있어 보이니까 나도 저
    걸 입으면 멋있어지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준이  있는
    사람은 '저 옷이 나에게 어울릴까?'를 먼저 생각하고, 저 옷이  나
    에게 오면 환해 보이겠다, 어두어 보이겠다를 간파하게 됩니다. 이
    것이 곧 문화수준입니다. 때문에  이것을 얻지 못하면 선을  바로
    자신에게 옮기지 못하고, 진짜 이익과 손해를 가려내지 못합니다.
     
        첫 번째 양효. 아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중대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러나 속이 있는 아래 지위 사
        람은 맡겨진 일에서 남보다 뛰어난  성적을 성취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크게 길하리라. 위의 신망을  받으
        리라.
     
      누구나 처음에는 아래 지위에 있게 됩니다. 맨밑에서 아무리 열
    심히 하려고 해도 위의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제대로 기를 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래 지위에 있는다 해서 사람  자체가 아래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처음부터 윗사람이었던 사람은 없습니
    다.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나  잘났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야할 일을 충실하게 제대로 해 나가면 자연히 윗 사람으로부터
    신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속이 깊은 사람입니다.
      "아래 지위에 있는 사람한테는 중대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
    러나 속이 있는 아래 지위 사람은  맡겨진 일에서 남보다 뛰어난
    성적을 성취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첫걸음 입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는 없습니다. 내가 이 회사 아니면 밥을 못먹느냐  하고 나가
    는 사람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두 번째 음효. 누군가 밖으로 와서 도우니 나라는 발
        전을 더하리라. 아무도 이 길조를  틀리다고 하지 못
        하리라. 왕이 상제에게 감사와 기원의 기도를 올리면
        길하리라.
     
      다섯 번째와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음(陰)이 착실하게 하면 양
    (陽)이 와서 도와주게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에서처럼 충실하게
    맡은 바 일을 하면 반드시 도와주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회사에
    서도 남들은 아무도 하지 않지만 밤  늦게까지 혼자서 열심히 하
    면 감동을 해서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를 속여 사기치려 하지  말고 남이 와서  자신을 도와주게끔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위대한 방법입니다. 그 위대한 방법을 선
    택해야지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고 남을  속여가면서 살려고 하면
    나중에 모두 그 사람을 떠나 버립니다.
      "왕이 상제에게 감사와 기원의 기도를 올리면 길하리라." 지금
    돈 잘번다고 해서 내일, 모레 돈이 잘벌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
    산입니다. 마음은 항상 없는 것을 대비하고 살아가야지 안이 꾸준
    히 유지되는 법입니다. 어느 정도 벌었다고 자만심에 차버리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될 때 겸손해져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하늘의 은덕이니 이에
    대해 감사하고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음효. 나라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굳은 신념
        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킨다. 고된  시련을 줌으로써
        사람을 빛나게 한다. 성의가 있고  정의에 맞는 일이
        니 허물이 없다. 왕의 신임을 얻고 신표를 갖고 천자
        에게 뵈는 일이 맡겨질 수 있으리라.
     
      별 볼일 없는 일을 착실하게 하고, 남이 도와주었을 때  잘난척
    하지 아니하면 세 번째, 이 사람에게 고된 어려움이  나타나게 됩
    니다. "고된 시련을 줌으로써 사람을 빛나게 한다." 사람이 백만원
    버는 것과 천만원 버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백만원대에서
    버는 사람이 천만원 버는 단계로 넘어갈 때는 "고되다"라는 현상
    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고된 어려움을 극복할 때 그 사람은 빛나
    게 될 것입니다. 권투선수는 어느정도 실력이 붙으면 점점  더 강
    한 스파링 상대를 찾게 됩니다. 이것이 곧 우뢰같이  변해가는 것
    입니다.
     
      "성의가 있고 정의에 맞는 일이며 허물이 없다." 뜻을 굳게 지
    키는 사람은 뢰(雷)로 변해가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
    라도 허물이 없이 지나가는데 뜻이 약한  사람은 어느 정도 되면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비천하게 됩니다. 성의를 다
    하여 중도를 지킨다는 것은 자기 자만에 빠지지 않고 뇌성과같은
    에너지로만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즉, 다른 차원의  신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남이 도와주는게 아니고 운이 도와주는
    신임을 얻게 됩니다. 운이  좋고 나쁜 것은  사실 없습니다. 흔히
    성공했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운 나쁜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닙
    니다. 운 나쁜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밑이
    단단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왕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고, 안보이는 눈의 신임을 얻어 하늘을 감동시
    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퍽 힘든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 세상 사는 것이 힘든가?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
    아 있으면 무언가가 자꾸  날라와서 자기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부숴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 움직이다 보면  자기보다 강한
    벽에 부딪쳐 깨어져 나가기가 십상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가만
    히 앉아 있어도 깨지고 움직여도 깨질바에야 앉아서 깨지는게 낫
    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은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될 수 있을까? 잘 되는 방법은 결코 쉽지는 않으
    나 그렇다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분명하게 알고만 있으면
    어려운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움직이면  이익이 되는 방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바로 '풍뢰익(風雷益)'입
    니다.
      과거 미국의 서부 개척 당시 아무런 기술도 없고, 뚜렷한게  없
    는 사람들이 금광을 캐기  위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거지가 금광을 캐러 다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도 자기와
    비슷한 신세인 것같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무언가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서, 자기는 굶으면 힘이  없는데 그 사람은 굶어도  힘있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거지가 생각할 때 그사람은 위대해 보였
    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 2년을 다니며 몇 군데 산을 뒤졌지만 허탕만 쳤습니
    다. 그래서 거지는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지는 그만 다니자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러면 너는 네 갈데로 가라.
    나는 계속 다니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지는 뚜렷히 갈 데
    도 없기 때문에 계속  따라다녔으며 결국 5년째  되는 날 금광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우리가 고생해서  금광을 발견하
    였으니 반반씩 나누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생각할 때
    거지는 반을 나누어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 거지가 없었어도
    자기는 5년만에 금을 발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
    람이 다시 제안을 하였습니다. "네 말데로 5년  동안 같이 고생을
    해서 얻은 것이니까 반을 주겠다. 그대신 다시는 절대로  나를 찾
    지 마라. 왜냐하면 너는 다시 그것을 모두 잃어버릴 것이다." 그
    후로 결국 거지는 반을 가지고 가서 망했습니다. 이 사람은 계속
    번창하여 또 다른 광산을 발견하였으며 다시 그  거지의 것을 모
    두 샀습니다.
     
      이 사람은 왜 부자가 될  수 있었으며, 거지는 왜 도로  거지가
    되었는가? 그 사람은 '나'로 가지 않았으며 거지는 도로 '나'로 갔
    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은 머리하고 마음(감정)이 완전히 분리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짐승으로 갈수록 머리(생각)하고 마음(감정)
    이 한군데로 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훌륭하냐는  머리와
    감정, 이것이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떨어져
    있을수록 훌륭한 사람이고, 가까이 있을수록 천박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할 때는  머리와 가슴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마음은 원하지 않고 머리만 원하면 그것이 바로 '사기꾼' 입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빌린 돈을  꼭 갚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만일
    "내가 3일내로 갚아드리겠습니다." 하면 3일내로 못 갚을 수도 있
    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을  돈이 3일만에 받아질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갚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더라도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축을 해놓아야 합니다.
     
      비축해서 뒤가 든든하면 머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마음이 다급해지면 머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습니다. 받을
    걸 못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으면 그걸 주면  됩니다. 그
    래서 가지고 있으면 태연하게  "열흘만 기다려라. 일주일이면  될
    것같은데 넉넉잡고 열흘 후엔 주마."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자신
    만만하게 배짱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게  한푼이
    없는데 상대방이 독촉하면 마음이 다급해져서 3일안에 된다는 보
    장이 없지만 "3일내에 꼭 해주겠다." 이런 식으로 약속을 하게 됩
    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 되어도  사기꾼은 아닙니다. 사기꾼은 아
    예 갚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머리만 가지고  어떻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또 머리는 없고 마음만 움직이면 천박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시장바닥에서 싸우는 사람들.  누가 잘못했든지간에 먼저  때리는
    사람이 결국은 잘못을 몽땅  뒤집어 쓰게 됩니다. 경찰서에  가서
    "상대방이 약을 올려서 그렇게 했다."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습니
    다. 그 사람은 법철학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고
    세상을 욕하고 다니는데 그것은 마음을 머리가 표현해 내지 못하
    고 마음이 직접 튀어나와 그렇습니다. 즉 감정이 앞섰다는 뜻입니
    다.
     
      주역은 "나타나는 것은  뒤집혀서 나타난다."로 말하고  있습니
    다. 이 세상이 묘한 이유는  뒤집힌다는데 있습니다. 나가는데 상
    대편이 더 세고 내가 약하면 현상이  뒤집혀서 내가 깨어지게 되
    어 있습니다. 이 뒤집히는 현상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면 얼굴이 시원해 집니다. 그런데 손은 가만히 있고
    얼굴이 왔다 갔다 한다고 시원해지지는 않습니다.
      훌륭한 조각가가 조각을 할 때는 훌륭한 부분 부분을 맞추어서
    조각하는게 아니고, 이미 머리속에서 완성품을 그리고  있다가 불
    필요한 부분만 하나씩 떼어냄으로써 비로서  아름다운 조각이 되
    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여자가 속이 보일 듯 말  듯한 옷을 입
    고 나와서 옷을 벗을 때쯤이면 위는  가려지고 화면에 발목과 옷
    자락만 바닥에 흘러내리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면  관객들은
    '옷을 벗었군'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때는 아무리 머리가 나쁘더라
    도 직감적으로 눈치챕니다. 감독은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옷이
    스스륵 내려갈 때 관객이 '꿀꺽' 하면서 볼라 하면 나올 듯 말 듯
    한 부분에서 컷트시키고 나중에 옷만 바닥에 떨어진 것만 클로즈
    업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위는  다 벗었군.' 하면서 만족해
    합니다. 이것도 인생에 있어서 한 묘미입니다.
     
      [풍뢰익]은 앞에는 음성에너지입니다. '챙긴다'는  뜻입니다. 그
    리고 밑에서는 양에너지가 받쳐주고 있습니다. 항상  이런 자세로
    나가야 됩니다. 겉도 양이고 안도 양이면 챙기는 것이  없어서 무
    슨 일을 했어도 아무 것도 남는게 없습니다. 그런데  속이 음흉하
    고 겉이 양성이면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준다하고 속
    으로는 말겠다는 겁니다. 따라서 겉은 받아들일 걸 생각하면서 안
    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 즉 머리는 항상 안으로 들어올 것을 생각
    하면서 마음은 나갈 것을 갖고 머리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 갖
    추어져야 합니다.
     
        네 번째 음효. 바른 도리를  실천하고 나라에 헌신하
        고 있으면 그의 의견은 군주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하면 그의 나라를 위한 뜻은 더욱 더하여  질 것
        이다. 군주와 인민의  의지하는 지주가  되어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것과 같은 큰 일을 맡겨줘도 순조롭게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바른 도리를 실천하고  나라에 헌신하고 있으면  그의 의견은
    군주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바른 도리란. '나'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일의 완성을 위해서  열심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손해보는 것같지만 뒤집어 놓으면 저쪽  세계가 자신을 받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늘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잘한다 해도 하늘이 받아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
    늘을 내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정말 '위기일발'에서  벗어날 수 있
    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한 포인트 차이입
    니다. 0.5초만 안지나갔으면 별 상관없는 것인데도 죽을  수 있고,
    0.1미리만 빗나가 있어도 죽고 사는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군주와 인민의 의지하는  지주가 되어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것과 같은 큰 일을 맡겨줘도 순조롭게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
    리라." 결국 그렇게 사는 사람은 하늘이 큰 일을 주게 됩니다. 그
    리고 그 일을 순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앞은 음에너지
    로 받아들일 것을 생각하면서  그걸 통해서 머리를  써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나갈려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을 내편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 군주된 자가 신의가 있고 백성을 사
        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점쳐볼 나위도 없이 크게 길하
        리라. 백성들이 진심으로 군주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
        으니 군주의 훌륭한 뜻이 크게 나라안에 반영된다.
     
      "군주된 자가 신의가 있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점
    쳐볼 나위도 없이 크게 길하리라." 다섯 번째는 원래 군주의 자리
    인데 그 밑에 음으로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군주는 사랑을
    위로 쏟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쏟는다는 뜻입니다. 이 양에너지가
    아래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을  향해서 쏟고 있고, 백
    성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점쳐볼 필요도 없이 결과는 항상
    복되다는 뜻입니다. 소방관이 불을 끄러갈때는 먼저 제대로 장비
    를 챙겨야합니다. 사다리와 물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불길로부
    터 자신의 몸을 보호해줄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을 끄는
    방법뿐만 아니라 자신의몸을 지키기위한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듯
    이 마음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소방관이 불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화와 고통이라는 불길에 휩싸여 있을 때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그 불길속에 들어가면 그를 도울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자신 마져도 불길에 휩싸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장비가 바로
    연민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군주된 자가 신의가 있고 백성을 사
    랑하는 마음이 진실로 연민심이 있으면 점쳐볼 나위도 없이 크게
    길하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양효.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사
        욕에 사로잡혀 민생에 보탬을 주지 못한다.  외부로
        부터 공격을 받아 패망할지도 모른다.  그 마음에 바
        른 도리를 지킨다는 불변의 원칙이 서있지 않기 때문
        이다.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사욕에 사로잡혀 민생에 보탬
    을 주지 못한다." 역대 재벌 가운데 초년에 고생안한 사람이 없습
    니다. 그렇지만 초년에 불평불만한 재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
    부터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그걸 토대로 해서
    자기의 뜻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반발하게 되면  그 사
    람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국민성은 겉
    이 양입니다. 그리고 속이 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났다고 나
    서는 겁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 사리사욕에 사로 잡
    히고, 동업을 하면 망하게 됩니다.
     
      성공을 했을 때 잘난척  하면 안됩니다. 수수하게 살아야  합니
    다. 내가 가진 것이 분명하면 아무리 숙여도 주변이  딸려오게 되
    어 있습니다. 벌이 꽃한테 가는 이유는 꿀이 있기 때문입니다. 꽃
    이 아무리 벌을 싫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한테  꿀을 없애
    버리기 전에는 . 그것이 있는 한 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에 바른 도리를 지킨다는 불변의  원칙이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불변의 원칙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편안
    한 것입니다. 불변의 원칙을 사용하기 때문에 민생을 이롭게 하며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954
  • 41. 산택손(山澤損)
    『 손해보고 얻다 』
     
     ○     [손]은 손해를 감수하는  괘입니다. 손해를 본다고
     ●     해서 무작정 손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     많은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인간이 먼 곳의 이익을
     ●     보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에만 사로잡히는 경우는 욕
     ○     심이 앞서서 잠재의식이 발동하기 전에 먼저 의식적
     ○     으로 뭔가 이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근거
            리이기 때문에 멀리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산택손(山澤損)
     
        [손] 이란 아래 것을 덜어서 위를  늘인다는 것이다.
        즉 아래에서 위에 봉사한다는 뜻이다. 성의를 다하고
        도리를 행하면 대길하리라.허물이 없다. 성의만 있으
        면 두 개의 대나무 그릇에 곡식을 담은  간소한 재물
        만으로도 신에게 제사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대나무 그릇을 제물로 제사지내는 일도 그럴만
        한 때가 있는 것이다. 덜고 보태고, 차고 기우는 천
        지 자연의 이치는 때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은 잘했것 못했건 간에 자연의 이
    치와 법도에 맞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입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처지만을 고집하게  되면 결과가 좋아지
    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상대방이 잘못했지만, 내가 잘
    했다라는 감정만을 앞세워서 급한 나머지  주먹으로 상대편을 치
    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법은 이상하게도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맞은 정도에 따라 때린 사람을  체포하게 됨으로써 몹시 억
    울하다는 느낌을 그 사람에게 안겨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억울한 일들은 내마음  때문에 벌어진 실수에
    서 기인한 것들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는데
    모든 실수는 대개 의식과 잠재의식이  불일치하는 데에서 벌어집
    니다. 라디오가 고장났을때 그것을 고치려는 의식만  앞서서 무작
    정 뜯으면 나중에 어떻게 조립할 지를  몰라서 결국 버리지 않으
    면 안되게 됩니다. 잠재의식이 라디오를 꼭  고쳐야겠다고 생각하
    면 당장은 들을 수  없지만 전파사에 맡겨서 고쳐온다든가,  뜯을
    때 그 순서를 가지런히 놓아 나중에  조립할 때 혼돈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손] 이란 아래 것을 덜어서 위를 늘인다는 것이다. 즉 아래에
    서 위에 봉사한다는 뜻이다."  [손]은 손해를 감수하는 괘입니다.
    손해를 본다고 해서 무작정 손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많은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인간이 먼데의 이익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에
    만 사로잡히는 경우는 욕심이 앞서서  잠재의식이 발동하기 전에
    먼저 의식적으로 뭔가 이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근거리
    이기 때문에 멀리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진흙탕이 있는 물을 뛰어서  건너려고 하면 옷을 버립니다.  눈
    쌓인데를 막 뛰어가면 발목을 삡니다. 그런데서는 오히려 힘을 빼
    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이까짓 눈"하
    면서 박차고 나갈려고 하면 눈이 발목을 부러뜨리고 맙니다. 사람
    이 성숙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이득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 스스로 버릴줄 안다는 뜻입니다. 결과를 좋게 이
    끌기 위해서는 화가 난다고 주먹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잠깐 시
    간을 갖고 다시 웃으면서 상대편을 설득하여 서로 웃으면서 결과
    가 나타나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잠재의식을 움직여서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여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먼데  이익을 보고
    지금 당장의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먼 곳
    을 아는 사람은 가까운 곳부터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
    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가까운 곳을 살핀다."라는 것은 매사에 성의가  있다는 뜻입니
    다. "성의만 있다면 두  개의 대나무 그릇에 곡식을  담는 간소한
    재물만으로도 신에게 제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대나
    무 그릇을 제물로 제사지내는  일도 그럴만한 때가 있는  것이다.
    덜고 보태고, 차고 기우는 천지 자연의 이치는  때에 따라 행해지
    는 것이다." 즉, 성의를 갖고 움직인다면 조그만 일을 하더라도 신
    이 감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의를 베푸는  것도 유효적
    절하게 시기를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뭔가 효도를 하기  위해서 효도관광을 보내
    드리는 일이 많은데, 그것도 어머니의 건강상태와 당시 상황을 잘
    고려해서 해야 합니다. 어머니 건강은 별로 좋지 않고  기력도 쇠
    한데 석굴암, 설악산 등 힘든 관광코스로 효도관광을 보내면 어머
    니는 돌아와서 병이 나게 됩니다. 또 효도관광하는 날  기상이 나
    빠져서 날씨도 너무 추운데  강이나 바닷가에 관광을  하면 몸에
    해롭습니다. 그때는 비록 손해가 있더라도 관광을  취소해야 합니
    다. 그런데 지불한 비용을 생각하고, 또 지금 보지 못하면 다음에
    언제 또 보겠는가 하는  마음이 앞서서 무리하게  성의를 베풀면
    오히려 화가 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성의는 항상 시기적절하게 사
    리를 참작하여 지나침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대상. 산밑에 물이 있는 것이 손괘의 괘상이다. 군자
        는 이 괘상을 보고 성냄, 화냄을 경계하고 욕심을 억
        제하여 이상에의 대성을 지향한다.
     
      "산밑에 물이 있는 것이 손괘의 괘상이다." 산  아래 물이 있으
    면 흙이 붕괴되어 내려가는데, 여기서는 물이 아래로 내려가 빠져
    버리면 산이 드러나서 돋보이게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물
    이 스스로를 낮추면 산이 돋보인다."라는 뜻입니다. 또 이괘는 음
    효와 양효가 모두 대응관계를 이루어 화합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
    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성냄, 화냄을 경계하고  욕심을 억제하
    여 이상에의 대성을 지향한다." 욕심은 근거리이기 때문에 멀리가
    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높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낮은 욕심
    을 억제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만이 이성을 통해서 이상의 대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양효.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빨리 달려가 봉
        사하라. 그리하면 웃사람과 뜻이 하나가 되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나를 희생하여 남에게 봉사하는 일
        도 사리를 참작하여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빨리 달려가 봉사하라." 자신의 일을 그
    만두고 빨리 달려가 봉사하라는 것은 자기의 입장보다 자연의 입
    장에서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질적으
    로 드러나는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 인내하라는 말입니다. "저 사
    람과 나와의 관계를 위하여 화가 나는  나를 자제하고 봉사하라."
    입니다. "그리하면 위사람과 뜻이 하나가 되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면 웃사람과 뜻이 합하게  되어 허물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웃사람은 자기 바깥의  모든 대상을 포함하여  그 대상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양효. 중용의 도를 지켜 변함이 없으면 만사
        순조로우리라. 함부로 앞으로 내달리면 흉하리라. 자
        신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손실을 가져오지 않고 남에
        게 보탬을 주는 것이 되리라.
     
      "중용의 도를 지켜 변함이 없으면 만사  순조로우리라." 가운데
    효가 다섯번째 음효와 정응관계를 이루어  중용을 지키고 있습니
    다. 그런데 마음이 확 변해서 "해보니까 잘되더라."하여  자만심을
    가지면 안됩니다. "함부로 앞으로 내달리면 흉하리라." 한 번 잘된
    다고 자만심이 생겨서 함부로  나아가면 흉하게 됩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손실을  가져오지 않고 남에게  보탬을 주는
    것이 되리라." 즉, 무리하게 남을 도우려 하지 않는 것이 결국 도
    와주는 결과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피곤하면 피곤한  것을 쉬도
    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어머니를 효도관광 보내 드릴 때, 어머
    니가 피곤하시면 여행비는 이미 지불하였더라도 효도관광을 취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돈 생각해서 무리하게 여행을 강행하면 어머
    니는 병이 나서 드러눕게 됩니다.
     
        세 번째 음효. 세 사람과 동행하면 그중 의심이 생겨
        한 사람을 잃게 된다.  혼자서 가면 벗을 얻어  서로
        협력할 수 있으리라.
     
      "세 사람과 동행하면 그중 의심이  생겨 한 사람을 잃게 된다.
    혼자서 가면 벗을 얻어 서로 협력할 수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
    이 끝내 따라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 혼자라도 가겠다.'는 생각
    으로 매사를 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될  동안을 기다려서
    같이 가려고 하면 그중에  한 두명은 잃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때'를 아는 사람은 진짜  꼭 행하는 사
    람입니다. 사회생활을 하건  가정생활을 하건 일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의  일이건 내 일이건 자기 일같이 성실하게
    합니다. 고로 그 사람에게는 나중에 커다란 복이 오게 됩니다. 진
    짜 중요한 핵심을 아는 사람은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직접하는 사
    람입니다. 이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순조로운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알고, 중요한 것이 내 몸처럼 느껴지면  생각과 결
    과를 논하기 전에 몸이 먼저 실행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런 사람
    은 이미 만물과 하나로 연결되어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연결되어
    진 부분을 통해서 만물이 그 사람을  보좌해주고 복을 주게 됩니
    다. 자신만을 위하다 보면 만물로부터 들어오는 그러한 복의 운이
    막혀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자칫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가까운데 이
    익을 본다고 하는 것이 엄청난 손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자각해
    야 겠습니다.
     
        네번째 음효.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
        의 결점을 고쳐라.  옳은 일은 빨리할수록  기쁨이고
        허물이 없으리라.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의 결점을  고쳐라." 자
    기 자신이 잠재의식적으로 성리에 가깝게  가고자하는 사람이 아
    니면 자신의 결점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자꾸 발견
    하다 보면 최상의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만족은 누
    구나 다 똑같습니다. 물론 각자  마음의 정도는 다르지만, 만족해
    하는 마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
    람은 감정대로 움직일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득 이전에 자기 만
    족을 내세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면, 먼저 되지  않는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을 앉은채로 발견해 낼려고 하면 절대로 발
    견되지 않습니다. 나는 날이 밝은 후 해도 될 것을  꼭 밤에 하다
    가 끝내가서는 결정적으로  망가뜨려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억울한 것만큼 억울한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게 내 마음때문에 벌어진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앞이 조금 고생되더라도 뒤가  명료해지도록 하는 쪽으
    로 행동하였습니다. 나는 무언가 뜯을 때보면 순서대로 놓습니다.
    뜯다보면 어떤 때는 이게 먼저인지, 저게 먼저인지  모를 때가 있
    습니다. 이미 시작할 때 벌어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내 결점을 스
    스로 줄여갈려고 노력한데서 이러한 행동이 생긴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의 결점을 고치기 위해 "오늘은 반성해야지." "결점
    을 고쳐야지." 하고 그렇게 마음의 굳은 결의를 갖는 것도 좋습니
    다. 그러나 결의보다는 눈을 맑게  뜨고, 어떠한 시련이 닥친다해
    도 가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면 당신은  곧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
    로 자시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그대는 비로서 기쁨이라는 것을 맛볼 것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누군가 그를 도와  유익하게 하리라.
        어떤 영험한 거북점도 이 길조를 틀리다고는 못할 것
        이다. 하늘이 보우하시니 크게 길하다.
       
      "누군가 그를 도와 유익하게 하리라." 병을 고치듯이 자기 자신
    을 발견해 내면서 일을 행하면 만물이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이때
    부터 협력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지혜가 트이게 되는  것입니
    다.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뭐가 없어서 못한다."라고  하고, 할
    줄 아는 사람은 "뭐가 없으면  이것을 대신쓴다." 라든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용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사용한다" 하게 됩니다. 이
    차이는 아주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것이 곧 지혜의 있고  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보우하시니 크게 길하다." 이 정도 되면  만물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결국 만물이  모두 이 사람을  돕는 것이며, 하늘이
    보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자
    신을 낮추는 공부를 하여 손해를 통해 곧  뒤에 큰 이익으로 돌아
    온다는 법칙을 알아야겠습니다.
     
        여섯번째 양효입니다. 크게 뜻을 얻으니 희생없이 공
        헌할 수 있다. 바른 도리를 지키면 길하리라.  제 집
        일은 돌보지 않고 나라일에만 충성을  바치는 신하를
        얻으니 만사 순조로우리라.
     
      "크게 뜻을 얻으니 희생없이 공헌할 수 있다." 이미 자기 결점
    을 계속 고쳐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큰 희생없이도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길은 명료합니다. 문제는 그 명료를  인간이 받아들이느냐, 못 받
    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생활인으로서의 생각과 인간으로서의  생
    각은 다릅니다. 즉 사람이 머리가 똑똑해서 쓰는 지혜와 생활인으
    로서의 지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선진국 정부가 다
    른 점은, 선진국은 생활인으로서의 지혜를 짜내고 있으며, 우리는
    머리로서 지혜를 짜낸다는 것입니다. 사춘기때는  생활인으로서의
    지혜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감성의  지배를
    우선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성의 지혜로 살기에 앞서서 성리(性理)의 지혜로 살아
    야 합니다. 성리의 자세로서 몰입을 해야지만 비로서 우리는 인생
    을 건질 수가 있습니다. 또 인생의 진정한 낙과 보람을 찾을 수 있
    습니다. 우리는 성리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의식만 가고자 하면 잠재의식은 점점 무뎌집니다. 그렇게 되면 손
    해를 보면서 큰 이익을 얻는 산택손의 가르침을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낮춘 연못이 산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을 나타나게 하는 비결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005
  • 40. 뇌수해(雷水解)
    『 고난이 풀리다 』
     
     ●     인생은 일장춘몽이 결코  아닙니다. 인생은 우뢰가
     ●     울고 비가 오는 가운데 돋아나는 창조의  세계이며,
     ○     그것을 누릴 수 있는 풍요의 세계이며, 그것이 나에
            게 주는 행복한 세계입니다. 눈보라 치는 겨울이 지
     ●     나면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맞이 하듯이 험난함 뒤
     ○     에는 포근함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평생의 삶
     ●     이 항상 고된 법은 없습니다. 고통이 있을 때도 있
            고 평온이 찾아 올 때도 있듯이 어려움 뒤에는 편안
            함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뇌수해(雷水解)
     
        [해(解)]는 험난을 의미하는  뇌(雷) 괘와  움직임을
        상징하는 수(水) 괘로 구성된다.  움직임으로써 험난
        을 벗어나는 것이 해(解)괘의 상징이다. 평탄하고 관
        대한 겨울이 풀리면  대지는 많은 생명을  얻으리라.
        평탄하고 광대한 도(道)를 행해야 좋다. 험난을 헤치
        고 나아가다 길이 막히거든 되돌아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지나침이 없는 중용의  길이기 때
        문이다. 나아갈 길이 있으면 주저않고 빨리  가는 것
        이 좋다. 길은 이제 험난에서 벗어나  순조로 향하고
        있으니 나아가면 공이 있으리라. 천지에 겨울이 풀리
        니 우뢰가 울고 비가  온다. 우뢰가 울고 비가  오니
        온갖 실과와 초목이 모두  껍질을 깨고 새싹을  비춘
        다. [해(解)]의 시기의 힘은 진실로 크다.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
    리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여 마음을 내어 쓰는 쪽에 사용하지 않고
    마음에 빠져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마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중대한 과실을  범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것을 이기기  위해 타는 불속에 손을  집어넣는
    행위. 이것이 도 닦는게 아닙니다. 손이 뜨거운 불에 가면 타버립
    니다. 손이 뜨거운 것을 느끼면 결국 손은 불속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도를 얻은 사람은 손을 불속에 집어 넣지는 않지만, 손을
    가지고 불을 지피거나, 불을 뗀다든가하여  불을 쓸줄 압니다. 불
    을 사용하기 위해서 손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은 그와 똑같아서 사람이 자기 심정에 빠진 것은 뜨거움 안
    에 빠진 것과 똑 같습니다. 마음이 무(無)라하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말하는게 아닙니다. 무(無)는 마음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써야되는 겁니다. 그 마음을 쓰면 뜨
    거운 불을 손이 느껴서 불을 사용할 수 있듯이, 어려운 난제에 부
    딪쳤을 때 마음이 에너지가 되어서 쓰여지게  되면 결국 그 난해
    한 문제와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쓸 때는
    계산된 마음 없이 마음을 내어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부딛쳐 극
    복해 나아감으로 해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고달프다
    고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외부의 고난의  세계에 의해 자신이 파
    괴되어 스스로 분열해 버립니다.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 고난
    을 흡수해서 생기 발랄한 생동하는 힘을 통해 이겨나가야 합니다.
      차가운 땅덩어리를 뚫고 나오는 새싹은 결코 새싹의 힘만 가지
    고 나오는게 아닙니다. 새싹의 힘을 돋아주는 태양의 힘이 새싹에
    게 스며들어 오는 것입니다. 새싹은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꽁
    꽁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나올 수 있습니다. 땅속에  박혀있는 씨
    앗은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운은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양에너지는 어디든지 골고루 다 있습니다.  우리가 못해
    먹겠다고 하는 그곳에도 그 기운은 있습니다. 그것을 만나는 사람
    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 역경을 해결해 낼
    수 있는 힘을 받게 되지만 못해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지 차가운 땅덩어리에 묻혀 피지 못하는 씨앗이 되어 버립니다.
     
      "[해(解)]는 험난을 의미하는 뇌(雷)  괘와 움직임을 상징하는
    수(水) 괘로 구성된다.  움직임으로써 험난을  벗어나는 것이  해
    (解)괘의 상징이다." [해(解)]괘는  험난을 의미하는  뇌(雷)괘와
    움직임을 상징하는 수(水)괘로 구성되어 움직임으로써 험난을 벗
    어난다는 뜻입니다. 움직임으로써 험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험난
    한 것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움직이는 힘을 통해  해결해 간다는
    뜻입니다. 상괘 [뇌(雷)]는 음에너지 두 개에  양에너지가 밀려있
    는 상태입니다.
     
      구름이 뭉치고 뭉치면 서로 부딪쳐서 뇌성을 일으킵니다.  인간
    의 마음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면  폭발해서 히스테리를 일으
    킵니다. [뇌(雷)]는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하괘 [수(水)]는  음이
    가장자리에 균등하게 존재하고 중앙에  양(陽)이 있기 때문에 이
    리도 흐르고 저리도 흐를 수 있습니다. 물은 가장자리 음에너지가
    흡수하기 때문에 물과 물이 서로 만나면 뭉칩니다. 그러나 중심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물은 유들유들하게 흐를 수 있습니다. 그
    래서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고난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
    라 고난을 흡수해서 나아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 바로 [뇌수해]
    입니다.
     
      우리는 바닷물을 전부 다 없앨 수는  있지만 모타 보드를 타고
    바다를 능히 이리저리 누비며 다닐 수 있습니다. 대부분 어려움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어려움을
    안고 주저앉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어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헤쳐 나가야겠다는 기운이
    머리위로 올라오는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하다못해 감기에 걸렸다 하더라도 감기에  빠져서 "나는 힘이 없
    어서 못한다." 하는 사람은 감기로 무척 고생을 하게 되지만 감기
    를 자기로부터 떨어뜨리려고도 하지 말고 일에 대한 자기 기운이
    머리위로 올라온 사람은 바쁜와중에서도 간단히 약국에 들려 감기
    약 몇 알만 먹고도 2, 3일 지나는 동안 감기는 저절로 없어져 버
    립니다. 그리고 앓아 눕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기운이 위로 올라오는 사람은 어려움
    너머를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려움 너머에 대해 이
    야기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또 기운이 위로
    올라오는 사람은 객관적이고 길을 발견하지만, 기운이  위로 올라
    오지 못하는 사람은 심정적이고 주관적이고  자기 이야기만 자꾸
    하게 됩니다. 발이 아파서 뛰질  못하겠느니, 다리가 떨려서 가지
    못하겠느니 하는 경우는 전부다 자기 주관적이며 기운이 위로 상
    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평탄하고 광대한 도(道)를 행해야 좋다. 험난을 헤치고 나아가
    다 길이 막히거든 되돌아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지
    나침이 없는 중용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아갈 길이 있으면 주저않
    고 빨리 가는 것이 좋다." [뇌수해]는 험난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험난을 만나면 평탄하고 광대
    한 도를 행할 것. 둘째,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면 물러나서 안정을
    취할 것. 셋째, 아직 문제가 남아있으면 신속히 처리해 버릴 것입
    니다.
     
      첫째는 고난을 만났을 때 나만 빠져 나가려 하지 말고 내가 처
    한 그 환경을 평탄하게 고난에서 구하려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회
    사가 쓰려져 가면 어떻게든 월급만 받아먹고 그만뒤야지 하지 말
    고 회사를 튼튼한 기반이 되도록 흑자로 바꾸어 놓겠다고 마음을
    먹고 머리를 써서 바꾸라는 것입니다. 즉 고난이라고 하는 세계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온 정성을 쏟으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지구 안에서도 태양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그 태양에너지를 통
    해서 자신의 힘을 배가시켜  결국 모든 일을 쉽게  해결해 낼 수
    있는 안목과 영감을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이
    닥쳤을 때 "자기 마음과 온몸과 두뇌를 통해서 그 고난이라는 세
    계를 평탄한 세계로 바꾸어 놓으려고 할 것" 이것이 첫째입니다.
     
      두 번째, 마음만 앞서는 사람은 어떻게 일이 하나  해결이 되면
    금방 막 덤벼들어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손이 한 번 불을 지폈다
    고 해서 큰 불을 지필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큰 불덩어
    리를 손으로 지필려고 하면 손이 다칩니다. 손으로는 성냥불 정도
    만 지피는 것입니다. 진짜 고난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고난때
    온몸으로 집중을 하고 그 이후는 안정을 취하는 법입니다. 집중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관심은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합니
    다. 안정을 취한다고 신경을 끄고 푹 쉬어버리면 안됩니다.
     
      고난이 아닌 상태에서 억지로  힘 쓸 필요가 없습니다.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면 물러나서 안정을 취할 것. 즉 몸을  잘 간수해야
    합니다. 불이 중요한 줄 아는 사람은 자기 손도 잘 보호해야 합니
    다. 그 보존된 손으로 또 새로운 불을 일으키기 위해서 입니다.
     
      세 번째, 아직 문제가 남아 있으면 신속히 처리해 버릴 것. '큰
    덩어리를 닦아냈으니 작은 덩어리는 그냥 저절로 털어지겠지.' 하
    면 오산입니다. 조금 남은  마무리를 '그건 두었다가 내일해야지.'
    하면 그만 두자는 것이랑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맨 마
    지막에 마무리할 일이 남았을  때 마음은 더 조급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뒤에 안정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
    을 깨끗이 청소하려면 완전하게 청소해야지, 지푸라기 몇 개 떨어
    진 것을 그냥 놔두면 그것이 눈에 더 띄는 법입니다. 말끔히 그걸
    치워버렸을 때 비로소 깨끗하게 치워진 방이 나에게 청결함과 화
    사함을 안겨주게 됩니다.
     
      아직 문제가 남아 있으면 신속히 처리해 버릴 것. 이것이  나아
    갈 길이 있거든 주저말고 빨리 가면 좋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길
    은 이제 험난에서 벗어나 순조로 향하고 있으니 뒤에 누릴 수 있
    는 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그뒤에 오는 [뇌수해]
    의 힘이 진실로 크게 됩니다. 어렵다고 되돌아서는 사람은 영원히
    그때의 힘을 모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또 뒤에 물러나서  스스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행복을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만물이 나를
    도와주고 있으며, 그리함으로써 만물과 함께 있는 이 세상이 영원
    한 행복의 파라다이스라는 것을 알 지 못하게 됩니다.
      "우뢰가 울고 비가 오니 온갖 실과와 초목이 모두 껍질을 깨고
    새싹을 비춘다. [해(解)]의 시기의 힘은 진실로 크다."
      험난을 해결해 놓으면 그 뒤에 오는 때의 힘이라는게 있습니다.
    어렵다고 되돌아서는 사람은 영원히 때의 힘을 모르고 사는 사람
    입니다. 즉, 험난을 해결하고 뒤에  물러나서 스스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행복을 영원히 모릅니다. 또 만물이 나를  도와주고 있으
    며 그리함으로써 만물과 함께 있는 이  세상이 행복한 영원의 파
    라다이스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결코 일장춘몽이 아닙니다. 인생은 항상 우뢰가 울고 비
    가 오는 가운데 돋아나는 창조의 세계이며, 그것을  누릴 수 있는
    풍요의 세계이며, 그것이 나에게 주는 행복한 세계입니다.
     
        대상. 우뢰가 진동하고 비가 쏟아지는 것이  해의 괘
        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백성의  과실을 용서
        하고 죄와 형벌을 너그럽게하여 그 고통을 풀어준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백성의 과실을  용서하고 죄와 형벌을
    너그럽게하여 그 고통을 풀어준다." 고난이 해결되면 군자는 겨울
    이 풀리듯이 봄기운의 상태를 만들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뿐
    만 아니고 어느 세계든지간에 미워하는  세계가 있어서는 안됩니
    다. 그러면 나중에 만물이 전부다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도와주게
    됩니다.
     
        첫 번째 음효. 강(强)과 유(柔)가 의좋게  이웃해 있
        으니 허물이 있을 수 없다.
     
      "강(强)과 유(柔)가 의좋게 이웃해 있으니  허물이 있을 수 없
    다." 바로 위에 있는 강한 기운이 흐트러지지 않게 음효가 막아주
    고, 또 대응하는 네 번째 강한 기운도 밑으로 빠지지  않게 잘 흡
    수하여 막아주니 쓸데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막아 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사냥에서 세 마리 여우를 포획하고 황
        금의 화살을 얻는다. 알맞은 길을  얻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사냥에서 세 마리  여우를 포획하고 황금의  화살을 얻는다."
    주역은 기운이 위로 상승하니까 세 번째 음효만 물리치고 올라가
    면 네 번째 양효와 힘을 합하여 그 위의 음효 두 개도 물리칠 수
    있으므로 사냥해서 세 마리의  여우를 포획하고 네  번째 양효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음효는  흐르는 기운
    이기 때문에 위로 흘러서 상승하면 그 기운을 보내줄 수 있는 힘
    을 얻는다는 것으로 황금의 화살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알맞은 길을 얻었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도 고난을 마음으
    로 받아들여 이겨나가려고 하면 아무리 어려운 것에서도 세 마리
    의 여우를 포획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이겨나갈 수 있
    는 황금의 화살을 반드시 얻게 되어 있습니다. 하려고  하는 분명
    한 마음을 먹고 있으면 알맞은 길을 얻게 됩니다.  고난을 극복하
    는 방법의 두 번째가 안정을 취하는  길이기 때문에 알맞은 길이
    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일 지라도 못해
    먹겠다하고 마음이 뒤돌아 서지 않는다면  반드시 거기에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세가지가 있게 됩니다.
     
        세 번째 음효. 무거운  짐을 짊어진 신분 낮은  자가
        마차를 타고 있다. 보기에 추악하다.  도둑의 노림을
        받는다. 스스로 적을 부르는 노릇이니 누구를 허물하
        랴. 끝까지 버티어 붙이지 아니하면 비난의  집중 공
        격을 받아 어찌할 수 없는 난경에 빠지리라.
     
      "무거운 짐을 짊어진 신분 낮은  자가 마차를 타고 있다. 보기
    에 추악하다." 하괘에서 제일 높은 자리이지만 신분이 낮은  음효
    가 위치하여 잘 나오는 기운을 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둑의 노림을  받는다." 일단 고
    난을 해결하면 돌아와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이때 취하는 안정
    은 신경을 계속 그 일에 가있는 상태에서 몸을 쉬는 것입니다. 그
    런데 만약 신경까지 끊어버리면 도둑이 나를 침범하게 됩니다. 산
    을 오를 때는 한  봉우리 오르면 그위에서 잠깐  쉬고 다시 길을
    재촉해야지 올라서 신난다고  내리막길을 마구  뛰어가면 굴러서
    몸을 상하게 되며 또 쉰다고 갈 길을  잊어먹고 마냥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서 갈 것입니다.
     
        네 번째 양효. 그대 발밑에서 아첨하고  있는 소인배
        들과 관계를 끊어라. 그리하면 어진 벗이  와서 성의
        로 협력하리라.
     
      "그대 발밑에서 아첨하고 있는 소인배들과 관계를 끊어라." 내
    가 고난을 당했을 때 주관적인 나의  심정을 위로하는 사람은 전
    부 소인들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는 내가 그  어려움을 이
    겨나갈 수 있도록 나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친
    구가 진정한 친구이지, 나의 심정을 위로하고 그  심정을 같이 나
    누는 사람은 좋은 친구는 아닙니다. "그리하면 어진 벗이 와서 성
    의로 협력하리라." 어진 벗에 성의껏 협력하는 것은 사실  협력이
    아닌 것같은 협력입니다.
      옛날 미국에 마크트윈 이라는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마
    크트윈이 낚시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더니 잘 아는  친구가 먼저
    낚시대를 매고 역에 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낚시대를 매고  아침
    일찍 왔다가 되돌아 가려던  참에 마크트윈을 만난 것입니다.  그
    친구는 마크트윈을 보고 "여보게  친구. 돈좀 빌려주게. 부랴부랴
    오다 보니까 지갑을 두고  왔네." 하며 말하였습니다. 마크트윈은
    "나도 갔다올 정도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얼굴이 알려져 있
    으니까 말만 잘하면 통과할 수 있을걸세. 안에서 차표  검사할 때
    잘 말해 줄테니까 우리 입장표만 사가지고 안으로  들어가세." 하
    였습니다. 안에서 차표 검사하러 차장이 오니까 마크트윈이 "여보
    게 빨리 의자밑에 들어가서 숨게." 그러니까 이  친구가 번개같이
    밑구멍으로 들어가 숨어있었습니다. 차표 검사하는 사람이 왔을 때 
    마크트윈이 표 두 장을 내미니까 차장이 "또 한 분은 어디계십니
    까?" "잠이 덜깨서 밑에서 잡니다."  . 그런 친구는 약올리는  친
    구이지만 좋은 친구입니다. 왜냐하면 약은 올렸지만 그래도 근본적
    으로는 일을 해결하는 쪽으로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훌륭한 군주가 나라의 여러 가지 난
        제를 해결하고 백성의 고난을 풀어주니 소인들까지도
        정성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세상에 소인은  없어진
        다. 길하리라.
     
      음효이지만 대응관계에 있는 효가 양효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
    이 따라주게 됩니다. 우리가 일을 해결하는데 있어 무턱대고 해결
    만 하려고 앞으로 나가는 일만 해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내가 총
    을 잘 쏜다하여도 총알을 낭비해서 총을  쏘는 사람은 잘 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백발백중이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활을 무척 잘 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황제
    가 그 장수를 데리고 같이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때 마침 노
    루가 한 마리 튀어 나갔습니다. 다른 장수들은 모두  활을 당겼지
    만 유독 그 사람만은 활을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노루가 도망가는 방햐으로 거슬러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그
    는 노루를 잡아왔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물었습니다.
      "자네가 활 잘 쏘는 비결이 무엇인가?"
      "저는 백보안에 있는 물체는 눈을 감고도 맞출 수가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웬만한 장수들은 능히 다 할 수 있는 일이오."
      "저는 목표물이 백 보안으로 들어오기전까지는 결코 활을 당기
    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일을 해결하는데 일을 해결한 다음  바로 죽어버리면 아
    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일을 해결한게 아니고 일에  묻혀 죽
    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불쌍한 사람중에 한 사람이 징기스
    칸입니다. 징기스칸은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 넓은 중
    국 땅덩어리를 다 돌아다니면서 싸움을 했지만 끝내 가서는 어느
    한 고을에서 죽었습니다. 한 번도  통치해 본적이 없습니다. 비록
    통치 영역에는 있었지만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훌륭한 군주가 나라의 여러 가지 난제를  해결하고 백성의 고
    난을 풀어주니 소인들까지도 정성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난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난제를 통해서 갖추어지는 결실이 있게 해야 합니다. 직장을 옮길
    때에도 먼저 직장을 잡아놓고 지금 직장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
    러나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당장 직장을 나오면 틀림없이 일 년
    내지 삼 년동안은 놀지 않으면 안되는 불상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훌륭한 군주는 나라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고 백성의 고난
    을 풀어주되 무턱대고 튀어나가는 양에너지가 아니고,  그것을 결
    실로 갖추어 낼 수 있는 음에너지를  통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된
    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높은 성벽에서 새를  쏘아 떨어뜨린
        다. 이와같이 정도에 어긋나는 것을  배격한다. 그리
        하면 만사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다섯 번째도, 여섯 번째도 음에너지입니다. 이 음성기운이 모든
    일어나고 있는 좋지 않은 일들을 흡수해버릴  수 있는 강한 기운
    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반드시 안정된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같이 안정을 충분히 납득하는  사람은 안정을
    모르고 날뛰는 사람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왜 여섯
    번째가 절대 안정으로 끝났는가? 우주는 절대 안정이기 때문입니
    다. 만약 우주가 절대 안정이 아니라면 이와같은 괘는  존재할 수
    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되  정도를 어
    긋나거 덮어놓고 하려고 하는  것. 한다는 것에 도취되어서  하는
    것을 배격하고 음성기운을 통해서 거둬들일 수 있는 결실을 갖추
    고 매사에 신중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가 칠 때도 있고 갑자기 우박이 내려 쏟아
    질 때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화산이 폭발할 때도 있습니다.
    억수로 뜨거운 지하수가 흘러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세상이 아직 깨어져 없어지지 아니한 것은 이 우주에는 반
    드시 해결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가장 궁극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길인 이상 우리의 인생길
    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생에 있어 해결해 나가지 못한다고 좌절
    하는 사람, 도저히 나는 감당할 수 없다고 자살하는 사람, 이런 사
    람은 우주의 본능을 저버린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우주의 안정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뜻을 갖고 죽음이 하나의 길이 되고  안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죽는 죽음은 훌륭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이
    겨나갈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이 해결의 전부라고  믿어 자살하는
    사람은 우주의 본능으로부터 위배되기 때문에  우주가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해결 하게끔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가슴
    에 안은채 그것을 결코 저버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사용할 줄 아
    는 사람은 능히 이미 해결을 얻은 사람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924
  • 34. 뇌천대장(雷天大壯)
    『 지나친 활동력 』
     
     ●     잠깐이라도 우리가 느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에는
     ●     반드시 고난이 닥쳐오기 마련입니다. 그 고난으로부
     ○     터 한 뼘 물러서서 안정을 차츰차츰 넓혀가기 위해서
            나는 투기성 있는 행동을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구
     ○     심점을 통해서 구심점의 영역을 지켜가면서 조금씩
     ○     펼쳐나아갈 수 있는 영혼을 모두가 가지기를 바라는
     ○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써 당신의 영혼은 결코 슬픔을
            맛보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진정으로  터득
            했을 때 마침내 먼 미래의 풍요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주역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뇌천대장(雷天大壯)
     
        대장(大壯)이란 양기가 크게 왕성하다는 뜻이다. 강하
        고 강하면서 크게 활동하므로 장성하는 것이다. 큰 것
        이면서 바르게 움직인다. 길이 변함이 없으면 그 운행
        이 순조롭다. 바르고 큰 것에서 천지의 움직이는 뜻을
        통찰할 수가 있다.
     
      "대장(大壯)이란 양기가 크게 왕성하다는 뜻으로 강하고 강하면
    서 크게 활동하므로 장성한다." [뇌천대장]의 하괘는 모두 양효로
    서 양괘입니다. 상괘도 양효 하나 음효 두 개로서 양괘입니다. 양
    과 양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강하고 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
    습니다. 강하다는 것이 어떻게 강한 것이냐면 성질이 급하게 강하
    다라는 이야기입니다.
     
      "큰 것이면서 바르게 움직인다. 길이 변함이 없으면 그 운행이
    순조롭다. 바르고 큰 것에서 천지의 움직이는 뜻을 통찰할 수가
    있다." 어느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이 우주는 64괘 가운데 어디
    에 해당됩니까?" 사람은 태어나면 64괘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
    됩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태어났을 때는 어떤 상태였는가? 우리는
    주역의 맨 첫 번째 나온 괘가 6개의 효가 모두 양효로 이루어진
    "건위천(중건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나온 괘가 6효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곤위지(중지곤)]입니다. 이
    우주는 피조체하고 달라서 어느 한 괘에 머무르지 않고 그 두가지
    괘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 곧 우주의 모습이며 바로 이를 우
    리는 '태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수없이 많은 작용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작용
    대신 수없이 많은 것을 꽉 움켜쥐고 있습니다. 여섯 개의 효가 모
    두가 양으로 이루어져서 움직이고 있지만 동시에 모두가 전부다 음
    효로 이루어져서 꽉쥐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모두  양의
    효로 이루어진 괘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태어난 자체 외에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전
    부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괘는 상괘와 하괘가 역순하고 있습니다. 즉 밑의  괘가
    위로 올라가고 위의 괘가 아래로 내려와서 변화하는 상태를 만들
    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의 효로 전부 이루어져 있으면 상하
    괘가 자리바꿈을 하여도 결국은 양효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와같은 상태로 태어났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더 잘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지금 이 상태가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인 것입니다.
     
      주역은 "차면 기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가장 차있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무언가
    하는 그 움직임이 만약 저장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고 있지 않다
    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양성에네르기는 막 가다보면
    구심점을 잃어버립니다. 돈만 무조건 많이 벌어온다고 해서 가정
    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더 불행합니다. 그러
    나 가정이 행복하려면 안정과 평안을 항상 갖추어 놓고 그 바탕에
    서 조금씩 풍요로와져야지 한 번에 벼락치기로 돈을 벌려고 한다
    면 그것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잠깐 우리가 느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에는 반드시 고난이
    닥쳐오기 마련입니다. 그 고난으로부터 한 뼘 물러서서 안정을 차
    츰차츰 넓혀가기 위해서 나는 투기성 있는 행동을 말하지 않습니
    다. 항상 구심점을  통해서 구심점의 영역을  지켜가면서 조금씩
    펼쳐나아갈 수 있는 영혼을 모두가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리함으로써 당신의 영혼은 결코 슬픔을 맛보지 않을 것입니다. 바
    로 그것을 진정으로 터득했을 때 당신은  먼 미래의 풍요를 스스
    로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주역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대상. 우뢰가 하늘 위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이 대장
        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예의에 맞지 않
        는 일을 행하지 아니한다.
     
      "우뢰가 하늘 위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이  대장의 괘상이다."
    위에 있는 괘는 번개를 뜻하며 밑에 있는 괘는  하늘을 뜻합니다.
    "하늘위에 번개가 치고 있다."  그런데 밑에 음효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마른 번개가 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비가  내리는게 없
    습니다. 왜냐하면 양효가 밀고 나가서 음효를  지워버리기 때문에
    바로 번개만 치게 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는 뜻하지 않게 기분좋게 잘되는 때가 있
    습니다. 지금 이 괘는 그런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별로 힘들
    이지 않아도 잘될 때가 있습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  평상시 아주
    잘하는 선수가 챤스가 나서 아무리 슛을 쏘아도 공이 골퍼스트를
    맞고 튀어나간다든가, 정확히 찼는데도 상대편 골기퍼가 받아내든
    가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그리 잘하는  선수가 아니지만 어느날
    에는 갑자기 그 선수가 차기만 하면 골과 연결되어 4골 5골씩 넣
    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흔히 운이 좋다고 이야기합니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예의에 맞지 않는 일을 행하지 아니한
    다." 이 괘는 바로 이와같이  운이 좋은 상태를 나타내는 괘입니
    다. [뇌천대장]은 운이 좋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각  효가 제시하
    는 점들만 주의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괘이기도  합니다. 이처
    럼 기분좋은 상태에서는 첫째로 조심해야할 것이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운이 좋은 상태에서 굳이 반격을 해
    서 이미지를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반칙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자기 개인의 욕
    심에 치우치지 말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행하면 크게 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양효. 아직은  발의 위치. 말단에  있으면서
        스스로 장성하려 한들 어찌 잘될 수 있으랴.  함부로
        날뛰면 흉하리라. 모처럼의 성의도 곤경에 빠진다.
     
      "아직은 발의 위치. 말단에 있으면서 스스로 장성하려 한들 잘
    될 수 있으랴. 함부로 날뛰면 흉하리라." 아직은  위에 자기 세계
    를 확실히 갖추고 있는  음성기운이 있습니다. 이 기운이  방어를
    해서 오히려 네 번째 양효로 하여금 이 효를  밀어버리게 됩니다.
    서로간에 좋은 관계가 아니고 같은 효로서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럴때는 반드시 '찬다' 하고 슛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넣는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분히 차야 합니다. 넣기 위해서 슛을 해야
    잘 되지,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내가 한다는 마음으로 공을 차면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두 번째 양효. 마음의 중용의 도를 지켜 시종일관 변
        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마음의 중용의 도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두 번째 효는 상응관계에 있는 다섯번째 음효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이 영향으로 두 번째 양효는 "이러다가 내가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첫 번째에서 한
    번 실수를 했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는 자각이 있으
    므로 중용의 도를 지켜 변함이 없으면 길하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양효. 소인은 장대하면 세력을 함부로 휘두
        르고, 군자는 자신을 억제한다. 숫양이 무작정 앞으
        로 돌진하다가 울차리를 들이 받아 그 뿔에  걸려서
        괴로워 함과 같은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숫양이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다가 울차리를 들이 받아 그 뿔에
    걸려서 괴로워 함과 같은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너
    무나 강성한 위치이므로 정도를 지켜도 오히려 위태로울 수 있습
    니다. 축구를 하여도 혼자 두세 골을 넣어 버리면 상대편은 이 선
    수만을 철저히 막으려고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스스로 자제를 해
    야지 잘된다고 미친 듯이  하려고 하면 상대방의 강한 태클에 걸
    려 몸을 다치게 됩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이상해서 꽃밭에 가서 수많은 꽃 가운데서
    저 꽃이 가장 이쁘다 싶어 남몰래 그  꽃을 얼른 살짝 따서 돌아
    설 때, 자기가 손에 든 꽃보다 오히려 꽃밭에 있는  다른 꽃들이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 일에 현혹되는
    일이 없이,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이, 얼마만큼 정확하게 집어
    내고 필요한 걸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데 주력을 해야 합니다.
     
        네 번째 양효. 바른 길을 전진하여 변함이 없으면 길
        하리라. 후회가 없어진다. 숫양이 돌진하다가 울타리
        를 박았으나 울타리가 열리니 뿔이 걸려 고통받는 일
        은 없다. 용약 매진함이 좋다. 큰 수레바퀴가  잘 구
        를 수 있게 바퀴 통을 튼튼히하여 앞으로 달려라.
     
      사람은 신나게 잘될 때  뒤를 돌아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
    웅덩이를 보면서 가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큰 오차가 벌어지게
    됩니다. 음성적인 영역을 구축시키며 자기 범위를  확장시켜 나아
    가야 합니다. 음성에 머물러 살아도 아니되지만, 양성적인 에너지
    를 사용하되 항상 웅덩이를 키워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씨
    를 뿌릴 때는 여섯달 후에 추수를 생각하면서  뿌리는 것이지, 오
    늘 씨를 뿌리고 단순히 여섯달 후에  거둬들여질 줄 믿고 있으면
    큰 오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섯달 후를 걱정하기 때문에 바람
    부는 날 바람 걱정하고, 비오는 날  비 걱정하고, 또 가뭄들은 날
    물대줄 걱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할 줄 알아야만 이 우
    주가 주려고 하는 절대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른 길을 전진하여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여기서 바른
    길이란 웅덩이를 잃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후회가 없어진다.
    숫양이 돌진하다가 울타리를 박았으나 울타리가 열리니 뿔이 걸려
    고통받는 일은 없다. 용약 매진함이 좋다."  추수를 생각할 수 있
    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추수를 얻은 사람입니다. 웅덩이를 생각하
    고 하는 실수는 큰 허물이 되지 않습니다. 곧 그것을 막아주는 일
    을 이 세상이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안다면 주저하
    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큰 수레바퀴가 잘 구를 수 있
    게 바퀴 통을 튼튼히하여 앞으로 달려라." 바퀴통을 튼튼히  하는
    것은 이미 추수를 얻은 마음, 다 영그러진 마음입니다. 안정을 미
    리 생각하면서 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유순한 자가 강한 자의 지위에 있으
        니 안이함 가운데 양을 잃는다. 그러나  유순함은 미
        덕이라 후회할 바 없다.
     
      "유순한 자가 강한 자의 지위에 있으니 안이함 가운데 양을 잃
    는다." 음의 효에만 주저앉아 있으면 나아가려고 하는 것을  잊어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순함은 미덕이라  후회할 바 없
    다." 그러나 차라리 무턱대고 나아가는 것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
    는게 오히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회할 일은 없는 것입니
    다. 이미 융성하게 해 놓은 것을 지키는 것이 낫긴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더 풍요로울 수 있는 숫양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
    다. 숫양의 능력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해 나아가야만  된다는 점
    을 말하고 있습니다. 뒤가 풍족하다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이제 또
    다시 앞으로 가야됩니다. "지금까지 풍족한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열매가
    썩지를 않지 그렇지 않으면 열매가 영원히 썩어버리게 됩니다. 우
    리는 항상 풍요롭게 만들고 그 풍요를 내 것으로 하지 말고 또 빈
    손으로 되돌아가서 얼른 다시 풍요를 가꿔내는 일을 생의 행복으
    로 알아야만 합니다.
     
        여섯 번째 음효. 숫양이 무모하게 울타리를  받아 뿔
        이 걸려서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태다. 어
        찌 할 바를 모든다.  무엇을 하여도 잘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반성하여 근심할 줄 알면 길하리
        라. 허물은 멀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숫양이 무모하게 울타리를 받아 뿔이 걸려서 나아가지도 물러
    나지도 못하는 상태다." 잘 안된다고 조금 머물렀다가 갑자기 또
    해야되겠다 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웅덩이
    를 조금씩 지켜나가야지 돈 좀 벌었다고 거기 머물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고 이젠 또 돈이 떨어졌네." 하면서 다시
    움직이는 식으로 하면 큰 불리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잘
    못을 반성하여 근심할 줄 알면 길하리라." 그러므로 자기  잘못을
    반성하여 근심할 줄 알고 있을 때는 없는 것을 걱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중용이며, 이 우주가 가지고 있는 가
    장 지고의 뜻인 태극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이
    룰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믿어야 하며,  그 힘이 존
    재할 수 있는 터전을 가꾸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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