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수지비(水地比)
페이지 정보
본문
『 공존과 화합 』
●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 이미 길입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
● 다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 길이 만들어 집니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
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지비(水地比)
비(比)는 길한 괘다. 비는 서로 친애하고 돕는 것을
의미한다. 덕망 높은 인자한 군주가 위에 있고 어진
신하들이 이를 보필하여 상하 마음으로 협력하면 모
든 인민들도 흠모하고 모여와 순종한다. 이와같이 하
여 크게 발전하면서 길을 바르게 하여 변함이 없으면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중정의 도를 행함으로 상하 모
두 호응하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불안정한 무리들이
찾아와 순종한다. 이러한 귀순의 대열에 늦어지는 자
는 마침내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 되어 화를 받
게 되리라.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
夫凶. 象曰, 比吉也, 比輔也. 下順從也.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
10살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우리가 20세가 되면 세상사는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리다보니까 점점 자기 자
신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잘 되어지는 일도 없고 하면
나이 30에서 40세쯤 되서는 "인생이란 지겨운 것이다."라는 생각
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한 50이 넘어가고
60이 넘어가면 지겹다고 그랬으면서도 빨리 죽지는 않고, 또 앞으
로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면, "지겨워도 좋
다. 오래만 살아다오." 이러면서 이제 죽는 날이 겁나게 되는, 그
런 불쌍한 인생을 사는게 우리 사람들입니다.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남 못지 않게 살려고 남과 항상 비교하
여 더 잘되기 위해 싸우다 보니까, 별로 잘 되는 것도 없이 기껏
해야 밤낮 거기가 거기인 채로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
지기수로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포기하고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하면서 평범인지 무능인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그저 무능하게 살아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 아프면 어
떻게든지 살려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큰 수술도 서슴없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생의 본능(Libido)'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생의 본능 이면에는 반드시 '죽음의 본능(Thanatos)'이 동시
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이치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기 쉬
운데, 사실은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행위입니다. 살기위해서
음식물을 먹지만 음식물을 씹는 것은 파괴의 행위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 느끼려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
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삶의 본능에 의해 악착같
이 살아보려고 하지만 동시에 죽음으로써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
어나고 싶은 충동도 들기 마련입니다.
만물은 에너지만 빼놓고는 있는 형태를 바꾸려고 합니다. 사람
들은 장벽에 부딛쳤을 때 자신을 먼저 걱정하고 살기 위해서 생
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에는 죽음의 본능이 존재하게 되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게 됩니다.
생명력으로 흐르는 사람은 죽음의 본능을 넘어서게 되어 있습
니다. 장벽에 부딛쳤을 때 내 걱정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아갈 길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저절로 느껴지
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나 길이고, 길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면 길이 안나타나고 무덤이 보이는 사람, 눈앞이 깜깜한
사람, 이런 사람은 生의 본능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갖다 보니까
死의 본능이 끌어 당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보면 대소사를 막론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으
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으로, 자기가 뭔
가 잘되려고 하는 사람은 어려움에 부딛치면 길을 잃어버리기 일
쑤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길만을 선택해서 가려하고, 일단 선택해서 뭔가 좋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자꾸만 그곳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생명의 기운으로
흐르는 사람은 반드시 길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돕고, 둘째는 땅이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이루기 위해 현상황에
서 중요한 것이 이것이니까, 이것을 지금 나로 인하여 이루어지도
록 해야되겠다."하고 흐르는 사람은 눈앞에 아무리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능히 그것을 뚫고 길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
다. 왜냐하면 흐를려고 하는 자는 흐름 그 자체가 이미 길이라는
것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이 없이 그냥 자기 욕
심으로 가는 자는 어느 길로 가든지간에 길에 들어서면 전부다 어
지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부모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은 결코 누가 준 것이 아니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메
카니즘에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러해
야 된다." 혹은 "저러해야 된다."하면서 우환을 떨고 있는 것을 우
리는 '인생'인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흐른다.'라
는 것이 가장 진리이며, 그 흐름위에 기쁨이 떠있든지, 슬픔이 떠
있든지, 떠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사정일 뿐 인생 그 자체는 아
닙니다.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이미 길입
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다
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길이 만들어 집니
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길을 찾아갈까?" 하고 방황하
는 사람은 이미 길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권능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흐르는 속안에서 "어떤 길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우리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흐르다 보면 별의별 것들이 다 끼어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들어
오는 것 가운데서 나쁜 것은 흘려보내고, 필요한 것은 취하여 쓰
면 됩니다. 필요없는 것이 들어왔다고 해서 길을 바꿀 필요는 없
습니다. 우리가 심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은 어디에든지 동화되
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흘려보낼 것
은 흘려보내고, 자신은 계속해서 흐르다보면 어느 때인가 이미 넓
은 강에 도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날이 오게 됩니다.
흐르는 가운데 돌덩어리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
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지만, 흐르는 흐름에 의해 자꾸 자꾸 쓸려 나가게 됩니다. 그러
다 보면 돌은 깨어져 나가고, 닳고 닳아서 반질 반질해지고, 그래
도 "휴! 살았다."하고 뭉쳐있는 것은 결국 바다에 이르지 못할 것
입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며, 갈길은 가면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이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생을 개척해 나
가는 것, 그런 사람에게 결국 하늘은 길을 터주고 땅이 화합을 해
준다라는 괘가 바로 [수지비]입니다.
[수지비]는 물이 땅위에 있어, 물과 땅이 공존하여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지수사]에서는 "뜻이 있으면 하늘이 도와주니 싸워 이
겨라."하였고, [수지비]는 "이제 세상이 올바른 뜻 하나에 화합한
다."는 것으로, [지수사]의 과정이 지나면 반드시 이 과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상. 대지가 물을 담고 있다. 이것이 [비]의 괘상이
다.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제후를 만국에 봉
하여 대지가 물을 포용하여 물이 대지에 스며드는 것
처럼 서로 친애하고 화합하였다.
象曰, 地上有水比. 先王以建萬國, 親諸侯.
우리 인간의 정(精)이라는 것은 화합이 되지를 않게 되어 있습
니다. 정은 뭉치면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낱개와 낱개는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뜻으로 살려면 착한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뜻이 있기 위해서는 착한 것도 넘어 설 수 있어야 합니
다. 뜻을 위해서는 먼저 착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하기 위해서 설사 온 재산이 다 날라
가더라도, 또 자기 동생이 죽어버릴 지라도 계속 노력할 수 있었
던 그 뜻.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서 돈이나 벌려고 시작했
더라면 재산 날리고 동생 죽은 다음에 노벨까지도 자살했어야 합
니다. 또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로 전쟁을 일으켜서 자신이 이 세상
을 지배하려 하였다면 다이나마이트가 터졌을 때 자신이 먼저 죽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 자신은 결코 그것을 전쟁에 목적하지
아니하고 "우리 인간 세상에 얼마만한 편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 라는 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또 흐르는 자는 반드시 길을 얻는다고, 노벨이 실험대
위에서 지쳐서 쓰러졌을 때 땅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다이나마이
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발견은 결코 실험대 위에서 이
루어진게 아닙니다.
인간이 성공할 수 있는 요소도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옆으로부터 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하여 주저 앉는 사람한테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 법입니다. 노벨은 아무리 지친 것같지만 틀림없이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성공이 발견된 것입니다. 흐르는 자는 아무
도 막지 못합니다. 신은 그냥 덥썩 안겨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
것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굽이쳐야 됩니다. 흘러야 합니다.
그렇게 흘렀을 때 만물이 화친하며 뒤따르는 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첫번째 음효.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
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
을 것이다.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
□吉. 象曰, 比之初六, 有□吉也.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
라." 첫번째 음효는 성실한 효입니다. 왜냐면 땅으로서 하늘과 세
상 모두를 다 수용하면서 분명한 세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세운다고 땅위에 서서 하늘을 망각한채 자기 고집에
빠지면 화친이라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첫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양]의 자리는 남에게 협조하지
않고, 잘못하면 잘난척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낮춰서
[음]의 덕을 키워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숙여서 그 뜻이 이루
어질 때까지 세상과 화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불화를 이겨낸 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죽는다 하더라도, 몸이 갈라진다 하더라
도, 나는 가리라. 침묵을 지키면서 나는 가리라." 하고 꾸준히 흐
르면 뜻밖의 길운이 있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음효. 충심으로 군주에게 친화하고 보살피니,
길이 그 마음을 지키면 길하리라.
六二, 比之自內. 貞吉. 象曰, 比之自內,
不自失也.
[음]의 자리에 [음]이 있고,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
어, 위의 뜻만 거역하지 않으면 크게 길합니다. 그러나 유의할 것
은 세상사람들과 화친하여 꾸준히 나아가 잘되고 있을때, 까닭 잘
못하면 뜻이 자기 본위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를 위
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 정치인이 될 수 없습
니다. 땅이 조금 따랐다고 해서 결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생
명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합니다. 국민은 두 번 속지 않습니다. 그
래서 뜻을 져버리지 말고, 주관적인 자기가 개입되어지지 않는다
면 대길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가엾은 일이다.
六三,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
乎.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 내괘에서 외괘로 비약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네번째 효가 음효이고, 밑의 효도 음효이고, 대응관계에 있는 효
도 음효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효의 자리는 [양]의 자리입니다.
[양]의 자리에 있기때문에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있는데
[양]을 만날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외로운 처지라고 하였
습니다.
그러나 외롭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사람
은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록 외로운 법입니다. 세번째 효는 내괘
중에서 가장 정상입니다. 첫번째, 두번째에서 대길하여 위에 오르
게 되면 이제 그것은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외롭다고 해서 외
로움에 빠지면 그 자리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마다 최대의 비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의 외로움과 함께 그 외로움 속에서 빙긋이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정을 넘어서서 하늘의 기운과 함께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인간 세상에 아름다운
미소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높은 지위에 올
랐을 때 친화할 데가 없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침울하고
우울하게 하지 말고, 여기가 양효의 자리이니까, 행하려는 것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라고 이 효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음효.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
다. 친화하고 정성껏 도와 신하의 도리를 지켜 변함
이 없으면 길하리라.
六四, 外比之. 貞吉. 象曰, 外比於賢, 以
從上也.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다." 다섯번째 양효의 뜻
을 받들어 신하의 도리를 지켜 계속 흐르면 강을 이룰 수 있습니
다. 강은 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물이 없는 강은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괄세받지
않기 위해서는 '흐른다'고 하는 강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합니다.
다섯번째 양효. 훌륭한 임금이 왕에 있으니 친화와
협조의 덕이 뚜렷이 드러나 천하가 우러러 본다. 제
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
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자기를 향한 자를 보
호하고 자기를 등진 자를 잡는 것이다. 왕이 이와같
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
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다. 중용의 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失前禽. 邑人不誠.
吉. 象曰,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誠, 上使中也.
"제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
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강물은 맑습니다.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흐르
는 강물에게는 더러운 것도 많이 들어 옵니다. 그러나 강물이 멈
추지 않고 흐르고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대로 머물
르고 흐르는 물은 맑을 수 있습니다. 더럽다고 못해먹는 사람, 어
렵다고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흐르지 않고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사람은 더러운 것이 들어오더라도 일단은 내버려 둡니
다. 그러면 더러운 것은 더러운 데로 따로 어디서 안주하려고 합
니다. 물에 똥덩어리가 들어왔을 때 강물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데려가지도 않습니다. 똥덩어리가 못
가겠다고 바닥에 들러붙어 있으면 내버려 두고 갑니다. 똥덩어리
는 결국 흐르는 물한테 조금씩 조금씩 깍여 가지고 없어져 버립
니다.
"왕이 이와같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생명력
의 흐름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데에는 반드시
딸려오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면서 생명력은 흐르고 있습니다. 훌륭한 뜻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겠다고 오는 사람은 다 받아주는 것,
따르지 않겠다는 자는 그대로 두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백
성들은 안심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비와 어떠한 어려움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
받아주고 가야 합니다. 받아주고 가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
다. 그러다 보면 떨어져 나갈 것은 자연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훌륭한 군주는 그와같은 것이다라고 다섯번째 효는 말하고 있습
니다.
흐르는 데는 뭔가 자꾸 딸려옵니다. 집에서 부채를 들고 흔들어
보면 별의 것들이 다 딸려옵니다. 먼지가 딸려온다고 해서 훌륭한
뜻은 그걸 막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는 법, 쏘지 않고 두는 법, 그
러므로 짐승이 제멋대로 달아나는 것은 쏘고 거꾸로 이쪽에 오는
것, 즉 여기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은 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흐
르는 물에 돌맹이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겠다고 하
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는데, 흐르는
것한테 자꾸자꾸 쓸려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돌은 깨져 나가
고 닳고 닳아져 맨질맨질해지고, 그래도 "휴, 살았다."고 해서 뭉
쳐 있는 것, 그것은 바다로 가지 못합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아라. 갈길을 가면
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튼튼
한 강을 이룬다." 그렇게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바로 수
지비의 괘입니다. 그 도중에 들어오는 것들, 좋은 것이든 나쁜 것
이든, 좋은 일은 받아서 함께 흐르고 나쁜 일은 함께 흐르되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흐르면 반드시 이 괘 다음에는 크게
성공한다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
다. 이미 남의 손뒤에서서 친화할 것이 없다. 처음에
남과 사귀지 못하였으니 누구와 더불어 마지막을 함
께 할 수 있겠는가. 흉하다.
上六, 比之无首. 凶. 象曰, 比之无首, 无
所終也.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다." 회사원중에 눈앞의 이
익을 따라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100만원을 받고
있는데 A회사에서 110만원을 준다고 하면 그리로 가고, 또 B회사
에서 120만원을 둔다고 하면 다시 B회사로 가는 그런 사람입니
다. 그 사람은 당장은 10만원이나 20만원을 더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억이나 20억은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눈앞의 가벼운 이득을 보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사람
은 결국은 조그만 것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코 외적으로 주어지는 조그마한 이득에 눈이 멀어서는 안됩니
다. 그런 사람은 이미 크게 뿌리를 깊이 내려 클 수 있는 나무를
등져버린 것입니다. 훌륭한 뜻을 갖고 뜻을 보필해야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뜻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
에 영원히 훌륭한 자리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물이 흘러갈 때는 구축되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물은
흐르다보니까 강이 되었습니다. 또 흐르다보니까 바다가 됐습니
다. 아주 커다란 세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흐르는 생명
력은 지구의 3/4이나 차지하고 있는 물과 다름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뜻으로 흐르는 자가 되어 이 세상
에 풍요를 구축해내야 하겠습니다.
유성 記..
●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 이미 길입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
● 다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 길이 만들어 집니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
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지비(水地比)
비(比)는 길한 괘다. 비는 서로 친애하고 돕는 것을
의미한다. 덕망 높은 인자한 군주가 위에 있고 어진
신하들이 이를 보필하여 상하 마음으로 협력하면 모
든 인민들도 흠모하고 모여와 순종한다. 이와같이 하
여 크게 발전하면서 길을 바르게 하여 변함이 없으면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중정의 도를 행함으로 상하 모
두 호응하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불안정한 무리들이
찾아와 순종한다. 이러한 귀순의 대열에 늦어지는 자
는 마침내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 되어 화를 받
게 되리라.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
夫凶. 象曰, 比吉也, 比輔也. 下順從也.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
10살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우리가 20세가 되면 세상사는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리다보니까 점점 자기 자
신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잘 되어지는 일도 없고 하면
나이 30에서 40세쯤 되서는 "인생이란 지겨운 것이다."라는 생각
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한 50이 넘어가고
60이 넘어가면 지겹다고 그랬으면서도 빨리 죽지는 않고, 또 앞으
로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면, "지겨워도 좋
다. 오래만 살아다오." 이러면서 이제 죽는 날이 겁나게 되는, 그
런 불쌍한 인생을 사는게 우리 사람들입니다.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남 못지 않게 살려고 남과 항상 비교하
여 더 잘되기 위해 싸우다 보니까, 별로 잘 되는 것도 없이 기껏
해야 밤낮 거기가 거기인 채로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
지기수로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포기하고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하면서 평범인지 무능인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그저 무능하게 살아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 아프면 어
떻게든지 살려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큰 수술도 서슴없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생의 본능(Libido)'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생의 본능 이면에는 반드시 '죽음의 본능(Thanatos)'이 동시
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이치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기 쉬
운데, 사실은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행위입니다. 살기위해서
음식물을 먹지만 음식물을 씹는 것은 파괴의 행위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 느끼려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
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삶의 본능에 의해 악착같
이 살아보려고 하지만 동시에 죽음으로써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
어나고 싶은 충동도 들기 마련입니다.
만물은 에너지만 빼놓고는 있는 형태를 바꾸려고 합니다. 사람
들은 장벽에 부딛쳤을 때 자신을 먼저 걱정하고 살기 위해서 생
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에는 죽음의 본능이 존재하게 되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게 됩니다.
생명력으로 흐르는 사람은 죽음의 본능을 넘어서게 되어 있습
니다. 장벽에 부딛쳤을 때 내 걱정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아갈 길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저절로 느껴지
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나 길이고, 길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면 길이 안나타나고 무덤이 보이는 사람, 눈앞이 깜깜한
사람, 이런 사람은 生의 본능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갖다 보니까
死의 본능이 끌어 당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보면 대소사를 막론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으
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으로, 자기가 뭔
가 잘되려고 하는 사람은 어려움에 부딛치면 길을 잃어버리기 일
쑤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길만을 선택해서 가려하고, 일단 선택해서 뭔가 좋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자꾸만 그곳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생명의 기운으로
흐르는 사람은 반드시 길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돕고, 둘째는 땅이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이루기 위해 현상황에
서 중요한 것이 이것이니까, 이것을 지금 나로 인하여 이루어지도
록 해야되겠다."하고 흐르는 사람은 눈앞에 아무리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능히 그것을 뚫고 길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
다. 왜냐하면 흐를려고 하는 자는 흐름 그 자체가 이미 길이라는
것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이 없이 그냥 자기 욕
심으로 가는 자는 어느 길로 가든지간에 길에 들어서면 전부다 어
지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부모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은 결코 누가 준 것이 아니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메
카니즘에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러해
야 된다." 혹은 "저러해야 된다."하면서 우환을 떨고 있는 것을 우
리는 '인생'인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흐른다.'라
는 것이 가장 진리이며, 그 흐름위에 기쁨이 떠있든지, 슬픔이 떠
있든지, 떠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사정일 뿐 인생 그 자체는 아
닙니다.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이미 길입
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다
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길이 만들어 집니
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길을 찾아갈까?" 하고 방황하
는 사람은 이미 길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권능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흐르는 속안에서 "어떤 길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우리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흐르다 보면 별의별 것들이 다 끼어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들어
오는 것 가운데서 나쁜 것은 흘려보내고, 필요한 것은 취하여 쓰
면 됩니다. 필요없는 것이 들어왔다고 해서 길을 바꿀 필요는 없
습니다. 우리가 심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은 어디에든지 동화되
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흘려보낼 것
은 흘려보내고, 자신은 계속해서 흐르다보면 어느 때인가 이미 넓
은 강에 도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날이 오게 됩니다.
흐르는 가운데 돌덩어리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
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지만, 흐르는 흐름에 의해 자꾸 자꾸 쓸려 나가게 됩니다. 그러
다 보면 돌은 깨어져 나가고, 닳고 닳아서 반질 반질해지고, 그래
도 "휴! 살았다."하고 뭉쳐있는 것은 결국 바다에 이르지 못할 것
입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며, 갈길은 가면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이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생을 개척해 나
가는 것, 그런 사람에게 결국 하늘은 길을 터주고 땅이 화합을 해
준다라는 괘가 바로 [수지비]입니다.
[수지비]는 물이 땅위에 있어, 물과 땅이 공존하여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지수사]에서는 "뜻이 있으면 하늘이 도와주니 싸워 이
겨라."하였고, [수지비]는 "이제 세상이 올바른 뜻 하나에 화합한
다."는 것으로, [지수사]의 과정이 지나면 반드시 이 과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상. 대지가 물을 담고 있다. 이것이 [비]의 괘상이
다.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제후를 만국에 봉
하여 대지가 물을 포용하여 물이 대지에 스며드는 것
처럼 서로 친애하고 화합하였다.
象曰, 地上有水比. 先王以建萬國, 親諸侯.
우리 인간의 정(精)이라는 것은 화합이 되지를 않게 되어 있습
니다. 정은 뭉치면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낱개와 낱개는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뜻으로 살려면 착한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뜻이 있기 위해서는 착한 것도 넘어 설 수 있어야 합니
다. 뜻을 위해서는 먼저 착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하기 위해서 설사 온 재산이 다 날라
가더라도, 또 자기 동생이 죽어버릴 지라도 계속 노력할 수 있었
던 그 뜻.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서 돈이나 벌려고 시작했
더라면 재산 날리고 동생 죽은 다음에 노벨까지도 자살했어야 합
니다. 또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로 전쟁을 일으켜서 자신이 이 세상
을 지배하려 하였다면 다이나마이트가 터졌을 때 자신이 먼저 죽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 자신은 결코 그것을 전쟁에 목적하지
아니하고 "우리 인간 세상에 얼마만한 편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 라는 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또 흐르는 자는 반드시 길을 얻는다고, 노벨이 실험대
위에서 지쳐서 쓰러졌을 때 땅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다이나마이
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발견은 결코 실험대 위에서 이
루어진게 아닙니다.
인간이 성공할 수 있는 요소도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옆으로부터 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하여 주저 앉는 사람한테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 법입니다. 노벨은 아무리 지친 것같지만 틀림없이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성공이 발견된 것입니다. 흐르는 자는 아무
도 막지 못합니다. 신은 그냥 덥썩 안겨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
것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굽이쳐야 됩니다. 흘러야 합니다.
그렇게 흘렀을 때 만물이 화친하며 뒤따르는 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첫번째 음효.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
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
을 것이다.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
□吉. 象曰, 比之初六, 有□吉也.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
라." 첫번째 음효는 성실한 효입니다. 왜냐면 땅으로서 하늘과 세
상 모두를 다 수용하면서 분명한 세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세운다고 땅위에 서서 하늘을 망각한채 자기 고집에
빠지면 화친이라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첫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양]의 자리는 남에게 협조하지
않고, 잘못하면 잘난척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낮춰서
[음]의 덕을 키워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숙여서 그 뜻이 이루
어질 때까지 세상과 화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불화를 이겨낸 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죽는다 하더라도, 몸이 갈라진다 하더라
도, 나는 가리라. 침묵을 지키면서 나는 가리라." 하고 꾸준히 흐
르면 뜻밖의 길운이 있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음효. 충심으로 군주에게 친화하고 보살피니,
길이 그 마음을 지키면 길하리라.
六二, 比之自內. 貞吉. 象曰, 比之自內,
不自失也.
[음]의 자리에 [음]이 있고,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
어, 위의 뜻만 거역하지 않으면 크게 길합니다. 그러나 유의할 것
은 세상사람들과 화친하여 꾸준히 나아가 잘되고 있을때, 까닭 잘
못하면 뜻이 자기 본위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를 위
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 정치인이 될 수 없습
니다. 땅이 조금 따랐다고 해서 결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생
명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합니다. 국민은 두 번 속지 않습니다. 그
래서 뜻을 져버리지 말고, 주관적인 자기가 개입되어지지 않는다
면 대길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가엾은 일이다.
六三,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
乎.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 내괘에서 외괘로 비약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네번째 효가 음효이고, 밑의 효도 음효이고, 대응관계에 있는 효
도 음효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효의 자리는 [양]의 자리입니다.
[양]의 자리에 있기때문에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있는데
[양]을 만날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외로운 처지라고 하였
습니다.
그러나 외롭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사람
은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록 외로운 법입니다. 세번째 효는 내괘
중에서 가장 정상입니다. 첫번째, 두번째에서 대길하여 위에 오르
게 되면 이제 그것은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외롭다고 해서 외
로움에 빠지면 그 자리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마다 최대의 비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의 외로움과 함께 그 외로움 속에서 빙긋이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정을 넘어서서 하늘의 기운과 함께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인간 세상에 아름다운
미소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높은 지위에 올
랐을 때 친화할 데가 없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침울하고
우울하게 하지 말고, 여기가 양효의 자리이니까, 행하려는 것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라고 이 효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음효.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
다. 친화하고 정성껏 도와 신하의 도리를 지켜 변함
이 없으면 길하리라.
六四, 外比之. 貞吉. 象曰, 外比於賢, 以
從上也.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다." 다섯번째 양효의 뜻
을 받들어 신하의 도리를 지켜 계속 흐르면 강을 이룰 수 있습니
다. 강은 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물이 없는 강은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괄세받지
않기 위해서는 '흐른다'고 하는 강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합니다.
다섯번째 양효. 훌륭한 임금이 왕에 있으니 친화와
협조의 덕이 뚜렷이 드러나 천하가 우러러 본다. 제
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
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자기를 향한 자를 보
호하고 자기를 등진 자를 잡는 것이다. 왕이 이와같
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
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다. 중용의 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失前禽. 邑人不誠.
吉. 象曰,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誠, 上使中也.
"제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
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강물은 맑습니다.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흐르
는 강물에게는 더러운 것도 많이 들어 옵니다. 그러나 강물이 멈
추지 않고 흐르고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대로 머물
르고 흐르는 물은 맑을 수 있습니다. 더럽다고 못해먹는 사람, 어
렵다고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흐르지 않고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사람은 더러운 것이 들어오더라도 일단은 내버려 둡니
다. 그러면 더러운 것은 더러운 데로 따로 어디서 안주하려고 합
니다. 물에 똥덩어리가 들어왔을 때 강물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데려가지도 않습니다. 똥덩어리가 못
가겠다고 바닥에 들러붙어 있으면 내버려 두고 갑니다. 똥덩어리
는 결국 흐르는 물한테 조금씩 조금씩 깍여 가지고 없어져 버립
니다.
"왕이 이와같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생명력
의 흐름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데에는 반드시
딸려오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면서 생명력은 흐르고 있습니다. 훌륭한 뜻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겠다고 오는 사람은 다 받아주는 것,
따르지 않겠다는 자는 그대로 두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백
성들은 안심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비와 어떠한 어려움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
받아주고 가야 합니다. 받아주고 가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
다. 그러다 보면 떨어져 나갈 것은 자연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훌륭한 군주는 그와같은 것이다라고 다섯번째 효는 말하고 있습
니다.
흐르는 데는 뭔가 자꾸 딸려옵니다. 집에서 부채를 들고 흔들어
보면 별의 것들이 다 딸려옵니다. 먼지가 딸려온다고 해서 훌륭한
뜻은 그걸 막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는 법, 쏘지 않고 두는 법, 그
러므로 짐승이 제멋대로 달아나는 것은 쏘고 거꾸로 이쪽에 오는
것, 즉 여기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은 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흐
르는 물에 돌맹이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겠다고 하
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는데, 흐르는
것한테 자꾸자꾸 쓸려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돌은 깨져 나가
고 닳고 닳아져 맨질맨질해지고, 그래도 "휴, 살았다."고 해서 뭉
쳐 있는 것, 그것은 바다로 가지 못합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아라. 갈길을 가면
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튼튼
한 강을 이룬다." 그렇게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바로 수
지비의 괘입니다. 그 도중에 들어오는 것들, 좋은 것이든 나쁜 것
이든, 좋은 일은 받아서 함께 흐르고 나쁜 일은 함께 흐르되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흐르면 반드시 이 괘 다음에는 크게
성공한다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
다. 이미 남의 손뒤에서서 친화할 것이 없다. 처음에
남과 사귀지 못하였으니 누구와 더불어 마지막을 함
께 할 수 있겠는가. 흉하다.
上六, 比之无首. 凶. 象曰, 比之无首, 无
所終也.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다." 회사원중에 눈앞의 이
익을 따라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100만원을 받고
있는데 A회사에서 110만원을 준다고 하면 그리로 가고, 또 B회사
에서 120만원을 둔다고 하면 다시 B회사로 가는 그런 사람입니
다. 그 사람은 당장은 10만원이나 20만원을 더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억이나 20억은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눈앞의 가벼운 이득을 보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사람
은 결국은 조그만 것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코 외적으로 주어지는 조그마한 이득에 눈이 멀어서는 안됩니
다. 그런 사람은 이미 크게 뿌리를 깊이 내려 클 수 있는 나무를
등져버린 것입니다. 훌륭한 뜻을 갖고 뜻을 보필해야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뜻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
에 영원히 훌륭한 자리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물이 흘러갈 때는 구축되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물은
흐르다보니까 강이 되었습니다. 또 흐르다보니까 바다가 됐습니
다. 아주 커다란 세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흐르는 생명
력은 지구의 3/4이나 차지하고 있는 물과 다름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뜻으로 흐르는 자가 되어 이 세상
에 풍요를 구축해내야 하겠습니다.
유성 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