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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7
    이 첫째 단계에서 각종 부분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는데, 그것은 마지막 단계[즉, 건조로에서 유리병을 끄집어내고, 그들을 품종별로 분류하고, 포장하는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두 단계의 중간에 진정한 유리병제조, 즉 유동상태의 유리액의 조작단계가 있다. 유리로(爐)의 아궁이마다 한 집단의 노동자('구멍'이라고 부른다)가 작업을 하는데, 이들은 1명의 병제조공 또는 마무리공과 1명의 취공(吹工: blower), 1명의 모음공, 1명의 쌓음공 또는 닦음공과 1명의 운반공으로 이루어진다. 이 5명의 부분노동자들은 단일노동유기체의 다섯 개의 특수한 기관이며, 이 노동유기체는 하나의 통일체(統一體)로서만, 따라서 오직 다섯 사람의 직접적 협업(協業)에 의해서만 활동할 수 있다. 이 노동유기체는 그 다섯 개의 기관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의 유리 로(爐)에는 몇 개의 아궁이(영국에서는 4개 내지 6개가 있는데, 그 각각의 아궁이마다 액체상태의 유리가 들어 있는 내화(耐火)도 가니가 묻혀 있고, 각 아궁이마다 5명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집단이 일하고 있다. 이때 각 집단의 편성은 분업(分業)에 의거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협업(單純協業)으로서 생산수단의 하나인 유리로를 공동사용에 의해 더 경제적으로 이음하고 있다. 이와같은 유리로 하나와 그에 부속되어 있는 4-6개의 노동자 집단이 하나의 유리 제조장을 구성하는데, 유리 매뉴팩쳐는 몇 개의 이러한 제조장과 준비단계 및 마지막 단계를 위한 설비와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다.
    끝으로, 매뉴팩쳐가 일부는 각종 수공업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매뉴팩쳐의 결합으로 발전해 가기도 한다. 예컨대 영국의 대규모 유리공장들은 내화도가니를 자체에서 제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도가니의 품질 여하에 파라 생산과정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매뉴팩쳐가 생산물을 생산하는 매뉴팩처와 결합되어 있다. 다른 한편, 생산물을 생산하는 매뉴팩쳐는 그 생산물 자체를 다시 원료로 쓰는 다른 매뉴팩쳐 또는 그 생산물을 자기의 생산물과 혼합시키는 다른 매뉴팩쳐와 결합할 수도 있다. 예컨대 납유리 매뉴팩쳐는 유리 가공 매뉴팩쳐 및 황동주조(黃銅鑄造) 매뉴팩쳐와 결합하는 일이 있는데, 황동은 여러 가지 유리제품의 금속장식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결합된 각종 매뉴팩처는 하나의 전체 매뉴팩쳐의 다소 분리된 부문들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은 자기 고유의 분업을 가진 독립된 생산과정이다. 매뉴팩쳐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결합은 그 자체의 토
    대 위에서는 완벽한 기술적 통일성을 달성할 수 없다. 이 통일성은 매뉴팩쳐가 기계에 의한 생산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발생한다.
    매뉴팩쳐 시대의 초기에,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원칙(주석 16: 이것은 특히 페티, 벨러즈(John Bellers), 야런튼(Andrew Yarranton), ?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의 익명의 저자, 그리고 반더린트로부터 볼 수 있다.)이 의식적으로 공식화되고 표명되었다. 그리고 기계의 사용도, 특히 거대한 힘이 요구되며 대규모로 수행해야 하는 단순한 초보과정을 위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예컨대 초기의 제지 매뉴팩쳐에서는 넝마의 분쇄(粉碎: tearing-up)가 제지용 분쇄기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야금업에서는 광석을 분쇄하는 일이 쇄광기(碎鑛機: stamping-mill]에 의해 수행되었다.(주석 17: 16세기 말 무렵에도 아직 프랑스에서는 광석을 분쇄하며 세광하는 데 절구와 체가 사용되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물레방아의 형태로 모든 기계의 초보적인 형태를 물려주었다.(주석 18: 기계발전의 전체 역사는 제분기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공장을 mill[물방앗간]이라고 부른다. 1810년대의 독일의 기술서적들을 보면 muhle(水車)라는 용어가 자연력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기계에 대해서 뿐 아니라 기계적 장치를 사용하는 모든 공장에 대해서까지 사용되고 있다.) 수공업 시대는 나침반. 화약. 인쇄술. 자동식 시계와 같은 위대한 발명을 남겼다. 그러나 대체로 기계는 분업과 대비할 때 부차적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애덤 스미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주석 19: 이 책의 제4권{잉여가치학설사}에서 자세한 내용을 보게 되겠지만,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관해 단 하나의 새로운 명제(命題)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매뉴팩쳐 시대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특징짓는 것은 그가 분업을 특히 강조한 점 때문이다. 그가 기계에 부여한 종속적 역할은 대공업의 초기에는 로더데일(Lauderdale)의 반박을, 그리고 더 나중의 시기에는 유어(Ure)의 반박을 불러일으켰다. 애덤 스미스는 또한 도구(道具)의 분화[이것에는 매뉴팩쳐의 부분노동자들 자신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를 기계(機械)의 발명과 혼동하고 있다. 기계의 발명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학자, 장인(master) 심지어는 농민들(예: Brindley)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7세기에 간헐적으로 나타난 기계의 사용이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 것은, 그것이 그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들에게 근대적 역학(力學)의 창조를 위한 실질적인 토대와 자극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매뉴팩쳐 시대 특유의 기계는 바로 수많은 부분노동자(部分勞動者)들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적 노동자(集團的 勞動者) 자신이다. {매뉴팩쳐 이전에는} 노동과정에서 한 상품의 생산자가 차례차례로 수행하는 각종 작업들은 그 생산자에게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한 작업에서는 더 많은 힘을, 다른 작업에서는 더 많은 주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러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갖추지는 못했다. {이제} 각종 작업이 분리되고 독립되고 고립된 뒤, 노동자들은 자기의 뛰어난 자질에 따라 구분되고 분류되고 편성된다. 만약 노동자들의 타고난 재능이 분업의 토대라고 한다면, 매뉴팩쳐는, 일단 도입된 뒤에는, 일면적이고 특수한 기능에만 적합한 새로운 능력(노동자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집단적 노동자는 이제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같은 정도로 우수하게 구비하게 되며, 그리고 집단적 노동자는 자기의 모든 기관[개별 노동자나 노동자의 집단]을 오직 그 기관의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만 사용함으로써 그 자질을 가장 경제적으로 지출한다.(주석 20: "작업을 [각각 다른 정도의 숙련과 힘이 요구되는] 다수의 서로 다른 과정으로 분할함으로써, 매뉴팩쳐 경영자는 각각의 과정에 필요한 정확한 양의 힘과 숙련을 구입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작업 전체가 한 사람의 노동자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면, 노동자는 가장 섬세한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숙련과 가장 힘든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힘을 모두 가져야 할 것이다"(배비지, 앞의 책, 제19장).) 부분노동자의 일면성(一面性)과 불완전성(不完全性)조차도 그가 집단적 노동자의 한 기관일 때는 장점으로 된다.(주석 21: 예를 들면, 어떤 근육의 비정상적 발달이나 골격의 굴절 등.) 한 가지 일만을 수행하는 습관은 부분노동자를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기관으로 만들며, 그리고 전체 메커니즘과의 관련은 그로 하여금 기계의 일부와 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주석 22: "어떻게 젊은이들을 꾸준히 일하도록 할 수 있는가?"라는 한 조사위원회 위원의 질문에 대해, 유리 매뉴팩쳐의 총지배인인 마샬(W. Marshall)은 다음과 같이 매우 정확하게 답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일을 도저히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들은 일단 일을 시작하면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기계의 부분품과 똑같다"(?아동노동 조사위원회. 제4차 보고서?,1865년, p.247).)
    집단적 노동자가 수행하는 각종 기능에는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 저급(低級)의 것과 고급(高級)의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구성원인 개별노동력은 상이한 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각각 다른 가치(價値)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매뉴팩쳐는 동력의 등급제(等級制: hierarchy)를 발전시키며, 이것에 임금의 등급이 대응하게 된다. 개별 노동자는 한정된 기능에 일생동안 묶이고, 등급이 매겨진 각종 작업이 선천적. 후천적 능력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할당된다.(주석 23: 유어(Ure)는 대공업에 대한 찬양에서 매뉴팩쳐 특유의 성격을 이전의 경제학자들 [이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보다도, 또는 동시대의 학자들-예컨대 배비지[그는 수학자. 기계학자로는 유어를 능가하지만 대공업을 매뉴팩쳐의 관점에서만 고찰했다]-보다도 더 날카롭게 포 착하고 있다. 유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각의 특수작업에, 적절한 가치(價値)와 비용(費 用)의 노동자를 배치하는 것이 분업(分業)의 본질을 이룬다. " 다른 한편, 그는 이 분업을 '노 동을 상이한 개인적 능력에 적응시키는 것'이라고 묘사하며, 끝으로 전체 매뉴팩쳐 제도를 '분 업 또는 노동등급제'(勞動等級制)로, '숙련도의 차이에 따른 분업' 등으로 특징짓고 있다(유어, ?공장철학?, pp. 19-23의 여러 곳).) 그러나 어떤 생산과정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조작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러한 조작들도 이제는 [내용이 더 풍부한 활동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부터] 분리되어 특수한 개인의 배타적인 기능으로 굳어 버린다.
    이리하여 매뉴적쳐는 [그것이 장악하는 모든 업종에서]이른바 미숙련노동자(unskilled labourer)
    라는 하나의 부류[수공업은 그 성질상 이러한 부류를 엄격히 배제한다]를 만들어낸다. 매뉴팩쳐가 인간의 전반적인 노동능력의 희생 위에서 일면화된 전문성을 완벽한 경지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미숙련노동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발전(發展)의 결여(缺如)를 하나의 전문성(專門性)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등급제의 등급과 나란히 숙련공과 미숙런공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나타난다. 미숙련공의 경우 수련비(修練費)가 없어지고, 숙련공의 경우 그들의 기능이 단순하게 된 결과 수련비가 수공업노동자의 경우에 비해 줄어든다. 어느 경우에나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진다.(주석 24: "각 수공인(手工人)은....한 가지 일만을 되풀이함으로써 자기 일을 더 완벽하게 할 수 있게 되므로....더 값싼 노동자로 되었다"(유어, 같은 책, p. 19).) 물론 이 법칙의 예외는 [수공업적 경영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거나 동일한 정도로는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포괄적 기능들이 노동과정의 분할로 말미암아 생기는 경우다. [수련비의 소멸 또는 감소에 기인하는] 노동럭의 상대적(相對的)인 가치저하(價値低下)는 직접적으로 자본의 가치증식의 더 높은 정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재생산에 요구되는]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모든 것은 잉여노동의 영역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제 4 절 매뉴팩쳐 안의 분업과 사회 안의 분업



    우리는 첫째로 매뉴팩쳐의 기원을 고찰했고, 다음에는 그 단순한 요소들[즉, 부분노동자와 그의 도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전체 메커니즘을 고찰했다. 이제는 매뉴팩쳐 안의 분업과 [모든 상품생산의 토대를 형성하는] 사회 안의 분업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고찰하려 한다.
    만약 우리가 노동 그 자체만을 염두에 둔다면, 농업. 공업 등과 같은 주요부문(主要部門)들로의 생산의 분할을 일반적(general) 분업, 그리고 이들 생산부문의 종(種)이나 아종(亞種)으로의 분할을 특수한(particular) 분업, 그리고 하나의 작업장 안의 분업을 개별적(individual) 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주석 25: “분업에는 매우 다종다양한 직업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해서, 매뉴팩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하나의 생산물의 완성을 많은 노동자가 분담하는 것까지 있다"(슈토르히[Storch], ?정치경제학강의?, 파리판, 제1권, p. 173). "우리는 일정한 정도의 문명에 도달한 국민들 사이에서 세종류의 분업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 분업이라고 부르는 첫째 종류는 생산자가 농업생산자. 공업생산자. 상인으로 분할되는 것인데, 이것은 국민의 노동의 3개 주요부문에 대응한다. 특수한 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둘째 종류는 각 노동부문이 종(種:species)으로 분할되는 것이다....끝으로 제3의 분업은 작업의 분할 또는 진정한 분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개별 수공 업 또는 직업 안에서 일어나며....대다수의 매뉴팩쳐와 작업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스카 르베크[Skarbek], ?사회적 부의 이론”, pp. 84-85).)
    사회 안의 분업과 그에 대응해 개인이 특수한 직업에 속박되는 것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출발점으로부터 발전하는데, 후자의 출발점은 또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 가족(주석 26: {엥겔스: 인류의 원시상태에 관한 그 뒤의 매우 근본적인 연구에 의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즉, 본래 가족(家族)이 종족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종족(種族) 이 혈연관계에 입각한 인간집단의 본원적인 자연발생적 형태였으며, 그리하여 종족의 결속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이후에 비로소 여러 가지 가족형태가 발전했다.}) 안에서 그리고 더욱 발전해 한 종족 안에서 성과 연령의 차이로 말미암아[즉, 순전히 생리적인 토대 위에서] 자연발생적인 분업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분업은 공동체의 확대, 인구의 증가 그리고 특히 서로 다른 종족 사이의 충돌과 한 종족에 의한 다른 종족의 예속화(隸屬化)와 더불어 확대해 간다. 다른 한편으로, 앞에서{제2장 '교환과정'} 지적한 바와 같이, 생산물의 교환(交煥)은 서로 다른 가족들이나 종족들이나 공동체들이 상호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인류문명의 초기에는 독립된 단위로 상호관계를 맺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종족 등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공동체(共同體)들은 그 자연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 공동체들의 생산방식. 생활양식. 생산물(生産物)은 서로 다르다. 바로 이 자연발생적 차이 때문에 공동체가 서로 접촉할 때 생산물이 서로 교환(交換)되고, 따라서 이 생산물들이 점차 상품(商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교환이 생산영역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환은 기존의 상이한 영역들을 서로 관련맺도록 하며, 그리하여 그 상이한 영역들을 사회 전체의 총생산의 다소 상호의존적인 부문(部門)들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본래부터 상이하며 상호 독립적인] 생산영역들 사이의 교환으로부터 사회적 분업(社會的 分業: social division of labour) {사회안의 분업}이 발생한다 이와 반대로, 생리적 분업(生埋的 分業)이 출발점으로 되는 경우에는, 긴밀하게 결합된 전체의 특수한 기관들이 서로 분리되고 분할된다. 이 분해과정은 다른 공동체와의 상품교환으로부터 큰 자극을 받는다. 그 뒤 이 기관들은 상당한 정도의 독립성을 획득하게 되며, 각종 작업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유대관계는 상품으로서의 생산물의 교환이다. 한 경우에는 이전에 독립적이었던 것이 의존적으로 되며, 다른 경우에는 이전에 의존적이었던 것이 독립적으로 된다.
    [일정한 발전수준에 도달한, 그리고 상품의 교환을 통해 발생한] 모든 분업의 토대는 도시(都市)와 농촌(農村)의 분리이다.(주석 27: 제임스 스튜어트(J. Sreuart)는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보다 10년이나 먼저 출판된 그의 저작이 현재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즉 인구에 관한 맬더스의 저작의 초판은, 그 순전히 연설투의 부분을 제외한다면, 목사 월리스(Robert Wallace) 및 타운젠드(Joseph Townsend)로부터 표절했을 뿐 아니라 스튜어트로부터 표절했다는 것을 맬더스의 숭배자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경제사(經濟史) 전체는 이 대립(對立)의 운동으로 요약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일정한 수가 매뉴팩쳐 안의 분업을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크기와 밀도(密度: density)[이것은 하나의 작업장으로 노동자들이 밀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사회 안의 분업을 위한 전제조건이다.(주석 28: "사회적 교류를 위해 그리고 노동생산물을 증대시킬 힘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일정한 인구밀도가 있다"(제임스 밀[James Mill], ?정치경제학원리?, 런던, 1821년, p. 50).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의 생산력은 그 증가에다 분업의 효과가 곱해진 복비례(複比例)로 증가한다"(호지스킨, ?대중경제학?, pp. 125 -126).) 그러나 이 밀도라는 것은 다소 상대적인 것이다. 인구는 비교적 희박하나 발전한 교통수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인구는 더 많으나 교통수단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 비해 인구밀도가 더 높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컨대 미국 북부의 주들은 인도에 비해 인구밀도가 더 높다.(주석 29: 1861년 이후 면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결과 동인도의 인구가 조밀한 몇몇 지방에서는 면화 의 생산이 쌀생산의 희생 위에서 확장되었다. 때문에 국지적(局地的)인 기관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교통수단의 부족[따라서 물질적인 연결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한 지방의 쌀생산 부 족을 다른 지방으로부터의 반입(搬入)에 의해 보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에서는 방추의 제조가 17세기에 벌써 하나의 특수한 산업부문으로 되었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일반적 전제이므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 안의 분업이 이미 일정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거꾸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에 반작용해서 그것을 발전시키며 증가시킨다. 노동도구의 분화에 따라 이 도구를 생산하는 산업들도 더욱 더 분화(分化)된다.(주석 30: 그리하여 네덜란드에서는 방추의 제조가 17세기에 벌써 하나의 특수한 산업 부문으로 되었다.) 이때까지는 동일한 생산자가 본업(本業) 또는 부업(副業)이라는 형태로 함께 경영해 오던 업종들은, 매뉴팩쳐적 경영에 의해 장악되면, 즉시 분리되고 독립한다. 매뉴팩쳐적 경영이 어떤 상품의 하나의 특수한 생산단계를 장악하게 되면, 그 상품의 다른 생산단계들은 각각 독립 산업으로 전환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제품이 다수의 부품이 조립되어 만들어지는 경우에는, 부분작업 그 자체가 다시 독자적인 수공업으로 독립할 수도 있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을 더욱 완전하게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생산부문이 그 원료의 차이에 따라, 또는 동일한 원료가 취하는 형태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매뉴팩쳐[부분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매뉴팩쳐]로 분할된다. 그리하여 벌써 18세기 전반에 프랑스에서만도 100종 이상의 견직물이 생산되었고, 또 예컨대 아비뇽에서는 "모든 도제(徒弟)들은 각각 한 종류의 제조에만 전념해야 하며 여러 가지 직물의 제조방법을 동시에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으로 규정했다. 특정의 생산부문을 국내의 특정지역에 고착시키는 지역적 분업(地域的 分業)은 자연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매뉴팩쳐적 경영에 의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주석 31: "영국의 양모 매뉴팩쳐는 각각 특정 지역에 적합한 몇 개 부분 또는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지역에서는 전적으로 또는 주로 그 부분만이 제조되고 있지 않은가? 예컨대 세포(細布: fine cloth)는 서머셋셔에서, 조포(粗布: coarse cloth)는 요크셔에서, 폭에 넓은 천은 엑서터에서, 견모교직(絹毛交織:serge)는 서드베리에서, 크레이프(crape) 천은 노리지에서, 교직물(交織物)은 켄달에서, 모포는 휘트니에서 생산되는 것 등과 같다"(버클리[Berkeley], "질문자?1750년, 제520절).) [매뉴팩쳐 시대가 존재하게 되는 일반적 조건의 일부를 형성하는] 세계시장의 확대와 식민제도는 사회 안의 분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분업이 사회의 경제영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을 장악하며, 그리고 분업이 도처에서 한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단 한 가지의 능력만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점에 대해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후자의 사실은 이미 애덤 스미스의 스승인 퍼거슨으로 하여금 ”우리는 노예들로만 이루어진 국민이며, 우리 가운데 자유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다"(주석 32: 퍼거슨(A. Ferguson), “시민사회사” 에딘버러, 1767년 제4부, 제2편, p. 285.)고 외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 안의 분업과 작업장 안의 분업은, 비록 그들 사이에 수많은 유사점(類似點)과 관련이 있기는 하나, 정도에서뿐 아니라 본질(本質)에서도 서로 다르다. 유사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하나의 내적 유대에 의해 여러 가지 업종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목축업자는 날가죽을 생산하며, 피혁업자는 그것을 가죽으로 전환시키며, 제화업자는 그것을 구두로 전환시킨다. 이 경우 각자의 생산물은 완성품(完成品)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며, 이 마지막의 완성품은 부분노동들의 결합생산물(結合生産物)이다. 그외에도 목축업자. 피혁업자. 제화업자에게 생산수단을 제공하는 각종 산업부문이 있다. 여기에서, 애덤 스미스처럼,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쳐 안의 분업 사이의 차이는 오직 주관적이며 관찰자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자는 매뉴팩쳐에서는 한 장소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사회적 분업에서는 작업이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고 각 노동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그 상호관계이 애매하기 때문이다.(주석 33: 스미스의 말에 의하면, 진정한 매뉴팩쳐에서는 분업(分業)이 더욱 진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소수인의 작은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소한 제조업에서는 노동자수가 적을 수밖에 없어] 작업의 각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동일한 작업장에서 관찰자가 한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다수 국민의 대규모 수요를 충족시키는 큰 제조업에서는, 작업의 각 부문이 매우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동일한 작업장으로 모을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보다 많은 숫자를 한번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제조업에서는 사소한 제조업에서보다 사실상 작업이 훨씬 많은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분할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고 따라서 훨씬 덜 주목받는다. "(A. 스미스, ?국부론?, 한글판, 상, 13쪽). 같은 장(글)에 있는 유명한 단락(段落),즉 "번영하는 문명국의 가장 일반적인 수공업자 또는 일용노동자의 생활용품을 관찰해 보면"(같은 책, 19쪽)으로 시작해서, 한 사람의 보통노동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러 생산부문이 공헌하고 있는가를 묘사하고 있는 단락은, 거의 단어 하나하나를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이 자기의 저서 ?꿀벌들의 우화, 또는 사적 죄악과 공적 이익?에 붙인 주(註)로부 터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주가 없는 초판은 1705년에 출판되었고 주가 있는 판은 1714년에 출 판 되었다).) 그러나 목축업자와 피혁업자와 제화업자의 독립된 노동들 사이의 유대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각각의 생산물이 상품(商品)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매뉴팩쳐적 분업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분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석 34: "우리가 개인의 노동에 대한 자연적 보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벌써 아무 것도 없다. 각 노동자는 오직 전체의 부분만을 생산하며 또 그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유용성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손에 쥐고 이것은 나의 생산물이다, 이것은 내가 가지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자본의 요구에 대한 노동의 방어?, 런던, 1825년 p. 25). 이 탁월한 저서의 저자는 호지스킨이다.) 상품으로 되는 것은 모든 부분노동자들의 공동생산물(共同生産物)뿐이다.(주석 35: 이와 같은 사회 안의 분업과 매뉴팩쳐 안의 분업 사이의 차이는 양키 {미국 남북전쟁 때의 북부사람}에게 실제로 설명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워싱턴에서 새로 고안된 세금의 하나는 '모든 공업생산물'에 부과된 6%의 소비세였다. 질문: 공업생산물이란 무엇인가? 입법자의 답: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지면' 생산물이 되고, 판매될 준비가 되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많은 실례 중 하나를 들어보자.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매뉴팩쳐는 이전에는 우산을 그 모든 부속품과 함께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우산은 전혀 이질적인 부품들의 합성물이므로, 이 부품들은 점차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경영되는] 각종 업종들의 생산물로 되었다. 이제 이러한 부품 들은 독립 상품으로 우산 매뉴팩쳐에 들어오게 되었고, 우산 매뉴팩쳐는 이 상이한 부품들을 조립할 뿐이다. 양키는 이러한 종류의 제품을 '조립상품(組立商品)'이라고 불렀는데, 이 제품은 그 명칭에 어울리게 세금(稅金)도 조립했다 즉, 우산은 우선 그 부품 각각의 가격에 대한 6%의 세금을 '조립'하고, 다음에는 그 자신의 총가격에 대한 6%의 세금을 또한 '조립'한다.) 사회 안의 분업은 서로 다른 산업부문들의 생산물의 매매에 의해 매개되고 있지만, 매뉴팩쳐 안의 여러 부분노동들 사이의 관련은 여러 노동력이 동일한 자본가에게 판매되어 그에 의해 결합노동력(結合勞動力)으로 사용된다는 것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한 자본가의 수중에 생산수단이 집적(集積)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만, 사회 안의 분업은 서로 독립된 다수의 상품생산자 사이로 생산수단이 분산(分散)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매뉴팩쳐 안에서는 비례관계의 철칙이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일정한 기능들에 종속시키지만, 매뉴팩쳐 밖의 사회에서는 우연과 자의(恣意)가 작용해 사회적 노동의 각종 부문들 사이에 생산자와 그들의 생산수단이 분배되는 것은 제멋대로다. 물론 여러 가지 생산영역들이 끊임없이 균형(均衡: equilibrium)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각각의 상품생산자는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해서 일정한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며(이 욕망들의 크기는 양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이 상이한 크기의 욕망들을 하나의 자연발생적 체계에 분배하는 내적 유대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의 가치법칙(價値法則)은 사회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전체 노동시간 중 얼마만큼을 각각의 상품종류의 생산에 지출할 수 있는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생산영역들이 균형으로 향하는 이 끊임없는 경향은 이 균형의 끊임없는 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용할 뿐이다. [작업장 안의 분업이 의거하고 있는] 계획되고 규제되는 사전적 체제는 사회 안의 분업에서는 생산자들의 규제받지 않는 변덕을 통제해야 하는] 자연적인 사후적 필연성(이것은 시장가격의 변동에서 알 수 있다)으로 변한다.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자본가에게 속하는 전체 메커니즘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의 무조건적 권위를 내포하지만, 사회 안의 분업은 경쟁(競爭)이라는 권위 밖에는 [즉, 상품생산자들 상호간의 이익 대립이 자기들에게 가하는 강제 외에는] 다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독립적 상품생산자들을 서로 대립시킨다. 이것은 마치 동물계에서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대체로 모든 종(種)의 생존조건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작업장 안의 분업, 노동자를 평생 하나의 부분작업에 묶어두는 것,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완전한 종속 등을 노동생산성을 제고시키는 노동조직이라고 찬양하는] 바로 그 부르주아적 의식은, 생산과정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조정하려는 온갖 의식적 시도를 개별 자본가의 소유권. 자유. 자율적 '독창성' 등과 같은 신성한 것에 대한 침해라고 마찬가지로 열렬히 비난하고 있다. 공장제도의 열광적인 변호자들이 사회적 노동의 일반적 조직화를 반대하면서, 그것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공장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특징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업에서의 무정부상태(無政府狀態)와 매뉴팩쳐적 분업에서의 독재(獨裁)가 서로 다른 것의 조건으로 되고 있으나, 이와는 반대로 [직업의 분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발전해 응고되고 최후로 법률에 의해 고정된] 이전의 사회 형태에서는, 한편으로 사회의 노동이 공인(公認)된 권위적인 계획(計劃)에 따라 조직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작업장에서는 분업을 완전히 배제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작은 규모로 간헐적 우연적으로만 발전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주석 36: "일반적 원칙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있다. 즉, 권위가 사회 안의 분업을 지배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분업은 작업장 안에서 그만큼 더 발전하며, 한 개인의 권위에 그만큼 더 종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업의 관점에서 볼 때, 작업장 안의 권위와 사회 안의 권위는 서로 반비례한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pp. 130-131).)
    예컨대 [부분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인도의 매우 오래된 소공동체는 토지의 공동소유, 농업과 수공업의 직접적 결합, 그리고 고정불변의 분업에 입각하고 있는데, 이 분업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때마다 주어진 계획 및 설계도로 역할한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자급자족적(自給自足的)인 완결된 생산조직을 이루고 있는데, 그 영역은 100에이커에서 수천 에이커에 달한다. 생산물의 대부분은 공동체 자체의 직접적인 수요를 위한 것이고 상품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생산은 상품교환에 의해 매개되는 인도 사회 전체의 분업과는 무관하다. 오직 생산물의 잉여(剩餘)만이 상품(商品)으로 되며, 그리고 그 잉여의 일부는 [태고적부터 현물지대의 형태로 생산물의 일정한 양을 징수해 온] 국가의 수중에서 비로소 상품(商品)으로 된다. 공동체의 형태는 인도의
    지방에 따라 다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동체에서는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되며 생산물은 그 구성원들에게 분배된다. 동시에 방적. 직포는 각 가정의 부업(副業)으로 경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일하게 노동에 종사하는 주민들 이외에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재판관과 경찰관과 징세관을 한 몸에 겸하고 있는 '공동체의 우두머리‘, 농경에 관한 계산과 이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기장인(記帳人: book-keeper), 범죄자를 추궁하며 외부로부터 온 여행자를 보호해 그를 다른 마을로 안내하는 관리, 인접하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 공동체의 경계선을 경비하는 경계선 경비원, 농경을 위해 공동저수지로부터 물을 분배하는 저수지 감시인, 종교적 의식을 수행하는 바라문(Brahman), 모래 위에서 공동체의 아동들에게 쓰기와 읽기를 가르치는 교사, 파종이나 수확의 시기 및 기타 여러 가지 농사일에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알려주는 역술(曆術) 바라문 또는 점성가, 모든 농기구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대장장이와 목수, 촌락에서 쓰는 모든 그릇들을 제조하는 도자기공, 이발사, 의복을 세탁하는 세탁사, 은 세공인, 어떤 공동체에서는 은(鎭) 세공인을 대신하고 또 어떤 공동체에서는 교사를 대신하는 시인(詩人). 이 10여 명의 사람들은 공동체 전체의 비용으로 부양한다. 만약 인구가 증가하면 새로운 공동체가 원래의 것을 본떠 미개간지에 세워진다. 이 공동체의 전체 메커니즘은 체계적인 분업을 보여주고 있으나, 매뉴팩쳐에서와 같은 분업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장장이나 목수 등은 불변의 시장과 대면하고 있으며, 촌락의 크기에 따라 대장장이나 목수 등은 1명이 아니면 기껏해야 두세 명 있기 때문이다.(주석 37: 월크스(Mark Wilks), ?인도 남부의 역사적 개관?, 런던, 1810-17년, 제1권, pp. l18-120. 인도 공동체의 각종 형태에 대한 훌륭한 묘사는 캠벌(George Campbell)의 ?현대인도?(런던, 1852년)에서 볼 수 있다.) 공동체의 분업을 규제하는 법칙은 자연법칙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권위를 가지고 작용하지만, 대장장이나 목수 등과 같은 각 개별 수공업자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그러나 독립적으로,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작업장 안에서 자기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끊임없이 동일한 형태로 자기를 재생산하며 어쩌다가 파괴되더라도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명칭으로 재건되는] 자급자족적인 공동체의 생산유기체(生産有機體)의 단순성은(주석 38: "이러한 단순한 형태로....이 나라 주민들은 태고적부터 생활했다. 마을들의 경계선이 변동되는 일은 드물다. 비록 마을 그 자체는 때로는 전쟁. 기근. 전염병에 의해 훼손되며 심지어 황폐화되는 일까지 있었지만, 동일한 명칭. 동일한 경계선. 동일한 이해관계, 또 심지어 동일한 가족들이 오랫동안 존속했다. 나라의 멸망이나 분할에 대해 주민들은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마을이 온전하게 남아 있기만 하면, 그것이 어떤 권력의 수중에 넘어가든 어떤 군주에게 맡겨지든 그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마을의 내부 경제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전 자바의 부총독, 라플즈. [T. Stamford Raffles], ?자바사?, 런던, 1817년, 제1권, p. 285).) [아시아 국가들의 끊임없는 흥망및 왕조의 쉴 새 없는 교체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아시아 사회의 불변성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사회의 경제적 기본요소들의 구조는 [정치라는 상공에서 일어나는] 폭풍우에 의해서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길드의 규칙은 1명의 장인(匠人)이 고용할 수 있는 직인(職人: journeyman)과 도제(徒弟)의 수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장인이 자본가로 전환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저지했다. 더욱이 장인은 자기가 몸소 장인으로 있는 수공업에서만 직인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길드는 [자기들과 대면하고 있는 단 하나의 자유로운 자본형태였던] 상인자본(商人資本)의 온갖 침투를 열렬히 격퇴했다. 상인은 어떤 상품이라도 살 수 있었으나 노동을 상품으로 살수는 없었다. 상인은 수공업 생산물을 매매하는 장사꾼으로서만 용인되었을 뿐이다. 사정에 의해 분업을 더욱 세분화할 필요가 생기면, 기존의 길드가 아종(亞種)들로 분열되거나, 새로운 길드를 원래의 길드 옆에 설치했지만, 여러 가지 수공업을 하나의 동일한 작업장에 집중시키는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비록 길드조직이 수공업의 분리. 고립. 개선에 의해 매뉴팩쳐의 물질적 존재조건의 창조에 크게 공헌했지만, 길드 조직은 매뉴팩쳐의 특징인 작업장 안의 분업을 배제하고 있었다. 대체로 노동자(勞動者)와 그의 생산수단(生産手段)은 마치 달팽이와 달팽이집처럼 서로 긴밀하게 통일(統一)되어 있었고, 따라서 매뉴팩쳐의 제1토대-즉 노동자에 대해 생산수단이 자본으로 독립하는 것-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체사회 안의 분업은, 상품교환에 의해 매개되든 아니든, 매우 다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존재할 수 있지만, 매뉴팩쳐에서 수행되고 있는 바와 같은 작업장 안의 분업(分業)은 자본주의적(資本主義的) 생산양식의 전혀 독특한 창조물(創造物)이다.



    제 5 절 매뉴팩쳐의 자본주의적 성격


    동일한 자본가의 지휘 하에 많은 노동자가 있다는 것은 협업(協業) 일반과 매뉴팩쳐의 자연발생적 출발점이다. 그러나 매뉴팩쳐적 분업에서는 노동자 수의 증가가 기술상 필요하다. 1명의 자본가가 고용해야 하는 최소한도의 노동자 수는 기존의 분업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더욱 진전된 분업의 이익은 오직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노동자 수의 증가는 모든 부분집단이 일정한 비율(比率)로 배가(倍加)되는 방식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의 가변적(可變的) 구성부분의 증가는 그 불변적(不變的) 구성부분의 증가도 요구한다. 즉, 건물이나 기구 등 생산조건의 규모뿐 아니라 특히 원료[이것에 대한 수요는 노동자의 수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증가한다]가 증가해야 한다. 일정한 기간중 일정한 노동량에 의해 소비되는 원료량은 분업의 결과 노동생산성이 제고되는 데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가 수중에 가지고 있어야 할 최소한도의 자본규모가 계속 증대한다는 것, 다시 말해 사회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이 계속 증대해야 한다는 것은 매뉴팩쳐의 기술적 성격으로부터 발생하는 하나의 법칙이다.(주석 39: "수공업의 세분화에 필요한 자본"(저자는 필요한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이라고 말했어야 할 것이다)"이 사회에 현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자본이 [고용주로 하여금 그의 작업을 대규모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할 만큼] 많이 고용주의 수중에 축적되는 것이 필요하다 ....분업이 진전하면 할수록, 동일한 수의 노동자를 취업시키기 위해서도 도구. 원료 등에 대한 자본지출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슈토르히, ?정치경제학강의?, 파리, 제1권, pp. 250-251). "생산수단의 집중과 분업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마치 정치의 분야에서 공권력의 집중과 사적 이익의 분열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과 같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파리, l847년, p. 134).)
    집단적 노동유기체(勞動有機體)는 단순협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매뉴팩쳐에서도 자본(資本)의 존재형태다. 다수의 개별 부분노동자로 구성되는 사회적 생산매커니즘은 자본가에게 속한다. 그러므로 각종 노동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매뉴팩쳐는 [이전에는 독립적이었던] 노동자를 자본의 지휘와 규율에 복종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 등급적 계층을 만들어 낸다. 단순협업은 개개인들의 노동방식을 대체로 변경시키지 않지만, 매뉴팩쳐는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키며 개별 노동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매뉴팩쳐는 노동자의 일체의 생산적인 능력과 소질을 억압하면서 특수한 기능만을 촉진함으로써 노동자를 기형적인 q불구자로 만든다. 이것은 마치 라플라타강의 여러 나라들{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에서 가죽 또는 지방(脂肪: fat)을 얻기 위해 동물 한 마리 전체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각의 부분노동이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분배될 뿐 아니라 재인 그 자체가 분할되어 하나의 부분노동의 자동장치로 전
    전환되며(주석 40: 듀갈드 스튜어트는 매뉴팩쳐 노동자를 '부분작업에 사용되는....살아 있는 자동장치'라고 불렀다(듀갈드 스튜어트, ?정치경제학강의?, p. 318).) 그리하여 인간을 그 자신의 신체의 일부로 묘사하는 메네니우스 아그리파(Menenius Agrippa)의 우화{귀족은 위장이고, 평민은 손발이다.}가 현실화된다.(주석 41: 산호에서는 각 개체가 사실상 전체 집단의 위(胃: stomach)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의 귀족과 같이 전체 집단으로부터 영양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전체 집단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만약 처음에는 노동자가 상품생산을 위한 물질적 수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에게 판매했다면, 이제는 그의 개별 노동력은 자본에 판매되지 않는 한 소용없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개별 노동력은 오직 다른 노동력들과의 관련 속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데, 이 관련은 [그것이 판매된 뒤]자본가의 작업장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독립적으로 어떤 물건을 만드는 것에 부적합해진 매뉴팩쳐 노동자는 자본가의 작업장의 부속물로서만 생산적 활동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주석 42: “하나의 수공업 전체에 숙달한 노동자는 어디서나 일할 수 있고 생활수단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노동자"(매뉴팩쳐 노동자)"는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 자기의 동료들과 떨어져서는 어떤 능력도 독립성도 가지지 못하고 고용주가 마음대로 강요하는 규율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슈토르히, ?정치경제학강의?, 페테르스부르크판, 1815년, 제1권. p. 240).) 여호와의 선민(選民: chosen people)은 몸에 자기가 여호와의 소유물이라는 표시 {할례(割禮)}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업은 매뉴팩쳐 노동자에게 자본의 소유물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야만인이 모든 전쟁기술을 개인의 책략으로 발휘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작은 규모에서이기는 하나 독립적인 농민 또는 수공업자도 지식과 판단력과 의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매뉴팩쳐에서는 그러한 능력은 다만 작업장 전체를 위해서만 요구될 뿐이다. 생산상의 정신적 능력이 한 방면에서는 확대되면서 다른 여러 방면에서는 완전히 소멸된다. 부분노동자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에 집적된다.(주석 43: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얻었을 것이다"(퍼거슨, ?시민사회사“, p. 281).) 부분노동자들이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을 타인의 소유물로 또 자기를 지배하는 힘으로 상대하게 계는 것은 매뉴팩쳐적 분업의 결과다. 이 분리과정{예: 지식과 노동의 분리}은, 개개의 노동자에 대해 자본가가 집단적 노동유기체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표하게 되는 단순협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분리과정은 노동자를 부분노동자로 전락시켜 불구자로 만드는 매뉴팩쳐에서 더욱 발전한다. 끝으로, 이 분리과정은 [과학을 노동과는 별개인 생산잠재력으로 만들고, 과학을 자본에 봉사하게 만드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주석 44: "지식인과 생산적 노동자는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되고, 지식은 노동자의 수중에서 그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되지 않고....거의 어디에서나 노동자에 대립하게 되었다. " "지식은, 노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노동에 대립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된다(톰슨[W. Thompson], ?부의 분배원리의 연구?, 런던, 1824년, p. 274).)
    매뉴팩쳐에서는 집단적 노동자의 [따라서 자본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력의 빈약화를 통해 풍부해진다.

    "무지(無知: ignorance)는 미신(迷信)의 어머니인 동시에 또 근면(勤勉)의 어머니이다. 숙고(熟 考)와 상상(想像)은 과오를 범하기 쉽지만, 손이나 발을 움직이는 습관은 그 어느 것과도 무관하 다. 그러므로 매뉴팩처가 가장 번영하는 곳은, 인간이 거의 정신을 쓰지 않는 곳, 그리고 작업장 이 ....[인간을 그 부품으로 하는] 기계로 간주될 수 있는 곳이다.(주석 45: 퍼거슨, ?시민사회사“, p. 280.)

    사실, 18세기 중엽 일부 매뉴팩쳐는 [단순하지만 기업비밀로 되어 있는] 일정한 작업에 반(半)백치(Semi-idiot)를 고용하기를 더 선호했다.(주석 46: 터케트긴[J. D. Tuckett], ?노동인구의 과거 및 현재 상태의 역사?, 런던. 1846년, 제1권, p. 1846년.)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해력(理解力)은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에 의해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일 생을 몇 가지 단순한 작업[그것의 결과물도 항상 같거나 거의 같다]에 소비하는 사람들은 예기 치 않은 어려움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데 그의 이해력을 발휘하거나 그의 창조력을 행사 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그러한 노력을 하는 습관을 잃게 되고, 일반적으 로 인간으로서 가장 둔해지고 무지해진다. "

    스미스는 부분노동자의 우둔성(愚鈍性)을 묘사한 뒤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그의 생활이 단조로워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용기도 잃게 되며, [불규칙적이고 불 안정하며 모험적인] 군인생활을 꺼리게 된다. 또한 육체의 활발한 활동이 불가능하며, 그때까지 그가 배워 온 직업 이외의 어떤 직업에서도 활기 있고 참을성 있게 그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의 특수한 직무상의 기교는 지적. 사회적. 군사적 덕목을 희생해서 획득되는 것 같다. 발 달한 모든 문명사회에서는 정부의 방지노력이 없는 한, 노동빈민[즉, 대다수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에 필연적으로 빠지게 된다. "(주석 47: A. 스미스,?국부른“, 제5편, 제1장, 제3절(한글판, 하, 272쪽, 273쪽). 분업의 해로운 결과를 지적한 A. 퍼거슨의 제자로서 A. 스미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분업을 공공연히 찬양하고 있는 자기 저서의 서두에서 그는 다만 지나가는 말투로 분업이 사회적 불균등(不均等)의 원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왕 또는 국가의 세입(歲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제5권{제5편}에 가서야 비로소 퍼거슨의 이론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나는 ?철학의 빈곤?에서 분업의 비판에서 퍼거슨, 스미스, 르몽티(Lemontey) , 세이(Say) 사이 의 역사적 관계를 충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매뉴팩쳐적 분업이 자본주 의적 생산방식의 하나의 특수한 형태임을 밝혔다(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p. 122 이하).)

    분업에 의해 국민 대중이 완전히 퇴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미스는 국가가 국민교육(國民敎育)을 [신중하게 최소한도로1 실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의 저서의 프랑스어 역자이며 주석자인 가르니에(Germain Garnier)[그는 프랑스 제1제정 하에서 아주 당연하게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는 국민교육을 철저히 반대한다. 가르니에에 의하면, 국민교육은 분업의 제1법칙을 위반하며, 국민교육이 실시되면 "우리의 사회제도 전체는 폐지될 것이다. "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모든 분업들과 마찬가지로, 손노동과 두뇌노동 사이의 분업도(주석 48: 퍼거슨은 이미 ?시민사회사?, p. 28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각하는 일 그 자체가 이 분업의 시대에는 특수한 직업으로 될 수 있다. ") 사회"(그는 이 용어를 자본, 토지재산 및 [이 둘에 속하는]국가를 가리키는 의미로 옳게 사용하고 있다)"가 부유해짐에 따라 더욱 명백해지고 결정적으로 된다. 다른 모든 분업과 마찬가지로, 이 분업도 과거의 진보의 결과이며, 또 장래의 진보의 원인이다...그런데도 정부가 이 분업을 방해하고 그 자연적인 진행을 저지해야 한단 말인가? 분할과 분리를 지향하는 이 두 종류의 노동을 혼합하고 뒤섞어 놓기 위한 시도에 정부가 국고금의 일부를 지출해야 한단 말인가?"(주석 49: 가르니에(G. Garnier), 그의 ?국부론? 프랑스어 번역, 제5권, pp. 4-5.)

    어느 정도의 정신적 .육체적 불구화는 전체사회 안의 분업의 경우에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매뉴팩쳐는 노동부문들의 이러한 사회적 분할을 훨씬 더 추진시키고, 또한 매뉴팩쳐 특유의 분업에 의해 개인을 그의 생활의 근원에서 공격하기 때문에, 산업병리학(産業病理學)(주석 50: 파두아의 임상의학 교수인 라마치니[Ramazzini)는 1713년에 자기의 저서 ?수공업자들의 질병에 대해?를 발표했다. 그것은 17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또 1841년에는?의학백과사전, 제7부, 고전저자편?에 다시 수록되었다. 대공업 시대는 물론 노동자의 직업병 종류를 크게 증가시켰다. 특히 다음의 두 책을 보라. A. L. 퐁테레(Fonteret) ?대도시 일반 및 특히 리용시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위생?, 파리, 1858년 및 R. H. 로하취(Rohatzsch) 편, ?각종 계층, 연령 및 성에 특유한 질병?, 전6권, 울름, 1860년. 1854년에는 기예협회(技藝協會: Society of Arts)가 산업병리학에 관한 조사위원회를 임명했다. 이 위원회가 수집한 자료는“트위크넘 경제박물관”(Twickenham Economic Museum)의 목록에 들어 있다. 정부의 ?공중보건에 관한 보고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또 라이히(Eduard Reich)의 ?인류의 퇴화에 관해?(에르랑겐, 1868년)도 보라.)에 재료와 자극을 제공한 첫번째 장본인은 매뉴팩쳐이다.

    “하나의 인간을 세분하는 것은, 만약 그가 죽을 죄를 지었다면 사형에 처하는 것이며, 만약 그 가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면 암살(暗殺)하는 것이다....노동의 세분화(細分化)는 국민의 암살이 다."(주석 51: 어콰트(D. Urquhart), ?상용어?, 런던, 1855년, p. 119. 헤겔은 분업에 관해 매우 이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교양있는 사람이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무 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라고 자기의 ?법철학?에서 말하고 있다.)

    분업에 입각한 협업[즉, 매뉴팩쳐]은 시초에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과 적용범위를 획득하자마자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의식적이고, 규칙적이며, 체계적인 형태로 된다. 진정한 매뉴팩쳐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그것에 특유한 분업은 최초에는 경험에 의해[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의 배후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를 획득하며, 그 다음에는 [길드적 수공업과 마찬가지로] 일단 찾아낸 그 형태를 고수하려고 애쓰게 되고, 이곳저곳에서 그것을 수세기에 걸쳐 고수하는 데 성공한다. 만약 이 형태에 어떤 변화[사소한 것은 제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노동도구(勞動道具)의 혁명 때문이다. 근대적 매뉴팩쳐(나는 여기서 기계에 입각하고 있는 대공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는, 예컨대 대도시의 의복 매뉴팩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자기의 분산된 사지(四肢) {각종의 부분노동자들}를 모으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고, 또는 (제본업(製本業)의 경우처럼) 수공업의 각종 작업들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적으로 떠맡김으로써 분업의 원리를 쉽게 적용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경우 각각의 기능에 필요한 노동자 수 사이의 비율을 결정하는 데에는 1주일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주석 52: 개별 자본가가 분업에서 발명적 천재를 선험적으로 발휘한다는 소박한 신념은 오늘날에는 오직 독일 교수들 사이에만 남아 있다. 예컨대 로셔(Roscher)는 분업이 자본가의 주피터 신과 같은 두뇌로부터 완성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본가에게 '각종의 임금'을 헌납하고 있다. 그러나 분업이 적용되는 범위의 크기는 돈주머니의 크기에 의존하는 것이지 천재의 크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수공업적 활동의 분해, 노동도구의 전문화, 부분노동자의 형성, 부분노동자들을 분류해 단일 매커니즘으로 결합시키는 것에 의해, 매뉴팩쳐적 분업은 사회적 생산과정에 질적 편성과 양적 비례성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조직을 창조하며, 동시에 노동의 새로운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사회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자본주의적 형태의 하나인 매뉴팩쳐적 분업은-주어진 조건 하에서는 그것은 자본주의적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 또는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흔히 사회적 부(富), '국민의 부(富)' 등으로 부르는] 자본의 자기증식을 증대시키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 더욱이 개별 노동자를 불구로 만듦으로써, 증대시킨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는 새로운 조건을 조성한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적으로 한편에서는 사회의 경제발전에서 하나의 진보이며 하나의 필연적인 단계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 문명화되고 세련된 착취의 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매뉴팩쳐시대에 비로소 독립된 과학으로 등장한] 정치경제학은, 사회 안의 분업을 매뉴팩쳐 안의 분업의 입장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주석 53: 스미스보다는 폐티와 ?영국에 대한 동인도 무역의 이익?의 익명의 저자 등 이전의 저술가들이 매뉴팩쳐에 칙용되고 있는 분업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더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 안의 분업을 같은 양의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수단, 즉 상품가격을 싸게 하며 자본의 축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서만 고찰했다. 이와 같이 양과 교환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로지 질과 사용가치에만 관심을 가졌던] 고전적 고대의 저술가들의 태도와는 정반대다.(주석 54: 근대인들 가운데서도 베카리아(Cesare Beccaria)와 해리스(James Harris)와 같은 18세기의 몇몇 저술가들은 예외에 속하는데, 이들은 분업에 관해 거의 전적으로 고대인을 추종하고 있다. 베카리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손과 머리를 항상 동일한 종류의 작업과 동일한 생산물의 제조에 사용한다면, [각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 모두를 스스로 제조하는 경우보다] 생산물을 더 쉽게, 더 많이 그리고 더 좋게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하여 인간은 다양한 계급들과 신분들로 나뉘어져 공공의 이익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게 된다"(베카리아, ?공공경제학요론?, 쿠스토디 편, 근세편, 제11권, p. 28). 나중에 맘즈베리[Malmesbury) 백작이 된 해리스는 (그가 페데르부르크 주재 공사로 있을 시절에 쓴) ?일기?로 유명한데, 그는 자기의 저서 ?행복에 관한 대화?(런던, 1741년) (뒤에 ?세개의 논문....“ , 제3판, 런던, 1772년에 재수록 되었다)에 대한 하나의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회가 자연적이라는 것을 (직업의 분할에 의해) 증명하려는 모든 논법은....플라톤의 ?공화국?의 제2부에서 따온 것이다. ") 고전적 고대의 저술가에 의하면, 사회적 생산부문들이 분리된 결과, 상품들은 더 좋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여러 가지 성향과 재능은 자기에게 적합한 활동분야를 선택하게 되며(주석 55: 예컨대 ?오딧세이? 제14장 제220절에는 "사람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일이 다르다"라는 구절이 있고, 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가 인용한 아르키로쿠스(Archilochus)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활동분야가 어느 정도 제한되지 않고서는 어떤 부문에도 훌륭한 성과가 얻어질 수 있게 된다.(주석 56: "그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잘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 아테네인은 자기들이 상품생산자로서는 스파르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인들은 전쟁할 때 인간을 사용할 줄은 알았지만 화폐를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예컨대 투키 디데스는 페리클레스로 하여금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하는 아테네인들을 고무하는 연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화폐보다는 자기의 몸으로 싸우려고 한다"(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1부, 제141절). 그럼에도 불 구하고 아테네인들의 이상은 물질적 생산에서 분업에 대립하는 자급자족이었다. "왜냐하면 분업(分業)이 있는 곳에는 풍요가 있지만, 자급자족(自給自足)이 있는 곳에는 독립도 있기 때 문이다. " 이것과 관련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30명의 공포정치가들이 몰락하던 시기 {기 원전 404년}에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아테네인은 5,0000명에도 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분업에 의해 생산물도 생산자도 개선된다는 것이다. 고전적 고대의 저술가들이 때로 생산량의 증가에 언급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사용가치가 더욱 풍부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교환가치나 상품의 저렴화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용가치의 입장은 [분업을 사회의 신분적 구분의 토대로 간주하는] 플라톤이나(주석 57: 플라톤은 공동체 안의 분업을 개인의 욕망의 다양성과 자질의 일면성에 의해 설명한다. 그의 주된 관점은 노동자가 일에 적응해야지 일을 노동자에게 적응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노동자가 동시에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 [즉, 직업들 중의 어느 하나를 부업으로 수행하는 경우 일을 노동자에게 적응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이 노동자의 여가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노동자가 자기의 일을 부업으로서가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수행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소질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다른 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한 가지 일만을 수행한다면, 더 많은 물건이 더 좋고 더 쉽게 생산될 것이다"(?공화국?, 제1부, 제2절). 이와 비슷한 견해를 투키디데스의 앞의 저서, 제142장에서 볼 수 있다. "항해술은 하나의 기술이며 어떤 경우에도 부업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어떤 부업도 이 항해술과 함께 수행할 수는 없다. " 플라톤은, 만약 일이 노동자를 기다리게 된다면 생산상의 결정적인 순간을 때때로 놓쳐버리게 될 것이며 제품은 못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전체 동자에게 고정된 식사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공장 법의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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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7
    금의 주화로서의 기능은 금의 금속적 가치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물건[예컨대 지폐]이 금을 대신해 주화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주화의 순전히 상징적인 성격은 금속토큰에서는 어느 정도 감추어져 있지만, 지폐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실, 어려운 것은 첫걸음일 뿐이다.
    여기에서는 국가가 발행해 강제통용력을 부여한 불환지폐(不換紙幣: inconvertible paper money)만을 문제로 삼는다. 그것은 금속화폐의 유통에 직접적 기원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신용화폐{예; 어음 .수표}는 단순상품유통의 맥락에서는 아직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관계들을 전제로 한다. 덧붙여 말하면, 진정한 지폐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면, 신용화폐는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그 자연발생적 근원을 가지고 있다.(주석 34: 중국(19세기 중엽의 청 나라)의 재정관 왕마오인(王茂蔭)은 중국의 국가지폐를 은밀히 태환은행권으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안을 천자에게 제출하려고 생각했다. 1854년 4월의 지폐 위원회의 보고에 의하면, 그는 큰 야단을 맞았다. 그가 대나무 몽둥이로 매를 맞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보고의 결론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 위원회는 그의 계획안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 내용은 모두가 상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했고 황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북경 주재 러시아제국 공사관의 중국에 관한 연구?,K. 아벨 및 F. A. 메클렌부르크에 의해 러시아어로부터의 번역, 제1귄, 베를린, 1858년, p. 54). 금화가 그 유통으로 말미암아 마멸되는 현상에 관해 어느 영란은행 총재는 은행법에 관한 상원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매년 일부의 새로운 소브린(sovereign)"('군주'라는 의미가 아니고 1 파운드 금화의 명칭이다)"은 지나치게 가벼워진다. 어느 해에는 완전한 중량을 가지고 유통하던 것들이 그 다음 해에는 저울대가 반대쪽으로 기울어질 정도로 마모되어 버린다"(상원위원회, 1848 년, 제429호).)
    1 파운드, 5 파운드 등의 화폐명칭이 인쇄된 종이쪽지가 국가에 의해 외부로부터 유통과정에 투입된다. 그것이 실제로 동일한 양의 금을 대신해 유통하는 한, 그것의 운동은 화폐유통 그 자체
    의 법칙들을 반영할 따름이다. 지폐유통의 독자적인 법칙은 오직 지폐가 금을 대표하는 비율로부터 생길 수 있다. 이 법칙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지폐의 발행은 실제로 유통될 금량(또는 은량)을 지폐가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분야가 흡수할 수 있는 금량은 일정한 평균수준의 상하로 끊임없이 변동한다. 그러나 유통수단의 양은 어떤 나라에서라도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일정한 최소량 이하로는 결코 내려가지 않는다. 이 최소량이 끊임없이 자기의 구성부분들을 바꾼다는 사실, 다시 말해 그것을 구성하는 금조각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금조각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이 최소량의 크기에도 그리고 그것의 끊임없는 유통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최소량은 금의 종이상징(paper symbol)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오늘 모든 유통수로가 [그들이 화폐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한도까지] 지폐로 가득 차버린다면, 이 수로들은 상품유통의 변동에 따라 내일에는 범람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가격의 도량표준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폐가 자기의 한도[즉, 실제로 유통했을 같은 명칭의 금화의 양]를 초과한다면, 지폐의 신용이 일반적으로 손상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지폐는 [상품유통의 내재적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금량만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지폐의 유통액이 자기의 한도보다 두 배로 늘어난다면, 사실상 l 파운드 지폐는 예컨대 금 1/4온스가 아니라 금 1/8온스의 화폐 명칭으로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 금의 기능에 변동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l 파운드의 가격으로 표현되었던 가치가 이제는 2 파운드의 가격으로 표현된다.
    지폐는 금 또는 화폐의 상징이다. 상품가치에 대한 지폐의 관계는, 상품가치는 일정한 금량으로 관념적으로 표현되며 그 금량을 종이쪽지가 상징적으로 대표한다는 점에 있다. [다른 모든 상품처럼] 가치를 가진 금을 지폐가 대표하는 한, 지폐는 가치의 상징이다.(주석 35: 화폐에 관한 가장 훌륭한 저술가들까지도 화폐의 여러 가지 기능을 얼마나 불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는, 예컨대 풀라턴(Fullarton)의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여준다 "우리의 국내유통에 관한 한, 금화 . 은화에 의해 보통 수행되는 화폐의 모든 기능이 [법률로 제정된 인위적인 또는 관습적인 가치 이외에는]아무런 가치도 없는 불환지폐의 유통에 의해서도[동일하게]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지폐의 발행액이 적당한 한계를 넘지만 않는다면, 지폐는 내재적 가치를 가진 주화가 충족시키고 있는 모든 목적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며, 또 도량표준의 기능까지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풀라턴, ?통화조절론?, 제2판, 런던, 1845년, p.21). 즉, 화폐상품은 유통에서 단순한 가치 상징에 의해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화폐상품은 가치의 척도로서도 가격의 도랑표준으로서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어째서 금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기 자신의 상징{즉, 주화나 지폐}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금이 그와 같이 대체될 수 있는 것은 금이 오직 주화[즉, 유통수단1로 기능하는 경우뿐이다. 그런데 화폐는 이 밖에도 다른 기능들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한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이 금화에 부여된 유일한 기능은 아니다[물론 계속 유통하고 있는 마멸된 금화의 경우는 그러하지만]. 금화가 단순한 주화[즉, 유통
    수단]인 것은 오직 그것이 현실적으로 유통하고 있는 동안이다. 물론 이것은 지폐에 의해 대리될 수 있는 최소량의 금화에도 해당된다. 이 최소량의 금화는 항상 유통분야에 머물러 계속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며, 따라서 오직 그 기능의 담지자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금화의 운동은 상품변태 C-M-C의 반대 국면들의 계속적인 반복을 표시하고 있을 뿐인데, 이 국면들에서는 상품과 화폐와의 대면은 다만 순간적이다. 상품의 교환가치의 독립적 실재(獨立的 實在: independent entity)는 여기에서는 다만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상품은 곧바로 다른 상품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므로 화폐를 끊임없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에서는 화폐의 단순한 상징적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를테면, 화폐의 기능적 존재가 화폐의 물질적 존재를 흡수하는 것이다. 화폐가 상품가격의 순간적인 [객체화된] 반영일 경우, 화폐는 다만 그 자신의 상징으로서 기능할 뿐이고, 따라서 다른 상징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주석 36: 금과 은은 주화인 한[즉, 유통수단의 기능만을 가지는 한], 자기 자신의 상징으로 된다는 사실로부터, N. 바본은 '화폐의 가치를 올리는' 정부의 귄리를 도출하고 있다. 즉, 실링(shiiling이라고 부르는 은량에 크라운(crown)이라는 더 큰 은량의 명칭을 붙이고, 그리하여 채권자들에게 크라운 대신 실링을 갚는다는 것이다. "화폐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침으로써 마멸되어 가볍게 된다....거래할 때 사람들이 고려하는 것은 은의 양이 아니라 화폐의 명칭과 통용력이다.... 금속을 화폐로 만드는 것은 금속에 부여한 공적 권위{public authority) 때문이다"(N. 바본, ?더 가벼운 신화폐의 주조에 관한 논술?, pp 29, 30, 25).) 그러나 화폐의 상징은 자기 자신의 객관적인 사회적 정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지폐는 이 정당성을 강제통용력에 의해 얻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강제는 한 공동체의 국내 유통 분야 안에서만 유효하다. 또한 이 유통분야 안에서만 화폐는 오로지 유통수단의 기능에 전념하며, 따라서 지폐의 형태로 순수히 기능적인 존재양식[이 경우 화폐는 금속실체와 외부적으로 분리된다]을 얻을 수 있다.



    제 3 절 화 폐


    가치척도로 기능하고, 따라서 또한 자신이 직접 또는 대리물을 통해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상품이 화폐(貨幣)미다. 그러므로 금(또는은)은 화폐이다. 그런데 금이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금이라는 몸체 그대로 나타나야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금은 [가치 척도의 기능에서와 같이 순전히 관념적인 것도 아니고 또 유통수단의 기능에서와 같이 대리가능한 것도 아닌] 화폐상품(貨幣商品)으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화폐의 기능[금 자신이 이 기능을 직접 수행하든 대리물을 통해 수행하든]이 다른 모든 상품에 대립시켜 금을 유일한 가치모습 또는 교환가치의 유일한 적절한 존재형태로 고정시키는 경우 금이 화폐로 기능한다.



    (a) 퇴장화폐


    두 개의 대립적인 상품변태의 연속적인 순환운동[즉, 판매와 구매의 끊임없는 교체]는 화폐의 쉴새없는 회전[즉, 유통의 영구적 자동기관(永久的 自動機關)으로서의 기능]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변태의 계열이 중단되어 판매가 그것에 뒤따르는 구매에 의해 보충되지 못하면 화폐는 유통정지된다. 보아규베르(Boisguillebert)가 말한 바와 같이, 화폐는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즉 주화[유통수단]로부터 화폐로 전환한다.
    상품유통의 최초의 발전과 함께 제1변태의 산물[즉, 상품이 전환된 모습, 다시 말해 금](주석 37: "화폐형태의 부는....화폐로 전환된 생산물로서의 부에 불과하다"(메르시에드 라 리비에르, ?정 치사회의 자연적 및 본질적 질서?, p. 573). "생산물이라는 형태의 가치가 오직 자기의 형태 를 변화시킨 것이다"(같은 책, p. 486).) 을 확보하려는 필요성과 열망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상품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품형태를 화폐형태로 바꾸기 위해 판매된다. 이러한 형태변환은 물질대사를 매개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된다. 이제 상품이 변화한 형태{화폐}는 상품의 절대적으로 양도가능한 모습[또는 오직 순간적인 화폐형태]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고 이리하여 화폐는 퇴장화폐(退藏貨幣: hoard)로 화석화되며, 상품판매자는 화폐퇴장자로 된다.
    상품유통이 시작된 바로 그 초기에는 사용가치의 잉여분만이 화폐로 전환된다. 그리하여 금과 은은 그 자체로서 여유분[또는 부]의 사회적 표현으로 된다. 이와 같은 소박한 형태의 화폐퇴장은 [전통적인 자급자족적 생산방식에 대응해 욕망의 범위가 고정되고 제한되어 있는] 민족들 사이에는 영구화되고 있다. 예컨대 아시아인 특히 인도인의 경우가 그러하다. 상품가격은 그 나라에 존재하는 금과 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공상하고 있는 반더린트(J. Vanderlint)는 어째서 인도의 상품이 그처럼 싼가라고 자문한 뒤, 인도인은 화폐를 땅 속에 파묻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에 의하면 1602-1734년에 인도인은 1억 5천만 파운드 스털링의 은을 땅 속에 파묻었는데,(주석 38: "이와 같은 행위에 의해 그들은 모든 재화들과 제품들의 가격을 그처럼 낮게 유지하고 있다" (반더린트, ?화폐만능론?, pp. 95-96).) 이것은 원래 아메리카로부터 유럽으로 이송되어 왔던 것이었다. 1856-66년의 10년간에 영국은 인도와 중국에 1억 2천 만 파운드 스털링의 은을 수출했는데 [중국에 수출된 은은 그 대부분이 다시 인도로 흘러 들어갔다], 이 은은 그 전에 호주의 금을 주고 얻었던 것이다.
    상품생산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상품생산자는 누구나 사회가 제공하는 담보[즉, 화폐]를 확보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주석 39: "화폐는....하나의 담보물이다"(존 벨러즈[John Bellers], "빈민, 공업, 상업, 식민 및 비행(非行)에 관한 논문“ 런던, 1699년, p. 13) 그의 욕망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다른 사람의 상품을 끊임없이 구매해야 하지만, 그 자신의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는 시간이 걸리고 또 그것은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 판매하지 않고 구매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는 이전에 구매하지 않고 판매했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가 일반적 규모로 행해지는 것은 자기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귀금속은 그 생산지에서는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된다. 거기에서는 (금 또는 은의 소유자에 의한) 구매가 (상품소유자에 의한) 판매 없이 진행된다.(주석 40: 엄격한 의미의 구매는 상품의 전환된 모습[즉, 판매의 결과]으로서의 금이나 은을 전제한다.) 그리고 구매가 뒤따르지 않는 판매는 귀금속을 상품소유자들 사이로 분배할 뿐이다. 그리하여 교환의 모든 지점에서 각종 규모의 금과 은의 퇴장이 나타난다. 교환가치를 상품의 형태로 보유하거나 상품을 교환가치로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금에 대한 갈망이 일어난다. 상품유통의 확대에 따라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부(absolutely social form of wealth)인 화폐의 권력이 증대한다.

    "금은 놀라운 물건이다. 그것을 가진 자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물건을 지배할 수 있다. 금은 영혼을 천국으로 가게 할 수도 있다“
    (콜롬버스의 자메이카로부터의 편지, 1503년).

    화폐는 무엇이 화폐로 전환되었는지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상품이든 상품이 아니든 모든 것이 화폐로 전환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매매의 대상으로 될 수 있다. 유통은 모든 것이 그곳에 뛰어들어갔다가 금 결정체(gold crystal)로 되어 다시 나오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도가니로 된다. 이 연금술에는 성자조차도 견뎌낼 수 없거늘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인간들의 상거래에서 제외되고 있는] 성스러운 대상들{여기에서 는 페니키아 처녀들을 가리킨다.}이야 말할 것도 없다.(주석 41: 가장 기독교적인 프랑스의 왕 앙리 3세는 수도원 등으로부터 성유물(聖遣物)을 약탈해 그것을 돈으로 바꾸었다. 페니키아인에 의한 델피 신전(神嚴)의 재산약탈이 그리스 역사에서 어떤 역할 을 했는가는 잘 알려져 있다. 고대인들에게는 신전은 상품신(商品神)의 거주지로 되어 있었다. 신전은 '신성한 은행‘이었다. 탁월한 상업민족이었던 페니키아인은 화폐를 모든 물건의 변형된 모습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사랑의 여신의 축제일에 외국인에게 몸을 바친 처녀들이 보수로 받은 돈을 이 여신에게 헌납하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화폐에서는 상품의 온갖 질적 차이가 없어지고 있듯이 화폐 자체도 철저한 평등주의자로 일체의 차이를 제거해 버린다.(주석 42:
    "금! 황색의 휘황찬란한, 귀중한 황금이여!
    이것만 있으면 검은 것도 희게, 추한 것도 아름답게,
    악한 것도 착하게, 천한 것도 귀하게, 늙은 것도 젊게,
    겁쟁이도 용감하게 만들 수 있구나.
    ....신들이여! 이것은 웬일인가?
    이 물건은 당신들의 제사장과 하인 모두를 당신편으로부터 끌어내며,
    아직은 살 수 있는 병자의 머리 밑에서 베개를 때가기도 하니...
    이 황색의 노에,
    이 놈은 신앙을 만들었다 부수며, 저주받은 자에게 축복을 주며,
    문둥병자 앞에서 절하게 하며,
    도둑에게도 원로(元老)와 같은 지위나 작위나 명예를 준다.
    늙어빠진 과부를 시집가게 하는 자도 이것.
    ....에이, 이 망할 놈의 물건,
    인류 공동의 창녀야."(세익스피어, ?아테네인 티몬?, 제4막, 제3장)) 그러나 화폐는 그 자신이 상품이며, 누구의 사유물(私有物)로도 될 수 있는 외적인 물건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힘이 개인의 사적인 힘으로 된다. 그러므로 고대사회는 화폐를 그 사회의 경제적 . 도덕적 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했다.(주석 43: "세상에 돈 같이 간악한 것은 다시 없다.
    돈 때문에 도시는 멸망하며 사람도 집에서 쫓겨난다.
    돈은 순결한 심정을 타락시키며
    염치없는 행위와 간악한 생각과 배신을
    사람에게 가르친다. "(소포클레스[Sophocles], ?안티고네?)) 태어나자마자 플루톤{Pluto: 부(富)와 저승의 신}의 머리털을 잡고 그를 땅속에서 끌어올린(주석 44: "탐욕은 플루톤 그 자신을 땅 속에서 끄집어내려고 한다"(아테나이오스, ?학자들의 향연?, 슈바이크호이저 편, 1802년, 제2권, 제1부, 제6편, 제23절, p.397)) 근대사회는 황금을 성배(聖杯: Holy Grail)[또는 자기의 가장 내면적인 생활원리의 휘황찬란한 화신]로서 환영하고 있다.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은 어떤 특정 욕망을 충족시키며 물질적 부(富)의 특정 요소를 형성한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이 물질적 부의 모든 요소를 어느 정도 지배하는가를 나타내며, 따라서 그 상품 소유자의 사회적인 부의 크기를 나타낸다. 미개사회의 단순한 상품소유자에게는, 또 심지어 서유럽의 농민에게도, 가치는 가치형태와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금과 은의 퇴장의 증가는 가
    치의 증가로 된다. 물론 화폐의 가치는 그 자체의 가치변동이나 상품가치의 변동에 의해 변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200온스의 금이 100온스의 금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금의 금속적 현물형태가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형태[즉, 모든 인간노동의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화신]로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화폐를 퇴장하려는 충동은 그 성질상 한이 없다. 화폐는 어떤 상품으로도 직접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적 부(富)의 일반적 대표라는 점에서 질적으로나 형태상으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화폐액은 모두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구매수단으로서 한정된 효력만을 가진다. 화폐의 이러한 양적 제한성과 질적 무제한성 사이의 모순은 화폐퇴장자를 축적의 시지프스적 노동으로 끊임없이 몰아넣는다. 그는 [아무리 정복을 통해 국토를 넓히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국경과 마주치게 될 뿐인] 세계정복자와 비슷하다.
    금을 화폐로 보유하기 위해서는 [즉, 퇴장화폐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금이 유통되는 것[또는 향락의 구매수단으로 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화폐퇴장자는 황금물신(黃金物神: fetish of gold)에게 자기의 육체적 욕망을 희생으로 바친다. 그는 금욕(禁慾)의 복음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상품의 형태로 유통에 던져넣은 것보다 더욱 큰 것을 화폐의 형태로 유통으로부터 끌어낼 수는 없다. 그는 더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그만큼 리 많이 판매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면과 절약과 탐욕이 그의 주된 덕목으로 되며, 많이 판매하고 적게 구매하는 것이 그의 경제학 전체를 이룬다.(주석 45: "각 상품의 판매자의 수는 될 수 있는 한 늘리고, 구매자의 수는 될 수 있는 한 줄이는 것, 이것이 경제학의 모든 정책이 귀결하는 회전축이다"(베리[Pietro Verri], ?경제학에 관한 고찰?, pp. 52-53).)
    퇴장화폐라는 직접적 형태와 아울러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상품의 소유라는 퇴장의 미적(美的) 형태가 발전한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부의 증가와 더불어 증가한다 "부자가 되자. 그렇지 못하면 부자로 보이도록 하자"(디드로).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금과 은의 화폐적 기능과는 관계없는] 금과 은의 시장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폐의 잠재적 공급원[특히 사회의 격변기에는 거기에서 화폐가 나온다]이 형성된다.
    퇴장화폐는 금속유통의 경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의 기능은 금 . 은 주화의 유통조건으로부터 발생한다. 이미 보았듯이, 상품유통의 규모와 속도 및 상품가격의 끊임없는 변동 때문에 화폐의 유통량도 쉬지 않고 증감한다. 그러므로 화폐유통량은 수축할 수도 팽창할 수도 있어야 한다. 어떤 때에는 화폐[금]가 주화로서 끌려 들어가야 하며, 어떤 때에는 주화가 화[금]로서 밀려나와야 한다. 현실적으로 유통하는 화폐량이 항상 유통분야의 흡수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국 안에 존재하는 금은의 양은 주화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금은의 양보다 많아야 한다. 이러한 조건은 화폐가 퇴장화폐로 전환됨으로써 충족된다. 퇴장화폐의 저수지는 화폐가 유통으로 흘러
    들어가고 유통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수로로 되며, 이리하여 유통하고 있는 화폐는 결코 그 유통수로에서 범람하지 않는다.(주석 46: "한 나라의 산업이 영위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금액의 화폐가 필요하나, 금액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화폐의 증감은 정치가들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조절된다... 두레박은 교대교대로 움직인다. 즉, 화폐가 부족하게 되면 금은덩어리가 주조되고, 금은덩어리가 부족하게 되면 화폐가 녹여진다"(더들리 노스, ?교역론?, 후기, p. 3). 오랫동안 동인도회사의 직원이었던 J. S. 밀은 인도에서는 아직까지도 은제 장식품이 직접 퇴장화폐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은제 장식품은 이자율이 높아지면 끌려 나와 주조되고, 이자율이 떨어지면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J. S. 밀의 증언, ?은행법, l857“, 제2084, 2101호). 인도의 금과 은의 수출입에 관한 1864년의 의회문서에 의하면, 1863년에는 금과 은의 수입이 수출을 19,367,764 파운드나 초과했다. 1864년까지의 8년 간에는 귀금속의 수출에 대한 수입의 초과는 109,652,919 파운드에 달했다. 19세기 중 인도에 서는 200,000,000 파운드 이상이 주화로 주조되었다.)



    (b) 지불수단


    지금까지 고찰한 상품유통의 직접적 형태에서는 주어진 가치량(價値量)이 항상 두 개의 모습으로-한 쪽 끝에는 상품(商品)으로, 반대쪽 끝에는 화폐(貨幣)로-존재했다. 그러므로 상품소유자들은 현존하는 등가물의 대표자로 접촉한 데 불과했다. 그러나 상품유통의 발전과 더불어, 상품의 양도를 상품가격의 실현과 시간적으로 분리시키는 사정들이 발전한다. 여기에서는 이 사정들 중 가장 단순한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어떤 상품종류는 그 생산에 비교적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며 다른 상품종류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상품이 다르면 그것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계절도 달라진다. 어떤 상품은 그 자체의 시장소재지에서 생산되지만, 다른 상품은 원격지 시장으로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어떤 상품소유자는 다른 상품소유자가 구매자로 등장하기 전에 판매자로 등장할 수 있다. 동일한 거래가 동일한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상품의 판매조건은 그것의 생산조건에 의해 조정된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종류의 상품(예: 가옥)의 이용은 일정한 기간 판매{임대}되고 있는데, 그 기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구매자{남이 세든 집을 산 구매자}는 그 상품의 사용가치를 실제로 받게 된다. 어쨌든 구매자는 그 상품의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 그 상품을 사는 것이다. 판매자는 현존의 상품을 판매하는데, 구매자는 화폐의 단순한 대표자로, 또는 장래의 화폐의 대표자로 구매한다. 판매자는 채권자로 되며 구매자는 채무자로 된다. 이 경우 상품의 변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의 전개가 달라지기 때문에 화폐도
    다른 하나의 기능을 획득한다. 화폐는 지불수단(支佛手段)으로 된다.(주석 47: {엥겔스: 루터는 구매수단으로서의 화폐와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를 구별하고 있다. “너 [채무자]는 나에게, 한편으로는 지불할 수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수도 없다는, 이중의 손해를 주고 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목사 여러분께. 고리대에 반대해 설교할 것”, 비텐베르크, 1540년).})
    채권자 또는 채무자의 역할은 여기에서는 단순상품유통으로부터 발생한다. 유동형태의 변화가 판매자와 구매자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역할은 처음에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이며 동일한 유통당사자에 의해 번갈아 가면서 수행된다. 그렇지만 이 대립은 처음부터 별로 기분 좋은 것이 못 되며, 더 엄격하게 응고될 수 있다.(주석 48: 다음의 문장은 18세기 초 영국 상인들 사이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보여 준다. "여기 영국에서는, 다른 어떤 인간사회에서나 또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일찍이 보지 못한 잔 인한 정신이 상인들 사이에 지배하고 있다"(?신용 및 파산법에 대한 논문“, 런던, 1707년, p. 2).) 그러나 동일한 등장인물은 상품유통과 관계없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고대세계의 계급투쟁은 주로 채권자와 채우자 사이의 투쟁의 형식으로 행해졌는데, 로마에서는 평민 채무자들의 몰락으로 끝났다. 이 채무자들은 노예로 되었다. 중세에는 이 투쟁은 영주채무자들의 몰락으로 끝났고, 이 채무자들은 자기들의 정치권력을 그 경제적 기반과 함께 상실했다. 그렇지만 이 두 시기에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존재하던 화폐관계는 경제적 생활조건에 존재하는 뿌리깊은 적대관계를 반영했을 뿐이다.
    유통의 분야로 되돌아가자. 상품과 화폐라는 두 개의 등가물이 판매과정의 두 끝에 동시에 나타나는 일은 없어졌다. 이제 화폐는, 첫째, 판매되는 상품의 가격결정에서 가치척도로 기능한다. 계약에 의해 확정된 그 상품의 가격은 구매자의 채무[즉, 정해진 기한 안에 그가 지불해야 할 화폐액]의 크기를 측정한다. 둘째, 화폐는 관념적인 구매수단으로 기능한다. 화폐는 오직 구매자의 지불약속으로 존재하지만, 상품의 소유자를 바꿀 수 있다. 지불기일이 되었을 때 비로소 지불수단{화폐}
    은 현실적으로 유통에 들어간다. 즉, 구매자의 손에서 판매자의 손으로 옮아간다. 유통수단이 퇴장화폐로 전환된 것은 유통과정이 제1단계 이후에 곧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품의 전환된 모습{즉, 화폐}이 유통으로부터 끌려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불수단이 유통에 들어가는 것은 상품이 이미 유통에서 빠져나온 이후의 일이다. 화폐는 이제 과정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절대적 존재형태[즉, 일반적 상품]로서 독립적으로 개입해 유통과정을 종결짓는다. 판매자가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킨 것은 화폐로 어떤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고, 화폐퇴장자가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킨 것은 상품을 화폐 형태로 보존하기 위해서였으며, 채무를 진 구매자가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킨 것은 지불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가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의 소유물은 강제매각을 당한다. 그리하여 상품의 가치형태, 즉 화폐가 이제 [유통과정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필연성으로 말미암아] 판매의 자기목적으로 된다.
    구매자는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키기 전에 화폐를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다시 말해, 그는 상품의 제1변태{C-M}에 앞서서 제2변태{M-C}를 수행한다. 판매자의 상품은 유통하지만, 그 상품의 가격은 오직 민법상의 화폐청구권으로 실현된다. 그 상품은 화폐로 전환되기 전에 사용가치로 전환된다. 그 상품의 제1변태는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된다.(주석 49: 내가 본문에서 이것과 반대되는 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1859년에 간행한 나의 저서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대로 M-C라는 거래에서는, 화폐의 사용가치가 실현되기 전에 [즉. 상품을 양도받기 전에 화폐가 현실적 구매수단으로 양도되어 상품가격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은 예컨대 선불(先拂: advance-payment)이라는 일상적인 형태로 수행되고 있다. 영국정부가 인도의 농민으로부터 아편을 구매하는 경우도 이와 같은 형태다.... 그러나 이 경우 화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구매수단이라는 형태로 기능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물론 자본은 화폐의 형태로 선대(先貸)되지만....이것은 단순한 유통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 140))
    유통과정의 일정한 기간 안에 만기가 되는 채무들은 상품들(이 상품들의 판매 때문에 채무가 발생했다)의 가격총액을 대표한다. 이 가격총액의 실현에 필요한 화폐량은 우선 지불수단의 유통속도에 달려 있다. 이 유통속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정에 의해 규정된다. 첫째, A가 자기의 채무자 B로부터 화폐를 받아 그것을 다시 자기의 채권자 C에게 지불하는 등,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의 연쇄이고, 둘째, 지불만기일과 지불만기일 사이의 시간상의 간격이다. 채무의 연쇄[즉, 지체된 제1변태의 연쇄]는 이전에 고찰한 변태계열들의 뒤엉킨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통수단의 유통은 단순히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관련을 표현할 뿐 아니라, 이 관린 자체가 화폐유통 안에서 일어나며 또 화폐유통과 더불어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지불 수단의 운동은 이미 그 이전에 형성된 사회적 관련을 나타내는 것이다.
    수많은 판매가 동시에 병행해 일어난다는 사실은, 유통화폐량이 유통속도에 의해 보충될 가능성을 제한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사실은 지불수단의 절약을 위한 새로운 자극을 준다. 여러 지불이 한 장소에 집중됨에 따라 지불의 결제를 위한 독특한 시설과 방법이 자연발생적으로 발달한다. 예컨대, 중세 리용의 어음교환소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B에 대한 A의 채권과 C에 대한 B의 채권, A에 대한 C의 채권 등등은 서로 대면하기만 하면 일정한 금액까지는 정(+)의 양(量)과 부(-)의 양(量)으로 상쇄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머지 채무차액만이 청산되면 된다. 지불들이 많이 집중되면 될수록 그만큼 차액은 상대적으로 적어지며, 이에 따라 유통되는 지불수단의 양도 적어진다.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는 하나의 내재적인 모순이 있다. 여러 지불이 상쇄되는 한,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계산화폐(計算貨幣) 또는 가치척도로서 오직 관념적으로 기능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화폐는 유통수단[즉, 상품교환의 오직 순간적인 매개물]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 모순은 산업 .상업의 공황 중 화폐공황(貨幣恐慌: monetary crisis)으로 알려진 국면에서 폭발한다.(주석 50: {엥겔스: 본문에서 모든 일반적 산업 . 상업공황의 특수한 국면으로 규정되고 있는 화폐공황은 다음과 같은 특수한 종류의 공황-즉, 화폐공황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산업과 상업의 공황과는 독립적으로 나타나 그 여파로 산업과 상업에 영향을 미치는 특수한 종류의 공황-과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후자의 화폐공황에서는 화폐자본이 그 운동의 중심이며, 따라서 은행. 증권거래소 . 금융계가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 화폐공황은, 지불들의 연쇄와 지불결제의 인위적 조직이 충분히 발전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이 메커니즘에 전반적 교란이 일어날 때, 그 교란의 원인이 무엇이든,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순전히 관념적인 모습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직접적으로 경화{금속화폐}로 변해버린다. 더 이상 보통의 상품은 화폐를 대신할 수 없게 된다. 상품의 가치는 그 자신의 가치형태{화폐}앞에서 사라지고 만다{예; 상품가격의 폭락}.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르주아는 호경기에 도취되어 자신만만하게 '상품이야말로 화폐'라고 하면서, 화폐를 순전히 관념적 산물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시장에서 화폐만이 상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슴이 신선한 물을 갈망하듯 부르주아의 영혼은 유일한 부(富)인 화폐를 갈망한다.(주석 51: "신용제도로부터 {금속}화폐제도로의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전환은 실제의 공황에 이론적 당황을 첨가한다. 그리고 유통과정의 당사자들은 자신들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헤아릴 수 없는 신비 앞에 몸을 떤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 146). "빈민들에게 일거리가 없는 것은, 부자들이 식량 . 의복의 생산에 필요한 토지와 일꾼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지만 빈민들을 고용할 화폐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참된 부(富)는 바로 이 토지와 일꾼이지, 화폐는 결코 아니다"(벨러즈, ?산업전문학교의 설립에 관한 제안?, 런던, 1696년, pp. 3-4).) 공황에서는 상품과 그 가치형태인 화폐 사이의 대립은 절대적 모순으로까지 격화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화폐의 현상형태가 어떠하든 상관이 없는데, 지불을 금으로 하든 은행권과 같은 신용화폐로 하든 화폐기근(貨幣饑饉: monetary famine)은 여전히 완화되지 않는다.(주석 52: 다음은 이와 같은 순간이 '상업의 벗' {은행가}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보여준다 . “옛날(1839년 런던 시티의) 구두쇠인 한 늙은 은행가는 자기의 서재에서 책상뚜껑을 열고 자기 친구에게 몇 뭉치의 은행권을 보여주면서 매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여기에 60만 파운드 스털링이 있는데 이것은 금융 핍박을 조성하기 위해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오늘 3시 이후에는 전부 시장에 방출할 예정이다'라고"(로이[H. Roy], ?거래소이론, 1844년의 은행특허법?, 런던 1864년, p. 81). 준 정부기관지인 ?옵저버?(Observer)는 1864년 4월 24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은행권의 부족을 조성하려고 취한 수단에 관해 매우 괴상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그린 종류의 술책이 취해졌으리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앞에서 말한 소문이 상당히 널리 퍼지고 있는 만큼 그것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일정한 기간에 유통하는 화폐의 총액을 보면, 유통수단과 지불수단의 회전속도가 일정한 경우, 그 총액은 실현되어야 할 상품가격의 총액에 만기가 된 지불총액을 더한 다음, 상쇄되는 지불들을 빼고, 끝으로 동일한 화폐조각이 번갈아 유통수단과 지불수단으로 기능하는 회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액을 편 것과 같다. 예컨대 농민이 자기의 곡물을 2원에 판다면, 이 화폐는 유통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는 이 2원으로 이전에 직포자가 공급한 아마포의 값을 그 지불기일에 지불한다. 동일한 2원이 이번에는 지불수단으로 기능한다. 다음에 직포자는 성경책을 현금으로 구매한다. 그리하여 2원은 다시 유통수단으로 기능한다. 등등. 그러므로 가격과 화폐유통의 속도와 지불수단의 절약이 일정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간[예컨대 1일간]에 유통하는 화폐량과 유통하는 상품량은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 전에 유통에서 이탈한 상품을 대표하는 화폐가 계속 유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품들은 유통하지만 그 등가(물)인 화폐는 장래에 가서야 비로소 그 모
    습을 나타낸다. 더욱이 매일 계약이 맺어지는 채무와 [같은 그 날짜에 만기가 되는] 채무의 상환은 서로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주석 53: "어느 하루에 이루어지는 구매액 또는 계약액은 바로 그날에 유통하는 화폐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다소 뒷날에 유통하게 될 화폐량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형태의 어음으로 되어 있다... 오늘 수취한 어음이나 제공한 신용은, 그 거래 건수 . 금액 . 기한에서 내일 또는 모레에 수취하거나 제공하는 것과 비슷해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오히려 오늘 수취한 어음이나 제공한 신용 중 많은 것의 만기일이, 과거의 전혀 다른 날짜에 이루어진 일단의 채무의 만기일[그 만기가 12개월 . 6개월 . 3개월, 또는 1개월 짜리 어음들의 만기일과 흔히 서로 일치함으로써, 특정한 어떤 날짜에 만기가 되는 채무액을 팽창시킨다"(영국의 한 은행가, ?통화이론의 검토,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에딘버러, 1845년, pp. 29-30).)
    신용화폐는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직접 발생하는데, 그것은 구매한 상품에 대한 채무증서{예. 수표}그 자체가 유통됨으로써 발생한다. 다른 한편, 신용제도가 확대되면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도 확대된다.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여러 가지 특유한 존재형태를 취하는데, 이 형태의 화폐는 대규모 상거래 분야에서 사용되고, 금과 은의 주화는 주로 소매상업의 분야로 밀려나간다.(주석 54: 본래의 상거래에서 현금이 얼마나 적게 사용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 런던의 가장 큰 머천트 뱅크(merchant bank) 중의 하나인 모리슨 딜른(Morrison, Dillon & Co.)의 1년간 수입과 지출명세서를 여지에 제시한다. 1856년도 이 회사의 거래총액은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에 달했으나, 여기에서는 그것을 1백만 파운드 스털링이 되도록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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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 (단위: 파운드) 지출 (단위;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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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어음 및 기한부 상업어음 533,596 기한부 어음 302,674
    일람불 은행수표 및 기타 357,715 런던의 여러 은행 앞 수표 663,672
    지방은행권 9,627 뱅크 오브 잉글랜드 은행권 22,743
    뱅크 오브 잉글랜드 은행권 68,554 금화 9,427
    금화 28,089 은화 및 동화 1,484
    은화 및 동화 1,486
    우편환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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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계 1,000,000 합계 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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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법 특별위원회보고서”, 1858년 7월, 부록 p. 71))
    상품생산이 일정한 수준과 범위에 도달하면,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은 상품유통의 영역을 뛰어넘게 된다. 화폐는 모든 계약(契約)의 일반적 재료(材料)로 된다.(주석 55: "거래과정은 재화와 재화의 교환[즉, 인도와 수취]으로부터 판매와 지불로 변했으므로, 모든 매매계약은 ....이제 화폐가격에 근거해 작성된다"(디포[D. Defoe], ?공신용(公信用)에 관한 논문?, 제3판, 런던, 1710년, p. 8).) 지대나 조세 등은 현물납부로부터 화폐지불로 변한다. 이 변화가 생산과정의 전체 성격에 의해 얼마나 제약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은, 예컨대 모든 공납을 화폐로 징수하려던 로마제국의 시도가 두 번이나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보아규베르나 보방장군 등이 그처럼 설득력 있게 비난하고 있는]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 농민들의 극심한 빈곤은 고을의 세금 때문일 뿐 아니라 현물조세가 화폐조세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주석 56: "화폐는 만물의 사형집행자로 되었다. " 재정은 "이 재앙 덩어리 {화폐}를 짜내기 위해 방대한 양의 재화와 상품을 증발시키는 증류기다. " "화폐는 전 인류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보아규베르[Boisguillbertl, ?부 . 화폐 . 조세의 본질에 관한 논술?, 데르편, ?재정경제학자?, 파리, 1843년, 제1권, pp. 413-417, 419).) 다른 한편, 아시아에서는 [국가 조세수입의 주요한 요소이기도 한] 지대(地代)의 현물형태는 [자연조건과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고 재생산되는] 생산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지불형태가 반작용함으로써 맞은 생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터키제국이 유지되는 비밀의 하나다. 만약 유럽에 의해 강제된 외국무역이 일본에서 현물지대를 화폐지대로 전환시킨다면, 일본의 모범적 농업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농업의 협소한 경제적 존립조건은 붕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관습적으로 1년 중의 어떤 날들이 정기적인 지불결제일로 설정된다. 이러한 지불기일은, 재생산의 다른 순환운동들을 무시한다면, [계절의 교대와 결부된] 자연적 생산조건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또 [상품유통과 직접 관련이 없는]지불, 예컨대 조세나 지대등의 지불기일도
    규제한다. 사회 전체에 분산되어 있는 이들 지불에 필요한 화폐량이 1년 중 며칠에 집중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은 지불수단의 절약에 주기적인 [그러나 전적으로 표면적인] 교란을 일으킨다. (주석 57: 1826년의 하원조사위원회에서 크레이그(Craig)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824년의 성령강림일 당일에 에딘버러의 여러 은행들에 대한 은행권의 수요가 너무나 막대해 11시경에는 은행의 수중에 단 한 장의 은행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은행권을 벌리려고 여러 은행에 사람을 보냈 으나 전혀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거래의 대부분을 종이쪽지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나 오후 3시경에는 벌써 모든 은행권은 그것을 발행한 은행에 되돌아왔다! 그것은 이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쳤을 뿐이다. " 스코틀랜드에서 은행권의 실제 평균유통액은 3백만 파운드 스 털링 미만이지만, 1년 중 어떤 지불결제일에는 모든 은행의 수중에 있는 약 7백만 파운드 스 털링에 달하는 모든 은행권이 동원된다. 이 경우 은행권은 단 하나의 특수한 기능[지불수단의 기능]을 수행하며, 그 기능을 수행하자마자 발행한 은행에 도로 흘러 들어간다. (J. 풀라턴, ? 통화조절론?, 제2판, 런던, 1845년, p. 86의 주). 이해를 들기 위해 덧붙여 말하면, 풀라턴의 저작이 발간된 그 당시의 스코틀랜드에서는 예금을 찾을 때 수표를 내주지 않고 오직 은행권 만 내주었다는 사실이다.) 지불수단의 유통속도에 관한 법칙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모든 주기적 지불에 요구되는 지불수단의 양은, 그 지불의 원인이 무엇이든, 지불주기(支拂週期)의 길이에 정비례한다. (주석 58: "만약 1년 동안 총지불액으로 4천만 파운드 스털링이 필요하다면, 6백만 파운드 스털링(금)으로 산업에 필요한 회전과 유통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페티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재치있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지불총액이 4천만이므로, 만약 예컨대 매주 토요일마다 지불받고 지불하는 가난한 수공업자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보는 것처럼 회전이 1주일이라는 짧은 주기로 실현된다면, 1백만의 40/52으로도 4천만의 지불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l백만 X 40/52 X 52주=4천만}. 그러나 그 주기가 우리나라의 지대지불이나 조세징수의 관례와 같이 4분기로 되어 있다면, 1천만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지불이 1주일과 13주일 사이의 여러 가지 주기를 가진다고 가정하면, 1백만의 40/52 에 1천만을 더한 다음 그것을 2로 나누면 5 1/2 백만이 되므로, 5 1/2 백만이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W. 페티, ?아일랜드의 정치적 해부?, 1672년, 런던판, 1691년, pp. 13-14).)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가 발전하면 채무의 지불기일에 대비하기 위한 화폐축적(貨幣蓄積)이 필
    요하게 된다. 부르주아사회의 발전과 함께 독립적인 치부형태로서의 퇴장화폐는 없어지지만, 지불수단의 준비금(準備金)이라는 형태로서의 퇴장화폐는 증대한다.



    (C) 세계화폐


    화폐는 국내 유통분야의 범위를 넘어서자마자 국내에서 가지고 있던 국지적(局地的) 기능[즉, 가격의 도량표준이나 주화 . 보조화폐 . 가치상징 둥의 국지적 기능]을 벗어버리고 귀금속의 원래의 덩어리형태로 되돌아간다. 세계무역에서는 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한다. 그러므로 상품의 독립적인 가치형태도 세계화폐(世界貨幣)로서 상품에 대립한다. 세계시장에서 비로소 화폐는 [그 현물형태에 추상적 인간노동이 직접적으로 사회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상품으로서 완전히 기능한다. 화폐의 존재양식이 그 개념에 부합하게 된다.
    국내 유통분야에서는 오직 어떤 한 상품이 가치척도로 역할함으로써 화폐가 된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는 두 개의 가치척도 [즉, 금과 은]가 지배한다. (주석 59: 그러므로 한 나라의 은행들로 하여금 국내에서 화폐로 유통하고 있는 귀금속만을 준비금으로 보유하게 하는 온갖 입법들은 불합리하다. 예컨대 뱅크 오브 잉글랜드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조성한 '즐거운 곤란'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금과 은의 상대적 가치의 변동이 심했던 역사상의 시대들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 155 이하를 보라. 로버트 필(Robert Peel)은 그가 제정한 1844년의 은행법에서 뱅크 오브 잉글랜드에 대해 은 보유가 금 보유의 1/4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은행권을 발행하는 것을 허가함으로써 이 곤란을 극복하려고 했다. 이때 은의 가치는 런던시장의 은의 시장가격(금에 대한)에 따라 평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엥겔스; 우리는 이제 다시 금과 은의 상대적 변동이 심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약 25년 전에는 금 대 은의 가치 비율은 15 1/2 : 1 이었으나 지금은 대략 22 : 1이고, 아직도 계속 금에 대한 은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주로 이 두 금속의 생산방법의 변혁의 결과다. 이전에는 금은 거의 전부가 금을 함유한 충적지층[즉, 금을 함유한 암석의 풍화물]의 세광(洗鑛)에 의해 얻었다. 현재는 이 방법은 벌써 불충분한 것으로 되었으며, 금을 포함하고 있는 석영광(石英鑛: quartz lodes) 그 자체의 정련 [벌써 고대인들에게도 알려져 있었으나(디오도로스, 제3권, 12-14결) 이때까지는 부차적으로만 실시되고 있던 방법]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의 로키산맥 서부에서 새로운 대규모 은광맥이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이 은광과 멕시코 은광이 철도의 개통으로 근대적 기계와 연료를 쉽게 공급받아 은을 최대규모로 또 최소비용으로 채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금속이 광맥 속에 존재하는 형태는 판이하다. 금은 대체로 혼합물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 대신 매우 적은 양으로 석영 속에 산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금을 채취하는 데는 많은 광석을 분쇄해 금을 물로 일궈 내든지 수은으로 추출해 내야 한다. 1백만 그램의 석영에서 겨우 1 내 지 3 그램의 금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30-60그램의 금이 나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다. 은은 혼합물 없이 순수한 형태로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그 대신 [비교적 쉽게 광맥 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독특한 광석 안에 있으며, 또 이와 같은 광석에는 보통 40-90%의 은이 포함되어 있다. 은은 비록 소량이기는 하지만 구리나 아연 등 그 자체로서 채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광석 속에 포함되어 있다. 벌써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금의 생 산에 지출되는 노동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나 은의 생산에 지출되는 노동은 결정적으로 감소 했기 때문에 은의 가치하락은 매우 당연하다. 이와 같은 가치하락은, 만약 은의 가격을 현재에 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인위적 수단에 의해 높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더 격심하게 하락할 것이다. 미국의 은 매장은 이제 겨우 그 일부만 채굴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은 가치는 아직 도 오랜 시일에 걸쳐 계속 하락할 전망이다. 또 여기에는, 일용품과 사치품을 위한 은 수요의 상대적 감소[즉, 은도금 제품과 알루미늄 등등이 은을 대체한다]도 이 경향을 조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국제적인 강제적 시세조작에 의해 금에 대한 은의 가치를 종전 의 비율인 1 : 15 1/2 까지 다시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는 복본위론자(復本位論者: bimetalist) 들의 생각은 공상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은은 세계시장에서 점점 더 화폐로서의 자격을 상실 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폐는 일반적 지불수단, 일반적 구매수단, 그러고 부:富) 일반의 절대적 . 사회적 체현물(體現物)로 기능한다. 세계화폐의 주된 기능은 국제수지의 결제를 위한 지불수단이다. 이로부터 중상주의의 구호, 즉 무역차액(貿易差額)(주석 60: 중상주의는 금과 은에 의한 무역흑자의 결제를 국제무역의 목적으로 취급하지만 그 반대자들도 역시 세계화폐의 기능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유통수단의 양을 규제하는 법칙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어떻게 귀금속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가는 내가 이미 리카도를 예로 들면서 상세하게 지적했다.(“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p. 174). “무역적자는 오로지 유통수단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주화가 수출되는 것은, 그것이 싸기 때문이고 무역적자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 원인이다.” 라는 리카도의 그릇된 설명은 다음과 같은 바본의 말에서도 볼 수 있다. “무역의 차액은(만약 그러한 것이 나타난다면) 어떤 나라로 하여금 화폐를 수출하도록 하는 원인은 아니다. 이 화폐의 수출은 금은덩어리의 가치가 각 나라마다 다른데 기인한다. ”(N. 바본, 앞의 책, p. 59, 60) 매컬록(MacCulloch)은 “정치경제학 문헌분류목록”(런던, 1845)에서, 바본의 이 선견지명을 찬양하고 있으나, 그는 또 용의주도하게도 바본의 저서에서 가장 소박한 형태로 나타나 있는 ‘통화주의(通貨主義: currency principle) 의 불합리한 전제들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회피하고 있다. 이 목록의 무비판성과 심지어 불확실성은 화폐이론의 역사에 관한 편들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다. 왜냐하면 매컬록은 거기에서 오버스톤(이전의 은행가 로이드)을 ‘제1의 은행가’라고 부르면서 아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왔다. 금과 은이 국제적 구매수단으로 역할하는 것은 주로 여러 나라들 사이의 생산물 교환의 종래의 균형이 갑자기 파괴되는 때이다. 끝으로, 세계화폐가 부의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체현물로 역할하는 것은, 구매나 지불에서가 아니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부기 이전되는 경우이며, 그리고 상품형태에 의한 부의 이전(移轉: transfer)이 상품시장의 경기 상황이나 이전 목적 그 자체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에 그러하다.(주석 61: 예컨대 해외에 대한 지원금, 전쟁수행을 위한 대출금 또는 은행의 금태환 재개를 위한 대출금등의 경우, 가치는 바로 화폐형태로 요구돨 것이다.)
    각국은 국내유통을 위해 준비금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의 유통을 위해서도 준비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퇴장화폐의 기능들은 부분적으로는 국내의 유통수단과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하며, 부분적으로는 세계화폐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 주석 62: “금태환국(金兌換國: 금속화폐가 유통하는 나라)에서 퇴장화폐가 일반적 유통화폐로부터 이렇다할 도움 없이 국제적 채무결제를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증거로서는, 프랑스가 일찍이 파괴적인 외적(外敵) 침입의 타격으로부터 겨우 회복하고 있던 당시, 자국에 부과된 약 2 천만 파운드 스털링의 배상금[그 대부분은 금화]을 자기의 국내통화에 이렇다할 아무런 수축 이나 교란도 일으키지 않고, 또 자국의 환율에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27개월 안에 지불했 다는 사실 이상으로 더 확실한 증거를 바랄 수는 없다"(풀라턴, 앞의 책 p. 141). {엥겔스: 우 리가 알고 있는 더 적절한 실례는 프랑스가 1871-1873년에 그 10배 이상에 달하는 전쟁배상 금의 대부분을, 마찬가지로 금속화폐로 30개월 동안 쉽게 지불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후자의 역할을 위해서는 언제나 현실적인 화폐상품, 즉 금과 은의 실물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uart)는 금과 은을 [그 단순한 국지적 대리물(局地約 代理物: local representative)과 구별하기 위해] '세계화폐'라 부르고 있다.
    금과 은의 흐름은 두 개의 방향이다. 한편으로 금과 은은 자기의 원산지로부터 세계시장 전체로 흘러나가, 각 나라의 국내 유통분야에 흡수되어 그 나라들의 국내 유통수로에 들어가며, 마멸된 금과 은의 주화를 보충하고, 사치품의 재료를 제공하며, 퇴장화폐로서 응고한다.(주석 63: “화폐는....언제나 생산물에 이끌리어....화폐에 대한 각국의 필요에 따라 그들 사이에 배분된다"(르 트로느, ?사회적 이익에 대해?, p.916). "끊임없이 금과 은을 산출하는 광산들은 각국에 이와 같은 필요량을 공급하는 데 충분하다"(J. 반더린트, ?화폐만능론?, p. 40).) 이 흐름은 상품에 실현되어 있는 각국의 노동과, 귀금속에 실현되어 있는 금은 생산국의 노동 사이의 직접적 교환에 의해 매개된다. 다른 한편으로 금과 은은 각국의 유통분야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하는데, 이 흐름은 환율의 끊임없는 변동에 뒤따라 일어난다. (주석 64: "환율은 매주 오르거나 내리며, 1년 중 어떤 특정한 시기에는 한 나라에 불리하게 높아지고, 또 다른 시기에는 유리하게 높아진다"(N. 바본, 앞의 책, p. 39).)
    부르주아적 생산이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에서는 [은행의 금고에 집적되는] 퇴장화폐는 자기의 독특한 기능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제한된다.(주석 65: 이들 여러 가지 기능은 금과 은이 은행권의 태환준비금(兌換業備金)으로 역할해야 하는 경우에는 상호 위험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이 퇴장화폐가 그 평균 수준을 크게 능가하는 것은 상품유통의 경제[즉, 상품변태의 진행의 중단]를 가리킨다.(주석 66: 국내 사업에 절대로 필요한 양 이상의 화폐는 죽은 자본이고....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 아무런 이익도 가져오지 않으므로 외국무역에서 수입되거나 수출되거나 한다"(J. 벨러즈, 앞의책, p. 13). "만약 우리가 너무 않은 주화? 가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녹여 금은제(金銀製)의 화려한 접시나 그를 또는 집기를 만들든지, 또는 그것이 요망되는 곳에 상품으로 보내든지, 또는 이자가 높은 곳에 이자를 받고 빌려주든지 해야 할 것이다"(W. . 페티, ?화폐소론?, p. 39). "화폐는 국민의 지방(脂肪: fat)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이 과다하면 국민의 민활성을 방해하는 일이 많고 또 과소하면 국민을 병들게 한다....지방은 근육의 운동을 원활하게 하며, 영양이 부족할 때 그것을 보충하며, 주름살을 펴주며, 그리하여 신체를 아름답게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화폐도 그 나라의 행동을 민첩하 게 하며 국내에 기근이 있을 때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가져오며, 채무를 갚으며.....전체를 아름 답게 한다. 하기는 그것을 듬뿍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인간들을 주로 더 아름답게 해주고 있지만 "(W. 페터, ?아일랜드의 정치적 해부?, pp. 14 -15).)



    제 2 편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




    제 4 장 자본의 일반공식
    제 5 장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
    제 6 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제 4 장
    자본의 일반공식



    상품유통은 자본(資)의 출발점이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 그리고 상품유통의 발달된 형태인 상업(商業)은 자본이 성립하기 위한 역사적 전제조건을 이룬다. 16세기에 세계무역과 세계시장이 형성된 때로부터 현대적인 자본의 역사가 시작된다.
    상품유통의 소재적 내용[즉, 사용가치의 교환]을 무시하고 다만 이 유통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경제적 형태만을 고찰한다면, 우리는 이 과정의 최후의 산물로 화폐를 발견하게 된다. 상품유통의 이 최후의 산물은 자본의 최초의 현상형태(現象形態: form of appearance)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은 반드시 처음에는 화폐의 형태로 [다시 말해 화폐재산, 상인자본, 고리대자본의 형태로] 토지계산에 대립한다.(주석 1: [신분적 지배,. 예속관계에 근거하는] 토지소유 권력과 화폐의 비신분적 권력 사이의 대립은 다 음과 같은 두 개의 프랑스 속담에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영주없는 토지는 없다. " "화폐에는 주인이 없다. ") 그러나 화폐가 자본의 최초의 현상형태라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자본의 기원(起源)을 회고해 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자본은 처음에는 언제나 화폐[일정한 과정을 거쳐 자본으로 전환할 화폐]의 형태로 무대에, 즉 시장[상품시장이나 노동시장이나 화폐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화폐로서의 화폐와 자본으로서의 화폐는 우선 양자의 유통형태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의해서만 구별된다. 상품유통의 직접적 형태는 C-M-C [즉, 상품의 화폐로의 전환과 화폐의 상품으로의 재전환, 다시 말해 구매를 위한 판매]이다. 그러나 이 형태와 아울러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 즉 M-C-M [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과 상품의 화폐로의 재전환, 다시 말해 판매를 위한 구매]을 발견하게 된다. 후자의 형태로 유통하는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하여 자본이 되고, 그 기능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자본이다.
    이제 유통 M-C-M을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자. 이 유통은 단순한 상품유통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국면을 통과한다. 제1국면인 M-C(구매)에서는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한다. 제2국면인 C-M(판매)에서는 상품이 화폐로 재전환한다. 그러나 이 두 국면의 통일은, 화폐를 상품과 교환한 다음 그 상품을 다시 화폐와 교환한다는 단일운동[즉,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구매한다는 단일운동]을 가리킨다. 또는 구매와 판매 사이의 형식적 차이를 무시한다면, 화폐로 상품을
    구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386
  • 57. 손위풍(巽爲風)
    『 반복하여 시도하다 』
     
     ●    인생은 결코 연습이 없습니다. 시간은  다시 보상받
     ●    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매우 치열합니
     ○    다. '이제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해야겠다.'는 마
            음은 그렇게 써놓고 잊어먹는게 또  마음입니다. 많
     ●    은 실패를 통해서 큰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실
     ●    패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저 좋은
     ○    것을 따라서 사는 사람도 밤낮 뒤쳐져서 사는  사람
            에 불과합니다.
     
                                    손위풍(巽爲風)
     
        [손(巽)] 괘는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상징하는 괘다.
        이 괘는 바람의 형태를 겹쳐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서 겸손한 마음으로 몇 번이
        고 성의있는 행동을 거듭하는 상태를 표현한다. 강효
        가 왕자의 위치인 가운데에 있으니 이것은 훌륭한 지
        도자가 정당한 위치에 있어서 바른 도리를 쫓아 뜻을
        펴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유효가  모두 강효의 아
        래에 있어서 강효에 순종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것은 모든 국민이 훌륭한 지도자에게  순응하는 모습
        니다. 그러므로 손괘는 조금씩 점차로 발전하는 것이
        다.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여 나아가면 순조로운 성
        과를 거두리라. 겸손한 태도로 남의  의견을 쫓기 때
        문에 훌륭한 인물을 얻기에 좋다.
     
      "[손(巽)] 괘는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상징하는 괘다. 이  괘는
    바람의 형태를 겹쳐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서 겸손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성의있는 행동을 거듭하는 상
    태를 표현한다." 손(巽) 괘는 바람이  두 개 겹쳐서 있습니다. 바
    람이 부는데 또 바람이 불어오므로 이 괘는 산들바람을 뜻합니다.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물과 같아서 자기보다 강한데 부닥치면 자
    기를 스스로 낮추어 돌아서 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든지 스며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과 바람의 차이점은  물은 자기라
    고 하는 물질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데  반하여 바람은 분명한 자
    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람의 큰  단점입니
    다.
     
      자기가 굳건히 존재하지 않는 바람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습니
    다. 매사에 자기를 낮추어 하되, 그 안에는 심지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심지가 없으면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발전이 없습니다.
    안에 분명한 것이 들어 있는 사람은 기분내키는대로 하지 않습니
    다. 한 번해서 안된다고 재도전하고 또 재도전하는 것은  큰 힘을
    무리하게 가하면 안됩니다.
      완성이라고 하는 것은 조화가 이루어질 때 있게끔 적당한 힘을
    가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자리를 잡을 때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살
    짝 잡아야 되는데 손으로 움켜 잡으면 잠자리는 잡았지만 형태가
    망가져 버리게 됩니다. 한 번 해서  안되었을 때 조금 더 조이고,
    더 조이고 하면서 힘을 가해 나가는 것은 안에 분명한 심지가 있
    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심지가 없으면 자꾸 새버리는  결과가 됩
    니다.
     
      "그러므로 손괘는 조금씩 점차로 발전하는 것이다." 일을 제대
    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미친 듯이 신나서 하는 것
    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조금씩, 점차로라는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강한 것이 망가져 버립니다. 또  안에 강한
    것이 분명하게 있지 않으면 조금씩 조금씩  하다가 뭘 하는줄 모
    르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일 조금  하다가 그만두고, 저 일 조
    금하다가 그만두는 사람은 안에 하는 일에 대한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전이라는 것은 한꺼번에  와락 된
    다기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부터 축적되어지면서 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괘는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손위풍] 괘는 바람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어나가기 때문에  끌어 모으지
    못하는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아가지 않고 주저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일단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약간의 발전이
    있다고 표현해 놓았지만 바람은  자신의 단점을 잘  알지 못하면
    아무리 활동을 많이 하더라도 성공할 수는 없게 됩니다.
      거두어 들일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한 두 번 하다가 안되면
    그만두어 버립니다. 상사가  아니꼬와서 못다니겠다는 사람은  그
    안에 거두어 들일려고 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거두어 들일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난제에 부딪치면
    달래가면서, 문제를 살살 녹여가면서  해결해냅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이루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거듭하여 행하
    는 것보다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 없느
    냐가 더 중요합니다.
      인생은 결코 연습이 없습니다. 시간은 다시 보상받을 수 없습니
    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매우 치열합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가다
    듬고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은 그렇게 써놓고 잊어먹는게 또 마음
    입니다. 많은 실패를 통해서 큰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실패
    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저 좋은 것을  따라서 사
    는 사람도 밤낮 뒤쳐져서 사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대상. 바람이 바람을 따르는 것이 손(巽)괘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성
        의를 피력하여 일을 처리한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성의를 피력하여 일을 처리한다." 거듭
    거듭 성의를 피력하는 것은 중심이 없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흔
    히 소인배들은 일을 할 때 중심을 잡지않고 신나게 시작하였다가
    뭘 해야 하는 지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결국은  중도에 포기하곤
    합니다. 일의 완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성의
    를 갖고 거듭 거듭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첫 번째 음효. 확고한 신념이  없고 의심하는 마음으
        로 진퇴를 거듭한다.  무사와 같은  꿋꿋하고 변하지
        않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좋다.
     
      '하면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맨
    처음에는 그와같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즉 무슨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마음의 성의를 갖고 시작해야 되는데, 마음의 성의라는 것
    은 처음부터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하다보면 성리의 눈이 틔어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성
    리의 눈은 틔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실패도 따르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러나 그 실패를 통해서 결국은  발전합니다. 한 두 번 하다
    가 어려운 일이 있다 해서 포기하는  사람은 구축하려는 힘이 없
    었던 사람입니다. 안에 의지가 없는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멸망합
    니다. 동시에 거듭하기를 주저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효는 "처음
    에는 확고한 신념이 없어서 의심하는 마음으로 진퇴를 거듭한다."
    꼭 해낼 수 있다라는 "무사와 같은  꿋꿋한 마음"만 있으면 실패
    를 하더라도 결국에는 완성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손해가 이익이 될 수도 있고, 또 너무 큰 이익을
    취해서는 안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
    이 곧 안에 분명한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좌우됩니다. '나'라는 것
    은 대상과 하나가 되어 있는 '나'라야 됩니다. 현실을 망각한 '나'
    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있을 때 거듭거듭 노력하면 만물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만이 거
    듭거듭 노력할 수 있으며 진정한 겸손을 할 수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뜻이 분명한 사람은 겸손을 내보일 수 있지만,  자기가 강하
    게 있는 사람은 절대로 겸손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하게
    됩니다.
     
        두 번째 양효. 겸손한 태도로 의자 밑에 앉는다. 자주
        자주 무당을 불러 신의 가호를 빈다. 뜻이 도리에 맞
        으니 길하리라.
     
      "겸손한 태도로 의자  밑에 앉는다." 아무리  자기의 마음에는
    못 마땅하더라도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의자에  앉지 않고 밑에 내
    려가 앉듯이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하면  그때 신의 가호가 내리
    는 법입니다. 즉 진정으로  되어지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하면 반드시 신의 가호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절대로 인간
    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어느 정도 신의
    가호와 맞아 떨어졌는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성공했을 때 그것은 인간이 성공시킨 것이 아니고 신이
    원하는 것을 인간이 해냈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성공이 얻어진 것
    입니다. 어떤 인간이 훌륭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잘 될 수 있는 신
    의 가호를 받는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성리를 떠난  인간의
    노력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똑똑해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신위에
    있다는 자만심을 가져서는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신의
    가호가 생기게끔 항상 조심하는 태도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만들어진 신이란 것도 결국은 나의 본성이 만든 것이며 게이
    머가 게임의 룰을 지키듯이 정한 룰을 따르는 것은 전체적인 즐거
    움과 안정을 위하는 길입니다.
     
      "자주 자주 무당을 불러 신의 가호를 빈다." 우리는 항상 '지금
    내가 너무 만족해 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너무 나라는 틀안에
    쌓여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점을 수시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
    다. 자기에 너무 빠져  있으면 신의 가호를 못느끼게  되어있습니
    다.
      신의 가호를 반드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때가  비로
    서 가장 중립적인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그때 진정한  조심이 나
    오고, 그때 진정으로 챤스를 잡을 수 있는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
    다. 그렇지 않을 때  신은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 스스로
    신의 가호를 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양효.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표시하며 비굴하게 군다. 그러나 마음의 진실이 없으
        니 마침내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난처한 지경에 빠지
        게 될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표시하며 비굴하게 군
    다." 남한테 얻는다는 것이 구걸하면 안얻어지는 법입니다. 몇 번
    이고 몇 번이고 거듭하되,  안에 구축하려고 하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해야지 거저 얻어먹으려는 식으로 구걸을 해서는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뜻이 분명하게  있고 신의 가호와 마주치면  원하는
    것이 자신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해주는 것이  신입니
    다. 그러나 그것이 없이 무조건 손을 벌리면 오히려  난처한 지경
    에 빠져버립니다. 또 반대로  한 두 번 해보다가  안된다고 "에이
    짜증한다." 하고 그만두어 버리면 신의 가호를 느낄 수 없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거듭거듭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구걸인 지
    를 아는 사람은 군자입니다.  군자가 아닌 사람은 자꾸  비굴하게
    굽니다. 그러므로 겉은 숙이되 안은 결코 숙이지 말아야 합니다.
     
        네 번째 음효. 후회할 만한 아무런 과실은 없다. 사냥
        에서 여러 가지 훌륭한 포획물을  얻어 온다. 겸손한
        태도로 군주를 도와 나라에 행적을 남긴다.
     
      다시 음성에너지가 갖추어졌습니다. 첫 번째 효에서 먼저  가지
    려는 것만을 생각하니 의심하는 마음만 생겼습니다. '이걸해서 정
    말 내가 잘 될까?' 이렇게 가지려는 것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
    다. 이루려 하는 것을 바로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는데 있어서 무턱대고 나가지 말고  겸손하게 나아가라고 했습니
    다. 마구 박차고 나아감으로 해서 조화를 깨뜨려서는 안된다고 하
    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아가면 음성에너지가 약해지기  때문에
    거둬들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냥에서 여러  가지 훌
    륭한 포획물을 얻어 온다. 겸손한 태도로 군주를 도와  나라에 행
    적을 남긴다." 다시  네 번째에서  음성에너지가 갖추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냥에서 여러 가지 훌륭한 포획물을 얻어오고 겸손한 태
    도로 군주를 도와 나라에 행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 중정한 지위에  있어 한결같은 마음
        이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만사  순조롭지 않은 것
        이 없다. 처음에는 곤란이 있으나  뒤에는 성공이 있
        다. 모든 일에 사전 준비와 사후 처리에서 일관한 노
        력을 기울이면 길하리라.
     
      '내가 요렇게 하면 정말 좋은 성과가  있겠지.' 하는 마음을 갖
    고서 일을 하면 잘 안되는 법입니다. '내가  요번에 집을 사면 방
    을 요렇게 꾸미고, 카페트 깔고, 이렇게 인테리어를 하고 .' 등등
    온갖 설계와 인테리어를 하면  사기도 전에 아파트  당첨에서 뚝
    떨어집니다. 이렇게 꿈에 부풀어서 하면 뒤가 꼭 안되게  되어 있
    습니다. 아직 주어질 때가 아닌데  먼저 먹으니 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안되었을 때는 하지 말고, 때가 되면  우겨서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앞뒤가 똑같이 일관하려면 마음의 여흥이  먼저 사라진 뒤라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흥을 안나타내기 위해 아예 희망마저 갖
    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될 일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중정의 지
    위에 있어 한결같은 마음이 변함이 없다." 입니다. 한결같은 마음
    이 변함이 없는 것, 이것은 여흥이 뒤쫓지 않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양효. 고요히 의자 밑에 앉아 있다. 재산과
        지위를 상실한다. 이렇게 하향의 상태로 이어지면 별
        다른 잘못이 없어도 흉한 것이다.
     
      "고요히 의자 밑에 앉아 있다."  그 지위가 극한에 이르렀으므
    로 지위는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음을 상징합니다. 겸손이 지나
    쳐서 속이 비어버리면 안됩니다. 속은  항상 차있어야 합니다. 산
    들바람은 거듭 불지만 힘이 약하기 때문에  주저앉아 버릴 수 있
    습니다. 주저 앉아서는 안됩니다. 항상  놀되 나아갈 바를 갖추고
    놀아야 합니다. 나갈 바 없이 노는 사람은 나갈 바를 갖추고 노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갖추어진  다
    음 노력과 노력을 거듭하면 크게  발전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
    는 것이 [손위풍]입니다.
      [손위풍]을 잘못 이해하고 거듭거듭 나아가기만 하면 순허풍이
    되어 버립니다. 그나마 나아가지도  않고 쌓기만 해야지 하면  그
    바람은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바람이 불지도  않습니다. 항상 [손
    위풍]의 상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한결같은 마음을  갖도록 해야
    됩니다. 나가기 위한 것은 반드시 구축을 현실로 두고  나가야 됩
    니다. 구축이 현실이 되지 않고 구축하려는 마음만 갖고 나아가는
    것은 구축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62
  • 47. 택수곤(澤水困)
    『 곤란을 맞다 』
     
     ●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
     ○     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
     ●     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수곤(澤水困)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
        게는 발전의 길이 있다. 강효가 유효에 가리워  있다.
        험난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
        도 형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
        다. 변함이 없이  한결같이 바르게 있으라.  가슴속에
        굳은 신념이 있는  큰 인물에게는  반드시 길하리라.
        무엇을 말하여도 남에게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 많으
        면 궁지에 빠지리라.
     
      공자의 제자 자로가 물었습니다. "군자도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
    야 합니까? 그럼 군자와 거지가 무엇이 다릅니까?" 공자가 대답하
    였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거렁뱅이와 소인배들은 궁하
    면 문란해지고, 도적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는 따위의 비행을 저
    지르지만, 군자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이게 군자와 거렁
    뱅이가 다른 점이다." 자로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공자
    가 말했듯이, 겉의 모든 유혹이나 어려움 따위에 잃어버리지 않을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군자의 길입니다. 사
    람이 무언가 자기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해서 뜻을
    저버리게 된다면, 그 뜻은 진정한 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유혹에
    도 변하지 않을 명료한 뜻, 그리고 그것을 지닌 명료한 영혼을 같
    고 있어야만 '비행'과 '문란'이라고 하는 세계의 경계선을  분명하
    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주는 명료합니다. 이 우주는 부서지기도 하고 깨져 나가기
    도 합니다. 그것은 명료한  우주가 명료한 조화를 꾸미기  위해서
    무언가 균형에 맞지 않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한 집의
    가족은 모두가 편안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다시 말해서 도둑이
    든다면, 그 도둑도 우리와 같이 하나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눈에 거슬리는 경계를 만들어 냅니다. 무언가 눈
    에 보이지 않게 부조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때문에 그  가족들은
    그러한 부조화를 느끼는 순간 도둑을  잡든지 아니면 내쫓으려고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군자는 어떤 유혹을 받더라도 자기 자신을 지킬지언정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얻지 못하면, 이
    자연이 우리의 부조화된 마음을 파괴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먼저  회사가 원하는 직원이 되야지,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직장을 나가게 되면, 언젠가 직장은 당신을 쫓아
    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한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조화
    가 되어져 있는 세계에 불균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
    의 길이 있다." [곤(困)]은 "곤란하다."라는 뜻입니다. 한자의 "곤
    (困)" 자는 나무가 상자안에 갇혀있는 모양입니다. 즉 "나무가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다." "사방을 완전히 틀어막아 놓았다." "장애
    에 갖혀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괘를 가만히 살펴보면, 양표가 모두 음효에게 갇혀있습니다. 
    음성에너지는 무조건 자기 쪽안으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
    기 때문에, 그것이 앞, 뒤, 가운데에서 작용을  하면 양성에너지가
    펼져 나가려 하자 마자 즉시 그 힘이 음성에너지에 빨려들어가서
    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곤은 위의 괘가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
    고 아래 괘가 물을 뜻하는 수(水)로서 "연못 밑에 물이 있음"을 나
    타냅니다. 물이 연못 밑에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연못에는 물
    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못 바닥이 웅덩이가 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밑에 있는 물은 조금만 솟구쳐  올라오면 연못을 다시 만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水) 괘는 험난을 뜻하는 괘입니다. 또
    택은 기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곤란이라고 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라는 것을 이 곤(困)은  효
    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괘는 군자 이상이  되어야지만 곤란
    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괘
    는 이것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의 길이 있
    다." "험난 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도 형
    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다." 음효에  둘러싸
    여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변함이 없고 의지가 분명하면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 수 있듯이  도리어 '곤(困)'이 크게
    길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이
    걸 어떻게 헤쳐나아갈까?" 하고 묻는 사람은 벌써 마음 안에 밀치
    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
    는 반드시 방법이 있으며,  나는 힘 안들이고 가볍게  헤쳐나가는
    길잡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사람은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행복인줄  아는 사람
    은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곧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지옥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택수곤]을 통해서,
    허물안에서 영양분을 빨어먹고 사느니보다는 허물을 벗어나서 만
    물에 두루 날아다니며 그 만물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대상. 연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목숨을 걸고 초지(初志)를 관
        철한다.
     
      목숨을 걸고 초지를 관철한다고 해서  오기를 부리면서 살피지
    않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양효가 결국
    음효의 울타리를 뚫고 나간다는 뜻인데, 음효는  원래 "여자가 한
    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찬서리가 내린다."고 양효를 자기에게 묶어
    두려 합니다. 그러나 음효가 양효를 잡아 먹어서 양효가 고갈되어
    져 버리면 음효 자신도 존재 자체가 스스로 부서져  버립니다. 때
    문에 여자들은 찬서리를 내 품을 정도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
    야 됩니다. 기분 나쁘다고 반찬에다 양념을 덜 넣어서  남편을 골
    탕먹이는 여자, 그런 여자의 남편은 맛있는 것 먹으러 갈 때는 틀
    림없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
        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혼미한채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만물
    은 항상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비록  난처한 지
    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 역경을 지나갈 수 있는 힘
    과 묘안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난 몰
    라." 하고 눈을 감아 버리면 나무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것
    처럼 거북하고 괴로우며,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앉은 것처
    럼 삼년동안 이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양효. 일상 식생활에서도 곤란할 정도.  그러
        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
        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나라의 큰 제
        사일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으리라. 그러나 스스로 구
        하고 나서면 흉하리라.
     
      "그러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두 번째와 다섯 번째가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
    면 붉은 인끈을 찬, 즉 중국에서는 붉은 색깔이 높은 사람을 나타
    내므로, 높은 계급의  사신이 맞이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자의 사신은 다섯 번째 효를 말합니다. 그래서 큰  제사일에 참
    여하는 기쁨이 있는데, 좋은  일이 왔다고 벼슬을 스스로  구하고
    나서면 곧 낭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뜻이 깊으면 깊을수록 가벼운 기쁨에 만족하지 않는  법입니다.
    워낙 깊은 물은 함부로  촐랑거리지 않으며, 원래 안이  단단하게
    들어있는 깡통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되었다고 생각
    되는 순간, 이 잘 된 것이 다시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항
    상 해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림자를 항상 살펴라."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음효.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
        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까지 도망쳐 버린다. 흉하다.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두 번째에서 힘든 것 가운데  마음의
    뜻을 펼쳐서 난관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뚫고  나온 힘으
    로 함부로 나아가다가는 다시  고난을 당합니다.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빠져나갈 길이 없을 까 살펴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길이 좀 뚫렸다고 "하하하" 웃으며 달리다가는 순간 다시 가시덤
    불같은 장애가 앞에 온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을 다시  슬기롭게
    넘어가야 나무가 막혀있는 땅을  뚫고 나온 것처럼  비로서 잎과
    꽃,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넓고 광대한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영혼이 싱싱하다면 그대는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랄 것
    입니다. 그러나 굴복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의 발전은
    그저 거기서 맴돌다 갈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일상  생활에 밥먹
    기조차 곤란한 정도로  어찌해야할지 혼미한채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안에 진정으로 이루어내고  말겠다
    하는 신념이 분명하게 있으면 쓰러지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행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
    다. 이 실마리가 풀릴 때 실마리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얼어 있는 땅을 파헤치라고  삽을 주면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몇 번 땅을 치다가 "땅이 너무 얼었습니다. 파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하는 사람은 이미 신조가  날라가 버린 사람입니
    다. 또 어떤 사람은 잘 안파진다고 무리하게 삽질을  하다가 삽자
    루를 부러뜨립니다. 자기 힘을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아가다 돌부
    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드는 것처럼 그
    나마 한 자루 남았던 삽마저 깨뜨려  버리면 뜻을 실현하기가 더
    욱 난감해 집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빠져나와서 "자기  집에 들어
    가니 아내는 도망가고 없다." 즉,  삽자루를 부러뜨리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고통이 나를 감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삽자루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심스럽게 파야
    합니다.
     
        네 번째 양효. 나를 맞으러 오는 자가 있건만, 그  금
        색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있다.
     
      "나를 맞이하러 오는 자 있건만 그 금색 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디어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삽을 아끼면서 계속해서
    땅을 파려고 하면 이제 나를 맞으로  오는 금색 찬란한 웅덩이가
    있건만,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실패하는
    사람과 성공하는 삶의 가장 분명한 경계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
    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사를  보면 금광을 캐러 다니던 수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단 한 번도 노다지를 못캐고 결국 남의 광산에
    서 종으로 일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결코 재수가 없어서 그
    런 것이 아니고, 이제 노다지가 나오기 3피드 전에 그만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진짜 금광을 캤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남
    이 파다가 만 데를  계속해서 파보니까 노다지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광은 더디고 더디게 오는 법입니다. 봄이면 피는 수많은 꽃들
     . 가을이면 열리는 수많은 열매들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는 시 구절이 있듯이 영광은 가능한한 완
    전하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더디게 더디게 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  제품을 보고 엇비슷하게 만들
    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제품보다 뒤지는 이유는
    얼른 비슷하게 만들어 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더디고 더디면서
    괴로움을 인내하는 과정을 밟지 않아서 어딘가 엉성해 진 것입니
    다.
      네 번째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므로 난경입니다. 그러나 대응
    하고 있는 첫째 효가 음효이므로 음양이  맞아서 결국 좋게 된다
    는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
    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조를 가
    지고 있다면 아픔과 실패는  곧 성공의 어머니라고  마침내 좋은
    성과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신조가 없
    다면 실패는 곧 우리 인생 자체의 소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힘들
    고 힘들지만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나타나서 도와주게 됩
    니다. 이것을 신의 가호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이니 박해가 겹
        쳐온다. 아직 뜻을 펴지 못하니  군왕의 붉은 인끈이
        괴롭구나. 마음을 바르게 가지니 천천히 즐거움이 있
        다. 조상과 신에게 감사히 제사를 올린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 들어가며 꽃을 피웠더니 아주 갖은 모
    멸을 다 당하게 됩니다. 벌들이 날라와서 꿀을 훔쳐가더니 그래도
    얼굴을 감싸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마음놓고 있다 보니 나비
    란 놈이 날개로 토닥거려 주는 듯 하다가 뭘 하나 훔쳐가지고 갑
    니다. 또 인간들이 와서 이쁘다 하고 꽃을 꺾어갑니다. 그러나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일지언정 스스로 자멸하지 않고 꿋꿋이 있다 보
    면 드디어 천지 창조주의 홍복으로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그동안
    이 결실을 위해 마음을 바르고 곧게 가져 왔습니다.  드디어 복을
    받으며 조상과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을 죽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이  다섯 번째 효의 단계에 이
    르면 그게 바로 살아가는 낙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인생 60이 짧다는 것은 살아오는 동안에 고난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직장
    에서 쫓겨나서 3개월만 집에서 빈둥 빈둥 놀면 가슴이 터질 것같
    고, 뼈가 오무라드는 것같아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따
    라서 아무 걱정없이 60년을 산다는 것은  결국 미칠 것같은 따분
    함과 무료함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난의  삶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면 그대는 지금까지 그대에게 주어졌던 모든 어려
    움은 곧 복이었다는 것을 알고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
    니다. 복중에 가장 큰 복은 바로 이것을 느끼는 복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칡덩굴에 걸려  흔들리고 불안하여
        고민한다. 무리하게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면 후회하게
        되는 난경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여
        나가면 길하리라.
     
      여섯 번째도 음효고 대응관계인 세 번째도 음효입니다.  비로서
    하나 완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존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
    다. 이것이 마지막 하나의 고비입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수준정
    도까지 오면 이미 그것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진 상태입
    니다. 국화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기존의 꽃의 세계에는 그 국화꽃
    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치려고 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가 막히게 훌륭한 제품을 하나  만들어 냈
    다고 해서 이제 나는 완성했다 하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나의 제
    품과 비슷한 유사품이 다시  곧 나와서 나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합니다. 이때 무리하게 유사품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굳굳하게 나
    를 지켜 나간다면 길하리라 하고 여섯 번째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
    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세계는 바로 우리의 세계이며, 내가 곧 주인임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20
  • 37. 풍화가인(風火家人)
    『 가정의 평화 』
     
     ○     진정한 믿음은 화목입니다. 그런데 집안 식구가  각
     ○     각 믿는 바가 다르면 그 집안은 분쟁이 일어납니다.
     ●     며느리는 교회나간다고 제삿상을 못차리게 하고, 시
            어머니는 불공 드리고 와서는 제삿상을 차려야지 조
     ○     상의 혜택이 있고 자손이 잘된다고 그럽니다.  시어
     ●     머니는 제삿상 차린다고 그러는데 며느리는  손하나
     ○     까딱 안합니다. 그럼 그 집안은 엉망이 되어 버립니
            다. 화목이 있을 수 없습니다.
     
                       풍화가인(風火家人)
     
        [가인]은 가정을 상징하는 괘다. 가정에는 여자가 바
        른 도리를 지켜 변함이 없어야 만사가 순조로운 것이
        다. 남녀가 바른 도리를 지킴은 하늘과 땅이 서로 자
        연의 법칙을 지킴과 같은 천지의 대의인  것이다. 가
        정에 엄한 군주가 있으니 부모를 이르는  말이다. 아
        녀자는 아녀자의 도리를 지키고, 아들은 아들의 도리
        를 다하고, 형은 형의 도리를 다하고, 아우는 아우의
        도리를 다하고,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지키고, 아내
        는 아내의 도리를 다하여야 가정은 바로 다스려질 수
        있고, 가정이 바르게  다스려져야 천하가 안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가인(家人)]은 집안이 잘되기 위한 괘입니다.  [풍화가인]. 공
    기가 없으면 불이 꺼져버립니다. 또 불이 훨훨 타면  공기가 확장
    이 되어서 바람이 일어납니다. 즉 바람과 불은 잘 섞이면 크게 확
    장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안이 화목하면 크게 발전합니다. 그
    런데 중요한 점은 집안의  화목이 여자한테 달려있다는  것을 이
    괘는 암암리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에는 여자가 바른 도리를 지켜 변함이  없어야 만사가 순
    조로운 것이다." 가인 괘는 상괘가 양효 둘에 음효 하나로 여성을
    나타냅니다. 또 하괘도 여성 괘입니다.  여성 괘의 신분은 모두가
    음효이면 어머니(坤), 맨 밑의 효가 음효이고  위로 두 개의 효가
    양효이면(巽) 맏딸, 가운데가 음효이고 위.아래가 양효이면(離) 두
    번째 딸, 맨 위에가 음효이고 아래 두 효가 양효이면(兌) 셋째 딸
    을 뜻합니다. 그래서 가인 괘는 상괘가 맏딸, 하괘가 둘째 딸을 나
    타냅니다. 그리고 하괘가 상괘를 따르니 곧 둘째 여자가 첫째 여자
    를 따른다는 형상입니다.
     
      한 집안이 화목하려면 여자들 간의 질서가 분명해야 합니다. 과
    거 조선시대 왕들은 많은 부인을 두었으며, 그  부인들 간에는 명
    확한 서열이 있어서 질서가 분명 하였습니다. 그런데 숙종때 장희
    빈 같은 경우는 [빈]이라는 낮은 위치에서 [비]를 쳐버리고 올라
    왔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조정은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고 시끄러
    웠으며 나라는 잘 다스려지지 않았습니다. 여자 스스로 여자 세계
    의 질서를 무너뜨리게끔 여자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남자는 남자
    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또 여자들간의 질서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 집안은 망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시어머니
    가 배운게 자신보다  모자란다 하더라도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드는 집안은 잘될 리가 없습니다. 또 여자가 남편이  좀 별볼일
    없다고 집을 뛰쳐나가 버리면 그 여자  자신은 온전한 가정을 가
    질 수 없는 여자려니와 그 집안은 그대로 망합니다.
     
      "남녀가 바른 도리를 지킴은 하늘과 땅이  서로 자연의 법칙을
    지킴과 같은 천지의 대의인 것이다." 지켜야 할 도리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도리를 지킬줄  아는 것.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코 불이 일어나는데 '바람과 함께 더 훨훨 탄다.'라는 현상이 벌
    이지지 않습니다. 진짜 잘난 사람은 잘난 일을 하되  관계에 있어
    서는 그 관계를 흐리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도리
    를 분명히 지켜야지만 바람이 일어서 훨훨 타는 이루 말할 수 없
    는 번영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여자가 가정을 지키면 남자는 결
    국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야!  너죽고 나죽자!" 이러
    면 남자가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져버리는 것입니다.  즉 남자가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차버리는 것입니다. 주역의 괘로  보면 여
    자는 안에 남성이 둘이 있습니다. 그 남성 둘로 여자 하나를 지켜
    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지 않고 그 남성이  튀어나와서 남
    편에게 대들고 싸우게 되면 그 여성은 죽게 됩니다.
      여자가 도리를 지키고 덕을 갖추면 나이 40쯤 되어서는 관세음
    보살과 같이 됩니다. 그러면 척 눈빛만 깔아도 남자가  등에 힘이
    빠지며 늙어서는 여자 치마폭안으로 완전히  들어와서 여자의 종
    (從)으로 변합니다. 젊을 때 그 도리를 지켜서  나중에 위대한 여
    성의 힘으로 남자를 사로 잡아야지 남자와  맞대고 싸우면 그 여
    자는 잘났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에게 주어지는 터전은 켤코 잘나
    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이 먹어서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대상.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가인]의  괘상이다. 군
        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말은 실행이 있고  한결같이 도
        를 지킨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말은 실행이 있고 한결같이 도를 지킨
    다."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겉과 속이 일치해야 합니다. 며느리
    가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
    는 집안이 잘될리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어떤  사람은 말로는 "제
    가 다하지요." 하면서 실행은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이 맡은 회사는 회의를 할 때는 모든 것이 다 되는 것 같은데 실
    제는 하나도 이루어진게 없습니다. 그러면 그 회사는 결국 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은 책임질줄 알아야 합니다. 부녀자
    가 밤낮 시장간다고 나가서 카바레나 다니고 남편이 돈 벌러 나간
    다고 하고서는 돈을 더 쓰고 들어오면서 집안이 서로 속이면 그 집
    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 각자의 도리
    를 지키기만 하면 그 집안은 불이 온 세상을 덮듯이 영원히 훨훨
    탈 수 있다는 것이 곧 [풍화가인]입니다.
     
        첫 번째 양효. 가정에는 서로 지켜야할 안정된 경계
        가 있다. 그리함으로 뜻이 변하지 아니한다.
     
      "가정에는 서로 지켜야할 안정된 경계가  있다." 버는 것은 일
    단 남자가 책임져야 되고, 작게 벌든 크게 벌든 살림하는 것은 여
    자가 우선해야 합니다. 남자는 크게, 큰 덩치로 굴려야 하고, 여자
    는 그것을 쪼개고 쪼개서  그 덩어리의 범주를  넘어가지 않게끔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맡은 바 경계가  분명해야 합니
    다.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피곤해서 서로 못삽니다.
      회사도 서로 일을 함에  있어 각 부분간에  경계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경계선이 없으면 이쪽에서  갖다 쓰고, 저쪽에서 갖다
    쓰고, 누가 갖다 썼는 지도 모르고 나중에는  물건이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게 되면 그 회사가 잘될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딸려있는 것이지  그 회사에
    딸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인간의 세계가 분명해야지 그 회사
    는 바람에 불길이 훨훨 타오르듯이 잘될 수 있습니다.
      "그리함으로 뜻이 변하지 아니한다."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은
    '뜻이 투철하다.'라는 뜻입니다.  남편이 벌어올  것을 포기하거나
    여자가 지켜야 할 가정을 스스로  포기하면 "가정을 잘 일으켜야
    겠다."라는 뜻이 이미 허물어진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분명히 하는 것은 먼저 뜻이  분명히 되어져 있기 때문입
    니다. 아버지가 좀 못났다고  아버지 알기를 우습게 알면  안됩니
    다. 지켜야할 정확한 관계는 곧  그것이 뜻입니다. 법칙은 그렇게
    해서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음효. 여자는 자신이 나서서 무슨 일이고 해
        치우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여자가 집안에서 음
        식을 보살피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남편을  따르는
        순종하는 마음을 지키면 길하리라.
     
      "여자는 자신이 나서서 무슨 일이고 해치우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풍화가인]괘는 다섯 번째 효까지 양, 음, 양, 음, 양으
    로 양(陽)이 와야할 자리에 양효가, 음(陰)이 와야할 자리에 음효
    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각자의 도리를  모두가 잘 지키고 있다
    는 뜻입니다. 두 번째 음효는 여자로서의 도리를 이야기하고 있습
    니다. 여자는 무슨 일이건 자신이 나서서 먼저 하려는 생각을 해서
    는 안됩니다. 남자가 할 일을 여자가 나서서 해버리면  그 남자는
    무능해 집니다. 통상 여자가 돈을 많이 벌면 남자는 자기가 번 돈
    을 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네가 뭐야?" 이
    런 식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갑자기 큰 일이 생기면  여자의 눈치
    를 보며 자신이 결단해서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런 남자가 사회에
    나가서 큰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자가 집안에서 음식을 보살피는 이유가 있다." 남자를 그렇
    게 만들지 않으려면 여자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여자가
    집안에서 음식을 보살피는 것은 반드시 요리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의 것을 보살핌으로써 그것이 곧  덕이 되게끔 한
    다는 뜻입니다. 아이는 어디  갔다 들어오면 엄마를 먼저  찾습니
    다. 남편이 피곤해서 들어오면 깨끗하게 정돈된  이부자리가 필요
    합니다. 여자는 그런 것을 해야된다는  뜻입니다. 즉 여자는 집안
    의 테두리안에서 집안을 보살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따르는 순종하는 마음을 지키면 길하리라." 그렇게 자
    기 도리를 분명히 해야지만  순종이 나오게 됩니다. 아무리  형이
    못났건, 위의 누나가 못났건 자기 할 일을 분명히 하고 도리는 도
    리대로 지킬 수 있는 것. 그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순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순종은 맹종하고 다른 것입니다. 순종은 편안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것은 타이
    어가 땅과 차사이에 순종하라고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으로부
    터 오는 충격을 타이어가 받아내어 차안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순
    종은 곧 충격을 받아내는  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도리가 분명한 경계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양효. 집안 어른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집안
        이 화기를 잃고 거북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집안
        에 법도를 잃지 않은 일이다. 너무  엄격하였음을 뉘
        우치면 길하다. 그러나 여아(女兒)들이  절도없이 함
        부로 웃어대면 공경하고 조심하는 태도가  없어서 집
        안의 법도가 문란하여진 것이니 마침내  세상의 비난
        을 받고 난처한 지경에 빠지리라.
     
      "집안 어른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집안이 화기를  잃고 거북하
    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집안에 법도를 잃지 않은  일이다. 너무
    엄격하였음을 뉘우치면 길하다."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게하여  자
    식들이 사랑을 못느끼게 하면 아버지가  죽어도 자식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런 집안은 비록 아버지가  무서워서 자식들이
    조심하고 행동하여서 법도는 지켰으나 그런  법도는 소용이 없습
    니다. 반대로 집안의 아내나 아이들이 절도도 없이 막  되먹어 가
    지고 아버지가 뭐라고 그래도  말도 듣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욕하고 무시하는 등 집안의 법도가 무너진 것보다는 차라리 엄격
    한 것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뉘우치지 않고 계속하면  결국
    흉한 것입니다.
     
        네 번째 음효. 유화한 마음으로 가장을  도와 집안을
        다스리니 집이 부하여 진다. 크게 길하리라.
     
      "유화한 마음으로 가장을  도와 집안을 다스리니  집이 부하여
    진다." 네 번째는 당연히  여자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여기서
    가장(家長)이라는 것은 다섯 번째 양효를 말합니다. 여자가  유화
    해야 하는데 대체로 고집을 떨고 있으면  그 집안은 남자가 능력
    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남자는 제 구실을 해
    야 하고 여자는 자기 고집을 떨어서는 안됩니다.
      승리의 첫 번째 비결은 자신을 잃지 않고 항상 손해를 보는 것
    입니다. 강태공은 60년 동안의 세월을 손해보고 지나갔습니다. 안
    에 뜻을 품고 그 기회가 올 때까지는 섣불리 나가지 않고 낚시가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비웃어도 웃으면서 다 받아 넘
    기고 그런 일에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선 속으로 자기  할 일
    을 꿋꿋히 했습니다. 여자가 그와같은 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대단히 힘든 것입니다. 집이 부유해지는 길은 이것밖에 없
    습니다. 남편이 어느 좋은 직장에 있느냐에 의해 부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옳고 남자가 그르더라도 여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
    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면 집안이 잘 되지는 않을  것이나 최소한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신이 옳다고 박박 우기며 자
    기 멋대로 행하면 설사 그것이 옳은 일일 지라도 그 집안은 흉해
    집니다. 어쨋든 남녀의 잘, 잘못을 밝히기 전에 여자가 먼저 남자
    의 잘못도 이끌어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유화한 마음으로 가장을 중
    심으로 집안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장을 깔보고 자기가 집을 위하
    겠다고 튀어나가 버리면 돈은 들어올는지 모르지만 그 집안이 기
    강이 서지 아니하고 잘되어지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양효. 어진 군주가 착한 아내를 맞아 가정
        을 가지게 된다. 부부 서로 사랑하여  일가 화목하니
        온 나라의 모범이 된다. 무슨 걱정이 있으랴. 길하리
        라.
     
      "어진 군주가 착한 아내를 맞아 가정을 가지게 된다." 착한 아
    내가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 학위를 받으
    면 착한 아내가 되는가? 요리를 잘하면  착한 아내가 되는가? 아
    닙니다. 동양 철학에서는 착한 아내의 길을 여필종부(女必從夫),
    즉 여자가 남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남자든 간에  여필종부하는 여자한테는  반드시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섯 번째 양효. 한 가정의 어른으로  성의를 가졌고
        또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고 있으니 위신이  선다. 마
        침내 길하리라.
     
      "한 가정의 어른으로 성의를 가졌고 또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
    고 있으니 위신이 선다." 원래 여기는 음의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음양의 위치가 변함이 없었는데 여섯 번째 와서 음의 자
    리에 양효가 있다는 것은 바로 잡힌  기강을 널리 편다는 의미입
    니다. 만약 음효가 와서 균형된 자리를 그냥 지키고 있다면 "머물
    러 오래 위치하면 좋으리라."라는 식으로 해석이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균형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균형된 전체를 넓게 확장
    시켜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
    여 집안이 화목해지고 주변을 화목한  환경으로 만들어 나가므로
    길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한 번쯤 "도대체 인간이라는게 뭘까?" "어떻게 되
    는 것일까?" 하고 궁금한 생각을 깊게는 아닐지라도 누구나 해보
    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를 보고,  느끼고, 과거를 기억
    하고, 또 내일이라는 미래가 우리한테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 개가  갑자기 뛰어들다가 차가 "끽"하고
    사면 개는 깜짝 놀라 도망을 갈 것입니다. 만약 우리 사람이 그런
    상황을 당하였다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
    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개는 안죽었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개
    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믿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상
    태를 진실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만일 기독교도가 위와같
    은 상황에 처하였다면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하지만  다시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해줬다고 생
    각하며 그걸 믿어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등골이  오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는 정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도 정신
    이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움직임
    가운데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렇게
    일어나는 생각을 어느 한  곳에다가 묶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만큼 우직한 것도 없습니다.  사실 그런 믿음은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군대에 가면 총을 잡지 않고 영창에
    갑니다. 믿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모르는 자가 믿
    는 믿음은 스스로를 영리한 바보로 만들 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화목입니다. 그런데 집안 식구가 각각 믿는 바가
    다르면 그 집안은 분쟁이 일어납니다. 며느리는  교회나간다고 제
    삿상을 못차리게 하고, 시어머니는 불공 드리고  와서는 제삿상을
    차려야지 조상의 혜택이 있고 자손이 잘된다고  그럽니다. 시어머
    니는 제삿상 차린다고 그러는데 며느리는 손하나  까딱 안합니다.
    그럼 그 집안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화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하면 믿음으로 가버립니다. 그것은 순간의  기
    분이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믿음은 진정한 화목입니다. 만약에 우리
    가 집안이 화목해지기를 바란다면 서로 자기 자신의 믿음을 고집
    해서는 안됩니다. 누가 됐든지 자기  믿음에, 자기 가치관에 사로
    잡히면 그 집안은 분열이 일어납니다. 화합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불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자기
    가치관이 투철해서 "나는 이런데서  살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 환경에서 밀려나  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여건이 어떻더라도,
    아무리 환경이 불리하다 하더라도, 불리한 환경을  받아들여서 참
    고 어떻하든 자신의 믿음으로 그 환경을  자기가 원하는 데로 바
    꿔놓기만 하면 그 사람은 어디 가더라도 출세할 수  있습니다. 스
    스로를 가난과 핍박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되어 있지 않고, 고집스런 믿음을 통해서 화목한 세계를 만들려고
    하면 그 사람 자신이 곧 그 환경의  적이기 때문에 이룰 수가 없
    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94
  • 27. 산뢰이(山雷頤)
    『 배움의 길 』
     
     ○    우리 사람은  구멍이 아홉개  있습니다.  '연구(硏
     ●    究)'할 때 구(究)자가  구멍[穴]이 아홉[九]개다
     ●    이런 얘기입니다. 구멍이 아홉개라? 구멍 아홉개를
            다 동원해야지 연구가 되는 거지 구멍 한 두개 가지
     ●    고는 연구가 안되는 법입니다. 즉 연구할 때는  눈,
     ●    코 정도만 가지고 하면 안되고, 온몸으로 온 사력을
     ○    다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뢰이(山雷頤)
     
        [이]괘는 올바르게 길러서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먼저 무엇을 기를 것인가를 잘 살펴서 그  원칙이 정
        하여지면 그것에 쫓아 스스로  길러야 할 바를  찾아
        노력할 것이다.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어진이
        를 길러 그 교화가 만인에게 미치게 한다. 기른 다음
        에 실지로 행하여 지는 그때야 말로 위대한  때인 것
        이다.
       
      [이] 괘는 맨위와 맨밑은 양(陽)의 효로 이루어져 있고 가운데
    네 효가 모두 음(陰)의 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아래 효를
    보면 땅은 열려있는데 하늘의 세계가 아래로 들어와서 그 기운이 
    뭉쳐있다. 하늘로부터 에너지가 내려와서  뭉쳐있다. 그러면 이게
    무엇인가? 번개입니다. 번개. 뇌성. 위의 효는 땅으로부터 그 기운
    을 이어 받아서 위에서 뭉쳐있다. 그러면  이게 무엇인가? 산(山)
    입니다. 위에는 산의 괘고, 밑에는  번개의 괘. 그러면 이게  결국
    뭐냐? "산밑에 뇌성이 뭉쳐있다." 이를 쉽게 이야기하면 가슴속에
    큰 뜻, 웅지(雄志), 확고부동한 뜻이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맨 위의 양효인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맨 아래 확고한 자신의
    뜻을 세우고 가운데 네 개의 음효를 뚫고 뜻을 하늘에 맞추어 변
    함이 없으면 결국 웅지는 현실에 펼쳐지고  큰 우뢰가 울릴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지가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기다리면서
    그 뜻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길러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 괘는
    결국 '기른다'라는 괘입니다.
      "[이] 괘는 올바르게  길러서 길이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이
    변함이 없다." 이 괘의 가운데 4개의 효가 다 뚫려 있어 변함없이
    이루어져가면, 초효의 자기의 뜻과 육효의 하늘의 뜻이 하나가 되
    는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기일이 걸린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의 뜻이 하늘의 뜻과 하나가 되려면 오랜 기간 뜸이 들어야 된다
    는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자기의 뜻이 하늘의 뜻과 하나가 되는데
    최소한도 10년이 걸린다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지긋하
    게 10년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만 편해지는 요령도 알게되고 일의
    진행을 쉽게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무엇을 기를 것인가를 잘 살펴서  그 원칙이 정하여지면
    그것에 쫓아 스스로 길러야 할 바를 찾아 노력할 것이다." "기른
    다."가 안되면 아무리 뜻이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쌀이 아무리
    좋은 경기도 이천 쌀이라도 밥을 할 때  영양이 될 수 있을 정도
    로 적당한 물과 적절한 뜸을 들이지 않으면 좋은 밥이 되지 않습
    니다. 그래서 자신의 웅지를  하늘의 뜻과 맞추어 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웅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웅지를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도 남보다 잘  되야지."
    이것은 웅지가 아닙니다. "나도 뭔가  갖고 싶다." 이것도 웅지가
    아닙니다. A가 갖고 싶다는 사람은  갑자기 B로 바뀔 수  있습니
    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웅지로 삼는 것은  참 웅지가 아닙니다.
    자신의 웅지가 대상에게 영향을 미쳐서 자기 자신이 대상과 하나
    가 될 수 있는 것, 밑의  양효와 위의 양효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자신이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 웅지입니다.
     
      웅지가 있는 사람은 이미 결과를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해봐
    야지."하고 시작하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기 쉽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하고 마음 먹는 사람은  며칠 지나서 시작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립니다. 이미 결과가 가슴안에  되어져 있어야
    만 합니다. 가슴속에 미리 결과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가슴안에 되어져 있는 것, 그 가슴안에 들어가
    있는 괘가 [산뢰이]입니다.
     
      가슴속에 결과를 미리 갖는  것을 못 터득한  사람이 "나는 꼭
    되야지" 하고 결심을 합니다. 벌써 결심하는  마음은 결과가 아닙
    니다. 아무리 꽁꽁 묶어 놔도 묶어놓은 마음은 풀어지기 마련입니
    다. 마음을 떠나야만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는 결심이라가 보다는 "의지"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의지는 선택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의지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가 선택을  합니다. 의지를 터득한 사람이  볼
    때 결심한 사람들은 눈에  금방 보입니다. 원래 의지로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뜻을 이룹니다.  의지 50%, 결심 50%로  시작하는
    사람은 반은 이룰 수 있습니다. 그나마 결심 하나로만  하는 사람
    은 그래도 초반에 뭔가 조금은 하는데  결심도 힘든 사람은 이룰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구멍이 아홉개 있습니다. '연구(硏究)'할 때 구(究)
    자가 구멍[穴]이 아홉[九]개다  이런 얘기입니다.  구멍이 아홉개
    라? 구멍 아홉개를 다 동원해야지 연구가  되는 거지 구멍 한 두
    개 가지고는 연구가 안되는 법입니다. 즉  연구할 때는 눈, 코 정
    도만 가지고 하면 안되고, 온몸으로 온 사력을  다해야 된다는 뜻
    입니다.
      
        대상. 산 아래 우뢰의 에네르기가 축적되어 있다. 이
        것이 이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말을 조
        심하고 음식을 절제한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말을  조심하고 음식을 절제한다." 뜻
    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안합니다.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싹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야, 나는 내일  뭐할 것이다." "저를 꼭
    믿어 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안에 있는
    심지가 빠져나온 사람입니다. 스스로 안에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대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뜻을 그렇게
    쉽게 현실화 시키지 아니하고, 표현하는 것으로서  만족하지 아니
    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뜻이 펼쳐지기 전에  외부와 타협
    을 하거나 스스로 비굴한 사람은 군자가 아닌 소인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기의 훌륭한 음식을 버리고  남의 밥에
        콩이 굵다고 넘겨다  본다. 자기의 아름다운  재능을 버
        리고 남의 재능을 부러워한다. 흉하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서커스단에 가면 사람들은
    개나 원숭이가 재주 피우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합니다. 원숭이
    재주 피우는 것은 사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사람 흉내내는 정도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돈을 냅니다.
      혹자(或者)는, 재주있는 사람은 날  때부터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
    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재주가 있습니다. 단지 웅지가 약하냐 강
    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소신있게 하면 됩
    니다. 다른 가게보다 내 가게가 작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
    게만 크게 한다고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으로  뜻이 있
    고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것이 잘된다고 하는 사람은 벌써 웅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 회사에 다녀봐야  장래가 뾰족하지 않다."  하는 사람은
    안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안이 튼튼하면 여기 가면 여기서
    좋은 것을 발견하고 취하고, 저기 가면 저기서  좋은 것을 취합니
    다. 남의 것이 더 좋고 저쪽으로 가면 더 잘된다라는 사람은 벌써
    자기 웅지가 허물어져 버리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것을, 자기의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비교
    해서 남의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사람, 자기 집이 가난하다고 괜
    히 숨어다니면서 옷 한 벌만 잘해 입고 부자인척 하는 사람, 자기
    터전을 가꾸지 못할 사람은 아무리 좋은 데 가봐야 그 좋은 것이
    본래 자신이 가졌던 터전만큼 나빠지게 할 뿐입니다.
      "자기 아름다운 재능을  버리고 남의 재능을  부러워한다." 저
    사람은 경영학과를 나와서 잘 살고, 나는 기계학과를 나와서 못사
    는 구나. 절대로 아닙니다. 기계과 나온 사람도  잘살고, 경영학과
    나온 사람도 잘살고 다 잘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웅지가  없는 사
    람은 무조건 못사는 겁니다. "내가  옛날에 어떤 사업을 할  때는
    잘됐는데   ." 지금 그 사업이 잘 안되고 있다면 웅지가 약해졌다
    는 뜻입니다. 웅지는 안에서  크게 소리는 나되---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에너지가  계속해서 날라가 버리
    면 안됩니다. "자기의 훌륭한 음식을 버리고 남의 밥의 콩이 굵다
    고 넘본다." 좋은 걸 찾아다니지 말아라. 나쁜 것을 더 좋게 만들
    어라. 그런 사람이 큰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두번째 음효. 교육의 도리를  전도하여 아랫사람에게
        길러지려니 상도에 어긋나고, 함부로 좋은 곳에서 길
        러지기를 바라면 동료를 잃고 고독하게  되어 흉하리
        라.
     
      "아랫사람에게 길러지려니 상도에 어긋나고" 바로 아래의 효가
    양효입니다. 그래서 아랫쪽을 따르려니 이것은 어떻게  나보다 못
    한 사람을 따르는 것같아서 안되겠고, "함부로  좋은 곳에서 길러
    지기를 바라면 동료를 잃고 고독하게 되어 흉하리라." 맨 위 높는
    데를 따르려니, 즉 함부로  높은 데에서 길러지려니 하고  나가게
    되면 동료를 잃고 고독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배워야 할 사람이  있다면 설사 나이가
    밑이건, 신분이 밑이건, 배울 건 배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에 충분히 배울만한 곳에는 자기 자신을 숙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아랫사람한테 배우려니  하는 건방진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또 높은 데를 바라보고 자기 있는 처지를 버리는 사람. 더 좋은
    데 가기 위해서 현재 자기 터전을 버리는 사람.  서울에 취직하려
    고 자기 농사일하던 터전을 버리고 오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
    니다. 농사일로서 성공하지 못한 농사군이 농사일  싫다고 서울로
    찾아온다고 해서 서울에 있는 약아빠진 인간들이 성공시켜 줄 리
    가 만무합니다. 서울에서 성공할 사람은 농사일로도  성공하는 법
    입니다.
      자기 음식을 버리고 남의 밥에 콩이 굵다고 넘겨다  보거나, 자
    기 재능을 버리고 남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싹
    수가 노란 사람입니다.
      "교육의 도리를 전도하여...." 전도. 아랫사람에게 길러지려니 하
    면 상도에 어긋난다고 해서 안하고, 함부로 높은 곳에서 길러지기
    를 바라고.... 이것이 교육의 도리를 전도시키는 것입니다. 밑에서
    배울 것은 상도에 어긋난다고 배우지 못하고 거부하면서 자기 처
    지를 버리고 높은 곳만을 찾아서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동료를
    잃고, 처자식을 잃고, 친구를 잃어  고독하게 되어 흉하다라는 이
    야기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 안에 웅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번째 음효. 야망에 이끌려 기르는 도를 떠난다. 흉
        하다. 10년간 때를 기다려 움직이지 말라. 만일 움직
        이면 해로울 뿐이다.
     
      "다시 야망에 이끌리어 기르는 도를 떠난다. 흉하다." 첫번째와
    두번째 효를 넘어온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야망에 이끌
    려 기르는 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 큰  것을 위해 자
    기 처지를 버리는 사람은 해롭다는 뜻입니다.  "10년간 때를 기다
    려 움직이지 말라." 왜냐하면 아무리 현재  처지가 사소하다 하더
    라도 웅지를 위해서 10년동안 노력하면 현재가  더 커질 수 있도
    록 가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고생스럽다고, 조금 더 자만심이 생겼다고 "내가  땅에 목
    을 걸어놓고 농사나 빌어먹고 살겠어?" 하고 자기 여건을 버리는
    사람은 이제 그나마 땅에서부터  얻어 먹을 것  마저도 저버려서
    굶어 죽을 인간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세가지, 즉 자신의 재능을 버리고 남의 재능
    을 부러워 하는 것, 아랫사람에게 배우지 못하고 높은데만 찾아다
    니는 것, 야망을 쫓아 현재를 버리는 행위를  하면 웅지를 뜻하는
    "뇌(雷)"의 에너지가 길러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세가지 효
    에 있는 사람들은 의지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결심차원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이 하다보면  옆사람 것이
    더 좋은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바꿀까 하는 것은 아직 결심에 지
    나지 않은 것입니다. 더 좋아보인다던가,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마
    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하는 마음, 이 마음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마음입니다.
      현재의 처지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웅지가 펼쳐지기 위해
    서는 스스로 인내하고,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또 안된다라고
    표현하지 말며,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지 말며, 세상이 비난하더라
    도 그 비난으로부터 묵묵히 할 일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뜻이 깊
    은 사람은 함부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법입니다. 조그마한 말에
    이랬다 저랬다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비난하는 소리
    를 묵묵히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웅지 없는  인내는 인내가
    아닙니다. 웅지는 묵묵히 가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
    리고, 자신의 여건을 굳건히 지킵니다. 여건을 버리는 사람, 더 좋
    은 세상을 찾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웅지는 펼쳐지지 않습니
    다.
      "10년간 때를 기다려 움직이지 말라." 자신의 결심으로 사는 사
    람이 의지로 바뀌는데 최소한도 10년이 걸리는  법입니다. 10년쯤
    걸려야 자기가 뜻했던 것이 바깥에 나와서  뇌성이 되어 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안에서 소리치는 외침은 소용이 없습니다. 조그만
    기쁨이 있다고 해서 펄적펄적 거리는 사람, 언뜻보면 행복한 사람
    같지만 불행한 사람입니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붕붕 뜨는  사
    람, 연말 연시만 되면 제 세상을  만난 사람, 이런 사람들은 보기
    에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사람같지만  철없는 인간들이 하는
    것입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즐거움을  불행할 수 있는  것이 다행으로
    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속안에서  은은히 밀려나오는 미소정도
    로 지나쳐버릴 수 있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이 행복을 가질 수 있
    는 사람입니다. 20대 안쪽의 사람들은 10년이 넘어서면 뜻이 천둥
    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30이 넘은 사람들은 이렇게 되는데
    10년이 걸려서는 안됩니다. 20해 살아봤으면 반으로  줄여야 합니
    다. 서른 다섯이 될 때까지는 그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40이 넘
    은 사람은 하루 속히 이루어지도록 지금부터 의지로 행해야 합니
    다. 조금의 불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50이 넘은 사람, 이 이야기
    가 좋다하고 좋은데로만 살아야 합니다. 60이 넘은 사람, 이제 의
    지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70이 넘으면 그저 하루의  즐거움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네번째 음효. 순서를 거꾸로하여  아랫사람에게 길러
        진다. 그러나 위에서 크게 은혜를 베풀고  있어 길하
        다. 호시탐탐한 태도로 영양을 구하는 욕망을 추구하
        여도 허물이 없다.
     
      "순서를 거꾸로하여 아랫사람에게 길러진다."  10년 동안의 그
    와 같은 과정이 지나가면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것이 자신을 받쳐
    주게 됩니다. 즉 이제껏 인내했던 힘이 밑에서 받쳐준다라는 이야
    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것은 고생속에서 인내해왔던 힘이 고통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밑
    받침이 되어준다는 뜻입니다. 참고 참으면 자제력이 생깁니다. 스
    스로 자제할 수 있는  힘이 능수능란하게 됩니다. 해나가는  힘도
    필요하지만 스스로를 자제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더  넓은 세계
    에서 더 큰 것을 얻는 것도 좋지만  더 작은 세계에서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물에 담긴  물고기도 못잡는 사람이 더  넓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도둑놈이 있었습니다. 3살때 바늘을 훔쳐왔습니다. 바늘
    은 은바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칭찬을 했습니다. 2년후에 곰방대
    를 훔쳐왔습니다. 아버지가 칭찬했습니다. 18살때 남의 금고를 털
    었습니다. 경찰이 잡아갔습니다. 어머니가 3살때 때려만 주었어도
    그 아이가 도둑질을 안했을텐데 .
      우리나라는 억압을 많이  시켜놓았기 때문에  할려면 쑥스러운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쓸데없는 양반정신이 박혀있어서 그
    렇습니다.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참  자연스럽습니다. 나는 자연스
    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묶여 있는 것을 가능하면 극복하도
    록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버리면 안됩니다. 더 중요
    한 것은 바로 억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유가 소중한  건 구
    속 때문입니다.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마음먹은데로 하지말고  우리의 의지로
    행하는 것입니다. 천둥이 마치  온 하늘을 갈라내는 것같은  것은
    그 힘을 한군데로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
    다. 그 힘이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현실을 위해서  참고 견디는
    자기 자제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크게  은혜를 베
    풀고 있어 길하다. 호시탐탐한 태도로 영양을 구하는 욕망을 추구
    하여도 허물이 없다." 그 자제가 있으면 길하다. 때문에 호시탐탐
    한 태도로 영양을 구하는 욕망을 취하여도, 즉  이제는 하고 싶은
    데로 어느정도 해도 상관이 없다. 왜냐 이미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눈이 갖추어져 있기때문에 .
      그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잘하는 짓과  못하는 짓을 구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고(苦)를 스스로 이겨왔기 때
    문입니다. 이렇게 밑에서 인내하였던 것이 있으면  객관적으로 해
    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덕을
    베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똑똑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원
    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취직해서 그나마 그 자리에 붙어있기도 힘
    듭니다. 하늘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하늘은 도와주
    고 있습니다.
      수양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습성을  스스로 자제해서
    자제한 만큼 하늘의 뜻과 일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를 터득하는 길입니다. 내가  잘되려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닙니
    다. 두 손을 벌리고 위에서 담는 것과 내가 집는  것중 어느 것이
    많아지냐? 두손을 벌리고 위에서 담는 것이 더 많이 담아집니다.
     
        다섯번째 음효. 유순한 마음으로 위에 순종하여 변함
        이 없으면 길하리라. 큰 냇물을 건너는 것 같은 위험
        하고 벅찬일을 하여서는 안된다.
     
      "큰 냇물을 건너는 것 같은 위험하고  벅찬일을 하여서는 안된
    다." 이제 어느정도 하면 된다라는 것을 자기가 느끼는 순간 갑자
    기 큰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인 것 같
    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당연한  것을 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일본의 도박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욕심으로 절대 도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큰  도박을
    찾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어설픈 도박사들은 몇 번  긁었다 싶으
    면 대번에 큰 데로 뛰어듭니다.  그런 불상사를 벌리면 안됩니다.
    작은 것을 많이 먹는 사람이 이기는 법입니다. 이 사람은 큰 도박
    같은 데는 나서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도박을 자신이  직접 신
    청하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사람이라서 이 사람
    이 참여해야 빛이 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도박사측에서 이 사
    람의 참여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게런티를 받고서
    갑니다.
      무언가 마음 먹었을 때는 냉철한 눈과  강결한 의지가 담겨 있
    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것이 없으면 가슴 속의 뇌성은 울려 퍼지
    지 않습니다. 하늘은 뇌성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양효. 만민이 그의 힘에 의해 길러진다. 책
        임이 중하고 고난이 있으나 길하다. 나라의  큰 경사
        가 있으리라. 대하를 건너는 것과 같은  크고 위험한
        일을 행하여도 순조롭게 추진될 것이다.
     
      "만민이 그의 힘에  의해 길러진다." 이쯤되면  먹었던 마음이
    위와 하나가 되어서 울려퍼지게 됩니다. 더불어  많은걸 포용하고
    끌어당길 수도 있게 됩니다. "책임이 중하고 고난이  있으나 길하
    다." 그리되면 해야할 일도 생기고 다소의 어려움도 따를  것입니
    다. 그러나 자기 집, 자기 직장 또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으며 대
    하를 건너는 것과 같은 크고 위험한  일을 행하여도 순조롭게 추
    진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단지 어려운 일을  얼마만큼
    해내겠는가가 있을 뿐입니다. 결심으로 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
    고 듣고 유유히 끊임없이 풀어서 결심을 얻어내기만 한다면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대에서  얻을 수 없더라도 나와  똑같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결국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과거에는 날개가
    없는 사람이 하늘을 나른다는 것을  미친 수작이라고 생각하였습
    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를  박차고 나르
    는 우주선이 만들어 졌습니다. 세상은 넓고 훔칠 것은 많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887
  • 17. 택뇌수(澤雷隨)
    『 유순함을 따른다 』
       
     ●    거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    거지한테는 많은 돈을 준다해도 그것을 전부 거지짓 
     ○    하는데 쓰게 됩니다. 깡통을 버리고 식탁을 사면 되
            는데 거지는 깡통에 금도금을 하고 자개를 박을  것
     ●    입니다. 이렇듯 충분한 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
     ●    이 따르는 것은 휩쓸려 가는 것일 뿐입니다.
     ○
                            택뇌수(澤雷隨)

         수(隨)의 괘는 강(剛)이 유(柔)에  따르는 형상이다.
        강이 움직여서 따르고  유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
        도는 크게 뻗어서 발전한다.  변함없이 지조(志操)를
        지켜나가면 만사가 순조로워 허물이 없다. [수]의 도
        를 실천하게 되면 천하의 백성이 기꺼이  따른다. 수
        의 뜻은 참으로 큰 것이다.
       
            隨, 元亨. 利貞.  无咎. 象曰, 隨剛來而下
            柔. 動而說隨.   大亨貞无咎, 而天下隨時.
            隨時之義大矣哉.
           
      우리 인간들에게는 '수양(修養)'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있고,
    흔히 "수양을 쌓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양을 하면 어떤 득
    이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양을 하면  자연으로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수양이 안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일
    지라도 모든 복이 전부다 달아나 버립니다.
      수양을 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생기는 것을 '덕(德)'이라고 말합
    니다. 덕이 있으면 본인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히 주
    변으로부터 많은 것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히
    생기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수양을 쌓는  사람은 이미 그 자체
    가 수양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위로부터 특별한 총애가 있다고 해서 마치 자기가 이
    세상 모든 것 위에 있는 것처럼 교만에 빠져 있는 사람은 수양이
    되지 않은 사람이며,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똑똑한 사람은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역대적으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모두가 수양이
    되어있었던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고, 어떤 나라에서는 심지어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달라
    고 부탁하였을 때, 지극히 겸허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왜 저 사람
    들이 나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
    습니다. 그 말은 아인슈타인의 머리가 나빠서 그 뜻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더 존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을 공부하는 후학들 중에 아는 척 하는 사
    람을 몹시 꾸짖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물리학은  "어떻게 하면 우
    리 인간이 자연에 접근할  수 있는가를 밝혀, 인간이  보고, 듣고,
    느껴서 아는 것을 우기지 않고 자연의  법칙을 자연 그대로 말하
    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수양의  극치일런지도 모릅
    니다.
      흔히 주변에는 조장이나  반장 정도만  시켜주어도 조금있으면
    사장을 몰아내고 자기가 사장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런 사람들은 결국 만인들에게 지탄을 받고  그나마 얻은 자기 자
    리마저도 잃어버릴 뿐더러, 대외적으로 소문이 나면  다른 곳에서
    도 받아주지 않아 아무데도 갈데가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가 우뚝 튀어나와서 잘되려고 하는 사람은  이 자연이 내버려 두
    지 않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위치에서 위계질서를 잃지
    않고, 노력이 덕을 통해 결실이 될 수 있도록 수양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잘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잘났다는 것은  존
    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잘난 사람은 가능한한 어떻게 하면 자연에
    가까울 수 있을까 하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객체가 잘나려
    고 하면, "산봉우리는 깎아서 골짜기를 메운다."고 하는 자연의 싸
    이클 법칙에 의해서 깨어져 나갈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윗 사람
    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위계질서를 망각하는 사람은  결국 그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바탕의 세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수(隨)의 괘는 강(剛)이 유(柔)에 따르는 형상이다. 강이 움직
    여서 따르고 유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수]괘는  강건한 자가 스
    스로 겸허한 마음으로 유순한 지도자를 따르고,  유순한 지도자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여 상하가 화합된  마음으로 행동하는 모습입
    니다. 강건한 자가 자신의 강건함을 내세우지 않고 유순한 지도자
    를 따를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수양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택뇌수]는 자신이 뛰어나다고 교만에 빠져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 겸허하게 질서를 따르는
    수양인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상괘는 양효가 두 개에 음효가
    하나로 음성이고, 하괘는 음효가 두 개에 양효가 하나로 양성입니
    다. 즉,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그  안으로는 강한 양성에너지를 가
    지고 있으면서 그 양성기운이  오히려 음의 세계를  따르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위의 [음]은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그것이 내면에 분명한 뜻으
    로 자리잡게 되면, 주역은 역순하므로 유한 것이 안으로 들어오고
    강한 것이 바깥에 구축되어 속안에 분명한  뜻을 가진 사람은 결
    국 뜻을 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
    지는 강한 힘을 갖고  연약한 것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따른다고
    해서 덮어놓고 주체성을 잃고 물결이 흐르는데로 몸을 맡겨서 따
    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결단이 분명한 가운데  따라야 할 대
    상을 확실히 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따르는 것입니다.
      [수]가 말하는 주체성은 분명한 뜻을 가지고  눈을 뜬 채 흐르
    는 물결에 가담한다는 의미입니다. 눈을 감고 물결에 가담하면 휩
    쓸려서 앞뒤를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분명한
    주관을 확립한 사람은 범의 굴에 잡혀가더라도 정신을 차려서 살
    아날 수 있고, 왕궁에 들어가면 왕궁이 주는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자입니다.
      거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거지한테는
    많은 돈을 준다해도 그것을 전부 거지짓 하는데 쓰게  됩니다. 깡
    통을 버리고 식탁을 사면  되는데, 거지는 깡통에 금도금을  하고
    자개를 박을 것입니다. 이렇듯 충분한 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
    이 따르는 것은 휩쓸려 가는 것일 뿐입니다.
      세상에 아무런 원인도 뜻도  없이 자기 소홀과  능력 부족으로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아까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와
    하지 않고 '나는 물질에 초연해졌으니까....' 하는 사람은 거렁뱅이
    가 되어 죽어도 부끄러움이 없을 사람입니다.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요 삼아, 산 배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
    지 아니한가." 이 말의 가치가 통하는 경우는 언제라도 능히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가지려는 것을 버렸을  때입니다. 날
    이 밝았을 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날이 저물면 휴식할 수 있
    는 것이지만, 날이 밝았는데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낮이나 밤
    이나 다 밤입니다. 그런 사람의  밤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가진
    사람으로서 가진 것을 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 그
    리고 움직이면 금방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다버리고 하늘 이불 삼
    아, 땅 요 삼아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하는 사
    람입니다. 이 괘상은 능히 그렇게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 잘난척하
    지 아니하고 묵묵히 기다리며 현실을 따르고 있는 것을 표상하고
    있는 괘입니다.
       
        천둥의 계절이 지났고 그 에네르기가  연못속에 잠복
        한다. 이것이 [수]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
        고 날이 저물면 들어앉아 휴식을 취한다
     
            象曰, 澤中有雷隨. 君子以嚮회, 入宴息.
     
      세상이 서로 잘났다고 떠들어댈 때는 참여하는 법이  아닙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나서는 사람들은 전부다  간신들입니다. 간신
    은 정의에 지고맙니다.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  자기가 알
    고 있다는 사실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듣고, 기억하
    는 것에 지배당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지배하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내 말대로 움직이면 되는데 그
    렇게 움직여지지 않는게 또 우리들입니다.
      불화는 스스로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화가 일어나려는  순간
    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아차"하는 사람은 불화가  벌써 없어진
    상태입니다. 자기 잘못이 뭔지 아는 사람은 그 순간에  모든 잘못
    이 없어진다는 것이 프로이드 심리학의 근본 원리입니다.
      자기 자각 증세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불화를  막기 위해서
    화내고 싶은 분노를 가라앉히며 참느라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마
    음은 바깥으로 튀어나와서 불화스러운 파장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단지 불화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무의
    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야 합니다. 단지 진정으로 화가 날 때라는 것이  언제인지 모르
    기 때문에 화를 못내는 것입니다.
     
        첫번째 양효. 지금까지 해온 일에 변동이  있을 것이
        다. 그래도 초지를 굽히지 않고  관철하면 길하리라.
        친척이나 사연(私緣)의 좁은 테두리에서 벗어나 널리
        사람들과 사귄다면 성공할 것이다.
     
            初九, 官有□,  貞吉.  出門交有功. 象曰,
            官有□, 從正吉也.
           
      "지금까지 해온 일에 변동이 있을 것이다." 위에  있는 두 음효
    가 상괘로부터 하늘의 뜻을  모두 받아들여 수용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첫번째 양효가 강한 뜻을  확립하고 있지만, 위로 이효,
    삼효가 다 음효로서 확고부동한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대응관계
    에 있는 네번째 효가 같은 양효로서 양과 양이 서로 밀어내고 있
    으므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일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래도 초지를 굽히지 않고 관철하면 길하리라. 친척이나 사연
    (私緣)의 좁은 테두리에서 벗어나 널리  사람들과 사귄다면 성공
    할 것이다." 그러나 바른 길을 쫓아 변함이 없으면  길할 수 있습
    니다. 바른 길이란 하늘로부터 받아들여 내면에 확립한 자연의 뜻
    입니다. 그리고 이 뜻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서는 자기  개인에
    연연하여 세상을 넓게 바라보지 못하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널
    리 여러사람들과 화합을 이루어 나아갈 수가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 음효. 소인과 친해지면 진심으로 따라야할 군
        자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양다리를 걸칠  수가
        없다.
       
            六二, 係小子, 失丈夫.  象曰, 係小子, 弗
            兼與也.
           
      "소인과 친해지면 진심으로 따라야할  군자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히 [음]이 있지만, 바로 밑
    에 [양]이 있어 첫번째 양효와 친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음
    효는 정응관계에 있는 다섯번째의 양효를 따라야 합니다.
      "양다리를 걸칠 수가 없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지 양쪽을
    모두 택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 석가모니가
    말했듯이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비슷하지 않으면 함께 길을 가지
    마라." 즉 어리석은 자와는 길벗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비
    록 인근에 자신을 유혹하는 소인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지도자에 두고 그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소인을 버리고 군자를 가까이  하고 적
        극적으로 따라가면 받아줄 것이다.  그러나 아첨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六三, 係丈夫, 失小子. 隨有求得. 利居貞.
            象曰, 係丈夫, 志舍下也.
           
      "소인을 버리고 군자를 가까이 하고 적극적으로 따라가면 받아
    줄 것이다." 이곳은 [양]의 자리이기 때문에  밖을 향해 나아가야
    하나 음효가 있어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때 다섯번째 양효를 바라
    보고 주변의 소인을 물리치고 따라야 합니다. 좋지 못한  작고 용
    렬한 일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진정 가치있고  정당한 일에 적극
    적으로 노력하며 지도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또 진정으로 가치있고 정당한 일을  얻으려면 부지런해야 합니
    다. 시간은 소중한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  쓸 수 있는 사람은 일
    을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 나에게
    와서 돈가지고 유세한다고  거기에 자존심이  상한다던가 마음이
    위축된다던가 하지 말고, 남이  불쌍하게 사는 것을 보면  그들이
    불쌍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을  가지고, 어떻게 저들
    을 구할 것인가를 항시 염려하면서 오늘  이 순간을 헛되이 낭비
    하지 말고 해야할 바를 한결같이 하는  사람이 시간을 소중히 여
    길 수 있습니다.
     
        네번째 양효. 천자를  따르는 몸으로 명성과  신망을
        모아 권세를 잡는다. 비록 옳은 일을  행해도 흉함이
        있다. 성의를 다해 도(道)를 지켜 잘못이  없으면 아
        무 탈도 없을 것이다
       
            九四, 隨有獲. 貞凶.  有孚, 在道以明, 何
            咎. 象曰,  隨有獲,  其義凶也. 有孚在道,
            明功也.
           
      "천자를 따르는 몸으로 명성과 신망을 모아 권세를  잡는다. 비
    록 옳은 일을 행해도 흉함이 있다." 원래 [음]의 자리인데 양효가
    있습니다. 다섯번째 효는  이 괘에서 최고의  위치이며, 정당하게
    양효가 자리잡고 있어 이를 군주로 보면, 네번째  효는 군주의 바
    로 밑에 있어서 총애를  받는 신하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총애를
    받는 신하가 [음]의 자리의  도를 지켜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군주를 따라야 되는데, 양효가 있으므로 자신이 잘나서 총애를 받
    는 줄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자를 보필하는 신분으로
    서 지위가 높고 강대함을 획득하였다고 그 권력이 곧 자신이라고
    교만하면 결국 인심을 잃고 흉하게 됨을 뜻하고 있습니다.
      지위가 높고 권세가 강대함을 획득하였다  하더라도 교만이 생
    기고 권력을 남용하는 일이 있으면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하더라도
    자연은 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성되고
    겸손하여 자신이 지켜야 할 위계질서를 따르고,  총애를 받았으면
    서도 오히려 그 복을 에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 사람
    은 정당한 도리를 지키는 것이며, 자신의 행동과 위계질서가 모두
    조화롭게 존재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라의 정치
    를 밝게 처리하여 나간다면 허물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섯번째 양효. 고귀한 몸으로 성의를 다해 선(善)을
        따른다. 상하가 화합하니 길하리라
       
            九五, 孚于嘉, 吉, 位正中也.
           
      [양]의 위치에 정당하게 [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덕
    망과 실력을 겸비한 훌륭한 인재가 그에 합당한 지위에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고 있습니다.  또한 위의 여섯번째  음효와 화합하고,
    두번째 음효와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어 상하 화합하고 있습니다.
      [택뇌수] 전체가 상괘는 첫번째 두번째가 양효, 하괘는  첫번째
    가 양효로 이루어져 굳건한 양성에너지의  바탕 위에서 음성기운
    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다섯번째  양효는
    정당한 위치에서 정응관계를 갖추고 자신의 양성기운을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덕망과 실력을 겸비한 훌륭한 인물이 그에게 당연한
    지위인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성의를 다하여 선정을 베풀고 상
    하화합을 이루어내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흩어지려는 인심을 굳게 붙들어야 한
        다. 문왕(文王)은 서산(西山)에서 하늘에 제사드리고
        민심을 수습하였다
       
            上六, 拘係之,   乃從維之. 王用亨于西山.
            象曰, 拘係之, 上窮也.
           
      "문왕(文王)은 서산(西山)에서 하늘에 제사드리고 민심을 수습
    하였다." 내가 잘되어서 얻어진 것은 다시 세상에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갖추어야만 그 기운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입니
    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따라서  내가 잘될수록 자연과 가
    까와져야 합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의 은혜에 감사드림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 살고  있다면 지구를 아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 살고 있다면 이 나라를 아껴야 합니다. 내가 집안에 산
    다면 집안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그 집안을  키워나갈 수
    있고, 그 나라를 풍요롭게 할 수  있고, 이 지구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지구위에서 존재하려고 하면  지구는 그 사람
    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지구는 쉬지않고 항상  돌기 때
    문에 너무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밑으로 내려 떨어뜨리
    게 합니다. 우주는 돌고 돌기 때문에 아무도 그 위에 올라가지 못
    합니다. 단지 돌고 도는 우주와 하나가 되어서 같이  움직일 뿐입
    니다. 그 돌고 도는  힘과 함께 흐름으로써  자기 위치를 지키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514
  • 7. 전쟁 - 지수사(地水師)
    『  전쟁  』
           
     ●    군대의 기율(紀律)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
     ●    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
     ●    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
            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습니다.
                     지수사(地水師)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그러니 전쟁에 승리할 것이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師, 貞. 丈人吉无咎.  象曰, 師衆也. 貞正也. 能以衆正,
            可以王矣. 剛中而應,  行險而順. 以此毒天下, 而民從
            之. 吉又何咎矣.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퍽이나 긴 것같지만 사실은 아주 짧은 것입니다. 어제 기어다니던 애기가 어느날 보면 벌써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곧 대학교 다닐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그렇게 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라야겠다고 결심해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자연적으로 자란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라는 것은 눈깜밖할 사이에 변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흰머리가 나고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은 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성장은 매우 느립니다. 젊었을때 그 사람의 영혼이 늙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혼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영혼이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 때 기분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해 나가야지." 하고 마음 먹은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자포자기할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은 힘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힘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진짜 일하는 것은 마음의 즐거움이 사라진 뒤에 그 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 괴로움, 이러한 것들은 자기 마음에 자기가 취해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기쁨과 괴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존재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경과 곤란을 통해 나아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바로 영혼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우주의 생성 발전하는 창조적 자유의식의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은 자기의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자랄 줄 알아야 됩니다. 영혼이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을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기 싫고 귀찮아도 귀찮은 자기를 숙였을 때 비로서 조금씩 실력이라는 것이 쌓여지는 것입니다. 실력이 어느날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다음날 덜그덕 내려갈 실력입니다.
     
      서울대학교 출신들을 보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머리 좋은 천재는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빨라야지 센스가 빠를 수 있습니다. 잊어 먹지 않고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으면 새로운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그것을 잊어 먹지 않아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교과서와 씨름하며 한결같이 외워 나갈 수 있었던 것. 무언가 뜻한게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자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하기  싫은 나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자기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면 어려운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렵더라도 해결을 위해 하기 싫은 자기  마음을 넘어 꾸준히 해야만 어려운 것이 극복됩니다. 하늘은 그렇게 꾸준히 하는 사람을 돕는 법입니다. 노벨상을 창설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을 위해 돈도 다 날리고 심지어 동생마저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노벨은 "사람이 두 손으로 삽질을 하는데, 천명 만명이 삽질하는 것을 단 한 번에 해낼 수 없을까?" 하는 뜻으로, 그 어려운 역경이 그만두라고 노벨의 마음을 유혹했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실험실에서 우연한 폭발이 있었고, 비록 노벨은 그 폭발로 다쳤지만, 이로써 다이너마이트는 발명되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하늘은 냉정하여 절대로 선뜻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을 열어 줍니다. 노벨이 성공한 것도 결코 실험대 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우연한 폭발로 노벨도 기절해서 나가 떨어졌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요소가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옆으로부터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려운  여건안에서 벌어지는 자기를 숙일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스스로 자신을 숙이고 인내하는 인내력, 이것을 갖추지 않으면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수사는 자기 잘났다고 당당하게  나가기 보다는 항상 위험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하면서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나아갔을 때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인배들은 위험한 일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위험한 일들을 피하면서 좋은 일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본인은 잘살기를 원하지만 항상 결과는 서로 시기하고 싸움질 하면서 피곤하게 살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삼킬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이 땅에 일어 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하늘의 세계도 다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해 나가는 의지를 확립하였을 때 하늘은 도와주며, 이 정도가 되어야지 비로서 나가서 싸울 수 있습니다.
     
      [지수사]는 땅을 나타내는 외괘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고, 물을 나타내는 내괘가 위아래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지가 물을 가득 품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힘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師)'는 고대 군대의 숫자를 나타내는 말로서, 지원부대 없이 단독으로  나가서 싸울만한 군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오늘날 개념으로 하면 사단급 정도의 부대 규모입니다. [지수사]는 이 정도의 세력이 있어야만 나가서 싸울만 하다고 말합니다. 조무래기 몇 명 정도만 가지고  나가서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지수사]는 전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남을  수탈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고, 하늘의 뜻에 위배됨이 없이 만물을 위해서 하는 전쟁을 말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에는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전쟁이 반드시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닐 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창조와 파괴를  위한 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수사]가 나타내는 그 정도는 되어야만 하늘의 도움을  통해 이길 수 있습니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 긍긍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군의 통솔자가 되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우고 명확한 지시로 능히 다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통솔자가 사단급 규모의 군대를 거느렸을 때 비로서 전쟁을 할  수 있으며,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것입니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마음 속에 스스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게 되며 결국 외부에서 일제히 호응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안에 분명한 신념이 있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  열 두명의 제자를 이끌고 다녔을 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얕잡아 봐서 예수와 그의 열 두 제자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몸은 죽어서 없어졌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실과 싸우는 것이 보통 우리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는  외부의 호응에 있는 것이나 그 호응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내부로부터 나 자신과의 전쟁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전쟁에서 지는 사람은 한 때 외부와 싸워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어 없어져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나의 마음을 뚫고 나왔다면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금강의 힘이 될 것입니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명분(뜻)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전쟁은 군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가 전쟁을 하려면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군대가 출동하기 위해서는 수 만의 무기와 수 억의 군수 물자가 조달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곧 전쟁을  치룸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고통을 국민이 흔쾌히  감수하는 국민의 지지도입니다. 전쟁의 명분이 천하의 정의에 부합되면 비록  한 때 국민을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 넣는 일이 있어도 국민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하는 법입니다. 상하가 단결하고 국민과 군대가 힘을 합쳐 협력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이 바르지 못하여 국민이 분열하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대상.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대지처럼
        백성을 포용하고 양육한다.
     
            象曰,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대지를 양육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대지에 숨겨져 있는 안의 물입니다. 이것이 있는가 없는가? 남을 구제하려면 먼저 자기 구제가 되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안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 남의 목을 어떻게 적실 수 있겠습니까?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목이 마른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팔 수 있는 것이지,  땅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파면, 만약 몇 번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으면 먼저 그 사람을 죽여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먼저 분명한 신념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싸워 이긴 자가 만물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지수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군을 움직이는 데는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 문란해지면 일시적인 승리를
        얻었다 해도 결국은 흉한 것이다.
     
          初六, 師出以律. 否臧凶. 象曰, 師出以律, 失律凶也.
     
      "군대를 움직이려면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란 군기(軍紀)과 규율(規律)입니다. 군기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딛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숙이고  의연히 대처해 나가는 군의 기강입니다. 규율은 이러한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와 법도입니다. 따라서 기율은 전쟁에서 적과 부딛쳐 깨어지지 않는 강인한 힘이 되는 근간입니다. 그 기율을 군 내부에 확립하는 것. 그것이 불패(不敗)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율이 없으면 일시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결국 기강이 문란하여져서 곧 패배하게 됩니다. 눈앞의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 그 바탕부터 확고히 다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엄정한 기율이 곧 나중에 가면 부닥쳐서 깨어지지 않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 기율은 스스로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사사로움에 치우치지않고, 마음의 장애를 벗어나 모든 마음을 수용하고 모든 마음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운, 그것이 바로 긍지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 위대한 자연력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
    다.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을 반드시 치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강이라는  순수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그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조그만 승리는 있게 되더라도 그 승리는 곧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만국(萬國)을  굴복시켜 여러차
        례 상을 받는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九二, 在師中.  吉无咎.  王三錫命. 象曰, 在師中,
            吉. 承天寵也. 王三錫命,  懷萬邦也.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두번째 양효입니다. 양효가 내괘의 세계에서 우뚝 서있습니다. 군의 기율을 확립하니 상하의 신임을 얻어 높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외괘의 세계에 대한 깊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천자란 하늘을 뜻합니다.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외괘가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두번째 효가 다섯번째 음효와 정응(正應)관계를 이루어  깊이 화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도움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 괘는 완전한 괘가 아니라 미숙한 괘입니다.  첫번째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고 두번째 음효의 자리에 양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미숙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미숙하지만 이 정도가 되어야만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만물을 자유 자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실력은 흙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어
    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면 하늘은 도와줍니다. 그래서 군대안에서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깊은 신임을 얻게되는가?  먼저 자신이 자기한테 질 수 없는 확고한 기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심정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니꼬움, 분함, 슬픔, 즐거움 등 심정에 장애받고 있지 않다면 하늘은 항상 충만과 영광과 박수갈채를  잊지않고 보내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음효.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흉하다.
     
            六三, 師或與戶. 凶.  象曰, 師或與戶, 大无功也.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나 자신이 쓰러지지 않을 기강을 자신만만하게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그때 사람은 조심을 해야됩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르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을 느끼게 됩니다. 수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물에 빠져 죽기 십상입니다. 수압을 느끼는 사람은 물에서 물을 피할 수도 있고, 물을 갖고 놀 수도 있고, 물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였더라도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살피지 않고 나아가면 아무리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위의 네번째가 음효인 이  상황에 반드시 부딪치게 됩니다. 음과 음이 맞부닥치면 서로 당겨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번째에서는 "뛰어나가지  말아라" "발을 조심하고  천천히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에서 공을 세우고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하더라도 출전(出戰)하여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더라도 적에게 허점이  없으면 적을 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병법에, "패배의 요인은 나에게  있으나, 승리의 요인은 적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적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강함만 믿고 전쟁을 일으키면 전쟁에 이길 확률은 반밖에 되지 못합니다. 적이 나보다 준비가 없고 약하면 이길 것이고 적이 나보다 준비가 많고 강하면 질 것이 뻔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백 퍼센트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으면서 대응하는 여섯번째도 음효입니다. 또 바로 위 네번째 효도 음효로서 음성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양성기운을 받지 못하는 음입니다. 그런데 세번째가 싸우겠다고 나간다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 전쟁에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관망을 해야 합니다. 진격을 할 때는 숨어있는 양성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번째는  안타깝게도 양성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믿고 나아가 싸우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이 병법의 상도(常道)를 지킨다면 허물은 면하리라.
     
            六四, 師在次. 无咎. 象曰, 在次, 无咎, 未失常也.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네번째 음효는 위아래 모두가 음효로 둘러싸여 있고, 대응관계인 첫번째 효도 음효로서 나아가기가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행이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 나아가기 곤란한 것을 알고 물러서기 때문에 허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네번째 음효는 상하 관계 및 대응관계가 전부 음 대 음으로서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음의 자리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흉칙한 짓은 안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럴 때는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진하기 어려울 때  물러서는 것. 그것은  병법의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격을 고집하는 것.  그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어려울 때 물러서면, 비록 그 순간에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최소한 앞으로 이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싸워 패배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적을 알기 위해서는 진격에 앞서 먼저 적을 살펴야 합니다. 충분한 정보를 획득해야 합니다. 만일 적의 보안태세가 굳건하여 알 수 없다고 하면 나아가선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면 불리할 때 즉시 후퇴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승리란 반드시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여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적의 예봉을 피해 후퇴하지만 적으로 하여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게 한다면 그것도 이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얻은 승리는 그만큼 나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  이제야
        말로 대의명분을 분명히 내걸고 왕명을  받들어 불의
        한 무리를 토벌함이 좋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
        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장수에는 뛰어난 인
        물을 임명해야 한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
        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비록 정의의 싸움이라도 결과는 흉하리라.
     
           六五, 田有禽. 利執言, 无咎. 長子師師, 弟子輿戶,
           貞凶. 象曰, 長子師師,  以中行也. 弟子輿戶, 使不當也.
           
      다섯번째 효는 두번째효와 음효 대 양효로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양효의 자리에 음효가 있기 때문에 이기는 방식이 틀립니다. 양성에너지는 악의 세계를 쳐부수어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성에너지는 나아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망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토끼를 잡는데 양성에너지는 돌을 던져 토끼을 맞추어 잡는 것이고, 음성에너지는  덫을 놓어 토끼가 걸려들게 하여 잡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라고 비유해 놓았습니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정의의 전쟁은 평화스러운 나라에 침략을 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침략전쟁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침략을 일삼는 무리들을 토벌하여 평화를 지키는 방어전쟁입니다. 그래서 정의의 전쟁은 먼저 적을 공격하지 않고 적을 유인하여 격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사전 매우 치밀한 계획과 대담성, 철저한 준비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훌륭한 지략과 덕성을 갖춘 대장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번째 효에서 말한 그런 사람
    만이 적격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서 이기려면 훌륭한 적임자를 장군으로 임명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다섯번째가 음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아가려면 양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응관계에 있는 두번째 효의 기운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토끼를 잡으로면 덫을 쳐놓고 기다리되 토끼 몰이하는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로운 큰 일을 하겠다고 뜻을 세웠으면 그 밑에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무릅쓰고 할 수 있는 사람, 어려움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장군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섯번째 음효. 전쟁이 끝난 후 천자는  공신을 제후로 봉하고
        경(卿),  대부(大夫)에 임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장차 반란
        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上六,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象曰,
            大君有命, 以正功也. 小人勿用,  必亂 邦也.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보통 우리 주위에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출세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똑똑해 봐야 세상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이루어지게끔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똑똑한데 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해낸다라고 하는 뜻을 향한 희생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구할 것이며, 성공을 하게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사원은 상사에게 불만하고 대들기 때문에 회사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결국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가서 발 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항상 자신의 똑똑한 것을 스스로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우주를 얻으려면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큰 일을 이루어 낸 다음에는 포상을 하는데  그 포상은 겸허한 사람에게 하게 됩니다. 또 사람을 선발해 쓸 때도 똑똑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겸허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왜냐면 똑똑해 보일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똑똑한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정의가 천하에 두루 퍼질 수 있도록 덕 있는 자를 중용(重用)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쟁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종료된다면 전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전쟁을 시작할 때 세운 대의명분, 그것이 이 세상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을 한 목적이었습니다. 그 뜻은 절대 망각되어져서는 아니 되며 항상 가슴속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전쟁간에 한 때 어려운 역경이 닥치고, 전쟁의  희생자가 많이 났다고 해서, 본래의 명분을 망각한 채 무분별하게 적에  대한 살상을 자행하는 것, 이것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정의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는 결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살륙과  파괴만 있을 뿐입니다. 군대의 기율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지수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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