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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론18
    공장 법의 조항을 반대하는 영국 표백업자들의 항의에서 바로 이 플라톤적 관념을 보게 된다. 그들은 사업을 노동자들의 편의에 맞출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천의 보풀태우기 .세척. 표백. 다림질. 윤내기. 염색 등 각종 작업 중 그 어느 하나도 손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일정한 순간에 중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전체 노동자에게 동일한 식사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때로는 미완성 작업으로 말미암아 귀중한 상품을 손상시킬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 플라톤주의는 다음에 어디에서 발견될 것인가!) [그의 특징적인 부르주아적 본능 때문에 이미 작업장 안의 분업에 더욱 접근하고 있는] 크세노폰(Xenophon)(주석 58: 크세노폰(Xenophon)은 페르시아왕의 식탁으로부터 음식물을 받는 것은 영광일 뿐 아니라, 그 음식은 다른 음식보다 더 맛이 있다고 말한다 " 그리고 이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도시에서는 다른 모든 기술이 특별히 발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왕의 음식도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되기 때문이다. 소도시에서는 동일한 사람이 침대. 문짝. 쟁기. 책상을 만든다. 또 그는 가끔 집도 지어서 판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고객만 있으면 만족한다. 그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많은 구매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수공업으로 충분하다. 심지어 하나의 수공업 전체도 필요 없고 어떤 사람은 남자용 구두만을 만들고 다른 사람은 여자용 구두만을 만든다. 가끔 어떤 사람은 구두를 꿰매는 일만으로 살아가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재단하는 일만으로 살아간다. 또 어떤 사람은 천을 재단하는 일만을 하고 다른 사람은 천조각을 꿰매는 일만을 한다. 가장 단순한 한 가지 일만을 하는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요리술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다"(크세노폰, ?시로페디아?, Vlll, 제2장). 크세노폰은 분업의 정도가 시장의 크기에 의존한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오로지 사용가치의 질적 향상(質的 向上)을 강조하고 있다.)도 채택하고 있다. 플라톤의 ?공화국(共和國)?이 분업을 국가의 형성원리로 간주하고 있는 한, 이집트의 신분제도의 아테네인적 이상화(理想化)에 지나지 않았다. 이집트는 플라톤과 동시대인인 다른 저술가들[예: 이소크라테스(Isocrates)(주석 59: "그"(부시리스)"는 모든 사람을 각각 특수한 신분으로 나누어....동일한 사람은 항상 동일한 직업에 종사할 것을 명령했다. 왜냐하면, 자기의 직업을 변경하는 사람은 어떤 직업에도 숙달하지 못하지만, 항상 동일한 직업에만 종사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기술과 수공업에 관해서는, 이집트 사람들은 거장(巨匠)이 서투른 사람을 능가하는 정도 이상으로 그들의 경쟁자들을 능가했으며, 또한 군주제나 기타 국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 낸 제도는 너무나 훌륭해, 이 문제를 취급한 유명한 철학자들이 이집트의 국가제도를 다른 어느 나라의 것보다 찬양했다"(이소크라테스, ?부시리스?, 제8장).])에게 산업상의 모범국으로 간주되었으며, 로마제국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도 그러했다.(주석 60: 시쿨루스(Diodorus Siculus), ?역사문고?, 제1부.)
    진정한 매뉴팩쳐시대[즉, 매뉴팩쳐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지배적인 형태인 시대]에는 매뉴팩쳐 특유의 경향들의 완전한 발전은 여러가지 장애에 부닥친다. 비록 매뉴팩쳐는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자들을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로 간단히 구분해 그들을 등급구조(等級構造)에 잡아넣지만, 숙련노동자의 압도적인 우세로 말미암아 미숙련노동자의 수는 여전히 매우 제한되어 있다. 비록 매뉴팩쳐는 여러 가지 부분작업들을 살아 있는 노동도구들{노동자들}의 성숙. 힘. 발전의 다양한 정도에 적응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부녀자와 아동에 대한 착취의 길을 개척하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은 관습과 성인 남자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대체로 좌절된다. 비록 수공업의 분할(分割)은 노동자의 육성비를 저하시키며 따라서 그의 가치를 저하시키지만, 비교적 어려운 부분노동은 여전히 긴 수련기간을 필요로 하며, 또 그것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그것을 열렬히 고집한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7년간의 수련기간을 규정한 도제법(徒弟法)이 매뉴팩쳐시대의 말기까지 완전한 효력을 유지했으며, 그것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대공업의 출현 이후였다. 수공업적 숙련은 여전히 매뉴팩쳐의 토대며, 매뉴팩쳐의 메커니즘 전체가 [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독립된] 그 어떤 객관적 골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불복종행위(不服從行爲:insubordination)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어(Ur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성이 가지고 있는 결함 때문에, 노동자는 숙련되면 될수록 한층 더 제멋대로 되고 다루 기 어렵게 되며, 그리고 당연히 기계적 체계의 부품으로 잘 맞지 않게 된다....그는 전체 메커니 즘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주석 61: 유어, ?공장철학“, p. 20.)

    그러므로 매뉴팩쳐시대 전체를 통해 노동자의 규율부족(規律不足)에 대한 불평이 그치지 않는다. (주석 62: 이것은 프랑스보다는 영국에, 그리고 네덜란드보다는 프랑스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비록 이 불평에 관한 당시의 저술가들의 증언이 없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간단한 두 가지 사실은 수많은 책 이상으로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한 가지 사실은, 16세기부터 대공업시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은 매뉴팩쳐 노동자들의 이용가능한 노동시간 전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매뉴팩쳐는 노동자들의 이동(移動)에 따라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그 소재지를 바꿈으로써 수명이 짧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서든 질서(秩序)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리가 자주 인용했던]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연구?의 저자는 1770년에 호소했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뒤 유어는, '질서'는 '분업의 스콜라적 도그마'에 입각한 매뉴팩쳐에서는 결여되고 있었으나, 이제 "아크라이트(Arkwright)가 질서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매뉴팩쳐는 사회의 생산 전체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없었고 사회의 생산을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도 없었다. 매뉴팩처는 도시의 수공업과 농촌의 가내공업이라는 광범한 기반 위에 우뚝 선 인위적인 경제조직이었다. 매뉴팩처가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매뉴팩쳐 자신의 협소한
    기술적 토대는 매뉴팩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상의 여러 가지 필요{예: 대량생산}와 모순되게 되었다.
    매뉴팩쳐의 가장 완전한 성과 중의 하나는 노동도구 그 자체[특히 이미 사용하고 있던 복잡한 기계적 장치]를 생산하는 작업장이었다. 유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계공장은 수많은 단계의 분업을 보여주었다. 절단기. 착공기. 선반은 각각 숙련등급(熟練等 級)에 따라 편성된 노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

    매뉴팩쳐적 분업의 성과인 이 작업장은 이번에는 기계를 생산했다. 기계는 수공업적 노동자가 사회적 생산의 규제원리로 역할하는 것을 철폐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일정한 부분적 기능에 일생 동안 얽매어 두는 기술적 이유가 사라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의 규제원리가] 자본의 지배에 가한 장애물들도 소멸되어 버린다. {노동이 자본에 형식적으로 포섭되었던 것이 이제 실질적으로 포섭된다}.

    [역자약력]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석사
    런던대학교 경제학 석사. 박사
    한신대학교 부교수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저서]
    “마르크스. 슘페터. 케인즈?(중앙신서, 1904)
    “경제변동론? (비봉출판사, 1986)
    “정치경제학원론? (한길사, 1988)
    “자본론 연구I" (한길사, 1988)
    “정치경제학 에세이?(새날, 1991)
    “정치경제학 특강“ (새날, 1993)
    “21세기 정치경제학”(새날, 1998)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서울대출판부, 2001)

    [역서]
    “국부론? (동아출판사. 1992)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동아출판사, 1993)
    “금융자본? (새날, 1994)



    자 본 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I권 자본의 생산과정 (상)

    1989년 3월 10일 초 판 발행
    1991년 11월 5일 개역판 발행
    2001년 11월 15일 제2개역판 발행
    2003년 6월 30일 제2개역판 3쇄발행
    역 자 김수행
    발행자 박기봉
    발행처 비봉출판사 / 마포구 합정동 419-13 합정하이빌 102호
    전 화 3142-6551~5 / Fax 3142-6556
    E-mail beebooks@hitel..net / bbongbooks@hanmail..net
    등록번호 2-301 (1980. 5. 23)
    ISBN 89 - 376- 0017 - x 13320
    89 - 376 - 0015 - 3 (전5권)
    정가 20,000원…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902
  • 자본론8
    구매하고 상품으로 화폐를 구매한다는 단일운동을 가리킨다. (주석 2: "화폐로 상품을 구매하고 상품으로 화폐를 구매한다"(메르시에 드 라 리비에르, ?정치사회의 자연적 . 본질적 질서?, p. 543).) 이 전체 과정이 끝난 다음에 남는 결과는 화폐와 화폐의 교환, 즉 M-M이다. 만약 내가 100원으로 2,000파운드의 면화를 구매하고 이 2,000파운드의 면화를 다시 110원에 판매한다면, 결국 나는 100원을 110원과, 즉 화폐를 화폐와 교환한 셈이다.
    그런데, 만약 위와 같은 우회적인 경로를 거쳐 어떤 화폐가치를 그것과 동일한 화폐가치와 교환하려고 한다면, 예컨대 100원을 100원과 교환하려고 한다면, 유통과정 M-C-M은 아무런 의미도 내용도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가진 100원을 유통의 위험에 내
    놓지 않고 꽉 움켜쥐고 있는 화폐퇴장자의 방법이 훨씬 더 간단하고 안전할 것이다. 다른 한편, 상인이 100원에 구매한 면화를 다시 110원에 판매하건, 또는 그것을 100원에,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50원에라도 투매(投賣)하지 않을 수 없게 되건, 그 어떤 경우에도 그의 화폐는 하나의 독특하고 특이한 운동경로를 밟게 된다. 그 운동경로는 단순한 상품유통의 경로[예컨데, 곡물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받은 화폐로 옷을 구매하는 농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운동경로]와는 전혀 그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순환 M C- M과 C-M-C의 형태상 차이의 특징을 검토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이들 형태상 차이의 배후에 숨어 있는 내용상의 차이도 밝혀질 것이다.
    우선 두 형태에 공통적인 것을 보도록 하자.
    이 두 순환은 모두 동일한 두 개의 대립적 국면, C-M(판매)과 M-C(구매)로 나누어진다. 이 두 국면의 어느 것에서나 상품과 화폐라는 동일한 두 개의 물적 요소가 서로 대립하며, 또한 구매자와 판매자라는 동일한 경제적 등장인물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이 두 순환은 어느 것이나 모두 동일한 대립적인 두 국면의 통일이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이 통일은 세 사람의 계약당사자가 등장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중의 한 사람은 판매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구매만 하며, 세번째 사람은 구매와 판매를 모두 한다.
    그러나 이 두 순환 C-M-C와 M-C-M을 처음부터 구별하는 것은, 두 개의 대립적 유통국면의 순서가 서로 한대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순상품유통은 판매로 시작해서 구매로 끝나며, 자본으로서의 화폐의 유통은 구매로 시작해서 판매로 끝난다. 전자에서는 상품이, 후자에서는 화폐가 운동의 출발점과 종착점을 이룬다. 첫째 형태에서는 화폐가, 둘째 형태에서는 반대로 상품이 전체 과정을 매개한다.
    유통 C-M-C에서는, 화폐는 끝에 가서 상품으로 전환하고, 이 상품은 사용가치로 소비(消費)된다. 따라서 화폐는 영원히 써버린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반대의 유통형태인 M-C-M에서는, 구매자가 화폐를 지출하는 것은 판매자로서 화폐를 취득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상품을 구매할 때 화폐를 유통에 투입하지만, 그것은 [구매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화폐를 다시 유통으로부터 끌어내기 위해서이다. 그가 화폐를 손에서 내어놓는 것은 다시 그것을 손에 넣으려는 저의(底意: cunning intention)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폐는 소비된 것이 아니라 투하(投下)된 것에 불과하다. (주석 3: "어떤 물건을 다시 판매하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 ,거기에 사용된 금액은 투하(投下)된 화폐라고 부른다. 그 물건을 다시 판매하기 위해 구매하지 않는 경우, 그 금액은 소비(消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스튜어트[James Steuart], ?저작집?, 그의 아들 Sir James Steuart 장군편, 런던, 1805년, 제1권, p.274)
    유통형태 C-M-C에서는, 동일한 화폐조각이 그 위치를 두 번 바꾼다. 판매자는 화폐를 구매자로부터 받아 그것을 다른 판매자에게 지불한다. 상품과의 교환으로 화폐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는 총과정은 상품과의 교환으로 화폐를 넘겨주는 것으로 끝난다. 유통형태 M- C-M에서는 그 반대다. 여기에서는, 그 위치를 두 번 바꾸는 것은 동일한 화폐조각이 아니라 동일한 상품이다. 구매자는 상품을 판매자의 손으로부터 받아 그것을 다른 구매자의 손으로 넘겨준다. 단순상품유통에서는 동일한 화폐의 두 번의 위치변환이 그 화폐를 한 사람의 손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손으로 최종적으로 넘어가게 하지만, 여기에서는 동일한 상품의 두 번의 위치변환이 화폐를 그 최초의 출발점으로 환류(還流: flow back)시킨다.
    그 출발점으로 화폐가 환류하는 것은 상품이 [그것의 구매시에 지불한 값보다] 비싸게 판매되는가 안 되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이러한 사정은 오직 환류되는 화폐액의 크기에만 영향을 미칠 따름이다. 환류 현상 그 자체는, 구매한 상품이 다시 판매되기만 한다면, 즉 순환 MC-M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다. 요컨대, 이것이 자본으로서의 화폐의 유통과 단순한 화폐로서의 화폐의 유통 사이의 쉽게 알 수 있는 차이점이다.
    어떤 상품의 판매에 의해 화폐가 들어오고 그 화폐가 다른 상품의 구매에 의해 다시 나가버린다면, 순환 C-M-C는 완전히 끝난다. 만약 화폐가 그 출발점으로 환류한다면, 그것은 오직 전체 과정의 갱신 또는 반복 때문에 일어날 뿐이다. 만약 내가 1쿼터의 밀을 3원에 판매하고 이 3원으로 의복을 구매한다면, 나에게는 이 3원이 결정적으로 지출된 것이다. 나는 이미 이 3원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의복 상인의 것이다. 이제 내가 두번째로 1쿼터의 밀을 판매한다면 화폐는 나에게 환류하겠지만, 그것은 첫번째 거래의 결과가 아니고 그와 같은 거래가 반복된 결과일 따름이다. 내가 새로운 구매에 의해 두 번째의 거래를 완성시키자마자 그 화폐는 다시 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유통 C-M-C에서는 화폐의 지출은 그 환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와는 반대로 M-C-M에서는, 화폐의 환류는 화폐가 지출되는 방식 그 자체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환류가 없다면 그 활동은 실패하거나, 아니면 그 과정이 중단되어 미완성이다. 왜냐하면, 보완적이고 최종의 국면인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순환 C-M-C는 어떤 한 상품의 극에서 출발해 다른 한 상품의 극에서 끝나는데, 이 상품은 유통에서 빠져나와 소비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소비[욕망의 충족], 한 마더로 말해 사용가치(使用價値)가 이 순환의 최종목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순환 M-C-M은 화폐의 극에서 출발하여 최후에는 동일한 화폐의 극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이 순환을 야기시키는 동기 및 그것을 규정하는 목적은 교환가치(交換價値) 그 자체이다.
    단순상품유통에서는 양쪽의 극이 동일한 경제적 형태를 가진다. 양쪽 모두 다 상품이다. 그것들은 또한 동일한 가치량의 상품이지만, 질적으로 서로 다른 사용가치, 예컨대 밀과 의복이다. 여기에서 운동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생산물교환, 즉 사회적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는 상이한 물질 사이의 교환이다. M-C-M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유통은 동어반복적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아무 내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두 극은 동일한 경제적 형태를 가지지만 화폐이기 때문에, 질적
    으로 다른 사용가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화폐는 바로 상품들의 전환된 모습이며, 상품들의 특수한 사용가치가 소멸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처음 100원을 면화와 교환하고, 그 다음 이 면화를 다시 100원과 교환하는 것, 다시 말해 우회적인 경로를 짧아 화폐를 화폐와, 동일한 것을 동일한 것과 교환하는 것은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주석 4: "화폐를 화폐와 교환하는 일은 없다"라고 메르시에 드 라 리비에르는 중상주의자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위의 책, p. 486). '상업'이나 '투기'를 특히 다루고 있다는 한 저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모든 상업은 종류가 서로 다른 물건들의 교환이다. 그리고 이익"(상인을 위한?)"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차이에서 생긴다. 1파운드의 빵을 1파운드의 빵과 교환하면....전혀 아무런 이익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여기에 상업과 [화페를 화폐와 단순히 교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도박과의 뚜렷한 차이가 있다“(토마스 코베트[T. Corbet], ?개인의 부의 원인과 형태에 관한 연구” 런던, 1841년, p. 5). 코베트는 비록 M-M, 즉 화폐를 화폐와 교환하는 것이 상업자본뿐 아니라 모든 자본의 특징적인 유통형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나, 적어도 이 형태가 도박과[상업의 일종인] 투기에 공통적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 매컬록이 나타나 판매를 위한 구매는 투기라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투기와 상업과의 구별 은 없어지게 된다. "개인이 생산물을 다시 판매하기 위해 구매하는 거래는 모두 사실상 투기다 "(매컬록[MacCulloch], ?상업 . 상업항해의 실무 . 이론 . 역사사전?, 런던, 1847년, p. 109). 이보다 훨씬 소박하게,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의 핀다로스{그리스의 서정시인}인 핀토(Pinto)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업은 도박이고'(이 한 구절은 J. 로크로부터 빌어온 것이다) "거지로부터는 아무 것도 딸 수 없다. 만약 어떤 바람이 오랫동안 모든 사람으로부터 몽땅 돈을 다 땄다면, 그가 다시 도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딴 돈의 대부분을 자발적으로 다시 돌려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핀토, ?유통 신용론?, 암스테르담, 1771년, p. 231).) 어떤 화폐액을 다른 화폐액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금액의 차이다. 그러므로 과정 M-C-M은, 그 양극이 모두 화폐이기 때문에, 양극의 질적인 차이에 의해 내용을 갖는 것이 아니고 오직 양극의 양적인 차이에 의해서만 내용을 가진다. 다시 말해, 최초에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화폐가 유통으로부터 끌려나와야 한다. 예를 들면, 100원에 구매한 면화가 100+10원, 즉 110원에 다시 판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의 완전한 형태는 M-C-M'이다. 여기서 M'=M+AM이다. 다시 말해, M'은 최초에 투하한 화폐액에 어떤 증가분(增價分)을 더한 것과 같다. 이 증가분, 즉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나는 잉여가치(剩餘價値 surplus-value)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최초에 투하한 가치는 유통중에서 자신을 보존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량을 증대시키고 잉여가치를 첨가한다. 바꾸어 말해, 자기의 가치를 증식(增殖)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운동이 이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물론 C-M-C에서 양극인 C와 C[예컨대 밀과 의복]가 양적으로 다른 가치량일 수도 있을 것이다. 농민은 자기의 밀을 가치보다 비싸게 판매할 수 있으며 의복을 가치보다 싸게 구매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는 의복상인에게 속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치의 차이는 이 유통형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우연적인 것이다. 이 유통형태는, M-C-M과는 달리, 그 양극(예컨대 밀과 의복)이 등가물로 되어 있더라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양극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것은 여기에서는 오히려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구매를 위한 판매(販賣)의 반복 또는 갱신은 [이 과정 자체가 그러한 것처럼], 이 과정 밖에 있는 최종적 목적으로서의 소비[즉, 특정한 욕망의 충족]에서 그 한도와 목표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판매를 위한 구매(購買)에서는 시작과 끝이 동일한 것[즉, 화폐 또는 교환가치]이므로, 이 운동은 무한한 것으로 된다. 확실히, M은 M+AM으로 되며 100원은 100+10원으로 된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110원은 100원과 동일한 것, 즉 화페다. 또 양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110원은 100원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한정된 가치액이다. 만약 이 110원이 화폐로 지출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자기의 역할을 포기해 버린 것으로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자본이 아니다. 또 만약 그것이 유통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그것은 퇴장화폐로 화석화되며 세상 최후의 날까지 그대로 보존되더라도 단 한 푼도 더 늘어나지 않는다. 가치의 증식(valorization)이 문제로 되는 한, 증식의 욕구는 110원의 경우에도 100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재한다. 왜냐하면, 양쪽은 모두 교환가치의 한정된 표현이고, 따라서 양쪽 모두 양적 증대에 의해 절대적 부(富)로 접근해 가야 할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에 투하한 가치 100원은[유통 중에 거기에 첨가된] 10원의 잉여가치와 잠시 구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구별은 곧 사라져 버린다. 과정이 끝날 때, 한 쪽에는 100원의 원래의 가치가 나오고, 다를 쪽에는 10원의 잉여가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나오는 것은 110원이라는 하나의 가치며, 그것은 최초의 100원과 꼭 마찬가지로, 가치증식과정을 다시 개시하기에 적합한 형태에 있다. 운동의 종착점에서 화폐는 또다시 운동의 출발점으로 나타난다. (주석 5: "자본(資本)은....원래의 자본과 [자본의 증가분인] 이윤(利潤)으로 나누어진다....비록 실제로는 이 이윤은 곧바로 자본에 합쳐져 자본과 함께 운동하기 시작하지만"(F . 엥겔스,?국민경제학 비판 개요?, ?독불연보?, 루게[Arnold Ruge]와 마르크스 공편, 파리 1844년, p. 99).) 그러므로 (구매와 그 뒤의 판매가 완성되는) 각 순환의 최종결과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을 이룬다. 단순상품유통[구매를 위한 판매]은 유통의 외부에 있는 최종목적[사용가치의 취득, 욕망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으로서의 화폐의 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냐하면, 가치의 증식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의 내부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다. (주석 6: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식술(貨殖術)과 가정학(家政學: economics)을 대비하고 있다. 그는 가정학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이 생계술(生計術)인 한, 그것은 [생활에 필요하고 가정이나 국가에 유용한] 재화의 조달에 한정된다. "진정한 부는 이와 같은 사용가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쾌적한 생활에 필요한 재산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재화를 조달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보통 화식술이라고 부르는 제2의 종류가 있는데, 이 경우 부나 재산에는 한계가 없는 것같이 보인다. 상품거래"(소매상업을 가리키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형태를 채용한 이유는 여기에서는 사용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는 원래 화식술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품거래에서 교환은 그들 자신(구매자와 판매자)에게 필요한 물건에 관해서만 행 해지기 때문이다. "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품거래의 최초의 형태는 물물교환(物物交換)이었지만, 이것이 확대됨에 따라 화폐에 대한 필요성이 발생했다. 화폐의 발명과 더불어 물물교환은 필연적으로 상품거래(商品去來)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리고 상품거래는 [그 본래의 경향과는 모순되는] 화식술(貨殖術)로, 즉 화폐를 증가시 키는 기술로 성장해 갔다. 이제 화식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가정학과 구별된다. "화식술에 서는 유통이 부의 원천이다. 그리고 화식술은 화폐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 다. 왜냐하면 화폐가 이러한 종류의 교환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식술이 추구하는 부에는 한계가 없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을 추구할 뿐인 기술은 목적 자체가 수단에 한계를 설정하므로 무한히 전개될 수 없지만, [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 적 그 자체를 추구하는 기술은 모두 그 목적에 끊임없이 접근하려고 시도하므로, 그 추구에 는 한계가 없다. 기와 마찬가지로 화식술에도 그 목표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것이 목표로 하 는 것은 절대적 치부(致富)이다. 가정학은 화식술과는 달리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다....가정 학은 화폐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화식술은 화폐의 증식을 목적으로 한 다....[서로 겹쳐지는 면을 가진] 이 두 형태를 혼동함으로써 어떤 사람들은 무한히 화폐를 보 유하고 증식시키는 것이 가정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아리스토텔레스, ?정 치학“, 베커[Bekker] 편, 제1권, 제8, 9장의 이곳저곳).)
    이 운동의 의식적 담지자(conscious bearer)로 화폐소유자는 자본가(資本家)로 된다 그의 일신(一身)[또는 더 정확히 말해 그의 주머니]은 화폐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이러한 유통의 객관적 내용[가치의 증식]이 그의 주관적 목적이 되고 추상적 부(富)를 점점 더 많이 취득하는 것이 그의 행동의 유일한 추진적 동기로 되는 한, 그는 자본가로 [즉, 의지와 의식이 부여된 인격화된 자본으로]기능한다. 그러므로 사용가치는 결코 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주석 7: "상품"(여기에서는 사용가치라는 의미다)"은 거래를 행하는 자본가의 최종목적이 아니다. 화폐 가 그의 최종목적이다"(토마스 차머즈[T. Chalmers), ?정치경제학에 대해", 제2판, 글래스고우, 1832년, pp. 165-166).), 또한 어떤 하나의 거래에서의 이윤도 그렇게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는 이윤추구운동만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다.(주석 8: "상인은 이미 획득한 이윤을 경시하지는 않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장래의 이윤으로 향하고 있다"(제노베시[A. Genovesi], ?시민경제학강의?, 1765년, 쿠스토디 편, ?이탈리아 경제학자?, 근세편, 제8권, p. 139).) 이 무한한 치부(致富)의 충동, 이 정열적인 가치추구(주석 9: "이윤을 추구하는 억누를 수 없는 정열, 금에 대한 거룩한 갈망이 항상 자본가들의 행동을 규정한다"(매컬록, ?정치경제학원리?, 런던, 1830년, p. 179). 물론 이와 같은 견해는 매컬록 자신이나 그의 일파가 이론적 난관에 빠졌을 때, 예컨대 과잉생산[의 불가능성]을 논할 때, 동일한 자본가를 하나의 선량한 시민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이 자본가들은 오직 사용가치만을 문제로 삼으며, 장화 .모자. 달걀 . 면화 그리고 기타의 평범한 종류의 사용가치에 대해서까지도 완전히 이리와 같은 탐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 가치가 과잉생산될 수가 없다.})는 자본가와 수전노(守錢奴: miser)에게 공통된 것이지만, 수전노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 반면, 자본가는 합리적인 수전노이다. 수전노는 화폐를 유통에서 끌어냄으로써(주석 10: "끌어낸다"는 말은 화폐퇴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특유의 표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어의 "to save"도 '끌어낸다'는 의미와 '저축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치의 쉴새없는 증식을 추구하지만, 더 영리한 자본가는 화폐를 끊임없이 유통에 투입함으로써 그것을 달성한다.(주석 11: "물건들은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가지지 못하는] 무한성을 순환할 때에는 가진다"(갈리아니[F. Galiani], ?화폐에 대해?, p. 156).)
    단순상품유통에서 상품들의 가치가 취하는 독립적인 형태[즉, 화폐형태]는 상품교환을 매개할 뿐이고 운동의 최후의 결말에 가서는 사라져 버린다. 이와는 반대로, 유통 M-C-M에서는 상품과 화폐는 모두 가치 그 자체의 상이한 존재양식으로, 즉 화폐는 가치의 일반적 존재양식으로 그리고 상품은 가치의 특수한 [이를테면 가장(假裝:disguised)된] 존재양식으로 기능할 뿐이다.(주석 12: "자본을 구성하는 것은 소재(素材)가 아니라 그 소재의 가치이다"(세이[J. B. Say], ?정치경제 학개론?, 제3판, 파리, 1817년, 제2권, p. 429).) 가치는 이 운동에서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이행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자동적인 주체로 전환한다. 만약 자기증식하는 가치(self-valorizing value)가 자기의 생애에서 연달아 취하는 독특한 현상형태들을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자본은 화폐이고 자본은 상품이다.(주석 13: "물건의 생산에 사용되는 통화(!)는.....자본이다"(매클라우드[Macleod], ?은행업의 이론과 실제?, 런던, 1855년, 제1권, 제1장, p. 55). "자본은 상품이다"(제임스 밀[James Mill], ?정치경제학원리?, 런던, 1821년, p. 74)) 그러나 사실상 가치는 이 경우 한 과정의 주체이며, 이 과정에서 가치는 끊임없이 번갈아 화폐와 상품의 형태를 취하면서 그 크기 자체를 변화시키며, 원래의 가치로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잉여가치를 내뽑으면서 자기 자신을 증식시킨다. 왜냐하면, 가치가 잉여가치를 낳는 운동은 가치 자신의 운동이고, 따라서 가치의 증식은 자기증식이기 때문이다. 가치는 그 자체가 가치이기 때문에 가치를 낳는다는 신비스러운 성질을 얻었다. 가치는 살아 있는 자식을 낳거나 적어도 황금의 알을 남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치는 화폐형태와 상품형태를 취하고 벗어버리기를 번갈아 하며, 동시에 이러한 변환을 통해 자기를 유지하고 증대시키는데, 이러한 과정을 지배하는 주체로서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정체를 맞힐 수 있는 하나의 독립적인 형태를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형태를 가치는 오직 화폐의 모습으로 가진다. 그러므로 화폐는 가치증식 과정의 출발점과 종착점을 이룬다. 그것은 전에는 100원이었으나 지금은 110원이다. 등등. 그러나 화폐 그 자체는 가치의 두 형태 중 하나일 따름이다. 상품형태를 취하지 않고서는 화폐는 자본으로 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화폐퇴장의 경우와 같은 화폐와 상품 사이의 적대는 없다. 모든 상품은 [그것이 아무리 초라하게 보이며 아무리 흉악한 냄새를 풍기더라도] 진실로 화폐이며, 날 때부터 할례를 받은 유태
    인이며, 더욱이 화폐를 더 많은 화폐로 만드는 기적의 수단이라는 것을 자본가는 알고 있다.
    단순상품유통 C-M-C에서 상품의 가치는 기껏해야 그 사용가치와는 무관한 화폐형태를 취할 뿐이지만, M-C-M{자본의 유통}에서는 가치가 스스로 발전하며 스스로 운동하는 하나의 실체로 갑자기 나타난다. 상품과 화폐는 모두 그 실체에 대해 단순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치는 미제 상품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자기 자신과 사적인 관계를 맺는다. 가치는 최초의 가치로서의 자기 자신을 잉여가치로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별한다.[이것은 성부(聖父)가 자기 자신을 성자(聖子)로서의 자기 자신과 구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록 부자(父子)는 둘 다 나이가 같고 또 실제로는 둘이 한 몸이지만]. 왜냐하면 10원이라는 잉여가치에 의해 비로소 최초에 투하한 100원은 자본으로 되며. 또 그것이 자본으로 되자마자[즉, 아들이 생기고 아들에 의해 아버지가 생기자마자] 둘의 구별은 다시 소멸해버리고 둘은 하나, 즉 110원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가치는 이제 과정 중의 가치(value in process), 과정 중의 화폐로 되며, 이러한 것으로서 가치는 자본이 된다. 가치는 유통에서 나와 다시 유통에 들어가며, 유통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며, 더 커져서 유통으로부터 나오고, 그리고 이 동일한 순환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1(주석 14: "자본은....자기를 증대시키는 영구적인 가치"(시스몽디[Sismondi], ?신경제학원리", 파리, 1819년, 제1권, p. 89).) M-M', 즉 '화폐를 낳는 화폐', 이것이 자본의 최초의 해설자인 중상주의자들의 입을 통해 나온 자본의 묘사이다.
    판매하기 위한 구매, 또는 [더 정확히 말해] 더 비싼 값으로 판매하기 위한 구매, 즉 M-C-M'은 자본의 한 종류인 상인자본에만 해당하는 형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업자본(産業資本)도 역시 [상품으로 전환되었다가 상품의 판매에 의해 더 많은 화폐로 재전환되는] 그러한 화폐이다. {M-C(MP, LP) ....P...C'-M'}. 구매와 판매 사이의 중간에 [즉, 유통분야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 운동형태를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자 낳는 자본(interest-bearing
    capital)의 경우 유통 M-C-M'은 단축되어 나타난다. 중간단계 없이 그 최종결과를 M-M'[즉, 화폐가 더 많은 화폐로 되며, 가치가 자기 자신보다 더 큰 가치로 된다]로 간결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실상 M- C- M'은 [유통분야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형태의] 자본의 일반공식이다.



    제 5 장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



    앞의 유통형태[그 안에서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한다]는 상품 . 가치 . 화폐 . 유통 그 자체의 성질에 관해 앞에서 전개한 모든 법칙들과 모순된다. 이 유통형태가 단순상품유통과 구별되는 점은 두 대립 과정인 판매와 구매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과정들의 순전히 형태적인 차이가 이 과정의 성질을 마치 요술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전도(轉到)된 순서는 서로 매매관계를 맺고 있는 3인의 매매당사자 중 오직 한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만약 내가 자본가라면 나는 상품을 A에게서 구매하고 다음에 그것을 B에게 판매하지만, 만약 내가 단순한 상품소유자라면 나는 상품을 B에게 판매하고 다음에 다른 상품을 A로부터 구매한다. 위의 두 경우 매매당사자 A와 B에게는 아무런 차이도 없으며, 그들은 구매자 또는 판매자로 등장할 뿐이다. 나 자신도 그들에게는 각각 단순한 화폐소유자 또는 상품소유자로, 즉 구매자 또는 판매자로 대면한다. 더욱이 나는 A에게는 구매자로 B에게는 판매자로, 즉 전자에게는 화폐로 후자에게는 상품으로 대면할 뿐이고, 결코 양쪽 중의 어느 쪽에게도 자본 또는 자본가로 대면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화폐나 상품 이상의 그 어떤 물건의 대표자로, 또는 화폐나 상품의 영향력 이외의 어떤 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의 대표자로 대면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A로부터의 구매와 B에게의 판매가 하나의 순차적 계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행위 사이의 관련은 나에게만 존재할 뿐이다. A는 나와 B와의 거래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며, 또 B는 나와 A와의 거래에 아무 관심도 없다. 만약 내가 그들에게 매매의 순서를 거꾸로 한 내 행위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나에게 내가 순서 자체를 틀리게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래 전체는 구매에서 시작해 판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판매에서 시작해 구매로 끝난 것임을 나에게 지적해 줄 것이다. 사실, 나의 제1행위인 구매는 A의 입장에서는 판매였고, 나의 제2의 행위인 판매는 B의 입장에서는 구매였다. A와 B는 더 나아가, 이 계열 전체는 불필요한 것이고 하나의 속임수였으며, 앞으로는 A는 그 상품을 직접 B에게 판매할 것이며, B는 그것을 직접 A로부터 구매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래 전체는 보통의 상품유통의 하나의 [일면적인] 국면으로 축소되어 A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판매로, B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구매로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서를 거꾸로 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단순상품유통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단순상품유통이 [거기에 들어가는] 가치의 증식[따라서 잉여가치의 형성]을 그 성질상 허용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연구해 보아야만 한다.
    유통과정을 단순한 직접적인 상품교환의 형태에서 고찰하자. 두 상품소유자가 서로 상대방의 상품을 구매하고 그들 상호간의 화폐 청구권(請求權)의 차액을 그날에 결제하는 경우가 바로 이 형태이다. 이 경우 화폐는 계산화폐(計算貨幣)로 상품의 가치를 그 가격으로 표현하며, 화폐상품의 형태로 상품에 대립하지는 않는다. 사용가치에 관한 한, 분명히 교환 당사자는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양쪽은 모두 그들 자신에게 사용가치로서는 쓸모없는 상품을 양도하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이익은 아닐 것이다. 포도주를 판매하고 곡물을 구매하는 A는, 아마 [곡물경작자 B가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포도주를 생산할 것이며, 또 곡물경작자 B는 [포도재배자 A가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각자가 포도주와 곡물을 모두 스스로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비하면, 동일한 교환가치로 A는 더 많은 곡물을, B는 더 많은 포도주를 얻게 된다. 따라서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본다면 "교환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거래다"(주석 1: "교환은 쌍방 모두가 언제나(!) 이득을 보는 훌륭한 거래다"(데스튜트 드 트라시[Destute de Tracy], ?의지 및 의지작용론?, 파리, 1826년, p. 68).) 이 책은 그 뒤 ?정치경제학개론?이라 는 표제로도 출판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교환가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포도주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곡물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사람이, 곡물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포도주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과 거래를 해서, 그들 사이에 50의 가치를 가지는 밀이 50의 가치를 가지는 포도주와 교환된다고 하자. 이 교환은 전자에게나 후자에게나 교환가치를 증대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교환 이진에도 그들 각자는 [이 거래를 통해 얻은 것과] 동일한 가치를 벌써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석 2: 메르시에 드 라 라비에르, ?정치사회의 자연적 및 본질적 질서?, p. 544.)

    화폐가 유통수단으로 상품과 상품 사이에 개입함으로써 구매행위와 판매행위가 구별된다고 하더라도 사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주석 3: "이 두 가치 중 하나가 화폐이든, 그 둘이 모두 보통의 상품이든, 그 자체로서는 전혀 아무런 차이도 없다"(같은 책, p. 543).) 상품의 가치는 상품이 유통에 들어가기 전에 그 가격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따라서 상품의 가치는 유통의 전제이지 그 결과가 아니다. (주석 4: "계약당사자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계약체결 전에 벌써 확정되어 있다"(르 트로느[Le Trosne), ?사회적 이익에 대해?, p. 906).)
    추상적으로 고찰한다면 [즉, 단순상품유통의 내재적 법칙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 사정들을 도외시한다면], 교환에서 일어나는 것은 (한 사용가치의 다른 사용가치에 의한 대체를 무시하면) 상품의 변태, 즉 상품의 단순한 형태변화뿐이다. 동일한 가치[즉, 동일한 양의 대상화된 사회적 노동]가 동일한 상품소유자의 수중에서 처음에는 상품의 모습으로 다음에는 [이 상품이 전환된] 화폐의 모습으로, 마지막에는 [이 화폐가 재전환된] 상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변화는 가치량의 어떤 변화도 포함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 과정에서 상품의 가치가 경험하는 변화는 가치의 화폐형태상의 변화에 국한된다. 즉, 처음에는 이 화폐형태는 판매에 제공된 상품의 가격으로 다음에는 이미 가격으로 표현되어 있던 화폐액으로, 최후에는 어떤 등가상품의 가격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변화가 그 자체로서는 가치량의 변화를 조금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5파운드짜리 은행권을 소브린화{l파운드 짜리 금주화}나 반(半) 소브린화나 실링화로 바꾸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상품의 유통이 상품가치의 형태변환만을 일으키는 한, 그것은 [만약 현상이 순수한 형태로 진행된다면] 등가물(等價物: equivalent)끼리의 교환임에 틀림없다. [가치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속류경제학까지도 자기 식으로나마 현상을 순수한 형태에서 고찰
    하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는 것[다시 말해서, 수요와 공급의 영향은 없다는 길]을 가정한다. 그러므로 가령 사용가치에 관해서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교환가치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는 "평등(平等)이 있는 곳에는 이익(利益)이 없다"(주석 5: 갈리아니(F. Galiani), ?화폐에 대해?, 쿠스토디 편, 근세편, 제4권, p. 244) 고 말해야 할 것이다. 상품은 그 가치로부터 벗어난 가격으로 팔릴 수도 있지만, 이러한 차이는 상품교환법칙의 위반으로 나타난다.(주석 6: "어떤 외부 사정이 가격을 인상 또는 인하시킨다면, 교환은 두 당사자의 일방을 불리하게 한다. 그 경우에는 평등이 침해받지만, 그 침해는 외부 원인에 기인한 것이지 교환 자체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르 트로느, 앞의 책, p. 904).) 상품교환은 그 순수한 형태에서는 등가물끼리의 교환이고, 따라서 가치증식의 수단으로 될 수 없다.(주석 7: "교환은 그 성질상 평등에 의거한 계약이며, 두 개의 동일한 가치 사이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그것은 치부의 수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받는 것만큼 주기 때문이다"(같은 책, p. 903).)
    그러므로 상품유통을 잉여가치의 원천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의 배후에는 대체로 하나의 오해[즉,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혼동]가 숨어있다. 예컨대 콩디약(Condillac)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품교환에서 동등한 가치가 동등한 가치와 교환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반대다. 두 계약 당사자는 어느 쪽이나 항상 더 큰 가치에 대해 더 작은 가치를 내어준다. 만약 사람들이 실제로 동등한 가치만을 서로 교환한다면 계약 당사자의 어느 쪽도 아무런 이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 러나 쌍방은 모두 이익을 보고 있으며, 어떻게든 이익을 보아야 할 것이다. 왜 그런가? 물건의 가치는 오직 우리들의 욕망과 그 물건 사이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덜 필요하며,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우리가 자기 자신의 소비 에 불가결한 물건을 판매에 내놓는 일은 결코 없다....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내놓으려 한다. 더 필요한 것과의 교환으로 덜 필요한 것을 주려고 한 다....교환되는 두 물건이 통일한 양의 금으로 표현될 때, 교환에서는 등등한 가치가 동등한 가치 와 교환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했다....그러나 또한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들 모두가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여분의 물건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주석 8: 콩디약(Condillac), ?상업과 정부?(1776년), 데르[Daire]와 몰리나리[Molinari] 편, “경제학총 서”, 파리, 1847년, pp . 267, 291)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콩디약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혼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참으로 유치하게도] 상품생산이 발달한 사회에서 생산자가 자기의 생활수단을 자신이 생산하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남는 초과분(잉여분)만을 유통에 투입한다고 가정하고 있다.(주석 9: 그러므로 르 트로느는 자기의 벗 콩디약에게 “발달한 사회에서는 여분의 것이라고는 없다"라고 아주 옳바르게 답변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만약 쌍방의 교환당사자가 모두 똑같이 덜주고 똑같이 많이 받는다면 그들 쌍방은 모두 똑같이 받는 것으로 된다. "고 콩디약을 야유하고 있다. 콩디약이 교환가치의 성질에 관해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로셔{William Roscher)는 콩디약을 자기 자신의 유치한 개념을 논증하늘 네 가장 적당한 증인으로 삼았던 것이다. 로셔의 ?국민경제학원리?, 제3판, l858년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디약의 논의는 가끔 근대의 경제학자들에 의해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상품교환이 발전한 모습인] 상업(商業)을 잉여가치의 원천이라고 설명하는 경우 특히 그러하다. 예컨대 다음을 보라.

    "상업은....생산물에 가치를 첨가한다. 왜냐하면, 동일한 생산물도 생산자의 수증에서보다는 소 비자의 수중에서 더 많은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은 엄밀히 말해 생산행위로 간주 되어야 한다. "(주석 10: 뉴먼(S. P. Newman), ?정치경제학요강?, 앤도버 및 뉴욕, 1835년, p. 175.)

    그러나 사람들은 상품에 대해 이중으로 [즉, 한 번은 그 사용가치에 대해, 또 한 번은 그 가치에 대해]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또 만약 상품의 사용가치가 판매자에게보다도 구매자에게 더 유용하다고 한다면, 상품의 화폐형태는 구매자에게보다도 판매자에게 더 유용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판매자가 상품을 판매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구매자는 예컨대 판매자의 양말을 화폐로 전환시켜 즘으로써 '엄밀히 말해 생산행위'를 수행하는 것
    이다라고.
    만약 동일한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들, 또는 상품과 화폐, 따라서 등가물(等價物)들이 서로 교환된다면, 분명히 누구도 자기가 유통에 투입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유통으로부터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잉여가치의 형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품의 유통과정은 그 순수한 형태에서는 등가(물)끼리의 교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태가 순수한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서로 등가가 아닌 것끼리의 교환을 가정해 보자.
    어떤 경우에도 상품시장에서는 상품소유자와 상품소유자가 대면할 뿐이며, 그들이 서로서로에게 미치는 힘은 그들의 상품의 힘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상품의 소재적 차이는 교환의 실질적 동기(動機)로 되며, 상품소유자들로 하여금 상호의존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 중 누구도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그들 각자는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물건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상품들의 사용가치의 이러한 소재적 차이 외에는 여러 상품들 사이에 단 하나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즉, 상품들의 현물형태와 그 전환된 형태 사이의 구별, 다시 발해 상품과 화폐 사이의 구별뿐이다. 그리하여 상품소유자들은 오직 상품의 소유자인 판매자와 화폐의 소유자인 구매자로 서로 구별될 뿐이다.
    이제 판매자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특권에 의해 상품을 그 가치 이상으로, 예컨대 100의 가치가 있는 것을 110으로, 즉 그 가격을 명목상 10% 높여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판매자는 10의 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는 판매자로 된 다음 구매자로 된다. 이번에는 어떤 제3의 상품소유자가 판매자로 그의 앞에 나타나는데, 이 판매자도 역시 자기의 상품을 10%비싸게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그 사람은 판매자로서는 10의 이익을 얻었으나 구매자로서는 10을 잃어버리게 된다.(주석 11: "생산물의 명목가치의 인상에 의해서는....판매자는 부(富)를 증가시키지 못한다....왜냐하면 그가 판매자로서 얻는 것을 구매자로서 지출하기 때문이다"(그레이[F. Gray] ?국부의 주요원리?, 런던, 1797년, p. 60).) 모든 상품소유자는 자기의 상품을 그 가치보다 10% 비싸게 판매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들이 상품을 가치대로 판매한 것과 완전히 똑같다. 상품가격의 이와 같은 일반적인 명목적 인상(名目的 引上)은 상품가치가 예컨대 금 대신 은으로 평가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상품들의 화폐명칭, 즉 가격(價格)은 인상되겠지만 상품들의 가치관계(價値關係)는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구매자가 상품을 그 가치 이하로 구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구매자가 다시 판매자로 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조차 없다. 그는 구매자로 되기 전에 이미 판매자였던 것이다. 그는 구매자로서 10%의 이익을 얻기 전에 벌써 판매자로서 10%를 잃어버렀던 것이다.(주석 12: "만약 어떤 판매자가 24원의 가치를 가진 일정한 양의 생산물을 10원에 판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판매에 의해 얻은 기 화폐를 구매에 사용하는 경우 이번에는 24원을 지불해야 할 물건을 18원에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르 트로느, 앞의 책, p.897).) 상황은 역시 이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잉여가치의 형성, 따라서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은 판매자가 상품을 그 가치 이상으로 판매한다는 것으로써도, 또 구매자가 상품을 그 가치 이하로 구매한다는 것으로써도 설명할 수 없다.(주석 13: 어떤 판매자가 자기의 상품을 언제나 비싼 값으로 판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도 언제나 다른 판매자의 상품에 비관 값을 지불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어떤 소비자도 언제나 싼값으로 구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가 판매하는 상품도 마찰가지로 값 을 낮추는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메르시에 드 라 리비에르, 앞의 책, p. 555).)
    토렌즈(Torrens)처럼 우리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관계들을 끌어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도 문제는 조금도 더 간단하게 되지 않는다.

    "유효수요(有效需要)란, 직접적 교환에 의해서건 간접적 교환에 의해서건, 상품의 대가로 그 상품의 생산비보다 더 많은 자본을 지불하는 소비자의 능력과 성향( ! )이다“.(주석 14: 토렌 즈(R. Torrens), “부(富)의 생산에 관한 논문” 런던, 1821년, p. 349.)

    유통의 내부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 대립할 뿐이다. 생산자가 획득하는 잉여가치는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가치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품소유자가 판매자로서 가치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명제를 분식(粉飾: disguise)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판매자가 그 상품을 자신이 직접 생산했거나 그 상품의 생산자를 대표하고 있듯이, 구매자 역시 [그의 화폐로 실현된] 상품을 자신이 직접 생산했거나 그 상품의 생산자를 대표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생산자와 생산자인데,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한 쪽은 구매하고 다른 쪽은 판매한다는 것이다. 상품소유자는, 생산자{판매자}라는 이름에서는 상품을 그 가치보다 비싼 값으로 판매하고, 소비자{구매자}라는 이름에서는 상품에 그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고 말해 보았자 우리는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주석 15: “이윤이 소비자에게 의해 지불된다는 생각은 확실히 아주 불합리하다. 이 소비자란 누구인가?” (람지[G. Ramsy], "부의 분배에 관한 논문“, 에딘버러, 1836년, P. 183.)
    그러므로 잉여가치가 명목상의 가격인상으로부터 생긴다든가 [상품을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판매자의 특권에서 발생한다고 하는 환상을 철저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판매하
    지 않고 구매만 하는, 따라서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계급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계급의 존재는 우리가 이때까지 도달한 입장, 즉 단순상품유통의 입장에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하자. 이와 같은 계급이 끊임없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폐는 [교환없이, 무상으로, 어떤 권리 또는 강제에 근거해] 상품소유자들 자신으로부터 끊임없이 이 계급에게로 흘러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급에게 상품을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무상으로 준 화폐의 일부를 속여 다시 찾아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주석 16: "어떤 사람의 상품이 잘 팔리지 않을 때, 맬더스는 이 사람에게 자기의 상품을 팔기 위해 타인들에게 화폐를 주라고 충고하겠는가?" 이것은 리카도학파에 속하는 어떤 사람이 분노해 맬더스에게 던진 질문인데, 맬더스는 그의 제자인 목사 차머즈(Chalmers)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구매자 또는 소비자 계{[예;목사 . 관리 . 군인}을 경제적으로 찬양했던 것이다. ?최근 맬더스 가 주장하는 수요의 성질 및 소비의 필요에 관한 원리의 연구?, 런던, l821년, p. 55를 보라.) 예컨대 소아시아의 도시들은 고대 로마에 매년 화폐공납을 바쳤다. 로마는 이 화폐를 가지고 이 도시들로부터 상품을 구매했는데, 그것도 대단히 비싼 값으로 구매했다. 소아시아인들은 상업(商業)이라는 방법을 통해 로마인을 속임으로써 자기들의 정복자들로부터 자기들이 바친 공납의 일부를 회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은 자는 역시 소아시아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상품의 대가는 여전히 자기들이 바친 화폐로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결코 치부하는 방법 또는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매자는 동시에 구매자이며, 구매자는 동시에 판매자라는 상품교환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기로 하자. 우리가 곤란에 빠지게 된 것은 아마 등장인물들을 인격화된 범주(personified category)로서만 고찰하고 개인으로서는 고찰하지 않은 데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상품소유자 A는 대단히 교활해서 자기의 동료인 B 또는 C를 속일 수 있지만 B나 C는 아무리 해도 보복할 수가 없다고 하자. A는 B에게 40원의 가치가 있는 포도주를 팔고 그 대신 50원의 가치가 있는 곡물을 얻었다고 하자. A는 자기의 40원을 50원으로 전환시켰다. 적은 화폐를 많은 화폐로 만들었으며, 자기의 상품을 자본으로 전환시켰다. 좀더 자세히 검토해 보자. 교환이 이루어지기 전의 수중에는 40원어치의 포도주가 있었고, B의 수중에는 50원어치의 곡물이 있어 총가치는 90원이었다. 교환 뒤에도 총가치는 동일한 90원으로 변함이 없다. 유통중의 가치는 한 푼도 증가하지 않았으나 A와 B사이에 그 가치의 분배는 변했다. 한 쪽에는 잉여가치(剩餘價値)로 나타나는 것이 다른 쪽에는 가치손실(價値損失)로 되며, 한 쪽에는 플러스로 되는 것이 다른 쪽에는 마이너스로 된다. 이와 동일한 변동은 A가 [교환이라는 위장된 형태에 의거하지 않고] B로부터 10원을 직접 훔쳤다 하더라도 일어났을 것이다. 유통중의 가치총액은 그 분배상의 어떤 변화에 의해서도
    증가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마치 어떤 유태인이 앤여왕 시대의 1파싱화{0.25펜스의 금화}를 1기니{252펜스의 금화}에 판매하더라도 그것으로써는 일국 내의 귀금속의 양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국의 자본가계급 전체가 자기 자신을 속임으로써 돈벌이를 할 수는 없다. (주석 17: 데스튜트 드 트라시는 학술원 회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마 그렇기 때문에-이와는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자본가들은, "모든 물건을 그 생산에 든 비용 이상으로 비싸게 판매한다"는 것에 의해 이윤을 얻는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에게 판매하는가? 우선 상호간에 판매한다"(데스튜트 드 트라시, 앞의 책, p. 239).)
    아무리 말을 이리저리 돌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만약 등가물끼리 서로 교환된다면 아무런 잉여가치도 발생하지 않으며, 또 비등가물끼리 서로 교환된다고 하더라도 잉여가치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주석 18: "두 개의 동등한 가치 사이의 교환은 사회에 있는 가치 총량을 증가시키지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동등하지 않은 가치 사이의 교환은....이 역시 사회의 가치 총액을 조금도 변동시키지 않고, 타인의 재산으로부터 빼앗아 온 것을 자기의 재산에 첨가할 뿐이다"(세이[J. B. Say), ?정치경제학개론?, 파리, 1817년, 제2권, pp.443-444). 세이는 물론 이 명제에서 나오는 결론에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이 명제를 거의 글자 그대로 중농주의자로부터 차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 당시에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농주의자들의 저작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했는가는 다음의 예로부터 알 수 있다. "생산물은 오직 생산물에 의해 구매된다"(같은 책, 제2권, p.441)라는 세이의 '가장 유명한' 명제는 중농주의자의 원 문에는 "생산물은 오직 생산물에 의해 지불된다"로 되어 있다(르 트로느, 앞의 책, p. 899).) 유통(流通), 즉 상품교환은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는다.(주석 19: "교환은 생산물에 어떤 가치도 첨가하지 않는다"(웨일랜드[F. Wayland] ?정치경제학개요?, 보스톤, 1843년, p. 169).)
    이상의 설명으로부터 왜 우리가 자존의 기본형태[즉, 근대사회의 경제조직을 규정하는 자본형태]를 분석하면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옛날부터의 자본형태인 상인자본(商人資本)과 고리대자본(高利貸資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통형태 M-C-M‘[더 비싸게 판매하기 위한 구매]가 가장 순수하게 나타나는 것은 진정한 상인자본에서다. 그러나 이 상인자본의 운동 전체는 유통분야의 내부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과 잉여가치의 형성을 유통 그 자체로부터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등가물끼리 서로 교환되는 한, 상인자본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이며,(주석 20: "불변적인 등가물들이 지배하는 한, 상업은 불가능할 것이다"(옵다이크.[G. Opdyke], ?정치경제학에 관한 논문?, 뉴욕, 1851년, pp. 66-69), "실질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차이는 바로 다음과 같은 하나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즉, 어떤 물건의 가치는 상업에서 그 물건과의 교환으로 주는 이른바 등가물과는 다르다는 것, 다시 말해 그 등가물은 등가물이 아니라는 것이다"(F. 엥겔스, ?국민경제학비판 개요?, p.96)) 따라서 상인자본은 [구매하는]상품생산자와 [판매하는] 상품생산자 사이에 기생적으로 개입해 그들을 사취(詐取: fraud) 함으로써 형성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랭클린은 "전쟁은 약탈이고, 상업은 사기다"(주석 21: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국민의 부에 관해 검토해야 할 견해들“ 스팍스(Sparks) 편, ?저작집?, 제2권, p. 376.)라고 말한 것이다. 상인자본의 가치증식을 상품생산자들에 대한 단순한 사취 이외의 것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순 상품유통이 우리의 유일한 전제로 되어 있는 여기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일련의 긴 중간고리가 필요하다. {제3권 제4편을 참조하라.}
    상인자본에 대해 적용되는 앞의 내용은 고리대자본에게는 더욱 타당하다. 상인자본에서는 그 양극[즉, 시장에 투입되는 화폐와 시장에서 끌려나오는 증식된 화폐]은 적어도 구매와 판매에 의해, 유통운동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 고리대자본에서는 형태 M-C-M‘가 매개고리가 없는 양극 M-M'로, 더 많은 화폐와 교환되는 화폐[즉, 화폐의 본성과 모순되며 따라서 상품교환의 입장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형태]로 단축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식술은 이중(二重)의 과학인바, 일부는 상업에 속하고 다른 일부는 가정학에 속한다. 후자 는 필요한 것으로 칭찬받을 가치가 있지만, 전자는 유통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에 입각하지 않고 상호간의 사기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고리대(高利貸)가 미움을 받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화폐 그 자체가 영리 (營利)의 원천으로 되고 있으며, 그것이 발명된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화폐는 상품교환을 위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자(利子)는 화폐로부터 더 많은 화폐를 만들어 낸다. 이자라는 명칭"(이자,자식)"도 이로부터 나왔다. 왜냐하면 자식은 어버이를 닮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자는 화폐로부터 나온 화폐이고, 따라서 고리대는 모든 생계형태 중에서 가장 반자연 적인 것이다.“(주석 2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정치학?. 제1권, 제10장, p. 17.)
    우리는 우리의 연구과정에서 상인자본과 이자낳는 자본이 파생적(派生的: derivative)인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또 그와 동시에 어째서 이 두 형태가 역사적으로 자본의 근대적인 기본형태보다도 먼저 나타났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밝힌 대로 잉여가치는 유통에서 발생할 수 없으므로 그것이 형성되려면 유통 그 자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유통의 배후에서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주석 23: "시장의 보통의 조건 하에서는 이윤(利潤)은 교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윤이 교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교환 이후에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람지, ?부의 분배에 관한 논문?, p. 184).) 그러나 잉여가치는 유통[즉, 상품소유자들의 모든 상호관계의 총체] 이외의 다른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가? 유통 밖에서는 상품소유자는 자기 자신의 상품과 관계를 맺을 뿐이다. 그 상품의 가치에 관해 말한다면, 이 관계는 그의 상품이 [일정한 사회적 기준에 따라 측정되는] 자기 자신의 노동량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이 노동량은 그의 상품의 가치량으로 표현되며, 그리고 가치량은 계산화폐에 의해 측정되므로, 그의 노동량은 예컨대 10원이라는 가격으로도 표현된다. 그러나 그의 노동은 그 상품가치와 [그 상품가치를 넘는)]어떤 초과분 양자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즉, 10이면서 동시에 11이기도 한 가격으로 표현되지는 않으며, 자기 자신보다 더 큰 하나의 가치로 표현되지도 않는다. 상품소유자는 자기의 노동으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지만 자기증식하는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다. 그는 현존의 가치에 새로운 노동[따라서 새로운 가치]을 첨가함으로써-예컨대 가죽을 장화로 만듦으로써-자기 상품의 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동일한 소재가 더 많은 노동량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제 더 많은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장화는 가죽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지만, 가죽의 가치는 원래 그대로다. 가죽은 자신의 가치를 증식시킨 것도 아니며 장화를 만드는 중에 잉여가치를 첨가 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상품생산자는 다른 상품소유자들과 접촉하지 않고서는 [즉, 유통분야의 외부에서는] 가치를 증식시킬 令 있으며, 따라서 화폐나 상품을 자본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할 수도 없고, 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할 수도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해야 하는 동시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이중적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은 마땅히 상품교환을 규정하는 법칙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등가물끼리의 교환이 당연히 출발점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주석 24: 이상의 설명을 통해 독자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상품의 가격(價格)과 가치(價値)가 동일한 경우에도 자본의 형성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의 형성을 가격과 가치 사이의 편차에 의해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가격들이 현실적으로 가치들과 다르다면, 우선 가격을 가치로 환원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상품교환의 토대 위에서 자본형성(資本形成)이라는 현상을 순수한 형태로 고찰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고찰함에 있어 과정의 진행과는 관계가 없는 교란적이고 부차적인 사정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격과 가치의 편차를 무시해야 한다. 또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환원은 결코 과학의 영역에서만 일어 나는 것은 아니다. 시장가격의 끊임없는 동요[그 상승과 하락]는 서로 보상하고 서로 상쇄되어 시장가격을 자기의 내적 규제자인 평균가격(平均價格)으로 환원시킨다. 이 평균가격은 비교적 장기간이 걸리는 모든 사업에서 상인이나 제조업자들을 인도하는 별이다. 비교적 긴 기간을 전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상품들은 평균가격 이하나 이상으로가 아니라 바로 평균가격으로 판매된다는 것을 제조업자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그가 공평무사한 사고(思考)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는 자본형성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할 것이다. 가격이 평균가격에 의해, 즉 결국은 상품가치에 의해 규제되는 경우, 어떻게 자본이 발생할 수 있는가? 내가 여기서 결국은'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평균 가격은 스미스, 리카도 등등의 생각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상품의 가치와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제3권 제2편을 참조하라.}) [아직까지는 애벌레 형태의 자본가에 불과한] 화폐소유자는 상품을 그 가치대로 구매해 그 가치대로 판매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과정의 끝에 가서는 자기가 처음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유통으로부터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나비로의 성장[즉, 완전한 자본가로의 발전]은 반드시 유통영역에서 일어나야 하며, 또 그러면서도 유통영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조건이다.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자, 여기서 뛰어 보라!(역자 주: 이솝 우화에 나오는 것인데, 로두스 섬에서 매우 높게 뛴 적이 있다고 뽐내는 사람에게 행한 응 수다.)



    제 6 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자본으로 전환되어야 할] 화폐의 가치변화는 화폐 그 자체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화폐는 구매수단과 지불수단으로서는 [그것이 구매하거나 지불하는] 상품의 가격을 실현할 뿐이며, 그리고 또 그 자신의 형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화폐는 불변의 가치량(價値量)으로 화석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주석 1: "화폐형태로는 이 자본은 아무런 이윤도 낳지 않는다"(리카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한글판, 310쪽) 이 가치변화는 제2의 유통행위인 상품의 재판매로부터도 발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행위는 상품을 다만 현물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 재전환시키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가치변화는 바로 제1의 유통행위 M-C에…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1475
  • 58. 태위택(兌爲澤)
    『 영합의 즐거움 』
     
     ●     정치가는 국민들로부터 선출을 받지만 결국은 그 정
     ○     치가가 국민을 움직입니다.  유능한 기업가는  돈이
     ○     있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일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돈 위에서 돈을 움직입니다. 아주 유능한 인간은 자
     ●     기라고 하는 속안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자기
     ○     자신을 마음대로 내어 쓸 수 있게 됩니다. 자기자신
     ○     을 배열하여 자유자재로 드러내기에  스스로를 움직
            이는 능력으로 주변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태위택(兌爲澤)
     
        [택(澤)]괘는 연못을 뜻한다. 연못과 연못이 합쳐져서
        바다를 이룬다. 그러므로  즐거움이 따른다. 택  괘는
        크게 발전한다. 강효가 안에 있고  유효가 바깥에 있
        다. 즐거워 하는 형태를 깊이  지속하여 중단이 없으
        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힘든  일에 백성보다 앞
        장서면 백성들이 노고를 잊고 힘쓰며  지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힘을 안겨주게 된다.
     
      이 괘는 위의 괘와 아래 괘가 똑같이 생겼으며, 안에  나가려고
    하는 양성에너지가 두 개, 겉에 당기려고 하는 음성에너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인가? 바로 물입니다. 물이 흐를 수
    있는 것은 안에서 바깥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면서 맨
    바깥의 힘은 안으로 휘말리고 있기 때문에 흘러가도 흩어지지 않
    는 상태, 이것이 물입니다.
      "[택(澤)]괘는 연못을 뜻한다. 즉 물인 연못과 연못이 합쳐져서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이 따른다." [택(澤)]괘
    는 물과 물이 겹쳐져 있습니다.  이는 곧 큰 물이 된다는  뜻이며
    또한 상당히 발전하고 번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이 주는 의
    미는 기쁨입니다. 안에서는 하고자 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도 무턱대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두어 들일 것을 생각하면서
    행하기 때문에 기쁨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주려고만 하
    거나, 거둬들일 것이 없이 무조건 하려고만 하면 생기는  것이 없
    습니다. 진정 하고자 하는 것이 속뜻으로 서고, 하지 않으면 못베
    길 만큼 할만한 힘이 있고 힘만큼 거둬들일 수 있을 때 기쁨을 맞
    이할 수 있습니다.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 물의  가
    장 중요한 특성은 서로  합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합쳐질
    수 있으면 기쁨이 온다란 뜻도 됩니다. 물이 합쳐질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움켜쥐려는 것을 빨리 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움
    켜쥐려는 자기 자신을 고집하면 물은 자기 갈 방향대로 서로 가서
    흩어져 버립니다.
      "강효가 안에 있고 유효가 바깥에  있다." 겉이 강해져서는 안
    됩니다. 자존심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속이 약한 사람입니다.
    속으로 하고자 하는 뜻이 분명한 사람은 겉을 낮출 줄 알아야 합
    니다. 흐르고자 하면 흐름을 막을 수  없는 물, 어디든지 흐를 수
    있는 물, 물이 막히지 않고 흐를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겉을 겸
    손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돌멩이가 가로 막으면 가만히 그 아래로
    돌아 흐를 수 있는 겸손, 그래서  물은 연못이 되고, 바다가 되는
    법입니다. 때문에 이 괘는 속마음은 꿋꿋하고  겉모습은 부드러운
    미덕을 표현합니다.
     
      "즐거워 하는 형태를 깊이 지속하여 중단이  없으면 만사가 순
    조로울 것이다." 뜻이 큰  사람은 결코 자만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공의 제일 조건은 두뇌의 명석함도 아니고, 끊어지지 않게 꾸준
    히 오래한다는 것도 아니고, 많은 재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오
    직 즐겨할 수 있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답이 되어져서 결
    국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건드리면
    그 사람은 힘이  뻣뻣해지면서 밀어버리지만  즐겨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아무리 미운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대답합니다. 나를 향
    해서 성내는  사람을 손쉽게  물리치는 방법은  즐거운 마음으로
    "미안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면 조금  더 큰 마음으로  이해해주기
    바랍니다."라고 사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분노는 곧
    사라집니다.
      "힘든 일에 백성보다 앞장서면 백성들이 노고를 잊고 힘쓴다."
    어려운 길을 만날 때 피하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즐거운 마음
    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다시 새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도와줄 수 있는 벗이 생기면 난관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할 것입
    니다. 즐거이 힘든 일에  다른 사람보다 앞장서면 다른  사람들도
    그 일을 거들어 주게 됩니다.
      "지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힘을 안겨주게 된다."  '저
    사람은 자꾸 실수를 해서  같이 일하기 싫다.' 하는  마음이 생길
    때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실수를 같이  도우면 더 이상 미안해서
    그 사람은 그와같은 실수를 결코 다시 저지르지 않게 됩니다. "너
    는 왜 자꾸 그렇게 실수를 저지르는 거야?" 하고 다구치면 그 사
    람은 자신의 실수를 돌이켜 볼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뭐 어째서 그러냐" 하고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진정으로 깊고 큰 사랑은 미운 짓을 통해서 강해집니다. 커다란
    미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은 정말로 큰 사랑입니다.  그러나
    조그만 실수를 외면해야 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선 사랑이 흘러
    나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어렵든 쉽든,  작든 크든 즐거운 마음으
    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즐겨한다는 것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격려
    하고 분발하게 만드며 커다란 힘을 남겨두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덧 모르게 바다가 되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상. 못과 못이 마주 잇대어져 있는 것이 택(澤)괘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친분이 있는 사람
        과 모여 함께 학습한다.
     
      태(兌)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연못, 소녀, 입(口)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괘는 두 개가 나란히 겹쳐 있어서 처녀 둘이 즐겁게
    말하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을 저절로 즐겁
    게 하는 화목한 분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주변이 즐
    겁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괘는 말해 주고 있
    습니다.  입은 웃거나 말하는 것으로 마음을 통하게 하지만 한번
    잘못되면 입이 더러워질 수가 있으며 서로의 의중을 모르고 하는
    말에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입은 인
    간관계를 원할하게 하는데 사용하며 그러기 위해선 성실한 마음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양효. 화합한 마음으로  즐겨하니 서로의 행
        동에 의심하는 바가 없다. 길하다.
     
      "화합한 마음으로 즐겨하니  서로의 행동에 의심하는  바가 없
    다." '내가 뭐하러 열심히 일하냐? 저쪽이 100% 일하면 나는 30%
    는 쉬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 되면 서로의 마음에 의심이 생깁
    니다. 하고자 하는 것이 합쳐진 상태에서는 서로 의심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때 '길하다'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너가 '하는 것이
    없이 한다'가 되어 합쳐질  때 일은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훌륭한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두 번째 양효. 진심으로 즐겨하는 마음은 서로의 마음
        을 믿기 때문이다. 길하다. 후회는 사라진다.
     
      "진심으로 즐겨하는 마음은 서로의 마음을 믿기 때문이다." 어
    느 한 명이 뭔가 걱정스럽고, 다른 일에 신경쓰고 있다면 그 마음
    은 서로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일이 어려워집니
    다. 성공과 실패는 '성공해야 되겠다'하는 먹은 마음에 의해 나타
    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느냐, 아니
    냐에 딸린 문제입니다.
      "후회는 사라진다." 진심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서
    로간에 사랑만을 위해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조금 손해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계산을 하면 후회할 일이 생깁
    니다.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즐겁고, 자기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서
    로 같이 있는 것이 즐거울 때, 진정으로 서로 믿는 마음이며 그때
    후회할 일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공연히 무언가 계산하게 되
    면 그 계산으로 인해 이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계산한 것보다
    몇 배 손해가 따르게 됩니다.
      "계산할 바에야 사랑하지 말라."
      "계산할 바에야 행하지 말라."
      "그러나 계산을 위해서 행하지 않는 것도 하지마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하라. 그때 우주의 계산이 따라
    오게 된다. 셀 수 없을 만큼 ."
     
        세 번째 음효. 남에게 영합하여 즐겨한다. 흉하다.
     
      뜻과 뜻이 맞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영합하는  것은 불길한
    일입니다. 이 집을 잘 건사하기 위한 마음을 가진 주인이 이 집을
    잘 건사해 줄 사람인지  알고 영합해야 하는데  쓸데없이 마음이
    넓어져서 한밤중에 "아니 누구십니까?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고
    가십시오." 하고 도둑인지 벗인지 모르고 영합하면 도둑이 들어와
    서 물건을 모두 뺏어가 버립니다.
      겉이 영합해서는 안되며, 속이 영합해야 합니다. 진정한 영합도
    갖지 않은 채, 무조건 영합하면  도둑이 들어옵니다. 따라서 후회
    할 일이 생기기 전에 매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처해져 있는
    지금 여건을 대하려는 마음을 갖고, 그 결실을 거둬들일  수 있도
    록 뜻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때 어느덧 인생은 바다가 되어 있
    을 것입니다.  취하지 못하면 모두가 다 실수인 것입니다. 태위택
    괘는 즐겁게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
    각하고 하면 꼭 실수를 하게 됩니다.  차는 굴러가야 하지만 운전
    자는 어느순간 어느 순간에도 멎을 수 있어야 하듯이 너무 속력을
    내면 급정지가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속은 강하고 겉은 부드럽다
    입니다. 겉이 부드럽지 못하면 취할 바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급할수록 돌아서가듯이 항상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사를 즐겁게 하되 항상 여유를 잃지 말고 급한 마음에 사로잡히
    지 말아야 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하면 실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네 번째 양효. 어느것이 진정 즐거운 것일까? 가리고
        있다. 판단을 못내려 번민한다.  굽히지 않는 의젓한
        마음으로 불의를 미워한다면 전도에 경사스러운 기쁨
        이 있을 것이다.
     
     세번째가 음성 에너지가 융합하기 위해서는 가려서 해야하는데 그
    가려서 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양성 에너지입니다. 삼효까지가 음성에너지로 두 양성 에너
    지를 거쳐왔기 때문에 촉박한 여유로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
    에 사효에서 다시금 양효로 받았으니 어느것이 진정 즐거운 것인지
    를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양성 에너지의 하고자 함만 많아지기 때
    문에 섣불리 판단을 못 내리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래서 판단을 못
    내려 번민한다고 했습니다.  "굽히지 않는 의젓한 마음으로 불의를
    미워한다면 전도에 경사스러운 기쁨이 있을 것이다."  급한 마음을
    갖되 무엇인가 두어걸음 뒤로 물러서는 마음을 가지라는 얘기입니
    다. 그래야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 악당을 가차없이 제거하는데 성의를
        가진다. 안되는 일도 밀고 나간다.  제왕으로써 용변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하다.
     
     급한 마음으로 하게되면 상대방이 적의를 품고 있는지 의기투합하
    고자 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상대의 속셈을 읽을 수 있으
    려면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자 하는 본
    인의 에네르기에 너무 사로잡혀 있으면 상대의 속셈을 읽을 겨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너무 급하기 때문에 상대를 못 보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남의 힘을 끌어오니 즐겁다. 자신의
        힘이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뜻을 높이는 일입니다.  우
    리가 살아가다보면 주변에 뜻이 안 맞는 사람이 참 많이 있다는 것
    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뜻이 높다고 해서  높은 뜻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뜻이 높을수록 여유를 갖고 항상 낮춰야 됩니다. 자기자
    신을 낮췄을 때 비로소 자신의 뜻한 바를 세상에 갖출수가  있습니
    다.  그래서 스스로 뜻을 높임과 동시에 뜻이 낮다고 하는 이 세계
    와 잘 영합을 하여서  높은 뜻이 곧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뜻과 뜻이 뭉쳐야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나는 뭉
    쳐 지지가 않습니다. 뜻이 아닌 마음으로 뭉치면 마음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자세를 갖춰야만 합니다. 물과 물이 합칠 수 있는 것도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움직이게 되면 세상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우주는 너무나도
    단순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우리의 삶 또한 무한한 능력과
    힘을 행사할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737
  • 48. 수풍정(水風井)
    『 생명의 샘 』
     
     ●     이 세상에서 제일 터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
     ○     다. 사랑은 최소한도 맨 처음에는 이성을 갖고 사랑
     ●     을 시작합니다. 이성을 통해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사랑을 자기한테 묶어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편
     ○     이 나한테 묶이느냐 하면 안묶입니다.  처음에 남녀
     ○     가 사랑할 때는 너무나 달콤하고  즐겁습니다. 그리
     ●     고 서로는 서로에게 매우 잘해줍니다.  그러다가 차
            츰 차츰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묶어둘  수 없는 것을,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자꾸 묶어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
            다 보면 서로는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에게 누구를 묶어 두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바
            로 스스로한테 묶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사랑을 원한다면 상대편을 묶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수풍정(水風井)
     
        정(井)은 우물을 뜻한다. 한 고을의 수도는 옮길 수
        있으나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 땅속에 줄기차게 샘솟
        는 근원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있어서 줄지도  않고 넘치
        지도 않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우물을 쓸 수 있다. 우물이  사람을 길러주면 제한이
        없다. 그러나 우물의 물은 저절로  사람의 입에 들어
        오는 것은 아니다. 물 속에 두레박을 넣어서 물을 떠
        올리는 것이 우물이다.
     
      오만년전에 우리 사람들 세계에는 [법]이라는  것이 사실 없었
    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법이 점점  발달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야만 국가로 가면 갈수록 법은 별로 없습니다. 이 세상
    에 존재하는 국가중 야만 국가도 아니면서  법도 없이 가장 유토
    피아적인 나라가 있다면 바로 티베트입니다. 티벳에는  법이 여섯
    개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법 덕 일체라고 해서 덕이 곧  법이 되
    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라고 하는 나라는 왜  법이
    점점 발달되어 가지 않으면 안되는가?  특히 미국같은 나라는 연
    방법, 지방자치법 등 하여 우리나라보다 법이 더 세밀하고, 더 많
    고, 더 까다롭고, 더 심합니다. 그 이유는 각자가 자기 주장이 강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권을 존중해  주는 대신 사회질서를
    어기며 법을 위반할 때는 인권보다 법의  집행을 더 강하게 하게
    됩니다. 즉 개인적인 인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법도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그것은 법은 거의 개인
    사정에 관계치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법은 사실 점점 약해져야만 좋은 나라입니다. 티베트는 법이  6
    개밖에 없으면서 감옥도 없습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금속
    은 은입니다. 금은  일반인들이 사용을 못합니다.  금은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쓰기 때문에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승려는 집을 수
    있지만 일반인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값어치를 따지기
    이전에 그것은 만져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
    이 가장 비쌉니다.
      티베트에서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면
    은으로 팔찌를 만들어서 채워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팔찌를 차고
    다니면 모두가 범법자로 알기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
    니다.
      법은 약해져야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수양을  한다고
    하면 자꾸 법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인내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가슴에다 법을 만들어서 그걸 지키는 사람이 있습
    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그 사람에게서는  덕이 흘러나오지
    를 않습니다.
      [수풍정] 괘는 우물을  뜻합니다. 상괘는 물을  뜻하는 괘이고,
    하괘는 바람을 뜻하는 괘이면서 동시에 나무를  뜻하는 괘입니다.
    그러면 [수목정]이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안하고 [수풍정]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가만히 있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즉 움직인다라는 것을  강하게 표시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명칭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밑에 나무가 들어
    있는 것이 [정(井)]괘의 상인데, 여기서  나무는 두레박을 뜻합니
    다.
     
      이 세상에서 제일 터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최
    소한도 맨 처음에는 이성을 갖고 사랑을 시작합니다. 이성을 통해
    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사랑을 자기한테 묶어두려고 합니다. 그런
    데 상대편이 나한테 묶이느냐 하면 안묶입니다. 처음에 남녀가 사
    랑할 때는 너무나 달콤하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매우 잘해줍니다. 그러다가 차츰 차츰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묶어둘 수 없는 것을,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자꾸 묶어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는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에게 누구를 묶어 두려
    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스스로한테 묶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
    정으로 사랑을 원한다면 상대편을 묶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묶어둬 버리면 곪아서 썩어버립니다.  썩
    은 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퍼내어 써야  됩니다. 퍼내서
    쓰게 되면 상황이 나를 묶어 놓는 것이 아니고, 현재 묶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나로 인하여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그점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수풍정]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
    리가 받은 교육은 스스로를 묶어 두느냐 못 묶어두느냐의 연습을
    주로 해왔습니다. 스스로를 풀어놓는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물은 퍼내어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물은 마르지 않
    습니다. "정(井)은 우물을 뜻한다. 한 나라의  수도는 옮길 수 있
    으나,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 우리 내부에 있는 '생명의 샘'은 옮
    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마르지도 않습니다.
      "땅속에 줄기차게 샘솟는 근원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주와 직접 연결되어져 있는 곳이며, 또  신과 직접
    연결되어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흡한  인간들이 스스
    로 자기 자신의 우물에 돌을 던지고, 자꾸 흙을 부어서 메꾸어 버
    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메꾸어진 인간들과 같이 있으면 아주 피곤
    해지게 됩니다. 그 인간들은 회의를 하면 꼭 싸웁니다.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와서 다른 문으로 나갑니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있어서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인간이 보통 뭔가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갑자
    기 일을 할 때 우물은 넘칩니다. 보통 맨처음에 마음먹고 할 때는
    한 며칠동안 넘치도록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삼일이 지나가 버리면
    도 팍 줄어버립니다. 때문에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
    도록 해야 됩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나가 자유롭게 우물을 쓸 수 있다."
    즉 누구에게나 골고루 다 혜택을 베풀 수 있으며, 모든 것에게 미
    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취미가 아닌 것은 못한다고 합
    니다. 또 자기가 아는 것이 아닌  것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
    람은 스스로 우물을 막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취미는 있
    습니다. 그러나 취미가 같지 않더라도, 구질구질한 일일지라도 생
    명력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물이 사람을 길러주면 제한이 없다." 우물이 사람을 길러주
    면 제한이 없지만 사람이 우물을 자꾸 제한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우물의 물은 저절로 사람의 입에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물의
    물을 퍼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두레박입니다. 그 두레박은 바로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을 자기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마
    음에 드는 것은 선택하고, 들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일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우물을 뚜껑으로 막고 있는 것이며, 결국  맑은 물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금방 떠서 마실 수 있건만 어떤 사람은 두
    레박질을 하지 않거나 두레박을 뒤집어 놓습니다.
      우물이 자기 자신한테 고정되어 있으면 [정(井)]괘는 아주 흉한
    괘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한테 고정되어져 있는 사람은 세
    상이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서울은 옛날의
    서울이 아닙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못 느끼는 인간이  바로
    꽉 막힌 인간입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엄청나게  빨리 돌
    아가고 있다는 것을 못느낍니다. 스스로 정지되어져  있는 사람은
    정지된 것밖에는 못봅니다.
      "믈속에 넣어서 물을 떠올리는 것이 우물이다." 그러기 위해서
    는 먼저 물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물위에다
    가 자꾸 무언가 법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나  자신의 만든 법,
    사실 그 법이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구속시키고 있습니다.
     
        대상. 나무위에 물이 있는 것이 [수풍정]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국민을 위로하고 권장하고 도
        와준다.]
     
      이것은 군자가 아닌 사람은 하지 못합니다. 군자가 아닌 사람을
    가르치면 우물을 막는 것을 도와주게 됩니다.  누군가 내게 "선생
    님 저는 도둑질 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라. 단지 도둑을 당하는 사
    람한테 피해가 되어서는 안되며, 모두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안되
    며, 너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상관없다." 또 누군가 내게 "저는 누
    군가를 죽이고 싶습니다." 하고 물으면, "첫째,  감옥에 가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하라. 둘째, 그가 죽어서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라.
    셋째, 그렇게 하여 네가 기쁘다면 나 역시 너와같이 기뻐하리라."
    하고 나는 대답할 것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두레
    박이 퍼진다면 나는 조건을 달아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전
    부다 하도록 해줄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우물이 흙탕물로  더러워지면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 버려진 옛 우물에는 새도 안 오는 법.
        사람도 인격이 비열해지면 세상 사람에게  버림을 받
        는다.
     
      첫 번째는 음효로서 자기 마음 먹은데로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샘을 내어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욕심  때문에 나오는
    에너지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악인보다 더 나쁜
    것은 옳다고 고집하는 자입니다. 그런 인간들은  우물을 흙탕물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그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또
    그자들은 "나는 옳으니까 이것은 못한다."하고  전부 다 떠나갑니
    다. 그런 사람한테는 새도 오지 않고 세상이 버리게 됩니다. 맑은
    물은 빛이 통과하지만 흐린 물에는 빛이 투과하지 못합니다. 그러
    나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흐
    린물에서 고기가 노니는 것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인격이 비열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 여기
    서 인격은 윤리, 도덕적 인격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주역에서 말
    하는 군자는 그러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인격은 흙탕물에 들어간 인격에 불과합니다. 나의  생각을 고집해
    서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인격은 자기 사상, 자기 옳음에 스스로 사로  잡히지 않는
    인격입니다.
     
        두 번째 양효. 아까운 우물물이 개울물처럼 흘러가서
        겨우 어린 붕어를  길러주고 있다.  두레박이 깨어져
        물이 새니 사람이 마실 수 없다. 훌륭한 인재도 등용
        하여 주는 이가 없으면 이와같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에너지를 내어  쓰려고 노력을  하면
    "아까운 우물물이 개울처럼 흘러가서 겨우  어린 붕어 새끼를 길
    러주고 있는" 그 정도는 나온다는 뜻입니다. 군대라는  곳이 마지
    못해 하는 곳입니다. 군대가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
    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대는 전부 다 요령이라고 합니다. 그
    러나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전부 다 군대가 합니다. 과거 깊은 산
    중의 꼬불꼬불한 도로들, 거의 다  군대가 닦은 것입니다. 그것도
    불도저와 포크래인이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삽들고 닦은 것입니
    다. 우리의 생명의 샘은 쓰기만  하면 에너지가 나옵니다. 에너지
    를 내어쓰는데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생명에너지를 내어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두레박이 깨어져 우
    물물을 퍼올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못하겠다고  자기 고집만
    하는 사람은 무조건 훌륭한 인재가 아닙니다.
     
        세 번째 양효. 우물을 깨끗이 쳐내어 맑은 물이 고였
        건만 먹지 못하니 내 마음이 슬프다. 이 우물을 퍼올
        려라. 왕이 현명하여  인재를 등용한다면  함께 복을
        받을 것이다.
     
      먼저 나 자신의 우물을 깨끗이 치우려면 지금까지 기존에 생각
    했던 나에 의한 나의 생각,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믿고 있는 것으
    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그래서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내어 쓸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우물물을 퍼올려라." 즉 못한다
    고 하지 말라. 내가 판단해서 좋다고  가고, 싫다고 가지 않는 짓
    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왕이 현명하여 인재를  등용한다면 함께 복을  받을 것이다."
    훌륭한 사람은 인재를 등용하여  같이 훌륭한 일을 하게  됩니다.
    훌륭한 일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두루 펴서 그
    것이 온 천지에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온 천지에 복을 줄 수
    있도록 덕을 베푸는 것, 그것이 바로 [수풍정]입니다.
      [정(井)] 괘는 위로 올라갈수록 "좋다"라는 쪽으로 나가고 있습
    니다. 많은 주역의 괘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좋지 않다"라는 요소
    가 많아지며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괘는  샘이 흘
    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올라가면 갈수록  좋아져서 나중에는 엄
    청나게 좋아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입니
    다. 수양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바로  흙탕물을 벗겨내
    는 일입니다. 그리고 벗겨냈으면 꾸준히 밀고 나가야 됩니다.
     
        네 번째 음효. 우물의  안 벽을 벽돌로  쌓아 깨끗이
        수리한다. 탈은 없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중 '자로'가 물었습니다. "현자가 거지와 같은 소인
    배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당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우주를
    논할 만큼 현명한 석학들이었는데  생활은 겨우 세끼  굶는 것을
    면할 정도로 거지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로가  물은 것입니다.
    공자는 "현자나 소인배나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소인배는 배가 고프면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지만, 현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우주 밑에 거지나 성자나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같은 것입니다. 우주는 수없이 많은 삼라만상을 펼치고 있으
    나 그 모든 만물은 평등합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중심, 즉 핵이 있기 때문이며, 그 핵은 우주의 핵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핵을 우리는 영혼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현자와  소인
    배가 다른 점은 현자는 아무리 마음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영혼을
    어지럽히거나 팔아서 자신의 영혼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배가 고
    프다고 해서 영혼마저 배고픔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인
    배는 핵을 소중히 여기고 핵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도적질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물의 안 벽을 벽돌로 쌓아  깨끗이 수리한다." 이는 핵심을
    분명히 한다는 뜻입니다. 핵심이 뚜렷해야 정신과  마음이 올바로
    쓰여져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핵이 진실로  강하게 원
    하면 마음을 통해 결심을 하게 되고  정신을 통해서 많은 아이디
    어를 만들어 내게 되며, 그 에너지가 밖으로 번져  나가면 드디어
    만물이 핵이 원하는 데로 들어오게 됩니다. 발명가들이 발명을 할
    때는 느닷없이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연구실에서 발명된  것은 거
    의 없습니다. 노벨이 고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실험에 실패하여 공장이 파괴되고 자기 동생이 죽고, 자신도 다쳤
    습니다. 그러나 노벨의 핵은 슬픔에 젖지 않고 좌절하지 않았습니
    다. 드디어 정신과 마음이 다 지치고 몸마저 지쳐  쓰러졌다가 갑
    자기 눈을 떴을 때  액체 다이너마이트가 뚝뚝  떨어지면서 땅에
    흡수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고체 다이너마이트가 발명 되었습니
    다.
      핵을 위해 진정으로 정신과 마음이  쓰여지는 것은 "중앙을 위
    해서 마음을 쓴다."고 하여  충심(忠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핵
    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조금 손해 본다 싶으면
    어떻게 할 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충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
    런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끌어 당기는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런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양효. 우물이  맑으니 한 샘물을  먹을 수
        있다. 속에서 솟고 있는 원천이 좋기 때문입니다.
     
      "속에서 솟고 있는 원천이 좋기  때문입니다." 더렵혀 지지 않
    고 분명한 영혼을 통하여 샘솟는 원천에서 살아야 합니다. 일본이
    오늘날 저렇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2차대전때 항복을 할
    망정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무라이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
    니다. 과거 한국에서 전쟁이 날 것같으니까  미국으로 도망하였던
    사람들. 이제 한국이 잘살게 되니까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렇
    게 원천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면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 음효. 우물에 물을 긷고 뚜껑을 잠그지 말
        라. 우물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
     
      "우물에 물을 긷고 뚜껑을 잠그지  말라." 뚜껑을 잠그면 안에
    있는 물은 더 이상 옳은 물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내가 옳은 것"은 곧 잘못입니다. 눈은 항상  바깥으로 나가 있어
    야 하고, 바깥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나 뚜껑은 단단히 만들
    어 놔야 됩니다. 뚜껑을 닫지는 말아야 되지만 그래도  우물의 벽
    은 단단히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을 것
    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349
  • 38. 화택규(火澤睽)
    『 시어머니와 며느리 』
     
     ○     보통 세상의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영웅과 성자를
     ●     들 수 있습니다. 영웅과 성자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     누가 더 훌륭한가? 징기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과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멧 중 어느쪽이 더 훌륭한가
     ●     하고 점수를 주면 성자쪽이 더 훌륭합니다.  성자는
     ○     음덕이고 영웅은 양덕이기  때문입니다. 양덕은 내
     ○     품에 넣을 때 상대를 꺾어서 집어 넣습니다. 그러나
            음덕은 "가도좋다."라는 조건하에서 상대가 스스로
            이쪽에 들어올 수 있게끔 음성에너지를 통해서 넣습
            니다. 그래서 음덕이 더 큽니다.
     
                        화택규(火澤睽)
     
        불은 타서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아래로 내려간다.
        두 여인이 함께 살고 있으나 그 생각하는  것은 같지
        않다. 이것이 [규]의 상징이다. 그러나  즐거이 광영
        의 유괘(柔卦)가 위로 올라가 왕자의 지위인 중위(中
        位)를 얻고 제 2효의 강(强)과 좋은 상태로  있기 때
        문에 작은 일에는 길한 괘다.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르
        나 그 영유하는 일은 같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나 그
        뜻은 서로 통하고, 만물은 제각기 서로  다르지만 그
        작용은 유사하다. 이와같은 규괘의 작용은 진실로 큰
        것이다.
     
      "불은 타서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아래로 내려간다. 두 여인이
    함께 살고 있으나 그 생각하는 것은 같지 않다." [화택규]의 상괘
    는 양효가 두 개, 음효가 하나로 여자입니다. 하괘도 여자입니다.
    상괘는 둘째 딸(中女)이고 하괘는 막내딸(少女)입니다. 즉 상괘가
    손위고 하괘가 손아래란 뜻입니다. 상괘는 불을 뜻합니다. 불이 겉
    으로는 훨훨 타고 있지만 안에서는 당기고 있습니다. 불의 에너지
    는 안으로 모였기 때문에 흩어지지 않습니다. 하괘는 연못을 뜻합
    니다. 물은 한 방향으로 계속 밀려나가지만 물줄기의 맨 끝은 하나
    로 오무려져 있기 때문에 연못이 되었습니다. 물은 밑으로 흐르고
    불은 위로 솟구칩니다. 위의 것은 위로 오르고 밑의 것은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함께 있지만 서로 뜻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즐거이 광영의 유(柔)괘가 위로 올라가 왕자의 지위인
    중위(中位)를 얻고 제 2효의 강(强)과  좋은 상태로 있기 때문에
    작은 일에는 길한 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가 서로 뜻이 맞지 않지만 결국 한 집안에 살고  있습니다. 한 집
    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맞지 않는 것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막내인 하괘가 둘째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은 밑에
    서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으므로 하괘가 상괘를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뜻은 서로 맞지 않더라도  아래에서 뭔가 따르는 부
    분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존재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물과 불
    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무언가 같은 점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의 가운데 음성에너지와 물의 음성에너지가  만나면 불은 활
    활 타고 물은 위로 올라서 수증기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둘이
    하나로 뭉쳐져서 다른 것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주는  지금
    그렇게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다르고, 남자
    는 여자를 쫓아 다니고 여자는 도망을 다니지만, 근본적인데 가서
    는 남녀 모두 같은 속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 우주는 같은
    속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만 막아 놓으면 해결된
    다는 것입니다. 위로 뜻은 다르지만 그러나 좋기 때문에  이 세상
    은 서로 대응관계에 있습니다.  불에다가 물을 확 뿌리면  꺼집니
    다. 또 물에다 불을 갖다 놓으면  불이 또 꺼집니다. 그러나 불과
    물 사이에 뭔가 막만 하나 올려 놓으면 물과 불이 같이 끓습니다.
    바로 이것 하나 깔아 놓을 수 있는 것, 그것  하나만 있으면 세상
    은 확 바뀐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일이란 바로 그렇게 차지
    하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노동이지  일이 아닙니다. 노동과 일
    은 다릅니다. 일은 된 것이 없는데 노동만 하면 피곤할 뿐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이 결국  큰 일입니다. 어딘가 망가졌을  때, 그
    망가진 것은 사실 아주 대수롭지 않은데서 망가진 것입니다. 어느
    전자 회선 하나가 끊어지면 전체가 안돌아가는  것입니다. 매사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소한  일을 찾아
    내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즐거이 길을 찾으면 반드시 해결의 부분이 보이게 됩니다. "난 못
    해." 하고 포기하지 말고 즐겁게 붙으면 반드시 거기에 핵심이 보
    이게 됩니다. 사람은 핵심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낍니
    다. 그러나 두렵다고 피하면 영원히  핵심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두렵더라도 즐겁게 붙으면 그 핵심의 바늘 구멍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바늘 구멍만 막으면 전체적인  큰 일은 엄청나게 다른
    성과로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단추를  누르지 않고, 바람 돌리
    겠다고 손가락을 안에 집어 넣고 돌려봐야 손가락만 잘려 나갑니
    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 대가는 엄청나게 큰 것으로 되돌아 옵
    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르나 그  영유하는 일은 같고, 남자와 여
    자가 다르나 그 뜻은 서로 통하고, 만물은 제각기  서로 다르지만
    그 작용은 유사하다." 이 우주는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하고 있습
    니다. 물과 불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쇠와 납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또 흙과 광물이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무
    언지 모르지만 이 세상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것같지만 근본적으로  똑같은 것이
    있습니다.
     
      개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개가 사람을 물려고 하면 그걸  막
    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개나 사람이 똑같이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개에게 제공하면 개는 제공된  것을 하기 위해 물
    려고 하는 것을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이 점을 생각할 줄 모르면 인생의 운명개척이라는 것은 전
    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일이란 내가 아는대로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그 근본적인 핵심을 찾아서 그로 인해 내가
    원하고자 했던 일을 성사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
    한 것이지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 [화택규]입니다.
     
      우리는 근본에 도달하려고 해야 합니다. 흔히 "안된다."라고 말
    하는 것은 근본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
    니다. 그리이스의 한 임금은 금 50㎏을 가지고 왕관을 만들었는데
    그 왕관이 진짜 50㎏을  가지고 만들었는지를 잴  방법이 없어서
    아르키메데스에게 시켰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금 50㎏을  물에다
    넣고 대야에 쏟아지는 물을 받아 모아 놓은  다음, 왕관을 집어넣
    고 나오는 물을 받아서 서로 재어보는 방법으로 구별해 내었습니
    다. 이것이 바로 근본에 도달해 있는 것입니다. "나는 못하겠다."
    라는 것은 바로 근본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안되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근본의 핵심을 모를  뿐
    입니다. 핵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항상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핵
    심과 핵심을 모르면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따로따로 가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결과는 엄청나게 벌어지게 됩니다.
      자연이 벌이는 운동은 어느 운동이든지  간에 원심력과 구심력
    이 동시에 있습니다. 실에다 추를 매달고 돌리면 왜  뱅글뱅글 돌
    아가는가? 이는 멀리 가려는 것도  갖고 있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도 갖고 있고 이것이 서로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뺑뺑 돌아
    가는 것입니다. 안그러면 안으로 쭈그러지거나 줄이  툭 끊어져서
    날라가 버리든가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똑바로 돌  수 있다
    는 것은 그 당기는 힘과 나가는 힘이 균등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
    입니다.
     
      인간도 일단은 균등하게 주어지는 정신상태가 되어져야지만 자
    기와 자기 외부와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비로소 남한테 침
    착하게 함으로써 양성에너지를 통해서 자기가 원했던 음성에너지
    쪽으로 끌어 들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일하는 방법입
    니다.
     
      일이라는 것이 남자가 양성에너지를 가지고  무조건 하는게 아
    닙니다. 여자가 그저 웅크리고 앉아서 훌쩍 훌쩍 우는게  일이 아
    닙니다. 속셈을 분명히 표현해서 거둬들이고 나갈 것을 늘 균등하
    게 사용할 줄 아는 것,  마치 노자가 말했듯이 물  흐르듯이 하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가다 보면 돌이  있어 거슬립니다. 또 구멍이
    있어 옆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은 거기에 대응해서 갑니
    다. 돌이 있어서 못간다,  구멍이 있어서 안간다  하는 것이 없이
    빠질 것 빠지면서, 맞을 것 맞으면서 그렇게 피해가는 물의 지혜,
    그것을 얻어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남녀가 싸우는 것을 보면 끝내는 남자가 집니다. 남
    자가 끝내 기운이 약해서, 여자를 두드려 팰망정 나중에는 슬그머
    니 들어가게 됩니다. 즉 남자의 기세가 먼저 죽습니다. 남자가 경
    우를 들어서 따지면 여자에게 지는 겁니다. 여자 얘기는 들어보면
    마구 떠드는 것으로 여자 자신도 자기가 무엇을 말했는지 모릅니
    다. 여자들은 속셈만 있습니다. 속셈만  있기 때문에 속셈만 옹호
    하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막 떠듭니다. 남자들은  속셈을
    양보해 버립니다. 그래서 나갈때마다 속셈이 흐려집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양성에너지로  왔다
    갔다 한다든가, 또 음성에너지 속셈만 왔다 갔다 하면  아무 소용
    이 없습니다. 속셈과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속셈
    을 양성화합니다. 속셈을 양성화시켜서 베푸는 것이 덕입니다. 속
    셈없이 베푸는 덕은 덕이 아닙니다. 미친 놈이 자기  아버지 돈벌
    어 놓은 걸 한보따리 가져가면서 길바닥에 뿌리는 것을 덕이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것은  속셈없이 나온 양성에너지이기  때문에
    덕이 없는 것입니다. 또 여자가 속셈만 가지고 툭하면  엉엉 우는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자는 속셈을 조리있게  자꾸 양성화시켜
    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객관적으로 되지,  그게 안되면 결국 끝내
    가서는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한테 손해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속셈을 어떻게 표현해서 거둬들일 것인가를 항상 분
    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먼저  자기 속셈만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안됩니다.
    남자는 그런데 대해서 반목의 현상을 더  일으킵니다. 여자가 "너
    죽고 나죽자." 이렇게 매달리면 남자가 양보할려다가 도망가 버리
    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망가
    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가장 중요하게 양덕과 음덕이 있습니다. 보통 세상의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영웅과 성자를 들 수 있습니다.  영웅과 성
    자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누가 더  훌륭한가? 징기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과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멧 중 어느쪽이 더 훌륭한가 하
    고 점수를 주면 성자쪽이 더 훌륭합니다. 성자는 음덕이고 영웅은
    양덕이기 때문입니다. 양덕은 내 품에 넣을 때 상대를  꺾어서 집
    어 넣습니다. 그러나 음덕은  "가도좋다."라는 조건하에서 상대가
    스스로 이쪽에 들어올 수 있게끔 음성에너지를  통해서 넣습니다.
    그래서 음덕이 더 큽니다.
     
      자식이 폭행을 해서 경찰서에 잡혀간 것을 부모가 데려와서 아
    버지가 "이녀석아. 왜 그런 짓을 해? 애비를 쳐봐라." 하면서 자식
    을 호되게 나무라면 자식은  자신이 잘못한 것은  잠깐은 알지만
    벌떡 일어나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립니다. 그러나 엄마는 잘못한
    것을 나무라면서도 "밥이나 먹었니? 얼마나 배고프니?" 하면서 따
    뜻하게 밥을 해서 줍니다. 그러면 자식은 엄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 우주는 음덕이기 때문에 우주안에서 수 많
    은 것이 생기고 부서지곤 하지만 근본적인 음덕이 나오므로 어머니
    가 안정적이고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상. 위에는 불, 아래는  못이 있어 상반된  성질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규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같으면서도 다른 이치를 생각한다.
     
      "위에는 불, 아래는 못이 있어  상반된 성질을 보이고 있는 것
    이 규의 괘상이다." 이 [규]라는 괘는 반목한다는 뜻입니다. 반목
    한다는 것은 원심력과 구심력이 별도로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러면서도 그것이 하나로 되어져 있다라는 말입니다. "여자들이 한
    집안에 있으면 서로 반목한다." 그러나 한  집안이라는 것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다 그렇게 반목되는 세계이지만,
    그 반목 가운데서도 모두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 자체
    는 무언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공통에너지를 잃
    어버리게 되면 사람은 자기 분노에 자신이 휩쓸려 버립니다. 그래
    서 인간사의 번민으로부터 승화하려면 공통에너지를 찾아야 합니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같으면서도 다른  이치를 생각한다."
    반목될 수 있는 것이 서로간에 승화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이 비
    결은 우주의 아주 중요한 비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나 매사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나 이  원리를 잘 알아서 행
    해야겠습니다.
     
        첫 번째 음효. 후회할 일은 없다. 그러나  달아난 말
        은 쫓아가지 말라. 때가 되면 제대로 돌아오리라. 악
        인일 지라도 거부하지 말고 만나보라. 허물은 스스로
        피하면 없으리라. 가는 자는 쫓지 말고 오는 자는 막
        지 말라.
     
      "후회할 일은 없다." 양(陽)과 양(陽)이 위 아래로 이루어져 있
    습니다. 서로 밀어내는게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뜻을 품고
    시작한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후회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달아난 말은 쫓아가지 말라." 왜냐하면 핵심만 찾으면 불편했던
    것들이 다 제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제대로  돌아오리라." 사소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합니다. 숙달이 되기  전에는 사
    소한 것 하나 망가지면 다 뜯어야 합니다. 그것은 상당히 힘든 것
    입니다. 그러나 뜯어진 것 가지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그것 하나 찾아서 갖추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악인일 지라도 거부하지 말고 만나보라." 악인일 지라도 거부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딛쳐 보면  거기에 반드시 풀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키가 146㎝였습니다.
    토요토미는 키가 너무 작어서 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또 칼을
    들고 사람을 치면 힘이 없어서 목이 날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신력이 있었습니다. 토요토미는 싸울 일이 있으면  앞에서 큰소
    리를 쳤습니다. 드디어 상대가  싸울려고 하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당신이 나와  싸워서 이겨도 별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터이니
    싸움을 하지 말자." 하고 싸움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녀석이
    토요토미에게 싸움을 걸면  전에 싸움을 피했던  사람에게 "나를
    우습게 보는 녀석이 있으니 혼좀 내주십시오."  해놓고 자신은 묵
    묵히 관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토요토미는 피하지 않고 과감
    하게 부딪쳐서 자기 속셈으로 끌고 갔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모
    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양효. 주인을  거리에서 만나다. 길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물은 없으리라.
     
      "주인을 거리에서 만나다." 주인은  다섯 번째 효를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토요토미  히데요시처럼 기고 만
    장하게 시작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주저 앉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
    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길을 찾게 됩니다. "나는 못간다." 라고
    미리 마음에서 결정짓지 않고 해내겠다는 뜻으로 일하다 보면 반
    드시 답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똑똑해서 알고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려고 하는  뜻만 가지
    고 하다보면 길은 저쪽에서 알려줍니다. 알려주게  되있는 동안까
    지를 누가 하는가? 그때 필요한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지금 내
    가 그런 용기가 없다면 이제 그런  용기를 내는데 결코 인색해서
    는 안될 것입니다.
     
        세 번째 음효. 수레를 굴려가는 소는  멈춰서게 되고
        전진이 방해되며, 그 사람은 코를 베이는  박해를 당
        한다. 제 능력에 지나치는  지위 때문이다.  그러나
        참고 노력하면 처음은 없으나 끝은 있으리라. 최후에
        는 강건한 자의 보호를 얻으리라.
     
      "수레를 굴려가는 소는 멈춰서게 되고 전진이 방해되며, 그 사
    람은 코를 베이는 박해를 당한다." 일을 하다 보면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길이 나오기도 하고, 또 해를 당하는 일도 있는데, 그
    것은 제 능력이 미치지 않게끔 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고 노력하면 처음은 없으나 끝은 있으리라. 최후에는 강건한 자
    의 보호를 얻으리라." 그러나 자꾸 노력하면 처음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끝은 있어서 최후에는 끝까지 해내겠다는  자기, 강건한
    자의 보호를 얻게 됩니다.
     
      "나는 안되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자신의  뜻이 강건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내가 강건하게  시작하려고 하
    면 반드시 그 끝은 일러주는 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
    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서 끝내 크게  달라지는 세계
    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양효. 주변 사람들과 반목이  되어서 고독하
        더니 착한 동지를 만나 서로 성의로 사귀니 위태롭기
        는 하나 허물이 없다. 이제 그 뜻이 실행되리라.
     
      "주변 사람들과 반목이  되어서 고독하더니 착한  동지를 만나
    서로 성의로 사귀니 위태롭기는 하나 허물이 없다." 네 번째는 위
    로 음효가 잡아 당기고, 아래도 음효가 잡아당겨서  이쪽 편을 들
    수도 없고 저쪽 편을 들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남자가 두 여자를
    사이에 놓고 이쪽을 따라갈까, 저쪽을 따라갈까  양다리를 걸치다
    보면 이럴 때 그 남자는 마음이 매우 약해집니다. 지금 이 상태가
    그런 상태입니다.
      즉 주위의 사람들과 반목되어서 고독하더니  힘이 약해져서 자
    기 주관을 어떻게 밀고 나갈 수 없습니다. 그때  대응관계에 있는
    초양의 양성에너지의 힘을 받아 나아가니  위태롭기는 하지만 스
    스로 다시 기운을 찾으면 그 뜻이 실행될 것입니다. 안에 있는 양
    성에너지가 쪼그라들면 남자는  얼른 자기와  대화해서 그와같은
    상태에서 태연해지도록 해야합니다.
     
        다섯 번째 음효. 근심이 없어진다.  상대하는 사람들
        이 성심성의를 다 바쳐 일심동체가 되기를 원하니 적
        극적으로 나간들 무슨 허물이 있으랴. 나아가면 경사
        가 있으리라.
     
      "근심이 없어진다." 다섯 번째는 원래 양의 자리인데 음이 있으
    니까 근심이 없어집니다. "상대하는 사람들이 성심성의를 다 바쳐
    일심동체가 되기를 원하니 적극적으로 나간들 무슨 허물이 있으랴
    ." 왜냐하면 밑의 양의 에너지가 받쳐주고 두 번째 양효가 좋게 대
    응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여자 하나에 남자가 둘이 있으니 성심성
    의로 받쳐주는 격입니다. "나아가면 경사가 있으리라." 자기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무턱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음성에너지의 충
    분한 숙고 끝에 두 개의 양성에너지를 통해서 나가니 경사가 있습
    니다. 즉 내가 나가야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갖추고 양성에
    너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양효. 주위 사람들과  반목해서 고독하다.
        상대자가 흙 투성이의 돼지 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
        기를 해치려는 귀신이 한 차 가득히 타고  있는 것처
        럼 보이기도 한다. 쏘려고 시위를 당긴다. 당겼던 활
        시위를 늦추어 버린다. 모든 의심은 깨끗이  씻길 것
        이다.
     
      "쏘려고 시위를 당긴다. 당겼던 활 시위를 늦추어 버린다. 모든
    의심은 깨끗이 씻길 것이다." "아저씨 성냥 있으세요?" 하고 조그
    마한 학생놈이 내게 물으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담배 피
    우려나?' 하면서 아저씨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불을 켜서 "아저씨 담배 한 대 피우시죠?" 하면서 담배불을 붙
    여주면 갑자기 거기서 어떤 인간미를 느끼게 됩니다. 자기보다 상
    사나 선배가 좋지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선생님 불좀 빌려
    주십시오." 빌려준 다음에 그걸 받아서 "담배 한 대  태우십시오."
    하면 지금까지의 감정이 오히려 뒤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곧 처세
    입니다.
     
      이 훌륭한 법칙이 바로 반목하지만 하나로  규합될 수 있는 비
    밀입니다. 아무리 상대편이 도둑놈이건 사기꾼이건간에 이 원리를
    잘 이용하면 그들은 나를 위해 나가서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
    치면 반드시 이 화택규의 주변을 세심히 살피는 안목을 갖추도록
    해야 겠습니다. 남자는 그냥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와 타협을
    해서 속에 품은 속셈이 들어 있는 총알을 곁들여서 쓰면 비로소
    내가 놓은 덫에 끌려 들어오는 것이 생길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62
  • 28. 택풍대과(澤風大過)
    『 강력한 기존 세력 』
           
     ●    주인은 항상 맨 밑과 맨 위를 생각합니다. 위와  아
     ○    래를 유지시켜 나가는 것을 모르면 주인이 될 수 없
     ○    습니다. 밑을 생각하지 않고,  기초를 세우지 않고
            제멋대로 하면 얼마가지  못해 쓰러지는 법입니다.
     ○    회사에서도 맨 아래 급사는  청소를 안해도 주인은
     ○    청소를 합니다. 공장에 불이나면 주인은 맨 먼저 불
     ●    끄러 달려갑니다. 매사를  이러한 주인의 마음으로
            전체의 유지를 살피면서 하지  못하면 결코 세상을
            가질 수 없습니다.
     
                             택풍대과(澤風大過)
     
        [대과] 괘는 큰 것이 지나쳐서 균형이 맞지  않는 상
        태를 표시한다. 집이라면 그 구조와 재목들은 지나치
        게 큰 데 반하여 그것을 밑에서 받치는  기초와 위에
        서 지탱하고 있는 대들보와 마룻대는  약하며 휘어있
        는 상태다. 나라는 어지럽고 강력을 자랑하는 무리들
        이 많아서 강력 위주의 기풍이 지나치건만 이것을 견
        제할 군주와 신하의  힘이 유약한 상태이다.  그러나
        강강한 것이 지나치다고는 하나 중용의  도리를 지켜
        즐겨 순종하는 상태이므로 적극적으로 나아가 위난에
        대처하여도 좋다, 크게 발전한다. 따라서  대과의 상
        태에서는 때를 기다림이 매우 중요하다.
     
      [대과] 괘의 하괘는 음효가  하나, 양효가 두 개로  전체적으로
    음괘입니다. 위의 괘도 마찬가지로 음효가  하나, 양효가 두 개로
    역시 음괘입니다. 여자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따른다' 즉 순종입
    니다. 그런데 이 괘를 가만히 보면 처음과 맨 위만 음효고 가운데
    4개의 효가 모두 양효로 되어 있습니다. 즉 "맨 밑과 위는 약하지
    만 가운데가 굉장히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집으
    로 보면 기초가 약한데 가운데가 굉장히 강하여 대들보가 무너지
    고 마룻대가 휘어있는 부조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괘는 초효(初爻)가 음효(陰爻)인데 네번째 효가  양
    효(陽爻)이기 때문에 대응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응하
    고 있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맨 위의 효도  음효(陰爻)고, 밑의
    효가 양효(陽爻)이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서로가 응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큰 무리가 없다. 또  가운데 양효는 서로 균형을 잡아
    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갖고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이 괘의 전체적인 느낌은 자기의 강한  것을 크게 고집하고 있
    지만,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아래의 세계를 포용할 수 있고 동시에
    하늘의 뜻도 수용을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괘
    는 얼핏 보면 가운데가 강하고 그것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 약하
    기 때문에 상당히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무난한
    것이다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뭔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만약 점을 쳐서
    이런 괘가 나왔다면 "이미 그 사업은 다른 사람에 의해 사회적으
    로 크게 규모가 잘 잡혀 있어 파고 들어가기가 힘든 상황이다."라
    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포화상태에 있기  때문에 때늦
    은 감이 있다는 뜻입니다. 더불어서 현재 지금 굉장히 잘 살고 있
    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것을 은밀히 점을  쳐서 지금 이 괘가 나
    왔다면은 현재 잘되고 있는  것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괘이기도 합니다.
     
      상괘는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서 그 받아들인 것을 견고히 한다
    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쁨을 상징하는 괘입니다.  하괘는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것을 견고히 한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종을 뜻합니다.  반면에 위에 것이 터져  들어와서
    강하게 강하게 작용한다는 의미로 쓰면 홍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또 상괘는 밑에서부터 끌어  올려서 자기 세계를  굳건히 하고
    잘자란다는 의미로 나무를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과] 괘는
    홍수를 뜻하는 하괘에 나무를 뜻하는 상괘가 있어서 지금 상태는 
    "홍수에 질려있는 나무와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 이미 번듯한 세상을  뚫고 들어갈려 한다는 것
    은 홍수에 있는 가냘픈 나무와 같은 그런 시작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괘는 크게 발전한다라는 것을 이미 예고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예고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
    을 유념해서 지켜야 된다, 즉 이것을 못지키면  크게 발전하는 것
    이 아니라 홍수에 떠밀려 가는 나무와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된다
    라는 이야기를 더 적나라하게 지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과괘는 큰 것이 지나쳐서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를 표시한
    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안됩니다. 자기 마음도 지나치면 안됩니
    다. 또 현실이 크게 지나쳐서도  안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는가? 또 자기 큰 것을 어떻게 펼치는 가? 이를 가르켜 주고
    있는게 [택풍대과]입니다. "내 뜻은 고상한데 세상이 하찮다."  이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잘 맞추면은 크게 성공한다는 것이 이  괘가 가르켜 줄려고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크게 강한 것을 고집하다 보면 자기는 강한데
    이상하게 현실은 홍수에 떠내려가는 나무 뿌리정도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잘난척 하는 사람은 홍수에 떠내려 간다." "이 세상이 온
    통 자기 빼놓고는 홍수다." 지금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집이라면 그 구조와  재목들은 지나치게 큰데  반하여 그것을
    밑에서 받치는 기초와 위에서 지탱하고  있는 대들보와 마룻대는
    약하며 휘어 있는 상태다. 나라는 어지럽고 강력을 자랑하는 무리
    들이 많아서 강력 위주의 기풍이 지나치건만 이것을 견제할 군주
    와 신하의 힘이 유약한 상태이다." 현실의 세상은 강하다고  스스
    로 날고 기는 자들이 많으니까, 즉 강력을  자랑하는 무리들이 많
    아서 강력위주의 기풍이 지나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견제할
    군주와 신하의 힘은 미약하고 나의 힘도 미약한 상태입니다.
      대과괘는 큰 것이 지나쳐서 균형이 맞지 않으므로 어떻게 균형
    을 맞추는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내 뜻은 고상한데 세상이
    균형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맞추면 크게 성공하나, 자
    신이 강한 것만을 고집하다 보면 현실은 홍수에 떠내려가는 나무
    뿌리 정도로 자신을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강강한 것이  지나치다고는 하나 중용의  도리를 지켜
    즐겨 순종하는 상태이므로 적극적으로 나아가 위난에 대처하여도
    좋다. 그러나 강강한 것이 지나치다고는 하나 음괘와 양괘가 각각
    음효가 하나, 양효가 둘이므로 음괘로서 순종을 미덕으로 하고 있
    고, 각 음효가 양효와 대응관계를 이루어 강한  자기라고 하는 가
    운데 양효들이 전부 연약한  음성에 의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중용의 도리를 지켜 즐겨 순종하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있으며 적극적으로 밀고 나아가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변이 강할 때는 매사를 정성을 들여서, 스스로 몸을 낮추어서
    하고자 하는 뜻만을 위해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위로  열심히 할
    때는 아래를 생각하고 해야됩니다. 고무줄은 끊어지지  않을 정도
    로 잡아당겨야지 "마음껏 늘어날  수 있다." 하는  자신감으로 확
    잡아당기면 끊어지는 법입니다. 내가 힘을 쓰면 끊어지지 않는가?
    뒤를 생각하면서 해야됩니다. 열심히 할 때도 내가 지켜야할 범위
    를 넘어가지는 않는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자기  울타리를 위해
    서 해야 합니다
      주인은 항상 맨 밑과 맨 위를 생각합니다. 위와 아래를  유지시
    켜 나가는 것을 모르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밑을 생각하지 않
    고, 기초를 세우지 않고  제멋대로 하면 얼마가지 못해  쓰러지는
    법입니다. 회사에서도 맨 아래 급사는 청소를 안해도 주인은 청소
    를 합니다. 공장에 불이나면 주인은  맨 먼저 불끄러 달려갑니다.
    매사를 이러한 주인의 마음으로 전체의 유지를 살피면서 하지 못
    하면 결코 세상을 가질 수 없습니다.
     
      크게 발전한다. 따라서 대과의 상태에서는 때를 기다림이  매우
    중요하다." 대번에 어떤 결과를 바라지 말고 순종하고 꾸준히  하
    다 보면 자기의 뜻이 성취되는 그와  같은 찬스가 반드시 오게됩
    니다. 그 찬스를 위해서 현재 힘들고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노
    력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라, 자기를 고집하고 스스로  자기를
    거두어 들이지 말라, 주장하지 말라, 잘난척하지 말라라는 이야기
    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뜻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면 현실적으
    로 지금 어려운 난관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마음의 동요를 일으
    키지 말고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바로 지금부터 서서히  그 뜻을
    펼쳐나가면서 때를 기다려라. 만약에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세상
    이라고 한다면 군자는 숨어 살더라도, 또 결코  아무리 여건이 불
    리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조아리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입니
    다.
     
        대상. 못물이 나무를 삼켜버리는 것이 대과의 형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우뚝  홀로서서 두려워하
        지 아니하며 세상을 숨어 살아도 번민하지 아니한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우뚝 홀로서서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세상을 숨어살아도 번민하지 아니한다." 진정으로 웅대한 뜻을 가
    지고 있다면 "아무리 지금 취해져  있는 여건이 비참하다 하더라
    도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뜻은 스스로  홀로서서 결코 그것을 두
    려워하지 아니한다." 이미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펼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여건이 힘들고  세상이 두려
    워서 뜻을 펼치지 못할  뜻이라면 그저 마음속에  그려진 뜻이지
    세상에 펼쳐질 진정한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뜻에
    는 펼쳐나갈 구멍이 열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할수
    있는데 하기가 두렵다." 이런 사람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때문
    에 그렇습니다. 할 줄 아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두려워 하거나 쳐
    해져 있는 자기 처지과 여건을 겁내지 않습니다. 그것이 긍지입니
    다. 이 세상을 산다면 긍지가 이 세상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첫번째 음효. 깨끗한 흰  띠를 풀어서 펴고 그  위에
        물건을 놓듯이 경건하고 정중한 마음으로  몸을 가지
        면 허물이 없으리라.
     
      "깨끗한 흰 띠를 풀어서 펴고 그 위에 물건을 놓듯이 경건하고
    정중한 마음으로 몸을 가지면 허물이 없으리라." 자기 속이  아무
    리 잘났다고 못난 세상을  외면하지 말고 하찮은 일,  자질구레한
    일이라 하더라도 마치 깨끗한 흰 이불을 펴고 그 위에 물건을 놓
    듯이 정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일을 대하라는  말입니다. 평범한
    말같지만 이것이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긍지라는 것은 상당히 큰 것입니다. 우주는 아무리 큰 일이  벌
    어져도 전혀 동요치 않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서 욕을 해봐
    야 하느님은 끄떡도 안합니다. 욕하게끔 내버려 둡니다. "네 입으
    로 하는 욕, 마음껏 해라." 그것이 바로  긍지입니다. 즉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받아들일 줄 알며,  또 능히 피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긍지로 이 세상의 어려운 여건 속안에서 밀려나가지 말
    고 누가 뭐래도 나의  웅장한 뜻을 "아주  깨끗한 흰띠를 풀어서
    펴고 그 위에 물건을 놓듯이"  경건하고 정중한 마음으로 끊임없
    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크게 발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을 재보니 앞이 한심하고, 뒤를 보니 캄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캄캄하고 한심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앞뒤가  없기 때문
    입니다. 반드시 도끼가 아니라도  몽둥이로 소를 잡을 수  있습니
    다.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나타납니다.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나의 저력을 이 세상을 향해서  아주 공손하게 펼치기만 한
    다면, 언젠가 자신의  것으로 성취하고 거둬들일  수가 있습니다.
    안된다고 스스로 자신을 거둬들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두번째 양효. 고목이 된 버드나무에 새싹이 난다. 늙
        은 홀아비가 나이 어린 아내를 맞는다.  때를 지나치
        기는 하였으나 그런데로 만사가 순조롭다.
     
      "고목이 된 버드나무에 새싹이 난다. 늙은 홀아비가 나이 어린
    아내를 맞는다. 때를 지나치기는 하였으나 그런데로 만사가  순조
    롭다." 현재의 여건이 이미 힘들게 되어 있지만 그러나 자신의 웅
    지인 힌 띠를 풀어놓고 내려놓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해서 이
    세상에 내려놓으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마치  오래된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이미 지난 나이에 새 아내를 얻듯이, 얼핏 보
    면 때가 약간 지나쳐 격에 맞지  않는 것같지만 그러나 그런데로
    만사가 순조롭다. 왜냐하면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자신이 꾸준히
    이끌어 간다면 변할 수 있는 그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데로 변화
    해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변화가 일어나는 템포보다 나의 탬보가 앞서기만  하면,
    일단 평행만 해도, 오로지  한 뜻을 펼쳐나가는데 있어  변화하고
    있는 모든 과정들은 그 변화의 괘도를  나의 방향으로 몰고 옵니
    다. 바람이 지나가면 앞에 있는 것들을 허물어 뜨리는  것뿐만 아
    니라 주변에 있는 것을 딸려오듯이 .
     
        세번째 양효. 마룻대가 휘다. 어떻게  받쳐줄 방법이
        없다. 흉하리라.
     
      "마룻대가 휘다." 매사에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지 아니하
    고 자기의 뜻만을 강하게 고집하면 오히려 주변 여건이 휘어져버
    립니다. 옛날 어른들은 밥을  먹을때 결코 밥알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밥알을 버리면 벌받는다고  그랬습니다. 경제가 조금
    좋아져 나라가 잘산다고 오만해져서는 안됩니다.  사소한 일, 100
    원, 10원 아끼기를 마치 은행 아끼듯이 해야만 그 부가 계속 유지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업을 하면  죽을 힘을 다해  잘 이루어놓고
    한 번 망하면 계속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잘 되었다에 머
    물러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부자가 되었어도 "자기
    돈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불에 타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
    다.
     
        네번째 양효. 마루대가 높히 솟아 아래로  휘지 않는
        다. 길하다. 그러나 타의(他意)가 있으면  비난 받아
        곤경에 빠지리라.
     
      "마루대가 높직히 솟아 아래로 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을 따
    라서, 하늘에 순응해서  힘써 나아가면 받칠만한  힘이 생깁니다.
    아무리 허물어졌어도 마음안에 심지가 휘지 않으면,  어떤 고난이
    휩쓸고 지나간다 하더라도 일으켜 세우겠다는 여러분들의 의지가
    넘어지지 않는다면 굳건히 받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어떻
    게 한다." 하는 식으로 남을 따라하게 되면 비난과 함께 되어지지
    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계적인 위인치고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
    생은 똑같이 하는데 위인이 못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위인은
    원래가 위인이었습니다. 싹이 위인이었습니다.  즉 씨앗이 나오는
    데 밑에 흙이 있던지 돌이 있던지 뚫고 나온 것이지, 일부러 돌을
    찾아서 뚫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편안한데 있으면 편안하게 뚫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뚫고 나올 수 있는 위인의 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타의(他意)가 있으면 비난 받아 곤경에 빠지리라." 평
    생 위인하는 것만 따라 다니면 고생만  하고 병이나 앓다가 죽어
    버립니다. 타의로 하지말고 자의로 하는  것. 자신이 위인과 하나
    가 되어서 스스로 해야 합니다. 잘 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마음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에  순종을 하되, 주관이 없이
    남하는데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으로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마음만 믿고 나아가서도 안됩니다. 이
    것이 위, 아래를 모두  살펴 균형을 지키는  것이며, 중용의 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양효. 늙은 버드나무에 꽃이 핀다. 늙은 여
        자가 젊은 남편을 얻는다. 늙은 고목의  꽃은 오래갈
        수 없고, 늙은 여자의 젊은 남편은 꼴사나운 일이다.
        그러나 허물될 것도 없고 또 명예스러울 것도 없다.
     
      "늙은 고목의 꽃은 오래갈  수 없고," 일이  좀 잘된다고 해서
    격에 맞지 않는 노릇을 하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며 오래갈 수 없
    습니다. 왜 격에 맞지 않는 노릇이냐? 위를 살피지 않고  자기 의
    지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쓴다 하면
    서 쓰는 것은 허물  될 것도 없고 명예스러운  것도 없지만 결코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늙은 여자의 젊은 남편은 꼴사나운  일이다." 항상 먼 미래를
    생각해서 미래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잘 되었다해서 만족하지 말
    고,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 끌고 다니는 것은 그래도 정력에도 좋
    고 꼴 사납지는 않지만,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 끌고 다니는 것은
    꼴사나운 일입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섯번째 음효. 자신의 힘에  부치건만 전진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하를 건너다가 물에 머리가 잠긴다. 흉하
        다. 그러나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니 허물은 없다.
     
      "자신의 힘에 부치건만 전진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하를 건너다
    가 물에 머리가 잠긴다." 자기 힘이 넘친다고 해야하겠다는  의지
    만 가지고 나아가면 안됩니다. 항상  아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
    도의 범위를 지나쳐 나가면 안됩니다. 주머니에  신용카드가 열장
    이 있다고 마구 쓰면 나중에 감당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앞뒤를 재
    보고 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거두어 들일 것인가? 있는 것은 어떻게 키울 것
    인가? 앞뒤 생각을 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앞뒤로 흐르는 귀로(歸
    路)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 해봐야 대가
    는 땀밖에 없고 결과는 병밖에 없습니다. 위와 아래의  음효의 범
    위를 모르면 홍수에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처럼  매일 희망만 가지
    고 점장이 찾아다니며 "언제 그 때가 올까?" 하는 것밖에는 할 일
    이 없게 됩니다.
      운은 한번 올 때 한꺼번에 옵니다. 손님 많은 날은 서로 약속이
    나 한 듯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런데 없는 날은  하나도 오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러한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래
    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 그것을 잡을  수 있고, 또 잡으면 놓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 평상시에 우리는  위와 아래를 잘 생각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999
  • 18. 산풍고(山風蠱)
    혼란과 부패
     
     ○    세상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세상이  나
     ●    를 어떻게 감싸주느냐가 아니고, 내가 세상을  어떻
     ●    게 가꿀 것인가 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인 동시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사명
     ○       이기 때문입니다.
     ○
     ●
     
                                 『 산풍고(山風蠱) 』
     
        고(蠱)의 괘는 강(剛)이 위에서 높이 있고, 유(柔)가
        아래에 있어서 낮은채 하고 있을 뿐, 상하가 서로 교
        류함이 없고 협조함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안에는 어
        려운 일들이 일어난다.  혼란과 부패와 천재지변  등
        하늘은 변하고 땅에는 이상이 생기는 일들이 겹친다.
        그러나 곧 크게 형통하여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발전
        번영하리라. 대하를 건너감과 같이 결심과 용기를 내
        어 적극적으로 위험을 극복하여 전진하는 것이 좋다.
        사물의 이치는 항상 변화한다. 궁극에 도달하면 새로
        운 것이 시작되는 것은 자연의 운행법칙인 것이다.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象曰, 蠱剛上而柔下. 巽而上蠱. 蠱元亨而
            天下治也. 利涉大川, 往有事也. 先甲三日,
            後甲三日, 終則有始, 天行也.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한 하나의 에너지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동양에서는 그것을 "기(氣)"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기가
    어떻게 생겼냐고 굳이 표현한다면 일단은  동그랗게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는 두가지 성질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물체가  흩어지지 않
    고 형태를 이룰 수  있게끔 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그것을
    중국에서는 음성기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물체가  음성기운
    만 있으면 안으로 쪼그라 들어서 결국은 없어질텐데 그렇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힘이 작
    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양성기운이라고 말합니다. 따라
    서 만물은 음성기운과 양성기운이 밀고  당기는 작용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입
    니다. 그 음성기운과 양성기운이 상호작용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가시화하여  표시한 것이 "태극
    (太極)"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극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음에네
    르기와 양에네르기가 건전하게 유지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나 자신이  음양기운을 가지고 있듯이,  바깥세계도 나름
    대로 음양기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바깥세계의 음양
    기운과, 나 자신의 음양기운은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그  작용의
    싸이클을 64가지로 구분해 놓은 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그런데 64가지의 작용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리가 있는데 그
    것은 나 자신의 음에네르기가 내부로만  작용하면 양에네르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을 밀어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고,
    나 자신의 음에네르기가 밖으로 품어져 나가 세상을 포용하게 되
    면 양에네르기는 세상을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
    다. 자신의 음에네르기가 자기에게만 고찰되면 결국 세상과 분리
    되어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고 결국 짜증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자신의 음에너지가  세상을 수용하고  세상으로 뻗
    어나가면 세상의 기운이 자신에게 들어와서 결국은 세상의 호응을
    얻고 세상으로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에너지체는 정지함이 없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
    기 때문에 나의 에너지는 세상으로 전달되고, 세상의 에너지는 나
    에게로 전달됩니다. 그래서 주역은  역류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에너지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순조
    롭게 순환하지만, 자신에게 에너지가 고착되어 있는  사람은 순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자연은 그 에너지의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쪽의 기능에 흡수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자연에
    의해 자신이 깨어져 나가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만 관심을 가져 자신이 깨어졌다
    면 그 장본인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 세상은 어떻든지간에 전부다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
    다. 우리가 천국을 느끼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나의 에너지체
    가 내부로 고착되지 않고 세상으로 품어져 나가 세상을 포용하면
    곧 천국입니다. 반대로 나 자신에게 고착되어 머물러 있으면 지옥
    입니다.
      운전을 할 때, 항상 정신을 잡념이 없이 맑게 가지고 주위를 살
    피면서 가면 결코 큰 사고는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즐거운
    일에 빠져서 옆 사람과 노닥거리면서 웃고 떠들고 가면 느닷없이
    앞 차를 들이 받는다거나, 아니면 도로교통법을 지키지 않아 다른
    차에게 받친다거나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운전에 임할 때는 자
    기 기분나쁜 것, 즐거운 것, 이러한 것에 스스로 치우쳐 있지말아
    야 합니다. 신경질난다고 조금  양보하면 될 것을 성질대로  밀고
    나가면 그것이 곧 불행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속안에 빠져서 사는 사람은 결코 천당을
    맛볼 수 없습니다. 가야할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조금 온
    다고 해서 옷도 젖기 싫고 바깥에  나가면 칙칙하니까 집에서 쉬
    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식의 생활방식이  곧 지옥을
    벗어날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영혼은 비에 젖어서는 안됩니다.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빠져있
    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정신병원에 가서 서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
    매우 웃깁니다. 서로가  자기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은
    전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로 보면 마치  의사소통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 자기 증세를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우
    리는 지금 그런 속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혼이 분명히 자각되어져 있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되감아
    버리는 그와 같은 에네르기 속안에 말려들어  가지 않을 수 있습니
    다. 그렇게 말려들어 가지 않는 영혼은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다라
    는 의미에서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조체들이 서
    로 힘을 똘똘 뭉치고 뭉쳐서 모은다  하더라도 이 우주라는 전체
    를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천당은 영생을 얻을 수  있지만 지옥
    은 가봐야 끝내가서는 그 자체가 부서지고 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혼과 마음이 있습니다. 영혼이 깨어  있으면
    마음이 영혼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이리저리 쏠리고 이리저리 움직여서  자신의 영혼을 스스
    로 진흙 속안에 집어 넣듯이 짓밟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
    이 우유부단해지고 결단력이  없어지고 최선의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 낼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 심정에 빠져 있으면 하늘이 주
    는 복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주역의 괘는 두 괘가 하나로 복합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땅을
    뜻하는 괘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뜻하는 괘입니다. 자기와 자기
    바깥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라는 세계
    는 바깥의 세계로 움직여 나아가려고 해야 되고,  자기 바깥의 세
    계는 자기를 감싸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존재가 번영을 이
    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은  융합된 상태에서 보고 있습니다.
    두 괘가 어떻게 융합되느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가지에 꽃이 활짝
    피느냐 아니냐 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행복
    과 불행을 논하는 것은 가지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으로 사는 사람은 결코 거기에 치우쳐서 살
    지 않습니다.
      "고(蠱)의 괘는 강(剛)이  위에서 높이 있고,  유(柔)가 아래에
    있어서 낮은채 하고 있을 뿐, 상하가 서로  교류함이 없고 협조함
    이 없다." [산풍고]의 하괘는 음이 하나이고 양이 두 개입니다. 이
    것은 음의 괘입니다. 양이 두  개인데 왜 음의 괘인가?  양성기운
    두 개가 안에 숨겨져 있고 음  하나가 나타나면 이것은 전체적으
    로 여자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여자들도  겉으로는 여자이지
    만 안에는 양이 두 개있습니다. 여자가 자기 심사가  뒤틀리면 막
    무가내로 나올 수 있는 그 힘은 안에 양의 효가 두 개 겹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악을 쓰면서 싸우면 남자는 집
    니다. 왜 지냐하면 여자는 막무가내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앞뒤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남자는  감당을 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성을 넘어선 능력, 이것이 위대한 여자의 능력입니다.
      위의 괘는 음이 두 개이고 양이 하나로 남성입니다. 그래서  남
    자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아량이 넓은  것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
    다. 남자는 치사하고 유치합니다. 또 아량도 넓지  못합니다. 남자
    의 아량은 다 속셈일 뿐입니다. 여자는 손수건이라도 자기 정성껏
    수를 놓아서 남자한테 선물합니다. 남자들은 환심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가짜였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자는 가짜를 안합니다. 남자들이 싼 것이지만 비싸게
    보이게끔 허풍을 떱니다. 겉으로는 양에너지이니만 속안에 음에너
    지가 있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겉의 양에너지로 환심을 사서 속의
    음의 세계에 빠뜨려 버릴까 하고 공모 수작을 하는게 남자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속셈이 차면  바깥으로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고,
    속셈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심혈을  기울이다가 끝내가서는 스스
    로 양성에너지가 고갈되게 됩니다. 그래서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혼란과 부패와 천재지변 등 하늘은  변하고 땅에는 이상이 생
    기는 일들이 겹친다." [산풍고]는  위의 괘는 간(艮)괘로 소남(小
    男)의 효(爻)가 양성기운으로  위로 올라가고 아래 괘는 손(巽)괘
    로 장녀의 음성기운으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하늘은 밑으로 내려
    올려고 하고 땅은 위로 오를려고  하는 것이 주역의 법칙입니다.
    상괘는 남자로서 밑으로  감싸주어야 하는데, 감싸주려고 하지 않
    고 자기대로 위로 올라가려 하고,  밑의 괘는 여자로서 올라가려고
    해야 하는데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니 서로 갈라져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산풍고는  서로가 융합해서 교류하는
    것이 없고  분리되는 양상입니다. 국가로 보면  위의 지도층은 국
    민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만 추구하고, 국민은 국민대로
    국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어, 나라안에는
    혼란과 부패, 천재지변 등 어려운 일들이 겹쳐서 나타나는 것입니
    다. "그러나 곧 크게 형통하여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발전 번영하
    리라." 그러나 하괘는 양성기운이 둘, 음성기운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음성기운이 자기  고착에서 벗어나 세상을  품을 수
    있으면 결국 순조롭게 순환되어 끝내가서는 크게 형통할 수 있는
    괘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위  사람보다는 아래 사람이 더  의욕이
    있고 총명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것은  회사가 되었든지 가정이
    되었든지 전부 다 잘되는 것입니다. 윗 사람은 잘하는데  아래 사
    람이 축쳐져 있으면 거기서는 불만이 싹트게 되고 반드시 반발이
    일어나게 됩니다.
      스승이 못났더라도 제자가 훌륭하면 결국 그 집단은 번영할 수
    있는 것처럼, 지도층이 못났더라도 국민이 국가를  위하고 능력이
    있으면 그 나라는 부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감싸주느냐가 아니고, 내가
    세상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이 세
    상에서 할 일인 동시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대상. 산 기슭으로 바람이 거칠게  불어닥친다. 이것
        이 [고]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인민을
        고난에서 구제하고 자신의 덕성을 기른다.
       
               象曰, 山下有風蠱. 君子以振民育德.
     
      산 기슭으로 바람이 거칠게 불어닥치는  혼란한 때에는 혼란한
    세상을 받아들이려고 해야 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는  자기 마
    음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벗어나서  바라볼 수 있는 높은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갖추어지면 자연이 저절로 제 위치
    로 돌려놓기 때문에 나중에 큰 복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번째 음효. 아버지의 난사(難事)를  맡아서 처리한
        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잘 처리하는  훌륭한 아
        들이 셋 있다면  아버지에게도 허물은 없을  것이다.
        곤란과 위험이 따르지만 최후에는 길하다.
       
            初六, 幹交之蠱.  有子,  考无咎. 려終吉.
            象曰, 幹交之蠱, 意承考也.
           
      "아버지의 난사(難事)를 맡아서 처리한다." [양]이 와야할 자리
    인데 [음]이 있습니다. 위로 두 개의 양효와 그 위에 양괘가 있어
    전체의 양성 에너지가 밑으로 내려와서 첫번째 효가 받고 있는데,
    양이 와야할 자리에 음이  모두 받고 있으므로  아버지의 난사를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왜 난사인가 하면 상괘는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양성기운으로서 위로 올라가려 하고, 하괘는  위로 올라가
    려 해야 하는데 첫번째 음효는  음성기운이므로 아래로 내려가려
    고 해서 상호 교류가  되지않고 여기서  곤란이 벌어지기 때문입
    니다.
      국가로 보더라도 지도자층은 지도자층대로, 아래 국민들은 국민
    들대로 서로 화합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 그 영향을 받
    는 것은 결국 국민 개개인들입니다. 물가가 오르는데 위에서는 아
    랑곳하지 않고, 아래서는  월급을 올려달라고 아우성치고  파업을
    단행하면 그 고난은 누가 다 받느냐?  결국 밑의 자식들이 다 받
    게 된다, 즉 국민들이 모두 받는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잘 처리하는  훌륭한 아들이 셋 있다
    면 아버지에게도 허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더라
    도 정신차리고 있는 국민들이 많이 있으면 아버지는 허물이 없으
    리라, 즉 국가가 어렵더라도 국민들이 정신차리고  애국하는 마음
    으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나간다면 능히 고난을 극복하고 나중
    에는 번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번째 양효. 어머니의 난사(難事)를  맡아서 처리한
        다. 중용의 도리를 지켜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은 삼
        가고 임기응변의 융통성 있는 처리를 하라.
       
            九二, 幹母之蠱. 不可貞. 象曰, 幹母之蠱,
            得中道也.
           
      "어머니의 난사(難事)를 맡아서 처리한다." 음의 자리에 양효가
    있습니다. 음이 와서 난사를 받아내야 할 자리에 양효가 있으므로
    어머니의 난사를 처리한다고 주역은 풀이해 놓았습니다.  이 곳은
    음의 자리이면서 중도의 위치이기 때문에  첫번째 음효가 포용한
    넓은 세상을 굳건히 지켜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양성에너지만
    믿고 원칙만 고집하면 그 세계를 지켜내기가 어렵습니다.
      "중용의 도리를 지켜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은 삼가고 임기응변
    의 융통성 있는 처리를  하라." 우리가 볼 때  해바라기 씨앗이나
    달걀 등은 매우 연약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강한 것들입니다.
    달걀을 송곳으로 찌르면 깨어지지만, 균등한 힘으로 꽉 조이면 천
    하장사라도 그것을 깨트리지 못합니다. 즉 힘의 균형을 잃으면 깨
    어지지만, 균형된 힘을  주면 안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닭이 계란을 품을 때는 힘의 균형을  유지한 채로 조심스럽게 품
    습니다.
      달걀이 깨지게 만들어진 것은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라고 그렇
    게 된 것이지 깨트리라고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씨앗도 여간해서
    는 잘 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부분을 짓눌러 버리면 힘
    의 균형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깨집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달걀
    이 안깨어지듯이, 씨앗이 안깨어지듯이, 균형을 잃지 않으면 절대
    깨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달걀이 깨지게 만들어진 것은 어떻게 보면 신의 창조의 결점이
    라고 생각될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점이 바로 잘되기 위한
    유일한 돌출구입니다. 힘의  균형만 유지하면 달걀이  안깨지듯이
    인간도 그 이상으로 강하게 태어났습니다. 단 인간이 깨질  수 있
    는 부분은 곧 스스로가 육신의 껍질을 깨고 영혼이 나올 수 있도
    록 신이 배려해 준 유일한 돌출구입니다.
      살아가면서 인간이 받는 가슴의 상처, 아픔,  모든 고통들.... 그
    것들은 바로 그 사람의 영혼이 튀어나올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
    스입니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의 문을 닫아버리고 그 안에서 번민
    하고 살면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한 것들에 자신이 빠지지
    않고 잘 조화시켰을 때 어떤 힘이  가해져도 깨지지 않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곧 긍지입니다.
      인간이 교육을 잘못 받으면 너무 옳은 것에만 집착하여 스스로
    균형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마치 빚쟁이가 몰려올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버지 없다고  그래라."하고 시키면,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없다고  그러래요."하고 빚쟁이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옳은게 옳은 것이라고 고집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옳게 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즉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조선이 망한 것은 당시 성리학자들이  성리학의 진수는 모르는
    채, 겉 껍데기만 지키는 것을 고집하는 바람에  변화의 물결을 도
    외시한데서 온 결과입니다. 따라서 곤란이 닥치면  융통성과 적절
    한 임기응변으로 그 어려움을 피하면서 전체 세계의 조화와 균형
    을 유지하는 재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본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거짓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내 속셈을  감추고 상대방
    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만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을 내 속
    셈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실수한 것만큼 불찰
    이 없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자기 속셈을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
    만큼 미련한 것이 없습니다. 두번째 효는 바로 이러한  미련을 범
    하지 말고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균형된  세계를 지키라는 뜻입니
    다.  임기응변을 통해서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길이  어머니
    를 도울 수 있는 길입니다. 어머니를 돕는다라는 이야기는 우주가
    자기 자신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을 갖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
    이 없이 대화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아버지의 난사(難事)를  맡아서 처리한
        다. 지나친 바가 있어 뉘우침을 남기는  일도 있겠으
        나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
       
            九三, 幹交之蠱,  小有悔,  无大咎. 象曰,
            幹交之蠱, 終无咎也.
           
      "지나친 바가 있어 뉘우침을 남기는  일도 있겠으나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양의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난사를 맡아서
    처리합니다. 그리고 이 효는 위에서  양괘가 누르고, 아래서 양효
    가 위로 밀어올리는 좌우의 압력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양의 자리
    에서 양성기운으로 과감하게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나
    아가는데 좌우의 양성기운들로부터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다소
    과오는 있을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원래  양의 자
    리에서 이미 음을 구축한 상태에서 나아가는 양성기운이기때문에
    큰 허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점을 쳐서 이 괘가 나온다면 나와 관계하는 상하의 인간관계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직원과 내가  잘 융
    합이 되어 있는가? 겉으로는 잘 융합한 것같지만 각자는 자기 이
    익만 챙기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것들을 면밀히 관찰해서 이 괘의
    허물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산풍고와 같은 점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산풍고]와 같은 상태에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먼저 외부에 흔
    들림이 없이 자기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올 때 임기응변
    적으로 속임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해야할 자기 자신은 아무리 외부가 어렵다 하더라도 과감
    하게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조금 허물이 있더라도 과감히  해야
    합니다.
     
        네번째 음효. 아버지의 난사(難事)를 그대로 보고 있
        다. 어떻게 처리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곤경에 빠진다.
       
            六四, 裕父之蠱, 往見咎. 象曰, 裕父之蠱,
            往未得也.
           
      [음]의 자리에 [음]이 있으므로 성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아래
    는 음괘가 있고 위로는 음효가 있어  아래로 끌어당기고 위로 빨
    아들이니 중간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때 필요한 것이 양성기운입니다.  피곤해도, 만사가 귀찮더
    라도 더 애착을 가지고 뛰어들 수 있는 힘입니다. 자기를 위해 뛰
    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오래 있을 수 없으나, 하기 싫은 일에도
    정성을 쏟는 사람은 곧 자신의 결함을 하나씩 이겨낼 수 있는 사
    람입니다.
      짜증나는 일이 있다면 헌신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편히
    가지고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 일들은 덕이 되어 떠 받
    쳐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꽃은 반드시 향기를 제공한다
    는 사실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향기를 위해 꽃을  만들려면 꽃
    이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가시에 찔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
    다.
     
        다섯번째 음효. 아버지의 난사(難事)를  맡아 처리한
        다. 성덕(盛德)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으니 크게
        성과를 거두어 칭찬을 받는다.
       
            六五, 幹父之蠱. 用譽. 象曰, 幹父,  用譽,
            承以德也.
           
      양의 자리인데 음이 있어 아버지의 난사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효라 해서 단순한 음성기운이 아니라 양의 에너지를 충
    분히 품고 있는 음성기운입니다. 양성기운은 원래 밑에서 위로 흐
    르는 법이지만 여섯번째 양효는 마지막 위치이기 때문에 그 기운
    을 바로 아래 효가 받고 있고, 정응관계에 있는 양성기운을 이 효
    가 받고 있어 충분히 음덕을 베풀 수 있는 효입니다.
      "성덕(盛德)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으니 크게  성과를 거두
    어 칭찬을 받는다." 사람이 살다보면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
    니다. 과거에 누구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을 잊어 버리고 살
    아야 되는데, 그걸 끝까지 가슴에 두고 있는  사람이 그런 부류입
    니다.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덕을 베풀 수 있어야  다음에 조그마
    한 실수를 큰 실수로  알아 자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구멍일지라도 구멍난 항아리에는  물을 부
    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새는 세계를 하나 하나  자각해
    메꾸어 나아가야만 합니다.
     
        여섯번째 양효.  왕후(王侯)에게 벼슬하지   않고 야
        (野)에 묻혀 일신을 고결하게 보존한다. 그  뜻은 모
        범을 삼기에 족하다.
       
            上九, 不事王侯. 高尙其事. 象曰,  不事王
            侯, 志可則也.
           
      "왕후(王侯)에게 벼슬하지 않고 야(野)에  묻혀 일신을 고결하
    게 보존한다." [음]의 자리에  양효가 있으나 음성기운이  충분히
    구축된 양에너지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세계를 고집하지  않고
    음성기운을 밖으로 내보내는  양효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져왔던
    성과를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고 세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권력
    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고 자신은  바깥으로 나가서 권력만 그
    대로 남게한다, 즉 최고의 위치만 남겨두고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는 뜻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분명히 알고 지켜서 행하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향기가 나는 법입니다. 그 향기가  사람을 부르고, 향기안에 사람
    이 젖어들어 오면 몸에 향기가 배게 됩니다. 여섯번째  효는 벼슬
    하지 않고 일생을 고결하게 가지니 향기처럼  그 뜻이 타의 귀감
    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산풍고괘는 어려운 난관을 임기응변의 처세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가 마침내는 막힘을 통해서 도리어 나아갈 활로를 찾는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055
  • 8. 수지비(水地比)
    『 공존과 화합 』
           
      ●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   이미 길입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
      ●   다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   길이 만들어 집니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
            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지비(水地比)
     
        비(比)는 길한 괘다. 비는 서로 친애하고  돕는 것을
        의미한다. 덕망 높은 인자한 군주가 위에  있고 어진
        신하들이 이를 보필하여 상하 마음으로  협력하면 모
        든 인민들도 흠모하고 모여와 순종한다. 이와같이 하
        여 크게 발전하면서 길을 바르게 하여 변함이 없으면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중정의 도를 행함으로 상하 모
        두 호응하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불안정한 무리들이
        찾아와 순종한다. 이러한 귀순의 대열에 늦어지는 자
        는 마침내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 되어 화를 받
        게 되리라.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
            夫凶. 象曰,  比吉也,  比輔也. 下順從也.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
     
      10살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우리가 20세가 되면  세상사는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리다보니까 점점 자기 자
    신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잘 되어지는 일도 없고  하면
    나이 30에서 40세쯤 되서는 "인생이란  지겨운 것이다."라는 생각
    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한 50이  넘어가고
    60이 넘어가면 지겹다고 그랬으면서도 빨리 죽지는 않고, 또 앞으
    로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면, "지겨워도 좋
    다. 오래만 살아다오." 이러면서 이제 죽는 날이  겁나게 되는, 그
    런 불쌍한 인생을 사는게 우리 사람들입니다.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남 못지 않게  살려고 남과 항상 비교하
    여 더 잘되기 위해 싸우다 보니까, 별로 잘 되는  것도 없이 기껏
    해야 밤낮 거기가 거기인 채로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
    지기수로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포기하고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하면서 평범인지 무능인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그저 무능하게 살아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 아프면  어
    떻게든지 살려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큰 수술도  서슴없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생의  본능(Libido)'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생의 본능 이면에는 반드시 '죽음의 본능(Thanatos)'이 동시
    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이치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기 쉬
    운데, 사실은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행위입니다. 살기위해서
    음식물을 먹지만 음식물을 씹는 것은 파괴의 행위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 느끼려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
    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삶의 본능에  의해 악착같
    이 살아보려고 하지만 동시에 죽음으로써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
    어나고 싶은 충동도 들기 마련입니다.
      만물은 에너지만 빼놓고는 있는 형태를 바꾸려고 합니다.  사람
    들은 장벽에 부딛쳤을 때 자신을 먼저  걱정하고 살기 위해서 생
    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에는 죽음의 본능이 존재하게  되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게 됩니다.
     
      생명력으로 흐르는 사람은 죽음의 본능을  넘어서게 되어 있습
    니다. 장벽에 부딛쳤을 때 내 걱정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아갈 길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저절로 느껴지
    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나 길이고, 길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면 길이 안나타나고 무덤이 보이는 사람, 눈앞이 깜깜한
    사람, 이런 사람은 生의 본능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갖다 보니까
    死의 본능이 끌어 당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보면 대소사를 막론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으
    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으로, 자기가 뭔
    가 잘되려고 하는 사람은 어려움에 부딛치면 길을 잃어버리기 일
    쑤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길만을 선택해서 가려하고,  일단 선택해서 뭔가 좋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자꾸만 그곳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생명의  기운으로
    흐르는 사람은 반드시 길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돕고, 둘째는 땅이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이루기 위해 현상황에
    서 중요한 것이 이것이니까, 이것을 지금 나로 인하여 이루어지도
    록 해야되겠다."하고 흐르는 사람은  눈앞에 아무리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능히 그것을 뚫고 길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
    다. 왜냐하면 흐를려고 하는 자는 흐름 그 자체가  이미 길이라는
    것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이 없이 그냥  자기 욕
    심으로 가는 자는 어느 길로 가든지간에 길에 들어서면 전부다 어
    지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부모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은 결코 누가 준 것이 아니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메
    카니즘에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러해
    야 된다." 혹은 "저러해야 된다."하면서 우환을 떨고 있는 것을 우
    리는 '인생'인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흐른다.'라
    는 것이 가장  진리이며, 그 흐름위에 기쁨이 떠있든지, 슬픔이 떠
    있든지, 떠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사정일 뿐 인생 그 자체는 아
    닙니다.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이미 길입
    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다
    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길이 만들어 집니
    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길을 찾아갈까?" 하고 방황하
    는 사람은 이미 길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권능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흐르는 속안에서 "어떤 길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우리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흐르다 보면 별의별 것들이 다 끼어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들어
    오는 것 가운데서 나쁜 것은 흘려보내고, 필요한  것은 취하여 쓰
    면 됩니다. 필요없는 것이 들어왔다고 해서 길을 바꿀  필요는 없
    습니다. 우리가 심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은  어디에든지 동화되
    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흘려보낼 것
    은 흘려보내고, 자신은 계속해서 흐르다보면 어느 때인가 이미 넓
    은 강에 도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날이 오게 됩니다.
      흐르는 가운데 돌덩어리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
    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지만, 흐르는 흐름에 의해 자꾸 자꾸 쓸려 나가게 됩니다. 그러
    다 보면 돌은 깨어져 나가고, 닳고 닳아서 반질 반질해지고, 그래
    도 "휴! 살았다."하고 뭉쳐있는 것은 결국 바다에 이르지 못할 것
    입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며, 갈길은  가면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이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생을  개척해 나
    가는 것, 그런 사람에게 결국 하늘은 길을 터주고 땅이 화합을 해
    준다라는 괘가 바로 [수지비]입니다.
      [수지비]는 물이 땅위에 있어, 물과 땅이 공존하여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지수사]에서는 "뜻이 있으면 하늘이 도와주니 싸워 이
    겨라."하였고, [수지비]는 "이제 세상이 올바른 뜻 하나에 화합한
    다."는 것으로, [지수사]의 과정이 지나면 반드시 이 과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상. 대지가 물을 담고 있다. 이것이 [비]의 괘상이
        다.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제후를  만국에 봉
        하여 대지가 물을 포용하여 물이 대지에 스며드는 것
        처럼 서로 친애하고 화합하였다.
     
            象曰, 地上有水比. 先王以建萬國, 親諸侯.
     
      우리 인간의 정(精)이라는 것은 화합이 되지를 않게 되어 있습
    니다. 정은 뭉치면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낱개와 낱개는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뜻으로 살려면 착한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뜻이 있기 위해서는 착한 것도 넘어 설 수 있어야 합니
    다. 뜻을 위해서는 먼저  착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하기 위해서 설사 온 재산이 다 날라
    가더라도, 또 자기 동생이 죽어버릴 지라도 계속  노력할 수 있었
    던 그 뜻.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서 돈이나 벌려고 시작했
    더라면 재산 날리고 동생 죽은 다음에 노벨까지도 자살했어야 합
    니다. 또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로 전쟁을 일으켜서 자신이 이 세상
    을 지배하려 하였다면 다이나마이트가 터졌을 때 자신이 먼저 죽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 자신은 결코 그것을 전쟁에 목적하지
    아니하고 "우리 인간 세상에 얼마만한 편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 라는 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또 흐르는 자는 반드시  길을 얻는다고, 노벨이 실험대
    위에서 지쳐서 쓰러졌을 때 땅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다이나마이
    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발견은 결코 실험대 위에서 이
    루어진게 아닙니다.
      인간이 성공할 수 있는 요소도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옆으로부터 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하여 주저 앉는  사람한테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 법입니다. 노벨은 아무리 지친 것같지만 틀림없이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성공이 발견된 것입니다. 흐르는 자는 아무
    도 막지 못합니다. 신은 그냥 덥썩  안겨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
    것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굽이쳐야 됩니다.  흘러야 합니다.
    그렇게 흘렀을 때 만물이  화친하며 뒤따르는 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첫번째 음효.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
        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
        을 것이다.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
            □吉. 象曰, 比之初六, 有□吉也.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
    라." 첫번째 음효는 성실한 효입니다. 왜냐면 땅으로서 하늘과 세
    상 모두를 다 수용하면서 분명한 세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세운다고 땅위에 서서 하늘을 망각한채 자기 고집에
    빠지면 화친이라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첫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양]의 자리는  남에게 협조하지
    않고, 잘못하면  잘난척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낮춰서
    [음]의 덕을 키워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숙여서 그  뜻이 이루
    어질 때까지 세상과 화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불화를 이겨낸 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죽는다 하더라도, 몸이 갈라진다 하더라
    도, 나는 가리라. 침묵을 지키면서 나는 가리라."  하고 꾸준히 흐
    르면 뜻밖의 길운이 있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음효. 충심으로 군주에게 친화하고 보살피니,
        길이 그 마음을 지키면 길하리라.
     
            六二, 比之自內.  貞吉.  象曰, 比之自內,
            不自失也.
           
      [음]의 자리에 [음]이 있고,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
    어, 위의 뜻만 거역하지 않으면 크게 길합니다. 그러나 유의할 것
    은 세상사람들과 화친하여 꾸준히 나아가 잘되고 있을때, 까닭 잘
    못하면 뜻이 자기 본위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를 위
    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 정치인이 될 수 없습
    니다. 땅이 조금 따랐다고 해서 결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생
    명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합니다. 국민은 두 번 속지 않습니다. 그
    래서 뜻을 져버리지 말고, 주관적인 자기가  개입되어지지 않는다
    면 대길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가엾은 일이다.
     
            六三,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
            乎.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 내괘에서 외괘로 비약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네번째 효가 음효이고, 밑의 효도  음효이고, 대응관계에 있는 효
    도 음효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효의 자리는  [양]의 자리입니다.
    [양]의 자리에 있기때문에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있는데
    [양]을 만날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외로운  처지라고 하였
    습니다.
      그러나 외롭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사람
    은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록 외로운 법입니다. 세번째  효는 내괘
    중에서 가장 정상입니다. 첫번째, 두번째에서 대길하여 위에 오르
    게 되면 이제 그것은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외롭다고  해서 외
    로움에 빠지면 그 자리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마다 최대의 비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의 외로움과 함께 그 외로움  속에서 빙긋이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정을 넘어서서 하늘의 기운과  함께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인간 세상에 아름다운
    미소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높은  지위에 올
    랐을 때 친화할 데가 없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침울하고
    우울하게 하지 말고,  여기가 양효의 자리이니까,  행하려는 것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라고 이 효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음효.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
        다. 친화하고 정성껏 도와 신하의 도리를  지켜 변함
        이 없으면 길하리라.
     
            六四, 外比之. 貞吉.  象曰, 外比於賢, 以
            從上也.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다." 다섯번째  양효의 뜻
    을 받들어 신하의 도리를 지켜 계속 흐르면 강을 이룰 수 있습니
    다. 강은 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물이 없는 강은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괄세받지
    않기 위해서는 '흐른다'고 하는 강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합니다.
     
        다섯번째 양효. 훌륭한  임금이 왕에 있으니  친화와
        협조의 덕이 뚜렷이 드러나 천하가 우러러  본다. 제
        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
        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자기를 향한 자를 보
        호하고 자기를 등진 자를 잡는 것이다.  왕이 이와같
        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
        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다. 중용의 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失前禽. 邑人不誠.
            吉. 象曰,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誠, 上使中也.
           
      "제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
    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강물은 맑습니다.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흐르
    는 강물에게는 더러운 것도 많이 들어 옵니다. 그러나  강물이 멈
    추지 않고 흐르고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대로 머물
    르고 흐르는 물은 맑을 수 있습니다. 더럽다고 못해먹는 사람, 어
    렵다고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흐르지 않고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사람은 더러운 것이 들어오더라도  일단은 내버려 둡니
    다. 그러면 더러운 것은 더러운 데로 따로 어디서  안주하려고 합
    니다. 물에 똥덩어리가 들어왔을 때 강물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데려가지도 않습니다. 똥덩어리가 못
    가겠다고 바닥에 들러붙어 있으면 내버려 두고  갑니다. 똥덩어리
    는 결국 흐르는 물한테 조금씩 조금씩  깍여 가지고 없어져 버립
    니다.
      "왕이 이와같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생명력
    의 흐름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데에는 반드시
    딸려오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면서 생명력은 흐르고 있습니다. 훌륭한 뜻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겠다고 오는  사람은 다 받아주는 것,
    따르지 않겠다는 자는 그대로 두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백
    성들은 안심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비와 어떠한 어려움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
    받아주고 가야 합니다. 받아주고 가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
    다. 그러다 보면 떨어져 나갈 것은 자연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훌륭한 군주는 그와같은 것이다라고 다섯번째  효는 말하고 있습
    니다.
      흐르는 데는 뭔가 자꾸 딸려옵니다. 집에서 부채를 들고 흔들어
    보면 별의 것들이 다 딸려옵니다. 먼지가 딸려온다고 해서 훌륭한
    뜻은 그걸 막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는 법, 쏘지 않고 두는 법, 그
    러므로 짐승이 제멋대로 달아나는 것은 쏘고 거꾸로 이쪽에 오는
    것, 즉 여기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은 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흐
    르는 물에 돌맹이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겠다고 하
    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는데, 흐르는
    것한테 자꾸자꾸 쓸려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돌은 깨져 나가
    고 닳고 닳아져 맨질맨질해지고, 그래도 "휴,  살았다."고 해서 뭉
    쳐 있는 것, 그것은 바다로 가지 못합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아라.  갈길을 가면
    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튼튼
    한 강을 이룬다." 그렇게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바로 수
    지비의 괘입니다. 그 도중에 들어오는 것들, 좋은 것이든 나쁜 것
    이든, 좋은 일은 받아서 함께 흐르고 나쁜 일은 함께 흐르되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흐르면 반드시  이 괘 다음에는 크게
    성공한다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
        다. 이미 남의 손뒤에서서 친화할 것이 없다. 처음에
        남과 사귀지 못하였으니 누구와 더불어  마지막을 함
        께 할 수 있겠는가. 흉하다.
     
            上六, 比之无首. 凶.  象曰, 比之无首, 无
            所終也.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다." 회사원중에  눈앞의 이
    익을 따라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100만원을 받고
    있는데 A회사에서 110만원을 준다고 하면 그리로 가고, 또 B회사
    에서 120만원을 둔다고 하면  다시 B회사로 가는 그런  사람입니
    다. 그 사람은 당장은  10만원이나 20만원을 더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억이나 20억은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눈앞의 가벼운 이득을 보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사람
    은 결국은 조그만 것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코 외적으로 주어지는 조그마한 이득에  눈이 멀어서는 안됩니
    다. 그런 사람은 이미 크게 뿌리를 깊이 내려 클  수 있는 나무를
    등져버린 것입니다. 훌륭한  뜻을 갖고 뜻을  보필해야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뜻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
    에 영원히 훌륭한 자리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물이 흘러갈 때는 구축되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물은
    흐르다보니까 강이 되었습니다.  또 흐르다보니까 바다가  됐습니
    다. 아주 커다란 세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흐르는 생명
    력은 지구의 3/4이나 차지하고 있는 물과 다름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뜻으로 흐르는 자가 되어  이 세상
    에 풍요를 구축해내야 하겠습니다.
     
     유성 記..…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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