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의 유시 천부삼인을 구현하고자 한 칠성신앙의 본고장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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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22. 11:37에 화순 대신리 고인돌군의 답사를 끝내고 운주사(화순읍에서 30km거리)로 향했다.
운주사는 탑과 불상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탑과 불상을 파격적으로 배치하여 불교에 익숙한 사람들을 쇠망치로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충격을
준다. 정신이 제대로 밖인 사람이라면 이곳이 야외 절로 원래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절은 운주사雲住寺로 절 이름이 표기 되어 있는데,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절 이름보다 운주사運舟寺가 합당하다고 본다.
이 절이 드러내는 키워드가 운運자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운運을 <천부경>의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에서 가져 왔다고 보면, 주舟는 <천부경>의 삼사三四를 의미
한다고 볼 수 있다.
삼三은 <천부경>에서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주제가 되는 3이다.
3은 우리의 사유체계를 구성하는 3이라는 숫자를 의미한다.
사四는 우리의 사유체계를 구성하는 4를 의미한다.
3은 분화· 확장· 확대를 의미하고, 4는 이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완성은 개체로서의 완성이 아니라 분화하고 확장한 개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완성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배를 의미하는 주舟의 기능을 갖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배가 있음으로써 강과 바다를
연결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을 연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배의 기능은 마치 생명체에서 피의 기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운주運舟에 그러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운주사는 절문을 들어서 걸어 올라가다가 보면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여 세운 9층 석탑이 앞을 가로막는다.
석탑의 각 벽면은 2중의 마름모형 방형 안에 4잎 꽃잎으로 된 박달나무 꽃을 한 송이씩 새겼다.
이로써 이 석탑이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지 가늠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겠다.
박달나무 꽃 잎의 수 4는 단군조선의 사유체계의 꽃인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의 기본이 되는 수 4를 의미
한다. 탑신을 덮은 옥개석의 수 9도 <천부경>에서 성수成數의 완성수인 9를 의미한다.
운주사의 운자도 운삼사성환의 운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운행하는 주舟자가 삼사三四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운주사 안이 단군조선의 정신을 수양하는 도량임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옥개석의 바닥엔 단군조선에서 만들었던 동경銅鏡에 새겨 넣던 인자형人字形의 사선斜線 무늬가 새겨져
있다.
삼층석탑의 북쪽으로 끝에는 방형석탑이 있고, 그 다음에 방장으로 보이는 감실에 앞에 부처님, 뒤에
부처님 2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부처님을 모셨다고 하기보다 천지인天地人의 인人을 남녀男女 인으로
분화하여 모셨다는 설명이 합당하다고 본다.
인간화한 미래불을 모셨다고나 할까, 현생에는 인류의 신앙의 대상이 되신 부처님이고, 내생에는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짐을 훌훌 버어버리고 순수한 인간으로 환생할 그런 부처님 말이다.
이러한 부처님이 천지인에서 인을 실현하는 분이다.
이 역시 <천부경>의 주제인 일석삼극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전언에 의하면, 신라 말에 도선스님이 이 천불 골에서 탑과 불상을 새겼다고 했는데, 추측컨대 도선스님이
불교의 극성기에 미륵상생신앙으로 삼국들 통일한 신라가 그들이 받아들인 불교사상에서 국가멸망의
비운이 싹트는 것을 보고 불교를 대체할 대안종교를 찾다가 단군조선의 국교였던 덕교德敎에 귀의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분에게서 느껴지는 예언가적인 기질, 무당적인 기질, 불교를 초월하려는 반불교적인 기질이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는 진에게 멸망한 단군조선의 후예들이 버린 덕교를 다시 끌어들여 불교의 대안종교로 또 다시 단군왕검
이 덕교를 세상에 펼쳤을 때처럼 세상에 펼쳐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덕교의 요체를 화순의 천불 골에서 부활시키려 했던 의도가 화순이라는 지명에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후대에 그의 의도를 알 리 없는 불자들이 야외사찰을 훼손하는 전각을 다시 짓고
부처를 안치하여 그의 도력이 높은 뜻을 훼손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방장의 북쪽으로는 원형석탑을 세웠다. 원형을 누층으로 쌓은 이 석탑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태양주기를
상징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천天을 원圓으로 표현하면 태양은 원으로 표현된다. 천지인을 상징하는 원방각圓方角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운주사에서 도선스님이 구현하고자 했던 천지인의 구도를 살펴보았는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원형탑은 해를, 방형탑은 달을, 감실에 모신 인물상은 복수의 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천지인이 이 땅에서 단군왕검이 세우신 단군조선시대에 덕교로 세상에 위광威光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무가 <칠성거리>에, “사람이 태어날 때는 왼쪽 어께에 일광패를, 오른쪽 어깨에 월광패를, 눈앞에
삼태성을, 등 뒤에 북두칠성을 타고난다.”고 하였다.
이 무가사설에서 사설한 그대로 탑과 인물상이 운주사 경내에 배치되어 있다.
운주사가 신비스러운 절로 세상에 알려지게 한 7개의 북두칠성 바위는 감실 왼쪽 산등성이에 돌을 맷돌
처럼 깎아 칠성의 형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칠성바위 동북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아래쪽을 향하여 쏟아질 듯이 불안하게 비스듬히 누워 있는
2기의 누운 불상을 만나게 된다. 부부형상으로 깎은 불상이다.
도선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며 석공들을 시켜 이 부부불상을 깎은 것일까?
과연 언젠가 이 부부 불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때가 오면 세상이 개벽하여 덕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는
덕교의 시대가 올 수는 있는 것인가? 도선스님이 칠성제석의 세계가 오기를 염원하며 여기에 안치해 드린
부부불상이 문득 내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
이 누운 불상의 머리가 아래쪽에 만들어 배치한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불상의 발끝이 북두칠성이 떠오르는 방위인 동북 간방을 가리키고 있다. 부부 부처님은 칠성제석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야외시계의 시계바늘이하는 일을 수행하고 계시다.
그때가 오면 감실 안에 모신 부부불상도 그만 좌선을 끝내고 툭툭 털고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시게 될
것으로 본다.
저 아래에 만든 감실 안 북쪽에 배치된 인물상이 마주 향하고 있는 하늘도 산등성이에 쏟아질 듯이 누운
부처님의 발끝이 바라보는 북두칠성의 방위와 동일한 방위를 가리키고 있다.
이들 누운 부처님에게로 오는 길목에 시위부처님 한 분이 서있다.
이 시위부처님 건너편에 탑이 하나 서있는데 탑신에 사출도四出圖가 새겨져 있다.
사출도는 지수화풍地水火風(토수화기土水火氣)을 의미하는 단군조선의 국시인 단군철학을 나타내는 도안
이다. 이 사출도를 계승한 고구려는 방형 안에 사출도를 그리고 해· 달· 음두성(여칠성)· 양두성(남칠성)을
배치하였다. 삼족오가 그려진 해를 왼쪽에, 토끼와 두꺼비가 그려진 달을 오른 쪽에, 떠오르는 북두칠성을
위쪽에, 지는 북두칠성을 아래쪽에 배치한 것이다.
사출도 안에서 화의 방위는 뜨는 북두칠성이 상징하고, 수의 방위는 지는 북두칠성이 상징한다.
왼쪽 방위에 나타내고자 했던 기· 풍은 해를 그려 상징했고, 오른 쪽 방위에 나타내고자 했던 토· 지는 달을
그려 상징했다. 이 벽화가 만주 길림성 집안현의 압록강 대안에 있는 장천1호분 천정벽화이다.
무가사설 <칠성거리>대로 탑과 인물상을 배치한 곳, 이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등성이에 부부부처님을
함께 배치한 곳이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절은 절 스스로 이 절이 불교
사찰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준다.
여기에 세워진 탑을 통칭 천불 탑이라고 한다. 실은 석탑과 석불을 합하여 100기(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
쯤 된다. 속설에 전해 오기를 “와불이 일어나면 개벽이 온다”고 했으니, 언젠가 부처님 부부가 일어나게
되실 때가 북두칠성이 꼬리를 감추는 새벽의 때요, 그때가 개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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