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지뢰복(地雷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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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영으로 돌아오다 』
"가던 길을 돌아오는데 7일만에 왕복한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법칙이다." 나의 진정한 뜻이 나의 현실
로 나타나는데에는 일곱단계의 어려움을 거쳐서 반
드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나의 심정, 즉 바라는 마
음, 희망, 소망..., 이와 같은 것들은 3-4단계쯤
가면 잊어버립니다. 지금 머리속에서 희망으로 그리
고 있는 것, 그 세계가 다 없어질 정도가 될 때, 그
때가 3-4단계 정도입니다. 이것을 넘어간 뒤에 두
세 단계의 시험과정을 거쳐 비로서 그것이 내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지뢰복(地雷復)
[복]괘는 크게 발전하고 번영함을 상징한다. 양의 기
운이 돌아온다. 천지자연의 법칙에 순행하여 운행하
니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행동이 자유롭고 순조로와
장애가 없다. 가던 길을 7일만에 돌아온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법칙인 것이다. 양의 기운이 이제 성장하
려고 한다. 적극적으로 전진함이 좋다. 복에서 우리
는 변천하고 생성, 화육하는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
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수없이 많은 것들에는 존재하는 것도 있고 사라지는 것도 있습니
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도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결국 이 우주라는 세계안에서
"있다"와 "없다"는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는 사람이 있
는 반면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어느 하나의 형태가 부서지면 다
른 형태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빨리 이해해야 합니다. 원
하는 것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바로
"있고 없음"이 존재하는 이 세계안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 무엇이 가슴속안에서 죽음의 생명선
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돌아오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수없이 많이 노
력을 했슴에도 불구하고 왜오지 않는가? 그 이유는 [지뢰복]의
괘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곧 슷로 자각할 수 잇씁니다. 나는 원했
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 [복]괘 선상에 있어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괘는 크게 발전하고 번영함을 상징한다. 양의 기운이 돌
아온다." [지뢰복]은 [산지박]의 정반대되는 괘입니다. [산지박]
에서 우리는 망하여 파산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주는 멸망하
지 않고 항상 번영하고 있습니다. [지뢰복]은 그 번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괘입니다.
이 괘는 맨밑에 양의 효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전부 다 음의
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의 효는 안으로 흡수하고, 양의 효는
밖으로 분출하는 기운입니다. 아래의 양성기운은 위로 올라가며
상괘와 하괘가 역류하여 바뀌면서 결국은 그 양의 힘이 세상에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안에서 세상으로 내품은
기운이 음효의 여섯단계를 거쳐 다시 세상에 돌아온다고 하여
[복]이라 했습니다.
[지뢰복]은 겉으로 유순하여 우주로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으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주관이 확립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흔히 사람이 거짓말
을 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라고 하는 세계가 분명하지 못하기 때
문입니다. 돈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은 안이 충족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것 역시 안으로 충만된 세계가 갖추어
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한테 욕을 먹었다고 주먹을 불끈 쥐
는 사람,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은 안에 분명한 자신을 나타내는
양효가 없이 음효로 오무라들어있는 사람입니다. 또 분노를 참는
다고 겉으로는 참고 있지만 그 참는 기운이 밖으로 나가는 것 역
시 크게 성공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안이 분명한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세상이 더럽든지 아니꼽든
지 간에 그 모든 것을 수용하여 자기안에서 소화를 시킨다음, 다
시 자기 맨 밑에 있는 자신의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것. 이것을
갖추어야만 거짓, 열등의식, 분노, 억지로 참는 것 등 소인의 작태
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뜻을 펴서 현실화 될 수 있게끔 모든
여건을 수용하고 있는가? 수긍이 안되는 것이 한편 생각하면 자
존심이 강한 것같지만, 또 본인은 잘났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이 그 사람에게 베풀어주려고 하는 것은 하나도 얻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천지자연의 법칙에 순행하여 운행하니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행동이 자유롭고 순조로와 장애가 없다." [지뢰복]은 천지 자연의
법칙에 순행하여 운행하니 행동이 자유롭고 순조로와 장애가 없
다고 했습니다. 주역에서 순조롭다는 이야기는 앞이 그냥 무사하
게 열려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다 수용하면서 자기의 뜻을
펼쳐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장애가 이미 장애가 아니다라는 뜻입
니다. 자동차에 대해 운전조작법을 잘 아는 사람은 언덕에서도 밀
려나지 않고 섰다가 앞으로 스므드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을
잘못하는 사람은 언덕에서 멈추면 클러치를 떼는 순간 뒤로 밀려
나서 뒷차를 받던가, 아니면 악세레타를 너무 밟아 위에 있는 차
를 들이받게 됩니다. 결국 언덕이라는 장애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고, 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사람에게는 언덕
이 장애가 아니지만, 그렇치 못한 사람에게는 장애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가던 길을 7일만에 돌아온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법칙인 것이
다." 양의 기운이 돌아오는데 7일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7
일이란 7단계를 거쳐서 다시 온다는 뜻입니다. 즉 하괘 천.지.인 3
단계, 상괘 천.지.인 3단계를 거쳐 7일째 다시 처음으로 오게 됩니
다. 안에 있는 것이 천지에 뻗쳐서 그것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7단계의 과정을 거쳐야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일 당장 해결하려고 서두른
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결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최
소한 머리가 7번 쪼개져 나갈 정도로 고민을 하면서 뇌의 에너지
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흔히 "해도 안된다."로 포기하는 사람은 7단계까지 벌어지고 있
는 것을 중간의 세, 네단계에서 그만둔 사람입니다. 하나가 되돌
아 올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보통 네번째쯤 가면 오히려 잊어
버립니다. 잊고 난 뒤에 세번째 후 다시 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뜻밖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잊고 있던
상태에서 세단계 더 지난 후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에
눈앞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7일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이니다.
대상. 우뢰의 기운이 땅속에 살아있는 것이 [복]의
괘상이다. 옛날의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양의
한줄기 기운이 돌아오는 동짓날을 기하여 광효의 문
을 닫아 상인과 여객의 통행을 금하고 자신의 순시도
중지하여 양의 기운이 성장하여지는 때를 기다렸다.
[지뢰복]은 위의 괘는 땅을 의미하고, 아래 괘는 우뢰를 의미합
니다. 땅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이면 틀림없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양]은 하나도 없이 [음]으로만 이루어져 있습
니다. 하늘은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만질 수 없으니까 음이어야 하
는데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땅은 전부 다 음효로 이루어져 모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하
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땅덩어리가 뭉치는 힘이 없어 쪼개져나가
흩어져 버리면 하늘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똘똘 뭉쳐 있는
힘만으로 결성되어 있는 것, 그러나 없는 하늘 속안에 존재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놓으면 바로 곤(坤)괘가 됩니다.
[뢰]는 두 개의 음효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아
래에 가장 근본적인 양성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만져지지 않지
만 존재하는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
하면 안에 어떤 강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뢰의 기운이 땅속에 살아있는 것이 [복]의 괘상이다." [지
뢰복]을 전체적으로 보면 땅 속에 우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겉
으로는 잘 모르는데 그 속안에 강한 우뢰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주역이 역순하면 우뢰가 위로 상승하여 다시 땅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만일 "나는 뭐가 잘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안에 강한 '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뢰'만 분명
하고 세상일을 다 받아들인다면, 그 '뢰'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으
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 바로 우주의 원리이며 [지뢰복]이 뜻하는
바입니다.
"옛날의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양의 한줄기 기운이 돌
아오는 동짓날을 기하여 광효의 문을 닫아 상인과 여객의 통행을
금하고 자신의 순시도 중지하여 양의 기운이 성장하여지는 때를
기다렸다." 우리나라 단어 가운데 천기누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잘될 것 같을 때는 그것을 안에 품고 있어야 됩니다. 기분이
잘될 것같다고 미리 "나는 잘될 것"이라고 떠벌여 놓으면 설사 운
이 너무 좋아 잘되더라도 꼭 몇 번의 시련을 거쳐서 됩니다. 그래
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렇게 좋은 자기가 느껴지는 순간, 자기
의 뜻이 펼쳐질 수 있는 순간, 오히려 동서남북의 4대문을 닫고
기(氣)가 빠져나가지 않게 상인도 출입을 금지시키고, 자신도 나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잠자리를 잡으려면 아주 조심을 해야 합니다. "아! 요
것!" 하고 덥썩 잡으러 가면 잠자리는 날라가 버립니다. 살며시
다가가며 모든 심경이 잠자리 잡는데 집중되어 있어야 잠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조심을 해야만 안에 숨겨져 있는
'뢰'가 쌓여 복이 되어 울려퍼지는 법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깨닫고 몸을 닦
으니 머지 않아 바른길로 돌아와 후회를 남기지 않으
리라. 대길하리라.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깨닫고 몸을 닦으니 머지 않아 바른길
로 돌아와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 자신의 지나간 과오란 [산지
박]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배고픔을 가르쳐주지 않으
면 그 자식은 배부름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배고픔을 몸소 실
천하지 못하면 안으로 '뢰'가 갖춰지기를 않습니다. 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살면서 가난을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안에 '뢰'가
갖추어지지를 않습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이거나 현실의 어느 시점에서 가난이 되었든
지, 무엇이 되었든지, 절박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는 그와같은 자기 망상 때문에 현실을 느낄 수 없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치의 절정에서, 그 절정에 머무르는 사
람이 '그래서는 안되겠다.'고 깊이 느꼈을 때 바로 '뢰'의 힘이 생
깁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가난하게만 산 사람은 평생 가난에서 헤
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재력이 있을 때는 적당히 써보
기도 하라고 [산화비]에서 강조하였습니다.
좋은 것이 뭔지도 알아야지 나쁜 것으로 안들어가는 법입니다.
가난 속에서 좋은게 뭔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은 가난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좋은 것도 해봐야 됩니다. 좋은게 뭔지, 가난이 뭔지
를 알아야ㅁ '지'에서 성장시킬 수 있는 '뢰'가 이루어 집니다. 덮
어놓고 가난만 미워하는 사람은 '돌아올 복(復)'이 되지 않는 그런
"뢰가 아닌 뢰"가 될 뿐입니다.
두번째 음효. 아름답게 바른길로 돌아온다. 몸을 낮
추어 인자하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하면 길하리라.
"아름답게 바른 길로 돌아온다." 설사 나가서 조금의 만족이라
도 생겼을 때 만족에 치우치지 않고 다시금 지난 세월을 걱정할
수 있는 것.
어떤 사람은 날마다 벌어서 그날 먹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일당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전 인생을 일당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뢰'가 갖추
어져 있지 않았을 뿐더러, 그 '뢰'를 통해서 현실에서 "지나간 과
거가 미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두번째 효가 바른 길로 돌아온다는 것은 첫번째 양효의 때를
잊지 않고 다시 그 때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음효
는 외부의 것을 끌어당기는 것이지만, 두번째 중정의 지위를 지킨
음효는 내면의 양효가 나오도록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두번째 효는 양효의 상태를 잊지 않고, 다시 겸허
하게 그 상태를 되돌아 간다는 뜻입니다.
세번째 음효. 이따금 과오를 저지르나 그때마다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자주한다. 위태로운 노릇이나 허물
은 없으리라.
六三, 頻復. 려无咎. 象曰, 頻復之려, 義
无咎也.
"이따금 과오를 저지르나 그때마다 바른길로 돌아오기를 자주
한다. 위태로운 노릇이나 허물은 없으리라." 사람이 조금 만족해
지다 보면 만족에 머물려고 하게 됩니다. 원래 이 우주가 그런 습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에 '뢰'가 분명한 사람이라면 조
금의 과실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때를 잊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
서 번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항상 '뢰'의 상태로 있을 수는 없습
니다. 일시적인 만족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즉시 바른 길로
돌아가기 때문에 큰 과실은 없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뢰'가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
슴속에 진정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강한 '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알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받
아들여 그것이 이 세상에 펼쳐지도록 해야겠습니다.
네번째 음효. 중용을 지키면서 홀로 돌아와 바른 길
을 쫓는다.
"중용을 지키면서 홀로 돌아와 바른 길을 쫓는다." 첫번째 양
효와 정응관계를 이루어 중용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다보
면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잘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 그 상태를 쫓아서 하는 것이 중용을 지키는 것입
니다.
매사가 이와같은 7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맨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뜻으로 나아가는 것
이 첫번째 단계입니다. 일이 잘되어 설사 만족감에 도취할 지경에
이른다 하더라도 처음 상태를 잊지 않고 '내가 이정도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는 안된다.' 하고서 다시 되돌아가면 결국 큰
허물이 없이 발전선상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경건한 마음으로 바른길에 돌아온다.
중용의 도를 지켜 스스로 반성한다. 후에 흠이 없으
리라.
"경건한 마음으로 바른길에 돌아온다." 벌써 이 정도쯤 가면
어느 정도 자기 역량이라는 것이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역량이 갖추어졌을 때 그 때 마음은 "경건한 마음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중용의 도를 지켜 스스로 반성한다. 후에 흠이 없으리라." 내
가 오늘날 설사 잘산다고 하더라도 "이 잘사는 나는 내가 아니
다." "잘산다고 하는 지금의 이 재물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도 있
는 것이다." "나는 가난했던 그 시절의 그 아픔과 함깨 존재하리
라" 고로 "나는 오늘 만족하기에 앞서서 오늘 내가 할 일이 무엇
인지를 나는 찾으리라." 이렇게 반성하는 경건한 마음을 갖고 있
으면 끝내 가서는 역시 후회함이 없이 길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
다.
여섯번째 음효.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을 잊고 신념없이 방황하고 있다.
군주된 자의 정도에 어긋난 행동이다. 흉하리라. 인
재(人災)와 천재(天災)가 겹치리라. 이러한 때 군대
를 동원하여 전쟁을 벌이면 마침내는 크게 패하여 나
라와 임금에게 화가 미친다. 흉하다. 10년을 싸워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을 잊고
신념없이 방황하고 있다." 잘 되었다 하더라도 잘됐다는 부분에
머물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10년을 싸워도 승리하지 못하리
라." 그렇게 되면 그것이 자기 재난과 하늘의 재난이 같이 겹쳐서
그 상태에서 10년을 가지고서 더 일을 벌린다 하더라도 끝내가서
는 불행을 얻으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지뢰복]은 돌아오게 합니다. 그렇다고 결코 돌아오는 것에 머
물러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행복이 반드시 내일의 행복이 되는 것
은 아닙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또 오
늘의 행복이 내일이 되도록 어제의 불행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진정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것, 누가 부수려해도 부숴지지 않
는 것, 그것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것은 내가 요구하는 만큼으
로 되돌아 옵니다. 이렇게 되돌아 오게 해주기 위해서 우주는 지
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받아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부족입니다.
"가던 길을 돌아오는데 7일만에 왕복한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
법칙이다." 나의 진정한 뜻이 나의 현실로 나타나는데에는 일곱단
계의 어려움을 거쳐서 반드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나의 심정, 즉
바라는 마음, 희망, 소망..., 이와 같은 것들은 3-4단계쯤 가면 잊
어버립니다. 지금 머리속에서 희망으로 그리고 있는 것, 그 세계
가 다 없어질 정도가 될 때, 그 때가 3-4단계 정도입니다. 이것을
넘어간 뒤에 두 세 단계의 시험과정을 거쳐 비로서 그것이 내앞
에 나타나게 됩니다.
라디오가 고장났다고 '이걸 빨리 고쳐서 소리나게 해야지.' 하고
빨리 고치려고 하면 되지도 않고 소리도 안나옵니다. 한 번 소리
가 안났을 때 "이게 라이오냐?" 하며 발로 밟아버리면 라디오는
망가져 버리게 될 뿐더러, 자기 발도 다쳐서 약바르고 치료해야
하게 됩니다. 라디오가 고장났을때 그것을 수리점에 맡기고 라디
오 소리에 대한 행복감이 다 사라지고 잊혀질만한 뒤에 찾아오면
드디어 라디오에서는 맑은 소리가 울려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
리의 행복이 돌아오는데 있어서 걸리는 기간입니다. 이 사실을 알
고 우리가 그에 앞서서 다가오는 여러 어려운점에 굴하지 말고
굳굳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우뢰와 같은 기강을 안으로 갖추지
않으면 돌아올 수 있는 행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성..
"가던 길을 돌아오는데 7일만에 왕복한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법칙이다." 나의 진정한 뜻이 나의 현실
로 나타나는데에는 일곱단계의 어려움을 거쳐서 반
드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나의 심정, 즉 바라는 마
음, 희망, 소망..., 이와 같은 것들은 3-4단계쯤
가면 잊어버립니다. 지금 머리속에서 희망으로 그리
고 있는 것, 그 세계가 다 없어질 정도가 될 때, 그
때가 3-4단계 정도입니다. 이것을 넘어간 뒤에 두
세 단계의 시험과정을 거쳐 비로서 그것이 내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지뢰복(地雷復)
[복]괘는 크게 발전하고 번영함을 상징한다. 양의 기
운이 돌아온다. 천지자연의 법칙에 순행하여 운행하
니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행동이 자유롭고 순조로와
장애가 없다. 가던 길을 7일만에 돌아온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법칙인 것이다. 양의 기운이 이제 성장하
려고 한다. 적극적으로 전진함이 좋다. 복에서 우리
는 변천하고 생성, 화육하는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
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수없이 많은 것들에는 존재하는 것도 있고 사라지는 것도 있습니
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도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결국 이 우주라는 세계안에서
"있다"와 "없다"는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는 사람이 있
는 반면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어느 하나의 형태가 부서지면 다
른 형태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빨리 이해해야 합니다. 원
하는 것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바로
"있고 없음"이 존재하는 이 세계안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 무엇이 가슴속안에서 죽음의 생명선
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돌아오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수없이 많이 노
력을 했슴에도 불구하고 왜오지 않는가? 그 이유는 [지뢰복]의
괘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곧 슷로 자각할 수 잇씁니다. 나는 원했
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 [복]괘 선상에 있어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괘는 크게 발전하고 번영함을 상징한다. 양의 기운이 돌
아온다." [지뢰복]은 [산지박]의 정반대되는 괘입니다. [산지박]
에서 우리는 망하여 파산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주는 멸망하
지 않고 항상 번영하고 있습니다. [지뢰복]은 그 번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괘입니다.
이 괘는 맨밑에 양의 효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전부 다 음의
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의 효는 안으로 흡수하고, 양의 효는
밖으로 분출하는 기운입니다. 아래의 양성기운은 위로 올라가며
상괘와 하괘가 역류하여 바뀌면서 결국은 그 양의 힘이 세상에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안에서 세상으로 내품은
기운이 음효의 여섯단계를 거쳐 다시 세상에 돌아온다고 하여
[복]이라 했습니다.
[지뢰복]은 겉으로 유순하여 우주로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으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주관이 확립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흔히 사람이 거짓말
을 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라고 하는 세계가 분명하지 못하기 때
문입니다. 돈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은 안이 충족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것 역시 안으로 충만된 세계가 갖추어
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한테 욕을 먹었다고 주먹을 불끈 쥐
는 사람,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은 안에 분명한 자신을 나타내는
양효가 없이 음효로 오무라들어있는 사람입니다. 또 분노를 참는
다고 겉으로는 참고 있지만 그 참는 기운이 밖으로 나가는 것 역
시 크게 성공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안이 분명한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세상이 더럽든지 아니꼽든
지 간에 그 모든 것을 수용하여 자기안에서 소화를 시킨다음, 다
시 자기 맨 밑에 있는 자신의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것. 이것을
갖추어야만 거짓, 열등의식, 분노, 억지로 참는 것 등 소인의 작태
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뜻을 펴서 현실화 될 수 있게끔 모든
여건을 수용하고 있는가? 수긍이 안되는 것이 한편 생각하면 자
존심이 강한 것같지만, 또 본인은 잘났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이 그 사람에게 베풀어주려고 하는 것은 하나도 얻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천지자연의 법칙에 순행하여 운행하니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행동이 자유롭고 순조로와 장애가 없다." [지뢰복]은 천지 자연의
법칙에 순행하여 운행하니 행동이 자유롭고 순조로와 장애가 없
다고 했습니다. 주역에서 순조롭다는 이야기는 앞이 그냥 무사하
게 열려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다 수용하면서 자기의 뜻을
펼쳐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장애가 이미 장애가 아니다라는 뜻입
니다. 자동차에 대해 운전조작법을 잘 아는 사람은 언덕에서도 밀
려나지 않고 섰다가 앞으로 스므드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을
잘못하는 사람은 언덕에서 멈추면 클러치를 떼는 순간 뒤로 밀려
나서 뒷차를 받던가, 아니면 악세레타를 너무 밟아 위에 있는 차
를 들이받게 됩니다. 결국 언덕이라는 장애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고, 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사람에게는 언덕
이 장애가 아니지만, 그렇치 못한 사람에게는 장애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가던 길을 7일만에 돌아온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법칙인 것이
다." 양의 기운이 돌아오는데 7일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7
일이란 7단계를 거쳐서 다시 온다는 뜻입니다. 즉 하괘 천.지.인 3
단계, 상괘 천.지.인 3단계를 거쳐 7일째 다시 처음으로 오게 됩니
다. 안에 있는 것이 천지에 뻗쳐서 그것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7단계의 과정을 거쳐야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일 당장 해결하려고 서두른
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결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최
소한 머리가 7번 쪼개져 나갈 정도로 고민을 하면서 뇌의 에너지
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흔히 "해도 안된다."로 포기하는 사람은 7단계까지 벌어지고 있
는 것을 중간의 세, 네단계에서 그만둔 사람입니다. 하나가 되돌
아 올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보통 네번째쯤 가면 오히려 잊어
버립니다. 잊고 난 뒤에 세번째 후 다시 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뜻밖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잊고 있던
상태에서 세단계 더 지난 후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에
눈앞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7일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이니다.
대상. 우뢰의 기운이 땅속에 살아있는 것이 [복]의
괘상이다. 옛날의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양의
한줄기 기운이 돌아오는 동짓날을 기하여 광효의 문
을 닫아 상인과 여객의 통행을 금하고 자신의 순시도
중지하여 양의 기운이 성장하여지는 때를 기다렸다.
[지뢰복]은 위의 괘는 땅을 의미하고, 아래 괘는 우뢰를 의미합
니다. 땅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이면 틀림없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양]은 하나도 없이 [음]으로만 이루어져 있습
니다. 하늘은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만질 수 없으니까 음이어야 하
는데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땅은 전부 다 음효로 이루어져 모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하
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땅덩어리가 뭉치는 힘이 없어 쪼개져나가
흩어져 버리면 하늘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똘똘 뭉쳐 있는
힘만으로 결성되어 있는 것, 그러나 없는 하늘 속안에 존재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놓으면 바로 곤(坤)괘가 됩니다.
[뢰]는 두 개의 음효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아
래에 가장 근본적인 양성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만져지지 않지
만 존재하는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
하면 안에 어떤 강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뢰의 기운이 땅속에 살아있는 것이 [복]의 괘상이다." [지
뢰복]을 전체적으로 보면 땅 속에 우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겉
으로는 잘 모르는데 그 속안에 강한 우뢰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주역이 역순하면 우뢰가 위로 상승하여 다시 땅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만일 "나는 뭐가 잘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안에 강한 '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뢰'만 분명
하고 세상일을 다 받아들인다면, 그 '뢰'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으
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 바로 우주의 원리이며 [지뢰복]이 뜻하는
바입니다.
"옛날의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양의 한줄기 기운이 돌
아오는 동짓날을 기하여 광효의 문을 닫아 상인과 여객의 통행을
금하고 자신의 순시도 중지하여 양의 기운이 성장하여지는 때를
기다렸다." 우리나라 단어 가운데 천기누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잘될 것 같을 때는 그것을 안에 품고 있어야 됩니다. 기분이
잘될 것같다고 미리 "나는 잘될 것"이라고 떠벌여 놓으면 설사 운
이 너무 좋아 잘되더라도 꼭 몇 번의 시련을 거쳐서 됩니다. 그래
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렇게 좋은 자기가 느껴지는 순간, 자기
의 뜻이 펼쳐질 수 있는 순간, 오히려 동서남북의 4대문을 닫고
기(氣)가 빠져나가지 않게 상인도 출입을 금지시키고, 자신도 나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잠자리를 잡으려면 아주 조심을 해야 합니다. "아! 요
것!" 하고 덥썩 잡으러 가면 잠자리는 날라가 버립니다. 살며시
다가가며 모든 심경이 잠자리 잡는데 집중되어 있어야 잠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조심을 해야만 안에 숨겨져 있는
'뢰'가 쌓여 복이 되어 울려퍼지는 법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깨닫고 몸을 닦
으니 머지 않아 바른길로 돌아와 후회를 남기지 않으
리라. 대길하리라.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깨닫고 몸을 닦으니 머지 않아 바른길
로 돌아와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 자신의 지나간 과오란 [산지
박]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배고픔을 가르쳐주지 않으
면 그 자식은 배부름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배고픔을 몸소 실
천하지 못하면 안으로 '뢰'가 갖춰지기를 않습니다. 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살면서 가난을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안에 '뢰'가
갖추어지지를 않습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이거나 현실의 어느 시점에서 가난이 되었든
지, 무엇이 되었든지, 절박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는 그와같은 자기 망상 때문에 현실을 느낄 수 없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치의 절정에서, 그 절정에 머무르는 사
람이 '그래서는 안되겠다.'고 깊이 느꼈을 때 바로 '뢰'의 힘이 생
깁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가난하게만 산 사람은 평생 가난에서 헤
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재력이 있을 때는 적당히 써보
기도 하라고 [산화비]에서 강조하였습니다.
좋은 것이 뭔지도 알아야지 나쁜 것으로 안들어가는 법입니다.
가난 속에서 좋은게 뭔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은 가난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좋은 것도 해봐야 됩니다. 좋은게 뭔지, 가난이 뭔지
를 알아야ㅁ '지'에서 성장시킬 수 있는 '뢰'가 이루어 집니다. 덮
어놓고 가난만 미워하는 사람은 '돌아올 복(復)'이 되지 않는 그런
"뢰가 아닌 뢰"가 될 뿐입니다.
두번째 음효. 아름답게 바른길로 돌아온다. 몸을 낮
추어 인자하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하면 길하리라.
"아름답게 바른 길로 돌아온다." 설사 나가서 조금의 만족이라
도 생겼을 때 만족에 치우치지 않고 다시금 지난 세월을 걱정할
수 있는 것.
어떤 사람은 날마다 벌어서 그날 먹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일당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전 인생을 일당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뢰'가 갖추
어져 있지 않았을 뿐더러, 그 '뢰'를 통해서 현실에서 "지나간 과
거가 미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두번째 효가 바른 길로 돌아온다는 것은 첫번째 양효의 때를
잊지 않고 다시 그 때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음효
는 외부의 것을 끌어당기는 것이지만, 두번째 중정의 지위를 지킨
음효는 내면의 양효가 나오도록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두번째 효는 양효의 상태를 잊지 않고, 다시 겸허
하게 그 상태를 되돌아 간다는 뜻입니다.
세번째 음효. 이따금 과오를 저지르나 그때마다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자주한다. 위태로운 노릇이나 허물
은 없으리라.
六三, 頻復. 려无咎. 象曰, 頻復之려, 義
无咎也.
"이따금 과오를 저지르나 그때마다 바른길로 돌아오기를 자주
한다. 위태로운 노릇이나 허물은 없으리라." 사람이 조금 만족해
지다 보면 만족에 머물려고 하게 됩니다. 원래 이 우주가 그런 습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에 '뢰'가 분명한 사람이라면 조
금의 과실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때를 잊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
서 번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항상 '뢰'의 상태로 있을 수는 없습
니다. 일시적인 만족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즉시 바른 길로
돌아가기 때문에 큰 과실은 없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뢰'가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
슴속에 진정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강한 '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알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받
아들여 그것이 이 세상에 펼쳐지도록 해야겠습니다.
네번째 음효. 중용을 지키면서 홀로 돌아와 바른 길
을 쫓는다.
"중용을 지키면서 홀로 돌아와 바른 길을 쫓는다." 첫번째 양
효와 정응관계를 이루어 중용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다보
면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잘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 그 상태를 쫓아서 하는 것이 중용을 지키는 것입
니다.
매사가 이와같은 7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맨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뜻으로 나아가는 것
이 첫번째 단계입니다. 일이 잘되어 설사 만족감에 도취할 지경에
이른다 하더라도 처음 상태를 잊지 않고 '내가 이정도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는 안된다.' 하고서 다시 되돌아가면 결국 큰
허물이 없이 발전선상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경건한 마음으로 바른길에 돌아온다.
중용의 도를 지켜 스스로 반성한다. 후에 흠이 없으
리라.
"경건한 마음으로 바른길에 돌아온다." 벌써 이 정도쯤 가면
어느 정도 자기 역량이라는 것이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역량이 갖추어졌을 때 그 때 마음은 "경건한 마음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중용의 도를 지켜 스스로 반성한다. 후에 흠이 없으리라." 내
가 오늘날 설사 잘산다고 하더라도 "이 잘사는 나는 내가 아니
다." "잘산다고 하는 지금의 이 재물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도 있
는 것이다." "나는 가난했던 그 시절의 그 아픔과 함깨 존재하리
라" 고로 "나는 오늘 만족하기에 앞서서 오늘 내가 할 일이 무엇
인지를 나는 찾으리라." 이렇게 반성하는 경건한 마음을 갖고 있
으면 끝내 가서는 역시 후회함이 없이 길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
다.
여섯번째 음효.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을 잊고 신념없이 방황하고 있다.
군주된 자의 정도에 어긋난 행동이다. 흉하리라. 인
재(人災)와 천재(天災)가 겹치리라. 이러한 때 군대
를 동원하여 전쟁을 벌이면 마침내는 크게 패하여 나
라와 임금에게 화가 미친다. 흉하다. 10년을 싸워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을 잊고
신념없이 방황하고 있다." 잘 되었다 하더라도 잘됐다는 부분에
머물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10년을 싸워도 승리하지 못하리
라." 그렇게 되면 그것이 자기 재난과 하늘의 재난이 같이 겹쳐서
그 상태에서 10년을 가지고서 더 일을 벌린다 하더라도 끝내가서
는 불행을 얻으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지뢰복]은 돌아오게 합니다. 그렇다고 결코 돌아오는 것에 머
물러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행복이 반드시 내일의 행복이 되는 것
은 아닙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또 오
늘의 행복이 내일이 되도록 어제의 불행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진정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것, 누가 부수려해도 부숴지지 않
는 것, 그것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것은 내가 요구하는 만큼으
로 되돌아 옵니다. 이렇게 되돌아 오게 해주기 위해서 우주는 지
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받아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부족입니다.
"가던 길을 돌아오는데 7일만에 왕복한다. 이것은 천도의 순환
법칙이다." 나의 진정한 뜻이 나의 현실로 나타나는데에는 일곱단
계의 어려움을 거쳐서 반드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나의 심정, 즉
바라는 마음, 희망, 소망..., 이와 같은 것들은 3-4단계쯤 가면 잊
어버립니다. 지금 머리속에서 희망으로 그리고 있는 것, 그 세계
가 다 없어질 정도가 될 때, 그 때가 3-4단계 정도입니다. 이것을
넘어간 뒤에 두 세 단계의 시험과정을 거쳐 비로서 그것이 내앞
에 나타나게 됩니다.
라디오가 고장났다고 '이걸 빨리 고쳐서 소리나게 해야지.' 하고
빨리 고치려고 하면 되지도 않고 소리도 안나옵니다. 한 번 소리
가 안났을 때 "이게 라이오냐?" 하며 발로 밟아버리면 라디오는
망가져 버리게 될 뿐더러, 자기 발도 다쳐서 약바르고 치료해야
하게 됩니다. 라디오가 고장났을때 그것을 수리점에 맡기고 라디
오 소리에 대한 행복감이 다 사라지고 잊혀질만한 뒤에 찾아오면
드디어 라디오에서는 맑은 소리가 울려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
리의 행복이 돌아오는데 있어서 걸리는 기간입니다. 이 사실을 알
고 우리가 그에 앞서서 다가오는 여러 어려운점에 굴하지 말고
굳굳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우뢰와 같은 기강을 안으로 갖추지
않으면 돌아올 수 있는 행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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