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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6
    예컨대 수확을 할 때 2명의 마부, 2명의 짐 싣는 사람, 2명의 던지는 사람, 2명의 갈퀴질하는 사람 및 건초를 쌓거나 곡물창고에서 일하는 몇 명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농장에서 서로 다른 조로 나뉘어 일하는 같은 수의 노동자들보다 2배나 많은 일을 할 것이다"(?식량의 현재가격과 농장규모 사이의 관계의 인구?, 한 농장주?아버스노트”저, 런던, 1773년, pp. 7-8).) 이것은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정치적 동물(주석 7: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定義: definition)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한] 프랭클린의 정의가 양키 나라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정의는 고전적 고대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은 아닐지 몰라도 여하튼 사회적 동물(社會的 動物)이라는 데 기인한다.
    비록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증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하더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과정의 상이한 국면을 이룰 수 있는데, 이때 노동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빨리 통과하게 된다. 예컨대 만약 12명의 벽돌공이 벽돌을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지어 선다면, 그들 각 개인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그들 개개의 행위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의 연속된 부분들을 이룬다. 즉, 각자의 행위는 각 벽돌이 노동과정에
    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한 국면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벽돌은 전체 노동자의 24개의 손을 통과함으로써 각 개별 노동자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벽돌을 운반할 때보다 더 빨리 운반된다.(주석 8: “또한 지적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부분적 분업(分業)은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하는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건물의 높은 곳으로 벽돌을 손에서 손으로 나르는 벽돌공들은 모두가 동일한 작업을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 각자는 벽돌을 일정한 거리만 옮겨 놓지만, 전체로 보면 그들은 각자가 벽돌을 단독으로 높은 곳에 운반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것을 옮겨놓게 된다"(스카르베크[F. Skarbek],
    ?사회적 부의 이론?, 제2판, 파리, 1839넌, 제1권1 pp. 97-98).) 노동대상은 동일한 거리를 더 짧은 시간에 통과한다. 또한 예컨대 건물을 지을 때 여러 방면에서 동시에 착수하는 경우, 비록 협업자들은 이때에도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노동의 결합이 일어난다. 건물을 짓는 데 1명의 벽돌공이 12일간 [즉 144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12명의 벽돌공이 144시간의 집단적 1노동일에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 이유는 협력해 작업하는 노동자 집단은 앞과 뒤로 팔과 눈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까지는 전면성(全面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산물의 상이한 부분들이 동시적으로 완성되어 간다.
    위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공동노동(共同勞動: common labour)의 이러한 가장 단순한 형태가 협업에서 [심지어 협업의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과정이 복잡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상이한 작업을 각각의 노동자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전체 작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은 단축된다.(주석 9: "어떤 복잡한 노동을 하는 경우, 몇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이 일을 하고 저 사람은 저 일을 함으로써 한 사람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성과에 모두가 함께 기여한다. 한 사람은 노를 젓고 또 한 사람은 키를 잡고 세번째 사람은 그물을 던지거나 작살로 고기를 찌르거나 한다. 그리하여 고기잡이는 이러한 협업 없이는 불가능한 성과를 얻고 있다" (데스튜트 드 트라시, 앞의 책, p. 78).)
    많은 생산부문에는 결정적인 순간[즉, 노동과정 그 자체의 성질에 의해 규정되며 그 기간에 노동의 일정한 성과가 달성되어야 하는 시기]이 있다. 예컨대 한 떼의 양의 털을 깎는다든가 일정한 면적의 곡물을 베어 거두어들여야 할 때, 생산물의 양과 질은 이 작업이 일정한 시간에 시작되어 일정한 시간에 끝나는가 끝나지 못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경우 노동과정이 수행되어야 할 기간은 [예컨대 청어잡이의 경우와 같이] 미리 정해져 있다. 각 개인은 하루에 예컨대 12시간 이상의
    1노동일을 만들어 낼 수 없지만, 100사람의 협업은 1노동일을 1,200시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 작업에 허용되는 기간이 짧다는 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생산의 장(場)에 투입되는 노동의 커다란 규모에 의해 보상된다. 이 경우, 제때에 작업을 마무리짓는 것은 다수의 결합된 노동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에 달려 있으며, 유용한 효과의 대소는 노동자의 수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노동자의 수는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규모의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고립된 노동자의 수보다 언제나 적다. (주석 10: "그것"(농업노동)"를 결정적인 순간에 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아버스노트, 앞의 책 , p. 7. "농업에서는 시간이라는 요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없다"(리비히[Liebig], ?농 업의 이론과 실제?, 1856년, p. 23).) 이러한 종류의 협업이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서부에서는 매년 많은 곡물이, 그리고 [영국의 통치에 의해 옛날의 공동체가 파괴된] 인도의 동부 지역에서는 매년 다량의 면화가 낭비되고 있다.(주석 11: "그 다음의 불행은 [아마 중국과 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많은 노동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인도}에서 있으리라고는 거의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불행인데, 그것은 면화의 수확에 필요한 노동자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다량의 면화가 수확되지 못하고 내버려지며, 또 일부는 면화가 이미 땅에 떨어져 변색되고 또 부분적으로 썩어 버린 뒤에 땅에서 수집된다. 그리하여 바로 그 계절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배업자는 [영국에서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면화의 많은 부분을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게 된다"(?벵갈 통신, 격월해외정보요약}, 1861년 7월 22일자).)
    협업은 한편으로는 작업을 넓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어떤 노동과정에서는 노 동대상의 물리적 구조 그 자체가 벌써 협업을 요구한다. 예컨대 배수공사. 제방공사. 관개공사. 운하건설. 도로건설. 철도부설 등에서 그렇다. 다른 한편, 협업은 생산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생산의 공간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산규모의 확대와 동시에 노동의 공간적 범위의 축소는 [이것은 다액의 공비(空費) {비생산적 비용}를 절약할 수 있게 한다] 많은 노동자의 밀집과 각종 노동과정의 집합(集合)과 생산수단의 집중(集中)에서 생긴다.(주석 12: 농경의 진보에 따라 "전에는 500에이커의 조방적(粗放的) 경작에 사용되고 있던 모든 자본과 노동[아마도 그 이상]이 이제는 100에이커의 한층 더 집약적인 경작에 집중되고 있다." "사용되는 자본과 노동의 양에 비해 면적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지만, 생산의 범위는 이전에 하나의 독립적 생산자에 의해 경작될 때보다 확대되었다"(존스, ?부의 분배에 관한 연구?, 제1부, 지대에 관해, 런던, 1831년, p. 191).)
    결합된 노동일은 그것과 동일한 크기의 개별 노동일의 합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를 생산하며, 따라서 주어진 유용효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감소시킨다. 결합된 노동일이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원인이 무엇이건 [즉, 그것이 노동의 기계적 힘을 제고하거나, 노동의 공간적 작용범위를 확대하거나, 생산규모에 비해 생산의 공간적 장소를 축소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많은 노동을 가동시키거나, 개개인의 경쟁심을 자극해 활기를 띠게 하거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연속성과 다면성을 부여하거나, 서로 다른 작업들을 동시적으로 수행하거나, 공동사용에 의해 생산수단을 절약하거나, 또는 개개인의 노동에 사회적 평균노동의 성격을 부여하기 때문이거나]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어떤 경우라도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 또는 사회
    적 노동의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노동자는 그의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그의 종족(種族: species)의 능력을 발전시킨다.(주석 13: "개개인의 힘은 보잘 것 없지만, 이 보잘 것 없는 힘의 결합은 모든 부분적인 힘의 합계보다 더 큰 집단적인 힘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힘은 그것을 단순히 결합시키기만 해도 시간을 단축하고 자기의 작용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베리, ?정치경제학에 관한 고찰“, p. 196에 대한 칼리[G. R. Carli]의 주).)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함께 모이지 않고서는 협력할 수 없으며, 그들이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그들의 협업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임금노동자는 동일한 자본(資本), 동일한 자본가에 의해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경우에만, 즉 그들의 노동력이 동시적으로 구매되는 경우에만 비로소 협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동력의 총가치[즉, 노동자들에 대한 하루 또는 1주일 등의 임금총액]가 자본가의 주머니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을 개시할 수 있다. 300명의 노동자에게 단 하루분을 지불하는 데에도 소수의 노동자에게 1주일에 한 번씩 1년간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지출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협업노동자의 수(즉, 협업의 규모)는 우선 개별 자본가가 노동력의 구매에 지출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다시 말해 각 개별 자본
    가가 다수의 노동자의 생활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정도]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변자본(可變資本)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불변자본(不變資本)에 대해서도 해당된다. 예컨대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원료에 대해 지불하는 금액은 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가 지출하는 것의 30배가 된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노동수단의 가치나 양은 노동자의 수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지만 현저하게 증가한다.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대량의 생산수단이 집적(集積)되는 것은 임금노동자들의 협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며, 협업의
    범위 또는 생산의 규모는 이러한 집적(concentration)의 정도에 의존한다. 앞의 장에서 본 바와 같이,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 그리고 그들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이 고용주 자신을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를 소경영주로부터 자본가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관계 {또는 노자관계(勞資關係)}를 형태적으로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최소한도의 자본액이 필요했다. 이제는 자본의 이 최소한도가 다수의 분산되고 상호독립적인 노동과정들을 하나의 결합된 사회적 노동과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물질적 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도 처음에는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 따라서 자본가 밑에서 노동한다는 사실의 형태적인 결과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많은 임금노동자의 협업에 따라 자본의 지휘는 노동과정 그 자체의 수행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생산의 현실적 조건으로 발전해 간다. 생산장소에서의 자본가의 지휘는 이제 전쟁터에서의 장군의 지휘와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으로 된다.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 또는 공동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산유기체의 독립적인 기관(器官. organ)들의 운동과는 구별되는 생산유기체 전체의 운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바이올린 독주자는 자신이 직접 지휘자가 되지만 교향악단은 독립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지휘와 감독과 조절의 기능은 자본의 지배 하에 있는 노동이 협업적으로 되자마자 자본의 하나의 기능으로 된다. 자본의 독자적인 기능으로서, 지휘(指揮)의 기능은 자기 자신의 특수한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 그리고 그것을 규정하는 목적은 자본을 가능한 최대한도로 증식시키는 것(주석 14: "이윤은....사업의 유일한 목적이다"(반더린트, ?화폐만능론?, p. 11).) 다시 말해, 가능한 한 최대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협업하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그들의 반항도 증대하며, 또한 이 반항을 억누르기 위한 자본의 압력도 필연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에 의한 통제는 사회적 노동과정의 성질로부터 유래하는 하나의 특수기능일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이 사회적 노동과정을 착취하는 기능이며, 따라서 착취자와 그의 착취 대상{즉, 노동자} 사이의 불가피한 적대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임금노동자에 대해 타인의 소유물로 대립하는 생산수단의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그것이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초과적으로 통제할 필요도 증대한다.(주석 15: 영국의 저급신문인 “스펙테이터?(Spectator) 지는 1866년 5월 26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멘체스터 철사제조회사“에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일종의 공동출자제도(共同出資制度)가 도입된 이후 "첫번째 결과는 재료의 낭비가 갑자기 감소한 사실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다른 기업가의 재산이라면 모르지만 자기 자신의 재산을 낭비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료의 낭비는 아마 악성채무 다음가는 사업상 손실의 최대의 원천이다. " 이 신문은 로치데일 협동조합 실험의 근본적 결함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그 실험은 노동자들의 조합(組合)이 매점이나 공장이나 거의 모든 형태의 산업을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또 노동자들 자신의 상태를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용주들을 위해 빈자리를 남겨 놓지 않았다. " 얼마나 잘못한 짓인가! ) 더욱이 임금노동자들의 협업은 전적으로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에 의해 생긴다. 그들을 단일의 생산체(生産體: productive body)로 통일하고, 그들의 개별 기능들 사이에 하나의 관련을 형성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능력 밖의 일이다. 즉, 그들 자신의 행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만든 자본의 행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다양한 노동 사이의 상호관련은, 관념적으로는 자본가의 계획으로서, 그리고 실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자본가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자본가의 권위, 타인의 강력한 의지로서 그들과 대립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가의 지휘(指揮: direction)는 그 내용에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휘하는 생산과정 자체가 한편으로는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과정(勞動過程)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가치증식과정(價値增殖)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에서는 독재적이다. 협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 독재도 자기의 특유한 형태들을 전개한다. 자본가는, 자기의 자본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개시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도에 도달하자마자, 우선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가는 이제 개별 노동자들과 노동자 집단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독 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노동자들에게 넘겨준다. 군대가 장교와 하사관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본의 지휘 하에 있는 산업노동자집단도 노동과정의 진행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지휘할 장(지배인)과 하사관(십장. 감시자)을 필요로 한다. 감독(監督: supervision)이라는 업무가 그들의 전문기능으로 확정된다. 분산된 농민이나 독립적 수공업자의 생산방식을 노예제도에 의한 농장경영과 비교할 때, 경제학자들은 노예제도의 감독노동을 생산상의 공비(空費)로 계산한다.(주석 16: 케언즈(Cairnes)는 '노동에 대한 감독'을 미국 남부주의 노예제 생산의 하나의 주요 특징이라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 전체를 자신이 갖는 (북부의) 자작농은 노동에 대한 다른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감독이라는 것이 전혀 불필요하다"(케언즈, ?노예의 힘?, pp. 48-49).) 그러나 그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고찰할 때에는 이와 반대로 집단적인 노동과정의 성질로부터 발생하는 지휘 기능과,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따라서 적대적 성격에 의해 필요하게 되는 지휘기능{감독기능}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주석 17: 상이한 생산양식들 사이의 특징적인 사회적 차이점을 통찰하는 데 탁월했던 제임스 스튜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조업 대기업이 개인경영을 몰락시킬 수 있는 이유는, 대기업이 노예노동의 단순성에 더욱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정치경제원리“, 런던, 1767년, 제1권, pp. 167-168).) 산업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본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가이기 때문에 산업의 지도자로 된다. 봉건시대에는 장군. 판사의 기능이 토지소유의 속성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의 지도력은 자본의 속성으로 된다.(주석 18: 그러므로 콩트(Auguste Comte) 및 그의 학파는 자본가들의 영원한 필요성을 실증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봉건영주들의 영원한 필요성을 실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판매를 위해 자본가와 흥정을 끝낼 때까지는 자기 노동력의 소유자이며, 그는 오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 즉 자기의 개인적이고 고립된 노동력만을 판매할 수 있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자본가가 1명의 노동력이 아니라 100명의 노동력을 구입하며, 그리고 1명이 아니라 서로간에 아무 관련이 없는 100명의 노동자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사실에 의해 조금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는 이 100명의 노동자를 협업시키지 않고서도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가는 100명의 독립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지 100명의 결합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독립한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은 제각각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본가와 관계를 맺지만 자기들 서로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들의 협업은 노동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되는데, 그때에는 이미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과정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자본에 편입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협업자(協業者)로서, 또는 하나의 활동하는 유기체(有機體)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특수한 존재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협업에서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資本)의 생산력(生産力)이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하에 놓일 때는 언제나 무상으로 발휘되며, 그리고 노동자들을
    바로 이러한 조건 하에 놓는 것은 자본이다. 이 생산력은 자본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것이고, 또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에 속하기 전에는 노동자 자신에 의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산력은 자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생산력으로, 자본에 내재하는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단순협업의 엄청난 효과는 고대 아시아인, 이집트인, 에트루리아인 등이 세운 거대한 건물에서 볼 수 있다.

    “과거 이 아시아 국가들은 행정비와 군사비를 충당하고도 생활수단의 잉여를 가지고 있었으므 로, 그것을 호화스러운 건축물을 짓고 유용한 토목공사를 하는 데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축조하는 테 있어 그들은 거의 모든 비농업인구의 노동을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 늘날까지 그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거대한 기념물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비옥한 나일강 유역은....수많은 비농업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했고, 왕과 승려의 소유 하에 있었던 이 식 량은 국토 가득히 거대한 기념비들을 세울 수단을 제공했던 것이다....거대한 석상(石像)들과 대 량의 자재(資材)들이 운송될 때에는-그런 것들을 운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거의 전적으로 인간의 노동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던 것이다....그것을 위해서는 수많은 일꾼들과 그들의 노력의 집중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거대한 산호초가 대해(大海)의 깊은 물 속으로부터 솟아올 라 섬과 육지로 되는 것을 보지만,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침전물(沈澱物)은 보잘 것 없고 미약하고 가소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 왕국의 비농업일꾼들은 개인적인 육체 적 힘 이외에는 그러한 공사에 기여할 만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수가 그들 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큰 무리들을 지휘하는 권력이 [오늘날 남아서 우리들을 놀라게 하고 황 홀하게 만드는] 궁전과 사원과 피라미드와 거대한 석상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일꾼들을 먹여 살릴 만한 수입이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종류의 사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주석 19: 존스 ”국민경제학교과서“, pp. 77-78. 런던 및 기타 유럽의 수도들에 있는 고대 앗시리아, 이집트 등의 수집품들은 우리에게 이러한 협업적 노동과정을 보 여준다.)

    아시아와 이집트의 왕들과 에트루리아의 승려 등의 이와 같은 권력은 근대사회에서는 자본가에게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자본가가 개별 자본가로 등장하느냐 또는 주식회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집단적 자본가로 등장하느냐는 아무래도 좋다.
    [우리가 인류문명의 초기에 수렵민족들(주석 20: 랑게(Linguet)는 자기의?민법이론?에서 수렵을 협업의 최초의 형태며 또 인간사냥(전쟁)을 수렵의 최초의 형태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사이에서 발견하거나, 또는 인도공동체의 농업의 지배적 특징으로 볼 수 있는] 노동과정의 협업은, 한편으로는 생산조건(生産條件)의 공동소유(共同所有)에 입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인이 [마치 개개의 꿀벌이 벌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듯이] 씨족 또는 공동체의 탯줄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에 입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이 협업은 자본주의적 협업과 구별된다. 고대와 중세 및 근대 식민지에서 때때로 이용되는 대규모의 협업은 직접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대부분의 경우 노예제도]에 입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처음부터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에게 판매하는]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전제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형태의 협업은 소농민적 경영과 독립적 수공업[길드의 형태를 취하든 말든]에 대립해 발전한다.(주석 21: 소규모 농민적 경영과 독립적인 수공업경영은 한편으로 봉건적 생산양식의 토대를 이루며 다른 한편으로 봉건적 생산양식이 해체된 뒤에는 자본주의적 경영과 나란히 나타난다. 또한 그것들은 [토지의 원시적 동양적 공동소유제도가 벌서 해체되었으나 노예제도가 아직 본격적으로 생산을 장악하지 못했던 전성기의 고전적 고대의 공동체의 경제적 토대를 이룬다.) 소농민과 수공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협업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특유한 그리고 독특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
    협업에 의해 발휘되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나듯이, 협업 그 자체도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 또는 소경영주에 의해 수행되는 생산과정과 대립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현실의 노동과정이 자본에 종속될 때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다. 이 변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 동일한 노동과정에 많은 임금노동자를 동시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이 변화의 전제조건이며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은 자본 그 자체의 출현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노동과정을 사회적 과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과정의 이러한 사회적 형태는 자본이 노동의 생산력을 제고함으로써 노동을 더 유리하게 착취하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단순한 형태의 협업은 모든 대규모 생산의 필연적인 부수물이지만, 단순협업(單純協業)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어떤 특수한 발전단계를 특징짓는 하나의 고정적인 형태는 아니다. 단순협업이 기껏해서 대략이나마 위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매뉴팩쳐의 수공업적인 초기에서(주석 22: “같은 일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의 결합된 숙련과 근면과 경쟁심이 그 일을 진척시키는 방법이 아닌가? 그리고 영국은 과연 이 방법에 의하지 않고 양모공업을 그처럼 고도로 완성시킬 수 있었겠는가?"(버클리[Berkeley], ?질문자”, 런던, 1750년, p. 56, 제521절).) 그리고 다음과 같은 종류의 대규모 농업[즉, 매뉴팩쳐 시기에 상응하며 주로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와 집적된 생산수단의 규모에 의해 농민적 경영과 구별되는 대규모 농업]에서였다. 자본이 큰 규모로 사용되기는 하나 분업과 기계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생산부문에서는, 단순협업이 언제나 지배적인 형태였으며 여전히 그러하다. {앞으로 노동분업에 의거한 협업인 매뉴팩쳐와 기계에 의거한 협업인 대공업을 다를 것이다.}
    협업의 단순한 형태는 더욱 발전된 형태들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기본형태다.



    제 14 장
    분업과 매뉴책쳐


    제 1 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원(起源)



    분업(分業: division of labour)에 의거한 협업은 매뉴책쳐(manufacture)에서 그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하나의 특징적인 형태로 [대략 16세기 중엽에서 18세기의 마지막 1/3에 이르는] 진정한 매뉴팩쳐 시대를 통해 지배적이었다.
    매뉴팩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발생한다.
    (1) 여러 종류의 독립적 수공업(獨立的 手工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어떤 하나의 생산물이 완성되기까지는 이들의 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 동일한 자본가의 통제 하에 하나의 작업장(作業場)으로 모이는 경우. 예컨대 이전에는 한 대의 마차는 [수레바퀴 제조업, 마구 제조공, 재봉공, 자물쇠공, 가구공, 선반공, 레이스공, 유리공, 화공, 도장공, 도금공 등] 수많은 독립수공업자들의 노동의 생산물이었다. 그러나 마차 매뉴팩쳐에서는 이들 각종 수공업자들 모두가 하나의 작업
    장에 모여 거기서 미완성품을 이 사람으로부터 저 사람에게로 이전시킨다. 마차의 제작이 끝나기 전에 마차에 도금(鍍金:gild)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여러 대의 마차가 동시에 제작된다면 어떤 것이 생산과정의 앞 단계를 통과하고 있는 동안 다른 어떤 것은 도금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는 아직도 단순협업[단순협업(單純協業)에 필요한 재료들이 인간과 물건의 형태로 준비되어 있데]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재봉공, 자물쇠공, 가구공 등은 이제 마차제작을 전업(專業)으로 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기들의 종전의 수공업을 그 전체적 범위에서 수행하는 습관과 능력을 점차로 잃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전적으로 일면화( 一面化)된 활동이 이러한 협소해진 활동영역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최초에는 마차 매뉴팩쳐는 다양한 독립수공업들이 결합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마차생산은 각종 부분과정들로 세분되었고, 각각의 부분과정은 특정 노동자의 전문 기능으로 고정되었으며, 전체로서의 매뉴팩쳐는 이와 같은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직물 매뉴팩쳐나 다른 모든 매뉴팩쳐들도 한 자본가의 통제 하에 여러 종류의 수공업들을 결합시킴으로써 발생했다.(주석 1: 매뉴팩처의 이와 같은 형성방식의 더욱 근대적인 예를 보여주기 위해 다음의 글을 인용한다. 리용(Lyons)과 님(Nimes)의 견방적 공업과 견직물 공업은 "완전히 가부장제적(家父長制的) 성격을 띠고 있다. 이 공업부문은 많은 여성과 아동을 고용하고 있으나 그들을 과로키거나 타락시키는 일은 없다. 노동자들은 이전대로 드롬, 바르, 이제르, 보클류즈의 아름다운 계곡에 살면서 누에를 치고 고치에서 실을 뽑는다. 그것은 결코 진정한 공장경영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업(分業)의 원칙이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어....여기에서는 필요한 높은 수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 그곳에는 실을 감는 사람, 실을 꼬는 사람, 염색공, 풀먹이공, 또 끝으로 직물공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일한 하나의 작업장에 모여 있지도 않고, 또 동일한 한 사람의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 지도 않다. 그들은 모두가 독립적으로 일하고 있다(블랑키[J. A. Blanqui]), ?산업경제학강의?, 블레이즈[A. Blaise] 편, 파리 1838-39년, p. 79). 블랑키가 이 책을 쓴 이후 이 각종 독립노동자 들은 어느 정도 공장에 통합되었다 {엥겔스: 그런데 마르크스가 이것을 쓴 이후, 이 공장들에서 는 동력직기가 채용되어 급속하게 수직기를 몰아내고 있다. 크레펠트의 견직공업도 이와 같은 것을 체험하고 있다.}
    (2) 매뉴팩쳐는 위와는 반대의 방식으로도 발생한다. 하나의 자본가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는 [예컨대 종이. 활자. 바늘 등을 만드는] 수많은 수공업자들을 동시에 동일한 작업장에 고용한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이다. 이 수공업자들은 각각 (아마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의 도제(徒弟)와 더불어) 하나의 완전한 상품을 만들며, 따라서 그 상품의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차례차례 수행한다. 그는 여전히 자기의 종전의 수공업적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부사정 때문에, 동일한 장소에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그들의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게 된다. 예컨대 일정한 기일 안에 더 많은 양의 완성상품을 공급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고 하자. 이를 위해 작업이 분할된다. 동일한 수공업자에게 다양한 여러 가지 작업을 차례차례 시키는 대신 그 작업들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고 공간적으로 병립(竝立)시켜 각각의 작업을 서로 다른 수공업자에게 할당한다. 그리하여 전체 작업이 협업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동시에 수행된다. 이와 같은 우연적인 분할이 반복되고 그 자체의 장점을 전개하면서 점차 체계적인 분업으로 고착되다. 상품은[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하나의 독립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個人的 生産物)로부터 [각자가 언제나 단 한 가지의 부분작업만을 수행하는] 수공업자 연합체의 사회적 생산물(社會的 生産物)로 된다. 독일 길드에 속하는 제지업자의 경우에는 하나의 수공업자의 일련의 순차적 작업들이, 네덜란드의 제지 매뉴팩쳐에서는 다수의 협업노동자들이 동시에 나란히 수행하는 수많은 부분작업으로 독립되어 있다. 뉴렘베르크의 길드적 제침업(製針業: needlemaker)은 영국 제침매뉴팩쳐의 토대가 되었는데, 뉴렘베르크의 제침수공업자는 아마 20가지나 되는 일련의 작업을 하나씩 차례차례로 수행하지만, 영국의 제침매뉴팩쳐에서는 얼마 전부터 20명의 수공업자 각각이 20가지의 작업중 한 가지만을 수행하되 모두가 동시에 작업한다.이러한 작업들은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한층 더 세분되고 고립되며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되어 개별 노동자들의 전문 기능으로 되었다.
    매뉴팩쳐의 발생 방식(發生 方式), 수공업으로부터의 생성은 이와 같이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각종의 독립적 수공업의 결합(結合)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이 경우 독립적 수공업은 그들의 독립성을 상실해 [하나의 특수한 상품의 생산에서 상호보완적인 부분작업으로 전환되어 버릴 정도로] 전문화(專門化)한다. 다른 한편, 매뉴팩쳐는 같은 종류의 수공업자들의 협업(協業)으로부터 발생한다. 이 경우 매뉴팩쳐는 그 수공업을 여러 가지의 부분작업들로 분해하고 고립화시켜, 이 부분
    작업들이 각각 한 노동자의 전문 기능으로 될 정도로까지 독립화한다. 그러므로 매뉴팩쳐는 한편으로는 생산과정에 분업(分業)을 도입하거나 분업을 한층 더 발전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수공업을 결합(結合)시킨다. 그러나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든 그 최종적 형태는 항상 동일하다. 즉, 인간을 그 기관(器官: organ)으로 하는 생산 메커니즘이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생산과정을 그 특수국면으로 분할하는 것은, 수공업을 각종 부분작업으로 분할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 작업이 복잡한 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각각의 작업은 언제나 손으로 수행하고, 수공업적 성격을 보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작업은 각 노동자가 자기의 도구를 사용할 때 발휘하는 힘과 기교와 민첩성과 정확성에 의존한다. 수공업이 여전히 그 토대며, 그 기술적 토대가 협소하기 때문에 생산과정을 그 구성부분들로 과학적으로 분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생산물이 통과하는 각각의 부분과정은 손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독립된 수공업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공업자의 숙련이 여전히 생산과정의 토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각 노동자는 오로지 하나의 부분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고, 그의 노동력은 이 부분 기능의 평생의 기관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둘째, 이 분업(分業)은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협업(協業)이며, 그것의 이점 중 많은 것은 협업 일반의 성질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협업의 이 특수한 형태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제2절 부분노동자와 그의 도구



    더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우선 명백한 것은, 일생 동안 하나의 동일한 단순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자기의 신체를 그 작업을 위한 자동적이고 일면화된 도구(道具)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작업을 하는 데 있어 그는 작업 전체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수공인(手工人: artisan)보다 적은 시간을 소비한다. 매뉴팩쳐의 살아 있는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적 노동자는 순전히 이와 같이 일면적으로 전문화된 부분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립적 수공업에 비해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이 생산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성이 제고된다.(주석 2: “다양한 작업과정들이 분할되어 서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할당되면 될수록, 동일한 작업이 그만큼 더 적은 시간과 노동으로도 더 훌륭하고 빠르게 수행된다"(?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 런던, 1720년, p. 71).) 더욱이 이 부분노동이 한 사람의 전문 기능으로 확립되면 부분노동의 방법도 개선된다. 동일한 단순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그 작업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힘을 가장 적게 들여 일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세대들이 어떤 일정한 상품의 매뉴팩쳐 안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체득한 기술과 작업요령은 확립되고 축적되며 또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주석 3: "노동이 쉬워지는 것은 이어져 내려 온 기능 때문이다"(호지스킨[T. Hodgskin],?대중경제학?, 런던, 1827년, p. 48).)
    매뉴팩쳐는 [이미 사회에 존재하던] 직업의 자연발생적 분화를 작업장 안에서 재생산하고 또 그것을 체계적으로 끝까지 추천함으로서 부분노동자들의 숙련(熟練)을 생산해 낸다. 다른 한편으로매뉴팩쳐가 부분노동을 한 사람의 평생의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은[이전의 사회들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의 세습화(世襲化) 경향에 상응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직업이 카스트{인도의 세습적 신분}로 화석화되었거나, 또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이 개인에게 카스트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변화를 낳는 경우] 직업이 길드로 굳어버렸다. 카스트나 길드는 [동식물의 종(種)이나 아종(亞種)으로의 분화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자연법칙의 작용으로부터 발생하지만, 그 차이점은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카스트의 세습성(世襲性)과 길드의 배타성(排他性)은 사회의 법칙으로 확립된다는 점이다.(주석 4: "기술도 이집트에서는....상당한 정도 발달했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수공업자가 다른 시민계급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고, [법률에 의해 세습화된] 자기의 직업에만 종사해야 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산업종사자들이 주의를 너무나 많은 대상으로 분산시키는 것을 본다. 그들은 어떤 때는 경작을 하고, 어떤 때는 상업에 종사하며, 어떤 때는 동시에 두 세 가지 일에 관계하기도 한다.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그들은 흔히 대중집 회에 참석한다....이와는 반대로, 이집트에서는 수공업자가 국가의 일에 개입하거나 한꺼번에 몇 가지 일에 종사하면 엄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그들이 자기의 직업에 열중하는 것 을 방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그들은 선조로부터 수많은 직업상의 비법(秘法)들을 전승받고 있 으며 또 새로운 개선점들을 발견해 내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os Siculus], ?역사문고?, 제1부, 제74장).)

    "다카에서 생산되는 모슬린 {얇고 부드러운 모직물}은 그 섬세한 점에서, 또 코로만델에서 생 산되는 캘리코{옥양목}와 기타의 직물은 그 색채가 화려하고 오래간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최고 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본도 기계도 분업도 없이 생산되며, 또 [유럽의 제조업에 그처럼 많은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들 중 어느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생산된다. 직포공은 단독의 개인으로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조하는데, 사용하는 기계라고는 몇 개의 나뭇가지나 막대기로 엉성하게 얽은 가장 단순한 구조의 직기(織機)이다. 그 직기에는 심지어 날실을 감아두는 장치조차 없으 며, 따라서 직기는 언제나 그 전체 길이대로 늘어놓아야 하고, 생산자의 오두막 안에는 놓을 수 도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생산자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을 해야 되는데, 날씨가 변할 때 마다 일을 중단하게 된다. "(주석 5: 머리(Hugh Murray), 월슨(James Wilson) 등, “영령인도에 관한 역사적 개관”, 에딘버러, 1832년, 제2권, pp. 449-450. 인도의 직기는 직립식(直立式)이다. 즉, 날실(經絲)이 수직으로 뻗는다).

    대대로 축적되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진해지는 독특한 기능이 이 인도인들에게 [거미와도 같은] 기교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도 직포공의 작업은 대다수 매뉴팩쳐 노동자들의 작업에 비해 대단히 복잡하다.
    하나의 완성품의 생산에서 여러 가지 부분과정을 혼자 차례차례 수행하는 수공인은 때로는 장소를 이동해야 하고 때로는 도구를 바꾸어야 한다. 어떤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기는 것은 그의 노동의 흐름을 중단시키며, 그의 노동일(勞動日)에 이를테면 틈을 만들어낸다. 그가 하루 종일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계속한다면 이러한 틈은 좁아질 것이며, 또 그의 작업 전환이 감소하는 것에 비례해 그 틈은 없어진다. 이 경우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 상승은 주어진 시간 안의 노동력 지출의 증대[즉, 노동강도의 강화]에 기인하든가, 또는 노동력의 비생산적 소비의 감소에 기인한다. 즉, 정지(停止,)에서 운동(運動)으로 이행할 때마다 필요했던 힘의 추가적 지출은 I한 번 도달한 표준속도의] 작업의 계속시간이 연장되는 것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
    로,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은 노동자의 긴장감과 활기를 약화시키는데, 그것은 활동의 전환(轉換) 자체에 의해 조성되는 기분전환과 자극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자의 숙련(熟練)뿐 아니라 그의 도구(道具)의 질에도 달려 있다. 칼. 천공기. 송곳. 망치 등의 도구들이 서로 다른 노동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같은 도구들이 동일한 노동과정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노동과정의 서로 다른 작업들이 서로 분리되고 각각의 부분작업이 [부분노동자의 손에 맞는] 특색있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이전에는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되던 도구들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도구의 이와 같은 형태변화의 방향은, 종래의 도구가 노동자에게 어떤 곤란을 주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매뉴팩쳐의 특징은 노동도구의 분화(分化)와 특수화(特殊化)인데, 노동도구의 분화에 의해 도구가 특수한 용도에 맞는 형태로 고정되며, 노동도구의 특수화에 의해 각각의 특수한 도구들은 특수한 부분노동자의 손에서만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버밍엄에서만도 약 500종에 달하는 망치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그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하나의 특수한 노동과정에만 사용될 뿐 아니라 가끔 여러 가지 망치들이 하나의 동일한 노동과정에서 상이한 작업들에 사용된다. 매뉴팩쳐시대는 노동도구를 각 부분노동자들의 전문적인 특수기능에 적합하게 만듦으로써 그것을 단순화하고 개량하며 다양하게 한다.(주석 6: 다윈은 그의 획기적인 저서 ?종(種)의 기원(起源)?에서 동식물의 자연적 기관(器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일한 기관이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나의 특수한 목적에만 봉사해야 되는 경우에 비해 자연도태가 형태상의 작은 변이(變異)를 덜 세밀하게 보존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그 기관은 변하기 쉽다 예컨대 여러 가지 종류의 물건을 베는 데 쓰이는 칼은 거의 온갖 형태를 가질 수 있으나, 어떤 한 가지 용도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는 특수한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또한 이 시대는 [다수의 간단한 도구들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기계의 출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의 하나를 창조한다.
    부분노동자(部分勞動者)와 그의 도구(道具)는 매뉴팩쳐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이다. 이제 우리는 매뉴팩쳐의 전체 모습을 보도록 하자.



    제 3 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본형태
    이질적 매뉴팩쳐와 유기적 메뉴팩쳐



    매뉴팩쳐의 편제(編制)에는 두 가지 기본형태가 있는데, 이들은 때로는 서로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이며, 더욱이 매뉴팩쳐가 기계에 의한 근대적 공업으로 전환될때 전혀 상이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매뉴팩쳐의 두 형태는 생산되는 제품의 성질-즉, 그 제품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의 단순한 기계적 조립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또는 그 완성형태가 상호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조작에 의해 주어지는가-로부터 발생한다.
    예컨대 한 대의 기관차는 5,000개 이상의 독립적인 부품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것은 대공업의 생산물이므로 진정한 매뉴팩쳐의 첫번째 종류의 실례로 들 수는 없다. 그러나 시계(時計)라면 그 실례로 적합하다. 월리엄 페티도 일찍이 매뉴팩쳐적 분업을 설명하기 위해 시계를 예로 들었다. [옛날에는 뉴렘베르크의 한 수공업자의 개인적 생산물이었던1]시계는 다음과 같은 무수한 부분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물로 전환되었다. 즉, 큰 태엽 제조공, 지침반 제조공, 나선형 용수철 제조공,
    보석 박을 구멍을 뚫는 사람, 루비로 된 레버 제조공, 시계바늘 제조공. 시계케이스 제조공, 나사못 제조공, 도금공. 그리고 이들에 부속되어 있는 많은 세부구분이 있다. 예컨대 톱니바퀴 제조공(놋쇠 톱니바퀴와 강철 톱니바퀴는 각각 별도로 만들어진다), 시계핀 제조공, 시계추 제조공, 연동장치 완성공(톱니바퀴를 축에 고정시키고 자른 면을 간다), 추축제조공, 조립공(각종 톱니바퀴와 나사들을 제자리에 맞추어 놓는다), 끈, 태엽바퀴 완성공(바퀴에 톱니를 만들고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는다), 지동기(止動機: escapement) 제조공, 실린더 지동기인 경우에는 실린더 제조공, 지동륜(止動輪) 제조공, 평형륜 제조공, 완급침(시계의 진행속도를 조절하는 장치) 제조공, 지동기 설치공(진정한 지동기 제조공), 다음에는 태엽통 완성공, 강철 연마공, 톱니바퀴 연마공, 나사못 연마공, 문자 기입공, 에나멜공(구리에 에나멜칠을 한다), 용두(龍頭) 제조공(시계 케이스의 용두고리만을 만든다), 접철(接鐵) 완성공(시계 케이스의 접철에 놋쇠 축을 꼽는다), 뚜껑 스프링 장치공(뚜껑이 열리게하는 스프링을 시계 케이스에 붙인다), 조각공, 시계케이스 연마공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계 전체를 최종적으로 조립해 시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완성공(完成工). 시계의 부품 중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으며, 이 모든 분산된 부품들은 [그것들을 하나의 기계적 전체로 결합시키는] 한 사람의 손으로 집합된다. 완성된 생산물과 그 다종다양한 구성요소들 사이의 이와 같은 외적인 관계는, 시계 생산의 경우 [이와 유사한 다른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부분노동자들이 동일한 작업장 안에 함께 모이는 것을 우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세분화된 작업들은 스위스의 보(Vaud)주와 누샤텔(Neuchatel)주에서처럼 개별적인 독립적 수공업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제네바에는 대규모의 시계 매뉴팩쳐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부분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협업(協業)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도 지침반, 태엽 및 케이스는 매뉴팩처 자체에서 만들지 않는다. 시계공업의 경우 노동자들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매뉴팩쳐적 제작방식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유리하다. 왜냐하면, 자기 집에서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따라서 그들이 만드는 부품의 가격을 인하할 수 있고}, 수많은 이질적 과정으로의 작업의 분할은 노동도구의 공동이용을 허용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또 자본가는 작업을 분산시킴으로써 작업용 건물 등에 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주석 7: 1854년 제네바는 8만 개의 시계를 생산했으나, 이것은 누샤텔주의 시계생산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나의 거대한 시계 매뉴팩쳐라고 볼 수 있는 쇼-드-폰이 매년 제네바의 2배의 시계를 생산하고 있다. 1850년부터 1861년까지 제네바는 72만 개의 시계를 생산했다. “상공업 등에 관한 영국 공사관 서기관 보고서?, 제6호, 1863년 중의 '시계업에 관한 제네바로부터의 보고'를 보라. 부품들을 조립해 만들어 내는 제품의 생산이 여러 과정들로 분할되어 있으면서도 그 과정들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매뉴팩쳐를 기계제 대공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런데 시계의 경우에는 이밖에도 두개의 다른 장애가 첨가된다. 즉, 시계의 부품들이 아주 작고 섬세하다는 것, 그리고 또 시계는 사치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종류가 매우 다양해, 예컨대 런던의 최고급 시계제조소에서는 1년 내내 같은 모양의 시계가 12개도 제조되지 않는다. 기계의 사용에 성공하고 있는 바세른 앤드 콘스탄틴 시계공장은 크기와 형태에서 기껏해야 3-4종의 시계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록 자기 집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자본가(제조업자, 기업가)를 위해 노동하는 이 부분노동자들의 지위는 자기 자신의 고객을 위해 노동하는 독립수공업자의 지위와는 전혀 다르다. (주석 8: [이질적 매뉴팩쳐의 전형적인 예인] 시계제조업에서, 우리는 [수공업적 작업의 분할로부터 발생하는] 노동도구의 분화(分化)와 특수화(特殊化)를 매우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다.)
    매뉴팩처의 두번째 종류[즉, 그것의 완성형태]는 서로 연관된 전후 단계들을 통과하는 [즉, 일련의 과정들을 한 단계씩 차례차례 통과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예컨대 바늘 매뉴팩쳐에서 철사는 72명, 때로는 심지어 92명의 특수한 부분노동자의 손을 통과한다.
    이러한 매뉴팩쳐가 원래는 분산되어 있던 수공업들을 결합시키는 한, 그것은 [여러 생산단계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있던] 공간적 거리를 단축시킨다. 그와 동시에 제품이 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단축되며, 이 이동을 매개하는 노동도 절약된다.(주석 9: "사람들이 그와 같이 밀집해 일하는 곳에서는 운반은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 p. 106).) 그리하여 수공업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증대되는데, 이러한 증대는 매뉴팩쳐의 일반적인 협업적(協業的) 성격에서 생긴다. 다른 한편으로, 매뉴팩쳐의 특유한 원칙인 분업(分業)은 상이한 생산단계들의 고립화와 상호독립화를 요구한다. 고립화된 기능들 사이의 관련을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한 과정으로부터 다른 과정으로 제품이 끊임없이 운반될 필요가 있다. 대공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특징적이고 비용이 드는, 그리고 또 매뉴팩쳐의 원칙에 내재하는, 약점이다.(주석 10: "손노동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 매뉴팩쳐의 서로 다른 생산단계들의 고립화는 생산비를 매우 높이는데, 이 손실은 주로 한 과정으로부터 다른 과정으로의 운반 때문에 생긴다"(?국민의 산업?, 런던, 1855년, 제2부, p. 200).)
    어떤 일정한 양의 원료[예컨대 제지 매뉴팩쳐의 넝마나 바늘 매뉴팩쳐의 철사]에 우리의 관심을 국한시키면, 그것은 [최종적 형태로 완성될 때까지] 다양한 부분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일련의 생산단계를 차례차례로 통과한다. 이와는 반대로 작업장 전체를 보면, 원료는 생산의 모든 단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많은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되고 있는] 집단적 노동자는 어떤 한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하나의 손으로 철사를 뽑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도구로 무장한 다른 손으로 이 철사를 곧게 펴고, 또 다른 손으로 그것을 끊으며, 또 다른 손으로 그 끝을 뾰족하게 하는 등의 일을 한다. 이전에는 시간상 차례차례로 수행한 서로 다른 부분과정들이 이제는 공간상 병행해서 동시에 수행된다. 그러므로 동일한 기간에 더 많은 완성품이 생산된다.(주석 11: "그것"(분업)"은 한 가지 일을 서로 다른 부분작업으로 분할해 그 부분작업이 모두 동시적으로 수행될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한다....개인의 경우에는 하나씩 수행해야만 했을 상이한 노동과정 전체를 한꺼번에 수행함으로써, 혼자서 한다면 겨우 단 한 개의 핀을 절단하거나 그끝을 뾰족하게 만들 수 있었을 뿐인 시간에 수많은 완성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듀갈드 스튜어트[Dugald Stewart], ?정치경제학강의“, 해밀턴[W. Hamilton] 편, ?저작집?. 에딘버러, 제8권, 1855년, p. 319).) 이 동시성(同時性)이 총과정의 일반적 협업형태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뉴팩쳐는 협업의 기존의 조건들을 이용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수공업적 노동을 다시 세분화함으로써 협업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매뉴팩쳐는 각각의 노동자들을 단 한가지의 세부작업에 결박해 둠으로써만 노동과정의 사회적 조직을 이룩한다.
    각각의 부분노동자의 부분생산물은 동시에 하나의 동일한 완성품의 하나의 특정의 진행단계에 지나지 않으므로, 각각의 노동자[또는 노동자집단]는 다른 노동자[또는 노동자집단]에게 원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한 노동자의 노동의 결과는 다른 노동자의 노동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하여 한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에게 직접 일거리를 주고 있다. 각 부분과정에서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은 경험에 의해 확정되며, 그리하여 매뉴팩쳐의 메커니즘 전체는 일정한 노동시간 안에 일정한 결과가 달성될 것이라는 전제에 의거하고 있다. 오직 이 전제 하에서만 상호보완적인 각종 노동과정은 동시에 병행해 중단없이 수행될 수 있다. 개별 작업들 [그리고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직접적 상호의존성이 각각의 노동자로 하여금 자기의 작업에 필요시간만을 지출하도록 강요하며, 그 결과 [독립적 수공업에서나 단순협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동의 연속성. 일률성. 규칙성. 질서(주석 12: “매뉴팩쳐에서 일하는 수공인(手工人)들의 종류가 다양하면 할수록....각각의 작업의 질서와 규칙성은 그만큼 더 증대하며, 동일한 작업이 더 적은 시간에 수행되고 노동은 더 적게 든다"(?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 런던, 1720년, p. 68).) 그리고 특히 노동의 강도(强度)가 생긴다. 어떤 한 상품의 생산에 지출되는 노동시간은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은 상품생산 일반에서는 경쟁의 외적 강제로 나타나며, 이 법칙을 피상적으로 표현한다면, 개별 생산자는 누구든지 자기의 상품을 시장가격으로 판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뉴팩쳐에서는 일정한 노동시간에 일정한 양의 생산물을 생산한다는 것이 생산과정 그 자체의 기술적 법칙(技術的 法則)으로 된다.(주석 13: 그러나 많은 산업부문에서 매뉴팩쳐제도는, 생산과정의 일반적인 화학적. 물리적 조건들을 정확히 통제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매우 불완전하게만 달성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작업에 드는 시간은 서로 같지 않으며, 따라서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양의 부분생산물이 생산된다. 그러므로 같은 노동자가 날마다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면, 각각의 작업에는 상이한 수의 노동자가 고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어떤 활자 매뉴팩쳐에서 주자공(鑄字工: founder)에 한 사람은 한 시간에 활자(活字) 2,000개를 주조하고, 절단공(切斷工) 한 사람은 4,000개를 끊고, 연마공(硏磨工) 한 사람은 8,000개를 연마한다면, 이 매뉴팩쳐에서는 연마공 I명에 대해 주자공 4명과 절단공 2명이 고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동일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 않은 사람의 동시취업(同時就業)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협업원칙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이제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뉴팩쳐제도하의 분업은 사회의 집단적 노동자의 질적으로 상이한 부분들을 단순화시키고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이 부분들의 양적 규모를 규정하는 고정된 수학적 비율[즉, 각각의 전문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수 또는 노동자그룹의 상대적 크기]도 만들어 낸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사회적 노동과정의 질적 편성과 더불어 그 과정의 양적 규칙 및 비례성(比例性)까지도 발전시킨다.
    일정한 생산규모에서 각 집단간 부분노동자 수의 가장 적합한 비율이 경험적으로 일단 확정되면, 생산규모는 오직 각 개별집단 노동자수의 배수(倍數)를 고용함으로써만 확대될 수 있다.(주석 14: "(각 매뉴팩쳐 생산물의 특수한 성질에 따라) 가장 유리하게 분할할 수 있는 작업 과정의 수 와 각 작업과정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가 알려진다면, 이 숫자의 정확한 배수를 고용하지 않는 매뉴팩쳐는 제품의 생산에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될 것이다....이것은 매뉴팩쳐들이 대규모로 확 대되는 원인들 중의 하나이다"(배비지[C. Babbage], ?기계의 경제에 대해?, 런던, 1832년, 제 21장, pp. 172 -173).) 여기서 덧붙여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어떤 종류의 작업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동일한 개인에 의해 마찬가지로 잘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감독(監督)이라는 노동이나 부분생산물을 한 생산단계에서 다른 생산단계로 운반(運搬)하는 노동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능을 분리시켜 특정한 노동자에게 할당하는 것은 사용노동자의 수가 증가할 때에만 비로소 유리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증가는 각각의 노동자집단에게 비례적으로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어떤 특정한 전문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각각의 노동자집단은 동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메커니즘의 하나의 특수 기관(器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많은 매뉴팩쳐에서는 노동자집단 자체는 하나의 편성된 노동조직이고 전체 메커니즘은 이러한 기본적 생산 유기체의 중복 또는 배가(倍加)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한 예로 유리병 매뉴팩쳐를 보자. 그것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첫째는 준비단계로, 유리의 구성요소들을 준비하고, 모래와 석회 등을 혼합하고, 이 혼합물을 유동상태의 유리액으로 용해(溶解)한다.(주석 15: 영국에서는 용해로가 유리의 가공에 사용되는 유리로(glass furnace))와 상이하나, 벨기에에서는 동일한 하나의 노(爐: furnace)가 두 과정 모두에 사용되고 있다.) 이 첫째 단계에서 각종 부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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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6
    그 조직은 상품생산자의 배후에서 이미 짜여진 것이고 또 계속해 짜여지고 있다. 아마도 한 상품은 어떤 새로운 종류의 노동의 생산물일 수도 있으며, 어떤 새로운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어떤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동일한 상품생산자의 많은 작업 중의 하나였던 어떤 작업이 오늘은 그 관련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하고, 그 부분생산물을 이제는 독립상품으로 시장에 내보내게 된다. 주위의 사정은 이 분리과정을 위해 성숙되어 있을 수도 있고 성숙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어떤 하나의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는 생산물이 내일에는 어떤 유사한 종류의 생산물에 의해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더욱이 아마포 직포자의 노동이 비록 사회적 분업의 일환으로 공인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그의 20미터의 아마포가 유용하리라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 만약 [기타의 모든 사회적 욕망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한계가 있는 아마포에 대한 사회적 욕망이 벌써 그 경쟁자들에 의해 충족되어 버렸다면, 우리 친구의 생산물은 여분(餘分)의 것으로, 따라서 쓸모없는 것으로 된다. 만약 선물로 줄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우리의 친구는 결코 선물로 주기 위해 시장에 간 것은 아니다. 그의 생산물이 사용가치를 유지하며 따라서 화폐와 교환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번에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화폐와 교환되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상품의 가격[즉, 상품의 가치량의 지표]에 의해 예상되고 있다. 여기서 상품 소유자의 주관적인 계산착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곧바로 객관적으로 정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자기의 생산물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노동 시간만을 지출했다고 가정하자. 따라서 그 상품의 가격은 거기에 대상화되어 있는 사회적 노동량의 화폐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포 직포업의 종래의 생산조건이 우리의 아마포 직포자의 동의도 없이 그의 배후에서 급변했다고 가정해 보자. 어제까지는 틀림없이 1미터 아마포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었던 것이 오늘은 그렇지 않게 된다. 그것은 화폐소유자가 우리 친구의 여러 경쟁자들이 내놓은 가격에 근거해 열심히 증명하는 바이다. 우리 친구에게 불행한 일은, 세상에는 동업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시장에 있는 모든 조각의 아마포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이 포함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각들의 총량(總量)은 과잉으로 지출된 노동시간을 포함할 수 있다. 만약 시장이 아마포의 총량을 미터당 10전이라는 정상적인 가격에서는 흡수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사회적 총 노동시간 중 너무나 많은 부분이 아마포 직포의 형식으로 지출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결과는 각각의 개별 직포자가 자기의 개인적 생산물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지출한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죽더라도 다 함께'라는 식이다. 시장에 있는 모든 아마포는 단 한 개의 거래품목으로 간주되고, 그 어떤 한 조각도 그것의 한 부분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1미터의 가치도 사회적으로 규정된 동질의 인간노동량의 체현(體現)일 뿐이다.(역자 주: 마르크스는 1878년 11월 28일자로 다니엘슨[N. F. Danielson: ?자본론?의 러시아어 번역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정정할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사실상 1미터의 가치는 아마포의 총량에 지출되어 있는 사회적 노동의 일부의 체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 마르크스가 가지고 있던 ?자본론?, 제1권, 독일어 제2판에 이차 같은 수정이 가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르크스의 글씨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상품은 화폐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 사회의 생산유기체의 양적 편성[유기체의 각종 요소들을 분업체계로 통합하는 것]은 그 질적 편성과 마찬가지로 자연발생적이고 우연적이다. 그러므로 상품소유자들은, [자기들을 독립된 사적 생산자로 만드는] 바로 그 분업이 사회적 생산과정과 이 과정에서의 그들의 관계를 그들 자신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과, 그들 상호간의 독립성은 그들의 생산물을 통한 전면적인
    상호의존체제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분업은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생산물의 화폐로의 전환을 불가피하게 한다. 동시에, 분업은 이 전환의 성공 여부를 우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현상을 순수한 상태에서 고찰해야 하기 때문에, 전환의 정상적인 진행을 전제할 것이다. 어쨌든 상품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형태변환은 항상 일어난다. 비록 변환되는 실체-가치량-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하거나 증가할 수도 있지만 판매자는 자기의 상품을 금과 바꾸며, 구매자는 자기의 금을 상품과 바꾼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상품과 금이 [즉, 20미터의 아마포와 2원이] 소유자의 손과 위치를 바꾸었다는 사실, 즉 그것들이 서로 교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상품은 무엇과 교환되는가? 그 자신의 가치(價値)가 취하는 일반적 모습과 교환된다. 그리
    고 금은 무엇과 교환되는가? 그 자신의 사용가치(使用價値)의 하나의 특수한 모습과 교환된다. 어째서 금은 아마포에 대해 화폐로 대립하는가? 2원이라는 아마포의 가격, 즉 아마포의 화폐 명칭이 벌써 화폐로서의 금에 대한 아마포의 관계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이 그 본래의 상품형태를 벗어버리는 것은 상품의 판매에 의해 완수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의 사용가치가 [그 상품의 가격에 오직 상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금을 현실적으로 자기 측에 끌어오는 그 순간에 완수된다. 그러므로 상품가격의 실현[즉, 상품의 단순한 관념적인 가치형태의 실현]은 동시에 역( 逆)으로 화폐의 단순한 관념적인 사용가치의 실현이며, 상품의 화폐로의 전환은 동시에 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이다. 이 하나의 과정은 이면적(二面的)인 과정으로서, 상품소유자의 측에서는 판매이고 반대의 극인 화폐소유자의 측에서는 구매이다. 바꾸어 말해, 판매는 구매이며, C-M은 동시에 M-C이다.(주석 17: "모든 판매는 구매다"(케네, ?상업 및 수공업자의 노동에 대한 대화“, ?중농학파?, 데르 편, 제1부, 파리, 1846년, p. 170). 또는 케네가 그의 ?일반준칙? 에서 말하고 있는 바로는 "파는 것은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한 경제적 관계는 상품소유자들 사이의 관계[자기의 노동생산물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줌으로써만 다른 사람의 노동생산물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관계]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품 소유자에게 다른 사람이 화폐소유자로서 상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후자의 생산물이 처음부터 화폐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든지[즉, 화폐재료인 금이든지], 또는 후자의 상품이 벌써 그 본래의 유용한 물건 형태를 벗어버렸기 때문이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금이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떤 지점에서 상품시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점은 금의 생산지인데, 거기에서 금은 직접적인 노동생산물로 동일한 가치의 다른 노동생산물과 교환된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금은 언제든지 어떤 상품의 실현된 가격을 표현한다.(주석 18: "한 상품의 가격은 오직 다른 상품의 가격으로 지불할 수 있다"(메르시에 드라 리비에르[Mercier de la Riviere), ?정치사회의 자연적 및 본질적 질서?, 데르 편, ?중농학파?, 제2부, p. 554).) 금의 생산지에서 상품과 금이 교환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금은 어떤 상품소유자의 수중에 있든 그가 양도한 상품의 전형(轉形)된 형태이며, 판매[즉, 제1의 상품 변태인 C-M]의 산물이다.(주석 19: "화폐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먼저 판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같은 책, p. 543)) 금이 관념적 화폐 또는 가치척도로 된 것은, 모든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금으로 측정하며 그리하여 금을 자기들의 가치모습[재화로서의 자기들의 본래의 모습의 상상적인 대립물]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이 실제의 화폐로 된 것은, 상품들이 자기들의 전면적인 양도에 의해 재화로서의 자기들의 본래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금을 자기들의 가치의 현실적인 화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치모습을 취하면 상품은 그 본래의 사용가치[또한 그 상품을 창조한 특수한 유용노동]의 온갖 흔적을 벗어버리고 무차별적 인간 노동의 한결같은 사회적 체현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화폐를 보아서는 [그것으로 전환된] 상품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화폐형태 하에서는 모든 상품이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쓰레기가 결코 화폐는 아니지만 화폐는 쓰레기를 표현할 수도 있다. 우리의 아마포 직포자가 자기의 상품을 양도하고 얻은 두 개의 금화는 이전에 1쿼터의 밀이 전환된 형태라고 가정하자. 아마포의 판매[C-M]는 동시에 아마포의 구매[M-C]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아마포의 판매의 측면에서 보면 성경책의 구매로 끝나는 과정을 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아마포의 구매의 측면에서 보면 밀의 판매로부터 시작된 운동을 끝내는 것이다. C-M-C(아마포-화폐-성경책)의 첫 단계인 C-M(아마포-화폐)은 동시에, 또 다른 하나의 운동 C-M-C(밀-화폐-아마포)의 마지막 단계인 M-C(화폐-아마포)이다. 어떠한 상품의 제1변태[즉, 상품형태로부터 화폐로의 전환]는 언제나 다른 한 상품의 제2[반대의] 변태, 즉 화폐형태로부터 상품으로의 재전환이다.(주석 20: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금이나 은의 생산자는 예외인데, 그는 자기의 생산물을 미리 판매하지 않고도 다른 것과 교환한다.)

    M-C. 상품의 제2의 또는 최종의 변태, 즉 구매

    화폐는 다른 모든 상품의 전환된 모습, 또는 그것들의 일반적 양도 (讓渡)의 산물이므로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없이 양도할 수 있는 상품이다. 화폐는 모든 가격을 반대방향으로 읽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화폐 자신의 상품화에 재료를 제공하는 모든 상품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l원=1미터의 아마포, 또는 1그램의 커피, 또는 1개의 저고리 등을 생각하라.} 그와 동시에 상품의 가격[즉, 상품들이 화폐에 던지는 사랑의 눈짓]은 화폐의 전환능력의 한계를, 즉 화폐 자신의 양을 표시한다. 상품은 화폐로 되면 그 자체는 사라져 버리므로 화폐만을 보아서는 그것이 어떻게 그 소유자의 손에 들어왔는지 무엇이 그것으로 전환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화폐가 어디로부터 왔건 화폐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화폐는 한편으로는 판매한 상품을 대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매할 상품을 대표한다.(주석 21: "우리 수중에 있는 화폐는 우리가 구매하려는 물건들을 대표하며, 또한 우리가 이 화폐를 받고 판매한 물건들을 대표한다"(메르시에 드 라 라비에르, 앞의 책, p. 586).)
    M-C[구매]는 동시에 C-M(판매)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의 최후의 변태는 동시에 다른 상품의 최초의 변태이다. 우리의 아마포 직포자에게 그의 상품의 생애는 그가 2원을 재전환시킨 성경책으로 끝난다. 그러나 성경책의 판매자는 아마포 직포자로부터 받은 2원을 위스키로 전환시킨다고 하자. M-C, 즉 C-M-C(아마포-화폐-성경책)의 최종단계{최종변태}는 동시에 C-M, 즉 C-M-C(성경책-화폐-위스키)의 제1단계다. 상품생산자는 오직 어떤 한 가지 생산물만을 시장에 공급하기 때문에 그는 생산물을 보통 대량으로 판매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욕망은 다방면에 걸치므로 실현된 가격[즉, 손에 넣은 화폐액]을 끊임없이 수많은 구매로 분산시키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의 판매는 여러 가지 상품의 수많은 구매로 나누어진다. 그리하여 한 상품의 최종변태는 다른 상품들의 제1변태의 합계로 이루어지고 있다{성경책을 판 사람이 위스키뿐 아니라 구두 . 신문 . 아이스크림 등등을 산다.}
    이제 여기서 한 상품의 변태 전체를 고찰해 보면,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상호보완적인 두 개의 반대의 운동, 즉 C-M 과 M-C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상품의 이 두 가지 반대의 변태는 상품소유자가 참가하는 두 개의 반대의 사회적 과정을 통해 행해지며, 또 그 상품소유자의 두 개의 반대의 경제적 역할에 반영된다. 그는 판매의 당사자로서는 판매자로 되며, 구매의 당사자로서는 구매자로 된다. 그러나 상품의 변태에서 상품의 두 형태인 상품형태와 화폐형태는 오직 서로 대립하는 두 극에서만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동일한 상품소유자도 그가 판매자인 경우에는 다른 사람은 구매자로 대립하고, 그가 구매자인 경우에는 다른 사람은 판매자로 대립한다. 동일한 상품이 서로 반대되는 두 변태[즉, 상품으로부터 화폐로, 또 화폐로부터 상품으로의 변태]를 연속적으로 경과하는 것처럼, 동일한 상품소유자가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판매자로도 구매자로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판매자로 되는 것과 구매자로 되는 것은 결코 고정된 역할이 아
    니고 상품유통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변경된다.
    한 상품의 변태 전체는, 그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도, 4개의 극과 3인의 등장인물을 전제로 한다(역자 주: 밀 - 화폐 - 아마포
    아마포 -화폐 - 성경책
    성경책 - 화폐 -위스키) 우선 상품은 그 가치모습으로서의 화폐와 대면하는데, 이 화폐는 구매자의 주머니 속에서 견고한 물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상품소유자는 화폐소유자와 대립한다. 이제 상품이 화폐로 전환된다면 그 화폐는 상품의 일시적인 등가형태로 되는데, 이 등가형태의 사용가치는 다른 상품체들 속에서 발견된다. 제1의 상품변태의 종점으로서의 화폐는 동시에 제2변태의 출발점으로 된다. 따라서 제1변태에서의 판매자는 제2변태에서는 구매자로 되며, 거기에서는 제3의 상품소유자가 판매자로 그에게 대립한다.(주석 22: "따라서 4개의 종점과 3인의 계약당사자가 있고, 그 중의 한 사람은 두 번 등장한다"( 르 트로느, 앞의 책, p. 909).)
    상품변태를 이루는 서로 반대방향의 두 운동국면은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즉, 상품형태, 상품형태의 탈각, 상품형태로의 복귀가 그것이다. 어쨌든 상품 그 자체는 여기서는 모순적으로 규정된다. 상품은 그 소유자에게 출발점에서는 비사용가치고 종점에서는 사용가치다. 또한 화폐도 첫째 국면에서는 상품이 전환된 견고한 가치결정체로 나타나지만, 둘째 국면에서는 상품의 순간적인 등가형태로 해소되어 버린다.
    어떤 하나의 상품의 순환을 이루고 있는 두 개의 변태는 동시에 다른 두 개의 상품의 반대방향으로의 부분적 변태를 이루고 있다. 하나의 상품(아마포)이 그 자신의 변태의 계열을 개시하는 동시에 다른 상품(밀)의 변태를 종결짓는다. 아마포는 자기의 제1변태인 판매에서는 이와 같은 두 개의 역을 한 몸으로 연출한다. 그러나 일단 금으로 전환된 뒤에는, 그것은 그 자신의 제2의 최종적인 변태를 완성하고, 그와 동시에 제3의 상품의 제1변태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이와 같이 각
    상품의 변태계열이 그리는 순환은 다른 상품들의 여러 순환과 뗄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이러한 과정 전체가 상품유통(circulation of commodities)을 구성한다.
    상품유통(商品流通)은 형태에서뿐 아니라 본질에서도 직접적 생산물교환{물물교환}과는 구별된다. 사태의 경과를 잠시 되살펴 보자. 아마포 직포자는 사실상 아마포를 성경책과, 즉 자신의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교환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오직 그 자신에게만 진실인 것이다. 차가운 책보다는 뜨거운 위스키를 좋아하는 성경책 판매자는 성경책을 주고 아마포를 손에 넣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마포 직포자도 밀이 자기의 아마포와 교환되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B의 상품이 A의 상품으로 바꾸어지지만, A와 B가 서로 자기들의 상품을 교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A와 B가 상호간 서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와 같은 특수한 관계는 상품유통의 일반적 조건들에 의해 생기는 필연적 결과는 결코 아니다 상품유통에서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직접적인 생산물교환의 개인적 및 지방적 한계를 타파하고 인간노동의 물질대사를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완전히 당사자들의 통제밖에 있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된다. 직포자가 아마포를 팔 수 있는 것은 농민이 이미 밀을 팔았기 때문이고, 애주가가 성경책을 팔 수 있는 것은 직포자가 이미 아마포를 팔았기 때문이며, 위스키 양조업자가 위스키를 팔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이미 영원한 생명의 물 {성경책}을 팔았기 때문이다. 등등.
    그러므로 유통과정은 직접적 생산물교환과 같이 사용가치의 장소나 소유자를 바꾸는 것에 의해 소멸하지 않는다. 화폐는 한 상품의 변태계열로부터 마지막으로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소멸하지는 않는다. 화폐는 언제나 상품들이 비워준 장소에 가라앉는다. 예컨대, 아마포의 총변태(아마포-화폐-성경책)에서는, 우선 아마포가 유통에서 탈락하고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그 다음 성경책이 유통에서 탈락하고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을 대체하면 화폐상품은 제3자의 손에 붙게 된다.(주석 23: 이 현상은 매우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 특히 속류자유무역론자들은 대체로 이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유통은 끊임없이 화폐라는 땀을 쏟아낸다.
    모든 판매는 구매이고 모든 구매는 판매이기 때문에, 상품유통은 판매와 구매 사이의 필연적인 균형을 낳는다는 이론처럼 황당무계한 이론도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현실에서 행해진 판매의 수가 현실에서 행해진 구매의 수와 동일하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판매자가 자기 자신의 구매자를 시장에 데려온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판매와 구매는 대극적(對極的)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인물, 즉 상품소유자와 화폐소유자 사이의
    교환관계로서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이다. 그러나 판매와 구매는 동일한 인물의 행동으로서는 대극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행위다. 그러므로 판매와 구매의 동일성 {C-M}은, 만약 상품이 유통이라는 연금술사의 증류기 속에 투입된 뒤 화폐의 모습으로 다시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즉, 상품소유자에 의해 판매되지 못하며 따라서 화폐소유자에 의해 구매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품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동일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즉, 만약이 과정(C-M)이 완성된다면 그 상품은 더 이상의 변태를 중단하고 장단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다. 상품의 제1변태는 판매이기도 하고 구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부분과정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구매자는 상품을 가지게 되고 판매자는 화폐[즉, 언제나 유통할 수 있는 형태의 상품]를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 누군가가 구매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판매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자신이 판매했다고 해서 즉시로 구매할 필요는 없다. 유통은 물물교환에 존재하는 [자기 생산물의 양도와 타인 생산물의 취득 사이의] 직접적 동일성을 판매와 구매라는 대립적 행위로 분열시킴으로써 물물교환의 시간적. 장소적 .개인
    적 한계를 타파한다. 서로 독립적이고 대립적인 과정들[판매와 구매]이 하나의 내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바로 그 과정들의 내적 통일이 외적 대립을 통해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두 과정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의 외적 독립화가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 내적 통일은 공황(crisis)이라는 형태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 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과 모순이 내재한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 사적 노동이 동시에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모순,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동시에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서만 계산된다는 모순, 물건의 인격화와 인격의 물건화 사이의 대립. 상품에 내재하는 이러한 대립과 모순이 한 상품의 변태의 대립적인 국면들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운동형태{예: 판매와 구매 사이의 시간적 간격}를 전개한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들은 공황의 가능성을, 그러나 오직 가능성만을 암시하고 있다. 이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품유통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온갖 조건들이 필요하다. (주석 24: J. 밀에 대해 내가 말한 것,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p. 96-98 참조. 여기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변호론적 특징을 두 가지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상품유통과 직접적 생산물교환 사이의 차이점을 무시함으로써 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당사자들의 관계[착취관계]를 상품유통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관계로 해소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모순을 부정하려는 시도. 그러나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은 [비록 그 범위와 중요성은 다를지라도] 매우 다양한 생산양식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공통적인 상품유통의 추상적 범주들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 생산양식들의 특징적 차이점을 전혀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들을 판단할 수 없다. 초보적인 평범한 것을 가지고 그처럼 굉장히 떠들어대는 것은 경제학 이외의 다른 과학에서는 없는 일이다. 예컨대, J. B. 세이는, 상품이 생산물이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해서 공황에 관해 판단을 내리려고 덤벼든다{그는 생산물과 생산물 사이의 교환을 전제로 공황(과잉 생산)의 불가능성을 주장한다}.)



    (b) 화폐의 유통


    노동생산물의 물질대사가 완수되는 형태변환 C- M- C는, 동일한 가치가 상품으로서 과정의 출발점이 되고, 또 상품으로서 다시 동일한 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품운동은 순환(循環)이다. 다른 한편, 이 운동형태는 화폐를 순환으로부터 배제한다. 그 결과 화폐가 그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리 떨어져나 가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일은 없다. 판매자가 자기 상품의 전환된 모습(즉, 화폐)을 붙잡고 있는 동안은 상품은 여전히 제1변태의 단계에
    있고, 그 유통의 전반(前半)을 경과했을 뿐이다. 그의 판매가 구매에 의해 보완되자마자, 화폐는 그 본래의 소유자의 손으로부터 또다시 멀어진다. 물론 아마포 직포자가 성경책을 구매한 뒤 또 다른 아마포를 판매한다면 화폐는 자기의 수중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화폐는 최초의 20미터의 아마포의 유통에 의해 되돌아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유통은 이미 화폐를 아마포 직포자의 수중으로부터 성경책 판매자의 수중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화폐가 직포자에게 들어오는 것은 새로
    운 상품으로 동일한 유통과정을 새로 시작하거나 반복하기 때문이며, 이 경우도 이전의 과정과 마찬가지 결과로 끝난다. 그러므로 상품유통이 화폐에 직접 부여하는 운동형태는 화폐가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져간다는 것, 화폐가 어떤 상품소유자의 수증으로부터 다른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화폐의 유통이다.
    화폐의 유통은 동일한 과정의 끊임없는 단조로운 반복이다. 상품은 언제나 판매자측에 있고 화폐는 구매수단으로 언제나 구매자측에 있다.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실현시킴으로써 구매수단으로 기능한다. 화폐는 가격을 실현하면서 상품을 판매자의 수중으로부터 구매자의 수중으로 이전시키며, 그와 동시에 자신은 구매자의 손으로부터 판매자의 손으로 넘어가는데, 거기에서 또한 다른 상품에 대해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 화폐운동의 이 일면적인 형태가 상품운동의 양면적인 형태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은 감추어져 있다. 상품유통의 성질 그 자체가 바로 이러한 외관을 빚어낸다. 상품의 제1변태는 화폐의 운동일 뿐 아니라 상품 자체의 운동으로 보이지만, 상품의 제2변태는 오직 화폐의 운동인 것처럼 보인다. 상품은 그 유통의 전반에서 화폐와 위치를 바꾼다. 그와 동시에 상품의 사용대상으로서의 모습은 유통에서 탈락하여 소비로 들어간다.(주석 25: 같은 상품이 여러 차례 판매되는 경우[이러한 현상은 아직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지만]에도 그 상품이 최종적으로 팔리면 유통영역을 떠나 소비영역으로 들어가 생활수단 또는 생산수단으로 역할한다.) 그 자리를 상품의 가치모습[즉, 화폐라는 유충(幼蟲)]이 차지한다. 상품은 유통의 후반을 더 이상 그 자신의 자연적인 모습대로가 아니라 화폐의 모습으로 통과한다. 이와 함께 운동의 연속성은 전적으로 화폐측에 달려 있으며, 이 동일한 운동이 상품의 입장에서는 두 개의 반대 과정을 포함하지만 화폐의 운동으로서는 언제나 동일한 과정[즉, 화폐와 다른 상품과의 끊임없는 자리바꿈]이다. 그러므로 상품유통의 결과[즉, 다른 상품에 의한 한 상품의 교체]는 마치 그 상품 자신의 형태변환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니라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의해 매개된 듯이 보이며, 마치 화폐가 [그 자체로서는 운동하지 않는] 상품을 유통시켜, 상품을 [그것이 비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부터 [그것이 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 언제나 화폐 자신의 진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이전시키는 듯이 보인다. 화폐는 끊임없이 상품이 차지하고 있던 유통장소를 차지하며,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출발점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져나가면서, 상품을 끊임없이 유통영역으로부터 끌어낸다. 그러므로 화폐유통은 사실상 상품유통의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외관상으로는 반대로 상품유통이 화폐운동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주석 26: "그것(화폐)은, 생산물에 의해 그것에 부여되는 운동밖에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는다"(르 트로느, 앞의 책, p. 885).)
    다른 한편, 화폐가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상품가치가 화폐에서 독립적인 모습을 가지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운동은 실제로는 상품 자신의 형태변환의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상품의 변태는 일목요연하게 화폐유통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엥겔스; 예컨대, 아마포는 우선 자기의 상품형태를 자기의 화폐형태로 바꾼다. 아마포의 제1변태(C-M)은의 두번째 항인 화폐형태는 다음에는 아마포의 최후의 변태(M-C), 즉 아마포의 성경책으로의 재전환의 첫번째 항으로 된다. 그러나 두 형태변환 중 어느 것도 상품과 화폐의 교환을 통해 [즉, 그것들 상호간의 위치변환에 의해] 이루어진다. 동일한 화폐조각이 상품의 양도된 모습으로 판매자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절대적으로 양도가능한 형태의 상품으로 그 수중으로부터 떠나간다. 화폐는 두 번 위치를 바꾼다. 아마포의 제1변태는 이 화폐조각을 직포업자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며, 제2변태는 그것을 다시 끄집어낸다. 이와 같이 동일한 상품이 겪는 대립적인 두 형태변환은 동일한화폐조각이 겪는 반대방향으로의 화폐의 두 번의 위치변환에 반영된다.
    오직 일면적인 상품변태[즉, 판매나 구매 중 어느 하나]가 이루어지면, 동일한 화폐는 한 번만 위치를 바꾼다. 이 화폐의 제2의 위치변환은 언제나 상품의 제2변태[즉, 화폐로부터 상품으로의 재전환]를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화폐조각의 위치변환의 빈번한 반복은 어떤 단하나의 상품의 변태계열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품세계 전체의 무수한 변태들의 뒤엉킨 관계도 반영하고 있다. }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사실은 오직 [여기서 고찰하는 형태인1]단순상품유통에만 타당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자명하다 {C- M- C와 M- C- M은 상이하다는 점을 장조하고 있다.}.
    어떤 상품도 유통에 처음 들어와 제1의 형태변환을 겪으면 유통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거기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들어온다.
    이에 반해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는 언제나 유통영역에 머물러 있고 언제나 그 속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 유통영역이 얼마만큼의 화폐를 흡수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한 나라 안에서는 매일 동시적으로 [그러나 공간적으로 상이한 곳에서] 수많은 일면적인 상품변태가 [다시 말해, 한 편에서는 단순한 판매가,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단순한 구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품은 그 가격에 의해 이미 상상적인 일정한 화폐량에 등치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찰하는 직접적인 유통형태[예컨대 외상거래는 제외한다]에서는 상품과 화폐가 항상 물체로서 서로 대립하기 때문에-한 쪽은 판매라는 극(極)에 있고, 다른 쪽은 구매라는 반대 극에 있다-필요한 유통수단의 양은 이미 상품들의 가격총액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사실 화폐는 [상품들의 가격총액으로 이미 관념상 표현되어 있는)]금량을 현실적으로 대표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총액이 동등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상품가치가 불변인 경우에도 상품가격은 금(화폐재료)의 가치와 함께 변동한다. 즉, 금의 가치가 떨어지면 그에 비례하여 상승하고, 금의 가치가 상승하면 그에 비례하여 떨어진다. 그리하여 금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상승
    한 결과 상품들의 가격총액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면, 그에 따라 유통되는 화폐량도 같은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많을 수 있다. 이 경우 유통수단의 양의 변동은 분명히 화폐 그 자체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척도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다. 상품들의 가격이 먼저 화폐의 가치에 반비례해서 변동하고, 그로부터 유통수단의 양이 상품들의 가격에 정비례해서 변동하는 것이다. 이것과 완전히 동일한 현상은 다음과 같은 경우-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은이 가치척도로서의 금을 대체하는 경우, 또는 은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금이 가치척도로서의 은을 대체하는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 앞의 경우에는 이전의 금보다도 많은 양의 은이, 뒤의 경우에는 이전의 은보다 적은 양의 금이 유통될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경우에도 먼저 화폐재료[즉, 가치척도로 기능하는 상품]의 가치가 변동하고, 그 때문에 상품가치의 화폐표현인 상품가격이 변동하고, 또 그 때문에 이들 가격의 실현에 필요한, 유통화폐량이 변동하게 될 것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상품의 유통영역에는 하나의 구멍이 있어, 그것을 통해 금[또는 은, 요컨대 화폐재료]이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 유통 영역에 들어온다. 그러므로 화폐가 가치척도로 기능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될 때, 화폐의 가치는 전제되고 있다. 가치척도 그 자체의 가치가 하락하면, 그것은 우선 귀금속의 생산지에서 귀금속과 직접 교환되는 상품들의 가격변동{가격상승}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특히 부르주아사회가 털 발전한 단계에서는] 상품들의 대부분은 오랜 기간 가치척도의 종래의 가치[이미 오래 전에 비현실적으로 되었지만]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그렇지만 한 상품은 그들 공통의 가치관계를 통해 다른 상품에 영향을 주므로, 상품들의 금가격[또는 은가격]은 점차 그들의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 규정되는 비율로 고정되고, 드디어 모든 상품가치가 화폐금속의 새로운 가치에 따라 평가된다. 이와 같은 조정과정은, [귀금속과 직접 교환되는] 상품의 대금으로 귀금속이 유입되기 때문에, 귀금속량의 계속적인 증대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상품들의 가격이 조정되어 가는 데 비례하여, 다시 말해 상품들의 가치가 귀금속의 새로운 가치(이미 떨어졌거나 어느 수준까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에 따라 평가되는 데 비례하여, 그것과 같은 속도로 이 새로운 가격의 실현에 필요한 귀금속의 추가량도 이미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금은의 새로운 생산지 발견에 뒤이어 일어난 여러 사실들을 일면적으로 관찰했기 때문에, 17세기와 특히 18세기의 사람들은 상품 가격이 오른 것은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금과 은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그릇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화폐수량설에 대한 비판은 뒤에 있다.} 이하에서 우리는 금의 가치를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는데, 우리가 한 상품의 가격을 평가하는 순간에는 실제로도 주어져 있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는 유통수단의 양은 실현되어야 할 여러 상품들의 가격총액에 의해 규정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상품의 가격을 주어진 것으로 가정한다면, 상품들의 가격총액은 분명히 유통 중에 있는 상품량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만약 1쿼터의 밀의 가치가 2원이라면 100쿼터의 밀의 가치는 200원일 것이며, 200쿼터는 400원일 것이라는 것, 따라서 밀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그것이 판매될 때 그것과 위치를 바꾸는 화폐의 양도 증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상품량을 주어진 것으로 전제한다면, 유통하는 화폐량은 상품가격의 변동에 따라 증감한다. 유통화폐량이 증감하는 것은, 상품들의 가격 총액이 각 상품의 가격변동의 결과 증감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모든 상품가격이 동시에 상승하거나 하락할 필요는 없다. 상품들의 가치총액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며, 따라서 또한 화폐의 유통량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의 주요 상품의 가격이 상승 또는 하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품의 가격변동에 반영되는 것이 상품의 현실적인 가치변화이건 단순히 시장가격의 변동이건, 유통 수단의 양에 대한 그것의 영향은 동일하다.
    1쿼터의 밀과 20미터의 아마포와 1권의 성경책과 4갤론의 위스키가 동시에 상이한 장소에서 판매된다고 [즉, 부분적인 변태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자. 각 상품의 가격이 2원, 따라서 실현되어야 할 가격총액은 8원이라고 한다면, 8원만큼의 화폐량이 유통에 들어와야 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동일한 상품들이 다음과 같은 상품변태의 고리[즉, 1쿼터의 밀-2원-20미터의 아마포-2원-1권의 성경책-2원-4갤론의 위스키-2원이라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면, 2원은 여러 가지 상품을 유통시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2원은 여러 상품들의 가격을 순차적으로 실현시켜 8원이라는 가격총액을 실현시키고 나서, 최후에는 위스키 양조자의 수중에서 쉬기 때문이다. 그것은 네 번 회전했으며 4
    개의 유통행위를 수행했다. 동일한 화폐조각의 이와 같은 반복적인 위치변환은 상품의 이중의 형태변환[즉, 두 해의 대립적인 유통단계를 통과하는 상품의 운동]과 각종 상품의 변태의 뒤엉킨 관계에 대응하는 것이다.(주석 27: "생산물은 그것(화폐)을 운동시키며 유통시킨다....그것(화폐)의 운동속도는 그 양을 보충해 준다. 필요한 경우 그것은 일순간도 쉬지 않고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아간다"(같은 책, pp. 915-916).) 이 변태과정을 이루는 대립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국면들은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없고 연속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이 과정의 길이를 측정하는 척도로 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시간 안에 동일한 화폐조각의 회전횟수에 의해 화폐의 유통속도가 측정된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상품의 유통과정에 하루가 걸린다면, 실현시켜야 할 가격총액은 8원이고, 동일한 화폐조각의 1일간의 유통횟수는 4회고, 유통하는 화폐량은 2원이다. 그리하여 일정한 기간의 유통과정에서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량

    상품의 가치 총액
    = -----------------------------------
    동일한 명칭의 화폐조각의 회전회수

    이 법칙은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흔히 말하는 M= PT/V.}
    주어진 기간의 한 나라의 총상품유통은, 한편으로는 동일한 화폐 조각이 단 한 번만 위치를 바꾸는[1회만 유통할 뿐인] 다수의 분산적이고 동시적인 부분적 변태[즉, 일방적인 판매 또는구매]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동일한 화폐조각이 많든 적든 여러 차례 회전하는 [부분적으로는 서로 병행하고 부분적으로는 서로 뒤엉켜 있는] 수많은 변태계열로 이루어지고 있다. 각 화폐조각이 얼마나 자주 회전하는가는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통 중에 있는 동일한 명칭의 모든 화폐의 총회전회수를 알기만 하면 개개의 화폐조각의 평균회전횟수, 또는 화폐
    유통의 평균속도를 알 수 있다. 예컨대 하루의 시초에 유통과정에 투입되는 화폐량은 [나란히 동시에 유통하는] 상품들의 가격총액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유통과정 안에서는 한 개의 화폐조각{예: 10,000원 권}은 다른 화페조각{예: 5,000원 권}과 연대책임을 지고 있다. 만약 그들 중의 하나가 자기의 유통속도를 빠르게 하면, 다른 화폐조각은 유통속도가 둔화되거나 유통 영역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왜냐하면, 유통영역은 오직 일정한 금량[이 금량에 평균회전회수를 곱하면 실현되어야 할 가격총액과 같아진다]을 흡수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폐조각의 회전회수가 증가하면 유통과정에 있는 화폐조각의 총량은 감소하고, 화폐조각의 회전회수가 감소하면 그 양은 증가한다. 평균유통속도가 주어져 있을 때는 유통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화폐량도 주어지기 때문에, 일정한 수의 1 파운드 짜리 금화(sovereign)를 유통으로부터 빼내려고 한다면 동일한 수의 1 파운드 짜리 은행권을 유통에 투입하면 된다. 이것은 모든 은행이 잘 알고 있는 술책이다.
    화폐유통은 일반적으로 상품들의 유통과정[즉, 대립적인 변태들을 통한 상품들의 순환]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폐의 유통속도는 상품의 형태변환의 속도, 변태계열들의 연속적인 뒤엉킴, 사회의 물질대사의 속도, 유통분야로부터 상품들이 사라지는 속도, 그리고 또한 새로운 상품들에 의한 교체의 속도 등을 반영한다. 즉, 화폐의 유통이 빨라진다는 것은 상품이 유용한 물건모습으로부터 가치모습으로 전환하고 또 가치모습으로부터 유용한 물건모습으로 재전환한다는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과정들[즉, 판매와 구매]의 원활한 통일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화폐유통이 완만해진다는 것은 두 과정들이 분리되어 독립과 상호대립을 날아 형태전환[따라서 물질대사과정]에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유통 그 자체는 이 정체가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를 물론 가르쳐주지 않으며 다만 그 현상{예: 팔리지 않는 재고의 누적}을 보여줄 뿐이다. 통속적 견해는 이 현상을 유통수단의 양적 부족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화폐유통이 완만해짐에 따라 유통부문의 모든 곳에서 화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회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주석 28: "화폐는....판매와 구매의 일상적인 수단이므로, 판매할 물건을 가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구매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국내의 화폐부족 때문에 자기의 상품이 잘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하여 화폐가 부족하다는 불평이 도처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화폐가 필요하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농업경영자는....국내에 더 많은 화폐가 있다면 자기의 생산물을 적당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화폐가 아니고 [그가 팔기를 원하나 팔리지 않는 자기의 곡물과 가축의]적당한 가격일 것이다....어째서 그는 이 적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가?....그 이유는 (1) 국내에 곡물과 가축이 너무 많아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와 마찬가지로 팔려고만 하고 사기를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든가, 또는 (2)수송문제 때문에 평상시의 해 외판로가 두절되어 있든가. 또는 (3)사람들이 가난해져 가정생활을 위한 지출을 이전에 비해 감 축하여 소비가 감소되었든가, 그 중의 어느 하나다 그러므로 농업경영자의 생산물의 가격을 조 금이라도 올려주는 것은 화폐 그 자체의 증가가 아니라 실제로 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이 세 가 지 원인 중 어느 하나를 재거하는 것이다.... 상인과 소상점주도 꼭 마찬가지로 화폐를 요구하고 있다. 즉, 시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거래하는 물품의 판로를 구하고 있다....부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끊임없이 이전하고 있을 때 한 나라는 가장 번영한다"(더들리 노스, ?상업론 “, 런던, 1691년, pp. lI-15 이곳 저곳). 헤렌슈반트(Herrenschwand)의 모든 공상적인 제안은 결 국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상품의 본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따라서 상품유통에서 나타나는] 모 순이 유통수단을 증가시킴으로써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과정 및 유통과정의 정체 (停滯; stagnation)를 유통수단의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정부의 졸렬한 '통화조절(通貨調節)'로 말미암은 유통수단의 현실적 부족이 정체를 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정한 기간에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의 총량은, 한편으로는 유통하는 상품의 가격총액에 의해 규정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통의 대립적 과정들의 변환속도에 의해 규정된다. 이 가격총액 중 평균적으로 몇 분의 1이 동일한 화폐조각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가는 이 변환속도에 의해 규정
    된다. 그런데 상품들의 가격총액은 각 상품종류의 양과 가격에 의존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격, 유통상품의 양, 그리고 화폐의 유통속도-는 각각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방향으로 변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현되어야 할 가격총액과 이것에 의해 제약되는 유통수단의 양도 역시 이 세 개 요소의 수많은 조합에 따라 변동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 조합들 중 상품가격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을 들어보기로 한다.
    상품가격이 불변(不變)인 경우, 유통수단의 양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은 유통상품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든가 화폐의 유통속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품량의 감소 또는 유통속도의 증가에 따라 유통수단의 양은 감소할 수 있다.
    상품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上昇)하면서, 유통수단의 양이 불변일 수 있는 것은, 유통상품의 양이 상품가격이 오르는 것과 같은 비율로 감소하는 경우나, 유통상품의 양은 불변인 채 화폐의 유통속도가 가격의 상승과 같은 속도로 증가하는 경우다. 유통수단의 양이 감소할 수 있는 것은 상품량이 가격상승보다 더 급속하게 감소하거나 유통속도가 가격의 상승보다 더 급속하게 증가하는 경우다.
    상품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下落)하면서, 유통수단의 양이 불변일 수 있는 것은,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상품량이 증가하거나, 가격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화폐의 유통속도가 떨어지는 경우다. 유통수단의 양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은,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것보다 더 급속히 상품량이 증가하던가,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것보다 더 급속히 유통속도가 떨어지는 경우다.
    여러 가지 요소들의 변동은 서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요소들의 끊임없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어야 할 상품가격의 총액과, 그에 따른 유통화폐량은 불변일 수 있다. 그러므로 비교적 장기간을 두고 관찰할 때, 각국에서 유통하는 화폐량은 [산업공황과 상업공황으로부터, 또 드물게는 화폐가치 자체의 변동으로부터 야기되는 주기적인 격렬한 혼란을 제외하면] 첫눈에 예상하는 것보다는 그 평균수준으로부터의 편차가 훨씬 작다.
    유통수단의 양은 유통상품의 가격총액과 화폐유통의 평균속도에 의해 규정된다는 법칙(주석 29: "한 나라의 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화폐에는 일정한 한도와 크기가 없다. 그보다도 많거 나 적으면 산업에 해를 미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소매상업에서 은화의 거스름돈을 주거나 최 저 액면의 은화로도 결제할 수 없는 지불을 위해 일정한 금액의 파싱 {farthing: 영국의 청동 화, 1/4페니 }이 필요한 것과 꼭 마찬가지다....이제 상업에 필요한 파싱화의 규모가 사람들의 수나 그들의 교환의 빈도로부터 추정할 수 있고 또 특히 최저 액면의 은화의 가치로부터 추정 할 수 있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산업에 필요한 화폐(금화와 은화)의 크기도 역시 교환 의 빈도로부터, 또 지불액의 대소에 의해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W. 페티, ?조세공납론?, 런던, 1667년, p. 17). 영(A. Young)은 그의 저서 ?정치산술?(런던, 1774년) 가운데 "물가는 화폐량에 의존한다"라는 하나의 특별한 장(p. 112 이하)에서 스튜어트(James Steuart) 등의 비 판으로부터 흄(David Hume)의 학설을 옹호했다. 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 168 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그(A.. 스미스)는 전혀 그릇되게 화폐를 단순한 상품으로 고찰함으로써, 유통하는 화폐량에 관한 문제를 슬그머니 젖혀 놓고 있다." 이 말은 A. 스미스 가 자기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화폐를 고찰하고 있는 곳에서만 타당하다. 그러나 그는 때 때로 예컨대 이전의 경제학설들을 비판할 때에는 옳은 발을 하고 있다. "주화량(화폐유통량)은 유통되어야 하는 상품량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며....한 나라 안에서 매년 구입. 판매되는 재화 의 가치는 그것을 유통시키고 정당한 소비자들에게 분배하기 위해 일정한 화폐랑을 필요로 하 며, 그 이상의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통의 수로(水路: channel)는 그것을 채우기에 충분한 금액을 필연적으로 끌어들이며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국부론?,동아출판사, (상)419쪽, 420쪽). 이와 마찬가지로 스미스는 자기의 저서를 정식으로는 분업에 대한 예찬으 로 시작하고 있으나, 뒤에 재정수입의 원천을 논하고 있는 마지막 편에서는 때때로 자기의 스 승인 퍼거슨(Adam Ferguson)이 행한 분업 비난을 재생산하고 있다{“국부론?,(하) 272-273 쪽 참조}) 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다 즉, 상품들의 가치총액과 그 변태의 평균속도가 주어져 있을 때, 유통하는 화폐량[또는 화폐재료량]은 화폐 자신의 가치에 달려 있다고. 이와는 반대로, 상품가격은 유통수단의 양에 의해 결정되며, 유통수단의 양은 또한 한 나라에 존재하는 화폐재료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환상(주석 30: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들 사이에 유통하는 금과 은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물가는 분명히 올라갈 것이다. 또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금과 은이 감소할 때 모든 물가는 화폐의 이러한 감소에 비례해서 하락하지 않을 수 없다"(반더린트[Jacob Vanderlint], ?화폐만능론?, 런던, 1734년, p. 5). 반더린트의 저서와 흄의 ?논문집?을 상세히 비교해 보면, 흄이 반더린트의 이 [확실히 중요한] 저서를 알았고 또 이용했다는 것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유통수단의 양이 가격을 규정한다는 견해는 바본(Nicholas Barbon)과 그보다도 훨씬 더 이전의 저술가들에서도 볼 수 있다. 반더린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무역에 의해서는 아무런 불편도 일어날 수 없고, 막대한 이익만이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나라의 금이 자유무역 때문에 감소한다면-보호 관세와 수입금지는 이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그 금을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국내에 금이 늘어나서 물가가 한꺼번에 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의 공업제품과 기타 온갖 물건의 가격은 떨어져 무역수지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며, 화폐는 국내로 다시 흘러 들어오게 될 것이다"(같은 책, pp. 43-44).)은, 그 최초의 주창자들이 채택한 엉터리 가설-즉, 상품은 가격을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며, 또 화폐도 가치를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 거기에서 잡다한 상품집단의 일정한 부분이 귀금속더미의 일정한 부분과 교환된다. -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석 31: 개별적 상품종류가 각각의 가격에 의해 모든 유통상품의 가격총액의 한 요소를 구성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금과 은의 총량과 교환되는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상품세계를 하나의 단일한 상품총체로 간주하고 각 개별 상품은 오직 그 총체의 한 부분을 이룬다고 대담하게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훌륭한 계산 예가 나온다. 상품총체=X킬로그램의 금, 상품 A=상품총체의 일정부분=X킬로그램의 금 중 그에 해당하는 부분.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이 엉터리를 매우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에 현존하는 금과 은의 총량을 세계에 현존하는 전체 상품의 총량과 대비시킨다면, 하나 하나의 생산물 또는 상품을 금과 은의 총량의 일정한 부분과 대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에는 오직 한 종류의 생산물 또는 상품이 존재한다고 [다시 말해 오직 한 가지 물건만이 판매된다고] 가정하며, 또 그것은 화폐와 마찬가지로 분할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 상품의 일정량은 화폐총량의 해당부분과 대응하게 되며, 전체 상품의 절반은 전체 화폐의 절반과 대응하게 될 것이다....물건의 가격 결정은 근본적으로는 항상 물건의 총량과 화폐상징의 총량 사이의 비례에 의존할 것이다"(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저작집?, 제3권, pp. 12-13). 리카도와 그의 제자들인 제임스 밀, 오버스톤(Lord Overstone) 등이 이 이론을 한층 더 발전시킨 데 대해서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p. 179-185 및 p. 169-177을 보라. J. S. 밀은 그의 특유 한 절충주의적 논리를 가지고 자기의 부친인 제임스 밀의 견해와 그것에 정반대되는 견해를 동 시에 수용하는 재주를 피우고 있다. 그의 개설서인 ?정치경제학원리?의 본문과 [그가 현대의 애덤 스미스라고 자처하고 나선] 제1판 서문을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이 사람의 소박성이나 이 사람을 정말 새로운 애덤 스미스로 믿은 일반 독자의 소박성 중 어느 것에 더 놀래야 할지 모르게 된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J. S. 밀의 관계는 바로 웰링턴 공작에 대한 월리엄즈 장군 {크리미아 전쟁 중 아르메니아의 카스 성을 수비한 터키 군대를 지휘한 영국 군인인데, 그 성 이 러시아 군대에게 함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장군과 준남작(barbonet)이 되었다.}의 관계 와 비슷하다. 경제학 분야에서 J. S. 밀의 독창적 연구는 [넓이에서나 깊이에서나 보잘것없는 것인데] 1844년에 발간된 ?정치경제학의 약간의 미해결 문제들?이라는 그의 소책자에 모두 그대로 들어있다. 로크(J. Locke)는 금과 은에는 가치가 없다는 것과, 금과 은의 가치는 양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과의 관련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금과 은에 상상 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데 동의했으므로....이 두 금속의 내재적 가치는 그것들의 양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몇 가지 고찰?,1691년, ?저작집?, 1777년판, 제2권, p. 15).)



    (c) 주화(coin). 가치의 상징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의해 주화의 형태를 취한다. 상품의 가격[즉, 화폐명칭]이 머리 속에서 대표하고 있는 금의 중량은 유통과정에서는 그것과 동일한 명칭을 가지는 금조각 또는 주화로서 상품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격의 도량표준의 확 {예: 1 파운드=20s.=240d.}과 마찬가지로 주화의 제조도 국가의 일이다. 금과 은이 주화로서 몸에 두르는 [그리고 그것들이 세계시장에 나타날 때는 다시 벗어버리는] 여러 가지 국민적 제복은 상품유통의 국내 [또는 국민적] 영역과 그 일반적인 세계시장 영역이 분리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금주화와 금덩어리(bullion)는 단지 외형상으로만 구별될 뿐이고, 금은 언제라도 한 형태에서 다른 형xo로 전환될 수 있다.(주석 32: 주조수수료(seigniorge)와 같은 상세한 것을 논하는 것은 물론 나의 목적 밖의 일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무료로 주조한다"고 하는 '관대한 아량'에 감탄하고 있는 낭만주의적 아첨꾼인 아담 뮬러(Adam Muller)에 대해서는 더들리 노스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금과 은은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스페인으로부터 다량의 금과 은이 도착하면....그것은 조폐소로 운반되어 주조된다. 머지않아 수출될 금덩어리에 대한 수요가 다시 나타날 것이다. 만약 그때 금덩어리는 없고 전부 다 주조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들을 다시 녹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손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유자는 주조에 따른 비용, 즉 주조수수료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국민은 쓸데없는 손해를 보는데, 그것은 마치 노새에게 먹이기 위해 짚으로 새끼를 꼰 셈이기 때문이다. 만약 상인{노스 자신은 찰즈 2세 시대(1660-85)의 최대의 상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이 주조수수료를 지불해야 된다면 그는 자기가 소유한 은을 상당한 이유 없이는 조폐소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조된 화폐는 주조되지 않은 은보다 항상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노스, 앞의 책, p. 18).) 주화는 조폐소로부터 나오자마자 곧 용해될 수도 있다. 유통하는 동안 금주화는 어떤 것은 많이 어떤 것은 적게 마멸된다. 금화의 명칭[즉, 법정 무게]과 그것의 실체[즉, 실질적 무게]가 점차 서로 분리되는 과정이 시작된다. 명칭이 같은 금화들도 중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치가 동일하지 않게 된다. 유통수단으로서의 금의 무게는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의 금의 무게로부터 이탈하고, 그리하여 가격을 실현할 상품들의 진정한 등가물로 될 수 없게 된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세 및 근세의 주화사는 이와 같은 혼란의 역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화를 금의 금속적 실재로부터 금과 닮은 것으로 전환시키는 [즉, 주화를 그 공인된 금속실체의 상징으로 전환시키는] 유통과정의 자연발생적 경향은[금속상실의 정도에 따라 금화를 통용불능이라고 폐기시키는]가장 근대적인 법률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는 바이다.
    만약 화폐의 유통 그 자체가 주화의 실질적 무게를 그 법정 무게로부터 분리시키고, 기능으로서의 주화를 금속으로서의 주화와 분리시킨다면, 화폐유통에는 벌써 금속화폐를 다른 재료로 만든 토큰(token)[즉, 주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징]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 금 또는 은의 매우 작은 중량을 주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곤란하다는 사정과, 최초에는 고급금속 대신 저급금속-금 대신 은, 은 대신 구리-이 가치척도로 쓰였고 [고급금속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 저급금속이 화폐로 유통하고 있었다는 사정은, 은제나 동제의 토큰이 금화의 대리자로 역할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해 준다. 은과 구리가 금을 대리하는 것은, 금화가 가장 급속하게 유통하는, 따라서 가장 급속히 마멸하는 상품유통영역 [다시 말해 매매가 매우 소규모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역]에서다. 이러한 금의 대리물이 금 자체의 지위를 영구히 차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률은 금 대신 이들 금속을 받아들일 수 있는 비율을 매우 낮게 규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주화가 각각 유통하는 특수한 경로들은 물론 서로 뒤엉켜 있다. 은제나 동제의 토큰은 가장 작은 금화의 몇 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의 지불을 위해 금과 나란히 나타난다. 금은 끊임없이 소액유통에 들어오지만, 은 . 동제의 토큰과 교체되어 끊임없이 거기에서 쫓겨난다.(주석 33: "만약 은화가 소액지불용에 필요한 양을 결코 초과하지 않는다면, 다액지불에 사용할 만큼 거대한 은화를 모을 수가 없다. 다액의 지불에서 금화를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소매상업에서도 금화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금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액의 구매에 금화를 지불하고 거스름돈으로 은화를 받게된다. [소매상의 수중에 집중되어 그를 귀찮게 만들었을] 과잉의 은화는 이와같은 방법으로 그의 손을 때나 일반적 유통으로 살포된다. 그러나 만약 은화가 금화 없이도 소액거래를 감당할 만큼 많이 있다면, 소매상은 소액의 구매에 대해 은화만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은화는 필연적으로 그의 수중에 축적되지 않을 수 없다"(뷰캐넌[David Buchanan], ?영국의 조세 및 상업 정책의 연구?, 애딘버러, 1844년, pp. 248-249).)
    은제나 동제의 토큰의 금속무게는 법률에 의해 임의로 규정된다. 그것들은 유통에서 금화보다 더 빨리 마멸된다. 그러므로 그것들의 주화기능은 사실상 그것들의 중량[즉, 가치]과는 관계없다. 금의 주화로서의 기능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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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화수미제(火水未濟)
    『 미완성 』
     
     ○    완성된 일은 조금씩 기울어 집니다. 달이 차면 기울듯
     ●    이 완성된 일은 반드시 어그러지게 됩니다. 이렇게 주
     ○    역은 미완성을 통해 다시금 완성을 도모하게 됩니다.
           비존재의 세계를 통해 존재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입니
     ○    다. 무슨 일이든 완성된 상태에서는 만족을 해서는 안
     ●    됩니다. 만족하는 순간 다시금 어그러지게 될 것입니다.
     ○    이것은 바로 우주가 생존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에 처해 있을 때는 뭔가 새로운 일을 추구하고 이
           루려고 하지만 완성된 자리에서는 그 자리를 고수하려
           고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을 고집하는 사람은
           그 만족하는 자리가 어그러질때 함께 망하게 됩니다.
     
                         화수미제(火水未濟)
     
         조화는 또 다른 부조화를 불러 일으킵니다. 때문에 주역
         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부조화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이 64번째의 괘는 63번째 괘의 아래와 위의 괘상
         이 뒤 바뀌어 졌습니다. 각각의 음과 양이 거꾸러 자리를
         잡고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1,4의 효와 2,5의 효와 3,
         6의 효는 서로 대응하여 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 합이 같아 서로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
         합은 되어 있으나 뭔가 하나씩 균형이 어긋나 있습니다.
         주역은 이렇게 좋은것과 안 좋은것 상호의 관계를 보여주
         고 있습니다. 육효의 효가 음양의 조화는 이루었으나 그
         있어야 할 음양의 자리가 뒤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괘
         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는 있지만 그 자리가 뒤바뀐 상태
         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위에서 밑으로 내
         려가는 현상이 아니고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현상입니다. 
     
         未濟:亨,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
         彖曰:未濟,亨;柔得中也  小狐汔濟,未出中也  濡其
                 尾,無攸利;不續終也 雖不當位,剛柔應也
         象曰:火在水上,未濟;君子以愼辨物居方
        대상. 불이 물위에 있어서 장소를 얻지 못한다. 이것
        이 미제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신중하게
        사물을 구별하고 적소에 두는 것을 주의한다.
     
     먹을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그 먹을 것을 채우기 위해 허리 띠를 조여
    메게 됩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할 때는 그 사람의 마음도 나태해져
    서 더 이상 먹을 것을 창고에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주역은 우리에게 만족의 어그러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의 만족을 품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로
    인해 허물을 안게 될 것입니다. 만약 만족을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다면 상대방은 증오를 불러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만족
    이 채워졌을 때 상대방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상대방을 떠
    나 보내지 않으려면 만족하는 마음을 비워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가득 찰 수 있는 이유는 우주가 텅 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은 마지막으로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괘는 마치 단
    추가 하나 어긋나 있는 것과 같이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옷이 몸에
    붙어 있듯이 잘 못 채워진 단추는 처음부터 하나식 다시 풀어서 채워야
    하는 것처럼 성급하게 옷을 맞추기 위해서 잡아 당기면 옷이 찢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화수미제는 바로 이렇게 성급함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63괘(수화기제)가 처음은 길하고 마지막은 흩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이 마지막 괘는 그 혼란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완성을 향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밑의 물은 곤란을 뜻하며 위의 불은 광명을 뜻합니
    다. 또한 무한한 광영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유하고 겸손한 군주가 왕위
    에 있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망한 것을 유하고 겸손한 태도
    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강경한 마
    음으로 어려움을 받아 들이지 않을 때는 결국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실패를 통해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
    고 머리를 쓰면 다시금 성공을 바라볼 수 있지만 고난과 어려움을 받아
    들이지 않고 강경한 자세로 굽힘이 없으면 인생 자체가 망하게 되는 것
    입니다.
     
     [화수미제]괘는 바로 난처함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 난처함을 받아
    들여 세상이 여러분에게 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코 만족함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이 결국 인생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제(未濟)괘는 그 자리의 위치가 어긋나 있지
    만 상호 대응하는 효의 강약이 서로 합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치협력하면
    어려운 목표도 달성할 수 있는 가망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은 받아
    들이되 경계하고 고난은 받아들이고 겸손해 할 줄 알아야 화를 면할 수
    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한다면 저절로 일치협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初六:濡其尾,吝
       象曰:濡其尾,亦不知極也
        첫 번째 음효. 작은 여우(小狐)가 강을 다 건너고 나서 강
        물에 꼬리를 적신다. 이로움이 없도다.
     
     작은 여우가 강을 다 건너고 나서 강물에 꼬리를 적신다고 했습니다.
    여우가 꼬리를 적신다는 말은 결국 실패를 함을 의미합니다. 강을 다
    건너고 나서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금 물에 빠진다는 것이 물에 적신
    꼬리의 뜻입니다. 작은 여우가 내를 건널 때에 처음에는 자신있는듯이
    보여도 나중에는 능력부족으로 결국 꼬리를 적시는 격으로 미제는 아
    직 다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대체로 좋은 위치에 있지 못하
    고 시기적으로 뜻대로 되지않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매한
    전망이나 역량부족으로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중간에서 좌절하게 됩니
    다. 현재는 이런 상태이지만 희망은 있으므로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
    라 앞날은 차츰 밝아질 것입니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신중하게 사
    물을 분별하게 하여 각각이 알맞는 자리에 있게 합니다. 고난이 닥쳤
    을 때는 먼저 그 고난을 세세하게 관찰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
    할 일만 했다고 해서 고난이 물러 가는것이 아닙니다. 차량의 문을 잠
    글 때도 무선스위치만 작동하고 잠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
    다 반드시 도어를 당겨 보고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 1효에는 음에네르
    기가 있습니다. 상대의 4효는 양에네르기입니다. 즉,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九二:曳其輪,貞吉
      象曰:九二貞吉,中以行正也
        두 번째 양효. 앞으로 나아가는 차 바퀴를 잡아 당기며
        전진하지 하지 아니한다. 나아갈 수 없음을 알고 마차를
        멈춘다. 이러한 견실한 태도를 유지하여 간다면 길하리라.
     
     나아가는 것의 이유는 나아가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는
    만큼 들어올 수 있는 결실이 있어야만 합니다. 가는것은 바로 목적지에 도
    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적지 없이 마구 가는 것은 바퀴가 없는 차를 운행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달려도 결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나갈 수 없을 때는 더욱 더 치밀해 져야 합니다.
     
      六三:未濟,征凶,利涉大川
      象曰:未濟征凶,位不當也
        세 번째 음효.  아직은 뜻을 이룰 수 없는 때 맹진하면
        흉하다.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서 큰 강을 건넌다면 그때
        는 위험도 무릎 쓰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본성의 겸
        허한 태도로 내일을 대비하면 장차 큰 강을 건너도 어려
        움이 없다.
     
     나아갈 바를 살피지 않고 내가 해야지하는 마음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은
    작심삼일이 되고 맙니다. 현실적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나아가려고만 하는
    심정으로 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흉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역은 맹진하면
    흉하다고 했습니다. 혼란 속에 위험과 곤란을 무릅쓰고 광명을 구하는 것
    이 이 괘인 것입니다. 그래서 좌절도 있고 고통도 따릅니다. 해야 할 일
    이 계속 닥치지만 그것을 단숨에 처리하려 들지 말고 끈질기고 차근차근
    하게 대처해 나가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야 어려운 난관도 뚫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九四:貞吉,悔亡,震用伐鬼方,三年有賞于大國
      象曰:貞吉悔亡,志行也
        네 번째 양효. 지조(志操)를 관철하면 길하다. 후회는 없
        어진다. 위무도 당당하게 북방의 야만족을 토벌한다.  삼
        년 후에는 상을 받아 대국의 제후로 봉함을 받게 될 것이
        다.
     
      사업이란 것도 법칙에 맞게끔 건실하게 운영해 나아가면 길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이 된다고 이제 서서히 위로 걸어 갈 수 있을 때에 이르러서는
    평지를 걸어갈 때의 위세로 간다면 그 실력은 약한 것입니다. 아직은 단숨
    에 올라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지만 무리하게 올라가려고 해서도 안되겠지
    만 그러나 자신의 겸손한 본성을 살려서 겸허한 태도로 조금은 위를 대비하
    면서 나아간다면 아무리 가파른 미끄럼틀과 같은 위험하고 벅차 일일지라도
    순조롭게 올라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에 이르러 적응력
    이 붙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른 미끄럼틀을 꺼꾸로 올라갈때는 잠시의 방
    심도 있어서도 안됩니다.  한결같이 바른 도리로 변함이 없으면 그 뜻을 실
    현할 수 있게 되어 길한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분발하여 북방의 왜적을 징벌하라. 분발하여 마지막 정상을 차지하라.
    3년이면 승리를 거두워 영광을 누릴 것이다. 23번만 들이키면 정상에 올라
    가 3번만 자제하면 정상에 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바른 도리를
    지키니 길하다. 올라왔을 때는 항상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六五:貞吉,無悔,君子之光,有孚,吉
      象曰:君子之光,其暉吉也
        다섯 번째 음효. 지조(志操)를 관철하면 길하니 후회는
        없다.  군자의 덕은 빛나고 그 성의는 만백성의 신뢰를
        받고 길하리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부자가 강한것 같지만 가난한 사
    람이 강할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진자와 싸울 때는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즉 가난한 사람은 잃을 것이 없지만 부자는 있는것을 지키기가 힘
    든 법입니다. 만약 부자가 되었더라면 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
    은 항상 가난한 시절의 기억을 잊어 버려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부자가 망하
    는 순간은 바로 가난한 시절을 잊어 버렸을 때입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효는
    한결같은 바른도리 즉 올라왔음에는 다시 떨어질 수 있음을 알라는 것이며 그
    것을 가슴 깊숙이 지킬 수 있는 위치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중심된 것
    을 지키면 길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걱정은 없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로 가난한 자의 참된 마음입니다.  이렇게 처음 마음이 변함이
    없을 때 그 성의가 만민의 믿음을 얻어 길하다 한 것입니다.
     
      上九:有孚于飮酒,無咎,濡其首,有孚失是
      象曰:飮酒濡首,亦不知節也
        여섯 번째 양효. 성의를 다해 술잔을 들고 모든 사람과
        함께 큰 소원이 성취되기를 축복한다면 탈이 없으리라.
        다만 마음이 느슨해져서 환락에 빠져서는 안된다. 성의
        가 있어도 정도(正道)를 잃는다.
     
      즐겁다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수도 있지만 술을 마시는 중
    에도 지금까지 이 위치에 올라 왔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허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술에 머리를 적시는 꼴이 된
    다면 아무리 노력했다는 마음의 성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렵게 올라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올라 갈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
    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자신을 저버릴 만큼 술에 취한다면 마치 에레베이
    트의 끈이 끊어져 미끄름틀 타듯이 공중에서 떨어져 즉사할 것입니다.  아
    무리 성의가 있어서 마시기 시작한 술일지라도 절제를 잃는 일은 삼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설령 우주의 법칙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간다 할지라도 안
    정을 잃지 않고, 이 자연이 온전하듯이 온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세상
    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만물은 항상 움직이고 있습니다. 머물고 싶다고
    해서 멈출 수도 없습니다. 지금 만족하다고 해서 만족에 빠질 수가 없습니
    다. 항상 절제를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흐름조차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
    야 합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치 못하더라도 최소한도 보고 들을 수는 있어
    야 합니다.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고집한다면 항상 법칙에 밀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면 온전함은 얻지 못하고 항
    상 노력해야만 되는 고달픈 인생이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막혀 있는 벽 너머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
    서 자신의 주장과 생각의 틀을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합니
    다. 그러했을때 우주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력이 만물의 법칙과 만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즉, 우주
    의 법칙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다, 볼 수 있다, 가려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한다면 듣는다,
    들을 수 있다, 가려져 있는 것도 들을 수 있다. 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봐야지 하고 맘 먹었을 때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본다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볼 수 있다를 모르면 상황에 깨어 있지를 못합니
    다. 또한 주의력이 있는 사람은 벽으로 가려져 있는 곳에 있다할지라도 그
    주변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법은 안테나를 항상
    뽑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불시의 상황하에서도 당황하는 법이 없습
    니다. 이미 그렇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있어서 불안이 있다거나 단조로운 생활에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본
    인의 안목이 위 세 가지 중에  첫번째 경우에 해당할 경우 더 심하게 됩니
    다. 안목을 기르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자꾸 정당화 시킨다면 우주의 법
    칙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안목을 길게 내어써서 도리어 우주의 법칙
    이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화수미제(火水
    未濟)괘는 주역(周易)의 마지막 괘상입니다. 이 64괘 모두는 바로 살아 있
    는 생생한 우주의 동작인 것입니다. 살아 숨쉬는 우주의 법칙인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을 통해서 삶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도 매 순간의 상황에 대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주역을 통해 매 순간의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작용을 만들어 놓은 이 광대한 우주는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
    입니다.  "나로부터 나에게로 가는 나에 의한 나의 힘이여!"
     
     주역강의 終..
     
     2006. 1. 26. (木) 유성이 스승님의 강의록을 정리해서 올림..
     
     ※안내※
     본 강의는 소공자선생님께서
     1988년 7월 2일(토)부터 1992년 4월 25일(토)까지의 4년여간의
     강의한 내용을 제자 유성이 정리하여 올린 글입니다.
     그동안 주역 강의를 경청한 인연있는 님들께 행운이 있기를
     기원 드립니다(__)…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46
  • 63. 수화기제(水火旣濟)
    『 완성 』
     
     ●   [기제(旣濟)]괘는 온전히  빠져서 더  이상 발전하는
     ○   것이 적은 것을 상징한다. 모든  강효와 유효가 제자
     ●   리에 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모두 적재적소에
          적당하게 자리잡은 완전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
     ○   한 상태가 변함없이 계속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   이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
     ○   다.
     
                           수화기제(水火旣濟)
     
      바이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라고. 이  세가지는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사실은 똑같은 한 몸입니다. 그 몸의 정체는 곧  진실이라는 것입
    니다. 진실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실에서부터
    시작하고, 진실이 있어야지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진실이 있어야만 믿음이 됩니다. 진실에서 출발한 사랑이  믿음
    을 만들어 냅니다. 때문에 믿음은 곧 진실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
    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희망은 역시 진실로 인한 믿음으로 시작
    한 것이 아니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왜  해내지 못
    했을까? 왜 사업이 망했을까? 그것은 믿음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
    입니다. 그것은 본인이 진실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분명하면 사랑을 통해서 소망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여
    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
    닙니다. 내가 정성을 갖고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만약 그대가 사
    업에 성공하고자 한다면, 사업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해서 믿
    음이 생겼을 때 길이 보일 것이며, 드디어 소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만 가지고 한다면  그대가 하
    는 일은 파괴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믿음이 없이 하는 공부는 종이만 날려버립니다. 믿음이 없는 인
    생은 시간만 낭비합니다. 때문에 믿음이 없이  소망을 갖는다라는
    것은 절망밖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20세기의 유명한 과학자중에 [하이젠베르그]가 있습니다.  그가
    밝혀놓은 이론 가운데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측정할 수 없는 오차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마음안에 해야겠다
    는 믿음이 분명해야 하는데, 마음안에서 정확성을  자꾸 찾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안에서 정확성을 자꾸 찾으려고  하는 것부
    터가 불확정성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완벽한  것은 창조력
    을 잃어버립니다. 때문에 이 우주는 항상 완벽에서부터 조금씩 어
    긋난 상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이 괘가 바로  그것을 설명
    하고 있습니다.
      이 괘는 일, 삼, 오  양의 자리에 양효가 있고, 이, 사, 육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습니다. 즉 완벽한  상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렇게 완벽한 상태가 되면 이 우주는 변합니다. 자연은 항상 '변한
    다.'라고 하는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완벽한 상태는 결
    국 쇠락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며, 이런 상태가 오면 항상 조심
    해야 됩니다. 만약 지금 나의 상태가 집안일이나 회사일이니 아주
    좋은 상태라면 마음을 편하게 갖지 말고 오히려 경계해야 됩니다.
    오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곧 서서히 작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대상. 물이 불위에 있어서 왕성하게  타고 있는 불을
        꺼버리려고 하는 것이 기제(旣濟)이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환란이 일어날 것을 경계하여 예방에
        노력한다.
     
      [기제(旣濟)]의 아래 괘는 불을 뜻합니다. 바깥으로 훨훨  퍼져
    나가고 안으로는 끌어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불입니다.
    불을 보면 훨훨 타고 있지만 구심점을  향해 모여있기 때문에 흩
    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 괘는 물입니다. 물은 바깥에서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으면
    서 안에서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은 떼어 놓으면
    없어져 버리지만, 물은 갈라 놓으면 동그랗게 뭉쳐 버립니다.
      그런데 가운데가 물은  양에너지이고 불은 음에너지이  때문에,
    양에너지가 음에너지보다 행사하는 힘이 강해서, 물은 불을 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 한 그릇이 불 하나를  끌 수 있지
    만, 조그마한 불이 물을 끓이지는 못합니다. 즉 물의 행사력이 더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기제(旣濟)]와 같이 완벽한 상태는
    물이 불을 끄듯이 곧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완벽한 상태에서는 항상  경계심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완벽하라. 온전하라. 그러나 경계심을 잃지마라."  이것이
    [기제(旣濟)] 괘가 주는 교훈입니다.
     
        첫 번째 양효. 함부로 전진할 때가 아님을 알고 앞으
        로 굴러가는 차바퀴를 잡아당긴다. 여우가 그 꼬리를
        적시면 되돌아 나오는  법. 자제하여  몸을 조심하면
        탈이 없다.
     
      "여우가 그 꼬리를 적시면 되돌아 나오는 법" 여우라는 짐승은
    물을 지나갈 때 꼬리를 치켜들고 젖지 않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물이 꼬리에 닿아 꼬리가 젖는다면  여우는 그 물을 가지
    않고 되돌아 나옵니다. 그런 물에는 자기가 휩쓸려 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여우가 꼬리를 적시면 되돌아 나오는 것처럼 잘된
    다고 해서 함부로 나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 왕창 부서져 있는 자동차들은  악셀을 밟으면 무조
    건 나간다고 신나게 가다가 저승으로 간 사람들입니다. 여우가 꼬
    리를 적시는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나간 사람들입니다. 물론 자동
    차는 앞으로 굴러가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적당
    한 한계성을 갖고 굴러가야  합니다. 그래서 언덕을 내려갈  때는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내려가야지 가속도가 붙도록 신나서 내려가
    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음효. 여자가 예복에  쓰는 머리의 장식품을
        잃어버린다. 찾으려고 소란을 피우지  말고 포기하는
        게 좋다. 칠일이 지나면 자연히 되돌아 온다.
     
      잘된다고 신나게 하면 상황에 맞는 경계선을 잃어버립니다. 권
    력이 좋다고 무조건 오래하게  되면 어디선가 날라오는  한 방의
    총격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맛있다고 해서 한 입에 먹으려
    고 하면 음식은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입이  아파서 씹을 수가 없
    습니다.
      "여자가 예복에 쓰는 머리의  장식품을 잃어버린다." 잘된다고
    신나서 하면 장식품과 같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래도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너
    무 자기 만족에 치우친  상태로 해서는 안됩니다. 주머니에  돈이
    가득 들었다고 즐거워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도둑놈이 뒤따라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상황을 살피지 않아 여자가 장식품을  잃어버리듯이 행동하면 안
    되겠습니다.
      "찾으려고 소란을 피우지  말고 포기하는게 좋다."   그렇다고
    그 장식품을 찾으려고 쫓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도리에 맞는 마
    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면 저절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신은  항상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순간을 놓쳤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가지고  찾아다닐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기회는 다시 주어지고 있습니다.
      로미오가 죽었다고 로미오가 떠난 것은 아닙니다. 3년도 넘기전
    에 또 다른 로미오가 찾아옵니다. 단지 이름을 피노키오라고 바꿨
    습니다. 도리에 맞는 바른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면 상황은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약간의 잘못이 저질러 졌다고 해서  그 잘못에
    너무 매어져 있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크게 갖고
    멀리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양효. 은나라의 왕 고종이 3년만에 오랑케를
        토벌하였으나 3년동안 국력이 매우 피폐하였다. 고종
        같은 훌륭한 임금도 그러하였거늘 소인은  이러한 벅
        찬 일을 하지 말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반드시 노력한 만큼 이득이 오는 것은 아닙
    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면서
    한 번도 놀러가지 않고 평생을 돈버는 일에만 열중하다보니까 금
    고안에 돈은 가득 쌓였으나 머리털은 다 빠지고 손발은  늙고, 줄
    리엣 같은 아내와 놀러가야지 하고  아내를 쳐다보니까 줄리엣은
    간데없고 쭈글탕 할망구만 앉아 있었습니다. 너무  치우쳐서 하면
    겨우 성취는 했을는지 몰라도  힘이 다 빠져서  오히려 회복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됩니다. 때문에 잘될수록 잘못된 것은 항상 예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용을 통해서 주변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 그것이 인생의 땀에
    의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무리하지 말 것이며, 능히 꼬리가 물
    에 닿지 않는 곳에서 중단하지 말 것이다." 그 두가지만 병행해서
    한다면 하이젠 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주는 우주의 비밀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음효. 배 밑에 스며드는 물을 헝겊으로 막는
        다. 방심치 말고 항상 경계 하여야 한다.
     
      앞마음과 뒷마음이라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할 때 작심삼일이 되
    는 것은 뭔가를 해야지 하고 시작하는 것은 바로 앞마음이 했기 때
    문입니다. 일의 완성은 뒷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뒤로 물러설수 있
    는 것은 뒷마음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생각할
    정도의 일은 사실은 없습니다. 뒷마음은 어찌보면 상당히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하기 때문에 도리어 희망을 빨리
    느끼지를 못합니다. 희망에 마음 빼앗기지 않으며 나아가기에 희망
    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란 뒷마음으로 해야 합
    니다. 배 밑에 스며드는 물은 나쁜 조짐을 말한 것입니다.  헝겊으
    로 막는 것은 불안한 조짐을 보고 일에 실수함이 생기지 않도록 방
    비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항상 방심하지 말고 경계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앞마음으로 하면 기분이 들뜨게 됩니다. 그러나 뒷
    마음은 들뜬 기분으로 갑자기 열심으로 하거나 감격의 눈물을 쏟아
    내며 미리 감동에 겨워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미리 감정이
    움직이면 이미 그 일을 하기도 전에 에네르기를 다 소비해 버린 것
    처럼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마음과
    뒷마음의 성과가 다른 것입니다. 앞마음이 열심히 하는 것은 뒤에
    큰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만족은 앞마음으로 해서는 않됩니다. 뒷
    마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그 때가 바로 안심을 할 수 있는 때
    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 동쪽 이웃에서는 소를 희생으로 바쳐
        서 성대한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서쪽 이웃에서의 성
        의를 다한 검소한 제사가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생각이 우선하지만 짐승은 가슴이 우선합니다. 사람은 생
    각에 의해서 가슴을 배신할 수는 있지만 짐승은 생각 때문에 가슴을
    배신하는 일은 없습니다. 단, 가슴을 오래토록 지탱시키지는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병 중에 하나가 바로
    정신적인 병입니다. 이 이야기를 잘 들어 두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는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안경 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안경
    낀 사람을 멀리 합니다. 그 생각이 안경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는 것! 즉, 꺼림직하다는 것은 가슴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안경 낀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
    다. 중요한 사실은 왜 소화가 되지 않는지를 스스로가 모른다는 사
    실입니다. 가슴에 안경이 걸려 있는 사람이 안경 낀 사람과 키스를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 경련이 일어 날 수도 있습니다. 하
    기 싫어하는 가슴으로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편의 안경에서
    추하다고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원인은 자신
    이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입니다. 가슴에 걸리는 일
    은 하지 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받아 들여라
    하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힘들다는 일이 자기 자신에게 주어졌을
    때,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을 때 결코 그것이 자기
    의 한계라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가슴에서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
    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가슴만 열줄 안다면 항상 돈을 만나
    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을 열어 놓치 않는다면 들어 오는 돈이
    벌레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결코 돈을 모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쪽 이웃에서는 소를 희생으로 바쳐서 성대한 제사를 지낸다. 그
    러나  서쪽 이웃에서의 성의를 다한 검소한 제사가 더 많은 복을 받
    을 것이다." 즉 가슴이 열린 뒤에 머리를 쓰면 발전이 되지만 가슴
    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하면 모든 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쪽 이웃이란 바로 이 앞에 나타
    난 흥분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를 희생으로 바쳐서 성대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기분에 의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완전한 결과가 도출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쪽이웃인
    뒷마음으로서 결과의 끝을 가지고 성심성의를 다한다면 큰 복을 누
    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지나치게 나아가서 깊은 곳에 빠져
        머리까지 적셔진다. 위험하다. 몸을 보전하기가 어렵
        다.
     
      이 여섯번째는 음효입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응축됨이 있는
    것이니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나아가면 깊
    은 곳에 빠져 더 이상 진전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위험하니 몸
    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빨리 되돌아 올
    줄도 알아야 합니다.
     
      수화기제(水火旣濟)는 곧 '수승화강'입니다. 수승화강은 생명의 존
    재모습이기도 합니다. 인체로 보면 명문(命門)의 화(火)를 기르는 것
    이니 이 수승화강이 되어야 중앙의 토(土)를 이루어 단(丹)이 형성되
    고 생명이 유지되어 건강을 지키는 것입니다. 수승(水昇)이란 명문의
    진수(眞水), 진화(眞火)가 상승하는 것이며, 화강(火降)이란 음화 탁
    기가 하강하는 것입니다.  물은 아래로 흘러내리고 불은 위로 오르고
    자 하니 수화기제는 온전히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어 변화가 없
    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뒤집어야 하는 것입니다. 외경의 첫편
    '음양전도편'은 바로 수행을 통해 음양을 바로잡아 몸을 온전케 한다
    하였으니 바로 수승화강(水昇火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순역(順
    逆)을 뒤집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水)는 하강하고자 하고 화(火)는
    상승하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마음(心)을 다스려 정(精)을 다스림을
    말합니다. 수화(水火)는 원래 서로가 쫓는 것이라 火가 없으면 水가
    불안하고, 수(水)가 없으면 화(火)가 역시 불안합니다. 건널 수 없는
    미제(未濟)와 상대적으로 기제(旣濟)는 건너감을 의미합니다. 즉, 물
    이 머리에 있고 불이 아랫배에 있는 상태를 상징하니 이는 건강의 균
    형을 상징합니다.  마치 한라산의 꼭대기에 백록담이 있고 그 지하에
    는 마그마가 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는 상서로움을 상징하
    고 있습니다.
     
     수화기제는 완벽한 상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
    상은 더는 발전하지 않고 허물어진다는 것을 암시 합니다. 위에는 물
    이고 밑에는 불을 상징합니다. 급한 불은 물로서 끄면 됩니다. 불 위
    에 물을 끼얹으면 불이 꺼집니다. 그러나 불이 물을 증발시켜버릴 수
    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불이 물을 끓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해를 머리로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한 것은 자기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것 그것은 가슴입니다. 만약 연애를 하는데  사랑하는 상대
    방의 얼굴에 키스를 하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보고 왜 내 뺨에다 침을
    묻히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가슴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열리
    지 않은 사람은 변화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만물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895
  • 62. 뇌산소과(雷山小過)
    『 저자세로 나아가다 』
     
     ●     정치가는 국민들로부터 선출을 받지만 결국은 그 정
     ●     치가가 국민을 움직입니다.  유능한 기업가는  돈이
     ○     있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일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돈 위에서 돈을 움직입니다. 아주 유능한 인간은 자
     ○     기라고 하는 속안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자기
     ●     자신을 마음대로 내어 쓸 수 있게 됩니다. 자기라는
     ●     것의 안과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뇌산소과(雷山小過)
     
        [소과(小過)]괘는 크게 발전한다. 시세에 순응하여 저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  좋다. 중위(中位)에는  유효가
        있어서 내세워야할 자리에서 유효가  약하다. 강효가
        중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큰 일에  좋지 못하다. 소
        과(小過)괘는 날라가는 새의  형상이다. 새가  위로만
        올라가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러나  내려오는 것은
        좋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우리가 사는  길을 그렇게 어렵게 만들
    어 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매우 복잡하게  생겼지
    만, 사는 길은 아주 단순하게도 살 수 있게끔 신은 배려해 놓았습
    니다. 이 세상은  3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있고, 둘째는 내가 할 수  있게끔 움직일 수 있는 물체의  세계가
    있고, 셋째는 법칙을 구사할 수 있는 하늘의 세계가 있습니다. 때
    문에 법칙의 세계를 무시하고 활동해서는 안되며, 할 수  있는 만
    물의 세계, 즉 땅의 세계를  거부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하려는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는 뜻이 없는 자도 되지 않습니다.
      뜻이 있고, 뜻에 걸맞는 준비물은 되어져 있으나 법칙의 세계를
    뚫고 나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맨 처음
    에 자동차가 나왔을 때는  앞에 유리창이 없었습니다. 그저  차가
    달리기만 하면 된다하고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후  차의 속력이
    빨라지게 되자 아무 것도  없는 눈앞에서 무언가가  자꾸 부딪쳐
    왔습니다. 즉 바람이었습니다.
      내가 일정한 행동을 하면 압력이라고 하는 반사적인 힘이 일어
    나게 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갖고 시작했는데 되지  않는 사
    람은 세상으로부터의 압력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압력과 싸우지
    말고 조화하라." 신은 아주 단순한 조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조
    화를 아는 자에게 신은 축복과 영광과 번영을 주고  있습니다. 성
    공을 원한다면 먼저 법칙과 조화되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화를 할 때도 머리속안에서 상황을 묘사해 가면서 생각을 하
    면 정확한 추리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머리속에  정확한 그림을
    갖고 표현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외국에  가면 비록 언어는 통하
    지 않더라도 뜻을 전달합니다. 뜻을 전달하려면  먼저 머리속안에
    서 구체적인 것을 확실하게  가져야만 됩니다. 여러 가지  압력을
    미리 생각해서 작전을 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뜻밖의 상황을 만
    나게 되면 우리의 두뇌는 기발한 재치를 발동하게 됩니다.  그 재
    치는 신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또 하나의 보너스입니다.
      소과(小過)괘는 가운데 두  개가 양효이고  가장자리는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운데는 굳건하게 생겼고 양쪽으로는 포근하
    게 감싼다는 뜻에서 날개가 달려있는 새를  의미합니다. 주역에서
    는 이 괘는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발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역은 조심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는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새가 높이 하늘을 날려면 대기로부터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만
    합니다. 인간도 내면으로부터의  갈등을 뚫고 나아가야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미 대기의 기압을 뚫고 오른 사람은  마음안에 갈
    등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자신을 묶어놓지는 않습니
    다. 그러나 기압을 뚫을 수 없는 날개는 하늘이  가차없이 추락시
    켜 버립니다.
      우리의 삶은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이
    괘는 가운데 양성에너지가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외부 압력에
    항상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럴 때는 남이 볼 때  치사하리만큼 조
    심해야 합니다. 이 괘는 주변이 음효로서 모든 만물을  흡수할 수
    있는 형상입니다. 즉 강한 자기 자신의 뜻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세로  겸손해야 합
    니다. 이 괘가 말하는  핵심은 아무리 자신감이 넘친다  하더라도
    저자세로 냉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새가 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소과(小過)괘는 지나치리만큼 작게 살아가면 발전합니다.  세상
    이 아무리 아니꼽더라도, 못마땅하더라도,  분노가 일어나는 자기
    자신을 낮췄을 때 우리는 진리와 세상으로부터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강효가 가운데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큰  일에 좋
    지 못하다." 그래서 속은 강하고 겉은 부드럽게 외유내강의  정신
    을 갖고 세상에 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크게 발전을 하게 됩
    니다.
      정치가는 국민들로부터 선출을 받지만 결국은  그 정치가가 국
    민을 움직입니다. 유능한 기업가는 돈이 있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일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돈 위에서 돈을 움직입니다. 아주 유능
    한 인간은 자기라고 하는 속안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내어 쓸 수 있게 됩니다. 희노애락에  빠지지 않
    기 위해서는 이 뇌산소과(雷山小過)괘를 거쳐가야 합니다.
      "소과(小過)괘는 날라가는 새의 형상이다. 새가 위로만 올라가
    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러나 내려오는 것은  좋다." 날라오르는
    것은 대기의 압력을 거슬러야 하지만 날아내리는 것은 지구의 압
    력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못마땅한 것을 참고 나
    아갈 때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래로 땅을 향하는 착
    실한 자세를 가지면 대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상. 산위에서 우뢰가  치는 것이 소과괘의  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지나칠 만큼 공손한  태도를
        가지고 상(喪)이 있을 때는 지나칠 만큼 슬퍼하며, 금
        전은 인색하다고 할 만큼 절약한다.
     
      "지나칠 만큼 공손한 태도를 가지고  상(喪)이 있을 때는 지나
    칠 만큼 슬퍼하며, 금전은 인색하다고 할 만큼 절약한다." 우리가
    너무 자신감에 차있으면 항상 우뢰가 치게 됩니다. 이  세상은 기
    차가 지나가는 것도  번개입니다. 즉 위험한  것입니다. 자동차가
    쌩쌩 거리를 달리는 것도  위험한 것입니다. 항상 어느  곳에든지
    번개는 치고 있습니다. 자기라고 하는 높은 산이 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번개와 싸워서는 안됩니다. 겸손하게, 공손하게 태도
    를 가지면 결국은 발전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음효. 자기 힘은 생각하지 않고 나는 새처럼
        비약을 꿈꾸면 결과는 난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
        이다. 흉하다.
     
      "자기 힘은 생각하지 않고 나는 새처럼  비약을 꿈꾸면 결과는
    난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충분한
    준비가 되어져 있느냐를 항상 생각하고 나가야 됩니다. 번개가 친
    다고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공소한 마음으로 번개에 대처할 수 있
    는 준비를 해야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면 도리어 번개로부터 수
    없이 많은 전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군가가 번개로부터 전기를 얻었기 때문입니
    다.
     
        두 번째 음효. 할아버지와 먼저 만날 수 있지만 일부
        러 그 앞을 지나서 할머니와 먼저 만나는  것처럼 임
        금의 앞에 직접 나아가지 않고 그 신하와 만난다. 이
        렇게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있으면 허물은 없을 것이
        다.
     
      "할아버지와 먼저 만날 수 있지만 일부러 그 앞을 지나서 할머
    니와 먼저 만나는 것처럼 임금의 앞에 직접 나아가지 않고 그 신
    하와 만난다." 부득이 사장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위의  상사로부
    터 허락을 얻어서 만나야 된다는 뜻입니다. 즉 작은  것부터 먼저
    만난다는 것입니다. 안하무인격으로 해서는 안되고 겸손해야 된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다고 해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물러
    서는 사람은 중심이 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부서
    져 버립니다.
     
        세 번째 양효. 밟고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말고 이것을
        방지하도록 힘써라. 잘못하면 해침을  당할지도 모른
        다. 흉하다.
     
      지나치게 나가려고 하는 마음을  막아야 합니다. "밟고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말라. 도리어 그것을  방지하라." 우주의 메카니즘을
    터득하게 되면 시나리오의 장애를 받지 않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
    면 다 예언을 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 영화를 미리 보았기 때문이
    아니고 아주 환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영화가  훤히 보
    이게끔 되면 이제 인생의 시나리오로부터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숨을 죽이면서  스크린을 쳐다보
    듯 삶과 밀접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네 번째 양효. 탈은 없다. 지나치게 나아가지 말고 주
        위와 조화되게 가라. 자기 마음대로  일을 행하면 몸
        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고 위험하다. 항상 스스로 경
        계하고 때를 기다려라. 오랫동안 정도를 계속 지켜나
        아감이 좋다.
     
      "지나치게 나아가지 말고 주위와 조화되게  가라." 1단계 성공
    을 했다고 해서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으나 자신감만 믿고 무조
    건 나아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잘되었다고 해서 기분이 좋다고 웃
    으면 그 다음 단계에 난관에 부닥치게 됩니다. "항상 스스로 경계
    하고 때를 기다려라."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자신의
    자신감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날개가 부러질 지도 모
    릅니다.
     
        다섯 번째 음효. 구름이 생겼으나 아직 비가 되어 만
        물을 적셔주지 못한다.  임금이 주살을  가지고 나는
        새를 쏘지 않고 바위틈에  엎드려 있는 새끼를  잡는
        다.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아직까지 자유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항아리를 만들다가 그것을 깨뜨려
    접시를 만들었다면 본인의 마음은 무슨 창조를 한 것같은 만족감
    이 들겠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면 항아리가 접시가 되었다는 지극
    히 평범한 것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내 마음을 믿지  말고 능력이
    곧 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 있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
    습니다. 중소기업이 성공했다고 해서  비를 내릴 수 있을  만큼의
    구름이 된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은 비를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것 저것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새를 쏘지  않고 바위틈
    에 엎드려 있는 새끼를 잡는다." 아직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
    력을 갖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착
    실히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에 힘쓴다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만나야 할 것을 만나지 않고 지나간
        다. 너무나 자신이 높다하여 교만하기 때문이다. 새가
        함부로 날아 설치면  그물에 걸린다.  이것은 자신이
        불러들인 재앙인 것이다.
     
      아직 수준이 낮은 사람이 다  된 것처럼 "부라보"를 외치면 그
    로 인해 큰 화를 입는 법입니다. 성공은 눈 앞의 목표를 정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앞을 정복하면서 전진하는데서 오
    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그리고 뒤에서 받쳐서 따라오는  것입니
    다. 한 번 성공했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이제부터 또 다
    른 시작인 것입니다.
      "너무 멀어요."하고 말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왜냐면 진정한
    충만은 옆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를 성공했다고 해서 외부
    의 압력을 터득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곳에든지 압력은  있습니
    다. 성공은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압력을 파괴하고 지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을 때 날개 품안에 행복이 찾아온다고
    이 괘는 말했던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048
  • 61. 풍택중부(風澤中孚)
    『 성실한 믿음 』
     
     ○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역은 인류학
     ○     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학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이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사람이 자신의 마음만 갖고서는  그 마음먹은대로
     ●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어떻게 만물에게 전
     ○     달 되어서 어떻게 만물을 따르게 하는가하는 이것
     ○     이 곧 과제입니다. 바로 이것을 알면 우주의 찬란
            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비우고 이 괘가 말하고 있는 가르침을 깊이 명심
            해서 들어야만 합니다. 가운데 두 개만이 음효이
            며 나머지는 양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풍택중부(風澤中孚)
     
        중부(中孚)란 마음안에 성실함이 충만함을 뜻하며 孚
        라는 글자는 爪(손톱)과 子(자식)의 글자의 합성어로
        어미 새가 날개 밑에  알을 품고 부화하는 것을 나타
        낸다. 어미새의 사랑이 알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듯 성
        의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괘의 형상은
        위에는 바람이 사방에 불어닥쳐 아래 있는 연못을 움
        직이니 물결이 치는 모습이다. 즉, 윗사람의 성의 있
        는 마음이 아랫 사람을 감동시켜 즐겁게 따르도록 하
        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성의를 갖고 나아가면
        위난을 극복하고 뜻을 성취할 수 있다.  또한 상하의
        괘가 입을 맞대고 있는 형상이므로  진실하게 결합된
        두 사람을 상징하는 괘이다. 중부(中孚)는 유효(3,4
        효)가 괘의 중심에 있어 허심(虛心)을 나타내고 강효
        (2,5효)가 중위(中位)를 얻어 성의(誠意)가 충실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성의로서 국가를 태평하게 이끈다
        면 백성은 즐겁게(兌) 따른다(巽). 무지한 돌고래일
        지언정 따르게 된다. 길하다. 근본이 성실하다면 설
        사 큰 강을 건너는 위험을 범하여도 만사가 순조로운
        것이다. 괘상은 가운데가 그늘지고 비었으니 나무를
        파서 구멍을 뚫는 형상이다. 크게 보면 火의 離괘를
        나타내기도 한다. 무슨 일에나 성의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의지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중부(中孚)는 성실한 믿음을 통해서 충만함을 얻는 길괘(吉卦)
    입니다. 모든 성장하는 것들은 이미 그 마음이 성장되어져 있어
    야 합니다. 만약에 위로 나아감이 무서우면 더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두려우하면 더 이상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착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키
    지 못한다면 큰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마치 어미닭과 같이 사랑
    을 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바람이 위에서 불어야지 밑에
    있는 물결이 움직이듯이 위에 있는 마음이 밑에까지 크게 작용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작은 물건을 꾸밀때도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날 것입니다. 해야되겠다는 마음이 짜증보
    다 크면 짜증 나는 가운데서도 일을 계속해서 진행해 나가지만
    마음이 짜증보다 작다면 일의 중간에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하기 싫은것이 생길 때 바로 그럴 때 정성을 쏟아
    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늘로 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
    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은 작습니다. 그러나 나를 고집
    하지 않고 내 마음을 쓰면 그것은 곧 하늘의 마음이 됩니다. 바
    로 그 때 자신이 정성을 들여 신경을 쓴 대상은 자기 앞으로 끌
    려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치 않으면 결코 하늘은 도와주지 않
    을 것입니다. 정성을 쏟으면 세상은 즐겁게 따르게 되는 것입니
    다. 커다란 사랑이 아랫사람을 감동 시켜서 따르게 만드는 것입
    니다. 자기 보다 작은 것들이 말을 듣지 않을때일수록 그것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겨하여
    따르니 하늘을 감화 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음덕은 돼지와 물고기
    에까지도 감화를 미치는 것입니다.
     
      중부의 괘상은 빈배를 형상합니다. 빈 배는 나를 고집하지 않
    고 성리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순하게
    흘러 가는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 중에 하나는 선입견을 갖지 않
    고 만물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 성의만 차 있고 만물
    을 바라보는 눈이 사랑으로 차 있으면 또한 그것이 한결같이 변함
    이 없으면 크게 발전하고 번영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는 법입니다. 피한다는 것은 그
    마음이 좁기 때문입니다. 피하는 자는 하늘이 돕지 않는 것입니
    다. 내가 하늘로 가고자 하면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고
    자 하는 자리 또한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늘을 느낄 수 없
    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로써만 살지 말고 하늘로써 살아야만
    합니다. 나의 인생이 아니라 하늘과 함게한 인생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랬을 때 크게 발전하고 번영하게 되는 하늘로부터
    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상. 연못(兌) 위에 바람이 불어서 물결을 움직인다.
        이것이 중부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통해 따듯
        한 정을 가지고 재판을 판결하고 사형수를 감형시킨다.
     
      성리와 사랑을 가지고 잘잘못을 재판하고 사형수까지도 감형을
    한다. 즉 죄지은 사람까지도 감화 시켜서 그 사람을 바꾼다는 것
    이니 결국 죄수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양효. 현상(現狀)에 만족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길하다. 지나친 야심을 품으면 안식을 얻지 못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안정되게 하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길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마음을 품으면 불안하게 될 것입니
    다. 즉,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처해져 있는 환경을 끌어
    올리는 것이 바로 성공인 것입니다. 자동차가 달릴때는 달리는
    차 안에서는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합니다. 빨리 가고자 한다면 차
    를 빨리 가도록 해야지 사람이 앞으로 튀쳐 나가면 안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야심은 안식을 얻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바로 양성 에네르기가 현상을 떠나서 움직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학(鶴)이 산 그늘에서 울고 그 새끼가
        이 소리에 대답하여 응답한다. 마음으로 동지를 구하고
        서 로 부르며 산다. 나에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동지와
        함께 술을 마신다. 진심으로 뜻이 맞으니 즐겁다.
     
      자기 사랑을 진심으로 베풀때 그 때 비로소 응답이 온다는 것입
    니다. 좋은 것은 니것 내것을 따지지 않고 공평히 나누었을때  진
    심이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가 있으니 충심을 얻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음효. 적을 만난다. 어떤자는 진격하고 어떤
        자는 도망친다. 우는자가 있고 노래하는 자가 있으니
        대열은 지리멸렬하고 계통이 깨어진다. 지휘자가 지휘
        를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효는 음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장을 하려고 합니다.
    재벌의 한 사람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회사에 오래되고
    고참이더라도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사장을 시켜선 안된다고 하
    였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커지면 잘 돌아가면 자연히 커다
    란 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는 커지지 않고 마음만 사장이 되
    려고 하면 결국 회사는 망하는 것입니다. 매사가 되어지지 않습
    니다. 작다고 생각하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싫은 것이라 하더
    라도 그 모든 것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때 진정한 높은 지위를 스
    스로 얻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과도 없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음효. 달은 만월에 가깝다. 지금이야말로 한
        패들과의 관계를 끊고 위에 5양에 봉사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탈은 없을 것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시기하는 자들에게 조차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
    다. 바로 그렇게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들과 평행
    선상의 친분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서로의 뜻이 맞는다고해서 동
    급에서 어울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평행선상에 서게 되면 꼭 남자는 여자에게
    종속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위아래서 당기고는 있지만 그 차원이
    같아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차원이 같은 곳에서는 분리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헤어지게 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
    서 그 눈높이가 5양의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높은쪽
    을 택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양효. 성실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나아가면
        탈은 없다. 허물이 있을리가 없다. (中正)
     
      소리가 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소리가 아니듯이 사람은 눈높
    이를 키워야 합니다. 그것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이 나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만족에서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늙어서도
    젊게 살려면 어느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양효. 학이 하늘로 오르려 한다. 분수에 넘치
        는 일을 해보지만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설사 정도(正
        道)를 지키더라도 흉하리라.
     
      실력에 맞지도 않는데 오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리에
    올랐을 때는 반드시 제대로 되었는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사람
    들을 이끌어 갈때는 반드시 제대로 따라오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
    니다. 항상 어느 부분에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야 하며
    좋지 않은 부분은 메꾸고 먼저 좋은 일로 만든 연후에 굳건하게 움
    직여야 함을 이 중부괘를 보고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428
  • 60. 수택절(水澤節)
    『 절제와 절도 』
     
     ●     일의 완성을 위해서는 중간과정에는 항상 괴로움
     ○     과 고통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참아
     ●     가면서 절제를 통해 평형감각과 균형감각을 느끼
            면서 무리하게 원칙만 고수하지 말고 나아가는 상
     ●     황을 잘 살펴, 즐겁고 기쁘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
     ○     니다.  때론 위난도 받아들이고 자기의 입장을 지
     ○     켜 절도있게 나아가며 중정의 도를 행할 때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곤난은 언제까
            지나 무한정으로 고수할 수는 없습니다. 무리하면
            그 길은 더 나아갈 수 없는 극한에 부딪치게 됩니
            다.  그래서 즐겨서 험난한 것을 수양하되 절도로
            써 지위를 지키고 중용의 도를 행함으로써 막히지
            않는 것입니다.
     
                           수택절(水澤節)
     
        절(節)이란『한계를 지켜 머물고 절제를 매듭을 짓는
        다』란 의미다. 이른바 절도를 지키는 것이다. 또한
        일의 매듭을 통해 다음 단계로의 거듭남을 뜻한다.
        절(節)의 본래 의미는 대나무의 마디를 가리킨다. 그
        마디를 통해 한계를 짓고, 또 다른 마디의 매듭을 지
        어 그 이어감이 계속됨을 의미한다. 절제된 건강으로
        부터 조화된 대인관계, 의로운 정치, 그리고 천지의
        사계절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 사계절의 순환
        도 모든 절(마디)이 있기 때문에 순조로이 진행되는
        것이다. 괘의 형상도 연못인 태(兌)괘가 물인 감(坎)
        괘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물이 범람치 않고 잘 조절
        이 되어 제방이 된 모습이다. 인간의 달콤한 유혹은
        물리치기가 괴롭지만 그러나 그 괴로움(坎)을 즐거운
        기쁨(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절(節)인 것이다.  절
        의 매듭짓는 것을 알아야만 참된 행복이 갖춰지는 것
        이다. 그러나 너무 고집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절개
        가 지나쳐 병에 걸린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절(節)괘는 발전을 상징한다. 강효와 유효의 수가 반
        반씩 나뉘어져 강유의 조화를 이루었고, 강효가 중위
        를 얻어 훌륭한 군주가 중용의 도를 지킴을 상징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험난한 것을 받아들인다. 곤란에 굽
        히지 않고 괴로움을 참아나가는 굳은 절개는 높이 평
        가되어 옳다.
     
      절(節)괘는 작은 것을 통하여 큰 것을 이루는 길괘(吉卦)입니다.
    강효(剛爻), 유효(柔爻)가 다 같이 균형을 이루고 2,5효인 중앙에
    강효가 위치하고 있어 중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의 완성
    을 위해서는 중간과정에는 항상 괴로움과 고통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참아가면서 절제를 통해 평형감각과 균형감각을 느
    끼면서 무리하게 원칙만 고수하지 말고 나아가는 상황을 잘 살펴,
    즐겁고 기쁘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론 위난도 받아들이고
    자기의 입장을 지켜 절도있게 나아가며 중정의 도를 행할 때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節)의 도(道)에 의해 사계절이 운행
    되듯이 이와같이 국정(國政)을 살피고 행하면 IMF와 같은 재정적
    인 파탄을 겪지 않고 위정자(爲政者)들도 국민을 고통에 몰아넣는
    일 또한 없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배움에 있어서
    도 부자집 자식의 배움과 기업가 자식의 배움이 다릅니다. 기업가
    의 자식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칫
    목숨을 헛되게 낭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련을 너무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발전하려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어
    떤 층이 있음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기업가의 자식은 전체를 움
    직일 줄 아는 덕망을 길러야 하며 부잣집의 자식은 부모의 재산을
    너무 믿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서 시련을 겪어 낼 줄 아는 힘이 필
    요한 것입니다.
     
      이 괘는 밑에는 연못을 뜻하는 괘이고  위는 물을 뜻하는 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못위에 물이 있으면 제대로 되어 있는 것입
    니다. 연못만 있고 물이  없으면 그 연못은  쓸모가 없습니다. 또
    물만 있고 연못이 없으면  물은 소멸해 버립니다. 그래서  담겨야
    할 것이 있고 담을 것이  있으면 그것이 하나의 층이 됩니다.  그
    층을 '절(節)'이라고 그럽니다.
     
      지금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있는 것이 절(節)과  절(節)이 갖
    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대나무가  위로 뻗어나가야 하는 것이  있
    고, 뿌리쪽에서 당기는 것이 있고, 이것이  어느 순간 딱 맞을 때
    마다 하나의 마디가 생겨서 그 마디를 딛고 또 뻗쳐 나가는 것입
    니다. 뿌리에서부터가 아니라 중간 중간 서는 층이 있다는 것입니
    다. 이런걸 하나의 '절'이라 합니다. "절(節)은 크게 발전하는 것
    을  상징한다.  강효와 유효의 수가 반반씩 나뉘어져 강유의 조화
    를 이루었고 강효가 중위를 얻어 훌륭한 군주가 중용의 도를 지킴
    을 상징한다." 물과 연못이 합쳐지면 하나의 절이 되듯이 이 괘는
    음효와 양효가 각각 3개씩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 물은 남자고 연
    못은 여자입니다.  여자는 받아들이고 남자는 들어가서 서로 합하
    게 됩니다. 이렇게 합(合)이 되면 발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을
    한 만큼의 성과가 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일을 해서 또 성과가
    오는 식의 발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없거나
    안에 쥐고만 있어 행하지 않거나 하면 결국 쪼개져 나갑니다.
     
      하괘는 연못을 뜻하는 괘이면서 즐거움을 뜻하기도 합니다.  상
    괘는 물을 뜻하기도 하지만 험난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험난한 것을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성공하
    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가장  기본은 '더 이상 나는 못한다.'
    하는 그 시점에서 정신차리고 넘어서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한 두
    번 시련을 넘어가다 보면 다음에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 오더라도
    자신이 뒤로 물러서지 않게 됩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성공직전에 포기해버린 사람입니다.
    갑자기 밑천이 떨어졌다느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느니 등등 자질
    구레한 변명이 많지만 그건 본인의 사정일 뿐 성공과 실패의 직접
    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을 이겨냈느냐
    못이겼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려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만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은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에  나타나 있듯
    이 "나에게 평안과  안녕을 주지 마옵시고 시련이 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곤란에 굽히지 않
    고 괴로움을 참아나가는 굳은 절개는 높이 평가되어 옳다. 그러나
    곤난은 언제까지나 무한정으로 고수할 수는 없다. 무리하면 그 길
    은  더 나아갈 수 없는 극한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시련을 극
    복한다고 해서 일부러 시련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러
    시련을  찾아 다니는 사람은 시련에 치여 죽게 됩니다. 중요한 것
    은 시련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저항력이 필요하며 시련은 될 수 있
    으면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시련을 이겨야 되지
    만 나중에 터득해야 될 것은 시련을 피하는 길을 아는 겁니다. 그
    래야 "무사(無事)가 가장 큰 안전이니라."를 알게 됩니다. 무사해
    야지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즐겨서 험난한 것을 수양하되 절도로써 지위를 지키고 중용의
    도를 행함으로써 막히지 아니한다." 하나의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때 그때마다의 절도를 지켜서, 다시 말하면 하나 하나마다 발판
    을 만들고 그 발판을 안정권으로 만들어서 저항력을 갖추되 중용
    의 도를 실행하여 더 이상 시련이 오지않도록 나아가야만 막히지
    아니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천지는 절의 법칙이 있음으로써 사계절이 성립한다." 봄과 여
    름사이, 여름과 가을사이, 가을과 겨울사이  또 어느 지방은 춥고
    어느 지방은 더운 것이 '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절도와 절
    도가 뭉쳐서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여러  세포가 한
    덩어리로 절도있게 뭉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하
    나 하나가 절도있게 뭉쳐서 하나의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대상. 연못에 물을 담고 있다. 이것이 절(節)의 괘상
        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생활의 규율을 정하고
        덕행(德行)의 기준을 의논한다.
     
      "법률제도를 마련하여" 여기서 법률제도는 육법전서 만을 뜻하
    는 것은 아니며 절(節)을 지킬 수 있는 제도, 공정히 절(節)을 지
    킬 수 있는 칸과 층을 의미합니다.
      "국민의 질서를 세운  뒤에 도덕적 행동을  논의한다." 질서를
    갖춰놓고 순화를 해야 무리가 없는 법입니다.  신호등이 고장나서
    차량 충돌사고가 났을 때 책임의 70%는 국가에게 있습니다. 국가
    가 신호 등을 고쳐놓지  않아서 난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먼저 신호등을 고쳐놓고 교화를  해야 국민이 수긍을 할  것이며,
    이러한 질서가 올바로  수립되어야 "재정의 파탄을  막고 백성을
    괴롭히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신호등이 고장났더라도 운전자는 스스로 조심스럽게 운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않은  잘못이 30% 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을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교통사고 특례
    법상 10대 위반사항을 위반하는 사람은  본인이 부주의했기 때문
    에 사고가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도를 모르고,
    절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난 사고는 죽더라도 변명이 없습니다. 차
    (車)라는 것은 가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만 항상 선다는 것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갈 수 있는 차는 설 수도 있어야 하며, 뚫
    려져 있는 길은 항상 막힐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다
    리는 항상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
    러면 "아이구, 그거 노이로제 걸려서 어떻게 살아요"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다 '절'을 알면 무리가 안되는 법입니다. '절'을
    모르고  어느 한쪽에서 안전만 구하다 보니까 '절'을 무시해서 사
    고를 불러오게 됩니다.
     
        첫 번째 양효. 때의 이로움과 이롭지 못함을 가려 경
        거망동을 삼가하고 신중히 처신하라. 집안에 들어앉아
        문밖에 나오지 않으면 허물은 없다.
     
      때의 이로움과 이롭지 못함을 가려서 경거망동을 삼가하고 신중
    히 처신하라는 것은 이익이 안되는 것은 일부러 마음을 일으켜 불
    이익을 초래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럴때는 궁금한 마음,
    하고싶은 욕망, 갖고싶은 욕구를 절제하고 마음을 집안에 들어앉
    듯 밖으로 표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설령 이익됨
    은 없어도 실수로 인한 큰 허물은 없다 하겠습니다.
      "집안에 들어 앉아 문밖을 나오지  아니한다." 첫 번째는 양성
    에너지이기 때문에 뻗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할 뜻이 있
    다고 해서 처음에 너무 뻗어나갈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할
    뜻이 있을수록 바깥의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횡단보도라는 것도
    일단 설 것을 대비하고 '혹시 뭔가  부닥쳐 오지 않는가?' 주의를
    하면서 좌우를 살피고 지나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맨  처음은
    할 마음이 있어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해야할 사람이 바깥을  보니까 "너무 무섭더라" 하여서
    나는 못하겠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사람이 길
    이 막히고 통하는 것이 다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은 때가 아니다. 기다리자. 그러면  허물은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
    다. 할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먼저 일단정지를 하고  살펴보고
    기다려서 '바로 이때 안전하게 건너가야 하겠구나.' 이것이 첫 번
    째 지켜야할 '절'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양효에서는 집안에 들어
    앉아 문밖을 나오지 아니 하지만 사람이 길이 막히고 통하는 것이
    다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양효. 집안에 들어앉아 있어서는 이롭지 못하
        니 흉하다.  기회를 잃어버려 앞길이 막히니 나아가지
        못한다.
     
      두 번째도 양에너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살폈으면 재빨리 나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가지 않고 "너무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즉, 사업은 벌리지 않고  시장조사만 하고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
    다. 시장은 항상 변하고 있는데 조사 끝냈다 해서 막상 할려고 하
    면 이미 또 변해있습니다.
      "기회를 잃어버려 앞길이 막힌다." 얼른  지나가야 할 때가 있
    습니다. 그것이 잘 조절이  되어야지만이 그 안에 절도가  숨겨져
    있는 겁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어려운 일도  즐거이 맞이하려고
    하는 뱃심이 있어야 됩니다. 어렵다고 뒤돌아서면  못배우는 것입
    니다.
     
        세 번째 음효.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절도를 잃게 된
        다. 슬픔과 비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대해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스스로 반성하면 허
        물은 없으리라.
     
      세 번째는 음효이기 때문에 해야한다는  것을 무조건 욕심으로
    만 잡아당깁니다. 거기서 필요한 것이  절도입니다. 먹어야 할 것
    이지만 남의 것은 먹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절도이며, 절도가 주
    는 도덕률입니다.
      나는 길을 가다가 십원짜리가 있으면 한  번 줏을까 말까를 살
    펴보고 줍습니다. 줍는게 원칙입니다.  백원짜리가 있으면 줏어서
    닦은 다음 주머니에 넣습니다. 천원짜리가 있으면 먼저 발로 밟아
    놓고 다음에 집어넣습니다. 만원짜리가 있으면 누가  보나 안보나
    를 살펴보고 얼른 집어넣습니다. 그러나 백만원짜리  수표를 줏으
    면 파출소에 갖다 줍니다. 왜냐하면 이미 분실 신고가  되었을 것
    이고 가지고 가봐야 쓸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무
    리하게 갖겠다고 해서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꿔봐야 덜커덕 잡
    히고 맙니다. 얼마나 큰 망신입니까.
      사람은 절도가 있어야 합니다. 백원이 됐든, 천원이 됐든, 백원
    이면 덜 소중하고 천원이면 그저 그렇고  만원이면 소중하다는 아
    닙니다.  다 돈입니다. 돈은 똑같습니다. 백원이든, 천원이든, 만
    원이든 똑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만원이면 주인에게 돌
    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은 손해보는 것같지만  언젠가는 자
    기 절도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의 생은 안정되게 됩
    니다. 생활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절도를 찾아서  행해야
    합니다. 그 절도가 바로 '안정'이라고 하는 최대의 행복을 만들어
    주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정말 성공할 사람인가 아닌가는 저 사람이 얼마만큼
    생활에 절도가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절(節)을 안다는게 상당히 힘든 것입니다. 이 절(節)은 결국은 중
    용(中庸)하고 같은 것으로 중용에 드러나  있는 선이 곧 절(節)입
    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살겠다고 아침  4시부터 일어나서 뒤
    로 걷다 나자빠져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節)을 제대로 지키
    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는 얼른 멈출 수 있는 절(節)을 갖고서 달려야 하는데  그 절(節)
    을 넘어버리면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에서도 절(節)이 필요하고 건강도 절(節)을 지켜 무리
    하지 말아야만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운동도 한꺼번에  많이 하지
    말고 몸이 차츰차츰 견뎌낼 수 있을 정도에서 조금 부족한 듯 싶
    을 때 끝내야 됩니다. 밥을 먹는 것도 절(節)을 지켜서 먹어야 합
    니다. 맛이 있다고 과식하거나 너무 소식을 해서 영양실조에 걸리
    면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절(節)을 지켜야만 발전이라는 것
    이 확실해 지는 것입니다.
     
      절(節)은 곧 성공이며, 경계며, 분명한 선입니다. 그런데 절(節)
    에 약하거나 절(節)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 나아가면  크
    게 발전을 못합니다. 절이 없이 무조건 하는 노력은  아무런 상과
    가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하루에 역기를  삼만번이나 들다보니
    힘줄이 늘어나고 팔이 빠지고 결국  역기에 깔려서 입원하였다면
    이것은 절도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력은 소용이 없
    습니다.
      '그렇다고 절(節)' 노이로제에 걸려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멍텅구리가 됩니다. 절(節)은 지나쳐도 안되지만 못미쳐도 안됩니
    다. 그 정확한 선이 곧 절(節)입니다. 그러나  그 절(節)을 안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어느  정도가
    절(節)인지? 차의 탄력과 차의 기능과 절도있는  속도를 알아낸다
    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럴려면  그 절(節)을 갖고 보
    는 눈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즉 눈에  절(節)이 있어야 합니다.
    110V인지 220V인지 안보고 아무데나 플러그를 꽂아서 퍽하고 망
    가져 버리는 것, 이런 것도 '절'을 살필 수 있는 안목이 없어서 그
    렇습니다.
     
        네 번째 음효. 절도를 지켜 마음을 안정한다. 위에서
        정한 일을 공손히 찾아가면 만사 순조롭게 행동할 것
        이다.
     
      돈좀 벌었다고 해서 과욕을 부리면 밑바탕이 흔들리게  됩니다.
    뿌리는 그대로 놔두고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집을 사 놓고선
    집이 안좋다고 전세 찾아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자
    기가 원하고자 하는 곳으로 집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떤 조
    그만 불편을 가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집 없는 개'가 됩니
    다. 그것이 절도가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음효가 제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가질
    것을 가질 수 있고 안정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정한 일"이란 다
    섯 번째 효가 정한 일인데, 해야 할 것을 알고 했을 때 비로소 되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조건 한다 하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절도
    를 가지고 했을 때  안정되는 것입니다. 번민은 스스로  답답해서
    일어나는 무지로부터의 번민입니다. 그게 다 자기 걱정입니다. 자
    기 걱정이란 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절도를  찾으면 번민은
    없어집니다.
      절도를 모르면 말을 못합니다.  어느게 중요한 지 전혀  모릅니
    다. 그런 사람은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건 찾는
    게 아닙니다. 행복이 오히려 불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행
    복하지도 않은 '불화가 없는  절도를 통해서 분명하게 구축한  영
    역' 이 이상의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오늘 하루를 내
    일의 담배값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
    이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길가다가 백만원 줏은 것은  전혀 행
    복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어느날 갑자기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몇 백만원이 날라가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도를 분명히 알아야만 마음이 안정이 됩니다. 절도를  갖추었
    을 때 보는 눈, 그 눈을 따라서 하면 만사가 순조롭게 됩니다. 절
    도는 생명력이 있어서 썩거나  곪거나 넘치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의 다섯번째에 있는 양의 바르고 안정된 길
    을 가듯이 한다면 크게 발전 한다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양효. 군주의  지위에 있으면서 절도를 바르
        게  지킨다. 중용의 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길하다.
        그러한 마음으로 전진하면 영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절도를 갖고 비로소 세상을 다스리고 앞을 향해서
    나아갔을 때 영예를 얻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에서는 절도를
    지키고 중용을 지키니 길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꼭 해야할 일은
    머무름 없이 나아가야 하며 그때에 이르러 영예를 얻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고(苦) 절은 언제까지나 고수할 수는
        없다. 고수하면 길은 막힐 것이다. 흉하다. 그러나 후회
        할 것은 없다.
     
      사람이 또 어떻게 절도만 갖고 살겠습니까? 사람이 정신차린다
    그래서 어떻게 날마다 정신만 차리고 있겠습니까? 절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도를 놓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즐기는 면도 있어야 됩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
    이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을 정취는  낙엽들이 좀 떨
    어져 있어야 난다."라는 옛 선사의 말도 있습니다. 깨끗하게 쓸어
    놓은 가을 마당은 가을 냄새가 나질 않습니다. 거기엔 낙옆 몇 개
    가 뒹굴러야 합니다. 그래도 절도를 통해서 낙옆 몇 개가 뒹굴 수
    있는 그런 행복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삼년  동안 충분
    히 먹고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오늘 하루를 기름값
    정도는 아끼지 않고 여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돈 한푼 아낄
    려고 매일 신발을 밤낮 꿰메어 신고  다니며 살면 안되는 것입니
    다. 적당한 선에서는 쓸 수도 있어야 합니다. 즉, 효과의 법칙도
    경우에 따라서는 낼 줄 알아야 격식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고절(苦節)' 고난의 절도라는 것도 나중에 잘되기 위해서는 반
    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과 행복과는 거기에 따른 절도가 있어
    야 되는데 고생이 길어지면 그 사람은 끝에가서 죽음밖에 없습니
    다. 그러므로 '흉하다' 입니다. 그러나 평생 과소비하는 것은 후회
    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도를 찾아야 합니다. 이 절도가
    없으면 대화가 안되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좋고  아무 것
    도 안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절도만 분명히 안다면 두세개를 동시
    에 할 수 있고 놀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도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고 큰 성과가 없습니다. 여섯번
    째 음효에서는 괴로운 절제의 규율을 지켜나가지만 너무 원칙만을
    고집하지말고 주변의 흐름이 막혀 길을 찾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
    도록 하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원칙을 지켜 나간다고 했을때
    는  잠시 고난은 있을지언정 끝내 가서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
    입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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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 화산려(火山旅)
    『 고독한 여행길 』
     
     ○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호
     ●     의를 갖고 중심이 가담해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     결정해야 합니다. 호감이라고 하는 마음이 바깥으로
            나가 충분히 느껴서  중심이 그것을 할  것인가, 말
     ○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쁜 일이라서  무조건
     ●     외면하면 그 사람은 아무 일도 못하게 됩니다. 제일
     ●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화산려(火山旅)
     
        [려(旅)] 괘는 약간의 발전을 상징하는 괘다. 다섯 번
        째 유효(柔爻)가  강효(强爻)사이에서 중앙의  지위를
        얻어 걍효의 지위를 쫓고 있다.  고요히 멈춰서 밝은
        빛속에 선다. 그렇게 함으로써 갸날프나마 앞길이 열
        려 보인다. 나그네의 심정과 같은  조심함을 가져 길
        이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려(旅)의 뜻은 참으로 중
        대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
    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몸 안에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
    다. 그러나 마음은 몸  안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은 항상 몸
    바깥에 나와져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마음이 몸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쉬울 수도 있습니다. 정신이  딴데 팔려있는 사람들, 그것도
    일종의 마음이 몸 바깥에 나와있는  것입니다. 바람난 여자들, 그
    것도 마음이 몸 바깥에  나와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몸 바깥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마음이 몸 바깥으로 나오더라도 그 중심은
    항상 몸 안에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람난 여자들은 마음의
    중심이 바깥으로 나가버린 것입니다. 마음이 몸 안에 있으면 자꾸
    만 자기 마음에 안드는 것들은 외면해 버리게 됩니다.  누가 조금
    뭐라 그러면 삐지는 사람, 자존심 때문에 발길을 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몸 바깥으로 마음이 전혀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
    니다.
      과거 무사들은 마음이 몸 저멀리 나가  있으면서 그 중심은 몸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사들은 눈으로 보지않아도 볼 수 있었
    습니다. 뒤에서 살기를 느껴서 적의 칼날이 몸 가까이  오면 즉시
    받아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의 눈입니다. 소위 안테나
    를 세운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마음의 눈을 통해서 보아야 합니다. 육체
    의 눈만 통해서 보고 마음이 스스로 컨트롤 되지 않는 사람은 마
    음의 중심이 몸 바깥으로 튀어 나가서  공연히 앞만 보고 가다가
    뒤에서 오는 오토바이에 치이는 경박스러움을 범하게  됩니다. 마
    음이 몸 안에 있는 사람은 제대로 느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바
    로 볼 수가 없습니다. 현실속에서 살면서 전혀 현실을  못 느끼고
    살게 됩니다.
      미국의 커다란 재벌이었던 록펠러는 돈에  관한한 현실적인 눈
    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공중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잔돈이 없어서 자기 비서한테 5센트를 빌렸습니다. 다음날 록펠러
    가 비서를 불러서 "자네한테 빌린 5센트일세. 받아가게." 하고  말
    했습니다. 비서는 "괜찮습니다. 그까짓 5센트 ." 하고 대답하였습
    니다. 록펠러가 나즉이 얘기했습니다.  "여보게, 이 5센트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이 돈은 1달러에 대한 1년치 이자일세." 여기서 1
    달러란 그 당시 한달을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5센트를 단
    지 5센트로 보지 않고 5센트의 값어치를 알 수 있는 눈이 있었기
    때문에 록펠러는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한  문제 틀리는게 무지무지하게 안
    타깝습니다. 공부를 못 하는 사람은 20문제만 써도 다  쓴 것같이
    가슴이 뿌듯합니다. 굉장히 인심이 후해져서 "한, 두 개 틀리면 어
    떠냐." 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이 넓어서 나오는 배짱이 아니라
    지금 현실 감각을 못 느끼는 사람이 하는 얘기입니다.
      록펠러가 기름을 팔기위해 5리터짜리 깡통을 납땜해서 막고 있
    었습니다. 공장에서 한참 납땜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옆에  있던
    기술자에게 물었습니다. "이것봐. 이거  납땜하는데 납을 몇 방울
    떨어뜨리나?" "이것을 기름이 새지 않게 밀봉을 하려면  40방울이
    필요합니다." 록펠러가 한참 들여다 보더니  "자네 이걸 38방울로
    때워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한  번 38방울로 때워보게,
    열개만 ." 그리고 38방울로 때우니까 10개  가운데 3개가 기름이
    샜습니다. 다음에 39방울로 때우니까 10개 모두 기름이 새지 않았
    습니다. 그리고 록펠러는 앞으로 39방울로 줄이도록 지시하였습니
    다.
     
      록펠러가 납땜질하는 것을 무심코 넘기지 않은 것은 눈으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몸 밖으로 나와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한 방울을 아껴도 될 것같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방울을
    아껴서 완전무결하게 기름이 새지 않았을 때 록펠러는 돈을 크게
    벌었을 때보다 더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은 그까짓 한 방울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호의를 갖고
    중심이 가담해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호감
    이라고 하는 마음이 바깥으로 나가 충분히 느껴서 중심이 그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쁜 일이라서 무조건
    외면하면 그 사람은 아무 일도 못하게 됩니다. 제일  쓸모없는 사
    람이 되어버립니다.
     
      나는 당신이 좋은 곳을 찾아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멀
    리서 보았을 때 이쁜 꽃은 가까이 가면 벌레도 많이 끼어있고 또
    조금 있다가 시들어 버립니다. 나는 황무지라도  당신으로 인해서
    그곳에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을 그렇게 살았을  때
    비로소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될 것입니다.
      [려(旅)] 괘는 여행을  뜻하는 괘입니다.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행에서 성공한 사람은 마음이 몸 밖에 있고 중심
    은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정착되어 있고, 정착
    된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흥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이 속 안에 있는 사람은  인생을 아직도 여행하고 있습
    니다. 인생을 여행하는 식으로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큰
    득이 없습니다. 부평초같은 인생을 계속해서 걷는 것입니다.
     
      [려(旅)] 괘는 위는 불을 뜻하고 아래는 산을  뜻합니다. 즉 산
    위에 불이 붙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불이 일어나도 산밑에서부터
    일어나야지 활활 불길이 올라갈텐데, 산은 정지해있고  그 맨위에
    불길이 있으면 잘못하면 불씨는 꺼져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몸
    밖에 나와 있고 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불길이  산 밑에 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중심이라고  하는 산은 가운데  있고, 불길이
    세기 때문에 위에까지 번져나갈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괘는 마음이 꼭대기에 조금 있어서 이제 곧 꺼질
    것이냐, 켜질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려(旅)괘는 약간의 발전을  상징하는 괘다." 위의  화(火)괘는
    여성이고 아래 산(山)괘는 남성입니다. 남성의 에너지가 아래에서
    위로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발전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
    였습니다. "유효(柔爻)가 강효(强爻)사이에서  중앙의 지위를 얻
    어 강효의 지위를 쫓고 있다. 고요히 멈춰서  밝은 빛속에 선다."
    다섯번째 음효와 외괘(外卦)인 화(火)에서 중용을 지키면서  고요
    히 멈춰서서 밝은 빛속에 섬으로써 가냘프나마 앞길이 열려 보인
    다는 뜻입니다.
      "나그네의 심정과 같은 조바심을 가져 길이  변함이 없으면 길
    하리라." 옛날 나그네는  오늘날 나그네와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옛날 나그네는 고생이 많았습니다.  길이 험하고, 맹수를  만나고,
    서리 맞아가면서 노숙을 해야하기도 하고, 물을 만나면 바지를 걷
    고 건너는 등 갖은 곤경과 두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나그네가
    조바심을 갖고 길을 가면 길하겠지만 마음이 밖에 나가있지 않고
    조금이라도 만족해하면 해를 당한다라는 뜻입니다. 또  가다가 그
    만둬도 지쳐서 당한다라는 뜻입니다. "려(旅)의 뜻은 참으로 중대
    하다." 그래서 나그네와 같은 그러한 때는 인생의 커다란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나그네로부터 안정을 얻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상. 산 위에 불이 타고 있는 것이  려(旅)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공명하고 신중한 태도로
        위급한 문제를 처리하고 미결수의 문제를 지연시키지
        않는다.
     
      "공명하고 신중한 태도로 위급한 문제를 처리하고 미결수의 문
    제를 지연시키지 않는다." 즉 려(旅)의 상태는 시급하다라는 뜻입
    니다. 좀 더 나그네 노릇하겠다고 마음먹는 동안 벌써 10년, 30년
    혹은 한 평생이 지나가 버립니다. 지금 빨리 변화해야 합니다. 지
    금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미래는 뻔한 것입니다.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앞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노력해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여행으로부터  졸업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이미
    끝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여행길에서 자질구레하고 천하게 군다.
        소갈머리가 적으니 남들이 싫어한다. 결국 재난을 자
        초한다.
     
      "자질구레하고 천하게 군다." 마음이  바깥으로 나와 있어야지
    다른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자질구레하다는 것
    은 마음이 안에 있고 중심이 밖에 있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는 양
    효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음효가 있어서 자리가  뒤바뀌어 있습니
    다. 나가야할 자리인데  거둬들이고 있으니 자질구레하고  그렇게
    소갈머리가 적으니 남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음효. 가슴속에 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으
        니 여행길에서 좋은 여관에 들고 여비가 두둑이 생기
        고 충실한 하인도 얻어 마침내 아무런 근심도 없다.
     
      쇼핑을 갈때도 이미 그 마음 안에는 물건을 살것인가, 말것인가
    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무작정 가서 구경하다가 대상에 마음이
    빼앗기면 뜻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
    과 같이 쇼핑을 나가면 무척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
    뢰감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행길에서 너무 자질구레한 생각
    이나 자기 생각만 하면 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음성 에네르기는
    안에만 있으면 안됩니다.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중심은
    안에있되 마음은 바깥에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중심이 분명한 사
    람이 주변에 마음을 두고 나아가면 아무런 근심이 없다고 한 것입
    니다. 두번째는 음의 자리입니다. "소갈머리가 있었다면"은  겸손
    한 마음을 말합니다. "가슴속에 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으니" 란
    마음 안에 음성 에네르기가  중심을 갖고 밖으로 나아감을 말합니
    다. 그래서 "여행길에서 좋은 여관에 들고 여비가 두둑이 생기고
    충실한 하인도 얻어 마침내 아무런 근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양효. 유숙하던 곳에 불이나서 쫓겨난다. 따
        르던 하인한테도 배신 당한다. 불행한 일이다.  위험
        이 닥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재벌이었던 록펠러는  그 아버지 때부터 이미 돈에 관한
    현실감을 철두철미하게 배웠던 것입니다. 돈을 절약하는 생활습관
    을 들였기에, 어릴때부터 현실을 보는 안목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
    다.  마음의 풍요를 알고 있었기에 비록 돈을 짠돌이 처럼 쓸지언
    정 떳떳하게 쓸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에 중심이 있어야 구
    속됨 없이 자신의 명분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고,  마음의 손을 통해서 계산을 할 줄 알아야 합니
    다 다만 그 중심을 잃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네 번째 양효.  여행도중에 거처할만한  처소를 얻고
        생활할만한 자재도 얻었다. 그러나 목적지가 있기 때
        문에 마음속은 항상 안정되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마음속은 항상 안정되어져 있지
    않다." 여행도중에 거처할만한 처소를 얻고 생활할만한 자재를 얻
    었을지라도 이것은 아직 진정으로 정착할 위치는 아닌 것입니다.
    즉 여행중 한 때의 정착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이 안정되어 있지 않았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안정되어 있
    지 않은 사람이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것 저것 찝적거리게 됩
    니다. 자고로 '이것 안되니까 다른 것 해야지.' 하는 사람치고 성
    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을  끝까지
    해야만 그 다음이 그로인해 잘되어지는 법입니다.  실력은 그렇게
    늘어나는 것입니다. 한 번 시작한 것을 80%까지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바꾸면 그 사람은 다음 번에 또 안되는  사람입니다. 왜냐
    하면 이루어지는 것은 80%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80%의 노력으로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결국은 나중에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여행도중에 거처할만한 처소를 얻고 생활할만한  자재도 얻었
    다." 여행도중에 잠깐 성공할만한 자리에 앉아서 돈도 벌었을지라
    도 자기가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니므로  아직 진정 정착할만한 위
    치는 아닌 것입니다. 항상 완성할만한 목적지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꿩을 쏴서 화살 한 개를 잃어버렸다.
        반성하면 마침내는 윗사람의  인정을 받아  명예있는
        명령을 받을 것이다.
     
      "꿩을 쏴서 화살 한 개를  잃어버렸다." 뭔가 성공할 것같아서
    일을 벌려 놓은 다음에 다시 보니 이쪽이 더 유리한 것 같아서 길
    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 봐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
    다. 중심에서 자기가 자꾸 떨어져  나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
    이 성공을 향해선 사람에게 오는 유혹입니다. 그리고 자기 유혹에
    자기가 걸리는 것입니다. 일은 자기 중심으로 끌어 들여와야 합니
    다. 자기가 일을 쫓아서 이게 더  잘될까, 저게 더 잘될까하고 따
    라다니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합니다. 성공이란  중심에서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는 윗사람의 인정을  받아 명예있는 명령을  받을 것이
    다." 비록 꿩도 못잡고 실패했지만 잡을 수 있게끔 자신을 변화시
    키면 위 아래로 인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만해서 "내
    가 여기까지 왔는데 누가  나를 건드려? 나  하고 싶은대로 하겠
    다."고 하면 여섯 번째 효에서 흉하다에 걸리게 됩니다.
     
        여섯 번째 양효.  새가 보금자리를 태운다.  나그네의
        몸이면서 교만하여 남의 위에 있다고  자만하니 인심
        을 잃어 보금자리를 태운 새처럼 몸 둘 곳이 없게 된
        다. 먼저는 웃고  뒤에는 울부짖는다. 그나마  자기를
        태워다 주는 소마저 잃었으니  끝내 알아낼 길이  없
        다. 흉하다.
     
      아무리 좋은 챤스라도 쥐어야할 챤스가 있고 쥐어서는 안될 챤
    스가 있습니다. 지나가는 열차를 잡아타는 것도 몸이 튕겨 날라가
    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중심을  갖고서 잡으면 탈 수 있지
    만, 중심을 가눌 수 없는 몸으로 열차를 잡으면 곧 튕겨져 날라가
    고 맙니다. 매사는 먼저 중심을  밀어넣고 시작해야 합니다. 돈이
    생기면 먼저 비축해 놓고 그 비축속에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있
    다고 써버리면 큰일납니다.
      "먼저는 웃고 뒤에는 울부짖는다." 충분히 다져서 갖춰놓은 후
    에 오는 챤스가 진짜 챤스입니다. "너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 이미
    충분한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 충분한 것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
    은 챤스가 왔다고 해서 절대로 잘 되는 일은 없습니다. 먼저 자신
    이 충분히 갖추어 놓으면  그 뒤에 챤스는 또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나마 자기를 태워다 주는 소마저 잃었으니  끝내 알아낼 길
    이 없다. 흉하다." 인생은 여행입니다.  그 여행의 종착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나는 최소한도 인생의 종착지를  30대에 끝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0세 부터는 화산려(火山旅)가 신중하게 들려야
    합니다. 이것이 단지 주역으로서가 아니라 인생으로  들려야 합니
    다. 그런데 40이 넘어도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사람은 일
    찌감치 인생을 졸업하는게 더 유리할른지도  모릅니다. 화산려(火
    山旅)는 그대들이 불을 꺼뜨리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또 약간의
    발전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약간의 발전을 통해서 더 풍요로운 발
    전으로 번영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심을 잃지 말고 중
    심을 충분히 채운뒤에, 충분한 소유를  통해서 새로운 계기를, 그
    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산려(火山旅)는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579
  • 46. 지풍승(地風升)
    『 인생의 대운(大運) 』
     
     ●     운을 탈 수 있는 조건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세가지
     ●     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운을 탔어도 크게 남는 것이
     ●     없습니다. 그 세가지는 첫째 때를 얻는 것. 둘째 실
            력을 갖추는 것, 셋째 후원자가 있는 것입니다. [승
     ○     (升)]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때를  얻어야만 합니
     ○     다. 옛날에 강태공이 앉아서 빈 낚시를 드리우고 있
     ●     었던 것은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는 사람은 때가 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
            력이 있어야지 그 때에 거두어 들일 수가 있는 것입
            니다. 다음은 후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
            니다. 후원자가 없으면 크게 거두어 들일 수는 없습
            니다. 이 세가지가 갖추어져야지 비로소  운은 크게
            상승합니다.
     
                           지풍승(地風升)
     
        [승(升)]괘는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가 [지풍승]이다. 겸양
        과 유순한 태도로 순리에 따르고 있다. 마음속에는 굳
        은 신념이 있어 웃 사람의 마음에 바르게 호응한다. 그
        러므로 크게 발전하는 것이다.  더불어 후원자를 만날
        것이다. 무슨 근심이 있단 말인가? 앞길에 경사가 있을
        것이다.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왜 주역을 꼭 64괘로 했는가?
    더 자세하게 세분화해서 64×64(4096)괘로 하든가, 아니면 방대한
    우주의 움직임으로 볼 때 사실 수십만개의 괘로 나누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64괘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의 괘는 음(●)과 양
    (○)의 한 효가 아니고 이것이 세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맨 위는
    하늘, 즉 알 수 없는 법칙을 뜻하고 맨 아래는 땅, 즉 법칙이 이루
    어지는 현실을 뜻하며, 중앙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라 하여 사
    람을 집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한 괘를 '천지인(天地人)'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을 중시하다 보니까 주역도 우리 인간
    의 수명하고 엇비슷하게끔 맞추어 놓았습니다. 64괘라는 것이 인간
    수명의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10년 정
    도밖에 살지 못한다면 주역의 괘는 10개에다 맞추어 놓았을 것입니
    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 평생에 세 번 정도의 운(運)이 온다고 합
    니다. 사주상으로는 30년 주기로 바뀌는 대운이라고도 볼 수 있습
    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일까 하고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지풍승]괘는 두번째 운(運)에 해당하는 괘입니다. 첫번째
    운(運)은 [화지진(火地晋)]괘였습니다. [진(晋)]괘는 열심히 하려
    고 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를 만나서 나아간다라는 뜻이
    었습니다.  세 번째 운은 53번째인 [풍산점(風山漸)]입니다. [풍산
    점]은 착실한 성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대운(大運)은 바
    로 [지풍승]괘입니다. 인간의 나이로 얘기하자면 삼십대에 들어오
    는 운(運)은 초운(初運)이고, 40대에 들어오는 운(運)이 바로 [승
    (升)]운(運)입니다. 그 다음에 50대에 들어오는 운(運)이 있습니다.
     
      [화지진(火地晋)]이나 [풍산점(風山漸)]은 순서에 따라서 하나
    하나 점철해서 밟아간다는 뜻인데, [승(升)]은 갖출 것을 다 갖춘
    상태에서 위로 상승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매우 좋은 괘입니
    다. [진(晋)]이나 [점(漸)]은 순서에 따라 서서히 나아가기 때문
    에 무리하게 법칙을 넘어서서 나아간다든가, 감정으로 나아간다든
    가 하면 망한다는 뜻이기도 하였습니다. [진(晋)]은 실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력없는 사람이 이 운을 타게 되면 그냥
    죽지 않고 병 걸리지 않은 채로 무사히 넘어갔다 정도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운은 그렇게 날려버립니다.
    그러나 초운은 죽지않고 병걸리지 않고 넘어갔다라는 정도만 되어
    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앞으로 [승(升)]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초운이  너무 좋으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인간적으로 수양이 되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자만에 빠져 나중
    에 [승(升)]운을 탈 때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운을 탈
    수 있는 조건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세가지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운을 탔어도 크게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 세가지는 첫째 때를 얻
    는 것. 둘째 실력을  갖추는 것, 셋째 후원자가 있는 것입니다.
    [승(升)]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때를 얻어야만 합니다. 옛날에
    강태공이 앉아서 빈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은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는 사람은 때가  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력이 있어야지 그 때에 거두어  들일 수가 있는 것입
    니다. 다음은 후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후원자가
    없으면 크게 거두어 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 세가지가 갖추어져야
    지 비로소 운은 크게 상승합니다.
     
      지난번 걸프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은  유가(油價) 상승에 대
    비하여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캠패인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습
    니다. 그리고 차량 10부제 운행을 강조하여 국무총리가 자신의 차
    량이 10부제에 해당되는 날 걸어서 출근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
    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어느 한 일본의 기자에에게 "요즘 일본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우리 일본에는 물질적인  파동은 전
    혀 없습니다. 다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걸프지역에 파병을 할 것인
    가 말 것인가 하는 점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고  그 사람이 대
    답하였습니다. 이라크의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미
    국이 아무리 큰 나라라 하더라도 당장 전쟁을 치루고 있는 나라이
    므로 미국의 원유값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왜 우리는 에
    너지 파동에 전국이 들먹이는데 일본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일본보다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
    국의 국무총리가 걸어서 출근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며, 우리
    가 실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로 보아 일본
    은 운을 맞이하면 크게 발전하나 우리는 큰 무리없이 그냥 지나갔
    다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때를 얻고 실력도 중요하지만 후원자를 얻는 것도 필요
    합니다. 70년대 중반쯤 쌍용그룹에서 시멘트를 십만 톤 생산해서
    중동지역에 수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국내 소비 및 해외 수
    출 물량은 만 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쌍용회사 사장은 시멘트롤
    10만톤 찍어내기 위한 자금을 빌리려고 한국은행을 찾아 갔습니다.
    한국은행에서는 지금까지의 통계로 보아 만 톤씩 소모해도 시멘트
    가 남아도는데 십만 톤을 생산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안된다고 하였
    습니다. 쌍용은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멘트
    를 십만 톤 찍어낼 실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축해 둔
    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후원자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국은행을 일곱 번 찾아갔습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사업가의 눈과
    금융업자의 눈은 다르다. 사업은 계산이나 수치로 하는게 아니니까
    쌍용에게는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눈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돈을 대주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쌍용의 예상이 적중을 해서 시멘
    트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팔려 드디어 쌍용이 튼튼하게 섰습니다.
     
      운을 타기 위해 '때, 실력, 후원자' 이 세가지는  필수적인 요소
    이지만 이것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먼저 마음
    을 맑게 가지는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매사의 모든 일은  천지 신
    명이 도와야 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쌀이 밥으로  변하는
    시기가 있어서 막 뜸이 들려고 하는데 다 됐겠지 하고 뚜껑을 열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립니다. 즉 천기누설은 해롭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맑지 않으면 항상 그런 사고가 벌어집니다. 마음이 맑지
    않으면 상승세를 탈 때 허허허 웃다가 옷가지가 나뭇가지에 걸리
    는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때를 얻어
    도 후에 후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마음이 맑아야지 후원자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후원자가 있기 위해서는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바로 연민심입니다.
     
      [승(升)]은 실력이 있으면 있는 만큼 커다란 비젼을 일으켜 줍
    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으면 그  비젼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쌍용
    이 십만 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백만 톤을 벌어들일 수 있
    었던 것이지, 실력이 겨우 몇 십포 밖에 못만들어 낸다고 하면 벌
    어봐야 수 백포 정도 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벌어들인 것도
    아닙니다.
     
      "[승(升)]괘는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가 [지풍승]이다." [승(升)]괘는 위 괘가
    음효 세개로 이루어져 땅을 뜻하고,  아래는 바람을 뜻합니다. 그
    래서 위 아래로  끌어당기면서 양성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운도 사실은 자신이 당겨 오는 것입니다. "뭐가 어떠하여 못했다."
    "그래서 안됐다." 등 흔히 핑계만  대는 사람들, 이것이 실력없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며 그 사람에게 운이 올 수가 없습니다.
      또 하괘는 바람이면서 나무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승]은
    땅속에서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라는 뜻입니다. 땅속에서 나무가
    자라려면 햇빛, 물 등 영양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후원자
    입니다. 그 다음은 싹이 분명해야 합니다. 싹은 실력입니다. 그래
    서 "부드러운 새싹이 때에 맞춰 성장하는 상태"가 곧 [지풍승]이
    라고 했습니다. 또 더불어서 후원자를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상. 땅속에서 나무가 나는 것이 [승(升)]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스스로 덕을  길러 작은 것을 쌓
        아서 점차로 거대한 경지에 이른다.
     
      "스스로 덕을 길러 작은 것을 쌓아서 점차로 거대한 경지에 이
    른다." 실력은 작은 것을 쌓고 또 쌓아서 점차로 큰 데로 가는 것
    입니다. 우리나라에 석유가 나오지 않으므로 작은 국제 정세의 파
    동에도 국가 경제가 흔들린다면  사전에 석유가 안  나오는 만큼
    더 쌓아 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유전이 내일  당장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서 필요한 만큼 저장하는 것, 그래서  어떤 상황
    이 닥치더라도 끄떡 없는 자태가 되면  비로서 실력이 생긴 것입
    니다. 항상 최악의 경우가 지금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실력을 쌓
    아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자기 뜻에 마땅하게 오른다. 위와 뜻이
        맞으니 서로 길하리라.
     
      동물들은 주의(-ism)가 없습니다. 그리고 허무하다든가 불만스럽
    다든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자꾸 들
    볶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부터가 볶는 것입
    니다. 하느님은 너그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들볶는 자들
    은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가라고 그냥 내버려 둡니다.  우리는 이
    제 하느님의 비정함, 또 온정이 어떤 것인지를 이 괘를 통해 분명
    히 납득을 해야 합니다.
      "자기 뜻에 마땅하게 오른다." [승(升)]괘는 승승장구한다는 괘
    인데, 맨처음에 음효가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굳은 의지입니
    다. 첫째는 이것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핑계가 많은 사람은 안에
    이것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안으로 "굳은 의지",
    "음성에너지" 혹은 뭘 하겠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어야 하는
    데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뭘 하겠다고 하고 마음 먹을
    때는 이미 음성  기운이 아닙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습니다.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양성에너지입니다.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
    니다.
      '한다' 라는 것은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먹는게 아니고
    품는 것입니다. 마음은 잘 먹으나 진정으로 품는 사람은  참 드뭅
    니다. 무언가 품었다는 것은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야
    되는 것이며, 목숨이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양효. 정성된 마음으로  기뻐함이 있으니 신
        과 조상의 영령에게 간소하게 나마 제사를 올리는 것
        이 좋다.
     
      성의만 있으면 간단한 마음만으로도 축복이 된다는 이야기입니
    다. 첫 번째 확고한  뜻을 갖춘다음에는 그것을  위해 힘쓰는 것,
    즉 양성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양성에너지가 있으면  아무리 어
    렵고 추운 환경이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정성된  마음으로 기
    뻐함이 있으니 신과 조상의 영령에게 간소하게 나마 제사를 올리
    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양성에너지가 무작정 많이 나간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 [승(升)]괘처럼 두 개 정도만 나아가야 합니다.
    두 개 정도 나가고 나머지는 다시 끌어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비약적 발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가서 생기는게 없는 일들을 많
    이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기는 것과 생기지  않는 것
    은 '아'하고 시작하느냐, '어'하고 끝내느냐에 따라서 판가름 나는
    법입니다. 인생을 스스로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생이란
    삶과 죽음 두 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양효. 무인의 경지를  가듯 아무런 방해없이
        소신껏 자라 오른다.
     
      우리는 항상 실력을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쌓고 또 쌓아  바람
    정도에 날아가지 말아야 됩니다. 항상 최악의 바람이 분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만  비로서 인생에 세 번  오는
    절호의 챤스로 엄청나게 큰 비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무인의 경지를 가듯  아무런 방해없이 소신껏  자라 오른다."
    하늘은 항상 우리를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늘은  나를 망
    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늘을 위하기 때문에 그
    때 망가져버리면 안됩니다. 태양과 비는 새싹을 돋아나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싹은 태양에 말라죽고, 어떤 싹은 비에
    썩어 죽습니다. 그렇다고 비를 탓하고 태양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보통 인간은 비를 탓하고 태양을 탓할  수 있으나, 진정한 현자라
    면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네 번째 음효. 문왕은 공손한 태도로 은왕을 섬기면서
        제후의 예로서 기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토
    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상관 오다 노부나가가 추운 겨울날 기
    생집에서 술 먹다가 나오면 발이 시려울까봐 자신은 찬 데 있으면
    서도 자기 상관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간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라는 자기를 내세
    우지 않고 그 자존심이 자기가 원하는 세계와 하나가 되도록 그 밑
    에 가서 철두철미하게 일했던 사람입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처
    음에 직업은 마부였습니다.  그런데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이
    받은 적은 월급으로 말을 위해서 당근을 사 먹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월급 몇  푼에 머물렀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
    높은 세계, 큰 세계를 가슴에  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 마
    음안으로 전 일본이 딸려 들어온 것입니다.
     
      "문왕은 공손한 태도로 은왕을 섬기면서 제후의 예로서 기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네 번째 음효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말
    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왕은 중국의 역대  왕들중 덕이 높은 몇몇  대왕들중
    한 사람입니다. 문왕은 황제의 실력이 있었으나  황제를 내세우지
    않고 제후의 예를 지켜,  마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  장군의
    신발을 품듯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문왕은 중국의
    민심을 모두 자신에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음효. 무리한 비약은 삼가하고 어디까지나
        견실하게 순리를 따라가면 길하리라. 크게 뜻을 성취
        한다.
     
      주역은 다섯 번째 자리를  으뜸가는 자리로 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왔을 때는 무리하게 나아가지 말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쌀이 뜸이 들동안 유유히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뜸이  다
    든후에 밥을 꺼내야 맛이 있는 법입니다. 낚시를 많이  드리운 사
    람은 날씨가 흐리거나 햇볕이 내리 쬐거나,  어둑어둑하고 밀물이
    드는 것 등을 보면 고기가 잘 물리는지 안 물리는지 그 때와 장소
    를 압니다.
     
      크게 비약하는 것은 세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때를 얻
    는 것. 둘째 실력을 양성하는  것. 셋째 후원자를 얻는  것입니다.
    때를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실력이 양성되어
    져 있어야만 때가 보입니다. 또 실력이 갖추어지고 그것이 남에게
    보이면 후원자는 자연히 생깁니다. 사실 이 세 개는 표면상 세 개
    일 뿐이지 무언가 하나가  있음으로써 세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때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때를 얻기 위해서는  순리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리한 비약을 삼가한다."는 것은  양성에너지가 쓸데없이 설
    치는 것을  삼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성에너지는  어디까지나
    70-80%의 음성에너지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성에
    너지를 70-80% 무리하게  쓰고, 생기는 것은  20-30%밖에 없으면
    이것은 적자입니다.
     
        여섯번째 음효. 나아가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멈출줄
        을 모른다. 몸을 망치기 쉽다. 항상 머무를 곳을 찾아
        서 나아감이 좋다.
     
      "나아가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멈출줄을 모른다. 몸을 망치기 쉽
    다." 흙에서 곧 나온 샘물은 누구나 마음놓고 먹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샘물이 흘러서 개천으로 나온다면 먹기가  곤란합니다. 더
    이상 귀한 물이 아닙니다.  무조건 발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샘의  고귀함을 잃
    지 않고 나아가느냐 입니다. 알렉산더는 위대하지만 서른 두 살에
    죽었습니다. 징기스칸도 세상을 다 정복하였으나 한  번도 통치해
    보지 못한채 죽었습니다. 반 고호는 귀를 잘라 버리면서까지 열심
    히 그림을 그렸으나 빵 몇 조각에 그 그림을  팔았습니다. 오늘날
    그 그림은 값을 매기지도  못할 만큼 고가에 경매되고  있습니다.
    베토벤도 남의 집 다락방에서 추어서 벌벌 떨며 지냈습니다.
     
      주역은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물을 가졌으면  그만큼
    충분히 누리라는 것을 주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누릴  수 있어
    야 합니다. 누릴 수 없는 노력은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머무를 곳을 찾아서 나아감이 좋다." 나아가되 머무르면
    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덮어놓고 열심히만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낚시꾼은 기다릴  줄 압니다. 괜히 잡지도
    못하면서 촐랑거리기만 하면 그런 노력은 자기 몸을 망치는 노력
    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이 되어져 있느냐 아니냐  하는 점
    입니다. 이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스스로를
    이겼을 때 우리는 이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승(升)]은 바로 여
    기에서 생기는 법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380
  • 36. 지화명이(地火明夷)
    『 지혜를 숨기다 』
     
     ●     우리는 무언가 될려면 되는  방법을 찾기에 앞서서
     ●     안되는 것을 통해서 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
     ●     이 바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실패
            를 많이 하면 그것이  성공하는데 점점 비례적으로
     ○     커진다라는 뜻이 아니고, 실패를 통해서 길이  나타
     ●     나게 하는 것, 즉 장애물을 통해서 지름길이 나타나
     ○     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길이 금방 나타나는  사람은
            먼저 장애물을 금방 알아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해서는 안될 것을 아는 사
            람이 해서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
            이 하기를 원한다면 해서는 안될 것을 보는 눈을 먼
            저 가져야 합니다. 그 때 비로서 당신은 가질 수 있
            는 지름길을 얻게 됩니다.
                          지화명이(地火明夷)
     
        태양이 땅속에 숨겨진 상태가 [명이]다. 이때는 안으
        로 밝은 지혜의 덕을 감추고 겉으로는 유순한 태도로
        어려운 난국에 대처함이 좋다.  문왕(文王)은 이렇게
        해서 유리유수(□理幽囚)「은나라 주왕의 폭정에 의해
        서 민심은 제후의 한사람이었던 주(周)의 문왕(文王)
        에게로 몰렸다. 주왕은 백성이 들고 일어날 것을 두려
        워해서 문왕을 유리에 유폐시켰으나 문왕은 고요히 고
        난을 이겼다. 문왕의 아들 무왕의 대에 와서 주(周)는
        은(殷)을 쳐서 주왕조를 세웠다」의 어려운 난국을 견
        딘 것이다. 어떠한 고난속에서도 지조를 관철하는 것이
        좋다. 명지를 감추고 재능을 숨기며 폭군의 학정 밑에
        서도 자신의 지조를 바로 지켜 나갈 수 있다. 기자(箕
        子)는 이렇게 해서 주왕의 폭정「기자(箕子)는 주왕의
        숙부로서 [주]의 즉위에 반대했기 때문에 주왕의 원망
        을 샀다. 주왕이 즉위한 후에도 포악한 정치에 대해 가
        끔 간했으나 듣지 않아서 결국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
        노예생활로 몸을 보전했다」에 대처했던 것이다.
       
     
      먼지가 잔뜩 일어났을 때 언젠가는 그 먼지들이 전부다 가라앉
    아서 다시 맑은 상태로 변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혼란이 판을 치
    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혼란은 가라앉아  다시 평온을 찾게 됩
    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혼란이 평온하게 가라앉게 된  것은
    가슴에 강한 기운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
    에 "해야할 일은 즉시  처리하라."고 했더니 가슴에  간직한 것이
    없이 즉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속셈을 간직하지 않
    고 속셈이 밖으로 덜커덕 튀어나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
    실이 맺어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실인데, 안에 무언가 강
    한게 큰 진공과 같은 힘을 갖추지  않고 해야한다는 마음만 앞서
    튀어나가게 되면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져서  일은 했지만 결실이
    맺어지지는 않습니다.
     
      "태양이 땅속에 숨겨진 상태가  [명이]다. 이때는 안으로 밝은
    지혜의 덕을 감추고 겉으로는 유순한 태도로 어려운 난국에 대처
    함이 좋다." [명이] 괘는 땅속에  불이 있기 때문에 지극히 나쁜
    괘입니다. 그러나 안에 강한 걸 가지고 있으면 외부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움직이는 활동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내 속셈을 분명히 가진 상태에서 상대방의 무슨 속셈으
    로 행동하는가를 분명히 알고 제 3의 것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내
    속셈으로 끌어들여와야 합니다. 그런데 속셈이 덜그락 튀어나가는
    사람의 행동은 큰 위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36계에 "주먹대신 칼"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주먹이  약할 때
    는 칼을 쓰라는 이야기입니다.  상대방이 지금 살기를 띠고  칼을
    들고 다니면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저 사람을  막아야 한다고
    그 앞에 나서서 싸우려고  하면 불리해 집니다. 그때는  돌맹이를
    옆으로 던져서 상대방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불시에 뒤
    에서 뒤통수를 내리치면 쉽게 상대방을 처치할 수 있습니다. 이것
    이 속셈으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칼 든 사람 앞에 몽둥이를 들고 맞서는 행동, 이런 행동은 손해보
    는 행동입니다. 그와같은 무모한 행동을 해서는 큰 결실을 얻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데 첫  번째 필요조건은 전체를  이룰 수
    있는 안목입니다. 전체를 이룰 수 있는 안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지금 이야기한 속셈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습니다. '아' 다르
    고 '어' 다르다고 했습니다. '아'를 던져서 나의 속셈으로 끌어 당
    기느냐, '어' 해버렸기 때문에 속셈이 들통나느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은 전체를 이룰  수 있는 안목을 갖추
    면 그 안에 큰 진공의 힘을 갖게  되어 세상은 그 사람을 감싸서
    덮어준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붕붕 떠 있는 것을 가라  앉혀서 자
    꾸 평준화를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먼지가 일어났다 하
    더라도 일어난 먼지는 끝내가서 다시 밑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강
    태공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했던 시기에  빈 낚시로
    세월을 낚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강태공은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같지만, 그 사람의 가슴은 한 번도 쉰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나서서 왕이 되었습니다.
     
      안되는 사람은 속셈이 분명하지 않은  채로 자꾸 촐랑거리면서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열번 찍어서 안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고 "실패가 잦으면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실패
    가 잦으면 쫄딱 망합니다. 가급적이면 실패는 한 두  번으로 족합
    니다. 세 번째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은 다섯 번을 넘기더라도 전혀
    가망성이 없습니다. 벌써 다섯 번, 여섯  번 가면 안에 있던 진공
    같은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은 풀어져서 실패하는 것이 기능화되어
    그저 돈만 버리게 됩니다.
      
        대상. 태양이 땅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명이]의 괘
        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재주와 역량을 숨기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만을 밝게
        한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재주와 역량을
    숨기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만을 밝게한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가슴에 품은게 확실하다먼 추위가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하여도 험한 세상이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없습니다. 만약 마음 안에 뜻이 분명하다면 이 험한 세상을 슬기
    롭게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할지라도 이 자연의 법칙
    은 세상의 먼지를 전부다 가라앉혀 버릴 것입니다.
     
        첫 번째 양효. 밝음이 사라지고 어둠이 닥쳐오면 날으
        는 새도 돌아가 날개를 접는다. 이러한 어지러운 세상
        이면 군자는 벼슬에서 물러나 의(義) 아닌 녹(祿)을 먹
        지 않는다.
     
      첫번째 자리는 원래가 양효의 자리입니다. 위의 네 번째 효와는
    음양의 대응관계에 있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 어두운 때입니다. 상괘가  불(火)이라는 것을
    잘 봐야 합니다. 지금 바깥쪽에는 불이 훨훨 타고 있습니다. 불은
    흘러나가면서도 안으로는 빨아 당기고 있습니다. 불은  뻗쳐 나가
    면서 빨아 당기기 때문에 바깥의 전부를  자기와 똑같은 불로 변
    화시킵니다. 그래서 불은 불바다를 만든다 이런 얘깁니다.
      불이 알맹이까지 빠져나가면 꺼져 버립니다. 작은 불씨는  나가
    봐야 큰 힘을 쓰지 못합니다. 불길이 있어야 합니다. 불길, 불길은
    나가면서 안으로 빨아당깁니다.  그래서 불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종이도 불로 변해 버리고 나무도 불로 변해  버리고, 쇠도 녹아서
    불물로 변해 버립니다. 중요한 것은 번져 나가는 것만  중요한 것
    이 아니고 그렇게 불로 만들 수 있는 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밝음이 사라지고 어둠이 닥쳐오면 날으는 새도 돌아가 날개를
    접는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잘난척 하지 말고 날개를 접고 있
    어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흔히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면 어두
    운 군주가 시키는 말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두운 일
    에 복종당하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구질구질한  인간사와 세상
    풍파에 정복당하지 않으려면 그 풍파와 타협하지 말고 우리 스스
    로 풍파를 능히 바꿀 수 있는 촛점을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조금 불안하고 섭섭하다고 해서 스스로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나중에 자기안에다 태양을 기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서 그와 같은 사람은 태양이 없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음효. 밝음이 침몰된다. 어둠속에서 왼쪽 다
        리를 상한다. 그러나 강건한 말이  있어서 구출된다.
        아무리 박해가 많은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유순한 마
        음으로 바른 법칙을 지키면  신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강건한 말이 있어서 구출된다." 강건한 말이라는 것은 아래에
    있는 양효입니다. 아무리 박해가 많은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어둠
    을 이겨나갈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이 갖추어진 자기 자신이 있다
    면 그것에 의해서 구출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박해가 많은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유순한 마음으로 바
    른 법칙을 지키면 신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른 법칙을
    지키려면 초점을 터득해야 합니다.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나의 일
    같이 하는 것. 남의 일을 내일 같이 해서 그 사람이 돈을 벌면 그
    것을 배아파 하지 말고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마음. 왜냐하면 내가
    고생해서 다른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면  나는 손해본 것이
    아니라 고생을 통해서 언젠가 내 손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능력
    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불이 번져나가는 것은 바로 안에 초점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그 초점을 터득해야만 바른 법칙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양효. 이미  밝음이 침몰된지 오래다.  이제
        크게 축적한 힘이 되어 단호하게 남쪽을 정벌하여 암
        흑의 원흉을 처단하라. 그러나 비록 정의의 행사일지
        라도 성급히 서둘러서는 안된다.
     
      "이미 밝음이 침몰된지  오래다. 이제 크게  축적한 힘이 되어
    단호하게 남쪽을 정벌하여 암흑의 원흉을 처단하라." 이제 태양을
    마음안에서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고 단호하게  내어 쓸 수도 있
    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성급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결과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움직이면
    더더욱 안됩니다. 이쯤되면  자기 초점이 지금  해야되는 것인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성급하게 마음이 튀어나가면 안됩니다.
      "그러나 비록  정의의 행사일지라도  성급히 서둘러서는  안된
    다." 먹은 마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반드시 마음이 튀어 나가기 때
    문에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마음  먹지 말
    아야 합니다. 스스로  되게는 할 망정,  '이래서는 안되는데. 내가
    다시는 정말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을 할 망
    정, "머리깎고 마음잡고 공부하자."  "세상이 살기 힘드니 차라리
    고요한 산에 들어가자." 하고 마음 먹지 말아야 합니다.
      산이 고요하다고 하지만 직접 가보면 산벌레 우는 소리로 시끄
    럽기 그지 없습니다. 낮에는 맴맴맴 시끄럽고,  밤에는 귀뚜라미
    옆에서 찌르르 찌르르 그러고 가끔씩 등골이 오싹하게 "으어헝!"
    동물 포효(咆哮)소리하며 고요하지 않습니다. 또 산 모기는 도시
    모기와 비교가 되지 않게 억셉니다. 그런데 거기가서 마음의 평화
    를 찾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서울에서 마음의 평화를 못찾는 사람
    이 산에 간다한들 찾을리가 없습니다.
     
        네 번째 음효.  뱃속이라도 들여다 보이듯 어지러운
        정치속에 살면서 광명을 침몰시키고 있는 암흑한 군
        주의 속마음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서 집을 떠나
        고 들어가 숨으리라.
     
      "뱃속이라도 들여다 보이듯 어지러운 정치속에  살면서 광명을
    침몰시키고 있는 암흑한 군주의  속마음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제 당신은 분명히 "왜 되기 힘든가?" 하는 세상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무언가 될려면 되는  방법을 찾기에 앞서서  안되는 것을
    통해서 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는  성공의 어
    머니라는 것입니다. 실패를 많이 하면 그것이 성공하는데 점점 비
    례적으로 커진다라는 뜻이 아니고, 실패를 통해서  길이 나타나게
    하는 것, 즉 장애물을 통해서  지름길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길이 금방 나타나는 사람은 먼저 장애물을 금방 알아내는 사
    람이기 때문에 지금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해서는 안될 것을 아
    는 사람이 해서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하기를
    원한다면 해서는 안될 것을 보는 눈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그때
    비로서 당신은 가질 수 있는 지름길을 얻게 됩니다.
      "가서 집을 떠나고 들어가 숨으리라." 만약에 세상이 어지러울
    때, 어지러운 군주의 속셈을 알게 되면 자기 가진 것을 버리고 다
    른 곳으로 피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전쟁때
    가장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 서울
    을 떠나가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피난가기가 쉬웠는데, 집이라도 큰 것을 가진 사람은 집이 아까워
    서 떠나지 못하였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하였습니다.
      결국 어지러운 세상은 밑에  있는 강한 태양의  힘에 딸려들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지러운 정치속에 살면서 광명을 침
    몰시키고 있는 암흑한 군주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자기 안에 있는
    광명을, 뜻을 지키기 위해 집을 버리고 떠나가 숨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음효. 기자(箕子)가 명이(明夷)의 괘에 대
        처하는 처세의 태도는 바른길을 지키기에 좋다. 아무
        리 어려운 세상이라도 겉으로 현명을  숨기고 안으로
        스스로 밝게 사는 마음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자(箕子)가 명이(明夷)의 괘에 대처하는 처세의 태도는  바
    른 길을 지키기에 좋다." 옛날 중국의 은나라때 기자는 포악한 임
    금 주왕의 외숙부였습니다. 기자는 임금의 포악한  정치와 음란한
    행동을 말리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뿐더러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있을  것임을 깨닫고 거짓말로
    미친척하여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라도 겉으로 현명을 숨기고 안으로 스스
    로 밝게 사는 마음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험
    난하다 하더라도 안에 품은 뜻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안에 품고 있는 것은 반드시 하늘이
    도와서 현실로 나타내 줍니다. 그런데 이 뜻을 지키기보다는 자꾸
    현실에 비겁하게 요리조리 붙는 얌체짓을 하면, 그런 사람은 나중
    에 큰 것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얻지 못할뿐더러 눈앞에 보이는
    큰 것만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지쳐 쓰러질 뿐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현명하지 못한 어두운  군주가 처음
        태양이 하늘에 오르듯이 천자로서 천하에 군림하였으
        나 뒤에는 길을 잃고 마치 해가 지평선  밑으로 침몰
        하듯 몰락해 버린다.
       
      "현명하지 못한 어두운  군주가 처음 태양이  하늘에 오르듯이
    천자로서 천하에 군림하였으나 뒤에는 길을 잃고 마치 해가 지평
    선 밑으로 침몰하듯 몰락해 버린다." 자기 욕심에 급급하게  되면
    안으로 가지고 있는 진공과  같은 흡수의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끝내 가서는 몰락해 버립니다. 우리는 그 몰락에 덩달아서 따라가
    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분명한 우리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어야 합
    니다. 결코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의 속이 분명하게 갖
    추어져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설사  그것이 악이라도, 일단 그
    사람을 도와줍니다.
      선악을 구별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확고부동한  것을 갖추어서
    나중에 몰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비겁해지기  보다는
    차라리 굶어서 죽으라. 그러나 굶지마라." 이 말을 생명으로 생각
    하고 깊이 지킨다면 당신은 결코 굶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확고부동하게 꽃  피울 수 있는 강
    한 태양과 같은 마음을 안으로 구축하여  나의 인생과 우리의 세
    계와 더 나아가서 이 지구와 인류를  그렇게 이끌어 나아가야 되
    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화명이]가 밝혀주는 깊은 뜻입니다. 결
    코 태양은 땅밑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 언젠가 밝은 태양 아래 다
    시 땅은 놓이게 된다는 것.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998
  • 26. 산천대축(山天大畜)
    『 안정된 구축 』
     
     ○    하늘의 기운이 산으로 내려오니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    형국입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키워 온 실력을 바탕으로,
     ●    드디어 세상에 나아가 큰 일을 성취하게 되니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행동에 대한 방침을 정하고 착수
     ○    하라는 것입니다. 혹 어려움이 있더라도 끈기와 노력만
     ○    있으면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니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    되듯이, 꾸준히 노력하여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범이 산속에서 포효하듯 뭇 짐승들의 위엄이 되고 시냇물
            이 흘러서 바다에까지 이르듯 모든 것이 충만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천대축(山天大畜)
     
        [대축]괘는 강건 견실하고, 광휘(光輝)가 있다. 날마
        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 강하고 강한  자가 위에 있
        어서 현량한 인사를 존중하여 능히 강건한 무리의 지
        나침을 견제한다. 이것이야  말로 크게 다른  도리이
        다. 이 도리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크게 발
        전하리라. 어진 인사를 나라에서 길러주니 천하의 현
        사들이 나라에 몸을 바치게 되어 제집에서 밥먹고 있
        지 아니한다. 대축  괘는 천도에 순응하고  있으므로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벅차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 괘는 64괘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괘이면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렇게 되지 않으면 크게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괘의 이름에서 보다시피 '대축(大
    畜)', 즉 크게 축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천대축]은 하괘는 하늘을 뜻하고 상괘는  산을 뜻하는 괘입
    니다. 즉, "하늘위에 산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어떻게 산이 하늘
    위에 있을까?' 하겠지만,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니고 "하늘 위에 산
    이 있으면 그 산이 하늘의 모든 정기를 흡수해서 존재하고 있다."
    라는 것을 뜻합니다.
      왜 존재하는가? 밑에는  세 효가 모두  양(陽)으로서 양(陽)의
    괘입니다. 위에도 마찬가지로 음(陰)이 두  개있고 양(陽)이 하나
    가 있어서 양(陽)의 괘입니다. 양(陽)위에  양(陽)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맨 밑에는 양효(陽爻)가
    셋, 그 위에는 음효(陰爻)가 둘, 맨 위에 양효(陽爻)가 하나 있습
    니다. 이렇게 되어 있지 않으면 크게 발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
    습니다.
      "[대축]괘는 강건 견실하고, 광휘(光輝)가 있다. 날마다 그  덕
    을 새롭게 한다." 하괘인 건괘(乾卦)는 하늘로서 강건한 것을 상
    징하고, 상괘인 산은 중후하고 움직이지 않아 아주 견실한 모습임
    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대축(大畜)괘는 강건,  견실하다고 하였
    습니다. 또 건(乾)은  하늘인바 하늘에는 일월(日月),  즉 태양과
    달이 있으므로 찬란이 빛나는 광채가 있는 것이며,  또 날마다 태
    양이 새로운 빛과 열을 보내므로 날로 덕이 새롭다고 풀이하였습
    니다.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가정이 됐든, 사회가 됐든,
    어느 곳이든간에 항상 새로운 에너지의 빛을 통해서 찬란하게 빛
    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강하고 강한 자가 위에 있어서 현량한  인사를 존중하여 능히
    강건한 무리의 지나침을 견제한다." 하괘의 양효 셋은 바로  자기
    힘이 먼저 나서는 독단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늘을 향하
    여 확고부동한 자기 자신이  있으나 세상과 조화되지  않고 자기
    힘만으로 밀고 나가서 위험과 재난이 따르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상괘의 두 개의 음효는  이 기운을 흡수하여  지나치게 독주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맨 위의  강건하고 바른 양효  하나를 올바르게
    보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산천대축]은 올바른 도리
    를 지키며 강건한 군주가  하나, 군주를 성심으로 보필하며  아래
    강한 무리들을 잘 중화시켜  화합을 이루게 하는  현명하고 어진
    신하가 둘, 그외 자기  멋대로 사는 백성이 셋으로  전체적으로는
    1:2:3의 안정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
    세를 갖추어야만 그 조직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안정된 구축을
    이룰 것이며,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크게 다른 도리이다. 이 도리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크게 발전하리라." 어느 집단이든지  [산천대축]의
    두 음효처럼, 아래의 강한 것을 흡수해주고, 최고 지위의 강한 것
    을 밑에서 받쳐주는 완충의 매개역할을 하는 것이 존재해야만 안
    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때는 돈 1원보다도 값싼 맑은 공기가 아무 가치
    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스크린
    이 중요하지, 스크린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있는 아무 것도 없는 공
    기,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크린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누군가 공기만 빼앗아  간다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스크린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공기가 없어지면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콜라가 맛있다, 사이다가  맛있다 하지만, 물이 더
    고맙다는 것을 느끼기는 당연한 것이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물이
    없으면 콜라도 사이다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의 고마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콜라도, 사이다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치는  무
    의식적으로 우주와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한테 나타나는 것
    이지, 우주에 떠 있는 머리를 통해서 이 드넓은 우주를 찾아 헤맨
    다고 해봐야 우주가 코딱지만한  인간의 머리 속안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자기의 어떤  이
    득을 위해서 다닐려고 하는 사람은 회사로부터 약간의 이득은 얻
    을 수 있을 지 몰라도 회사를 책임질  수 있는 그릇은 되지 못합
    니다.
      물과 공기의 중요함을 알아 믈과 공기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
    람이 물과 공기에 의해 존재하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입
    니다. 화사 전체를 자기 품안에 품고 회사와 하나가 된 사람이 회
    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크기가 컵 정도 밖에 되
    지 못하는 사람은 컵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뒤로 욕을 하고 나갈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공기와 하나가 되는 것, 물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기를 통해서, 물을 통해서 만들
    어 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강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공기와 하나가 되어
    강한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음성적인 덕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
    지 않습니다. 최고의 지위에  있는 것이 항상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떠받들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있는 사람은  자기 터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터전만 만
    들면 우리는 그 터전안에서  얼마든지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세상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공기가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물
    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물에 대해 짜증내고,
    공기에 대해 짜증내면 점점 자기 생명은 미약한 불씨처럼 그렇게
    꺼져가게 됩니다.
     
      이치를 알고 이치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완성
    이며, 가장 위대한 우주 만물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찬란한 하늘의 빛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어진 인사를 나라에서 길러주니 천하의 현사들이 나라를 위한
    일에 몸을 바치게 되어 제집에서 밥먹고 있지 아니한다."  진정으
    로 우주와 하나가 되고, 우주를  알고 싶어하고, 우주를 위해서는
    자기 밥을 먹지 않고 차라리 굶을 수도 있는 사람은 우주 때문에
    밥먹게 되는 비법을 얻게 됩니다. 나라와 하나가 되고, 나라를 위
    해 몸을 바치는 사람은 나라에서 잘먹고 잘살게 틀림없이 배려해
    주며, 그런 사람은 어디가도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
    기 것만을 위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자기 것을  잃게 되면
    그 사람의 목숨도 잃게 될 것입니다.
     
      "대축 괘는 천도에 순응하고 있으므로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
    과 같은 벅차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머
    리가 좋아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산다고  해서 매사가
    순조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에 맞게 대축(大畜)을 쌓
    아가는 사람이라야 아무리 험난한 강을  건넌다 하더라도 무난하
    고 순조롭게 매사를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얻지 못하
    면 영원히 큰 발전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산천대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짐승이나 곤충들을  아주 저급한  생명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보면  인간이 그것들보다 그리 크게  나을
    것이 없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강에 물이 많을 때에는 간
    혹 기러기떼를 보기도 할 것입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면 우후죽순으로 몰려서 날지 않고 반드시 어떤 규칙이 있어서
    편대를 짜고 그 형태대로 날라가고 있습니다. 날라가다 대장 기러
    기가 이쪽으로 가라고 한 번 "꽉" 하고 울면 기러기들은 한 번 움직
    이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똑 같은 말을 수없이 해도 딴 짓하고  있습니다.
    여러명을 모아놓고 "우향 우", "좌향  좌"를 외치면 각양각색으로
    행동을 취합니다. 좌우지간 인간처럼 헛갈리는 것은 없습니다. 기
    러기들은 맨 처음 기러기가 왼쪽으로 가라 하면, 두번째 세번째를
    거쳐 맨 끝에 있는 기러기에게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
    나 인간은 가면 갈수록 말이 변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곤충을 가지고 결코 우리보다  미개하다고 생각을 하면
    큰 오산입니다. 곤충들은 크나 큰  골머리를 앓는 법이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단순한 갈림길만 있을 뿐 인간처럼 크나 큰
    번민은 없습니다. 그래서 곤충들은 학교가 없습니다. 굳이 교육이
    라는게 필요 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들은 교육의 가
    장 근본적인 것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그보다 높
    은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교육을 통해
    서 지능 이전의 인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쌍한 동물입니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병법가인 손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승
    리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기세(氣勢)와 태세(態勢)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
    다. 기세(氣勢)는 기운의 세력. 즉, 기분내켜서 하는 것이나 역기
    를 들때 나오는 것 등은 기세가 아닙니다. 인간이 기세(氣勢)와
    태세(態勢)를 알고 있으면 [산천대축]과 같은 구축(構築)을 할 수
    있습니다.
     
      구축(構築)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기세(氣勢)와 태세(態
    勢)는 나오지 않습니다. '신나서 하는 짓', 미친 짓입니다. 또 조금
    어려운 일이 자기에게 닥쳤다고 좌절하는 것, 어리석은 짓입니다.
    기세(氣勢)가 있는 사람은 신나서 움직이지  아니할 뿐더러 어려
    운 일이 닥친다 하여도 결코 좌절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세(氣勢)로써 '한다' 하고 하면 다 길이 있는 법입니다. 법칙
    도 사실은 기세(氣勢)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률이  존재
    하면 감옥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데, 감옥과 법률이 동시에 존재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률의 법칙도, 감옥의 법칙도 둘 다 진정
    한 의미의 법칙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한다" 하는 기세
    (氣勢)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길을 알고 움직여야지만 진정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고
    움직이는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이 기세(氣勢)지, 모르고 자기  신
    난다고 뛰어가는 것, 기세(氣勢)가 아닙니다. 자극을 받아서 움직
    이는 것, 기세(氣勢)가 아닙니다. 기세(氣勢)는  스스로 만족하지
    도 아니하며, 자칫 실수했다고 해서 스스로  낭패당했다고 생각하
    지도 않습니다.
     
      자연은 이미 기세(氣勢)로서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기
    세(氣勢)는 살아있는 지능입니다. 인간이 이해하는 지능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지능을  주었지만 오
    히려 인간은 지능을 통해서  과실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지능과 함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과실은 인간 스스로
    해결하라."는 과제를 동시에 부여하였습니다.  신이 준 지능은 알
    아서 쓰기전에 먼저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
    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구축(構築)'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돈이 많이
    있는 것이 구축(構築)이 아닙니다. 구축(構築)은 돈을 필요로 하
    지 않습니다. 없는데 가서도 구축(構築)된 사람은 돈을 만들어 냅
    니다. 돈으로 구축(構築)한 사람은 돈이 없어지는 순간 자기 자신
    도 멸망해 버립니다.
      구축(構築)은 곧 "태세(態勢)" 이기도 합니다. 물이 아무리 흘
    러 넘친다 하여도 물셀틈 없이 단단히  구축되어 있으면 물은 정
    지해 버립니다. 그만한 태세(態勢)를 갖추고 있어야지 그만큼  움
    직일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존재하는 곳에는  구축된 힘이 있습니다. '다
    보탑'에 가면 반드시 쓰러지지 않는 구축된 힘이 있습니다. 그 힘
    을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다보탑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다보탑이 "돌위의 돌"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탑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태세(態
    勢)를 갖춘 사람은, 기세(氣勢)가 있는 사람은, 어려운 것을 각오
    하고 해냅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이 어려운 것을 각오하고 해내는
    것이지, 미리 마음 먹기를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시작한 사
    람은 갈 길이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잘되어 출세하면  출세한 직
    후 죽는 것이고, 재수없으면 그 전에 까무라치는 것입니다.
      
        대상(大象).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大畜)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옛사람의  말과 과
        거의 행적을 고찰하고 참고하여 자신의 덕을 기른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옛 사람의 말과 과거의 행적을 고찰하
    고 참고하여 자신의 덕을 기른다." 이와 같이 덕을 기르는 사람은
    군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군자가  아닙니다. 자고로 주역은 군
    자 이하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역에서  간절히 말했음에
    도 불구하고 덕을 기르지 않는 사람은 "너는 군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소인으로 이 세상을 비참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가면 위험이
        있다. 재난을 피하여 멈추는 것이 좋다.
     
      첫번째 효는 양효로서 "확고부동한 자기 자신이 있으나 자신의
    힘만 믿고 독단적으로 사는 사람은 좋지  않다."라는 사실을 표현
    하기 위해서 뜻 풀이가 좋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번째
    효까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가면 위험이 있다." 흐르고 있는 난
    류(難流)를 살피지 아니하고 자신의 힘만 믿고 나서면 위험이 있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재난을 피하여 멈추는  것이 좋다.  
    너무 자기 약은 식으로만 살려고 하거나 자기 이득만으로 살려고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
    게 움직이는 사람은 반드시 재난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바퀴가 차륜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중
        정(中正)을 지키면 허물은 없으리라.
     
      "바퀴가 차륜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가정에 위험이 있어서, 혹
    은 회사에 위험한 일이 생겨서,  아니면 본인이 생각할때 '여기서
    는 내 만족이 얻어지지 않는다.' 등등의 자기만 생각하게 되면 궤
    도에서 이탈해 버리게 됩니다. 자동차에서 이탈한  바퀴는 아무리
    훌륭한 타이어라 해도 차없는 타이어가 되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잘된다고, 잘된다는 것을 믿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
    고, 왜 가는 지도 모르고 마구  달리거나, 자기 잘 났다고 자기만
    믿는 사람. 그리하여 주변이 없는 사람은 차륜에서 이탈하고 만다
    는 이야기입니다.
      "중정(中正)을 지키면 허물은 없으리라."  중용이란 가고 멈추는
    것을 스스로 자제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
    은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 미리 미리 설  곳을 생각하고 설 수 있
    는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차륜에서 이탈하여 길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번째 양효. 준마를 타고 달린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면 좋다. 날마다 무예에 힘써서
        웃사람과 뜻을 같이하여 전진하면 순조롭다.
     
      "준마를 타고 달린다." 준마는 빨리  뛴다고 해서 준마가 아닙
    니다. 빨리 달리면서 정지할 때에 가서 정지할 수 있는 말이 준마
    입니다. 승용차가 잘 나간다고만 해서  좋은 차는 아닙니다. 설때
    잘 서는 차가 좋은 차입니다. 준마는 낭떠러지 같은  위험한 상황
    이 닥치면 딱 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양효는 전부다 강한
    기세인 것같지만, 강한 기세가 아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신난다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  힘에 겨워 곤란을 겪
    게 됩니다. 서고 가고 할 수 있는 전체적인 구축력을  느낄 수 없
    는 사람은 자기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중용을 갖춘  사람은 난해
    한 일이 있어도 자기가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창조할 것은 창조
    하고, 스스로 자기 결정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갖은
    욕을 하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준마는 욕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안에서 욕이 일어났다면  준마
    가 아닙니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사람이 곧
    준마입니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면 좋다." 곤란한 것
    을 참으려면 그만한 기세가 있어야 됩니다. 이 기세가  있기 위해
    서는 나의 전 의식을  동원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닥쳐진 모든
    일에게 주의깊게 집중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든지 나의 주의력과 기세가 스며들어갈 수 있는
    틈바구니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를 바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자기 마음속에서 먼저 불화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불화는
    스스로 막아야합니다. 불화를 막는다는 것이 불화가  일어나는 것
    을 억누르고 참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스스로 막는  것이 아
    닙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주의력이 있으면 불화는 그냥 스쳐지
    나가 버립니다.
     
        네번째 음효. 송아지의 뿔에 나무를 가로대어 사람을
        받지 못하게 한다. 화를 미연에 방지하니  기쁨이 있
        다. 대길하리라.
     
      "송아지의 뿔에 나무를  가로대어 사람을 받지  못하게 한다."
    군자는 사람의 강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내리칠 수 있는 지혜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정도 되면 기세가  갖추어진 사람입니
    다. 기세가 갖추어지면 상대방의 강한  것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두고 보자는 놈 하나도 안 무섭더라." 하는  이야기는 자기 힘에
    날뛰어 봐야 그것은 앞만 보고 달리는  오래갈 힘도 아니기 때문
    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지할 수 있는 사람, 자기 홧김에 사로 잡
    히지 않는 사람은, 이제 남의  홧김과 남의 쓸데없는 힘을  볼 줄
    압니다. 남의 쓸데없는 힘이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과, 그것
    을 지나가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 능력은 수용하
    여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음효입니다. 양효는 그런게 없
    습니다. "자기 울분을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남의 화
    도 막을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돼지가 어금니로 사람을 해치는 위험
        한 일이 없도록 어린 돼지때에 거세하면 그  성질이 유
        순하여 진다.
     
      부모는 가급적 어린 아이를 매로 다스려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화가 난다고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
    가 하고 싶은 것은 하도록 내버려 두되, 그 아이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매를 때려야 합니다. "돼지가 어금니로 사람을 해치는  위험한 일
    이 없도록 어린 돼지때 거세하면 그 성질이 유순하여 진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이빨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돼지가 되
    기 전에 미리 거세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고집을 떠는 것을 막
    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자기가 됩니다.
    마치 보다 새로운 싹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꺾어주
    듯이.
     
        여섯번째 양효. 방대하고 영원히 삐뚤어짐 없는 하늘
        의 기를 본 받으니 도가 크게 빛나  만사가 형통하리
        라.
      
      구축력을 알고 쓰는 사람은 맨위에 있고, 그 다음  구축력을 따
    르는 사람이 둘, 맨밑에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셋, 이러한 비율
    로 있는 것이 가장 안정된 구축력을 쌓은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
    회사는 최소한도 이와 같은 비율을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지금 이 밑의 3에 들어가는  인간이 아닌가 하는 점을 분명
    히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남이  보면 단순
    히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스스로 자기  자신 앞에 순종하
    는 사람, 그런 사람은 두번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구축력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번영을 이루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섯번째 효
    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면 다음은 나빠진다." 하는 얘기를 했었는
    데 이 여섯번째 효만은 유독 "그렇게 해서  번영 발전한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속 안에서 이와 같은 구축력
    을 키워 가도록 해야 겠습니다. 그 구축력을 키웠을때  그 사람이
    하는 노력은 이미 기세(氣勢)요, 살피는 힘은 이미 태세(態勢)이
    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라고 위대한 손자가 승리의 비법으
    로 말하였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312
  • 16. 뇌지예(雷地豫)
    - 세상을 움직이려면 먼저 세상을 책임져라 -
     
                       『 뜻을 펼치다 』
     
     ●     책임지는 태도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가? 그것은  애
     ●     타는 마음으로 매사를  신중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안하는 사람은 책임감이  없
            는 사람입니다. 애타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애안타고는  살 수 없습니
     ●     다. 매사에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나 이루려면 무
     ●     진장 애를 태워가면서 집중해야지  성공할 수 있
            습니다. 하다못해 바늘 구멍에다 실하나 넣는 것
            도 실에 침을 적당히  묻히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실을 바늘구멍에 찔러도 그앞에  털 하나가 삐딱
            해 버리면 안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기 귀
            찮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서는 쓸 수 없습니
            다. 이렇게 쉽게 일을 하려고  하면 절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뇌지예(雷地豫)
     
         예(豫)괘는 오직 한 개의 양효가 모든 음효와 호응하
        는 형태여서 그  뜻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예]는 도리에 순응하여 움직인다. 이렇게 도리에 순
        응하여 움직이면 나라는 크게 발전하여  공있는 자를
        제후에 봉하고 반역하는 자에게는 토벌의  군사를 일
        으킴도 좋은 것이다. 하늘과 땅이 자연의  법칙에 순
        응하므로 해와 달이 운행을 그르치지  않고 춘하추동
        이 어긋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성인은  인간 본연의
        순리를 쫓아 움직이면 곧 형벌이 바르게 시행되고 인
        민이 바르게 복종하는 것이다.
      
            豫, 利建侯行師. 象曰, 豫剛應而志行.  順
            以動豫. 豫順以動, 故天地如之. 而況建侯
            行師乎. 天地以順動, 故日月不過而四時不
            특. 聖人以順動, 則刑罰淸而民服. 豫之時
            義, 大矣哉.
           
      "하늘과 땅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므로  해와 달이 운행을 그
    르치지 않고 춘하추동이 어긋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하늘과 땅
    이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움직이므로 해와  달이 운행을 그르치지
    않고, 춘하추동이 어긋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나름대로의 많은 고통과 문제점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해와 달도 자기 의지로는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지금 움
    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달은 우리  지구를 매번 돌고 있습니다.
    지구도 역시 하루도 쉬지않고 뺑뺑 돌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아무
    리 쉬고 싶다고 어디다가 진정서를 내도 진정서를 받아주는 데는
    아무도 없습니다. 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지구와 달은 자연법칙에 따라서 꾸준히  궤도를 돔으로써 오늘
    날 우리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지구는 죽지않고  살아 있을 수 있
    습니다. 만일 지구가 조금만 거역해서 궤도권 바깥으로 나서게 되
    면 지구는 그만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는 하기 싫다하더라도 자연법칙권 안에서  지금 움직이고 있
    습니다. 나는 키가 크기 싫다고 자연이 "키가 작아져라." 해서  키
    를 줄여주는 법도 없고, 내가 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나에
    게 시킬 것은 다 시키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지금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그것은 자연 법칙의 궤
    도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자연
    궤도권으로부터 자꾸 이탈해서 자의적으로 활동하려고 하면 자꾸
    만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앞일을 걱정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앞
    일에 대한 확실한 성공의 보장이 되어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 몹시 편안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앞
    날에 재수없는 일들만 계속 온다면 그것은 차라리 모르고 사는게
    편안할런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잘되기를 원하고 있고, 또
    잘되는 앞날을 바라보고 싶은 심정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
    렇지만 앞날에는 불행도 존재하기 때문에, 하늘은  우리에게 골탕
    을 먹이지 않으려고 앞날에 대한 보장을 보여주지  않는 대신, 우
    리들로 하여금 앞날을 가꾸어 낼 수  있는 희망과 지혜를 주었습
    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을 것인가?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사는 길이 성공을 보장하는
    길인가?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괘가 [뇌지예] 즉 "앞을 보장
    해 준다. 가르쳐 준다."라는 괘입니다.
      "오직 한 개의 양효가 모든 음효와 호응하는 형태여서 그 뜻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예]는 도리에 순응하여 움직인다."
    [예]괘는 하괘가 모두 음의 효로 되어 있으며 땅을  뜻합니다. 상
    괘는 음이 둘, 양이 하나로  양괘입니다. 이 양괘는 양성에너지로
    작동을 합니다. 그러나 유일한 양효가,  네번재 원래 음효가 있어
    야 할 자리에 있으므로 [음]을 떠나서 [양]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모든 음의 세계를 책임지고, 음의 세계와 밀
    착한 가운데 작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무시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이 세상과 함께 있으면
    서,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행하면, 마치 우뢰가 치면 땅이 진동하
    듯이 이 세상에 그 뜻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자가 가정이나, 직장이나,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이 세상을 별개의 세계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위에 뜻
    을 펼쳤을 때, 아니꼽고 더럽고 유치한 것들이 모두 그 뜻에 따라
    온다는 것이 [뇌지예]입니다. 즉 양성에너지의 뜻이 음성에너지의
    세계와 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함께 있으면서, 거기서 펼치면 크게
    발전한다라고 앞날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유일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지구가 인간보다 오래살 수 있는 것은, 지구는 태양주위를 돌아
    야 한다는데 대해서 조금도 불만이 없으며  돌면 돌수록 더욱 싱
    싱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구가 좀 돌기 싫다고 꽤병을 부린다
    거나 잔 꾀를 부리면 가차없이 지구는 폭발해  버릴 것이며, 폭발
    하기 전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은  시들시들하게 죽어버릴 것입
    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이 세상을 떠나서 뭔가 자신이 잘되려
    고 하는 것은, 자연 법칙의 궤도권을 이탈해서  잘되려 하는 것이
    기 때문에, 결국 괘도를 벗어난 지구와 다름이 없습니다. "뭐가 잘
    안된다.", "못해 먹겠다."라는 사람은 그  세계와 유착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딜가든지 뜻을 펼칠 수가 없습니
    다. 왜냐하면 여기가 아니꼬우면 저기는  더럽고, 또 다른데 가면
    꼴불견스럽고 하여 어딜가도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접해있는 땅과 결코 유리되어서는 안됩니다. 땅이  복되
    고 자신이 복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형제의 아
    픔을 같이 나누면서 다같이  모든 것이 잘되기  위해 움직여야지
    하늘이 열리고 땅도 같이 동화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장
    이나, 가정이나,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책임지면서  살아야지,
    나 자신만 잘되려고 톡  튀어나와 버리면 그것은  무너져 버리게
    될 뿐입니다.
      "도리에 순응하여 움직이면 나라는 크게 발전하여 공있는 자를
    제후에 봉하고 반역하는 자에게는 토벌의  군사를 일으킴도 좋은
    것이다." 이런 도리에 따라 움직이는데 사사롭게 시비하는 것들은
    토벌해 버려야 한다, 즉 잘 따르는 사람은 제후로 봉하여 덕을 베
    풀어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의롭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없
    애버려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인간 본연의 순리를 쫓아  움직이면 곧 형벌이 바르게
    시행되고 인민이 바르게 복종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황제의 권위
    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국민들의 뜻을 보살피면서  살아야지 국
    민이 마음으로부터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황제의 삶
    은 따로있다고 해서 최고급 승용차만 타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밥
    벌어 먹기 바빠하는 국민들을 천한 몸종  보듯이 하면 결국 국민
    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황제의 삶일지라도 땅, 즉 자기
    가 접해있는 세계와 절대 유리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땅이 복되고
    자기 자신이 복되기 위해서는 형제의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같이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되기 위해서 노력하면 하늘의 길이
    열리고 땅도 같이 동화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가까운  미래에 나
    타날 것이며 우리 인간이 유일하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단
    한가지 법칙입니다.
      양효가 유일하게 네번째에 있습니다. 네번째는 원래 음효가  있
    을 자리입니다. 만일 양효의 자리에 이 양효가 있었다면  그 양성
    에너지는 세상을 저버리고 떠나버리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되돌아와서 모든 것을 위해 힘을 쓰는 양효입니다.
    즉 이 양효가 모든 음효를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직장이 되었든  가정이 되었든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책임지면서 살아야 됩니다. 자기만 잘되려고  툭 튀어나와
    버리면 아무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자기 혼자 잘하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혼자 청소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집을 깨
    끗이 하기 위해서 청소를 해야지, 혼자 청소한다고 남 닦아놓은데
    다가 빨지도 않은 걸레로 닦으면 더 더러워지는 법입니다. 그것으
    로 열심히 닦는 것은 훼방일 뿐입니다.
      [뇌지예]는 양에너지이지만 함부로 튀어나가지 않고 음의 자리
    를 지켜 이 모든 세계가 잘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 결국은 모
    든 음이 호응하고 세계가  그 사람의 미래를  찬란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 잘되려 하지말고,  이 땅도 잘되게끔 그와같은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찬란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입
    니다.
      책임지는 태도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가? 그것은 애타는 마음으
    로 매사를 신중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안
    하는 사람은 책임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애타하는  마음이 없습니
    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편안하게 살  수는 없을까
    하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즉 어떻게  하면 속 안끓이고, 애 안
    태우고 살 수  있을까 입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표현하기를
    '누진통'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진통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누진통은 애타는 마음이 없이 그저 편안한 마음만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애탐에 빠져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애안타고는 살 수 없습니다. 매사에 조그
    마한 일이라도 하나 이루려면 무진장  애를 태워가면서 집중해야
    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바늘 구멍에다 실하나  넣는 것
    도 실에 침을 적당히 묻히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실을 바늘구멍에
    찔러도 그앞에 털 하나가 삐딱해 버리면 안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것이 하기 귀찮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서는 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쉽게 일을 하려고 하면 절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부산에 가려면 애간장이 타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지 갈 수 있는 자기가  생깁니다. '누군가 데려와주겠지.' 하는 사
    람은 설사 아무리 좋은 승용차를 태워 모셔가더라도 오래 앉아있
    으면 엉덩이가 아프다느니, 다리가 저리다느니, 차안에 공기가 나
    쁘다느니 하면서 별걸 다 투정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온통 세상
    이 투정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에너지는 움직여야지 시들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으
    로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은 자꾸  자연법칙의 궤도안에서 조금만
    아파도 그게 큰 병이 되고 아픈 것입니다. 바늘로 손을 찔리면 순
    간 무지무지하게 아픈 것입니다. 온 전신이 다 아픈  것이지 여기
    까지는 아프고, 여기서부터는 안아프다는  것은 없습니다. 멀리까
    지 보는 사람은 아무리 큰 아픔도 조그맣게  되는 것이고, 가까이
    밖에 못보는 사람한테는 조그만 것도 크게 되는 법입니다.
      원대한 뜻을 품고 바늘귀에 신경을 집중시키듯 항상 애타는 마
    음으로 그 일을 성공시키려고 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물론 금방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땅에 씨를 뿌렸다고 다음날 쌀이 돋아나지는
    않습니다. 비도 와야 되고, 거름도 주어야 하고, 바람도 불어서 이
    모든 것이 영양가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자라지  않는 씨앗에게는
    그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장애지만 자랄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것이 전부다 영양가입니다.
      원대한 뜻을 품고 이 세상을 가꾸려고  하는 그런 애타는 마음
    은 곧 모든 장애들이 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영양분들을 동
    반하고 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면 그  궤도에서
    궤도를 타기는 쉬운 것입니다. 돈도 처음에  1 억 벌기가 힘들지,
    1 억 벌면 10 억은 금새 벌립니다. 10 억 버는 사람은 백 억도 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1 억을 벌면서 돈을 버는 법칙을 터득한 사
    람은 그 실력을 바탕으로 10억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
    다. 그런데 돈벌이를 해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항상 실패만 하는
    사람에게는 10 억을 주어도 그 돈을 얼마만에 탕진하느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벌 수 있는 실력도 없는 사람이  한 때 목
    돈이 생겼다고 돈을 한 번 벌어보려고  자기 혼자 애간장을 태워
    봐야 그 사람은 벌지도 못하고, 벌어  본 적도 없고, 그냥 그렇게
    한 평생을 끝내 버리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연의  궤도에 충실
    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장애속에서 고생만 하다가 사라질 뿐
    입니다.
     
        대상. 우뢰가 솟구치니 대지가 떨치고  일어선다. 이
        것이 뇌지예의 괘상이다.  옛날의 성왕은 이  괘상을
        보고 음악을 지어 덕을 찬양하고, 또  그것을 연구하
        여 상제께 아뢰고 아울러 조상의  신령에게도 제사하
        였던 것이다.
     
            象曰, 雷出地奮豫. 先王以作樂崇德, 殷薦
            之上帝, 以配祖考.
       
      "옛날의 성왕은 이 괘상을 보고 음악을 지어 덕을 찬양하고, 또
    그것을 연구하여 상제께 아뢰고 아울러  조상의 신령에게도 제사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의 세계도 그렇고 이 땅  이후의 세계도 존중하라는 뜻입니
    다. 나 하나 잘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 땅도 잘되고, 이 땅과 떨
    어져 있는 하늘의 세계도 전부다 잘되게끔 그와같은 책임감을 갖
    고 노력하면, 그 노력이 남이 보기에는 별볼일  없는 것이라 하더
    라도, 자세가 그렇게 되어져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찬란한 미래
    가 보장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음효. 상사의  총애를 받으므로 말과  행동이
        가끔 득의 양양해진다. 교만한 마음이 발생하여 멀지
        않아 궁지에 빠지리라. 흉하다.
      
            初六, 鳴豫. 凶.  象曰, 初六鳴豫, 志窮凶
            也.
           
      "상사의 총애를 받으므로 말과 행동이 가끔  득의 양양해진다."
    흔히 회사나 직장에서 잠시  사장의 총애를 받으면  오직 사장만
    바라보고 동료나 부하는 깔아 뭉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흉
    하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첫번째 효는 네번째  양효와 정응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성에너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힘을  믿고
    자기 잘난척 하면 곧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위의 상사나 높은 사장으로부터 총애를 받으면 그것을 그
    냥 가지고만 있어야지 남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결국 [뇌
    지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최고권자에게 총애를 받는다고  그
    총애가 이 모든 세계를 다 뛰어넘어  휙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흔히 윗 사람한태는 끔직히 잘하는데 동료와 부하에게 못
    하는 사람은 승진도 안됩니다. 사장이 그 사람을 승진시켜 주어야
    하나, 사장의 안목으로 보아도 승진감이 못되는  사람이기 때문입
    니다. 그러면 사장은 그 사람에게  무얼 시키느냐? 궂은 일을  딴
    사람에게 시키면 안하는데 그 사람은 꽁무니가 빠지게 하기 때문
    에 그런 일이나 시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고  사장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건 이미 의로운  충정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보답이 오지 않게 됩니다.
      인간사가 까다로운 것같지만 알고 보면 별 것 아닙니다. 왜냐면
    인간사가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법칙에 위배만 되면 자연
    은 가차없이 그 사람을 무너뜨려 버린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최고권자가 되고 싶어서 자기 노력하는 만큼은 위험을 무릅
    쓰고 했다면 자연은 그것을 인정해 줍니다. 그러나 된  다음에 밑
    의 세계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밑의 세계와 동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 다 해먹겠다고 하면  자연은 "지까짓게 놀아
    봐야 하늘아래 뫼이로다."하면서 끌어내려 버립니다.
     
        두번째 음효. 자신의 뜻을 지킴이 돌보다도 굳다. 그
        과단성은 매우 확연하여 인순하고 주저함이 없다. 중
        정하여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하여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吉. 象曰, 不終
            日, 貞吉, 以中正也.
      
      "자신의 뜻을 지킴이 돌보다도  굳다." 오늘의 내 부가  내일의
    나의 부가 된다는 보장은 결코 없습니다. 오늘 나의 부를 믿기 앞
    서서 어제 있던 가난함을 차라리 믿고  있으면 오늘의 부는 도망
    가지 않습니다. 사람이  똑같이 태어나서 구질구질하게  다니면서
    남에게 애처롭게 얻어 먹으려는 것만큼 눈물나는  것도 없습니다.
    나 스스로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뜻이 없이 살
    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효는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으므로 뜻을
    펼치지는 못하더라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즉  펼치기에 앞서
    서 그걸 지킬 줄 안다는 것입니다.
      뜻을 펼치려면 먼저 뜻이 분명해야 하고, 그것을 지킬  줄 알아
    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먼
    저 발전하였는가를 묻기전에 내가 내 뜻을  저버리지 않았는가를.
    애국을 하기 전에 적에게 잡혀갔을때 매국노가 되지 말고 끝까지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가를. 이순신 장군은 옥중에서  쇠사슬에 묶
    여 있어도 자신을 포함한 무리를 원망한다든가, 그 동안의 자신의
    공을 알아주지 않는 임금을  야속해 하지 않고, 오로지  위기에선
    조선의 앞날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국을  향한 자신
    의 뜻을 굳건히 지켰기 때문에 나중에  옥에서 풀려나와서 또 싸
    울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 음효. 실력없는 자가 자신에게 과분한 위치에
        있으면서 상사에게 아첨하고 남의 세력을  뒤에 업고
        자만하고 있다. 회개함이 늦어지면 영구히 후회를 하
        게 되리라.
      
            六三, □豫. 悔遲, 有悔. 象曰,  □豫有悔,
            位不當也.
           
      "실력없는 자가 자신에게 과분한 위치에 있으면서 상사에게 아
    첨하고 남의 세력을 뒤에 업고 자만하고  있다." 세번째는 하괘에
    있어 가장 높은 자리인데 음이 있으므로  실력이 없는 자가 과분
    한 지위에 있습니다. 여자의 실력은  지키는 것이고, 남자의 실력
    은 행하는 것인데, 여기는  해야할 자리에 지키는 자가  있으므로
    실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위에는 [예] 괘의  유일한
    양효가 있어서 이 세번째 효가 그 밑에서 아첨한다는 이야기입니
    다.
      출세가도를 아첨으로 달려서는 안됩니다. 아첨으로 달리면 계급
    은 올라가고, 월급도 올라가고, 그것으로  등쳐먹고 살 수 있을런
    지 몰라도 스스로 떳떳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죽어서
    도 편하게 있지 못합니다. 간신은 꿈을 꾸어도 아첨하는  꿈을 꿉
    니다. 최소한 꿈속에서만이라도  하늘 밑에서 떵떵거리며  살아야
    지, 누구를 등에 업고  치사하게 간신 노릇하면 꿈에서도  불안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간신은 망하므로 항상 불안해  합니
    다. 그런 간신은 죽어서도 간신  노릇이나 합니다. 죽음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잠깐 꿈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다못해 칡뿌리 캐먹고 살망정 간신 노릇같은 조잡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번째 양효. 천하의 즐거움을 실현한다. 그 뜻이 크
        게 신장되어 업적을 성취하리라. 의심하지  말라. 천
        하의 동지들이 덕망을 흠모하여 구름  모이듯이 하리
        라.
      
            九四, 由豫. 大有得, 勿疑. 朋합簪.  象曰,
            由豫, 大有得, 志大行也.
           
      "천하의 동지들이 덕망을 흠모하여 구름 모이듯이  하리라." 이
    양효는 첫번째 음효와 대응을 이루고 음의 자리에 있으므로 음을
    내포하고 있는 양효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유착되어 있는 양효로
    서 땅이 이 사람을 따른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뜻
    을 펼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며, 자기  희생을 통해서 하
    여야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무엇을 위해서"가 바탕이 되어서 해야
    지, "내가 무엇을 한다."에 집착하여 하면 그 일이 고통이 되는 법
    입니다. 일을 득을 바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할 때 득은 부차적으로 자연히 따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차적
    으로 따라지는 것에 원 뜻을 두고 무엇을 위해서 희생을 하지 않
    으면 부차적인 것은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단추를  끼면 그
    옷이 자기 몸에 달라붙는  것과 똑같아서 옷이  달라붙게 하려면
    먼저 단추끼는 작업을 정성껏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옷만
    몸에 붙이려고 하면, 달라 붙으면  떨어지고, 또 달라붙으면 떨어
    지고 하여 이런 작업이 반복될수록 계속  피곤하게 되어 자꾸 몸
    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뜻이 원대한 사람은 병이 생겨도 잠깐  왔다 갔다를 반복할 뿐
    그 병이 몸에 깊이 자리잡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氣)가 바깥으
    로 순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가 바깥으로 순환하지 못
    하고 자기 속안에만 있는 사람이  누가 내몸을 망가뜨리느냐? 결
    국 자기 기가 자기를 썩히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을 버리되 할려고 하는 애착을 가져야 합니다.
    무애(無碍)라 하니까 하려고 하는 애착마저  버리는 미련한 사람
    들이 많습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말하니까 인간사를  떠나서 깨
    달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땅을 움직일  수 없
    습니다. 그런 사람은 중생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깨
    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매사 죽는 한이
    있어도 그 일을 꼭 해내겠다고 하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
    면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은 안에 음성에너지를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외부
    것이 딸려오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없이 자기를 위해서 하려는 사
    람은 외부에 있는 것들이 어떻게 하든 빼어 먹을려고 하지 그 사
    람을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섯번째 음효. 실력없는 군주가 왕의 지위에 있어서
        그의 높은 지위는 신하에게 얹혀있는  비정상적인 상
        태이다. 그러나 인민의 마음은 아직 떠나지 않았으므
        로 나라가 아직은 멸망하지 않았다.
      
            六五, 貞疾, 恒不死.  象曰, 六五貞疾, 乘
            剛也. 恒不死, 中未亡也.
           
      "실력없는 군주가 왕의 지위에 있어서  그의 높은 지위는 신하
    에게 얹혀있는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이곳은 양효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음효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자가 못됩니다. 그러나 네번
    째 양효의 강한 힘으로 자기 세계를  이미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비록 신하에게 얹혀 있지만 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즉  어떤 조
    직이라도 똑똑한 사람을 제대로 써서 조직력을 굳건히 해 놓으면
    그 구축이 힘이 되어서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 번 이루어 놓은 노력이 있으면 그 노력에 의해서 쉽게 멸망
    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큰 힘이 없더라도 그동안  그 노력에
    의해서 쉽게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성과를 위해서 기울인 노
    력은 결코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저력입니다. 그 저력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우주는
    그렇게 저력있는 사람을 쉽게 앗아가지는 않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자기 즐거움에 탐닉하여 이성을 잃는
        다. 최고 지위에 있으면서 그러한 태도를  가지면 이
        제 그 지위를 오래 보존할 수 있으랴. 그러나 반성하
        고 회개하면 허물은 없으리라.
      
            上六, 冥豫. 成有유,  无咎. 象曰, 冥豫在
            上, 何可長也.
           
      어느 정도 되었다고 이제는 편안히  즐기며 누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 사람이 즐기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주는 자기 자신이 즐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 피조물
    이 즐기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주 자체가 즐기는 것, 그것에
    합당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모든 영광을  하늘로 돌리는 것
    입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 인간이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순
    간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그 만족을 부둥켜 안으려고 하면 우주는
    얼른 그것을 흩어버립니다. 구멍이 나면 우주는 메꿔버리고, 쌓아
    놓으면 흩어버립니다. 우주는 전체가  모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행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원하는 만족이라는  것은 일시
    적인 것이어야지 그것을 오래 부둥켜 안으려  하면 더 많은 희생
    이 따라야 합니다.
      행복은 어려움 안에 우뚝 섰을 때, 그리고 우뚝 서서 그것을 유
    지하기 위해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만물은 곧 행복이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자각하면 우리는 우주의 행복
    과 똑같은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원대한 꿈
    을 품고 아무리 가까운 길이라도,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애간장이
    닳도록 애를 쓰지 않으면 결코 행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
    해야 하겠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257
  • 6. 천수송(天水訟)
    『  송사와 판결 』
     
            가장 어려운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도의 인내와 지혜와  용기로써 먼저 나
            를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패배할
            수 없는 나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적이 나타나도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이
            기되 무리하게 싸움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
            연적으로 승리가 되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야 말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천수송(天水訟)
     
        송(訟)괘는 위로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로  물을 의미
        하는 괘이다. 위는 건괘로서 강하고 강한  것을 나타
        내며, 아래는 음효가 많아서 물의  위엄을 상징하는,
        즉 음험함을 나타내는 괘다. 위에 강강한  자가 있어
        아래사람을 학대하고, 아래는 음험한 자가 있어 윗사
        람과 투쟁하려고 하는 상태다. 송은 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남과의 투쟁을 말한다. 송은 자신의 성실성
        이 남에게 통하지 않고 방해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다. 그러나 싸움(소송)은 결코 좋은 일이 못된다. 잘
        반성하여 잘못을 범하지 않는, 스스로 두려워하는 마
        음으로 남에 대한 적의를 버리면 길할  것이다. 그러
        나 끝까지 싸움을 고집하면 흉하다. 중정(中正)을 존
        중하고 현자의 중재를 받는 것이 좋다. 큰 강을 건너
        가는 듯한 그런 위험을 범하면서까지  기어이 다투어
        보려고 한다면 마침내 심연에 빠져 들어 비참한 결과
        로 끝날 것이다.
       
            訟, 有孚窒. 척中吉.  終凶. 利見大人. 不
            利涉大川. 象曰,   訟上剛下險. 險而健訟.
            訟有孚窒, 척中吉,   剛來而得中也. 終凶,
            訟不可成也. 利見大人, 尙中正也, 不利涉
            大川, 入于淵也.
     
      참을 인(忍). 칼 밑의 마음. 칼로  에이는 듯한 것을 스스로 묵
    묵히 지나가는 마음. 그것이 곧  인내입니다. 인내는 단순히 주어
    진 상황속에서 오는 어려움을 참고 견뎌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10
    년 동안 취직을 못한 사람이 취직을  못해서 굶어 죽어야 되는데
    죽지 않고 사는 사람, 그러한 사람을 인내하는 자라고 말하기에는
    객관적으로 내키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살면
    서 가난을 견녀나갔다고 해서 그것을 인내라 하지 않습니다. 인내
    는 뜻이 분명한 사람이 아직 때와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때, 하고
    자 하는 의지를 간직한 채 모든  역경을 묵묵히 견디면서 끝내가
    서는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온 세상 자연 가운데 인내없이 성장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내속안에서 반드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이지  인내 없이는
    싹, 꽃이라는게 필 수 없습니다. 봄이  되어 우리가 밖에 나가 흙
    이 있는 곳에 가면 아주 여린 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어느날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사람도 참고 견디
    기 힘든 그 빗줄기를 싹은 묵묵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
    빛이 내리쪼여도 묵묵히 받아들이며 참고 견딥니다.  어린 아이가
    밟아도 다시 지긋이 일어나며 꽃을 피우는 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자랍니다. 그래서 맨드라미, 채송화,  오랑캐꽃, 이런 것들이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 싹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말도 많고, 불
    만도 많습니다. 하물며 싹도 모든 자연 여건 안에서  굳세게 자라
    는데 왜 우리 인간이, 싹보다 강한  인간이, 해내지 못하는가? 이
    것을 경고하는 것이 바로 [천수송]입니다.
      여름에 수영을 할 때, 물에 들어가기 전에 물은 아무 것도 아닙
    니다. 손으로 치면 그냥 갈라지고, 발로 밟으면 첨벙 첨벙 튀기며
    흩어지는게 물입니다. 그러나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물은 커다란
    압력으로 우리를 압박합니다. 우리는 물의 힘에 눌려 몸을 마음대
    로 놀리지 못합니다.
      이 사회도 물과 마찬가지로 뛰어들기 전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지만, 막상 사회 속에 뛰어 들면, 물이  압력을 갖고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밀려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은 힘들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자연이 꽃을 만든 이유는 꽃을 피우라고 만든  것이지, 꽃이 죽으
    라고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싹이 자라서 꽃이  필 때까
    지의 인내. 그러한 인내를 통해서  꽃은 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로 우리 인간도 풍요의  그 날까지, 싹이  굳굳히 자라듯이, 세상
    속에서 굳굳히 서서 풍요를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뜻을 세우고 분명한  세계를 얻은 다음  나만이 옳다고
    하는 그 세계를 막상 이 세상에 펼치려고 할 때,  이 세상은 들어
    가기 전까지는 맹물같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그 안
    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힘에 의해서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때
    나의 세계를 지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물이 확 온다 그래서 바둥거리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라리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몸이 물
    에 떠서 살 것입니다.
      그렇게 참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인내입니다. 설사  자기
    자신이 옳아서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싸워서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
    은 일시적인 승리일 뿐, 크게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
    는 인내가 없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천수송]이 주
    는 교훈입니다.
      "송(訟)괘는 위로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로 물을 의미하는 괘이
    다. 위는 건괘로서 강하고 강한 것을 나타내며, 아래는 음효가 많
    아서 물의 위엄을 상징하는, 즉 음험함을 나타내는 괘다. 위에 강
    강한 자가 있어 아래사람을  학대하고, 아래는 음험한 자가  있어
    윗사람과 투쟁하려고 하는 상태다." [천수송]은 외괘가 모두 양성
    기운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강한 양성입니다. 내괘도 음효 두 개
    에 양효 하나로 양성입니다. 주역은 역순하므로 내괘가 위로 상승
    하고 외괘가 아래로 내려오는데, 모두 양성이어서  서로 밀어내려
    는 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두 양성기운간의 충돌은 불가피
    한 것으로 상호 알력이 생기고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송(訟)'
    은 "시비할 송"입니다.
      [천수송]은 위에 하늘이 있고, 밑에  물이 있습니다. 하늘은 위
    로 오르려 하고, 물은 아래로 흐르려 하기  때문에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반발하게 됩니다. 즉 나의 옳은 것만 믿고  세상일을 하면
    협동이 안되고 서로 반발이 생겨서 부딛치게  되어 결국 송사(訟
    事)가 벌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싸움(소송)은 결코 좋은 일이 못된다.  잘 반성하여 잘
    못을 범하지 않는, 스스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남에 대한 적의를
    버리면 길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괘가 내괘보다  매우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섯번째  괘 [수천수]에서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착실히 준비하여 드디어 세상에 떳떳히 나의 위치를 세
    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매우 강합니다. 세상과  송사를 벌려서
    혹시 내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금방 다시 세상에  의해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싸움을 고집하면 흉하다. 중정(中正)을 존중하
    고 현자의 중재를 받는 것이 좋다." 이 괘를 슬기롭게 풀어  나가
    는 핵심을 주는 것이 바로 첫번째와 세번째의 음효입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내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내괘와 외괘가  자리 바꿈
    을 하여도 역시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참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결국 상황은 변하니까, 내가 일부러  변화를 일으키려 하지 말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큰 강을 건너가는 듯한 그런 위험을  범하면서까지 기어이 다
    투어 보려고 한다면 마침내 심연에 빠져  들어 비참한 결과로 끝
    날 것이다." 우주는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안정권을
    찾는 어느 포인트를 만나는 순간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 괘가 풀려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지  않고
    위의 괘와 부딛치면 자기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역시 송사 많은
    집안이 잘될 것이 없으며,  설사 송사에서 이길지라도 위의  괘가
    강하기 때문에 결국 손해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싸움이
    벌어질 지라도 곧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다소  손해를 본다 하
    더라도 그 손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전에 가능하
    면 싸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대상. 하늘은 위를 향하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이같
        이 서로 배반되는 것이 [송]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어떤 일이나 그 출발점에서 깊이 생각하
        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象曰, 天與水違行訟. 君子以作事謨始.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어떤 일이나 그 출발점에서 깊이 생각
    하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서로  화합
    하기 어려우면 강한 자신으로 인하여 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받아들이고 스스로 심사숙고 하는 자세를 간직하여야  합니다. 만
    약에 눈 앞에 강한  것이 있다고 강한 것과  싸우려고 하면 비록
    싸움에 이길 지라도 자신도 다치는 법입니다. 또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단은 나보다 강한 적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가운데 심사숙고 하여 그것을 이길 수있
    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손자의 위대한  병법에 이르기를 "싸우
    기 전에 이미 이겨놓고, 싸움을 통해 승리가 나타나게 할 뿐"이라
    고 했습니다. 
       
        첫번째 음효. 싸움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적당한
        시기에 그쳐라. 다소의 말썽은 있으나 결국은 사리가
        분명하게 증명되어 길하리라.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象曰, 不
            永所事, 訟不可長也. 雖小有言. 其辯明也.
           
      "싸움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싸움이라는 것은 적당히 필요
    합니다. 인간 세상은 아주 묘해서 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사람
    은 정이 가는데, 어떤 사람은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
    를 설립하고 직원을 모집해  보면, 열심히 장사해서 회사를  크게
    발전시킬 직원인데도 기분나쁜 직원이 있고, 그리 능력이 있지 않
    아서 큰 공은 없으나 애정이 가는 직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운과 기운의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양성이 강
    한데 양성이 강한 직원이  있으면 서로 반발하여  기분이 나쁘게
    됩니다. 반면에 음성인 직원은 서로 끌려 호감이 가게 됩니다. 이
    것을 본인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연이 벌려놓은  것이지 인
    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운과 기운이 반발하면 싸움이
    라는 것이 반드시 생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싸움 그 자체를 없
    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을 잘 다
    스리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적당한 시기에 그쳐라." 싸움이 발생하게 되면 적당한 시기에
    그칠줄 알아야 합니다. 싸움이 길어지면 내가 입는 피해도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만약 내가 약한 상태에서 강한 적과 싸울 때면 다
    소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혈전을 회피하고 적당한 시기에 그치
    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다소의 말썽은 있으나 결국은 사리가 분명하게 증명되어 길하
    리라." 그러나 적당히 싸울 때까지는 싸워야 합니다. 손해를 감수
    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며  싸움을 회피하면,
    그것은 이미 패배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
    게 되고 나는 설 땅이 없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적당히 싸워서 저
    쪽도 어느 정도 지치고 최초의 자만이  누그러질 때 양보를 해서
    싸움을 그치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저쪽의 기운이 흐려지지도 않
    았는데 항복을 해 버리면  적은 더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싸움은 길게 끌지는 않으나 적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움찔하게끔
    하고 조속히 싸움을 마무리 짓는 것, 그것이  나의 옮음과 분명함
    으로 최후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먼저 싸움을 다스리는 묘미입니
    다.
     
        두번째 양효. 패소(敗訴)하게 된다. 아래  사람이 도
        리에 어긋나게 윗 사람과 항쟁하니 화를 초래하는 것
        은 당연지사다. 싸움을 피하고 적으나마 자기의 분수
        를 지켜 근신하고 있으면 화는 면할 것이다.
     
            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三百戶,  无
            □. 象曰,  不克訟,  歸逋竄也. 自下訟上,
            患至철也.
           
      "패소(敗訴)하게 된다. 아래 사람이 도리에  어긋나게 윗 사람
    과 항쟁하니 화를 초래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곳은 [음]이  있
    어야 할 자리에 [양]이 있습니다. 대응하는 다섯번째 효는 양효로
    서 주위에 강한 양의  기운을 대동하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효는 위치도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음효를 대
    동하고 나아가니 패소하여 화를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싸움을 회피하고 분수를 지키면서 근신하면 화는 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 부딪쳐서 패배하게 되면  패배
    의 원인을 잘 분석하여 대책을 세워야지, 패배의식에 빠져 있거나
    복수를 다짐하며 증오심에 차  있는 따위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갖은 굴욕과  패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분노를 간직할 필요는 없습니다. 승패
    는 기(氣)와 기(氣)의 관계에서 상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지, 마
    음과 마음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증오, 좌절 등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 그것은 이미 자기
    마음의 매카니즘이 잘못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설사  그러한 것들
    이 있다 해도 모두 다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란 나에게 굴욕을 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굴욕을 당한 나를 용서하는 것입니
    다. "아픈 가슴은 내가 아니며,  아픈 상처는 내 몸이 아닌  것"처
    럼, 마음에 받은 모든 상처와 손해, 그로 인한 손익계산서를 말끔
    히 없애버리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싸움을 피하고 적으나마 자기의 분수를 지켜 근신하고 있으면
    화는 면할 것이다." 분수를 지키며 근신한다는 것은 단순히  반성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와 기끼리 부딪쳐서 발생한 현실에 영향
    받아 자신의 마음에 일으키는  각종 상처들을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근신입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움직임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평온하다고 하더라도  자연이 강하
    게 부딪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마음은 상처를 받는  것이고,
    상황이 좋아지면 마음도 즐거워지는 법입니다.
      그것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은 상황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지 않
    으며, 모르고 움직이는 사람은 상황에 의해 발생한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근신이란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이
    지 않도록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 동요됨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현재의 지위에  만족하면서 윗사람에게
        순종하여 굳게 공손한 태도를 지켜  나간다면 위태롭
        기는 하나 길하리라. 한 때는 영예스러운  일에 종사
        하는 일이 있겠으나 화려한 성공을 바래서 지나친 일
        을 해서는 안된다.
     
            六三, 食舊德, 貞려終吉. 或從王事, 无成.
            象曰, 食舊德, 從上吉也.
     
      이 효는 밑의 강한  기운을 스스로가 완충작용을  하면서 위의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천수송]이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세번째 효 때문이며, 주역 64괘의 대부분이  세번째에서 네번째로
    비약할 때 상황이 좋지 않지만, 특별하게 좋은 것이  바로 이 [천
    수송]입니다.
      "현재의 지위에 만족하면서 윗사람에게 순종하여  굳게 공손한
    태도를 지켜 나간다면 위태롭기는  하나 길하리라." 세번째 효는
    위태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위를 받아들여 순종하고,  아래를 받
    아들여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일은  다 위험
    합니다. 우리가 차를 타는 것도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며
    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는 그러한 위험을 안고 들어
    갈 수 있는 자입니다. 물 속에 들어갈 때도 물의  위험을 안고 들
    어가고, 불 속에 들어갈 때도 불의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
    다. 물과 불이 위험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물과 불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자는 위험속에서 스스로를 건질 수 있지
    만, 위험을 회피하는 자는 그 위험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위험을 회피하면서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
    는 반드시 위험한 처지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운동경기에서도
    승리하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참가해야지, 위험을 거부하고 참가하
    는 선수는 단순히 참가에 의의를 두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패자
    는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번째 효는 위에 양효 세개가 있는 강한 양성기운과 부딪치려
    하지 않고 공손히 받아들이면서 인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 아래 자신의 강한 기운을 받아들여서 당당히 나가고 있습니다.
    즉 기운은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당당히  나아가지만, 마음과 태
    도는 항상 유순하고 공손하게 하기  때문에 위태로움을 극복하고
    길하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영예스러운 일에 종사하는 일이  있겠으나 화려한 성
    공을 바래서 지나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도가  인정받
    아 한 때 영광스러운 일에 종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성공과 만족에 이끌리어 자신이 원래 품었던 뜻을 저버
    리고 화려한 성공을 바란다면 발전은 이미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필요한 것이 또 인내입니다. 만일 내가  3년간 인내했는데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3년간 인내한 것은 인내가 아
    닙니다. 3년간 하고 4년째 하지 못하는 인내는 인내가  아닌 것입
    니다.
      인내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누구에 의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의
    해서 없어지거나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내가 연약한 힘
    으로 큰 세계를 끝내 이겨 나갈  수 있는 지구력, 추진력, 저력은
    인내를 통해 생활속에서 몸에 배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만족과 화
    려한 것을 바라는 마음에 치우치지 말고, 화려한 세계가 나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인내하면 승리로 가
    는 길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마음에 힘이 생겨 양
    성에너지를 사용해 나아가면 콱 막혀서 끝내는 패소하게 될 뿐입
    니다.
     
        네번째 양효. 패소한다. 물러나와 제  분수를 지키면
        서 천명을 쫓아 지금까지의 태도를  고치고 바른길에
        안정하고 있으면 길하리라.
     
            九四, 不克訟.  復卽命,  □安貞吉. 象曰,
            復卽命, □安貞, 不失也.
           
      "패소한다." 양의 기운만  믿고 마음의 힘으로  나가면 막혀서
    패소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역은 사람이 잘되기 위해서 씌여진 것
    이지, 잘못되라고 써놓지는 않았습니다.  패소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이를 극복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며, 이 길을
    지적해 주는 것이 주역의 역할입니다.
      "물러나와 제 분수를 지키면서 천명을 쫓아 지금까지의 태도를
    고치고 바른길에 안정하고 있으면  길하리라." 자기 기운만 믿고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낮추어 재검
    토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물러나와 천명을 따르며 자연
    에 의해서 되어질 수 있을 때까지 분수를 지켜야  합니다. 자신에
    게 좋으면 하고, 득이  되지 않으면 안하는  그런 태도를 버리고,
    싹이면 언젠가 꽃이 피듯이, 꾸준히 해나가는 태도로 지나치는 일
    을 하지 않으면 길할 것입니다.
      사람이 말하고 있는 단어 가운데 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운이
    라는 것은 반드시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목이 말라  죽겠는데 갑
    자기 소낙비가 쏟아져서 갈증을 모면했다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낙비를 계속해서  너무 많이 맞으면  감기에 걸리게
    됩니다. 이것은 운이 나쁜 경우에 들 것입니다. 결국 같은 소낙비
    라도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운이  좋은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운은 자기 자신과  자연의 관계
    에 의해서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운을 기다리면서  살면 절대로  안됩니다. 왜냐면
    최대의 운은 생명력에 의한 저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낮춰서 항상 살펴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운을 자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 역량을 갖추게 된 사람
    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누구한테도  가난하지도 않고, 또
    부자라고 나타내지도 않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최
    상의 복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세상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로 측
    정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길을 버리고 싹이면 언제든지 꽃이 피듯이 꾸준히 나가는
    그런 바른 마음에 지나치는  일을 하지않고 바른  길에 안정하고
    있으면 길하리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섯번째 양효. 소송에는 크게 길하다. 중정(中正)을
        지키기 때문이다.
     
            九五, 訟, 吉元.  象曰, 訟, 吉元,  以中正
            也.
           
      다섯번째 양효입니다. 양효가 앉아야 할 자리에 양효가 앉아 있
    고, 최고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강자가 정당한 위치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송에는 크게  길하다. 중정을 지키기 때문이
    다." 다섯번째 효는 맨 밑의 음효와  대응관계를 이루면서 중정을
    지킵니다. 물론 상호 대응관계를  이룰 수 있는 자리는  틀리지만
    밑의 음효가 다섯번째 효에게 영향을 미쳐서 자숙하도록 했기 때
    문에 중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중정(中正)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꾸준히 하는 것을 지키는 것
    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제 힘이 생기게 됩니다. 힘이 생기면 어지
    간히 약한 것은 쳐서 이겨버릴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꺽
    어 버릴려고 합니다. 원칙은 이루어  낼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꾸 꺾어 버릴려고 하게 되니  영예가 오래가지 못할 것
    입니다. 여섯번째는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양효. 소송에 이기고 큰 띠를  하사받는 영
        예를 얻는 수도 있지만 그 영예는 오래  계속되지 못
        한다. 단 시일 내에 빼앗기는 결과가 온다.  본시 소
        송으로 얻은 영예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다.
     
            上九, 或錫之□帶, 終朝三遞之. 象曰,  以
            訟受服, 亦不足敬也.
           
      "소송에 이기고 큰 띠를 하사받는 영예를 얻는 수도 있지만 그
    영예는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여섯번째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이겼다고 이긴 것이 아니다.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싸움없이
    이겨라.'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입니다. 흔히 우리는 동일한 상품을 파는 가게
    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기존의
    가게가 있는데 그것과 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를 옆에 개설해서,
    먼저 있던 가게보다 물건 값을 싸게 팔아 끝내 먼저 가게를 문닫
    게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크게  잘살게는 되지 못할 사람입니다.
    기분은 천하를 얻은 기분이겠지만, 그래봐야 구멍가게  하나 얻은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본래  존재하던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은
    오래갈 승리가 아닙니다. "나는 이겼다."라는 마음에 도취되어  발
    전도 못합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져도 진  것이 아니고,  이겨도 이겼다고
    들뜨지 않는 사람이 결국  대기만성하는 자이며, 큰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자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닙
    니다. 옆의 가게 하나 문닫게 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재벌이 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구멍가게 주인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다음
    번에는 자신이 망할 차례입니다. 남 망하게 하는 자는  곧 자신도
    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강한 세상과의 투쟁에서 자신을 지키며  승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란 내일의 승리를 위해 오늘의 패배
    에서 오는 쓰라림과 고통을 감수해 낼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
    나 진정한 인내란 증오심을  갖고 참는 것이 아닙니다.  증오심을
    갖고 참는 것은 한 때 반격으로 승리할 수는 있으나,  곧 다시 증
    오심을 갖는 적에 의해  패배하게 되는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무사가 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적에 대한 증오심을 버
    리는 것입니다. 적에 대한 증오심으로 덤비는 자는 증오심에 빠져
    싸움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적에 대한 사랑  혹은 증
    오심 등과 같은 감정의 차원에서 벗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가 승리의 방도를 발견해 내는 자입니다.
      흔히 전쟁 영화를 보면 적의 총알이  무서워서 총도 제대로 못
    쏘던 자가, 인접 전우가 죽으면 갑자기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용
    기 백배하게 돌격하여 적을 죽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대개 돌격하던  그 병사들은 적 앞에
    도달하기 전에 적의 총탄에  먼저 죽어 버립니다. 그러한  용기는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용감한 병사는 우군이 많든지, 아니면 모두  전사하고
    자기 혼자 남든지, 아랑곳 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두려움없이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한 때 이겼다고
    기뻐하지 않고, 한 때 패배하였다고  좌절하지 않으며, 감정에 치
    우침이 없이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살피고
    발견해 내는 자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수 있는 자입니다.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적보다
    강한 마음과 지혜와 능력과 용기만 있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
    나 그러한 승리는 나보다  강한 적이 나타나면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도의
    인내와 지혜와 용기로써 먼저 나를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으로써 패배할 수 없는 나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
    떠한 적이 나타나도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이기되 무리하게 싸움
    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승리가 되어지게 할 뿐입니
    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자기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투쟁과  갈
    등이 있을 수 있고, 승리와 패배가 있으며, 도처에 위험도 있습니
    다. 그러나 힘이 강하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며, 또 약하다
    고 반드시 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힘이 강하면 이길 확률이 그
    만큼 높다는 것일 뿐입니다. 싸워 이기려 하지 않고, 심정의 애증
    (愛憎)에서 벗어나 인내와 용기로써 승리가  되어지게 하는 자는
    지금 내가 약한 상태에 있어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를 슬
    기롭게 극복하여 결국은 승리하는 자입니다. 승부(勝負)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914
  • 64괘
    【주역 64괘】
    1. 위대한 창조 - 건위천(乾爲天)
    2. 위대한 생명력 - 곤위지(坤爲地)
    3. 탄생의 시련 - 수뢰둔(水雷屯)
    4. 무지몽매 - 산수몽(山水夢)
    5. 때를 기다려라 - 수천수(水天需)
    6. 법정에 서다 - 천수송(天水訟)
    7. 전쟁 - 지수사(地水師)
    8. 공존과 화합 - 수지비(水地比)
    9. 가로막는 아내 - 풍천소축(風天小畜)
    10. 강자를 따르다 - 천택리(天澤履)
    11. 천지의 화합 - 지천태(地天泰)
    12. 천지의 배반 - 천지부(天地否)
    13. 동지를 구한다 - 천화동인(天火同人)
    14. 커다란 풍요 - 화천대유(火天大有)
    15. 진정한 겸손 - 지산겸(地山謙)
    16. 뜻을 펼치다 - 뇌지예(雷地豫)
    17. 유순함을 따른다 - 택뇌수(澤雷隨)
    18. 혼란과 부패 - 산풍고(山風蠱)
    19. 정성으로 임한다 - 지택임(地澤臨)
    20. 세밀한 관찰 - 풍지관(風地觀)
    21. 결점을 씹어 끊다 - 화뢰서합(火雷서합)
    22. 아름답게 장식하다 - 산화분(山火賁)
    23. 멸망의 위기 - 산지박(山地剝)
    24. 번영으로 돌아오다 - 지뢰복(地雷復)
    25. 무위자연(無爲自然)- 천뢰무망(天雷无妄)
    26. 안정된 구축 - 산천대축(山天大畜)
    27. 배움의 길 - 산뢰이(山雷이)
    28. 강력한 기존 세력 - 택풍대과(澤風大過)
    29. 곤란이 겹치다 - 감위수(坎爲水)
    30. 현명한 지성 - 이위화(離爲火)
    31. 남녀의 연애 - 택산함(澤山咸)
    32. 항구불변 - 뇌풍항(雷風恒)
    33. 은둔(隱遁)하다 - 천산돈(天山遯)
    34. 지나친 활동력 - 뇌천대장(雷天大壯)
    35. 순조로운 전진 - 화지진(火地晋)
    36. 지혜를 숨기다 - 지화명이(地火明夷)
    37. 가정의 평화 - 풍화가인(風火家人)
    38. 시어머니와 며느리 - 화택규(火澤규)
    39. 험난한 산 - 수산건(水山蹇)
    40. 고난이 풀리다 - 뇌수해(雷水解)
    41. 손해보고 얻다 - 산택손(山澤損)
    42. 아래로 베풀라 - 풍뢰익(風雷益)
    43. 악을 척결하다 - 택천쾌(澤天쾌)
    44. 뜻밖의 시련 - 천풍구(天風구)
    45. 인재를 모으다 - 택지췌(澤地萃)
    46. 인생의 대운(大運) - 지풍승(地風升)
    47. 곤란을 맞다 - 택수곤(澤水困)
    48. 생명의 샘 - 수풍정(水風井)
    49. 혁명(革命) - 택화혁(澤火革)
    50. 고정관념을 버린다 - 화풍정(火風鼎)
    51. 두려운 마음 - 진위뢰(震爲雷)
    52. 부동(不動)의 상태 - 간위산(艮爲山)
    53. 착실한 성장 - 풍산점(風山漸)
    54. 첩으로 시집가다 - 뇌택귀매(雷澤歸妹)
    55. 번 영 - 뇌화풍(雷火豊)
    56. 고독한 여행길 - 화산려(火山旅)
    57. 반복하여 시도하다 - 손위풍(巽爲風)
    58. 풍요로운 귀결처 - 태위택(兌爲澤)
    59. 순풍에 돛 - 풍수환(風水渙)
    60. 절제와 절도 - 수택절(水澤節)
    61. 성실한 믿음 - 풍택중부(風澤中孚)
    62. 저자세로 나아가다 - 뇌산소과(雷山小過)
    63. 완성 - 수화기제(水火旣濟)
    64. 미완성 - 화수미제(火水未濟)…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6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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