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산겸(地山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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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겸손 』
● 겸손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어
●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이 비어있어 받아들
● 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
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물을 수용할 수 있
○ 는 것입니다.
● 겸손은 항상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됩
니다. 누릴 수는 있으되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
금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은 아
닙니다. 내가 죽는다고 볼펜도 없어지는 것은 아
닙니다. 나의 죽음과 볼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
다. 이 볼펜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굳이
주인을 얘기하라면 자연이 주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
다.
지산겸(地山謙)
겸(謙)은 형통한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
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치를 지킴으
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
울 수 있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이 기울듯이 찬 것
은 덜고 차지 않은 것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
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데로 흐른다. 귀신은 가
득차 있는 자에게는 활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
을 준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
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은 빛이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
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謙, 亨. 君子有終. 象曰, 謙亨. 天道下濟
而光明. 地道卑而上行. 天道虧盈以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
盈而好謙. 謙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
終也.
백년전까지만 해도 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 허공이 마냥
끝없이 비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
면서 과학자들은 이 공간에 대해서 수없이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해 본 결과 공간은 우리 눈에 이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저 무조
건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휘어져도 있으며 또 울퉁불퉁하게도
생겼다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
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어디쯤엔가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아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구멍을 블랙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과학자들은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블랙홀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블
랙홀이란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은 블랙홀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지 필요가 없으면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만
을 만들지 불필요한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블랙홀도 어딘가 모르게 우주의 힘의 균형을 유지 시켜주기 위해
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손등에다가 물건을 올려놓고 손목을 꺽으면 물건이 전부다 떨
어져 내려가 버립니다. 이것은 손쉽게 자기 손 두 개를 사용해서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손바닥에 놓고 손을 오무
려 놓으면 물건이 안으로 모여지게 됩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으로
우리는 블랙홀이 존재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일정한 공간에 이
렇게 존립하여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공간이 손바닥 오무려들듯이
오무려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거기에 다닥다닥 달라 붙어 있
는 것입니다. 안으로 오무려진 공간이 없으면 우리들은 덜커덕 하
고 위로 올라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어느 날 갑자기 튕
겨 나가게 됩니다. 마치 당구공이 튕겨져 나가면 공과 공이 서로
마주치듯이 블랙홀이 없으면 달, 금성, 수성, 목성 등등이 전부다
당구공 부딪히듯이 부닺힐런지 모릅니다. 블랙홀이 존재하기 때문
에 우주공간에서 이 지구가 편안하게 궤도상을 운행할 수 있습니
다.
블랙홀은 현재 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정해 주고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 안으로 들
어가면 뭐가 있든지 말든지 그것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는
산 넘어 뭐가 있는지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왜 산이 존재해야 하
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우주는 자기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
치를 지킴으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
울 수 있다." [지산겸]은 블랙홀과 비슷한 괘입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블랙홀을 방정식으로 표시하지 않고 기호로 표시한다면
바로 이와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괘는 산을 뜻합니다. 상괘
는 땅을 뜻합니다. 땅아래 산이 치솟아 있다는 뜻입니다. 땅위에
산이 치솟아 있는 것이 아니고, 땅밑에 산이 치솟아 있는 것,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괘는 상괘가 땅이고, 하괘가 산으로서 서로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어 순조롭게 역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순하는 과정에
서 주변이 모두 음효이기 때문에 주위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그러면서도 유일한 세번째 양효는 제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주역이 역순하는 가운데 안으
로 강하게 흡수하고 있으나, 양성기운은 빨려들어가지 않고 그 힘
을 받으면서도 제위치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괘는 "균형과 유지"를 나타냅니다. 마치 블랙홀이 구
멍이 생겼다고 해서 그 주변의 괘도상에 있는 것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구멍으로 인해서 괘도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유지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겸손입니다. 겸손이야 말로 균형
과 유지를 이루어주는 덕입니다. 인간이 만약 조금 성공했다고 마
음이 의기 양양해지면 그 사람은 곧 그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쩌다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이 큰 소리 뻥뻥치고 다니면
머지 않아 주르륵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합니
다. 따라서 그 많은 것들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블랙홀이 안으로
흡수하고 있듯이 겸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기쁨이 차는 순간 그 다음 번에 반드시 좋지 않는 현상
이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과 마음 바깥 세
상간에 벌어질 수 있는 메카니즘입니다. 마치 블랙홀의 메카니즘
이 블랙홀 위에 있는 모든 혹성의 괘도를 지켜주는 작용을 하듯
이 겸손을 갖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겸손은 항상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이 세상의 것을 누릴 수는
있습니다.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땅의 도리를 분명히 얻어야만 합
니다. 그래야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땅이어야
합니다. 단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욕심이 아닌 진정한
욕심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몸바깥으로 튀어 나가는 일이 없습
니다.
지금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은 아닙니다. 내
가 죽는다고 볼펜도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죽음과 볼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볼펜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굳
이 주인을 얘기하라면 자연이 주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
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이 기울듯이 찬 것은 덜고 차지 않은 것
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데로 흐른다." 겸
손은 우주의 법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높은 곳
은 무너뜨려서 밑으로 내려가게 하고, 움푹 패인 곳은 차게 합니
다. 그 작용을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길이 바로 '겸(謙)'입니다. 자
연은 가득차 있는 것에서는 깎아서 차지 않은 것에 보태줍니다.
그래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 가서는 자기 것을
잃어버리고 남에게 보태어 주게 됩니다.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나
에게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가득차 있는 자에게는 활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을
준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은 가득차 있는
자에게는 힘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을 줍니다. 겸손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
이 비어있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물을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
끗해야지 괜히 욕심을 부리고 심술을 부리면 복이 화로 변해버리
는 법입니다.
블랙홀이 존재하듯이 지구 안에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만일
지구가 막혀 있다면 어느날 갑자기 금이가서 쪼개져 버릴 것입니
다.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창자속이 비어있기 때문입니
다. 만일 그 안을 가득 메워버리면 그 순간 사람은 돌처럼 뻣뻣해
져서 죽어버릴 것입니다.
"나는 이해한다" 하고 자만에 차서 매사를 일정한 틀 속에 비
추어 바라보며 고정화되어 있는 머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
한 사고(思考)의 공간이 없으므로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없습니다.
'도(道)'는 머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비어있
는 공간이 있어야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
을 비워야만, 겸손을 얻어야만, 자연의 기운이 흘러가는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빛이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기지 못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이 나를 갖
지 못했다고 흉을 보더라도 그저 빙긋이 미소를 띄우고 있는 사
람은 안이 그윽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언젠가 상대편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비웃음을 당했다고 분해할 필요가 전
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
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누구나 평
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겸손은 그저 남의 앞에 가서 네, 네 하면서 겸손하다고 생각하
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것
도 없습니다. 진정한 겸손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것은 이제 곧 버
려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빛이
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입니
다.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
다." 유종의 미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영원히 망
하지 않는다라는 뜻은 영원히 자신이 가진 것을 꽉 쥐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비우고 블랙홀
과 같은 상태가 되면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를 영원히 유지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의 커다란 비밀입니다.
대상.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 있다. 이것이 [겸]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고, 모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뺏어가지 아니
하고 있는 것에 도리어 보태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象曰, 地中有山謙. 君子以□多益寡, 稱物
平施.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
고, 모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뺏어가지 아니하고
있는 것에 도리어 보태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이 괘상을 유심히
보면 위로는 전부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하늘이 가지
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받아들여 아래로 내리 쏟고 있습니
다. 동시에 하괘는 산으로서 아래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
이면서 세번째 양효가 이를 내어 써서 위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땅의 기운도 위로 스며들어 갑니다. 양성인 내괘와
음성인 외괘는 서로 자리가 바뀌어 있기 때문에 모든 작용은 반
대적으로 되감아 들어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산겸은
유지(維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스스로 부족함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
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군자로구나. 대하를 건
너는 것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면서도 길
하리라.
初六, 謙謙, 君子. 用涉大川. 吉. 象曰, 謙
謙, 君子, 卑以自牧也.
"스스로 부족함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군자로구나." 원래는 [양]의 자리인데 [음]이 있습니다. 때
문에 잘난척 하지 아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
으니 군자입니다.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사람은 집
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저 사
람을 알고 있다와 같은 그림자적인 만족에 치우칠 필요가 없습니
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계속 누릴 수 있는 힘을 잃지 않
습니다.
"대하를 건너는 것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면서도 길
하리라." 그렇게 겸허가 이루어지면 앞에 적이 없습니다. 겸허를
얻게 되면 대하를 건너는 것같은 일을 수행하여도 땅으로부터 기
운이 들어오고 뜻을 펼 수가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습니다. 아무
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여도 형통하게 됩니다.
두번째 음효.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
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하다. 이러한 태도를 한결같이
가지면 길하리라.
六二, 鳴謙, 貞吉. 象曰, 鳴謙, 貞吉, 中心
得也.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
하다." 원래 [음]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꾸 남들하고 비교를 합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형태는 자연의 법칙상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
입니다. 자기 균형상 그와같은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마치 실수같이 보이는 잡음들도 완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파괴들입니다. 만일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성형수술을 하면 갑자기 위장이 망가질지도 모릅니다. 모
든 것이 다 내몸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다. 진정 군자로구나.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루어 길하리라.
九三, 勞謙, 君子. 有終吉. 象曰, 勞謙, 君
子, 萬民服也.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
다." 이 곳의 양성기운은 드디어 안으로 내포하고 있는 모든 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잘난척하는 자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이
바깥으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
루어 길하리라." 그래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필요한 곳에 힘을 쓰
기 때문에 만민이 따르고, '유종의 미', 즉 영원히 망가지지 않습니
다. 굳이 남한테 자기를 인식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이 전부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당장은 시기하기 때문에
안알아주지만 언젠가는 알아줍니다.
씨앗에게 소망이 있다면 하루 빨리 좋은 행복된 곳을 찾아가서
그 행복한 곳에서 만발하게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던 씨앗이
어느날 갑자기 가장 행복되다고 생각되는 흙을 만나면 굉장한 반
가움과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씨앗이 땅속에 자리잡게
되면 땅은 씨앗에게 행복을 안겨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씨앗을
목졸라 죽이는 그런 험악한 곳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땅을 만나
기 위해서 날라온 씨앗에게 땅은 상당한 희망과 행복을 그 순간
느끼게 하지만, 그 땅속에서 그 땅을 파헤치고 나와야 된다는 사
실을 알면 흙은 행복이 아니고 불행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는 것은 물론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싹을 틔우
려면, 꽃을 피우려면, 흙이 없이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
아가는데 있어서 돈도 하나의 행복입니다. 돈없이 살려면 엄청나
게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돈이 반드시 행복은 아닙
니다. 흙이 반드시 행복이 아닙니다. 씨앗에게 흙이고, 사람에게
돈이지 염소에게는 아무리 비싼 수표라도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
다.
나의 행복은 안에 있는데, 이것이 밖으로 나와서 나의 것이 되
려면 겸손의 도를 얻지 않으면 안됩니다. 씨앗이 흙과 만나서, 씨
앗 그 자체가 흙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고통일 뿐만
아니라,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씨앗이 싹이 되서 땅위로 솟은
것은 기적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주
자체는 항상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왜 기적인가 하면 지극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알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적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기적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 "기적은 보통이하"라는 사실을 모르
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싹이 솟아나려면 흙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흙을 향해서 가슴
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할수록 가슴을 열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씨앗은 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흙과 동화되어야
지만, 흙안에 들어 있는 영양분을 통해 자랄 수 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매사에 반드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있습니
다. 공부하는 학생이나, 사업하는 사람이나, 회사원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걷어차 버리고, 씨앗이 흙이 어려워
흙 바깥으로 나오면, 그 씨앗은 죽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어려움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어디를 갈때
는 자기 마음이 좋아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찾아서 가
면 그 행복은 곧 불행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그 불행과 동화를 하
고, 가슴을 열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혹은 가려가면서 때에
따라서는 피해갈 수 있는, 그와같이 밑으로부터 스며드는 힘, 바
로 그 힘이 없으면 형통할 수 없습니다.
[지산겸]은 형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지
만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형통할 수 있는 덕을 베풀어 준다는 것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괘는 땅을 뜻합니다. 밑의 괘는
산입니다. 산은 위로 불쑥 오르는 것입니다. 산이 위로 불쑥 올라
온다라는 것은, 산이 땅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땅이 위로
밀려 올라오듯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입니다. 밑의 힘이다라는 뜻
입니다.
"위는 열어놓고 밑의 힘을 통해서 올라가면 위로부터 받아들여
진다." 이것이 '겸'입니다. 그것이 곧 형통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
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고, 뭐가 들어올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들
어올 수 있는 것은 다 들어오고, 다시 가슴을 통해서 나아갔을 때
는 상상하지 못했던, 마치 씨앗이 동그란 모양이었는데 동그랗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두 잎짜리 새싹이 나온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씨앗은 꽃을 피우려고 나왔지 싹이 되려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싹이 나오면 그 싹에서 줄기, 이파리 이런 것들이 생기
고 한참 뒤에 가서 꽃이 피는 법입니다. 또 꽃다음에 비로서 열매
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늘 위
에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가슴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만 바로 안에서 찾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 나의 세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들이 다 지나간 뒤에야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바람이
나 비, 이러한 모든 작용들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
니라, 그 안에 바로 애절한 자연으로부터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범부(凡夫)는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곧 사랑인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만사 순조롭지 않
은 것이 있을 수가 없다.
六四, 无不利□謙, 象曰, 无不利□謙, 不
違則也.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
이 없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라디오를 보면 스테레오와 모노 두가지로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음의 분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모노나 스테레오나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스테레오를 들어봐서 그 맛
을 알면 모노가 왜 수준이 떨어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무엇을 듣든지 자유입니다. 다만 어떤 것을 듣든지 풍기는
맛을 알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평등합니다. 그러나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씨앗도 피지
않을 씨앗은 소용이 없습니다. 잘 피는 씨앗과 못 피는 씨앗의 정
도차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정도차가 있습니다. 정도가 낮을
수록 열매는 맺혀지지 않습니다.
서울을 가지 않으면서 지도만 보고 앉아 있는 사람은 그 지도
가 소용이 없습니다. 이 지도가 맞는지, 저 지도가 맞는지 모르지
만 물어 물어서라도 서울로 가는 사람은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방향만 가지고도 길을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이 열려야지, 흐르지 않는 물한테 지도는 종이에 불과하지 길이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
하여 주변에 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복하는 사
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정벌해라.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六五, 不當以其隣. 利用侵伐. 无不利. 象
曰, 利用侵伐, 征不服也.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
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하여 주변에 모인다." 자신이 높다면
그것은 자연의 힘에 의해서 높아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하늘로" 돌려야 옳습니다. 자기가 그 위에 서있으려 해서는 안됩
니다. 그래서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진짜 높
은 사람은 낮은 일과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장이라고 전기줄이
끊어져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만 시키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사장 자리를 지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끌어내립니다.
따라서 덕을 베풀어야 됩니다. 내가 배고픔을 느끼면 남의 배고
픔을 알고, 내 애처로움이 있으면 남의 애처로움도 느껴야 합니
다. 남의 애처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애처로움을 모르는 사람
입니다. 때문에 자기 애처로움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만큼 세
상에 답답한 병은 사실 없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이미 부귀한 지위를 물려주고 난 위
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게 넓게 펼친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그러나 본인 자신은 겸손하다. 군사를
동원하면 작은 읍, 국 정도는 정복할 수 있다.
上六, 鳴謙. 利用行師征邑國. 象曰, 鳴謙,
志未得也. 可用師征邑國也.
"이미 부귀한 지위를 물려주고 난 위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게
넓게 펼친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이제 점점 늙어지면 기력
이 떨어져서 다섯번째와 같은 지위를 유지할만한 힘은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금 내가 기력이 딸리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백여명 정도는 능히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
습니다. 옛날에 수 많은 선사들이 나이 90이 넘도록 위트를 벌일
수 있었던 그 자랑스러운 덕의 힘은 남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가 있다 하더라도 물과 함께 있어야 배지, 물
을 떠나버리면 배는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개방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나와 자연이 하
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게 가진 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위대한 겸손입니다. 이 [겸]이 [대유] 전에 나오지
않고,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의깊게 주목해야 합니다.
겸손이 없이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이 어느날 때를 잘 만나서 자기 노력하고 아무 상관없이 벼락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교만하기 일쑤입니
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겸]은
[대유]앞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뒤에 있슴으로서 [대유]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결코 매정하지 않아서 어느날 갑자기 천지개벽을 해서
있는 것을 한꺼번에 뒤엎어 버리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서
서히 필요한 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할 망정 어느 가진 자를 갑자
기 망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현재 가지고 있
는 위대한 생명력을 스스로 망하지 않도록 하는 그 위대한 가르
침에서, 스스로가 깊이 자숙하여 겸손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먼저 세상에 드러내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풍요를 충
분히 누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유성..
● 겸손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어
●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이 비어있어 받아들
● 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
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물을 수용할 수 있
○ 는 것입니다.
● 겸손은 항상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됩
니다. 누릴 수는 있으되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
금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은 아
닙니다. 내가 죽는다고 볼펜도 없어지는 것은 아
닙니다. 나의 죽음과 볼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
다. 이 볼펜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굳이
주인을 얘기하라면 자연이 주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
다.
지산겸(地山謙)
겸(謙)은 형통한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
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치를 지킴으
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
울 수 있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이 기울듯이 찬 것
은 덜고 차지 않은 것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
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데로 흐른다. 귀신은 가
득차 있는 자에게는 활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
을 준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
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은 빛이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
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謙, 亨. 君子有終. 象曰, 謙亨. 天道下濟
而光明. 地道卑而上行. 天道虧盈以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
盈而好謙. 謙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
終也.
백년전까지만 해도 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 허공이 마냥
끝없이 비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
면서 과학자들은 이 공간에 대해서 수없이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해 본 결과 공간은 우리 눈에 이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저 무조
건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휘어져도 있으며 또 울퉁불퉁하게도
생겼다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
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어디쯤엔가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아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구멍을 블랙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과학자들은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블랙홀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블
랙홀이란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은 블랙홀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지 필요가 없으면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만
을 만들지 불필요한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블랙홀도 어딘가 모르게 우주의 힘의 균형을 유지 시켜주기 위해
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손등에다가 물건을 올려놓고 손목을 꺽으면 물건이 전부다 떨
어져 내려가 버립니다. 이것은 손쉽게 자기 손 두 개를 사용해서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손바닥에 놓고 손을 오무
려 놓으면 물건이 안으로 모여지게 됩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으로
우리는 블랙홀이 존재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일정한 공간에 이
렇게 존립하여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공간이 손바닥 오무려들듯이
오무려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거기에 다닥다닥 달라 붙어 있
는 것입니다. 안으로 오무려진 공간이 없으면 우리들은 덜커덕 하
고 위로 올라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어느 날 갑자기 튕
겨 나가게 됩니다. 마치 당구공이 튕겨져 나가면 공과 공이 서로
마주치듯이 블랙홀이 없으면 달, 금성, 수성, 목성 등등이 전부다
당구공 부딪히듯이 부닺힐런지 모릅니다. 블랙홀이 존재하기 때문
에 우주공간에서 이 지구가 편안하게 궤도상을 운행할 수 있습니
다.
블랙홀은 현재 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정해 주고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 안으로 들
어가면 뭐가 있든지 말든지 그것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는
산 넘어 뭐가 있는지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왜 산이 존재해야 하
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우주는 자기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
치를 지킴으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
울 수 있다." [지산겸]은 블랙홀과 비슷한 괘입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블랙홀을 방정식으로 표시하지 않고 기호로 표시한다면
바로 이와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괘는 산을 뜻합니다. 상괘
는 땅을 뜻합니다. 땅아래 산이 치솟아 있다는 뜻입니다. 땅위에
산이 치솟아 있는 것이 아니고, 땅밑에 산이 치솟아 있는 것,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괘는 상괘가 땅이고, 하괘가 산으로서 서로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어 순조롭게 역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순하는 과정에
서 주변이 모두 음효이기 때문에 주위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그러면서도 유일한 세번째 양효는 제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주역이 역순하는 가운데 안으
로 강하게 흡수하고 있으나, 양성기운은 빨려들어가지 않고 그 힘
을 받으면서도 제위치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괘는 "균형과 유지"를 나타냅니다. 마치 블랙홀이 구
멍이 생겼다고 해서 그 주변의 괘도상에 있는 것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구멍으로 인해서 괘도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유지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겸손입니다. 겸손이야 말로 균형
과 유지를 이루어주는 덕입니다. 인간이 만약 조금 성공했다고 마
음이 의기 양양해지면 그 사람은 곧 그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쩌다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이 큰 소리 뻥뻥치고 다니면
머지 않아 주르륵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합니
다. 따라서 그 많은 것들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블랙홀이 안으로
흡수하고 있듯이 겸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기쁨이 차는 순간 그 다음 번에 반드시 좋지 않는 현상
이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과 마음 바깥 세
상간에 벌어질 수 있는 메카니즘입니다. 마치 블랙홀의 메카니즘
이 블랙홀 위에 있는 모든 혹성의 괘도를 지켜주는 작용을 하듯
이 겸손을 갖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겸손은 항상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이 세상의 것을 누릴 수는
있습니다.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땅의 도리를 분명히 얻어야만 합
니다. 그래야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땅이어야
합니다. 단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욕심이 아닌 진정한
욕심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몸바깥으로 튀어 나가는 일이 없습
니다.
지금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은 아닙니다. 내
가 죽는다고 볼펜도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죽음과 볼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볼펜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굳
이 주인을 얘기하라면 자연이 주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
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이 기울듯이 찬 것은 덜고 차지 않은 것
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데로 흐른다." 겸
손은 우주의 법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높은 곳
은 무너뜨려서 밑으로 내려가게 하고, 움푹 패인 곳은 차게 합니
다. 그 작용을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길이 바로 '겸(謙)'입니다. 자
연은 가득차 있는 것에서는 깎아서 차지 않은 것에 보태줍니다.
그래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 가서는 자기 것을
잃어버리고 남에게 보태어 주게 됩니다.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나
에게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가득차 있는 자에게는 활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을
준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은 가득차 있는
자에게는 힘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을 줍니다. 겸손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
이 비어있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물을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
끗해야지 괜히 욕심을 부리고 심술을 부리면 복이 화로 변해버리
는 법입니다.
블랙홀이 존재하듯이 지구 안에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만일
지구가 막혀 있다면 어느날 갑자기 금이가서 쪼개져 버릴 것입니
다.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창자속이 비어있기 때문입니
다. 만일 그 안을 가득 메워버리면 그 순간 사람은 돌처럼 뻣뻣해
져서 죽어버릴 것입니다.
"나는 이해한다" 하고 자만에 차서 매사를 일정한 틀 속에 비
추어 바라보며 고정화되어 있는 머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
한 사고(思考)의 공간이 없으므로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없습니다.
'도(道)'는 머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비어있
는 공간이 있어야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
을 비워야만, 겸손을 얻어야만, 자연의 기운이 흘러가는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빛이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기지 못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이 나를 갖
지 못했다고 흉을 보더라도 그저 빙긋이 미소를 띄우고 있는 사
람은 안이 그윽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언젠가 상대편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비웃음을 당했다고 분해할 필요가 전
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
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누구나 평
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겸손은 그저 남의 앞에 가서 네, 네 하면서 겸손하다고 생각하
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것
도 없습니다. 진정한 겸손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것은 이제 곧 버
려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빛이
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입니
다.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
다." 유종의 미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영원히 망
하지 않는다라는 뜻은 영원히 자신이 가진 것을 꽉 쥐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비우고 블랙홀
과 같은 상태가 되면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를 영원히 유지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의 커다란 비밀입니다.
대상.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 있다. 이것이 [겸]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고, 모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뺏어가지 아니
하고 있는 것에 도리어 보태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象曰, 地中有山謙. 君子以□多益寡, 稱物
平施.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
고, 모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뺏어가지 아니하고
있는 것에 도리어 보태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이 괘상을 유심히
보면 위로는 전부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하늘이 가지
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받아들여 아래로 내리 쏟고 있습니
다. 동시에 하괘는 산으로서 아래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
이면서 세번째 양효가 이를 내어 써서 위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땅의 기운도 위로 스며들어 갑니다. 양성인 내괘와
음성인 외괘는 서로 자리가 바뀌어 있기 때문에 모든 작용은 반
대적으로 되감아 들어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산겸은
유지(維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스스로 부족함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
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군자로구나. 대하를 건
너는 것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면서도 길
하리라.
初六, 謙謙, 君子. 用涉大川. 吉. 象曰, 謙
謙, 君子, 卑以自牧也.
"스스로 부족함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군자로구나." 원래는 [양]의 자리인데 [음]이 있습니다. 때
문에 잘난척 하지 아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
으니 군자입니다.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사람은 집
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저 사
람을 알고 있다와 같은 그림자적인 만족에 치우칠 필요가 없습니
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계속 누릴 수 있는 힘을 잃지 않
습니다.
"대하를 건너는 것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면서도 길
하리라." 그렇게 겸허가 이루어지면 앞에 적이 없습니다. 겸허를
얻게 되면 대하를 건너는 것같은 일을 수행하여도 땅으로부터 기
운이 들어오고 뜻을 펼 수가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습니다. 아무
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여도 형통하게 됩니다.
두번째 음효.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
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하다. 이러한 태도를 한결같이
가지면 길하리라.
六二, 鳴謙, 貞吉. 象曰, 鳴謙, 貞吉, 中心
得也.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
하다." 원래 [음]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꾸 남들하고 비교를 합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형태는 자연의 법칙상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
입니다. 자기 균형상 그와같은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마치 실수같이 보이는 잡음들도 완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파괴들입니다. 만일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성형수술을 하면 갑자기 위장이 망가질지도 모릅니다. 모
든 것이 다 내몸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다. 진정 군자로구나.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루어 길하리라.
九三, 勞謙, 君子. 有終吉. 象曰, 勞謙, 君
子, 萬民服也.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
다." 이 곳의 양성기운은 드디어 안으로 내포하고 있는 모든 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잘난척하는 자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이
바깥으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
루어 길하리라." 그래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필요한 곳에 힘을 쓰
기 때문에 만민이 따르고, '유종의 미', 즉 영원히 망가지지 않습니
다. 굳이 남한테 자기를 인식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이 전부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당장은 시기하기 때문에
안알아주지만 언젠가는 알아줍니다.
씨앗에게 소망이 있다면 하루 빨리 좋은 행복된 곳을 찾아가서
그 행복한 곳에서 만발하게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던 씨앗이
어느날 갑자기 가장 행복되다고 생각되는 흙을 만나면 굉장한 반
가움과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씨앗이 땅속에 자리잡게
되면 땅은 씨앗에게 행복을 안겨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씨앗을
목졸라 죽이는 그런 험악한 곳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땅을 만나
기 위해서 날라온 씨앗에게 땅은 상당한 희망과 행복을 그 순간
느끼게 하지만, 그 땅속에서 그 땅을 파헤치고 나와야 된다는 사
실을 알면 흙은 행복이 아니고 불행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는 것은 물론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싹을 틔우
려면, 꽃을 피우려면, 흙이 없이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
아가는데 있어서 돈도 하나의 행복입니다. 돈없이 살려면 엄청나
게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돈이 반드시 행복은 아닙
니다. 흙이 반드시 행복이 아닙니다. 씨앗에게 흙이고, 사람에게
돈이지 염소에게는 아무리 비싼 수표라도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
다.
나의 행복은 안에 있는데, 이것이 밖으로 나와서 나의 것이 되
려면 겸손의 도를 얻지 않으면 안됩니다. 씨앗이 흙과 만나서, 씨
앗 그 자체가 흙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고통일 뿐만
아니라,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씨앗이 싹이 되서 땅위로 솟은
것은 기적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주
자체는 항상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왜 기적인가 하면 지극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알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적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기적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 "기적은 보통이하"라는 사실을 모르
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싹이 솟아나려면 흙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흙을 향해서 가슴
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할수록 가슴을 열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씨앗은 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흙과 동화되어야
지만, 흙안에 들어 있는 영양분을 통해 자랄 수 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매사에 반드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있습니
다. 공부하는 학생이나, 사업하는 사람이나, 회사원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걷어차 버리고, 씨앗이 흙이 어려워
흙 바깥으로 나오면, 그 씨앗은 죽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어려움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어디를 갈때
는 자기 마음이 좋아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찾아서 가
면 그 행복은 곧 불행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그 불행과 동화를 하
고, 가슴을 열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혹은 가려가면서 때에
따라서는 피해갈 수 있는, 그와같이 밑으로부터 스며드는 힘, 바
로 그 힘이 없으면 형통할 수 없습니다.
[지산겸]은 형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지
만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형통할 수 있는 덕을 베풀어 준다는 것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괘는 땅을 뜻합니다. 밑의 괘는
산입니다. 산은 위로 불쑥 오르는 것입니다. 산이 위로 불쑥 올라
온다라는 것은, 산이 땅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땅이 위로
밀려 올라오듯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입니다. 밑의 힘이다라는 뜻
입니다.
"위는 열어놓고 밑의 힘을 통해서 올라가면 위로부터 받아들여
진다." 이것이 '겸'입니다. 그것이 곧 형통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
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고, 뭐가 들어올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들
어올 수 있는 것은 다 들어오고, 다시 가슴을 통해서 나아갔을 때
는 상상하지 못했던, 마치 씨앗이 동그란 모양이었는데 동그랗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두 잎짜리 새싹이 나온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씨앗은 꽃을 피우려고 나왔지 싹이 되려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싹이 나오면 그 싹에서 줄기, 이파리 이런 것들이 생기
고 한참 뒤에 가서 꽃이 피는 법입니다. 또 꽃다음에 비로서 열매
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늘 위
에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가슴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만 바로 안에서 찾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 나의 세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들이 다 지나간 뒤에야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바람이
나 비, 이러한 모든 작용들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
니라, 그 안에 바로 애절한 자연으로부터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범부(凡夫)는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곧 사랑인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만사 순조롭지 않
은 것이 있을 수가 없다.
六四, 无不利□謙, 象曰, 无不利□謙, 不
違則也.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
이 없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라디오를 보면 스테레오와 모노 두가지로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음의 분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모노나 스테레오나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스테레오를 들어봐서 그 맛
을 알면 모노가 왜 수준이 떨어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무엇을 듣든지 자유입니다. 다만 어떤 것을 듣든지 풍기는
맛을 알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평등합니다. 그러나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씨앗도 피지
않을 씨앗은 소용이 없습니다. 잘 피는 씨앗과 못 피는 씨앗의 정
도차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정도차가 있습니다. 정도가 낮을
수록 열매는 맺혀지지 않습니다.
서울을 가지 않으면서 지도만 보고 앉아 있는 사람은 그 지도
가 소용이 없습니다. 이 지도가 맞는지, 저 지도가 맞는지 모르지
만 물어 물어서라도 서울로 가는 사람은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방향만 가지고도 길을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이 열려야지, 흐르지 않는 물한테 지도는 종이에 불과하지 길이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
하여 주변에 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복하는 사
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정벌해라.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六五, 不當以其隣. 利用侵伐. 无不利. 象
曰, 利用侵伐, 征不服也.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
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하여 주변에 모인다." 자신이 높다면
그것은 자연의 힘에 의해서 높아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하늘로" 돌려야 옳습니다. 자기가 그 위에 서있으려 해서는 안됩
니다. 그래서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진짜 높
은 사람은 낮은 일과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장이라고 전기줄이
끊어져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만 시키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사장 자리를 지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끌어내립니다.
따라서 덕을 베풀어야 됩니다. 내가 배고픔을 느끼면 남의 배고
픔을 알고, 내 애처로움이 있으면 남의 애처로움도 느껴야 합니
다. 남의 애처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애처로움을 모르는 사람
입니다. 때문에 자기 애처로움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만큼 세
상에 답답한 병은 사실 없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이미 부귀한 지위를 물려주고 난 위
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게 넓게 펼친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그러나 본인 자신은 겸손하다. 군사를
동원하면 작은 읍, 국 정도는 정복할 수 있다.
上六, 鳴謙. 利用行師征邑國. 象曰, 鳴謙,
志未得也. 可用師征邑國也.
"이미 부귀한 지위를 물려주고 난 위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게
넓게 펼친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이제 점점 늙어지면 기력
이 떨어져서 다섯번째와 같은 지위를 유지할만한 힘은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금 내가 기력이 딸리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백여명 정도는 능히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
습니다. 옛날에 수 많은 선사들이 나이 90이 넘도록 위트를 벌일
수 있었던 그 자랑스러운 덕의 힘은 남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가 있다 하더라도 물과 함께 있어야 배지, 물
을 떠나버리면 배는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개방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나와 자연이 하
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게 가진 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위대한 겸손입니다. 이 [겸]이 [대유] 전에 나오지
않고,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의깊게 주목해야 합니다.
겸손이 없이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이 어느날 때를 잘 만나서 자기 노력하고 아무 상관없이 벼락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교만하기 일쑤입니
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겸]은
[대유]앞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뒤에 있슴으로서 [대유]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결코 매정하지 않아서 어느날 갑자기 천지개벽을 해서
있는 것을 한꺼번에 뒤엎어 버리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서
서히 필요한 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할 망정 어느 가진 자를 갑자
기 망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현재 가지고 있
는 위대한 생명력을 스스로 망하지 않도록 하는 그 위대한 가르
침에서, 스스로가 깊이 자숙하여 겸손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먼저 세상에 드러내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풍요를 충
분히 누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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