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산천대축(山天大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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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된 구축 』
○ 하늘의 기운이 산으로 내려오니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 형국입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키워 온 실력을 바탕으로,
● 드디어 세상에 나아가 큰 일을 성취하게 되니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행동에 대한 방침을 정하고 착수
○ 하라는 것입니다. 혹 어려움이 있더라도 끈기와 노력만
○ 있으면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니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 되듯이, 꾸준히 노력하여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범이 산속에서 포효하듯 뭇 짐승들의 위엄이 되고 시냇물
이 흘러서 바다에까지 이르듯 모든 것이 충만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천대축(山天大畜)
[대축]괘는 강건 견실하고, 광휘(光輝)가 있다. 날마
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 강하고 강한 자가 위에 있
어서 현량한 인사를 존중하여 능히 강건한 무리의 지
나침을 견제한다. 이것이야 말로 크게 다른 도리이
다. 이 도리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크게 발
전하리라. 어진 인사를 나라에서 길러주니 천하의 현
사들이 나라에 몸을 바치게 되어 제집에서 밥먹고 있
지 아니한다. 대축 괘는 천도에 순응하고 있으므로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벅차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 괘는 64괘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괘이면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렇게 되지 않으면 크게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괘의 이름에서 보다시피 '대축(大
畜)', 즉 크게 축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천대축]은 하괘는 하늘을 뜻하고 상괘는 산을 뜻하는 괘입
니다. 즉, "하늘위에 산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어떻게 산이 하늘
위에 있을까?' 하겠지만,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니고 "하늘 위에 산
이 있으면 그 산이 하늘의 모든 정기를 흡수해서 존재하고 있다."
라는 것을 뜻합니다.
왜 존재하는가? 밑에는 세 효가 모두 양(陽)으로서 양(陽)의
괘입니다. 위에도 마찬가지로 음(陰)이 두 개있고 양(陽)이 하나
가 있어서 양(陽)의 괘입니다. 양(陽)위에 양(陽)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맨 밑에는 양효(陽爻)가
셋, 그 위에는 음효(陰爻)가 둘, 맨 위에 양효(陽爻)가 하나 있습
니다. 이렇게 되어 있지 않으면 크게 발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
습니다.
"[대축]괘는 강건 견실하고, 광휘(光輝)가 있다. 날마다 그 덕
을 새롭게 한다." 하괘인 건괘(乾卦)는 하늘로서 강건한 것을 상
징하고, 상괘인 산은 중후하고 움직이지 않아 아주 견실한 모습임
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대축(大畜)괘는 강건, 견실하다고 하였
습니다. 또 건(乾)은 하늘인바 하늘에는 일월(日月), 즉 태양과
달이 있으므로 찬란이 빛나는 광채가 있는 것이며, 또 날마다 태
양이 새로운 빛과 열을 보내므로 날로 덕이 새롭다고 풀이하였습
니다.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가정이 됐든, 사회가 됐든,
어느 곳이든간에 항상 새로운 에너지의 빛을 통해서 찬란하게 빛
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강하고 강한 자가 위에 있어서 현량한 인사를 존중하여 능히
강건한 무리의 지나침을 견제한다." 하괘의 양효 셋은 바로 자기
힘이 먼저 나서는 독단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늘을 향하
여 확고부동한 자기 자신이 있으나 세상과 조화되지 않고 자기
힘만으로 밀고 나가서 위험과 재난이 따르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상괘의 두 개의 음효는 이 기운을 흡수하여 지나치게 독주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맨 위의 강건하고 바른 양효 하나를 올바르게
보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산천대축]은 올바른 도리
를 지키며 강건한 군주가 하나, 군주를 성심으로 보필하며 아래
강한 무리들을 잘 중화시켜 화합을 이루게 하는 현명하고 어진
신하가 둘, 그외 자기 멋대로 사는 백성이 셋으로 전체적으로는
1:2:3의 안정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
세를 갖추어야만 그 조직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안정된 구축을
이룰 것이며,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크게 다른 도리이다. 이 도리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크게 발전하리라." 어느 집단이든지 [산천대축]의
두 음효처럼, 아래의 강한 것을 흡수해주고, 최고 지위의 강한 것
을 밑에서 받쳐주는 완충의 매개역할을 하는 것이 존재해야만 안
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때는 돈 1원보다도 값싼 맑은 공기가 아무 가치
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스크린
이 중요하지, 스크린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있는 아무 것도 없는 공
기,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크린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누군가 공기만 빼앗아 간다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스크린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공기가 없어지면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콜라가 맛있다, 사이다가 맛있다 하지만, 물이 더
고맙다는 것을 느끼기는 당연한 것이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물이
없으면 콜라도 사이다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의 고마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콜라도, 사이다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치는 무
의식적으로 우주와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한테 나타나는 것
이지, 우주에 떠 있는 머리를 통해서 이 드넓은 우주를 찾아 헤맨
다고 해봐야 우주가 코딱지만한 인간의 머리 속안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자기의 어떤 이
득을 위해서 다닐려고 하는 사람은 회사로부터 약간의 이득은 얻
을 수 있을 지 몰라도 회사를 책임질 수 있는 그릇은 되지 못합
니다.
물과 공기의 중요함을 알아 믈과 공기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
람이 물과 공기에 의해 존재하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입
니다. 화사 전체를 자기 품안에 품고 회사와 하나가 된 사람이 회
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크기가 컵 정도 밖에 되
지 못하는 사람은 컵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뒤로 욕을 하고 나갈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공기와 하나가 되는 것, 물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기를 통해서, 물을 통해서 만들
어 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강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공기와 하나가 되어
강한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음성적인 덕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
지 않습니다. 최고의 지위에 있는 것이 항상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떠받들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있는 사람은 자기 터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터전만 만
들면 우리는 그 터전안에서 얼마든지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세상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공기가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물
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물에 대해 짜증내고,
공기에 대해 짜증내면 점점 자기 생명은 미약한 불씨처럼 그렇게
꺼져가게 됩니다.
이치를 알고 이치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완성
이며, 가장 위대한 우주 만물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찬란한 하늘의 빛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어진 인사를 나라에서 길러주니 천하의 현사들이 나라를 위한
일에 몸을 바치게 되어 제집에서 밥먹고 있지 아니한다." 진정으
로 우주와 하나가 되고, 우주를 알고 싶어하고, 우주를 위해서는
자기 밥을 먹지 않고 차라리 굶을 수도 있는 사람은 우주 때문에
밥먹게 되는 비법을 얻게 됩니다. 나라와 하나가 되고, 나라를 위
해 몸을 바치는 사람은 나라에서 잘먹고 잘살게 틀림없이 배려해
주며, 그런 사람은 어디가도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
기 것만을 위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자기 것을 잃게 되면
그 사람의 목숨도 잃게 될 것입니다.
"대축 괘는 천도에 순응하고 있으므로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
과 같은 벅차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머
리가 좋아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산다고 해서 매사가
순조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에 맞게 대축(大畜)을 쌓
아가는 사람이라야 아무리 험난한 강을 건넌다 하더라도 무난하
고 순조롭게 매사를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얻지 못하
면 영원히 큰 발전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산천대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짐승이나 곤충들을 아주 저급한 생명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보면 인간이 그것들보다 그리 크게 나을
것이 없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강에 물이 많을 때에는 간
혹 기러기떼를 보기도 할 것입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면 우후죽순으로 몰려서 날지 않고 반드시 어떤 규칙이 있어서
편대를 짜고 그 형태대로 날라가고 있습니다. 날라가다 대장 기러
기가 이쪽으로 가라고 한 번 "꽉" 하고 울면 기러기들은 한 번 움직
이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똑 같은 말을 수없이 해도 딴 짓하고 있습니다.
여러명을 모아놓고 "우향 우", "좌향 좌"를 외치면 각양각색으로
행동을 취합니다. 좌우지간 인간처럼 헛갈리는 것은 없습니다. 기
러기들은 맨 처음 기러기가 왼쪽으로 가라 하면, 두번째 세번째를
거쳐 맨 끝에 있는 기러기에게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
나 인간은 가면 갈수록 말이 변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곤충을 가지고 결코 우리보다 미개하다고 생각을 하면
큰 오산입니다. 곤충들은 크나 큰 골머리를 앓는 법이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단순한 갈림길만 있을 뿐 인간처럼 크나 큰
번민은 없습니다. 그래서 곤충들은 학교가 없습니다. 굳이 교육이
라는게 필요 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들은 교육의 가
장 근본적인 것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그보다 높
은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교육을 통해
서 지능 이전의 인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쌍한 동물입니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병법가인 손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승
리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기세(氣勢)와 태세(態勢)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
다. 기세(氣勢)는 기운의 세력. 즉, 기분내켜서 하는 것이나 역기
를 들때 나오는 것 등은 기세가 아닙니다. 인간이 기세(氣勢)와
태세(態勢)를 알고 있으면 [산천대축]과 같은 구축(構築)을 할 수
있습니다.
구축(構築)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기세(氣勢)와 태세(態
勢)는 나오지 않습니다. '신나서 하는 짓', 미친 짓입니다. 또 조금
어려운 일이 자기에게 닥쳤다고 좌절하는 것, 어리석은 짓입니다.
기세(氣勢)가 있는 사람은 신나서 움직이지 아니할 뿐더러 어려
운 일이 닥친다 하여도 결코 좌절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세(氣勢)로써 '한다' 하고 하면 다 길이 있는 법입니다. 법칙
도 사실은 기세(氣勢)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률이 존재
하면 감옥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데, 감옥과 법률이 동시에 존재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률의 법칙도, 감옥의 법칙도 둘 다 진정
한 의미의 법칙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한다" 하는 기세
(氣勢)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길을 알고 움직여야지만 진정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고
움직이는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이 기세(氣勢)지, 모르고 자기 신
난다고 뛰어가는 것, 기세(氣勢)가 아닙니다. 자극을 받아서 움직
이는 것, 기세(氣勢)가 아닙니다. 기세(氣勢)는 스스로 만족하지
도 아니하며, 자칫 실수했다고 해서 스스로 낭패당했다고 생각하
지도 않습니다.
자연은 이미 기세(氣勢)로서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기
세(氣勢)는 살아있는 지능입니다. 인간이 이해하는 지능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지능을 주었지만 오
히려 인간은 지능을 통해서 과실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지능과 함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과실은 인간 스스로
해결하라."는 과제를 동시에 부여하였습니다. 신이 준 지능은 알
아서 쓰기전에 먼저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
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구축(構築)'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돈이 많이
있는 것이 구축(構築)이 아닙니다. 구축(構築)은 돈을 필요로 하
지 않습니다. 없는데 가서도 구축(構築)된 사람은 돈을 만들어 냅
니다. 돈으로 구축(構築)한 사람은 돈이 없어지는 순간 자기 자신
도 멸망해 버립니다.
구축(構築)은 곧 "태세(態勢)" 이기도 합니다. 물이 아무리 흘
러 넘친다 하여도 물셀틈 없이 단단히 구축되어 있으면 물은 정
지해 버립니다. 그만한 태세(態勢)를 갖추고 있어야지 그만큼 움
직일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존재하는 곳에는 구축된 힘이 있습니다. '다
보탑'에 가면 반드시 쓰러지지 않는 구축된 힘이 있습니다. 그 힘
을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다보탑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다보탑이 "돌위의 돌"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탑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태세(態
勢)를 갖춘 사람은, 기세(氣勢)가 있는 사람은, 어려운 것을 각오
하고 해냅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이 어려운 것을 각오하고 해내는
것이지, 미리 마음 먹기를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시작한 사
람은 갈 길이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잘되어 출세하면 출세한 직
후 죽는 것이고, 재수없으면 그 전에 까무라치는 것입니다.
대상(大象).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大畜)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옛사람의 말과 과
거의 행적을 고찰하고 참고하여 자신의 덕을 기른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옛 사람의 말과 과거의 행적을 고찰하
고 참고하여 자신의 덕을 기른다." 이와 같이 덕을 기르는 사람은
군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군자가 아닙니다. 자고로 주역은 군
자 이하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역에서 간절히 말했음에
도 불구하고 덕을 기르지 않는 사람은 "너는 군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소인으로 이 세상을 비참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가면 위험이
있다. 재난을 피하여 멈추는 것이 좋다.
첫번째 효는 양효로서 "확고부동한 자기 자신이 있으나 자신의
힘만 믿고 독단적으로 사는 사람은 좋지 않다."라는 사실을 표현
하기 위해서 뜻 풀이가 좋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번째
효까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가면 위험이 있다." 흐르고 있는 난
류(難流)를 살피지 아니하고 자신의 힘만 믿고 나서면 위험이 있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재난을 피하여 멈추는 것이 좋다.
너무 자기 약은 식으로만 살려고 하거나 자기 이득만으로 살려고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
게 움직이는 사람은 반드시 재난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바퀴가 차륜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중
정(中正)을 지키면 허물은 없으리라.
"바퀴가 차륜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가정에 위험이 있어서, 혹
은 회사에 위험한 일이 생겨서, 아니면 본인이 생각할때 '여기서
는 내 만족이 얻어지지 않는다.' 등등의 자기만 생각하게 되면 궤
도에서 이탈해 버리게 됩니다. 자동차에서 이탈한 바퀴는 아무리
훌륭한 타이어라 해도 차없는 타이어가 되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잘된다고, 잘된다는 것을 믿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
고, 왜 가는 지도 모르고 마구 달리거나, 자기 잘 났다고 자기만
믿는 사람. 그리하여 주변이 없는 사람은 차륜에서 이탈하고 만다
는 이야기입니다.
"중정(中正)을 지키면 허물은 없으리라." 중용이란 가고 멈추는
것을 스스로 자제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
은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 미리 미리 설 곳을 생각하고 설 수 있
는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차륜에서 이탈하여 길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번째 양효. 준마를 타고 달린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면 좋다. 날마다 무예에 힘써서
웃사람과 뜻을 같이하여 전진하면 순조롭다.
"준마를 타고 달린다." 준마는 빨리 뛴다고 해서 준마가 아닙
니다. 빨리 달리면서 정지할 때에 가서 정지할 수 있는 말이 준마
입니다. 승용차가 잘 나간다고만 해서 좋은 차는 아닙니다. 설때
잘 서는 차가 좋은 차입니다. 준마는 낭떠러지 같은 위험한 상황
이 닥치면 딱 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양효는 전부다 강한
기세인 것같지만, 강한 기세가 아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신난다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 힘에 겨워 곤란을 겪
게 됩니다. 서고 가고 할 수 있는 전체적인 구축력을 느낄 수 없
는 사람은 자기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중용을 갖춘 사람은 난해
한 일이 있어도 자기가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창조할 것은 창조
하고, 스스로 자기 결정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갖은
욕을 하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준마는 욕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안에서 욕이 일어났다면 준마
가 아닙니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사람이 곧
준마입니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면 좋다." 곤란한 것
을 참으려면 그만한 기세가 있어야 됩니다. 이 기세가 있기 위해
서는 나의 전 의식을 동원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닥쳐진 모든
일에게 주의깊게 집중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든지 나의 주의력과 기세가 스며들어갈 수 있는
틈바구니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를 바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자기 마음속에서 먼저 불화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불화는
스스로 막아야합니다. 불화를 막는다는 것이 불화가 일어나는 것
을 억누르고 참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스스로 막는 것이 아
닙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주의력이 있으면 불화는 그냥 스쳐지
나가 버립니다.
네번째 음효. 송아지의 뿔에 나무를 가로대어 사람을
받지 못하게 한다. 화를 미연에 방지하니 기쁨이 있
다. 대길하리라.
"송아지의 뿔에 나무를 가로대어 사람을 받지 못하게 한다."
군자는 사람의 강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내리칠 수 있는 지혜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정도 되면 기세가 갖추어진 사람입니
다. 기세가 갖추어지면 상대방의 강한 것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두고 보자는 놈 하나도 안 무섭더라." 하는 이야기는 자기 힘에
날뛰어 봐야 그것은 앞만 보고 달리는 오래갈 힘도 아니기 때문
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지할 수 있는 사람, 자기 홧김에 사로 잡
히지 않는 사람은, 이제 남의 홧김과 남의 쓸데없는 힘을 볼 줄
압니다. 남의 쓸데없는 힘이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과, 그것
을 지나가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 능력은 수용하
여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음효입니다. 양효는 그런게 없
습니다. "자기 울분을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남의 화
도 막을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돼지가 어금니로 사람을 해치는 위험
한 일이 없도록 어린 돼지때에 거세하면 그 성질이 유
순하여 진다.
부모는 가급적 어린 아이를 매로 다스려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화가 난다고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
가 하고 싶은 것은 하도록 내버려 두되, 그 아이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매를 때려야 합니다. "돼지가 어금니로 사람을 해치는 위험한 일
이 없도록 어린 돼지때 거세하면 그 성질이 유순하여 진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이빨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돼지가 되
기 전에 미리 거세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고집을 떠는 것을 막
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자기가 됩니다.
마치 보다 새로운 싹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꺾어주
듯이.
여섯번째 양효. 방대하고 영원히 삐뚤어짐 없는 하늘
의 기를 본 받으니 도가 크게 빛나 만사가 형통하리
라.
구축력을 알고 쓰는 사람은 맨위에 있고, 그 다음 구축력을 따
르는 사람이 둘, 맨밑에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셋, 이러한 비율
로 있는 것이 가장 안정된 구축력을 쌓은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
회사는 최소한도 이와 같은 비율을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지금 이 밑의 3에 들어가는 인간이 아닌가 하는 점을 분명
히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남이 보면 단순
히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스스로 자기 자신 앞에 순종하
는 사람, 그런 사람은 두번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구축력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번영을 이루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섯번째 효
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면 다음은 나빠진다." 하는 얘기를 했었는
데 이 여섯번째 효만은 유독 "그렇게 해서 번영 발전한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속 안에서 이와 같은 구축력
을 키워 가도록 해야 겠습니다. 그 구축력을 키웠을때 그 사람이
하는 노력은 이미 기세(氣勢)요, 살피는 힘은 이미 태세(態勢)이
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라고 위대한 손자가 승리의 비법으
로 말하였습니다.
유성..
○ 하늘의 기운이 산으로 내려오니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 형국입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키워 온 실력을 바탕으로,
● 드디어 세상에 나아가 큰 일을 성취하게 되니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행동에 대한 방침을 정하고 착수
○ 하라는 것입니다. 혹 어려움이 있더라도 끈기와 노력만
○ 있으면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니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 되듯이, 꾸준히 노력하여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범이 산속에서 포효하듯 뭇 짐승들의 위엄이 되고 시냇물
이 흘러서 바다에까지 이르듯 모든 것이 충만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천대축(山天大畜)
[대축]괘는 강건 견실하고, 광휘(光輝)가 있다. 날마
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 강하고 강한 자가 위에 있
어서 현량한 인사를 존중하여 능히 강건한 무리의 지
나침을 견제한다. 이것이야 말로 크게 다른 도리이
다. 이 도리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크게 발
전하리라. 어진 인사를 나라에서 길러주니 천하의 현
사들이 나라에 몸을 바치게 되어 제집에서 밥먹고 있
지 아니한다. 대축 괘는 천도에 순응하고 있으므로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벅차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 괘는 64괘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괘이면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렇게 되지 않으면 크게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괘의 이름에서 보다시피 '대축(大
畜)', 즉 크게 축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천대축]은 하괘는 하늘을 뜻하고 상괘는 산을 뜻하는 괘입
니다. 즉, "하늘위에 산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어떻게 산이 하늘
위에 있을까?' 하겠지만,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니고 "하늘 위에 산
이 있으면 그 산이 하늘의 모든 정기를 흡수해서 존재하고 있다."
라는 것을 뜻합니다.
왜 존재하는가? 밑에는 세 효가 모두 양(陽)으로서 양(陽)의
괘입니다. 위에도 마찬가지로 음(陰)이 두 개있고 양(陽)이 하나
가 있어서 양(陽)의 괘입니다. 양(陽)위에 양(陽)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맨 밑에는 양효(陽爻)가
셋, 그 위에는 음효(陰爻)가 둘, 맨 위에 양효(陽爻)가 하나 있습
니다. 이렇게 되어 있지 않으면 크게 발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
습니다.
"[대축]괘는 강건 견실하고, 광휘(光輝)가 있다. 날마다 그 덕
을 새롭게 한다." 하괘인 건괘(乾卦)는 하늘로서 강건한 것을 상
징하고, 상괘인 산은 중후하고 움직이지 않아 아주 견실한 모습임
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대축(大畜)괘는 강건, 견실하다고 하였
습니다. 또 건(乾)은 하늘인바 하늘에는 일월(日月), 즉 태양과
달이 있으므로 찬란이 빛나는 광채가 있는 것이며, 또 날마다 태
양이 새로운 빛과 열을 보내므로 날로 덕이 새롭다고 풀이하였습
니다.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가정이 됐든, 사회가 됐든,
어느 곳이든간에 항상 새로운 에너지의 빛을 통해서 찬란하게 빛
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강하고 강한 자가 위에 있어서 현량한 인사를 존중하여 능히
강건한 무리의 지나침을 견제한다." 하괘의 양효 셋은 바로 자기
힘이 먼저 나서는 독단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늘을 향하
여 확고부동한 자기 자신이 있으나 세상과 조화되지 않고 자기
힘만으로 밀고 나가서 위험과 재난이 따르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상괘의 두 개의 음효는 이 기운을 흡수하여 지나치게 독주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맨 위의 강건하고 바른 양효 하나를 올바르게
보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산천대축]은 올바른 도리
를 지키며 강건한 군주가 하나, 군주를 성심으로 보필하며 아래
강한 무리들을 잘 중화시켜 화합을 이루게 하는 현명하고 어진
신하가 둘, 그외 자기 멋대로 사는 백성이 셋으로 전체적으로는
1:2:3의 안정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
세를 갖추어야만 그 조직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안정된 구축을
이룰 것이며,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크게 다른 도리이다. 이 도리를 지켜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면 크게 발전하리라." 어느 집단이든지 [산천대축]의
두 음효처럼, 아래의 강한 것을 흡수해주고, 최고 지위의 강한 것
을 밑에서 받쳐주는 완충의 매개역할을 하는 것이 존재해야만 안
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때는 돈 1원보다도 값싼 맑은 공기가 아무 가치
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스크린
이 중요하지, 스크린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있는 아무 것도 없는 공
기,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크린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누군가 공기만 빼앗아 간다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스크린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공기가 없어지면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콜라가 맛있다, 사이다가 맛있다 하지만, 물이 더
고맙다는 것을 느끼기는 당연한 것이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물이
없으면 콜라도 사이다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의 고마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콜라도, 사이다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치는 무
의식적으로 우주와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한테 나타나는 것
이지, 우주에 떠 있는 머리를 통해서 이 드넓은 우주를 찾아 헤맨
다고 해봐야 우주가 코딱지만한 인간의 머리 속안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자기의 어떤 이
득을 위해서 다닐려고 하는 사람은 회사로부터 약간의 이득은 얻
을 수 있을 지 몰라도 회사를 책임질 수 있는 그릇은 되지 못합
니다.
물과 공기의 중요함을 알아 믈과 공기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
람이 물과 공기에 의해 존재하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입
니다. 화사 전체를 자기 품안에 품고 회사와 하나가 된 사람이 회
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크기가 컵 정도 밖에 되
지 못하는 사람은 컵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뒤로 욕을 하고 나갈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공기와 하나가 되는 것, 물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기를 통해서, 물을 통해서 만들
어 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강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공기와 하나가 되어
강한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음성적인 덕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
지 않습니다. 최고의 지위에 있는 것이 항상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떠받들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있는 사람은 자기 터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터전만 만
들면 우리는 그 터전안에서 얼마든지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세상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공기가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물
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물에 대해 짜증내고,
공기에 대해 짜증내면 점점 자기 생명은 미약한 불씨처럼 그렇게
꺼져가게 됩니다.
이치를 알고 이치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완성
이며, 가장 위대한 우주 만물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찬란한 하늘의 빛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어진 인사를 나라에서 길러주니 천하의 현사들이 나라를 위한
일에 몸을 바치게 되어 제집에서 밥먹고 있지 아니한다." 진정으
로 우주와 하나가 되고, 우주를 알고 싶어하고, 우주를 위해서는
자기 밥을 먹지 않고 차라리 굶을 수도 있는 사람은 우주 때문에
밥먹게 되는 비법을 얻게 됩니다. 나라와 하나가 되고, 나라를 위
해 몸을 바치는 사람은 나라에서 잘먹고 잘살게 틀림없이 배려해
주며, 그런 사람은 어디가도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
기 것만을 위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자기 것을 잃게 되면
그 사람의 목숨도 잃게 될 것입니다.
"대축 괘는 천도에 순응하고 있으므로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
과 같은 벅차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머
리가 좋아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산다고 해서 매사가
순조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에 맞게 대축(大畜)을 쌓
아가는 사람이라야 아무리 험난한 강을 건넌다 하더라도 무난하
고 순조롭게 매사를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얻지 못하
면 영원히 큰 발전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산천대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짐승이나 곤충들을 아주 저급한 생명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보면 인간이 그것들보다 그리 크게 나을
것이 없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강에 물이 많을 때에는 간
혹 기러기떼를 보기도 할 것입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면 우후죽순으로 몰려서 날지 않고 반드시 어떤 규칙이 있어서
편대를 짜고 그 형태대로 날라가고 있습니다. 날라가다 대장 기러
기가 이쪽으로 가라고 한 번 "꽉" 하고 울면 기러기들은 한 번 움직
이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똑 같은 말을 수없이 해도 딴 짓하고 있습니다.
여러명을 모아놓고 "우향 우", "좌향 좌"를 외치면 각양각색으로
행동을 취합니다. 좌우지간 인간처럼 헛갈리는 것은 없습니다. 기
러기들은 맨 처음 기러기가 왼쪽으로 가라 하면, 두번째 세번째를
거쳐 맨 끝에 있는 기러기에게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
나 인간은 가면 갈수록 말이 변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곤충을 가지고 결코 우리보다 미개하다고 생각을 하면
큰 오산입니다. 곤충들은 크나 큰 골머리를 앓는 법이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단순한 갈림길만 있을 뿐 인간처럼 크나 큰
번민은 없습니다. 그래서 곤충들은 학교가 없습니다. 굳이 교육이
라는게 필요 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들은 교육의 가
장 근본적인 것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그보다 높
은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교육을 통해
서 지능 이전의 인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쌍한 동물입니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병법가인 손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승
리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기세(氣勢)와 태세(態勢)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
다. 기세(氣勢)는 기운의 세력. 즉, 기분내켜서 하는 것이나 역기
를 들때 나오는 것 등은 기세가 아닙니다. 인간이 기세(氣勢)와
태세(態勢)를 알고 있으면 [산천대축]과 같은 구축(構築)을 할 수
있습니다.
구축(構築)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기세(氣勢)와 태세(態
勢)는 나오지 않습니다. '신나서 하는 짓', 미친 짓입니다. 또 조금
어려운 일이 자기에게 닥쳤다고 좌절하는 것, 어리석은 짓입니다.
기세(氣勢)가 있는 사람은 신나서 움직이지 아니할 뿐더러 어려
운 일이 닥친다 하여도 결코 좌절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세(氣勢)로써 '한다' 하고 하면 다 길이 있는 법입니다. 법칙
도 사실은 기세(氣勢)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률이 존재
하면 감옥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데, 감옥과 법률이 동시에 존재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률의 법칙도, 감옥의 법칙도 둘 다 진정
한 의미의 법칙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한다" 하는 기세
(氣勢)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길을 알고 움직여야지만 진정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고
움직이는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이 기세(氣勢)지, 모르고 자기 신
난다고 뛰어가는 것, 기세(氣勢)가 아닙니다. 자극을 받아서 움직
이는 것, 기세(氣勢)가 아닙니다. 기세(氣勢)는 스스로 만족하지
도 아니하며, 자칫 실수했다고 해서 스스로 낭패당했다고 생각하
지도 않습니다.
자연은 이미 기세(氣勢)로서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기
세(氣勢)는 살아있는 지능입니다. 인간이 이해하는 지능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지능을 주었지만 오
히려 인간은 지능을 통해서 과실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지능과 함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과실은 인간 스스로
해결하라."는 과제를 동시에 부여하였습니다. 신이 준 지능은 알
아서 쓰기전에 먼저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
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구축(構築)'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돈이 많이
있는 것이 구축(構築)이 아닙니다. 구축(構築)은 돈을 필요로 하
지 않습니다. 없는데 가서도 구축(構築)된 사람은 돈을 만들어 냅
니다. 돈으로 구축(構築)한 사람은 돈이 없어지는 순간 자기 자신
도 멸망해 버립니다.
구축(構築)은 곧 "태세(態勢)" 이기도 합니다. 물이 아무리 흘
러 넘친다 하여도 물셀틈 없이 단단히 구축되어 있으면 물은 정
지해 버립니다. 그만한 태세(態勢)를 갖추고 있어야지 그만큼 움
직일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존재하는 곳에는 구축된 힘이 있습니다. '다
보탑'에 가면 반드시 쓰러지지 않는 구축된 힘이 있습니다. 그 힘
을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다보탑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다보탑이 "돌위의 돌"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탑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태세(態
勢)를 갖춘 사람은, 기세(氣勢)가 있는 사람은, 어려운 것을 각오
하고 해냅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이 어려운 것을 각오하고 해내는
것이지, 미리 마음 먹기를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시작한 사
람은 갈 길이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잘되어 출세하면 출세한 직
후 죽는 것이고, 재수없으면 그 전에 까무라치는 것입니다.
대상(大象).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大畜)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옛사람의 말과 과
거의 행적을 고찰하고 참고하여 자신의 덕을 기른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옛 사람의 말과 과거의 행적을 고찰하
고 참고하여 자신의 덕을 기른다." 이와 같이 덕을 기르는 사람은
군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군자가 아닙니다. 자고로 주역은 군
자 이하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역에서 간절히 말했음에
도 불구하고 덕을 기르지 않는 사람은 "너는 군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소인으로 이 세상을 비참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가면 위험이
있다. 재난을 피하여 멈추는 것이 좋다.
첫번째 효는 양효로서 "확고부동한 자기 자신이 있으나 자신의
힘만 믿고 독단적으로 사는 사람은 좋지 않다."라는 사실을 표현
하기 위해서 뜻 풀이가 좋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번째
효까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밀고 나가면 위험이 있다." 흐르고 있는 난
류(難流)를 살피지 아니하고 자신의 힘만 믿고 나서면 위험이 있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재난을 피하여 멈추는 것이 좋다.
너무 자기 약은 식으로만 살려고 하거나 자기 이득만으로 살려고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
게 움직이는 사람은 반드시 재난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바퀴가 차륜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중
정(中正)을 지키면 허물은 없으리라.
"바퀴가 차륜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가정에 위험이 있어서, 혹
은 회사에 위험한 일이 생겨서, 아니면 본인이 생각할때 '여기서
는 내 만족이 얻어지지 않는다.' 등등의 자기만 생각하게 되면 궤
도에서 이탈해 버리게 됩니다. 자동차에서 이탈한 바퀴는 아무리
훌륭한 타이어라 해도 차없는 타이어가 되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잘된다고, 잘된다는 것을 믿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
고, 왜 가는 지도 모르고 마구 달리거나, 자기 잘 났다고 자기만
믿는 사람. 그리하여 주변이 없는 사람은 차륜에서 이탈하고 만다
는 이야기입니다.
"중정(中正)을 지키면 허물은 없으리라." 중용이란 가고 멈추는
것을 스스로 자제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
은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 미리 미리 설 곳을 생각하고 설 수 있
는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차륜에서 이탈하여 길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번째 양효. 준마를 타고 달린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면 좋다. 날마다 무예에 힘써서
웃사람과 뜻을 같이하여 전진하면 순조롭다.
"준마를 타고 달린다." 준마는 빨리 뛴다고 해서 준마가 아닙
니다. 빨리 달리면서 정지할 때에 가서 정지할 수 있는 말이 준마
입니다. 승용차가 잘 나간다고만 해서 좋은 차는 아닙니다. 설때
잘 서는 차가 좋은 차입니다. 준마는 낭떠러지 같은 위험한 상황
이 닥치면 딱 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양효는 전부다 강한
기세인 것같지만, 강한 기세가 아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신난다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 힘에 겨워 곤란을 겪
게 됩니다. 서고 가고 할 수 있는 전체적인 구축력을 느낄 수 없
는 사람은 자기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중용을 갖춘 사람은 난해
한 일이 있어도 자기가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창조할 것은 창조
하고, 스스로 자기 결정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갖은
욕을 하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준마는 욕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안에서 욕이 일어났다면 준마
가 아닙니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사람이 곧
준마입니다.
"곤란한 것을 참고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면 좋다." 곤란한 것
을 참으려면 그만한 기세가 있어야 됩니다. 이 기세가 있기 위해
서는 나의 전 의식을 동원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닥쳐진 모든
일에게 주의깊게 집중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든지 나의 주의력과 기세가 스며들어갈 수 있는
틈바구니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를 바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자기 마음속에서 먼저 불화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불화는
스스로 막아야합니다. 불화를 막는다는 것이 불화가 일어나는 것
을 억누르고 참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스스로 막는 것이 아
닙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주의력이 있으면 불화는 그냥 스쳐지
나가 버립니다.
네번째 음효. 송아지의 뿔에 나무를 가로대어 사람을
받지 못하게 한다. 화를 미연에 방지하니 기쁨이 있
다. 대길하리라.
"송아지의 뿔에 나무를 가로대어 사람을 받지 못하게 한다."
군자는 사람의 강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내리칠 수 있는 지혜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정도 되면 기세가 갖추어진 사람입니
다. 기세가 갖추어지면 상대방의 강한 것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두고 보자는 놈 하나도 안 무섭더라." 하는 이야기는 자기 힘에
날뛰어 봐야 그것은 앞만 보고 달리는 오래갈 힘도 아니기 때문
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지할 수 있는 사람, 자기 홧김에 사로 잡
히지 않는 사람은, 이제 남의 홧김과 남의 쓸데없는 힘을 볼 줄
압니다. 남의 쓸데없는 힘이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과, 그것
을 지나가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 능력은 수용하
여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음효입니다. 양효는 그런게 없
습니다. "자기 울분을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남의 화
도 막을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다섯번째 음효. 돼지가 어금니로 사람을 해치는 위험
한 일이 없도록 어린 돼지때에 거세하면 그 성질이 유
순하여 진다.
부모는 가급적 어린 아이를 매로 다스려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화가 난다고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
가 하고 싶은 것은 하도록 내버려 두되, 그 아이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매를 때려야 합니다. "돼지가 어금니로 사람을 해치는 위험한 일
이 없도록 어린 돼지때 거세하면 그 성질이 유순하여 진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이빨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돼지가 되
기 전에 미리 거세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고집을 떠는 것을 막
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자기가 됩니다.
마치 보다 새로운 싹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꺾어주
듯이.
여섯번째 양효. 방대하고 영원히 삐뚤어짐 없는 하늘
의 기를 본 받으니 도가 크게 빛나 만사가 형통하리
라.
구축력을 알고 쓰는 사람은 맨위에 있고, 그 다음 구축력을 따
르는 사람이 둘, 맨밑에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셋, 이러한 비율
로 있는 것이 가장 안정된 구축력을 쌓은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
회사는 최소한도 이와 같은 비율을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지금 이 밑의 3에 들어가는 인간이 아닌가 하는 점을 분명
히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남이 보면 단순
히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스스로 자기 자신 앞에 순종하
는 사람, 그런 사람은 두번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구축력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번영을 이루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섯번째 효
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면 다음은 나빠진다." 하는 얘기를 했었는
데 이 여섯번째 효만은 유독 "그렇게 해서 번영 발전한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속 안에서 이와 같은 구축력
을 키워 가도록 해야 겠습니다. 그 구축력을 키웠을때 그 사람이
하는 노력은 이미 기세(氣勢)요, 살피는 힘은 이미 태세(態勢)이
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라고 위대한 손자가 승리의 비법으
로 말하였습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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